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날도 적당히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보이는 제목을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골랐다. 글이 잘 나오는 날이어서 집중을 하고 써내려가고 있는데, 뭔가 서늘한 감각이 들었다. 들리는 음악들이 형편없는 건 아닌데 뭔가 무미건조한 느낌. 굳이 비유를 하자면 맛이 나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있는데 공기를 삼키는 듯 전혀 배가 부르지 않은 느낌. 누구의 음악들인지 확인을 하려고 플레이리스트 하단의 글을 봤더니 아뿔싸, ‘이 플레이리스트는 AI로 자동 생성된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는 것이었다.
나는 한 사람의 음악 애호가로서 위기감을 느꼈다. 과거의 나는 어땠는가. 갖고 싶은 음반의 발매 날짜를 손꼽아 기다려 레코드 가게에 간다. 음반 한 장을 들고 집에 달려온다. 조그만한 라디오 데크에 CD나 테이프를 넣고 노래가 재생되길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침대에 누워 앨범 속지를 꼼꼼히 살피며 정성스레 음악을 들었다. 노래를 거의 다 외울 때까지 그것을 반복하곤 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다음은 디지털 음원의 시대. 음반을 사서 뛰어오는 설렘과 속지를 읽는 재미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중한 선곡을 통해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러다 그 선곡하는 행위마저 사라지고 만 것은 최근의 일이다. 타인들이 선곡해 놓은 플레이리스트들을 재생하곤 하다가 이제 그 시기마저 넘어 사람이 만들지도 않은 음악을 듣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음악 듣는 방식은 비효율에서 효율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변모해왔다. 음반을 사러 가는 물리적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노래를 고르는 생각의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급기야는 생산자들의 번거로움 마저 제거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내게 음악을 듣는 행위는 정신에 영양을 공급하는 행위. 그런데 오늘 나는 문득 이 행위가 더 이상 나의 정신에 그 어떤 영양도 제대로 공급해주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휴대폰으로 찍고 있는 사진들도 그렇다. 어릴 적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사진은 아직도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보관되어 언젠가가 그리울 때면 언제든 그 시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해 준다. 2000년대, 디지털 카메라 시절에 찍었던 사진들은 이리저리 뒤섞여 외장하드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지만 어쨌거나 보존은 되어 있다. 그런데 그마저 골동품이 되고 휴대폰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게는 이제 어떤 사진이 남아 있는지, 어디에 어떤 시절들이 저장되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해 주신 말씀이 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고. 디지털의 홍수가 내게 준 것은 그야말로 정서적 갈증이었다.
나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단 물건을 샀다. 집에 물건을 늘리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테이프와 CD가 들어가는 중고 오디오 데크를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카세트테이프 몇 개를 사서 듣기 시작했다. 그 옛날 음반을 사서 들을 때의 감각이 조금이나마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후로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불편한 방식으로 음악을 다시 듣다보니 설령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 음원을 듣는 때가 있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리스트를 고민하게 되곤 한다. 그렇게 그동안 휘발되기만 했던 음악들이 이제는 내게 조금씩 남아 머물게 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오키, 모허, Neil Young, Michael Kiwanuka 등의 앨범이 최근에 그랬다.
내친 김에 필름카메라도 하나 장만했다. 1996년에 생산된 자동필름카메라.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꽤 돈이 드는 일이다. 필름 값과 현상하고 스캔을 하는 값까지 생각해보면 셔터 한 번 누르는 데 몇 백 원이 드는 셈이다. 그러니 매순간 신중해지곤 하는 것이다. 숨을 참고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던 그 순간들이 한 장 한 장의 사진들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게 된다. 비싸고 불편하지만 이 역시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점점 촘촘해지고 시간은 점점 없어진다. 그래서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은 유리한 선택이 되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가끔 불편함을 요할 때가 있다. 편의점 도시락과 레토르트식품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서글프듯이, 손수 지은 밥처럼 불편한 음악과 사진 같은 것들만이 채울 수 있는 부분들도 있는 것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삶 속에 가끔 이러한 불편함을 추가해 보면 어떨까 주변에 추전하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