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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화(禍)와 허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봄날처럼 화사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비친다고 좋아했더니, 어느 사품엔가 구름장이 몰려와 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눈발이 거세게 날린다. 지구 곳곳을 급습하는 자연의 엄혹한 섭리에 놀라는 나날이 이어진다. 벌써 두 달이 넘도록 청도 화양읍에는 영상의 아침을 맞은 기억이 내게는 없다. 난잡한 시절과 냉혹한 절후(節候)로 인한 한숨과 스산함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잦은 심부름 다닌 기억이 떠오른다. 추운 날이 이어지는 즈음이면 저녁 찬거리 때문에 한숨 쉬던 어머니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벌써 끼니때가 닥쳤구나.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이고, 점심 먹었나 했더니 저녁이구나.” 이런 말과 함께 얇은 지갑을 살피다가 두부 두 모와 덴뿌라 (어묵) 두 장 사 오너라, 하시곤 했다. 우리 살림은 아버지의 근면한 노동에도 4남매 학비와 생활비로 늘 빠듯하다 못해 곤궁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자주 먹었던 것이 두부와 파, 마늘 그리고 어묵을 진한 고추장에 풀어 끓인 국이었다. 연탄 한 장으로 겨울밤을 나야 했기로 그나마 뱃속을 뜨거운 국물로 채워야 했던 게다. 지나간 그 세월을 반추할라치면 더러 깊은 한숨이 토해진다. 언젠가 ‘가난’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가 “넌 가난이 지겹지도 않은 거냐” 하고 묻길래, 그냥 그래요, 하고 대답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머니는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 있었다. 빈곤과 추위와 무더위의 깊고 어두운 기나긴 질곡(桎梏)을 건너온 시련과 아픔의 시절을 어머니는 끔찍하게 여겼지만, 난 그 시절을 심드렁하게 떠올리곤 한다. 4남매를 키워야 했던 안주인의 쓰라린 심사와 철모르던 소년의 치기 어린 당당함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나는 남루하고 배고팠던 추억을 어디서나 숨긴 적 없고, 그것이 이후의 삶에서 귀중한 자양분이 되었다고 여긴다. 나이 들어서도 물적인 빈곤을 부끄럽게 여긴 적도 별로 없고, 가난으로 생겨난 난감함을 경험한 적도 기억에 별로 없다. 그래선지 물질과 권력과 부를 향한 욕망을 강렬하게 작동시킨 일도 나는 없다. 내게 허여(許與)된 것에 만족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베풀고 살아온 인생살이였다. 요즘 다시 책장을 넘기고 있는 ‘도덕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화(禍)는 없고, 얻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46장) ‘도덕경’ 곳곳에서 노자는 만족할 줄 알라고 가르친다. 물질 만능과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21세기 20년대 참혹한 한국 사회에서 족함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만큼의 족함에 만족할 줄 안다면, 우리는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송어 수준의 만족과 고래 수준의 만족이 자연스레 공존하는 그런 사회는 불가능한가?!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비루한 노예가 초래한 비상계엄과 처참한 궤변, 극우 정치인들의 위헌적인 행악질에 시민들이 경악해야 하는 참람(僭濫)한 시절이다. 소박하지만 남 탓하지 않는 맑고 깨끗한 족함을 아는 사람들이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에 날로 많아지면 정말 좋겠다.

2025-02-16

한국의 핵무장

우정구 논설위원 1994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특사교환 실무자 접촉에서 북한의 대표가 “서울이 불바다 된다”고 한 발언은 상당한 후폭풍을 가져온다. 그의 발언으로 국내 정계가 발칵 뒤집어졌고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감은 점차 높아진다. 판문점에서 불과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서울시내에 북한이 핵공격을 가해온다면 서울의 불바다는 너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한국의 핵무장론이 고개를 든다. 한국의 핵무장론은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한 자강적 차원의 핵무장이다. 찬반 양론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지속적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로 안보 위협이 커지면서 핵무장론은 점차 힘을 받는다. 2023년 최종현학술원이 한국갤럽을 통해 조사한 핵무장론에 대한 여론은 77%가 독자적 핵무장 필요성에 찬성했다. 이후에도 핵무장론은 반대보다 찬성이 높은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부르며 북미정상회담 재개를 시사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내의 핵무장론은 여론의 힘을 더 얻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핵무장은 군사 측면뿐 아니라 외교 측면에서도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다. 한국의 핵무장이 주변국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국민 여론만 따라갈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이 최근 조사한 설문결과에 의하면 한국은 10년 내 세계에서 핵무장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로 꼽혔다. 이란과 사우디에 이어 세계 세번째다. 미래 예측전문가들의 눈에는 북한과 대치한 한반도의 정세가 중동지역 못지않게 심각하게 보여진 탓은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2-16

정확한 판단과 총력 대처가 중요하다

김규인 수필가 멕시코와 캐나다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려는 트럼프가 한 달간 실행을 연기했다. 조건부로 시한을 연장하였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과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맺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불법 이민과 마약을 문제로 제기하며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4일 중국에 대하여도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WTO 규정 위반이라고 항의하며 미국산 제품에 관세 부과로 맞대응했다. 미국산 원유, 농기계 등에 10%와 코크스, 무연탄, LNG 등에 1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중국은 알파벳, 엔비디아 등에 대한 반독점 조사 계획도 밝혔다. 이에 더하여 텅스텐, 비스무트, 텔루륨 등 5개 광물의 수출도 통제했다. 유럽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잇따른 관세 부과 공세에 유럽은 맞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CNN과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관세를 부과하면 맞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유럽연합은 중국 다음으로 무역흑자를 냈다며 압박했다. 지난 2월 9일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으로 들어오는 어떤 철강 제품이든 25% 관세를 부과받게 될 것”이며 “알루미늄도 그렇다”라고 발표했다.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까지 관세를 부과하며 다른 나라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것을 시작으로 개별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와 고려아연을 비롯한 알루미늄 업체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1기 때 우리나라는 미국과 협상으로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수출 물량 쿼터제로 관세를 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줄어든 물량으로 미국을 대체할 수출 지역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중국 제품에 대한 보편적인 10% 추가 관세는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도 힘들게 할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각종 소비재에 대한 관세는 미국민에게 물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트럼프 1기 때는 국민의 반발을 우려해 소비재는 제외했다. 이번에 25% 관세에 10%의 추가 관세까지 부과하면 소비자와 소매업자들의 불만도 높아질 것이다. 영국은 호주, 캐나다, 일본 등으로 구성된 환태평양무역블록에 가입했다. 영국은 EU와 경제 협력을 복원하며,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인도와 교역 규모를 늘리며 걸프 협력 기구(GCC) 6개 회원국도 만난다. 중국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과 자유무역협정 개정을 준비한다. 브라질과 멕시코도 무역협정에 대해 협상 중이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의 대응이 활발하다. 우리나라는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의 수출 금지로 반도체 소재 산업이 활성화하고 IMF 위기를 금 모으기로 이겨낸 유전자가 우리에게 흐르지 않는가. 힘이 들뿐 극복하지 못할 일은 없다. 정확한 상황 판단과 총력 대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2025-02-16

대화의 기술이냐 팃포텟이냐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여성 지인이 직장 상사가 갑질한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사무실 하나에 상사 1명과 직원 1명이 근무하는 아주 작은 직장이라 꼬투리 잡으며 사표를 내게 종용하는 상사 때문에 억울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데에는 평소 직설적 성격의 지인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지 않을까 의심했으나 그 직장 상사가 자기 아내는 고분고분한데 당신은 왜 의견이 많으냐는 말을 들으니 해결책이 필요해보였다. 그러던 중 며칠 전 탄핵 심판정에서 대통령이 국회 기조 연설할 때 야당 의원들이 박수 안 쳐주고 악수도 거절했다고 불만을 말했다. 남의 말을 경청하라는 대화의 기술 측면에서 야당 의원들의 행동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야당 의원들에게 대통령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부적절해 보였다. 어떤 책에서는 거절도 예쁘게 해서 감정 상하지 않게 하라는데, 대통령의 요구가 부당할 때 야당이 예쁘게 거절하라는 것도 무리다. 사회에서는 힘 있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문제 삼는 상대의 태도만 문제 삼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아마도 전통적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유교 전통 중에는 ‘집안의 윤리를 그대로 사회에 적용하면 사회 윤리가 된다’는 사고가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효도로 백성이 군주에게 하는 충성하면 되고, 동생이 형을 공경하는 원리로 연장자를 공경하면 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면 된다고도 했으나 이것은 큰 주목을 못 받고, 상명하복의 사고만 부각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순종하기만 바라며 아랫사람의 도리만을 강조하게 되었다. 의무를 강조하는 칸트의 도덕철학 역시 상대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도덕을 위한 철학 통조림’의 저자 김용규는 이런 태도를 반대한다. 현실에서는 분명히 상대를 해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도덕적인 행동만 고집한다면 세상은 나쁜 사람으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용규는 부당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팃포탯’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팃포탯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셈이다. 팃포탯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쉬의 균형이론에 기원을 둔 게임이론 전략인데, 처음에는 협력하더라도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배신해서 승리하라는 이론이다. 실제로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는 이 전략으로 게임 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기다려주고 내가 할 말은 참으라거나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자신의 무의식을 돌아보라는 식의 대화의 기술은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나 활용할 수 있을 뿐, 사회관계에서는 상대가 부당하다면 적절하게 응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부당한 행동을 할 때 옳은 쪽이 승리하기 위한 팃포탯이 무엇인지는 아직 답을 못 찾았지만, 지인에게는 휴가를 내서 쉬면서 거취를 생각해보고, 퇴사하더라도 상사의 부당함을 공론화할 것을 조언했다.

