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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단종과 계유정난(癸酉靖難)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왕조시대. 왕의 손자로 태어났다는 건 금수저를 물고 세상에 나온 정도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었다’고 해도 감히 누가 이견(異見)을 내놓을까? 그것도 조선 초기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세종의 손자였다.본명 이홍위(李弘暐), 우리에겐 단종(端宗)으로 더 익숙한 조선의 6대 왕. 583년 전 오늘인 1441년 7월 23일은 단종의 음력 생일.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조선의 5대 왕)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어린 시절의 행복은 짧았다. 단종도 모르고, 조부와 부친도 몰랐으며, 백성들 누구도 알지 못했다. 겨우 만16세에 숙부 수양대군(조선의 7대 왕 세조)에게 죽임을 당할 줄은.‘비운의 소년 왕’으로 불리는 단종은 최고 권력자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지만 외로움은 그에게 숙명과도 같았다. 모친 현덕왕후는 산후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조부 세종과 조모 소헌왕후도 단종이 아이였을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문종 역시 병약했고 마흔이 되지 못하고 죽었다.겨우 열 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 아직은 후견인이자 보호자가 돼줄 사람이 필요한 나이였다. 아버지 때부터의 신하였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 원로대신이 곁에 있었으나 결국은 혈족이 아닌 남.수양대군은 문종의 동생이다. 그러니, 단종은 수양의 조카. 옹알이를 하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종을 형 문종과 함께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을 몹시 가까운 혈족인 숙부라는 이야기. 그러나, 권력을 틀어쥐고 독점하기 위한 역사 현장은 살벌했다. 피붙이고 뭐고 없었다.1453년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보호하던 신하를 모조리 숙청한 수양대군은 4년 후엔 조카까지 죽인다. 때론 왕조의 역사가 눈물겹고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22

울릉도·독도 2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비바람에 머리가, 옷이 다 젖는 것도 모르고 나는, 우리는, ‘환상’ 속의 독도를 하나의 실체로 만나고 있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둘에, 여든아홉 개의 크고 작은 바위 섬들로 이루어졌다. 서도가 동도보다 조금 더 넓고 높다.배는 섬에 오르지 못해 아쉬운 사람들을 위해 그 옆을 스쳐 돌며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얼굴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넋을 잃고 섬을 건너다 보았다. 배가 흔들리는 파도를 따라 떠밀리며 오르내리는 까닭에 섬은 생생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비바람 속의 환영처럼 일렁였다.마음 속에, 심중에 섬의 형상들을 깊이 심어두는 데 집중해야 하건만 우리는 사진을 찍는 데도 바빴다.어느 분인가 섬을 보라며 정말 사람 같다고 하셨다. 가리키시는 방향을 바라보니, 정말 생각에 깊이 잠긴 듯한 수행자의 얼굴이 옆으로 보였다. 비바람 속의 수행자는 깊은 묵상에 들어 있었다. 저게 얼굴 바위일까. 그러고 보면 섬에 가까워지면서 서도 쪽의 코끼리 바위의 선명한 모습을 보았던 것도 기억에 또렷하다.비바람 속에서 묵상에 잠긴 외로운 수행자를 뒤로 하고 울릉도로 돌아온 우리는 파김치 상태였다. 저녁식사 후 나와 이찬 선생의 숙소에 미국에서 오신 박시걸 시인 등 여럿이 모여 신원철 시인의 클라리넷 연주에 유튜브로 선곡을 해 들었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에 밤이 깊었다.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울릉섬을 돌고 나리 분지로 들어가는 순례길에 나섰다. 버스 운전 기사분이 들려주는 울릉 섬에 딸린 죽도 총각 이야기며 섬의 정확한 수치들에 관한 이야기는 재밌고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리 분지는 섬의 한가운데 높은 곳에 들어앉은 아늑한 평지다. 고종실록에 섬에서 이 나리만이 관청을 둘 수 있으리라 했었다. 겨울 들면 출입이 어렵다는 이 독특한 화산섬 분지에서 우리는 막걸리 한 잔씩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막걸리 이름은 ‘씨껍데기’라 했다. 아하, 춘천 길에 ‘조껍데기’ 술이 있다면 나리 분지 길에는 ‘씨껍데기’로구나. 문득 시간강사 시절에 문흥술 선배한테 배운 강원도식 막걸리를 떠올리며 씨껍데기 주를 한 모금 마셔보는데, 약초 넣은 술은 전혀 달지 않고 시원스러웠다.아름다운 성불사, 가수 이장희 집, 예림원, 수토역사 전시관 같은 명소를 고루 돌아 숙소 세미나실에서 우리는 이윽고 학술 논의를 한다. ‘우리 땅과 시의 영토’라는 주제로 박덕규 선배가 사회를 맡으시고, 최동호, 유성호, 양은창 교수, 그리고 내가 학술발표를 했다. 이 가운데 최, 유 두 분의 발표는 시문학 속의 울릉도·독도를 논의한 것이고 나의 발표는 우리 역사 속에 남아 있는 두 섬의 기록, 기억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최근에 관심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새로운 역사인식, 특히 고대사 인식을 중심으로 두 섬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했다.다음날 우리는 드디어 독도박물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유치환 시인의 시 ‘울릉도’의 시비가 있다. 그는 해방 후의 어지러운 위기의 시대에 이 시를 썼다. 시는 역시 의미를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2박 3일의 짧은 순례길. 나라와 역사와 시가 만나는, 시를 쓰는 사람들의 뱃길. 소중한 기억을 위해 짧게 옮겨 놓는다.

2024-07-22

노래 잘 부르는 방법

첫 앨범을 낸지도 어느덧 14년. 긴 시간 동안 가수로 활동한 것치고 나는 노래를 그다지 잘 부르지는 못한다. 많은 가수들처럼 노래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피나는 연습을 하고 데뷔를 한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모른 채 데뷔하여 지금까지도 부족한 실력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래도 음악을 해온 세월이 있으니 당장 실력은 부족하더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보통 대충 얼버무리거나 “담배 끊으면 돼.” 정도로 성의 없게 대답을 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적절한 대답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부족하게나마 첫 앨범을 녹음할 때보다는 나은 가창력을 가지게 된 것에는 나름의 비결이 있다. 대단히 획기적인 꿀팁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나의 비결은 고민과 반성이다.노래를 잘 하기 위해서는 노래를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봐야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고음을 가진 가수,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가수, 개성 넘치는 발성을 구사하는 가수 등등. 모두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만이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비유하자면 그런 것들은 피겨스케이팅의 트리플악셀이나 야구의 불같은 강속구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구사하지 않고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이들을 본 적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 선수들인지도 알고 있다. 가수의 기본은 창작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작곡가의 의도대로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구사하고, 작사가의 의도대로 감정을 표현하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야말로 좋은 가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 나름 음악을 많이 듣고 분석하며 내린, 노래를 잘한다는 것에 대한 결론이다.또한 내가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 없이는 절대로 실력이 늘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부른 노래를 녹음해서 들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연 나는 고민을 통해서 알게 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에 대한 정의에 부합하는 노래를 불렀는가. 음정과 박자는 정확한가와 감정 표현은 어떠하였는가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 스스로 평가가 힘들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그것을 참고해 반성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이미 세 장의 정규앨범을 냈다. 그밖에 싱글들과 EP를 합치면 50곡이 넘는 곡을 녹음한 셈이다. 녹음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부른 노래를 마주해야 하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부르는 일을 몇 시간씩이고 반복해야 한다. 그야말로 형편없었던 실력을 지금만큼이라도 향상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이러한 고민과 반성의 과정 없이 많은 친구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 코인노래방을 찾는다. 자신이 잘 부르고 싶은 노래를 몇 번이고 고래고래 불러보지만 실력은 늘지 않는 까닭은 앞서 말한 것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민과 반성 없는 연습은 아까운 성대만 혹사시키는 일이 된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고민과 반성의 필요성은 꼭 노래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도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나의 글이 어떠한가를 살피고 반성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종이와 전기세만 낭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도 좋은 대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가 했던 말들을 복기하며 반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이러한 생각의 범위를 확장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것 전반에도 적용시켜볼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고민하고, 지금 내 삶은 어떠한 것을 지향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살아간다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실없는 사람이 될 수 있고,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허무한 삶을 살게 될 수 있다.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삶은 점점 바빠진다. 적극적이고 민첩한 행동이 미덕으로 여겨지다 보니 고민과 반성은 생략해도 좋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빠뜨려서는 안 될 과정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24-07-22

여름의 맛

여름은 이상하게도 뜨거운 동시에 서늘하다. /언스플래쉬 어제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잘하는 일이니까.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 뉴스를 정독하다가 뉴진스의 무대 영상을 찾아보고 단체 카톡방에서 친구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키득거렸다. 함께 사는 강아지가 불만스러운 몸짓으로 내 손등을 긁었다. 산책하러 나가자는 것이었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폭우였다.비 오는 날은 몸이 무겁다. 어깨도 골반도 뻐근하다. 비가 오면 강아지 산책은 나갈 수 없다. 육체의 문제가 아니다. 날씨의 문제다. 올해 장마는 유독 지난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산책은 어떡하지’하는 염려부터 들었다. 요즘 나의 고민은 이렇게 실존적이고 얕다.본심을 고백하자면, 장마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책 안 가고 침대에 있는 것 너무 좋으니까! 알량한 소망을 들킨 것일까. 나의 강아지는 언짢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내가 괘씸하다는 듯 침대 시트를 맹렬하게 긁어댔고 양발로 등허리를 난타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성질 나쁜 동물을 납득시키기 위해선 직접 보여줘야 했다. 악천후의 무서움을 모르는 강아지를 안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생각보다 강한 비바람에 우리는 오피스텔 로비를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공동 현관 앞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우개로 문지른 듯 희뿌연 공기 중으로 비 냄새가 훅 끼쳤다. 동시에 높다란 나무의 출렁이는 잎사귀가 보였다. 거센 비를 맞으면서 유연하게 흔들리는 가지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응시했다. 어때? 나는 강아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냉혹한 바깥 세계야. 내 뜻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강아지는 집을 향해 네발로 삐걱삐걱 걸었다. 헤엄치는 법을 잊어버린 물고기처럼.집으로 돌아와 미뤄둔 빨래며 부엌 청소를 했다. 집안일을 마치고 나니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고 나와 시원한 보리차를 들이켰다.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에 대고 아아, 소리를 냈다. 오늘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구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쩐지 난처해졌다. 돌아보면 나는 무수한 여름을 이런 식으로 지나 보냈다. 너무 한가해서 혹은 그럭저럭 바빠서. 흘러갔다는 것조차 모르고 흘려보내기도 했다. 여름은 한눈팔면 썩어버리는 과일 같은 것. 나중에 먹어야지 하고 대강대강 생각하다간 입도 대지 못한 채 버려야 한다. 뭐든 알맞게 달 때가 있어서 딱 그 시기를 즐겨야 하는데. 살다 보면 그런 게 잘 안된다.여름에 더욱 맛있는 맛을 떠올려본다. 무더운 날씨에 들이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살얼음 낀 맥주,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수박이나 밍밍하면서 감칠맛 도는 냉면. 그래, 역시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감각도 팔뚝이나 발가락을 다 내놓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즐겁다.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간질간질한 마음이나 경쾌한 음악으로 가득 채운 플레이리스트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여름은 꽃무늬 원피스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 아닌가. 마음껏 화려해져도 괜찮은 날들. 동시에 한없이 가라앉아도 이상하지 않은 날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어떤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여름이었다’는 문장으로 끝나면 그럴듯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 또한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무엇이든 마지막을 맺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또 없는데, 단 한 문장으로 그것이 마법처럼 가능해진다니. 그러고 보면 여름은 참 이상하다. 뜨거운 동시에 서늘하다. 불같이 타오르는 날과 물같이 축축한 날이 공존한다. 시작부터 클라이맥스까지 모두 다 가능할 것만 같다. 여름엔 아무래도 열정적인 기세가 더 어울리지만, 잔잔하게 흐르며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그 또한 훌륭한 서사가 될 수 있겠다. 어쨌든 여름이었으니까.오늘은 새벽부터 바람이 세게 분다. 역시나 어제처럼 침대에서 꼼지락대다가 겨우 책상 앞에 앉았다. 여름에 관해 쓰려고 했던 것뿐인데 어느덧 해가 다 졌다. 창밖을 본다. 비에 젖은 도로를 가르는 자동차 불빛이 물감처럼 번져나가는 것이 보인다.물기로 출 늘어진 여름은 곧 빳빳하게 마를 것이고 서랍장으로 들어가 다시 꺼내질 날을 기약할 것이다. 이 순간을 열렬하게 살아낼 자신이 없지만 그저 몽롱하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 무엇이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문장이 내 손에 있으니.

