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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본기업의 혁신문화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기업의 미래가 있는 것은 혁신적인 사고와 개선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초경쟁시대에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일반적인 생각으로 미래 경쟁력의 중심에 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경제 선진국 일본 기업이 고객의 사랑을 받고 지속 가능한 경영이 되는 것은 품질우선주의로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에서 시작된다. 일본 기업의 혁신 문화는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서구 기술과 문화를 수용하며 품질관리와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경영기법으로 발전해 왔다.1901년 야하다제철소(현재 일본제철)가 탄생하며 강재 생산이 시작되었고 초기 미국 품질관리 전문가 데밍의 영향을 받아 전사적 품질관리(TQC: Total Quality Control)로 양질의 제품을 고객에게 공급하는 경영 방식이다. 일본 기업의 혁신 문화와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일본 기업 혁신 문화와 특징은 개선(改善), 일본어로 카이젠(Kaizen)이다. 최고의 품질을 고객에게 공급하기 위해 전 직원이 참여하는 ‘끊임없는 개선’이 기업의 혁신 문화로 자리매김 했다. 필자가 일본을 여러 해 컨설팅 하면서 느낀 것은 일본 기업 혁신을 이해하려면 사회문화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문화는 오랫동안 내려온 정치, 종교, 사회 전반의 변화에서 형성 된 국민성이다. 일본 기업의 혁신 문화 형성의 근간은 국민성과 직결됨을 알 수 있다. 전원 참여 ‘끊임없는 개선’의 카이젠 문화는 사무라이 정신에서 시작된다.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60개 성 싸움을 하는 과정에 무사의 룰을 만들어 지키지 않으면 목에 칼이 들어 온다. 첩자와 간자가 있으면 한 순간 전쟁에서 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과정에서 보면, 10개 작업의 순서가 있으면 무조건 지킨다. 10개 작업 과정에 낭비를 찾아 끊임없이 개선하기에 후퇴하는 것이 없고 계단식 전진 문화만 있을 뿐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선진 기업이 되는 것은 이러한 개선 문화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일본 기업의 혁신 문화는 크게 다음 내용으로 형성된다. 첫째, 낭비 없는 린(Lean) 생산방식이다. 사회적 필요에 따라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싸게 생산해서 필요한 때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산 프로세스 내에 미래 강재를 포함하는 생산 조건의 불합리를 찾고 한 발 앞 선 AI기술 등을 적용하며 끊임없는 개선으로 스마트 한 생산 요건을 갖추어 간다. 둘째, 강종 개발이다. 미래 사회에 필요로 하는 강재를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해 RD 투자를 지속하고 새로운 강재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다. 지역 시민 발전과 기업 문화를 공유하고 지구환경을 위해 탄소중립 친환경 공법의 제철소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훌륭한 기업 혁신 문화는 직원들이 공감하는 현실적이고 미래가 있는 경영 방향에서 시작된다. 오랜 시간 흘러온 국민성과 자사의 조직문화를 이해하고 기업의 성장 비전과 목표 달성에 맞는 혁신 기법, 운영시스템을 체계화 해야 가치 있고 흔들리지 않은 선진기업 혁신 문화로 갈 수 있다.

2024-07-09

동서공감 시낭송의 향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디선가 치자꽃 향기가 날려 올 듯한 7월이다. 제주에서는 치자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는데, 보름 전쯤부터 장마가 시작됐으니 아마도 제주의 치자꽃은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으리라 여겨진다. 유난히 진하고 멀리 간다는 치자꽃 향기가 들판을 채우면 세상은 한바탕 뜨거운 신열을 앓듯 후끈한 여름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 태세다. 땡볕과 폭염, 장마에 지쳐갈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바람 결에 날려오는 치자꽃 은은한 향기는 여름날의 청량제 같은 시원함이 있지 않을까 싶다.7월이 치자꽃 향기를 몰고 오듯이 여름을 맞이하는 가슴을 시낭송의 향기로 채워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의 행간을 목소리의 예술로 채우면서 시낭송의 꿈과 상상의 나래 속에 감성과 재능의 여울로 물들이고 익어가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역과 지방 사람들이 오가며 만나 시와 낭송의 향기를 피우고 어우러지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이들은 ‘시낭송 포럼 동서공감’을 해마다 열면서 화합과 우정을 다지고 있다.시를 통해 영·호남이 하나가 되는 자리, 문화와 예술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구와 경북의 시인·시낭송가들과 전북에서 활동하는 시인·시낭송가들이 동서의 벽을 허물고 경계의 선을 넘어서 오롯이 시와 시낭송을 매개로 만나서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 빠져드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1년에 한, 두 차례씩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고 가며 시를 전하고 시를 닮아가는 고운 눈빛으로 영호남의 시낭송가들이 교류하고 공감하는 일은 지역화합과 상생협력 차원에서도 바람직하고 가상한 일로 여겨진다. 그렇게 교감하고 우정을 나눠온지 올해 10년째를 맞았다.올해는 ‘너의 하늘을 봐’라는 주제에 ‘다시금 새롭게, 다함께 더 멀리, 함께 가요 우리!’라는 부제로 전북재능시낭송협회가 주최·주관하여 지난 주 전주교육대학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밤하늘의 별을 다채로운 시낭송과 시극의 변주로 노래하고, 꽃과 달빛에 스며드는 애틋한 시를 품으며 절망이 희망을 낳던 밤에도 별을 만지듯 기다리다가 민들레 꽃으로 피어나는 시의 울림과 떨림은, 강물을 터놓는 기쁨으로 감동을 물결치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그러한 자리에 본인들의 시가 어떻게 목소리의 예술로 그려지고 음향과 영상을 결들인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해 세상에 다가가는지 시인 자신들이 직접 참석해 한결 자리가 빛났던 것 같다.‘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내가 모든 사람들을/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그가 지닌 향기를/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어쩌면 마지막으로/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우리의 삶 자체가/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이해인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중에서시낭송이란 생명의 언어로 만들어진 시를 우아한 육성으로 전함으로써 시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더해 주는 소리 표현의 미학이자 예술이다. 향기로운 시를 더욱 맛깔스럽게 하는 시낭송의 전파로 동서가 교감하고 남북이 더불어 공감하는 계기가 된다면 동질감 회복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시낭송으로 더욱 행복해지는 동서공감의 융성을 기대해본다.

2024-07-09

‘부자감세’ 정부…양극화 그늘 안보이나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내년부터 ‘기업주가 밸류업’과 법인·소득·상속세 감면을 추진한다고 최근 밝혔다. 모두 재계의 오래된 민원이다. 기업주가 밸류업은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환원을 늘린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깎아주고, 해당 기업 주주에게도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다.결국은 ‘부(富)의 집중’을 인정하자는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부의 집중도는 증시 시가총액을 보면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 증시에서 4대 대기업 가문(삼성, SK, LG, 현대자동차)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은 전체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로이스가 “정치권력이 부의 불평등을 만든다”고 한 말에 실감이 가는 감세정책이다. 로이스는 권력층에서 자본이 있는 쪽으로 자본을 더 쏠리게 하는 제도를 만든다고 했다. 로이스가 언급한 제도는 세금과 부동산, 상속, 교육제도다. 그는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는 책도 냈다. 그는 자본만큼이나 불평등하게 분배된 권력을 바로잡지 않고는 양극화를 몰아낼 수 없다고 했다.우리사회는 전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소득이 상위 20%에게 집중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4년 1·4분기 ‘소득 5분위별 가계수지 조사’ 내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월 평균소득이 1분위(하위 20%)가구는 115만7000원인데 비해 5분위(상위 20%)가구는 1125만 8000원이다. 부자와 빈곤가구의 소득이 평균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교육양극화도 충격적인 수준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중3·고2대상)’를 보면, 부유층 아이들이 고가의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갈 동안 공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가난한 아이들은 기초학력마저 무너지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고2 수학 과목 기초미달 비율은 계속 상승세를 타다 2022년에는 15.0%까지 올라갔다. 한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해석력이 떨어지는 중·고생들도 증가하고 있다. 교육양극화는 졸업 후 직업과 소득의 격차로 이어진다.수도권·비수도권 간의 주택가격 양극화도 심각하다. 최근 수도권은 아파트 거래량이 늘어나고 일부 단지에서는 신고가(新高價)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을 비롯한 비수도권에서는 여전히 청약이 미달되고 ‘악성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빈부(貧富)를 가르는 주택가격 양극화는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다.정부가 양극화의 심각성을 무시한 채 부자감세 정책에 몰두하는 모습은 국민 눈에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비친다. 부자감세 정책은 결국 ‘계층이동 사다리’를 차버리겠다는 발상이다. 권력의 주축을 이루는 정부 고위 정책입안자나 정치인이 재계의 민원에 종속되면, 한국사회는 희망이 없다. 양극화가 이대로 지속되면 결혼도, 자녀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그러려면 권력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재산을 형성하고, 권력을 재생산하는지를 잘 감시해야 한다.

2024-07-09

찜통차 안전사고 예방법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달 미국 텍사스에서 벌어진 일이다.바깥 온도가 37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던 날. 쇼핑몰 주차장에 세 자녀가 탄 차량을 놔두고 쇼핑을 즐기던 엄마가 아동 유기등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뜨겁게 내리쬐는 더위로 차량안은 찜통을 방불케 했다. 어린아이 3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울고 있는 것을 지나가던 주민이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 다행히 어린이들은 무사히 구조됐으나 자칫 큰일 날뻔한 일이었다. 경찰은 50도가 넘는 차량안에서 세 자녀가 50분가량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 미국에서는 올들어 벌써 7명의 어린아이가 찜통차 안에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에도 30명의 어린아이가 부모의 무관심 등으로 찜통차 안에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매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고 있지만 당국의 홍보에도 사고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최근 일본에서 생긴 일. 한 유튜버 부부가 무더위 속에 차에 갇혀 울고 있는 두 살 딸아이를 곧바로 구하지 않고 반응을 지켜보는 영상을 올렸다가 많은 지탄을 받자 영상을 삭제한 일이 벌어졌다.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찜통차에 아이를 두고 잠시 볼일을 보러갔다가 어린이가 열사병으로 숨지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잠깐이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조차 매우 위험하다.미국에서는 매년 같은 종류의 사고가 반복되자 ‘잠그기 전에 다시보기’(Look Before You Lock)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는 캠페인도 벌인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이다. 찜통차 안전사고 예방법 정도는 알아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9

