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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와 암살(暗殺)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시도가 일파만파다. 미 대선의 변곡점이 됐다는 분석 속에 미 대선의 흐름에 세계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미국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에 대한 암살시도는 모두 15차례 있었다 한다. 미 대통령에 대한 최초의 암살시도는 1835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 당시 범인은 정신 이상자로 판명됐으나 이후 암살로 4명의 대통령이 희생된다.1865년 링컨 대통령처럼 정치적 반대가 암살의 주 목적이나 케네디 대통령처럼 암살시도의 목적이 의문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총격한 범인은 20대 청년으로 밝혀졌지만 경호원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됨으로써 암살 동기는 미궁에 빠져 있다.중요 인사에 대한 암살은 적은 희생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어 오랜 역사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적 목적으로 보복을 시도한 경우도 있지만 특정집단에 의한 조직적 암살이 대부분이다.그래서 정치 권력자들은 이에 대한 방어에 각종 수단을 총동원했다. 일본에서는 방음이 안되는 미닫이 문을 만들고 잠잘 때도 발자국 소리를 들릴 수 있는 건축을 고안했다. 중국의 자금성은 암살자가 나무에 숨지 못하게 주변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고 한다.총선을 앞두고 한국서도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와 배현진 의원에 대한 폭력시도가 있었다. 총 대신 칼과 돌멩이가 동원됐을뿐 정치인의 목숨을 노렸다는 점에서 암살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정치적 테러가 난무하는 배경에는 팬덤과 같은 극단주의 정치 성향이 자리한다. 대화와 협력이 없어지고 상대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는 증오정치가 판을 치는 한 암살테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16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까마중과 헛기둥

무릎까지 자란 까마중 무리를 헤치며 나아갔다. 까마중은 좁고 깊은 골을 따라 양쪽으로 나 있었다. 골 바닥은 물기가 많아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진흙이 신발 바닥에 붙거나 뒤로 튀었다. 까마중 열매가 식용이라는 이야기를 누가 해줬더라? 나는 눈으로 최의 장딴지를 쫒으며 까마중 이야기를 누가 해줬는지, 자신이 까마중의 이름을 어찌 알고 있는지 떠올렸지만 어렴풋한 기억조차 없었다. 나는 재채기를 하려다 못한 것처럼 답답해져 도리질을 했다.“얼마나 더 가야하는 거지?”최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길잡이를 자처했던 박이 급한 일이 생겼다며 산에서 내려간 뒤로 우리는 기댈 곳이 없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는 지도의 바깥에 있었다.산행 이튿날 아침 박이 지름길을 안다, 지름길로 가자고 했을 때 아무도 말리거나 거부하지 않은 탓이었다. 박을 믿은 탓이기도 했다. 그때 물었어야 했다. 왜 지름길로 가야 하는지?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산을 즐기러 온 것인데 지름길로 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왜 서둘러야 하는지? 우리는 묻지 않았다. 그저 지름길이라는 단어에 홀린 듯 그래? 지름길이 있다면 그리로 가야지, 했다.박은 길을 만드는 사람처럼 걸어갔다. 두 시간, 세 시간 동안 마주 오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자 우리는 박을 탓하기 시작했다. 박은 우리가 번갈아가며 얼마나 남았느냐? 길을 아는 것은 맞느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냐를 물어대자 지도를 꺼내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와 기존의 등산로, 그리고 산장이 있는 곳, 산장까지 가는 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던 중요한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며 너희들끼리 다녀오라 말을 남기고는 내려가 버렸다. 차라리 욕을 하거나 화를 내었다면 맞서거나 달래거나 했을 텐데, 박은 차분히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 뒤 돌아섰다. 되돌아가는 박을 멍하니 보던 우리는 박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저 자식 혼자 내려간 거야?”우리는 잊고 있었다. 녀석의 별명이 ‘나안해’였다는 것을.“그러니까, 지금 저 녀석이 ‘나안해’ 한 거야? 그런 거지? 개새끼.”한동안 우리는 없는 박을 놓고 욕을 했다. 하지만 이내 의미 없는 일이란 걸 알아차렸다. 돌아갈지, 앞으로 갈지. 선택해야 했다.“아직 오전이니까 밤이 되려면 멀었잖아. 우리가 빈 몸으로 온 것도 아니고 산행 준비해서 왔는데, 일단 가보자고.”아침에 출발했던 곳까지 되돌아가서 그곳에서부터 정식 등산로를 따라가자는 의견과 그렇게 되면 날 저물기 전에 다음 산장에 도착하기 힘들 것이고 야간 산행을 해야 하는데 야간 산행이야말로 위험하니 가까운 등산로를 찾아보자는 의견으로 나뉘었지만 우리는 의외로 침착했고 서로를 존중했다. 박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보였다. 무엇이 좀 더 합리적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간에 쫒기지 않는다는 것, 함께 하는 산행이 목적이라는 것에 동의한 우리는 되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여차하면 지난 밤 묵었던 산장에서 하루를 더 보낸 뒤 다음날 출발해도 된다는 것까지. 어설프고 고집 센, 속 좁은 길잡이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미 뭔가를 보여준 듯한 뿌듯함이 가슴속을 채웠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옅은 홍조를 띤 채, 가끔은 노래를 부르고 가끔은 끝말잇기를 하며. 한 시간여가 지났을 즈음, 우리는 조용해졌다. 앞 사람의 장딴지만 내려다보며. 이따금씩 말을 했는데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여기가 맞아? 이것 본 적 있어? 처음 등산로를 벗어나 지름길로 들어선 지점까지 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우리는 오는 동안 보았던 것들을 기억해내며 걸었다. 처음에는 모두의 기억이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름길이라는 것이 애초에 길이 아니었던 탓에 그 흔한 산악회 리본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까마중을 보았다.골을 따라 양쪽으로 자란 까마중 무리 뒤쪽으로 너른 바위가 보였다.“저기서 좀 쉬었다 가자. 방향도 정하고.”아직 해가 지기에는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산장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당황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우리는 무리가 주는 평온함 속에 있었다. 박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신호가 간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했다. 언제든지 119에 전화하면 되는 것이니. 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김은 영상에서 본 오지에서 살아남는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는 박의 지난 ‘나안해’ 만행을 하나씩 짚어가며 늘어놓았고 최는 미국 주식시장과 한국 주식시장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녀석들의 이야기를 흘려들었다. 아니, 흘려들렸다. 까마중 무리를 살펴보느라. 내가 아는 무리들은 항상 앞서거나 이끄는 존재가 있는데, 하다못해 박 같은 놈이라도 생기는 법인데, 까마중 무리엔 그런 놈들은 없을 것 같았다. 그저 똑같은 흰 꽃과 똑같은 까만 열매를 달고 있을 뿐.“이 근처가 밭이었나 보다. 화전민이나 뭐, 그런”최가 꺼낸 삼성전자 주가 이야기를 끊으며 내가 말했다.“그걸 어떻게 알아?”이가 물었다.“저기 보이는 녀석들이 까마중이거든, 물론 산에서 자랄 수도 있기는 한데 주로 밭에서 자라는 녀석들이야. 게다가 1년생이고. 하나도 아니고 저렇게 무리지은 것을 보면 대대로 여기서 살아온 것 같아서 말이야. 좀 오래 전에 화전민이나 그런 사람들의 밭이었다가 지금은 숲이 된.”“그렇다면 길이 연결된 곳이겠네. 흔적이 있을 수도 있고. 캬, 우리가 잘 찾아왔네.”우리는 주위를 살펴보기로 했다. 길을 찾는 목적도 있었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오래 전에 누군가 살았던 곳이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최가 모두를 불렀다.“여기 뭐가 있어.”군데군데 파이고 검게 썩은 나무기둥과 돌멩이가 온전히 몸을 드러낸 흙벽, 부서지고 구멍이 난 석면 슬레이트 지붕. 예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창고 같았다. 반쯤 부서진 문 앞, 풀 사이로 바스라진 석면 슬레이트 조각들이 제법 보였다. 기둥이었을 것 같은 통나무도 몇.“야, 기둥이 쓰러졌는데도 건물은 그대로다 그지? 어설프기는 해도 옛날에 지은 것들은 튼튼하단 말이야.”이가 통나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발이 닿는 곳마다 부스러기가 떨어졌다.“저건 헛기둥이야, 헛기둥.”김이 말했다.“기둥은 기둥인데 기둥이 아니야. 멋을 부리거나 부수적인 용도로 쓴 거지. 없어도 건물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박가놈 같은 거네. 누군가 말했고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창고 뒤편으로 어슴푸레 보이는 길을 보았다. 풀로 덮여있기는 했지만 나무들 사이로 이어지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는 너비를 가진, 예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걸어 다녔을. 아카시 나무들이 침범하지 못했고 소나무 뿌리들이 조금씩 드러나 있는 것이 분명한 길이었다. 어디론가 이어져있을 길이었다.우리는 어디론가 이어져있을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이라 믿고 걷기 시작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걸으면서 점점 더 확신이 생겼다. 풀이 덜 자란 길바닥이 보였고 간혹 계단처럼 보이는 너른 돌판도 보였다. 김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따라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처럼 앞뒤로 팔을 흔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나뭇가지에 묶인 빨간 산악회 리본을 발견했다. 노란 리본, 파란 리본이 뒤를 이었다. 숲을 벗어나 등산로에 발을 내디뎠다. 마주 오는 등산객이 보였고 등산객은 자신이 온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오늘 가려했던 산장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해 저물기 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고. 우리는 돌아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원래의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우리는 까마중 같은 녀석들이었다. 박이 없어도, 헛기둥이 없어도, 제 갈길 알아서 잘 가는.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7-16

핵폭탄이 만들어진 날의 ‘한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앞으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날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죽음으로 불릴 것이며, 운명은 나를 세상의 파괴자로 만들었다.”지금으로부터 79년 전 오늘인 1945년 7월 16일. 세계 제2차대전을 한시바삐 끝내고 싶었던 미국이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진행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 인력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 ~ 1967)가 인류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Trinity)’를 지켜본 후 내놓은 한탄이다.과학은 인류의 행복과 편의 확장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건 당위. 그러나, 세상일이란 당위가 아닌 현실적 조건에 의해 휘둘리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핵폭탄 또는, 원자폭탄이라 불리는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도 그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됐다.실상 인간은 수만 년 전부터 분쟁과 다툼을 이어왔다. 민족과 종교, 인종과 욕망 따위의 이유로 죽고 죽이며 제 영역을 넓히려 한 것. 하지만, 핵폭탄의 탄생은 이전 시대 전쟁과 이후의 전쟁을 전혀 다른 양상으로 만들어버렸다.화살을 쏘거나 칼을 휘둘러 한두 명을 죽이는 전투가 아닌, 투하되는 폭탄 하나로 한꺼번에 1백만 명 이상을 불태워 버리는 시대로 전이시킨 것이다. 이것은 인류사의 발전인가? 퇴화인가?전쟁 관련 기술의 발달은 이제 탄두를 매단 로켓이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너가 1만km 밖의 사람들 수백 만 명을 죽일 수 있는 핵폭탄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러시아는 그걸로 우크라이나 여자와 아이들을 위협하고, 북한은 그걸 미국과의 정치적 협상 수단으로 과시한다.‘죽음’과 ‘세상의 파괴자’를 언급한 오펜하이머의 한탄이 지금도 많은 이들을 겁박 중이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15

북·러 밀착과 우리의 대응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최근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양국은 군사동맹에 준하는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을 체결했을 뿐만 아니라, 푸틴(V. Putin)은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고, 군사·기술협력을 천명함으로써 유엔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되면서 이루어진 북·러 밀착은 한국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다. 북·중 혈맹에다가 러시아의 군사협력까지 확보한 김정은은 이른바 “남조선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를 가속화할 것이다. 북·중·러 3국은 모두 핵보유국인데, 우리는 핵 없이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만 쳐다보고 있다. 한미동맹의 재정비, 핵개발 잠재력 확보, 독자 핵무장 등보다 실효성 있는 안보전략이 요구되고 있는 까닭이다.철학자 스펜서(H. Spencer)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환경에 적응하는 종(species)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종은 도태되어 사라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생존하려는 자는 환경의 변화를 직시하고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힘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가는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를 위한 현실주의적 인식이다. 현실주의는 이상주의가 주장하는 ‘대화를 통한 평화’를 신뢰하지 않으며,‘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한다. 지난 정부의 이상주의적 대북정책은 비핵화에 실패함으로써 북핵을 고도화시켰을 뿐이다. ‘핵무기는 비대칭전력’이라는 점에서 ‘핵은 핵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이 절실하다.이를 위해서는 장·단기 핵전략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그 핵심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실효성을 제고하면서 핵개발 잠재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현재의 ‘핵 확장억제전략’보다 진전된 ‘전술핵 재배치’ 또는 ‘NATO식 핵공유’와 같은 방식으로 핵우산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미국 의회와 학계에서도 제안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외교 여하에 따라서는 충분히 성과를 거둘 수 있다.한편 장기 전략으로서는 독자 핵무장을 위한 ‘핵개발 잠재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당장 핵무장을 위해 NPT를 탈퇴한다면 유엔제재로 우리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국제제재를 피하면서도 한미동맹이 작동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플랜 B가 필요하다. 그것은 일본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장 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제한을 받고 있는 우라늄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권한의 확보가 관건이므로 지속적인 대미외교협상이 중요하다.이러한 외교안보전략이 성공하려면 정쟁으로 날 새는 정치권의 각성이 시급하다. 내분(內紛)은 외침(外侵)을 초래하고, 분열된 나라는 통합된 안보를 추진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권력투쟁으로 병든 소아(小我)를 버리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대의(大義)에 따라야 한다.

