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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해의 절해고도 어청도, 그 전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어청도(於靑島)는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다. 군산에서 약 72km 떨어져 있는데, 중국에서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중국 산둥반도와는 약 300Km 정도의 거리라 어불성설이다. ㄷ자형으로 움푹 들어간 어청도항구는 태풍 때마다 선박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어청’이라고 하면 대부분 바다와 연관된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어청도는 ‘물고기 어(魚)’가 아닌 감탄사의 의미인 ‘어조사 어(於)’, 맑을 청(淸)이 아니라 푸를 청(靑)자를 쓴다. 섬 이름에 얽힌 이야기는 역사적 사료와 전설이 혼재된 구전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청도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오호도’라 부르기도 한다. 진시황이 죽은 후 제나라를 세워 왕 노릇을 하던 전횡 장군이, 한나라 유방에게 쫒겨 부하 500여 명과 돛단배를 타고 서해에서 3개월 동안 표류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안개가 자욱하였는데 갑자기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고 한다. 전횡은 얼마나 반가웠던지 자신도 모르게 “아! 푸르다”라고 외쳤고, 그 감탄사가 그대로 섬 이름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어청도에는 전횡 장군의 사당인 ‘치동묘’가 있고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치동’은 제나라 도읍지인 임치(臨淄)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어청도로 가기 위해서는 군산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타야 한다. ‘어청카훼리호’는 하루에 한 번 운항하지만, 4월에서 9월까지는 주말에 2회로 증편 운항한다. 오전 9시, 군산항을 출발하면서부터 좌측으로 많은 섬들이 점점이 흩뿌려진다. 얼마 전 지면을 통해 소개한 고군산군도의 주옥같은 섬 들이다. 횡경도, 방축도, 명도, 보동도, 말도 등이 확연하게 구분되면서 이어진다. 군산항을 출발한 지 40 여분이면 승선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측 바다로 향한다. 비경으로 일컬어지는 십이동파도의 절경이 한동안 펼쳐져서다. 십이동파도는 군산 외항 서쪽 38km 떨어진 군도로 12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1960년대까지 주민들이 살았으나 지금은 무인도다. 평화롭던 이 섬에 간첩선이 들이닥쳐 모자가 살고 있던 집에 침입해 아들을 납치하려고 하자, 어머니가 아들을 놓아두면 자신이 대신 가겠다고 자청했다. 그 이후 북으로 끌려간 어머니는 소식이 끊겨버렸다고 한다. 배가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면 멀리 전방으로 어청도와 외연도가 서서히 다가선다. 두 섬은 같은 행정구역에 묶일 법도 하지만, 어청도는 전북 군산시, 외연도는 충남 보령군에 속해진다. 조선 말엽까지만 해도 어청도도 충남 보령군 오천면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전북 옥구군, 1989년에 군산시로 편입되었다. 어청카훼리호 뱃머리 앞쪽에는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어 두 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군산항에서 어청도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소요 된다. 어청도항은 동과 서에 긴 방파제를 따로 쌓아 높은 파도의 접근을 막았는데, 빙 둘러싼 봉우리와 능선들이 항구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서쪽에서부터 당산과 공치산, 안산과 검산봉, 독우산과 돗대등 등이 마치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전방으로 신흥상회가 보인다. 어청도 승선 매표소 겸 섬을 일주하는 트레킹 시작점으로, 우측 뒤편으로 어청도 최고봉 당산과 석산 오름길 계단이 이어진다. 섬에 도착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숙소부터 찾는다. 그리곤 점심을 해결한다. 아무리 해기를 마음껏 들이켰다고는 하나,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여유 있는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배가 든든해야 한다. 탐방의 목적에 따라 코스가 정해진다. 섬 트레킹을 할 것인가, 아니면 여행을 즐길 것인가다. 여행코스는 단순하다.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면서 ‘치동묘’와 ‘어청초등학교 사랑나무’를 살펴보고, 팔각정이 있는 고갯마루에서 ‘붉은색 하트 조형물’과 ‘헨리 아펜젤러 목사’의 추모 비석을 살펴볼 수 있다. 아펜젤러 목사는 배재학당을 세우고 정동교회, 중앙교회 등을 설립한 인물이다. 한국어 성경 번역을 위해 목포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하려다 어청도 서북 바다에서 선박 사고로 순직했다. 당시 함께 배를 탔던 생존자에 의하면, 목숨을 잃는 그 순간까지도 동료와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하였다. 어청도 여행의 백미는 “어청도 등대”다. 1912년 일본의 정략적인 목적에 의하여 건설되었는데 군산항 및 서해안의 남북 항로를 통하는 모든 선박이 이용하는 등대다. 해안 절벽 위에 높이 14m의 콘크리트 건물로 지었는데, 그 불빛이 약 37km 떨어진 곳까지 비춘다. 삼각형 돌출지붕과 이를 장식한 꽃봉우리, 상부로 갈수록 좁아 드는 단면 처리 등이 주변 바다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특히 해가 질 때 등대 주변의 해송과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은 절대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이라고 한다. 트레킹 위주의 일정이라면 신흥상회 우측 뒤편의 데크계단을 오르면 된다. 어청도 최고봉은 공산, 해발이라야 지리산 천왕봉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173m 남짓이다. 노약자도 오를 수 있는 동네 뒷산 정도의 수준이다. 중간 지점인 팔각정은 길이 네 갈래다. 좌측은 어청도 등대, 우측은 마을, 그리고 직진 방향은 계속 이어 가야 할 능선 길이다. 팔각정에서 어청도 등대까지는 약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공치산을 넘어 계속 이어지는 능선은 어청도 트레킹의 백미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전망이 좋은 길인데 좌측으로는 외연열도가, 우측으로는 어청도항과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공치산에서 목넘 쉼터로 내려서는 길에는 한반도 지형이 펼쳐져 눈 호강을 하게 된다. 페이스에 따라 독우산 까지 연결이 가능하지만, 목넘 쉼터까지 되돌아와야 한다. 전체 트레킹에 소요 되는 시간은 약 세 시간 정도다. 어청도를 탐방하려면 숙식이 가장 중요하다. 민박을 겸하는 식당이 있지만, 사전에 예약해서 다녀올 것을 권한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자라면 특히 더하다. 어느 집이든 음식 맛이 비슷할 것 같지만, 아름 민박식당의 백반은 필자가 섬 여행 중에 먹어본 음식으로는 최고라고 자부한다. 반찬의 종류가 무려 11가지에 달한다. 어청도에서 군산항으로 돌아오는 배편이 이전까지는 하루에 한 번(오후 1시)이었지만, 4월부터 주말엔 두 번으로 증편됐다. 1박2일을 적극 추천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당일 여행과 트레킹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어청도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명품 섬이자 멋진 여행지다. /지홍석 수필가

2025-06-02

5060의 2030 사랑

‘자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자식 사랑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온전하게 소유한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식의 실패이므로, 모든 부모의 자식 사랑은 불완전하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결국은 자식을 망치는 왜곡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지 않은가. 자식은 활의 시위를 떠나가는 화살과 같은 존재이다. 활이 할 일은, 자식이라는 화살이 멀리 똑바로 나아가도록 최대한 자신을 휘어지게 하는 것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어디로 갈지, 얼마나 갈지, 활은 알 수도, 간섭할 수도 없다. 태어났지만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함께 있지만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생명 자체가 재생을 염원하는 그 염원의 아들이자 딸이다. 부모는 자식이 지은 생각이라는 집속으로도 결코 들어갈 수 없다. 충고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 우리들의 소중한 자식들인 2030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때는 귀엽고 순한 유치원생이었고, 중·고등을 지나 대학입시를 향해 달렸던 아이들이 지금은 취업난, 주거난, 관계의 단절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세월동안 2030들은 사이버공간에서 다시 탄생하였고, 그곳이 그들의 현실이 되었다. 5060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은 5060의 세계로 초대받는 것조차 꺼려한다. 이해하지 못하므로 대화는 단절되었다. 누가 누구를 이해하여야 하는지조차도 애매해졌다. 세대 차이가 아닌, 공유영역조차 없는 세대 단절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의 다른 인류들이 되었다. 밥상머리에서는 침묵이 흐르고, 5060들은 2030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들의 상당수는 페미와 잰더 갈등 속에서 공정이라는 단어의 개념조차 의심한다, 생명이 염원하는 따뜻한 체온의 교감을 멀리하고, 사이버공간의 차가운 위로를 선호한다. 부모와 자식이 갈라지고, 남녀가 갈라지고, 정치적으로 분열되었다. 활의 시위를 떠난 화살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얼마나 멀리 가버렸는지 5060들은 알지 못한다. 오호 통재라!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곳에 있는지 모른다.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사라졌고, 단절되었다. 무엇이 되어야 하며, 무엇을 이루어야 하며,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래서 남은 것이 무엇인가. 누군가 이기면 누가 져야 되며, 누군가 살아남으면 누군가 죽어야 되지 않은가. 이제 우리 모두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서로를 알아야 하고, 이해하여야 하며,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세계를 긍정하고, 사랑하여야만 한다. 무엇이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하였는지에 대하여 깊이 사유하여야 한다. 2030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누군가의 자식이다. 보라, 그들의 인생을. 어떤가. 잘 된 인생. 못 된 인생. 그런 저런 인생. 전부 다르지 않은가.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하여 자식의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 2030이 공정이라는 단어를 의심하였듯, 5060은 실패라는 단어를 의심하자. 세상엔 성공한 인생. 실패한 인생 따위는 없다. 다만 ‘그런 인생’이 있었을 뿐이다. 자식의 실패조차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사랑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으리라. /공봉학 변호사

2025-06-02

2025 조기 장미 대선 유감

오월 절반을 방송국 장미 담장에 붙인 제21대 대선 벽보 곁을 걸어 출퇴근했다. 나라의 두 번째 조기 대선 벽보다. 처음엔 속으로, ‘벽보가 붙었구나’하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얼마간 지나다니다가 어느 날, ‘벽보가 장미 담장에 붙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맞아. 불행히도 우리는 두 번째 조기 ‘장미 대선’을 치르는 거다.”라는 속말이 나왔다. 웹에서 장미의 꽃말을 찾았다. ‘사랑, 순수, 감탄, 우정 열정, 신비, 풍요, 기적, 재탄생’ 등 많은 꽃말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장미 대선은 2017년 5월 9일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 탄핵으로 임기를 못 채우고 퇴진하여 치러진 불행한 대선이었다. 언론과 정치권은 왜 이를 ‘장미 대선’으로 불렀을까. 2025 올해 조기 대선도 사전투표가 5월 29, 30일에 있었고, 당일 투표는 장미 피어있을 6월 3일이니 역시 ‘장미 대선’으로 불러도 좋겠다. 장미 대선은 공교롭게 두 번 다 우파 대통령 탄핵이 그 원인이었다. 또, 탄핵의 요인은 모두 여당 국회의원들의 내부 분열에 있었다. 여론에 휘말려 자당이 배출한 대통령에게 어떻게 탄핵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나라와 국민의 복리(福利)보다는 자기 정치적 이득을 앞세운 결과라는 게 범인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암튼, 진행 중인 두 번째 장미 대선에서 큰 선택의 분수령에 서게 된 국민 각자다. 나라와 나, 우리 가정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장미 대선은 정부나 정권 교체를 넘어 나라의 방향과 그 시스템 전반을 다시 점검, 고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나와 너, 우리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주권행사의 선거이다. 어제와 오늘 이틀간의 사전투표에서 중차대한 세 문제와 관리 부실의 여러 문제가 나타났다. 한데, 지상파나 종편 방송, 주류 신문 등의 보도는 관리 부실의 지엽적 문제만 주로 다루고 핵심 세 사안은 거의 외면하고 있다. 세 사안은 첫째,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사전투표자 수가 부풀려져 부정선거 방지대 등 선거 감시 요원들의 계수 수치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과 둘째, 용인 수지 성복동 사전투표소에서 회송용 봉투에 이미 1번 후보를 기표한 투표지 한 장이 들어 있는 사실을 발견자가 경찰에 신고한 사건과 셋째, 내한해 활동하고 있는 ‘국제공정선거연합(NVEIA)'과 '국제선거감시단(IEMT)’의 활동과 성명발표 등이다. 5월 29일 발표된 ‘국제공정선거연합 선거감시단 성명서’는 한국 선관위의 고발 조치, 정치적 중립성 의문, 사전투표관리관 도장 미날인, 자유롭고 공개적 비판과 논쟁 불수용의 5요소를 지적했고, 선거 기간의 정치적·법적 조치 전반에 대한 종합적 국제 보고서를 작성, 배포하겠다고 말했다. 2025 조기 장미 대선도, 사전투표자 뻥튀기 같은 부정선거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일 사실이면, 이는 나라의 미래가 ‘일당의 괴물 독재’에 빠진다는 징표다. 하지만, 먹구름 아래서도 좋은 꽃말의 장미가 피어나는 하늘의 섭리를 믿고, 당일 투표에 꼭 나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후보를 뽑겠다. /강길수 수필가

