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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민족주의 ③민족주의 파괴력

등록일 2025-02-10 18:18 게재일 2025-02-1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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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를 방문 중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18세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된다. 이 총성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사라예보박물관

연이어 터진 제2차 세계대전은 또 한 번 발칸반도를 아귀지옥으로 변하게 했다. 인류전쟁사에 정점(?)을 찍는 폭력이 일어나면서 발칸은 또 피투성이가 되어야 했다. 히틀러는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부른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어서 살육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지구 화약고’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른다.

“보스니아 분쟁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조직적이자, 힘과 힘이 충돌한 필연적 사건이었다.”

1993년 영국 수상 존 메이저가 한 말이다. 하긴 발칸반도와 인류전체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를 두고 비교해보았을 때 발칸반도 학살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타인종, 타민족에 대한 적개심과 우리민족이라는 우월성이 빚어낸 학살,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자행한 고도화된 폭력이었다.

한 나라에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살아가는 곳에서는 내 뜻에 반하는 세력이 있는 이상 필연적으로 폭력이 동반된다. 국제질서는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이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두들겨 패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발칸반도에서 상대적으로 인구 비율이 높은 민족은 전 지역에 걸쳐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자신의 뿌리인 본국(예를 들어 세르비아 같은)의 지원을 얻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예를 들어 보스니아)에서 독립을 외치며 분쟁을 일삼는다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한 민족이 각기 다른 나라에 갈려 살면서 그곳에서 독립을 요구해보라. 기막힌 노릇이 아닐까. 우리나라 인천, 혹은 제주도에 일본인들, 혹은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 살면서 스스로 독립국가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것도 본국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말이다.

발칸반도에는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러자 그들 스스로 발칸반도 맹주를 자처하면서 타 인종에 대한 살육과 폭력이 정의로 포장되는 악의 고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들만의 민족은 광기에 휩싸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자가발전해 자긍심을 불어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타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상승기류에 대항하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로 일순간에 내몰리고 자연적으로 배타적,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판이 짜인다. 더구나 같은 민족이면서 본적도 만져본 일도 없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도 없는 종교가 다른 경우에는 할 말을 잊게 한다.

21세기에도 다르지 않다. 로마인의 후손이라는 대루마니아주의와 슬라브족 첫 제국을 건설했다는 대불가리아주의는 오랜 갈등으로 늘 반대편에서 총칼을 들이댄 맞수이자 관객의 입장에선 폭력의 세트다. 발칸반도 동남부를 대표하는 대세르비아주의야 말할 것도 없다. 코소보 인종청소 주역들이니 말이다. 나토의 코소보 공습으로 해결된 듯하지만, 세르비아에 의해 저질러진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불안한 산맥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는 스스로 발칸반도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부유한 나라이자, 그만큼 뛰어난 민족이라는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나라 이름에서 보듯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말이 한 국가이지 한 지붕 세 가족이 험악한 인상으로 으르렁거리는 형국이다. 이 외에도 동방정교와 로마가톨릭, 이슬람 등의 종교 갈등은 또 어떻게 봉합할 것인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글쎄…. 민족과 종교와 영토분쟁에 문화적 자존심이 걸린 이들의 조각보 같은 반도의 미래를 신인들 알까? 안다면 1천 년 전에 해결했겠지만 말이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를 향하다 중간 쯤 작은 도시 야블라니치가 나온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르티잔과 독일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곳이다. 부서진 철교와 멈춰선 기차가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를 향하다 중간 쯤 작은 도시 야블라니치가 나온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르티잔과 독일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곳이다. 부서진 철교와 멈춰선 기차가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

민족이란 유기체는 어떤 사건과 역사를 체험하고 공유하느냐에 따라 개념이 포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사상은 물론 생각의 공유에 따라 민족을 구분할 수도 있다.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우리가 느끼는 자부심처럼 민족주의가 마치 고대국가 혹은 중세 때부터 시작되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는 무지막지한 착각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시발점이다.

울릉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섬을 벗어난 적 없는 할아버지와 흑산도 할머니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사투리로 무장되었다면 소통에 애를 먹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박필우 작가
박필우 작가

하긴 북한과 일본이 전쟁이 나면 어딜 도울 것이냐의 물음에 일본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필자의 주위에 태반이 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민족이 빨갱이보다 하수가 분명하다.

비약하면 아래로부터 단 한 번도 민중항쟁이 일어나지 않은, 말 잘 듣는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족 일본이란 나라도 있다. 단언컨대 착한 백성, 그것이 바로 사무라이 정신이다. 죽음에 떠밀려도 감동의 눈물로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순종의 미학 말이다.

나는 정치에 관심도 없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보며 떠오르는 말이 있어 끝으로 맺는다.

“어떤 이는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지만,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을 만들어낸다” - 오스카 와일드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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