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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회과 부도 5-6

강길수 수필가 업무차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갔다. 1주 정도 낮에 네댓 시간씩 머물며 해야 할 일이다. 학교 당국의 허락을 얻어 한 교실을 임시 사무실로 쓰게 되었다. 첫날, 교실 창가에 ‘사회과 부도 5-6’이라 고 제목이 적힌 빨간색 커버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교육부 검정(2022년 8월 31일)을 마친 ‘비상교육’이 발간한 책이다. 평소 지도에 관심이 있던 터라 책을 열어보았다. 뒤표지에는 책 주인의 학년과 이름이 적혀 있고, 내부는 깨끗했다. 세계지도, 우리나라 지도가 비교적 상세하게 잘 나와 있다. 뒷부분에는 사회와 관련된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실렸다. 초등학교 5, 6학년의 책인데도 성인이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70쪽부터 91쪽까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요약, 소개하고 있었다. 내용을 어떻게 서술했을까. 호기심에 살펴보았다. 그 결과, 주목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나타났다. 첫째, 삼국 건국 기술을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 순으로 했다는 점이다. 건국연대 순은 신라(BC57), 고구려(BC37) 백제(BC17), 가야(AD42)이다. 왜일까. 둘째, ‘일제의 침략과 광복을 위한 노력’(2쪽)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점은 ‘조선의 개항과 근대 개혁운동’(1쪽)이나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6·25 전쟁’(1쪽)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일제 침략, 광복 노력에는 ‘대한제국과 독립협회’, ‘국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 ‘광복을 위한 노력’이 작은 제목으로 들어있다. 셋째,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6·25 전쟁’이 과소 평가되고 있다, 남북한 각각 정부수립의 배경이 되는 38선 분단과 소련군의 북한 진주, 미군의 남한 진주, 군정, 건국 같은 역사가 없다. 또, 6·25 전쟁이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군의 불법 남침이란 사실도 없다. 넷째,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서 6·25 전쟁 직후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현실 기술이 없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며 새마을 운동으로 국민을 계몽하고, 경제발전을 이끈 탁월한 지도자의 역할, 산업화 세대의 피땀 어린 희생, 경제개발 5개년계획 추진 같은 서술이 없다. 경제발전이 저절로 된 것 같이 착각하게 한다. 왜 경제발전에 반쪽, 경제성장 문제점 해결 시민운동에 같은 반쪽을 배분했을까. 다섯째,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에는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 신군부를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시대를 학생, 산업일꾼으로 살아온 필자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때가 서민 살기에는 민주화 이후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귀족노조도 없고, 정규직·비정규직 차별도 안 심했으며, 시민들 삶의 불안도 훨씬 덜했으니까. 이 사회과 부도는 왜 백제를 1순위로 잡았을까. 또, 일제 침략에 맞서는 활동 서술에 홍범도와 김좌진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대첩만 크게 다루었을까. 아동도서에 어떤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이 스민 게 아닌지 모르겠다. 솔직한 독후감은, 우리 역사가 자랑스럽다는 마음이 안 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역사책이 나라와 민족의 자긍심과 희망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찌 될까….

2025-02-03

불안하십니까

불안하다. 항상 불안하다. 나는 왜 불안한가.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나의 불안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 번째, 나의 불안은 늘 무언가 해야 한다는 데서 온다. 매주, 격주, 매월 신문에 글을 쓰는 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 원고를 하나 완성하고 나면 다음 마감까지 여유가 생기지만 시한부다. 항상 무언가 써야 한다는 것, 쓰지 않아도 될 때조차 써야만 한다는 강박. 그것이 내 불안의 제1근원이다. 논문을 쓰면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 시를 쓰면 논문을 써야 한다는 초조함이 나를 갉아먹는다. 두 번째, 나의 불안은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무언가 되어야만 하지만 무언가가 되는 것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변변히 자리를 잡지 못한 계약직 비전임 강사 생활은 세월이 쌓일수록 불안을 키운다. ‘이대로 실패한 루저가 되어 한번 뿐인 생을 망칠지 몰라’, ‘지금껏 잘못 걸어왔고 계속 가봤자 이 길 끝엔 아무것도 없을 거야’ 따위 내 생에 대한 거시적 불안부터 ‘방학 때는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데 이번 달 대출이자는 어떻게 갚지’, ‘이번 학기를 마치면 계약이 종료되는데 가을부터 당장 뭘 해서 먹고 살지’ 같은 생계 관련 미시적 불안까지 나를 감싼다. 만성화된 불안은 건강, 대인관계, 연애와 결혼 등에도 전이되어 불안의 합병증을 일으키고 있다. 홍국, 오메가3, 밀크시슬, 프로폴리스, 비타민, 양배추진액, 홍삼, 차전자피 등등을 챙겨먹는 건 과도한 건강염려 탓이다. 불안에 잠식당하면서 사람을 대할 때도 활달함과 당당함을 잃어가는 듯하다.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전화를 기피하는 이른바 전화공포증이 나한테도 있는 모양이다. 카카오톡이나 SNS 메신저 등 타인과 대화창이 열리는 것 자체를 꺼린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수백 개다. 지금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무언가 되어야만 하지만 무언가가 되는 것에 계속 실패하고 있는 내 처지에 스스로 위축되어 연애와 결혼을 아예 포기했다. 그러니까 그 포기가 또 불안하다. 이렇게 혼자 살아도 될까. 이대로 늙어 죽으면 누가 내 장례를 치러줄까. 내가 자주 꾸는 꿈이 있다. 꿈에서 나는 종종 공연이 바로 내일인데 아직 대본을 하나도 외우지 못한 배우이거나 무대 연습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연출자가 된다. 그 꿈을 꾸는 날엔 꿈속에서도 식은땀이 흐른다. 어제는 그 꿈이 살짝 다른 형태로 변주되어서, 시합이 내일인데 라이트급 한계 체중 70kg으로 감량을 하지 못한 격투기 선수가 되어 있었다. 라이트급으로 감량을 하려면 20kg 이상을 하루만에 빼야 하는데, 패딩을 입고 주섬주섬 줄넘기를 집어 들면서 너무 불안했다. 그 불안의 감각은 꿈에서 깨고 나서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으로부터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들은 게 작년 12월 19일이다. 그날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신 새해 1월 14일까지 거의 한 달 동안 언제 전화가 울릴까 노심초사하며 불안해했다. 장례를 마치고 한 달간 붙잡혀 있던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도쿄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 여행이었다. 우에노 동물원과 도쿄 근교 시골마을인 하코네를 걸으면서 마음이 편했다. 불빛 하나 없는 산 중턱의 료칸에서 쏟아질 듯 글썽거리는 별들을 바라봤다. 아무 근심 없이 밤하늘의 별을 본 게 얼마만인가. 비록 5박6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불안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열차 시간에 늦을까봐, 점찍어둔 음식점이 문 닫았을까봐 불안했는데 그런 불안은 사실 설렘에 가깝다. 그렇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감량 실패한 격투기 선수의 꿈을 꿨다. 다시 생각해보자. 도쿄에서 하코네로 가는 로망스카 특급열차를 타러 가던 아침과 요코하마의 이름난 노포 키후네 스시로 가던 저녁의 불안 혹은 설렘을. 그래!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불안을 설렘으로 바꾸면 된다. 불안을 불안으로 느끼는 대신 떨림으로 감각하자. 아직 쓰이지 않은 아름다운 문장들이 내 안에 꿈틀대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혼자 늙어 죽을 게 불안하면 사랑을 하자. 사랑을 하려면 우선 전화를 잘 받고 카톡을 확인하자.

2025-02-03

사랑의 형태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언스플래쉬 이번 설엔 본가에 내려 갔다 왔다. 내 본가는 전라남도 목포에서 11km 떨어진 영암으로, 현대삼호중공업 옆에 위치한 작은 사원 아파트다. 서울 용산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두시간 반, 그리고 차를 타고 삼십여분 더 들어가야 하는 거리.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자취방에서 출발한다면 총 세시간은 너끈히 걸리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쉽게 먹어지지 않는 터라 자주 내려 가지 않지만, 이번 명절엔 꼭 내려오라는 부모님의 안부 전화에 나와 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집을 내려가게 되었다. 2년여만에 찾은 집, 집 또한 나이를 먹는 탓인지 세월의 흔적이 집 곳곳에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깔끔한 성격의 어머니가 잘 닦고 관리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욕실 문이 낡았다던가 하얗던 안방 벽지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는 등의 흔적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젠 부모님의 드레스룸으로 변한, 내가 쓰던 방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집이 얼마나 포근하고 안락한 지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어린 날에 새긴 나만 아는 낙서 자국들이라던가, 베란다 벽면에 붙어 그대로 시멘트처럼 굳어버린 껌 등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그 순간 타지에서 지니고 있던 모든 긴장감들, 가슴 한 가운데에 얹혀 있던 책임감과 답답했던 모든 것들이 몸 아래로 묵직하게 내려갔다. 동시에 잔뜩 힘을 주고 있던 몸의 불필요한 힘들을 내보낼 수 있게 되었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떠한 소음을 내지 않으면,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주 조용한 시골. 새 소리와 닭 소리와 창문을 열면 간간히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몸을 맡기고 정말 오랜 만에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정리정돈이 깔끔한 탓에 이 년 만에 찾은 집이지만 필요한 물건을 한 번에 잘 찾을 수 있고, 방마다 좋은 냄새가 나며, 풍부한 식재료, 건강하게 만들어 먹는 집밥, 오랜만에 얼굴을 보며 나누는 대화 등.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요새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퍽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작은 거실에 둘러 앉은 우리 다섯 명의 식구를 보며 다시금,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서로 상처를 받는지, 어떤 특정 말투와 뉘앙스에 불편함을 느끼는 지에 대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부터 함께해온 가족이기에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쉽게 느끼지만 그만큼 연약하고 불안정하고 완전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종종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입힌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섭을 하고, 관여를 하고, 어느 때엔 또는 지나치게 방관한다. 부모님은 날이 갈수록 세월의 흔적이 얼굴과 몸에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여전하시고 나와 동생들은 계속해서 어리기만 한다. 부모님은 우리가 자식으로서의 기대감과 의무를 늘 생각하시며 바라고, 나와 동생들은 늘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 있거나 또는 무의미한 반항을 계속 한다. 집에 머무른지 삼일 차가 되면 화기애애하던 우리의 관계는 또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의뭉스러운 사랑의 형태.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언행과 불필요한 행동 등은 어딘가 삐뚤삐둘한 날이 잔뜩 서서 서로를 찌르기 바쁘다. 다시금 처음부터 옳은 방향으로 되돌리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대화의 내용으로 결국 또 서로에게 무안함을 주기 위해 불같은 싸움이 던져지지만 민망하게도 다시금 쉽게 식고 만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값비싸고 좋은 음식 앞에선 다시 서로의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고, 좋은 부위의 고기를 내어주며, 집에 있는 신선한 식재료를 내 가방에 넣어주고, 간간히 나의 안녕과 건강을 빌어주는 부모님의 말에는 또다시 진실된 사랑을 느낀다. 어딘가 서툴고 이상하고 요란하지만 어찌됐든 존재하는 사랑의 형태. 너무 어설퍼서 가까이에 갈 때마다 서로의 가시로 마음을 쿡 쿡 찔러대고 나는 한 번 찔린 가시에 또다시 지나친 엄살을 부리지만 그래도, 이 순간이 있어 타지에서의 삶의 원동력이 생기고, 다시금 출근을 하며, 내 생활과 나를 보살 필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무엇이든 늦은 때는 없다. 일도, 꿈도, 사랑도 지금 내가 원하는 때가 있다면 결코 늦은 때란 없다. 그러니 이 의아한 사랑의 형태 속에서 더는 의문스러워한다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가족의 사랑, 부모님의 어설픈 사랑을 인정하며 솔직해질수록 내 삶의 원동력은 더욱 선명해지고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금 용산에서 서울 자취방으로 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수시로 변하는 창문에서 쓸쓸히 웃고 있는 나의 표정의 언뜻 비쳤다. 올해도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