이중기 시인의 회상하는 시의 궤도 “우야겠노. 그래도 우야겠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10년 전 고향의 후배이기도 한 이중기 시인에게서 자신의 시집 ‘시월’(삶창)을 전해 받으면서 늦은 시간까지 고향 영천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잠시 백신애문학기념사업회 대표를 맡아 달라고 하여 1여 년 소통한 인연이 있다. 그는 참 아름다운 시인이라는 생각에는 늘 변함이 없다.지난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거나 회상하는 과정에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그 공간에 유통되던 방언이 출연한다. 영천 농민 시인인 이중기의 시에는 유독 역사성, 특히 10월 항쟁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면서 방언이 낯선 얼굴을 내민다. 10월 항쟁의 증언과 진혼의 시편들이 역사적 궤적과 일치하느냐의 문제는 별개로 삼더라도 그의 시편 속에는 영천의 숲속에 살던 분노한 사람들의 영혼을 불러내는 제의성을 띄고 있다. 마치 공수하는 언어의 모습으로 방언들이 빛을 드러낸다. 시인이 민란이냐 항쟁이냐를 평가하거나 재단할 만한 이유를 찾는다거나 화북에서 150여 명이 죽고 이직골에서 300여 명이 처분되었다는 풍문인지 사실인지의 문제를 뛰어넘은 한 시인의 회상적 상상력은 독자들을 환기하기에 충분하다. 예술의 프로파간다적 미묘한 힘이 사회비판적 기능과 엮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문학은 직접적인 이데올로기가 될 수는 없다. 시는 깨끗하게 처리된 역사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다.‘높게더기’, ‘한털뱅이’(서시), ‘깐깐오월’(가죽풍구), ‘생량머리’(밀수출), ‘질금’, ‘더꺼머리’(하곡수집령), ‘보쌀치기’, ‘쪼매만’, ‘쯔그렁’, ‘작달비’(도정 금지령), ‘노굿이’, ‘힘아리’, ‘가무살이’, ‘가치배미’, ‘전나귀’, ‘찔끔’, ‘아갈잡이’(공출량조사), ‘참지름’(영천아리랑), ‘중뜸’(옥장이 아버지), ‘성걸어’(배내기 소), ‘살결박’(새벽 북소리), ‘되직’(면죄부 장사), ‘살결박당한’(입산)과 같은 신선하고 아름다운 토속어가 시 곳곳에 묻혀있다. 그러나 시인의 작품은 대구, 경주, 포항으로 확대된 10월 항쟁이라는 사건을 친일파와 미군정이 빨갱이를 단죄하는 과정에 피를 흘렸던 민중들의 시각을 대변하기 때문에 다소 격렬하고 견강부회의 장면들이 나타나 작품의 예술적 심미의 충격을 줄인다. 역사를 주관적 차원에서 해석한 것이어서 객관적 차원의 사회과학적 진실과는 격리될 수도 있다.“성질대로 한다면 그 새끼들 다 때려죽인 뒤/ 나는 그만 칼을 물고 팍 엎어지고 싶지만 그러나 우짜겠는기요, 성님/아 새끼들이 배고프다고 징징거릴 때마다/ 죽은 어무이 생각보다 먼저 성님 얼굴 떠오르니더/ 그러이 이 판국에 우짜겠는기요/ 배급은 두당 두 홉 네 작으로 즈그들이 정해놓고/ 다섯 식구 목구녕으로 곡기 넣어본 지가 언젠데/ 아나 여깄다. 쌀 한 동가리 안 주니더/ 씨팔, 이게 무신 나란기요.”(이중기의 ‘두형제’) 10월 혁명의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과 연결된다. 작자의 상상이 감정을 폭발시켜 시 정신을 멈추게 한다. 너무 배가 고프다고 할 때나, 너무 추워도 옷을 헐벗어 분노할 때, 시는 사라진다. 잔인한 당시를 간접 체험으로 상상력을 자극할 경우 더욱 격렬해져 보편성의 한계를 좁히고 있다. 그 사이에 향토 방언이 섞여들면서 예술적인 소재주의의 한계를 좀 뛰어넘도록 도와주고 있다. 정경묘사를 위해 방언이 토속의 일부가 되고 오리무중으로 엷어진 시인의 의식을 이데올로기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굴절시켜주기도 한다. 이렇듯 방언은 저항적 시작품에서 사회성에서 일탈하여 심미성으로 물줄기를 돌려주는 효과를 발한다.이중기 시인의 ‘시월’(‘삶창’, 2014)은 고향을 지켜온 농민이자 시인으로서 듣고 보아온 10월 항쟁의 생채기를 시의 힘으로 폭로하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다분하다. 역사의 리얼리티 문제와 해석의 문제 이상으로 문학의 예술성의 깊이가 더 중요하다. 사회성의 문제나 정치적 이데올로기 문제보다 더 강력한 충격을 전달하기 위해 그가 동원한 것은 현장의 시어다. 이중기 시인이 질서의 붕괴를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회비평의 일부로 시의 예술적 지위와 질서를 붕괴시키지 않는 유효한 장치가 되었다. 그의 시에 일관하는 서사적 구조와 사투리의 토속적 분위기는 사실성 문제의 시비를 줄여주는 장치가 되었다. 다만 이런 고발적 문학 작품의 사실성과 시적 정직의 문제는 별도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2024-07-08

기억의 나누어 갖기

2024년 4월 25일부터 4월 28일까지 제가 근무하는 대학의 HK+사업단에서는, 근대 일본을 이해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으로 히로시마 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히로시마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먼저 원자폭탄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 ‘리틀 보이(little boy)’는 무려 20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대미문의 비극이었습니다. 히로시마에 도착한 우리 일행이 가장 먼저 찾은 곳도, 그 날의 ‘원폭’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이었는데요, 평화기념자료관, 원폭돔, 추도기념관, 그리고 각종 위령비로 이루어진 평화공원은 무려 12만㎡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초대형 시설이었습니다.수많은 구미(歐美) 관광객들과 곳곳에 설치된 위령비로 가득한 평화공원을 조금만 걸어도, 누구나 핵의 비극과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저에게는 이 공간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원폭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이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어 충분히 공유되고 있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찜찜함은 얼마 전 장혜령의 ‘당신의 히로시마’(문학과사회, 2021년 겨울호)를 읽으며 느꼈던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히로시마’는 히로시마를 방문한 아흔 살의 김정순(金貞順, 일본명 가네모토 테이준)이 자신의 첫사랑인 하라 다미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서간체 소설인데요. 하라 다미키는 히로시마에서 나고 자랐으며, 원폭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도쿄로 건너온 소설가입니다. 정순은 하라 다미키와 “평생에 한 번뿐일 사랑”을 나누었는데요.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으며, 존재의 벽을 뛰어넘지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때문에, “당신은 이제 죽어도 되잖아요. 뭘 더 머뭇거리는 거죠”라는 냉소의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고는 했던 하라 다미키가 원폭의 기억에 갇힌 수인(囚人)이기 때문입니다. 하라 다미키는 ‘나’와 대화를 나눌 때면, 늘 “당신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죠. 결국 히로시마의 상처로 혼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던 하라 다미키는 자살하고 맙니다.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었던 정순은 비록 연인이기는 했지만, 하라 다미키를 괴롭힌 원폭의 기억으로부터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정순은 귀국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원폭의 기억과 관련하여 정순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하라 다미키의 모습은, 히로시마의 원폭을 다루는 일본의 태도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일본은 원폭 피해를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한순간에 수만 명의 삶이 사라진 원폭 피해는 일본만이 경험했으며, 그 때의 끔찍함과 잔인함은 그 어떤 폭력과도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거죠. 이처럼 ‘원폭의 피해’를 유일한 것으로 절대화하게 되면, 원폭을 둘러싼 수많은 맥락과 사람들이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테면 원폭 이전의 침략전쟁으로 수많은 인류가 사망했다는 사실이나, 일본인 이외에도 20개국에 이르는 사람들이 히로시마에서 피폭되었다는 점 등이 충분히 사유될 수 없는 것이죠.이와 관련해 ‘당신의 히로시마’에 등장하는 “조선인 박화자”의 존재는 참으로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박화자는 히로시마에 살다가 피폭되었으며, 이후 ‘원폭병’을 얻고 귀환하여 다른 피폭자들과 함께 합천의 요양소에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삶의 끝자락에 이른 박화자는 “히로시마를 한 번은 다시 보고 싶다”며, 아픈 자기 대신 정순을 히로시마에 보낸 것입니다. 히로시마의 원폭은 하라 다미키와 같은 일본인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히로시마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도 향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히로시마는 결코 하라 다미키, ‘당신의 히로시마’일 수만은 없는 거겠죠. 그런데 ‘당신의 히로시마’는 또 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가 원폭이 남긴 고통의 기억을 ‘일본인의 것’으로만 독점하는 것을 의미했다면, 두 번째 의미는 원폭에 담긴 응보의 의미를 ‘일본인의 것’으로만 되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평생 일본을 미워했던 정순의 아버지가, 히로시마 원폭 소식을 듣고서는 “몹쓸 인간들이 천벌을 받은 게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나죠. 그러나 이 말은 “그 몹쓸 인간들 속에 우리와 같은 조선인들이 있었음”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실제로 히로시마 전체 희생자 중 10%가 재일조선인이었으며, 그들의 후손이 여전히 고통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히로시마는 결코, ‘당신의 히로시마’일 수는 없으며 히로시마에 살았던 ‘모든 이들의 히로시마’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당신의 히로시마’를 넘어 ‘우리의 히로시마’가 될 때, ‘히로시마의 기억’은 망각의 어둠 속에 사라지지 않고, 모두의 가슴에 남아 세계평화의 등불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이런 맥락에서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데요. 높이 5미터에 이르는 이 한국식 위령비는 1970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평화공원 바깥에 놓여 있다가 1999년에 이르러서야 재일한인과 여러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평화공원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원의 중심에서는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한 이 위령비는 역사적 기억을 나누어 갖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없이 웅변하는 듯 보였습니다.

2024-07-08

누군가의 시선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주말 넷플릭스에서 ‘THE 8 SHOW’를 보았다. 드라마는 사회에서 각기 다른 실패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여덟 명이 비밀스러운 초대를 받아서 한 공간에 모이며 시작된다. 이들은 1부터 8까지의 숫자를 뽑고 해당 숫자의 층에서 살게 된다. 그들이 뽑은 층수는 매분 벌 수 있는 돈의 숫자와 비례했다. 8층은 1층의 여덟 배를 벌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1층도 사회와 비교하면 엄청난 돈을 벌지만,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는 일반 물가의 백 배를 주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THE 8 SHOW’는 직업별 연봉의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부모의 직업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에서 계급의 고착화가 이루어지는 모습이나 코로나19 바이러스 이후 경제 살리기를 위한 현금 유동성이 증가하고, ‘파이어(FIRE) 족’에 대한 욕망이 널리 공유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현실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기 어렵지 않은 이유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이야기가 그만큼 구체적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러한 현실과의 연결고리 속에서 CCTV로 여덟 명의 행동을 응시하고 있는 누군가를 생각했다. 드라마에서 여덟 명은 자신들의 행동에 CCTV 바깥의 누군가가 만족하면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시간이 곧 돈이기에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욱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구조이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1층이 죽고 나머지 사람들은 CCTV를 전부 파괴하고서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CCTV를 통해 여덟 명의 행동을 관찰하며 웃고 떠들며 돈을 지급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1998년 개봉한 ‘트루먼 쇼’와 ‘THE 8 SHOW’는 자신의 일상을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는 자기의 삶이 생중계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갔지만, ‘THE 8 SHOW’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일상이 생중계된다는 점을 인지하고도 돈을 위해 기꺼이 게임이 참여한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단 중요한 점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전시(展示)하는 삶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트루먼 쇼’가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면 ‘THE 8 SHOW’는 그 결과를 보여준다. 가난이란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한 ‘THE 8 SHOW’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폭력적 행동이 익숙한 까닭은 바로 그 내면을 가진 주체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다시 묻자. 바로 이런 우리의 모습을 감상하며 즐기는 자들은 누구일까? 사람이거나 제도, 그 자체일 수 있다. 소수 권력자에 의해 법과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사람의 모습을 자주 본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해타산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나의 감정과 행동을 보며 즐거워할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THE 8 SHOW’처럼 누군가 죽기 전에 이 게임을 끝낼 수 있을까?