2024-07-22

김성춘의 시론, ‘현곡(玄谷)에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요사이처럼 시시(屎屎)한 시가 난무하는 때가 있을까? 인구 비율에 따른 시인들의 숫자가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기이한 시가 천국인 나라가 한국이다. 심지어 시인들을 배출하는 시인학교가 곳곳에서 난립하고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는 가난뱅이 시인이 넘쳐난다.그런데 한 번 시인이 되면 마치 큰 벼슬이나 한 듯, 세상살이를 제 혼자 다 알고 있는 현자인 듯, 정치 패거리에 앞장서고 이념의 프로파간다로 자진 나서서 세파의 정치 물결을 타는 진짜 시시한 시인(屎人)들이 넘쳐난다.경주에 사는 원로 김성춘 시인은 그 어느 시인보다 시가 어떠해야 하며, 또 시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사려 깊은 생각을 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한 분이다. 특히 엄청나게 늘어난 시인들, 그리고 품새가 떨어지는 시를 쓰면서 스스로 자신의 문학적 지위를 가늠하지 못하는 시인들의 현 세태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친구야 앙 그렇나? 시에 명답이야 많지마는 정답은 딱히 없는 기라/우리 삶이나 시나 생각하모 엇비슷 항기라 그래 어떤 시인은 말했잖/나 시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시에 무슨 근사한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사람들은 낡은 사람이라고 요새 시가 당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말을 너무 비틀어서 난감할 때가 참 만타카이 그거 다/‘낯설게 하긴’가 뭔가 그거 때문에 그렁 거 아이가 낯설게 하기 그거 다 씰 데 없는 소리 아이가/아 하늘 아래 새로운 기 어딨노 생각해 바라 마카 다 거기서 거기 아이가 사는 거나 시나 마카 다 그런 거지 요는/사물의 본질 그 내면을 잘 봐야 하는 거 아잉가베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을 보면 되것나 앙 그렇나? 그러니 시란 자기가 찾/아서 자기가 깨닫는 묘한 거 아이가// 그런데…. 뭐라꼬? 낯설고 새로운 시가 아름답다꼬? 쉬운 서정시는 진부/해서 독자들이 식상해 한다꼬? 그건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한 말이재,/산다는 거 잠시 꿈꾸다 아지랑이처럼 가는 거 아이가, 지금 당신 곁에 시/가 있는지 몰따 우짜든지 단디 해라이!” 김성춘의 ‘현곡(玄谷)에서’김성춘 시인은 찐한 경상도 사투리로 자신의 곡진한 목소리를 그대로 호소하고 전달하고 있는데, 시인에 대한 한탄과 아쉬움이 가득 담겨져 있다. 거창하고 무거운 시론이 무슨 필요가 있나 싶게 솔직한 말이 가슴을 후빈다. 너무나 진솔해서 옳다구나 맞장구를 치고 싶은 시다. “우짜든동 단디 해라”고 경상도 말로 당부하는 원로 서정 시인의 호소가 묘하고도 실감난다.문학이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게 단순한 물질문화와 문명 변화의 요인도 있겠지만 김 시인은 그 결정적인 이유를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덜 다듬어진 시인들이 너무 많으며 시 같지 않는 시를 발표하는 잡지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예술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에 시든 신음의 비명을 내어지르는 시인(屎人)이 너무나 많은 현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언어는 무수한 대화가 만들어낸 브리콜라주다. 지역어를 소멸시키지 않아야 할 이유 중 하나다. 김성춘 시인은 시인의 역할을 암시해 주고 있다. 바로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인 살아 있는 방언으로 이 시대의 시론을 요약해 주고 있다.참 시인이 할 일은 언어 속에 압축된 여러 갈래의 오랜 대화를 풀어내는 고난한 작업이며, 그러한 작업 과정에서 조그만 별꽃의 몫을 해내는 일이 시인이 해야 할 숙명적인 몫이다. 재미없는 시는 독자들이 외면하고, 엄숙한 교훈시는 재미없다.독자들은 말도 안 되는 기상천외의 언어 표현 때문에 그 시를 재밌게 느낀다. 21세기는 참으로 난해한 시대이다.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 이후 인간중심의 문명론 시대가 열리는 듯 했으나 이 또한 크리스퍼 N. 캠블이나 토머스 네일과 같은 과학철학 쪽의 반격을 받아 자연 전체 존재가 영원히 유동 상태라는 블랙홀 유물론이 등장하였다.이러한 시대에 앎의 방식이나 존재 방식도 부정형 쪽으로 기울고, 왜소해진 문학인의 나갈 길은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김성춘 시인의 자전적 시론 “시 비슷한 시들이, 또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난해한 시들이, 진짜 시 인양 시의 탈을 쓰고 착각하는 시들이 넘쳐난다. 너무나 무거운 시들, 별것 아닌 내용을 심각하게 쓰고 있는 시들도 문제다”라는 말에 귀 기울인다.

2024-07-22

일본의 대표적 군사도시였던 히로시마

4월 26일 아침, 이 날의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호텔 로비에 내려갔을 때 그곳은 수많은 외국인들로 북적였습니다. 특히 백인들이 무척이나 많았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마저 전통 일식 식당과 양식 위주의 식당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으로 상징되는 평화도시로서의 국제적 위상이 수많은 외국인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걸로 보였습니다. 이렇듯 평화도시로 널리 알려진 히로시마지만, 한때 히로시마가 일본의 대표적인 육군도시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날의 일정은 히로시마가 제국주의 시절 가졌던 군사도시로서의 성격을 알아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히로시마는 근대 일본의 군사화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성장한 도시입니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지 3년 후인 1871년에는 진제이 진대 제1분영이 설치되었고, 1888년에는 제5사단 사령부가 설치되었습니다. 특히 육군도시 히로시마의 역할은 청일전쟁 시기에 가장 크게 발휘되었는데요. 당시 히로시마는 거의 일본의 수도 역할을 할 정도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습니다.청일전쟁(1894.7.~1895.4.)의 발발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9월 8일에, 일본 군부는 도쿄에 있던 대본영(육군과 해군을 모두 통솔하던 최고군통수기관)을 히로시마로 옮깁니다. 보급거점과 사령부는 전선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의 전쟁상식에 비춰볼 때, 도쿄는 전쟁터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수많은 도시 중에 히로시마가 대본영 자리로 선정된 이유는 ‘전쟁터로부터 가까워야 한다’, ‘병력을 전쟁터로 보내기 위한 항구가 있어야 한다’, ‘병력을 이동할 수 있는 철도망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앞의 두 가지 조건을 갖춘 도시는 여러 곳이 있었지만, 마지막 조건까지 갖춘 곳은 당시 일본에서는 히로시마가 유일했습니다.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두 달 전에, 히로시마에는 일본 혼슈의 최북단인 아오모리까지 연결된 산요(山陽)철도가 완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894년 9월 13일에는 대본영이 도쿄로부터 히로시마로 이전했으며, 그로부터 이틀 후에는 메이지 천황이 히로시마로 옮겨와 이듬해 4월 27일까지 머물렀습니다. 메이지 천황은 청일전쟁의 거의 전과정을 히로시마에 머물며 지켜보았던 것인데요. 제7회 제국의회도 히로시마에서 소집되었고, 총리대신을 비롯한 정부의 고위관료도 모두 히로시마에 모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히로시마는 명실상부하게 청일전쟁 기간 내내 일본의 수도였던 것입니다. 청일전쟁 당시 히로시마를 거쳐 대륙과 한반도로 간 일본군은 무려 17만 1098명에 이른다고 합니다.청일전쟁은 일본 입장에서는 거의 횡재에 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청으로부터 무려 은화 2억냥에 이르는 배상금을 받았는데, 이 액수는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4년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이 돈으로 일본은 철도, 전화, 금융과 같은 인프라를 완비하고, 수많은 기업에 사업자금을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익도 결코 경제적 이익에 모자라지 않았는데요. 천년 이상 패권을 쥐고 있던 중국을 무릎 꿇리며, 자신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임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일본은 요동 반도(삼국간섭으로 곧 반납)와 타이완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니, 바야흐로 청일전쟁은 일본을 식민지까지 거느린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네요.그렇기에 청일전쟁의 침략적 성격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은 당시 히로시마를 비롯한 일본 어디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895년 4월 21일 청일전쟁의 종결에 따라 히로시마 대본영은 해산되었지만, 이후에도 히로시마는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군사도시로 계속 성장하게 됩니다. 1945년 8월 원폭의 비극을 겪게 되기까지 히로시마는 침략의 병참기지이자 파병기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난 시절 히로시마가 체험한 군사도시로서의 놀라운 성장은, 동시에 전대미문의 비극을 향해 가던 거대한 아이러니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저희 일행이 청일전쟁 당시 대본영을 비롯한 많은 군사시설이 설치되었던 히로시마 성을 방문했을 때는 오전 10시가 막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본래 히로시마 대본영은 2층짜리 목조건물로 서양식의 웅장한 자태를 자랑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원폭으로 인해 전소되고 앙상한 기초석과 초라한 안내비만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평일의 이른 시간이어서일까요?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이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것과 달리, 이 곳은 방문객도 거의 없어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전쟁이 한때의 번영과 영광을 가져다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결코 영원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말없이 웅변해주는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현재 히로시마시에는 어떠한 군사시설도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평화의 히로시마’가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라며, 우리 일행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다음 행선지인 구레시로 향했습니다.