2025-06-02

불심(佛心)은 중생심(衆生心)

세상의 논란, 소용돌이의 한 귀퉁이에 서 있어 마음 편할 수 없는 나날이다. 지난 31일, 토요일, 서울대학교 신양학술정보관에서 설악무산(雪嶽霧山) 스님을 추모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헤아려보니 벌써 어언 7년. 2018년 5월 26일 원적에 드셨다. 세수 87세요, 승납 60세이셨다. 그때 최동호 선생님, 권성훈 시인과 함께 마지막 누워계신 곳으로 갔을 때, 병풍 뒤 유리관 안에 계신 스님께서 눈을 반짝 뜨시고, 너 왔느냐, 하셨다. 유리관에 맺힌 이슬이 마침 스님의 감으신 눈에 맺힌 것이다. 다시 살아나셔, 한 말씀, 제대로 살라, 하시는 듯했다. 사제이신 홍사성, 김병무 선생이 엮으신 ‘무산 스님의 방할’, 생전의 스님 언행과 법문을 담은 책이 있다. 이를 보면, 무산은, 대승불교의 정신은 불심(佛心), 부처님의 마음은, “중생심(衆生心)”, 중생의 마음에 있다 하시며, 스님들이 좋은 곳에 앉아 덕담만 하면 어찌 부처님이 되겠느냐, 저자거리에 시장바닥에 나가보라 하셨다. 불경에 전하는 화두(話頭), 1700 공안(公案)에 속지 말라시며 뜰 앞에 있는 나무가 잣나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떻겠느냐고도 하셨다. 옛날 중국 조주 스님의 문답에, 어느 스님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을 물으니, 스님 답하시기를,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뜰 앞의 잣나무라 하셨다는 것이다. 불법의 이치를 묻는 스님에게 그 실상(實相)을 보라 하셨다는 것인데, 그야 내가 제대로 알 리 없다. 무산은 화두에 묻히지 않도록 안거(安居) 수행을 끝내고 산문을 나서는 스님들께 해제 법문에서 그렇게 이르셨다는 것이다. 세속 세상, 보통 사람들, 서민들 살아가는 곳에 나아가, 수행에서 얻은 것이 참 깨달음인지 아닌지, 제대로 얻은 것인지 아닌지, 제대로 한 번 자문해 보라, 하셨다는 것이다. 시비인(是非人)이 되지 말고 무사인(無事人), 일상 자체를 수행으로 여기는, 애써 구하려 하지 않는, 생각을 내려놓고 볼 줄 아는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도 경계하시기를 그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그 혼탁한 가운데 불의가 정의가 되고, 권력이 저항으로 둔갑하는 마당에, 옳고 그름을 가려 그 세상이 언제까지, 어디까지 그렇겠느냐고 매서운 추위의 겨우내, 시절 좋은 봄에도, 세월 가는 줄 몰랐었다. 시비(是非)에 묻혀, 저 숲속의 마르고 구부러진 나무 되기를 꺼리고 세속 세상에 나와 싸우려 하기를 거듭했다. 사제 되신 분께 그분의 사유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느냐 여쭈니, 수행해서, 참선해서 부처님 되신 후에, 중생을 구하려 하는 불교에서, 부처처럼 살아가야 부처가 되는 도리로, 중생 속에서 부처의 삶을 살아야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그래서 화두 수행이 공허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수행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이루신 것이라 한다. 중생들의 삶이, 내게 제대로 비추이도록, 나 또한 중생의 하나임을 잊지 않도록 마음 거울을 닦아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세상 마음’이 투명해지도록.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6-02

축구가 뭐길래

일단 지난 1일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나라 외신 보도를 요약한 걸 읽어보자. ‘...(전략) 군중이 폭력사태를 일으켜 적어도 2명이 목숨을 잃고 200명 가까운 사람이 다쳤다. 뿐 아니다. 소요를 진압하던 경찰관이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건도 일어났다. 프랑스 내무부는 그날 밤 파리에서 491명, 다른 지역을 합하면 559명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전했다.’ 유럽에 전쟁이 일어났냐고? 아니다. 놀랍게도 프랑스 축구팀인 생제르맹(PSG)의 2024~2025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일으킨 소동이란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축구에 이겨서 좋다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불이 붙은 폭죽을 쏘고, 위험한 물건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니 대체 ‘축구가 뭐고, 우승이 뭐길래’란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그날 밤. 10대 소년이 칼에 찔려 사망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경적을 울리며 과속하는 자동차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 경찰은 흥분한 군중을 진압하기 위해 물대포까지 동원했다고. 이게 무슨 난리인지. 비단 프랑스 축구팬만의 문제는 아니다. ‘훌리건(hooligan)’이라 불리며 걸핏하면 경기장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영국 축구팬, 자책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축구선수를 총으로 쏜 콜롬비아 축구팬은 또 어떤가? 한국 역시 예전엔 축구나 야구 등 프로 스포츠 경기장에서 발생한 폭력사태가 드물지 않았다. 축구는 이기는 팀과 지는 팀이 있는 스포츠의 하나일 뿐이다. 맞붙는 두 팀은 ‘전쟁’이 아닌 ‘경기’를 할 뿐이고. 그러니, 팬들도 제발 지나치게 흥분하지 말고 그냥 축구는 축구만으로 즐기시길.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02

녹색도시를 향한 여정의 이정표, 세계녹색성장포럼

전 세계적으로 이상 고온과 극한 호우, 초대형 산불 등이 이어지며 인류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기후위기가 글로벌 이슈가 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체결하며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하는 등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의 핵심인 산업과 에너지의 대전환을 위해 주요 국가와 기업은 물론 각 지자체들도 차별화된 탄소중립 전략을 추진하며 새로운 패러다임 주도권 확보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위해 ‘저탄소 신산업 육성’과 ‘친환경 녹색 인프라 확충’을 준비해 왔다. 제철산업으로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견인해 온 저력을 토대삼아 10여 년 전부터 이차전지‧수소‧바이오 등 탄소중립 시대를 앞당길 신산업으로 산업구조를 다변화해왔다. 그 결과 이차전지의 경우 또 다른 주력산업으로 성장했고, 3대 신산업에서 모두 특화단지에 선정되며 새로운 생태계를 마련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철강의 저탄소 고부가가치 기술 확보 등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아울러 친환경 녹색도시 종합정책인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태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세먼지 차단숲 등 76만㎡의 녹색 인프라를 늘렸고, 주요 도시숲 5개소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 승인받았다. 철길숲으로 대표되는 그린웨이의 결실들은 국내외 녹색도시‧경관조성 평가에서 수상하면서 탄소중립 선도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해온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시가 추진해 온 녹색정책의 발자취와 향후 미래 비전을 세계에 알리고 협력과 연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회의인 세계녹색성장포럼(WGGF)를 지난달 처음 개최했다. 특히,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녹색성장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상협 글로벌녹색성장기구 사무총장, 최재철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청년과 기업, 국제기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참여해 탄소중립에 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실천적인 기후행동 방안을 논의하는 등 뜻깊은 시간이었다. WGGF개최를 통해 우리시와 같은 지방도시도 글로벌 아젠다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정책을 발전시켜나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역량과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만큼, 향후 문을 열 예정인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와 연계해 포럼의 위상과 규모를 점차 키워나가고자 한다. 한편, 포럼을 통해 탄소중립을 위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우리 앞에 놓여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 주력산업을 넘어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철강과 이차전지는 내년 시행을 앞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더욱 현실적인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철강의 경우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등 그린철강으로 나아갈 돌파구가 필요하고, 탄소중립 핵심기술이라 불리는 이차전지 또한 글로벌 캐즘의 파고를 넘을 기술혁신 등 활로를 열어야 할 중차대한 시기이다. 주요국들은 국가 경제 안보와 직결된 이들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철강‧이차전지 지원 특별법’과 같은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은 물론 산업계, 학계 등이 모두 힘을 모아야한다는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탄소집약적 산업인 철강도시에서 친환경 녹색도시로 전환하며 산업과 환경이 공존하는 해법을 찾아가는 포항의 여정이 국내외에 울림으로 전해지길 희망한다. 그 선상에서 세계녹색성장포럼이 스위스의 다보스포럼처럼 포항을 세계적인 녹색 전환의 메카로 각인시킬 포항만의 시그니처 국제회의로 자리매김해 지속가능한 길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되길 또한 소망한다.

2025-06-01

과습(過濕)

베란다 고무나무가 얼마 전부터 이상하다. 몇 년간 계속 싱싱하고 푸르게 키가 쑥쑥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새파랗고 팽팽하던 잎이 시들시들해지더니 누르스름하게 변했다. 식물이 잘 크기 위해서는 온도와 빛, 환기 그리고 물주기가 필요하다. 화분을 여기저기 옮기지 않고 같은 장소에서 계속 키웠으니 온도, 빛, 환기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물을 규칙적으로 주었는데 혹사 건조했던 것일까 생각했다. 어차피 키가 쑥 커서 분을 바꿔야 하나 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일단은 분갈이를 해 보기로 했다. 화분에 뿌리가 꽉 차 있다. 잘 빠지지 않아 이리저리 돌리다 결국 위에서부터 흙을 살살 털어냈다. 땀을 뻘벌 흘린 끝에 겨우 나무를 분리시켰다. 뿌리가 서로 많이 엉켜있는 가운데 부분은 물이 스며들지 못해 건조했고 가장자리 흙은 축축했다. 그리고 그 부분의 뿌리는 썩어 있었다. 결국 과습으로 탈이 난 것이었다. 요즘 뉴스를 검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7세 고시라는 말이 나온다. 초등학교 입학 전 나이의 아이들이 서울 강남 대치동 사교육 중심지의 상위권 영어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을 일컫는 말이란다. 학원에 따라 문제는 좀 다르겠지만 주제를 주면 의견이나 결과를 도출해 15분 정도 후 영어로 작성하는 문제도 있다고 하니 난이도가 굉장히 상당히 높다. 한국어로도 그 나이에 그만큼 이야기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4세반이 운영되기도 한다. 일명 새끼학원인 셈이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다. 7세 고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이의 자기 주도성과 행복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일찍부터 남보다 나은 위치를 선점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빚어낸 사회 형태이다. 여중교사로 재직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 근처에는 사립초등학교가 두 군데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배정을 받은 아이들은 입학 전 학력평가 시험을 본다. 학생들의 기초 성적을 측정하기 위함이다. 시험 결과를 보면 반 10등 안에 사립학교 졸업생들이 7명 정도 들어와 있다. 그러나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치르는 기말고사 결과를 보면 10명 안에 사립초등학교 졸업생은 3명 정도만 남게 된다. 거의 매년 비슷한 분포였다. 그 당시 사립학교는 일반 공립학교보다는 경험의 기회가 많았다. 영어나 운동 등을 학교 자체에서 실시하는 일이 많았다. 공부하는 면이나 문화적인 면에서 공립학교 학생들보단 선행학습을 할 기회가 열려 있었다. 학력 측정 검사에서 사립학교 학생이 상위권에 많이 포진할 수 있었던 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사립학교를 보낼 정도로 큰 학부모의 열정은 또 다른 원인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의 교육열에 따라 아이의 성적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학습의 양이 늘어나면 부모의 재촉이나 열정만으로는 성적을 유지하기 어렵다. 중학교에 가서부터는 학교나 학원에서 듣는 공부도 즁요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학습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기 시작한다. 엉덩이가 무거운 아이가 공부를 잘 한다는 말은 그냥 나온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의 교육열이 높은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다른 물적 자원을 많이 갖지 못해서 인적자원에 대한 열망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그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지금의 부를 형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들이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번역기를 사용하면 외국인과의 소통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한글로 쓴 글씨를 번역기를 돌리면 바로 필요한 외국어로 바꾸어준다. 이렇게 쉽게 사용할 번역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도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7세 고시가 아니다. 내 아이가 그런 선행학습을 받아들일 그릇이 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일이니까. 사실 그것을 안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과습으로 죽어가는 나무의 썩은 뿌리를 잘라내었다. 새 화분에 넉넉히 흙을 부어 고무나무를 다시 심었다. 앞으로 누르스름한 잎을 떨쳐내고 다시 푸르고 싱싱한 잎을 피울 날을 그려보면서. /시조시인 전영숙