2024-07-08

탈리타 쿰

강길수 수필가 주일미사에 일찍 도착했다. 기다리는 동안 늘 해오던 대로, 휴대폰 매일 미사 앱을 열어 그날 미사 경문들을 읽는다. ‘복음’을 보는데, ‘탈리타 쿰’이란 말에서 시선이 멈췄다. 마음에 간절한 바람이 일어난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방금 죽은 12살 소녀는, 예수가 한 이 말로 되살아났다. ‘탈리타쿰’은 예수의 모어 아람어다. 이 이야기는, 야이로란 회당장(會堂長)의 믿음과 그에 응답하는 예수에 관한 신앙을 보여준다. 아버지 회당장은 죽어가는 딸을 위해 예수를 찾아가 위신, 체면 다 버리고 그 앞에 엎드려,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한다. 이에, 예수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딸은 죽고 만다.도착한 예수는,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타 쿰!”하고 명령했다. 이 말에 소녀는 곧바로 일어나 걸어 다녔다. 굳게 믿는 아버지의 간청을 들어주는 예수의 권능으로, 죽었던 아이가 살아난 엄청난 신앙 사건이다.덧붙여 내 시선이 멈춘 것은, 이 이야기가 거울 되어 우리나라의 요즘 모습을 비췄기 때문이다. 내다 버린 진실, 정의, 공명에 목말라 답답한 가슴에 예수의 간단명료한 명령이 하늘 화살로 와 박혔다. 우리 사회가 꼭 죽은 소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일본을 방문했던 시성 타고르가 한국에 못 오게 되자, 우리 민족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짧은 시를 주었었다. 바로 ‘동방의 등불’이다.YS 정부의 국방장관, 안기부장이었던 권영해 님이 최근 5·18에 대해 충격적 증언을 했다. ‘스카이데일리’는 그가 안기부장 때, “북한의 5·18 개입을 우리 정부가 직접 확인했다”라고 6월 24일 인터뷰 기사로 보도 했다. 또, DJ 정부 대통령 밀사로 김경재 전 의원 일행이 방북했다. 그들은 “북한 노동당 간부들의 간곡한 요청과 안내에 따라 한국의 국립묘지 격인 평양의 애국열사릉을 방문, 5·18 개입 북한 특수요원의 가묘(묘비) 10여 기를 목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라고 ‘대한언론KNEWS’는 올 5월 2일 자 ‘오피니언’에 썼다.2020 총선 이후 많은 이들이 부정선거 규탄 대규모 집회, 수사 촉구, 고발, 소송, 강연, 유튜버 방송 등을 계속하고 있다. ‘2017대선부터 올 4·10 총선까지 모든 공직선거가 부정선거였다’라는 주장과 근거도 제시한다. 특히, 지난달 현직 여당 K 의원은 부정선거 조사 촉구 이후, 사전투표 폐지 법안 발의가 진행 중이다. 또, 여당 대표 후보 4인 중 3인이 직, 간접적으로 부정선거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5·18 및 부정선거와 관련, 경천동지할 내용이 드러나고 증언되어도 우리 주류언론은 망자의 침묵뿐이다. 죽은 야이로의 딸 같다. 진실을 아는 국민은 분통 터지고, 실망과 환멸을 느낀다.하여, 나라에 하늘의 ‘탈리타 쿰!’이 내리길 소망한다. ‘동방의 등불’이 다시 켜지게….

2024-07-08

결혼은 미친 짓인가?

지난 주 경북매일에 실린 이병철 시인·평론가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글을 잘 읽었다. 그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자, 불과 몇 해 전까지 그의 의견에 동조하며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상상조차 하려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여러모로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 내려갔다. 또한 아직 결혼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신혼으로서 그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 글은 물론 결혼을 옹호하는 글이지만 결코 병철에게 결혼을 강권하는 글이 아니다. 그냥 이런 삶도 있으니 참고 정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적어보는 글이다.결혼은 미친 짓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일부 맞는 말이다. 약간은 미쳐야 가능한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한 친구가 물었다. 결혼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인데, 정확히 말하면 돌이킬 수는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하는 것인데 그것을 감히 실행에 옮기는 용기는 어디서 나는 것이냐고. 나는 그냥 번지점프 같은 것이라 대답했다. 뛰어들어 보기 전에는 어떤 감각인지 알 수 없으니 눈 한 번 질끈 감고 생각하며 새로운 삶으로 뛰어드는 것이 결혼이라 생각한다고. 일시적으로 이성의 끈을 내려놓아야 이 어려운 결심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이야기 해주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런 상대를 발견한 나의 안목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큰마음을 먹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미치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미치건 조금은 미쳐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그래서 그 미친 결정에 대해 나는 후회하는가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물론 총각끼리 김삿갓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하는 모습과 시원하게 낮술을 하는 모습을 SNS를 통해 보며 부러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한 이후로 가정 밖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 나는 나대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서 입에 무는 일, 집에 와서는 보드게임을 하며 아이스커피 타오기나 설거지 내기를 하는 일,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말도 안 되는 춤을 추며 깔깔대는 일, 우리에게 못나게 구는 사람들에 대해 시원하게 흉을 보는 일처럼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전부 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소박하지만 신나는 일들이 된다.이런 일들은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배우자에게는 연인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나의 나약하거나 부족하거나 못난 모습들을 얼마든지 보여주고 그에 대해 위로도 받을 수 있다는 것. 가수 이적의 노랫말처럼 힘이 들 땐 눈물 흘릴 수가 있고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다는 것. 연인이란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님이지만, 배우자란 온전히 평생 내 편이 되기로 한 사람이기에.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결혼을 선택하고 나면 또 한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바로 출산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나의 아내는 만삭이고 며칠 내로 출산을 할 예정이다. 아직 육아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이를 갖고 낳기까지의 지난 10개월간 우리 부부가 느꼈던 경이와 감동은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것이었다. 자식은 아기였던 시절 잘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평생의 효도를 다 한다고 했던가. 우리 아기 ‘코코’는 이미 어느 정도 효도를 해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란 그래도 해 볼만 한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망설이는 마음도 이해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혼, 비혼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 중 28.7%가 결혼 자금 부족이고, 14.6%가 고용 상태 불안정이다. 12.8%를 차지하는 출산 및 양육 부담 역시 경제적인 부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56.1%정도가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단지 개인의 잘못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사회의 구조를 설계하고 유지, 보수해 나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그렇지만 마음 맞는 사람이 생긴다면, 이처럼 결혼하기 어려운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한 번 시작해 볼 마음이 있는 사람끼리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이병철을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가 나의 결혼식에서 멋들어지게 축시를 읽어준 것처럼 말이다.

2024-07-08

등장인물을 사랑하기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를 사랑하는 일은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인물의 감정을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으며 얼마간의 사건을 만들어내기 적격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변화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삶은 우리를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두 가지 상반된 진실이 섞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고 결말을 알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유쾌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식의 경험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대단히 드라마틱한 일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아이들이 앙앙 우는 소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괴로운 소음이라던 친구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놀랍도록 어른스럽고도 다정한 면모를 보여준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싸우던 단짝 친구와 결혼식을 올린 지인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내 경우엔 반려견을 들 수 있겠다. 내가 동물과 함께 산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었는데, 어느 순간 내 삶에 틈입한 이 존재는 나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강아지는 사랑하기에 너무 쉬운 존재가 아닌가. 동그란 코와 부드러운 털, 무엇보다 녀석은 먼저 마음을 주는 쪽에 가깝다. 온 힘을 다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존재에게 냉담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곤히 잠든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을 든다. 언젠가는 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게 정말 가능한 영역일까?최근 나는 의외의 인물을 사랑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미국 드라마 ‘오피스’를 보면서였다.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던 시리즈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건 아마 내가 일련의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되면서 겪은 일들과 겹치는 지점이 많아서일 것이다. ‘오피스’는 던더 미플린이라는 제지회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화를 다룬다. 마치 실제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진행되는 것이 큰 특징인데 덕분에 카메라 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나 인물의 숨겨진 감정까지도 세세하게 드러나게 된다.나는 항상 지점장인 마이클 스콧이나 지점장 보조를 자처하는 드와이트 슈르트 같은 괴짜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로맨스를 담당하는 짐과 팸 커플의 서사도 꽤 좋아했다. 어쨌든 이들은 주인공 격에 속하고 카메라에 자주 비추어졌으니까. 이번에 다시 ‘오피스’를 시청하면서 의외의 인물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왔으니, 다름 아닌 영업사원인 필리스다.필리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다. 극 내부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기에 길게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하는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더 많았다. 일을 처리할 때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성차별적인 발언을 내뱉으면서도 자기 잘못을 알지 못하는 여자. 타인의 소문에 쉽게 키득거리고 가끔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짓궂게 구는 사람. 그러나 새롭게 포착된 모습은 조금 달랐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누구보다 행복해하며 타인을 위해 손수 뜨개질을 하는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술에 취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졌으니.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실제로 그녀가 나의 삶에 끼어든대도 이런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필리스를 같은 동료를 직장에서 만난다면 나는 그녀의 오지랖 넓은 태도에 기가 질려버릴 것이다. 아주 괴로운 사람으로 여기면서 누군가가 그녀를 두고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단박에 고개를 저을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그것은 내가 타인의 일면을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가지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든 카메라가 찍을 수 있는 건 세상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어떤 사람이 되는지, 절친한 친구들과 나누는 농담이 얼마나 유쾌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카메라 밖에서 짓는 눈물의 의미나 긴 시간 혼자만이 품고 있던 비밀 같은 것도 모른다. 등장인물의 뒷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엉켜있던 오해도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조금씩 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내 주변의 인물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그저 지나쳤던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친구에게 오랜만의 연락을 보내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식의 마음에서 사랑이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반가운 일이다. 내 삶에 등장하는 인물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아주 쉽게 해피엔딩으로 가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2024-07-08

팔열지옥 올여름 최고의 피서법은?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일찍 찾아온 더위의 기세가 무섭다. 거리를 걸을 때는 물론, 방에 가만히 있어도 목덜미로 땀이 흐른다.오죽하면 나이 지긋한 분들이 올해 초여름 무더위를 팔열지옥(八熱地獄)에 비교할까. 팔열지옥이란 등활지옥, 흑승지옥, 중합지옥, 규환지옥, 대규환지옥, 초열지옥, 대초열지옥, 무간지옥 등 뜨거운 불길에 고통 받는 여덟 가지 지옥을 지칭하는 단어. 지금 날씨가 벗어날 수 없는 수난의 공간처럼 무시무시하다는 이야기다.폭염이 이어지는 날이면 우리네 조상들은 여러 가지 피서법을 사용했다. 그중 한 방법이 이른바 ‘보양식 먹기’다. 닭을 인삼 등 각종 약재와 함께 푹 삶은 계삼탕이 흔했고, 세도가에선 큼직한 민어와 영지버섯을 복달임으로 먹었다. 서민들은 개를 잡아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도 했고.현대인이 ‘여름휴가’를 통해 시원한 강변과 해변으로 여행을 떠나듯 수백 년 전 사람들도 풍광 수려한 산이나 골 깊어 서늘한 계곡으로 삼삼오오 원족(遠足)에 나서기도 했다.2년 전 세상을 등진 소설가 김성동(1947~2022)은 매우 점잖은(?) 피서 방식을 택한 것으로 문단에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여름엔 동즉손(動卽損)이니, 가만히 있어라”고 후배들에게 일렀다.동즉손?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손해’라는 뜻이다. 실제로 김성동은 여름이면 하루 종일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서재에서 책을 읽곤 했다. 강이나 바다로 여행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이를 ‘안동 김씨 양반다운 피서법’이라 불러야 할까.그런데 글 써서 생계를 해결하는 작가가 아닌 몸으로 벌어먹는 이들은 이 악랄한 더위에도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당최 없으니… 참으로 가혹한 여름이 아닐 수 없다./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24-07-08

