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한 그루가 겨울 거리에 서 있다. 바싹 마른 가지 끝의 파르르 떨림이 눈에 보일 정도다. 거친 바람의 야유에 그저 흔들릴 뿐이다. 가지 끝을 희롱하던 성난 바람은 잠시 머무르다 휙 하니 떠나버린다.
학원 출근 첫날이었다. 옆 반 선생님이 우리 반의 K를 잘 지켜보라고 한다. 태도도 불량하고 무엇보다도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수업 분위기를 자주 망친단다.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교실에 들어서니 다들 헤드셋을 끼고 바른 자세로 앉아 오디오를 듣고 있었다. 헤드셋을 한 쪽은 귀에 다른 한 쪽은 머리에 삐딱하게 쓴 채 옆으로 거의 눕다시피 한 아이가 있었다. 금방 K인지 알 수 있었다. 광대가 좀 나오고 눈이 작고 가늘며 우락부락한 느낌이었다. 힘도 좀 쓸 것 같았다. 옆으로 가서 반듯하게 앉으라고 했더니 대뜸 욕이 날아온다. 아들 둘을 키워 남자아이들의 반항쯤이야 하던 나도 순간 당혹스러웠다.
한동안 K를 관찰했다. 6학년인 그는 친구들에게도 굉장히 짜증을 잘 내었고 쓰는 단어의 반 이상이 욕이었다. K와 나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달래도 안되고 야단쳐도 안되고. 쉽지 않았다. 억지로 수업을 시켜도 효과가 없을 건 자명한 일이었다.
어느 날 K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집안 얘기는 또 술술 잘 한다. 엄마가 집에서 일을 하셔서 학교 갔다 와도 집에 있기가 어려웠다. 거기다 중학생인 형은 공부를 무척 잘 해서 특목고나 자사고를 가려고 한단다. 당연히 부모님의 관심은 입시를 앞둔 형에게 쏠려 있었고 공부가 썩 뛰어나지 않은 K는 뒤로 좀 밀려 있는 것 같았다.
K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나름 이해가 되었다. 형도 엄마도 자랑스러워했지만 본인도 인정받으며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아이였다. 그에게는 기다려주는 것이 꼭 필요할 것 같았다. 그 후 K와 나는 그런대로 잘 지냈고 중학교에 가면서 헤어졌다. 때때로 그 아이를 생각하면 겨울나무가 생각났다.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잎을 떨어뜨려 수분 손실을 최소화한다. 물관에 공기방울을 형성해 물의 이동을 막아 얼음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 기본 에너지를 제외하고는 양분들을 뿌리로 이동시킨다. 혹독한 환경에서의 적응과 생존을 위해 성장을 멈추고 에너지소비를 최소화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새봄의 새 잎을 틔우기 위한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반드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 시간 속에는 아픔이 있다. 아픔을 안으로 삭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모습이 때로 밖으로는 오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혹한을 견디고 새봄을 맞을 준비를 저마다의 다른 방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학기 초에 학원 근처 학교 앞에서 홍보지를 나누어 주고 있을 때였다. 어떤 학생이 다가오더니 학원 선생님이시죠 한다.
얼굴은 눈에 익었는데 누구인지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모른 척 할 순 없어서 어 잘 지냈니 하고 어물쩍 대답했다. 그 순간 그 아이의 이름이 떠올랐다. K였다. 3년 만이었다. 키가 훌쩍 크고 단정한 모습이 많이 낯설어 금방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선생님이 보여 왔다고 하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K는 나름 잘 보낸 것 같았다. 사랑을 덜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환경에 대처한 방법이 다소 불량스럽고 공격적이었어도 그것을 잘 극복한 것 같았다. 욕을 하던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살짝 웃음도 나왔지만 의젓해진 그가 너무 기특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웃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앞으로 멋있는 청년으로 성장할 그가 기대되었다.
홍보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나뭇가지 끝이 약간 분홍빛을 띄고 있다. 몽글몽글 앙증맞게 꽃눈을 틔우고 있다. 며칠 있으면 연분홍의 꽃잎이 활짝 그 손을 펼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꽃구경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 피우는 꽃은 아름다울 것이다. 모른 척하고 가도 되는데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K의 뒷모습에 그 봄꽃이 오버랩된다. /전영숙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