2024-07-15

안전 주행 위한 충전형 기기 이용 수칙 지키기

심학수포항북부소방서장 최근 경기도 화성의 한 배터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다.그로 인해 배터리 등 충전기기의 화재위험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배터리 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진 상태이다.전동킥보드, 전기차 등 배터리를 동력으로 하는 이동 수단 역시 그 이용자와 사용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화재 발생 또한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에 화재 예방을 위해 충전기기의 안전한 사용 방법에 대한 이용자들의 숙지가 필요하다.전동킥보드와 전기차의 동력원인 리튬이온의 배터리는 화재 시 가연성 가스가 폭발적으로 연소하기 때문에 초기진화도 어렵고 순간적인 폭발은 그 위험성이 크며 이에 따른 화재 발생은 주변 가연물에 연쇄적으로 옮겨 붙어 대형화재로 번질 위험성도 크다.먼저 화재는 발생하기 전 예방 활동을 해야 한다. 그중 가장 첫 번째로 할 일은 이용자가 기기와 충전시설 이용의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이다.전동킥보드와 전기차의 화재 예방 안전 수칙 첫째, 충전소 주변은 고압의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담뱃재는 큰 화재를 발생시키기에 근처에서의 흡연을 금지해야 한다.둘째, 젖은 손이나 물기 있는 상태에서 충전을 해서는 안되며, 전동킥보드는 우천 시 사용을 자제하고 실내 충전소를 이용하자.셋째, 단시간에 많은 전기를 투입하여 화재의 위험이 큰 급속충전보다 완속 충전을 이용하고 충전이 완료되면 장시간 방치하지 말고 가급적 짧은 시간 내 코드를 분리하자.넷째, 전기차에는 차량용 소화기를 비치하고, 전동킥보드를 비치하거나 충전하는 곳 주위에도 소화기를 비치해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 초기 진압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두자.안전을 소홀히 하면 언제든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화재, 예방이 최우선임을 기억하고 충전형 기기의 이용 수칙을 잘 지켜 안전한 주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07-15

삶이라는 한 알의 구슬

요즘 비즈발 만들기에 푹 빠졌다. 최근 들어 만나는 지인들에게 새로운 비즈 만들기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면 모두 비즈발이 대체 무엇이냐고 물어온다. ‘옛날 주택 현관문이나 가게 출입구에 많이 걸려 있던 것 있잖아요!’ 라고 말하면 모두가 그제야 알아챈다.비즈발은 햇빛 차단용 또는 통풍 그리고 가림막 형태로 많이 사용된다. 문이나 창문을 가릴 정도의 크기라 어느 정도 사이즈가 있지만, 요즘 내가 푹 빠진 비즈발은 창문가나 벽에 거는 손바닥 남짓한 크기의 비즈발이다.한참 유행중인 비즈발 만들기는 이렇게 작은 사이즈 크기로 원하는 그림을 도안으로 그려 만드는 캐릭터 비즈발이 트렌드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도안으로 그려, 형형색색의 구슬을 사용하여 미니 비즈발을 만드는 것이다.만드는 방법 또한 쉽다. 늘어나지 않는 실과 색색의 구슬들만 있으면 충분하다. 실 끝이 풀리지 않도록 잘 묶어준 뒤 그림을 그린 도안을 따라 구슬을 색에 맞춰 끼워주면 된다. 한 줄씩 완성된 비즈들을 모아보면 꽤 그럴듯한 비즈발이 완성된다. 실 한 줄에 구슬을 차례대로 꿰는 단순 작업 반복임에도 묘하게 중독되는 것은 손을 움직이면서 머릿속의 잡생각을 비우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특성 덕분일 것이다.포털 사이트 검색어 트렌드에 비즈발을 검색했을 경우 지난 4월 중순부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7월인 현재에는 약 2배가량 증가된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에 비즈발 만들기 키워드를 검색했을 경우 가장 많은 콘텐츠의 조회수는 87만 회를 기록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의 경우엔 #비즈발 해시태그가 포함된 콘텐츠 수가 약 1000개 정도 노출되어 있을 정도다.가만 보면 비즈 꿰기는 참 재밌다. 구슬 하나라도 잘못 꿰게 되면 전체적인 그림에 묘하게 티가 나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집중하고 보면 어디에 구슬이 잘못 꿰어졌는지 표가 나긴 하지만 멀리서 본다면 그저 하나의 근사한 작품으로 보인다. 여기서, 지난 밤 또다시 돌려보았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속의 스터츠 박사의 말을 떠올려 본다.삶의 고통과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이 고통 속에서 인간이 해볼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이 의지를 갖기 위해서 해볼 수 있는 것은 ‘진주 목걸이 기법’이다. 여기서 진주는 행동이고 목걸이는 행동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행위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차려 먹는 행위도 진주알 하나이고, 내 삶에 깊게 각인될만한 업적 하나도 진주알 하나다. 결론은 진주알에는 더 훌륭하거나 반대로 훌륭하지 않다는 가치가 없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진주알로 대입해 그저 계속 행동하며 나아가는 것이다.진주와 비슷한 모양새의 비즈는 어떤가. 비즈알을 명주실에 꿸 때의 집중력, 하나하나 꿰어갈 때의 느릿해지는 호흡과 비즈알끼리 부딪혀 나는 귀를 자극하는 소리까지 비즈알 꿰기는 삶의 진주 목걸이를 만드는 기법과 동일한 면이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비즈의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있는 반면 어딘가 깨져있거나 금이 가 있거나 또는 구멍이 너무 작아 실에 잘 꿰어지지 않는 구슬도 있다. 진주알에 대입했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루는 엉망진창 일수도, 또 다른 하루는 삶의 가장 큰 기뻤던 하루로 남아있을 수 있겠으나 ‘나의 일상’이라는 본질엔 변함이 없다. 그러니 유독 그 하루가 일이 풀리지 않는다 한들, 또는 실패의 연속인 나날이라며 주눅 들어 있든 일상은 나의 삶이므로. 멋진 비즈발이라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삶은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지, 성공과 실패라는 결론이 중요하지 않으므로.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비즈를 실에 꿰어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느새 멋진 비즈발이 완성되어 있다. 세상에, 이렇게나 빨리 내 손으로 이걸 만들었다고? 벽에 걸어 두었더니 여름의 토마토가 그려진 작품이 하나 완성되었다.물론 가까이서 보면 작은 티끌 하나로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부분이 있고, 본드 자국도 난무하지만 뭐 어떤가. 서툴지만 사랑스럽고 때론 너무 진지해서 픽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이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니 오늘도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비즈를 뒤적이며 하나의 작품을 준비해본다. 평소 같았다면 불만투성이인 여름의 초입일 테지만, 좋아하는 일을 손으로 하며 그럭저럭 여름을 잘 나볼 마음의 준비를 해본다.

2024-07-15

기억의 낚시, 망각의 낚시

“Some dance to remember, Some dance to forget” 밴드 Eagles(이글스)의 ‘Hotel California(호텔 캘리포니아)’의 한 소절이다. 어떤 춤은 기억하기 위해 추고, 또 어떤 춤은 잊기 위해 춘다니, 이렇게 시적인 노랫말이 또 있을까? 때때로 노래는 시보다 더 위대한 시가 된다. 물론 음악보다 더 위대한 음악이 되는 시도 있다. 나는 낚시할 때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저 대목에서 가사를 바꿔 부른다. “Some fishing to remember, Some fishing to forget”이라고.기억하기 위해 하는 낚시가 있고, 잊기 위해 하는 낚시가 있다. 또 한 번 장마가 오고, 단풍이 들고, 첫눈이 내리고, 다시 꽃이 피고, 매미가 울고, 얼음이 얼고, 계절이 돌아오고 돌아올수록 사랑하던 이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간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추억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삶이라는 지독한 경주는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우리를 채찍질한다. 그나마 낚시가 나로 하여금 그 각박한 트랙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낚시를 통해 나는 잠시라도 힘겨운 세상살이를 잊는다. 그게 잊기 위한 낚시다.복잡한 세상살이를 잊는 순간, 그동안 기억 구석에 방치됐던 풍경들이 하나 둘 뿌연 먼지를 털어낸다. 물론 낚시가 잘 되면 낚시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할 여유도 없다. 입질은 없는데 석양은 환장하도록 아름답게 저물고, 찌는 말뚝인데 케미라이트 불빛이 강물 위를 은하수처럼 흐를 때가 문제다. 찌 대신 온갖 추억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이제 젊은 시절 내가 사랑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제시마저도. 하지만 여전히 난 그들과 함께 있다. 물론 이제 너무 늙어 훌륭한 낚시꾼이 될 수는 없지만 난 지금도 이 강가에서 홀로 낚시를 한다. 이렇게 날이 저물어가는 계곡에 혼자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추억 속으로 스며든다. 빅블랙풋 강의 소리와 4박자의 리듬, 그리고 송어가 뛰어오를 거란 기대감… 결국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흐르는 강물처럼.”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주인공 노먼 맥클레인의 독백이다. 팔순의 노조사는 강물에 몸을 담근 채 낚시 매듭을 묶으며 젊은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목사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 폴, 마을 축제에서 만나 결혼해 일생을 함께 산 아내 제시를 추억한다. 모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강물만 남았다. 평생의 추억이 흐르는 빅블랙풋 강에서 낚시를 할 때면 강물 소리와 바람, 무지개송어 입질, 후회, 상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음성과 눈빛이 하나로 합쳐져 영혼 속으로 스며든다. 노인은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낚시를 한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그러나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고. 내가 살아 있는 한, 살아서 기억하는 한 내가 사랑했던 이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오직 잊기 위해 하는 낚시도 있다. 그런데 이 낚시는 정말 어렵다. 오래 사랑한 연인과 헤어지고서 그녀를 잊기 위해 뙤약볕 쏟아지는 갯바위에 올랐다. 발밑으로 파도가 부서지고, 거품 되어 사라지는 하얀 포말이 마치 부질없는 인연처럼 느껴졌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루어를 던지고 또 던졌다. 그런데 젠장, 입질이라도 좀 있어야 잊을 게 아닌가? 깻잎만한 광어, 손바닥만 한 우럭조차 물지 않으니 빈 바늘에 딸려 오는 건 오직 그녀 얼굴뿐이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해진다. 낚시를 하면 마음이 정리되기는커녕 더 심란해진다.그래서 어느 시인은 “어느 날인가는 앞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오래 당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처럼 마음에서만 사는 아득한 것들은 또 어떻게 저 별의 시간을 건너가게 되는지”(강경보, ‘우주 물고기’)라고 묻기도 한다. “마음에서만 사는 아득한 것들”은 결코 저 별로 건너가지 못하고 이 별에 머문다. 갯바위, 좌대, 갑판, 강물 속, 방파제가 낚시꾼의 별이다.