2025-02-03

풍금

소리는 잠자는 풍경을 깨운다. 옛 노래를 들으면 세포들이 서서히 돌기를 세운다. 그것은 나를 추억이라는 간이역으로 데려간다. 과거와 오늘의 내가 만나는 접점, 그 플랫폼에 내리면 유년 시절에서 출발한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 풍금이 있네.”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폐교가 된 모교를 정리하다가 풍금 하나를 발견했단다. 풍금? 순간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음표들이 술렁거렸다. 잠시 통화하는 동안 마음은 벌써 신발을 신고 있었다, 정문을 지나 운동장에 들어섰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사라진 텅 빈 운동장에는 손질 안 된 잡풀들이 무성했다. 이순신 장군의 긴 칼은 반 토막이 나 있고 비바람에 살이 튼 폐타이어는 모래 군데군데 힘없이 박혀 있다. 그네는 무료함에 지쳤는지 저 혼자 바람에 흔들린다. 녹슬고 망가진 폐허 속에서도 담 모퉁이를 따라 들국화는 방긋 피어 나를 반겼다. 문짝이 사라진 교실 입구에는 2학년 2반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미처 챙겨가지 못한 짝 잃은 실내화, 아이들을 긴장 시켰을 회초리와 교재, 검정이 내려앉은 부러진 분필이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산산조각이 나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유리와 잡다한 것들이 흩어져 교실은 을씨년스러웠다. 다 떠나고 홀로 남아 무섭다는 듯 풍금이 한 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풍금에는 켜켜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이들이 붙어 이 반 저 반으로 옮겨 다니던 자신의 인기를 잊은 듯 조용하다. 오랜 시간 자신의 이름은 물론 목소리조차 잊었을 그것. 풍금의 뚜껑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열었다. 두려움을 토해내듯 뿌연 울음을 쏟아냈다. 손 때 묻은 건반 위에 내 손을 포갰다. 검은 건반, 하얀 건반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자 잠자던 음표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음표들은 도돌이표를 돌아 어린 시절로 날아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총각 선생님은 인기가 좋았다. 축구도 잘 하고 여러 과목도 잘 가르쳤다. 그런데 음악 시간이면 나에게 건반을 맡겼다. 선생님은 풍금을 켜지는 못했던 것이다. 풍금 의자에 앉으면 내가 선생님이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다. 발판을 있는 힘껏 꾹꾹 밟았다. 선율이 교실에 가득 퍼지면서 70명의 아이들은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반주가 멈추면 아이들의 노래 소리도 멈추고 반주가 시작되면 노래 소리는 풍금의 선율을 타고 느티나무를 돌아 담장을 넘었다. 나는 음악 시간마다 탈피를 끝낸 나비처럼 날개가 돋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성악을 전공하며 이곳저곳에 초청을 받아 노래를 불렀다. 졸업 후에는 지역합창단원으로도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숨표에서 숨을 고르고 쉼표에서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탓일까. 가을비가 내리던 아침,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큰 돌이 박힌 듯 목이 갑갑했다. 일주일을 버티다 병원에 갔다. “노래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경아 작가 성대를 잘라 냈다. 목소리가 갇히자 마음의 문도 조금씩 닫혀갔다. 모든 것들이 그늘져 보였다. 뻐꾸기 울고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음침하게 들렸다. 합창단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돌아서는 나를 배웅 하는 건 커튼이 내려 온 텅 빈 무대뿐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공연장을 찾았다. 구석진 객석에 숨어 앉았다. 막이 열리고 합창단원들은 앞줄부터 무대를 채웠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첫 곡이 울렸다. 동료들의 목소리가 다 모인 자리에 내 목소리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노래책을 끄집어냈다. 성냥을 그었다. 그 후 오래도록 음악과는 결별했다. 풍금을 집으로 옮겼다. 반질반질 닦았다. 건반 하나하나에 잠자는 소리를 깨우고 싶었다. 다리를 모으고 발판 위에 발을 올렸다. 페달을 밟으며 건반을 눌렀다. 소리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 한 곡을 불렀다. 폐허 속에서도 꽃이 피듯 내 마음도 환해졌다. 풍금은 내가 잃어버린 소리를 15년 만에 찾게 해 주었다. 집안 가득 내 마음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김경아 작가

2025-02-03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

제가 사는 숙소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고마바 공원 내에는 일본근대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일본 근대문학과 관련한 17만 점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데요. 한국근대문학이 전공인 저는 이곳을 틈나는 대로 방문하고는 합니다. 일본근대문학관에서는 방대한 소장 자료를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기획 전시도 이루어지고, 문학전문가들이나 현역 인기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강연회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2024년 11월 30일부터 2025년 2월 8일에 걸쳐서는 ‘미시마 유키오 탄생 100년제’가 개최되는데요. 너무나도 문제적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이 전시는 참으로 풍성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전시는 크게 ‘三島愛(미시마에 대한 사랑)’, ‘書物愛(책에 대한 사랑)’, ‘日本愛(일본에 대한 사랑)’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三島愛’에서는 미시마가 지인들과 나눴던 편지, 서명이 들어간 헌정본, 명함이나 엽서 등을, ‘書物愛’에서는 아름다운 책에 대한 미시마의 관심과 그 결과로 탄생한 미시마 유키오의 멋진 책들을, ‘日本愛’에서는 미시마의 일본 사랑을 드러낸 자료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온 P대학의 K교수, K대학의 S교수와 일본근대문학관을 방문한 2025년 1월 13일에는, 전시와 함께 미시마 유키오 생의 마지막 6년 동안 너무나도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시인 다카하시 무쓰로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문학관에서 다른 기획전시를 본 적이 있었지만, 다른 전시와는 달리 ‘미시마 유키오 탄생 100년제’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문학관이 꽉 찬 느낌을 줄 정도였는데요. 한국인에게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오에 겐자부로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익숙하지만, 일본에 머물면서 느끼는 실감으로는 보통의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미시마 유키오라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얼마 전 이즈반도 최남단의 시모다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갔을 때는, 미시마 유키오가 사랑했던 마들렌을 전면에 내세운 가게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작품은 물론이고, 충격적인 삶의 방식으로 정신의 광기를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사실 미시마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습니다. 1925년 도쿄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황족과 귀족의 교육기관인 학습원을 수석 졸업하여 천황으로부터 직접 시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1947년에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엘리트 관료들만 간다는 대장성에서 9개월간 근무한 후에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요, 그는 숱한 명작을 발표하며, 일본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뜨거운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일본의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미시마 유키오가 될 거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랬던 미시마 유키오가 행동의 광기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1970년 11월 25일, 할복이라는 엽기적인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 일을 말하는데요. 그는 자신이 조직한 사병단체 ‘방패회’ 회원 네 명과 자위대 총감실을 찾아가 총감을 인질로 잡고, 자위대원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킵니다. 그리고는 ‘절대 천황제’의 부활을 위해 자위대가 궐기할 것을 주장한 후에, 자위대 총감실에서 자살한 겁니다. 미시마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천황폐하 만세”였다고 하는데요. 이 충격적인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한국인은 문학평론가 김윤식(1936-2018)이었습니다. 그는 도쿄대 연구원으로 일본에 도착한 3일 후에 도쿄대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TV 중계방송으로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고 하는데요.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김윤식은 다음 해에 곧바로 미시마의 죽음을 다룬 ‘정치적 죽음과 문학적 죽음’이라는 글을 ‘현대문학’(1971.5)에 투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이 글에서 김윤식은 미시마의 죽음이 “20여 년에 걸친 미국 점령 의식의 정신사적 극복의 의미”를 지닌다고 규정하였는데요. 이러한 ‘미시마식의 극복’이 패전 이후 경제 대국으로 새롭게 부상한 일본의 달라진 국제적 위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미시마는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정체성을 잃고 “무기적(無機的)이고 공허하며, 중성적인 중간색의 나라”(‘지키지 못한 약속’(산케이신문, 1970.7.7.)로 변질되어 간다고 판단한 거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막는 방법으로 미시마는 ‘문화방위론’(중앙공론, 1968.7)을 비롯한 여러 글이나 강연에서 ‘절대 천황제의 부활’을 주장했는데요. 미시마의 논의가 무엇보다도 경악스러운 것은 천황에게 ‘국화(문화)’는 물론이고, ‘칼(무력)’까지 쥐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미시마의 주장대로라면 자위대도 천황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건데요. ‘천황이 직접 군대를 총괄하는 일본’이란, ‘황군(皇軍)’의 군홧발 아래서 피눈물을 흘렸던 우리에게는 상상만으로도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미시마 유키오 탄생 100년제’에 참석한 일본인들로 북적이는 일본근대문학관을 둘러보는 시간은, 과거의 일본과 2025년의 일본이 놓인 거리(차이)를 강박적으로 재어 보는 일종의 시험이기도 했습니다.