2024-07-22

미친놈들의 시대

김진국 고문 ‘미친놈 전략’(madman strategy)이라는 게 있다. 미친놈처럼 보여 상대가 합리적 대응을 못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미친놈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바둑에도 ‘정석’이라는 게 있다.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대응 수순이 정해진 경우다. 고수들도 그 정석을 벗어나면 손해본다고 믿는다.미친놈은 정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음 수순을 예측하기 어렵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장기 전략을 짜기는 더욱 어렵다. 미친놈의 착수를 보고서야 다음 수를 준비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크게 손해보고 들어가는 셈이다. 또 미친놈은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만큼 무서운 놈이 없다. 결국 그런 미친놈을 만나면 공포를 느낀다. 처음부터 지고 시작한다.미친놈 전략은 헨리 키신저가 베트남 전쟁에서 써먹었다.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북베트남에 화가 난 미치광이라 핵무기를 쓰려고 한다는 가짜정보를 흘렸다. 소련이 북베트남에 협상을 종용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다. 결과는 실패였다. 협상의 대가라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성공했다. 트럼프의 선택은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미치광이는 정말 미친놈이라고 인식될 때 효과가 있다. 핵무기가 종이호랑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용하기 어렵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자 전 세계가 두려워했다. 푸틴이니까 사용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가장 잘 써먹는 사람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고모부를 고사포로 처형할 정도로 미친놈임을 보여줬다. 어리다고 얕보던 북한 고위층이 모두 납작 엎드렸다. 김정은이 어떤 어떤 이유로 숙청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사소한 지적이라도 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핵무기도 김정은이라면 쓸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도 걱정한다. 전쟁 결심도 없이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는 남한의 민간인 지역을 포격하리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그는 연평도에 포탄을 170여 발이나 퍼부었다.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이 자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법사위를 전무후무하게 자기 방식으로 진행한다. 상임위는 여야 간사 합의로 진행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여당 간사 선출 없이 밀어붙였다. 관례는 무시하고, 국회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했다. 청원을 구실로 탄핵청문회를 열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청원에서 제외하게 돼 있는 국회법은 무시했다. 필요한 법만 인용한다.증인들에게 갖은 온갖 모욕을 줬다.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인가”, “귀신 잡는 해병이 부하 잡는 해병이 됐다”라고 압박했다. 증인 선서와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는 증인들에게 ‘10분간 퇴장’ 명령을 내렸다. 회의장 밖에서 10분간 벌을 서고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퇴장당하자,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퇴장하면 뭐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쉬고. 한 발 두 손 들고 서 있으라 해야지”라고 조롱했다. 대한민국을 지킨 예비역 장군들을 그렇게까지 모욕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위원장석으로 나와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퇴거 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면 퇴장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의원님 성함이 뭡니까”,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세요”라며 여당 의원들의 발언을 뭉개버렸다. 곽규택 의원에게는 “계속 저를 째려보고 있다. 의사를 진행하는데 상당히 불편하다”라면서 발언권을 박탈했다. 법사위 직원에게 “계속 째려보는지 안 보는지 촬영하라”는 지시도 했다. 코미디 같은 진행이 연일 주목받는다.국민의힘 의원들은 무대책이다. 항의하다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정 위원장 페이스에 말려들어 끌려간다. 청문회 증인들도 국민의힘 의원들을 보며 적응해 간다. 증인 선서를 거부하다 선서하고, 답변도 적극적으로 한다. 정청래 위원장의 미친놈 전략이 통한 것이다. 트럼프, 김정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정청래 위원장, 게다가 자폭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정석, 예의를 찾으려는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21

시민환경운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대표 최근 환경운동도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방향은 탄소중립 친환경 경제활동입니다. 그래야 당면한 지구온난화, 기후위기를 극복해 낼 수가 있습니다.포항지역사회에서도 탄소중립경제를 일으키는 산업활동이 활기차게 일어나길 바랍니다.현재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이 그 핵심 사업입니다.요즘 날씨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구기후변화로 인해, 기후위기, 기후재난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문제는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대처 방안입니다. 에너지절약, 차 안타기, 플라스틱 사용 안하기 등 이러한 도덕운동, 환경운동만으로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더욱이 시민의 대다수는 경제활동을 해야만이 가족들과 함께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환경산업, 환경경제도 이제 현실을 존중, 그 틀 안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특히 친환경 탄소중립 활동을 통해 일자리가 생겨나는 전(全)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그런 점에서 포항에서 진행되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이라는 큰 사회적 경제적 아젠다는 작금 공론화가 필요합니다.포항시민들이 스스로 수소환원제철소의 필요성과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대중적 토론영역을 활성화 시켜 볼 시점이 된 것입니다.물론 탄소중립 실천에 있어 환경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은 변함없는 도덕적, 환경적 정신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더 큰 역할은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위해 경제활동과 일을 하도록 하는 탄소중립 경제의 기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더욱 효과적으로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한편으로는 이번 포럼을 기점으로 포항지역사회에서 환경운동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포항시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지구온난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논의할 수 있는 공적토론영역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 책임있는 사회운동가로서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4-07-21

제조 본원경쟁력을 높이는 방법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코로나 이후로 식당들을 보면 꾸준하게 잘 되는 곳이 있고 같은 위치에 몇 번이나 상호가 바뀌는 곳이 있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소비가 줄어 장사가 안되니 주인이 계속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때 잠시 주춤하였다가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더 번성하는 식당도 있다. 이러한 식당들은 기업으로 치면 나름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기업이든 식당이든 본질(本質)은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이 안되면 업계에서 퇴출되고 사회 기여도 할 수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보다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 고객이 필요할 때 공급하는 품질·원가·납기(Quality·Cost·Delivery)의 힘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본원경쟁력이다.Q·C·D에 대하여 남보다 우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품질의 확보이다. 우리가 음식점도 손님이 많거나 자주 가는 곳을 보면 맛이 있는 곳이다. 맛이 없으면 한두 번은 어쩌다 갈 수 있지만 다음에 또 가자고 하면 모두가 손사래를 친다. 맛이 있거나 비슷하다면 그 다음은 가격이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해 모든 식당들이 가격을 올리다 보니 맛이 있고 저렴한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따지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품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품을 만들어 내는 가공의 원리와 조건을 알아야 한다. 가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료의 조건이 맞아야 하며 재료를 잡아주는 지그(Jig)와 가공을 직접 담당하는 도구(Tool)를 연결하는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여야 하고, 물 질소 산소 등과 같은 가공 보조제의 조건들이 정상 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가공을 위한 재료와 도구 설비 보조제의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 경험으로도 알 수 있지만 학습을 통해 가공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누가 작업해도 양품이 나오도록 하는 표준과 숙련된 기능이 필요하다.품질이 확보 되었다면 그 다음은 가격이다. 가격은 다른 곳에서 만들지 못하는 우리만이 생산할 수 있는 제품과 수요가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 많이 쓰이는 소비재는 일반적인 것으로 누구나 생산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경쟁력은 만드는 과정에서 누가 더 비용을 적게 들이는가 가 경쟁력이다. 원가를 줄이는 방법은 만드는 과정상에서 원가 만을 상승시키는 정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주로 정체는 재료의 불량이나 결품, 설비의 고장과 능력차, 품명교체, 사람의 능력차나 재해, 정보의 변동 등과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다.즉 생산과정의 원가만 상승시키는 가치 없는 부분을 모두 제거하여 더 이상 제거할 수가 없어 가치 있는 공정만 남은 완벽한 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완벽한 상태는 대부분 돈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공의 원리를 이해하고 설비와 사람의 작용을 바르게 알면 돈을 들이지 않고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돈을 들이는 개량 보다는 지혜를 사용하는 개선을 하는 것이 기업은 돈을 벌고 개인도 성장하면서 모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인 것이다.

2024-07-21

미래세대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유영희 작가 지난주 12주간 진행한 글쓰기 강의를 마치며 학습자들의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다. 편집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삽화도 넣고 싶어져서 간단한 이미지는 무료 일러스트나 이미지를 구해 쉽게 넣었다. 그런데 제목이 ‘코’라는 두 소설의 독후감에 넣을 이미지가 영 마땅치 않았다. 일본 작가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코’의 주인공 젠치 스님의 코는 턱까지 늘어져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식사하기도 불편할 정도인데, 이렇게 코가 긴 얼굴 이미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고골의 ‘코’에 나오는 코 없는 남자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만드는 문집이 아무리 비매품이지만, 이미 출판되어 나온 이미지를 그냥 갖다 쓸 수 없어서 고심 끝에 인공지능의 힘을 빌렸다.나처럼 인공지능 활용도가 떨어지는 사람조차 이렇게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은 그림이라도 그리는 상황이 되었다. 노래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유명 가수 두 명이 짧게 한 소절 부른 노래가 인기를 끌자 그들이 부르지 않은 파트를 인공지능으로 생성해서 마치 그들이 곡 전체를 다 부른 것 같은 영상이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그들의 완곡을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었다. 얼마 전에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이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일상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웃에 사는 경계선 지능 학생의 부모에게 알려주었더니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받았다. 실제로 어느 경계선 지능인은 챗지피티가 자신의 제2의 뇌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그러나 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이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의 발달에도 빛과 그늘이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직업을 잃게 될 사람도 많고, 기술이 악용될 여지도 많다. 내가 인공지능으로 그린 이미지를 보고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는 ‘선생님마저 이렇게 인공지능을 이용할 줄 몰랐다’며 불안해했다. 아차, 싶었다. 이렇게 사소한 상황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그이의 마음에 바로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정교해지고 있다. 결국 무료로 쓸 수 있는 간단한 코 일러스트를 골라서 대체했다. 목소리 역시 전화에 ‘여보세요’ 같은 한두 마디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로 목소리를 생성해서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수 있다고 한다.이렇게 인공지능 같은 과학기술에는 양면이 있으니 어느 한 편을 들어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편리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도입은 신중하게 서서히 적용해야 한다. 몇 주 전, 내년부터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사용한다는 정책에 우려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다. 지난 17일 뉴스에 나온 ‘AIDT 프로토타입’이라는 ‘AI 디지털교과서’의 교사 연수용 버전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더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2024-07-21

국뽕인가, 사실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 듯하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유튜브 가운데 한국과 한국인을 칭찬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동영상 얘기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자꾸만 보고 듣다 보니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요컨대 한류(韓流)의 세계적인 유행과 더불어 한국인과 한국을 찬양하는 국제적인 유튜버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오는 26일 개막되는 제33회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프랑스에서 건너온 여기자의 유튜브 방송이 그런 본보기 가운데 하나다. 그녀는 파리를 흐르는 센강에 입수(入水)하겠다고 공언한 파리 시장과 프랑스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한다. 지난 2년 동안 센강에 쏟아부은 3조 원 넘는 돈이 말짱 도루묵이었다고 위정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그녀는 36년 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이한 한국과 한국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심층 탐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다. 거기서 그녀가 도달한 결론은 새삼 놀라운 것이었기에 잠시 소개한다. 한국인들은 당시 하나 되어 한강은 물론 낙후한 화장실을 말끔하게 손봄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화장실 문화와 깨끗한 수질의 한강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반면에 거액을 투입했지만, 센강은 회복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고, 정치인들은 올림픽이 끝나고 난 다음 센강 입수를 고려해보겠다고 말을 바꾸었다고 한다. 파리 시민들은 여전히 노상방뇨(路上放尿)를 감행하여 곳곳에서 지린내가 등천하고, 오물이 강변을 뒤덮고 있다 한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던 그녀에게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 이는 한국인이었다.국가와 공동체가 마주한 중대사를 위해 소중한 개인의 자유를 뒷전으로 미루고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해 한국인들은 손에 손을 맞잡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 개최에 부정적인 파리 시민 가운데 일부는 올림픽 보이콧까지 주장하며 노상방뇨와 쓰레기 투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식 차이가 결정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이와 같은 결론은 두 가지 쟁점을 초래한다. 그 하나는 개인의 권리와 공공성의 충돌이 발생하면 어느 선까지 누가 물러설 것이냐, 하는 것이고, 그 둘은 그런 차이를 가져오게 만든 사회-정치-역사적인 맥락을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따라서 간단명료하며 지극히 명쾌한 단답형 결론 도출은 불가능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공론장(公論場)은 이런 경우 꽤 유용하다. 하나의 의견을 제시하고 대중의 사유와 인식을 열린 토론 마당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정해진 결과를 향해 질주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상호 이해와 인식의 교환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실험장이자 건강한 시민의식의 발현 공간이다.뜻하지 않은 유튜브와 대면함으로써 나의 인식과 사유가 전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분명 기분 좋은 현상이지만, 혹여 빠뜨린 대목은 없는지,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고 있다. 거기서 나오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의 열린 공론장 형성에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2024-07-21

트럼피즘

우정구 논설위원 트럼피즘을 일부학자는 일종의 자유민주주의의 변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이름을 딴 페로니즘이 좌파 포퓰리즘 권위주의 대명사라면 트럼피즘은 우파 포퓰리즘 권위주의 정책의 대명사로 본다는 뜻이다.“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외침에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다. 미국의 내셔널리즘. 국민보수주의, 반공주의, 불개입주의 등으로 해석되는 트럼피즘은 본래 백인 노동자 계층 중심의 지지기반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은 대도시 대학졸업자, 유색인종 등에 이르기까지 지지기반이 크게 확장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특히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에 대한 총기피격 사건 이후 트럼프의 지지율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 세계적 관심거리다. 미국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될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피즘은 친이민정책과 자유무역주의 정책에 반격을 가하고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강력한 자국우선주의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주도한 엘리트층이 일반서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반엘리트주의가 근거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체된 임금수준에 대한 중년 백인 남성의 분노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트럼피즘의 본질은 극단주의적 표퓰리즘에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가 반면교사할 부분은 없을까. 고민할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1

