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무엇이든 묻게 된다. 어색한 침묵을 깨뜨리기 위함이거나 사회적 처세술로 비롯된 관성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질문은 언제나 상대에 관해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다. 상대와 시선을 맞춘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태도로 물음표를 건넨다. 그러니까…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여기서 ‘무엇’이라는 범주는 너무나도 방대해서 선뜻 대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취향이 확고한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을 수 있다. 대답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겠다. 상대가 내어놓은 답은 놀라울 것이다. 타인의 발자국은 항상 예상치를 벗어나게 되어 있으니. 그의 시선이 닿은 세계가 모여 한 사람을 그리는 무늬가 된다. 낯선 상대는 어느 순간 형태를 갖추고 내 안에 안착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고고한 감식안을 뽐내며 근사한 이야기를 내어주고 싶지만, 내 삶을 구성하는 것은 하나같이 진부하고 소소한 것뿐이다. 세련된 물건으로 가득 찬 가게보단 아무렇게나 방치된 숲이 좋고 떠들썩한 자리보단 홀로 보내는 쓸쓸한 새벽이 편안하다. 힘차게 발을 구르는 날보다 빈둥거리는 시간을 더 사랑하며 재미없고 촌스러운 것에 쉽게 매료된다.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기에 작가나 책에 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아직 읽지 않은 책에 관해 답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어쩐지 망설이게 된다. 잠시 뒤로 물러나 한 번 더 생각할 때도 있다. “그 작가를 좋아하세요?” 그와 같은 질문은 평단의 평가나 대중의 시선 따위를 묻는 것이 아니다. 호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명확한 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주인공 폴은 그녀를 열렬히 사모하는 시몽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가 미소 짓게 되는 것은 그의 뜻밖의 질문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세요?” 이토록 간단한 질문은 그녀를 치열한 고민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애 관해 생각하는 일을 언제부터 멈추게 되었는지. 폴은 의문한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폴은 스스로를 이미 너무 많이 늙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열정이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애인은 그녀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청년, 시몽의 등장과 함께 그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그의 과감함,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경험한다. 폴은 시몽의 편지를 받고 생각한다.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답을 내어놓는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생각의 분투 끝에 다다른 ‘모르겠다’는 결론은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매우 심플하다.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
그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스스로에 관해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그렇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 가장 어렵다.
시몽의 마음을 확인한 폴은 자신의 애인에게 이런 말을 꺼낸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더라고. 믿어져?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도 없다는 게.” 그는 브람스 얘기는 집어치우라고 말하지만, 폴은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이건 브람스에 관한 얘긴걸.”
중요한 것은 브람스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브람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괴로움을 느끼는지. 그러한 질문에서부터 많은 것이 시작된다. 애정과 연민, 사랑과 이별까지도.
상대를 알아가는 일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마지막 장을 덮어도 마침표보단 물음표가 남는다. 그 어려운 영역을 끝끝내 더듬겠다는 의지, 희미하게 보이는 윤곽을 붙잡는 노력이 우리를 가깝게 만든다. 질문의 이유는 그런 것이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