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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염치도 없나

등록일 2025-08-24 18:12 게재일 2025-08-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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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인 수필가

소년병, 6・25전쟁 시 징집 의무가 없던 청소년들이 전쟁터로 끌려간 수가 3만 명에 이른다. 6・25전쟁 74주년을 맞은 지금 앳된 얼굴은 백발노인이 되었다. 법에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예우와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소년병들은 하나둘 죽어간다. 국가가 이들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은 가지고 있는 건지, 그렇게 시간만 흘러간다.

소년병뿐만 아니라 소녀병도 있었다. 국방부 군적에 남은 소녀병 수는 467명이다. 군번이 없다는 이유로 어린 소년과 소녀를 전쟁터로 내몰던 국가는 염치도 없이 두 손을 놓고 있다. 나라가 다급할 때는 길 가던 아이들을 붙잡아 전쟁터로 내몰고서는 이제 와서 모르쇠로 일관한다.

국가보훈부가 2016년부터 지자체나 학교에 건립한 명비 중에 소년병을 위한 건 하나도 없다. 명비가 없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년・소녀병들의 슬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법으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겪은 아픔을 이제 국가가 위로해야 한다.

6・25 참전 소년병 이수행 씨는 위기에 처한 국가와 부모님에 대한 효도 사이에서 인간적인 갈등이 많았다. 그런데도 나라의 어려움에 총을 선택한 소년병이다. 3만 명에 이르는 소년병의 참전으로 전쟁은 휴전하고 대한민국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는 국가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헌법재판소는 소의 제기가 늦었다며 소년병들이 힘을 모아 신청한 헌법소원을 각하했고, 소년병 지원에 관한 법률은 16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법률로 제정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만을 되풀이한다. 22대 국회에서도 소년병 지원에 관한 3법을 발의했지만, 이것 또한 자동 폐기 될지도 모른다.

소년병 강제 징집의 위법 여부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검토 중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집단 이익이나 의원 개인의 필요가 있을 때만 움직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 년간 법률안 발의만 하고는 폐기를 반복할 리가 없다.

그나마 대구시의회는 6·25 소년소녀병 예우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의 중요내용은 소년소녀병 관련 기념행사 초청 및 의전 예우, 저소득 소년소녀병 및 유가족 위문·격려, 명예 회복과 사회적 지원을 위한 시책 마련 등이다. 국가에서 법으로 제정한 건 아니지만 관심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이 소년소녀병들의 피와 땀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노고에 대해 국가 차원의 인식이 필요하다. 전쟁 중에는 급해서 어린 소년소녀들까지 전쟁에 동원했지만, 끝까지 모른 척할 수 없지 않은가.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당한 대우를 해 주자.

국가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줄 때 국가를 위해 국민이 나선다. 모든 건 때가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는 죄인으로 남는다. 국가 스스로 역사적 오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자.

/김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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