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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내버스를 타고 보니

윤영대수필가어제저녁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지인과 만난 유강마을 끝 주점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 몇 잔 하였기에 대리운전을 부르려 했더니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보자고 해서 길 한편에 주차해 두고 밤의 시가지를 편안하게 구경하며 왔었다. 서쪽 유강 언덕에서 동쪽 두호 바닷가까지 꽤 먼 거리였다.이른 아침 7시 반, 주차해 둔 차를 가지러 조금 걸어서 가까운 버스정류소에 갔더니 ‘216번 14분 후 도착’이라는 알림이 떠 있다. 시내버스 배차시간이 15분 정도라는데 방금 지나간 모양이라 아쉬워하며 긴 의자에 앉았다. 눈앞으로 쉴새 없이 차들이 지나간다. 초록색 좌석버스와 파란색 일반버스가 왔다 가고 통학버스인 관광버스도, 각 회사의 출근 버스도 줄줄이 지나간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활기찬 아침 풍경이다. 승강장 내의 TV 화면 같은 안내판을 보니 그곳을 지나는 5~6개 노선버스의 정보가 반짝인다. 버스노선번호, 현재 위치, 도착예정시간 등 지금 어디를 통과하고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시시각각 알려준다. 새삼스레 버스 정보시스템(BIS)이 훌륭해 보인다. 포항시는 지난해 7월 25일부터 버스 노선을 개편하고 119개 노선에 263대의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으로 전환하여 주요관광지를 연계하고 친환경 버스를 도입했다. 새로 증설된 63대는 모두 전기 버스인데 미세먼지를 줄이고 대기오염을 방지하자는 대책이다.커다란 시내버스 통합노선도에는 5개 방면 노선이 색깔별로 잘 그려져 있고, 노선별로 통과하는 정류소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전광판을 흘낏흘낏 쳐다보고 있는데 이윽고 파란색 216번이 도착했다. 가끔 타본 시내버스이지만 익숙한 듯 카드를 단말기에 대었다. ‘삑’ 소리와 함께 1천200원이 찍혔다. 현금이면 1천300원이고 좌석버스이면 1천600원이다.육거리를 지나 중앙로에서 승객들이 많이 내리고 뒷자리에 빈 좌석이 보이기에 가서 앉아 밖을 보니 아름다운 간판의 시가지 풍경이 낯선 듯하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안내방송을 해주고 LED 문자판으로도 알려준다. 가끔 외국어가 섞여 있는 듯해서 귀를 기울여 보니 죽도시장과 포항시청 앞에서는 영어, 중국어 그리고 일본어로도 안내한다. 외국여행객들을 위한 서비스인 모양이다.죽도시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싱싱한 채소랑 나물, 과일들을 펼쳐놓고 팔고 있는 노점들도 정겹다. 보따리를 들고 타신 할머니가 뒤쪽으로 와서 머뭇거리니 옆의 아가씨가 말없이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양학동을 지날 때 길옆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기에 출근버스를 기다리는구나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농협과 신협 앞이라, 포항사랑상품권이 나오는 날이란 것도 알았다.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무리 지어 등교하는 어린이들도 귀여웠다.효자동 지나서는 혼자였고, 유강 종점에 내려 시계를 보니 1시간이나 걸렸다. 길가에서 밤을 보낸 내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가능한 그 버스 길을 따라 와봤다. 아침나절에 시티투어를 한 셈이다. 다음에도 시내버스를 타고 포항시를 한 바퀴 둘러보면 좋겠다.

2021-04-18

첫 예산 5천억원과 재정자립도의 의미

이희진 영덕군수영덕군이 올해 사상 처음으로 예산 5천억 시대를 맞았다. 2018년 4천억원을 돌파한 이후 3년 만에 이뤘다. 2012년 예산 3천억원 이후 4천억원까지 6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성과이다.지방세, 세외수입, 지방교부세 등이 모두 줄어든 가운데도 영덕군이 국·도비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결과이다. 100년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재생에너지융복합단지 지정부터, 농업·농촌을 위한 공익증진직접지불제, 낙후된 어촌 환경 개선을 위한 어촌뉴딜300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공직자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업무에 임했고 그 결과 예산 5천억 시대를 만들게 되었다. 국·도비 보조금은 전년보다 12.6% 증가한 1천810억원을 편성했으며 증가한 보조금 대부분은 국비이다.우리는 올해 예산 5천억원으로 신재생에너지 등 100년 미래 먹거리를 준비할 수 있게 됐으며, 낙후된 농촌과 어촌 환경도 개선할 수 있게 됐다. 또, 수돗물 공급 전 과정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는 스마트관망관리도 가능하게 됐다.생활환경도 크게 개선 될 것으로 보인다.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생활SOC 사업은 실시 설계 시작으로 본궤도에 오르고, 관광 활성화를 위한 덕곡천 친수공간조성, 바다문학관 건립, 해안누리워라밸로드조성 등도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예산과 관련해 꼭 따라 붙는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재정자립도’ 이야기다. 재정자립도가 낮다, 하위권이다 등 연례적으로 매번 반복되는 이야기가 그렇다. 재정자립도란 전체 세입결산총액(자체수입, 보조금등의 전체 합)에서 자체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수입이 줄면 재정자립도는 낮아지지만 보조금 등 국비확보 규모가 커져도 재정자립도는 낮아진다.영덕군은 재정자립도가 낮다. 2018년 13.24%, 2019년 12.65%로 하위권에 속했다.겉으로 보기엔 재정자립도가 낮아져 살림이 어려운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체수입은 2018년(312억원)보다 2019년(326억원)이 오히려 늘었다. 다만, 세입결산총액은 이보다 더 큰 규모로 증가했다. 국·도비 보조금이 증가한 것이다. 즉, 겉으로 보기엔 살림이 안 좋아 진 거 같지만 실제 영덕군의 살림은 좋아졌다.혹자들은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도비 확보 노력 없이 있는 재정 그대로 운영하면, 재정자립도는 분명 높아진다. 하지만 자체 수입만으로 군민들이 원하는 복지 실현과 생활 SOC 사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우리군은 자체수입 증가를 위해 세무조사, 탈루세원 발굴, 체납세 징수 등 세수증대를 위해 적극 노력할 뿐 아니라, 각종 사업과 복지실현을 위한 국·도비 확보에도 적극 임하고 있다.재정자립도라는 하나의 가치만 쫓았다면 결코 예산 5천억원 시대를 열 수 없었을 것이다. 예산 5천억원 시대는 군민 복지와 생활환경 개선, 미래 먹거리 만들기라는 목표 아래 모두가 힘을 합친 결과라 할 수 있다. 올해도 영덕군은 재정자립도라는 목표만을 쫓지 않고, 군민 복지, 생활환경 개선이라는 목표 아래 뛸 생각이다. 이미 지난 2월 국가지원예산 확보 전략 회의를 갖고, 벌써부터 내년 국비확보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아울러, 예산 편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산 집행이다. 신속 집행이 화두인 가운데, 영덕군은 모든 사업에 예산이 문제없이 집행 될 수 있도록 한 발 한 발 걸어 나갈 생각이다. 올해도 공모사업에 적극 나서 예산 5천억원 시대를 유지하고, 더욱 키워나가는데 중점을 두겠다. 적극적인 민자유치도 중요하다. 중앙 정부의 예산이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의존하는 지방 정부의 관행을 탈피해 새로운 영덕군을 만들고자 한다.군민들과 함께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걸어 예산 5천억원에 걸 맞는 영덕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21-04-18