2024-07-15

민경탁 시인의 “다음 김천 장날 또 바여”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경상북도 지역 방언은 의문형어미를 중심으로 3개 권역으로 나누어진다.옛날 교통이 덜 발달되었을 때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 우측과 강 좌측으로 나누고, 또 태백산맥 끝자락이 경남으로 휘어지는 큰 산자락이 나뉘듯 3개 방언권이 나누어진다. 안동을 중심으로 경북북부권은 ‘-니껴’권이고 대구경주권은 ‘-능교’(-능게)권이다. 낙동강 우측 선산에서 김천, 의성 일부지역은 ‘-여’권으로 나누어진다. 경북은 경주와 상주가 경상좌우도로 나눠지기 이전 고대 신라의 웅혼한 고토여서 오늘날 한국어의 기반이자 뿌리를 이룬 지역이다.경북방언은 악센트가 높고, 낮고 또 소리의 길이와 짧음이 아주 또렷하고 말씨는 왁자지껄한 느낌을 주어 투박하지만 그 자체에 리듬을 가지고 있다. 소리문법을 알아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지역보다 모음이 아주 단촐하다. 단모음 10개가 아닌 6개로 족하다. 모음이 적어도 악센트와 음장이 단어의 변별력을 높여주기에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가가 가가가”, “운제요 나아 몬가니더”라는 말을 서울 사람들은 절대로 흉내 내지 못하며 그 의미도 읽을 수 없다. 경상도 깊은 산중의 오묘하고 심오한 말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오랜 전통과 역사가 악센트에 실려 있다. 또 말 수가 적은 경상도 사람들의 심성이 담겨 있다.김천 출신 민경탁 시인이 사통팔달 경북 김천 시골 장터의 인심과 인정을 소복하게 시집에 담았다. “닷새마다 지례 5개 면에서/푸성귀, 과일, 알곡이 모여 듭니다/증산의 송이버섯, 대덕의 잡곡들/구성 양파 조마 감자 지례 마늘들/구름 타고 담쑥담쑥 모여 듭니다/장바닥에 엉기정기 들면/고등어 갈치는 부산에서/갈치젓은 제주, 목포에서/생굴은 통영에서, 멸치는 삼천포에서/새우젓은 추자도, 강화도에서/벌써 들어와 있습니다/“머라 캐여” “안 비싸여” “고마바여”/호박 같은 인심과 산꿀 같은 인정 버무려/지폐와 맞바꾸다 보면 해거름이 오죠/“또 다음 장날 바여”/파장하고 탁배기 한잔하면, 노을이 찾아옵니다/이때 우린 생선 사고 약 사 가지고/버스 타고 들어갑니다/“다음 장날 또 봐여(바여)”-‘달의 아버지’(‘황금알’, 2024)교통이 발전되기 이전 태백준령의 산맥에 가로막힌 김천은 매우 깊은 산골이었다. 경부철도가 놓이고 경부고속도로가 터지면서 길을 가로막았던 높은 추풍령이 구름도 자고 가는 추풍령 휴게소가 되었고, 경남, 충청도, 전라도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소설가 김주영과 송기원을 키운 것은 장터였다. 경북에 있는 객주는 김주영을, 전남 보성의 장터에서는 송기원을 낳고 키웠다.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 역시 장터가 배경이다. 사람들이 모였다 헤어지고 사람들 살아가는 삶의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모일 때는 기쁘고 헤어질 때는 안타깝고 그립다. 장터란 바로 집산(集散)의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그리움과 기다림의 미학의 장소이기도 하여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된다.민경탁 시인은 ‘달의 아버지’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렸다. 저녁노을 잔잔하게 퍼지는 서쪽하늘에 하얀 얼굴을 한 달님같은 아버지를 그리며 자식들을 먹여 키우기 위해 장터에서 장보는 아버지를 타자의 눈이 아닌 자신의 시각으로 그려내었다. 장터 풍경화에는 경상도 특유의 목소리가 그림처럼 펴져 있다. “머라 캐여”(뭐라고 합니까), “안 비싸여”(비사지 않아요), “고마바여”(고마워요) 아주 단호하고 칼로 자르는 듯한 토속적인 경상도의 심성이 울려난다.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장터는 여러 지역의 물산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 듯 장터 부근 골짝골짝 사람들이 장날이 되면 모여든다. 이웃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누구 집 아들 언제 장가보내고 어느 마실 어른 돌아가신 이야기며, 누구 집 아들 고등고시 되었고 누구 집 아들 유학 간 이야기며 기쁜 일 슬픈 일 함께 나누는 곳이 장터이다. 서녘 저녁노을이 물들면 파장이 된다. 서로 갈 길 다른 길을 떠난다.고향의 추억과 기억들을 김천의 말씨로 호명해낸 시인의 시골 장터는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할 수 있는 황금시장이다. “다음 장날 또 보시더”. 아릿한 장터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민경탁 시인은 장터에 대한 절묘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미학을 김천토박이말로 불러내고 있다.

2024-07-15

비잔티움 최후의 날 배를 산으로 옮긴 메흐메트 2세

큰일을 앞둔 날에는 여지없이 재앙이 예견된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도 그랬다. “달은 밝고 별은 성글고 까마귀와 까치는 남쪽으로 날아가서 나무에 세 번 둘러싸여 의지할 가지가 없네”라고 시를 읊자, 옆에서 시구절이 불길하다며 유복이 간언하자 조조는 도취된 흥을 깬다며 죽여 버렸다. 정말 유복의 한이 통했는지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완패를 면치 못하고 겨우 목숨만을 부지한 채 도망쳐야 했다.1451년 메흐메트 2세(Meh med Ⅱ·1432~1481), 19세의 나이로 제7대 술탄에 등극한 그는 천년 제국 비잔티움에 사활을 걸었다. 로마제국 최후의 날, 아니 콘스탄티노플 마지막 날, 불길한 조짐이 연이어 나타났다. 1453년 5월 22일 밤 월식이 있었다. 다음날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려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황제가 기도를 올리던 중 성상이 떨어지며, 짙은 안개가 성을 감싸고 성 소피아 대성당 돔 지붕에 붉은 기운이 흘러 아래까지 훑고 사라졌다. 비잔티움에는 1123년을 지탱한 제국의 에너지, 5세기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겹겹의 성벽으로 둘러쳐진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었다. 길이 20km, 넓이 대략 70m의 3중 성벽 이름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다. 그리고 바다 골든혼(황금 뿔)쪽에 비록 한 겹의 성벽이었으나 매우 견고했다. 무엇보다 골든혼 어귀에는 굵은 쇠사슬을 물아래 가로로 걸쳐놓아 어떤 배도 드나들 수 없었다. 그러나 메흐메트 2세는 사공이 많았다. 그는 골든혼에 닿는 도로를 닦고, 쇠로 바퀴를 만들고 철길을 완성했다. 목수를 동원해 중형선박 운반용 거대한 나무 받침대도 제작했다. 5월 22일 아침이 되자 수십 마리 황소와 군사가 이끄는 70척 함선이 언덕을 넘어 골든혼으로 내려왔다. 이를 본 콘스탄티누스 11세와 비잔티움 병사들은 경악했다.1453년 5월 29일 화요일 아침, 드디어 예니체리 부대가 진군하기 시작했다. 나팔과 북소리가 진동하며 죽음의 향연을 펼치려는 군사들의 함성이 저승사자를 불러내는 의식 같았다. 전투가 한창이던 때, 이슬람 병사 몇 명이 반쯤 열린 작은 쪽문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가 오스만제국 깃발을 올려버렸다. 이슬람 군사들이 물결치듯 밀려들었다. 아뿔싸! 바늘구멍이 거대한 둑을 무너뜨린 형국이었다.천년의 로마가 막을 내리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메흐메트 2세는 의례 3일 동안 약탈을 허용했다. 살육, 강간, 방화와 파괴가 이어졌고 도시는 죽어갔다. 그러나 당일 약탈을 중지시켰다. 이미 죽은 자가 태반이요, 죽어가는 자가 남은 반이고,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아이들은 머리가 깨어지고, 성당은 무너지고 불에 탔다. 황궁은 빈껍데기만 남았고, 성모상은 조각조각 흩어졌다. 더 약탈할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오후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갈 무렵이었다. 메흐메트 2세는 성소피아 성당으로 갔다. 화려하면서 장중한, 그 어떤 악인도 흡입할 압도적인 공간, 믿음의 방식이 다를 뿐인, 같은 하늘을 모신 성스러운 곳에 들자 파괴가 최선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기도를 올릴 때 가톨릭 아이콘을 천으로 덮은 채 진행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선포함으로써 화려했던 성당은 이슬람의 모스크로 변했다. 밤하늘에는 어둠 속에서 그믐달이 패망한 천년 제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의 튀르키예 국기 모습이다. 메흐메트 2세는 황궁으로 향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는 궁이었다. 황궁 입성! 인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궁전 내부를 돌아다니며 감회와 감상에 젖었다. 그러나 옛날 알렉산더가 페르세폴리스를 불 지르며 감상하던 것처럼 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문화와 예술이 역사를 품은 채 침묵으로 말을 건네는 도시, 천년을 이어오며 영고성쇠를 거듭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당당했던 황제가 머물던 궁이 초라한 모습을 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고 한다.“궁전에는 거미줄만 무성하고 아프라시아브 탑에서 부엉이만 우는구나!”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제국의 수도로 화려하게 부상했던 비잔티움이, 콘스탄티누스 11세에 멸하게 되니 역사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성 소피아 대성당은 이를 기점으로 비잔틴 양식에 오리엔트 양식,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첨탑이 어우러져 곡선과 직선의 조화, 아치와 각짐이 마치 공존이 삶의 최선이라고 하느님이자 알라께서 간곡히 전하고 있었다.정복자 메흐메트 2세는 오스만제국의 수도를 아드리아노플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도시 이름을 ‘그 도시’, 혹은 ‘큰 도시’라는 뜻을 지닌 ‘이스탄불’로 바꿨다. 주인이 떠나고 없는 오래 버려진 허물어져 가는 빈집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메흐메트 2세는 그 옛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스탄불에 제국의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7-15

이제라도 서로를 위해 손을 내밀어야

김규인 수필가 구독자 수 1000만의 먹방 유튜버, 쯔양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전 남자 친구이자 회사 대표로부터 폭행과 협박, 착취를 4년 간이나 당했다는 내용이다. 헤어지자는 말이 악몽 같은 생활의 시작이었다. 몰래 촬영한 동영상으로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며 온갖 험한 일을 시켰으며, 폭행은 4년간이나 지속되었다.불행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전 남자 친구가 다른 유튜버들에게 영상을 퍼뜨리며 또 다른 2차 가해가 시작되었다. 앞에서는 정의를 말하던 유튜버들이 쯔양을 협박하며 돈을 뜯으려 하였다. 실제 수천만 원의 돈을 뜯은 유튜버도 있었다. 여러 유튜버에게 건네진 자료로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서로를 잡아먹어야만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신문을 펼치면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묻지 마!’ 폭행, 학교 폭력, 데이트 폭력은 사람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표출하는 이들의 행동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길이 없다. 왜 이렇게 상대에게 해를 가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다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자신과 조직의 이익만 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행동을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지라도 끌어내리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승자라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려는 태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사회를 날마다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말끝마다 국민팔이를 하는 그들의 상투적인 말에 이제는 텔레비전을 끈다.사회 문제는 쌓여가는데 누구도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언론과 정치인은 우리 사회를 쳐다보기나 하는 것인지. 학생 화해를 중재하는 교사를 아동 학대로 신고하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무조건 자식만을 대변하는 학부모들이 넘친다. 이제는 학교 문제를 경찰이 와서 해결해야만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말로 해결하기보다는 고소와 고발로 상대를 압박한다.협박과 폭력으로 남의 돈을 갈취하는 사람과 그런 아픔을 당하면서도 남을 위해 손을 내미는 사람. 극단의 두 사람을 보면서 서로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 수는 없는지 생각한다. 고소와 고발이 아닌 상대를 위한 배려와 다정한 말로 감싸줄 수는 없는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몰락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라도 서로를 위해 손을 내밀던 우리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언제나 웃으며 방송하는 청년에게 그런 어려움이 있을 줄 누가 알 수 있을까. 방송 이후에 다시 본 구타의 흔적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4년간이나 지속된 폭력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정상적으로 방송을 한 것이 기적 같다. 언제쯤 우리는 사회의 구석을 환하게 비출 수 있을까. 먹구름 속의 한 줄기 햇빛처럼 쯔양의 선행이 인터넷에 오른다. 자신의 아픔을 말없이 삭이며 이웃을 위해 손을 내미는 천사를 잃지 않아 다행이다. “많은 사람의 후원으로 받은 돈이기에 후원한다”는 겸손이 진흙 속의 연꽃처럼 빛난다.

2024-07-15

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7월에 접어들어 유례없는 국지성 집중호우를 동반한 장마 속에서 간간이 비가 그치면 엄청난 폭염이 찾아오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우리 지역에 머문 장마가 곧 들이닥칠 것 같은 역대급 폭염을 잠시 주춤하게 하는 지난 7월 11~12일 ‘2024년 제9회 대구국제폭염대응포럼’이 개최되었다.이번 행사는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대구정책연구원, 대구녹색환경지원센터, 대구녹색소비자연대, 대구지역에너지전환네트워크, 이클레이한국사무소 등 많은 기관, 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 주관하였다. 그리고 대구광역시,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한국에너지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 등이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첫째 날인 11일에는 추소연 Re도시건축소장이 ‘폭염, 기후재난에 모두가 안전한 도시’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였다. 추 소장은 패시브 기술에 기반해서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만들어야 온실가스를 줄이는 동시에 기후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건축물을 기대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서울시 은평구 새장골 경로당 ZEB(제로에너지건물)전환 리모델링사업과 같이 기존 건물의 기후위기 적응과 완화기능을 강화하고 시민인식을 높인 우수사례를 소개했다.이어진 관련 분야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라운드테이블 토론에서는 건축물의 그린리모델링도 중요하지만 당장 역대급 폭염 속에 쪽방촌 거주자, 외국인 근로자 등 폭염에 극히 취약한 계층의 보호 대책이 매우 시급한 것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였다. 그래서 둘째 날인 12일에 개최된 ‘폭염과 쿨산업, 탄소중립’ 세션에서 김태형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책임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 조성 및 지원’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는 세션 참가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의 구체적인 사업유형을 보면, ①취약가구·시설 차열페인트 도장사업, ②트레일러시설 등 야외근로자 쉼터 설치사업(농촌형, 야외 공공근로자, 야외 이동 공공근로자), ③그늘, 쿨링포그 등 폭염대응 쉼터 조성사업 ④옥상녹화, 벽면녹화 등 녹색공간 조성사업, ⑤녹지, 식생수로 등 소규모 사업장 주변지역 적응인프라 조성사업 등으로 다양하다.사업유형 명칭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사업유형마다 주 지원대상 취약계층이 다르며, 인프라의 세부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김 책임연구원이 취약가구·시설 차열페인트 도장사업(쿨루프, 쿨웰)의 우수사례로 제시한 2023년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취약가구 19가구 대상 사업 체감·만족도 조사결과에서 종합점수가 86.6점으로 비교적 높게 산출되었다. 그리고 다른 유형의 폭염인프라도 80~86점의 분포로 비교적 긍정적인 체감·만족도를 얻었다.2025년도 기후위기 취약계층·지역 지원사업은 국비예산 95억 원을 책정하여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에 각 지역별 특화된 ‘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를 제출할 수 있게 금년 12월까지 공모하고 있다. 기초지자체가 사업비 50%를 부담하지만 만족도가 높아 점차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추어 탄소중립지원센터 등 전문기관의 지원이 이루어져 대구경북지역에 많은 ‘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가 조성되길 바란다.

