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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노래

등록일 2024-12-18 18:18 게재일 2024-12-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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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임금은 아버지요/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백성은 어린 아이라고 생각하신다면/백성들이 임금의 사랑을 알 것입니다./열심히 사는 백성들을/배불리 먹여 다스린다면/‘내가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랴?’라고 백성들이 말한다면/나라가 유지될 줄 아실 것입니다./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처신한다면/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향가 중의 하나인 ‘안민가(安民歌)’다. 제목처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비책을 노래하고 있다. 경덕왕 24년(745년) 3월 3일에 왕이 신하들과 함께 월성 남쪽에 행차서 훌륭한 고승을 찾으라 했다. 그가 바로 충담사(忠談師)였다. 충성스러운 말을 하는 스승이라는 이름이다. 충담사가 유명한 시인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던 왕은 자신을 위한 노래를 부탁했고 충담사는 즉석에서 ‘안민가’를 지어올렸다.

‘안민가’는 왕과 신하와 백성의 관계는 혈연관계와 같다고 비유했다. 왕은 아버지요, 신하는 어머니요, 백성은 자녀와 같다. 집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이들이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기 본분을 다하면 가정이 잘 유지된다. 나라도 이와 같으니 왕과 신하와 백성이 서로가 맡은 바 책무를 제대로만 다한다면 나라가 태평해질 것이요, 백성이 배부르면 나라를 떠날 일이 없을 것이다. 왕에 대한 따끔한 정치적 충언(忠言)이다. 이 노래는 현재 임금과 신하와 백성 각자가 제 역할을 못하여, 상호간 사랑과 신뢰가 무너졌고, 악정에 시달린 백성이 나라를 떠나려 하고 있으니 결국 나라가 태평하지 못함을 반증한다. 따라서 임금에게 그 책임을 묻고, 올바른 정치를 권고하는 뼈아픈 충간(忠諫)이다. 임금이 원한 임금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임금이 해야 할 일을 주문하는 눈물어린 충담(忠談)이다. 경덕왕이 죽기 1년 전이었다.

경덕왕 말년은 귀족들이 두 파로 대립된 세력이 각축을 벌이는 시대였다. 왕은 당시 정치상의 비리를 과감하게 청산하지 못했고, 의욕적인 중앙집권화 정책은 귀족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실패로 돌아갔다.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 경덕왕과 충담사의 만남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세간에 명성이 자자한 고승 충담사를 왕이 불러서 ‘안민가’를 짓게 했고 이를 통해서 귀족세력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안민가’가 질타하는 대상은 귀족세력이 아니라 경덕왕이라는 것이다.‘안민가’는 왕에게 올리는 충언이고 그 핵심은 마지막 구절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할 것이니라.”에 있다고 본다. 이는 경덕왕의 치세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답지 못하고, 백성답지 못해서 나라가 태평하지 못하다”라는 현실의 역설적 증언이며, 결국 경덕왕의 치세가 잘못되었다는 비판이라는 해석이다.

‘안민가’는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의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오늘의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노래라는 점에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정쟁에만 몰두한 국회에 넌덜머리가 난 국민은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우울감에 빠진 혼란의 이 시점에 충성스러운 이야기를 해 줄 이, 이 시대의 충담사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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