2025-02-16

다행인 상처가 있어

이희정 시인 러시아 인형처럼 외부의 모양과 내부의 모양이 똑같다면,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부서지고 깨어진 상처는 우리 가 세상에 포함될 때, 그 속박에 굴복하지 않고 벗어나려는 몸 부림이다. 그래서 나는 상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 다. 상처받는 것은 세상의 모양과 나의 모양이 끝없이 부 딪쳐 모서리가 부서지고 깨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마침내 상처는 우 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것이 봄꽃과 가을 단풍과 저 석양이 자신의 상처로 물드 는 이유이고, 한 생명의 탄생이 다른 생명을 찢고 나오는 이유 이며, 시인들이 자신의 상처로 시를 쓰는 이유이다. ―신용목,‘다행인 상처’부분 (‘당신을 잊은 사람처럼’, 난다, 2024) 울음소리가 깊었다. 긴 울음 끝 양쪽 눈은 비대칭이 되고 마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이제 짓이겨지고 깨어진 한쪽 눈은 완벽한 상처다. 상처도 힘이 된다면 소리 내어 울어 볼 일이다. 바닥에서부터 울어 본 적 있는가. 호피족 잠언을 빌리자면“우는 걸 두려워 마라. 울음은 당신 마음을 슬픈 생각에서 해방시킬 것이니, 소리 내어 진정으로 울 줄 아는 자는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 이제부터 탈출기를 쓸 것이다. 마음의 유린도 반복되면 폭력이 된다. 마음은 몸을 상하게 하기에. “세상의 모양과 나의 모양이 끝없이 부딪쳐 모서리가 부서지고 깨진” 생명체의 안쪽이 되지 못한, 바깥은 그들에 의하면 흘리는 눈물조차도‘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과할지 모른다. 눈물이, 슬픔이 무기가 될 수는 없다. 그저 진심을 말하려는 것일 뿐. 약한 자는 울음으로 가해하지 않는다. 다스리려는 자는 상대를 아끼지 않는 자이다. 그들의 언어는 가변적이고 비겁하기 일쑤여서 여러 차례 변주되었던 언어는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비열한 웅변을 토해낸다. 대체로 그들의 종결법은 상대의 상처를 제 것으로 전복하려는 제언처럼 여겨진다. 이제까지 지탱해 온 외피를 안에서부터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이럴 때 진실은‘쓸모’가 끝난 후에야 발견된다. 대개 약한 자들은 이 상처에서 침묵으로 진실을 가리기 쉬울뿐더러 그것이 슬픔의 궁극적 이유다. 하지만 시인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마침내 상처는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통성으로 부르짖는 울음이 상처를 찢고 나오는 詩의 이유, 이유의 이유가 되는 것이라고. 이것이 신용목(1975~) 시인의 산문집‘당신을 잊은 사람처럼’이 2016년 초판 이후 재발행된 이유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 새처럼 소리를 잘 내는 자, 잘 울게 하는 자. 기실 시인은 선명자(善鳴者)라고 했다. 언젠가 시인이 육성으로 낭독해 주던 긴 시편을 내 한쪽 눈은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그가 약한 이들을 돌보는 애도의 한 방식이란 것을. 기어이 꽃샘의 상처를 이기고,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니. “자신의 상처로 물드는”, “한 생명의 탄생이 다른 생명을 찢고 나오는”것처럼 “시인들이 자신의 상처로 시를 쓰는 이유” 그러니, 이제 나와 당신들의 상처가 탈출기가 될 것이라는 독해에 부서진 눈을 얹어 보는 것이다.

2025-02-16

지속 가능한 청송의 미래를 위한 길

윤경희 청송군수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지방소멸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청송군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희망적인 변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성과로 2024년 지방자치단체 재정분석 평가에서 경북 도내에서 유일하게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이는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효율적인 예산편성과 안정적인 재정 운용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인정받은 결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생각한다. 청송군은 올해 농업 경쟁력 강화와 정주 여건 개선을 핵심 과제로 삼고, 지역의 미래를 위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청송군의 대표 농산물인 사과 산업은 기후 변화와 노동력 부족이라는 두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은 스마트 농업 도입을 확대하고, 생산비 절감과 노동력 부족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꼭지 무절단 사과 유통을 들 수 있다. 사과 꼭지를 자르지 않고 유통하는 것으로 꼭지를 자르기 위해 인력과 비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사과 꼭지 절단에 드는 인건비는 우리나라 전체 사과 생산량 55만t기준으로 연간 6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23년산 만생종부터 꼭지 무절단 ‘청송사과’유통을 시작해 지난해부터 완전히 정착시켰다. 또한 ‘무적엽 사과 생산’으로 불필요한 재배 과정을 없애 영농 인력을 절감했다. 반사필름 없이 고품질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평면과원 조성사업’을 통해 농업 비용과 영농 폐기물 감소의 이중 효과를 거두고 있다. 청송군의 사과농업 혁신으로‘2024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을 수상했다. 사과브랜드 부문 12년 연속 대상을 받았고 ‘산소카페 청송군’은 도시브랜드 부문 5년 연속 대상 수상의 성과로 이어졌다. 청송사과 산업 미래 100년의 비전을 제시하고 사과 농업의 혁신을 이끌 사과 전문연구시설인 ‘청송황금사과 연구단지’를 지난해 11월 개소했다. 청송황금사과 연구단지는 총 면적 4㏊ 규모로 청송황금사과 미래관, 농산물품질관리실, 종묘연구실, 실증시험포장 등의 첨단 시설을 갖췄다. 이와 함께 스마트농업 교육장, 공동연구실, 토양검정실, 사과무병화묘생산 종묘연구실, 농업 유용미생물배양실 등 농업인 수요 핵심시설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사과 스마트 재배 표준 매뉴얼 개발과 평면형 수형 재배 기술 연구 등을 진행해 청송사과의 과거 100년을 기반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올해 여름부터 산지공판장에 온라인 경매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중도매인들이 사과 경매에 참여할 수 있게 돼 공판장 처리 물량을 증가시키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유통 구조를 구축할 것이다. 농업 발전과 함께 지역 내 정주 여건 개선도 중요한 과제이다. 청송군은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청송공공임대주택 청년빌리지와 진보면 공공임대주택 건립 사업이 있다. 이러한 주택은 청송군 내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청년 유입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도심 환경을 정비하고, 회전교차로 설치와 도시계획도로 정비를 통해 교통 환경을 개선할 것이며, 노후 상수관로 정비 및 급수구역 확장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청송군의 이러한 노력은 단순한 정책 추진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변화이다. 농업 혁신과 정주 여건 개선이 함께 이루어질 때, 청송은 ‘살고 싶은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지역 주민과 행정이 함께 협력하여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간다면, 청송군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5-02-16

[칼럼] 꿈을 챙기는 달(윤진석 ㈜건우테크 대표이사)

윤진석 ㈜건우테크 대표이사 한해 달력을 펼쳐놓고 보면 2월처럼 아픈 손가락도 없지 싶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섣달의 요란하고 거룩한 뜻에 내몰려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죽어 있는 11월이 있기는 해도 2월보다는 그래도 낫다. 새해를 맞아 활기차게 출발한다는 허울 좋은 정월의 수다에 얼굴 한번 세상에 내밀지 못하고 스스로 뒤로 물러나 옹색하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더구나 2월은 다른 달보다 하루 이틀이 짧아 겉으로는 왠지 왜소하여 막내 같은 아련함이 있다. 아이한테는 배부름을 느끼게 해 줄 수는 있지만 2월이란 작은 체구로 견뎌내야 하니 바라보기에도 애처롭다. 흔히 11월이 안쓰러우면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는 달’이라며 체면치레해 주고 달랜다. 그러면 11월을 하찮게 여기던 사람도 다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막 달을 위해 온갖 애를 쓴다. 그러나 2월은 그것마저 마땅한 게 없다. 대개의 사람은 1월의 큰 다짐으로 대단한 결심을 세우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가오는 2월을 그냥저냥 보내면 된다고 자기 스스로 위로한다. 그러니 언제나 2월은 있는 듯 없는 듯 그 존재감이 허약해 아무리 돌이켜봐도 2월만큼 아픈 손가락은 없지 싶다. 한 해를 시작한다는 대단한 각오로 뽑아든 칼은 뭐라도 자를 기세이지만, 대다수 사람은 그 칼마저 녹슬게 하기 일쑤다. 막연하게 남이 장에 가니 나도 간다는 식으로 새해를 맞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번에도 2월은 달라질 게 없다. 커다란 꿈을 가졌으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따라야 한다. 그 계획을 챙겨야 하는 달이 2월이다. 그래야 한 해의 희망이 영글게 된다. 이제 2월에 ‘꿈을 챙기는 달’이라고 머리띠라도 매어줄까. 새해의 대단한 각오를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챙겨서 한 해의 삶을 값지게 만드는 충전의 달이라고 내걸면 확실히 의미 있는 길을 가게 되지 않을까. 이른 봄 조급하게 피는 꽃들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모든 식물은 순서의 순리에 따라 성장의 길을 가게 된다. 새순이 돋고, 잎이 피고, 그 다음에 열매를 위한 꽃이 되어야 벌 나비도 찾아오고 수정도 가능하다. 마음이 조급해 잎이 돋아나기도 전에 꽃부터 피운 것이 열매를 갖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준비되지 않은 조급함은 어긋남을 초래한다. 충분하고 치밀한 준비로 순리대로 삶을 운영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구의 온난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양지바른 화단의 한 켠에 민들레와 할미꽃이 피었다. 시기로 보면 아직 추위도 가시지 않은 2월인데, 며칠의 따스함이 그를 유혹한 모양이다. 충분한 준비도 없이 욕심부려 뛰쳐나오다 보니 몰골이 약하기만하다. 제대로 성숙하여 피웠더라면 나름 튼실한 열매를 맺는 꽃들인데 한 열흘 자태를 뽐내다가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라간다. 두 꽃 모두 씨앗에 깃털을 달고 바람 타고 떠돌아다니는 처지라 아픔만 더한다. 분명 2월은 저 나름의 변명과 명분이 있다. 강렬한 1월의 꿈을 충실히 준비시키는 달이 필요하다. 세상은 큰 꿈만을 기억해 주고 그를 응원하지만, ‘꿈을 챙기는 달’의 숨은 공헌이 있어야 완성된다. 세상을 가늠하기 어려운 때에는 작은 것의 존재에 의미를 주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주는 것도 탁월한 선택이다. 영원히 서러웠을 2월. 다른 달들이 꼬맹이라 들볶아도 좌절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문득 대견하다. 날짜를 늘려 달라고 투덜대거나 축원을 하지 않는다. 그의 대견함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위치와 슬기를 가슴에 새기는 참이다. 아무리 아픈 손가락이라 하지만 그는 오늘도 내게 삶의 슬기를 가르쳐 주고 있다. 꿈을 챙기는 달이여. ◇윤진석 프로필 △㈜건우테크 대표이사 △(사)중소기업융합경남연합회장 △청송 진보초등학교 총동창회 수석부회장