2025-02-03

진실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김진국 고문 아직도 진실이 살아 있을까.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가 어려운 시대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가 2017년에 쓴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탈진실)라는 책은 한국에서까지 큰 공감을 일으켰다. 그때 이미 미국에서도, 진실이 위기에 처했다. 한국도 그렇다. 매킨타이어는 “과거에도 진실 개념 자체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는 존재”했지만, “현실을 정치적 상황에 끼워 맞추기 위해 그런 위기를 대놓고 전략처럼 이용하는 경우는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진실 문제가 심각한 진짜 이유는…정치적 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매커니즘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렵고, 복잡한 주장이 아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치꾼은 허위사실을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지지자들은 그것을 믿는 상황이 고착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는 진실을 찾기보다 우리 편이 이기는 게 관심이다. 정말 진실을 찾아내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유리한 ‘거짓’(대안적 진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주장한다. 이런 ‘자기기만과 망상’에 빠진 사회에서는 진영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보수건 진보건, 모든 주장이 진실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라도 자기 진영과 다른 말을 하는 순간 ‘반대편’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린다. 모두 홍길동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믿어버린다. 조국 사태가 그랬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대안의 진실’ 속에 살았다. ‘나’라는 인간의 본질이 왜 조국을 기준으로 평가돼야 하나. 조국 수호(혹은 타도)가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역사적 사명이라도 된다는 건가. 정말 고약한 세상이다. 요즘 기준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친윤’ 아니면 ‘반윤’이다. 윤 대통령이 언제부터 보수의 중심이었나.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기준이다. 그에게 유리한 말을 해야 진보고, 개혁이다. 윤 대통령은 관저를 찾은 손님들에게 “요즘 신문과 방송은 너무 편향돼 있다.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관저 주변에서 시위하는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통 언론 대신 유튜브에 빠져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말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확신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그의 말에서도 유튜브 냄새가 난다. 개인 미디어가 전통 미디어를 뒤집기 시작한 것은 팟캐스트 ‘나꼼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이던 2007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조롱으로 반이명박 세력의 배설 욕구를 만족시켰다. 이제 진보 진영을 쥐고 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민주당 총선 예비후보들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가 큰절을 했다. 보수 유튜버들의 영향력도 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인데도 개인 유튜버만 골라 인터뷰했다. 김건희 여사가 유튜버에게 그렇게 당했는데도, 윤 대통령도 유튜브만 본다. 부정선거에 대해서도 정부의 공식 보고보다 극단적인 일부 유튜버의 주장을 더 믿는다. 기자 활동을 시작할 때 복잡한 문제는 돈의 흐름을 보라는 말을 들었다. 복잡한 민·형사 사건뿐만 아니다. 일본이나 한국의 과거 복잡한 파벌정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도 돈이었다. 탄핵 국면에서 한 유튜버는 ‘슈퍼챗’으로 하루 만에 3천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자극적인 말을 할수록 돈이 쏟아진다. 서부지원 난동 때도 유튜버가 앞장서서 돌격했다. 갈등이 심하고, 민주주의가 무너질수록 흥분한 구독자가 돈을 쏜다. 진영마다 다른 ‘대안의 세상’에 산다. 민주주의가 위기다. 답이 없다. 유튜버는 돈을 벌려고 떠들어도, 유권자는 냉정해야 한다. 대안이 아니라 진짜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알 일이다. 이재명 대표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윤 대통령이 재판받는다고 상상해 보라. ‘춘풍추상(春風秋霜)’과 ‘내로남불’은 상대편이 아니라 나를 경계하는 거울로 써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02

지역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장치, 주택용 소방시설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주택용 소방시설은 화재 발생 시 초기 진압과 대피를 돕는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말한다. 이는 화재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각 가정에 필수로 설치해야 한다. 최근 경북 지역에서는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로 인한 화재 예방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23년 5월 경상북도의 한 농촌 주택에서 단독경보형 감지기가 새벽 시간대 화재를 감지해 거주자들이 경보음을 듣고 신속히 대피했다. 이로 인해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초기 진화로 재산 피해도 최소화했다. 같은 해 김천시의 한 주택에서도 단독경보형 감지기의 경보음으로 이웃 주민이 화재를 발견하여 초기 진화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2024 소방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경북 지역의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율은 2020년 52.7%에서 2023년 68.9%로 크게 상승했다. 같은 기간 화재 발생 건수는 약 7.3% 감소했으며,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전국적으로 15% 줄어들었다. 주택에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한 가정은 설치하지 않은 가정보다 화재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용 소방시설은 설치가 간편하고 구매가 쉽다. 주요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다양한 가격대의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판매하고 있다. 일부 온라인몰에서는 ‘선물하기’ 기능도 제공하는 곳이 있다. 이를 활용하면 가족이나 지인에게 직접 안전을 선물할 수 있다. 단독경보형 감지기의 경우 구획된 실마다(거실, 부엌 등) 설치하고, 소화기는 세대별, 층별 1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 주택용 소방시설 보급의 확산은 화재 예방과 피해 최소화에 효과적인 대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이고 재산 피해를 예방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화재 예방은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주택용 소방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개별 가정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지역사회 전체의 안전망을 강화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안전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기에 이번 겨울이 끝나기 전 주택용 소방시설이 없다면 설치하자. 또한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 안전을 선물하며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

2025-02-02

조선시대 시험 합격 발표, 환희와 탄식이 교차한 그 날!

1846년(헌종 12) 2월 12일, 이틀 전에 치른 회시(會試)의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돈화문 밖은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서찬규도 그들 사이에 있었지만 몸이 불편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족형, 덕우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때, 급히 전갈이 도착했는데 덕우가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다른 이름은 없었으므로 서찬규는 족형과 자신이 낙방했다고 생각하며 허탈한 마음으로 마루에 나왔다. 조금 뒤에 서찬규의 자형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그의 손을 붙잡고는 합격 소식을 뒤늦게 전해주었다. 순간 서찬규는 꿈을 꾸는 마냥 어리둥절한 채로 잠시 굳어버렸다. 그러다 곁에 있는 족형을 보았고,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말끝을 삼켰다. 이 내용은 서찬규(徐贊奎·182 5~1905)의 일기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한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서찬규의 일기는 필사본 형태로 17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작성 기간은 21세 때인 1845(헌종 11)년부터 37세 때인 1861년(철종 12년)까지이다. 그는 대구 달성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양(景襄), 호는 임재(臨齋)이다. 그래서 서찬규의 일기를 ‘임재일기’라 부른다. 1846년 2월 21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했고, 이후 문과(文科)에 부단히 응시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벼슬에 뜻을 접고 향촌에 은거하면서 수동재(守東齋)를 지어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노력했다. 1883년(고종 20)에 경상도관찰사의 추천을 받아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서찬규의 일기. /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선인의 일상생활, 일기(https : //diary.ugyo.net/)’ 서찬규의 과거 응시는 일기가 시작되는 1845년부터 확인된다. 당시 그의 나이 20세였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이 시험은 대구부(大邱府)에서 시행된 정시(庭試) 문과의 초시였다. 원래 정시 문과는 궁전의 뜰[殿庭]이나 혹은 문묘(文廟)에서 왕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하는 한 차례의 시험으로 최종 급제자를 선발했지만, 영조대 이후부터는 1차 시험 격인 초시(初試)를 도입해 서울에서 시행했고 헌종대 부터는 초시를 지방까지 확대 설치해 시행했다. 그래서 서찬규가 이 시험을 대구에서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러나 서찬규는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아직 젊었고 이제 시작이었으며 비정기적으로 마련된 문과 1차 시험이었는데다가 시험장소도 자기가 사는 대구였기에 참가만으도로 도전과 경험의 측면에서 의미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서찬규는 낙방 후 불과 며칠 만에 새로운 장소를 찾아 과거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두 번째로 도전한 시험은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생원진사시였는데, 1846년(丙午年)에 회시(會試)를 치르는 식년시(式年試)였다. 그 1단계 시험인 초시를 전년도인 1845년 8월 19일과 21일에 마침 대구부에서 시행했다. 서찬규는 19일 있었던 진사시 초시와 21일 있었던 생원시 초시에 모두 응시했으나 생원시에만 합격했다. 합격 발표가 있었던 8월 25일, 서찬규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과방(科榜)이 발표되었다. 함께 공부했던 8명 중 6명이 모두 종장(終場)[생원시 초시]에 합격했다. 나와 족형 명재씨, 족인 덕우, 구정로씨, 구상천씨, 구사로씨가 함께 응시해 합격했다. 우리 고을에서는 모두 18명이 합격하였고, 그중 우리 집안에서만 5명이었다. 오후에는 덕우가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전하러 떠나는 길을 전송하였다. 저녁이 되자 방노(榜奴)가 와서 시지(試紙)를 가져다주었다. 방성(榜聲)이 거리와 마을에 울려 퍼지니, 양친께서도 크게 기뻐하셨다.” 족형과 덕우도 1단계 시험을 합격했으므로, 서찬규는 이들과 함께 이듬해 2월 10일 서울에서 시행되는 최종 시험 회시(會試)를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마침내 시험 날, 서찬규는 족형, 덕우와 함께 시험장에 들어가 정신없이 답안지를 작성했다. 답안지를 제출하고 먼저 시험장을 빠져나와 밖에서 시험장의 풍경을 바라볼 때 그는 갖은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1846년 2월 12일, 서찬규는 회시 합격 소식을 듣고도 기뻐할 수 없었다. 함께 공부했던 족형이 낙방했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걸었지만 결과가 갈린 현실 앞에서 그는 말을 잃었다. 환희와 탄식이 교차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기쁨이 상대의 아픔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 국학기반본부장 이 장면은 매년 연말연초마다 반복되는 현대의 입시 결과 발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합격자는 환호하고 낙방자는 아쉬움을 삼키지만 시험 결과는 끝이 아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길이 있듯이, 시험 결과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합격은 앞으로 다가올 도전의 출발점이며 낙방은 더 단단해질 기회를 제공한다. 시험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승부는 그 결과 이후의 시간에서 시작된다. 삶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며 환희와 탄식의 순간은 앞으로도 여러 번 찾아온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 힘이 된다. 매년 반복되는 입시와 결과의 풍경 속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로 나타나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각자가 얻은 경험과 배움이다. 서찬규의 시대에도, 오늘날에도 길은 끝나지 않는다.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나아갈 길을 찾는 태도가 필요하다. 결과는 지나가지만 앞으로의 길은 우리의 선택과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 국학기반본부장 최은주 경북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국학기반본부장을 맡고 있다.

2025-02-02

역사교육 어쩔 것인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년 1월이 휙 하는 소리 내며 지나간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닐진대 서둘러 사라지는 시간을 생각하노라면 인생살이가 매우 덧없어 보인다. 영생불사하는 존재도 아닌 인간군상이 만들어내는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의 근저에 자리하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독성을 새삼 반추한다. 비상계엄으로 초래된 내란 사태가 어언 두 달을 넘어가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거의 모든 것에 손과 마음을 놓고 사태 추이를 따라가는 자신을 보면서 무력감과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나의 빈약한 상상력을 총동원해도 계엄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식민지의 빈곤과 무지의 상황을 이겨내고 경제 번영과 민주 제도를 안착시킨 최초의 나라. 문학과 예술로 세계를 경탄하게 하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라니?!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은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했을까. 민주주의는 싫든 좋든 다수결이 지배하는 정치구조에 기초한다. 문제가 생겨나면 총칼이나 공권력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최고 행정 권력을 틀어쥔 자가 그릇된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국회를 무력화하려 했다는 사실은 묵과할 수 없는 범죄 행위다. 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서부지법에 대통령을 지지하는 폭도들이 난입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국민 저항권’이란 미명으로 저질러진 폭도들의 만행은 평균적인 한국인의 의식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것이었다. 피비린내 진동했던 1980년 5월 광주에서 전두환의 계엄군에 목숨 걸고 저항했던 광주 시민들은 단 하나의 방화나 난동도 저지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서부지법에 난입한 다수의 폭도가 2∼30대 ‘루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 더 주목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포기하다시피 한 역사교육이다. 수학능력 시험이 끝나면 수험생 전원이 까마득한 망각의 강으로 내팽개치는 역사교육. 공무원 시험을 볼 때나 다시 달달 외우는 역사교육이 문제다. 국가의 역사에는 숨기고 싶은 것과 드러내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빛과 그림자처럼, 인간의 장단점처럼, 긍정과 부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그러하되 우리는 긍정과 자긍심, 자랑과 자부로 넘치는 역사보다 부정과 열패감, 우울과 패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마련이다. 치욕적인 임진왜란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기에 굴욕적인 병자호란을 당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60년 남짓한 시간대에 물질적인 풍요와 제도적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놓치고 빼먹고 눈감아버린 것 또한 부지기수다. 물질 만능과 승자독식, 지역주의와 학벌 중심주의, 이기적인 가족주의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공동체 의식과 정신의 숨통을 조여온 것이다. 이런 상황의 근저에 자리하는 것이 입시 위주의 역사교육과 불철저한 역사의식이다. 잊어서는 안 되는 패배한 역사, 치욕적인 사건과 인물, 처절한 피의 살육과 정권 장악 같은 역사의 아수라판을 생생하게 교육해야 한다. 그리하여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로 무장한 자들이 다시는 득세하지 못하도록 철제관에 그자들을 묻고 ‘쾅쾅’ 대못질을 해야 할 때다.