울릉도·독도 (上)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2일 밤 11시 반경 한국시인협회 사람들 약 마흔 사람이 창덕궁 돈화문 옆으로 모였다. 한밤에 울릉도를 향해 떠나기로 한 것이다. 대개 2박 3일 일정이면 새벽 세 시쯤이나 출발이라는데, 이 팀은 자정녘 출발을 택한 것이다.시인협회 살림을 맡은 이채민 시인과 김향숙, 김조민 시인들은 일찍 나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김수복 회장도, 최동호, 김추인 시인들 모습도 보이셨다. 내 발표에 토론을 맡아줄 비평가 이찬 선생은 커피숍에서 출발 시각을 기다리고 있다 했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한밤 출발 일정표를 보고, 몇번이고 차라리 하루 먼저 묵호에 가 다음날 새벽에 올 버스 일행들을 기다릴까 했다. 실제로 박덕규 선배는 그러신다고도 했다. 나나 이찬 선생이나 다 사정이 허락치 않은 게 문제였다. 새 버스였지만 45인승인 탓에 우리는 모두 빽빽히 들어앉았다. 양평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동해 휴게소에선가 한번 더 쉬고 드디어 새벽 세 시 반의 묵호항. 출발부터 나는, 우리는 기진맥진 상태였다.새벽의 묵호에서 밤의 산책으로 겨우겨우 졸음을 쫓고, 청솔식당에서 황태국으로 아침을 때우고, 우리는 드디어 씨스타 1호 울릉도행 배에 올랐다. 멀미약 키미테를 왼쪽 귀밑에 붙이기는 했지만 나는 은은히 겁에 질려 있었다. 십여 년 전 백령도행 배를 탄 게 마지막 연안 여행이었고, 그때 배멀미를 심하게 한 끝에 위 속의 모든 것을 다 토해 놓았었다. 한밤 서울 출발 덕분이라고나 할까. 좌석도 불편했지만 출항 이삼십 분을 못 가 나는 잠에 떨어졌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도동항에 얼추 도착할 즈음이었다. 그래도 그 마지막 삼십 분 동안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큰 다행이었다. 넘치는 바다를, 한량없는 크기, 부피를 가진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라 해도 나는 동해 바닷물에 내 지친 영혼을 깊이 적셔 씻어낼 수 있었다.배는 울릉도 입도의 관문 도동항에 가 닿았다. 비 내리는 도동항은 첫눈에도 한반도의 산하와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겨우 항구에 발을 붙이기는 했지만 섬은 바로 앞에서 급한 경사의 언덕들에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로 무척이나 낯선 풍경을 연출했다. 우리는 점심식사가 준비된 울릉호텔로 향했는데, 이 호텔 쪽 언덕에 군청이며 경찰서며 농협 같은 모든 중요 기관들이 밀집해 있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도동항으로 나갔는데, 당장 오늘 독도 가는 배를 타지 않으면 내일은 배가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이제 정말로 독도에 가보는 것이었다.울릉도에서도 독도는 87킬로미터, 배로 한 시간 반 가량 걸리는 곳이었다. 파고가 높아 섬에 접안할 수 없으리라는 안내방송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어찌됐든 배가 뜰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다행이었다.섬이 가까워 오자 우리들 얼굴에는 모두 긴장이 서렸다. 안내방송과 함께 비내리는 일렁이는 바다 바로 저편에 섬이 보였다. 독도였다. 외로운 섬, 애원의 섬, 너와 나를 우리들로 연결해 주는 사랑의 섬이었다.“비바람 속에서 너를 보았다. 비바람 속에서 너를 만났다.”나는 뱃전으로, 이물 쪽으로 나가 비바람 속의 독도를 바라보며 독도, ‘나의 너’를 소리없이 애타게 불러보고 있었다.

2024-07-08

문경새재 케이블카, 관광 품격 높여

신현국 문경시장 문경새재 주흘산 케이블카 조성사업은 한국체육대학교 문경유치, 숭실대 문경캠퍼스 건립과 함께 문경시 3대 중점과제이다.이 사업은 사업비 490억 원이 투입돼 문경시 문경읍 하초리 문경새재 제4주차장 부근에서 주흘산 관봉까지 1.86km(시설면적 6만1060㎢) 구간에 상부와 하부 승강장과 케이블카 삭도 등을 설치하는 사업이다.1년 6개월여 공사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10인승 곤돌라 38대가 초속 5m로 편도 7분의 속도로 운행한다. 시간당 최대 1500명의 관광객을 수송할 수 있어 문경새재의 관광의 품격을 더욱 높여줄 것이다.22년 9월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용역을 마친 뒤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했다. 23년 8월 주차장을 포함한 도시관리계획시설을 결정 고시했다. 지난 12월에는 행정절차의 가장 큰 산이었던 소규모환경영향평가 절차도 완료했다.올해 1월에는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주흘산 케이블카 조성사업 설명회를 가진 데 이어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한 의지를 다지고자 지난 4월 20일 기공식을 가졌다.문경시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족한 관광자원에 케이블카가 더해지면 주흘산의 험한 산세에 그동안 정상의 절경을 감상하지 못했던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케이블카를 통해 아름다운 경치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중국의 장가계, 스위스 알프스에 버금가는 하늘길을 열리게 된다.주흘산 케이블카 조성사업과 연계해 추진하고 있는 중점 사업인 주흘산 하늘길 조성사업이다. 주흘산 관봉 상부 승강장을 하늘길과 잇고자 하는 사업이다. 주흘산 정상 능선인 관봉~주봉 2.3㎞ 구간에 417억 원을 들여 트리탑, 잔도, 클리프 워크, 스카이워크, 전망대 등 명품 숲을 만드는 것으로 지난해 타당성 평가 용역과 기본계획·실시설계 용역을 마쳤다. 이번 하반기에 착공해 내년 말 1차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문경새재지구 관광지 개발도 추진해 문경새재 입구인 문경읍 하초리 일대에 민자 6600억원, 시비 475억원을 들여 워터 리조트와 관광 숙박시설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 타당성 및 기본구상 용역을 마쳤고 올해 관광지 지정과 조성계획을 승인한 뒤 내년부터 민간 사업 시행 등 본격 개발에 들어간다.주흘산 케이블카, 하늘길 조성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문경시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명품형 산업관광 랜드마크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된다.문경시를 찾는 관광객은 연평균 250만 명 이상이지만 평균 체류시간이 짧고 1인당 소비 금액 또한 턱없이 적은 게 현실이다. 수요가 확실한 문경새재에 주흘산 케이블카 설치는 다양한 연계 자원을 활용해 지역주민 고용증대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전망이다.케이블카 사업의 성공으로 체류형 관광객들이 늘어난다면, 지역경제의 전반적 활성화를 위해 이들을 도심까지도 끌어당길 필요가 있다.현재 문경시는 원도심 관광산업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도심 관광의 첫 삽을 뜬 것이 지난달 15일에 준공된 영강보행교이다. 사업비 114억원을 투입해 2021년 11월부터 3년여간 진행됐다. 영강체육공원과 산양 반곡리를 가로지르는 보행교(280m)와 송정산을 잇는 출렁다리(112m)로 구성되어 있다.이 출렁다리를 통해 관광객들은 송정산 산책로를 이용할 수 있으며, 자연미가 넘치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스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영강보행교를 더욱 이색적으로 만든다고 할 수 있다.특히, 인근(반곡리 98-1)에는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포토존 또한 마련했다. 찬란한 꽃밭 속 우뚝 서 있는 문틈 사이로 영강보행교가 보이게 해 색다른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현재 시에서는 이 포토존의 꽃을 제철 꽃으로 주기적으로 바꿔 심을 예정이다.낮에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힐링할 수 있다면, 밤에는 영강 물결이 수놓은 아름다운 경관조명이 일품이다. 긴 데크길을 따라 조성된 형형색색의 다양한 조명들은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높은 수준의 경관조명들은 사업비 10%가량을 관내 업체가 담당하게 해 지역경제에 이바지함은 물론, 태양광 조명으로 에너지비용까지 절감하도록 했다. 특히, 보행교 초입에 설치된 피아노 조명은 보는 즐거움과 듣는 재미까지 주며 관광객은 물론 시민들의 호응까지 이끌어내며 낮밤으로 이용객이 끊이지 않은 사진 명소로 떠오를 전망이다.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점촌점빵길 토요장 등의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을 통해 문경을 찾는 관광객들이 점촌 도심 상권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2024-07-07

그러니까 시가 뭐꼬?

이희정시인 논에 들에할 일도 많은데공부시간이라고일도 놓고헛둥지둥 왔는데시를 쓰라 하네시가 뭐고나는 시금치씨배추씨만 아는데..................고구마 밭에서밭을 매다가 너무 더워서집에 왔다중복이라서 닭 한 마리사다가 영감하고꽈서 먹고즐거웁게한글학교에 오니학생들이 많이 왔다더운 줄도 모르고 한글수업을 하였다―‘시가 뭐고?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삶창, 2015)그렇다, 시금치씨 배추씨도 아닌 시가 뭐냐고? 시집 ‘시가 뭐고?’는 ‘시’가 아닌 ‘씨’를 쓰는 시인들이 경작한 시집이다. 이 시는 경북 칠곡군에 사는 ‘할매’들이 문해(文解)교육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한글로 손수 쓴 시들을 모아 엮은 시집의 표제작이다.이 시집의 묘미는 살아있는 입말(口語)의 경지를 맛보는 것에 있다. 그 어떤 꾸밈도 분장도 없는 소화자 할머니 외 88명의 할매들은 대부분 ‘생애 처음’ 시를 써보았다.아무 생각 없이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들의 조합으로 시를 읽어 보면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틀리고 죄다 경상도 사투리다. 기획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저자 할매들은 평생을 ‘목소리에 의지하는(verbomotor)’ 문화, 구술성(orality)에 의존한 삶을 살아왔으며, 말을 통해 이해하고, 관계 맺고, 소통 해온 세계에 대한 순한 그리움과 전망이 생애 처음 문자로 새겨 놓았다는 말이 실감으로 온다.이것이 시란 말인가. 의문을 품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은 뒤, 한 행이 그대로 한 연이 된 그 줄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동공이 습해온다. 우리의 눈과 가슴에 새겨진 그 사투리가 대책 없이 아름다워서 혹은 진저리 치게 삶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에. 사실 사투리는 비유나 운율 등의 시적 요소의 측면에서 볼 때 근친성을 갖기도 한다. 국어학자 이상규가 사투리(방언)를 일러 ‘오래된 역사의 주름’이라고 표현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 이 시들에서 사투리는 길고 질퍽한 할매들의 생활 한가운데서 터져 나온 육성이기에. 그것은 모든 관념이 지배하는 절제와 성찰을 넘어서는 우리 몸 전체에 박혀 즉각적으로 생생하게 흡수되고 이해되는 물과 같다. 물에도 밀도가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를 물의 밀도를 재어보면 필경 가장 촘촘한 온도가 될 것이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은 수심이 있어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아가미가 호흡하는 삶의 적소로서 말이다.이 세계는 낡은 것들로 가득하다. 두 번째 시편 ‘여름날’에는 즐거운 학교가 있고, 학생이 있어 중복 중에도 “더운 줄도 모르고” 배우는 한글이 있다. 노년은 무엇으로 사는가. 칠곡 할매들이 쓴 배움 시편들은 노년기에 경험하는 역할 상실을 극복하려는 학습의 염이 내연한다. 농촌 지역인 칠곡 할매들이 배우면서 느끼는 존재감은 도시에 사는 노년에 비해 적어도 고독할지언정 고립되지 않음을 “학생들이 많이 왔다”라는 시어를 통해 드러난다.같은 처지의 ‘곁’이 있어 인기척을 느끼며 사는 삶이란 또 얼마나 정겨운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낡은 것은 경시하기 십상인 세계이기에 시집이 환기하는 정서는 소소하지만 사소하지 않다. 그들은 문해 학교에서 글자를 넘어 키오스크를 터치해 햄버거를 주문할 수도 있고, 말로는 전하지 못한 마음을 편지글로 맺힌 한(恨)을 풀어내기도 한다.삶은 언제나 ‘무엇’보다 ‘어떻게’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올해도 대구·경북 문해교육 현장에서 공모한 첩첩의 시편들을 알현하며 시인들에게 묻는다.“인문학, 그기 뭐꼬? 우리가 사는 모습이 인문학이지?”

