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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차전지 폐수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일차전지는 알카라인 건전지가 대표적인데 1800년대에 개발되어 아직도 TV 리모컨 등 다양하게 사용되나 한번 사용하면 재충전할 수 없다. 반면 이차전지는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리튬 이온 전지와 같이 방전 후에 충전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매우 경제적이고 환경친화적이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 이차전지를 개발한 공로로 3명의 과학자가 노벨화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는 등 이차전지는 획기적인 새로운 분야이다.이차전지는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과 같은 이동형 정보기기(IT)의 폭발적인 수요와 함께 급격하게 발전했다. 여기에다 친환경 교통수단 수요에 따른 전기자동차(EV) 보급 확대와 2050탄소중립에 대응한 재생에너지 저장시스템(ESS) 수요 증가로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 규모는 2020년 461억 달러에서 2030년에는 3517억 달러로 무려 8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환경보호와 자원재활용 규제 강화에 따라 EU시장이 중심이 되어 전세계 이차전지 재활용 시장은 2023년 81억 달러에서 2033년 857억 달러로 30% 가까운 높은 성장률이 전망된다.이에 정부는 지난 2023년 7월 용인·평택과 구미에는 반도체, 천안·아산에는 디스플레이, 포항·울산·청주·새만금 등 4곳에는 이차전지를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각각 지정하였다. 지정된 특화단지에는 2047년까지 681조원의 민간투자 계획에 맞춰 공공기관·국비를 통한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집중적 구축, 투자인센티브 제도 확충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들 산업에 다량으로 필요한 용수는 불순물(이온, 유기물, 미생물, 미립자, 기체 등)들을 극히 낮은 값으로 억제하여 이론적 순수에 근접한 물인 초순수(Ultrapure Water)인데 국내의 공급 기반은 아직 취약하다.한편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고 첨단 제조공정의 도입으로 인해 다수의 불특정 오염물질이 다량 포함된 폐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차전지는 양극재(전구체),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전해질) 등 리튬배터리 4대 소재의 제조공정에서 다량의 ‘이차전지 폐수’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차전지 재활용 공정에서도 망초(Na2SO4)와 같은 염이 고농도로 포함된 ‘이차전지 폐수’가 발생한다. 실제 전구체를 연간 100만t 생산하는 시설에는 무려 375만t의 폐염이 발생한다고 하며, 이외에도 유가 중금속, 금속류, 암모니아와 염소이온, 유기물질, 인, 용존고형물 등 다수의 오염물질이 다량 발생한다.이에 ‘이차전지 폐수’는 개별폐수처리시설을 통해 배출허용기준 이내로 처리후 공공 폐수처리시설이나 하수처리시설로 연계 처리하여 방류수 기준 이하로 처리하여 공공수역으로 최종 배출해야 한다. 그런데 방류수 기준에 주요 물질인 리튬, 코발트, 황산이온 등에 대한 배출허용기준이 아직 없고, 이들 물질과 불특정 물질의 복합영향으로 방류수의 생태독성도 우려된다. 따라서 이차전지 특화단지 내에는 생산자와 협력한 ‘이차전지 폐수’ 최적가용처리기술(BAT) 개발과 함께 폐수처리수 재이용 생태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2024-07-29

아침 이슬

‘아침 이슬’이 수록된 음반. 몇 해 전 문예창작과 시창작 수업에서 대학생들에게 노래 하나를 알려줬다. 자꾸만 길어지고 사변적인 근래 한국시의 경향이 마뜩잖아 짧은 문장만으로 아름다움은 물론 울림과 감동까지 빚어내는 글들을 읽히면서 노랫말을 예로 들었는데, “가을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동요 ‘노을’)에 이어 소개한 게 김민기의 ‘아침 이슬’이다. 칠판에 가사를 적었다. 아느냐 물으니 모른다 했다. ‘이 노래를 모른다고?’ 놀랐지만 나도 아침 이슬 세대는 아니다.“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알게 된 노래, 가사를 외우지 않았는데 저절로 외워진 노래다. 유신과 신군부, 민주화운동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부르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나는 노래다.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소년기를 보낸 나는 앞 세대가 엄혹한 시절에 피워낸 불씨의 열기를 자연스레 감각하며 자랐다. 정치의식이라는 게 생길 즈음엔 광화문에 가 “효순이 미선이를 살려내라”고 외쳤는데, 그해 겨울엔 통기타를 치며 김민기의 ‘상록수’를 부른 대통령이 당선됐다. 투표권 없는 고3이지만 감격했다.이전 세대의 확고한 신념 뒤에도, 이후 세대의 막연한 의식 뒤에도 김민기의 노래가 흐른다. 본강의 큰 물줄기가 아닌 바위틈으로 숨어 흐르며 길을 만드는 발원지의 고요한 물처럼, 그 자신은 뒤로 남겨지고 양희은의 목소리를 앞세웠다. “작은 미소를 배운다”는 대목에서는 욕심 없는 겸양이 나타나고, “붉게 타오르고”라는 비유 대신 “붉게 떠오르고”로 덤덤히 묘사한 부분에서는 삿됨 없는 우직함이 나타난다. 노래를 직접 부른 영상이 딱 하나 있는데, 무대 뒤에서 음향기기를 만지다가 그 자리서 기타를 잡았다.스스로 ‘뒷것’을 자처하며 철저하게 뒤에서만 그림자로 살았다. 공단에서 동료 노동자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야학을 열어 달동네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공공 유아원 건립 기금을 마련하고자 권력의 감시 속에서 목숨 걸고 노래했다. 소극장 ‘학전’을 만들어 가난한 예술가들이 맘껏 연주하고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차렸다. 뒷것인 그가 객석에 나와 있을 때는 늘 아동극이 상연될 때였다.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는 게 참 행복했다고 한다.소외된 공단 노동자와 달동네 아이들이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고, 학전을 거친 예술가들이 한국 문화예술계의 주역이 됐다. 아동극을 보며 꿈을 키운 아이들은 지금 30대가 되어 사회에 진출했다. 성숙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열정과 노력을 발휘하며 자기 삶을 가꾸고, 나아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자리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에 김민기가 있다. 아침 이슬은 정말 발원지의 투명한 한 방울 물인 것이다.앞에서 소리치지 않고 뒤에서 읊조렸을 뿐인데 저항의 상징이 됐다. 1975년 ‘아침 이슬’은 시답잖은 이유로 금지곡이 됐고, 김민기의 삶에도 시련과 서러움이 알알이 맺혔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부정한 권력자들은 노래가 가진 힘이 민중을 고취시키는 것을 두려워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들이 로르카를 살해한 것도 그의 시가 피눈물 밴 안달루시아의 민중정서를 노래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100만 명의 민중이 ‘아침 이슬’을 합창했다. 노래가 만든 거대한 파도에 마침내 독재자가 물러났다. 앞에 나선 그 어떤 사상가, 운동가, 정치가, 지도자도 하지 못한 일을 뒷것의 삶을 통해, 삶을 담아낸 노래를 통해, 노래에 실은 고결한 정신을 통해 김민기는 해냈다.노래가 생소해 멀뚱거리는 학생들에게 ‘아침 이슬’을 불러줬다. 미성으로 꽤 잘 불렀다. 아무래도 나는 뒷것은 못 되는 모양이다. 그때 노래를 들은 학생들이 지금 20대 후반쯤 됐다. 자기 자리서 열심히들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노래엔 신비한 힘이 있다. 그날의 노래를 기억한다면, 각자도생의 비정한 세상에서도 타인과 나누며, 약자를 도우며, 정의로운 쪽에 서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2024년 7월 21일, 서러움 모두 버리고 광야로 간 김민기는 아침 이슬로 언제나 함께 있다. 이제 산 사람들의 뒷것으로 우리 마음과 정신을 떠받치면서.

2024-07-29

여름의 책

눅눅히 마음이 무성해지는 여름, 비가 계속 내리는 날씨 탓에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는다면, 저자 무루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꺼내게 된다. 이 책은 생의 충직함, 성실함, 유연함, 지혜로움을 말끔히 엮어 만든, 깨끗한 옷 같은 에세이다. 올곧게 객관화되어 있는 사람의 다정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로, 묘하고도 신비로운 활력을 준달까.스무 살 무렵 늦은 성장통을 겪었다는 저자 무루(박서영)는 세상에 이해받지 못하는 소외감으로 그림책을 읽었다. 그림책에서 기쁨과 슬픔의 여러 이름을 발견하며 세상의 부조리와 간극, 소외되는 대상과 존재를 인지한다.비혼, 여성, 집사, 프리랜서, 채식주의자. 이토록 확고하게 자신을 나열함과 동시에 낯선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보지 않은 길로 가기 위해 용기를 낸다. ‘몸의 고립이 마음의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세상 밖을 걷고 머무른다. 외로운 날들이 모두 지나간 어느 때에, 그녀는 관계에 대해 ‘가끔은 한 사람의 손을 잡거나 나란히 걸을 수 있겠지만, 기왕이면 혼자서도 잘 걷고, 두 발로 씩씩하게 걷고 싶다’고 말한다.자신의 결정이 어디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책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그녀는 책 안에서 보고, 듣고, 사유한 것으로 자신을 이루어 타인을 공감하고 포용한다. 세상의 틈마다 그어 놓은 안과 밖의 경계는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고, 가장자리의 존재는 쉽게 배척된다. 하지만 저자는 사이에 놓인 경계를 허무는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바로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우리가 믿고, 사랑하고, 그래서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할 것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다.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은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믿는 마음이란 실체와 효용, 현실과 확신을 넘어서는 지점에 있다. 현실에서조차 세상은 언제나 한 사람의 세계를 거뜬히 넘어서기 때문이다. 유연한 사고와 타인에 대한 공감 역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질 터다.”저자는 그림책을 읽으며 자신의 과오를 인지하며 한계를 정하기도 하고, 계획과 좋은 습관을 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자신을 쌓는 어른이라니. 어떤 직업을 삼고,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 낼지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그렇게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지 떠올려 보게 된다. 저자는 ‘작은 기쁨을 풍요롭게 누리는 사람’,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리듬을 가진 노래 같은 삶을 사는 사람’, ‘농부의 손처럼 투박하지만 다정한 사람’ 등, 자신의 모습을 또렷하게 그려내며 먼 미래의 얼굴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앞자리가 바뀐 나이 때문일까. 나는 올해 유독 가만히 있어도 옅게 보이는 입주름이나 안으로 말린 어깨의 모양, 여유로워 보이는 걸음걸이나 손짓 등에 신경 쓰고 있다. 동시에 10년, 20년 뒤 어떤 모습일지 자주 상상해본다. 그럴 때마다 어쩐지 아득한 기분이 든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더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금처럼 뛰어다닐 수 없을 테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겠지. 몸과 같이 기분마저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면? 생각은 꼬리를 물어 어느새 울적해진 노년의 내가 그려지는 것이다.하지만 이 책을 다시금 꺼내어 읽다 보면 힘없이 늙은 몸을 가진 내가 아닌. 여유를 가진 채 그토록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된다. 당연히 내 옆에 자리했던 모든 것들을 한 번 씩 돌아보며 감사할 줄 아는 삶, 나와 타인의 건강한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빌어주는 삶, 진실로 거짓을 가려내며 거짓 없이 사랑하는 삶 등등. 깊은 내면의 모습을 그러다보면 놀랍게도 미래를 기대하며 기다려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일렁이는 내면을 가꾸어온 섬세한 손길이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묻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조금 더 구체적인 한 사람이 펼쳐진다. 타인의 변덕에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 많은 사람. 요상하고 재미있는 유행어를 많이 알아 젊은이들과도 유쾌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차와 주전자 색색의 실과 뜨개바늘에 둘러싸여 평온하고도 고요한 할머니의 모습. 나의 먼 미래를 웃으며 상상하는 자유로움은 이토록 신비롭고 견고하며 근사하다.세 시간 만에 단숨에 읽어버린 책은 이제 등을 내보이며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다. 이럴 때마다 무언가 듬직하게 기댈 수 있는 단단한 벽을 얻은 것만 같아 마음이 평온해진다. 괴괴한 날씨에 영향을 받아 변덕스런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은 이렇게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것이 제일 좋다. 책은 그런 걸 늘 가능하게 한다.