보수와 진보는 결코 선악의 대립이 아니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정치의 가장 큰 고질병은 극한적 이념 갈등이다.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 속하든 상대를 부정하고 심지어 악마화 하려 한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편하고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 양측 모두 자기 정파만을 위한 투쟁에 몰입하고 있다.현재의 이 나라의 여당은 보수, 야당은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여야는 참된 보수도 진보 정당도 아니다. 여야는 진영정치에 몰입하여 자기편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양분 프레임정치를 하고 있다. 양식 있는 시민들이 우려하고 실망시키는 우리 정치의 모순이다.이 나라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까지 심지어 시민 단체나 개인들까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보수는 체제 안정과 유지를 위한 수단이고, 진보는 체제의 모순을 개선 개혁하려는 이념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보수도 진보도 본질에서는 많이 이탈하여 사이비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념대립은 결코 선악대립이 아니다.달포 전 어느 스님의 산방을 찾은 적이 있다. 종교간 간헐적 대화 모임에 소생도 참여했던 것이다. 오찬 시작 전 초청 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찾아와 주어 고맙다는 의례적인 인사는 아니었다. ‘회영(懷影)산방’이라는 옥호의 작명 내력부터 소개하였다. 인생을 오래 살다보니 남는 것은 자신을 따르는 그림자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그림자를 가슴에 품고(懷影) 살아가는 곳이 이 산방이란다.노승은 젊은 시절 불교뿐 아니라 모순된 사회 개혁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는 평생을 현실 개혁을 위해 싸워왔지만 진보만이 선이 아니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보에도 선인과 악인이 항상 공존했다는 것이다.스님은 첩첩산중인 이 산방에서 조용히 살다 하직하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햇살이 고루 퍼지는 오전 10시, 산속의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서 춤을 추면서 이승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초연한 스님 말씀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상당히 가슴에 와 닿는 인사성격의 법문이었기 때문이다.이 나라 정치에서 보수측과 진보측은 상호 비난하고 적대시한다. 여야 간 협치가 되지 않는 근원이다. 보수 강경 단체는 진보 단체를 수상한 집단으로 간주한다. 보수 우파는 진보 좌파를 용공이나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한다.1950년대 미국에서 상대 경쟁자를 공산주의자로 거부했던 매카시즘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 6·25 전쟁직전 보도 연맹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자유당 시절 대선후보였던 조봉암마저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뒤늦게 무죄 판명되었다.8·7 민중항쟁 이전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용공이라는 명목으로 희생되었다. 보수측은 진보측을 아직도 반국가 세력이며 추출해야할 악의 세력으로 단죄하려 한다. 진보에 대한 의심과 불신 감정이 보수층의 심리적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강경인사들은 자기들은 항상 선이며 애국세력으로 자부한다. 보수 진보의 이념의 갈등이 선악의 프리즘으로 작동되는 증거이다. 진보측 역시 보수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강하다. 이들은 보수층을 기득권을 옹호하는 부패한 집단으로 간주한다. 해방 후 정당간의 실질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보수는 ‘권위와 정통성’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견지해 왔다.진보측은 보수 측을 기득권 유지를 위한 부패한 세력으로 간주하였다. 진보측은 보수 측을 서민이나 소외된 자들을 돌보지 않고 가진 자의 편에 서 있어 역사를 퇴행시키는 ‘반역사적 세력’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진보 측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촛불 집회를 옹호하면서도 보수 측의 태극기 집회는 거부할 수밖에 없다. 진보 측에서는 보수 강경파를 친미 사대주의자로 간주할뿐 아니라 때로는 힘 있는 곳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이 나라 보수가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까지 옹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항상 이런 강자에 의존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사회정의를 파괴하고 역사를 퇴행시킨다는 것이다.이 같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한국의 정당 정치를 왜곡하고 극단적 거부 정치, 진영 정치를 부추길 뿐이다. 이런 정치판의 보·혁 갈등이 가족이나 친족, 동창 조직 등의 모임에서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한국의 갈라진 언론이 이를 더욱 조장 확산시킨다. 보수는 영국의 에드먼트 버크에서 보듯이 전통과 기존질서를 옹호하려는 이념이다. 혁명이나 개혁으로 인한 대혼란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진보는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혁명해야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현실은 사이비 보수와 진보가 서로 비난하고 저주하면서 뒤엉켜 싸우고 있다. 정치적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대립이 도덕적 선악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는 셈이다.미국 정치학자 바라다트는 일찍이 보수도 진보도 자기의 뜻을 관철할 수 없는 허무주의에서 만난다고 주장하였다. 정치와 역사는 결국 양측의 정반합의 변증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를 중재할 사람은 결국 양식 있는 중도층이다. 이들이 선거에서 심판자가 되고 있다.

2024-07-21

강박장애로부터의 자유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버스 손잡이를 잡는 게 오염이 될까 봐 걱정되거나 외출하는데 집의 문을 잠갔는지 걱정이 된다면 ‘강박장애’ 환자일까? 우리는 무언가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면, ‘강박장애’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강박적 사고는 강박장애 환자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인도 강박적 사고를 한다. 정상인은 강박사고를 경험하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쉽게 떨쳐버릴 수 있다. 강박장애 환자인지 여부는 자신이 원치 않은 강박적 사고를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억제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점에서 명확히 확인될 수 있다.강박장애를 가진 사람은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지함에도 하루에 1시간 이상을 얽매여 있고 현저한 고통을 겪는다. 심한 경우는 하루종일 지속되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이다.강박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은 강박사고(Obsession)와 강박행동이다. 강박사고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오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또는 재확인해보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사고, 폭력적이거나 공포스러운 장면들과 같은 심상 또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충동이다. 중요한 것은 강박사고가 즐겁지 않고 자발적이지 않으며 침투적이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반응으로 현저한 불안감이나 괴로움을 초래한다는 점이다.강박행동은 강박사고에 대한 반응으로 그렇게 해야만 안심하게 되는 반복적 행동이나 정신적 활동이다. 예를 들면 더러운 물질에 손이 오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강박 사고 또는 무언가 부정확하다는 강박사고가 유발하는 불안감은 손을 씻거나 재확인 함으로써 완화될 수 있는데,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해 씻는 행동 또는 확인하는 행동은 강박행동이다. 정신적 활동인 강박행동의 예는 안심이 되는 단어나 문구를 속으로 반복하는 것 등이다.강박사고에는 ①오염 강박사고, ②확인 강박사고, ③공격적인 강박사고, ④대칭과 질서의 강박사고, ⑤신체적 강박사고, ⑥성적 강박사고, ⑦종교적 강박사고 등이 있다.강박행동에는 ①세척 강박행동, ②확인/반복 강박행동, ③숫자세기, ④정리정돈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결벽증이라고 불리우는 오염 강박사고와 세척 강박행동이 짝지어진 강박증상이 가장 흔하다. 대부분의 강박장애 환자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 모두 갖고 있다.강박장애는 평생유병률이 2~3%로 결코 드문 질환이 아니다. 강박장애의 평균 발병 연령은 19.5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강박장애를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는 20~30대에 많다. 발병 후 바로 치료받지 않고 있다가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심해져 20~30대에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에 비해 더 이른 나이에 발병한다.강박장애는 점진적 발병이 흔하다. 치료받지 않으면 대부분 만성적인 경과를 거치며, 증상의 악화와 완화를 자주 반복한다. 치료없이 저절로 관해되는 경우는 적다. 가능하면 조기치료가 중요하다는 말이다.강박장애의 생물학적 원인은 한 가지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주의를 전환하도록 해 주고, 인지적 융통성을 발휘하는 뇌의 전대상피질의 세로토닌 기능의 저하와 안와전두피질과 기저핵 이의 도파민 신경 회로의 과활성화이다.따라서 강박장애의 약물치료는 세로토닌 기능을 올려주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효과적이며, 강박장애의 증상이 심각한 경우 도파민 수용체 차단제를 사용한다.강박장애 환자의 치료에는 약물치료뿐만 아니라. 인지행동치료 또한 중요하다. 많은 강박장애 환자는 역기능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믿음에는 부정적 결과에 대한 지나친 책임감, 위험에 대한 과대평가, 완벽주의, 불확실성을 참기 힘들어 하거나, 금지된 생각이 마치 행동하는 것만큼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지나친 확대해석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강박장애 치료에는 이러한 역기능적 믿음을 깨닫게 해주는 인지치료가 중요하다.강박장애의 가장 대표적인 행동치료법은 노출과 반응방지이다. 예를 들면, 강박적으로 자주 손을 씻는 환자의 경우 환자가 두려워하는 더러운 물건을 만지게 한 후 손을 씻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는 노출 초기에는 심한 불안을 경험할 수 있으나, 반복적인 시행을 함에 따라 점점 불안이 완화된다. 그러나 강박장애 환자 중 상당수는 두려운 상황에 노출될 때 불안 증가를 경험함으로써 치료를 거부하는 단점이 있다. 강박사고가 주 증상인 환자에게는 ‘중지’라고 외쳐서 그 생각을 멈추게 하는 사고중지법을 적용한다.필자가 강박장애 환자들에게 전하는 마음처방전을 공개한다. 강박사고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침투적인 생각이다. 통제할 수 없는 강박사고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사고억제의 역설적 효과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할 때보다 오히려 강박사고가 더 떠오르고 집착하게 된다.필자는 환자들에게 “강박사고가 일어날 때, 아 나는 지금 강박사고를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수용하라고 처방한다. 강박사고, 강박행동 그리고 불안에 반응하지 않고 그저 바라볼 때 언젠가는 그 증상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체험하고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2024-07-21