2025-06-01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는 무시당한다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최종투표율이 34.74%다. 2022년 대통령 선거 최종투 표율이 77.1%였으니, 절반 가까운 유권자가 이미 투표한 셈이다. 지역별로 사전투표 참여율이 크게 차이가 난다. 대구가 25.63%로 가장 낮고, 전남이 56.5%로 가장 높다. 두 배가 넘는 차이다. 뒤이은 지역을 봐도 서고동저(西高東低)가 뚜렷하다. 부산(30.37%)·경북 (31.52%)·경남(31.71%)·울산(32.01%)이 대구에 이어 가장 낮았고, 전북 (53.01%)·광주(52.12%)가 전남에 이어 가장 높았다.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구의 사전 투표율(33.91%)이 낮았지만, 올해보다는 8.28%포인트 높았다. 전남은 그때도 51.45%로 가장 높았지만, 올 해는 5.05%포인트 더 높아졌다. 차이가 더 벌어졌다. 아무래도 부정선거 음모론의 영향을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1번과 2번 지지자의 사전 투표율 차이는 지역별 투표율 차이보다 더 클 것이 틀림없다. 사전투표는 유권자 편의를 위한 제도다. 거주지와 직장이 멀리 떨어진 유권자, 출장·질병 등으로 투표소 가기 어려운 사정이 생긴 유권자 등이 투표할 수 있게 해준다. 2013년 재·보궐선거에 처음 도입돼, 2014년 동시 지방선거 때 전면 실시됐다. 대통령 선거에 적용된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선거다. 그 이전에도 부재자 투표가 있었다.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기 어려운 사람은 우편투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고 절차가 복잡하고, 특정 조건에 맞아야 가 능했다. 그런데 사전투표는 전국 어디서나, 누구든지 할 수 있다. 투표자에게는 본투표보다 더 편리하다. 본투표를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이 이용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사전투표를 꺼린다. 부정선거에 이용될까 두려워한다. 사전투표를 배제하면 아무래도 투표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같은 조건이라도 사전투표 이틀을 포함해 사흘 동안 투표하는 진영이 하루만 투표하는 진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된다. 부정선거를 비난한 윤석 열 전 대통령이나 음모론에 기울었던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도 직접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사전투표를 배제하면 불리하기 때문이다. 유튜버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면 이를 믿는 구독자들이 슈퍼챗을 쏠 수 있다. 음모론을 더 강력하게 주장하면 할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그러나 후보로 서는 음모론을 주장할수록 지지자의 투표율이 떨어지고, 선거에서 불리하게 되는 모순이 생긴다.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한다. 그렇지만 당장 선거에서는 불리하다. 선거가 시작됐는데도 음모론을 퍼뜨리는 건 선거의 승패보다 다른 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 측은 선거 부정을 잡아내겠다며, 투표소 앞에서 사전 투표자 숫 자를 세었다. ‘참관인 노트’에 바를 정(正)자를 썼다. 전 목사는 “모든 부정선거는 사전투표에서 다 일어난다”라면서 “민주당 의석 중 절반은 가짜, 이번 대 통령 선거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물론 선관위의 관리에 문제도 많았다. 서울 신촌 사전투표소에서는 투표지를 들고 투표소 밖에서 기다리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강남에서는 선거 사무원이 남편 신분증으로 투표지를 받아 대리 투표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 부천의 사전투표함에서 지난 총선 때 사전투표한 용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사전 투표율은 서고동저였다. 최종투표율도 같은 현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본투표까지 포함하면 광주(81.5%)와 대구(78.7%)의 투표율 차이가 2.8%포인트에 불과하다. 본투표를 열심히 해 전체 투표율을 올렸다. 선거에 부정 소지가 있으면 안 된다. 철저히 막아야 한다. 제도적 결함이 있다면 보완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구체적 증거도 없이 음모론을 퍼뜨리 는 건 제 발등을 찍는 일이다. 사전투표는 이미 끝났다. 사전투표건, 본 투표건 중요한 건 투표하는 것이다.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의 권리는 누구도 보장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두려워하는 건 표를 찍는 유권자다. 두 배가 넘는 사전투표율 차이를 메우려면 본투표를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01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그날 하늘에 떠 있던 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별들의 유서/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했다/ 먼 옛날 먼 바다에 누가 빠져죽을 때 태어난 파도가/ 그제야 발치에 닿기 시작했다// 너는 뭐라 말을 하는데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했다/ 서로 등을 돌린 채 잠이 들었던 밤에/ 진작에 닿았어야 했을 말들은 여정을 떠났다// 숨막힐듯 느리고 낮게 말이 기어오는 동안/ 등과 등의 간격은 은근하게 멀어지고/ 그 사이로 낯선 바람이 불었다// (중략) 한참을 멍하다가 한 시절이 지나다가/ 그제야 나는 문득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시각 먼 바다에는 또 누가 빠져 죽고/ 어느 별은 유서를 쓰고 있었다” -(강백수, ‘레이턴시’, 시집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문학수첩, 2020) 레이턴시(latency)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생기기까지의 시간, 흔히 ‘지연속도’라고 일컬어지는 통신용어다. 주로 음향 녹음 시 오디오 인터페이스에서 실제 소리의 발화보다 녹음이 늦게 되거나 영상 송출 과정에서 비디오 화면과 음향 싱크가 맞지 않는 것을 레이턴시라고 한다. 시인인 동시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인 강백수에게 레이턴시는 무척 익숙한 현상일 테다. 위 시에서 시인은 레이턴시를 “그날 하늘에 떠 있던 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별들의 유서”라는 천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사실 수억 광년 전에 소멸한 별들의 잔상이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빛나는 현재적 광채 같이 보여도 이미 죽어버린 과거의 빛일 뿐이다. 빛의 속도는 유한하기에 빛이 은하계에서 지구까지 아득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에는 영원처럼 캄캄한 레이턴시가 늘 발생하게 된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세계의 물상들에도 레이턴시가 작용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들은 과거의 모습이다. 가까이 있는 물상의 경우 레이턴시의 시차가 매우 짧을 뿐이다. 다시, “그날 하늘에 떠 있던 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별들의 유서”에 불과하다. 현재를 구성하는 불행의 요소들, 지금, 여기에 작용하는 온갖 불평등과 부조리들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기성의 관습일 뿐이다. 강백수는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해요. 너희 잘못이 아니라고, 지금의 절망은 곧 사라질 허깨비라고, 그러니 쫄지 마, 주눅 들지 마, 위의 시가 수록된 시집 제목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하”자고!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 월터 미티는 일상을 벗어나는 어떤 모험도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LIFE’ 잡지사의 사진인화기사로 일하는 그는 표지 사진으로 쓰일 필름이 분실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필름을 찾으러 그린란드로 날아간다. 그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애 가장 특별한 모험에 몸을 던지게 된 것이다. 세상은 그런 그의 순정한 노력과 열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는 이미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곧 회사에서 쫓겨날 월터가 출장 가방을 들고 달려가는 동안 영화는 라이프지 과년호들, 공항 전광판 문구와 활주로 표지 등을 통해 인상적인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라는. 대선이 열리는 초여름에 이 시를 다시 읽는다.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따르라고 굴종을 강요하면서, 후속 세대가 정형화된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면 바로 길을 폐쇄해버리는 기성세대의 지독한 탐욕으로 인해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계층의 양극화와 청년 세대의 절망이 극에 달한 디스토피아가 되어가고 있다. 제 자식에겐 아프지 말라고 하면서 남의 자식에겐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자들의 천 마디 ‘명언’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쓰러지고 소리 내어 울며, 그럼에도 일어나서 바보처럼 웃고 키스하고 다시 노래하는 시인의 시야말로 격의 없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우리와 무관한 어제로부터 비롯된 오늘의 우울과 학습된 패배감에 함몰되는 대신 너와 나, 우리,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면서 키스를 하자고, 주어진 순간들을 그저 살아내자고, 시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병철(시인)

2025-06-01

적당한 크기의 사랑

최근 물고기를 키우게 됐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영상을 보게 되었고, 점점 영상 속 물고기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언젠가 물고기를 키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회사 근처에서 물고기를 파는 가게를 발견하였고, 나는 그곳에 입장하자마자 홀린 듯이 암수 한 쌍의 구피 두 마리를 구입하게 됐다. 초보자들이 가장 키우기 쉽다는 알비노 구피는 암컷 약 6cm, 수컷 약 3cm로 가늘고 긴 몸통을 가졌다. 수컷은 몸통이 화려한 푸른색을 띠고 있고, 암컷은 수컷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밝은 개나리 색을 띠고 있어 구분이 쉽고, 관상용으로도 훌륭하다. 처음엔 단순히 물고기 두 마리와 어항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단 두 마리를 키울 뿐인데도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물고기들이 지낼 충분한 넓이와 높이의 어항, 자동 히터기, 온도계, 여과기, 수질 정화제, 필터, 조명 등이 꼭 필요했고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어항을 놓은 공간은 물고기 들을 위한 용품으로 가득 마련되어 있었다. 이 작은 존재들은 참 신기하다. 25cm 남짓한 작은 크기의 어항이 자신들이 살던 바닷속으로 생각하며 유유자적 헤엄친다. 열대어이기 때문에 온도는 늘 26도로 맞춰주어야 하고 적당한 빛의 세기와 필요한 만큼의 산소도 챙겨주어야 한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더니 어느덧 암컷의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있다. 수컷의 배지느러미를 통해 교미를 한 것인데, 신기하게도 단 한 번의 교미 만으로도 암컷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다. 한 달에 한 번씩 임신을 하고 새끼를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굉장히 강하지만, 현재 어항 속 남아있는 새끼들은 다섯 마리도 채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자신이 낳은 새끼를 몰라보고 먹이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새끼를 모조리 먹어 치우기에, 애써 작은 치어통에 치어들을 분리해 놓아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물고기들을 보살피다 보며 어느덧 작은 어항 속 세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게 확장되어 있다. 두 마리의 구피와 한 인간이 이룬 어항 속 세계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눈꺼풀이 없기 때문에 인간처럼 눈을 깜빡이지 않고도 하루 온종일 까만 눈을 부릅 뜬채로 헤엄치는데, 그 모습이 기이하면서도 무언가 평화로운 마음이 들게끔 한다. 밥은 하루에 한 번, 출근 전에 전용 스쿱으로 작게 한 스푼을 떠서 수면 위로 뿌린다. 밥이 수면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면 기다렸다는 듯 주둥이를 빠르게 휘저으며 밥을 먹는다. 수면 위의 먹이가 어항 아래 깔아둔 투명한 돌 조각 사이사이에 가라앉게 되면, 물고기들은 돌 속을 파고들며 남은 먹이를 찾기 시작한다. 온 몸을 사용해서 먹이를 먹는 동안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의 돌덩어리가 들썩이고, 저런 작은 몸집을 가진 생명체가 아주 바쁘게 움직일 수 있단 사실에 감탄하며 출근을 잊을 정도로 멍하니 보게 된다. 먹이를 주는 날을 까먹었다거나 집을 며칠 비울 때면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매시간 구피들이 사는 물을 들여다보고, 온도계를 체크하고, 먹이를 조절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온도는 26도로 잘 맞춰져 있는지, 먹이는 손톱의 흰 반달부분 만큼만, 아주 작은 크기의 치어들을 잡아먹지 않았는지 체크한다. 그렇게 익숙히 사랑을 돌보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같은 온도로 비슷한 사랑의 크기를 주는 것, 너무 과하면 상대가 괴로워하고, 너무 부족하다면 미동도 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만드는 무력감을 보여주는 작은 물고기들처럼. 이유를 알 수 없어 사랑이 괴롭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이 덥거나 추운건지, 공기가 나쁜 건지, 또는 괜찮은 건지, 배가 부른 건지, 고픈 건지도 모르게 그저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탈이 나곤 했던 날들이. 마음 속 돌멩이를 들추는 수많은 밤들 사이에서 나는 잠 못드는 아이처럼 난처하게 울먹였지만 이젠 적당한 크기의 사랑을 잊지 않고 주어야 하는 때를 안다. 몇 종의 물고기가 어항을 떠났고, 또 새로운 생물들이 채워지고 있다. 적당한 정도의 관심과 사랑. 어렵지만 나날이 배우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5-06-01

