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2월의 햇살은 화사해서 슬펐다. 눈가를 찡그리며 터덜터덜 걷는 뒤로 졸업을 서로 축하하는 가족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졸업장 하나만 들고 나서는 걸음이 무거웠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데 멀리에서 여동생이 작은 꽃다발 하나를 들고 뛰다시피하며 내게 오고 있었다.
하던 일이 잘못 되어 그 뒤처리를 하느라 부모님은 결국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옆집 아주머니가 뒤늦게 꽃다발을 사서 여동생에게 준 것이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또렷한 기억으로 떠오르는 나의 졸업식이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졸업은 내겐 의미가 깊은 것이었다. 누구의 졸업식을 가던 축하하는 마음을 듬뿍 가지고 갔다. 결혼을 하면서 내 아이들의 졸업식만큼은 크게 축하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큰 아이도 작은 아들도 자신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며 대학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그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졸업장 받아오는 것으로 끝이었다.
1961년에 개정된 교육법에 의해 2월 졸업은 꽤 오래 지속되어왔다. 그 당시의 졸업식은 졸업생이나 가족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후배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이란 노래를 불러주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졸업식 풍경은 점차 엄숙함과 경건함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한때는 뒤풀이로 밀가루 뿌리기나 계란 던지기 등의 문화가 생겨났었다. 그것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건전한 졸업 문화를 조성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코로나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졸업식의 광경은 또한번 달라졌다. 운동장에서 하던 졸업식은 실내로 그 자리를 옮겨 비대면으로 시행되었고, 무겁고 엄숙하던 졸업식은 축하의 의미가 강한 축제의 느낌이 가미되었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졸업식에 간다고 해서 놀랐다. 대부분의 졸업식이 2월이라고 생각했었는데, 1월에 하는 졸업식이라니. 학사 일정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신학기 준비기간 조성 등으로 요즘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12월말이나 1월 졸업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집앞 강변 산책을 하며 대나무숲을 걸었다. 대나무는 일정한 크기가 되면 마디를 만든다. 그것이 대나무가 속이 비어 있음에도 곧고 바르게 높이 자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속이 텅 비었는데도 거센 폭풍에 휘어질 뿐 쉽게 부러지지 않는 것이 마디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것은 성장의 발판이자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받쳐주는 생장점인 것이다. 졸업도 하나의 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을 시작하기 위한 매듭이며 마디이다. 한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만큼 얻지 못했어도 그것을 하나의 마디로 매듭짓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 과정에서 성취한 것이 있다면 축하하며 새로운 시작을 응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인간의 지혜가 졸업식이다.
우리는 여러 번의 졸업식을 거치면서 살아간다. 공식적인 배움의 장을 지나가면서 맞는 졸업식도 있다. 사설기관에서 일정 기간을 채워 무엇인가를 배우고 끝내는 일도 있다. 집 근처의 평생대학이나 주민센터를 통해 다양한 취미나 운동에 몰두하며 분기별로 수료를 하고도 있다.
그런 작고 큰 졸업식을 거치면서 우리는 삶의 크고 작은 마디를 만들면서 살고 있다. 어떤 마디는 다소 빈약하고 어떤 마디는 좀더 단단하게 맺으면서.
무엇보다도 인생의 가장 커다란 졸업식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맞게 될 것이다. 졸업하는 주인공은 나이지만 그 축하를 직접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때 얼마나 진정으로 나를 아꼈던 사람들이 찾아오는지에 내 졸업식 점수가 매겨질 것 같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평가되는 중요한 시간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와도 괜찮을 것 같다. 참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같이 축하해주면 참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마지막 졸업식을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작은 매듭을 지어가는 평범한 삶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산책을 마쳤다. 강물에 반사되는 햇살이 눈부시다. /전영숙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