2024-07-07

도둑이 몽둥이를 들면 말세다

김진국 고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이렇게 절묘하게 들어맞은 일이 없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들었다.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과장된 비유가 아니라, 이 말 그대로의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비리 혐의를 수사한 검사들이 줄줄이 탄핵당하게 생겼다. 탄핵 전에 그 검사들을 국회로 불러 청문회도 하겠다고 한다. 국회 청문회란 게 어떤가. 호통치고, 모욕주고, 윽박지르고, 사과와 번복을 강요하는 자리다.이 검사들을 불러 추궁하는 법사위원들이 이재명 대표와 그 측근들을 변호하던 변호사들이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일인가. 피의자의 범죄를 변호하던 변호사들이 검사를 불러 앉혀놓고, 국회 증언·감정법에 따라 수사 자료를 내놓으라 호통친다. 왜 집요하게 파고들어 범죄자를 괴롭히느냐고 따지고, 설렁설렁 수사하라고 강요한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복도에 나가 두 팔과 한 발을 들고, 10분간 벌을 서라고 조롱한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그러고도 공정한 수사가 가능하겠는가.탄핵안이 제출된 4명은 모두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다. 소문까지 끌어다 붙여 탄핵안을 만들었다. 강백신 성남지청 차장은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사건을 수사하며 불법 압수수색을 했다는 혐의를 걸었다.지난 대선 때 대장동 사건 주범인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대장동 사건의 주범은 윤석열’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인터뷰 조작 기사를 수사했다. 이 범죄 혐의가 사실이라면 부당한 이익을 본 사람은 이 대표다.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는 김건희 여사에게 봐주기 수사를 하고, 수사권이 없는 민주당 돈봉투 사건을 수사하고, 최순실 씨의 딸 장시호 씨에게 위증하게 했다는 혐의다.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는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에게 위증을 강요한 혐의, 엄희준 부천지청장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위증시킨 혐의다.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건이다. 어느 것 하나 사상 첫 검사 탄핵의 대상이 될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들이 모두 이 대표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이라는 사실에서 ‘적반하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미국에서 사법 방해는 중범죄다. 아무리 정치적 경쟁자끼리 이전투구하더라도 시시비비를 가릴 마지막 보루는 남겨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정글이 된다. 사기협잡꾼만 살아남는다. 누가 승복하고, 다툼을 끝낼 수 있겠는가. 국회 의석을 많이 차지한 것을 기회로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사법부까지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국정농단이다.최근 넷플릭스에 ‘돌풍’이라는 시리즈물이 인기를 얻고 있다. 운동권을 희화화한다는 둥 반응들이 다양하다. 드라마에서 범죄자가 자기들 범죄를 덮기 위해 ‘검찰개혁’을 선거 구호로 내세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상되는 첫 사건 전개도 진보 진영 눈에 거슬릴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검찰 수사가 정치적 이해에 휘둘린다는 설정 자체가 검찰 불신을 담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사회, 진실과 거짓이 서로 뒤섞인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다. 그렇더라도 노골적으로 수사 검사를 국회로 불러 수사를 압박하고, 판사에게도 ‘탄핵’과 ‘선출제’를 흔들며 위협하는 것까지 용납되어선 안 된다.탄핵을 추진하면 먼저 수사가 중단된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검사와 판사에게는 압력이다. 야당을 잘못 건드리면 탄핵당할 수 있다는 위협이다. 아무리 강골이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회로 불러 윽박지르면 누가 범죄자인지, 누가 검사인지 헷갈리게 된다. 다른 검사가 사건을 넘겨받아도 시간이 지연된다.총리 측과 부총리 측이 시간 싸움을 벌이는 드라마 ‘돌풍’의 수싸움이 연상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은 헌법 84조 적용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이미 기소된 사건 재판도 중단되느냐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다. 여당의 주장대로라도 선거 전에 기소하지 못하면 수사도, 재판도 끝난다. 정말 드라마 같은 세상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07

기업에서 리더의 중요성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술의 발달은 각광받던 물건을 한순간에 시간의 뒤편으로 밀어내기도 하고 그 자리를 다른 대체 수단이 대신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비자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상품들과 관련된 산업이 사양산업이다. 사양산업에 들어선 기업들은 업종 전환을 시도해서 성공하거나 대개는 시장과 함께 없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사양 기업’이 있을 뿐 ‘사양산업’은 없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더 싸면서도 편리한 물건이 주는 혜택을 맘껏 누리고 있으나 그것을 만드는 기업이 대체되었을 뿐이다.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거나 한때의 영광은 화려했지만 역사의 뒷면으로 물러난 기업을 보며 발견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기업은 대표가 이해하는 범위 이상으로 절대 크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장과 고객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단순히 인재 채용과 권한 위임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고 상품의 효용과 유행은 더욱 짧아지고 있어 대표의 철학이 반영되지 않은 의사결정은 미래를 절대 담보하지 못한다.아무리 뛰어난 회사라도 아무리 훌륭한 인재를 스카우트하여 위임한다고 해도 회사와 조직은 최종 의사결정자가 이해하는 크기를 절대 뛰어넘지 못한다. 그래서 리더는 신입사원의 마음가짐으로 조직을 돌아보고 시장의 움직임과 지식 시장 도메인부터 배우고 익혀야 한다. AI가 급속도로 발전하자 비슷한 오류에 빠지는 사람들을 본다. AI가 할 수 있는 스킬을 왜 내가 배우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버리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꼭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유행이 지난 옷가지처럼 버리고 그 자리에 최신의 것을 늘 채우려 한다. 앞으로도 영원히 실력은 품성을 뛰어넘을 수 없고, 이론은 실행을 이길 수 없으며 필요한 인재는 기업이 직접 키우는 것이 본질이 될 것이다. 성공한 기업인과 리더는 공부를 끝없이 한다. 그 어떤 사회 초년생들보다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고 연구한다. 이재용 회장도 영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줄 사람을 고용하지 못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통역을 거친 언어는 중요한 알맹이가 필터링 돼 전달될 수 있고, 직접 내 두 발을 딛고 내 두 손으로 내 머리로 이해하는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AI(LLM)는 하드코딩보다 최소 100배 비싸다. 하지만 사람보다 최소 100배 싸다. 하드코딩으로 할 수 있는 것을 AI로 대체하는 결정을 내리는 리더들이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런데 AI가 할 수 있는 일을 사람에게 시키는 것은 더욱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조직의 리더나 기업의 대표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의사결정을 한다면 사양 기업의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사양산업에서 블루오션을 찾아내는 일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정확하게 방향을 결정하는 리더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양산업은 있어도 사양 기업은 없다’라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

2024-07-07

‘우천 시’보다 중요한 것

유영희 작가 오랜만에 중국 고전 중 하나인 ‘대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강의할 기관에 이력서를 보내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동안 쓴 경학 연구 논문 제목들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하니, 한글로 써도 충분히 알아볼 만한 내용이므로 그냥 보냈다. 나는 유교 사상을 전공했지만, 한자를 노출시켜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한자 없이 한자어만 쓰면 일상에서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다.지난주에 여러 매체에서 인용된 학부모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에도 한자어가 있다.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우천 시, 금하다, 섭취·급여·일괄 같은 단어를 가정통신문에 쓰면 학부모들이 이해를 못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자, 댓글에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사람도 있고, 중식을 중국 음식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고 한다. 여러 주요 언론에서도 이 글을 인용하면서 그 어린이집 교사의 문해력 한탄에 동조하였다.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어린이집 교사가 경력 9년 차라고 하니, 마흔 살이 안 되었을 텐데 그런 단어를 능숙하게 통신문에 쓰는 것은, 공공기관의 언어 습관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문에 ‘비가 오면’, ‘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 식사 제공’이라고 쓰면 격식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조선 시대의 어휘나 표현법은 소멸했고, 21세기에는 새로운 어휘가 탄생한다.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줄임말로서 2018년도에 만들어진 신조어인데, 공중파에서 퀴즈 문제로까지 등장했다. 아무리 기성세대가 언어 순화 운동을 벌인다고 해도 이런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관공서에서나 쓰는 단어를 고집하는 것보다 실정에 맞게 소통하기 좋은 한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문해력 향상을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문제는, 교육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문해력 향상을 위한 꿀팁 5가지가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어라, 모르는 어휘는 검색해라, 긴 호흡으로 읽는 독서를 많이 해서 글과 글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라,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라, ‘한글 또박또박’이라는 맞춤형 웹 기반 학습프로그램을 활용하라고 한다.그러나 ‘한글 또박또박’은 한글을 모르는 초등 저학년 대상 프로그램이라 사회적 문해력 저하 해결책은 아니다. 또 글과 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없어서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니, 긴 호흡의 책을 권장하는 것도 넌센스다. 질문 자체를 못 하는데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할 수 없다. 이렇게 체계 없는 정책으로는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다고 독후감 경시대회를 열지만, 평소 지도는 해주지 않으니 사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구호 말고 글쓰기 교육처럼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2024-07-07

뺑뺑이 1회 경기 50년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인간은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의 폭풍우에 내몰리는 경우와 마주하기 마련이다.아무리 강력한 의지와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 해도 어쩔 도리없이 끌려가는 지경에 이르는 수가 있는 법이다. 이것을 우리는 운명이나 천명이라 부른다. 그럴 때 인간은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실체에 전율하거나 절망하기 마련이다.지난 7월 3일 자동차를 몰고 서울로 떠난다. 나의 모교 경기고 73회 정기 동창회가 열리는 날이다. 50년 전인 1974년 나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뺑뺑이로 경기고에 입학한다. 공동학군 005로 시작한 남녀 고교는 경기여고와 경기고였다. 그날 나의 선친은 평소의 절반밖에 걸리지 않은 시간에 귀가하셔서 나의 경기고 입학을 축하하셨다.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교 평준화 정책 덕분에 나는 일생일대의 행운을 꿰찬 인간이 된다. 오래도록 많은 사람이 내게 뺑뺑이 1회 경기 입학생의 비애와 원한 같은 것을 물어왔다. 아주 드물지만, 아직도 그때 감상을 묻는 자도 있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뺑뺑이 1회 경기 입학생이자 졸업생으로 여러 가지 유쾌하고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고1 담임 정휘민 국어 선생은 호된 글쓰기 훈련으로 나의 습관 하나를 결정하셨고, 고3 담임 안성도 영어 선생은 소시민의 작은 행복을 일깨워 주셨다. 두 분 모두 경기고 선배였다. 그런 경기고 입학 5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수요일 구(舊) 우미관(優美館) 자리에서 열린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에 등장하는 명소가 우미관이다.17살 소년들이 50년을 살고 나서 60 중반 나이에 다시 만났으니, 그 감회가 어떠했을 것인지는 짐작 가능하리라. 입학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2004년에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40 중반의 혈기방장한 시절이었다. 거기에 다시 20년이 보태지니 그사이 세상 버린 친구나, 투병 중인 벗들도 적잖게 늘어나 있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은 반박불가(反駁不可)다.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출신고를 묻는 말에 경기를 말하고, 거기에 뺑뺑이 1회라는 말을 반드시 보탠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연유를 물을라치면, 뺑뺑이 얘기를 하지 않으면, 밤잠을 설친다고 대답한다. 타고난 결벽증도 있거니와, 사실관계 진술을 얼버무리는 것은 기질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화동 1번지 경기고는 사전에도 없는 ‘정독(正讀) 도서관’이 되었고, 삼성동 91번지 경기고 앞은 왕복 2차로 도로가 16차로 도로가 되었으니,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다시 만난 벗들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살과 백발 혹은 성긴 머리털은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의 무겁고도 슬픈, 행복하고도 만만찮은 시공간과 인연을 웅변하는 것이었다.고타마 붓다는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과 여기를 열렬하게 살라는 뜻이다. 그것을 재삼재사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가 서늘하게 마무리되는 우미관의 밤은 실로 아름다웠다.