정치와 막말

“과거 ‘여자는 밤에만 쓰는 것’, ‘주막집 주모’ 등 발언한 적 있느냐” “대통령 앞에서 깐죽거리고 했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나” 도대체 듣고 있기가 쉽지 않다. 대선 국면에서 쏟아지는 막말들 말이다. ‘춘향이’ 운운한 어떤 발언은 입에 담기도 어려워 여기 적을 수조차 없다. 내란 정국 때는 ‘계몽’과 ‘요원’이란 단어가 히트(?)더니, 근래엔 ‘깐족’과 ‘아부’, ‘키높이 구두’와 ‘눈썹 문신’이란 말이 유행인가보다. 기억에 남는 정책이나 국정철학은 없고 오로지 ‘비아냥’과 ‘조롱’만 남은 모 정당의 토론회를 보고 있자니, 저들에겐 과연 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이나 책임감 따위는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대통령 파면으로 시행되는 엄중한 대선인데, ‘비상계엄’과 ‘탄핵’마저 희화화되고 있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공론장에서의 말(Lexis)과 행위(Praxis)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때 말과 행위는 전혀 다른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정치인의 발언은 그 수행적인 힘을 대의하는 자리에서 발화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언어의 생산과 교환은 일정한 언어 자본을 갖춘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상징적 권력 관계 속에 자리 잡는다고 논한 바 있다. 언어 교환의 권력 관계는 제도적이든 아니든 그들이 집단으로부터 받고 있는 인정에 따라 상이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누구든 말할 수 있고, 명령의 의미를 발화할 수 있지만, 필요한 권위가 결여되어 있는 자에게 그것은 ‘행위’가 될 수 없으며, 단지 ‘말’로만 남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의 말은 수행적인 힘을 갖는다고 여길 수 있다. 그만큼 책임이 동반되는 행위라는 거다. 말하는 자는 자신의 발화가 ‘언어의 장’에서 어떻게 수용될지에 대해 나름의 예측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와 담론은 언제나 ‘완곡어법’이자 ‘타협’이라 할 수 있다. 언어는 ‘잘 말하려는’, ‘적절하게 말하려는’ 전략적 수정의 결과이기에 ‘완곡어법’이며, ‘말해야 하는 것’과 ‘표현되는 것’ 사이의 긴장 속에서 발화 형태가 결정되기에 일종의 ‘타협’인 것이다. 그런데 언어의 수용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예측은 의식적인 계산으로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언어적 아비투스(habitus)의 영역이라 수용가능성에 대한 감각, 혹은 자신이나 타인의 언어생산물의 잠재적 가치에 대한 감수성에서 기능한다. 이점을 비춰볼 때 막말을 해대는 정치인의 언어 감수성이 어느 레벨에서 작동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선 토론을 겨우 ‘말싸움’ 정도로 여기는 천박한 권위 의식과 경쟁심이 결합 된 언어적 결과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예전의 보수는 나름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위선이라도 부렸다. 위선이란 적어도 세간의 이미지를 의식하고 남들 눈치 정도는 보기 때문에 가능한 가식이다. 그럼에도 즉물적 감정에만 휩싸여 위선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저 오만한 권력이 언제까지 연명할 수 있을까? 토론 자리를 상대 ‘망신주기’의 기회 정도로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막말이 계속되는 한, ‘천박한 정치’에 대한 ‘고상한 대중’의 심판도 오래고 지속될 것이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6-01

더하기 빼기를 잘하자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선택의 순간을 자주 맞닥뜨린다. 작게는 오늘 무엇을 먹을까, 메뉴를 결정하는 일부터 크게는 대학 진학이나 결혼 등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선택도 있다. 그런가 하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출 같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선택도 있다. 그러나 선택의 순간에 우리가 얼마나 합리적 사고로 결정하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경우만 해도 잘못된 선택으로 시간 버리고 돈 버린 경우가 셀 수가 없이 많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졸업 후 진로도 생각하지 않고 결정하고, 결혼할 때도 노래 잘하기에 지나치게 점수를 많이 주었다. 모두 감정에 치우쳐 하나만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선택을 할 것이다.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항목에 지나치게 점수를 후하게 배분하고 다른 항목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런 조짐이 많이 보인다.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해서 지지하는 후보는 맹목적으로 숭배하거나 반대하는 후보에게는 적개심을 품기까지 한다. 어떤 유권자는 자기가 반대하는 후보자 유세장에 트럭을 몰고 가서 덮치고 싶다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게다가 주제별로 세 차례 토론이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일부 후보의 자극적인 질문은 대선 토론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올 정도로 후폭풍이 큰 상황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유권자들은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은 헌법 제4장 1절 66조에 있다. ①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②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ㆍ영토의 보전ㆍ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③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중국 고전 ‘대학’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의 단점을 알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의 장점을 알아서 합리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일을 염두에 두고 후보들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자. ‘더하기 빼기’ 기법은 장단점 비교에 도움이 된다. 이 방법을 개발한 사람은 에드워드 드 보노라는 의사인데, ‘수평적 사고’라는 용어를 만드는 등 사고력 향상 방법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더하기 빼기 기법’은, 정확하게 말하면 PMI(더하기 빼기 흥미)라서 항목이 하나 더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같은 명확한 선택지가 있는 경우에는 흥미 항목을 빼도 좋다. 먼저 자기가 적극 지지하는 후보와 경쟁하는 후보 두 사람을 선택한다. 그다음 후보들의 주요 정책을 뽑은 후 각 정책에 대해 긍정하는 근거와 부정하는 근거를 찾아 10점 척도로 점수를 매긴다.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면은 더하기 점수, 부정적인 면은 빼기 점수를 부여한 다음 합계를 낸다. 옷 하나, 휴지 하나를 사도 매장마다 브랜드마다 가격과 품질을 꼼꼼히 비교한다. 5200만 명의 삶이 달린 대통령을 뽑는 일이니만큼, 더하기 빼기를 잘해서 능력 있는 대통령을 뽑자.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6-01

자식 농사

우리 속담에 “자식도 농사와 같다”는 말이 있다. 농사를 짓는 일처럼 자식을 키우는 일도 제때 낳고, 낳은 자식은 잘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식을 농사에 비유한 것은 한국인이 농사를 전통적으로 중요시 여겨왔던 오랜 농본의식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한국인에게 농사는 먹고사는 삶의 전부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농업을 산업의 으뜸으로 삼는다는 철학이다. 백성의 생업이 농업에 달려 있고, 나라의 경제도 농업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내려져 있는 사상이다. 이런 농본주의 사상 속에서 자식 키우는 일을 농사짓는 것과 비유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농사를 통해 수확을 얻는 것과 같이 자식의 성공과 출세를 통해 우리의 부모들은 수확만큼의 큰 기쁨을 얻는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자식 농사가 잘됐다는 것은 반드시 자식의 출세나 성공만을 기준 잣대로 보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었다 하더라도 시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인물이라면 자식 농사가 잘됐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바른 인격과 인성을 지니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일 떼 자식 농사도 잘됐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다”는 말은 부모가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자식도 본받아 훌륭하게 자랄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아들의 도박 및 음란글 게재가 대선을 앞둔 정국에서 논란이다. 이 후보가 “잘못 키운 제 잘못”이라며 사과성 발언을 했지만 대선 판세에 악재가 될지 주목된다. 대선 후보들의 자식 농사는 후보들의 가정교육과 가풍을 살펴보는 주요 요소란 점에서 유권자들에게는 주요 관심사가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01

대선 토론회 유감

인간이 여타 생물과 다른 점은 여러 면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 근간은 언어에 있다.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인간의 기초적인 생존과 문화, 고도로 발전된 문명의 요체(要諦)다. 아울러 언어는 개인과 집단 혹은 종족과 민족의 본질을 드러내는 지표로도 작용한다. 어떤 민족의 언어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원형과 지향하는 종착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대선 토론회를 보고 들으면서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네 사람의 식견을 국민이 생중계로 확인하는 면접 형식이 텔레비전 토론회다. 그런 자리에서 후보들의 지적-정신적-인격적 자양분과 밑천이 드러남으로써 많은 국민이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토론회가 진행되었는지, 토론회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토론(討論)의 핵심은 ‘말’에 있다. 말의 다른 표기가 언어(言語)다. 개인이 활용하는 말과 표현은 그가 살아온 인생행로와 경험, 독서와 사유, 인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런 까닭에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예악사어서수’로 요약되는 ‘육예(六藝)’를 지식인의 기본적인 자질로 여겼다. 중세 유럽에서 문법, 수사, 변증 세 과목을 대학 교양과목으로 설정한 것도 같은 이치다. 토론의 전제는 경청과 인내 그리고 설득이다.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그와 나의 차이가 명백하게 변별된다. 그와 나의 차이를 알아야 나의 견해를 제대로 피력할 수 있다. 이런 작업에는 인내가 수반된다. 남의 말, 그것도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듣는 일은 그야말로 고도의 집중력과 절제된 예의범절이 선행조건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견해를 가진다. 다수 대중이 지배하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모든 개개인은 고유한 입장과 태도로 견고하게 무장돼 있다. 그런 까닭에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을 설득함은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그래서 최고 정치 지도자에게는 일반 대중보다 훨씬 많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고뇌의 경험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어느 대선 후보의 배설에 가까운 ‘젓가락’ 막말을 듣노라니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솟구친다. 툭하면 명문대 나왔다고 떠벌리는 자의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언어폭력이 끔찍하게 다가온다. 소크라테스는 말할 때 가져야 할 세 가지를 지적한다. “하려는 말이 사실인가,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필요한가, 필요한 말이라도 그 말이 선한가?!” 대선 토론회에 나선 후보자 가운데 누가 한 권의 시집, 한 편의 연극이나 영화를 진정으로 보았는지, 참 궁금하다. 그들의 빈곤한 언어와 의사 표현 방식과 그것을 강제한 엉성한 토론 규칙이 마음에 걸린다. 청소년들도 함께 본 토론회가 미래 세대의 자양분이 되려면 토론자들의 인격과 품위가 담보되어야 한다. 그것의 첫 번째 전제가 풍성한 독서와 인격이다. 정치 지도자는 분출하는 사적 욕망을 절제된 언어로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적-정신적-인격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정치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이 된 사람만이 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 아닌 자가 저지른 내란으로 치르게 된 대선 토론회를 본 나의 쓰라린 소감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6-01

조선 풍수지리학자 남사고 기록 ‘호미곶 지명’ 낭설? 정설?