2024-07-15

쪽팔리는 짓은 하지 말자

김진국 고문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역을 한 황정민이 이렇게 외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가진 것이 없어도 자존심은 있다는 말이다. 형사로서 자존심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범죄자 잡는 책무를 잊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범죄자가 돈으로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는 게 자존심이다. 범죄자가 돈으로 형사를 우롱하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기다.다른 직업에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이런 자존심이 있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자존심을 지키면 존경받는다. 장인(匠人)으로 높이 평가된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자존심을 버리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 그런 쓰레기는 지위가 높은 계층에 오히려 더 많다.‘가오’(顔)는 일본말로 얼굴이라는 뜻이다. 일종의 ‘체면’ 같은 건데, ‘자존심’이 가장 가까운 말일 듯하다. 속된 표현으로 ‘쪽팔린다’라는 말이 있다. 부끄러워 체면이 깎인다는 뜻이다. 이때 ‘쪽’도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니, ‘쪽’을 파는 건 ‘가오’를 잃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 속된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건달이다. 건달조차 지키고 싶어 하는 마지막 자존심이 있다. 그런데 사회 지도층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불량배도 지키려는 그 선을 넘어 창피한 짓을 거리낌 없이 하고 다니는 걸 본다. 특히 우리 정치권이 그렇다.요즘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보면 낯이 뜨겁다. 부끄러워서 보수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오죽할까. 어디 가서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당내 경쟁이라도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당내 총질이라서 문제가 아니다. 공격하더라도 합리적이고,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억지 의혹을 막무가내로 쏟아낸다. 저 정치인이 저런 사람이었나,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평소 가졌던 좋은 이미지와 전혀 다른 언행에 보는 사람마저 ‘멘붕’에 빠지게 한다. 곧 비슷한 근거라도 내놓으려나. 나중에 경쟁 정당과 대결할 때를 대비한 예방주사인가. 온갖 상상을 다 해봐도, 그 사람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 악몽 같다. 더 힘있는 권력자가 꼼짝 못 할 약점을 쥐고 사주하나. 어떤 거절 못할 선물로 유혹했나…. 아무리 그래도 평생 쌓아온 ‘가오’, 자기 이름을 버려야 할 정도일까.야당으로 고개를 돌려도 다르지 않다. 국회 법사위는 정청래 위원장은 기상천외하게 독주한다. 대한민국을 지켜온 장군들을 불러놓고, 조롱하고, 모욕했다. 국민의힘이 무어라 하건 듣지 않는다. 간사도 필요 없고, 여당 추천 인사는 마음대로 잘라버린다. 저러고도 ‘법대로’를 외치면 대통령의 ‘법대로’를 무슨 낯으로 비난할까 싶다.민주당 강민구 최고위원은 “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 대표”라며,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최고위원으로 발탁해 줘 아무리 감읍했다 해도 그런 말이 나오나. 민주당 김준혁 의원은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과 퇴계 선생 등을 성적으로 모욕했다. 양문석 의원은 편법 대출 논란으로 선거 때 민주당 지도부조차 버린 카드 취급했다. 그런데도 당선됐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워낙 큰 탓이라고는 해도, 유권자도 ‘가오’가 있는 것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상당수 유권자가 ‘묻지마 지지’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잘해도, 못해도, 내 편만 든다. ‘가오’를 버린 유권자 탓에 정치인만 오만해진다.가수 김호중 씨가 음주 운전으로 논란을 빚었지만, 열성팬은 지지하고, 안타까워했다. 연예인은 예술적 재능이 ‘가오’다. 도덕적 결함이 있어도 응원하는 팬심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왜 하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인가. 거창하게 국민을 위한다고 떠들지 않나. 더러운 행동과 속임수를 써서라도 자리만 얻으면 명예는 저절로 굴러들어 오나. 얼굴에 철판을 깔고, 허공을 쳐다 보며, 성공을 위한 주문을 왼다. 체면을 내던지고, 눈을 질끈 감고, 부끄러운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까지 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가. 그게 영원히 갈 것 같은가. 아무리 욕심이 나도 쪽팔리는 짓은 하지마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14

성공해야 하는 농업대전환 운동

김하수 청도군수 인간하고 가장 밀접한 거리에 있는 것이 먹을거리다. 추위와 더위는 참을 수 있지만 배고픔은 참을 수 없는 이유로 인간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변화를 시도했고 현대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적절하게 공급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지구의 한쪽에서는 먹을거리가 넘치지만, 반대편에서는 먹을거리가 없어 아사자가 발생하는 불합리한 시대를 사는 것도 먹을거리가 주는 불편함이다.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보릿고개 등 먹을거리가 없어 풀뿌리 등으로 생명을 연명한 일들이 아주 오래전 기억에만 존재하는 일인 것처럼 망각의 늪에 빠져 음식물쓰레기가 넘치고 있다. 한때 대한민국을 신토불이(身土不二)가 도배했었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으로 자기가 사는 땅에서 생산된 농산물이라야 몸에 잘 맞음을 이르는 말로 제철 음식만큼 중요한 것이 친환경으로 재배된 지역 농산물이다.이를 위해 청도군은 농업대전환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농업대전환 운동은 평생학습 행복 도시, 문화·예술·관광 허브 도시와 함께 청도군의 3대 미래 비전이다. 농업대전환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농업농촌의 위기에 대응하는 것으로 청도군의 농업대전환은 “농업인이 도시 근로자와 같이 열심히 일하고 땅도 있지만 도시 근로자의 소득의 60%대에 머물러 왜 더 잘살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농업에 첨단 과학을 접목하고 기계화할 수 있는 규모화,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전환 등 청도 농업의 큰 틀을 바꾸어 농사만 지어도 잘 사는 농촌, 청년이 돌아오는 젊은 농촌, 농가소득의 보장 등으로 고령의 농업인이 힘들게 일하지 않고도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농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군은 2023년 7월 ‘농업대전환으로 청도농업을 새롭게 디자인하다’를 슬로건으로 한 농업대전환 비전을 선포하고 추진목표인 △공동영농(규모화) △친환경(유기농) △첨단화(스마트 팜) △미래 인재 양성 △가공 수출(부가가치 창출) 등의 성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일부가 경북도의 ‘혁신농업타운사업’에 선정되며 9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기도 했다. 혁신농업타운사업은 농촌 마을을 하나의 농업법인으로 구성해 개별 영농을 공동영농으로 기술과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이다.청도군은 이 사업으로 친환경 벼와 이모작 감자, 양파, 마늘 등을 재배해 농가소득을 높인다.농업대전환을 추진함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 미래 청년 농업인 유치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아열대 작물의 육성이다. 이를 위해 농어업단체와의 소통과 농어업인의 의식 전환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새마을운동인 발상지인 청도의 새로운 변화에는 농업대전환 같은 제2의 새마을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아열대 작물 재배단지를 추진하고 바나나와 파파야, 애플 망고 등 아열대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를 지원하고 있다. 스마트 인재 양성을 위해 한국미래농업고와 업무협약으로 귀농과 청년 창업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지속으로 스마트농업의 기술을 보급하며 낡은 시설은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이와 함께 가공산업 육성 지원사업과 농식품 수출 확대, 청정 청도 조사료 생산기반 구축, 반려동물 힐링센터 설치, 디지털 청년 농업 아카데미 운영, 미래 청년 농업인 육성 유치사업, 유기농산업 복합 서비스지원 단지 조성, 미래형 과원 조성, 특화형 농업 인력수급 활성화 등도 농업대전환의 하나로 추진한다. 농식품 수출 확대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수 농특산물의 수출 확대를 통해 농가소득 증대와 가격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기존의 버섯류와 냉동 참치 중심의 수출구조에서 청도반시를 비롯한 채소류, 과실류, 임산물 등으로 수출 품목을 다양화한다.미국 내 주요 한인마켓인 한남체인 USA와 MOU를 체결하고 캐나다에서 농특산물 홍보 판촉 행사를 진행하는 등 품목 다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에 들어서는 아이쿱소비자생협연합회의 ‘청도자연드림파크’는 영남권을 아우르는 친환경 유기농 생산의 최일선이 될 것이다.청도자연드림파크는 친환경 유기농 식품단지와 공방, 물류 시설, 영화관, 병원, 호텔 컨벤션센터 등이 입주한 대단위 친환경 유기농 식품클러스터로 소비자 인식을 높이고 친환경농산물 소비를 유도해 지역의 친환경농업 실천 농가의 소득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청도의 농업대전환은 지역에 맞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2024-07-14

뒷산 둘레 길을 걷는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숨이 가빠진다. 잠시 앉아 숨을 깊이 들이켜고 뱉어낸다. 숲의 날숨은 언제 마셔도 상쾌하다. 푸른 기운이 몸을 한 바퀴 돌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집으로 오니 택배가 와 있다. 박스를 열었다. 울퉁불퉁한 돼지감자와 그 아이의 눈동자를 닮은 검은 콩이 들어 있다. 흙냄새와 쇠죽 끓이는 냄새도 함께 실려 왔다. 그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다. 편지를 열자 오래도록 봉인 되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결혼 후, 남편과 시외가에 갔다.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후 남편과 산책에 나섰다. 맑은 공기 푸른 하늘,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면서 걷자니 숨이 탁 트였다. 둑을 따라 수양버드 나뭇가지가 ‘쏴 쏴’ 노래를 했다. 정미소의 발동기 소리가 시골마을의 심장 소리처럼 들렸다.정미소의 마당 옆에는 큰 웅덩이가 있었다. 참새들이 모여 입방아를 찧고 오리가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 옆에서 머리 하나가 쑥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사람 같기도 하고 오리 같기도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꼬마 하나가 오리 옆에서 자맥질 하고 있었다. 아이는 물놀이에 익숙해 보였다.웅덩이를 스쳐 지날 때, 자맥질을 하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오리만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웅덩이를 계속 바라보았다. 물결이 없었다. 아이는 어디 갔을까. 머리가 쭈뼛 서면서 불길한 예감이 몸을 휘감았다. 발만 동동거리는데 웅덩이 속으로 누군가 뛰어 들었다. 남편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물속만 쳐다보았다. 물은 아무 표정이 없다. 잠잠했다. 숨이 막혔다.잠시 후, 아이를 끌고 나왔다. 남편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이의 눈은 잠들어 있었다. 팔은 탈수 되지 않은 옷처럼 축 쳐져 있었다. 남편이 무릎 위에 아이를 거꾸로 올렸다. 물을 빼도 아이에겐 반응이 없었다. 남편이 아이를 눕혔다. 숨을 십 여 차례 불어 넣자,“으앙”소리가 났다. 내 숨도 터졌다. 남편은 아이 옆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 누구 없어요?’ 다시 고함을 쳤다. 건너편에서 할머니 한 분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할머니의 눈은 백 리는 들어 간 듯 퀭하였다. 할머니는 손자를 끌어안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편의 손을 붙들고 연신 기역자로 고개를 숙였다.“이 놈이 3대 독잔데 오늘 씨를 말릴 뻔 했네요”다음 날 할머니는 아이와 함께 우리를 찾아 왔다. 삶은 감자가 담긴 소쿠리를 거친 손등으로 건네셨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팍팍한 삶이라 손자 목숨 사례가 이것 밖에 안 된다며 미안해 하셨다. 다음 날도 할머니는 고구마와 옥수수를 한 보따리 가져 오셨다. 돌아오는 길에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싸서 왔다. 김경아 작가 그러고는 잊고 살았다. 한 아이를 구하느라 목숨을 걸었던 남편도 응당 할 일을 했다는 듯 더는 말하지 않았다. 편지가 없었다면 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잊힌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아이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시골 마을에서 친구들은 도시로 다 떠나고 혼자 남아 고향을 지킨다고 했다. 열심히 키워 낸 채소들이 자연 재해 등으로 말라 갈 때는 가슴이 찢어진다고, 채소를 쓸어버릴 때마다 어린 시절의 사건을 기억해 낸다고 했다. ‘목숨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수년 전 돌아가셨고, 꼭 우리 부부를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했다.상자 속에 담긴 농산물은 이삼 만 원 정도다. 하지만 남편은 값비싼 선물을 받은 양 기뻐했다. 삭막함이 고무풍선처럼 가득 차 있던 일상에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건조한 부부 사이에 끼어든 아이의 숨소리에 오랜만에 남편과 나는 옛 이야기에 빠질 수 있었다. 아이가 보내 준 고향의 숨소리가 상자에 가득하다.

