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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김음

등록일 2025-02-17 19:46 게재일 2025-02-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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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김음.

세상은 늘 일정한 질서 속에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높은 곳에 있던 물이 아래로 흘러가고 낮은 곳에 고여 있던 물이 증발해 다시 하늘로 올라가듯, 자연의 순환 속에는 끊임없는 위치의 이동이 있다. 땅 위에 단단히 뿌리 내린 나무조차도 계절에 따라 잎을 떨구고, 새로운 가지를 뻗으며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는 익숙한 자리를 영원할 것이라 믿지만 세상의 모든 위치는 바뀌고 흐름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암묵적으로 정해진 지위와 역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한때는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다시 바닥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던 사람이 어느 순간 세상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흔히 ‘성공’과 ‘평범’을 구분하지만 그 경계는 생각보다 유동적이다.

음악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당김음은 원래 있어야 할 박자를 벗어나 예상보다 앞서거나 뒤로 밀려난다. 순간적으로 리듬이 어긋난 듯 보이지만 그 변주가 있기에 음악은 더 풍부한 은유를 만들어 낸다. 규칙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조화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탈선이 곡을 더 생동감 있게 만든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다. 졸업한 지 꽤 시간이 흘러서인지 친구들의 얼굴에는 그때와는 다른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금세 그 시절로 돌아가 건배를 하며 유치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당김음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낯설었다. 다음 달에 있을 동창회 행사를 앞두고 그 시절 공부를 제일 못했던 친구가 유명한 사업가가 되어 기부금을 척척 내고 있었다. “올해만 해도 몇 백만원은 냈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반면 공부를 제일 잘했던 친구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학생 때 우리가 부러워하던 ‘성공한 직장인’이었다. 사회적으로 보면 안정적인 직장이지만 그는 “와이프 눈치 보여서 기부는 힘들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생 때 우리는 성적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할 것처럼 생각했다. 공부를 잘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힘든 삶을 살 거라고 믿었다. 물론 어른들의 경험적인 삶에 비추어 보면 맞는 말일 수는 있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어떤 친구는 예상대로 정박을 따라갔고, 어떤 친구는 엇박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아예 박자를 바꿔가며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어쩌면 인생이란 단순한 4분의 4박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해진 박자에 맞춰 사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당김음처럼 예기치 않는 흐름이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공부를 못하던 친구가 사업가가 된 것도,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월급을 받으며 사는 것도 결국은 각자의 박자대로 살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음악을 할 때 리듬을 타는 감각을 좋아했다. 일정한 박자 위에서 튀어나오는 당김음은 연주에 긴장감을 주고 곡의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규칙적인 비트 속에서도 변주를 만들어 흐름을 깨뜨리는 순간 엇박이 정박이 되는 것이다.

중년이 된 지금은 음악이 아닌 글을 쓰고 있지만 내 삶의 리듬은 여전히 당김음처럼 흘러간다. 예측했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을 때 마디마디를 연주하듯 글을 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흐름 속에서도 나만의 박자로 살아가는 것, 박자가 어긋날 때조차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음악일지도 모른다.

동창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자동차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안에도 어김없이 당김음이 섞여 있다. 박자가 예상과 다르게 흐를 때 우리는 놀라고 어색해하지만 그 당김음이 음악을 완성 시킨다.

살며시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당김음이 만들어 내는 리듬을 즐기며 나만의 박자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김경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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