요즘 포항관광 1번지인 호미곶의 유래를 설명하는 호미곶 새천년기념관의 전시물을 비롯한 각종 홍보자료에는 조선 중엽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가 그의 저술 속에서 이곳을 호미등(虎尾嶝)이라 기록한 것이 단초가 되었다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주장은 근거가 없다. 남사고가 지금의 호미곶을 호미등이라 기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에 걸쳐 몇몇 문헌에서 잘못 사용한 것을 뒤의 사람들이 확인 과정 없이 ‘퍼 나르다’ 보니 상당한 기간 와전된 채 정설처럼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백과사전에 소개된 남사고는 조선 중기 울진 출신의 학자로 역학, 천문, 지리에 통달하였으며, 동서분당, 임진왜란 등을 예언하였다 한다. 그러나 남사고의 고향이자 그의 기념관이 있는 경북 울진문화원에서 발간한 ‘격암선생일고역’에서는 ‘남사고비결’이니 ‘격암유록’이니 하는 풍수서들이 격암 선생과는 아무 관계없이 시대의 산물로 생성되어 세월 따라 전전하다가 더러는 호사가에 의해 문자로 정착이 됐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 세간에 남사고가 지었다고 알려진 풍수서는 남사고와 관련이 없는, 조작된 것들이다. ‘호미등’을 기록했다는 남사고의 저술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포항지역의 각종 자료에서 ‘호미등’을 기록했다고 하는 남사고의 저술을 조사해 보면 산수비록, 산수비결, 격암산수비록, 동해산수비록, 산수비경, 격암유록, 격암실기, 영남명승명당비기 등 무려 8가지나 된다. 그러나 이 8가지 책 중 현존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실체가 없는 책을 두고 여기에 호미등이라고 기록했다고 하니 난감하다. 다만 ‘산수비록’에 전한다는 ‘호미등’ 관련 기록 12자만 확인할 수 있다. ‘격암선생일고역’에 보면 ‘산수비록’에 실려 있다는 ‘호미등’ 관련 구절이 나온다. 이 책 증보편 끝에 “滄洲蓬萊山下有虎尾嶝明堂(格菴山水秘錄)”이라는 문장이다. “滄洲蓬萊山下有虎尾嶝明堂”은 “창주 봉래산 아래에 호미등이라는 명당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창주’가 호미곶과 가까운 구룡포의 옛 명칭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 말이 약 500년 전에 남사고가 지금의 호미곶인 호미등을 명당으로 지목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된 듯하다. 호미등의 남사고 관련설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산수비록」에 적혀 있다는 이 기록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호미등’은 현재 포항의 호미등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왜 그럴까? 현재의 구룡포읍을 ‘창주’라 부른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현 구룡포읍의 일제강점기 시절 명칭인 창주면(滄洲面)은 조선시대에 장기현(長鬐縣) 구역이었고,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기군 내북면과 외북면을 병합하여 창주면으로 명명되었으며, 1942년 10월 1일 구룡포읍으로 승격할 때까지 쓰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산수비록’ 속의 ‘창주 봉래산’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격암선생일고역’을 보면 임유후(任有後)가 쓴 ‘향현사상량문’이 있다. 이 속에 “滄洲直望靜玩嘉遯之爻閶闔高臨久鬱利見(후략)”이라는 구절이 있고, ‘창주(滄洲)’가 나온다. 창주는 글자 그대로 ‘푸른 물가’란 뜻인데, 여기서는 ‘신선이나 은자가 사는 곳’ 또는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산수 좋은 땅’을 의미한다. 봉래산(蓬萊山) 역시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고 하는 중국 전설상의 영산”을 말한다. 그러니 구체적 지명으로 봐선 안 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창주 봉래산’은 구체적 지명이 아닌 ‘신선이 사는 경치 좋은 곳’ 정도로 봐야 한다. ‘有虎尾嶝明堂’의 ‘호미등’도 구체적 지명이 아닌 ‘최고의 길지’란 뜻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남사고가 살았던 조선 중엽에 이곳을 호미등이라 불렀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는 낭설이다. ​포항지역에서 호미등과 관련하여 남사고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다. 1985년 2월에 영일군에서 현재의 호미곶에 장기갑등대박물관(현 국립등대박물관의 전신)을 개관한 후 영일군수가 박물관 앞에 장기갑호미등(長鬐岬虎尾嶝) 유래비를 세웠는데, 거기에 처음 등장한다. “大甫는 예부터 自然美觀이 秀麗하여 六堂 崔南善 先生의 朝鮮常識 地理篇에 大韓十景의 하나로 記錄하고 있으며, 朝鮮 明宗朝 風水地理學者 格菴 南師古 山水秘錄에서도 이곳을 虎尾嶝이라 하여 범꼬리라 부른다.” 이 비석에 격암 남사고의 풍수지리서인 ‘산수비록’에 호미등(虎尾嶝)이라 하였다고 적었다. 장기갑호미등유래비(1985)에서 처음 언급되고, ‘포항시사’(1987)에 기록된 후 ‘확대 재생산’ 과정을 거쳐 여기 저기 인용되면서 왜곡되었다. ‘호미등’ 지명의 남사고 관련설은 무척 흥미롭고 극적인 요소가 있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게 지역사회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너무 많이 왜곡·전파된 상태이다 보니 오류임이 알려진다 해도 이를 과연 되돌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설령 되돌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진실은 진실인 것이다.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5-29

6·3大選이 지역감정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 되길

정치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선거라는 정치의 결과물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투표되어야 하지만, 우리는 종종 감정에 휘둘리곤 한다. 이번 대선을 통해 우리나라는 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 빠르게 발전해왔지만, 그동안 소홀히 했던 공화정의 기틀을 마련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을 공화정으로 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좋은 국가의 필요조건이며, 공화 혁명은 이를 완성하는 충분조건이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좌우를 막론하고 수구 세력을 심판하는 도살장과 같았고, 한국사는 역사의 법정 역할을 했다. 이제 상대를 적으로 보는 대신, 희망의 경쟁 상대로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공화의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희망의 균형을 이루며 힘차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적을 타도하자!”라는 구호는 민주공화국을 자멸로 이끄는 지옥문과 같다. 공화혁명의 길에 들어서야만 자유 시민들이 공공선을 실현하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공화주의적 국민 통합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통합과 조정의 리더십이 부족한 정치인과 정치 세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을 특정한 명사로 고정시키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을 단순히 ‘유권자’, ‘의사’, ‘교수’로 규정짓는다면,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가능성과 역동성을 잃게 된다. 우리는 변화무쌍한 동사처럼 살아야 하며, 고정된 자아에 갇혀서는 안 된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그 사람의 본질과 대화하고, 상대를 인간 존재로서 대해야 한다. 스스로를 규정하거나 외부의 조작에 의해 한정된 ‘나’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사적 삶을 살며 역동적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모든 조건, 소유, 지위를 다 떼어내고 나면 우리의 본래 존재는 호수처럼 투명하고 바다처럼 역동적이다. 우리는 현재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동사들을 나열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공허감을 벗어나는 길이다. 저는 영·호남 지방인이 이번 대선에서 정치인들이 쳐놓은 거미줄 같은 사슬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지역감정의 망령을 떨치는 것이라고 본다.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하기 위해 순진한 국민들에게 뿌린 마취제와 같다. 이는 정치인들의 승리 외에 다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을 이용한 술수에 철저히 농락당한 이들은 영남과 호남 사람들이다. 영남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호남에서는 민주당 소속이 아니면 예수님이나 이순신 같은 인물도 공천이나 당선이 불가능하다. 결국 손해는 지역 주민들이 모두 떠안고 있다. 실제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공약이 부재한 상황이다. 공화정을 향한 선거 혁명이 이루어진다면 영·호남의 관계도 이유 없이 멀어진 관계가 아닌,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며 상생하는 가까운 관계로 변모할 것이다. 함께 국가 발전을 도모하며 지혜를 나누고 힘을 합치게 될 것이다. 대전 대덕, 대구, 광주 등의 민간 및 군 공항 이전지에 과학기술 혁신 연구 단지를 조성하여 국가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트라이앵글을 형성할 것이다.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2025-05-29

펫팸족 1500만명 시대

과거 애완(愛玩)동물이라 부르던 호칭이 요즘은 반려(伴侶)동물로 바뀌었다. 애완의 완(玩)은 장난감을 뜻하는 완구에 쓰이는 한자 말이다. 사람이 동물을 대할 때 장난감처럼 좋아하는 도구 정도로 여겼다는 뜻에서 나온 표현이 애완이다. 반려(伴侶)란 짝이란 뜻이다. 사람이 단순히 동물을 좋아한다는 의미를 넘어 사람과 동물이 동등한 관계라는 뜻이다. 동물도 사람과 감정을 교환하고 아픔을 나누고 소통하는 존재로 인정받는 사회적 흐름이 호칭까지 바꾸게 된 것이다. 2020년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동물의 정서적 가치가 인정되고, 그 생명과 복지를 위한 법적 보장의 길이 열리게 됐다. 학자들은 이때부터 반려동물이란 표현이 공식적 법률적 용어가 됐다고 한다. 최근 펫팸족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Pet+Family의 줄인 말로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반려동물의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약 30%에 이른다는 말이다. 열 집 중 세 집은 반려동물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과 관련한 산업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2015년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1조7000억원 정도였으나 올해는 4조원이 넘을 거란 추측이 나온다. 반려동물과 관련한 산업을 펫코노미라 부른다. 관련 분야로는 먹거리를 비롯해 영양제, 의류, 액세서리, 펫보험, 장묘업, 동물병원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런 사회적 추세를 반영하듯 대선후보들도 반려동물 의료비 경감 등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려동물 팔자가 상팔자라 할만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29

두 글자를 새기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 나는 아들에게 자주 말했다. 자신이 흘린 땀과 시간은 자아를 단단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험을 앞둔 날이나 대회에서 고배를 마신 뒷날, 작은 성취 앞에서도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성실하게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면 그 여정 속에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결과에 욕심낼 때가 있었다.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기원하거나 안정된 기업에 취업하기를 바랄 때는 부모로서 간절히 결과에 집착했다. 아들의 어떤 실패는 나 자신의 좌절보다도 더 아프게, 더 무겁게, 더 쓰라린 상처로 내게 남았다. 아들이 성취하고자 했던 것으로부터 멀어질 때면, 마치 실패의 날 선 조각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가슴팍을 긁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통은 자식뿐만 아니라 그를 품고 살아온 나에게도 전이되었다. 그래서 결과에 매달렸다. 이럴 때에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또한 살면서 과정이 중요한지, 결과가 중요한지, 내 마음속에서 의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 내게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준 여행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방문했을 때였다. 가우디의 흔적은 종교를 초월한 울림을 주었다. 돌마다 기도가 새겨져 있는 것 같은 조각품을 보니 가슴이 벅찼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시간의 성소에 머문 듯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친 빛이 시간 위로 내려앉아 성스러웠다. 경외와 경이, 그 사이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며 빛을 올려다보았다. 믿지 않는 사람조차 기도하게 만들고 경건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나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만드는 공간 앞에서 말없이 오래 서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대성당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장관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을 붙잡은 건, 화려한 첨탑이나 섬세한 장식이 아니었다. ‘아직도 공사 중’이라는 대성당의 완성되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대성당은 1882년에 착공해 지금도 짓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완성된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한다. 안정감과 질서를 주고 결과로서의 성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성당 앞에서는 미완의 건축물인데도 경외감을 느낀다. 완성이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완성이라는 순간보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 속에서 더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 완성은 그 자체로 정지된 상태다. 반면에 짓고 있는 것은 살아 있다. 변화하고, 이어지고,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 대성당은 가우디가 짓지 못한 부분을 지금의 장인들이 이어가고 있다. 대성당의 미완성은 단순한 불완전이 아니다. 가우디의 신념이 세월을 통과해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 끊임없는 ‘도전’의 시간, ‘이어짐’의 마음이 곧 아름다움이었다. 언젠가는 완공될 그날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진실한 현재다. 그제야 나는 아들에게 결과보다 과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왜 말했는지 깨달았다. 우리네 삶 또한 미완성의 대성당처럼 매 순간 완성을 향해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간혹 실패를 하더라도 결과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실패를 이겨내는 힘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곳에서 인식했다. 성취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결국 살아온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가우디의 묘소가 있는 대성당에 머무르니, 공간이 내 감정을 일깨웠다. 공간에 나의 기억이 보태지면 특별한 장소가 되어, 공간에 대한 사랑인 토포필리아(topophilia)를 느낀다고 한다. 과정이라는 두 글자를 새기며 대성당의 품안에서 토포필리아를 만끽했다. /정미영 수필가