피어날 때 오라

봄꽃들이 이어달리기 중이다. 매화가 첫 스타트를 끊자마자 살구꽃도 바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누군가 골목길에 하얀 꽃잎이 떨어져 있어서 벌써 목련이 피었나 싶어 달려가 보니 프링글스였다고 해서 웃었더니 며칠 뒤 목련이 담장 위로 새처럼 날아올랐다. 그 뒤를 이어 벚꽃이 뭉싯뭉싯 길거리를 누비는가 했는데 사과꽃이 뒤를 쫓았다.봄꽃 이어달리기의 최고 유망주는 참꽃이다. 그 꽃을 품은 곳, 몇 년을 벼르다 또 코로나가 느닷없이 닥쳐 며칠 더 고민하다 찾아간 곳이 비슬산이었다. 산 정상이 참꽃 군락지라 우리 동네 뒷산의 진달래보다 몇 주는 늦게 핀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매일 올라가 보면 피기 시작하는 것도 절정일 때도 다 볼 수 있지만, 마음을 내서 가야 하는 거리라 가장 아름다운 날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맘때면 되겠지하며 나선 길이다.2020년 4월 셋째 주말, 도심에서 벗어나 산 입구부터 연두의 물결이다. 차창을 열고 산의 냄새를 맡으며 달리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참꽃이 목적이지만 그냥 이렇게 찾아가는 길까지 드라이브 코스부터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게 했다. 한참을 봄빛에 취해 오르니 주차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정상까지 모두 차를 끌고 가지 말고 중턱에 놓고 가란 뜻이다.주차장은 이미 만차다. 정상까지 오르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걸어서 천천히 산을 훑으며 오르는 것, 다음은 셔틀버스와 전기차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표를 예매하니 벌써 우리 앞에 많은 손님이 있어서 한 시간 후에 표가 최선이었다. 표를 사놓고 공영주차장 옆으로 난 등산로를 둘러보기로 했다. 연달래가 이제 왔느냐고 몇 잎 남은 꽃으로 아쉬운 눈인사를 했다. 지난가을 떨어져 쌓인 나무들의 비늘이 만든 푹신한 길을 걷다 보니 훌쩍 시간이 지나 전기차를 탈 시간이었다.셔틀버스도 좋지만 우린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전기차를 탔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 때마다 짙은 분홍빛의 참꽃들이 골짜기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함께 간 언니의 탄성을 들었는지 봄의 물을 올려 새순을 틔운 나무들도 몸을 흔들었다. 어느덧 차는 산꼭대기에 자리한 대견사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절 마당 가장자리는 너럭바위로 이어진 절벽이었다. 그 위에 파란 하늘을 이고 삼층탑이 앉았다. 뭉게구름 한 점 탑에 걸어놓고 인증샷을 마구 찍었다. 어느 방향이나 절경이다.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걸 준비했나 싶은 맑은 날씨였다.절 뒤로 난 계단을 올랐다. 올라서자마자 떡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산정상에 찐분홍 참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큰 나무들은 자리를 양보하고 오로지 키 낮은 참꽃들만 어깨를 맞대고 있어서 하나님이 비슬산 정상을 칠하실 때에 분홍 물감 하나만 준비해도 되어 좋았을 것 같다. 마음껏 꽃분홍물을 흩뿌리셨다. 그 사이로 등산객들을 위한 나무 데크길이 나 있어서 분홍 물결 사이를 헤엄쳐 다녔다. 한껏 참꽃의 분홍향을 들이마셨다. 두어 시간 꽃밭에 노닐다 보니 볼이 발그레해진 기분이 들었다. 좋다 좋아 읊조리며 이 좋은 풍경을 매년 보러 오자는 다짐을 했었다.밤새 비가 나린다. 하루하루 꽃 피는 모습이 다른 요즘, 빗소리에 꽃이 질까 잠을 설쳤다. 올해는 달성군에서 비슬산의 참꽃 군락지에 CCTV를 설치해 매일 더 피어나는 꽃송이들의 질주를 생중계로 보여주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붉은 것이 주말에 다니러 가면 절정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밤새 올봄 마지막 한파가 닥쳤다. 눈뜨자마자 유튜브를 켜서 참꽃이 어찌 되었나 살피니 붉던 산자락이 희끄무레하다. 아무리 화무십일홍이라지만 그렇게 붉던 어제의 꽃들이 추위를 못 견디고 다 스러지다니. 목적지를 잃어버렸다.지난해보다 일주일 이상 다른 꽃들이 피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말이다. 올봄은 한발 먼저 온다고 다른 꽃들이 귀띔하는 걸 귀담아 마음 담아 들었어야 했다. 스러진 참꽃이 CCTV 화면을 통해 내년에 다시 오겠노라 작별 인사로 까만 손을 흔든다. 필 때 오라니깐 하며. /김순희(수필가)

2021-04-18

마스크 벗는 날

중국인에게 복숭아는 영적인 힘을 가진 과일이다. 다산, 생명력, 장수의 상징이다. 또 악령의 침입을 막고 깨끗한 신의 영역을 나타낼 때도 복숭아가 반드시 등장한다.무릉도원(武陵桃源)은 중국인이 생각하는 숨겨진 낙원이다. 도원이란 복숭아 꽃이 만발한 평화스런 장소를 의미한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도 복숭아 밭에서 이뤄진다. 중국 전설에 의하면 3천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를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신선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한다.지난해 2월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피로감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벗는 날을 학수고대한다. 만약 지금이라도 마스크를 벗고 모두가 파티를 즐길 수 있다면 아마 그곳을 무릉도원이라 부를 것이다.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각국의 백신접종 상황이 속속 드러나자 나라마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4월, 미국과 영국은 6월쯤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올해 독립기념일(7월 4일)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야외에서 바비큐를 해 먹으면서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때 코로나 감염상황이 최악이었던 영국도 여름 휴가 동안 자국민이 안전하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의 리스트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공격적인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 확산세를 꺾고 자축 분위기다. 접종률 1위의 이스라엘은 군부대가 훈련기간 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는 시험에 들어가기도 했다.11월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한 우리나라는 겨우 2%대의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등의 부작용으로 당초 계획했던 접종 스케줄의 대혼선이 예상된다고 하니 우리의 무릉도원은 언제쯤 나타날지 갑갑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4-15

민심의 바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출발은 남달랐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비워진 자리에 촛불민심의 압도적인 지지로 세운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총선에서 과반수가 넘는 180석을 얻은 여당은 야당과 협의해 나눠 맡던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채 여당 단독으로 개혁입법들을 처리하는 위세도 보였다. 그랬던 정부여당이 하루아침에 민심이반으로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도도한 흐름은 정부여당에 큰 충격을 줬다. 급기야 지난 13일에는 국정농단 사태 당시 범국민 촛불집회에 앞장섰던 종교계와 시민사회 재야인사들마저 4·7 재·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문재인 정권의 철저한 반성과 쇄신을 촉구하고 나섰다.이날 긴급성명서를 발표한 정지강 재단법인 희망제작소 이사장 등 100여 명으로 구성된 ‘쇄신과 촛불 개혁을 위한 범시민전국연대’ 면면을 보면 모두 촛불민심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뼈를 깎는 반성과 읍참마속으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겸손과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회전문 인사, 내 편 인사, 5대 중대비리 인사는 안 된다”라며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청렴, 강직하고 개혁적인 새 인물을 발탁해 배치해야 한다”고 강도높은 인적 쇄신을 주문했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최근 ‘현 정부 지지율이 하락한 이유’를 물은 여론조사에서도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불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폭발한 공정성 위기’, ‘내로남불식 태도와 오만함’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와 공정성 위기를 지목한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문빠’들도 현 정권의 정책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뻗대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일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과 관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택시장이 2월 중순부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기존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여당은 규제 일변도 정책이 무주택자·1주택자·다주택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진단하고, 정책 방향의 전면 혹은 일부 선회를 꾀하고 있으나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형국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획기적인 인적쇄신이 그마나 민심을 되돌릴 절호의 기회이지만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대로라면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더욱 가파르게 하락할 게 뻔하다.촛불민심에 힘입어 일어선 문재인 정부가 촛불민심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민심은 바다와 같다. 바다는 거대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단번에 침몰시킬 수 있다. 민심의 바다에 위태롭게 떠 있는 임기말 문재인 정부가 안쓰러워 보인다.

2021-04-15

민들레, 제비꽃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이 땅 어디나 민들레의 영토 아닌 곳이 없다. 갓털(冠毛)을 달고 날아올라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정착해 꽃 피우는 민들레는 누가 뭐래도 이 땅 이 봄의 주인이다. 만화방창 온갖 꽃들과 신록이 저마다 제 영토임을 주장하지만 민들레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시멘트 옹벽 틈새든 시궁창 옆이든 가리지 않고 환하게 꽃을 피운다. 해바라기처럼 큰 키를 갖지 못한 앉은뱅이 꽃이지만 해바라기보다 더 꼿꼿이 해를 쳐다보며 피는 꽃이다.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세상 어떤 꽃보다 밝고 확실한 존재감으로 자족하는 꽃이다.제비꽃은 이름도 많고 종류도 여러 가지지만, 자주색 꽃이 제일 많고 제비꽃이란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민들레처럼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낼 수도 없고 누가 옮겨 심는 것도 아닌데 널리 퍼져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놀랍다. 작고 흔한 야생화지만 시골 학교에 전학 온 도시 계집애처럼 어딘가 새초롬한 데가 있다. 꽃이 지고 씨방이 여물면 그 안에 자잘한 씨알이 들어있다. “ - 덜 여문 건 하얀 쌀밥/ 다 여문 건 누런 보리밥/ 배고파 칭얼대는 어린 동생 풀밭에 내려놓고/ 아홉 살 누이가 보여주던 제비꽃 도시락” - 졸시 ‘제비꽃’중에서비싼 돌과 나무로 조경을 하고 잔디를 깐 정원에는 민들레도 제비꽃도 골칫거리 불청객 잡초일 뿐이다. 방치를 했다간 얼마 못 가서 그들이 제 영토를 주장할 터이니 품삯을 주고서라도 일삼아 뽑아낸다. 그러나 여기, 민지네 집에는 그런 차별이 없다.“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정희성 시인의 ‘민지의 꽃’이라는 시다. “꽃이야”하는 다섯 살 배기의 한 마디가 40여 년 시를 써온 시인의 입을 다물게 한다. 언어의 달인이라 할 시인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시인은 그것을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라고 한다. 시란 이렇듯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도 감동시키는 말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온갖 현란한 말재간도 이 한 마디 앞에서는 무색한 군더더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꽃과 잡초를 구별하는 따위의 분별지(分別智)로는 천지와 소통할 수가 없다. 인간들이 언어로 쌓아올린 온갖 인식체계가 실은 유치원 어린아이의 수준에도 영 못 미치는 예를 흔하게 본다. 예수님도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아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난삽하고 황당한 허위의식으로 점철된 비문(非文)들을 마치 고도한 정신세계의 표출인 양 호도하는 논리들에 현혹되는 세태에도 민지의 말이 필요할 것 같다. “꽃이야!”