2024-07-07

장마철 낙뢰

우정구 논설위원 낙뢰(落雷)를 우리말로 하면 번개다. 번개는 대기와 지표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꽃 방전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번개란 보통 적란운과 함께 나타나는데, 대기 불안정이 주 원인이다. 적란운은 강력한 상승 기류에 옮겨진 수증기에 의해 수직으로 높게 형성된 구름이다. 소나기, 우박, 번개, 토네이도와 같은 강력한 악천후를 동반하는 대표적인 구름이다.기상청은 벼락에 관한 기록을 담은 낙뢰 연보를 매년 발행하고 있다. 재해 경감을 목적으로 기록하는 낙뢰 연보에는 한 해 동안 발생한 낙뢰 현황과 지역별 발생 횟수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연보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7만3341회의 낙뢰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돼 있다.계절별로는 여름철인 6∼8월 사이에 75%가 발생했다. 가장 많은 달은 7월로 전체의 35%다. 또 지역별로는 전국 광역시 가운데 경북이 1만2982회로 가장 많았다.사람이 벼락을 맞을 확률은 2만5000분의 1정도로 매우 낮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청천벽력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다는 뜻을 지닌 속담이다. 그렇다고 낙뢰를 방심해서도 안 된다.지난해 6월 강원도 양양해수욕장에서는 낙뢰가 떨어져 6명이 다치는 희귀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 중 1명은 다음날 숨지는 불행한 일까지 벌어졌으니 드문 일로 방기해선 안 된다. 바닷물에는 전류가 흐를 가능성이 높아 벼락이 칠 때는 물놀이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지구촌의 기상이변으로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잦고 이로 인해 낙뢰 발생도 많아지는 추세다. 본격적인 장마철이다. 낙뢰에 의한 감전사고 예방에도 모두가 신경을 써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7

3차 에너지 전환과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세상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거대한 에너지산업은 산업사회의 상징이다. 인류는 수많은 시간을 자연(재생) 에너지에 의존해서 살아왔다. 햇빛과 바이오매스(나무, 풀 등)를 활용한 불에 의존해서 대부분의 문명 생활을 영위해 왔다.1700년대에 들어서서 땅속에서 캐낸 석탄을 에너지로 사용하여 내연기관을 작동시키는 에너지 활용을 통해 ‘1차 에너지 전환’이 이뤄졌고 이것이 1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석탄 에너지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돼 영국과 유럽이 후진사회에 머물고 있던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는 국제질서를 만들었다. 석탄 에너지 사용 유무에 따라 세계는 선진 문명국가와 식민지사회로 갈렸다.19세기에 발견된 석유는 1900년대 전반기 미국에서 ‘2차 에너지 전환’을 이끌며 미국을 새로운 패권 국가로 만들었다. 이처럼 새로운 에너지의 발견과 그에 따른 에너지 전환은 경제산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제관계와 세계질서에도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석탄 에너지와 석유 에너지는 거대한 산업의 발달과 막대한 자본의 축적을 통해 인간의 삶은 물론 국제 경제 질서와 글로벌 정치 질서까지 재편하기에 이르렀다.석유 에너지 바탕의 2차 에너지 전환을 주도한 신흥국가 미국은 현재에도 여전히 세계 총생산의 25%를 넘게 차지하며 글로벌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는 중요하고 에너지의 자립과 에너지 안보는 모든 국가의 사활적 문제이기도 하다.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석탄, 석유, 가스로 대변되는 화석연료를 통해 선진국들은 거대자본을 축적하고 축적된 자본은 새로운 집중 투자를 통해 부와 파워가 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치며 세계질서를 유지해왔으나, 어느 순간 화석연료의 파워가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화석연료의 무한정한 사용의 부작용으로 지구 온난화 현상이 20세기 말부터 나타나다가 이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다다르게 된 것이다.유럽과 선진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체결된 1997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거치며 지구가 이대로 가다가는 100년 이내에 ‘생물 대멸종의 시대’를 맞을 것이며, 인간도 대멸종에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이다.65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5차 대멸종 이후 앞으로 100년 이내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계의 70%가 대멸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안으로 나온 것이 햇빛과 바람과 빗물 등 자연에너지만을 사용하는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대전환’의 선언이다.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를 에너지화하기 위해서는 거대자본이 필요하다. 에너지는 말 그대로 산업시대 자본의 집약체다. 하지만, 햇빛과 바람, 빗물을 활용한 에너지화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할 뿐이다. 자본도 물론 중요 하지만 산업사회처럼 자본의 비중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다양한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태양광의 경우 태양이 잘 비추는 곳엔 어디나 마을이나 도시, 산업단지, 논밭이 있다. 이들을 비용을 지불하고 매입해서 발전 시설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토지와 건물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 그리고, 글로벌 재원과 기술이 거대한 협력을 통해서만 탄소중립 사회를 달성할 수 있다.자연(재생)에너지로 새롭게 생겨날 ‘3차 에너지 전환’ 사회는 시민들의 거대한 협력, 에너지의 분산, 경제의 민주화를 바탕으로 구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산업 시대 주요 에너지 원인 석탄, 석유, 가스는 특정 국가와 특정 지역에 편향되어 있어서 대부분 국가는 에너지 자립이 힘들었다. 반면 햇빛과 바람과 빗물과 같은 자연(재생)에너지는 어느 나라든지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각각의 나라들은 그들의 국토와 글로벌 기술, 자본 등 국제적 협력을 통해 각기 에너지 자립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 스웨덴은 수력으로,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은 풍력과 태양광으로, 우리나라도 태양광과 풍력을 바탕으로 에너지 자립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에너지 패권이 없는 새로운 세상이 온다. 모든 나라가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는 세상! 에너지 빈부격차가 없는 세상이. 석탄, 석유, 가스의 독점카르텔을 깨고 국가 간에 자연(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경제가 더 민주적인 사회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과 국가 간의 거대한 참여와 협력을 통해서.국내에서도 도시 주변, 산업단지 주변 농지가 농민들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거대한 재생에너지 발전소로 거듭나게 되어 산업단지에 필수적인 재생에너지 공급원이 되고 농민들은 각자 발전사업자가 되어 농민과 산업이 상호 윈윈 하는 새로운 산업 질서가 형성될 것이다.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분산에너지라고 한다. 작게는 단독주택형 3K/Wh에서 몇 만K/Wh를 넘기 힘든 그야말로 조각조각 분산에너지인 자연(재생)에너지는 미래사회를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로 이끌어 가는 에너지 체계를 제공해 줄 것이다.더 평등하고 더 깨끗하고 더 풍요로운 세상을 자연(재생)에너지 중심 사회가 열어 줄 것이다.

2024-07-07

정신질환에 인식 변화, 포항시민이 선두에 서야

양만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나이가 들면서 “건강을 잘 챙기고 있지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때 건강은 큰 병이 없고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서 잘 지내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주로 신체건강에 국한하여 일반질환이 없는 상태이고 정신건강까지 나아가지 않는 것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건강의 상식이다.정신건강의 안부를 묻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여전히 편견의 벽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에 걸리면, 사람들이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또는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왕따’를 당할 수 있는 두려움이다.우울증, 강박증, 불면증,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다. 평생 동안 열 명 중 세 명 정도가 걸린다. 과거보다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개선되었다는 발표도 있다. 고학력 사회 구조에 따른 변화된 요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여타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지난해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의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대해 우리 사회는 보다 관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질문에 우리국민들이 동의하는 비율이 31%로 29개 국가들 중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이룩한 물질적 풍요로움에 걸맞게 국민정신건강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정부가 정신건강 정책을 적극적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정책 발표내용 중에 관심을 끈 대목이 있다. “예방, 치료, 회복중심으로 정신건강 정책을 대전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정신질환도 일반질환과 같이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하면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정신병을 바라보는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정책에도 큰 비중을 두겠다는 담론이다.유럽정신건강분야에 연구하는 학자들이 2000년에 ‘좋은 정신건강(good mental health)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좋은 정신건강은 개인이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에 대처할 통제력 조절역량을 소유하고, 또 고통과 난관에 직면하여도 생산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행복한 상태(a state of well-being)로 규정하고 있다. 좋은 정신건강의 상태로 유지하고 향상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건강의 문해력(mental health literacy)’을 포함한 13가지 핵심요인들을 제시했다.그 요인들 중에 ‘정신질환에 대한 태도’를 두 번째 요인으로 선정했다. 시민들이 정신병을 가진 사람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는가, 아니면 외면하고 배제하는 정도를 넘어 낙인을 찍어 차별적 행동을 보이는가. 차별하고 배제하는 정도가 심한 사회적 환경에서는 좋은 정신 건강 상태를 유지하거나 치유하기도 어렵다는 주장이다. 시민들이 정신병에 관한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교육과 홍보도 우리 사회 정신건강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다.포항시민들은 2017년 11월 15일에 지진규모 5.4 촉발지진의 발생으로 주택과 건물이 붕괴되었고, 정신과 신체에도 큰 충격을 가했다.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지진의 충격은 생존기반을 붕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신체적 고통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했다. 여진도 2~3개월 지속되었고, 본진에 이어 여진 지진규모가 4수준까지 발생하였으니 다수 시민들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우울증, 불면증, 어지러움 등의 증세로 트라우마반응을 보였다. 큰 소리가 나면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하면서 지진공포심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영일만 앞바다 석유탐사를 위해 시추한다는 발표만으로 시추에 따른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표출하는 게 포항시민들이다. 포항시민들만이 겪는 집단트라우마의 반응이자 증상이다.지진재난만 아니다. 코로나 재난 발생으로 3년여 동안 감염과 치유의 후유증에 신체, 정신 고통에 피할 수 없었고 2년 전 힌남노 태풍으로 시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연속·중복재난을 당했다.재난에 따른 집단트라우마에도 포항시민들은 힘을 결집하여 빠른 시간에 남다른 회복력을 보였다. 겉으로 드러난 강한 회복력을 보여주었지만, 연속된 재난 발생에 따른 ‘드러나지 않은 집단트라우마(invisible collective trauma)’도 숨어 있다.포항시민의 정신건강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 지속적 실현되어야 하다. 예방, 치료, 회복을 위한 정신건강프로그램의 개발에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에도 우리 지진트라우마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시민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선도적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2024-07-07

대구간송미술관

우정구 논설위원 간송(澗松)은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1906∼1962)의 아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전형필은 조상 대대로 한양의 종로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우리나라 최고 부잣집 아들이었다.당시 전형필 집안의 재산은 논 4만 마지기 정도됐다는데, 지금으로 계산하면 약 800만평 규모 논이다. 여기서 나오는 순수익만 연간 15만원 정도. 당시 서울의 큰 기와집 1채 가격이 10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의 재산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그는 기와집 한 채가 1000원하던 시절 5000원으로 그림 한 장을 사고, 2만원으로 도자기 한병을 샀다. 모두가 집안 살림을 축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으나 오로지 문화보국 정신 하나로 고물품들을 사 모았다. 1938년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자 지금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설립한다.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신윤복의 미인도 등 국보 12점과 보물 32점이 보관돼 있다. 비록 사립미술관이지만 소장 중인 유물의 내용과 가치는 어느 박물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잠재적으로 지정 가치를 지닌 일반 문화유산도 많은 것으로 전해져 있다.대구간송미술관이 9월 개장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지역 최초 분관이라는 점에서 시민의 관심이 크다. 9월 초 개관기념 전시회를 시작으로 앞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문화유산 등이 상설 전시될 예정인데 대구시의 새로운 명소로도 부상할 전망이다.특히 대구시민에게는 간송 재단 보유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문화혜택의 기회가 생긴다는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4