2024-07-14

밀양 여행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여행을 기획하면서 당신이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풍경, 고적, 역사, 먹을거리, 휴식, 문화와 예술. 이런 목록에서 눈길 가는 대상이 몇 가지는 있을 터! 지난주 초에 1박 2일 일정으로 밀양을 다녀왔다. 햇볕이 빽빽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고장 밀양(密陽)은 흐리고 간간이 비를 뿌렸다. 장마철의 밀양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광주와 대구, 청도에서 모인 8인의 중년 남녀가 함께하는 밀양 여행에서 내가 주안점을 둔 것은 문화와 역사였다. 1년에 두 번 정도 모여 만남의 기쁨을 나누고, 지나온 날들과 다가올 시간을 터놓는 것이 우리 ‘인문 여행’ 참가자들의 작은 목표기 때문이다. 나를 뺀 다른 사람들은 책상물림으로 밀양에 익숙하지 못한 까닭에 나 홀로 미리 답사도 했더랬다.표충사에서 시작하여 케이블카를 타보고, 호박소 일대를 거닌 연후에 각종 전(煎)과 밀가루 음식으로 저녁을 할 심사였다. 이튿날에는 울주의 가지산 석남사와 위양지를 돌아보고 고깃집에서 점심을 들고 해어질 요량으로 일정을 세웠다. 그러나 세상일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법이 얼마나 있던가?! 뜻하지 않게 저녁 자리가 바뀌면서 일정이 흐트러진다.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에 기대어 중지(衆智)를 모아 일정 변경에 착수한다. 그 와중에 나는 밀양의 대표 인물 세 분을 꼽는다. 1270만 관객을 불러 모은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에 나오는 대사의 주인공,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백범 김구와 잠시 조우(遭遇)하는 의열단장 김원봉은 1946년 여름에 표충사에서 안온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임진왜란 당시 승군(僧軍)을 지휘했던 사명대사(1544∼1610)도 밀양의 인물이다. ‘선가귀감’의 저자 서산대사 휴정의 뛰어난 제자였던 사명은 전란 중에 숱한 전공을 세운다. 그는 선조의 명으로 1604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여 명과 함께 귀국한다. 표충사에는 사명대사를 기리는 사당(祠堂)이 자리한다.두 분과 함께 내가 꼽은 인물은 불후의 작곡가 박시춘(1913∼1996)이다. 밀양초교 중퇴로 가방끈이 짧은 그는 1938년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으로 1000여 곡을 작곡한 그를 기리는 아담한 공간이 ‘영남루’ 옆에 위치한다.범종루의 범종(梵鐘)과 법고(法鼓), 목어(木魚)와 운판(雲版)에 담긴 이야기와 탑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을 일러준다. 세상에 존재하는 뭇 중생과 축생, 어류와 조류를 위해 스님들이 아침저녁으로 두드리는 네 가지 기물은 얼마나 아름답고 뜻깊은가! 상륜부, 탑신부, 기단부로 이뤄진 탑의 구조로 우리는 어렵지 않게 탑의 층수도 알 수 있다.차로 이동하다가 만난 한여름의 강렬한 빗줄기를 보면서 살아있음의 축복을 새삼 실감하는 것이다. 크고 작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 우리의 가치 있는 생은 익어가는 법 아닌가?! 가을에 광주에서 재회할 것을 다짐하는 따사로운 눈길이 교차하며 인문 여행은 마무리됐다.

2024-07-14

한국형 레이저 무기

우정구 논설위원 레이저란 유도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을 의미한다. 1960년 미국의 물리학자 메이먼이 세계 최초로 레이저 장치를 발명할 때만 해도 레이저는 죽음의 광선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았다.그러나 이후 레이저를 활용한 각종 기술이 발달하면서 레이저는 문명의 이기로 인식이 바뀌게 된다. 절단, 용접 등 산업용과 레이저 프린트, 레이저 디스크플레이어 등 일상의 편리함을 돕는 분야에서 많이 사용된다. 특히 제모와 여드름 치료의 의료기와 함께 특정 부위의 암세포를 죽이는 데에도 레이저 기술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레이저를 활용한 무기 개발도 수년 전부터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에서는 이미 개발에 착수했으며 영국은 최근 고출력 레이저 무기 ‘드레건 파이어’의 실험에 성공한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현존하는 최고의 대공방어 시스템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99%의 요격 성공률에도 비싼 비용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가 레이저 대공무기 개발에 힘 쏟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이언돔 한발을 발사할 경우 약5만달러(약7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유사시 사용 횟수에 따라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레이저 무기 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것.한국형 레이저 대공무기가 개발돼 우리 군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라 한다. 한화에어로가 개발한 블록-1은 초당 30km 속도로 무인기 요격이 가능하고 다중표적도 동시에 요격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한 발 쏘는데 드는 비용이 2000원 정도밖에 들지 않아 세계 각국이 탐낼 만한 무기다. 북한의 소형 무인기, 멀티콥터를 정밀타격하는데 최적이라 하니 북한의 쓰레기 풍선 도발 등에 우리 군의 대응이 주목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14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혜 : 파레토법칙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파레토의 법칙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인 비라토 파레토에 의해 제시된 경제학적 원리이다. 어느 날 파레토는 집 텃밭에 완두콩을 재배하다가 수확량의 80%가 20%의 콩깍지에 의한 것임을 우연히 발견하였고 이를 사회 현안의 다양한 해석으로 발전시켰다.이탈리아 전 국토의 80%를 20%의 소수가 소유하고 있고, 소수의 인구가 전체 국부의 80%를 차지하는 현상을 입증하였다. 기업 품질경영의 대가인 듀란박사가 품질 불량의 대부분은 20%의 소수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접근으로 가성비 높은 문제해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칙은 20:80법칙이라고도 불리며 대표적인 품질분석기법과 개선 활동의 핵심 툴(Too)l로 오늘날에도 많은 기업과 연구소에서 활용되고 있다.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빠르게 급변하는 기업환경과 증가하는 불확실성으로 부터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개인과 기업은 성장과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본 법칙은 선택과 집중의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기업은 소수의 핵심고객으로부터 회사의 안정된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 충성고객을 선별하여 지속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가져가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파레토의 법칙을 활용하여 업무 우선순위를 지정하거나 문제의 해결과정에도 필수적으로 활용된다.이 법칙은 디지털시대의 다양한 사회현상에도 잘 들어 맞는다. 인터넷에서 상위 20%의 작곡가의 곡이 전체 재생 또는 조회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가치창출을 위해 80%의 조회되지 않는 작곡가의 곡을 대상으로 신규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는 롱테일 비즈니스도 응용되었다. 따라서 기업들은 이를 활용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경쟁력을 향상하고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법칙은 필연적이고 보편적으로 내재된 세상의 원리이므로 학습과 교육을 통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고 현재의 상황에 맞게 제대로 적용되었으면 한다. 필자는 지난 20여 년간 많은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을 컨설팅 하고 수차례 변화관리 워크숍을 실행하면서 확인한 파레토법칙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첫째 핵심에 집중하여야 한다. 파레토 법칙의 핵심은 의미 있는 결과를 창출하는 중요한 소수를 식별하는 것이다. 핵심적인 요소에 집중하여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하고 비효율적인 부분을 최소화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둘째,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자원을 배분해서는 안 된다. 중요도가 낮은 대부분의 활동과 투입 자원은 성과에 기여하지 못하고 낭비되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파레토 원리는 변화에 역동적이고 반복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주기적인 분석을 통해 무엇이 변화하고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핵심 문제를 확인하고 소수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해결책을 도출하고 함께 유지해 나가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명하게 선택하고 자원을 집중을 해야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모든 것을잘하지는 것은 어느 하나도 잘할 수 없는 것과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2024-07-14

최저임금은 정말 최저임금이다

유영희 작가 60세가 넘은 지인이 남편 퇴직 후 생활비가 부족하다며 작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노인 한 분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하던 차에 맞벌이 부부의 유치원생 자녀 한 명을 아침, 저녁 두 시간씩 등·하원시켜주게 되어 다행히 월 200만 원 정도 수입이 되었다고 한다. 노인과 유치원생의 시급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대략 시간당 1만3000원이니, 2024년도 최저임금 9860원보다 높다. 일이 특성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된 것이다.그런데 지난 2월 서울시 국민의힘 소속 윤기섭 등 38명의 시의원이 노인들의 구직이 어렵다면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도 노인 채용이 가능하도록 하자며 ‘최저임금법 적용 제의의 인가 기준 및 범위를 노인층에게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정부 측에 발의했다. 3월에는 서울시 오세훈 시장이 필리핀 등 외국인 돌봄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그 말이 있기 하루 전,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주최한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사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 요구는 올해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1986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때 최저임금법 제4조1항에서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그동안 경영계는 업종별 차등 임금을 계속 요구해왔다. 이들의 요구는 특정 업종은 최저임금보다 더 낮게 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경영계의 집요한 요구가 있지만, 지난 7월 2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차등안을 부결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어느 기사를 보니, 작년 148개의 2차 업종 중 상반기 시급 공고가 500건 이상 등록된 업종 93개 중 ‘베이비시터·가사도우미’ 업종의 공고 평균 시급이 2만9천 원 정도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일이 그만큼 힘들고 그래서 인력난도 심하다는 뜻이다. 요양보호사는 국가 공인 파출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을 호소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간병과 육아와 같은 돌봄 노동에 외국인이라고 해서 최저임금보다 더 적게 주자는 것은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제111호(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에 나오는 출신국에 근거한 차별 금지 조항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도 한국에서 한국의 물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노인에 대해 최저임금을 낮게 적용하자는 주장 역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나이를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법하다.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은 저소득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게 하는 최소한의 임금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인건비로 인한 소상공인의 경영난 해법은 다른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

2024-07-14

먹사니즘

우정구 논설위원 1992년 미국 대선 때 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로 상대후보 조지 부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밝힌 ‘먹사니즘’을 보면 빌 클린턴의 이 문구가 떠오른다.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는 그의 출마 선언에서 밝힌 먹사니즘의 핵심은 한국경제의 난국 타개다.먹사니즘은 먹고 살다와 이념을 의미하는 영어 접미사 ism이 합쳐진 말. 생계 유지에 급급해 다른 것들에 대해 신경 쓸 틈이 없는 저소득 서민의 생활을 이르는 표현이다.2000년대 이후 경제가 팍팍해지면서 젊은이 사이에 유행한 말로 경제가 잘 돌아가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누가 권력을 잡든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불만이 없다는 말이다. 공자가 백성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 정치도리라고 한 것과 통하는 말이다.최근 유럽에서 부는 극우 바람 역시 먹사니즘과 연관이 있다.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극우 정당은 이민정책과 같은 국익에 반하는 정책은 반대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자국 우선주의의 큰 흐름이다. 유럽연합의 창립을 주도한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극우 바람이 거센 것은 국민이 느끼는 경제가 그만큼 나쁘다는 뜻이다.이 전 대표는 “경제가 곧 민생”이라며 먹사니즘을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지목했다. 먹사니즘 해결로 민심을 얻겠다는 정치적 포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문제는 탄핵정국을 둘러싼 정부 여당과의 극심한 대립 상황에서 야당만이 경제를 살리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먹사니즘 해결을 위해선 정부 여당과의 협치는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먹사니즘도 공허한 말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11

나이 들면 약을 달고 산다

홍석봉 언론인 환자는 두려움 때문에 병원에 가고 의사는 두려움 때문에 약을 처방한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습관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크게 늘렸다. 속칭 ‘의료 쇼핑’ 방지책으로 내놓았다. 의료 과소비 방지와 합리적 의료를 위해서다.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이용수는 15.7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5.9회보다 높다. 지난해 기준 연 365회를 초과한 외래진료자가 2천448명이다. 필요 이상 병원을 찾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우리나라는 내년이면 65세 이상 노년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 2022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82.7세다. 건강수명은 그보다 훨씬 낮은 65.8세다. 무려 15년을 여러 가지 질병과 사고로 말미암은 부상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다. 예전엔 비실비실 10년이라고 했는데 이젠 식생활 개선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15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장수가 축복이 아닌 세상이다.나이가 들면 여러 질환을 한꺼번에 앓는 경우가 많다. 만성 질환은 하나의 약으로 완치되지 않아 여러 가지 약을 먹어야 한다. 노인은 약을 해독하는 간 기능과 소변으로 배출하는 신장 기능이 약하다. 약 농도가 젊은 층보다 더 높아져 부작용이 많이 나타난다. 복용하는 약물 간의 상호작용도 한 요인이다.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1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10개 이상의 약을 60일 이상 복용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20년 91만 명, 2021년 108명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이후 2022년엔 117만 5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고령화 추세라면 여러(다제) 약물 복용자는 더욱 늘 전망이다. 5개 이상 약을 처방받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입원 위험은 18%, 사망 위험은 25% 더 높다. 비슷한 약물이 중복처방 되거나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않다. 병 고치려다 병을 얻는 셈이다.불필요한 약물이나 노인 부적절 약물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잘못된 처방은 되레 노인 건강을 위협한다.노인들의 부적절 약물 복용은 장기적으로 신체 기능 저하를 촉진할 수도 있다. 투약 부작용이 더 많은 의료 이용과 또 다른 약의 처방을 부르는 도미노현상도 우려된다. 환자와 의료진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구구팔팔이삼사’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병 없이 살다가 죽는 것은 만인의 소망이다. 하버드 대학 연구진은 영양가 있는 식단, 규칙적 운동, 건강한 신체 질량 지수 유지, 금연, 금주를 건강 백세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 다섯 가지 생활 방식을 실천하면 기대수명이 여성은 14년, 남성은 12.2년 증가한다고 했다. 식탁 위에 병원 약이 수북이 쌓여간다. 내과, 신경과, 안과, 정형외과, 종합 비타민까지. 얼마 전엔 눈 영양제가 추가됐다. 나이 들면 약을 달고 산다. 온갖 병치레를 하며 오래 살면 뭣하나. 늘어나는 약 봉지만큼 한숨도 높아진다.

