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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서 TOSEL 숙제’ 이게 사교육 현실

등록일 2025-02-04 19:44 게재일 2025-02-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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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택 ​​​​​​논설위원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TV채널을 돌리다가 ENA(연예 전문채널)가 방영하는 ‘내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인기 연예인 부부의 아이들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내용이었다. 부모 품을 떠난 아이들이 외국인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여행하는 모습이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아이들의 영어실력에 감탄하는 내 모습을 본 와이프는 ‘영어 유치원’ 얘기를 꺼냈다.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에서도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을 일찌감치 영어유치원에 보내 영어로 일상생활을 하는 언어습관을 들인다는 것이다.

영어 사교육 실상은 최근 EBS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상당수 MZ세대 맞벌이 부부들은 기저귀도 못 뗀 영유아기부터 영어 사교육을 시작하고 있으며, 월 사교육비가 평균 182만9000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 사교육비 금액은 지난해 한 국책연구기관이 만 2세와 3세, 5세 자녀를 둔 엄마 약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6세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는 한 엄마는 EBS와의 인터뷰에서 “유치원에서 영어단어 테스트를 보고, 일주일에 한번씩 토셀(TOSEL) 숙제도 계속 나온다”고 했다. 유치원에서부터 토익과 토플 같은 유형의 영어능력 시험을 치른다는 얘기다.

자녀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빚내서라도 따라할 수밖에 없다는 게 요즘 젊은 부부들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자료는 아니지만, 지난 2023년 통계청이 조사한 결과, 국내 초중고 학생의 79%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비 총액도 27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생 수가 주는 데도 사교육비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5만3000원으로 집계됐지만, 서울 강남구 교육 특구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평균 185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초중고 12년간 약 2억7000만원을 사교육에 쓴다는 계산이다. 초중고 자녀 2명(4인 가구 기준)의 사교육비가 가계 월평균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4%까지 늘어났다.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사교육 열풍은 중·고등학교 단계에서 심각한 양극화 현상으로 표출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서열구조가 자녀의 고교 서열구조(국제고-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BBC(영국방송공사)는 “한국은 중세 유럽의 흑사병을 능가하는 인구 감소 상황에서도 사교육비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했다.

한국의 사교육문화가 세계 최저수준의 합계출산율 기록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부담은 젊은 부부들의 출산기피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사교육비 문제는 학벌주의와 과도한 입시경쟁이 주원인이긴 하다.

그러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 공교육의 질적 수준과도 연결되는 구조적인 병리현상인 만큼 정부, 학교, 학부모, 학생 모두가 함께 해결책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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