2024-07-29

상희구 시인의 ‘수선화 편지’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대구경북 방언으로 연작 시집을 완간했던 상희구 시인이 목소리를 상당히 죽여 침묵에 가깝게 속삭이는 새 시집 ‘수선화 편지’(오성문화, 2024)를 펴냈다. 상희구 시인의 방언 시집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시 해설을 겸한 시평도 쓴 적이 있다. 오늘은 좀 조심스럽게 시의 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할까 한다. 시가 강력한 목적성을 갖게 되면 메시지 전달에 힘을 주기 때문에 문학적 순결성을 상실하게 된다. 진보적인 목적시와 마찬가지로 방언의 자료를 가능한 작품에 많이 담겠다는 작가의 의도는 자칫 시의 전범을 훼손시킬 위험성을 안게 된다. 너무 많은 방언이 시 작품 속에서 누더기처럼 불어나면 조야해진다. 자칫 시의 품격을 떨어뜨리거나 천박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시 창작을 통해 방언 자료를 끌어 모으겠다는 의도가 오히려 시의 자리를 협소하게 만들 위험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최근 AI기술의 발전으로 거대한 음성자료 클라우드가 구축되고 거의 천문학적인 수량의 방언 자료가 이미 수집되어 있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많은 방언 자료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목적성 뒤에는 시문학 본질의 문제가 훼손돼 있다는 점을 결코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번의 ‘수선화 편지’에서는 시인 스스로 그러한 위험성을 감지했는지 기존의 시와 다른 상당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기는 하다.‘경상도 사투리 호시뺑빼이란 말의 어원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단 시 ‘수선화 편지 24’를 살펴보자. 과연 시인이 방언 어원을 시작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눈여겨본다. “대개의 경우, 각 지역의 사투리는 표준말에 비하여/어투가 아주 거칠고 투박합니다. 그 이유는 어느 지역/사투리든, 의태나 의성의 의미가 도드라지기 때문입니다./”(상희구 ‘수선화 편지 24’ )은 방언학개론서의 설명도 아니다. 오히려 운문성을 일탈한 서술은 시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표현일 뿐이다.문학 작품 속의 방언은 단순히 문화적 원자재다. 방언시는 부정적 차원에서의 변용을 위한 시가 아니다. 표준어로만 영위되던 문학의 외연을 시간적, 지리적으로 넓혀 정체성을 확대시켜 주고, 인종적 소수자나 이민자나 젠더와 같은 계급적 외곽 집단의 목소리를 유입해 역사적 진폭이나 문학 유산을 더 폭넓게 확장할 수 있음에 의미가 크다. 아마도 상희구 시인은 이러한 목적성 때문에 방언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을 가진 것은 아닐까?“…. 얘들아, 그 작은집에 김 서방, 사업이 망해가아, 멀찌감치 야반도주했다 카디이 요새는 우째 사능공?//아이고 백모님, 그런 말씀 마이소, 김 서방이 사업 망한 그 질로 서울로 가가주고, 서울서 집장사로 해가주고, 돈을 엄청 벌어가아, 요새는 호시뺑빼이로 산답니더.”에서는 시와 산문의 경계도 없어 시적 긴장감마저도 없다.이러한 방언으로 쓴 시의 문학적 한계를 아마도 시인도 의식한 듯하다. 이 시집의 2부에서 보여주는 단행 시편들은 앞서와 달리 서정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최근 1행시, 3행시, 4행시와 같은 일본 하이쿠를 연상시키는 단행 시들이 유행하고 있다. 단행 시의 전통은 우리의 고전, 전통 시조를 이은 현대시조 장르에서와 같이 고도로 압축된 문학 양식이다.그동안 상희구 시인의 방언으로 쓴 시작의 성과들은 문학 해석학의 범위를 확대되는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방언시들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번역이라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가 있다. 영어권의 소설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에 등장하는 흑인들의 방언, 계급어를 국내 번역 작품에서 녹여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실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들 언어가 함유하고 있는 계급적 문제까지 함유하고 있으니 표준어로만 번역한다면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역으로 한국 방언이 섞여 있는 문학작품의 외국어 번역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상희구 시인의 거작 대구방언시편을 외국어로 번역할 수나 있을까? 언어학적, 문화적, 지리적 차이와 사회 계급적 방언차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해외에도 알려낼 수 있을까? 문화적 실천으로 연구되고 문학작품이 대답할 수 있는 범주가 넓어졌지만 시대의 이념에 어떻게 조응하고 저항할 것인지 모색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2024-07-29

비잔티움제국 멸망 그 이후 수도를 이스탄불로 옮기다

1453년 비잔티움, 아니 로마를 멸망시킨 메메트 2세의 침략전쟁은 일단의 막을 내렸다. 그는 제국의 수도를 이스탄불로 옮기고, 세계 최고의 이슬람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사람이 몰려들도록 했다. 소아시아에 살던 사람들과 튀르크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을 대거 이스탄불로 이주시켜 세금혜택과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특히 지독한 기독교 국가로 거듭나던 이베리아반도에서 박해를 피해 유랑하는 유대인들을 받아들여 그야말로 부활의 에너지를 축적한다. 지난날 이슬람제국이 그랬듯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이슬람 특유의 관용과 포용 정책이 통했다. 이스탄불은 명성에 걸맞게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를 두루 아우르며 조화와 공존이 통하는 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이때 공동체란 뜻인 집단 거주지 ‘밀레트(Milet)제도’가 생겼다. 기실 통제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민족과 종교 공동체이자 공동 거주지가 생기면서 제국은 점차 확산일로를 걷는다.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저 멀리 이베리아반도의 에스파냐 상황이다. 에스파냐는 지독한 가톨릭 국가다. 9세기경부터 십자군 전쟁 당시 로마교황조차도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는 성전 레콘키스타(Reconquista), 즉 가톨릭교도들이 벌이는 국토 되찾기 ‘국토 회복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까닭에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는 칙령을 내렸다.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이슬람의 코르도바 왕국은 단합하지 못했던 그리스도교도의 작은 나라들을 공격해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로 명성을 떨쳤다. 그리스도교의 성지 야보고의 무덤이 있던 산티아고 대성당을 파괴했고, 985년 바르셀로나를 불태워버린다. 그러다가 내치의 위기를 대외 전쟁으로 눈을 돌리게 했던 재상 알만수르가 죽자, 기독교도들이 반격에 성공하면서 코르도바 왕국이 멸망한다.이후 이슬람은 여러 작은 나라로 쪼개지고, 이합 집산을 이루면서 그라나다에는 베르베르인이 지배하게 된다. 치열하게 전개된 가톨릭 성전은, 1469년 카스티야레이온왕국 이사벨 공주와 아라곤왕국 페르난도 왕자가 세기의 혼인동맹을 맺음으로써,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국가, 무함마드가 세운 그라나다 나르스왕국(1238∼1492년)을 멸망시키며 이베리아반도는 가톨릭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이베리아에 첫 통일국가가 탄생했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의사, 기술자, 회계사 등의 직업을 가졌던 유대인들을 박해하면서 에스파냐를 온전하고도 완전 무결점의 가톨릭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질주했다. 가톨릭 근본으로 하는 국가를 위해 사회 구성원의 실무를 담당했던 엘리트를 홀대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유대인은 물로,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 조금이라도 이타적 종교의 색채가 묻었던 예가 있으면 가차 없이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 박해를 피해 발칸반도와 소아시아로 몸을 피한 유대인들을 그들의 종교를 인정하고 관용 정책을 펼친 메메트 2세가 받아들여 이스탄불에 역동적인 힘을 보탰다.비잔티움까지 손아귀에 넣은 오스만제국은 발칸반도는 물론 지중해 동쪽과 중동 지역, 북아프리카에까지 제국의 영토를 넓혔고, 이 기세를 몰아 16세기 말이 되면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북쪽으로 헝가리에서 러시아 남쪽 경계,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걸프만까지 그 옛날 이슬람이 지배했던 지역 대부분을 제국의 땅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뒷받침하는 예니체리의 강력하고도 충성스러운 전투력과 데브시르메(Devşirme), 즉 지배지에서 전쟁고아들을 강제로 끌어 모아 무장시킨 군사 충원 방식에 있었다. 관전자로서 재미있는 부분은 메메트 2세는 스스로 기독교 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기독교 그리스인 대교구장을 임명했고, 제국의 술탄이자 로마제국의 황제를 자처했다. 그러자 또 하나의 황제를 자칭하는 신성로마제국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이탈리아 원정대를 꾸리고 진격해 들어갔지만, 교황을 중심으로 기독교권 방어에 사활을 건 기독교 국가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때마침 알바니아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급히 말머리를 돌려야 했다. 이후 1481년 메메트 2세는 이집트 정복에 나섰다가 원정 도중에 죽고 말았다.파티흐, 즉 정복자란 별명이 붙은 풍운아 메메트 2세가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비잔티움을 이스탄불로 바꾸며 제국의 수도로 삼았던 그로 인해 지금의 이스탄불은 그리스인과 로마인, 터키인에 의한 인류 문화사적 정기가 은은하고 진중하게, 그러면서 때론 역동적인 광선을 발산하는 도시로 거듭났다.특히 흑해를 이슬람의 호수로 만들어버린 것은 그의 역작이었다. 발칸반도를 평정하면서 보스니아 귀족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뒤 북방 변경 지역을 방어하는 오스만의 전사로 탈바꿈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7-29

