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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 두 개

등록일 2025-02-17 19:38 게재일 2025-02-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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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수 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요에 떨어진 딱지 두 개를 주워 책꽂이 책 앞에 두었다. 송사리 새끼와 나는 새 모양이다. 시간이 가며 그것이 떨어진 피부의 감각과 고통, 느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보고 싶어서다.

지난 연말, 왼쪽 겨드랑이 아래 피부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질감이 생겼었다. 약한 통증을 동반하기도 하면서 메뚜기라도 붙어 기어가듯 왼쪽 등으로 갔다가 돌아서 앞 왼 가슴 위까지 옮겨 다녔다. 처음 겪는 증상이었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지만, 신경 쓰였다. 속으로, “이게 어른들이 말하던 근육통 곧,‘담’인 게로구나”하고 생각했다.

‘텃밭에서 삽질 조금 했다고 담이 다 걸리다니’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삼일이 지나 제야(除夜)가 왔다. 담 증상이 멈추지 않고, 피부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아내에게 등 좀 살펴 달라고 했다. 그녀는 피부에 발진이 왔으니, 병원에 가보라고 하였다. 이튿날이 신정 휴무여서, 그다음 날 피부과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피부 발진 모양을 보자마자, ‘대상포진’이라고 진단했다. 아프냐고 묻기에 별로 안 아프다고 했더니, 건강한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주사 맞고, 레이저 쏘이고, 처방 약을 사와 복용하는 과정이다. 일요일을 빼고 매일 두 주 가까이 통원 치료를 받았다. 다른 환자들처럼 바늘로 콕콕 찌르듯 심한 통증이 없어 견딜만했다.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딱지가 잘 앉았다.

돌아보면 중 2학년 겨울방학 때, 배가 매우 아파 고향 집에 한 달가량 앓아누운 적이 있다. 또 군시절 왼손등이 부어 두 주간 의무대에 입실했었다. 그 후로는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어, 나름 건강에 자신하며 지금껏 살았다. 대상포진 예방접종 광고를 볼 때, 나와는 먼일이라고 여겼었다. 한데, 그게 오고 말았으니 삶은 정말 새옹지마(塞翁之馬)인가 보다.

딱지를 두 개를 왼손바닥에 놓고 바라다본다. 몸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숨은 증거이자, 자기치유 싸움에서 희생된 세포들의 실체다. 반세기 이상 몸 면역력의 기세에 눌려 호시탐탐 공격기회를 노리던 수두 바이러스. 면역력이 떨어지자 싸움을 건 거다. 면역항체는 원상회복의 항전을 하여 상처 입고, 전사도 했다. 약과 레이저는 면역항체 지원군으로 참전, 이기도록 도왔다.

싸움 동안 쳐부순 바이러스와 전사한 면역항체가 뒤엉켜 말라붙은 딱지. 마침내 면역항체가 이겼다는 증표이기도 한 딱지…. 생각해보면, 살아있는 내 몸과 모든 생명체의 몸은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들의 싸움터이기도 하다. 미시세계부터 생태계, 나아가 우주까지 생존경쟁의 싸움 프랙털이라는 추론도 든다.

한편, 살아오면서 스스로 모르는 딱지가 마음에도 많이 붙었을 것이다. 여태 육신의 딱지는 신경을 쓰면서, 마음의 딱지는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고해성사가 있지만, 그것도 언제나 육신에 얽힌 것들이었다. 현대 양자역학이 물질과 정신이 상호작용을 한다고 밝히는 데도, 마음의 딱지에는 무관심했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의 딱지도 함께 살피는 삶을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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