2025-02-14

하늘이법

우정구 논설위원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란 말이 있다. 옳고 그름을 법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법을 위반하지 않더라도 비윤리적 혹은 비도덕적인 행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 할 때 법이 만들어진다. 갈등을 중재하고 이를 기준으로 사회의 질서도 유지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 법이 지속적으로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5년 전 윤창호법이 만들어졌다. 부산에서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은 윤창호씨의 경우가 재발되지 않게 정치권이 여론을 받들어 만든 법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음주운전 사고가 줄어들었는 지는 지금도 논란 중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민식이법이 있다. 2019년 충남 아산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민식군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만든 법이다. 스쿨존 내에서는 어린이가 다치기만 해도 최대 징역 15년을 선고받을 수 있게 한 법이다. 이 역시 실제로 잘 적용되는지 알 수 없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신질환 병력의 교사가 8살 학생(김하늘양)을 흉기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이번에도 정치권이 똑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교육감이 직권 휴직할 수 있게 한 하늘이법을 만들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법 제정으로 위와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법은 얼마든지 만들어야 한다. 다만 법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사회가 정말로 안전하기 위해선 범국가적 차원의 또다른 노력들이 보태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13

영호남, 대한민국 건각이 되어라!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건각(健脚)이란 튼튼하고 잘 뛰는 다리나 그런 다리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영호남 지역은 대한민국의 두뇌나 복부보다는 두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영호남이 건강하고 튼튼해야만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과거 영남 지역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이바지했고, 호남 지역은 5·18 민주화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영호남은 오랜 기간 자신보다 나라와 국민을 살리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왔다. 하지만 최근정치라는 권력에 취해 영남이라는 한 다리는 우측으로, 호남이라는 한 다리는 좌측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그 결과 나라는 제대로 뛰지 못하고 갈지(之) 자 행보를 하고 있다. 인간 세상을 움직이는 문제와 이를 풀어가는 길에는 딱딱한 ‘힘’과 부드러운 ‘정(情)’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요소의 농도와 결합 방식이 지역성을 연출하고 삶의 모습에 반영된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영남 사회가 수직적인 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면, 호남은 수평적인 정이 앞서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제도적 질서를 중시하는 반면, 후자는 좀 더 인간적이고 감성적이며 일상적이다. 정의 특질인 ‘내유(內柔)’에 강한 호남인과 힘의 특장인 ‘외강(外强)’에 익숙한 영남인이 어떻게 협력하고 제휴할 것인지는 양 지역의 발전은 물론 국가 발전에도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다. 현재 나라는 극심한 양극화와 단절에 휩싸여 있으며, 이념·지역·계층·남녀·세대 간의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경직된 대치 상태에 놓여 있다. 나라의 기둥인 영남과 호남이 수평과 수직을 결합·융합해 십자가의 원리로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나라가 망할 것이다. 현재 영호남은 정치라는 독이 든 성배(聖杯)에 마취되어 있다. 영남은 빨간색 술에 취해 있고, 호남은 파란색 술잔에 정신이 나가 있다. 원래 정치란 건강한 상태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48:52 또는 그 반대의 팽팽한 승부를 펼친다. 깻잎 한 장 차이의 승부를 펼쳐야 정치인들이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된다. 내 고장 전라도는 예수가 출마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옷을 입지 않으면 시의원조차 되기 어렵다. 경상도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물 경쟁이 아닌 편싸움으로는 지역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정치에 대한 몰입을 줄이고 지역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100년 이상, 국민이 먹고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력과 반도체이다. 영호남이 국가 전력 공급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남은 이미 잘 하고 있다. 그러나 호남은 전기 생산 단가가 10배 이상 더 드는 재생에너지에만 매달리고 있어 답답하다. 반도체 산업은 기업의 부동산 투자 장래성, 연구 인력 선호 등을 이유로 수도권 외에는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연구 인력, 전력, 용수의 삼박자가 요건이다. 전력과 용수는 영호남이 수도권에 비해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은 것은 연구 인력 문제인데, 지방 대학이 목표와 의지를 가지고 인재를 육성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일본 남쪽의 구마모토가 반도체 생산의 메카가 된 것처럼, 우리의 영호남도 충분히 가능하다.

2025-02-13

정치가 깨어나야 한다

노병철 수필가 시국이 참으로 어수선하다. 연일 방송엔 계엄 이야기로 도배를 한다. TV 속에 나오는 대통령의 그 뻔뻔함을 보면 참 기가 막힌다. 자기 잘못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투다. 여기에 야당 대표인 이재명은 그럼 아주 착한 사람인가. 까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도긴개긴이란 말이다.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들이다. ‘면후심흑’(面厚心黑) 즉, 두꺼운 얼굴(面厚)과 시커먼 속마음(心黑)을 갖춰야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얼굴이 얇아 체면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이 맑아 의중을 숨기지 못하는 자는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결코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가볍게 여기며, 사과하는 법이 없다. 품위와 인격은 일찌감치 개한테 줘버리고 이 길을 택한 자들이다. 그들이 체득한 생존술은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이며 그 권력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다. 그들에겐 정치공학은 딱 한 가지이다. 이기면 모든 것이 미화되어 ‘절세의 군주’가 되고, 패하면 모든 것이 폄훼돼 ‘만고의 역적’이 된다는 것을 머리에 새기고 있다. 이번 계엄도 성공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위기의 대한민국이 계엄이 살린 것이 된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 이해하고 넘어갈 보편타당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온갖 거짓 뉴스를 남발하는 유튜버들이 하루 52시간 근무도 하지 않고 엄청난 돈을 번다고 한다. 먹방으로 한 달에 1억 이상을 번다니, 명문대 졸업 후 어렵게 얻은 직장에서 잘리지 않으려 애쓰며 버는 돈과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에스키모족이나 마사이족처럼 경제력이 낮아도 행복도가 높다며,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일하지 않고도 세금을 쓰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정치의 기본 개념조차 모르는 듯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이를 바로잡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마오쩌둥은 죽기 직전의 병석에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절대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노년층, 중년층, 청년층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권력 핵심부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마오쩌둥은 이미 세대 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정치라고 간파한 것이다. 이 추운 날에 태극기 손에 들고 거리로 나선 노인들과 응원봉을 들고 춤을 추면서 거리에 함께하는 젊은이들을 봉합할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 정치를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라고 치켜세우는데 이건 그런 이념적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갈등이 여전하고 종교가 정치화되고 세대 간의 갈등은 이미 선을 넘었고 심지어 이젠 젠더 갈등 또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정치 영역이다. 국민 간에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 정치가 빨리 개입되어야 할 시점인데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올 줄 모른다.

2025-02-13

하늘아 사랑해, 미안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대전의 한 초등학교 선생이 같은 학교 8살 1학년 여학생을 무참히 살해한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같은 학교 내에서…. 뉴스를 접하는 순간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냐!’ 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곧 뉴스와 SNS를 달구는 사건의 진상을 대하며 교사의 범행, 아이의 안타까움에 비통한 마음으로 학교 현장의 정신병을 읽어야 했다. 미술학원에 오지 않았다는 신고를 받고 학부모와 경찰이 휴대폰 위치추적으로 겨우 사건 현장을 찾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아이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우울증을 겪고 있던 40대 여교사가 돌봄교실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어린 여학생을 교내 시청각실로 유인하여 준비해둔 칼로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자신도 자해했다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건이다. 교사는 학생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냥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우발적 범죄도 아닌 계획범죄임이 분명하고 조현병이라는 정신분열 상태도 의심된다. 이 교사는 우울증 증세로 병가를 신청하였으나 곧 20여 일 만에 복직하였고 사건 며칠 전에 컴퓨터를 부수고 다음 날 동료 교사를 폭행하는 등 교직자로서 자질은 물론 인간성 자체를 상실한 듯하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지원청의 권고를 듣고도 강력한 통제를 하지 못하여 이런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학교는 교육을 위한 곳이고 교사의 덕목은 제자를 사랑하는 일이 우선이며, 열정과 친절, 배려로 제자들을 사회에 우뚝 서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교육의 뜻에서 가르치는 교(敎)도 중요하지마는 정신적 가슴으로 품어주는 육(育)이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이번 ‘하늘이 사건’은 학교폭력을 넘어선 살인 사건이니만큼 교사의 정신 건강 관리와 학생 안전문제에 있어 교육계 전반에 걸쳐 교육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교실은 신성한 학문의 전당이니 스승과 제자는 서로의 정을 나누는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요즘 학생 수 감소에 의한 교직의 불안감과 학부모의 갑질로 인해 교직이 극한 직업이라는 말도 나돌고 있으니 교사들의 정신적 안정에도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12일 교육부장관은 17개 시도교육청 교육감 간담회를 열고 이러한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가칭 ‘하늘이 법’ 추진을 제안하였고 국회도 당정협의회를 거쳐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였으니 이제 학교도 교사도 학생들도 모두 안전하고 사랑 가득한 교육환경 속에서 가르침과 배움을 엮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본 바와 같이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교사 자격이 염려되는 교사를 휴직 또는 파직시킬 수 있도록 ‘질환교원 심의위원회’ 활동도 강화되면 좋겠다. 질병 휴직과 복직에도 전문의료진 진단을 의무화하고 비뚤어진 일탈 행위에도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학교폭력예방법, 아동복지법 등을 보완하여 안전해야 할 학교,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학교가 되도록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겠다. 영정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소녀 김하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하늘아 사랑해, 미안해.”