청송군 인구소멸 선제적 대응

윤경희 청송군수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는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이며, 올해 합계출산율은 0.6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에서 인구소멸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사과로 유명한 청송군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현재 청송군의 인구는 2만3887명으로, 2만4000명이 깨졌다. (2024. 6. 30.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현황). 여기에 인구의 40%는 65세 이상으로 유력한 지방소멸지역이다.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청송군은 인구소멸에 대응한 첫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주거지 확보,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먼저 청송군은 인구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주 4.5일제를 도입했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시행된 전국 최초의 시도이다.직장생활과 가사노동, 양육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일을 그만두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일이 많아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송군 기관단체의 근로시간 주 4.5일제 시행은 근로자의 개인, 부모로서 삶의 질을 높여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청송문화관광재단과 청송문화원, 청송군 체육회 등 산하 공공기관 및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시범운영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다음은 주거지 확보이다. 청송군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공공임대주택 청년빌리지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이 돌아오는 청송’을 모토로 공공임대주택 4층 규모 44세대를 건립해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을 지원하고 있다.또한 ‘덕리지구 농촌공간정비사업’을 통해 덕리지구를 쾌적한 주거·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축사와 견사를 철거하고 공공임대주택, 영농실습농장, 복합문화센터, 편의시설을 조성해 청년층에게 고품질의 주거지를, 지역민들에게도 문화공간을 제공해 청송읍 원도심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일자리 창출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청송군은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쟁력 강화를 위해 청송군-대구가톨릭대학-지역기업이 함께하는 ‘청송군 K-U시티 항노화 사업’을 시행한다.이 사업은 구직을 위해 지역을 떠나는 학생과 청년들의 유출 방지를 위해 양질을 일자리와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2026년까지 항노화 산업 연구센터를 덕리지구 농촌 공간정비사업과 연계하여 조성한다. 이곳에는 입주 기업실, 연구실, 실험실습실 등의 시설이 구축된다. 청송사과와 청송특산물을 활용한 항노화 사업 추진으로 인력 유치와 공동연구를 통한 창업도 지원한다. 또한 관련 근무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동 주택도 건립하여 일자리와 주거공간을 청송군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교정시설 신축 및 교정공무원 숙소 추가 건립을 법무부에 꾸준히 건의해왔다. 수용인원 1000 명 규모의 교정시설이 들어서면 교정공무원 400명이 새로 유입되고, 면회객 증가로 인한 인구 증가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마지막으로 출산 친화적 여건 제공으로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구축한다. 숲속 태교 프로그램, 찾아가는 산부인과 운영, 임신부·영유아 건강플러스 사업 시행으로 초보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진보면과 산남지역에 지역아동 돌봄 센터를 운영해 맞벌이 부부의 돌봄 공백을 해소해 아이와 부모 모두 안심하는 양육 환경을 만든다. 지역 돌봄 센터는 정규 수업 외의 다양한 체험과 생활교육을 실시하여 향후 청송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이러한 노력은 중앙정부의 저출산 극복 대책과도 발맞추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앞으로 10년이 저출생 대응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비상한 각오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청송군이 이러한 중앙정부의 노력에 발맞추어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청송군의 선제적 대응은 대한민국의 다른 지방정부에도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하고, 다양한 정책을 통해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청송군의 사례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접근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2024-07-21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작년 어느 날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나는 깜짝 놀랐다나는 아파서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참 우습다내가 57세라니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최승자, ‘참 우습다’ 전문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 지성사, 2011)최승자 시인(1952년~)은 “담배 한 대 피우며 한 십 년이 흘렀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후 시인의 시간은 거기에 또 한대의 담배가 얹힌 시간이 된다. 그렇게 한 세월이 있었다. 80년대에 시인이 되고자 했던 많은 시인처럼 최승자의 시들이 보여주었던 치명적이고 고질적인 꿈, 혹은 병(病)은 혹독한 고통의 시간이었다.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를 보존한다는 것과 보존된 과거를 상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시간은 시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연된다. 그것이 바로 ‘병(病)’이다. “그냥 아파서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시에 나타난 과거적 지평은 단순히 회고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를 응시하는 시인은 퇴행적 욕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미래 지향적 욕망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를 분출하고 있다.깨어 있는 동안에 우리가 무엇을 하든 현실은 삶에 달라붙는다. 시인에게 병(病)은 그러한 삶과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라캉은 죽음충동은 불쾌의 경험에서 쾌를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시인은 오랫동안 투병 속에 잠들어 있었다. 이는 의미와 존재의 사유를 표현하는 것에 실패했을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우회로이다. 시인은 과거를 재현하며 그에 투신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끌어당겨 현재의 ‘나’의 위치에서 언어화한다. 최승자의 시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시적 자아는 삶에 위치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오랫동안 죽음에 투신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가출하듯 최승자는 최승자를 떠났다.시인 최승자는 묻고 답한다.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주저앉아 있는 것, 정지해 있는 것, 고여 흐르지 않는 것은 시간의 누적과 더불어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굳어져 버린다. 단단히 굳어져 하나의 질병”이 돼버린다. 그러니까 이건 힘겨운 삶과 사라진 사랑, 버거운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의 그 아스라한 통증의 공허함이란. 그리고 타자들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에 의해 주도 되어오던 시인의 시간은 후반부에 이르러 시인의 시점으로 바뀐다. 그 순간 시인은 마침내 껍질을 벗고 세상으로 나올 생각을 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을 잠시 흐르다 가는 삶의 즐거움과 고통, 사랑과 죽음에 대한 방식은 이어지는 작품 ‘너에게’에서도 연역한다. 이희정시인 “네가 왔으면 좋겠다 / 나는 치명적이다 / 네게 더 이상 팔 게 없다 / 내 목숨밖에는.// 목숨밖에 팔 게 없는 세상, / 황량한 쇼윈도 같은 나의 창 너머로 /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고, 나는 치명적이다. // 네게, 또 세상에게, 더 이상 팔 게 없다. / 내 영혼의 집 쇼윈도는 텅 텅 비어 있다./ 텅 텅 비어, / 박제된 내 모가지 하나만/ 죽은 왕의 초상처럼 걸려 있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 나는 치명적이라고 한다.”그녀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의 표제를 비웃듯 1979년 등단 이후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 옮긴 책들은 투병 중의 그녀로서는 지극한 이력이다. 여전히 많은 독자가 시인의 시에 기대어 허무와 고통을 필사하는데도 불구하고, 덧붙은 이력에는 기초생활수급자, 초등생 몸무게, 정신병원 재입원 등의 키워드가 부록처럼 딸려있다. 그럼에도 시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앞으로도 뒤로도.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2021년 시인의 말, 최승자)”

2024-07-21

아프니까 사장이다

우정구 논설위원 국내 최대 규모 창업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창업 카페에는 요즘 사무실이나 가게를 팔겠다는 게시물이 더 많이 올라와 창업 카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최근 국세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사업을 접고 폐업한 사업자가 98만여 명으로 집계돼 전년보다 14% 가까이 늘었다. 관련 통계 집계 후 가장 많은 자영업의 폐업이라 한다.폐업 사유는 절반 가까이가 사업 부진을 꼽았다. 내수 경기 부진을 원인으로 꼽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의 비중이 너무 높은 탓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6∼9% 수준이나 우리는 20% 정도다.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떠밀려나온 40∼50대 직장인이 쉽게 선택하는 것이 바로 자영업이다. 경기 부진도 원인이지만 과잉상태의 자영업 때문에 사업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최근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30원으로 오르자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알바들 연봉 협상하느냐”는 비판 글부터 “겨우 버티는데 걱정”이라는 우려의 글들로 가득찼다.특히 15시간 이상 일하면 지급해야 하는 주휴수당 폐지를 주장하는 글들도 많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말이 시급 1만30원이지 주휴수당 포함하면 사실상 1만2000원 꼴이라며 높은 임금 때문에 앞으로 자영업을 포기할 사람이 더 늘 것이라는 글들이 많았다.더 우려스러운 것은 폐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자영업자가 1년 새 20%나 늘었다는 사실이다. 문 닫고 빈털터리 신세된 자영업자들의 눈물을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커뮤니티 이름이 ‘아프니까 사장이다’라고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7-18

국회의원 배지의 무게

이상휘 국회의원(국민의힘·포항남울릉) “의원님 배지 달고 다니셔야 합니다.”국회 등원하고 나서 보좌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국회의원 배지가 지금이야 조금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의원총회나 꼭 필요한 자리에만 달고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간혹 분실 위험도 없지 않았다. 더욱이 가끔씩은 어느 주머니에 뒀는지 가물가물, 곤혹스러웠다. 그걸 지켜본 보좌진들이 ‘차라리 당당하게 배지 달고 다니시라’고 권유했다.흔히들 국회의원 배지를 ‘금배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99%의 은에 공업용 금을 입힌 것으로 무궁화 형상에 한글로 ‘국회’라는 글자가 있다. 지름 1.6㎝에 무게는 약 6g. 배지마다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으며, 처음엔 무료로 지급해 주지만 분실이나 추가 주문 시 3만5000원을 내고 구매해야 한다.국회의원 배지의 무게는 6g에 불과하지만, 그 가치(價値)의 무게는 측정이 어렵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뒤따르기 때문이다.지난 5월 30일 제22대 국회 첫 등원 이후 하루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주중이면 여의도로 올라와 지역의 대표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한편 맡겨진 당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특히 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야당과 싸우는 것은 여간 일이 아니었다. 주말은 더 바빴다. 지역구인 포항으로 내려가 현안도 파악하고 주민들과 만나 소통을 하다 보면 토, 일요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난 가끔 힘들 때면 ‘누가 국회의원을 노는 사람들이라고 했나’라며 읊조리곤 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이 뭐가 그리 힘드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그랬다.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 서 있는데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등원하고 보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특히 요즘은 국회의원이라는 권위만 잔뜩 내세우면서 한가하게 서울과 지역을 왔다 갔다 하다가는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다. 생존하려면 변화에 발맞출 수밖에 없다. 초선이든 중진이든 간에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최선을 다해 지역구 활동과 국회의원으로서의 의정활동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다만 갈수록 국회 사정이 복잡, 안타깝기만 하다. 여당 소속이지만 여당의 이점을 향유하기는커녕 일방 독주하는 야당을 견제하기도 버거운 것이 요즘 상황이다. 더욱이 이런 여야 대치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복잡한 정국을 헤쳐 나가면서, 또 산적해 있는 지역 문제를 어떻게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나, 그래도 포항 출신 영일만 사나이는 시간 날 때마다 다짐하는 것이 있다. 믿고 뽑아준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을 유념, 조금 더디 가더라도 멀리 갈 수 있도록 시민들과 함께 담담히 걸어갈 것임을 다짐한다. 가끔씩은 이 지면을 통해 소식을 담은 편지도 전하면서….

2024-07-18

완장(腕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오래 전에 읽은 윤흥길의 소설 ‘완장’이 생각난다. 주인공 임종술은 동대문시장에서 목판장사도 하고 포장마차도 해보고 양키물건을 팔기도 하다가 고향에 내려와 낚시질이나 하며 지내는 건달이다. 그런 그에게 완장을 두를 일이 생겼다. 땅 투기에 성공해 기업가로 변신한 최 사장이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임종술에게 맡긴 것이다. 보수가 변변치 않아 처음에는 거절을 했으나 완장을 차게 해 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수락을 한다.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로 ‘감시원’이라고 쓴 완장을 찬 임종술은 사람이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도둑낚시를 하던 널금저수지는 이제 그가 지배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다. 야밤에 몰래 고기잡이를 하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여 아들의 귀청을 터지게 만들기도 하는 등 마치 마을에 군림하는 독재자인 양 행세한다. 그렇듯 완장놀음에 심취한 종술은 면소재지인 읍내에 나가서도 완장을 차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러다 어이없게도 저수지에 놀러온 최 사장 일행이 낚시하는 것까지 방해를 해서 감시원직을 빼앗기고 만다.감시원직에서 해고를 당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종술은 완장을 차고 저수지를 감독하는 일을 계속한다. 그러나 가뭄이 심해져서 저수지의 물을 빼서 전답에 대기로 결정이 나자 임종술은 강력히 반발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수리조합직원과 경찰에게까지 행패를 부리다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되어 완장을 버리고 고향을 떠난다.22대 국회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학창시절 소위 운동권이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다른 학생 5명과 모의하여 사과탄, 화염병, 사제폭발물 및 쇠파이프를 소지하고 주한미대사 관저의 담을 넘었다. 월담 직후 사과탄 및 사제 폭탄 1발을 터뜨리고, 폭발음을 듣고 달려온 경비원을 향해 다시 2발을 터뜨렸으며 미리 준비한 쇠파이프로 현관 유리창을 부순 뒤 공관 안 응접실에 침입했다.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액자를 쇠파이프로 부순 뒤 접견실에 있던 소파 4개와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 대사관저 직원들을 인질로 하여 “노태우 매국 방미 반대”, “그레그 대사 취임 반대 및 추방”, “수입 개방 압력 철회”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하다 경찰에 연행되었다.집시법위반,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현주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화려한(?) 경력을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 좌파 정당의 공천을 받아 네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에다 법사위원장 감투까지 쓴 정청래 의원은 완장을 찬 임종술을 방불케 한다.터무니없는 법안들을 마구잡이로 단독·강행 발의하는 등 무소불위 권력놀음에 도취되어 ‘해병대원 특검법’청문회에 불려나온 전 국방장관과 군 장성들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작태를 벌이기도 한다. 인성과 자질이 안 되는 사람이 완장(감투)을 차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을 일이다.