2021-04-15

동국대 경주캠퍼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동국대 경주캠퍼스가 ‘경주’라는 지역명을 딴 이름을 더이상 쓰지 않기로 하고 미래 발전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캠퍼스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최근 캠퍼스에서 지역명을 빼거나 교명을 바꾸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경희대는 수원캠퍼스를 ‘국제 캠퍼스’로, 건국대는 충주캠퍼스의 이름을 ‘GLOCAL(글로컬) 캠퍼스’로, 연세대도 원주 캠퍼스를 ‘미래 캠퍼스’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부산권의 영산대도 캠퍼스를 와이즈유(Y’sU)라는 닉네임으로 부르고 있다.이러한 교명 변경은 학교 위상을 올리는 효과가 있고, 신입생의 질이 상승되는 효과도 있다.교명 변경으로 경쟁력에서 큰 성공을 거둔 대학은 서울과기대와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이다.서울과기대는 원래 서울산업대였는데 교명을 서울과기대(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Technology)로 바꾼 이후 국제무대에서 인지도가 상승하고 학교 위상이 올라갔다. SNU로 시작되는 영문명이 국제적 인지도를 높인 것이다.한양대 에리카 캠퍼스는 더 절묘한 명칭 전략으로 성공한 케이스이다. 에리카(ERICA)는 진달랫과의 상록 소관목을 가르키는 이름이다. 잎은 좁고, 꽃은 겨울에서 봄에 걸쳐 피는데 연분홍색이거나 흰색으로 피어난다.한양대는 2009년 안산캠퍼스를 과감하게 ERICA(에리카) 캠퍼스로 바꿔 부르고 있다. ERICA는 ‘Education Research Industry Cluster Ansan’의 줄임말로 산학협력을 바탕으로 한 이 캠퍼스의 성장 전략을 나타낸 것이다.꽃 이름 에리카와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영문 두음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상징적으로 다가온다.에리카 캠퍼스는 이런 효과로 국내 랭킹에서만 10위 이상 상승했다.동국대 경주캠퍼스가 기왕 교명 변경을 추진한다면 에리카 캠퍼스 이름을 벤치마킹한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이번 교명 변경이 최근 논란이 된 경주캠퍼스의 수도권 이전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재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캠퍼스 이전에 대한 지지도는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경주 지역민들은 당연히 캠퍼스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경북, 경주의 토양으로 자라난 대학이 수도권으로 간다는 건 지역민 정서에 맞지 않는 건 당연할 것이다.한국은 카이스트, 포스텍 같이 특성화 공대를 제외하고는 톱10 대학에 들어가는 지역대학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은 수도권이 아닌 대학들이 톱10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한국도 지역에 있으면서도 유명한 대학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그런 측면에서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교명 변경은 의미가 있게 느껴지면서도 캠퍼스 이전은 장단점을 잘 분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1-04-15

부활의 달에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 한다.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불안과 두려움은 죽음이다. 틸리히는 죽음을 있다가 없어지는 비존재라 했고 비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비존재의 충격’이라 했다.프로이드는 동식물은 비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없는데 오직 인간만이 비존재를 의식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을 ‘자의식의 충격’이라 했다. 이런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인간은 세속적 방법에 의존한다.스퐁은 오늘날 카페인음료와 알코올음료가 확산되어 있는 것은 문화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비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안전을 산출하기 위한 화학적 방법으로 오히려 사회적 자살을 불러오는 슬로우 블릿이 될 뿐이라 했다.나의 삶을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반대파에 대한 학살과 정치 세력들을 제거하는 테러와 폭력, 인종차별 등 안전을 위한 물리적 방법 역시 공멸을 불러온다고 했다. 이런 세속적 방법으로는 두려움과 불안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안 인간은 초월적 신만이 비존재로부터 오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부터 평안을 준다고 믿어 신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이 종교의 양식이 되었다고 프로이드는 주장한다.반면에 틸리히는 그 신은 만들어진 신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신으로 보았다. 모든 종교의 양식에 영생이 있음은 비존재의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기독교의 부활 역시 비존재가 다시 존재로 돌아옴을 의미한다.종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세속적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종교마저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본 회퍼는 히틀러의 불안 히스테리가 대량학살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교회가 침묵하는 것을 보고 탄식하면서 “신 없이 신 앞에”를 외쳤다. 본 회퍼가 바라본 교회는 교회가 아니었고 그들이 섬기는 신은 신이 아니었다.그래서 그는 “거짓된 신 없이 참된 신 앞에 서야 한다”고 외쳤던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신을 찾았을 때에 대변인 아론은 거짓 신인 금송아지 신을 만들어 숭배케 했던 것처럼 비존재의 충격으로부터 오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거짓 신을 만들어 섬기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봐야 한다. 니체는 그런 신을 죽은 신이라 했다.오늘의 종교인들 역시 불안에서 안전을 산출하기 위한 만들어진 거짓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닐까? 부활의 달 4월에 거짓된 신의 종교와 신앙이 죽고 참된 종교와 신앙이 부활되어 비존재의 두려움과 불안에서 자유하기를 소망한다.

2021-04-14

살아있는 모자이크

강길수수필가누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살아있는 모자이크다. 한데, 만드는 이가 안 보인다. 나풀나풀 하늘에서 흰 나비 날개들이 내려올 뿐이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업을 하나 보다. 삼월 말, 수난(受難)주간 마지막 날 성당 가는 보도(步道) 위다.다른 나무들은 벌써 신록을 연출하기 시작한다. 벽돌 담장 위에 얼굴을 빼꼼히 내민 장미 아가씨의 새순은, 어느새 길이가 한 뼘은 되어 보인다. 잎 사이에 꽃망울도 품었다. 꽃샘추위가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바야흐로 봄이다. 기후 변화로 많이 앞당겨진 봄…. 봄은 내게 언제나 불쑥 나타났었다. 올해도 그랬다. 무심히 걷던 보도 위에서, 갑자기 ‘살아있는 모자이크’로 다가온 것이다.새봄맞이 자연 모자이크대회가 열린 걸까. 보도에도, 잔디밭에도, 차 위에도, 아스팔트 노면에도 모자이크가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재료는 엷은 분홍빛 살짝 머금은 흰 나비 날개뿐이다. 붙일 벽, 유리창, 천장, 그림판도 없이 어떤 거장(巨匠)이 바닥마다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탄성이 나온다. 보도블록에 갓 생긴 모자이크를 밟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는다. 모자이크는 무늬나 그림을 나타낼 텐데, 우둔한 나는 알아보지 못한다. 나스카의 지상 그림처럼 비행기라도 타고 높이 올라가야 볼 수 있을까.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줄기 실바람이 만발한 벚꽃 가지를 간질인다. 웃음 참던 꽃잎이 못 참고, 꽃을 떠나 나비 날개가 되어 날아오른다. 팔랑팔랑 날던 날개가 살며시 내려온다. 묵주반지 낀 내 손등에 잠깐 내려앉았다가 바람에 다시 떠난다. 전할 말이라도 있을까. 그 순간 손등이 느낀 실낱처럼 서늘하고 아린 감촉이 그 봄, 어머님의 손 허물에서 느꼈던 촉감을 닮았다. ‘그랬어. 그해 봄 이 무렵, 어머니는 아프신 몸으로 우리 집에 오시어 몇 주 머무셨지. 나는 이틀에 한 번씩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녀오는 게 고작이었었을 뿐이었어.’“야야, 너희 아버지 가실 때 손이 벗겨지더니, 나도 그렇구나….”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신 갈 길을 미리 아신 듯, 고통 속에 담담하게 말씀하는 어머니 앞에서 할 말을 잊었었다. 우리 동기들을 낳아 기르느라 밥하고, 빨래하고, 길쌈하고, 밭매고, 땔나무까지 하신 어머니. 자식들과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소나무 껍데기같이 투박해지셨던 손. 그 손이 허물을 벗으며 아기 손처럼 해말갛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에 허물을 받아 가만히 감싸 쥘 뿐이었다. 떨리던 손바닥에 파고든, 말 못할 촉감이 아직도 손에 고스란히 남았다.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로 손에 박힌 것일까. 어머니는 초파일 다음날, 아주 우리 곁을 떠나셨다.저 바닥 위에, 살아있는 벚꽃잎을 재료로 누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을까. 보나 마나 푸른 별 지구 곧, 땅과 바람이리라. 실바람이 벚꽃을 간질이면 벚나무는 꽃잎을 내준다. 꽃잎이 나비처럼 난다. 땅은 꽃잎을 끌어안으며 무늬와 그림을 만든다. 땅과 바람의 의기투합이, 곧 명 다할 꽃잎에다 새 생명을 부여한다. 살아있는 모자이크가 탄생하는 것이다. 꽃잎이 말라 사라져도, 지구 중력이 만든 모자이크는 땅에 아로새겨져 있으리라. 마치 내 손에 남은 어머니의 손 허물 감촉이, 따사하고 아린 모자이크가 되어 머물고 있듯이.모자이크는 재료들이 간격을 두고 각각 머물게 만든다. 따로 있으면서도 함께 있는 존재가 모자이크다. 재료 각각은 뜻을 가질 수도, 안 가질 수도 있지만, 전체는 만든 이의 뜻을 드러낸다. 사람 삶도 모자이크다. 따로 태어났어도, 공동체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기 삶을 살면서 공동체 생활도 한다. 생각해보면 원자에서부터 태양계, 우주에 이르기까지 개체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다. 그러기에 나와 너, 우리, 나라, 지구촌, 우주도 하나의 모자이크다.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족히 오리(五里)는 될 성당 가는 보도와 그 주위엔, 기회를 놓칠세라 끊임없이 모자이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록 ‘코로나 19’의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의 힘 드는 상황이지만 그 또한 모자이크이니, 모두가 잘 이겨내어 승리의 모자이크를 만들어야 하리…….