2024-07-11

폭우 쏟는 장마전선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겹게 비가 내리는 장마철이다. 흐리고 습하고 번개 치며 굵은 비를 뿌리는 우리 한반도의 특정 기후 현상이다. 보통 6월 중순에 시작하여 7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고온다습한 날씨 때문에 여름을 맞는 마음은 무겁다.이렇게 비 오는 날이 길어지는 이유는 북태평양의 따뜻하고 습한 남서풍과 오호츠크해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동 기류가 만나서 한반도의 동서로 긴 장마전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즉 고기압과 저기압 사이의 경계선에서 두 기단(氣團)의 힘겨루기가 시작되고 서로 밀고 당기며 한곳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집중호우를 퍼부어 강둑을 무너뜨리고 들과 마을을 침수시키며 산사태를 일으켜 우리의 마음을 짓뭉개고 있다. 참으로 계절의 악몽이 아닐 수 없다.장마, 한자어인 줄 알고 길 장(長)자에 ‘마’는 무슨 글자일까 찾아보았더니 순 우리 한글이라 한다. 500여 년 전 옛 문헌에 ‘오랜 비’라고 ‘댱마’라 했던 것이 ‘장마’로 변했다는 것이다. 한자로는 장우(長雨) 임우(霖雨), 일본은 매우(梅雨)라고 하고, 때맞추어 내려주면 산과 들을 씻어주고 논밭에 물을 뿌려주니 감우(甘雨)라는 말도 있다. 오뉴월의 보리장마, 초여름의 고치장마, 초가을의 건들장마도 있다는데….거의 일정한 장마철이 언제부턴가 들쭉날쭉하여 한반도 기상예보가 잘 맞지 않는다고 2009년부터 기상청에서는 장마 예보를 중단했으나, 올해는 작년보다 강수 기간이 길고 강수량도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어저께 이틀 동안 포항 오천에는 장마 기간 전체의 2/3인 25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졌고 기계면에는 시간당 56.5mm라는 기록적인 장대비가 쏟아졌었다. 이제 소강상태가 되었지만 다음 주에는 계속해서 장맛비 내리고 포항은 29도 이상으로 무덥겠다고 한다.태풍은 아직 소식이 없지만 대구·경북에 쏟아진 폭우로 금호강이 범람하고 오천 냉천에서 밀려온 황토물이 영일만을 누렇게 덮어버렸다. 멀리 군산은 시간당 131mm로 수백 년 만의 물 폭탄을 맞았고 세계적으로도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우리도 재해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열대 수증기가 집중적으로 지나가는 ‘대기의 강’은 군산 서천과 안동 상주를 잇는 장마 띠를 만들어 도로와 주택을 침수시켰고 토사 붕괴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수확을 앞둔 채소와 과일 등에도 피해를 입혔으니 당국은 피해복구와 농작물 시설 등의 안전 보호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또한 긴 장마로 불쾌지수와 우울감이 높아져 우리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정치계를 보자. 특검이니 검사 탄핵이니 하며 여·야 기압골을 형성한 지가 벌써 수개월째, 대통령은 15번째 거부권을 행사했고 야당은 당대표 연임 도전을 의식하며 대통령 탄핵이라는 폭풍을 일으키려 하고 있으며 국힘당은 당대표 선출을 앞두고 후보 간 비방을 폭우처럼 퍼붓고 있으니 가뜩이나 무더운 장마철 피해에 정신이 아득한 국민에게는 억수장마가 쏟아지려 하고 있다. 다음 주에 다시 장맛비가 쏟아지고 나면 태풍이 몰려올지 모른다. 우리 모두 천재지변에 잘 대응하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2024-07-11

경고등이 켜진 대한민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제 역할을 할 때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경고등이 켜지기도 했다. 3부 모두를 좌파 세력들이 장악한 문재인 정권 때는 국가의 정체성은 물론 안위와 존망에 대한 경고등이 내내 켜졌었다. 천우신조로 자유우파가 다시 집권을 하게 되었지만, 국회는 여전히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한 좌파 정당이 전횡을 일삼고 있다.우리는 지금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입법부의 권한을 마구 휘두를 때 어떤 현상을 초래하는지 기막히게 보고 있다. 특히나 온갖 범죄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의 사당이 되어 그의 사법리스크 방탄에 ‘올인’하는 작태는 경악을 넘어 공포스러울 지경이다. 행정부를 상대로 특검과 탄핵을 남발하여 삼권분립 균형의 파괴는 물론 국기를 문란케 하고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짓도 서슴지 않고 있다.검찰을 무력화하고 사법부를 겁박하기 위한 입법폭주는 광기어린 팬덤까지 가세를 해서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는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한 통속이 되어 편파적이고 위헌적 소지가 있는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금지하는 법안,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립하는 법안,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등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무력화 하는 법안 등을 졸속·강행 처리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김여정하명법’으로 일컬어지는 대북전단금지법까지 만들었다가 국제적 비난에 밀려 폐기하기도 했다.지난 정권의 잔재가 버티고 있던 사법부와 언론, 검찰에 켜진 경고등은 이제 하나씩 꺼지고 있다. 그러자 시시각각 다가오는 사법리스크에 대한 위기의식에 야당과 그 추종세력들은 거의 미쳐 날뛰는 형국이다. 저들이 쥔 유일한 칼자루인 입법권으로 할 수 있는 짓은 무엇이든 다 해보겠다는 각오인 것 같다. 오로지 대통령탄핵의 꼬투리를 잡기 위한 김건희특검법, 채해병특검법, 이재명 관련사건 수사검사들 탄핵안 발의, 이동관, 김홍일에 이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까지 무조건적 탄핵 시도, 대통령탄핵청원에 관한 청문회를 열겠다는 등 일말의 이성도 염치도 팽개친 광분의 연속이다.하지만 대세는 조금씩 기울고 있다. 검찰독재란 누명이 무색하게 질질 끌기만 하던 검찰이 수사를 다잡고 있고, 공영방송도 머지않아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할 전망이다. 국회에 진입한 범법자들의 사법처리가 진척되고 공영방송이 정상화 되면 야당의 자중지란으로 입법독주도 상당히 기세가 꺾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피폐해진 국민들의 의식에 켜진 경고등이다. 온갖 범죄자들과 인성파탄자들을 국회로 보낸 국민들이 과반수라는 점이다. 주로 학·교육계, 문화·예술계, 언론계 등 지식인층에 만연해온 좌경화 바람이 이제는 대다수 국민을 잠식한 상태다.무도와 광기가 난무하는 시대에 법치확립 등 국가기능의 정상화야말로 국민들의 의식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24-07-11

대서(大暑)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열두 번째가 대서(大暑)다. 태양의 황경이 120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7월 22일(음력 6월 17일)이다. 음력으로는 6월의 절기다. 대서는 소서와 입추(立秋) 사이에 있다.대서(大暑)는 ‘큰 더위’라는 뜻이다. 일 년 가운데 가장 더운 때다. 소위 찜통더위, 불볕더위라고 한다. 소서 때부터 장마전선이 우리나라에 동서로 걸쳐지기 때문에 큰 장마가 자주 발생한다. 장마가 끝날 무렵 고온다습한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며, 밤에는 열대야 현상 때문에 잠을 청하기에 괴로움이 따르는 시기다.농촌에서는 장마철에 부쩍 자라난 잡초를 베어 퇴비를 장만하고, 논밭에 무성한 김매기에 여념이 없다. 가을보리를 베어낸 터에 콩이나 팥 등을 심어 이모작을 하기도 한다. 속담으로는 ‘염소 뿔도 녹는다’가 있다. 즉, 무더위 때문에 염소 뿔도 대서 더위에 녹는다는 이야기다. 또 농사일로 가장 바쁜 때기에 ‘소서, 대서 하루 놀면 동지섣달 열흘 굶는다’는 말이 있다.대서에는 햇밀과 보리를 먹게 되고, 채소가 풍족하다. 참외와 수박 등 과실이 풍성하며, 과일이 가장 맛있을 때다. 한여름 태양 아래 단맛이 차오르지만, 비가 자주 오면 단맛이 희석된다. 수박은 가뭄 뒤에 제 맛을 낸다고 해 대서의 수박을 가장 좋게 쳤다. 저녁 땅거미가 내리면 박꽃은 하얗게 피어나고, 새벽 햇살에 호박꽃과 나팔꽃도 핀다. 또한 대추, 밤, 호두도 영글어간다. 산에는 으름과 다래가, 산길에는 산딸기가 익어간다.명리학에서 대서는 미월(未月)에 해당하며, 소서와 대서를 포함하고 있다. 미(未)는 오행으로 토(土)이며 조토(燥土)다. 즉,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황량하고 메마른 땅이다. 미시(未時)는 화(火)기운이 정점에 달하고, 하루 중 가장 더운 때다. 양기가 왕성한 가운데, 음기도 서서히 일어나 만물을 생육하고 기르는 기간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떨치나 이미 가을을 향하고 있다. 음양의 극적인 대립으로 인해 장마와 태풍이라는 자연현상을 자주 보여준다.사주에 미(未)가 있는 사람은 화(火)의 불타오르는 성질로 인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희생정신이 있다. 뒷끝이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기 방어적이고 민감한 성격으로 모성애가 남다르다. 자신과 가정을 위해 무엇이든 축적하려는 성향이 있다. 폭발력과 급한 성격으로 인한 자존심과 고집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사교와 화술이 뛰어나 구설수가 따른다. 또한 남의 간섭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외톨이가 될 수 있으니 자중해야 한다.대서(大暑)를 전후해 민간에서는 햇볕에 옷을 말리고, 사찰에서는 경서를 꺼내어 습기를 제거하기도 했다. 무더운 낮에 갑자기 폭우가 내린 뒤에 미꾸라지들이 마당에 떨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치솟았다가 땅으로 떨어진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해먹으면 기운이 솟구친다는 속설이 있다.대서 때에는 흙이 습하고 뜨거워지며 종종 큰비가 내린다. 이때부터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니 구석진 곳에서 귀뚜라미가 보이고, 매가 후려치는 연습을 하며, 썩은 풀이 반딧불로 변한다고 한다. ‘태평어람’에서 허신은 ‘풀이 음기를 얻으면 죽는다. 음(陰)이 지극해지면 그 가운데서 오히려 양(陽)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썩은 풀이 반딧불로 변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즉, 한대(漢代) 사람들은 썩은 풀 주변에 반딧불이 모여드는 광경을 보고 썩은 풀이 반딧불로 변한다고 생각한 것이다.대서 기간에 백중(百中·음력 7월 15일)이 있다. 백중은 불교에서는 우란분절이라고 하며, 스님이 수행하는 하안거가 끝나는 날이기도 하다. 이때 영가들을 위한 천도재를 봉행하기도 한다. 이 무렵에 갖가지 과일과 채소가 많아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해서 백종(百種)이라고도 칭한다. 또한 돌아가신 조상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 과일, 술을 차려놓고 천신(薦新·철따라 새로 난 과일이나 곡식을 처음으로 신위에 올리는 일)을 하였으므로 ‘망혼일’이란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미(未)는 주역으로 보면 천산둔(天山遯)괘다. 위로는 양효가 4개 있으며, 아래로는 음효가 2개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다. 흔히 소인의 세력이 자라나는 괘로 풀이한다. 소인이 아래로부터 득세해 올라오니 군자가 그 세(勢)에 밀려 스스로 물려나는 은둔의 괘라는 것이다. 그래서 ‘둔(遯)’이란 괘명이 됐다.‘설문해자’에 의하면 둔(遯)은 착(辶)자와 돈(豚)자가 합쳐진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돼지가 우리에서 뛰쳐나와 도망하는 것은 더 이상 갇혀 있다가는 굶어 죽게 생겼기 때문이다. 챙겨줄 주인이 없으니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원래 돼지는 가(家)의 상징이다.‘가(家)’란 글자는 돼지(豕)를 기르며 한 울타리(宀)에 모여 사는 혈연집단을 묘사하는 글자다. 둔(遯)은 국가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돼지가 우리를 벗어나 도망하는 것으로 비유한 셈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천산둔괘는 하늘 아래 산이 있는 형상이다. 산은 높고 낮음이 있다. 그러므로 함께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인간사로 말하면 지위가 다른 사람이 함께 서 있는 것과 같다. 낮은 산이 높은 산을 보고 욕심을 낼 리야 없지만, 인간사는 그렇지 않다. 어차피 산의 높이가 같을 수 없듯 사람의 지위도 같을 수 없는 일이고 보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 외는 다른 길이 없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욕망은 파멸에 이르러서야 깨닫는 법이다.주역은 인간사와 자연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다간 자칫 전체 맥락을 놓치기 쉽다. 인간사로 말하면 부부관계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최상이지만, 자연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 자연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어렵다. 인간사에서도 시대의 부침에 따라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대서의 무더운 여름도 다가올 처서(處暑)에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는 이치를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2024-07-10

