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봄이 휘청거린다. 여름과 겨울의 시샘이 예사롭지 않다. 하루는 패딩을 입어야 활동할 정도로 온도가 낮아졌다가 다음 날은 초여름 날씨로 훌쩍 건너뛴다.
꽃들도 적응하기가 어려운가 보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봄꽃이 순차적으로 피었다. 매화, 동백이 피고 나면 삼월 들어 개나리와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었다. 목련이 순수함으로 벚꽃이 화려함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뺏고 나면 라일락이 뒤를 이었다. 오월이 되어 아카시아가 온 산에 향기를 뿜고 난 뒤 밤꽃이 피면 아 여름이 오겠구나 생각했었다. 요즈음은 동백과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한꺼번에 우르르 나온다. 날씨가 왔다 갔다 하니 꽃들도 나올 자기 순서를 찾아 나오기가 어려운가 보다.
혼란은 날씨나 계절 뿐만은 아니다. 우리 일상생활도 더 빠르고 다양하고 발전해서 따라가기가 벅차다. 새로운 것을 계속 익혀야 하는 현실에 머리가 복잡하다.
평생학습관에서 강좌 하나를 듣고 있다. 인기가 많은 수업이어서 빨리 신청하지 않으면 등록이 어려웠다. 수강 신청은 온라인과 현장 접수로 양쪽이 가능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나이가 있는 분들이어서 현장에서 접수하는 쪽을 선호했다.
어느 날, 공지사항이 떴다. 앞으로 현장 접수는 없애고 온라인 접수만 받는다는 것이었다. 수업 후에 휴대폰을 꺼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다음 수업 때 물으니 아들이나 딸이 대신 신청해줬다는 분들이 꽤 있었다. 하나를 배우고 나면 그 다음 배울 것은 몇 배로 늘어나는 느낌이다.
지프리 프사, 즉 지브리 스타일의 프로필 사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SNS 프로필을 지브리 캐릭터로 꾸미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지며, 그 배경에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감성과 매력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챗GPT의 이미지 생성 기능에 대한 사용자 반응은 매우 긍정적인데 이 기능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배워야 할 것이 또 늘었다.
얼마 전 경주에 지인들과 놀러갔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 같이 챗GPT앱을 깔았다. 사용법을 배워 시험 삼아 챗GPT에 경주, 모화를 넣은 시조 한 수를 부탁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구체적인 정보를 주면 더 나은 시조가 나올 거라고 하기에 서정주풍에 고급 어휘를 넣어 달라고 했다. 즉시 시조 한 편이 올라왔다.
"눈은 잠시 내려앉아 흰빛을 품은 산길
푸른 소나무 한 그루 천년을 껴안았다
바람 끝에 묻은 숨 신라의 꿈을 적시네"
아주 잘 썼다고는 할 수 없으나 주어진 정보에 충실한 시조가 한 편 완성되었다.
뒤늦게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끔은 쓴 글을 문예지나 잡지사에 보내야하는 일도 있다.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메일을 통해 원고를 보낼 수 있으니 편리한 세상이다. 주위에 나이 들어 글을 쓰는 분들이 있다. 컴퓨터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던 분들은 급하게 메일을 만들어야 했고 원고를 보내는 일이 힘들 때도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점차 발전하면서 작가라는 직업도 위협을 받고 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AI가 나와도 없어지지 않을 직업에 작가가 있었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전해도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깊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대세였다.
지금은 초기 형태의 챗GPT이지만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고 스스로 진화한다면 과연 우리가 쓴 건지 컴퓨터가 쓴 건지 구분이 가능한 시대를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어쩌면 많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글이 더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게 되지 않을지 고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감사해야 할까?
삶은 출렁다리 위를 건너는 것 같다. 심란한 마음에 TV를 켰다. 벚꽃의 화사한 웃음 위에 눈이 소복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생경한 아름다움이다. 정말 드물게 보는 4월의 벚꽃과 눈꽃이다. 그래, 꽃은 어쨌든 저리 피어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어쩌랴. 질서가 흩어지고 변화가 두드러진 시대를 사는 우리지만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걱정은 저만치 밀어두고 오늘, 지금 그래도 글을 써야겠다.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