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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

등록일 2025-02-03 18:55 게재일 2025-02-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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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

소리는 잠자는 풍경을 깨운다. 옛 노래를 들으면 세포들이 서서히 돌기를 세운다. 그것은 나를 추억이라는 간이역으로 데려간다. 과거와 오늘의 내가 만나는 접점, 그 플랫폼에 내리면 유년 시절에서 출발한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 풍금이 있네.”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폐교가 된 모교를 정리하다가 풍금 하나를 발견했단다. 풍금? 순간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음표들이 술렁거렸다. 잠시 통화하는 동안 마음은 벌써 신발을 신고 있었다,

정문을 지나 운동장에 들어섰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사라진 텅 빈 운동장에는 손질 안 된 잡풀들이 무성했다. 이순신 장군의 긴 칼은 반 토막이 나 있고 비바람에 살이 튼 폐타이어는 모래 군데군데 힘없이 박혀 있다. 그네는 무료함에 지쳤는지 저 혼자 바람에 흔들린다. 녹슬고 망가진 폐허 속에서도 담 모퉁이를 따라 들국화는 방긋 피어 나를 반겼다.

문짝이 사라진 교실 입구에는 2학년 2반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미처 챙겨가지 못한 짝 잃은 실내화, 아이들을 긴장 시켰을 회초리와 교재, 검정이 내려앉은 부러진 분필이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산산조각이 나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유리와 잡다한 것들이 흩어져 교실은 을씨년스러웠다. 다 떠나고 홀로 남아 무섭다는 듯 풍금이 한 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풍금에는 켜켜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이들이 붙어 이 반 저 반으로 옮겨 다니던 자신의 인기를 잊은 듯 조용하다. 오랜 시간 자신의 이름은 물론 목소리조차 잊었을 그것. 풍금의 뚜껑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열었다. 두려움을 토해내듯 뿌연 울음을 쏟아냈다. 손 때 묻은 건반 위에 내 손을 포갰다. 검은 건반, 하얀 건반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자 잠자던 음표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음표들은 도돌이표를 돌아 어린 시절로 날아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총각 선생님은 인기가 좋았다. 축구도 잘 하고 여러 과목도 잘 가르쳤다. 그런데 음악 시간이면 나에게 건반을 맡겼다. 선생님은 풍금을 켜지는 못했던 것이다. 풍금 의자에 앉으면 내가 선생님이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다.

발판을 있는 힘껏 꾹꾹 밟았다. 선율이 교실에 가득 퍼지면서 70명의 아이들은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반주가 멈추면 아이들의 노래 소리도 멈추고 반주가 시작되면 노래 소리는 풍금의 선율을 타고 느티나무를 돌아 담장을 넘었다. 나는 음악 시간마다 탈피를 끝낸 나비처럼 날개가 돋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성악을 전공하며 이곳저곳에 초청을 받아 노래를 불렀다. 졸업 후에는 지역합창단원으로도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숨표에서 숨을 고르고 쉼표에서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탓일까. 가을비가 내리던 아침,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큰 돌이 박힌 듯 목이 갑갑했다. 일주일을 버티다 병원에 갔다.

“노래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성대를 잘라 냈다. 목소리가 갇히자 마음의 문도 조금씩 닫혀갔다. 모든 것들이 그늘져 보였다. 뻐꾸기 울고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음침하게 들렸다. 합창단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돌아서는 나를 배웅 하는 건 커튼이 내려 온 텅 빈 무대뿐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공연장을 찾았다. 구석진 객석에 숨어 앉았다. 막이 열리고 합창단원들은 앞줄부터 무대를 채웠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첫 곡이 울렸다. 동료들의 목소리가 다 모인 자리에 내 목소리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노래책을 끄집어냈다. 성냥을 그었다. 그 후 오래도록 음악과는 결별했다.

풍금을 집으로 옮겼다. 반질반질 닦았다. 건반 하나하나에 잠자는 소리를 깨우고 싶었다. 다리를 모으고 발판 위에 발을 올렸다. 페달을 밟으며 건반을 눌렀다. 소리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 한 곡을 불렀다. 폐허 속에서도 꽃이 피듯 내 마음도 환해졌다. 풍금은 내가 잃어버린 소리를 15년 만에 찾게 해 주었다. 집안 가득 내 마음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김경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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