2021-04-14

왕릉을 지켜보는 왕버들나무

경주 낭산(狼山)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왕릉을 한 바퀴 휘돌아 넓은 들에도 안부를 묻는다. 명지바람은 농수로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에 머물다가 그 다리를 건너 풀꽃들에 손을 내민다. 코끝을 스치는 쑥, 명주꽃, 냉이의 향기는 연둣빛으로 물든 들판에 향긋한 지문으로 남는다.오늘은 보문동에 위치한 진평왕릉을 찾았다. 경주의 고분을 시시때때로 보았지만, 웅장함보다는 온화한 느낌이 든다. 호석이나 둘레를 친 돌난간, 문인석, 무인석 등 왕릉을 수호하는 석물이 없다. 그래서일까. 팽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들이 도열해 왕릉을 지킨다.나무에도 그들만의 간격이 있다. 너무 가깝게 있으면 햇볕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고, 몸피를 튼실하게 채우는 것보다 가지를 위로만 뻗으려 한다. 멀어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나무이다. 왕릉과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왕버들 나무가 두 눈 부릅뜨고 서 있다. 천 년의 시간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늠름한 왕버들 나무다.왕버들 나무는 농수로를 끼고 우뚝 서 있다. 나무의 키나 가지 퍼짐이 곡진했던 시간을 말해준다. 나무의 줄기는 껍질이 깊게 갈라지는 왕버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나무 몸통의 원줄기는 점점 쪼그라들고 새로 난 곁가지들이 어제와 오늘이 여기서 공존한다.왕버들 나무의 밑둥치와 몸피가 빚어내는 기묘한 꿈틀거림은 진귀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한 겹 쌓고 한 겹 내주는 몸피는 용트림하듯 하늘로 치솟는다. 밑둥치가 땅속 물줄기를 찾아 뿌리를 내리면 봄의 전령이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왕버들 나무는 사부작사부작 몸피를 불린다.농부에게도 왕버들 나무의 보살핌은 기껍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을 둘러보는 나무는 농부의 마음까지도 다독인다. 노동에 힘든 농부의 시름과 고통을 잊지 않고 씻어준다. 봄이면 봄바람을 몰고 와 겨울잠을 자는 들판의 땅을 깨우고, 여름이면 뙤약볕의 그늘이 되고 비바람 몰아쳐도 꿋꿋하게 견딘다. 가을이면 마침내 황금 들녘을 같이 바라보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버드나무는 물과 친근해 주로 물가에서 자란다. 물을 좋아하는 나무는 이름도 다양하다. 가지가 부드러워서 부들나무이었다가 버드나무로 바뀌었고, 나무, 잎과 가지가 용처럼 뒤틀리며 자란다고 해서 용버들, 전라도 사투리가 갯버들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버들피리에 쓰는 갯버들, 그리고 깊은 달밤 물가에서 머리 풀어헤친 것처럼 보이는 능수버들이 있다. 왕버들은 능수버들이나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하늘거리며 땅으로 처지지 않고 하늘 향해 우뚝 서자란다. 굵기 또한 오랫동안 잘 자라 웅장한 멋을 지닌 나무이다. 버드나무는 정자나무로도 손색이 없어 당산나무로 모셔지기도 한다.나무는 우리 삶 곳곳에 등장한다. 예로부터 우리의 이야기에도 나무를 소재로 하거나 그것을 이용한 이야기가 많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호랑이에게 쫓기다가 급하게 도망간 곳이 우물가 버드나무였고, ‘토끼와 거북’에서 토끼가 나무 밑에서 쉬다가 잠이 든 곳도 떡갈나무였다.이순혜수필가고향마을 동네 우물가에도 왕버들 나무가 있었다. 주말이면 어머니들은 빨랫감을 들고 와 빨래를 했다. 두꺼운 옷은 빨랫방망이로 두들겨 땟물을 벗겨냈고, 방망이에 실컷 두들겨 맞은 겉옷은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한 방울 한 방울 물기를 쏟아냈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속옷은 손으로 조물조물 치대며 정성을 다했다. 친구들과 온 동네 골목길을 쫓아다니다 우물가에 가면 용하게도 나뭇가지에 걸린 옷들이 가벼워질 때다. 어머니들은 빨래를 주섬주섬 담고 어린 자식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곁에 있다는 것은 함께 산다는 뜻이다. 같이 한다는 것은 어디에 가거나 무엇을 하든지 늘 따라다닌다. 기억의 곳간에 자리 잡은 우리들의 나무 이야기는 드러내고도 또 쌓이는 화수분과 같다.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 아래에는 어머니, 그 어머니들이 모여 앉아 내일을 퍼 올리는 장소였다. 또한,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해 우리를 울렸고 웃게 했고, 심지어 두렵거나 영험하기까지 하여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버드나무의 왕이라서 왕버들 나무이다. 천년의 시간을 견디며 모든 것을 받아주느라 지쳤을 텐데, 왕버들 나무의 위엄은 변함이 없다. 왕버들 나무는 이곳에서 눈과 귀를 열어 백성의 한숨과 고달픔을 살폈다. 넓은 들의 곡식도 왕의 보살핌이 닿을 수 있게 살폈고, 기원하는 손짓을 하늘로 향했다.왕버들 나무도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이다.

2021-04-14

20·30, 열쇠가 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말 속에는 그늘도 있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역을 해낸 배우 윤여정 선생. 할리우드 오스카상 시상식에 참석할 터에, 그의 아들이 미국사회에 만연한 ‘아시안 혐오분위기’를 떠올리며 걱정을 하더란다. 미국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사람들 사이에 골이 패이고 벽이 생기면 대화와 소통이 사라지고 화합과 상생은 꿈도 꾸지 못한다. 흑인과 백인들 사이에서 있었던 갈등과 차별이 어느새 아시안들에게도 옮겨온 듯하다. 닮은 걸 보고 서로 보듬기보다 다른 걸 굳이 드러내 미워하려 드는 건 혹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우리는 어떤가. 뿌리깊은 영남과 호남의 갈등, 최근에 드러난 성별 간 논란, 선거 때마다 주목되는 세대간 차이.영화 ‘미나리’가 미국 내 아시안이 겪는 좌절과 극복을 그렸다면,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 안에 숨어있는 계급과 구조를 다뤘다. 두 영화 모두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는 걸 보면, 스토리텔링의 힘과 성공이 느껴지면서도 사회적 구조가 모두에게 던지는 그늘을 확인하면서 한편 씁쓸하지 않은가. 미움과 반목이 남들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니! 미국 인종갈등에 아시안혐오가 더해졌듯이 우리 사회엔 20대와 30대가 던지는 경고등이 눈이 부시게 들어왔다.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시점에 모두를 놀라게 하는 청년들의 분노. 그를 통해 패배를 삼킨 여권은 물론, 승리를 거머쥔 야권도 경악한 나머지 그리 호쾌한 반응을 보이지 못한다. 자, 이제 새롭게 등장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 참인가.이념이 달라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 밝고 실용에 뿌리를 둔 그들의 시선을 찬찬히 따라가 보아야 한다. 가르치려 하기보다 배워야 하고, 말하려 하기보다 들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갈등구조로 여기기보다 한 세대의 성난 몸부림으로 해석해야 한다. 진보도 보수만큼이나 기득권력이 되어버린 지금, 참신하게 등장한 경보등이 아닐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라는 경고장이며 그래도 혹 남아있다면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거부권이다. 진보가 들어선 미국에 생각거리가 많아진 만큼, 보수가 이겨버린 한국에도 걱정거리가 태산처럼 높다. 인종 간 갈등이야 경계선이 눈에 보이지만, 세대 사이에 들어선 가림막은 구분선이 모호하다. 투표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몰랐으니까. 소통과 화합은 이제 더 멀어진 것일까.통찰과 혜안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드러나는 법이다. 지혜와 명철도 위기를 만날 때 번득인다. 이념을 고집하기보다 실용으로 나서야 한다. 이론보다 현실에 도움이 되도록 결정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이 일상으로부터 용기를 회복하도록 지지해야 한다. 꿈과 용기만 있어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세상만 바뀐 게 아니었다. 사람이 더 많이 바뀌었다. 그들이 당신을 지지하려면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미움과 갈등으로 가득한 세상에 ‘청년’이 열쇠로 등장하였다. 누가 젊은이의 마음을 획득할 터인가.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1-04-14

토지초과이득세

토지초과이득세는 개인이 소유한 유휴토지나 법인의 비업무용토지의 가격상승으로 발생하는 초과이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노태우 정부 시기인 지난 1990년 실시된 토지공개념 3대 제도 중의 하나로, 3년 마다 유휴토지의 가격을 조사하고, 그 가격에서 정상 지가 상승분(전국 평균 지가 상승률로 산출)을 뺀 초과 지가 상승분에 대해 50%의 세율을 적용해 세금으로 걷는 방식이다. 토지초과이득세는 1994년 위헌논란 끝에 헌법불합치 판정이 내려져 일부 개정 후 4년간 더 시행하다가 IMF 경제위기를 맞은 1998년 부동산경기 활성화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그랬던 토초세가 LH 직원 3기 신도시 투기사태 이후 정치권에서 재도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의당,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최근 국회에서 ‘부동산·주택정책전환을 위한 연속토론회’에서 토지초과이득세 재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토지초과이득세는 지가상승으로 인한 자본이득을 환수한다는 점에서 양도세와 유사하나 양도세는 실현된 자본이득에 대해 부과되는 반면 토지초과이득세는 미실현 자본이득에 대해 부과된다는 점이 다르다. 다만 둘 다 세원이 지가상승이익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토지초과이득세로 거둬들인 금액은 양도소득세에서 공제된다.토지초과이득세가 도입되면 유휴 토지의 가격이 지나치게 많이 올랐을 때 부과돼 부동산 투기를 막는 것뿐 아니라 유휴 토지에서 발생한 초과이득을 조세로 거둬들여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토지시장의 거래를 제한해 자유로운 시장경제질서를 해친다는 단점이 있다.토초세 도입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 섣부른 부동산 정책은 화근을 키울 뿐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4-14