2025-02-13

정월보름날에 대한 기억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경주 남산 통일전 옆에 작고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데 바로 서출지다. 여름이면 연못을 둘러싼 오래된 나무 백일홍이 아름답고 연꽃 명소로도 이름이 높아 많은 사진애호가들이 찾는 곳이다. 이 못의 유래가 삼국유사에 실려있다. 신라 21대 소지왕이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섰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까마귀를 따라가라 하므로 왕은 신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 가에 이르러 신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글 쓴 봉투를 들고 나타난 왕께 전하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봉투엔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어 한 사람이 죽는 게 더 낫다며 왕이 보지 않으려 했으나 일관이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키니 열어보라고 조언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쐈더니 사통하는 사람 둘이 숨어있었고, 왕을 해치려던 사람들이었다. 봉투에 적힌 대로 둘은 죽었고, 왕은 살았다.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후 왕은 매년 첫 쥐, 돼지의 날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하며 정월 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공양하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노인이 나타나 건네 준 글이 적힌 봉투로 왕이 살게 되었으므로 못의 이름을 서출지로 부르게 되었다. 내겐 설날보다 정월 보름날의 기억이 더 많다. 엄마는 유독 정월보름을 챙겼다. 초등학교 졸업 후 우리 삼남매는 모두 대처로 공부하러 가 있었고, 정월보름날은 휴일이 아니었다. 정월대보름날이면 엄마가 밤새 장만한 오곡밥과 온갖 나물을 챙겨 싸 주시고 아버지는 새벽기차를 타고 오셨다. 기차역에서 우리 자취집까지는 걸으면 족히 30분은 걸릴 거리였지만 그날만은 택시를 타셨다. 등교 전에 먹여야 한다면 엄마가 당부당부했다며 바리바리 싸오신 보따리를 내려놓고 아직 자고 있는 우리를 보고 큰 숨을 몰아쉬셨다. 세 개의 찬합이 있었다. 첫 번째 찬합엔 부럼용 생밤과 설날 먹고 남은 강정 등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부럼부터 먼저 깨라고 하셨다. 자다가 일어나 눈도 채 뜨지 못한 채 강정 하나를 입에 넣었던 까끌한 기억. 두 번째 찬합엔 굵은 콩, 노란 조와 붉은 수수 등이 섞인 질척한 밥이 가득했다. 찬합에서 온기를 느끼며 아침밥을 짓지 않고 도시락까지 챙겨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갖 나물로 그득한 마지막 찬합을 열면 입이 절로 벌어졌다. 보름 음식 중에 엄 마가 가장 신경썼던 것이 나물이었다. 가짓수가 생각나진 않지만 ‘땅에서 나는 세 가지, 바다에서 나는 세 가지, 산에서 나는 세 가지’가 기본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콩나물, 무나물, 시금치에 호박과 가지말랭이는 땅의 나물일까. 물미역 무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름도 모르는 시커먼 묵나물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당부를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하셨다. 첫 입은 피마자잎에 크게 싸 먹으래. 평소 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그날 하루 공식적으로 허락된 귀밝이술도 안 드시고 우리를 위한 새벽기차를 타셨다.

2025-02-12

마음이 튼튼한 아이 키우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신체적 발달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인 발달이 필수적이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것이 정서적 안정을 돕는 첫걸음이다.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을 가진 아이가 더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기에 애착 형성은 아주 중요하다. 부모가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보이며 감정 표현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따뜻한 스킨십과 눈맞춤 칭찬은 자존감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 조절 능력은 아이가 좌절감을 줄이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읽고 이름 붙여 주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속상했구나’라고 말해 주면 아이가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림 그리기나 역할 놀이를 통해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기조절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충동을 조절하고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부모는 아이가 기다리는 연습을 하도록 유도하고 규칙을 정해 지키게 함으로써 자기조절력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자기조절을 잘했을 때 칭찬하면 긍정적인 행동이 강화된다. 사회성 발달은 또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협력과 배려 타협을 배우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래와의 놀이 기회를 제공하고, 친구와의 갈등 해결법을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 ‘친구가 속상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도와줄까?’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모는 결과보다는 노력과 과정을 칭찬하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형제나 친구와 비교하는 행동은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므로 적절한 해소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한 놀이 시간과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기회를 제공하면 아이는 정서적으로 더욱 안정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스트레스 지수도 감소시키니 시간이 나면 야외 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 좋다. 부모의 양육 태도는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또 부모가 완벽하려고 하기보다는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실수 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도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빨리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잘 관리하면 아이도 심리적으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심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면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애착 관계 형성과 감정 조절, 스트레스 관리, 부모의 양육 태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면 더욱 건강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아이는 가장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2025-02-12

꿈, 현실이 되다

정미영 수필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고 습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식어를 쓰지 않고 건조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를 즐겨 썼던 그였다. 하드보일드 문체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헤밍웨이의 글쓰기에 대한 신념이었다. 소설가는 이야기에 살을 붙일 수 있지만,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글을 써야 한다는 그의 가치관은 내게 신선했다. 그는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것은 ‘무기여 잘 있거라’, 아프리카의 사냥 경험은 ‘킬리만자로의 눈’으로 발간되었다.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 많아질수록 진실에 가깝게 상상할 수 있다고 작가 지망생들에게 자주 언급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유달리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을 때면 소설의 배경 장소와 집필 공간이 궁금했다. 언젠가는 문학 기행으로 꼭 가보고 싶었다. 내 꿈은 현실이 되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영감을 주고, ‘오후의 죽음’을 집필했던 장소가 남아 있는 론다에 갔다. 해발 739미터에 위치한 론다는 강원도 평창과 비슷한 위치라고 한다. 주변의 낮은 평원 위에 우뚝 솟은 암석 고원이라는 설명이 막연했는데, 우리나라 지형과 비교를 하니 쉽게 이해가 되었다. 론다는 스페인 투우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고 현대 투우 방식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이 고장 출신의 전설적인 투우사 로메로가 경기 방식을 바꾼 덕분이었다. 로메로는 투우 관람을 즐겼던 헤밍웨이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소설에 그의 이름을 그대로 썼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론다에는 ‘헤밍웨이 산책로’가 존재한다. 나는 헤밍웨이의 흉상 옆에서 사진을 찍고는 곧장 그 옛날 그의 발자국을 상상하며 내 흔적을 남겼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에 알맞은 마을”이라고 했다.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강렬한 절벽을 도화지 삼아 누군가 그림 한 폭을 그려놓은 듯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헤밍웨이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누에보 다리로 갔다. 120미터 깊이의 엘 타호 협곡 위에 놓인 아치형의 다리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양쪽으로 절벽이 계속 이어지고 한가운데에는 과달레빈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아찔하면서도 황홀했다. 주변의 경치를 내 마음에 담으면서 한편으로는 다리를 만든 사람들이 떠올랐다. 절벽 위에 선 론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닿을 수 없는 거리 앞에서 오랫동안 한숨을 삼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절망은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변했고 꿈은 현실이 되었다. 변화를 위한 갈망과 화합을 위한 노력은 결실이 되었다. 절벽을 사이에 두고 나뉘었던 삶이 연결되었다. 42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3년에 새로운 다리를 뜻하는 누에보 다리가 완공되면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원활하게 소통되었다. 다리를 건설했던 노동자에게는 고단하고 아슬아슬한 생의 단면이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두 지역을 연결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협곡 아래로 스며들었지만, 꿈은 다리로 남아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는 다리 전체를 온전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측면이 아닌 정면을 온전히 보기 위해서는 다리 아래 협곡으로 내려가는 입장권을 사야 했다. 표를 끊고 안전모를 쓴 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었다. 누에보 다리 전체 모습이 내 두 눈에 담긴 그 순간이었다. ‘노인과 바다’ 책 속의 주인공인 산티아고의 독백이 떠올랐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아.” 그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하고 바다를 헤맸다. 그러나 고기를 잡겠다는 꿈을 잃지 않았기에 마침내 커다란 청새치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청새치는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아 뼈만 남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다로 나갈 용기와 희망을 다시 얻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꿈은, 현실이 되리라.

2025-02-12

대한민국, 멈춰버린 나라

장규열 고문 대한민국이 멈췄다. 국가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모든 분야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경제는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교육은 오래도록 서있으며, 사회는 극심한 갈등과 불신으로 병들었다. 외교는 수장없는 혼란으로 방향을 잃었고, 국방은 보란듯이 중구난방이다. 세계는 빛의 속도로 바뀌어가는데, 대한민국은 따라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최근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성장이 멈추었다는 점이다.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반도체와 AI 등 핵심분야도 우리만 서있는 분위기다. 반도체는 대한민국 경제의 다음 먹거리역할을 해왔으나,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략적 대응이 부족해 시장점유율이 위협받고 있다. AI시대를 대비해야 하는데 준비가 미흡한 것도 현실이다.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청년실업률은 여전히 높으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생존의 벼랑 위에 섰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금리의 인상, 부동산시장의 불안정성은 국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할 뚜렷한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는데,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교육의 문제는 학제개편이나 입시제도를 바꿀 필요에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은 주입식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창의적 사고를 키울 기회가 제한적이다. 대학교육의 질이 하락하고 청년들은 졸업 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술발전과 산업변화 속에서 교육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미래 세대의 경쟁력은 약화일변도에 설 터이다. AI와 디지털혁신이 글로벌 경제와 세계문화에 충격을 주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은 이를 좀처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교육개혁에 대한 근본적인 각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미래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에 대한 긴 안목의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극심한 불신과 갈등 속에 병들어가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는 극단적인 대립을 낳으며,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격차, 성별 간 반목이 점증한다.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닿았다. 사회안전망이 작동하지 않아 복지사각지대가 늘어나고, 출산율하락과 고령화 문제는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정부가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회는 더욱 취약한 구조로 떨어질 것이다. 국가의 외교가 혼란에 빠졌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외교전략이 불명료하다. 글로벌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함에도, 외교정책은 갈팡질팡하며 확고한 입장을 보이지 못한다. 경제와 안보를 고려한 외교적 판단과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방이 가진 심각한 문제가 눈에 보인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계속되고 있는데 동북아정세는 끝없이 불안정하다. 군 내부의 문제와 병역제도의 지속적인 논란으로 인해 안보가 취약해지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강력하고 촘촘한 안보전략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멈춰 있을 겨를이 없다.

