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다. 항상 불안하다. 나는 왜 불안한가.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나의 불안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 번째, 나의 불안은 늘 무언가 해야 한다는 데서 온다. 매주, 격주, 매월 신문에 글을 쓰는 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 원고를 하나 완성하고 나면 다음 마감까지 여유가 생기지만 시한부다. 항상 무언가 써야 한다는 것, 쓰지 않아도 될 때조차 써야만 한다는 강박. 그것이 내 불안의 제1근원이다. 논문을 쓰면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 시를 쓰면 논문을 써야 한다는 초조함이 나를 갉아먹는다.
두 번째, 나의 불안은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무언가 되어야만 하지만 무언가가 되는 것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변변히 자리를 잡지 못한 계약직 비전임 강사 생활은 세월이 쌓일수록 불안을 키운다. ‘이대로 실패한 루저가 되어 한번 뿐인 생을 망칠지 몰라’, ‘지금껏 잘못 걸어왔고 계속 가봤자 이 길 끝엔 아무것도 없을 거야’ 따위 내 생에 대한 거시적 불안부터 ‘방학 때는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데 이번 달 대출이자는 어떻게 갚지’, ‘이번 학기를 마치면 계약이 종료되는데 가을부터 당장 뭘 해서 먹고 살지’ 같은 생계 관련 미시적 불안까지 나를 감싼다.
만성화된 불안은 건강, 대인관계, 연애와 결혼 등에도 전이되어 불안의 합병증을 일으키고 있다. 홍국, 오메가3, 밀크시슬, 프로폴리스, 비타민, 양배추진액, 홍삼, 차전자피 등등을 챙겨먹는 건 과도한 건강염려 탓이다. 불안에 잠식당하면서 사람을 대할 때도 활달함과 당당함을 잃어가는 듯하다.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전화를 기피하는 이른바 전화공포증이 나한테도 있는 모양이다. 카카오톡이나 SNS 메신저 등 타인과 대화창이 열리는 것 자체를 꺼린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수백 개다. 지금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무언가 되어야만 하지만 무언가가 되는 것에 계속 실패하고 있는 내 처지에 스스로 위축되어 연애와 결혼을 아예 포기했다. 그러니까 그 포기가 또 불안하다. 이렇게 혼자 살아도 될까. 이대로 늙어 죽으면 누가 내 장례를 치러줄까.
내가 자주 꾸는 꿈이 있다. 꿈에서 나는 종종 공연이 바로 내일인데 아직 대본을 하나도 외우지 못한 배우이거나 무대 연습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연출자가 된다. 그 꿈을 꾸는 날엔 꿈속에서도 식은땀이 흐른다. 어제는 그 꿈이 살짝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서, 시합이 내일인데 라이트급 한계 체중 70kg으로 감량을 하지 못한 격투기 선수가 되어 있었다. 라이트급으로 감량을 하려면 20kg 이상을 하루만에 빼야 하는데, 패딩을 입고 주섬주섬 줄넘기를 집어 들면서 너무 불안했다. 그 불안의 감각은 꿈에서 깨고 나서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얼마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으로부터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들은 게 작년 12월 19일이다. 그날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신 새해 1월 14일까지 거의 한 달 동안 언제 전화가 울릴까 노심초사하며 불안해했다. 장례를 마치고 한 달간 붙잡혀 있던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도쿄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 여행이었다. 우에노 동물원과 도쿄 근교 시골마을인 하코네를 걸으면서 마음이 편했다. 불빛 하나 없는 산 중턱의 료칸에서 쏟아질 듯 글썽거리는 별들을 바라봤다. 아무 근심 없이 밤하늘의 별을 본 게 얼마만인가. 비록 5박6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불안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열차 시간에 늦을까봐, 점찍어둔 음식점이 문 닫았을까봐 불안했는데 그런 불안은 사실 설렘에 가깝다.
그렇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감량 실패한 격투기 선수의 꿈을 꿨다. 다시 생각해보자. 도쿄에서 하코네로 가는 로망스카 특급열차를 타러 가던 아침과 요코하마의 이름난 노포 키후네 스시로 가던 저녁의 불안 혹은 설렘을. 그래!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불안을 설렘으로 바꾸면 된다. 불안을 불안으로 느끼는 대신 떨림으로 감각하자. 아직 쓰이지 않은 아름다운 문장들이 내 안에 꿈틀대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혼자 늙어 죽을 게 불안하면 사랑을 하자. 사랑을 하려면 우선 전화를 잘 받고 카톡을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