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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신비

등록일 2025-02-10 19:51 게재일 2025-02-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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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수 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장미 밑둥치들을 살펴본다. 한 주에 두 번은 걸어서 지나는 화단이다. 이곳 장미들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오가는 길손들을 즐겁게 한다. 처음에는 관심 없이 지나다녔지만, 시간이 가며 이 화단 장미들이 유별나게 곱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지날 때마다 장미들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곳 장미는 왜 다른 것들보다 더 곱고 크며,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낼까. 내가 알아낸 것은, 정원사가 가지들을 자주 잘라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장미는 매번 가지가 잘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새 가지가 나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젊은이가 더 아름답듯, 새 가지에 피어난 장미꽃이니 더 크고 고왔던 것일까.

문득, ‘고통의 신비’가 떠올랐다. 성당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 드리는 네 가지 신비 중의 두 번째다. 네 신비는 ‘환희, 고통, 영광, 빛’이다. 2월 초순, 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장미 밑동은 추운 막바지 겨울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밑동 속에서는 머지않아 다가올 봄에 활짝 꽃피울 새순을 내보낼 준비에 여념이 없으리라. 순과 잎, 꽃의 모양과 색깔을 디자인하고 실행계획도 세울 거다.

묵주기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다. 그중 고통의 신비는 사람의 삶과 가장 가까운 주제이다. 불교에서도 인간의 삶을 고해라 하듯이, 고통은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묵주기도의 고통은 죄 없는 그리스도가 온갖 모함으로 받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고통의 정점은 죽음이다. 고통을 감내하고 죽음으로써 부활하는 신비로 묵주기도는 이루어졌다.

한겨울을 능가하는 입춘 꽃샘 한파가 물러나면, 겨우내 준비했던 새순은 눈을 틔우고 자라나 꽃봉오리를 맺을 터. 무르익은 봄날 마침내 꽃봉오리는 화려한 꽃잎을 열어 아름다운 자태를 온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흰장미, 분홍장미, 노랑장미, 붉은장미, 흑장미 모두 피어나 생명의 거리를 밝히리라.

지금 우리 사회도 고통의 신비를 겪고 있다 싶다. 무너져 가는 자유민주국가 질서를 간파한 대통령이 홀로 십자가를 지고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다. 이에 감동한 많은 국민이 거리로, 광장으로, 대통령관저 앞으로, 법원 앞으로, 구치소 앞으로 모여들어 대통령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짊어지고 있다. 그 결과, ‘비상계엄’이 ‘비상계몽’으로 승화하며 많은 20~30 젊은이들을 일깨워 함께 걷게 한다.

구치소에 갇힌 대통령의 지지율이 51%란 여론조사 보도를 몇일 전 보았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이 실감 난다. ‘사필귀정’이란 마음도 든다. 내란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내란 주범으로 몰아 탄핵한 아이러니의 진실이 하늘에 닿은 게 아닐까.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트리는 부정선거 발본색원이 12·3 계엄의 주목적임을 민심이 알아챈 것이다.

꽃샘추위가 가고 봄이 오면, 사람들이 오가는 작은 화단에 올해도 고통을 이겨낸 고운 장미가 활짝 필 것이다. 그때쯤, 우리나라도 탄핵이란 고통이 자유민주주의란 더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함빡 피어나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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