노태우, 김영삼, 이회창… 그리고 한동훈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국민의힘 새 지도부를 초청해 삼겹살 파티를 했다. 대표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들도 함께 불렀다.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가 화합하라고 삼겹살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앞으로 하나가 돼 우리 한동훈 대표를 잘 도와줘야 된다”라고 말했다. 한 대표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러브샷도 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풀려나갈까.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분당(分黨)대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감정싸움이 심각했다. 윤 대통령이 원희룡 후보를 내세워 한 후보를 저격했다. 영부인과 한 대표 사이에 오간 문자까지 공개됐다. 24일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당내 선거는, 선거가 끝나면 다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할까, 그것만 생각하자”라고 말했다.그런데 전당대회 바로 다음 날 친윤계 최고위원들은 한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김재원·김민전 최고위원은 각각 방송에서 채 상병 특검법은 “당대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얘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표의 권한을 축소해 허수아비로 만드는 발언이다. 민주당이 기존의 특검법을 밀어붙이고, 한 대표가 반드시 막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일단 한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팬덤을 형성한 첫 번째 보수 정치인이라고 한다. 전당대회에서 당심과 민심이 모두 63%의 지지를 보냈다. ‘윤심’에 들지 않은 대표와 대표 후보들을 쳐낸 것과 같은 방법으로는 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원외인 한 대표는 한계가 있다. 윤 대통령과 등지면 국회와 따로 움직여야 한다. 치명적 상처를 각오해야 한다. 한 대표만 그런 게 아니다.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 퇴임 후가 걱정이다. 경쟁력 있는 후보를 모두 버릴 순 없다.윤 대통령은 저조한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을 표로 모아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비서실에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신영복 씨 글을 내려 보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줄임말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春風)처럼 너그럽게 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는 가을 서리(秋霜)처럼 엄하게 하라’는 채근담의 경구다. 그러나 거꾸로 행동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유행어가 됐다. 불공정의 상징이었던 조국 법무부 장관을 수사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뜻하지 않게 횡재했다.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최순실의 자식 사랑에 분노한 민심이 조국 사태에 분개했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지지율이 바닥이다. 영부인 문제에 너무 ‘춘풍’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내로남불’을 부숴달라는 기대에 못미친다. ‘격노’라는 말이 너무 자주 들린다. 말을 듣기보다 하기를 좋아한다. 선거 국면 언행이 여론을 역류했다. 의대 증원 문제에서 무능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차기 후보라면 윤 대통령의 지지 세력을 넘겨받기보다, 거부감을 덜어내는 게 관건이다. 검사가 법 적용을 자의적으로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타격이다. 윤 정부가 실패하면 정권 재창출이 아예 어렵다. 더구나 임기가 반도 지나지 않았다.2인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김종필(JP)·이회창은 실패했다. 노태우·김영삼(YS)은 성공했다. 차별화가 성패를 가르지는 않았다. JP는 ‘증언록’에 노태우 보안사령관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썼다. “첫째, 절대로 1인자를 넘겨다보지 마라.… 둘째, 있는 성의를 다해서 일관되게 1인자를 보좌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해라.”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JP의 조언대로 2인자의 자세를 지켜 대권을 잡았다.이회창 후보는 YS와 차별화했다. 극적으로 총리를 사퇴했다. 대통령 탈당을 요구했다. 지지자들이 YS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떼놓은 당상이라던 판세에서 연거푸 실패했다. YS는 노태우 대통령을 몰아세우며 차별화해 성공한 경우다. 차별화하더라도 상처가 크면 안 된다. 도움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건 민심이고, 타이밍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28

하얀 고무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어린 시절 유난스러운 병치레로 부모님은 나로 인해 무던히 속을 썩였다 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 하나는 아버지가 나를 무동 태우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걸어 한의원으로 가는 것이다. 초록색과 주황색 색실로 꿩을 수놓은 조끼를 입고, 하얀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은 젊은 아버지가 큼지막한 걸음걸이로 의원을 찾아가는 한겨울 풍경.그때 아버지는 스물아홉 청춘이었고, 발에는 하얀 고무신이 신겨 있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필시 양말 발이었을 것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경유지인 한의원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길을 걸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고작 만 세 살 전이었고, 폭설로 어른들마저 힘겹게 길을 걸어야 했던 사정이 있던 터였다.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아버지 연배가 되었을 때,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하고, 박사과정에 다니고, 여름방학 특강을 할 때, 나도 아버지처럼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집에서 학교까지 편도 2시간 20분이 걸리는 장거리 통학생이었던 시절을 돌이키면 지금도 짠하다. 지하철 1호선에 냉방기 대신 선풍기가 돌아가던 시절이었으니, 두 발은 얼마나 뜨거웠을까?!언젠가 제기동에서 막차를 타려고 제기 천변(川邊)을 서둘러 지나갈 때 일이다. 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하얀 고무신 발아래 무엇인가 뭉클, 하는 느낌이 선연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게 뭐지, 하는 섬뜩함과 고약한 심사가 어우러져 말할 수 없는 낭패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설마?! 아니, 그랬다. 커다란 시궁쥐가 고무신 아래 밟힌 것이다. 아아!…녀석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기사식당이 즐비(櫛比)한 천변에서 야식을 만끽하고 여유롭게 야간산책을 나온 녀석에게 나의 고무신은 폭력에 가까웠을 터! 하지만, 나도 그랬고, 쥐도 마찬가지로 침묵하면서 상황을 끝까지 통찰하고 인내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황은 평온하게 정리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적인 섬뜩함은 아직도 선명하다.그것이 두 번째 하얀 고무신의 소회다. 지난 2월 20일 시작한 ‘청도 인문학 강연’ 마지막 무렵부터 나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두어 해 전 이서(以西)에 사는 양반 집에 다니러 갔다가, 그 집 안주인이 선물한 하얀 고무신이다. 안주인은 솜씨가 출중한 분이어서 고무신에 화사하게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아주 멋지고 우아한 하얀 고무신이다.오랜만에 신어보는 고무신은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발에도 잘 맞고, 가벼운 데다가, 신고 벗기가 간명하여 마음에 쏙 드는 것이다. 급기야 그걸 신고 대구와 서울, 용인 나들이에도 나서는 형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활개 치며 다닐라치면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냥 눈감아버리기로 한다. 남의 신발에 관심 가진 인간은 없는 법이기에!고무신은 이제 생필품처럼 느껴진다. 한여름 더위와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나와 동행하는 가까운 벗이 된 것이다. 도서관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 동네 산책에서 나와 함께하는 하얀 고무신을 보며 추억에 잠기는 호사까지 누리는 행복이 이어지는 삼복염천이다. 신이여, 축복하소서!

2024-07-28

촌캉스

우정구 논설위원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직장인도 휴가철이 되면서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이 돌아왔다.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많으나 올해는 특별히 촌캉스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등장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시골을 뜻하는 촌(村)과 휴가를 의미하는 바캉스가 합쳐진 촌캉스는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시골이나 작은 마을로 나가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휴가 스타일이다.냉방이 잘되고 수영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도심속 호텔에서 2박 3일 여름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와는 색다른 맛의 휴가 스타일이다.한적하고 평화스러운 작은 시골마을에서 가족과 보내는 촌캉스는 도심과는 다른 시골만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자연과 자연스럽게 접촉을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즐길 수 있다. 또 텃밭에서 따온 각종 신선 채소 등 지역 특산물로 조리한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여행의 맛을 더해 준다. 헐렁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밀짚모자에 고무신까지 신으면 금방 시골 사람이 된다.촌캉스는 무엇보다 바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인파가 붐비지 않는 시골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정신적 힐링에 좋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면 그 어떤 장소보다 상호간의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가비가 저렴하게 드는 것도 좋은 점이다.전국 곳곳에 촌캉스를 위한 숙소나 펜션 등이 많이 준비돼 있다. 어릴 적 할머니집을 방문하는 느낌으로 이번 여름휴가는 촌캉스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8

혁신의 메카, 우즈베키스탄 면방법인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기업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혁신 활동을 벤치마킹 하는 ‘포스코인터내셔널 해외법인 우즈베키스탄 면방법인’의 일터 혁신은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우즈베키스탄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중심지이며, 금, 우라늄, 천연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에너지 대국이며, 세계 5대 면화 생산국이다.면방법인은 말 그대로 면화를 소재로 하여 연간 면사 5만t, 면직물 4000만m를 생산하며 4개 공장에 4000명의 현지 직원을 고용하고 있어 정부로부터 호평을 받는 기업이다.하지만 6년 전 컨설팅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 그곳은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처음 방적 공장에 가서 공장장의 공정 설명을 들으며 1시간가량 현장을 둘러보고 나왔는데 파란 작업복은 하얀 면화가 눈처럼 덮여 흰색 작업복처럼 보였다.이렇게 날아다니는 면화를 ‘풍면’이라 하였다. 이 풍면은 작업자의 건강을 나쁘게 할 뿐 아니라, 설비 회전체에 붙어 불쏘시개 역할이 되어 화재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필자는 전 직원이 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 ‘풍면 없는 공장 만들기로 누구나 근무하고픈 면방법인’이란 슬로건을 현수막으로 만들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곳곳에 부착하였다.그리고 첫 번째로 추진한 것은 풍면량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측정할 수 없다면 개선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현 수준을 측정하고 목표를 제시하고자 8개소에 가로세로 1m가 되는 사각형 나무 상자를 일정 위치에 두고 1일 뒤에 쌓인 풍면을 거두어 저울로 무게를 측정하였다. 측정결과 정방 공정이란 곳에서 가장 많은 양인 40g/日이 측정되었다.두 번째로 한 것은 3명을 1팀으로 구성, 3팀의 개선 리더를 양성하여 이들을 통해 풍면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해 나아갔다. 첫 번째 팀은 현재 운영하는 집진기의 성능을 100% 발휘하는 것과 풍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위치에는 집진 Hood를 추가로 설치하는 과제를, 두 번째 팀은 실의 단선이 되지 않도록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설비의 핵심 부품을 최적 관리하는 과제를, 세 번째 팀 이동형 진공청소기 개발 등 청소를 효율적으로 하는 과제를 추진하였다.활동 8개월 후 풍면 발생량은 90% 이상 감소하였고, 한국 주재원의 현장 Super Clean Day 솔선활동을, 현지 직원은 전원참여 Clean Factory 활동을 실시하여 현장은 아름다운 현장으로 몰라보게 변모하였다.이후 4개월 뒤 우즈베키스탄 노동조합 총연맹(대한민국 고용노동부에 해당)에서 주관한 Best Company on safety Protection 부분 전국 최우수상을 받았고, 중앙 방송(TV)에도 기업사례가 소개되어 주변의 많은 기업이 벤치마킹 오는 ‘혁신의 메카’가 되었다.우즈베키스탄에는 ‘첫 번째 만나면 지인이 되고, 두 번째 만나면 친구가 되며, 세 번째 만나면 가족이 된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기간 만나 함께 땀도 흘리고, 현장도 바꾸어 준 컨설턴트는 형제”라고 한 개선 리더의 말이 새삼 되새겨지는 순간이다.

2024-07-28

의도인가 팩트인가

유영희 작가 지난 7월 25일, 대통령의 두 번째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온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애당초 가결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고는 하나, 지난 7월 11일 조사한 여론 조사 결과 특검을 찬성하는 비율이 69%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회의원들의 대표성을 의심하게 되는 결과였다. 그동안 여당은 줄곧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이 독점하는 것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대해왔고 이것은 실제로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을 거부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채상병 특검법’이라고 하는 법안의 정식 명칭은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인데, 이 안의 제3조 2항에는 ‘대통령은 제1항에 따른 요청서를 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1명의 특별검사를 임명하기 위한 후보자 추천을 ‘국회법’ 제33조에 따른 교섭단체 중 더불어민주당과 비교섭단체에 서면으로 의뢰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3항과 4항도 이 연장선에 있다.이 외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는 몇 가지 더 있는데, 이에 대해 JTBC에서는 지난 12일 방송에서 여당의 거부하는 이유로 제시한 것이 사실인지 8개 항목으로 나누어 팩트체크한 적이 있다. 지금 한동훈 대표가 제3자가 특검 추천하자는 주장과 관계 깊은 항목을 보면,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JTBC에서 팩트체크한 바에 의하면, 특별검사를 추천했던 주체는, 대한변호사협회가 특검을 추천한 사례 5회, 대법원장이 특검을 추천한 사례 4회, 정당이 특검을 추천한 사례 4회였다. 여기서 정당이란 민주당이 아니라 야당을 말한다. 드루킹 특검 추천은 자유한국당이 야당일 때 한 것이다. JTBC는 이런 사례를 근거로, 이번 채상병 특검법에서 민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갖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검증했다.여기서 특검 주체가 왜 달라지나 추론해보니, 주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정당이 특검을 추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사안에 여당을 배제하고 야당이 특검을 추천할 때는 여당이나 대통령이 관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서원이 야당에 자신의 국정농단 특검 때 야당에 추천권을 준 것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때 헌법재판소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 이유로 대통령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사정을 들고 있다.물론 과거 야당이 특검을 추천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이번에도 민주당이 특검 추천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럼에도 이번 채상병 순직 사건의 책임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표결 과정에서 한동훈 대표가 제3자 추천안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뉴스를 보니, 한동훈 대표가 정말 특검을 추진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한동훈 대표는 특검을 찬성한다고 했으면, 야당이 탄핵을 전제로 특검법을 추진한다고 반대하기보다, 팩트에 입각한 진상규명에 진정성 있게 나서 주기 바란다.