2024-07-18

TK와 웅도 경북(雄道 慶北)의 추억

정태옥​​​​​​​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지난 대선 시절에 홍준표 후보는 풍패지향(豐沛之鄕)이란 말을 했다.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이 풍읍(豐邑) 패현(沛縣)에서 유래하여 제왕의 고향이란 뜻으로 대권 쟁취와 고향 발전의 의지를 드러낸 말이다. 6~70년대 대구 경북은 한 몸이었다. 당시 전국체전 캐치프레이즈가 웅도 경북(雄道慶北)이었다.실제 부산과 경기도를 멀리서 따돌리고 서울 다음의 위상을 떨쳤다. 대구경북은 땅도 넓었고 인구도 많았고 산업 생산력도 대단하였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구미전자산업과 대구섬유산업은 산업 입국의 상징이었다. 영호남 갈등의 근저에는 대구경북의 남다른 발전이 깔려 있었다.당시 TK출신 위상도 대단했다. 일설에 의하면 원래 TK는 대구경북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서울에서 열리는 경북고등학교 총동창회를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한다. 경북고등학교의 일제시대 전신이 대구고보였다. 경북고등학교 총동창회에는 대구고보와 경북(중)고등학교 출신들이 다 모였는데 그들의 앞 글자를 따서 TK라 부르고 아예 대구 경북 사람들을 TK라 일컫고 삼김(三金)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산경남 사람들을 PK라 부르면서 지역 명칭으로 변했다 한다.내노라하는 정치인들도 가득하였다. 요즘 다른 지역 정치인들이 대구경북 사람들을 아무리 비하해도 찍소리 못하고 공천에 목메다는 비겁한 정치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서울에 갔을 때 남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대구 경북이라고 답할 때는 은근 자부심도 한 줌 들어가 있는 대답이었다.세월은 흘러 이제 대구경북은 몰락과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쪼개어지고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다 못해 형편없이 되었고, 정치적 발언권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여당 당대표 선거 때나 찾는 곳이 되었다. 서문시장은 다급한 보수 정치인들이 찾아와서 보수를 지켜달라고 애절하게 호소해 놓고 돌아서서는 웃어버리는 웃기는 동네가 되어 버렸다. 대구경북은 그들이 서울 가서 대구경북 발전을 위한 법안이나 정책에는 철저히 외면하는 허언(虛言)의 고장이 되어 버렸다.최근 얼마동안 대구경북을 위한 법안 한 두 개는 그들의 힘이 아니라 전라도 광주의 힘을 빌어 겨우 통과 됐다.최근 다시 대구와 경북을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실제 대구경북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깔려 있다. 그래도 나는 기대를 한번 해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제 산업경쟁의 단위가 국가에서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중부 내륙의 러스트 벨트(Lust Belt)라고 하는 전통적 산업도시 지역과 태평양과 대서양 해안지역 쪽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르다. 대구경북도 합하여 규모를 키우고 독자적 산업 정책을 펼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고 21세기 첨단 산업시대에 알맞은 신산업을 창출해야 한다. 한때 잘 나가던 대구경북의 위상이 쪼들어진 원인은 수출주도형 산업시대에 항구가 없었기 때문이다.21세기에는 항공 물류의 비중이 많이 높아졌다. 대구와 구미에서 미국 한번 출장 가려고 새벽 5시에 출발해서는 지역 경쟁력이 있을 수 없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준비하는 신산업 정책도 필요하다.덩치만 크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열린다. 나는 기대해 본다.

2024-07-18

유튜브와 돈이 만들어낸 괴물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불과 반세기 전엔 초등학생들의 꿈이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대부분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여자 아이의 경우 고풍스럽게도 “현모양처(賢母良妻)”라 답하는 경우까지 있었다.21세기가 되면서 장래희망을 물었을 때 그런 대답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게 “인플루언서” 혹은 “인기 좋은 유튜버”다. 이걸 탓할 수는 없다. 세월과 세상의 변화에 따라 아이들의 꿈도 달라지기 마련이니.“왜 인기 좋은 유튜버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이던 아이.공고한 자본주의가 득세한 한국 사회에서 돈은 이제 모든 것의 척도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돈도 많이 벌고 싶은 것이다. 이것도 야단치기 어렵다. 아이들이 누굴 보고 배웠겠는가.하지만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문제는 돈을 버는 방식이다. 부정하고 부당하게, 불법과 편법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인간에게 독(毒)이 되는 법. 이젠 이 말을 해주는 어른들이 드물어졌다.최근 음식을 상식 밖으로 많이 먹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려 유명인이 된 한 여성의 과거사가 화제가 됐다. 남자친구에게 맞고 살면서 40억 원을 착복 당했다는 이야기. 저간의 사정을 아는 또 다른 유튜버 몇몇이 이 여성의 억울함과 고통을 알면서도 약점을 이용해 돈을 뺏으려 했다는 관련 보도가 줄줄이 이어졌다. 혀를 찰 일 아닌가.유튜브 운영사가 그 여성 유튜버를 협박한 3명 유튜버들의 수익 창출을 중지시켜 돈줄을 막아놓으니, 그제서야 사과의 의사를 밝히고 있다. 후안무치한 그들을 ‘유튜브와 돈이 만든 괴물’ 외에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17

대학이 살아야

장규열 고문 대학의 운명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교육기관으로 존속을 넘어 고등교육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걱정을 끼친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문대 입학생들 가운데 만학도의 입학이 꾸준하게 증가한다고 한다. 이미 신입생의 절반가량을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차지한다. 대학이 더 이상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말해준다. 신입생 가운데 50대 이상도 11%에 달하며, 비수도권 전문대는 만학도가 70%에 이른다고 한다. 대학은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학습자들을 포용해야 하며, 대학의 정의와 역할을 새롭게 다듬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전통적으로 10대 후반·20대 초반 학생들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대학은 그 역할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 대학이 젊은이의 첫 번째 직업만을 준비하는 단계가 아닌, 인생 전반에 걸쳐 재교육과 재훈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세상의 도래는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이미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조차도 새로운 지식을 지속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기술과 산업의 발전과 변화는 대학에게 연령의 한계를 넘어서는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집단 온라인강의(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와 융합교육(Hybrid Education)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 방식이 등장하여 기존 강의 일변도의 대학교육 시스템을 보완하고 확장한다.사회생활을 이미 시작한 사람에게 다시 배워야 하는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직업의 변화, 기술의 발전, 경제 구조의 변화 등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하도록 요구한다. 대학은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평생학습의 중요한 허브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학의 존립과 미래는 대학 스스로 정의와 역할을 어떻게 재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통적인 청년교육 중심에서 탈피하여 인생 전반에 걸친 학습을 지원하는 포괄적인 교육기관으로 변화해야 한다. 대학은 다양한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다기적으로 구성하고 디지털을 포함한 미래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교육의 다면적 확장을 추구하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대학은 사회의 진보와 변화에 발맞추어 학습자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유연한 ‘교육필요성 모니터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대학이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 직장인들이 재교육과 성인연령층의 평생교육은 대학에게 새로운 지평을 제공한다. 대학이 기술적 트렌드와 미래사회의 변화를 감지하는 맨 앞자리에서 청년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열린 교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은 변화를 수용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교육모델을 제시하며 사회 전반의 변화와 혁신을 추동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대학이 사회전반과 과학기술의 변화의 뒷자락을 따라가서야 되겠나. 대학이 전향적으로 트렌드와 혁신을 유도하고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앞서가야 한다.

2024-07-17

입추(立秋)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열세 번째가 입추(立秋)다. 태양의 황경이 13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8월 7일(음력 7월 4일)이다. 음력으로는 7월의 절기다. 입추(立秋)는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다.입추(立秋)는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봄을 알리는 입춘, 여름을 알리는 입하, 겨울을 알리는 입동과 같이 계절이 바뀜을 알려주는 절기다. 이를 입(入)절기라고 하는데, 계절이 시작하는 절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름 기운이 강하게 남아 있다. 가을로 들어서려면 아직 한 달 이상이 남았다. 이런 시간 차이는 복사열 때문이다.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간혹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음력 칠월칠석이 지나면 밤에는 열대야가 식어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때때로 태풍이 올라오면 거친 바람과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지만, 입추가 지나면 뜨겁고 덥지만 습하지 않은 날이 지속된다.1년 벼농사의 성패가 이 때의 날씨에 달려있다. 입추는 벼의 성장에 중요한 절기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뜨거운 햇살을 받아야 낱알을 살찌울 수 있고, 벼가 제대로 누렇게 익어가기 때문이다. 입추에서 처서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예로부터 각 고을마다 비가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입추와 처서 사이에 칠석(七夕·양력 8월 10일)이 있다. 칠석은 양수인 홀수 7이 겹치는 날이라 예로부터 길일로 여겼다.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만나는 날이다. 칠석날 내리는 비는 기쁨의 눈물이요, 다음날 내리는 비는 헤어지면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라 한다. 여름 하늘에 은하수를 중심으로 동쪽에 견우성(독수리자리), 서쪽에 직녀성(거문고자리)이 있다. 두 별은 약 16광년 떨어져 있다. 전설로만 전해진 사랑 이야기다.‘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때는 벼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또 ‘어정 7월, 건들 8월, 동동 9월’이란 말도 있다. 모를 심고 난 뒤 7월에는 어정어정 거리고, 8월에는 농한기라 건들거리며, 9월에는 발을 동동 구른다는 표현이다.입추는 입춘에서 시작된 만물이 성장을 마감하는 시기가 되고, 동시에 추수를 위해 기운을 안으로 응축시키는 결실을 준비하는 때다. 유종유시(有終有始)가 연결되는 시점이 입추인 것이다. 유종(有終)은 유시(有始)를 위한 미래의 준비가 되며, 내일의 약속이다. 운이 바뀔 때 길흉이 크게 표출되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년)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맹추(孟秋)의 달, 즉 음력 7월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신(申) 방향을 가리킨다. 이 달의 방위는 서쪽이며, 신(申)은 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한다. 색깔은 흰색이며, 숫자로는 9다. 맛은 매운 맛이며, 냄새는 비린내다. 맹추가 시작될 때 대문으로 기운이 들어오기에 대문에서 제사를 드린다. 제물로 간(肝)을 먼저 올린다. 간(肝)은 오행에서 목(木)이다. 금(金)이 목(木)을 이기기에 제물로 사용한다.천자는 흰 옷을 입고, 흰 말을 타며, 흰 옥을 차고, 흰 기를 세운다. 입추는 가을이기에 금(金)의 기운이 왕성하므로 모든 복장, 의식, 행사 등에 금(金)의 색깔인 흰색을 사용한다. 가을의 정령(政令)을 내려 불효자와 불손한 자, 그리고 난폭한 자와 오만하고 교만한 자를 색출하여 벌함으로써 이 달의 기운에 보조를 맞춘다.입추가 드는 날에 천자는 삼공, 구경, 대부들을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서 가을을 맞이한다. 농사가 결실을 거두기 시작하니 천자는 햇곡식을 맛보게 되는데, 먼저 종묘에 올린 다음 먹는다. 관리들에게 명하여 세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하고, 제방을 완전하게 하고, 강둑을 잘 살펴 수해에 대비하게 한다. 또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감옥을 수리하게 하여 간사한 자를 잡아가두고, 재판을 신중히 하여 송사를 공평하게 한다.명리에서 입추(立秋)는 신월(申月)이며, 가을의 시작을 의미한다. 오행으로는 신(申)이며, 금(金)에 해당한다. 신(申)의 글자는 펼 신(伸)에서 파생되었다. 시간은 오후 4시경이고, 달로는 8월이니 ‘만물이 활짝 편다’(伸張)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특히 지지 신(申)은 천간에 경(庚)에 해당된다. 경금(庚金)을 숙살지기(肅殺之氣)라 한다. 숙살지기는 가을의 쌀쌀하고 살벌한 기운을 말한다. 살(殺)에서 풍기듯이 만물의 성장을 멈추게 된다. 그래서 가을 햇살은 뜨겁지만, 습기가 적어 덥다기보다 따갑다는 느낌이 더 든다. 이때 벼도 영글어가고, 열매를 더 단단하게 하고 골고루 성장시키는 것이다. 사실 가을 햇살이 여름 햇살보다 더 무서운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숙살지기의 기운 때문인지 이 시기부터 미뤄 왔던 사형을 집행한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입추에서 입춘 전까지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고, 입춘이 지나면 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사마천 ‘사기’ 혹리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왕온서라는 사람이 있었다. 젊은 시절 사람을 죽여 암매장하고,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 이후 관리가 되자, 도적을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도적을 잡아 뇌물을 준 자는 죄가 백가지라도 처벌하지 않았다. 승진하여 하내군 태수까지 오른다. 하내군 호족 가운데 간악한 집안을 파악하고, 한무제의 재가를 얻어 처형한 자의 피가 10여 리나 흘러내렸다고 한다.입춘이 되자 왕온서는 발을 구르며 이같이 탄식했다. “아! 겨울을 한 달만 늦출 수 있다면 족히 사안을 만족스럽게 처리할 수 있었을 터인데….” 살상을 통해 위세를 부리고, 백성을 아끼지 않은 것이 이와 같다. 결국 부정부패로 고발을 당하자 자진하였고, 오족(五族)이 처형됐다. 그의 집에는 재산이 천금이나 쌓여 있었다. 법령이 많이 세밀해질수록 도적이 많은 법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의 결과는 지금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2024-07-17