2025-05-28

‘대통령의 아내’라는 자리

지위가 높은 사람의 부인을 일러 영부인(令夫人)이라 칭한다. 보통은 선출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아내를 부를 때 사용된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영부인 역시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이니 매사 몸가짐과 언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건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영부인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나 말이 남우세스러운 꼴로 대중 앞에 노출되는 걸 우리는 드물지 않게 봐왔다. 최근에도 그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2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영부인과 함께 베트남을 찾았다. 그런데, 하노이공항에 도착한 비행기 입구에서 눈꼴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영부인이 마크롱 대통령의 뺨을 때리듯 강하게 얼굴을 미는 모습이 여과 없이 영상을 통해 전해진 것. 스물다섯 살 연상의 아내에게 밀쳐진 프랑스 대통령은 면구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걸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봤다. 프랑스 당국은 즉각 “영부인의 장난”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늦었다. 각국 외신들이 ‘둘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으니. 비단 프랑스 영부인만일까? 적절치 못한 행실로 국민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영부인이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내는 공식 행사장에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대통령이 내민 손을 뿌리쳐 화제가 됐다. 한국의 전 대통령인 문재인과 윤석열의 아내, 즉 한국 영부인들 역시 적지 않은 구설수에 휩싸여 있다. 영부인은 벼슬이 아니며,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자리는 더욱 아니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자신은 물론 남편까지 망치게 된다. 그러니, 다들 자중하시라.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28

토론인가 배틀인가

TV 토론이 유권자에게는 후보자의 자질을 가늠할 수 있는 창이며, 후보에게는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국민 앞에 펼쳐 보이는 기회다. 최근 방영된 TV 토론에서 토론 주제가 있었고 후보자 간 시간 배분도 조율된다. 그럼에도 정작 토론의 시간을 채운 것은 정책이 아니라 인신공격이었다. 후보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통 특정 후보에 대한 비난으로 채웠다. 본인의 비전이나 공약에 대한 설명은 단편적이거나 생략되기 일쑤였다. TV 화면 앞에 앉은 국민은 ‘우리가 왜 이 장면을 지켜봐야 하는지’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정치토론은 상대를 깎아내리는 자리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은 ‘다른 생각’의 공존이며 토론은 바로 그것을 드러내고 조율해가는 과정이다. 후보자들이 서로의 정책과 가치관을 비교하며 논리적으로 겨루는 가운데, 유권자는 각자에게 더 믿음직한 정책을 선택할 근거를 확인한다. 오늘 선거 토론은 본래의 취지를 잊어버렸다. 무엇이 문제일까. 토론문화 자체에 대한 후보자들의 바른 인식이 없다. 후보자들이 토론을 ‘전투’로 인식하여 공격과 방어로 점수를 따고 상대의 실수를 하나라도 끌어내어 그것을 확대·재생산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가인데 토론 시간을 상대방 흠집내기로만 날려버린다. 유권자의 시간을 낭비하고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결과만 낳는다. 토론의 운영방식도 문제다. 주제가 분명히 제시되었지만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비껴가며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후보에게 제재가 없다. 사회자는 때때로 공정한 중재자라기보다 시간 관리자 역할만 한다. 방송사의 편집방식도 갈등과 자극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토론보다 고성과 자극적인 언행이 ‘돋보이는 전략’이 되고 만다. 토론에 대한 교육과 훈련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유권자도 정치인도 진정성 있는 대화보다 ‘말싸움’에만 몰입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토론이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공직선거 TV토론의 규칙을 더욱 엄격히 정비해야 한다. 주제 이탈, 인신공격, 반복 발언에 대한 경고와 벌칙을 정비하고 실효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사회자의 적극 개입권과 진행 권한을 강화해 토론의 질을 높여야 한다. 유권자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자극적인 발언보다 성실하고 조리 정연한 설명을 평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언론이 정책중심 보도를 강화하고 선거 토론을 예능처럼 소비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가 이겼나’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나’를 무겁게 여기는 분석과 보도가 필요하다. 정당의 책임도 크다. 후보자에게 단순한 말싸움 기술보다, 시민과 소통하는 진정어린 화법과 설득력을 장착하도록 준비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 정당 스스로 ‘네거티브 선거’를 탈피하려는 의지를 세워야 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토론은 정치 이벤트가 아니다. 토론이 정치의 얼굴이어야 한다. 어떤 토론을 하느냐는 어떤 정치를 바라는가 보여주는 거울이다. 선거 토론은 배틀이 아니다. 토론이 성숙해야 정치가 숙성한다. /장규열 고문

2025-05-28

오장육부-정신과 육체

오장육부(五臟六腑)에는 몸과 마음, 그리고 삶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마련된 거대한 지도가 담겨있다. 장(臟)은 에너지를 저장‧변화시키는 본체이고 부(腑)는 그 에너지를 순환‧배출시키는 통로다. 이 둘이 서로 호흡을 맞추면 기와 혈이 전신을 부드럽게 흐르고, 사람의 몸과 마음은 동시에 튼튼해지고 가벼워진다. 반대로 간이 울체되면 근육이 뻣뻣해지고 화(火)가 치밀며, 신장이 허하면 요통과 무릎 통증이 찾아오는 동시에 두려움이 증폭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전통적 관찰이 현대 의학의 언어로도 설명된다는 점이다. 장(腸)과 뇌를 잇는 ‘장–뇌 축’ 연구는 장에서 합성된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뇌의 감정 회로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혔고, 이는 곧 비위(脾胃)와 심(心)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몸과 마음은 결국 하나의 덩어리다. 일상에서 깊고 일정한 호흡으로 폐를 충분히 사용하면 산소 포화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과다한 교감신경 흥분이 잦아들어 불안이 완화된다. 반면 수면이 부족해 비위 기능이 흐트러지면 달콤한 음식이 당겨 체중이 늘고, 뇌의 보상 회로는 과각성 모드로 돌입해 짜증과 집중력 저하가 뒤따른다. 규칙적으로 걷거나 달리는 전신 운동은 간의 기혈 순환을 촉진해 근육 뭉침을 풀어 줄 뿐 아니라 정체된 감정까지 배출한다. 이처럼 ‘좋은 컨디션’은 특정 장부 하나를 집중 관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장육부가 빈틈없이 협연할 때 비로소 꽃피는 총체적 상태다. 정신 건강 역시 장부 균형에 달려 있다. 한의학은 마음의 근거를 심장만이 아니라 간‧비‧신장까지 오장육부 모두가 폭넓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간은 욕구와 창의성, 비는 사유와 기억, 신은 의지와 생명력의 뿌리를 맡는다. 과로로 비위가 허하면 사소한 일을 곱씹는 사려과다가 생기고, 간에 열이 오르면 작은 자극에도 짜증과 분노가 폭발한다. 반대로 장부가 조화를 이루면 감정 기복이 완만해지고 정신적 몰입과 통찰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명상과 복식호흡이 주목받는 이유도 폐‧심‧간‧신의 리듬을 맞추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장부 균형을 지키는 첫 걸음은 몸의 언어를 듣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혀의 색과 설태를 살피고, 첫 소변의 색과 냄새를 관찰하며, 오후쯤 찾아오는 피로의 위치와 강도를 기록해 보면 어느 장부가 과부하를 받는지 윤곽이 드러난다. 이어서 하루 한 끼만이라도 따뜻한 밥과 채소 위주의 간소한 식사를 하고, 점심 후 10분 산책으로 기와 혈의 순환을 깨우며, 잠들기 전 5분간 복식호흡과 명상으로 정신의 안정과 마음의 평화를 찾으면 몸은 자연스레 건강해진다. 여기에 주 2~3회 가벼운 땀이 맺힐 정도의 운동을 더하면 오장육부에 생기가 돌고 머릿속 구름이 걷히듯 기분이 맑아진다. 결국 오장육부는 낱낱의 장기가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움직이는데 그리고 감정까지 영향을 미치는 정신과 육체의 주체다. 숨을 제대로 쉬고, 땀을 흘리고, 잘 씹어 먹고, 편히 잠드는 평범한 실천과 간단한 명상으로 건강하고 편안한 오장육부를 만들 수 있다. 오장육부가 건강하면 육체와 정신의 건강은 따라온다. 오늘부터 걷고 움직여 명상하며 육체와 마음을 다스려 당신의 오장육부에 작은 격려를 건네 보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5-28