2024-07-28

봄봄

신호를 기다리다 바삐 사이렌을 울리며 가는 구급차에 눈이 머문다. 앞차가 가는 줄도 모르고 목을 빼서 구급차의 꽁지를 바라본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2년 전 산소마스크를 쓰고 경계를 넘나들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폐달을 밟으려니 힘이 빠진다.하혈이 심해서 병원을 찾았을 때 자궁에 근종이 있으니 제거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크고 작은 수술을 많이 했던 터라 병원이라면 등부터 돌리고 싶었지만 결국은 수술 날을 잡았다. 봄이 막 문을 연 3월의 문턱에서 내 발로 걸어가 수술대 위에 누웠다.“하나, 둘 하시고 편안히 주무세요”간호사가 하는 말을 듣고 잠이 들었다. 그 뒤로는 모든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내가 의식이 돌아온 다음 남편은 그간의 모든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수술 시간은 3시간쯤 걸렸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나의 최고 혈압은 80이었다. 평소에 수면 내시경이든 어떤 마취를 해도 금방 깨는 나였지만 그 날은 이상하게 자꾸 어지럽고 눈을 뜨지 못했다. 남편은 담당 의사에게 왜 이렇게 마취가 깨지 않고 혈압이 낮냐고 물었더니 수술 중 출혈이 심해서 그러니 수혈을 좀 받자고 했다. 나는 수혈을 받았지만 여전히 어지러웠다. 혈압은 60으로 점점 떨어졌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지고 있었다.나는 자꾸 배가 아파왔다. 바로 누워 있으면 압이 차고 숨이 막히는 듯 아파 왔다. 어지러움보다 감당할 수 없었던 괴로움은 목마름이었다. 물이 너무 먹고 싶었다. 목 안이 타 들어 갔다. 쩍쩍 갈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한 조금의 물도 먹을 수가 없었다. 혈압이 낮은 상태에서 잘못 먹으면 폐혈증이 올 수 있다고 했다.남편은 내 손목에 자기의 손을 갖다 대고 맥을 체크했다. 빈맥이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는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남편은 나를 체크하다가 새벽녘 나의 맥이 거의 뛰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혈압을 다시 체크하라고 했다. 혈압은 잡히지 않았다. 혈압기가 계속 에러가 났다. 헤모글로빈 수치는 4.7로 떨어졌다. 나는 호흡이 힘들어 산소마스크를 쓰게 되었다. 대학 병원에 도착 했을 때 나의 배는 더 이상 산소가 들어갈 수 없는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의식이 가물가물했다. 나를 소생실로 데려갔다. 말도 못하는 나에게 모든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혈압을 올린 후 CT를 찍었다. 배가 너무 아팠다. 내가 의식을 놓을까봐 잠들어가는 나에게 의사 한 분이 계속 말을 시켰다. 외래 보던 교수가 응급실로 뛰어 내려왔다. 보호자인 남편을 불렀다. 남편에게 온통 새까만 CT 한 장을 보여 주었다.“지금 이 환자는 피가 간까지 차있습니다. 혈복강 내출혈인데 30분 안에 수술을 못하면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곧 폐로 피가 찰 것입니다.”나는 영문도 모르고 수술실로 가고 있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나를 남편은 자꾸 깨웠다. 평소에 이성적이고 냉정한 남편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김경아 작가 내 손을 잡고 ‘괜찮다. 힘내야 돼. 네 남편이라 너무 행복했다’하며 알 수 없는 말들을 했다. 나는 눈만 깜빡이다 수술실로 들어갔다. 소리가 들렸다. 턱까지 차올라 아팠던 배가 아프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얼음 같았던 내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눈을 떠보니 오른 쪽 목에 주사 바늘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온 몸의 혈액이 다 빠져 나간 상태라 빠른 시간에 공급을 위해 큰 혈관에 수혈을 했다. 얼굴은 두 배로 부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중환자실로 가지 않고 일반 병실로 오게 되어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혹독한 바람과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찾았다.내 몸은 황폐화되고 시렸지만 내 마음은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도 감사함을 배웠다. 타는 갈증을 참아내고 일주일 만에 물을 먹으며 물 한 모금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적인지를 알게 되었다. 덤으로 사는 내 인생을 예쁜 꽃으로 피워간다. 구급차에 타고 있는 그 누군가가 꼭 다시 봄을 맞이하기를 나도 함께 손을 모은다.

2024-07-28

변화는 또 다른 변화로 대응한다

오도창 영양군수 현대사회에서 영양군의 위치는 좋지 않은 교통 인프라로 내륙에서도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영양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면 별 볼일 없는 세상에서 별천지를 누리고 또 전국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숲에서 천연의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 소위 말해 숨 쉬는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영양은 자연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와 더불어 환경적 문제를 다루는 전 세계의 주요 이슈 속에서 전형적인 생태관광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려고 한다.영양의 밤하늘, 그 대표적인 공간인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은 인공조명으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고 소중한 밤하늘을 지키기 위한 영양군의 노력으로 국제밤하늘보호협회 (IDA)로부터 인정받아 아시아 최초로 밤하늘 청정지역으로 인정받은 곳이다. 동시에 반딧불이와 밤하늘의 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밤 풍경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야간 여행의 명소로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특히나 여름밤에는 숲속 길을 걷다가 마주친 반딧불이가 환상적인 형광색 군무로 아이들의 환성을 불러내더니 새벽하늘에는 이야기로만 듣던 은하수가 또렷한 은빛 수를 놓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자연의 웅장함을 그대로 비춰 보이는 영양 반딧불이 천문대에서 낮에는 태양망원경을 이용해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태양의 겉모습을 눈으로 마주할 수 있고 밤이 되면 누구라도 꿈꿔보았던 아름다운 별들이 수놓인 밤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질 것이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행성, 은하, 달 등을 가까이 관측할 수 있으며,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영상 콘텐츠들로 아이들에게 드넓은 우주에 대한 관심을 피우기 좋다. 누리호의 발사 과정을 다룬 실감 영상존 등으로 가족단위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우주복을 입고 달에 착륙한 듯한 느낌을 내는 우주비행사 콘셉트의 포토존이 있다. 가상체험(VR)을 통해 천문대에서는 느껴보기 어려운 또 다른 재미를 누리면서 어렸을 적 그려봤던 풍경에 대한 동심의 여름방학의 구성이 갖춰진다.천문대 앞으로 흐르고 있는 물소리를 듣다 보면 개울 옆으로 울고 있는 곤충들과 아래위로 선을 그리며 날고 있는 반딧불이도 관찰할 수 있다. 어느새 대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다.반딧불이는 청정한 자연 환경에만 서식하는 곤충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매년 여름이면 반딧불이 생태공원에서는 아름다운 반딧불이의 불빛을 감상할 수 있으며, 8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늦반딧불이와 함께 별자리를 함께 관찰할 수 있다.앞으로 영양군은 국제밤하늘 보호공원과 반딧불이 등 지역 특화 생태자원을 활용한 성장 동력을 구축하기 위해 ‘별의별 이야기, 영양’사업을 추진하는 등 ‘밤하늘 생태관광 명소’로의 독보적인 브랜드를 확립할 계획이다.디지털 천체투영관(오로라돔)을 설치해 직경 15m에 달하는 구 형태의 디지털 투영관을 구축하고 우주를 테마로 한 미디어아트를 연출하는 등 별의 정원(잔디광장)을 개선해 벤치형 조형물 설치 및 쉼터를 조성하고 휴식형 중앙광장 공간을 확보해 별빛 아래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장소를 만들어 낼 것이다.한편으로 영양지역 관광자원 가운데서도 보석 같은 존재인 자작나무 숲은 우리나라 최고의 산림 휴양지로 거듭나고 있다. 사시사철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하얀색 줄기와 초록빛으로 가득한 잎사귀에 여름조차 시원하게 만들어버리는 자작나무숲이 펼쳐진 힐링공간과 자연적 가치를 활용한 계획도 만들어내고 있다.영양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는 영양 자작나무숲은 지속적으로 방문객이 증가하는 지역임에도 전기 등 인프라 시설 부족으로 이동통신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유관기관의 협력을 통해 이통통신 음영지역을 해소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고 향후 자작나무숲 힐링허브 조성과 방문자 센터, 주차장 및 조경 등 기반 시설을 차근차근 갖춰 나가고 있다.또한, 숨 쉬는 힐링스파를 통해 자작나무숲 권역 콘텐츠 다양화로 관광지 완성도를 제고하는 등 새로운 명소 확보에 노력하고 치유누리길 조성으로 숲길(맨발 산책로) 조성, 시설물(목교, 출렁다리)을 설치해 이용객들의 체험 수요 증가에 따른 다양한 탐방노선을 구축할 것이고 차세대 힐링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온전한 나만의 공간’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의 영양은 온전히 나만을 느끼고 충분한 내 시간을 가져보는 정적인 공간, 빌딩 숲이 막아 왔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 휴대폰은 잠시 내려놓고 자연속에서 삶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적인 이미지가 확립되기 위한 희망찬 변화를 꿈꾸고 있다.

2024-07-28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장마가 오락가락 땡볕 더위가 시작되는 대서(大暑)가 지나고 폭염이 전국을 뒤덮는다. 체감온도가 35℃ 이상이면 폭염특보인데 경주와 감포는 36℃를 넘었다. ‘대서에는 염소 뿔도 녹는다’지만 대단한 삼복더위다.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 그런데 올해는 중복에서 말복까지가 20일인 월복(越伏)이라 더위가 더 길어질 것으로 예측되어 더위와의 전쟁은 절정에 닿는다.74년 전 북한이 중국, 소련의 비호 아래 조용하던 삼천리 무궁화 금수강산을 남침하여 쑥대밭을 만들며 3년간 피를 튀기면서 UN 참전과 인천상륙 작전, 중공군 개입 등 외세가 이 나라 운명을 쥐고 있었다. 마침내 휴전안이 나왔으나 정작 우리는 참석하지 않은 채 유엔-중국-북한의 3군 대표가 정전협정에 서명한 날이 7월 27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작권을 이양했던 탓이리라. 그리고 3개월 내에 평화협정을 맺어야 했는데 군사분계선이 설정되고 비무장 지대 DMZ가 만들어지고 아직까지도 남북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정전(停戰)과 휴전(休戰), 그 의미는 어떻게 다르며 종전(終戰)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1953년 7월 27일에 이루어진 것은 정전협정(ceasefire)인데 38선이 휴전선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휴전협정(armistice)이라 부르고도 있다. 정전은 전쟁 중인 국가들이 전투를 일시 멈추는 것으로, 국제적 개입이 있는 것이 보통이고, 휴전은 당사국 간 협상으로 전쟁을 멈추는 것이라는데 국제법상으로 우리나라는 현재 전쟁상태인 것에 유의해야 한다.북한은 2013년 정전협정 파기 선언을 한 바 있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며 남북정상회담 등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뭉개져 버린 상태다. 2020년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최근에는 휴전선 전역에 지뢰매설, 철책 보강을 하는 사실도 보고된다. 또 잠시 뜸하던 북한오물 풍선도 다시 날려보내고 벌써 10번째이다. 그래, 휴전상태. 전쟁을 잠시 쉬고 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전쟁으로 모두 171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민간 피해도 남북 250만, 이산가족 1000만 명이 발생했다. 이러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딛고 남한은 2018년 ‘30-50클럽’이 되었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높였다. 작년 포브스 선정 세계 6대 강국이 되었고 군사력도 세계 5위에 올라섰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기술력으로 지난주 24조 규모의 체코 원전도 프랑스를 제치고 수주하였다. 그러고 보니 27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는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데 우리나라는 총 21개 종목에 선수 143명을 포함하여 260명이 파견되어 금메달 5개 종합 15위를 목표로 마음을 다지고 있다.이러한 국력을 밑거름으로 남북한은 전쟁을 끝내는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어 민족 번영에 한뜻이 되어야 하는데 북한의 태도가 걱정이다. 장자(莊子)는 “형제는 수족이라 끊어진 경우에는 잇기 어렵다(手足斷處 難可續)”고 했다. 남북 형제가 인연을 끊었으니 서로 잇기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이제 서로 마음 열고 두 손을 맞잡아 분단을 넘어 통일국가로 세계에 우뚝 서는 그날을 만들어 가자.