과일가게 아저씨

윤명희 수필가 효자동에 원두막이 있다. 원두막이라는 상호가 과수원을 연상케 한다. 가게 앞에는 이제 막 물건을 내렸는지 화물칸이 정리되지 않은 그의 차가 있었다. 미소가 젊은 그는 나를 보자 의자부터 당겼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과일 상자에서 싱싱한 달콤함이 팝콘 터지듯 했다. 손님이 들어서자, 그가 일어섰다. 서너 살쯤 보이는 남자 아이가 익숙한 듯이 진열대로 바로 간다. 아이의 엄마가 어제 아침에 사간 걸 벌써 다 먹었다며, 과일 값이 감당이 안 된다는 말을 툭 던졌다. 그녀의 말에 나는 그들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가 참외를 코에 대고 잘 익었는지 확인했다. 그는 참외 몇 개를 봉지에 담아 건네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새댁, 둘째 낳으라니까”아니,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저런 말을? 결혼과 아이 낳으라는 말은 부모한테도 듣기 싫어하는 요즘 세대 아닌가. 내가 아들한테 결혼의 결자만 꺼내도 눈동자가 반은 돌아가는데 손님에게? 처음 듣는 게 아니라는 듯이 그녀는 아직 생각 중이라며 웃었다. 그는 방울토마토 몇 개를 씻어 아이의 양손에 쥐어주었다. 아이가 배꼽인사를 하고는 엄마보다 앞서 가게를 나선다. 그는 가게 밖까지 나가 손을 흔들었다.젊은 사람한테 무슨 소리 들으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자, 단골손님들에게는 둘째 낳으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보는 이 마다 둘째 백일잔치 상을 최고 싱싱한 과일로 채워주겠다고 정치인이 유세 하듯이 해서, 이젠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벌써 몇 집이나 과일 상을 차려주었다고 했다.“남의 자식에게 말 할 입장이 아닌 건 알지만….”그가 말끝을 흐렸다. 몇 해 전 봄에 결혼 한 그의 딸이 생각났다. 좋은 소식 없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는 딸이 공부 중이라 손자 이야기는 당최 입에 담지도 못 한다고 했다. 그나마 그 딸은 결혼이라도 했지, 항상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첫째는 아예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비혼주의라는 말로 자기에게까지 건너 올 눈총을 애초에 잘라버리는 막내까지 둔 마당에 무슨 말을 하겠냐며 손을 내저었다.애를 낳고 사는 내 딸의 일상을 얘기하려는데, TV에서 애 낳으면 1억 준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하려던 말을 삼킨 나는 1억 준다는 저 말을 젊은 애들에게 하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며 일어섰다.가게를 나서자, 전화벨이 울렸다. 딸은 유치원 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아이들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큰애가 걸음을 멈추고 폰 화면에 얼굴을 들이민다. 흔드는 작은 손이 보이더니, 화면이 작은애에게 간다. 개미를 발견했는지 녀석이 땅바닥에 코를 박을 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방금 들은 1억 준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만지면 안 된다는 딸의 다급한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긴다.딸은 첫애를 가지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이 뒤치다꺼리에 잠 한 번 실컷 자 보는 게 소원이라던 딸에게 덜컥 연년생으로 둘째가 안겨졌다. 작은아이가 장염이 걸리면 큰아이도 따라 자리에 눕고, 한 녀석이 콧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또 한 녀석이 깔축없이 뒤따라 재채기를 해댔다. 먹고사는 일에 바쁜 나는 힘들어 하는 딸에게 자주 가보지도 못하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큰손자가 폐렴으로 입원하고 며칠 후, 나는 모든 일을 제치고 서울 행 기차를 타야만했다. 딸은 나를 보자 대성통곡을 했다. 껌 딱지처럼 등에 업힌 작은 녀석도 따라 눈물바람이다. 나는 그저 안고 토닥여주는 게 전부였다. 병실바닥에는 기저귀와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고,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는 먹다 만 배달음식이 있었다. 링거 줄에 붙잡힌 큰애가 폴대에 올라앉았다. 바깥에 나가자는 신호다. 나는 몇날 며칠 동안 병원복도에서 링거 폴대를 밀고 다녀야했다. 퇴근 후 병실을 찾은 사위는 병원에서 밤을 보내고 퀭한 눈으로 아침 일찍 출근했다.과일로 백일상 차려 준다는 약속 위에 나라에서 돈까지 준다는 말이 얹어지면, 조금 전 과일가게에서 본 새댁은 맛있는 말에 귀가 열리고 마음까지 열릴까. 경력단절에 속상한 딸에게 애는 내가 봐주겠다는 빈말도 못하면서도 과일가게 아저씨처럼 나는 아들의 결혼을 꿈꾼다.

2024-07-10

영국 귀족이 키가 작은 이유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먹는 게 고급이고 자라는 환경도 위생적이다. 게다가 유년기부터 폴로와 사냥으로 다져졌기에 체격이 크고 훤칠할 수밖에 없는 성장 조건.영국 귀족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상하다. 공작과 후작, 백작과 남작 작위를 가진 영국인 후손들의 키가 20세기 초반에 부쩍 작아졌다. 왜일까?세계 제1차대전. 영국 귀족들이 장교로 대거 입대한다. 기마병을 이끌던 경우가 흔했다. 전투에 나선 귀족 출신 장교들은 병사를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 명령만 내리는 걸 ‘비겁’이라 인식했다.총알 쏟아지는 전장에서 가장 먼저 돌격했고, 수많은 귀족 장교들이 전사했다. 모두 키 크고 허우대 좋은 청년들. 그들이 떼죽음을 했으니 유전 법칙에 따라 영국 귀족 후손들 키가 눈에 띄게 작아진 것이라고.군대 지휘관은 솔선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별을 달고 으스대는 자리가 아니다. 2차대전에서 영국과 맞붙었던 독일의 지휘부 중 다수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군 원수 헤르만 괴링,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 선전부장관 요제프 괴벨스. ‘추악한 나치’라고 비난받아 마땅한 이들이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로 치고.군인다운 군인, 장교다운 장교가 드물어진 세상이다. 한국 60만 군인 중 장성은 겨우 400여 명. 최고위급 지휘관인 장성이 술에 취해 민간인과 불화를 일으키고, 부하의 손바닥에 담뱃재를 털고,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에서 일어난 사고의 책임을 피해가려는 태도로 시종하고….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수해 현장에서 숨진 채모 상병 부대의 최고 지휘관 임성근 소장은 ‘혐의가 없다’고 한다. 해병대 출신 지인이 한숨을 쉰다. “이러니 영이 설 수 있겠어요?”/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10

대입제도를 어찌해야 하나

장규열 고문 대학입시 제도는 오랫동안 인생의 경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관문이 되었다. 최근 대입과 관련한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대입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와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의대정원의 급격한 확대로 인한 정부와의 갈등, 의대로의 집중현상, 문과와 이과의 전근대적인 분리와 차별인식은 심각한 문제로 드러난다.의대정원은 한정되었지만,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인 고소득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의대집중현상은 입시 경쟁을 과열시키면서 학생들에게는 일반적인 이공계나 인문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잃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낮아지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인재발굴과 육성이 어려워진다.의대에 대한 지나친 집중은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 요인이 되었다. 문과와 이과를 분리하는 태도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직업 선택과 융합적 사고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한다. 전통적으로 문과는 인문학, 사회과학, 법학 등으로, 이과는 자연과학, 공학, 의학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같은 분리는 학생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의식을 조장하도록 유도한다. 다학제적 접근과 융합적 사고가 점점 중요해져 가는데, 문과와 이과의 분리는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게 만드는 것이다.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학입시 제도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의대정원을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다양한 이공계와 인문사회 분야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바, 문과와 이과의 분리를 해소하고 학생들이 적성과 흥미에 따라 자유롭고 폭넓게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대학입시 제도를 보다 유연하고 포괄적으로 개편해야 한다.학생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적절하게 평가하는 종합적인 사정(査定)시스템을 도입하고, 특정 분야에 대한 편향된 지원경향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교과 성적 외에도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리더십 역량, 사회적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터이다. 대학과 기업, 관공서와 연구소 등이 협력하여 다양한 실습과 현장경험을 제공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로 실무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는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의대정원 문제와 문-이과 분리문제는 단순한 입시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과학 경쟁력과 사회 전반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학생들이 적성과 흥미를 따라 방향과 진로를 선택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한국교육의 미래와 국가사회의 나아갈 길을 밝게 하는 길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협력하여 대학입시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4-07-10

방치농법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3주 정도 비웠던 모두의 집에 들어간 순간, 와…. 말문이 턱 막혔다. 우물 부근엔 내 키보다 더 자란 뽀얀 개망초꽃이 뒤덮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마당도 마치 풀밭 같아 주인없는 폐가 느낌이었다. 작년 백일홍이 찬란했던 꽃밭터도 개망초꽃밭이 되어 있었다. 이를 어쩌나. 풀밭을 그대로 두나, 꽃밭을 만들기엔 너무 힘들고 시간도 늦었지 않을까 머릿속을 굴렸지만 답이 안 나왔다.그러나 텃밭은 그렇지 않았다. 3월과 4월에 흙을 일구고 풀을 뽑고 퇴비를 섞어 찰진 텃밭을 일구었다. 작년 기승부리며 자란 풀 때문에 채소 재미가 적었기에 미리 대비한다고 검은 비닐을 사서 멀칭도 해두었다. 오일장 서는 곳마다 가서 사와 심은 채소 모종들은 키높이를 맞추어 심었다. 가장자리엔 키가 높이 클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그 앞줄엔 쑥갓과 고추모종을 나란히 심었다.양배추, 오이와 콜라비는 앞쪽으로 몇 포기씩 줄을 맞추어 깔아주었다. 호박과 옥수수와 들깨는 담장 저켠으로 좀더 멀찍이 심었다. 자주 물 주러 가서 오목조목 자라는 모습을 즐기고, 하얀 고추꽃, 노란 오이꽃과 호박꽃을 흐뭇하게 보면서 왠지 큰 수확을 할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도 있었다. 양배춧잎, 콜라비잎, 들깻잎과 쑥갓을 따서 쌈 싸먹는 재미를 누리다가 5월 중순부터 거의 3주를 못 갔다. 미처 세우지 못한 고춧대를 아들에게 부탁했고 아들은 약속을 지켰고 사진까지 보내줬다. 그 덕분에 조롱조롱 맺혀있는 연두색 고추가 감탄스러울 정도로 많이 열렸다. 누렇게 달린 늙은 오이와 꼬부라진 오이가 여럿 뒹굴고, 그 옆엔 새끼손가락만한 오이가 꽃까지 단 채 여럿 맺혀있었다.애기 머리통만큼 큰 자색 콜라비도 실하게 자라있었다. 자라다 무게를 못 이겨 흙 위에서 뒹굴고 있는 토마토는 잎 속에 붉고 푸른 열매를 감추고 있고, 익어 터져버린 열매가 땅 위에 그득했다. 마치 하얀 마가렛꽃처럼 앙증맞고 예쁘게 꽃 핀 쑥갓은 해맑게 생글거리고 있었다. 양배추는 넓고 푸른 잎마다 벌레들이 구멍을 내어 멀쩡한 게 없었다. 양배추에 농약을 심하게 친다더니 과연 그렇겠구나.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땅을 덮은 검은 비닐의 작은 틈을 비집고 나온 풀들과 엉겨있었다. 풀을 뽑아주지 못한 터에 이 사달이 난 거였다.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잎 사이를 비집고 방울토마토를 땄다. 다 자란 고추를 골라 따고, 늙은 오이와 젊은 오이도 비틀어 따고, 콜라비도 그 중 큰 놈을 하나 골라 뿌리째 뽑았다. 호박더미를 뒤지니 애호박도 숨어있어 두어 개 건졌다. 향기로운 들깻잎도 잎 넓은 것으로 몇 장 땄다. 순식간에 바구니 두 개가 그득했다. 고마워라 고마워라 감탄하면서 미안해하면서 수확한 채소들이 엄청났다.방치농법이란 말을 듣고 옳다구나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확물이 생기니 딱이다 싶은 말이었다. 더 알아보니 자연농법이란 게 있다. 자연이 짓고 인간은 시중드는 농법이라고 한다. 게으른 농법이 아니라 예사농사보다 품이 더 많이 들 것 같았다. 난 그저 방치를 최소화해서 싱싱한 밥상을 차려준 채소들에게 고마움의 예를 갖출 정도의 위인일 뿐이다.

