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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또 하나의 이름

등록일 2025-02-05 18:25 게재일 2025-02-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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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경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같이 활동하시던 소당(素堂) 조철제 선생님께서 누군가에게 호를 지어주고 다같이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에게도 호를 지어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쭈었다.

그때도, 한참 후까지도 답이 없어 ‘네가 무슨 호가 가당키나 한가’ 생각하시는가 보다며 내심 서운했다. 내 위인됨이 변변찮다고 생각하시는가도 여겨 나도 입을 다물었다. 몇 년 후였다. 아마도 향토문화연구소의 정기모임이었을 것이다.

조 선생님께서 마치 오다가 주웠다는 듯이 무심하게 종이 하나를 건네주셨다. 펼쳐보니 ‘의당(宜堂)’ 두 글자가 반듯하게 한자로 적혀있었다. ‘의(宜)’는 마땅하다, 화목하다. 온화하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시경의 시 ‘도지요요(桃之夭夭)’에서 따왔다고 하셨다. 몇 년 동안 지켜봤는데, 언제 어디서나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 제 역할을 다하는 사람, 또 그곳을 화목하고 기쁘게 해주는 사람으로 보였다고도 하셨다.

앞으로도 항상 이 교수가 있는 곳이 어디든, 마땅히 그 자리를 복되고 빛내도록 하라는 뜻으로 정한 호라며 분에 넘치는 말씀도 함께 주셨다. 호는 많이 알려서 자꾸 불려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공표하고 축하연도 조촐하게 열어주셨다. 그 후부터 경주문화원엘 가면 나는 의당 선생이라 불렸으나 항상 좌불안석이었다. 50살도 안된 내가 감당하기 어렵고 버거운 이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드러내놓기엔 쑥스러워 SNS의 닉네임으로 숨겨 쓰곤 했다.

몇 년 후 2005년으로 기억한다. 지역신문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연구실에서 기자와 장시간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그만 호를 말해버렸다. 며칠 후 신문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 : 경주에선 문화전문가, 포항에선 여성단체장, 안동에선 내방가사 전문가….” 참 기자님은 어찌 그렇게도 호를 적절하게 사용했나 놀라면서도 부끄러웠다. 대신 그렇게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내 직분을 다하리라. 어디서든 필요하다 부르면 달려갔고, 소용 닿는다고 역할을 주면 마다않았다. ‘마땅한’ 소명이라 여기며 정말 치열하게도 살아냈다.

한글서예공부를 한 지 햇수로 1년이 훨씬 넘었다. 핑계가 많아 썩 열심히 하지 못했고 여러 모로 모자라 수연(秀硏) 최민경 선생님을 애태웠다. 같이 공부하는 다른 분들이 글씨를 완성해 호와 이름을 쓰고 낙관을 찍는 것이 못내 부러웠다. 최근에야 모자란 글씨인데도 격려해 주시려는지 한 장씩 연습한 글씨 아래 호와 이름자를 쓰기를 허락하셨다.

이미 호가 있지만 새로운 호를 직접 지어주시면 고맙겠다고 간청 드렸더니 한참 후에야 답을 주셨다. 글을 연구하고 글씨를 연마한다는 뜻의 ‘서연(書硏)’. 더구나 선생님의 아호에서 한 자를 나눠주시니 황감하기 이를 데 없다. 좋은 글을 연구하고 글씨도 열심히 쓰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과분한 말씀에 은근한 독려도 곁들이셨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얼마나 여러 날 심사숙려해서 지어주신 귀한 이름인가. 내 나이 칠십, 남은 생 다하도록, 이름값하면서 사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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