민주화운동의 다른 얼굴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산업화와 민주화가 두 축을 이루었다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인정하는 바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당시에는 우리 손으로 이룬 산업화나 민주화의 축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강화도조약 이후 개화기의 서구문물의 유입과 3·1운동을 거치면서 탈전제군주제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국가라는 제도권에 대한 민주화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역사적 실적이 전무한 상태에서 38도선 이북은 김일성의 의해 공산주의체제가 들어섰고, 이남은 이승만의 주도로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민주화운동의 뿌리를 찾자면 동학혁명이나 3·1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반발한 농민들의 봉기나 일제의 국권찬탈에 저항한 만세운동의 정신을 후일 민주화운동의 근원으로 볼 수 있을 터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의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은 1960년의 4·19혁명,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갖는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는 차츰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민주화운동의 한 줄기인 노동운동은,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그의 희생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러 차례 법의 개정과 노동조합의 결성 같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 때의 노동운동과 공룡화 된 지금 노동조합의 행태는 같은 얼굴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인권과 복리 신장을 위한 운동에서 정치세력화 된 집단으로, 사회를 전복하려는 이념집단의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문재인 정권 시절에 대거 정치판에 유입된 운동권 출신들은 대한민국의 정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더 이상 자유와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가의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껏 이루어 놓은 민주화를 역행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가 하면 산업화를 폄훼하고 저들의 좌편향 정치이념을 밀어붙이는 독선적인 행태를 일삼았다. 그런 가운데 비리와 부정과 무능도 과거 어느 정권보다 심했다.지금 입법부를 장악한 ‘운동권’ 세력들의 행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화는커녕, 가장 비민주적인 북한의 ‘어버이 수령 체제’를 방불케 한다. 170석의 거대 정당이 철저하게 사당화 되어 당 대표는 독재자를 넘어 사이비종교의 교주나 다름이 없는 지위를 갖는다. 산더미처럼 크고도 많은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대표를 결사옹위하기 위해 저들이 벌이는 온갖 작태는 광기란 말밖에는 대신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온갖 협박과 탄압에 좌고우면하던 검찰과 사법부가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는지 수사와 판결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정황이다. 이재명과 조국을 비롯한 야당의 범죄혐의자들은 결국 시시각각 죄어드는 법망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당의‘아버지’ 방탄을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저들의 행태가 어디까지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2024-07-04

꽃 같은 잡초들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벌써 7월. 장맛비라며 슬쩍 다녀간 빗줄기 덕분인지 들판에는 온갖 풀꽃들이 가득하다. 갑자기 닥친 더위에 한참 만에 들린 시골집에도 생각 밖의 초록색 막이 덮여있다. 그런데 그 속에 하얀 꽃 노란 꽃들이 피어있어 밉지 않은 꽃밭에 들어온 느낌이다.방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바꾸어 놓고 뒤뜰까지 둘러보니 풀들이 너무 무성하고 앞뜰의 키 낮은 정원수는 아예 밑둥치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아, 가지 정리를 좀 해야겠구나’하고 전지가위와 톱을 꺼내 들고 가까이 가보니 쑥의 무리와 예쁜 개망초꽃 탓이다. 개망초는 심지도 않았는데 재작년부터 흰 국화처럼 피던 꽃이라 그냥 두어온 것인데 알고 보니 온 들판에 피어 퍼드러지는 잡초라는 것이다.잡초는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식물 외의 것을 말하며 야초(野草), 즉 들풀인데 생육이 빠르고 번식력이 강할 뿐 아니라 수명이 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여 햇빛과 바람을 막아서 다른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잡풀, 풀떼기라고도 한다. 집 주위를 둘러보니 토끼풀은 대문 앞 잔디밭에 애잔스럽게 꽃피우며 깔려있고 담장 밑 명아주는 자주색 열매를 맛보게 하여 그냥 두었지만 잔디 마당의 방동사니와 바랭이는 보이는 족족 뽑아버리고 있다. 그러나 개망초는 들판을 지나다 보면 하늘하늘 무리 지어 춤추고 있어 아름답고, 뜰에도 예뻐서 그냥 두었는데 올해는 너무 많다. 아내는 꽃이 예쁘니 그냥 두자고 했지만 허리 높이까지 자라고 비바람에 쓰러진 듯한 모습이 보기 싫어 몇 포기를 남기고 모두 뽑아버렸다.개망초는 좀 늦게 피는 망초보다 꽃이 크고 예쁜데도 앞에 ‘개’ 자가 붙었고 달걀꽃, 계란프라이꽃이라는 이름대로 꽃 가운데가 노랗게 둥근 예쁜 잡초다. 그런데 왜 ‘망초’일까? 밭을 망친다고…? 망초류는 북아메리카 원산인 귀화식물인데 구한말인 1905년 전후로 전국에 만발한 탓에 ‘나라를 망치는 꽃’ 망국초라 하여 ‘망초(亡草)’가 됐다는 사연이다. 어린잎은 한방재료로 쓰이며 소화불량, 설사, 장염뿐만 아니라 감기와 학질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꽃말이 ‘화해(和解)’처럼 다른 잡초들과 화해를 해야겠구나.쑥 무리도 다 뽑으려고 한다. 모양새가 국화 같아서 처음엔 놔두었는데 번식력이 워낙 강해서 화단석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줄기를 밀어 올린다. 약쑥은 봄에 쑥떡도 해 먹고 인진쑥은 약효도 많고 5월 단옷날 뜯어서 말려 걸어두면 집에 귀신이 못 들어온다고 해서 두고 있지만 이것 역시 화단에서는 잡초이니 뽑아낼 수밖에…. 그러나 잡초라고 해서 다 못된 것이 아니고 생태계에서는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잡초가 없으면 병충해가 농작물을 공격하거나 익충의 보금자리가 줄어들 수 있겠다는 것이다.요즘 우리 국회를 보자. 이제 아름다운 국가 정원을 꾸며야 하는데 정치하는 인간, 즉 정치인 속에도 그들만의 잡초들이 보여 여의도 꽃밭이 일그러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몇몇 특검법, 방송4법 또 검사 탄핵안 등으로 인해 약 10여만 평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국회의사당 뜰에 개망초가 피지 않기를…. 전국을 뒤덮던 생태교란종 ‘노란 코스모스’ 금계국은 이제 지고 없다.

2024-07-04

저출생 극복은 대한민국 미래세대에 대한 책무

김정재 국회의원(국민의힘·포항북) 대한민국이 ‘멸종위기 국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인구 감소 때문이다. 전망되는 2024년 합계출산율은 0.68명. 이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출산율이 1이 되지 않는 국가는 머지않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20년 간 저출산 정책에 380조 원을 들였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결국 막대한 예산만 날린 셈이 됐다.초저출생이 가져올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미 많은 지방도시가 소멸 위험에 직면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이 10명도 되지 않는 초등학교가 전국에 1587개나 된다. 향후 경제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 퇴보와 자산 가치 하락, 병력 축소로 인한 안보위협, 사회안전망 약화는 불 보듯 뻔하다.원인은 무엇일까?초등학교부터 자행되는 선행학습과 사교육,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떠안게 되는 학자금, 캠퍼스의 낭만도 모른 채 시작되는 취업경쟁, 이제는 월급만 모아서는 이룰 수 없는 내 집 장만의 꿈, 어렵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 이런 현실을 직접 겪은 2030들의 결혼 기피, 출산 기피가 요인으로 꼽힌다. 이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선진국처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실질적인 무상 교육을 도입하고 대학 교육비를 대폭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사교육을 경감할 사회 주도의 교육 혁신이 있어야 한다. 학원 교육이나 인터넷 강의를 능가하는 동영상, 메타버스, 디지털 트윈, AI 도우미 강사 등을 융합한 디지털 AI 무료 교육 시스템을 도입, 공정한 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특히 결혼은 물론 출산과 육아 계획에 가장 큰 요소인 안정적인 주거 확보 대책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신혼가구를 대상으로 주택구입자금과 전세대출 자금을 확대 지원하고, 대출한도와 부부합산소득기준 상향, 상황기간 연장 등 혁신적인 정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사회도 아동 친화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부모 중 한 명 이상과 동반하는 자녀는 14세까지 기차 요금이 무료다. 또 17세까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도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36개월 이상이면 성인에 버금가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 아닌가. 앞으로는 다둥이와 한 자녀 관계없이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요금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저출생 극복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정부와 국민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문화도 개선해야 가능하다. 이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은 차고 넘친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의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계획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고 부처 간 조정자 역할을 맡아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이에 발맞춰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서도 ‘저출생 대응 특별위원회’를 만들었고, 본 의원에게 위원장 소임이 주어졌다. 현재 활발하게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음을 전한다. 저출생 극복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어젠다인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2024-07-04

정치는, 역동성을 회복하라

장규열 고문 정치에 있어 역동성은 정치의 변화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덕목이다.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선한 아이디어와 충만한 에너지가 늘 필요하며, 이는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를 통해 확보될 터이다. 정치가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정치인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미국정치 현장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의 최근 대선토론에서 나타난 정치지도자 노쇠현상은 우리에게도 사뭇 경고가 된다.첫째, 세대교체는 새로운 시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국정치에서 고령의 정치인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종종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다. 젊은이들이 최신 기술과 경제, 사회적 트렌드를 잘 이해하여 이를 바탕으로 훨씬 혁신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도출할 수 있다. 디지털 산업과 경제에 관련된 정책이나 노동과 복지, 환경과 인구 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방식은 젊은 정치인들이 더 잘 다룰 터이다.둘째, 정치의 세대교체는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한다.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는 다양한 세대의 목소리를 고루 대변해야 한다. 현 정치구조에서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청년정치인들이 더욱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불비례를 해소하고 모든 세대가 공정하게 대변되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셋째, 정치적 세대교체는 정치 참여를 북돋우며 정치적 효능감을 증대시킨다.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까닭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데 있다. 젊은 정치인들의 활약으로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의견이 현실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신뢰와 기대를 가지게 될 터이다.넷째, 세대교체는 정치에 있어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젊은 정치인들이 기존 정치의 비효율과 부패를 상대적으로 강하게 인식하여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질 터이다.정치에서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게 하여, 정치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전반적인 신뢰를 회복할 것이다. 정치의 질을 높여가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터이다.우리는 정치적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미국 정치에서 목격한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선 토론에서 양측 모두 낡은 이미지를 드러내면서 정치적 역동성의 부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아니었을까.두 후보의 토론은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시민의 정치 무관심을 부추겼으며, 정치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하였다.이는 한국정치에도 긴요한 시사점을 제공하여,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를 통해 정치적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명제를 강력하게 부각시켰다.결론적으로, 정치가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세대교체가 필수불가결하다. 정치가 노쇠하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정치가 젊어져야 나라에 힘이 솟는다. 국민의 기대를 정치로 다시 모으기 위하여 우리 정치가 젊어져야 한다.