2024-07-10

건강의 처음과 끝은 음식조절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모든 동물의 인생은 단순화 시키면 태어나서 먹고 자고 죽는다. 태어나면 그때부터 생존을 위해 외부의 에너지를 섭취한다. 외부 에너지 섭취 없인 모든 생명은 죽는다. 우주의 법칙이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생물은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의 섭취이다. 음식물의 섭취가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음식은 입에 들어와서 잘게 쪼개진 후 식도를 통해서 위장으로 내려가고 음식물의 종류에 따라 1시간에서 5시간 정도 머물면서 분해된다. 십이지장을 지나 소장에 도달한다.십이지장에서 여러 소화를 도와주는 이자액과 담즙액이 더해지고 소장에서 융털을 통해 영양분이 흡수된다. 그 후 남은 찌꺼기는 대장을 통해 대변으로 배출된다.소화가 잘되는 음식들은 위장에서 빨리 분해되고 기름기가 많은 튀김류는 오랫동안 분해되지 않고 위장에 머문다. 위장에 머무는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위장과 주변 장기들이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위장의 자극도 심해진다. 고춧가루나 자극성이 강한 음식들은 위벽과 주변장기들까지도 자극을 줘서 염증이나 궤양을 발생시킬 수 있다.내 눈에 고춧가루를 뿌리면 눈이 따갑듯이 내 몸속의 장기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튀김이나 기름진 음식과 함께 범벅된 고춧가루와 자극성 있는 음식들은 위장에 5시간 이상 정도 머물면서 위장을 망가뜨리고 파괴한다. 위장만이 아니라 십이지장 소장 대장을 지나가면서 모든 장기들에 자극을 주고 염증을 발생시킨다. 수년, 수십년이 반복되면 영구적인 기능 이상이 일어난다. 암이나 당뇨 같은 성인병 등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내 몸속 장기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쉽다. 음식을 깨끗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 현미나 잡곡밥을 입에서 100번 씹어 죽으로 만든 후 위장으로 보낸다. 반찬은 최대한 간이 덜된 것으로 하고 싱거울수록, 양념이 덜 될수록 좋다. 반찬 역시 100번 씹어 죽으로 만든 후 삼킨다. 이렇게 하면 위장에서 하는 일이 줄어들어 위장의 부담이 거의 없어지고 소화 기관이 튼튼해진다. 튀김 같은 식물성 기름의 섭취는 최대한 제한을 하고 고기도 살코기 위주로 먹되 양을 줄이고 역시 100번 씹어 죽으로 만든 후 삼킨다. 조리가 덜된 야채를 먹고 나물을 짜지 않게 조리한 뒤 다양하게 먹는다. 채소는 섬유질이 많은데 특히 많이 씹어 삼키면 채소에 있는 우리 몸에 좋은 피토케미컬을 섭취할 수 있다. 국은 먹지 않는다. 고춧가루 설탕 물엿 등의 양념도 하지 않고 넣더라도 아주 조금만 넣는다.처음엔 힘들더라도 먹다 보면 적응이 되고 1주 2주 한달 해 보면 건강이 좋아지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덤으로 살도 엄청나게 빠진다. 아주 간단하나 가장 하기 힘든 방법이며 이 방법은 암이나 난치질환 같은 모든 질환에 적용이 가능하다. 극단적으로는 고기도 먹지 않는 것이 좋으나 그렇게 하면 너무 힘드니 살코기는 소량을 먹으면 된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면 내 몸이 봄에 피어나는 새싹처럼 살아나는 것이 느껴지고 평생 하면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2024-07-10

무표정한 전시공간 ‘화이트 큐브’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보고 즐기는 것은 중요한 문화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지난 20년 사이 한국에도 많은 미술관들이 지어졌고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미술관 설립을 추진하거나 개관을 앞두고 있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작은 마을 곳곳에 미술관이 있는 서유럽 국가들이나 일본처럼 우리도 생활공간 가까운 곳에서 어렵지 않게 미술을 접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반비례해 높게만 느껴졌던 심리적 장벽은 한 층 낮아지고 있다.미술관은 소장한 다양한 미술작품을 소개하거나 작품들을 하나의 주제나 특정한 맥락으로 묶어 전시의 형태로 보여준다. 이렇게 우리에게 미술은 미술관이라고 하는 장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은 비교적 현대에와서 생겨난 것인데 그 뿌리는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16세기 이후 독일어권 귀족사회에서 유행한 이른바 ‘분더캄머(Wunderkammer)’에서 찾을 수 있다. 분더캄머는 개인이 수집한 진귀한 물건들을 모아 놓은 방으로 영미지역에서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고 불렀다. 모으고 수집한 물건들을 진열하고 보여주는 분더캄머가 박물관으로 진화했고 소장품을 미술작품으로 한정지어 보여주는 곳이 미술관인 셈이다.우리가 미술작품 감상을 위해 미술관을 찾듯이 미술작품을 창작하는 미술가들 역시 전시를 목적으로 작품을 창작한다. 19세기 무렵 공공 미술관이 활성화된 것과 맞물려 미술가들은 전시를 위해 미술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현대미술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종종 전통미술에 맞선 진취적인 미술가들의 과감한 실험이 관찰되기는 하지만 현대미술의 태동을 가속화한 주요 사회적 변화는 무엇보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다. 현대미술은 전통미술이 고수해온 거의 모든 부분에 변화를 가져왔다. 작품의 주제와 표현방식, 미술의 목적과 감상 그리고 소비되는 방에 이르기 까지 미술 전 영역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현대미술과 함께 나타나는 여러 변화들 중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전시를 통해 소개된 미술작품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등 사회적으로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현대미술 이전 시대의 미술작품은 전시를 위해 제작되지 않았다. 미술작품은 성격에 따라 크게 종교미술과 세속미술로 분류되는데 어느 경우에 속하든 개별작품에는 분명한 기능과 목적이 있었다. 종교적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은 교회를 비롯해 종교적 장소에 설치되어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세속적인 목적의 작품은 권력과 관계된 장소 혹은 누군가의 사적공간 어딘가를 장식했을 것이다. 이렇듯 미술작품은 장소와 공간, 기능과 목적으로 부터 분리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작품은 장소와, 장소는 작품과 연결되어 밀접하게 있었고, 작품과 장소는 하나의 전체를 구성했다. 미술관이 나타나고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미술관의 전시공간은 중성적이고 중립적이다. 가급적 드러나지 않도록 흰색으로 칠해진 벽면은 무표정한 큐브형태의 공간을 만든다. 그래서 정형화된 전시공간을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 부르기도 한다. 배경이 되는 흰색벽에 작품이 걸리게 되면 어떤 작품이라도 그것이 지녔던 원래의 맥락은 공간에 희석되고 만다. 모든 작품은 창작의 과정 속에서, 그리고 완성되고 소장자의 손에 넘어간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맥락과 관계하며 그 의미를 확장시켜나간다. 그런데 미술작품이 미술관의 벽에 걸리는 순간 그러한 개별적 맥락성이 희미해 진다. 또한 작품이 지나온 개별적 시간성 역시 흐려진다. 대신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전시라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이웃하는 다른 작품들과 복잡다단한 미학적 관계를 맺으며 생명을 이어간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4-07-09

지구에는 나무가 있어서

“지구에는 산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지만, 나는 지구에는 나무가 있어서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하느님이 만드신 만물 가운데 나무만큼 아름답고 착하고 성스럽기까지 한 목숨이 또 있겠는가? 이 세상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하고 모든 목숨을 살아 숨 쉬게 하는 나무들, 그 나무들은 저마다 모양과 빛깔과 크기와 생태가 다르지만 서로 어울리고 도와주고 채워준다. 그래서 모든 나무들이 다 제자리에 있어 제 할 일을 하면서 빛을 뿌린다.”‘이오덕의 자연과 사람이야기- 나무처럼 산처럼’에 나오는 말이다. 청송이 고향인 이오덕 선생님은 아동 문학가이며 교육자로 평생을 우리말 살리기 운동에 앞장섰던 분이다. 교단에서 퇴직하는 그날까지 시골 학교만을 두루 다니며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벗하며 사셨다. 내가 선생님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까닭은 전 국민이 표준말을 강요받던 시대에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쓰던 입말 그대로 글쓰기를 하라고 가르쳤던 점이다. 선생님은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부모님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기셨다.이오덕 선생님은 많은 나무들 중에서 특히 감나무를 좋아하셨다. 선생님 기억 속 감꽃은 보릿고개의 허기를 달래주는 고마운 꽃이었다. 푸른 잎을 매단 감나무의 노래는 참새들을 불러서 안아주고, 발밑으로 내려가 개미들이 가는 길을 밝혀주고, 지렁이와 다람쥐들이 한 식구가 되게 한다고 했다.감나무 가지만큼 너그럽고 자유롭게 뻗어가는 나무는 없다고도 했다. 뻗어 나가던 가지가 다른 가지와 부딪칠 성싶으면 곧장 방향을 틀어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다시 뻗는다. 아름답게 하늘을 채운 겨울 감나무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무의 성자란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실제로 그러한 특성 덕분에 다른 과일나무와 달리 감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선생님의 동시에는 감나무 못지않게 포플러나무를 예찬한 것들이 많다.“눈부신 수만의 비늘을 단/ 물고기/ 호수에 잉어가 꼬리 치듯/ 하늘에는 포플러가 살아간다./ 파도 소리보다 더 찬란한 호흡으로/ 흐느끼며 헤엄치는/ 그 곁에 내가 서면/ 구부러진 허리가 죽 펴지고/ 겨드랑이에 푸른 날개가 돋는다.”- ‘포플러 1 전문’이오덕 선생님이 교사 시절 잠시 머물렀던 화목초등학교 앞 넓은 신작로 양쪽으로는 키 큰 포플러 나무가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 오가며 행복에 겨운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는 걸 선생님 펴내신 책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포플러라는 이름은 라틴어 민중(Populus)에서 왔다고 한다. 가지를 옆으로 뻗지 않아 햇볕을 가리지 않음으로써 다른 나무들과 더불어 사는 것도 포플러가 가진 특성이다. 나비나 나방의 애벌레가 포플러에 기대 살면서 작은 생태계가 형성되는데 어떤 나무보다 애벌레를 많이 키워낸다.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서 으깨지면 특유한 향을 발산해 더 많은 애벌레와 곤충이 모여드는 것이다. 하늘 높이 키가 자라서 새가 안정감을 느끼고 둥지도 많이 짓는다.그러고 보면 포플러는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하며 아이들을 위해 사셨던 이오덕 선생님을 많이 닮은 나무다. 하지만 포플러에서 나온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엉뚱한 오해를 받고 나무는 가차 없이 베어졌다.나는 이런저런 일로 선생님의 생가가 있던 현서면 덕계리를 자주 지난다. 사라진 생가 부근엔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오덕 작은 문학관이 있어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무처럼 사셨던 선생님을 떠올리고 고개가 숙여지곤 한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과 달리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 길을 지나기 힘이 든다.누구보다 나무를 사랑하고 자연을 노래했던 선생님의 고향에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까닭이다. 덕계리 주변 도로엔 그 옛날의 포플러 대신 은행나무 가로수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봄이 지나 녹음 우거진 계절이 되어도 몇몇 나무에서는 초록빛을 볼 수 없었다. 주변 과수원에서 빛이 들지 않아 농사에 방해가 된다며 나무에 몹쓸 짓을 한 것이다. 푸른 잎 하나 달지 못하고 맨 둥치로 서 있는 나무가 언제까지 버텨줄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그 길을 차들이 씽씽 내달린다. 볼수록 참담한 풍경이다. 박월수 수필가 나무는 지구별에 사는 생명체에게 베풀기만 하는 존재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므로 대기를 맑게 하는데 이는 지구 가열화를 늦추는데 크나큰 도움을 준다. 뿌리로는 토양을 고정시켜 바람과 물로 인한 침식을 막는다. 또한 토양 흡수를 통해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많은 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생태계의 안정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오래전, 감나무 아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푸른 잎들 속에 숨어 어린 새소리를 듣고 감 잎사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파란 하늘을 본 이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세계에 와서 숨 쉬고 있다는 행복감에 젖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지구에는 나무가 있어서 시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산다. 바라보기만 해도 위안이 되는 나무를 헤치는 사람은 마음에 병이든 사람이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박월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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