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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습(過濕)

등록일 2025-06-01 19:51 게재일 2025-06-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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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나무.

베란다 고무나무가 얼마 전부터 이상하다. 몇 년간 계속 싱싱하고 푸르게 키가 쑥쑥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새파랗고 팽팽하던 잎이 시들시들해지더니 누르스름하게 변했다.

식물이 잘 크기 위해서는 온도와 빛, 환기 그리고 물주기가 필요하다. 화분을 여기저기 옮기지 않고 같은 장소에서 계속 키웠으니 온도, 빛, 환기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물을 규칙적으로 주었는데 혹사 건조했던 것일까 생각했다. 어차피 키가 쑥 커서 분을 바꿔야 하나 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일단은 분갈이를 해 보기로 했다.

화분에 뿌리가 꽉 차 있다. 잘 빠지지 않아 이리저리 돌리다 결국 위에서부터 흙을 살살 털어냈다. 땀을 뻘벌 흘린 끝에 겨우 나무를 분리시켰다. 뿌리가 서로 많이 엉켜있는 가운데 부분은 물이 스며들지 못해 건조했고 가장자리 흙은 축축했다. 그리고 그 부분의 뿌리는 썩어 있었다. 결국 과습으로 탈이 난 것이었다.

요즘 뉴스를 검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7세 고시라는 말이 나온다. 초등학교 입학 전 나이의 아이들이 서울 강남 대치동 사교육 중심지의 상위권 영어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을 일컫는 말이란다.

학원에 따라 문제는 좀 다르겠지만 주제를 주면 의견이나 결과를 도출해 15분 정도 후 영어로 작성하는 문제도 있다고 하니 난이도가 굉장히 상당히 높다. 한국어로도 그 나이에 그만큼 이야기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4세반이 운영되기도 한다. 일명 새끼학원인 셈이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다.

7세 고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이의 자기 주도성과 행복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일찍부터 남보다 나은 위치를 선점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빚어낸 사회 형태이다.

여중교사로 재직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 근처에는 사립초등학교가 두 군데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배정을 받은 아이들은 입학 전 학력평가 시험을 본다. 학생들의 기초 성적을 측정하기 위함이다. 시험 결과를 보면 반 10등 안에 사립학교 졸업생들이 7명 정도 들어와 있다. 그러나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치르는 기말고사 결과를 보면 10명 안에 사립초등학교 졸업생은 3명 정도만 남게 된다. 거의 매년 비슷한 분포였다.

그 당시 사립학교는 일반 공립학교보다는 경험의 기회가 많았다. 영어나 운동 등을 학교 자체에서 실시하는 일이 많았다. 공부하는 면이나 문화적인 면에서 공립학교 학생들보단 선행학습을 할 기회가 열려 있었다. 학력 측정 검사에서 사립학교 학생이 상위권에 많이 포진할 수 있었던 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사립학교를 보낼 정도로 큰 학부모의 열정은 또 다른 원인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의 교육열에 따라 아이의 성적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학습의 양이 늘어나면 부모의 재촉이나 열정만으로는 성적을 유지하기 어렵다. 중학교에 가서부터는 학교나 학원에서 듣는 공부도 즁요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학습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기 시작한다. 엉덩이가 무거운 아이가 공부를 잘 한다는 말은 그냥 나온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의 교육열이 높은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다른 물적 자원을 많이 갖지 못해서 인적자원에 대한 열망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그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지금의 부를 형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들이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번역기를 사용하면 외국인과의 소통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한글로 쓴 글씨를 번역기를 돌리면 바로 필요한 외국어로 바꾸어준다. 이렇게 쉽게 사용할 번역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도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7세 고시가 아니다. 내 아이가 그런 선행학습을 받아들일 그릇이 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일이니까. 사실 그것을 안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과습으로 죽어가는 나무의 썩은 뿌리를 잘라내었다. 새 화분에 넉넉히 흙을 부어 고무나무를 다시 심었다. 앞으로 누르스름한 잎을 떨쳐내고 다시 푸르고 싱싱한 잎을 피울 날을 그려보면서.

/시조시인 전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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