2024-07-25

민심이라는 것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민심’을 들먹인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자주 인용한다. 그야말로 아전인수로 필요할 때마다 끌어다 쓰는 게 민심이란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심을 얻은 자가 천하를 얻었다’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민심이 반드시 옳다’는 말이 되지는 않는다. 과연 인류의 역사가 민심에 따라 옳은 방향으로만 흘러온 것인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오히려 변덕스럽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부화뇌동하기 쉬운 것이 민심이다.민심이란 곧 여론이다. 정보화시대인 요즘은 여론조사에 의해 민심은 수시로 계량화된다. 국민의 투표에 의해 정권이 결정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여론전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이 승자가 된다. 일찍이 민심의 속성을 간파하고 선전·선동으로 민심몰이에 성공한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의 나치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에 열광하면서 파탄의 구렁텅이로 휩쓸려 들어갔다. 한때 낙농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도 석유 수출로 풍요를 누렸던 베네수엘라도 부실한 나라로 전락해서 빈곤의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것은 민심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의 결과이다.얼마 전에 치른 우리나라의 총선에서도 민심이란 게 얼마나 허접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수많은 범죄 혐의로 법원과 검찰청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는가 하면, 파렴치범으로 2심까지 유죄 확정을 받은 조국이 만든 당을 비례로 12석이나 차지하도록 표를 준 것이 바로 민심이었다. 대학생 딸을 개인사업자로 탈바꿈시켜 ‘사기 대출’을 받은 경기 안산갑의 양문석 후보나, ‘이화여자대학생 미군에 성(性)상납’ 주장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비하하는 등 음담패설 수준의 망언을 일삼은 경기 수원정의 김준혁 후보를 반듯한 상대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시킨 것도 민심이었다.지난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한동훈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대표가 되었다. 그만큼 우파의 민심이 한동훈에 쏠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 드러난 그의 인성이나 정체성에 불안한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수차례나 보낸 문자를 ‘씹은’것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였고,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보수궤멸을 꾀한 문재인 정권 초기가 자신의 화양연화였다고 한 것과 총선후보의 공천에서 좌성향을 보이는 등 정체성에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 총선에 패배한 후에 그가 한 “민심은 언제나 옳다”는 말이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과 조국이 이끄는 당에 압도적인 의석을 몰아준 민심이 정말 옳았다는 것인지, 자신도 그런 민심의 향방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또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민의 눈높이’도 어느 국민의 어떤 눈높이를 말하는 것인지, 그래서 결국 당을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은 노파심일까.

2024-07-25

죽어가는 소나무, 이대로 둘 텐가

홍석봉 언론인 대구 근교 산들이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대구~성주 간 국도변 소나무 숲이 재선충 피해가 크다. 필자는 한 달에 2~4차례 성주에 있는 시골집을 찾는다. 대구∼성주 간 국도변은 장관을 이루는 벚꽃길 등 4계절 피고 지는 각종 꽃과 나무들이 국도 이용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달성군 다사면 대구~성주간 국도변 야산에 갈색으로 변해 말라 죽는 소나무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최근엔 고사목이 발견되는 지역이 폭넓게 확산하고 있다. 국도변 곳곳의 소나무들이 재선충에 감염돼 흉한 모습으로 죽은 채 방치되고 있다. 소나무 고사목이 자꾸 느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상처를 입은 느낌이 든다. 지구의 허파이자 생명의 숲이기도 한 귀중한 산림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이다.이곳뿐 아니다. 대구·경북의 소나무 재선충병 확산이 심각하다. 얼마 전 지역의 한 환경단체는 경북 일부 지역은 확산을 막기 어려운 정도로 감염이 광범위하다고 경고하며 당국의 대응 방안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녹색연합은 지난 4월 영남 동해안 권과 낙동강 인근 지역 중심으로 소나무재선충병 감염 상태가 심각하다고 발표했다. 경북 포항·경주·안동시와 성주·고령군 등은 확산을 더는 막을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들 지역은 정부가 소나무재선충병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어떤 곳은 멀쩡한 소나무 숲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오랫동안 방치된 고사목도 적지 않다. 10년 내 전국소나무의 78%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판이다.전문가들은 감염 지대가 길고 넓게 퍼져 방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 당국이 방제를 아예 않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만큼 상황이 악화한 것은 정부와 지자체가 재선충병 확산 초기 방제 시기를 놓친 탓이 크다. 점점 재선충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는 기후변화도 피해 확산의 한 요인이다.재선충은 1㎜ 안팎의 실처럼 생긴 선충(線蟲)이다. 소나무가 재선충에 걸리면 100% 말라 죽는다. 소나무에는 치명적이다.산림청에 따르면 소나무와 잣나무 등 소나무 숲은 우리나라 산림의 27%를 차지한다. 환경, 문화, 휴양 등 연간 71조원의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고 2540억원의 임산물을 생산한다. 대표적인 것이 울진 금강송과 울진·영덕의 송이 숲이다. 재선충 피해목을 잘라내면 산사태 우려가 커진다. 잘라 내 쌓아놓은 나무는 산불 발생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이래저래 손실이다.재선충병으로 소나무가 멸종되다시피한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방제작업이 성과를 내 소나무 숲이 어느 정도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예산과 노력이 들겠지만 애써 가꾼 소나무를 베어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상시 예찰과 신속한 방제작업으로 추가 피해는 막아야 한다. 대구∼성주 간 국도변 소나무 숲도 하루빨리 싱싱한 모습을 되찾길 바란다.

2024-07-25

삼겹살 만찬

우정구 논설위원 삼겹살은 돼지고기의 한 부위로 살코기와 비계층이 세 번 겹쳐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비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삼겹살 소비도 늘었다 한다.돼지고기의 여러 부위 중 삼겹살이 가장 인기를 끈 이유는 삼겹살 특유의 고소한 맛 때문이다. 삼겹살은 구울 때 기름기 부분이 녹아내려 고기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쌈채소, 쌈장, 김치, 마늘 등과 함께 먹으면 풍미를 더욱 진하게 즐길 수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다.구이, 찜, 볶음, 찌개 등 다양한 방법으로도 조리할 수 있어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 음식으로 취급받는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해 어린이들의 성장 발육에도 좋다. 그러나 지방 함유량이 많고 칼로리가 높아 과식을 하면 비만이 될 수 있는 단점도 있다.3월 3일은 삼자가 겹쳐 ‘삼겹살 데이’로 통한다. 공식적 기념일은 아니지만 이날 만큼은 삼겹살을 찾아 먹는 사람이 많다. 한 여론조사에서 샐러리맨이 회식 때 가장 즐겨먹는 음식으로 삼겹살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삼겹살을 함께 구워먹으면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여기에 소주까지 곁들이면 소통도 잘 된다는 생각을 한다.한국적 정서에 맞는 서민 음식이라는 동질감이 작용한 탓은 아닐까 싶다.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새 지도부를 용산으로 초청, 만찬을 가졌다. 만찬의 주 메뉴로는 삼겹살이 선택됐는데, 윤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고 한다.서민적 한국 음식을 통해 당정의 대화합을 강조한 의미라고 하는데, 정치가 먹는 것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5

우천시는 내비게이션엔 안 나와요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우천시엔 체육관에서 모입니다’. 유치원생 아들의 가정통신문을 받은 엄마가 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우천시가 어디죠? 내비게이션에는 안 나오네요.” 雨天時(시)의 시(時)를 시(市·도시)라고 이해한 것이다.“이번 박물관 견학 때 중식을 준다던데 우리 아이는 기름기 많은 음식을 싫어하니 담백한 한식으로 주시면 안 될까요?” 이는 점심식사를 의미하는 ‘中食’을 ‘중국음식’으로 오해한 결과인 듯하다.드물지 않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한단다. “선생님, 사흘이 왜 4일이 아니고, 3일이에요?” 사흘의 ‘사’를 넷을 의미하는 사(四)라고 오해한 것일 터.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가 털어놓은 실제 사례들이다.아주 조금 어려운 한자나 자주 사용되지 않는 순우리말 앞에서 문해력(文解力·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아이들이 많고, 어른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책을 읽으며 지식과 상식을 쌓고, 올바른 어법을 가진 어른들에게 언어 습관을 배우는 아동들이 줄어들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한국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이 10권 아래로 떨어진 건 이미 오래전이다. 책을 통한 학습으로 체화되던 문해력과 어휘력. 그게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건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은어, 비어, 속어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줄임말과 욕설 따위다. 한 나라 언어의 품격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의해 결정되고 유지된다.본관(本貫)을 물으면 “네?”라고 반문하고, ‘시나브로’가 “프랑스어인가요?”라고 묻는다. 이쯤 되면 실소를 넘어 할 말을 잃게 된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24

인구 비상사태와 국가 이민정책

장규열 고문 정부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저출산문제는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8개 가입국 가운데 ‘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 타이틀을 11년째 거머쥐고 있다. 가입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도 안 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며 전체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구 감소는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대두됐다. 한국과 일본과 같은 선진화된 아시아 국가들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인구절벽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정책을 활용해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한 전략 중 하나가 될 것이다.캐나다는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인구감소를 효과적으로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다. 다양한 기술이민 프로그램을 운영해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 이민자들을 유치한다. 이민자들은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경제성장을 견인한다. 캐나다 정부는 이민인구의 정착을 돕기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민자들이 나라에 빠르게 융화되도록 돕는다. 호주 역시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인구문제를 해결한다. 호주도 기술이민 프로그램을 활용해 필요한 산업인력을 유치하면서 경제성장과 인구증가를 동시에 달성한다. 호주는 이민자들에게 양질의 교육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인다. 호주를 매력적인 이민목적지로 만들고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민정책을 펼친 사례이다. 2015년 난민위기 당시 약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하면서 이들을 경제와 사회에 통합하는 다양한 정책을 적용했다. 독일 정부는 난민들에게 언어교육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노동시장 진입을 용이하도록 지원했다. 국가적인 노동력 부족문제를 완화하였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구현하였다.우리는 어떤가. 한국은 인구격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의 성공사례들을 적극 참고해야 한다.한국은 적극적이며 포용적인 이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은 고학력 기술이민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숙련된 전문인력을 유치하면서 경제성장을 함께 촉진시킬 수 있다. 국내 노동시장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민자들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정착하도록 언어와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이민자들이 한국사회에 쉽게 정착할 수 있으며, 사회적 갈등도 예방할 수 있다. 이민자들을 위한 주거, 의료, 교육 등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민자들이 적절한 삶의 질을 누리도록 배려해야 한다.한국은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다문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인구격감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도전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서 다양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이민정책에도 혁신적 변화를 기해야 할 터이다. 사람이 그득해야 나라가 산다.