기림의 달

길섶이 고즈넉하다. 오늘만큼은 바람도 나무들의 참선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정갈한 마음을 준비하라고 함월산(含月山)에 흐르는 물소리가 마음을 씻고 간간이 날아오는 새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부처님 생전에 제자들과 하안거하며 수행했다는 기원정사의 숲이 이랬을까.어머니의 사십구재 막재에 이르러 나는 초재 때의 마음을 내려놓았다. 부모와 자식사이의 정이 아무리 질기다 해도 하늘이 내린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도 애틋함도 지나고 나니 모두 바람이었다. 연(緣)의 끈을 놓아야 어머니도 홀가분히 떠나리라는 생각에 애써 마음을 비우려 밤길을 떠난다. 갑사 치마저고리에 허리띠를 질끈 동여 맨 어머니가 하얀 고무신을 신고 휘적휘적 오르던 길이었다.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났다. 나라 잃은 설움과 차별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일본에서 돌아오던 현해탄의 차디찬 바람에 돌배기 첫 아들을 잃었다. 그 후 아들 셋을 더 잃고 나서야 ‘붙들이’라는 이름으로 딸을 살렸다. 또 다시 자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 부모님은 야심한 시간에 대웅전 부처님을 들어 올리고 방석을 바꾸기까지 했다. 나름의 방술(方術)까지 하며 자식을 지키고자했으니 어머니에게 자식보다 더 간절한 존재는 없었다.살다보면 한줄기 빛이 간절할 때가 한 두 번인가. 세속을 향해 은은히 빛을 발하는 삼신불(三身佛) 앞에 옷깃을 여민 어머니는 마음가짐부터 남달랐을 것이다. 남편이 징용의 후유증에 시달려 가정을 소홀히 했기에 어머니는 자식의 앞길도 평탄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가뜩이나 가난으로 먹고 살 길이 지난한데 전쟁으로 다시 한 번 마음까지 폐허가 된 시절이었다. 자식의 앞길을 밝힐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몸을 열 개라도 사르리란 생각에 어머니는 부처님 전에 촛불을 밝히지 않았을까.어머니는 내게 삼배(三拜) 올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어린 내가 번뇌를 알기나 했을까. 절을 따라하면서도 어머니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동자승이라도 있으면 함께 마당에서 뛰어놀 수 있을 텐데 심심해진 나는 어머니 곁을 살그머니 떠나 배롱나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대적광전을 바라보았다. 색동저고리 같은 단청은 바라볼수록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화려한 꽃살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꽃물이 밴 것 같아 내 옷을 바라보기도 했다.하얀 버선이 새카맣게 될 때까지 절은 끝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지고서야 삼천배가 끝이 났고 어머니의 갑사 저고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산사를 벗어날 즈음 둥근 달이 어머니와 나를 비추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걷던 길은 달빛으로 온통 하얀 꽃밭이었다. 배문경 수필가 열 달 동안 자식을 품었다가 세상에 내놓는 첫 심정은 경이였다. 자식과 탯줄로 이어진 운명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럴진데, 어머니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품고 얼마나 울었을까. 한겨울 언 땅에 자식을 묻고 와서 가슴을 얼마나 쥐어뜯었을까.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죄책감으로 먼저 간 자식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절을 하며 속울음을 삼켰으리라.나도 어느새 어머니가 되어 기림사(祇林寺)를 찾는다. 달이 차고 기울듯 인생도 부침을 거듭하며 희로애락의 꽃을 피운다. 나 또한 어머니의 길을 따르며 부처님 전에 엎디어보니 삶이란 가슴에서 피어나는 송이송이 아프고 시린 꽃을 불전에 올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비켜갈 수 없는 게 운명이라면 모두 꽃으로 피워볼 일이다.함월산(含月山)은 달을 품고 토함산(吐含山)은 달을 토한다. 주어진 만큼의 무게를 지고 가다가 마지막에 다 내려놓는 것이 삶이다. 어머니도 모든 짐을 홀가분하게 벗고 숱한 번뇌에서 해탈했을까. 어머니가 이제는 업장을 다 소멸하고 더 좋은 세상에서 환생하길 기원하며 절을 올린다.순례를 마치고 세속으로 돌아가는 길, 토함산이 달을 하늘로 밀어올린다. 온 천지가 여광처럼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난다. 달이 만상을 비추는 해인(海印)의 밤, 등에 비치는 달빛이 따뜻하다.

2024-07-17

장이 튼튼해야 뇌도 건강해진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우리 몸의 장과 뇌는 멀리 떨어져 있고 각자의 기능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동안의 많은 연구 결과는 장과 뇌는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장이 건강해야 뇌도 건강해지고 인체의 면역 시스템도 증가 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 몸은 세포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고 많은 세균들도 함께 몸에 살고 있다. 세균이라 하면 병을 일으키는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우리 인체 내의 세균들은 인체와 함께 공생을 하고 인체의 시스템과 유기적인 연결을 가지고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세균들을 유익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에 인체의 건강이 달려 있다고 할 수도 있다.이뿐만 아니라 장은 제2의 뇌라고도 불리며 장에는 척수의 5배 이상의 뉴런들이 모여 있다. 1억개 이상의 뉴런들이 모여서 뇌처럼 정보전달을 주고받고 있고 또 뇌와도 즉각적으로 상호 정보전달을 하고 있다. 뇌가 장으로 보내는 정보보다 장이 뇌로 보내는 정보가 훨씬 많다. 이 장이 건강하지 않으면 뇌로 가는 인체 건강의 정보 전달에 문제가 생기고 뇌에서도 잘못된 정보의 수용으로 인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장은 소화와 호르몬, 면역 및 신진대사를 조절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감정을 편안하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이렇게 장은 우리 인체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뇌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인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장을 튼튼하게 하게 위해선 장내 세균인 미생물을 건강하게 길러야 한다. 나의 내장을 밭이라 보고 어떻게 하면 그 속에 사는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 간단하다. 농사에 비유하면 깨끗한 물과 충분한 영양 공급 그리고 잡초를 제거하는 식으로 돌보면 된다. 장도 마찬가지로 깨끗한 음식을 몸에 넣고 영양이 다양하고 풍부한 식재료를 먹어야 한다. 음식물을 먹고 생긴 찌꺼기인 대변은 하루 한 두번 적당한 굵기로 배출을 해서 독성이 쌓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첫째 다양한 곡물이 든 잡곡밥이나 도정이 덜 된 현미밥을 꼭꼭 씹어 입에서 죽으로 만든 후 삼킨다. 둘째 다양한 채소를 반찬으로 역시 꼭꼭 씹어 입에서 최대한 죽으로 만든 후 삼킨다. 이렇게 하면 이미 입에서 어느 정도 소화가 된 음식물들이 넘어가기 때문에 소화기관과 장이 할 역할이 줄어들어 내장의 부담이 덜해지고 음식에서 만들어지는 독소의 배출이 최소화된다. 고기 대신 단백질은 콩류로 보충해도 좋다. 과일은 갈아서 먹지 말고 꼭꼭 씹어 먹는다.한의원에선 수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위장과 장에 좋은 처방들이 널려 있다. 잘 체하거나 소화가 잘 안된다 혹은 변비가 너무 심하거나 설사를 너무 자주 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방법과 함께 한의원에서 처방을 받은 후 꾸준히 복용하면 빠른 시일 내에 장의 건강을 회복 할 수 있다. 심하지 않은 경우 한달 내로 위장과 장이 정상화 되고 음식관리를 꾸준히 하면 평생 장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내 몸은 내 스스로가 지키고 관리를 해야 한다.

2024-07-17

방과 후 수업 참관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손주들의 방과 후 수업을 참관했다. 아이들이 수업을 파한 후 매일 방과 후 수업을 듣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 대신 할머니라도 가면 손주들이 좋아하겠지. 보내준 시간표를 보니 두 아이의 수업이 달라 남편과 함께 갔다. 손자의 바둑 수업엔 내가, 손녀의 방송댄스 수업엔 남편이 가기로 하고, 중간 휴식 시간 서로 연락을 해 교실을 바꾸기로 했다.안내된 교실로 들어가니 20명이 좀 넘는 1, 2학년 학생들이 있었다. 교실 뒤에 마련된 자그마한 학생용 의자에 앉았다. 쉼없는 선생님의 주의와 훈계에도 불구하고 수업은 쉬 안정되지 않았다. 주목하지 않고 옆자리의 친구와 떠드는 아이, 무슨 용무인지 몰라도 자꾸 선생님께 가는 아이, 번쩍 손을 들어 선생님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아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선생님께 가서 귓속말을 하는 아이 등등….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칠판의 바둑판을 이용해 수업을 계속하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짝끼리 대국하는 시간이 되자 교실은 비로소 조용해졌고 책상 사이로 다니는 선생님의 훈수가 가능해졌다. 후에 들으니 바둑 수업은 주의력이 없어 산만하고 집중력이 약한 아이들의 학부모가 신청한 경우가 많단다.그날 이후 금요일까지 모든 방과 후 수업 참관을 자처했다. 창의수학, 미술, 농구, 실험과학, 바이올린 등 모두 7과목의 수업을 참관했다. 아이들의 외할머니와 동행했다.대부분의 수업이 한 반 약 20명 전후의 학생들이었고, 10명 내외의 학부모, 주로 엄마들이 왔는데, 우리 손주들은 할머니라도 반겨했기에 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 조무래기들을 데리고도 수업을 이어가는 선생님들의 수고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참관기를 쓰면서 선생님의 노고에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그러나 그렇지 않은 수업도 있었다. 개인적 지도가 필수적인 악기 수업의 경우, 20명이 넘는 수업은 애당초 무리였다. 학생들의 개인차도 있을 건데다, 3개월을 넘게 수강한 학생과 1개월이 채 안된 학생들이 섞여있었다. 학생의 수업 빈도 노출이 다르면 개인차는 더 클 거였다. 학생마다 진도가 다르니 수업의 질이 좋을 리 없었고,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 역시 좋을 리 없을 건 불본 듯했다.며느리에게 참관기를 피드백해주면서 얘기를 나눴다. 방과 후 수업은 학교의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난 후에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공교육의 역할을 늘리고 사교육을 억제하는 정책이니 교육비는 과연 쌌다.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저학년에겐 비교적 선호되는 제도인가 보았다. 더구나 우리 손주들 같이 맞벌이 부모의 아이들이라면 방과 후의 학원 순례를 줄이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았다.문제는 수업의 질이다. 이왕지사 하는 거라면 수업의 질도 담보되면 더 좋지 않을까. 수업의 성격에 따라 학생 수를 조정하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아무리 실력있는 교사라도 한꺼번에 많은 학생을 상대하기엔 버거울 거였다. 참관 후 내린 결론 하나. 이번 여름방학부터 바이올린은 반드시 학원에 보내기로 하자.