2025-02-02

딥시크 쇼크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경쟁은 군사, 경제, 외교, 기술 등 다양한 분야애서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그 영향은 전 세계적이다. 특히 우리는 지정학적으로나 경제 특성상 심각한 영향을 받는 입장에 놓인 나라다. 설 연휴 기간인 지난주 미국 증시는 딥시크 충격으로 크게 혼란에 빠졌다. 그간 오픈 AI와 챗GPT를 중심으로 한 생성형 인공지능(AI) 투자와 이를 뒷받침 해왔던 엔비디아의 주가가 대폭락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하루만에 시가총액 6000억 달러(약 840조원)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 것.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미국 오픈 AI의 대표 모델인 챗GPT와 맞먹는 AI를 저비용으로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특히 딥시크는 미국이 AI 개발에 투자한 비용의 5% 정도로 챗GPT 성능에 맞먹는 AI 모델을 출시해 글로벌 기술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중국의 AI 기술을 견제해 왔던 미국으로서는 크게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진 셈이다. 중국의 기술 수준이 미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트럼프 정부가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간 규제하지 않았던 저사양 AI용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것이다. 딥시크 쇼크는 반도체 수출 비중이 큰 한국에도 충격이다. 미중 갈등의 한 가운데 서 있는데다 AI 기술이 열세에 있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전쟁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의 길을 택해야 할까. 그래도 가장 큰 과제는 혁신 기술력의 확보다. 가뜩이나 기초과학이 취약한 우리나라인데, 우수 인재를 의대로만 보내는 한국적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지금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02

현장 개선 부가업무인가?

엄주선 포스텍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개선활동은 조직이나 개인이 기존 작업이나 프로세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활동을 말한다. 주로 품질 향상, 효율성 증대, 비용 절감, 안전 향상 등을 목표로 하며, 다양한 방법과 도구를 활용한다. 기업에게 필수적이지만, 많은 현장에서는 이를 부가적인 업무로 인식하기도 한다. 포스코는 1968년 창립 이후 지속적으로 현장 개선활동을 추진해왔다. 1973년 박태준 명예회장이 일본 제철소에서 자주관리활동을 도입하며 시작된 이 활동은 2002년 이구택 회장이 6시그마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까지 29년간 지속되었다. 2002년부터 6시그마 활동을 현장의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현장 개선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많은 직원들이 이를 어렵고 힘든 활동으로 인식했다. 이에 포스코 현장에 적합한 활동으로 재탄생한 것이 QSS(Quick Six Sigma) 활동이다. 6시그마의 개선 방법론인 DMAIC는 그대로 사용하되, 설비 기본 기능을 학습하고 복원하는 TPM 활동과 도요타 생산방식의 낭비 제거 사상을 접목하여 빠르고 역동적인 개선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Quick’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2025년은 QSS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째 되는 해로, 그동안 4조 3교대 도입, 주 52시간 근무 체계 변화와 안전 환경 강화 등 사회적 이슈에 맞춰 활동 방법을 바꾸며 지속적으로 현장 개선활동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현장 설비는 기능 복원으로 제 모습을 되찾았고, 자재·재료·제품 등도 정리·정돈되며 현장 근무 환경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그러나 최근 현장 개선활동을 체험한 고근속직원들이 대거 퇴직하고 젊은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QSS활동을 부가적인 일이나 불필요한 업무로 인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는 현장 개선활동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직책자와 직원들이 명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숨쉬는 것과 같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활동하는 행위의 불편함 만을 보기 때문이다. QSS 활동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쉽고 편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수행하기 위한 활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수행 중인 작업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QSS 활동의 핵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활동을 단순히 청소나 정리 정돈으로 오해하곤 하는데, 이는 QSS 활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포스코의 한 임원이 ‘QSS 하자’라는 동사화된 표현을 제안하며, 품질, 안전, 설비 등의 키워드와 함께 사용하자고 주장한 것에 대해 나도 깊이 공감한다. 운전, 정비, 사무, 현장 등 모든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교세라의 창립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항공(JAL)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해고하고 구조조정 하면서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라고 하였다. 필요한 활동을 좋은게 좋다라고 하여 하지 않으면 결국 대악으로 갈 수 있으며 모두가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비정하게 추진해야 하는 것이 개선임을 잊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2025-02-02

신독할 결심

유영희 작가 2025년이 한 달은 지났지만, 설을 맞아 지난 한달간 미처 챙기지 못한 새해 다짐을 되새겨본다. 며칠 전 비슷한 나이대 주부 몇 명이 모여 새해 계획을 세웠다.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면 아이디어도 공유할 수 있고 실행력도 높아진다. 작년에도 비전 찾기 작업을 했는데, 올해는 만다라트를 채우는 방식으로 했다. 사각형을 가로세로 삼등분해서 아홉 개 네모 칸이 생기면 그 아홉 칸도 다 아홉 칸을 만든다음, 한가운데 칸에 올해의 핵심 목표를 쓰고, 한가운데 칸을 둘러싼 8개 칸에 그 핵심 목표를 세우기 위한 하위 목표를 채운다. 그러고 나서 가운데 칸을 둘러싼 8개 네모 칸의 가운데 칸에 하위 목표를 쓴 다음 그 하위 목표를 실천할 구체적인 방법을 둘레의 8개 네모 칸에 채우는 방식이다. 이 만다라트는 일본의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15살에 이 방법을 사용하여 목표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현재 30세로, 그동안 쌓은 성적도 우수하지만 앞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는 전도유망한 야구 선수라고 한다. 2025년 한 해의 핵심 목표를 세우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장기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오타니 쇼헤이처럼 어릴 때라면 목표 세우기가 쉽겠지만, 노년을 향해 가는 처지에서 목표를 세운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장 시급하게 해결하고 싶은 목표를 잡아 칸을 채워나갔다. A는 월 500만 원 수입을 목표로 삼았고, B는 월 100만 원 수입을 목표로 삼았다. C는 정리의 여왕 되기를 목표로 삼았고, D는 책 두 권 쓰기를 목표로 삼았다. 목표는 다르지만 이것을 실천하기 위한 하위 목표는 공통점이 많았다. 모두 체력 관리와 건강 지수 높이기, 멘탈 관리를 위한 공부와 명상을 꼽았다. 그런데 이렇게 세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독’해야 한다는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독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나만 아는 영역을 관리하는 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온전히 책임지는 일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같이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의 몫이다. 본래 ‘신독’은 유교 경전인 ‘대학’과 ‘중용’에서 강조하는 덕목으로, 윤리 실천을 위한 기초활동이다. 자신에게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기 위해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의 지향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삶은 남이 알지 못하니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스스로 책임지는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실천하려면 남이 보지 않을 때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 신독의 효과는 단지 개인적인 자기 관리에 머물지 않는다. 합리적인 사고와 꾸준한 실천은 신독에서 나온다. 갑작스레 닥치는 부당한 상황에서 바르게 처신할 수 있는 힘도 키워준다. 신독할 줄 모르면 하늘에서 복이 떨어지기를 바라게 되고, 빨리 얻을 수만 있다면 무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비상시국일수록 나를 지키고 세상을 지키는 신독이 절실해진다.

2025-02-02

‘누구나’밤엔 명작을 쓰지

이희정 시인 기도하다가 기도가 막혀 죽은 사람은 없겠지만 할머니가 절에 가서 기도하고 받아 온 떡을 내가 먹다가 질식사할 뻔하지 않았다면 나는 영영 헨리 하임리히 씨를 몰랐겠지 모르고 살아도 좋을 이름들 사랑하는 이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 알츠하이머가 독일의 정신과 의사 이름이란 걸 알게 된 것처럼 계기가 운명의 계량법은 아니겠지만 (중략) 어떤 바람은 병증처럼 전조 증상도 없이 후유증을 남기며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다 다짐은 무슨 힘으로 단단해지나 시를 배우겠다는 노인이 내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실금이 갔고 따뜻했다 ―김이듬,‘하인리히, 하임리히’ 부분,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타이피스트, 2024) 책방 수북에 김이듬 시인이 왔다. 선뜻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머뭇거리기를 한참이었다고. 스스로 북토크를 하겠다는 시인에게 무뚝뚝한 성격의 책방 직원은 “누구시냐”고 반문했고, 외근 중인 편집장의 놀란 목소리가 전화기를 푹 뚫고 나왔다. “누, 누구라고요? 김이듬?” 도처에서 초대하려는 시인인데 ‘굳이’ 서울에서 이곳을 자청해 왔다. 일산에서 ‘이듬 책방’을 운영한 이력이 있는 그녀였다. 높은 임대료와 운영비에 비해 팔리는 책은 고작 하루 서너 권이었다고, 대학 강사 수입까지 탈탈 털어 버티다 장렬하게 닫았다고 했다. 작은 책방에 대한 각별함도 있었겠지만, 수도권에서 보자면 변방이지만 책을 중심으로 작가와 독자를 잇는 책방지기 김강 소설가의 맹렬한 분투가 익히 알려져 발걸음을 이끌었다고. 진주에서 태어난 김이듬 시인의 사투리 억양은 친밀했다. 그녀의 시집을 스무 명 남짓 모인 이들이 함께 돌아가며 낭독했는데 마이크 없이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의 시어들이, 담백한 구름처럼 소담한 책방 행간을 떠다녔다. 이른바 전문 낭송가들의 기성화된 독해의 가공 없이 낭독하는 독자들이 나름의 호흡으로 조근조근 풀어내는 시편은 진정성어린 울림이 더 했다. 말하자면 옷에 몸을 맞추는 독법이 아닌 몸에 옷을 맞추는 수제 맞춤복 같은 몸에 착착 감기는 발화법일 것이다. 소탈하고 낮게 번지는 소리의 밤, 시집에 그들의 이름을 사인하고 ‘굳이’ 메모지에 새겨 담아가는 모습에 마냥 “실금이 갔고 따뜻했다” 그녀의 또 다른 시편 “톱자국 지니고 성장한”“도끼 자국과 함께 커가는”“천둥 벼락 맞고도 무성해진 숲”같은 벽조목이 인장으로 오는 밤,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라는 시인의 말이 실감으로 오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독일 유학 시절 빠져들었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에 담긴 두 개의 얼굴은 그녀 시의 메타포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 시인 김이듬은 내면에 패인 도끼 자국과 천둥 벼락을 숨기지 않는다. 자기 삶을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을뿐더러 패인 삶이 그대로 시가 되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의 행운목을 주문처럼 나누는 그녀였다. 다소 센 듯한 외양과 달리 누구보다 겸손하고 다정해서 방청석엔 바다 마을 주민들이 흐뭇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곧 시인이 간헐적으로 와 있는 집필 공간으로 태워 갈 것이라고. 더구나 시인에게 손을 포갠 이들은 생업으로 바쁜 시간대 가게 문까지 닫고서 달려온 동네 이모, 동네 언니들이란 이름들이었음을. “한순간 빛났던 한 구절 때문에 한평생 다정하게 기다리는 이름들”.