2024-07-24

한의원 첩약보험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최근 한의원에서 처방하는 치료한약 중 일부가 보험이 되는 시범 사업이 열렸다. 이때까지 한약은 건강보험에서 제외되어 있었으며 이에 가격 부담을 느껴 몸이 아파 한약 복용을 하고 싶어도 선뜻 진료 받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시행되었던 사업이나 정부의 홍보부족과 실제로 처방을 할 수 있는 상병명의 제약과 너무 복잡한 청구 방법 등으로 한의원들의 참여가 부족해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던 사업이다.최근 정부는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처방이 가능한 상병명을 추가하고 처방 시스템을 좀 더 간편화 시켜 전국민 누구나 아픈 사람은 한의원에서 처방을 부담 없는 가격에 받을 수 있게 준비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의원, 한방병원, 종합병원에서만 가능하나 대다수 한의원이 참여중이니 본인이 다니는 한의원이 있다면 알아보고 거기 맞는 대상 질환이 있다면 처방을 받을 수 있다.대상 질환은 기능성 소화불량, 디스크, 알러지 비염, 안면마비, 중풍후유증, 월경통으로 제한되며 여기 해당하는 질환에 대해선 30% 본부금만 내고 처방 받을 수가 있다. 일년에 10일분씩 두 번 총 20일분이 처방이 가능하다. 보통 10일분이 15만원 가량 하는 한약을 4만원 근방에서 처방을 받을 수 있으니 관련 질환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처방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실비보험도 적용이 되기 때문에 실비보험이 있는 사람은 만원 정도에 자기 몸에 맞는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복용할 수 있다. 처방은 보약 처방과는 조금 다르고 그 질환에 특화된 처방을 위주로 처방이 나가게 된다. 이 처방을 할 때 녹용 같은 보(補)하는 처방을 같이 할 순 없다. 그러나 처방을 할 때 약재의 가감이 들어갈 수 있어 대상 질환 이외의 불편한 증상도 말을 하면 일정부분은 처방의 가감이 가능하니 처방시 자세하게 담당 한의사에게 말하는 것이 좋다.자주 체하거나 속이 더부룩하거나 설사를 하는 등의 소화기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통은 침치료를 하고 약을 하루 이틀분 받아간다. 소화기 관련 질환은 약을 며칠분씩 같이 복용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한의원에 문의해서 첩약 보험이 된다면 첩약보험으로 처방을 받는 것이 좋다. 각각의 몸에 맞춰 약을 처방할 뿐만 아니라 바로 달여서 주기 때문에 상비약 보단 환자 몸에 좀 더 좋고 가격적인 측면도 부담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안면마비는 필수로 침과 함께 한약복용을 하는 것이 좋고 알러지, 비염, 생리통, 디스크, 중풍후유증의 경우엔 20일분을 저렴한 가격에 보험 첩약 복용을 먼저 해보고 효과를 보면 추가로 복용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10일분씩 처방이 총 20일 가능하다. 이 처방이 끝난 후부턴 100% 본인 부담으로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이때부턴 일반 한약을 짓는 것과 비슷한 비용이 발생하나 실비 보험에서 지원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적용이 되면 지속적인 복용이 가능하다. 전국민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아픈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첩약 보험이 한의원에서 가능하니 해당 질환이 있는 사람은 가까운 한의원에 문의하면 된다.

2024-07-24

이벤트 만들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지난 달 경주시가 2025년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개최 도시로 최종 선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자 28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1996년, 위덕대학교 개교 원년, 3월에 개교하고 5월경이었다. 신생학교를 알릴 홍보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 해 설립되어 태국의 방콕에서 열렸던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ia-Europe Meeting: ASEM, 아셈)가 제3회 회의를 대한민국에서 개최하기로 결정, 경주를 비롯한 여러 도시가 아셈 유치 경쟁을 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무릎을 탁 쳤다. 이것이로다. 위덕대가 있는 경주시를 위한 일이면서, 학교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당시 위덕대에는 학생은 1학년 400명밖에 없었으나 학생회와 동아리도 있었다. 학생회장 등 지도동아리 학생들은 선배가 없어 심심하던 차였다.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아셈유치서명운동을 하쟀더니 좋다며 신나했다. 서명지를 만들어, 일단 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을 상대로 워밍업을 했다. 반응이 좋자 학생들은 더욱더 신났다. 수업 없는 주말엔 경주 시내로 나가자며 뜻을 모았다. 마침 5월이라 관광객과 특히 단체 수학여행단이 많이 오는 때였다. 전국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위덕대 홍보로도 안성맞춤이었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오는 대릉원과 불국사를 홍보 장소로 정해서 2팀으로 나누었다. 홍보용 현수막도 만들었다. 학생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 홍보 덕에 제법 많은 서명을 받아냈다. 이틀째, 지역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왔고, 월요일 아침 신문 1면에 꽤 큰 사진과 함께 기사가 실렸다. 1차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 학생들과 환호했다. 1주일간의 운동으로 약 2000명 정도의 시민과 관광객의 서명을 얻는 성과를 거뒀다. 서명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학생들과 논의 후, 경주시에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학생 대표 몇몇과 함께 경주시장님을 찾아 전달식을 가졌다. 이 행사 또한 경주시에서 보도자료를 배포, 여러 신문에 보도되었다. 학교 홍보를 위한 우리의 의도는 100% 달성하였지만 아셈회의 경주 유치는 실패, 2000년 아셈회의는 서울에서 개최되었다.이 행사로 광고비 없는 학교 홍보가 가능할 거란 예상은 적중했다. 그 후 위덕대에 재직했던 25년 동안 참 많은 이벤트와 행사를 벌였고, 이를 방송과 신문 등 각종 매체에 알리는 홍보역을 자처했다. 그 중 기억하는 이벤트는 ‘더사랑한데이’였다. 2009년 겨울, 종강 무렵이었다. 교수회의 중에 기말고사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교수들이 밥 한 끼 해먹이자 제안했다.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으로 만들기로 해서 일은 커졌지만 기쁘게 동참하신 교수들과 함께 김밥과 주먹밥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 준 이 행사는 그 후 매 학기말에 열리는 학교의 전통이 되었다. 2014년부터 성인학습자들이 많이 입학했다. 그들에게 재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고맙데이’를 제안했다. 나이 상관없이 함께 공부하고 도와주는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작은 파티였다. 이 또한 위덕대 평생학습자 날의 시초가 됐다.

2024-07-24

월하정인

정미영 수필가 아파트 숲 우듬지 위로 교교한 달빛 조각이 소담스럽게 쏟아져 내린다. 넋 놓고 달을 바라보다가, 간송미술전에서 기념품으로 사온 공책을 꺼낸다. 신윤복의 ‘월하정인’이 표지다.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달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 많다. ‘월야밀회’ ‘야금모행’ 등이 있는데, 달은 문학이나 회화에서 중요한 오브제임을 다시 한 번 환기해 본다.달밤에 두 연인이 담 모퉁이에 서 있다. ‘달은 침침해 밤 3경이 되었는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그림 속에 쓰인 글귀는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김명원의 시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초롱불을 든 남자와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이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진다.나에게도 월하정인이 있다. 단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분에 넘칠 만큼 여럿이다. 새로 사귄 이도 있지만, 어떤 이는 오랜 기간을 달밤에 만났으니, 정분이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남편보다 오래 붙어 있고, 때로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그의 편을 들 때도 있다.그들은 바로 책을 쓴 작가이거나 책 속 등장인물이다. 나는 독서를 할 때면 가끔 너무 감정 이입을 하거나 상황에 몰입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눈 앞에서 작가나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몇백 년 전에 살았던 작가라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오늘처럼 달빛이 밝은 날에는 누구를 만날까? 달밤의 서정과 서사가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 떠오른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는 달밤의 묘사가 인물들의 격정적인 감정과 자연의 거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데 쓰였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달밤의 분위기가 인물들의 상황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윤후명의 ‘달의 모양’에서는 달빛 아래에서의 사랑과 상처, 치유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는 달밤에 등장인물이 걸으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나는 지금, 고요한 달밤에 어울리는 윤오영 선생님의 수필을 음미하고 있다. 내가 처음 선생님의 작품을 접한 것은 교과서에 실린 ‘방망이 깎던 노인’이었다. 글을 곱씹어 정독할수록 마음속에 울림의 파장이 넓게 퍼져나갔다. 그때의 밀도 높은 감동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하며 오늘은 ‘달밤’의 문장에 취한다.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가겠습니다”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윤오영 작가는 마치 한 폭의 정물화를 보듯 시골의 달밤 풍경을 수필로 그렸다. 우연히 노인을 만나 따뜻한 인정을 체험하는 묘사가 아주 뛰어나며, 도화지 위의 사물 사이 공간에 여백의 미를 표현하듯 많은 이야기를 함축해서 더욱 시적인 아름다운 글이 되었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향기로운 문자향이 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아 황홀하다.세상은 변해도 책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리라. 일상에서 문득 느끼는 군중 속의 외로움과 좁은 시야에 갇혀 거시적 안목으로 주변을 보지 못했을 때의 불안감이 독서를 통해 희미해지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월하정인들 덕분이다. 내가 타성에 젖지 않고 지적 편식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항상 나를 주시해 준다. 나는 나를 일깨워주는 그들의 말에 오늘도 귀를 기울인다.

2024-07-24

포항에 가면 심장이 먼저 나부낀다

포항에 가면펄럭이는 것은 깃발만이 아니다포항에 가면 심장이 먼저 나부낀다죽도시장 흐릿한 백열등 아래서돈보다 많은 삶의 가치를 얻어먹었다송도에 가면 그리움이 너무 넘쳐서태평양을 향해 코를 풀었다갈매기가 톡톡 찍어주던 느낌표아직 눈썹에 남아 있다포항역 육교에서 보랏빛 칸델라 불빛을 보며이별도 배웠다기차는 떠나도 사람은 남는다포항에 가면추억이 너무 많아서 몸살을 앓는다첫사랑 기다리던 골목길에서껄렁하게 앉아도 보았지코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인생공부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강을 건넜지만포항에 가면객지의 설움이 설탕이 된다포항에 가면사람이 된다.비록 포항을 떠나 살고 있지만 항상 포항은 심장의 안쪽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자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나에겐 항상 고고(高高)하고 고고(孤孤)하다. 보수적이지만 당돌하다. 골목길 끝에서 돌을 던지고 도망가는 계집애 같은 심성이 늘 팔팔하게 살아 있다. 동해바다가 그 배경이리라.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07-24