2025-02-12

8세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과 우울증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슬퍼할 사건이 발생했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8세 여자아이가 흉기에 찔려 숨졌다.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그것도 환한 대낮에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교내 시청각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여아는 구급대원의 심폐소생술에도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채 피어나지 못한 꽃봉오리가 무참하게 꺾인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학교 교사가 “내가 아이를 살해했다”고 자백하자 놀라움은 더 크게 증폭됐다. 범행 후 자해를 시도한 교사는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문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왜 선생님이 죄 없는 어린 학생을 죽이고자 했을까?” 범행을 자백한 교사는 우울증으로 인해 휴직했다가 얼마 전 복직했다고 한다. ‘우울증’은 인간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병이다. 인지 및 정신·신체적 증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가져오기도 한다. 의사들은 우울증을 “평생 유병율이 15%, 특히 여자에게서는 25% 정도에 이르며, 감정, 생각, 신체 상태, 그리고 행동 등에 변화를 일으키는 심각한 질환”이라 설명한다. 사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 사이에선 미성년자를 일상적으로 대하는 초등학교 교사나, 다수의 안전을 책임지는 여객 운송수단 조종사 등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계 당국은 이런 의견에 귀 기울여 누구나 수긍할만한 합리적인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함이 마땅하다. 짧은 시간 세상에 머물렀던 아이의 명복을 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12

정월대보름의 소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최근 들어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설날을 전후해 눈이 살짝 내리는가 싶더니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다가오는데도 눈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해안을 비롯 전라·충청·강원권 등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눈은 수시로 내리면서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풍경을 백설 가루로 덧칠하는 듯하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국을 눈으로라도 덮어보려는 속내일까? 겨울의 끝자락에 혹한과 강설로 동장군의 기세가 살아나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춘이 지나고 정월대보름이나 우수가 가까워지면 눈이나 비가 잦아들게 된다. 산간 내륙이나 도서지방 등에서는 기압골의 차이로 눈도 내리게 되는데, 농경사회에서는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라 무엇보다 날씨를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정월대보름은 유일하게 대(大)자를 붙여 ‘새해 첫 번째 뜨는 만월’이라 해서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동제·풍어제를 지내거나 근신하면서 세시풍속을 즐기고 길흉화복을 예견하기도 했다. 즉 설날이 개인이나 가족 중심의 새해맞이 명절이라면, 정월대보름은 집단적이고 개방적인 마을공동체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예로부터 새해의 풍요와 안녕을 바라며 함께 모여서 즐기고 어울리는 놀이문화가 있었다. 윷놀이나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횃불싸움, 고싸움놀이, 놋다리밟기 등의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기며 단순한 오락을 넘어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결속을 다지기 위한 축제의 일부로 여겼다. 그러한 단체활동이나 힘겨루기 등으로 승패를 갈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며,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遠禍召福) 전통놀이를 통해 마을에 행복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또한 부럼 깨기와 오곡밥, 귀밝이술, 약밥, 진채(陳菜)를 먹으며 개인적인 건강과 농사의 풍년을 바라기도 했다. 정월대보름 이른 아침에 먹는 부럼 깨기는 한 해 동안의 각종 부스럼 예방과 건치의 염원을 담았고, 귀밝이술을 한잔하면서 남의 말과 어른 말씀을 잘 들으라는 교훈적인 의미를 일깨우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곡식을 섞어 풍요를 기원하며 짓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인 진채를 먹으며‘9’가 지닌 단수 최고, 충만의 의미와 풍족의 누림을 부여하기도 했었다. 빈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서 관솔을 넣고 불을 붙여 철사로 연결된 끈을 돌리면서 주위를 밝히는 쥐불놀이는 정월대보름 밤의 진풍경이었다. 휘영청 달빛 아래 논밭에서 삼삼오오로 저마다 불이 붙은 깡통을 빙빙 돌리면서 그려지는 크고 작은 원형의 불빛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불빛쇼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리다가 관솔이 거의 다 타게 되면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불이 붙은 깡통을 공중으로 일제히 던지게 되는데, 수직으로 솟구치는 불기둥에 불티가 눈처럼 날리면서 그려지는 불꽃 포물선은 쥐불놀이의 압권이었다. 어쩌다가 눈까지 내리는 달밤의 숨바꼭질이나 쥐불놀이가 끝나면 또래들과 큰 양푼을 들고 몇 집을 찾아가서 찰밥이나 식혜를 얻어와 살얼음이 뜬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꿈결 같은 정월대보름 밤이 켜켜이 동화처럼 각인되는 오늘이다.

2025-02-11

열린 조직문화와 혁신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경직된 조직문화에서 기업 혁신을 추진하는 것은 어렵다.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보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에서 조직 간 협력과 창의적 아이디어, 시너지를 창출 할 수 있다. 조직문화는 혁신의 토양이다. 척박한 토양에 혁신의 씨를 뿌리면 새싹이 돋아나다 시들어 버리는 현상이 된다. 가치관, 행동 양식, 규범 등으로 구성되는 기업의 조직문화는 혁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명령에 따르는 수직적 조직 문화는 혁신을 균형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 가령, 경영자의 지침이 안전에만 내려진다면 한 가지에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안전과 설비는 기차 레일처럼 균형 있게 관리하지 않으면 설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제조기업의 혁신 대상은 설비부터 생산, 품질, 원가, 안전, 환경 등 다양한 문제들을 개선해서 생산 프로세스 수준을 높여 나가야 한다. 조직문화가 기업 혁신의 성공과 실패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조직문화가 기업 혁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첫째, 열린 조직과 혁신적인 사고 장려이다. 구성원의 생각이 기업 미래를 결정한다. 개방적인 조직문화는 직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는 도전적인 시도를 장려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기여한다. 둘째, 협업과 지식공유 활성화이다. 팀워크를 강조하는 문화는 부서 간 협업을 촉진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 도출 분위기를 조성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지식 공유가 일상화 되는 조직은 새로운 기술과 노하우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다양성을 담아내는 의사결정 속도이다. 상명하달식 20세기 조직문화로는 다양성을 담아내지 못한다. MZ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최근 현장은 그 특징에 맞게 열린 대화와 유연한 사고로 모두가 공감하는 혁신을 추구하고 실행력을 높여야 성공할 수 있다. 넷째, 대내외 변화 대응이다. 변화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가진 조직문화는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도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조직문화는 신기술 도입과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혁신적인 성과를 기대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 혁신에 좋은 영향을 주는 조직문화는 직원들의 사고와 생각을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여건과 상하 관계보다 수평적인 구조를 통한 빠른 정보 공유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지속적인 학습과 성장을 장려하는 분위기와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연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목적 중심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리더가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구성원들은 한 방향을 보며 각기 위치에서 역할을 했을 때 원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기업 혁신의 성공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혁신의 토양인 조직 문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토양을 잘 개간한 만큼 농사가 잘 되듯 조직의 수장은 조직 문화 체질개선에도 진력 할 필요가 있다. 조직문화가 바르게 정착될 때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며 미래가 있는 기업이 될 것이다.

2025-02-11

외신이 본 부산

우정구 논설위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우리나라 제2 도시 부산의 몰락을 경고한 뉴스는 매우 충격적이다. 이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 지방의 대도시가 공통으로 안은 문제란 점에서 동병상련의 감을 느끼게 한 대목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평가는 이렇다. 20세기 대부분 기간 부산은 한국의 무역과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젊은이가 대폭 감소해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한국의 다른 대도시보다 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현재 330만 인구의 부산은 1995년부터 2023년까지 60만명이 넘는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인 삼성과 LG의 탄생지지만 한국 100대 기업 중 어느 곳도 이 도시에 본사를 두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부산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쇠퇴한 것은 수도인 서울이 국가 경제를 중앙집권하면서 가속화됐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작년 6월 ‘광역 대도시로 확산하는 소멸위험’이란 보고서에서 부산의 소멸위험지수가 0.490으로 광역시 중 처음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소멸위험이 농촌지역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란 사실이 더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다. 2012년 파이낸셜타임스는 부산을 아시아태평양지역 133개 도시 가운데 외국인 투자유치를 가장 잘한 도시 6위로 선정한 바 있다. 불과 13년만에 같은 신문이 소멸위험 도시로 부산을 꼽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지난해 대구는 소멸위험지수 0.553으로 부산에 이어 소멸위험 단계 진입 직전에 놓인 도시로 평가됐다. 부산의 위기가 곧 대구의 위기로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11