속보입니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속보입니다. 학생 여러분은 지금 바로….”갑작스러운 속보 소식에 제일 놀란 것은 필자이다. 산자연중학교 방송반 학생들은 하루에 3회 정기방송을 한다. 방송 시간은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부터 그다음 수업 시작 예비 종이 울릴 때까지이다. 요일별로 특집 방송 프로그램은 있지만, 속보는 한 번도 없었다.필자는 교무실에서 아침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속보 소식에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방송에 온전히 귀를 기울였다. 뭔가에 그렇게 집중하기는 오랜만이었다. 방송반이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라 궁금하기도 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왜냐면 산자연중학교 방송은 학교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 나가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방송사고라도 나면, 마을 어르신들께서 놀라실 수도 있어 방송반 학생들은 방송 때마다 어휘 하나에도 몹시 신경을 쓴다.그런 방송반에서 예고도 없이 속보를 내보낼 때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걱정은 조금씩 기대로 변했다. 속보답게 진행 학생 멘트는 빨랐다. 빠르기로 보아서 방송 대본에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 빠르기에 따라 필자의 기대감도 덩달아 상승했다.“지금 하늘에 무지개 폈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지금 바로 바깥으로 나가서 무지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여유를 가져 주세요. 무지개가 핀 곳은 방송실 바로 위입니다.”진행자의 안내에 학생들이 분주해졌다. 분주한 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놀란 건 며칠간 비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탄성을 지었다. 그 탄성 소리에 지나가던 왜가리가 잠시 날갯짓을 잊었다.분명 무지개였다. 비가 없는 하늘에 무지개가 뜰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선생님, 무지개가 왕관처럼 원을 그리고 있어요. 어떻게 저런 모양이 나올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비도 안 왔는데, 무지개가 생기는 이유가 뭔가요?” 학생 말대로 하늘에 뜬 무지개는 필자가 알던 아치 모양이 아니었다. 반(半)이 생략된 분명한 반원(半圓)이었다. 반원 모양의 무지개는 처음 보았다. 그래서 학생보다 더 빨리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모든 지식과 상식을 동원해도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얘들아, 선생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럼 선생님과 함께 그 원인을 한 번 찾아볼까!”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학생들과 함께 교무실로 왔다. 필자는 필자의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다 내어주었다. 학생들은 스스로 역할 분담해 일사천리로 답을 찾았다.“유레카. 일반 무지개가 물에 반사된 것이라면, 우리가 본 것은 얼음에 반사된 거래요.”필자에게 스스로 깨우친 것을 쏟아내는 학생들의 모습은 아르키메데스를 능가하였다. 필자는 발견의 기쁨을 터득한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들을 보면서 필자는 또 다른 속보를 기다렸다. “의미도 없는 학교 시험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2021-04-14

분노한 민심이 폭발한 4·7 보궐 선거 결과의 함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4·7 보궐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 집권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1년 전 총선에서 여당에 180석 몰표를 주었던 민심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가혹한 심판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18%, 부산에서는 박형준 후보가 28%라는 압도적 차이로 승리했다.서울의 집권 여당 42명의 국회의원 지역구에서도 여당 후보는 한 곳도 승리하지 못했다. 진보 성향의 20·30대도 집권 여당에 등을 돌렸고, 오세훈 후보는 40대를 제외한 전 세대에서 지지를 받았다.집권 여당은 당직자 전원이 사퇴하였다. 오만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민심은 파도처럼 하루아침에도 변할 수 있다.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 정부의 그간의 독선과 오만이 선거의 패배를 자초한 셈이다. 민주당은 겸허히 결과를 수용하고 민심 이탈의 근원을 냉철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민주당이 당규를 개정해 보선 후보를 공천한 것이 패착의 출발점이다.이번 보선이 시장의 성추행이라는 귀책사유가 분명함에도 후보 공천을 강행해 버렸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낙연 당대표의 시장 후보 공천은 역풍을 몰고 온 것이다.또한 5년차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이번 선거의 결정적인 패인이다. 인사가 만사인데 문재인 정부의 폭좁은 인사 정책은 국민적인 화를 더욱 키웠다. 민정 수석에 발탁된 조국 교수 일가의 비행은 불만을 가중시켰다. 자녀 입시 관련 의혹, 부인과 동생의 구속 사태는 조국 개인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됐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윤미향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루한 갈등, 부동산 정책의 거듭된 실패에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유임은 정부에 대한 불만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러한 누적된 정책 불만이 야당의 정권 심판론에 힘을 더했고 결국 집권당 패배의 요인이 됐다.필자는 LH 부동산 투기 사건 발발 시 4·7 보궐 선거는 끝났다고 단정했다. 더욱이 경실련 출신 김상조 정책실장과 박주민 의원의 주택 임대료 인상은 대표적인 내로남불로 비난받았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관련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는 불신을 더욱 증폭시켰다. 수도권의 집값은 다락같이 오르고 청년들의 일자리 절벽은 청년들을 분노케 했다. 집 한 채 가진 중산층마저 세금 폭탄에 정부에 등을 돌려 버렸다. 이러함에도 당·정·청은 상호 견제 장치마저 작동치 않고, 당내 민주주의는 고사해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그러나 4·7 보궐 선거 결과는 이 나라 정치 발전의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선거에서 항존했던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대결구도는 훨씬 옅어져 버렸다. 진보성향의 20·30대가 실리를 챙기는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변신했다. 우리 선거의 고질병인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 전술이 더 이상 먹혀 들지 않았다. 이번 선거 결과는 무엇보다도 집권당의 오만이나 독선은 언제나 시민적인 저항에 부딪친다는 교훈을 남겼다. 결국 4·7 보궐 선거는 선거 민주주의의 위력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2021-04-14

전동 퀵보드 안전수칙 준수해야

영주경찰서 교통관리계 경위 장주영 요즘 운전을 하다보면 언제 부터인가 편리해 보이지만 위험해 보이는 개인형 이동수단(PM)이 부쩍 눈에 많이 띈다.PM은 외발 전동휠, 두발 전동휠, 전동퀵보드, 전동스쿠터 등 전기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1인용 이동수단을 말한다.어릴적 시골에서 자라 흔한 버스도 없이 매일 걸어서 등하교를 해야 했던 나는 이런 종류의 이동수단을 상상 하곤 했었는데, 막상 교통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편리함 이면의 위험함이 더 눈에 들어 온다.전국적으로 전동킥보드 사용자는 2019년 4월 3만7천여 명에서 2020년 4월 현재 21만4천500여명으로 6배나 증가했다.이와 관련한 교통사고도 급증 하면서 경찰청에서는 2021년 5월 13일 관련법령 개정을 통해 누구나 운전면허 없이 운전이 가능했던 것을 원동기장치자전거이상 면허를 소지해야 운전이 가능하며 13세미만의 어린이는 사용을 금지 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 중에 있다.2021년 5월 13일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도로교통법은 인명보호장구 미착용 범칙금 2만원, 동승자 과태료 2만원, 원동기장치자전거 이상면허 미소지 범칙금 10만원, 13세미만 어린이 사용시 보호자 과태료 10만원, 동승자 탑승시 범칙금 4만원, 등화장치 미작동시 범칙금 1만원이 부과 된다.또, 약물, 과로·질병 등 운전 범칙금 10만원, 통행방법도 자전거도로 통행 또는 차도우측통행·보도 통행불가, 자전거와 동일하게 음주운전 금지 범칙금 10만원, 측정불응 범칙금 13만원, 신호위반,중 앙선 침범, 보도주챙, 보행자 보호위반시 범칙금 3만원이 부과 된다.범칙금 부과 보다 이용자가 안전수칙을 잘 지켜 운전자 모두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문화가 정착 되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다.

2021-04-14

포항 흥해시장 ‘함께’ 소통하고 ‘함께’ 나아간다

류승호흥해새마을금고 이사장우리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다. 가벼운 종이 한 장도 함께 들면 옮기기가 더 쉽다는 말로,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여럿이 힘을 합해서 하면 혼자 하기보다 훨씬 쉽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세상을 살다 보면 혼자만 할 수 있는 것보다는 더불어서 힘을 합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상에서 어떤 장애물을 만났을 때 혼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문제도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여기에 더해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천천히 즐기면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사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필자는 요즈음 이 말 대신 ‘우리 함께 멀리 가자’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최근 4년 가까이 2개의 상인단체(상인회·번영회)로 나뉘어 있던 흥해시장이 다시 하나로 통합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더 큰 흥해발전을 기약하고, 더 멀리 가기 위해서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참 반가운 일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그동안 두 단체는 통합을 위해서 협의와 무산을 여러차례 반복한 끝에 상생 협력을 통한 흥해시장의 활성화 방안 및 향후 새로운 사업들의 방향에도 뜻을 같이하고, 이를 위한 세부적인 회원 통합 부분도 구체화했다.또한, 곧 착공예정인 주차창 확보 문제를 시작으로 그동안 상인회와 번영회로 나누어져서 추진이 계속 미뤄져 왔던 어시장 쪽의 3차 장옥 개축사업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포항시 역시도 이번 통합소식에 지역주민들 만큼이나 반기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특히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흥해시장의 경우, 인근 청하면과 송라면, 신광면까지를 아우르는 북구 권역의 중요한 기초경제의 기반이자, 또한 5일장날은 인근 지역민들까지도 모여드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더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시설현대화와 상인역량 강화 등 탈바꿈을 위한 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전통시장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지난 3년간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이어온 흥해시장의 상인회와 번영회가 시장과 지역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결단을 해준 것에 큰 박수를 보낸다.‘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처럼 여럿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그래서 흥해시장의 이번 통합은 인근 주민들만이 아니라 포항시 전체가 환영하는 소식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이런 지역의 크고 작은 소식들이 모여 ‘함께하는 변화, 도약하는 포항’을 그려가고 있다. 또 그렇게 ‘삶과 도시의 대전환’을 만들어가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2021-04-13