2025-02-02

변화와 도약으로 ‘천상운집의 해’ 만들자

남한권 울릉군수 ‘천상운집(天祥雲集)’ 온갖 복된 일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는 뜻이다. 물론 이말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하늘에서 복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해당 되지 않는 말일 것이다. 2025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허물을 벗고 변화와 도약을 시도하는 울릉군이 ‘천상운집’의 해가 되길 기원한다. □ 울릉도 등 먼섬 지원 특별법 본격시행 군민들의 염원이었던 먼섬 지원 특별법이 지난달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안은 먼저 국토 외곽에서 국경수비대 역할을 하고 있는 도서민들의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섬 발전을 위해 여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5개년 마다 종합발전계획을 수립, 추진하도록 되어 있다. 제1차 종합발전계획의 수립을 위해 행정안전부에서는 2024년 5억원을 투입해 국토연구원과 한국섬진흥원이 공동으로 연구용역을 수행 중이며 각 시군의 희망사업을 직접 조사해 지난해 12월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 올해 10월 섬발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12월 31일까지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제출, 최종확정돼 2026년에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울릉군은 72건의 사업을 신청했다. 도서민 여객운임 안정지원, 해상운송 물류비 지원확대, 군민 의료경비 지원 등의 주민 체감형 사업과 함께 복합대피시설 설치, 폐기물처리시설 확충, 상수도 시설사업 등 다양한 사회기반 시설사업 확충 등이다. 하지만 군사적 위협이나 면적, 인구 등에 있어 유사성을 가진 서해5도에 대해선 특별법을 통해 노후 주택 개량 지원, 정주생활지원금 지원, 대학 입학 특례지원 등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행 울릉도 등 먼섬 지원 특별법에선 이러한 지원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서 울릉도, 흑산도 등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받는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있어 왔다. 이에 이상휘 의원이 지난해 7월 서해 5도 지원 특별법에 준하는 수준의 지원규정을 담아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다. □ 울릉공항 건설 당초 울릉공항 건설사업은 2020년 11월에 착공돼 2025년 12월 준공 및 2026년 개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두봉 절취 및 해상매립 등 주요공종의 지연 등 사유로 지난해 8월 준공기한이 2년 연장됨에 따라 2028년 상반기로 개항이 연기가 된 상태이다. 다만 울릉공항 건설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공정률은 58.8%이다. 울릉공항은 국내 도서지역 공항의 발전을 선도적으로 이끌고, 울릉의 하늘 길이라는 새로운 교통길 구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 K-관광섬 육성 및 관광산업 다변화 울릉도는 그동안 접근성의 문제로 인해 다소 불편한 여행지로 여겨졌으나 대형크루즈가 취항하게 되면서 관광객들이 사계절 내내 울릉도 여행이 용이하게 됐다. 아울러 2028년 상반기 하늘길이 열리게 되면 뛰어난 접근성으로 인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K-관광섬 육성사업은 울릉공항 개항으로 유입되는 관광객에게 새로운 여행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준비단계의 사업으로 내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도모해 울릉도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시킬 발판이 될 중요한 프로젝트이다. 2026년까지 총사업비 100억원을 투입해 울릉도만이 가진 고유한 문화와 특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부사업으로 울릉의 지속가능한 생태관광환경 조성을 위한 울릉 화산섬 암벽 에코 트레킹 시설과 태하 스테이존 조성사업, 울릉 고유문화를 담은 새로운 관광컨텐츠를 제공하는 등 저밀도 청정관광지인 울릉도에 관광과 고유의 문화를 융합하고 지역 주민이 함께하여 매력적인 섬을 만들 계획이다. 지난해 산악레저 및 액티비티를 활용한 여러 행사를 기획해 성황리에 마쳤으며 올해도 산악스키, 설산하이킹 등 겨울 이벤트를 비롯 씨푸드 페스티벌, 해양레저 체험 등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풍성한 프로그램이 열릴 예정이다. 울릉도 겨울 산속에서 펼쳐지는 겨울 액티비티 ‘울루랄라 설국모험’은 울릉도의 설산을 배경으로 매력적인 울릉도의 겨울 레저인 산악스키와 설산하이킹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이다. 특히 산악트레킹과 캠핑을 결합한 행사가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약 30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울릉도의 겨울은 그 자체로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객들이 울릉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겨울 풍경과 액티비티를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울릉도에서의 겨울 여행이 특별한 순간들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갈 계획이다.

2025-02-02

울릉주민 뱃삯 7000원 넘으면 위반…정부, 도서민 삶질 향상과 이동권 보장위해 선사 지원필요

경북부 김두한 기자 울릉도~포항 간 뱃길을 운영하는 울릉크루즈·대저해운이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마른 수건도 짜야할 판이다. 선사는 주민에게 적용하는 뱃삯 할인 제도도 방법이 있으면 폐지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뱃삯 할인에 손 대려면 울릉주민은 절대요금제를 적용 받기 때문에 요금은 인상할 수 없고 울릉군과 협의가 필요하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하는 회사입장에서는 할인제도를 보완이라도 해달라고 주장한다.   현재 울릉도 주민들은 육지로 오갈 경우 뱃삯을 최대 7000원(일반실 기준)만 내면  이용이 가능하다.  차액만큼은 도서민 정주여건개선, 이동자유보장, 삶의 질 향상 등을 위해  정부(세금)가 메꾸어 주고 있다.  여기에 선사가 부담해야 하는 몫이 요금 20% 할인이다.  지금 선사가 어렵고 적자가 나다보니 이 울릉주민 20% 할인 제도가 논란의 한복판으로 들어오고 있다. 회사측에서는 폐지 또는 할인 폭을 줄여달라는 입장이다.  실제 서·남해는 선사가 흑자를 내고 있음에도 선사가 부담하는 할인 폭은  3~15% 정도여서 울릉지역 여객선들에 비해선 혜택을 보고 있다.   도서민의 뱃삯 할인은 정부가 마련한 제도에 기반한다. 운항구간 간 정규요금이 8340원 이하면 최대 2500원, 8380원~3만 원까지는 최대 5000원, 3만 원~5만 원은 최대 6000원, 5만 원 이상 최대 7000원만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제도는 ​해양수산부가 시행하는 도서민 여객선 운임지원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도서지역주민들의 여객선 이용 비용을 지원, 섬 지역 주민들이 더 편리하게 본토와 오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지침을 만들었다.    울릉주민 입장에선 최대 7000원만 내면 입출입이 가능하니 큰 부담이 없고 해서 이 제도엔 불만이 없다.  문제는 이용료 차액을 나눠 부담해야 하는 울릉군과 선사다.  1년에 10만 명(왕복) 넘게 이용하는 도서지역은 전국에서 울릉도가 유일, 양 쪽이 부담해야 할 규모가 적잖다.  울릉군은 일단 예산으로 차액을 보전해주고 있다. 부담이 과중하지만 그래도 군은 감내하고 있다.  울릉주민의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 주는 것이 울릉군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있다.  울릉군에 따르면 지난해 울릉도~육지를 오간 울릉도주민은 13만 4511명(왕복)이었으며 그로인한 배삯 차액 부담분 74억 1400만 원을 세금으로 지원해 줬다. 1인당 평균 5만 5000원 정도다.    여객선사가 20% 할인을 해주지 않았다면 군이 떠안아야 할 1인당 세금부담은 7만 원 가량으로 증가한다.  이 경우 군은 년간 배삯 지원금으로 100여억 원은 있어야 한다.  선사는 할인을 해주지 않고 그만큼 보전받았더라면 적자는 면했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울릉 배삯 지원과 관련, 울릉군은 경북도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줄 것을 주문한다.   인천 사례를 벤처마킹해 달라는 것이다.   인천은 도서벽지가 많기도 하지만 배삯 할인 지원 예산이 엄청나다. 매년 편성되는 예산은 180억 원, 올해는 220억 원 규모로 증가했다. 특히 2025년부터는 인천시민이 백령·대청·연평·덕적도 등을 오갈 때는 시내버스 수준인 편도 1500원 만 내면 이용이 가능토록 했다.    도서민이 아닌 인천시민에게 뱃삯을 3000원(왕복)으로 낮춘 ‘인천-바다패스’ 정책의 후속조치다.  대상 여객선은 인천 내륙과 섬을 연결하는 14개 항로 16척이이어서 인천시민들은 웬만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가고 싶은 도서를 대부분 다 다녀 볼 수 있다.   반면 경북도가 2024년에 편성한 울릉군민 여객선 뱃삯 지원은 20억 4400만 원, 경북도민 운임지원 7억 6000만 원이었다. 합하면 28억 400만 원이다. 더욱이 울릉도에는 인천광역시의 도서지역 관광객과 도서민 이동은 연 약 60만 명(왕복) 보다 곱절 가량 많은 이용객이 오가지만  지원금액은 인천의 1/10 수준이다. 수치만 놓고 본다면 엄청난 모순이다.  울릉군민들은 이런 점을 고려, 지역 국회의원, 도의원, 울릉군수가 적극적으로 나서 정부와 경상북도를 설득할 것을 바라고 있다.  당국은 도서민 지원금이 늘어날 수록 울릉주민 등 전국도서민 생활여건이 개선되고 이동자유보장과 육지와 일일생활권 확보 등 도서민의 삶이 윤택해 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줬으면 한다. 그것이 정부가 지향해 나가야 할 도서민을 위한 정책방향이기도 하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02-02