탄핵선고 서두르는 헌재…여야 大選 모드

심충택 논설위원 2030세대가 합류한 대규모 탄핵반대집회가 대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헌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헌재는 “재판일정과 진행방법은 재판관 모두가 참여하는 평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헌재가 3월 선고를 미리 정해놓고 서두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 재판은 이제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예정돼 있는 마지막 변론 기일은 13일(8차)이다. 재판부가 추가 기일을 잡더라도 이르면 이달 말 변론이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변론 종결부터 선고까지 2주 정도 걸린 것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에 대한 선고기일은 3월 중에 잡힐 가능성이 크다. 만약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 선고 후 60일내에 조기대선이 치러진다. 빠르면 4월, 늦어도 5월중에 조기대선이 치러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이미 조기대선 모드에 들어갔다. 여권은 “조기 대선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예비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바로 후보경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에선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예비주자로 거론된다. 오 시장과 홍 시장은 일찌감치 언론인터뷰나 SNS를 통해 지지층 세력화에 나섰고, 한 전 대표는 곧 정치 활동을 재개할 움직임이다. 그의 측근 인사들은 최근 ‘언더73’(1973년생 이하 정치인) 모임을 결성해 한 전 대표 지원에 나섰다. 이 모임에는 국민의힘 김예지·김상욱·김소희·진종오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야권은 본격적인 조기 대선 준비에 들어간 모양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민생회복과 경제성장을 강조하면서 사실상의 집권 청사진을 내놓았다. 최근 중도층 확장을 위해 성장담론을 피력하고 있는 이 대표는 야권에서 사실상의 일극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대표의 유력한 대항마로는 친문계 인사인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꼽히는 정도다. 김 전 지사는 최근 복당하면서 “대선승리를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대선주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외에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이 대표를 겨냥한 견제구를 날리면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최근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보수·진보 강성지지층을 제외한 중도층만 추려내 분석해보면, ‘정권 연장’보다 ‘정권 교체’ 여론이 높게 나온다. 정당 지지도에선 국민의힘이 상승추세에 있는 것은 맞지만, 이를 보편적 민심으로 보긴 어렵다. 만약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집회 군중들과 정당 지지도 상승에 들떠 우경화하는 모습을 보이다간 금세 역풍을 맞게 된다. 특히 여권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비상계엄 찬반’ 여부가 주요변수가 될 경우, 후보가 누가 되든 승산이 낮다. 국민의힘 예비 대선주자들이 강성지지층 결집보다 중도층 외연 확장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2025-02-11

겨울 바다의 진미, 포항의 특산물 과메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포항의 바닷가에는 특별한 겨울 별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과메기’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는 긴 겨울을 준비하며 신선한 생선을 보관할 방법으로 자연건조 방식이 발달하였고, 그 결과 지금의 과메기가 탄생하게 되었다. 과메기는 이제 단순히 포항 지역의 특산물을 넘어,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겨울철 별미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주로 포항이나 경상북도 동해안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전국의 마트나 백화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어 겨울철이면 어디서든 과메기의 쫄깃하고 깊은 맛을 즐길 수가 있다. 특히 현대적인 포장 기술과 유통망의 발달 덕분에 신선한 상태로 과메기를 전국 각지로 배송할 수 있게 되어, 집에서도 손쉽게 포항의 겨울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과메기 라이스페이퍼 롤 △제조 방식에 따른 과메기 종류 과메기는 만드는 방식에 따라 크게 ‘통 과메기’와 ‘배지기 과메기’ 두 가지로 나뉜다. 각각의 제조 방식과 맛에는 고유한 차이가 있어, 입맛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전통 방식의 통 과메기는 생선의 내장만 제거한 후 통째로 말려 만드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과메기의 형태를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생선이 숙성되면서 과메기 본연의 깊고 진한 풍미가 특징이다. 더욱 부드럽고 묵직한 식감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 반면, 베지기 과메기는 생선을 반으로 갈라 포를 떠서 말리는 방식으로, 바닷물과 일반 민물을 섞어 세척 한 후 짧은 기간에 균일하게 건조한다. 겨울철 바닷가 바람과 일교차에 의해 생선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점점 쫀득한 식감과 깔끔한 풍미가 강해져, 과메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통 과메기에 비해 베지기 과메기는 수분이 더 빠르게 제거되어 쫀득한 식감이 강조된 과메기다. 또한 크기가 작고 손질이 쉬워 다양한 요리에 손쉽게 활용하기에도 적합하다. △과메기의 손질 해풍에 잘 말려진 과메기를 맛있게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얇은 껍질을 벗기는 과정이다. 얇은 막처럼 된 껍질을 벗기면 속살이 드러나고, 마치 기름이 발라진 듯 윤기가 흐르며 더욱 먹음직스러워진다. 과메기는 11월에서 2월까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기간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제철 음식이다. △과메기의 건강한 효능 과메기는 고소하고 쫄깃한 맛뿐만 아니라, 풍부한 영양성분 덕분에 겨울철 건강식으로도 주목 받는 음식이다. 과메기에는 음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불포화지방산 중 뇌 기능 활성 물질인 EPA와 DHA 함량이 높으며,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 혈액 순환과 콜레스테롤 관리에 도움을 준다. 또한,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여 겨울철 면역력 증진에도 좋다. 겨울철 건강을 지키고 포항의 바다를 느끼고 싶다면, 제철 과메기로 따뜻한 밥상을 차려 보는건 어떨까? △과메기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 제안 과메기의 매력은 그 자체로 즐기는 풍미도 좋지만, 다양한 조리법으로 응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김과 노란 속배추, 쪽파, 마늘, 고추, 생미역과 꼬시랭이를 곁들여 먹는 방식이 잘 알려져 있지만,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다양한 요리로도 응용되고 있다. 1. 과메기 무침 과메기를 채 썰어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소스에 버무려 만든 무침은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미나리와 무, 배를 채 썰어 넣으면 과메기의 고소한 맛과 무의 아삭함, 배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2. 과메기 라이스페이퍼 롤 영양이 풍부한 과메기에 노란 알배추, 해초, 적채를 더해 라이스페이퍼로 감싸 한입에 즐길 수 있게 만든 핑거푸드로 과메기의 고소함과 신선한 채소의 조화가 부담 없이 맛 볼 수 있는 요리로 각종 행사나 시식회에서도 손쉽게 즐길 수 있다. 3. 과메기 전 과메기를 먹기 좋게 잘라준 후 밀가루를 가볍게 묻혀주고 청양고추와 홍고추 다진파, 소금으로 간을 맞춘 계란물에 적신 후 팬에 노릇하게 부쳐준다. 고소하면서도 살짝 매콤한 맛이 과메기의 조화를 이룬다. 반찬이나 술안주로도 손색없는, 누구나 즐기기 좋은 요리이다. 4. 겨자소스를 곁들인 과메기 미니김밥 김을 네 등분한 다음 소금과 참기름으로 비빈 밥을 한 스푼 정도 펴주고, 과메기와 단무지, 당근, 등의 야채를 올려서 작게 말아 준다. 겨자소스를 찍어 먹으면 과메기의 풍미와 겨자의 알싸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겨자소스 만들기: 식초 2큰술, 설탕 2큰술, 물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발효 겨자 적당량 5. 과메기 강정 과메기를 한입 크기로 밀가루를 가볍게 묻힌 후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다. 마늘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강정소스 5큰술 정도 넣어 소스가 바글바글 끓으면 튀긴 과메기를 넣어 재빨리 가볍게 버무려 준다. 땅콩 분태와 검은깨를 뿌려 마무리 한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강정소스 만들기 : 간장 150g, 고운 소금 25g, 물엿 300g, 설탕 150g 모든 재료를 섞어 약한 불에서 설탕이 녹을 정도로만 저어 가며 약하게 끓여 강정소스를 완성한다. (센 불에서 끓이게 되면 넘칠 수 있으니 주의한다.) ※TIP : 강정소스는 가볍게 묻히는 정도로 버무려 주어야 바삭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완성된 강정이 굳기 전에 한번 더 버무리듯 서로 떨어트려주면 더 이상 달라 붙지 않아 완성도가 높아진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외식산업학 박사 △안동 1호 조리기능장 △안동종가음식체험관 연구원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산학겸임 교수 △(주)예미정별채 수석셰프 겸 대표

2025-02-11

안전한 봄을 위한 해빙기 준비

최원익 칠곡소방서장. 입춘(立春)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맞이하는 시기로 기온은 여전히 낮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지만,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유난히도 추워 끝날 것 같지 않던 이번 겨울, 어느덧 입춘이 지나고 서서히 봄이 찾아오고 있다. 해빙기는 겨울과 봄의 중간 시기로, 겨우내 한파로 인한 동결과 융해 현상이 반복되면서 지반이 약해져 건축물 등이 붕괴를 일으키고 얼었던 물이 녹으면서 각종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즉,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시기임과 동시에 각종 재난에 대비해야 하는 분주한 시기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미리 점검하고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땅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지므로 건축물이나 옹벽 등이 균열이나 지반침하로 기울어져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 해빙기에는 빙판이 얼어 있는 곳과 녹은 곳이 혼재해 있어, 사람들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신발을 착용하고, 눈이나 얼음이 녹은 길에서는 주의 깊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 등산을 계획 할 때도 바위 능선이나 계곡 등은 피하고, 평소보다 등산 코스를 짧게 하는 것이 좋으며 보온성이 좋은 옷을 입고 등산해야 안전한 산행이 될 수 있다. 해빙기 얼음은 강이나 호수의 가운데로 갈수록 얇아지고, 아래쪽에서부터 녹기 때문에 겉으로 보아서는 두께를 가늠하기 어렵다. 강이나 하천의 얼음 위로 걷다가 갑자기 얼음이 깨져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얼음 위에서 놀거나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도처춘풍(到處春風), 이르는 곳마다 봄바람이라는 뜻으로 가는 곳마다 기쁜 일이 있다는 고사성어다. 봄철 해빙기 주변을 다시 한번 더 꼼꼼히 둘러보고 각종 안전저해요소를 사전에 제거하여 위험이 도사리는 해빙기가 아닌 모두가 따뜻하고 행복한 ‘도처춘풍의 봄’을 맞이하였으면 한다.

