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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듯 흔하지 않는 내 이름

등록일 2025-07-20 19:51 게재일 2025-07-2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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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 시조시인

패키지 여행은 바쁘고 흥미롭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버스에 올라 함께 여행을 한다. 외도 가는 배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신상을 적어야했다. 버스 뒷자리에 앉았던 나는 승선명단을 눈으로 훑었다. 30여명의 일행 중 같은 이름이 세 명이었다. 다행이라면 성이 다른 것이랄까.

다음 날은 해상 케이블카를 탔다. 8명이 한 케이블카에 올랐다. 바다 위를 거쳐 산 정상에 오르는 코스이다. 앞에 앉은 여자의 이름을 친구가 불렀다. 같은 이름 중 한 명이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케이블카 타는 내내 그 흔한 이름으로 인해 생겼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2학년 학기 초였다. 시험을 보고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가며 시험지를 나눠주셨다. 내 이름이 불렸다. 네하고 일어서는데 다른 아이도 같이 일어섰다. 선생님이 우리 반에 같은 이름이 있구나 하시며 나와 보라고 하셨다. 시험지를 본 다른 아이가 자기 것이라고 했다. 시험지를 다 나눠주신 후 선생님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나보고 일 년 동안 시험 볼 때마다 작은 전영숙이라고 쓰라고 하셨다. 같은 이름의 다른 친구는 큰 전영숙으로 쓰라고 하시며. 그 한해 시험 볼 때마다 이름 앞에 ‘작은’이라는 글자를 쓰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작은 키가 더 부각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흔한 이 이름은 한때 ‘영숙이, 숙제했어’라는 유행어로 코미디 프로에 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글로는 흔한 이름인데 한자로 쓰면 거의 없는 내 이름이 자주 못마땅했다.

대학시험 때였다. 입학원서를 학교에서 단체로 작성해서 냈고 수험표만 받았다. 아뿔싸. 이름의 한자가 달랐다. 선생님께 이야기하니 괜찮을 거라고 하시며 시험에 그냥 응시하라고 했다. 마음으론 걱정이 되었다.

면접날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서너 분의 교수님이 앞에 앉아 계셨다. 그 중 키가 크고 체격이 좀 있는 교수님이 갑자기 화를 벌컥 내셨다. 도대체 어떻게 자기 이름을 한자로 제대로 쓰지 못하느냐고 하면서 이런 학생은 합격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목소리가 큰 교수님이 화를 내시니 더 마음이 졸아들었다. 담임 선생님이 작성한 것이라 하니 핑계대지 말라고 하시며 더 크게 화를 내신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갔다. 불합격하면 큰일인데 싶어 진땀이 흘러내렸다. 벌벌 떨고 있으니 옆에 계신 교수님이 안 됐다 생각했는지 얼른 나가라고 하셨다. 혼난 것으로 끝난 면접은 내내 기억에 남았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최초로 드러내는 것으로 한 사람을 특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또한 집안이나 집단의 소속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이름은 특정 시대의 가치관이나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에게 어울리며 앞으로 그 삶을 살아가기에 적합한 뜻을 가진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부모의 바람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명소를 통해 태어난 아이의 사주와 맞는 이름을 지어오기도 했다.

늘 흔한 이름이 불만이었던 나는 가끔은 개명을 생각하기도 했고, 글을 쓰면서 필명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쉽게 그것을 결정하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의 상황을 상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망설이게 했던 것은 몇 년 전 주고 받았던 아버지와의 대화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평범한 이름 지어준 것과 흔하지 않은 한자 이름에 대해 투덜거렸을 때 아버지는 그 이름을 짓기 위해 큰아버지와 몇 날 며칠 옥편을 뒤졌노라고 말씀하셨다. 전영숙(全瑛琡), 이것이 내 이름이다. 이름 석자에 임금 왕(실제로는 구슬 옥)을 넣으려고 애를 썼다고 하셨다. 그만큼 고결하고 귀하게 왕비처럼 살기를 바랬다고 하시며. 농담처럼 난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왕비의 삶이 아버지 생각처럼 편하고 귀하기만 하냐고. 얼마나 힘들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자리인 줄 아시냐고.

한 사람의 인생이 어찌 늘 잔잔한 물결이기만 했을까. 그걸 아시면서도 자식이 조금 덜 고생하길 원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내 이름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평범하기만 한 내 이름 한자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바람을 마음 깊이 이해한 것은 나 역시 많은 풍파를 겪은 후여서일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개명도 필명도 쓰지 않기로 했다. 흔한 듯 흔하지 않은 내 이름.

이런 이야기를 싣고 케이블카는 산 정점을 돌아 내려가고 있었다. 같은 이름의 여행객과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행복하자는 덕담을 서로 주고 받았다.

/전영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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