헌재의 정파성, 법에 대한 신뢰 붕괴시킨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가장 힘겹지만 새로운 세상을 목도할 9부 능선을 지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듣기에 따라서는 ‘조기대선’을 떠올릴 수 있는 글이다. 야권에선 이미 “꽃피는 봄으로 예상되는 대선에 올인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문형배 소장 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소(헌재) 재판관 2명의 퇴임이 4월 중순 예정돼 있어 헌재가 3월 중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이 원하는 4월 조기대선이 가능해진다. 조기대선은 헌재 손에 달렸다. 이 대표가 ‘9부 능선’을 자신 있게 언급한 것은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속도를 내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헌재는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위헌 여부를 2월 3일 선고하겠다고 발표했다. 권한쟁의심판 접수부터 선고까지 한 달밖에 걸리지 않는 일정이어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헌재는 통상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선고하는데 이 사건 선고를 위해 특별기일(월요일)까지 잡았다. 최대한 서두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 후보자는 지난 2009년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민노당 보좌진 등에 대해 1심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려 정치 편향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지금 헌재에는 마 후보자 사건보다 먼저 제기된 탄핵심판 사건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게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이다. 한 총리 탄핵심판은 국정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히 결론을 내야 하는 사안이다. 헌재가 국정안정보다 진영논리를 우선시한다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와 관련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골수 좌파 재판관이 한 명 더 있어야 대통령을 확실하게 파면시킬 수 있다는 헌재의 조급함이 드러났다”면서 “상식과 논리에 맞지 않다”고 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의 정파성은 지난 2023년 3월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권한쟁의 심판에서도 논란이 됐다. 헌재는 당시 진보성향 재판관들이 주도해 법무부와 검찰이 제기한 검수완박법 쟁의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국가의 헌법적 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이다.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은 국민의 법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당연히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정파성이 개입돼선 안 된다. 오직 헌법정신에 충실한 심판을 해야 한다. 만약 이번 심판에서 헌재 재판관들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올 경우, 국민적 저항이 따를 뿐 아니라 헌재 존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2025-01-30

양춘포덕(陽春布德)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는 바뀌고 새 날이 밝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하기가 못내 부끄러웠던 새해맞이였다. 서로 낯빛을 숨기며 인사하고 안부하기조차 주저했던 날선 나날도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지나자 아픔도 슬픔도 차츰 무뎌졌다. 한숨이 배긴 했지만 그럭저럭 인사도 오가곤 했다. 그래 잊히기 마련이고 또 잊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고, 또 하나의 새해맞이. 설날이 다가오자 먼 옛날의 제자에게서, 예전 직장 동료에게서도 새해 인사를 받는다. 보고 싶습니다. 부디 올해는 무탈하고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진정성이 느껴지는 안부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 중 최민경 회장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카드 하나가 뭉클하다. ‘봄볕 같은 덕을 펼치다.’ 금빛반짝이는 빳빳한 카드에 정갈한 글씨, 그 아래 둥글고 단호하게 새긴 양춘포덕(陽春布德). 이 매서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은 오고야 말 것이라는 시간의 순리를 새기며 느끼자 몸이 벌써 따뜻해진다. 그래 곧 봄이 올 거야…. 겨울 속의 봄이라 하면 판자벽에 검고 끈적끈적한 페인트를 칠한 교사(校舍)에 기대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해바라기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조개탄 몇 덩이 넣어 간신히 추위를 면하다 금방 식어버린 교실보다 겨울 볕이라도 쬘 수 있는 바깥이 차라리 더 나았다. 바람기만 없으면 교실 밖이 덜 추웠다. 쨍하게 시린 하늘을 쳐다보면 눈이 부셔서 보이지도 않는 해가 보낸 온기가 변변찮게 입은 겨울옷 속까지 스며들어 따뜻해진다. 주머니에 넣었던 손조차 꺼내 볕을 쬐며 햇살을 잡아본다. 말없이 해바라기를 하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화기가 돌고, 곁의 친구와 서로 얘기를 나눈다. 활기 넘치는 남자 아이들은 더워진 몸을 주체 못해 기댔던 판자벽을 떠나 뛰며 장난치기를 시작한다. 추위에 지치고 떠는 아이들을 웃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이 햇살이 바로 덕(德)이 아닐까. 비록 봄볕 아니더라도. 덕(德)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큰 배움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가까이하는 데 있으며, 지극히 좋은 것에 머무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이 문구는 주로 정치에 빗대어 풀이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큰 배움은 바로 정치라 할 수 있으니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은 밝은 덕을 베푸는 것이라는 조언이요, 주문이다. 국민만을 생각하는 정쟁보다는 상생이다. 어디 정치에서뿐이랴. 어떤 작은 조직에서도 덕은 리더의 덕목이다. 작은 이익보다 큰 포용이다. 이웃 간에도 덕은 서로 베풀며 살아야 할 규율이자 인정이고, 가정에서도 어른이 어른다우려면 모름지기 덕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도덕적·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능력으로서의 덕(德)은 품격이다. 나라의 국격이요, 인격이다. 다음 달 3일이 절기상으로는 입춘이다. 바야흐로 봄의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모쪼록 올해는 나라가, 사회가, 이웃이 그리고 가정이 따뜻한 봄볕 같은 덕이 넘쳐나도록 펼쳐지면 좋겠다.

2025-01-30

세뱃돈 유감

우정구 논설위원 세뱃돈의 유래는 중국설과 국내설이 있다. 중국 송나라 시대에는 음력 1월 1일이면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붉은 봉투(紅包)에 돈을 넣어 주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해가 바뀐 새해에도 악귀와 불운을 막아줄 것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세뱃돈으로 전래됐다는 설. 국내설로는 조선시대부터 해가 바뀌어 세배하러오는 아이들에게 떡이나 과일 등을 내주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것이 세월이 흘러 점차 돈을 주게 되면서 세뱃돈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1960년대 들어서는 10원짜리 지폐를 세뱃돈으로 주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졌다. 세배는 설날에 차례를 마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새해를 맞게 된 것을 기념해 문안 인사를 드리는 풍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래야 어쨌거나 새롭게 맞는 신년을 맞아 가족과 친지간에 인사를 나누고 건강과 안녕을 비는 인사란 점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세뱃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새해에도 건강하고 학업과 사회생활에 충실하라는 뜻에서 주는 일종의 정표다. 설날에 주는 세뱃돈은 명절 문화로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가 정을 주고받는다는 뜻에서 기분 좋은 풍속이다. 그래서 설을 앞두고 은행권은 세뱃돈을 위한 신권을 교환해주고 있다. 1년 중 신권 유통이 가장 많은 달이 설이 낀 달이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올해는 설전 신권 발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2022년보다 40%가 줄고 작년보다도 13%가 줄었다. 불경기 한파로 신권을 바꾸려는 사람이 줄어든 탓이다. 신권이 준만큼 세뱃돈도 줄었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불경기 탓에 어린아이가 받을 세뱃돈도 줄었다 생각하니 이번 설날이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1-30

울릉도공항 버드스트라이크 가능성 작다…울릉도는 새들의 천국 아니다

김두한 기자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해 현재 건설되는 울릉도공항의 버드스트라이크(조류 충돌) 가능성이 제기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버드스트라이크 염려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일부에서 조류 충돌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나 울릉도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지적인 듯하다. 울릉도에는 과거 독수리, 깍새(슴새), 흑비둘기 등 비교적 몸집이 큰 조류들이 무리를 지어 살았다. 하지만, 독수리와 깍새는 이미 완전히 사라졌고 사동 흑비둘기 서식지에는 한두 마리가 눈에 띌 정도다.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는 새롭게 등장한 조류는 꿩이다. 꿩은 높이 날지 않고 바닷가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버드스트라이크 대상 조류가 아니다. 울릉도에 참새 등 작은 조류가 많지 않아 길조로 여겨지는 까치 20여 마리를 육지에서 데려와 방류한 뒤 키워보려 했지만 몇 년 만에 개체가 모두 사라졌다. 문제는 울릉도 바닷가에 서식하는 괭이갈매기다. 하지만, 공항이 건설되는 지역에는 괭이갈매기 서식지가 없다. 괭이갈매기는 서식지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공항이 건설되는 주변 해안가에 가두봉(해발 194m)이 있다. 물론 바다를 메워 건설되는 울릉도 공항 활주로 건설을 위해 모두 절취해 산이 사라진다. 하지만, 가두봉에는 애초부터 괭이갈매기 서식지가 없었다. 울릉도 괭이갈매기 서식지는 북면 관음도 인근 주변이다. 괭이갈매기는 서식지를 떠나 멀리 이동하지 않은 특성이 있다. 예를 들면 유람선을 타고 가다 보면 관광객들이 새우깡 등 과자로 괭이갈매기 접근을 유도한다. 하지만, 갑자기 일시에 사라진다. 처음 보는 광경에 관광객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이유가 있다. 괭이갈매기는 자기 구역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관음도 주변 등 괭이갈매기 서식지는 울릉도 북면지역이고 공항건설은 남서쪽이다, 거의 반대 방향에 가깝다. 울릉도는 평지가 아니라 바닷가에도 해발 3~400m가 되는 산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육지와 비교하면 괭이갈매기 서식지와 울릉공항 건설현장은 수십 km 떨어져 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울릉도는 새의 천국도 아니고 버드스트라이크를 일으킬 위험지역이 아니다. 그런데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전문가들의 섣부른 진단이 국민의 여론을 왜곡 할 소지가 있다. 울릉도 공항의 안전을 위해 과할 정도의 안전에 대한 염려는 고마운 일이지만 잘못된 정보로 준공되지도 않은 공항이 벌써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줘 개항 후 이용객들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01-30

지혜로운 중재자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

심한식 경북부 A 업체가 경산시 용성지역에 조성키로 한 경산컨트리클럽(주)이 또 해를 넘기며 지역의 민심을 중재할 수 있는 중재자의 존재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경산컨트리클럽(주)은 지난 2007년 용성면 가척리 산 34-1번지 일원에 27홀 규모로 2009년까지 조성돼 낙후지역으로 전락한 용성지역의 지역 경제에 큰 힘을 줄 것으로 기대됐다. 용성면은 한때 1만 2000여 명이 거주하는 활기찬 지역이었으나 현재는 3000여 명이 거주하는 낙후지역이다. 이러한 이유로 경산컨트리클럽(주)이 지역의 경제를 살릴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편입부지의 소유권이 있던 A 문중의 반대로 18홀 규모로 축소되고 지역주민 일부가 주민생존권 확보와 환경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 등을 요구하며 민원을 제기하자 경산시의회 의견 청취에서 동의를 얻지 못해 사업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경산시의회는 조정자 역할보다는 주민 합의를 선제조건으로 요구하며 불편함을 비켜갔다.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골프장 조성 사업은 코로나 19의 특수를 맞으며 경산컨트리클럽(주)이 2022년 하반기 사업재개 의지를 밝히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였으나 여전히 지역주민들과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또 한해를 넘긴 것이다. 용성면 골프장 조성이 장기간 표류하며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 간의 보이지 않는 골이 깊어지고 매입이 완료된 땅들도 관리되지 않아 주변 농경지가 큰 손해를 입고 있지만, 여전히 중재자의 존재를 찾을 수 없어 사업추진을 기대하기 어렵다. A 사는 여전히 반드시 골프장을 조성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수긍하기 어렵다. 중재자의 부재는 용성면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원로의 역할을 찾기 힘들다. 조정자, 중재자의 역할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인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정치권에서조차 아부성 발언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실정이니 지역에서 전체를 위해 소신 있는 발언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수가 아닐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나타날 중재자를 기다려 본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5-01-30

대통령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

장규열 고문 우리 사회에는 대통령을 마치 군주처럼 여기는 잠재의식이 남아 있다. 5000년 역사 가운데 왕조 정치가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했고, 민주주의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기간은 고작 100여 년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부를 거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체제가 뿌리를 내린 기간은 지극히 짧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고통스런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갈등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 대통령이 대선 토론에 나설 당시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적어 화제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 이는 후보 본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군주제적 잔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오늘 겪는 사회적 소란 속에도 대통령을 국가의 대표자라기보다 통치권력자로 여기는 경향이 뿌리깊게 깔려있다. 대통령을 뜻하는 영어표현 ‘President’는 원래 ‘앞에 선다’ 또는 ‘대표한다’는 원어적 의미를 담고있다. 그러나 한자표현 ‘대통령’에는 ‘크게 통치하는 최고명령권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히 있다. 이는 대통령제의 본질을 오해하게 만들며, 군주적 이미지를 굳히는 효과를 낳고있다. 제왕적대통령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의 본령을 회복하기 위하여 직함으로서 ‘대통령’의 명칭변경을 제안한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기본을 고려할 때도 ‘대통령’이라는 명칭은 행정부 수장의 역할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다. 입법부 수장을 ‘국회의장’, 사법부 수장을 ‘대법원장’으로 부르듯, 행정부의 수장에게도 더 균형잡힌 명칭이 필요하다. 예컨대 ‘행정수반’, ‘국무원장’, 또는 ‘국정총장’ 등으로 개칭하여, 대통령의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통치자이기보다 제한적인 책임자임을 강조해야 할 터이다. 대통령 명칭의 변경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직제의 개정, 관련 조직 및 법령의 정비 등 부가적인 사안들이 동반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본질을 구현하고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대적으로 필요하고 의미있는 과정이라 여겨진다. 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놓고볼 때, 민주정부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대통령’이라는 직함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을 넘어, 국민이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가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대표자임을 재확인하는 길이 될 것이다.