벚꽃과 이화 사이에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쌀쌀하고 바람 불며 비 뿌리던 날이 지나고 그야말로 화사하고 포근한 봄날 하오. 꽃 활짝 피어난 배나무 옆 바위에 앉아 상념에 젖는다. 그때 엥, 소리 내며 벌 하나 배꽃으로 날아든다. 오각형 하얀 배꽃의 내부는 외양만큼이나 정갈하고 허허롭다. 뭐, 가져갈 게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매끈하고 밋밋한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는 꿀벌.민들레는 키가 작아도 빽빽한 꽃잎 안에 꽃가루며 꿀이 그득하다. 벌의 좌우 다리와 온몸에는 노란 화분(花粉)이 공처럼 매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화(梨花)는 아름답고 깔끔한 생김새처럼 내부 역시 단아하다 못해 적막하다. 그런데도 꿀벌은 쉬지 않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저공 비행한다. 참 부지런한 동물이 아닐 수 없다.고개를 돌리니 벚나무에서 꽃잎 몇 조각이 하늘거리며 지상으로 떨어진다. 주어진 시간 소진하고 소멸의 길로 접어드는 벚꽃 보노라니 ‘화엄일승법계도’의 문장 하나 떠오른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티끌 하나에도 우주 전체가 들어있다! 떨어지는 미소한 꽃잎 하나에도 우리가 경험하는 지구뿐 아니라, 측량 불가능한 우주 전체가 담겨있다는 사유와 인식.하나에 전체가 들어있다는 인식과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이 한순간이고, 한순간이 곧 영겁의 시간이라는 성찰은 또 어떤가! 문득 허무해지기도 하고, 내가 꼬물거리며 간신히 지탱하고 꾸려가는 삶의 자락들이 돌연 허접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상에도 나름의 의미나 무게가 있으리라 위로하면서 자신을 달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삶의 근본원리이므로!다른 한편 신카이 마코토의 만화영화 ‘초속 5센티미터’(2007)가 떠오른다. 첫사랑의 달콤하고도 아픈 기억을 모티프로 펼쳐가는, 기막힌 서사와 장면과 상념의 응어리가 한데 어우러져 숱한 망상과 꿈을 되살려내는 영화. 너무 일찍, 너무 깊게 만나버린 어린 청춘들의 엇갈린 사랑을 담담하지만 후벼 파듯 그려내는 신카이 마코토.어째서 벚꽃은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지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그 속도로 누군가에게 다가서고, 왜 우리는 그 속도로 누군가에게서 멀어지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니라, 서서히 준비되고 기획되는 이별의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라는 사실은 가슴 저미게 하는 바 있다. 변해가는, 포기해가는,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을 제때 알기만 했다면!….한쪽에서는 한창 피어난 이화가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빛나던 시간대를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보내놓고 하염없이 떨어지는 벚꽃이 있다. 피는 것과 지는 것, 태어나는 것과 소멸하는 것, 만나는 것과 헤어지는 것, 이런 순환과 반복의 영원한 도돌이표 안에서 우리 인생은 마지막 그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가?!하지만 나는 허무하고 쓸쓸한 상념을 꿀벌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한다. 맹렬하게 노동하는 녀석에게 삶의 허무 따위를 함부로 말하거나 가르쳐서는 아니 되기에! 봄날의 하오가 긴 그림자 끌며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2021-04-13

서울형 방역

오세훈 서울시장이 자치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독자적인 서울형 상생방역안을 제시했다. 지역과 업소, 시간 등을 가리지 않는 천편일률적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기존방역 방식에 대한 일종의 쇄신 요구다. 정부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상생방역을 실시하겠다는 전제를 달았으나 정부의 일률적 정책에 맞선 정책안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감이 있다.정부와 여당이 앞으로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지난 1월 권영진 대구시장이 식당 등의 영업시간을 단체장의 권한으로 밤 11시까지 연장했다가 정부 보건당국의 유감 표명으로 되돌린 경우가 있다. 방역기준에 단체장이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거의 없다는 반증 사례다.오 서울시장이 제시한 방역안은 일률적 제한에서 벗어나 업종별 특성을 감안해 영업시간 등을 달리 적용하자는 것이 골자다.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의도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의 희생을 최소화시키고 방역도 막는 상생 전략이라고 하니 업계의 반응도 좋다.그러나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시작할 즈음에 상당한 리스크를 전제로 한 방역안이어서 반대의 의견도 만만치가 않다.1년여 지내온 한국형 방역은 국민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특히 한 업소의 사고로 업계 전체가 셧다운 되는 방식에 대해 불만이 많다. 단체기합식 방역이란 비난도 나왔다. 반드시 일사불란해야 하는 볼멘소리도 있었으나 바이러스 확산 앞에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기가 어려웠다.서울시장의 서울형 상생방역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 수용할지는 알 수는 없으나 문제 접근방법에 관해서 서로가 머리를 맞댈 수 있다면 그것이 협치의 한 단면이다. 극한으로 치닫던 여야의 대립이 서울형 방역에서 협치의 모습을 찾을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4-13

윤석열, ‘윤서결’ 혹은 ‘윤성녈’

박창원수필가지난달 4일, 갑작스레 사임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2019년 7월 25일,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수식어를 달고 제43대 검찰총장에 취임한 후 사퇴하기까지 1년 8개월, 역대 검찰총장 중 이 사람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총장직을 수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임명됐음에도 임명의 이유이기도 했던 바로 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때문에 문재인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재임 기간 내내 권력 핵심과 대립했고, 종종 직무에서 배제되거나 사퇴 압력을 받았다.그러다가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에 따른 검찰 수사권 박탈 문제에 반발하여 ‘검수완박’이라는 신조어를 남기며 검찰을 떠났다. 떠나는 순간 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었고, 지금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그래선지 이곳저곳에서 내가 국어 선생을 했으니까 묻는다면서 윤석열은 [윤성녈]로 읽어야 하는지, [윤서결]로 읽어야 하는지 답해 보란다. 나는 바로 [윤서결]로 발음하는 게 맞다 한다. 왜 이런 논란이 생겼을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은 대게 [윤성녈]로 읽어야 할 것 같은데, 방송에서 자꾸 [윤서결] 하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윤석열의 한자명은 尹錫悅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을 [윤서결]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말은 연음 법칙이 적용되어, 모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은 앞 음절의 끝소리(받침)를 이어서 소리내기 때문이다. 즉 모음으로 시작되는 ‘열’은 앞 음절 ‘석’의 끝소리 ‘ㄱ’을 이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결] 발음이 되는 것이다.이 경우 서울말에 익숙한 사람들은 [윤서결]로 발음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경상도 방언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발음이 어색하여 곧잘 [윤성녈]로 발음한다. 경상도 방언권의 사람들은 ㅑ, ㅕ, ㅛ, ㅠ 같은 이중모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의 앞 음절에 끝소리가 있을 경우 이어서 소리를 내기보다는 이 이중모음 앞에 ‘ㄴ’을 첨가시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단열[다녈]을 [단녈]로, 금요일(그묘일)을 [금뇨일]로, 산유국[사뉴국]를 [산뉴국]으로 발음하게 된다. ‘석열’도 예외가 아니어서 ‘열’에 ‘ㄴ’을 첨가시켜 ‘녈’로 읽는 것이다.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석렬(石烈)’이라는 이가 있다. 이 경우에는 뒤 음절의 원음이 ‘렬’이어서 [성녈]로 읽는 게 맞다. ‘석렬’이 [성녈]로 되는 것은 ‘석’의 끝소리 ‘ㄱ’과 ‘렬’의 첫소리 ‘ㄹ’이 만나면서 자음동화현상을 일으켜 ‘ㄱ’은 ‘ㅇ’이 되고, ‘ㄹ’은 ‘ㄴ’이 된다. ‘매울 렬(烈)’ 자를 쓰는 병렬, 억렬, 삼렬 같은 이름들은 이런 현상을 거쳐 [병녈], [엉녈], [삼녈]로 발음되는 것이다.사퇴 후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 선두 그룹에 올라 선 윤석열. 그가 정치권에 진입하여 큰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그룹도 있고, 한사코 그의 등장을 막아 보려는 그룹도 있다. 정치활동 찬성편이든 반대편이든 그는 현재, ‘[윤서결]이냐 [윤성녈]이냐’ 하는 논란만큼이나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2021-04-13