2024-07-17

트럼프 will be back?

김준협 RISTI 미래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 미국 동부 시간 2024년 7월 13일 토요일 오후 펜실베니아 유세 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총격 습격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에도 의연하게 주먹을 불끈 쥐며 “Fight(싸워라)!”는 입 모양을 보이며 지지자들을 결집한다. 이에 유세 현장에 모인 지지자들이 한목소리로 “USA! USA!”를 연호한 진풍경을 연출하며 트럼프 후보는 경호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벗어난다.이처럼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발생한 직후 전 세계 언론 매체와 각국 정부에서도 트럼프 후보의 대선 승리를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이다. 때마침 상대편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논란과 트럼프 후보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어 더욱 이러한 대결 구도에 무게추가 기울어진 모습이다. 어느 후보 또는 정당을 지지하는지와 무관하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 후보가 대중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아직 미국 대선까지 100여 일이 남아 있지만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미국과 전 세계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이미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를 한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2017년 1월 대통령 취임식 당시 트럼프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America First!”일 것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 미국을 우선하겠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이 지금까지 전 세계의 문제에 관여하며 세계 경찰 역할을 하던 것을 중단하겠다는 의미였다.실제로 지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안보 문제에 있어서 다른 국가로의 개입을 극도로 자제한 바 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직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서도 미국으로부터 의구심을 갖게 되는 시기가 바로 지난 트럼프 행정부였으며, 이 시기 미국 측에서는 트럼프 임기 내내 한국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의 5배를 인상하라는 압박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잣대는 북대서양방위조약(NATO)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는데, NATO 소속 주요 국가들인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의 국가에 방위비 분담금을 늘려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NATO를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지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줄곧 유지하였다. 미국은 자신들에게 경제적으로 불리할 경우 우방국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관세와 같은 무역장벽 수단을 종종 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철강 등 분야에서 對미국 흑자를 줄곧 유지해 왔는데, 지난 2018년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수입 철강에 관세 25%를 부과하며 한국 철강업계를 곤혹스럽게 한 바 있다.트럼프 후보가 다가오는 11월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이와 같은 정책이 재현되리라는 것을 어렵지않게 예측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어쩌면 지난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미국 국내적으로는 불법 이민자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고, 안보 정책에 있어서는 동맹의 가치보다는 적자생존의 가치가 앞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유무역의 가치보다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으로 선회할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우선 안보적으로는 한미동맹의 고리가 약해질 우려가 있다. 다시금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에 난항을 겪게 되고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각에서 제기하는 자체 핵무장 논의가 힘을 얻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 국가가 핵무장을 하면 주변국들도 핵무장을 하게 되는 “핵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지금까지는 금기시되어 오던 핵무장 논의에 힘이 실리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는 2차전지, 재생에너지와 같은 탄소중립 관련 산업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미 2차전지 분야의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 속에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기존 내연기관과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다시금 높아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서 전기자동차와 2차전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곳에게는 그야말로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물론 이 모든 것이 지금으로써는 가정에 불과하다. 미국 대선까지는 아직 100일이 넘게 남아 있다. 그리고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국제정세가 생각보다는 크게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부정적으로 예상하게 되는 이유는, 이미 우리 모두 트럼프 행정부를 한 번 경험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이 명쾌하게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어쩌면 크게 변하는 것이 없을지 모르겠다. 이미 태초부터 국가 간 관계라는 것, 정치인의 정책 결정이라는 것이 언제라도 순수하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최소한 이상적으로나마 ‘세계 평화’와 같은 그럴 듯한 명분을 전면에 내세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소위 쿨하게 “그런 것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2024-07-16

‘북한 이탈주민의 날’ 제정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장마의 영향으로 중남부 곳곳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어 시름을 겪고 있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주말쯤 다시 비를 뿌릴 예보라니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 또는 천재지변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많아도, 아무쪼록 큰 피해 없이 순탄하고 무난한 삶이 이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슬픔과 어려움은 그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에서는 풍파나 시련의 엄습을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가급적이면 피해를 막고 아픔을 줄이는 지혜와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의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의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不經一事 不長一 智)는 가르침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습득하며 기억과 기록으로 남기는 가운데 또 다른 지혜와 슬기로움이 자라날 것이다. 그렇기에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세월이 주야장천 흐르면 삶의 자취며 생각의 잔상까지도 시간의 모래밭에 묻히고 스러지며 점차 잊혀지게 되겠지만, 무엇인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억으로 뇌리에 채워 놓으면 쉽사리 소멸되거나 잊혀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아름다운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해두고 기억을 하며 마음 속에 내내 간직하게 된다. 그것을 달리 말해 기념(紀念)이라고도 할 수 있다.무엇인가를 잊지 않고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생일이나 졸업, 입사를 기념하고 결혼이나 성공, 퇴임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뜻있고 소중하며 가슴에 되새겨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 할 사연을 인지하고 축원하며 기억해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식을 통해 사람들은 더욱 친밀해지고 깊어지며, 표현이나 기록을 통해 감동과 감사의 정을 격의없이 나누기도 할 것이다.그러한 측면에서 정부가 지난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제정하고, 기념식과 다양한 부대 행사를 개최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며 환영할 일로 여겨진다. 철천지원수 같은 북녘땅에서의 질곡을 벗어나 꿈에서나마 그리던 자유의 땅을 밟았지만, 새로운 터전에서의 정착생활이 녹록지 않고 제도적인 지원책 등의 미흡함으로 처우가 미약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한이탈주민의 포용과 정착지원을 위해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주문함에 따라 관련규정의 제정 추진으로 마침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이다.따라서 매년 7월 14일은 통일부 주관으로 북한이탈주민을 포용하고 권익을 향상시키며, 남북 주민 간 통합문화를 형성해 통일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날로 기념할 계획이라 한다. 이날을 통해 탈북 과정에서 희생된 북한이탈주민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물의 조성과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롭고 번영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비전을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07-16

일과 현대인의 삶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일(work)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체적 또는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활동이다. 기업에서 보면, 고객이 가치를 인증해서 돈을 지불 할 수 있는 사람의 행위와 설비의 동작을 말한다.현대인의 삶은 일이 곧 생존이기에 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순리다. 일과 학습 속에 개인의 성장이 있고 자아실현과 사회적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현대인은 일을 선택 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 미래의 내 꿈과 연결되는 것을 선택하면 좋은 삶으로 가는 길이 된다.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치 있고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일은 성공과 실패로 나뉜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차이는 크지만 과정은 작은 차이에서 결정된다. 일에는 애정이 있어야 하고 테크닉의 문제보다 태도가 좌우한다. 일은 제대로 해야 낭비가 없다. 사소한 일에서 결정적인 실수가 나온다. 옛 성현들은 ‘눈은 큰 곳을 바라보되 손은 작은 곳에 두라’ 라고 말했다. 1퍼센트 실수는 100퍼센트의 실패를 가져온다. 생산자가 미처 해내지 못한 1퍼센트는 소비자의 손에서 100퍼센트 불합격으로 변한다.일은 시간의 길이로, 땀의 양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창의적인 지혜로 고객이 원하는 가치 있는 일을 창출하는 것이다. 한 농촌에서 두 농부가 벼를 베었다. 한 사람은 허리 펴는 법이 없이 열심히 베었다. 다른 한 사람은 중간에 논두렁에 앉아 노래까지 하면서 쉬기도 했다. 쉬면서 일 한 농부가 베어 놓은 볏단이 많았다. 알고 보니 쉬면서 낫을 갈아 지혜롭게 대응한 것이다.일의 성공 조건은 첫째, 명확한 목표 설정이다. 목표가 분명해야 일을 효과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 목표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해야 한다. 둘째, 효율적인 계획수립이다. 자원 배분, 시간 관리, 우선 순위 등이다. 셋째, 적절한 자원이다. 인적, 물적, 시간적 자원이 확보되어야 한다. 넷째, 능력과 기술이다. 일을 수행하기 위한 관련 지식과 기술, 경험이 필요하다. 다섯째, 동기부여이다.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 할 수 있는 내적, 외적 동기가 필요하다. 여섯째, 문제해결능력이다.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일곱째, 평가와 피드백이다. 일의 진행 상황을 평가와 피드백 하며 목표 달성하도록 조정해야 한다.직장인의 행복한 삶은 기업이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개인의 성장 비전을 제시해주고 업무 목표와 기대 사항을 설정하여 역할과 책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소통과 협력의 긍정 조직문화를 열어 창의성을 십분 발휘 할 수 있게 한다. 성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적절한 보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시대 흐름에 맞게 시간 탄력근무제 등 유연한 근무 환경과 개인의 삶과 업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갖출 수 있게 한다. 일의 보람과 직원이 성장하는 기업문화는 회사 발전은 물론 이직률을 줄이고 일류 기업이 되는 길이다.

2024-07-16

종부세 개편론은 ‘수도권 부자표’ 의식한 것

심충택 논설위원 울릉군의회는 최근 정치권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 논의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국세지만, 지방자치단체에 전액 교부되는 종부세는 그동안 울릉군 같은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시·군엔 재정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울릉군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종부세 감면조치에 따라 올해 부동산 교부세가 98억원 감액돼 각종 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전국의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는 대부분 울릉군과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 종부세 감면조치로 국가재정수입(4조9609억 원)이 전해에 비해 2조6068억원이 감소해 자치단체 모두 재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종부세는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더 부과해 비생산적인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한다는 취지로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시행됐다. 현재 공시가격 9억원(1가구 1주택자는 12억원)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과된다.지난주에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종부세와 관련, “불필요하게 과도한 갈등과 저항을 만들어 낸 측면이 있다. 개편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혀, 민주당 전당대회의 쟁점이 됐다.당 원로들이 “종부세를 근본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종부세 개편론은 지난달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한 반면 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요소가 상당히 있어 폐지 내지는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며 불을 지폈다.이 전 대표의 종부세에 대한 입장변화는 수도권 표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부세에 민감한 수도권 화이트칼라 고소득층을 민주당 지지쪽으로 흡수하면 차기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서울의 중위 아파트 가격이 12억을 넘어가면서 종부세는 수도권 선거의 최대변수로 자리잡았다.종부세는 수도권에서 세금을 걷어 비수도권으로 분배하는 기능을 한다. 지난해 종부세 납부자 상위 1%(4951명)가 낸 금액은 2조8824억원이다. 대부분 수도권 거주자들이다. 전체 종부세 결정세액 4조1951억원의 68.7%에 해당한다. 종부세가 폐지되면 자산이 많은 소수 상위 계층에 감세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종부세 세수 펑크’는 지방자치단체에 큰 충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종부세가 경제활동을 왜곡하면서도 세수 효과는 크지 않은 대표적 세금”이라고 했지만, 뭘 모르고 한 소리다. 종부세는 어려운 지방 재정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오죽하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부세 개편은 지방세수로 활용되므로 신중해야 한다”며 대통령실 결정에 반기를 들었겠는가.현재 부동산교부세는 살림이 빠듯한 시·군일수록 더 많이 배분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앞으로 종부세를 더 완화하거나 폐지한다면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자체의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가난한 자치단체에 대한 세수 보전 대책 없는 종부세 개편은 큰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202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