2025-01-26

긴 설 연휴 가스안전으로 시작

장재원 한국가스안전공사 경북동부지사장 한국가스안전공사 경북동부지사는 설 연휴 기간 난방, 음식 조리 등 가스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가스사고예방을 위해 국민 모두 쉽고 간단하게 지킬 수 있는 안전 수칙을 안내한다. 최근 5년간 가스사고는 409건 발생, 연평균 사고감소율 8.7% 가스사고는 지속적 감소 추세로 발생하고 있으며, 통계를 살펴보면 LP가스 48.4% 이동식부탄연소기(캔) 18.6%, 도시가스 20.8%, 고압가스 12.2% 차지하고 있다. 원인별로 사용자취급부주의 116건, 시설미비 89건 등 전체사고의 50.2%를 차지하고 있다. 사용처별로는 주택 141건 식품 접객업소 68건으로 전체사고의 51.1%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LP가스 사고가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어 사용에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가스버너 및 부탄 캔 사용 시 사용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먼저, 부탄 캔 사용 시 부탄 캔과 열원을 가까이 두면 안 된다. 최근 인덕션이나 난로 위에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올려놓고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잘못된 사용으로 과열된 부탄 캔이 파열할 수 있다. 또, 휴대용 가스버너의 불판 받침대보다 크기가 큰 과대 불판 조리 기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불판에서의 복사열 때문에 내부에 장착된 부탄 캔의 내부압력이 상승하면서 파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휴대용 연소기(가스버너 등)를 보관할 때에도 주의해야 한다. 부탄 캔과 휴대용 연소기는 사용 직후 분리하는 것이 좋다. 사용 직후의 잔열에 의해 가스레인지 내부에 장착된 부탄 캔의 내부압력이 상승하여 파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휴대용 가스버너를 이중으로 적재해 보관하면 부탄 캔의 내부압력 상승으로 인해 파열 위험이 커지고, 나란히 놓고 사용하면 부탄 캔이 가열되어 폭발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중 적재 및 병렬 사용은 금물이다. 이와 더불어 오랜 기간 집을 비우기 전 가스레인지 꼭지와 중간밸브, 주밸브(LP가스는 용기밸브)를 잠가야 안전하고, 연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제일 먼저 창문을 열어 집안을 환기하고, 혹시라도 가스 누출이 의심되면 관할 도시가스 사나 LPG 판매점 등에 연락해 안전점검을 받고 나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연휴를 맞아 캠핑을 계획한다면 텐트 내 가스버너, 가스난로 등 가스용품은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특히 가스난로는 일산화탄소 중독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가스 사용량이 급증하는 연휴 기간에 가스시설 이상 유무를 반드시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가족들과 안전한 연휴를 보내고자 반드시 가스안전 수칙을 지켜주기를 당부한다.

2025-01-23

국민은 지금 배가 고프다

노병철수필가 국가 정책은 다수의 국민이 이해하고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하고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국가의 폐단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가 내세운 ‘세계화’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도 활동하고 선진국이라는 나라만 놀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그런 세계화의 노력이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김대중 정부의 정책은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햇볕 정책’이다. 다른 말로 하면 ‘퍼주기 정책’이라고도 말한다.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하면서 북한에 대한 포용적인 접근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증진하고자 했으나 북측의 기만에 놀아났다는 질책만 듣게 된다. IMF 때 급한 나머지 좋은 기업 마구잡이로 팔았다는 소리까지 들었었다. 이명박 정부의 개발 우선 정책은 지방 균형발전 같은 것은 뒤로 미루고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경제 정책을 극대화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지방은 형편없이 무너지고 말았고 4대강 사업으로 경제는 운하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해외 자원 개발한답시고 브로커에게 속아 그네들에게 넘어간 국가 세금이 거의 천문학적 숫자로 밝혀졌다. 국민의 세금은 대통령의 주머닛돈이 절대 아닐 텐데 이해가 가지 않은 일이 너무 많이 벌어졌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는 공무원조차 그 실체를 잘 몰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나중 탄핵받고 그 실체가 최순실에 의한 창조인지 대충 알게 되었다. 당시 대구시는 ‘창조 사과’를 도시 브랜드로 정하고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가 망신만 당했다. 그만큼 ‘창조경제’라는 것에 대한 감조차 잡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영국의 경영 전략가 존 호킨스에 의해 정립된 경제용어를 정부 관료들이 제대로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미국 유학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워런 버핏의 경제론을 많이 따라 그동안 유지해 왔던 재벌 부양정책에서 가져다주는 낙수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급속한 인건비 상승은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조였고 집값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한 어설픈 정부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럼, 윤석열 정부는 기본 정책 기조를 어디에다 두고 있을지 찾아봐도 무엇하나 제대로 나오는 것이 없다. 초반에는 규제 완화와 민간 주도 성장을 핵심 경제 정책으로 들고나왔다. 이명박 시절 정책을 갖다 쓴 느낌이 들 정도였으나 사회정책에서 그 유명한 ‘공정’이란 말이 등장한다. 나중 명태균 보고서로 정책 회의를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최순실같이 일개 사인에 의한 정책 장난이었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게 된다. 경제 정책은 명확성이 중요하다. 정책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못하면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공무원들도 올바른 정책 방향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관치 금융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권력욕에 국민경제는 내팽개치고 좌우 논쟁으로 혼란만 야기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고 싶다.

2025-01-23

6일간의 긴 설 명절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24절기 마지막 대한(大寒)도 지났다. 소한 땜을 하느라 한파가 지나갔는지 조금 푸근해진 날씨에 성질 급한 꽃망울들은 맺기 시작하는데 심술꾼 미세먼지가 서북쪽 대륙에서 ‘나쁨’으로 밀려오더니 ‘낮음’으로 되다니 다행이다. 내일부터 ‘푸른 뱀띠해’의 설날 연휴가 엿새나 이어지는데 이 긴 명절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행복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주말과 연휴 사이의 27일이 월요일이라 정부에서는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며 6일간의 황금연휴를 만들고 ‘민생경제 회복의 확실한 계기로 삼겠다’며 관광 활성화와 내수경기 진작을 위하여 국내 여행과 착한 소비를 부탁하고 있다. 여기에다 31일이 금요일 샌드위치 데이라, 연차 휴가를 쓰게 되면 2월 2일까지 무려 9일간의 연휴가 된다. 이제 곧 입춘인데 따뜻한 마음의 휴가를 계획해 보자. 우리의 세속 풍속인 설날에는 정성껏 차례상을 차려 절하고 예쁘게 설빔 입은 자식들에게 세배받고 세뱃돈을 주며 덕담도 들려준다. 그리고 하얀 떡국을 따뜻하게 끓여 먹으며 또 한 해 가족의 행복을 빌어보는 것이다. 옛날 정월 초하루 전후한 날 밤에는 ‘야광귀’라는 신발 귀신이 와서 뜨락에 벗어둔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신발을 빼앗기면 1년 동안 불운(不運)이 닥친다고 신발을 방 안에 숨기거나 벽에 체를 걸어두었는데, 야광귀가 체의 구멍 수를 세다가 날이 새어 돌아간다는 재미있는 얘기도 있다. 요즘은 복조리를 사서 복을 담아보라는 복조리 장수도 사라졌다. 올해의 귀성길은 더욱 붐비겠다. 10일간 약 3500만명의 대이동과 설 당일에만 600만명이 예상되어 당국에서는 안전관리 강화에 주력하고 있으며 설 연휴 4일간(27~30일) 전국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면제한다. KTX, STX 등 열차도 최대 40% 할인하고 국내선 공항과 여객터미널 등의 주차장도 감면하고 있으니 모처럼의 긴 설 연휴를 맞아 고향의 부모님을 찾는 마음이 좀 더 편안해졌으면 한다. 또 고속버스 시외급행버스도 증편 운행한다고 하니 차량운행도 대폭 늘어나는 만큼 안전 운행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향 나들이를 더 즐기도록 지방자치단체들은 각자의 관광계획을 내놓고 있는데 포항은 기계 문성리에 있는 새마을 발상지 기념관과 남양 홍씨 종택을 전면 개방하여 고향의 정을 흠뻑 느끼도록 할 계획이다. 6일간의 긴 연휴 동안 많은 친족과 지인들을 만나서 밝은 인사 나누며 명절 놀이하며 모이는 곳에 요즘 급성 호흡기 질환인 독감 등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위생관리에도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특히 이번 독감은 RSV 바이러스 감염으로 기침 가래 콧물과 인후통 등 영유아와 고령층에 치명적이니만큼 의심자 접촉을 삼가며 개인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여 모처럼의 가족 만남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건당국도 ‘응급의료체계 유지 특별 대책’을 발표하여 다음 달 5일까지 응급의료 분야의 부족 등 중증 응급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한다. 아무쪼록 긴 설 연휴에 너무 마음을 풀지 말고 알뜰한 계획과 안전 수칙 등을 잘 지켜서 ‘소한 얼음 대한에 녹듯’이 따뜻한 설날을 보냈으면 한다.