나만의 양심냉장고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독자들께서도 1996년에 시작된 TV프로그램 ‘이경규가 간다’의 ‘양심 냉장고’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냉장고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실망스럽게도 양심 냉장고의 주인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무렵 갓 운전면허를 딴 초보운전자 입장이라 그랬을까? 운전면허 시험에나 나올 법한 기초적인 교통법규 지키기가 그리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 양심의 민낯에 놀랐던 기억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작년 연말쯤의 일이다. 자동차보험을 갱신하려다, 내가 평소 즐겨 쓰는 내비게이션 서비스의 운전 습관 점수를 반영해 일정 점수 이상이면 보험료 할인이 제공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비스가 처음 시작되었던 무렵 신기해하며 살펴본 이후, 몇 년 만에 확인해본 내 운전 습관 점수는 76점. 겨우 턱걸이로 보험료 할인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낮은 점수로 인한 실망의 여파는 컸다. 항상 경제속도를 유지하며, 난폭운전이나 교통법규 위반을 절대 하지 않고, 안전 운전 습관이 몸에 밴, 25년 무사고 운전 경력의 자타공인 베스트 드라이버라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해 온 터였으니까….공학자답게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스스로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운전 습관 점수는 과속, 급감속, 급가속의 세 가지 항목으로 매겨지는데, 급감속과 급가속에서는 만점을 받았으나, 과속에서 점수가 많이 깎인 것을 알았다. 고속도로 운행이 잦다 보니 흐름을 타며 달린다는 핑계로 나도 모르게 과속이 습관이 되었던 모양이다.그날 이후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운전 습관 점수 100점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혼자만의 ‘양심 냉장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100점이 되는 날 나 자신에게 선물할 상품도 미리 결정해 두었다. 그런데, 한번 떨어진 점수를 회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도 규정 속도를 지키는 양심과 끈기가 필요했고, 그런 나를 비웃듯이 쌩하고 추월해 달리는 다른 차들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의 강한 멘탈도 필요했다.몇 달의 노력 끝에 내 운전 습관 점수는 97점까지 올랐다. 스마트폰 화면 속 작은 숫자가 가져온 변화는 고속도로에 배치된 고가의 감시 카메라들이나 각종 범칙금의 위협보다 강력했다. 매 주행 후 올라간 운전 습관 점수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규정 속도를 더 유심히 살피며 달리게 했고, 점수의 시원한 상승 그래프를 보고 싶은 욕심이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에서도 과속의 유혹을 이겨내게 했다. 단지 숫자 몇 개로 25년차 운전자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 그 서비스는 ‘스마트 기술이 우리 생활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례’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이 글을 쓰면서, 몇 달 전 스스로 정해 놓았던 ‘양심 냉장고’ 상품이 뭐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서 새로운 선물을 하나 생각해야 했다. 그걸 잊어버린 것을 보면, 처음부터 선물 그 자체가 그리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지, 싶다.

2021-04-13

‘왜’를 기억한다는 것

무슨 일을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이유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 해 나가다 보면 다른 욕망이 끼어들게 된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며 취업을 했는데, 나보다 앞서 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조급해진다.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소홀해져버린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교육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일이라며 교사가 되어서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의 연봉을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주식이나 가상화폐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곤 한다. 돈 벌어서 세계여행 가는 게 소원이라더니 힘들게 번 돈이 아까워서 못 간다는 친구도 있다. 모두가 처음 그 일을 시작할 때 마음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고, 불행하다.나는 분명 즐거워서 음악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기타를 메고 홍대 놀이터나 이대 앞 공터 같은 곳에 나가 앰프도 마이크도 없이 매일 노래를 불렀다. 팁 박스라도 하나 가져다 놓았다면 간혹 천원짜리건 만원짜리건 넣어주는 이들도 있었을 텐데, 일부러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팁을 주면서 신청곡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청곡을 부르는 것보다 자작곡을 부르고 내 이야기에 호응하는 사람들을 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었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진 않았는데, 이름을 알리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렇게 간절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른 욕망이 끼어들기 시작했다.“너는 언제 뜨냐?”“네 노래는 언제 노래방에 나오니?”“너도 뜰 수 있을 것 같은데...”“이제 슬슬 TV에도 나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한 해 한 해 갈수록 그 목소리들은 점점 커지고 많아졌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넘기던 나도 나중에는 그런 말들에 부담을 느꼈고, 언젠가부터 마치 그 ‘떠야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내 욕망이었던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그 무렵 한창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불었다. 슈퍼스타K, K-Pop 스타, 보이스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하늘을 찔렀고, 스타도 많이 배출해내던 시절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가보라고 부추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 주입된 ‘떠야한다’는 욕망이 나를 오디션 프로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오디션에서 예선탈락만 반복하던 어느 날, 드디어 TV에 출연하게 되었다. MBC ‘위대한 탄생 3’의 최초 예선을 통과하고 드디어 방송 오디션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당시 어느 작가는 내게 따로 제작진이 기대하는 바가 크니 오디션을 잘 보라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이미 슈퍼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방송 촬영 당일, 나는 처참하게 탈락하고 말았다.“너무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난 들으면서 화가 났어요. 정말 그냥 뜨고 싶어서 나온 것 같아요.”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용감한 형제’의 심사평이었다. 그 독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뜨고 싶어서 나왔냐는 말이 백 프로 사실이었으니까.그날 많이 울었다. 단지 오디션에서 떨어져서가 아니라, 뭘 해도 뜨지 않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음악을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무렵, 편도선 수술을 받고 입원을 했다. 목이 아파 노래는커녕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음악과 멀어지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에 누워 잠자고 책읽기만 반복하다가 지겨워 휴대폰 어플을 뒤적거렸다. 예전에 깔아둔 피아노 어플을 발견했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건반을 누르고 놀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욕심이 생겨 곡을 하나 쓰기 시작했고, 끝내 곡을 완성했다.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올렸다. 음악이 이렇게 재미있었다고. 나는 그래서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 뜨기 위해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그때 그만두지 않았던 것은, 그리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때의 기억이다. 유명해지고 싶고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야 여전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재미있어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것을 망각하자마자 음악을 하는 게 힘겨웠다. 여전히 재미만 있다면 계속 해 나갈 이유는 충분한 것인데, 그것을 망각한 채 다른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힘들어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미련한 일이다.여전히 내 귀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리고, 다른 욕망들은 언제건 마음을 단숨에 잠식해버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처음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기억, 그리고 병실에서 곡을 만들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때의 나와 마찬가지로 왜 그 일을 시작했는가를 잊고 괴로움만 남은 채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문득 찾아가길 바란다. 어쨌거나 우리는 행복해져야 하니까.

2021-04-12

개인의 시대, 불안과 함께하기

결혼을 앞둔 친구를 만났다. 직장생활 7년 차에 접어들었다는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듯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긴장 속에서 끝마친 상견례와 주고받은 예물, 예단, 어렵사리 계약한 신혼집의 위치와 남편 될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 헤어지기 직전, 친구는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괜찮아?” 딱히 괜찮지 않을 것도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내가 걱정이라고 했다.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으냐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누군가에게 내 인생은 유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나는 2019년을 프놈펜에서 보냈다. 거기에서 소설을 썼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고향에서 지냈다. 사교활동이나 일을 하는데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그것이 내 생활을 좌지우지할 만큼 커다란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인터넷이나 전화로도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 가능했다.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다. 소속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유로웠고 동시에 불안하고 위태로웠다.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을 가진다. 그곳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약속된 월급을 받는다. 이러한 조직의 형태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특히 코로나19의 여파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하나의 직업을 가지지 않고 다양한 일을 개척하는 잡(Job)노마드나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프리터 등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직장에 고용되지 않고 일하는 자발적 프리랜서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조직사회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창출하기를 자처하며 삶을 디자인한다. 기업에서 원하는 학벌이나 토익점수, 자격증에 목매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찾고 그것을 노출하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다. 회사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만든 콘텐츠를 내보인다. 우리는 주변에서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를 찾는 크라우드 펀딩이나 단독으로 일하는 1인 크리에이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근무 체계에서는 조직의 형태가 흐려지고 오롯이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개인의 역량이 중요해졌다는 말은 다르게 해석하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직의 보호 아래에서 일을 분담하는 것과는 다르다. 업무적인 실수는 곧바로 개인의 무능과 연결된다. 감당하기에 벅찬 중대한 일 역시 오롯이 혼자 결정해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게다가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의 경쟁 대상은 인간을 넘어 로봇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벌써 그렇다. 키오스크로 대체되는 단순 노동 일자리부터 인공지능, 자율주행,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 데이터까지. 조직이 만들어놓은 틀을 그대로 따라가면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개인이 해낼 수 있는 생산에 대하여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누구나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의 능력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따르지 못할 수 있고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은 이렇듯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사실 불안이라는 것은 회사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국한된 말이 아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생산을 종용하며 결국 일종의 무대만 바꾸어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는 전언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것은 인간은 태초부터 어쩔 수 없는 불안함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물리칠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안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것이다.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는 사회가 녹록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테다. 길을 잃고 실수도 할 수 있다. 그럴수록 두려움과 손을 잡고 자신의 고유한 길을 완강하게 걸어가면 된다. 불안을 딛고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1-04-12

현대미술이 태동한 역사적 배경

미술은 하나의 언어이다. 언어의 일차적 기능은 의사소통이며,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공통된 의미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1850년대를 기준으로 미술은 현대미술과 그 이전의 시대로 구분된다. 여기서 1850년대라는 숫자를 절대 불변의 고정적인 숫자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미술의 변화는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거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처럼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 정확하고 분명한 시점과는 달리 이해돼야 한다.현대미술의 시작점을 1850년대 혹은 범위를 조금 넓혀 19세기 중반으로 보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미술의 언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1850년대 이전에 나타난 미술만 하더라도 1천5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수많은 양식들이 나타났고, 각각의 양식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나타난 미술들은 형식이나 내용이 너무나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미술들이 지니고 있었던 차이점들을 모두 희석시켜 버렸다.현대미술의 특징은 고전미술과의 비교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서양미술사는 천년의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로 나눠진다. 또한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매너리즘이 그리고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사이에 로코코가 과도기적 성격을 띠며 잠시 나타나기도 했다. 각각의 시대는 그 시대의 미술을 특징짓는 형식을 보여줬다. 그것을 양식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서양미술사는 중세에서 낭만주의 미술까지 양식에 의해 시대가 구분됐다고 생각하면 된다.1850년대 이후 미술사의 전개 양상은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인다. 하나의 양식이 짧게는 반세기 길게는 수백 년을 지배했던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형식의 미술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세력화되고 권력화 된 미술과 대립하게 된다. 현대미술에 접어들면서 더이상 시대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양식은 사라지게 됐고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개인화되고, 개별화된 실험적 미술이 사조, 주의, 운동의 형태를 띠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된다. 양식의 시대에서 이즘(ism)의 시대로의 전환, 다양한 미술 형식의 공존, 이것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특징이다. 미술은 시대의 상호작용 속에서 숨을 쉰다. 시대가 변하면 미술이 달라지고, 시대의 변화를 미술이 예견하기도 하며, 미술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미술을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 세계로 열려 있는 창문에 비유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시대와의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에 미술을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탐구하는 미술사라는 학문이 가능할 수 있다.19세기 중반 현대미술 태동의 중심지는 프랑스 파리이다. 물론 프랑스 파리를 현대미술의 유일한 발상지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가 현대미술이 시작된 가장 중요한 장소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을까? 19세기 중반 유럽은 정치·사회적으로 대변혁을 경험하고 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앙시앙 레짐으로 불리는 절대왕정의 구체제가 무너지고 시민사회가 형성되는데 그 중심이 된 곳이 프랑스 파리였다. 산업과 경제구조에도 크나큰 변화가 일고 있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점차 유럽 대륙으로 확산되었고, 산업혁명의 기술혁신은 경제의 중심축을 농업에서 공업으로 옮겨 놓았다. 토지를 기반으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굴뚝에서 연기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 도시와 도시가 철도로 연결되면서 이동 속도가 빨라졌고, 이동 속도가 빨라진 만큼 세상이 움직이는 속도도 빨라졌고, 생각의 속도, 변화의 속도도 빨라졌다. 무언가가 빨리 움직이게 되면, 누군가는 그 변화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그와 함께 양산되는 어두운 그림자가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대미술이 피어났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1-04-12