청포도가 알알이 익어가는 시절이면

시인 이육사는 1904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해서 일제 강점기 무려 17번이나 경찰에 체포되면서 항일 운동을 이어간 한국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이다. 비록 그는 한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에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겨둔 삶에 대한 저항과 희망 넘치는 시들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다. 때로는 한 편의 시가 계절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시 한 구절을 읽으면, 적당하게 짭조름하고 달큰한 가자미의 살맛이 입안에 돌기도 하고, 어떤 시 한 구절을 읽으면, 새큼한 자두의 맛과 향기가 매끄러운 입안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때론 살갗에 텁텁한 여름의 열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햇빛을 받아 활발하게 살아나려고 애쓰고 있는 풀들의 비릿한 생명의 냄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냄새도 아니고, 맛도 아닌, 몇 줄 글에 불과한 그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계절의 인상을 불러일으킨다.사실, 몇 개의 단어의 연결에 불과한 그것이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다름 아니라 계절의 감각을 일으키는 것은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 감각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만큼 언어를 다루는 작가의 뛰어난 솜씨 때문인가. 아니면 그토록 강렬한 계절의 인상 때문인가. 혹은 내가 언젠가 경험했지만, 잊어버렸던 감각이 뒤늦게야 손님처럼 찾아오기 때문일까. 언어의 구절과 독자들의 감수성, 그리고 계절의 감각들이 뒤섞인 어딘가에서 마치 연금술처럼 불과 몇 줄의 단어에 불과한 그 시는 계절이 된다.우리는 이처럼 계절을 상기시키는 몇 편의 시들을 알고 있다. 김소월이 ‘진달래꽃’에서 처럼 봄을 알리면서, 동시에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는 ‘진달래꽃’의 연분홍 색깔은 우리가 모두 겪었던 마음이 아린 계절을 상기하게 한다. 요즘이면 읽기 좋은 이육사의 ‘청포도’는 어떤가. 제국주의의 광풍 아래 식민지를 겪었던 한국에서 가장 핍박받았던 이육사라는 시인의 여름은, 청포도 향기로 가득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일제의 핍박을 받아가며 독립운동을 하느라 정작 고향의 여름은 몇 번 보지 못했을 그의 여름이 마음속에 알알이 들어와 박힌다.“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분명 우리 모두는 이육사의 고향인 안동에서 그가 경험했던 여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낮동안의 열기나 차분해진 밤의 공기, 청포도가 익어가는 향기 같은 것을 알 수 있을 리 없다.하지만, 우리는 그가 남겨둔 구절을 통해 각자가 경험했던 여름의 감각을 소환하곤 한다. 정작 여름 안에 머물러 있을 때는 그저 다가온 더위 덕분에 계절의 인상 같은 것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내 방 안에 머물러 차분히 불과 몇 단어 되지 않는 시의 구절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여름의 인상이 나에게 손님처럼 찾아온다.하나의 언어가 우리의 마음속에 던지는 파문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마음속 깊은 안 쪽에 숨겨 두었던 경험들을 통합적으로 새롭게 경험한다. 불과 한 줌에 불과한 시가 갖는 힘이 그것이고,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야말로 그것이 아닐까.그래서 여름이면 이육사의 ‘청포도’를 읽는다. 나는 비록 그가 살았던 마을에 주저리주저리 열렸던 전설들도 알지 못하고, 그가 그토록 바랐던 푸른 바다에서 청포를 입고 고달픈 몸으로 온 손님을 기다려본 경험도 없지만, 그 언어에 가만히 집중하고 있으면, 예전 내가 경험했던 여름들이, 또한 무언가에 대한 간절한 바람들이 기억 저편으로부터 건너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 편의 시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계절이다. 분명 이육사는 민족시인이라고 해도 좋을, 우리에게 가장 상징적인 시인이지만, ‘청포도’라는 시 한 수 만으로 그는 여름의 시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여름이 되면 언제나 이육사의 시는 그 시를 뇌이는 독자들에게 여름을 선물할 것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4-07-23

일회용과 멀어지기

젊었을 적 어머니에게 보자기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손가방을 대신하는 것이었고 필요한 찬거리를 담아 나르는 든든한 함지와 같았다. 움켜쥐면 한 줌도 되지 않는 보자기는 시장을 볼 때도, 친정에 다니러 갈 때도, 학교 운동회 날에도 불룩한 보따리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했다. 어쩌다 종이에 싼 날생선이 들어있는 날은 보따리 한 귀퉁이가 축축하게 젖어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아무도 모르게 보따리를 쌌다가 잠든 자식들을 보고 마음을 바꾼 적도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에게 낡은 보자기는 세월의 애환이 깃든 물건이기도 했다.장바구니가 흔해지면서 어머니는 더 이상 보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팔에 끼거나 어깨에 멜 수도 있는 장바구니는 묶었다가 풀었다가 머리에 이는 보자기의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장바구니 안에는 더러 비닐에 싸인 물건이 들어있기도 했는데 대부분 물기 있는 것들이 담겨있었다. 그 무렵 우리 마을엔 집집마다 짓던 밀 농사를 그만두었고 자연스레 방앗간에 길게 줄을 서서 국수를 빼던 일도 사라지게 되었다. 점방에 가면 색이 뽀얀 밀가루 포대며 예쁘게 포장된 말린 국수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편안함에 길들여졌고 거친 국산 밀가루보다 수입한 부드러운 밀가루가 더 좋다고 여기게 되었다.마을 어른들은 봄과 가을로 나누어 경치 좋은 곳으로 희추(야유회)를 하러 갔다. 풍물을 앞세우고 솥단지며 양은그릇들을 이고 지고 떠났다. 희추를 하는 날만큼은 힘든 농사일을 잊고 놀이에 푹 빠져들었다. 신록 우거진 숲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흥이 오르면 강에 나가 유람선도 탔다. 마을 공동으로 쓰는 그릇이 있어 가득 모인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하는데도 무리가 없었다. 두레 자금으로 마련한 그릇은 마을의 잔치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푸짐하게 준비해 간 음식들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버리고 오는 쓰레기가 없어 마음 홀가분했다. 그 시절엔 모두가 먹거리를 하늘처럼 소중하게 여겼고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까닭이다.살기가 좀 나아지면서 일회용이란 말이 심심찮게 쓰였다. 대표적인 게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이었다. 나들이 때가 되면 일회용은 필수품처럼 따라다녔고 한 번의 쓰임이 있은 후 가차 없이 버려졌다. 음식을 주문할 때도 일회용품은 예외 없이 따라왔다. 건너 마을에는 나무젓가락 공장이 있었다. 공장 마당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길게 누운 채 그득 쌓여있었는데 그 많은 나무가 사라지기 바쁘게 또다시 새로운 나무가 그득 쌓이곤 했다. 더 가까이엔 화장지 공장이 있었다. 공원들은 라면 먹은 그릇을 물 대신 일회용 휴지로 쓱쓱 닦아낸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떼로 몰려나와 점방에 외상을 긋고 공장장 흉을 봐 가며 주전부리를 했다. 일회용 물건을 만드는 그들 머리엔 어지간한 바람에도 꿈쩍 않는 하얀 먼지가 켜켜이 앉아있었다.80년대 중반쯤 일회용 비닐팩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급격히 비닐과 친해졌다. 깨끗이 소독된 위생적인 비닐이란 이유로 마구잡이로 비닐을 애용했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그릇들은 뚜껑 대신 비닐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아예 비닐에 음식을 담아 보관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시장에선 장바구니 든 사람을 찾아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빈 손으로 장을 보러 가도 상인들은 비치해 둔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주었다. 비닐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되었고 지구는 대책도 없이 버려지는 그것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2020년 기준 우리나라 비닐봉지 소비 발자국은 총 276억 개, 1톤 트럭 55만 대가 훨씬 넘는 양이다. 1인당 533개, 약 10.7 킬로그램이라고 한다.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꼭 1장 반을 소비한 셈이다. 비닐은 자연분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땅에 묻으면 토양에 산소 공급을 방해하고 강한 불에 태우면 다이옥신이란 유독 물질을 대기 중에 배출한다. 그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바다로 흘러들어 가 바다 생물들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비닐이 지구를 뒤덮고 있다는 자각으로 인해 2008년 7월 3일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없는 날’이 만들어졌다. 과연 단 하루만이라도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일은 가능할까. 나는 습관처럼 비닐봉지에 든 채소를 사고 허기진 배를 달래느라 이중으로 포장된 즉석식품을 사 먹는다. 박월수 수필가 장마철이 돌아오니 쏟아지는 집중폭우가 예전 같지 않다. 해마다 그 정도가 강해진다. 지구가 몸살 앓는 시기를 지나 중병으로 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덜컥 겁이 난 나는 노모를 위해 장 보러 가는 길에 바구니부터 챙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회용은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어머니는 구순의 고개를 넘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당신 혼자서 식사를 차려 드신다. 먹을 만큼의 음식을 단출하게 만들고 어쩌다 남은 음식은 뚜껑을 덮어 보관한다. 비닐팩이란 말은 어머니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가져온 비닐이 집안에 있으면 씻어서 말린 후 재사용하기 위해 접어서 보관한다. 사십 년은 족히 지났을 밥상보를 여전히 즐겨 쓰시는 어머니 곁에 누워 심상찮은 폭우 소리를 듣는다. 일회용과 멀어지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박월수 수필가

2024-07-23

부드러운 직선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아시아에서 미주까지 태평양 항해 길은 선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좌초 될 수 있고 목적지까지 순항 할 수 있다. 기업에서 보면, 리더의 리더십은 절대적이다. 목적지를 향해 방향과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원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원활하게 나아가는 것이 바른 길이다. 공대를 나온 사람의 리더십은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공대 출신의 MBA(경영 석사)를 거친 사람의 리더십은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과 같이 멀리 보고 부드럽게 리딩한다. 기업에서 경영자로 가는 코스가 되고 있다. 아는 지식과 경험으로 조직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속성 때문이다. 물론 유연한 사고로 경청을 통해 의사 결정을 잘 하는 경영자도 있다. 좋은 리더십은 무엇이 있을까.스무스 커브(Smooth Curve)는 미적분학과 기하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으로 주어진 구간 내에서 연속적으로 미분 가능한 직선을 의미한다. 곡선의 모든 점에서 기울기가 존재하고 곡선이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 특징과 매끄럽게 변화하는 성질을 갖는다. 부드럽게 자율성을 가지고 가되 관리 범위 안에서 제어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직선은 스무스 커브와 유사한 의미로 비포장과 포장 도로가 섞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을 이끄는 필수 요소인 카리스마와 유연한 사고의 리더십이 담겨 있는 목표를 향해 항해하되 스무스 하게 효율적으로 가는 조직의 모습인 것이다.리더십은 사람들을 목표나 비전에 도달하도록 영감을 주고 이끌어가는 능력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쳐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하며 스스로 하게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하다. 팀원의 신뢰를 얻는 것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단력 있게 의사 결정하는 능력이다.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마음껏 일 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가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리더로서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현대 리더십은 비전과 카리스마를 통해 조직을 변화시키고 목표를 달성하는 변혁적 리더십, 리더가 먼저 봉사하는 태도와 구성원들이 성장 발전을 지원하는 서번트 리더십, 구성원의 감성을 터치하는 감성 리더십이 대세를 이룬다. 이제 관리의 시대는 끝났다. 리더는 일의 성과를 높이는 것 외에 구성원들과 좋은 관계를 통해 긍정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실제 리더십 흐름을 보면, 방향과 목표 제시 없이 상황에 대한 인식 오류나 충동적 의사결정, 특정인을 케어 하여 조직의 균형을 깨뜨리는 리더는 위험하다.리더십은 조직원을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며, 효율적인 리더십을 위해서 비전, 의사소통, 신뢰, 결단력, 동기부여, 공감 능력, 책임감이 필요 조건이다. 리더십의 개념은 권위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전통적 리더십에서 과학적 접근, 행동과 상황 이론을 거쳐 현대에는 변혁적, 감성, 공감 리더십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부드러운 직선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와 유연성으로 리더가 갖춰 가야 할 길이다.