2025-01-23

달빛 대구의 승부수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내륙에 자리 잡은 달구벌 대구는 낮은 산줄기가 연이어 펼쳐진 풍경이었다. 그 안에 자리한 들판은 마치 달처럼 둥글게 펼쳐져 있었고, 들판 한가운데로는 강물이 유유히 흘렀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습지가 넓게 퍼져 있어 자연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었다. 대구는 광주와 함께 대표적인 ‘빨대 도시’로 불리며, 인근 경북과 전남 시군들의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행정과 교육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면서도, 대구로 유학 온 학생들에게 하숙과 자취방을 제공하며 가용 자금을 마련해왔다. 이제는 대구가 달 구운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를 때다. 승부처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신년 초가 되면 일본 자치단체의 시정연설과 장기발전 계획을 인터넷에서 찾아 꼼꼼히 분석해 본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께서는 일본 돗토리 현의 ‘육아 왕국’ 정책을 눈여겨보시는 것 같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면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일본 돗토리 현의 합계출산율 1.80명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돗토리 현 공무원만큼 경북도 공무원들이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삼성 출신 헐크 이만수 선수는 대학 시절 무용과 여학생 이신화를 사랑했다. 그는 매일 새벽 십 리를 달려 그녀의 집 창문을 두드렸다. 지금도 그는 야구를 미치도록 사랑하며,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는 자비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지방행정의 열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어느 자치단체에 이만수 선수가 야구 사랑하듯, 자기 고향 발전을 위해 모든 걸 던질 수 있는 인물을 보유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대구·경북에 중요한 시기가 찾아왔다. 대구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가 경관을 해치고 있는데, 이는 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구 동구에 공항 이전으로 인해 약 250만평의 큰 땅이 생겼다. 또한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 부지 539만평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발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미 대강의 밑그림은 나왔지만,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보인다. 통합 신공항 건설 계획은 두바이와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야 하지만, 도심 이전 부지 활용 계획은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대구와 경북이 동원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은 한계가 있으므로,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도심공원을 조성한다는 목표로 접근해야 한다. 인류 치유의 답은 자연에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능가하는 거대한 공원을 만들어 음악회와 시민 피크닉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 또한 고급 전원주택을 지어 한국의 비버리힐스로 만들고, 개발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자연이나 정원 박람회를 개최하여 세계인의 관심을 끌자.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자연을 통해 배우는 청색기술 연구센터를 건립하여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계기로 삼자. 돈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있지만, 달빛 고속철도 건설을 포기하고 그 예산을 대구와 광주에 5조원씩 나누어 전 국민을 위한 자연 교실을 만드는 데 사용하도록 건의하고 관철시키자.

2025-01-23

美 빅테크 기업

우정구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7대 대통령의 취임식에 등장한 빅테크 기업 수장들의 자리 배치가 화제였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 가족들이 앉은 자리 바로 뒷좌석에 앉아 많은 사람의 시선을 모았다. 한 상원의원은 그들을 보고 “트럼프 내각인사들 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정치적 의미를 달아 주었다. 빅테크(Bic Tech)는 빅자이언츠(Big Giants)라고도 부른다. 미국 정보기술 산업에 가장 크고 지배적인 기업을 말한다. 아마존,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의 기술기업이다. 이 회사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상장기업으로 통한다. 빅테크에 대한 특별한 기준은 없다. 통념적으로 본다면 엄청난 규모의 시가총액을 가진 회사다. 보통은 수천억 달러에서 많게는 3조 달러가 넘는 기업도 있다. 또 하나, 기술의 혁신 능력이 뛰어난 점이다. 문제는 그들이 만든 기술이 디지털 세상에서 일반인의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경제의 트렌드를 바꾸는 세상을 만들면서 생기는 도덕과 윤리적 문제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기업의 도덕적 노력은 물론 당연하다. 우리의 일상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AI에 대한 윤리와 규제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빅테크 기업들이 예우를 받는 모습은 대통령과 이들 간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을 바꾸는 빅테크 기업이 앞으로 트럼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상의 그림을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는 미지수다. 그 세상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 기대감도 크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01-23

이름의 무게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 학급에 70명이 넘었다. 초록색 천으로 싸인 출석부가 좁고 길쭉했다. 펼치면 한자로 된 이름이 빼곡했다. 이따금 선생님께서 내게 출석을 부르는 일을 맡기셨다. 모르는 한자가 있어도 친구들의 이름을 다 알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또 모두 다 여학생이어선지 비슷비슷한 이름이 많았다. 끝자가 거의 자(子), 순(順), 숙(淑), 희(姬), 옥(玉)이었다. 정을 첫 자로 쓴 이름들도 많았는데, 내 이름과 한자를 달리 쓰는 애들의 이름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대부분 곧을 정(貞), 맑을 정(淨), 고요할 정(靜)의 한자였고 정(正)자는 없었다. 남들과 다른 뜻의 이름자를 가진 나는 까닭 없이 뿌듯했다. 어느 날 신문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신문엔 내가 모르는 한자가 더 많았지만 함께 읽는 척하다가 정(正)자를 찾아내고는 아버지께 내 이름자의 내력을 여쭸다. 집에선 내 이름을 옥(玉)이라고만 부른다. 니가 났을 때 워낙 동글동글하다며 할머니께서 그렇게 지으셨지라고 하셨다. 옥(玉)자 말고요, 정(正)자요…. 아 차라리 여쭙지 말 걸 싶은 대답을 들었다. 니가 정월에 났거든…. 난 이월이나 삼월에 나지 않았음을 큰 다행으로 여겼다. 이옥이 삼옥이보다는 정옥이 더 낫지 않은가. 이름대로 바르게 살아야지 무슨 결기 같은 것이 생긴 건, 그 몇 년 후였다. 무슨 연유에선지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나를 데리고 가셨다. 세상 가장 공손한 자세로 앉은 어머니가 뭔가를 묻고 점쟁이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긴 대답을 한다. 어머닌 좋아하는 기색이기도 하다가 때론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좀 더 바짝 점쟁이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셨다. 옆에서 그저 심상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점쟁이가 대뜸 이름을 물었다. 바를 정(正) 구슬 옥(玉)이라고 대답했더니 이름자를 크게 쓰면서 대통령 이름자하고 같네. 이름 풀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만은 아주 똑똑하게 기억한다. 그 때 나는 내 이름의 정(正)자를 내 삶의 신조로 삼기로 결심했다. 불교 진각종단 위덕대에 다니게 되자 내게 또 하나의 이름, 불명(佛名)이 생겼다. 수계관정(受戒灌頂)으로 받은 불명은 ‘대자은(大慈恩)’이었다. 크게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라로 풀이하자 왠지 내겐 버겁다는 첫 생각이었다. 특히 대(大)가 그랬다. 정사님께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인연 따라 이름이 지어지는 것이라며 부처님의 뜻이라고 하셨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기엔 역량 부족이지만 두루 봉사하면서 살자. 최소한 폐 끼치면서 살지는 말자.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폐 끼치고 살았다는 생각에 두렵다. 언젠가 중국 시안의 대자은사라는 절엘 갔다. 내 불명과 같아 반가워 감격했다. 서유기로 유명한 현장이 수좌로 있으면서 역경사업을 했다는 절이다. 당 고종이 모후인 문덕황후를 위해 세워, 절 이름을 ‘자애로운 어머니의 큰 은혜’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했다. 역사깊은 내 불명에 사명감과 동시에 두려움이 들었다. 절에 가면 불명을 조심스럽게 쓴다.

2025-01-22

발 건강과 전신 건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우리 몸을 지탱하는 기둥인 발은 단순히 걷고 뛰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발의 건강은 전신 골격의 균형을 유지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중요한 발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은 전신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발은 우리 몸의 균형과 자세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발바닥에는 수많은 뼈, 관절, 근육, 인대가 얽혀 있어 이는 몸의 무게를 분산하고 충격을 흡수한다. 발의 구조가 약해지거나 변형되면 이러한 균형이 무너져 전신 골격에 영향을 미친다. 평발이나 족저근막염 같은 발 질환은 무릎, 골반, 허리의 구조를 무너뜨리고 통증을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발이 체중을 고르게 지탱하지 못해 다른 부위에 과도한 부담을 주면 자연히 인체는 틀어진다. 바른 자세와 걸음걸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의 아치가 적절한 형태를 유지하고, 발목과 발바닥 근육이 충분히 강해야 한다. 이는 정형외과적 문제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전신 골격의 균형을 잡아주고 몸의 면역력까지 높여준다. 발은 몸의 가장 말단에 위치해 있지만 혈액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는데 발바닥의 근육과 정맥은 걷거나 뛰는 동안 압력으로 혈액을 심장으로 다시 보내는 펌프 역할을 한다. 특히 발목을 움직일 때마다 발바닥 근육이 수축하면서 혈액이 위로 이동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발이 건강하지 않으면 이러한 펌프 기능이 약해져 정맥류나 부종 같은 순환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발의 혈액 순환을 개선하려면 규칙적인 스트레칭과 마사지가 도움이 된다. 또한 편안하고 적절한 신발을 착용해 발의 피로를 줄이고 혈류를 원활히 해야 한다. 또 꾸준한 운동은 발뿐만 아니라 전신의 구조와 혈액 순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발 건강을 지키는 실천 방법으로는 첫째 적절한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의 아치를 지지하는 쿠션이 있는 신발을 선택하고 발이 편한 신발을 착용해야 한다. 좁거나 굽이 너무 높은 신발은 발목에 무리를 주고 발가락의 변형을 주니 피하는 것이 좋다. 예쁜 신발 보단 유명한 브랜드에 내 발이 편한 신발을 착용하자. 규칙적으로 발목 돌리기 발가락 스트레칭 등 간단한 운동을 통해 발의 유연성과 혈액 순환을 촉진할 수 있다. 심심하면 움직여 주자. 스트레칭 후 발 마사지를 하고 족욕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발 마사지를 하거나 따뜻한 물로 족욕을 하면 혈류가 개선되고 근육 긴장이 완화 된다. 과도한 체중은 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좋으니 저녁 운동 후 간식은 먹지 않는 게 좋다. 발은 골격의 토대이자 건강의 시작점이다. 발 건강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전신 골격의 균형과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많은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발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고 건강한 발을 위해 작은 습관부터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만있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내가 행동하고 실천하면 나의 건강은 조금씩 개선된다.

2025-01-22

부자는 부자와만 결혼한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한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맥’(脈·인간과 사물이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으로 끝나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 나라다. 인맥, 학맥, 혼맥 등을 일상에서 흔히 듣게 된다. 여전히 엄존하는 유교적 전통과 어떤 것이건 동질성을 가진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성정 탓일 게다. 실제로 사회생활에 인맥과 학맥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집안에 출세한 어른이 있다면 친인척의 아들과 딸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각 지역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문끼리 정기·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중년과 노년세대는 인맥과 학맥처럼 혼맥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 집 사위가 행정고시를 패스 했다더라” 혹은, “저 집 며느리는 쟁쟁한 가문의 딸인데…” 등은 그 사위와 며느리를 얻은 집안의 자랑이 되기도 한다. 고루한 이야기지만 현실이 그렇다. 최근 한 경제일간지엔 앞서 언급한 혼맥과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실렸다.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불리는 서울 서초구. 그곳 고가 아파트에 사는 젊은 남녀 수십 명이 단체미팅을 했다고 한다. 잘 차려진 요리를 먹고, 와인을 마시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부잣집 자녀들. 이는 분명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를 가진 자신들의 ‘급’에 어울리는 사위와 며느리를 얻고 싶다는 그들 부모의 뜻이 반영된 미팅이었을 터. 인맥, 학맥, 혼맥 등에서 벗어나 개인의 능력과 자질이 인간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이 되는 세상이 오기 전엔 씁쓸하지만 이런 세태가 지속되지 않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