모리 교수의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두 달 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책장에서 꺼내 다시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또 한 권의 책을 샀다. 모리 교수의 제자인 미치 앨봄이 쓴 책이 아니라 모리 교수가 생전에 썼던 미출간 유고를 그의 아들인 롭 슈워츠가 사후 편집해 출간한 책이었다. 영어 원제는 모리의 지혜(The Wisdom of Morrie)인데, 우리나라에서 출간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바꿔 놓았다. 처음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과 같이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 최근엔 가방에 넣어다니며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읽는다. 원래 소설 읽기를 즐기던 심히 편협된 독서 취미가 있던 나는 책 한 권을 잡으면 며칠을 밤새다시피 읽어 끝장을 보곤 했다. 그러나 서사가 없는 책은 내리읽을 필요도 없고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되니 쉽다. 침대 가까이 두고 집히는 대로 잡아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곤 했다. 지난주 일요일 108 사찰순례 때는 가방에 넣어 가서 버스에서 읽기도 했고, 오늘은 손주들 하교 도우러 나설 때 가방에 넣었다가 차 안에서 한 페이지를 읽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건 아니고, 읽은 데를 또 읽기도 하고, 가까이에 쓸 것이 있으면 밑줄을 그어두거나 별표를 크게 하기도 하고, 그마저도 없으면 그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 두기도 했다. 모리 교수가 “책장을 가벼이 넘기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생각하고 다각도로 궁리하기”를 바랬으며 “이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노년의 즐거움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어 현재의 노년의 내 생활에 가장 긴요한 주문들이 그득그득하기 때문이다. 67살 즈음 자신이 고령자임에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노년의 삶을 긍정하기 시작한 작가, 모리의 성찰과 지혜에서 우러나온 거의 모든 언사에 백배 공감한다. 책상 위에 있는 책을 들고 책의 접힌 부분을 슬쩍 펼쳐보니 34페이지다. “오늘 내가 살고 만들어가고 경험하는 ‘지금’이 인생의 화양연화임을 이제는 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무릎을 탁 쳤고, 혼자서 씩 웃었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신황금기라 여기는 나와 똑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259페이지에서는 소중한 관계의 가치를 얘기하고 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들 모두와 인연을 이어가자”를 읽으면서 소소하되 귀한 모임의 소중한 동반자를 떠올리고, “손주들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울 방법을 알아내자. 이때 자녀와 손주의 관계를 방해하면 안 되겠지만 오히려 자녀들이 반길 수도 있다”를 읽으면서 나의 현재 최대 관심사를 어찌 알았을까. 또 줄을 굵게 쳤다. 8장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에서는 잘 늙기를 제안한다. 세상은 아름답다.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고 타인을 존중하고 삶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매일 즐겁고 황홀하게 웃음거리를 찾자.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은퇴 후의 자유를 활용하라는 조언.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더욱 충만하고 자유롭고 활기차게 살 수 있다는 모리 교수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책은 요 근래 내 지근 거리에 있으면서 내 시선과 손길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5-28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어느 나라에나 국민들이 애독하는 첫사랑 소설이 있기 마련입니다. 알퐁스 도데의 ‘별’,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을 텐데요.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하고 정감 가는 한 편의 첫사랑 소설을 꼽으라면, 그것은 아마도 황순원의 ‘소나기’일 겁니다. 일본에도 국민 첫사랑 소설이 있는데요. 그것은 일본 최초의 근대여성작가로 꼽히는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1872-1896)의 ‘타케쿠라베(키재기)’(1895-1896)입니다. 놀랍게도 일본판 ‘소나기’에 해당하는 ‘타케쿠라베’는 요시와라 유곽과 그 주변 동네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히구치 이치요만큼 평생을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다간 문인도 드물 겁니다. 소설가가 된 계기부터가 소설 발표를 통해 원고료를 받는 친구에게 자극받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본래 하급 무사의 딸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치요는, 오빠와 아버지가 연이어 병사하면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게 됩니다. 그녀는 24년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늘 빈곤에 시달렸으며, 흡족한 연애도 해볼 수 없었습니다. 정혼까지 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파혼당한 시부야 사부로, 마음속 짝사랑에 머물렀던 문학선생 나카라이 도스이와의 관계만을 남겼을 뿐이니까요. 이치요는 그 모든 현실적 불우를 오직 붓 한 자루에 의지해 헤쳐 나간 여성입니다. 1890년 9월 이치요는 혼고기쿠사카초(本鄕菊坂町)로 이사하여 빨래나 바느질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갑니다. 1892년부터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치요는 1893년 7월에는 지금의 이치요기념관이 있는 시타야류센지초(下谷龍泉寺町)로 이사하여 완구나 과자를 파는 잡화점을 여는데요. 이 곳은 유곽 요시와라의 뒷골목에 해당하는 동네로서, 이 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바로 ‘타케쿠라베’입니다. 잡화점에서 별다른 수익을 얻지 못한 이치요는, 문학에 전념할 생각으로 1894년 5월 최후의 거처인 혼고마루야마후쿠야마초(本鄕丸山福山町)로 이사를 하는데요, 이 곳 역시 겉으로는 술과 요리를 팔고, 속으로는 매춘 행위를 하는 사창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바로 ‘니고리에’(1895)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임 그리워 돌아본다는 오몬(大門) 옆에 서 있는 버드나무에 이르는 길은 멀지만 오하구로 도랑에 등불이 비치는 유곽 삼 층에서 벌어지는 소란은 손에 잡힐 듯 들리고 밤낮없이 오가는 인력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번영을 상기시킨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타케쿠라베’는 요시와라 유곽과 주변 동네의 풍경과 분위기를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명작입니다. 요시와라의 잘 나가는 유녀를 언니로 둔 미도리는 승려의 아들 신뇨를 좋아하는데요. 동네 아이들이 골목파와 큰길파로 나뉘어 대립을 하는 가운데, 센조쿠 신사의 여름 축제가 열리는 저녁 무렵, 골목파 패거리가 들이닥쳐 미도리의 이마에 진흙이 묻은 짚신을 내던집니다. 배후에 신뇨가 있다고 오해한 미도리는 다음 날 아침부터 학교에도 가지 않울 정도로 큰 충격을 받는데요. 신뇨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미도리지만, “정말로 저렇게 싫은 녀석은 없을거야.”라고 침이 마르도록 욕을 해대면서도, 신뇨의 뒷모습을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만은 변화가 없습니다. ‘타케쿠라베’에서 미도리와 신뇨의 여린 마음이 가장 문학적으로 표현된 것은 심부름을 가다가 미도리의 집 앞을 지나던 신뇨의 나막신 코 끈이 끊어지는 장면에서입니다. 고생을 모르고 곱게만 자란 도련님인 신뇨는 코 끈이 끊어져 허둥대기만 하는데요. 이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미도리는 격자문 사이로 손에 든 빨간색 천조각을 가만히 신뇨에게 던집니다. 그러나 천성이 소심하기만 한 신뇨는 고마운 생각이 들면서도, 천조각을 줍지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다 간신히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마네요. 드디어 둘 사이에도 이별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존경받는 승려의 아들인 신뇨와, 유녀의 운영이 예정된 미도리의 해피엔딩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나 봅니다. 미도리는 언니를 따라 요시와라 유곽의 유녀가 되고, 그 이후로는 거리에서 아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절을 이어받아야 하는 신뇨 역시 승려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동네를 떠나는데요. 신뇨는 승려학교로 떠나는 날 아침에 미도리 방의 격자문에 조화 수선화를 꽂아 놓습니다. 미도리와 신뇨의 사랑 이야기는 요시와라 유곽이라는 환락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더욱 애잔하고 순수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케쿠라베’로 이치요는 일본 문단의 최고 권위였던 모리 오가이의 격찬을 받으며, 일약 문단의 스타로 떠오르는데요.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차가운 가을날 폐결핵으로 요절하고 맙니다. 다행스럽게도, 불운했던 이치요의 사후는 참으로 화려한데요. 수많은 문인들의 기념관이 있는 도쿄지만, 이치요기념관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2004년부터는 국가적 영웅들에게만 허락되는 지폐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는데요. 여성이 일본 지폐에 등장한 것은 신공황후 이후, 무려 123년 만이라고 합니다. 평생 가난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히구치 이치요가 100년이 훨씬 지난 후에 고액권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은 조금 얄궂게 느껴집니다. 이치요의 불우했던 삶과 사후의 영광을 떠올릴 때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아주 오래된 말이,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오고는 합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5-27

약속

아버지 나이 마흔에 나는 태어났다. 아버지는 깊은 병환에서 회복하는 단계였고 내 시작의 환경은 어려웠다.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애 늙은이 같았고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내 나이 세 살부터 아버지는 내게 약속을 했다. “아빠는 막내딸 시집 갈 때까지 꼭 살거야.” 그 말은 마치 주문처럼 반복되었고 나는 그 약속을 믿고 자랐다. 아버지는 키가 작고 마른 편이었다. 걸음걸이는 늘 분주했고 어깨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새벽에 나가 땀을 흘리고 들어와도 나를 보면 피곤한 기색보다 웃음이 먼저였다. “너무 늦게 낳아서 너 크는 걸 오래 보고 싶어.” 그 말이 어린 마음에 자꾸 남아 나는 아버지가 늙어 가는 게 싫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을 보며 “아빠, 늙지마.” 그랬더니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늙어야 오래 살지 하시며 내가 시집 가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까지 보겠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날까지 아버지는 내 곁에 계셨다. 나보다 내 아이를 더 귀여워했고 아이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 뿐 아니라 자전거도 가르쳐 주고 토끼도 함께 키우며 자연을 배우게 했다. 아버지의 약속은 시집갈 때였지만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지켜졌다. 아버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것 같다. 아침부터 엄마의 전화가 잠을 깨웠다. 일주일 전부터 아버지의 컨디션이 떨어지고 집 앞 의원에서 약을 먹고 수액을 맞아도 차도가 없어 아버지는 이전보다 훨씬 살이 빠져 있었다. 무조건 나를 불러라고 해서 엄마가 전화를 하였고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 입원수속을 밟았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며 아버지는 내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제 약속 다 지켰으니 편안하게 기도 되겠제?”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아버지는 단순히 오래 사신 것이 아니라 약속을 위해살아내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요, 손주 결혼식도 보셔야죠.” 아버지는 웃었다. 그 웃음 속에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약속을 지켜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평온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약속이란 말은 단순한 언약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약속은 현재 진행형이다. 입원실 천장에 매달린 링거 줄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손주 결혼식까지는 내가 봐야지라며. 그것은 병을 이기겠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늙고 아프고 작아져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부모의 약속인지도 모른다. 자식보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괜찮은 이별을 남기고 싶은 그 마음. 약속은 거창하지 않다. 한 줌의 흙 속에서도, 흰 종이 위의 주문서에도 병원 위의 다짐 속에도 있다. 그것은 곧 희망이다. 누군가 나를 믿는다는 증거이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간다는 표식이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마음속 약속 하나를 꺼내어 다시 접는다. 아버지의 약속은 단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를 향한 다짐이고 기다림이며 때로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아버지는 병을 이겨내겠다는 말 너머에 우리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간절함이 담긴 마음이었다. 삶은 예기치 못한 변수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서 약속은 우리를 붙드는 끈이 된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약속을 되새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 한 번 약속을 꺼내어 본다. 언젠가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그 약속을 품고 살아온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진심으로 한 약속은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약속을 기다리며 지키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김경아 작가

2025-05-27

Clean 작업장, Clean 마인드

사람의 변화는 쉽지 않다. 교육을 한다고 행동의 변화까지는 어렵다. 특히, 지식과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치관이 강한 사람일수록 변화는 쉽지 않다. 사람은 교육을 받으면 생각이 열리고, 실행하면서 진짜로 변한다. 즉, 교육은 변화의 시작이고 실행은 변화의 완성이다. 교육은 사고의 틀을 넓히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삶을 바꾸는 것 사이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아무리 좋은 강의, 책, 워크숍을 통해 들어도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는 인식에 그친다. ‘운동해야 건강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실행은 실제 변화를 만든다. 실행을 통해서 사람은 몸으로 배우고, 경험으로 내면화한다. 시행착오, 피드백, 반복 속에서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가치관, 신념까지 바뀐다. 실행 없는 교육은 조리법만 배우고 요리는 안 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실행하고 변화하려면, 혼자 힘만으로 어렵다. 주변 분위기, 시스템, 문화가 실행을 끌어내고 유지시킨다. 가령, 모두가 청소하는 회사에선 청소가 습관이 된다. 문제를 솔직히 공유하는 문화에선 감추기 보다 개선을 선택하게 된다. 교육, 실행, 환경이 새로운 이해와 실행 속에 습관화 되고 변화하게 된다. 즉 ‘Learning by doing’ 을 실행하면서 배우고 변화된 결과에 비로소 학습이 되는 것이다. ‘Clean 작업장, Clean 마인드’는 청소나 정리 수준을 넘어 조직문화와 업무 방식의 핵심 가치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특히, 제조업, 생산 현장, 또는 혁신 지향형 조직에서는 이 두 개념이 성과와 안전, 품질, 효율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기초 역할이다. Clean 작업장은 단순히 깨끗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정돈된 시스템과 규율이 살아 있는 작업환경을 의미한다. 즉, 언제나 누구나 문제없이 일할 수 있는 시작과 끝이 있는 표준화 된 상태를 말한다. Clean 작업장을 만들기 위한 핵심 조건은 5S 활동의 철저한 실행이다.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필요한 것을 정돈하고, 청소를 해서 깨끗한 작업장을 만드는 일이다. 도구의 위치, 작업 절차, VM(Visual Management) 등이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표준화된 작업환경이다. 낭비를 줄이는 ‘Lean Thinking’ 사상으로 불필요한 물건, 불필요한 공정 제거로 생산 라인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Clean 마인드는 명확하고 건전한 사고 방식, 즉, 책임감 있고 긍정적이며 자기통제력이 있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내가 하는 일에 애정을 갖고 남 탓보다 나부터 돌아보는 태도’ 라고 할 수 있다. 실행 조건은 첫째, 책임의식과 자기관리이다. 실수나 문제를 숨기지 않고, 스스로 개선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둘째, 긍정과 존중의 소통이다. 불필요한 비난 대신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 받는 문화를 말한다. 셋째, 자기 성찰과 개선 지향이다. ‘왜?’ 라고 묻고,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의지를 말한다. 넷째, 타인과 조직을 위한 행동이다. 이기심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한 행동을 말한다. 다섯째, 감정 관리와 일의 집중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목적 중심으로 일하는 것이다. 교육은 마음을 열게 하고, 실행은 몸이 익게 만들고, 환경과 문화는 그 변화를 굳게 만든다. Clean 작업장과 Clean 마인드는 조직 변화의 시작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5-27