2024-07-23

정겹고 이색적인 포구다방 시화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적하던 어촌의 한 켠이 분주해졌다. 야트막한 처마 밑에 제비집이 지어진 어느 작은 다방 안팎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물건을 나르고, 칸막이와 현수막을 설치하며 작품을 내거는 등 각자의 역할분담으로 어떤 작업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재바른 몸짓과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리저리 옮기고 작품을 배치하며 조정하는 일들이 순식간에 이뤄져, 다방의 실내는 금세 멋진 미니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이름하여 ‘포구(浦口) 다방-모두의 어촌여행’이란 주제로 항구 주변에서 열리는 시화전의 준비작업이다.전시장이나 갤러리가 아닌 다방에서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발길 뜸하고 비좁은 ‘옛날식 다방’에서 빼곡하게 쓰여 지고 그림까지 그려진 시화전이라니? 모종의 우려와 설마 속에 진행되는 이색적인 포구다방 시화전은,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에 소소한 볼거리와 숨겨진 스토리를 낳으며 잔잔하면서도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듯하다.도시나 농어촌을 막론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여유롭게 차 한잔을 마시며 다담(茶談)을 나누고 휴식하는 가운데, 눈 앞에 보이는 작품을 부담없이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색다르고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지역의 자연경관을 노래하고 짭조름한 삶의 얘기나 처해진 현실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을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다면 한결 구미가(?) 당겨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사람들이 동네다방으로 모여들어 다향(茶香) 속에 살아가는 얘기나 신세타령을 듣고 나누다가 바로 곁의 시화작품을 눈요기로 즐기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정겹고 이색적인 분위기에 젖어 들게 될 것이다.어쩌면 그러한 컨셉으로 어촌다방 시화전이 기획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구의 고령화 추세에 출어(出漁)의 감소, 삭막해져가는 어촌마을의 현실과 공통의 문제를 다루면서 지역의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공존과 상생을 위한 새로운 비전의 주제가 담긴 시와 시조를 시화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쇠퇴해가는 어촌마을에 조금이나마 생기를 불어넣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경북문화재단 예술거점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포구다방’ 시화전은 경상북도 권역 별 특색있는 공연·전시 및 네트워크 형성을 기획·운영·지원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참여형 단체에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재단에서 제시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거점단체에서 전시프로그램을 총괄기획·추진하게 되며, 2권역에 속하는 포항·영덕·울진에서는 이번에 두번째로 ‘포구다방’을 테마로 시화전을 열게 된 것이다.이러한 취지에서 2권역의 3개 단체(한국문협 영덕지부·맥시조문학회·진심문학회)가 7월 20~30일까지 천혜의 아름다운 축산항 한 켠의 ‘그야말로 옛날식’ 고려다방에서 합동으로 출품한 시와 시조를 서예·캘리그라피·디자인을 곁들여 족자·부채·판넬·실사출력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든 작품 40여 점을 아기자기하게 선보이고 있다. 축산항 개항 100주년의 또 다른 세리머니(?)로 여겨진다.

2024-07-23

‘교육·월급양극화’가 낳은 사회병리현상

심충택 논설위원 매일 막장드라마를 연출하는 정치권 영향 때문인지, 우리사회 모든 분야가 뒤숭숭하다. 법과 도덕, 규범이 무너지면서, 특히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고교생이나 청년들이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 일탈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자퇴 등으로 학교를 떠난 고교생이 2만5792명(대구경북 2410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부분 성적이나 교우관계, 규칙 적응 등에 어려움을 겪다가 학업 중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교사들은 “무리하게 설득하려다가 인권 침해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학부모가 ‘자퇴에 동의했다’고 하면 더는 말릴 수가 없다”고 했다.우리나라 대졸 청년 수백만명이 니트(NEET)족으로 살고 있다는 통계도 충격적이다. 니트족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말한다.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1월부터 6월까지) 월평균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가 405만8000명에 이른다. 대구의 경우 22만5000명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1000명이나 늘었다. 대구는 코로나가 대유행하던 2020년 상반기에 20만명을 넘어선 이후 계속 증가추세다.백수로도 불려지는 비경제활동인구는 통계상 실업자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이들이 취업이나 창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포자기한 상태로 놀고 있다면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을 낳을 수 있다.우리나라에서 고교생 자퇴나 니트족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회양극화 탓이 크다. 의대정원 확대 이후 서울 학원가를 중심으로 개설되고 있는 ‘초등 의대반’을 떠올려 보면 교육분야 양극화는 쉽게 이해될 것이다. 학생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동급생과의 학력격차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다가 고교에 진학하면 충격을 받는 케이스가 많다고 한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월 수백만원을 써가며 과외수업을 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간의 성적 격차는 줄이기가 어렵다.취업을 포기하는 대학 졸업생이 증가하는 이유는 아마 ‘월급 양극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억대급여나 성과급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는데, 청년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중소기업에 취업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요즘은 대기업들이 수시·경력 채용을 확대하면서 대졸자들의 취업문은 더 좁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평균연봉 1억대인 현대차가 10년 만에 실시한 생산직 공채에 수만 명이 몰려 채용 사이트가 마비된 건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의 기대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말해준다. 설상가상 올들어 내수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청년층 고용시장의 찬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사회 각 분야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은 정부책임이 크다. 상속세나 종부세 개편과 같은 ‘부자 민원’에 민감한 정권이 들어설수록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학업이나 취업의욕은 한 번 떨어지면 여간해선 회복하기 어렵다. 사회양극화가 지금처럼 제동 없이 진행될 경우, 학교에 적응 못하는 고교생이나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24-07-23

세계인의 축제 파리 올림픽

우정구 논설위원 오는 26일 개막되는 33회 파리 하계올림픽에는 전 세계 200여 개 나라에서 1만500명의 선수가 참가한다.중동전쟁 등 각국의 예민한 이해관계를 떠나 이들 선수는 나라의 명예를 위해 오직 스포츠 정신만으로 경기에 임하게 된다.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의 해결에 스포츠만큼 유용한 수단도 드물다. 1894년 근대 올림픽이 최초로 시작되면서 올림픽은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차별 속에서 꾸준히 세계인의 평화를 위해 이바지해왔다.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올림픽 정신은 “이기는 것이 아니고 참가하는 것”이라고 말해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했다.이번 파리 올림픽은 1924년 이후 100년만에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개최지 파리는 개막을 이틀 앞두고 각국 선수단들이 속속 입국하면서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다.파리 올림픽 조직위도 코로나로 맥이 빠졌던 도쿄 올림픽 때와는 달리 프랑스의 자존심을 걸고 이번 올림픽이 지구촌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올림픽 개최 사상 처음으로 주경기장이 아닌 파리 센강에서 개막식을 가지는 것은 파리 올림픽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또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선수비율을 50대 50으로 맞춰 양성평등 올림픽을 실천했다. 특히 친환경 올림픽 구현을 위해 상징적이나마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는다. 행사기간 중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었다.날로 긴장감이 높아지는 국제정세 속에 치러지는 파리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3

선택적 회피 사회

강길수 수필가 사람은 선택적 동물이다. 잠에서 깬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할지 요구받는다. 만일, 어떤 이가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다 해도 그게 선택이 되는 기막힌 운명에 놓여있다.이러한 선택의 숙명은 생태계 아니, 존재계 전체를 관통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불교의 연기론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선택에 따라 벌어지는 현상이니까. 그렇다면 인간사회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 법칙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어떨까. 아마도 얼핏 보아서는 모르는 일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우리나라는 사실상 명·청을 상국으로 모셨던 조선 시대를 차치해도, 구한말 위정자들의 선택에 따라 일제 강점기를 거쳤다. 해방도 자력이 아니라, 열강들의 결정에 따라 선택되어 졌다. 그 후 남북분단과 6·25 동족상잔의 휴전협정까지, 외세가 개입한 우리나라 역사의 선택 문제였다.반도 국가의 특성 때문일지 몰라도 의존적 선택 기질이 우리의 디엔에이에 있는 것만 같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선택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선택적 회피 현상’이 사회 저변에 흐른다. 특히, 그래서는 안될 분야까지 오염되어 보인다. 이를테면 언론계, 입법·행정·사법은 물론, 교육, 종교 분야까지 망라된다. 온전한 데가 안 보인다. 하여, 선택의 현미경을 볼 줄 아는 국민은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다.예를 들어, 가수 K씨 교통사고사건 전개를 보자. 시쳇말로 화풀이 대상의 시범케이스에 걸려든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가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제기불능을 언급하면서까지 뭇매를 때릴 사항인가.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속전속결 재판이 진행되는 것도 정치권의 이해할 수 없는 재판 지연과 비교하면 너무나 이상하다.우리나라는 삼세번 문화사회다. 삼세번 심성을 가진 우리가 한 번 실수를 한 사람을 완전히 매장당하도록 선동하고, 동조하는 게 현실 모습이라 생각하면 힘 빠진다. 선택적 회피가 없는 사회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가 ‘유권력 무죄, 무권력 유죄’로 확대되었다 하면, 원래 그런 건데 순진한 소리 말라고 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랬으면 나도 좋겠다.제1야당 전 대표, JK혁신당 대표 같은 인사들의 해괴한 재판 과정은 국민을 열불 나게 한다. ‘선택적 회피가 작동’하지 않고서야 어찌 자유민주주의 사법 체계하에서 그렇게 질질 끌고, 되지도 않는 이유로 이런저런 기각을 일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왜, 판사가 재판에 정치적인가. 상식이란 눈으로 보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침묵하는 다수 국민의 희망 거울에 비친 우리 사회와, 언론· 입법· 사법을 주무르는 자들의 행태를 비추는 거울에 드러나는 그것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왜일까. 바로 선택적 회피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해서는 안 될 야만의 횡포들이 일상이 되어가니 말이다. 5·18, 세월호, 전직 대통령 탄핵, 이태원, 선거 부정 등 꼭 비추어야 할 중차대한 일들이 부디 선택적 회피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4-07-22

웹소설의 매력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웹소설이란 장르가 있다.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웹소설 등에 연재되는 소설로 스마트 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소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중적으로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더 유명한데, ‘김비서가 왜 그럴까’ ‘재벌집 막내아들’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간 나에게도 웹소설은 드라마의 원천 소스이자 스낵컬처로 인식되었다.최근 2년간 입학사정관을 하며 읽게 된 우리 학과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의 고등학교 기록에는 웹소설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웹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국문과 진학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에는 고전을 읽고 국문과 진학을 결심했다면, 요즘 학생들은 웹소설을 읽고 국문과 진학을 꿈꾸는 셈이다. 한편 지난 학기에는 웹소설 연구를 하겠다고 대학원에 두 명의 학생이 진학했다. 웹소설에 대해 단 한 번도 학문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그들에게 별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지만, 비로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웹소설에는 대중들이 공감하는 어떤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자 웹소설 매출이 1조를 훌쩍 넘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며칠 전 드디어, 웹소설의 고전인 ‘전지적 독자 시점’을 완독했다. 이 소설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란 재미없는 인터넷 소설을 유일하게 끝까지 읽은 ‘김독자’가 소설이 현실이 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서사를 담고 있다. 소설의 서사가 재현되는 현실에서 김독자가 미래를 알 수 있는 절대적 무기를 가지고 주변을 제압하는 과정과 생존자들의 격투를 채널로 구경하며 코인을 주는 성좌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가상 세계가 현실이 되었다는 설정, 가상 세계 속 캐릭터와 실존 인물이 성좌에게 받은 코인으로 자신의 능력치를 업그레이드하며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이 몰입감을 준다.그렇지만 가장 큰 즐거움은 현실의 독자가 이름도 독자인 ‘김독자’에게 몰입하는 과정이다. 게임 회사의 인턴사원이지만 정직원 전환에 실패한 김독자는 고등학교 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한 트라우마도 가지고 있는 정글 같은 현실의 패배자다. 이런 그가 멸망한 세계의 구원자가 된다는 설정, 그 자체가 현실의 수많은 김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김독자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를 소설의 예정된 결론이 아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세계로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 코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실에서 종종 코인을 선택하지 않고 사람을 선택하는 다른 등장인물의 모습은 현실과 겹치며 우리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한다.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쇼츠에 빠져드는 아이들을 보면 일정 부분 사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미디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직된 사고가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 시스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웹소설은 우울한 미래를 돌파할 가능성을 가진 미디어다.

202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