2025-02-11

대구경북형 재선충 대응 모델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가운데, 또 다른 산림 재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바로 ‘소나무 재선충병’이다. 감염된 소나무는 탄소 흡수 능력을 상실하고 고사하며, 이는 산불 확산 위험을 더욱 높인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이 중 산림 부문이 3,200만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전체 감축 목표의 11%를 담당할 예정이다. 이는 국내 등록 자동차 2,550만대의 연간 배출량(3,060만t)을 초과하는 수준이며, 2024년 탄소배출권 가격 기준으로 약 3,85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재선충 확산으로 인해 이 같은 탄소흡수 효과가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탄소 흡수량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므로, 재선충 대응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2020년 기준, 대구의 연간 탄소 순흡수량은 44만9,000t으로, 서울(8만9,000t), 부산(27만7,000 t)보다 월등히 높다. 경상북도는 전국 산림의 21.2%를 차지하며, 연간 1,028만7,000t의 탄소를 흡수하는 대한민국 대표 탄소흡수원이다. 그러나 2023년 기준, 경북에서는 전국 피해량의 40%에 해당하는 123만7,000 그루의 소나무가 재선충으로 고사했다. 연구에 따르면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 1그루당 연간 약 20kg의 탄소흡수 기능이 상실된다. 이 같은 피해가 지속될 경우 경북 지역의 연간 탄소흡수량은 최대 100만t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서는 산림병해충 대응을 위해 국가적·광역적 협력 모델을 도입한 사례가 많다. 일본은 ‘긴급 방제 지역’을 설정하고 감염목 이동을 엄격히 통제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으며, 드론과 AI를 활용한 조기 탐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에서도 미시간, 오하이오, 인디애나 등의 주(State) 간 협력을 통해 감염목 이동을 제한하고 피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대구·경북도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 ‘대구경북형 재선충 대응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먼저, ‘대구경북 재선충 방제 협의체’를 구성하여 감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공동 방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드론과 AI를 활용한 조기 탐지 시스템을 도입해 감염목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특히, 감염 지역을 공동 관리하는 ‘광역 방제 구역’을 설정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감염목을 제거하고 예방 작업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피해 지역의 산림 회복을 위한 대규모 조림 사업을 추진하여 탄소흡수 기능을 회복하는 장기 전략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탄소흡수원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한다면, 탄소중립 실현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대구·경북이 선제적으로 재선충 대응 모델을 마련한다면,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제는 산불과 재선충 피해를 동시에 막기 위해 대구와 경북이 협력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펼쳐야 할 때다.

2025-02-10

고통의 신비

강길수 수필가 장미 밑둥치들을 살펴본다. 한 주에 두 번은 걸어서 지나는 화단이다. 이곳 장미들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오가는 길손들을 즐겁게 한다. 처음에는 관심 없이 지나다녔지만, 시간이 가며 이 화단 장미들이 유별나게 곱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지날 때마다 장미들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곳 장미는 왜 다른 것들보다 더 곱고 크며,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낼까. 내가 알아낸 것은, 정원사가 가지들을 자주 잘라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장미는 매번 가지가 잘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새 가지가 나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젊은이가 더 아름답듯, 새 가지에 피어난 장미꽃이니 더 크고 고왔던 것일까. 문득, ‘고통의 신비’가 떠올랐다. 성당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 드리는 네 가지 신비 중의 두 번째다. 네 신비는 ‘환희, 고통, 영광, 빛’이다. 2월 초순, 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장미 밑동은 추운 막바지 겨울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밑동 속에서는 머지않아 다가올 봄에 활짝 꽃피울 새순을 내보낼 준비에 여념이 없으리라. 순과 잎, 꽃의 모양과 색깔을 디자인하고 실행계획도 세울 거다. 묵주기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다. 그중 고통의 신비는 사람의 삶과 가장 가까운 주제이다. 불교에서도 인간의 삶을 고해라 하듯이, 고통은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묵주기도의 고통은 죄 없는 그리스도가 온갖 모함으로 받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고통의 정점은 죽음이다. 고통을 감내하고 죽음으로써 부활하는 신비로 묵주기도는 이루어졌다. 한겨울을 능가하는 입춘 꽃샘 한파가 물러나면, 겨우내 준비했던 새순은 눈을 틔우고 자라나 꽃봉오리를 맺을 터. 무르익은 봄날 마침내 꽃봉오리는 화려한 꽃잎을 열어 아름다운 자태를 온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흰장미, 분홍장미, 노랑장미, 붉은장미, 흑장미 모두 피어나 생명의 거리를 밝히리라. 지금 우리 사회도 고통의 신비를 겪고 있다 싶다. 무너져 가는 자유민주국가 질서를 간파한 대통령이 홀로 십자가를 지고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다. 이에 감동한 많은 국민이 거리로, 광장으로, 대통령관저 앞으로, 법원 앞으로, 구치소 앞으로 모여들어 대통령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짊어지고 있다. 그 결과, ‘비상계엄’이 ‘비상계몽’으로 승화하며 많은 20~30 젊은이들을 일깨워 함께 걷게 한다. 구치소에 갇힌 대통령의 지지율이 51%란 여론조사 보도를 몇일 전 보았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이 실감 난다. ‘사필귀정’이란 마음도 든다. 내란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내란 주범으로 몰아 탄핵한 아이러니의 진실이 하늘에 닿은 게 아닐까.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트리는 부정선거 발본색원이 12·3 계엄의 주목적임을 민심이 알아챈 것이다. 꽃샘추위가 가고 봄이 오면, 사람들이 오가는 작은 화단에 올해도 고통을 이겨낸 고운 장미가 활짝 필 것이다. 그때쯤, 우리나라도 탄핵이란 고통이 자유민주주의란 더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함빡 피어나고 말리라.

2025-02-10

비효율의 아름다움

글을 쓸 때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날도 적당히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보이는 제목을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골랐다. 글이 잘 나오는 날이어서 집중을 하고 써내려가고 있는데, 뭔가 서늘한 감각이 들었다. 들리는 음악들이 형편없는 건 아닌데 뭔가 무미건조한 느낌. 굳이 비유를 하자면 맛이 나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있는데 공기를 삼키는 듯 전혀 배가 부르지 않은 느낌. 누구의 음악들인지 확인을 하려고 플레이리스트 하단의 글을 봤더니 아뿔싸, ‘이 플레이리스트는 AI로 자동 생성된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는 것이었다. 나는 한 사람의 음악 애호가로서 위기감을 느꼈다. 과거의 나는 어땠는가. 갖고 싶은 음반의 발매 날짜를 손꼽아 기다려 레코드 가게에 간다. 음반 한 장을 들고 집에 달려온다. 조그만한 라디오 데크에 CD나 테이프를 넣고 노래가 재생되길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침대에 누워 앨범 속지를 꼼꼼히 살피며 정성스레 음악을 들었다. 노래를 거의 다 외울 때까지 그것을 반복하곤 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다음은 디지털 음원의 시대. 음반을 사서 뛰어오는 설렘과 속지를 읽는 재미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중한 선곡을 통해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러다 그 선곡하는 행위마저 사라지고 만 것은 최근의 일이다. 타인들이 선곡해 놓은 플레이리스트들을 재생하곤 하다가 이제 그 시기마저 넘어 사람이 만들지도 않은 음악을 듣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음악 듣는 방식은 비효율에서 효율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변모해왔다. 음반을 사러 가는 물리적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노래를 고르는 생각의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급기야는 생산자들의 번거로움 마저 제거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내게 음악을 듣는 행위는 정신에 영양을 공급하는 행위. 그런데 오늘 나는 문득 이 행위가 더 이상 나의 정신에 그 어떤 영양도 제대로 공급해주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휴대폰으로 찍고 있는 사진들도 그렇다. 어릴 적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사진은 아직도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보관되어 언젠가가 그리울 때면 언제든 그 시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해 준다. 2000년대, 디지털 카메라 시절에 찍었던 사진들은 이리저리 뒤섞여 외장하드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지만 어쨌거나 보존은 되어 있다. 그런데 그마저 골동품이 되고 휴대폰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게는 이제 어떤 사진이 남아 있는지, 어디에 어떤 시절들이 저장되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해 주신 말씀이 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고. 디지털의 홍수가 내게 준 것은 그야말로 정서적 갈증이었다. 나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단 물건을 샀다. 집에 물건을 늘리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테이프와 CD가 들어가는 중고 오디오 데크를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카세트테이프 몇 개를 사서 듣기 시작했다. 그 옛날 음반을 사서 들을 때의 감각이 조금이나마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후로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불편한 방식으로 음악을 다시 듣다보니 설령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 음원을 듣는 때가 있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리스트를 고민하게 되곤 한다. 그렇게 그동안 휘발되기만 했던 음악들이 이제는 내게 조금씩 남아 머물게 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오키, 모허, Neil Young, Michael Kiwanuka 등의 앨범이 최근에 그랬다. 내친 김에 필름카메라도 하나 장만했다. 1996년에 생산된 자동필름카메라.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꽤 돈이 드는 일이다. 필름 값과 현상하고 스캔을 하는 값까지 생각해보면 셔터 한 번 누르는 데 몇 백 원이 드는 셈이다. 그러니 매순간 신중해지곤 하는 것이다. 숨을 참고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던 그 순간들이 한 장 한 장의 사진들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게 된다. 비싸고 불편하지만 이 역시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점점 촘촘해지고 시간은 점점 없어진다. 그래서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은 유리한 선택이 되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가끔 불편함을 요할 때가 있다. 편의점 도시락과 레토르트식품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서글프듯이, 손수 지은 밥처럼 불편한 음악과 사진 같은 것들만이 채울 수 있는 부분들도 있는 것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삶 속에 가끔 이러한 불편함을 추가해 보면 어떨까 주변에 추전하고 싶은 요즘이다.