2024-07-03

미국 대선 ‘노인들의 전쟁’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미국의 60번째 대통령 선거가 곧 열린다.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막강한 군사 시스템을 갖춘 부정할 수 없는 지구 위 최강대국의 새로운 수반이 결정되기까지 4개월 남았다.이번 미국 대선에 후보로 나선 사람은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그런데, “이들의 나이가 대통령 업무 수행에 지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바이든의 나이는 여든둘, 트럼프는 일흔여덟.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적은 나이는 분명 아니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조롱하는 일부 옐로우 저널은 미국 대선을 ‘노인들의 전쟁’이라 비꼬기도 했다.그렇다면 세칭 ‘주요 선진국’으로 불리는 다른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들은 몇 살일까?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쉰셋,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마흔일곱이다. 둘 모두 조 바이든의 쉰네 살 차남 헌터 바이든보다 젊다. 트럼프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1977년생으로 마크롱과 동갑.바이든이건 트럼프건 대통령이 돼 정상회담에 나선다면 아들뻘과 일정을 함께하게 될 터다.세계엔 젊은 대통령과 총리가 적지 않다. 몇 가지 스캔들로 인해 명예롭게 물러나진 않았지만 전임 핀란드 총리인 산나 미렐라 마린은 겨우 서른넷에 국가 원수 역할을 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바이든이나 트럼프의 손녀뻘.노령이라고 모두 무기력하고, 청년이라고 전부 에너지 넘치는 건 아니다. 시인 고은은 “뒷방에 눌러 앉아 제 할 일을 찾지 못한다면 스무 살도 노인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한 바 있다.단풍 물들 가을. 미국인들이 ‘에너지 가득한 청년 같은 노인’을 선택할 수 있을지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03

선거홍보판과 그라피티 독일여행기(下)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마침 우리가 갔던 때가 유럽의회 의원선거기간이었던가 보았다. 독일의 튀빙겐, 슈튜트가르트, 뮌헨,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비엔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도 선거홍보판이 거리 곳곳에 붙어있었다. 처음엔 하나같이 웃는 얼굴의 그 사진이 무엇인지 몰랐다. 동생이 선거홍보판이라고 했다. 모조지 2절 정도 크기의 빳빳한 종이에 선거에 출마한 사람의 얼굴이 크게 박혀있고, 당명과 당의 선거구호가 쓰여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홍보판이 길가 가로등에 묶여 있었고, 어떤 곳엔 가로수 밑둥에 네 면으로 둘러 묶어붙인 것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현수막에 비해 훨씬 사이즈가 적었다. 평소에도 우리의 현수막을 도시의 흉물로 여겨 보기 싫어하는 나였기에 유럽의 홍보판은 훨씬 간소해서 도시의 미관을 그다지 해치지도 않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몇 년 전 미국에서의 경험도 비슷했다. 어떤 집의 정원에 사람의 얼굴이 크게 박힌 피켓이 꽂혀져 있어 매우 궁금해했다가 그것이 선거홍보판이라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었다. 개인의 정원에 저렇게 꽂아도 되는지, 허락을 받고 꽂은 것인지 궁금해 하는 내게 돌아온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그 정원의 주인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의 피켓을 자발적으로 꽂는다는 거였다. 선거는 겉으로는 조용하고 깨끗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치열하게 치러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두 대륙에서 받았다. 우리의 선거홍보물을 ‘도시의 붕대’라고 불리는 현수막에서 저런 좀 더 자그마한 부착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귀국 후 유럽의회 선거 후의 판세를 분석하는 뉴스기사를 봤다. 우리가 버스를 탈 때마다 봤던 튀빙겐의 그 환한 미소의 여성 후보는 당선되었을까 궁금하긴 하다.그러나 그 아름다운 도시의 미관을 심히 거슬리게 하는 것도 있었다. 그라피티(graffiti)였다. 그라피티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길거리 여기저기 벽면에 낙서처럼 그리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어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한다. 공공장소의 벽면뿐만 아니라, 상가의 벽면, 대학 건물, 지하철역 벽면과 지하철과 기차의 표면에도 빈틈만 있으면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주로 검은색의 페인트로 크고 작은 글씨를 쓰거나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린 정도여서 그라피티를 예술이라 명명해야 한다면 이는 그림이 아닌 낙서였다. 어느 도시 건 어떤 건물이든 분별없이, 가차없이, 빼꼼한 데 없이, 함부로 휘갈겨 놓은 거니, 낙서였다. 독일의 그 고풍스러운 거리, 아기자기하고 예쁜 건물, 비엔나의 오래되고 아늑한 골목의 작은 가게 벽에까지 그려진 낙서엔 화가 치솟을 정도였다. 그라피티를 운운할 때면 예술이냐 범죄냐로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선 엄연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얼마 전 경복궁의 담장을 훼손한 낙서로 온 국민이 분노한 적도 있지 않은가. 최근에는 그라피티를 거리의 예술로 대접하여 공공장소의 개성있는 벽화로, 또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그라피티까지도 있다고 들었다. 또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로도 인정하고 21세기의 문화현상으로 여기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현장을 목도해보니 예술로 용인하긴 힘들었다.

2024-07-03

무릎 통증의 원인과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인체 몸무게의 대부분을 지탱하는 큰 관절이 무릎이다. 자연스럽게 걸어 다니고 서있어도 지속적으로 무릎은 부하를 받는다. 처음엔 주변을 잡아주는 근육이 뭉치고 힘줄에 염증이 생긴다. 통증이 심하지 않다고 무릎을 계속 사용하면 무릎 뼈와 뼈를 잡아주는 인대에 문제가 생긴다. 내측 외측 측부인대가 늘어나고 염증이 생기고 손상된다. 관절이 불안해지기 시작하면 연골이 반월판과 부딪혀 닳거나 찢어지는 경우도 있다. 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런 과정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으나 젊은 사람도 무리하게 사용하면 무릎에 손상이 온다. 무리한 운동으로 급격한 힘을 주면 전방십자 인대나 후방십자인대 손상이 오는 경우도 많다.대부분 무릎 통증은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측 외측 후방 혹은 대퇴골 쪽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무릎 전체를 둥그렇게 만지면서 아프다고 표현을 많이 한다. 사실 무릎뿐만 아니라 관절이 아프면 보통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 정확히 찾아보면 아픈 위치가 있다. 내측측부인대 혹은 외측측부인대쪽 통증이 많고 슬개골과 대퇴사두근 부위가 아픈 경우도 있다.통처를 정확히 파악해야지 정확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아픈 위치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릎이 아프면 대부분은 무릎 연골이 닳았다고 생각하나 실제론 인대와 힘줄 쪽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나이가 있는 사람도 관절이 많이 닳지 않았다면 인대와 힘줄의 정확한 치료로 큰 효과를 본다. 많이 닳은 경우라도 오랜 시간 주변 인대와 힘줄 근육을 꾸준히 치료하면 많이 개선되는 것을 보인다. 부어 있지 않으면 치료가 잘 되는 편이고 부어 있으면 치료가 오래 걸린다. 무릎뿐 아니라 모든 인체 부위에 공통적으로 적용 되는 사항으로 부어 있으면 붓기가 빠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부어 있는 자체가 주변 신경이나 인대 등의 구조물을 압박하기 때문에 치료가 오래 걸린다. 부어 있는 경우는 주변 조직이 압박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관절과 반월판의 손상이 빨리 오고 연골이 빨리 닳는다. 부어 있는 경우는 빨리 확실히 치료를 해야 된다.많은 인대와 근육 인대들이 결속해서 무릎 관절을 지탱하고 보호를 하고 있는데 무릎은 특히 깊은 쪽 구조물에 문제가 많이 생긴다. 일반적인 침과 약침 부항 등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으나 초음파로 깊은 위치의 문제를 직접 보면서 약침으로 근막을 분리하고 압박된 신경을 떨어뜨리면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달리기를 많이 한 젊은 사람이 무릎 바깥쪽이 아픈 경우는 장경인대가 무릎에서 마찰 돼서 생기는 것이 원인이다. 초음파 약침으로 통처의 부착부를 떨어뜨리고 영양 공급을 해주면 빨리 통증이 개선된다.무릎은 운동보단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고 통증이 있는 동안은 운동을 쉬는 것이 좋다. 운동은 무릎 주변 대퇴근을 강화시키는 스쿼트 같은 운동을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해주는 것이 좋고 근육을 만들어 주는 고기나 생선 등의 단백질 섭취를 꾸준하게 하는 것이 좋다.

2024-07-03

ㅏ와 ㅓ 사이에

정미영 수필가 초록 바람소리가 쏟아지는 여름의 해질녘이었다. 박완서 작가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다시 읽었다. 돌아가시기 한 해 전에 출간되었기에.‘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 또한 노후에 흙을 주무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도 큰 복이다.’라고 책머리에 말씀하셨다.마당을 돌보는 일은 선생님께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산문집을 발간하는 데에 있어 글감으로도 한몫 거들었다. 나도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글을 쓰고 싶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그러려면 건강을 챙겨야지. 아무렴, 먼 훗날 내 몸이 노쇠하더라도 총기를 유지해야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출판할 수 있겠지.땅거미가 뉘엿뉘엿 내려앉은 탓인지 눈이 침침했다. 그래도 눈을 비벼가며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요즘 들어 책을 얼굴 가까이에 대면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고 멀리 거리를 두면 오히려 또렷하게 보인다. 내 눈의 노화현상을 체감하는 진행형인지라, 독서가 눈의 피로를 높이는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알곡만을 골라 밥을 지으려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내려 가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좋은 글은 책을 읽는 나의 안목에 따라 매번 감동이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예전에 밑줄을 쳤던 문장이라도 연필로 선의 굵기를 달리하며 덧입혀 긋기를 반복했다. 또한 새롭게 감흥을 주는 글귀가 나오면 별표나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정독했다.‘친절한 나르시시스트들’에는 선생님의 일본 여행담이 일부 나왔다. 그 중 삿포로 역전 서점 기노쿠니야에서 ‘맛있는 카디건 뜨기’라는 뜨개질책을 읽으시는 대목이 나왔다. 출판사의 뜻인지, 저자의 뜻인지, 책 제목이 독특하고 참신한 것 같았다. ‘멋있는’이라는 상투적인 제목이 아니라 ‘맛있는’이라고 짓다니. 글을 쓰고 난 뒤에 제목을 짓는 일로 심사숙고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제목 짓기의 어려움을.누군지도 모르는 일본 작가와 출판사의 작명 실력에 감탄하며 박완서 선생님께서 몇 장에 걸쳐 쓰신 뜨개질에 대한 추억을 읽었다. 선생님은 이삼십 대에 자녀를 위해 뜨개질을 많이 하셨단다. 그때 어렵게 구한 일본 뜨개질책은 꿈의 교본이었는데, 책에 나와 있는 대로 게이지를 내고 치수를 맞춰 코 수를 계산해서 뜨면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았다는 부분에서는 선생님의 환하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나지막이 웃었다. 한국에 돌아와 때때로 꺼내보기 위해 책을 구매해 오셨다는 문장을 읽고, 책 제목을 내 마음에 담기 위해 앞 장을 넘겼다.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제목이 ‘멋있는 카디건 뜨기’였다. 내 눈에 ‘맛있는’으로 읽혔던 글자가 원래 ‘멋있는’이었던 것이다. ㅏ와 ㅓ 사이에, 내 눈의 노화 현상인 원시(遠視)가 숨어 있었다. 인생시계에서 마음은 생동감 넘치는 봄의 푸른 계절에 마냥 머무르고 싶은데, 어느덧 신체는 가을로 기울어졌으니 시력 저하로 원근의 조절이 약해지는 것 또한 노화 현상의 자연스러운 섭리가 아니겠는가.그래도 원시(遠視)로 인한 착각이 일상생활에서 낯익은 풍경이 될까봐 야속했다. 나는 인생의 늦겨울에서조차 내가 쓴 작품집의 퇴고는, 내 눈으로 직접 완벽에 가깝게 하고 싶은 바람을 항상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혈을 쏟아부은 노력의 결정체로 탄생한 내 수필에서만큼은 ㅏ와 ㅓ 사이에, ‘정상 시력’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일까.그나저나 박완서 선생님처럼 필력을 오래 유지하려면 내 눈 건강부터 신경 써야겠다. 건강을 위해 마당 있는 집을 구하기는 당장 어려운 일이니, 나는 궁여지책으로 며칠째 눈에 좋다는 결명자차를 주전자 한 가득 끓이는 중이다. 유감스러운 원시(遠視)가 더디게 오기를 소심하게 염원하며.

202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