동해안 기차여행

오월의 신록 속으로 질주하는 기차에 몸을 맡긴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 가는 산과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들판을 지나 이내 탁 트인 동해바다와 마주하며 미끄러지듯이 내달린다. 몇 개의 교량과 터널을 지나니 차창 밖으로 지난 3월의 대형산불로 산림과 농가에 극심한 피해를 준 처참함이 푸른 산의 검버섯처럼 드러나는 영덕 일대가 스치듯이 지나간다. 간간이 농촌ㆍ산촌ㆍ어촌마을이 나타나고 바다와 산을 접하며 동해안 7번 국도와 나란히 강릉까지 이어지는 동해선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개통된 동해선 고속철도는 한반도의 등줄기로 불리는 동해안을 따라 강릉~동해~삼척~포항~경주~울산~부산(부전)을 이어주는 약 370km 구간이다. 작년 말 포항~삼척 구간의 고속전철화 사업이 완공됨에 따라 올해부터 이른바 ‘동해안 철도시대’가 열린 것이다. 오랜 염원의 동해선 개통으로 강릉~부산 간은 3시간 50분대에 주파 가능해져 동해안과 강원 북부권의 물류ㆍ산업ㆍ관광 등의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강원 동해안과 인구 300만의 부산과 경북ㆍ경남 동해안이 직선으로 연결되어 관광수요의 폭발적 증가는 물론 산업적인 측면의 시너지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과연 항간에 명성(?)이 자자한 기차를 설렘 속에 직접 타보니 운행 내내 열차의 쾌적함과 편리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평소 자동차로 제법 시간이 걸려야 가던 월포나 영덕, 울진 등지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 담기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다음 역에 다다를 정도로 빠른 속도감이 들었다. 마치 수도권의 전철을 타고 가다가 얼핏하는 사이 금세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는 것처럼 먼 거리가 짧게만 여겨졌다. 다만 예전의 완행열차 특유의 쇠바퀴 굴림의 덜컹거림이나 희미한 기적 속에 또렷하게 들려오던 “오징어 땅콩 카라멜~ 삶은 계란 있어요~”라고 외치며 기차 안에서 간식을 팔던 ‘홍익회’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없어져서 수십년 전과는 사뭇 격세지감이 드는 듯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다 가까이에 기차역이 있는 정동진역에 기차가 섰을 때는 잠시 추억과 낭만에 젖어 들기도 했었다. 어린 애들과 함께 정동진 해변 모래밭에서 사발이 오토바이를 신나게 타기도 했었고, 가족들과 함께 커다란 모래시계를 보면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한 것 같았다. 또한 5~6년 전 아들과 함께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동해안자전거도로를 따라 종주 중 정동진 고개 넘어 아들 자전거의 뒷바퀴 펑크로 때우는데 엄청 고생스러웠던 기억 등이 철썩이는 파도 결에 오버랩되기도 했었다. 차창에 어리는 풍경 감상과 아련한 회억에 잠기다 보니 어느새 강릉역에 도착했다. 비가 와서 한결 구미가 당긴 초당순두부전골, 환상적인 미디어아트에 몰입되는 강릉아르테뮤지엄,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선교장(船橋莊) 고택에서의 보기 드문 파이프오르간 연주, 허균ㆍ허난설헌기념공원과 경포대 산책로, 카페거리 안목해변 등 어디 하나 둘러봐도 발길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처럼 동해안 기차여행은 축지(縮地)로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먹고 즐길 거리를 무한정 가능케 해주는 묘미가 있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5-27

대선승패는 ‘사전투표’와 함수관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사전투표 첫날인 내일(29일) 광주에서 가장 먼저(오전 6시) 투표를 하겠다고 했다. 사전투표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일부 보수진영 유권자에게 충분히 자극을 줄 수 있는 캠페인이다. 한 전 대표는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부정선거 음모론과 단호하게 선을 긋지 못하면 ‘민주당은 3일간, 우리는 하루만’ 투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전투표는 젊은층의 투표참여를 높이는 경향이 있어 진보진영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사전투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호남과 수도권이었다. 투표율 1위는 전남(41.19%)이 차지했고, 그다음 전북(38.46%), 광주(38%) 순이었다. 꼴찌는 대구(25.6%)였다. 당시 민주당은 “하루라도 빨리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민심이 확인됐다”고 했다. 실제 이 총선에서 사전투표 결과로 당락이 바뀐 지역구가 52곳에 달했으며, 민주당이 압승했다.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를 최대변수도 사전투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대선에서는 사전투표율이 본 투표율과 거의 차이가 없다. 3년 전 20대 대선 때 사전투표율은 36.9%로 본투표율 40.2%와 비슷했다. 지난해 22대 총선 때도 사전투표율(31.28%)이 본투표율(35.7%)에 근접했다. 사전투표가 사실상 보편적 투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본 투표일(6월 3일)이 휴일과의 간격이 좁아져 투표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직장인의 경우, 월요일인 2일 휴가를 내면 5월 31일부터 나흘간 쉴 수 있다. 한국지방신문협회가 지난 24~25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3028명) 결과, 응답자의 34.5%는 ‘사전투표를 하겠다’는 의사를 보였고, 63.3%는 ‘본투표를 하겠다’고 했다. 다만 보수 성향 응답자 가운데 75.4%는 본투표 참여 의사를 밝힌 반면, 진보 성향 유권자들은 사전투표(50.3%)를 하겠다는 응답자가 본투표(47.6%) 응답자보다 오히려 많았다.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이번 대선에는 투·개표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이번 사전 투표에서는 ‘투표소별’로 투표자 수를 1시간 단위로 공개하기로 했다. 종전에는 ‘선거인 주소지’를 기준으로 사전 투표자 수를 시간대별로 공개했다. 사전 투표자 수를 부풀려 투표를 조작한다는 의혹을 불식하려는 조치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는 ‘공정선거참관단’도 운영한다. 공정선거참관단은 투·개표 과정뿐 아니라 후보자 등록, 선거인 명부 작성, 투표지 회송용 봉투 우체국 접수 절차 및 투표함 이송 등 사전 투표 전 과정을 현장에서 참관한다. 이번 대선도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주요 후보 간 지지도 격차가 좁혀져 박빙의 승부전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도 경쟁적으로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유권자들은 내일, 모레 사전투표일에는 아무런 부정선거 의심 없이 투표장에 나와 주권을 행사하길 바란다. /심충택 논설위원

2025-05-27

포항이 크루즈관광 명소라면

크루즈 관광이란 단순히 배를 타고 이동하는 개념의 관광 서비스 산업이 아니다. 지금은 숙박, 교통, 관광, 엔터테인먼트를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리조트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바다 위의 호텔에서 숙박을 하지만 배 안에서 제공되는 즐길거리로 여행의 재미는 배가 된다. 갖가지 세계 요리를 맛볼 수 있는가 하면 수영장, 놀이시설, 스파, 카지노, 영화관, 피트니스 등 다양한 위락시설은 크로스만이 가지는 장점이다. 또 특급호텔 서비스를 여행 기간 내내 누릴 수 있다는 것도 크루즈 여행의 매력이라 하겠다. 그래서 크루즈 여행을 찾는 인구는 매년 늘어난다. 작년 12월 포항 영일만항에서는 관광객 1100명을 태운 대형 크루즈 코스타 세레나호가 일본 오루타항으로 출항했다. 이 배는 오루타, 삿포로, 하코다테 등을 거쳐 5박6일 일정을 소화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선사 소속의 코스타 세레나호는 11만4000톤급 선박으로 길이만 290m에 이른다. 포항은 동해안 유일의 항만인 영일만항이 있는 곳이다. 영일만항을 모항이나 기항으로 하는 크루즈관광 산업이 활성화된다면 포항은 동해안 최대의 관광명소는 물론 환태평양 관문 역할도 가능하다. 포항시는 2019년부터 크루즈관광 유치에 많은 공을 들여왔지만 아직은 크루즈의 불모지다. 대형 국제 크루즈 선박을 몇 채 띄운 적은 있으나 영일만항이 크루즈항이라고 아는 이는 드물다. 경주 APEC을 맞아 영일만항에 크루즈선을 띄우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 APEC 경주를 찾는 관광객의 부족한 객실을 크루즈선으로 대체한다는 아이디어다. 포항을 크루즈 명소로 만들 좋은 기회 아닌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27

산림 가치의 재발견

국토의 약 63%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산림은 기후 위기와 도시화가 심화되는 이때, 다기능적 가치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의성, 산청, 울산 등 영남권 10만4000 ha의 산림이 소실되었다. 산림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 회복된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는 실질적인 재난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보다 효과적인 산불 대응은 무엇일까. 산림의 생태적 대응으로 ‘수종 전환’이 있다. 산림의 약 37%는 침엽수로, 특히 소나무는 산불에 매우 취약하다. 소나무재선충병과 같은 병해충 피해 저지를 위해서도 수종 다변화가 요구된다. 굴참·상수리나무 등 내화성 강한 활엽수 위주의 ‘내화 수림대’를 조성하면 산불 확산을 늦추는 자연 소화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호주는 2019~2020년 대형 산불 이후 유칼립투스 대신 다양한 활엽수를 혼합 조림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서부 산악지역에 폭 30~50m의 산불 차단 구역과 방화 도로 조성 및 AI 산불 감시 시스템 도입하고 있다. 산불 초기 대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임도’다. 산불 진화 인력의 접근성을 높일 뿐 아니라, 트레킹과 산악자전거(MTB) 코스 활용이나 양떼목장 같은 산지형 관광과도 연계할 수 있어 산악레포츠 자원으로도 가치가 크다. 산불 감시용 카메라 설치, 산림 인접 주택가와 사찰의 비상소화 시설 구축이 병행된다면 산불 대응과 예방 효과 모두 향상될 것이다. 산림의 경제·문화적 가치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 4월 방문한 포항시산림조합은 임산물 산지종합유통센터 건립, 로컬푸드 직매장 운영 등 임산물 시장 확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과 임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으며, 특히 ‘숲마을’이라는 산림 테마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여 주목받고 있다. 연간 100만 명이 찾는 이 공간은 생태학습장, 숲 카페, 임산물 판매장, 명상쉼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수목원을 옮겨놓은 듯한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울산숲’과 국제정원박람회장 주변에 조성될 ‘미세먼지 저감숲’은 도시열섬 완화와 탄소 흡수 등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도시와 산림을 잇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최근 울산기업인 롯데정밀화학이 스마트 묘목장을 건립해 주었다. 도심 내 숲과 정원이 많이 만들어지면 더 많은 나무와 꽃이 필요해지고 묘목 재배와 화훼산업도 활성화될 것이다. 나무 의사, 식물 병원도 만들어져 현대인의 아픈 마음까지 치유해 줄 수도 있다. 결국, 산림은 단순한 휴식공간을 넘어 기후 위기 대응, 삶의 질 향상,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이제는 산림의 생산성과 재해 대응력을 높이고 정원문화를 확산해 산림정책을 고도화할 때이며, 이는 산림청을 산림부로 승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어머니 나무가 있는 숲은 인류가 탄생하고 오랜 기간 자라온 삶의 터전이었다. 도시화로 인해 망각해 온 에덴동산을 새롭게 다시 찾아 만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안승대 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