2025-02-10

질문의 이유

상대를 알아가는 일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언스플래쉬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무엇이든 묻게 된다. 어색한 침묵을 깨뜨리기 위함이거나 사회적 처세술로 비롯된 관성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질문은 언제나 상대에 관해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다. 상대와 시선을 맞춘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태도로 물음표를 건넨다. 그러니까…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여기서 ‘무엇’이라는 범주는 너무나도 방대해서 선뜻 대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취향이 확고한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을 수 있다. 대답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겠다. 상대가 내어놓은 답은 놀라울 것이다. 타인의 발자국은 항상 예상치를 벗어나게 되어 있으니. 그의 시선이 닿은 세계가 모여 한 사람을 그리는 무늬가 된다. 낯선 상대는 어느 순간 형태를 갖추고 내 안에 안착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고고한 감식안을 뽐내며 근사한 이야기를 내어주고 싶지만, 내 삶을 구성하는 것은 하나같이 진부하고 소소한 것뿐이다. 세련된 물건으로 가득 찬 가게보단 아무렇게나 방치된 숲이 좋고 떠들썩한 자리보단 홀로 보내는 쓸쓸한 새벽이 편안하다. 힘차게 발을 구르는 날보다 빈둥거리는 시간을 더 사랑하며 재미없고 촌스러운 것에 쉽게 매료된다.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기에 작가나 책에 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아직 읽지 않은 책에 관해 답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어쩐지 망설이게 된다. 잠시 뒤로 물러나 한 번 더 생각할 때도 있다. “그 작가를 좋아하세요?” 그와 같은 질문은 평단의 평가나 대중의 시선 따위를 묻는 것이 아니다. 호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명확한 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주인공 폴은 그녀를 열렬히 사모하는 시몽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가 미소 짓게 되는 것은 그의 뜻밖의 질문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세요?” 이토록 간단한 질문은 그녀를 치열한 고민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애 관해 생각하는 일을 언제부터 멈추게 되었는지. 폴은 의문한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폴은 스스로를 이미 너무 많이 늙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열정이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애인은 그녀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청년, 시몽의 등장과 함께 그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그의 과감함,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경험한다. 폴은 시몽의 편지를 받고 생각한다.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답을 내어놓는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생각의 분투 끝에 다다른 ‘모르겠다’는 결론은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매우 심플하다.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스스로에 관해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그렇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 가장 어렵다. 시몽의 마음을 확인한 폴은 자신의 애인에게 이런 말을 꺼낸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더라고. 믿어져?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도 없다는 게.” 그는 브람스 얘기는 집어치우라고 말하지만, 폴은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이건 브람스에 관한 얘긴걸.” 중요한 것은 브람스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브람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괴로움을 느끼는지. 그러한 질문에서부터 많은 것이 시작된다. 애정과 연민, 사랑과 이별까지도. 상대를 알아가는 일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마지막 장을 덮어도 마침표보단 물음표가 남는다. 그 어려운 영역을 끝끝내 더듬겠다는 의지, 희미하게 보이는 윤곽을 붙잡는 노력이 우리를 가깝게 만든다. 질문의 이유는 그런 것이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2025-02-10

서울구치소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금 서울구치소는 서울에 있지 않다. 의왕에서 성남 가는 방향에 있다. 옛날에는 경성감옥이라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대문형무소라 했다. 8·15 해방 후에 서울형무소라 했다. 1967년에 서울구치소로 바뀌었어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계속 있었다. 1987년 11월 15일에 지금의 의왕시 포일동으로 이전했다. 나는 1984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때는 제5공화국 시절이다. 2학년이던 1985년 11월 18일 아침 8시, 서울 시내 14개 대학 학생 191명의 한 사람으로 민정당 정치 연수원 3층 건물에 들어갔다. 점거농성이었다. 학생들은 건물 안의 책상 등 집기들을 가져다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에 바리케이트를 쳤다. 경찰 진입에 대비한 것이었다. 불이 잠깐 났던 것도 같은데, 위험하다고들 하며 금방 꺼버렸다. 관련 기사는, 소방차 여덟 대가 출동해 옥상의 학생들에게 물을 뿌렸고, 2,100여 명의 정사복 경찰들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옥상 철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던 여섯 시간 반의 농성은 경찰 ‘백골단’이 옥상 철문을 절단하고, 학생들을 한쪽으로 내몰아 몽둥이로 두드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날 하늘에 헬리콥터가 떠 있었다. 부모님들이 걱정한다고, 농성을 풀라고, 선무방송을 했다. 그때 학생들은 ‘점거 농성’을 ‘자살택’이라고 불렀다.‘자살’이란 체포를 면할 길 없음을 의미했다. ‘택’이란 ‘전술’을 뜻하는 ‘tactic’의 앞글자에서 따온 것이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체포, 연행된 학생들은 각기 소속된 대학 근처의 경찰서로 옮겨졌다. 나는 관악경찰서로 옮겨져 조사를 받았다. 저녁 여섯 시가 조금 지났을까, 담당 형사가 “전원 구속”이라며,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 ‘전원 구속’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되었다. 지난번 서부지법 사태가 날 때까지 꼭 그런 줄만 알았다. 서부지법에 진입한 청년들을 “전원 구속”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인터넷을 뒤졌다. 실제 구속자는 82명에 ‘불과’했다. 나는 ‘선별’된 82명 중의 한 사람이었고, 그나마 기소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때 3년형인가를 받은, 같은 과 선배의 모습을 지금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대학 2학년생, 서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때였다. 열흘을 관악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내고, 서울구치소라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곳이 어디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현저동에 있던, 지금의 의왕으로 옮겨지기 직전의 서울구치소에서 열흘을 보냈다. 나머지 열흘은 의정부교도소로 보내졌다. 이렇게 열흘씩을 법무부 교도 행정을 ‘속성 이수’한 끝에 다시 사회로 내보내졌다. 사십 년이 흐른 지금, 불법체포, 불법구속에 항거한 청년들이 ‘폭력시위’ 죄목으로 ‘전원 구속’이라 한다. 부정선거를 밝히려고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은 누명을 쓰고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다. 그 청년들의 미래를,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힘겹게 독재와 싸워 얻은 ‘87년 체제’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부정선거’가 ‘87년 체제’의 국민주권 원리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2025-02-10

밥 짓는 연기 사라진 한국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귀한 손님이 오면 커다란 밥그릇 가득 고봉밥을 담아 고깃국과 함께 내어주는 게 가장 융숭한 대접이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30~40년 전 이야기다. 20세기 한국인의 주식은 누가 뭐라 해도 ‘쌀’이고, 쌀로 만든 ‘밥’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그에 따라 식습관과 선호하는 먹을거리 역시 달라졌다. MZ세대는 아침밥을 포기하고, 간단한 시리얼이나 과일을 먹으며 등교나 출근을 준비한다. 독거세대가 늘어나며 아예 아침을 거르는 이들도 부지기수. 당연지사 쌀의 소비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를 보여주는 통계가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나왔다. 이 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올해 식량용 쌀 소비량은 273만t으로 예측된다. 쌀 소비는 갈수록 줄어들 게 명약관화해 보인다. 내년에는 269만t으로 떨어지고, 2030년엔 253만t, 2035년이 되면 233만t으로 감소될 것이라는 게 연구원의 전망. 해마다 큰 낙폭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밥 짓고, 먹는 풍경도 바뀌게 만들었다. ‘20세기 고향 풍경’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 있었다.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철수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어머니의 가마솥밥을 대신하는 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즉석밥’이다. 즉석밥의 시장 규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국민 1인당 평균 식량용 쌀 소비량은 현재 55.8㎏. 30년 전인 1994년 소비량 120.5㎏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년 이상 세대들에겐 밥 짓는 연기조차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10

퍼즐

우리는 저마다의 조각을 손에 쥐고 살아간다. 어떤 조각은 금세 자리를 찾아가지만 어떤 조각은 어디에 끼워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기도 한다. 때때로 맞지 않는 조각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하다가 뒤엉켜 버리는 순간도 있다. 결국 모든 조각은 저마다의 자리가 있음을 자각한다. 어린 시절 색색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가 하나둘 맞춰지며 선명한 그림이 되어가는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퍼즐 한 조각을 들고 침침해져 가는 눈으로 끼워넣고 있을 때가 많다. 어린 시절 단순한 놀이처럼 여겼던 퍼즐이 이제는 삶의 은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조각이 흩어진 채 시작되지만 차근차근 맞춰 가다 보면 선명한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 삶의 조각들은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순조로웠고 계획했던 일들이 잘 진행되어 조각이 맞아떨어지는 쾌감을 느낀 순간들도 있었지만 애써 끼워 넣은 조각이 어긋나고 방향을 잘못 잡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도 있었다. 내 삶의 조각은 언제나 하나가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맡아야 할 가장의 자리에 엄마가 있었고 집 안의 엄마 자리는 늘 부재중이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생각’이라는 시에 나오는 시구처럼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난 늘 엄마를 기다리는 자리에서 하루를 보냈다. 하교하는 길에 소낙비가 내려도 내게 우산을 가져다주는 보호자는 없었다. 내 삶의 퍼즐은 완성되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 빈 공간이 못 견디게 신경 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 조각 하나가 없는 모습 그대로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었고, 때로는 빠진 조각 하나의 이야기로 의미가 짙어지기도 했다. 빠진 조각을 찾기 위해 나의 여정은 더 단단해졌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라진 채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조각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나는 인내하는 법을 배웠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때로는 엉뚱한 곳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 앞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단순히 조각 하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을 찾기 위해 걸어온 모든 과정 속에서 자신이 성장해 갔던 것은 아닐까. 김경아 작가 누군가에 기대어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미완의 조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그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 가기 위해 뾰족한 부분은 깎아내고, 네모진 부분은 둥글게 다듬으며 점점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했다. 어쩌면 퍼즐은 처음부터 미완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든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져야만 그림이 완성된다고 믿지만 사실 인생이라는 퍼즐에는 처음부터 빈 공간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빈틈이 있다고 해서 그 그림이 불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여백이 우리를 더 성장하게 만들고 새로운 조각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을.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조각이 다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의미 있는 한 조각을 발견하는가일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퍼즐판을 바라본다. 몇몇 조각은 이미 제자리를 찾아가 또렷한 그림을 이루었지만 아직 맞춰지지 않은 빈 공간들을 끝까지 다 맞출 수 있을까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빈자리조차 하나의 계단임을 안다. 언젠가 알맞은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설령 몇 개의 조각이 끝내 남더라도 그것이 곧 나만의 그림으로 남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조용히 다음 조각을 맞출 순간을 기다린다. /김경아 작가

2025-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