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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상처가 있어

등록일 2025-02-16 19:30 게재일 2025-02-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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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시인
이희정 시인

러시아 인형처럼 외부의 모양과 내부의 모양이 똑같다면,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부서지고 깨어진 상처는 우리

가 세상에 포함될 때, 그 속박에 굴복하지 않고 벗어나려는 몸

부림이다.

그래서 나는 상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

다. 상처받는 것은 세상의 모양과 나의 모양이 끝없이 부

딪쳐 모서리가 부서지고 깨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마침내 상처는 우

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것이 봄꽃과 가을 단풍과 저 석양이 자신의 상처로 물드

는 이유이고, 한 생명의 탄생이 다른 생명을 찢고 나오는 이유

이며, 시인들이 자신의 상처로 시를 쓰는 이유이다.

―신용목,‘다행인 상처’부분 (‘당신을 잊은 사람처럼’, 난다, 2024)

울음소리가 깊었다. 긴 울음 끝 양쪽 눈은 비대칭이 되고 마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이제 짓이겨지고 깨어진 한쪽 눈은 완벽한 상처다. 상처도 힘이 된다면 소리 내어 울어 볼 일이다. 바닥에서부터 울어 본 적 있는가.

호피족 잠언을 빌리자면“우는 걸 두려워 마라. 울음은 당신 마음을 슬픈 생각에서 해방시킬 것이니, 소리 내어 진정으로 울 줄 아는 자는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 이제부터 탈출기를 쓸 것이다. 마음의 유린도 반복되면 폭력이 된다. 마음은 몸을 상하게 하기에. “세상의 모양과 나의 모양이 끝없이 부딪쳐 모서리가 부서지고 깨진” 생명체의 안쪽이 되지 못한, 바깥은 그들에 의하면 흘리는 눈물조차도‘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과할지 모른다.

눈물이, 슬픔이 무기가 될 수는 없다. 그저 진심을 말하려는 것일 뿐. 약한 자는 울음으로 가해하지 않는다. 다스리려는 자는 상대를 아끼지 않는 자이다. 그들의 언어는 가변적이고 비겁하기 일쑤여서 여러 차례 변주되었던 언어는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비열한 웅변을 토해낸다.

대체로 그들의 종결법은 상대의 상처를 제 것으로 전복하려는 제언처럼 여겨진다. 이제까지 지탱해 온 외피를 안에서부터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이럴 때 진실은‘쓸모’가 끝난 후에야 발견된다. 대개 약한 자들은 이 상처에서 침묵으로 진실을 가리기 쉬울뿐더러 그것이 슬픔의 궁극적 이유다.

하지만 시인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마침내 상처는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통성으로 부르짖는 울음이 상처를 찢고 나오는 詩의 이유, 이유의 이유가 되는 것이라고. 이것이 신용목(1975~) 시인의 산문집‘당신을 잊은 사람처럼’이 2016년 초판 이후 재발행된 이유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

새처럼 소리를 잘 내는 자, 잘 울게 하는 자. 기실 시인은 선명자(善鳴者)라고 했다. 언젠가 시인이 육성으로 낭독해 주던 긴 시편을 내 한쪽 눈은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그가 약한 이들을 돌보는 애도의 한 방식이란 것을.

기어이 꽃샘의 상처를 이기고,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니. “자신의 상처로 물드는”, “한 생명의 탄생이 다른 생명을 찢고 나오는”것처럼 “시인들이 자신의 상처로 시를 쓰는 이유”

그러니, 이제 나와 당신들의 상처가 탈출기가 될 것이라는 독해에 부서진 눈을 얹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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