옛 지형과 신라… 알천과 북천 그리고 경주

신라왕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완만한 경주 선상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경주 선상지는 크게 고위면과 중위면, 저위면으로 나뉘며 왕경을 비롯한 유적은 주로 저위면과 중위면에 걸쳐 분포한다.경주 선상지는 인간이 생활하기 이전, 빙기와 간빙기 때부터 만들어진다. 경주 동쪽에 위치한 산지에서 자갈과 모래가 그 당시 물길을 따라 옮겨져 마지막 빙기가 끝날 때까지 경주 곳곳에 쌓였다. 현재 경주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북천은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물길과 폭을 달리하며 흐르면서 옛 지형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추정 할 수 있는 옛 물길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는데 ①현재 북천 하천제방 정비 이전에 흘렀던 물길 ②동천동 전 헌덕왕릉(사적 제29호) 동쪽부터 약산과 금강산을 따라 용강동으로 흐르는 옛 물길 ③보문동 숲머리마을 부근부터 황룡사(사적 제6호)와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를 거쳐 남천과 서천(형산강)으로 이어지는 옛 물길이다.한편, 문헌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이전까지 알천(삼국사기) 또는 북천(삼국유사)으로 불렸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북천은 경주읍성(사적 제96호) 북쪽을 흐를 때부터 북천이라 주로 불리고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쌓은 제방을 따라 만들어진 숲(오리수) 위치로 추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 왕경에서 지방 도시로 전락하고, 몽골 침략 이후 급격하게 쇠퇴해 인구가 줄었던 탓에 현재 북천 남쪽에 있는 전랑지(사적 제88호)와 같은 중요유적은 13세기 후반에서 15세기 후반 사이에 북천 수해로 훼손됐다. 나라에서 경주가 차지하는 중요도가 높았다면 훼손되지 않았거나 바로 복구됐을 것이지만 현재 유적에 남겨진 흔적으로 보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경주 북천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알천이다.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647년)에 반란을 일으켜 죽은 비담을 대신해서 상대등에 오른 사람 또한 알천이다. 알천은 그만큼 신라와 경주에서 중요한 이름으로 여겨져 왔음은 분명하다.알천 옛 물길 가운데에는 진흥왕(534~576년) 즉위 이후 가장 중요한 국가사업인 황룡사(553년 창건)가 있다. 황룡사가 창건되기 이전 상황은 의외로 단순하지만 신비롭다.황룡사가 새로운 궁궐로 계획되다가 사찰로 바뀐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거대하고 중요한 시설이 지어지기 전 옛 지형과 고고자료는 황룡사 발굴조사가 진전되어, 남쪽 황룡사 광장과 도시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주에서 몇 군데 조사사례가 있는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황룡사 광장과 도시유적 주변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어 6세기대에 처음으로 이곳이 논으로 경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보통 논은 산간지역을 제외하면 주로 평평하고 물이 적당히 있는 곳을 개발하여 경작하는데 이러한 사실로 황룡사 주변이 북천 또는 알천의 영향을 받는 물이 많은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물길 범위 안에 계획되었던 새로운 궁궐의 건립과 이후 황룡사 창건이 가능하게 된 것은 국가가 주도한 하천 치수사업이 반드시 있어야 가능하다. 황룡사가 지어진 남쪽에서는 옛 물길을 따라 모래와 자갈이 많이 쌓여있는 자연지형을 파서 황룡사가 건립된 사역에 골재로 쌓아 대지를 만든 흔적이 조사됐다. 황룡사 사역에서는 흙둑을 서쪽에 만들어 동쪽부터 서쪽으로 흙과 자갈을 번갈아 쌓은 흔적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월성(사적 제16호) 북쪽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다가 계림(사적 제19호) 부근에서 급격하게 방향을 바꿔 남천으로 합류하는 인공수로(발천)가 있다. 발천은 신라 시조 혁거세 거서간의 왕후인 알영이 태어나 목욕을 시킨 곳으로 역사기록은 전한다. 현재 석축으로 둘러싸여 폭이 일정한 발천은 선상지를 만들면서 흘렀던 옛 물길이 지나간 낮은 지점에 있다. 자연하천으로 폭이 넓었던 발천은 방향이 바뀌며 인공수로가 되면서 월성 서쪽을 따라 남천으로 합류하게 됐다.장우영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이곳이 개발되기 이전은 자연하천이었고, 역사시대에 하천을 정비해서 인공수로를 만들었던 사실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차례로 조사 중인 동부사적지대(사적 제161호) 일원 발굴 결과로 알 수 있다.발천 옛 물길은 월지와 월성해자에도 영향을 끼쳤다. 동궁을 건설하면서 높게 흙을 쌓고 월지를 만들면서 주변 지하수와 지표수를 이용하여 조경을 염두에 두고 용수를 확보했다. 모래와 자갈로 가득 차 있던 선상지의 옛 물길을 파서 만든 삼국시대 수혈해자도 삼국통일 직후, 동궁과 월지가 만들어지면서 수문환경이 바뀌어 조경 성격이 강한 석축해자 단계로 탈바꿈 한다.우리가 사는 신라왕경과 경주는 그러한 땅 위에 지어져, 오랜 시간 동안 서울 또는 경도(京都)로 불리게 되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자랑스러운 역사도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21-04-12

쏠림과 균형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간혹 고향을 찾아보면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릴 적 노닐던 등성이나 벌판은 그대론데 집들과 마을 사람들은 낯선 듯 어렴풋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변하는 세상이라 예전의 온전한 고향마을의 정경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갈수록 허물어지고 황폐화돼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서글프기만 하다. 그래도 고향 어귀에 들면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먼 지난날이 손짓하며 부르는 정겨운 세월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옴을 느끼곤 한다.봄날 고향의 들판이나 골짜기, 시내, 언덕배기 어디를 둘러봐도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10여리 떨어진 초등학교엘 걸어 다니면서 배가 출출해지면 길섶과 산자락의 땅찔레와 시금치, 참꽃, 버들강아지 따위를 꺾어 먹고, 놀거나 무슨 일을 하다가 심심해지면 칡뿌리를 캐거나 감꽃을 줍고 아카시아꽃을 따서 먹기도 했었다. 약간 달거나 시큼하고 떫고 쌉싸래한 맛을 느끼며 허기진 배를 달래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꿈결처럼 아른거리며 그 감칠맛이 입안 가득 배어 나오곤 한다.“마냥 부풀기만한/설레던 고향 길도/모진 바람 갈퀴 속에/변조되는 쓰라림/빈 가슴 쓸어내리는/가슴 아린 눈물 길//잡초더미 에워싸인/폐허 같은 고향집/마당이며 묵정밭엔/설움만 웃자라고/스산한 바람만 불며/허허롭게 저민다” -拙시조 ‘퇴색’고향을 떠난지 어언 41년, 요즘 같은 봄날이면 풀 냄새 땅 냄새가 풀풀 피어오르던 고향은 어느새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퇴락해졌다. 60, 70년대부터 시작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과 농촌인구의 자연감소로 빈집이 많아지고 휴경지가 늘어남에 따라 전답이 수풀되거나 길마저 사라진 곳이 수두룩해진 것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농어촌에는 간혹 귀농귀촌도 있긴 하지만, 적막하다 못해 인구소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현실이다.그러나 산업화, 도시화로 일자리 마련을 위해 농어촌을 떠났다지만, 도시의 상황은 어떨까? 어느 지역이든 저출산·고령화의 트렌드를 거스르기는 어렵기에 인구감소에 따른 도심 공동화와 도시기능 쇠퇴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도시가 상당수에 이른다.통계에 따르면 30년 후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6%가 사라지고 지방자치단체 중 30%가 파산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으로 경각심을 주고 있다. 대도시로의 인구 유입과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국토의 약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해 있는 양상이다. 최근 대구·경북의 행정통합론이나 지자체마다 출산장려로 인구절벽을 줄이고 주소갖기 캠페인 등을 펼치는 것도 결국 도시소멸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아닐까 싶다. 뭐든지 한쪽으로 편중되거나 쏠리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연계에서 상생하는 인간사회에 균형과 견제, 평형과 중용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자칫 공멸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농이 적절히 어우러지듯이, 큰 세상을 이고 가는 작은 세상과 작은 세상을 품고 사는 큰 세상이 공존 공생하는 조화와 균형으로 지구촌을 이끌어 간다.

2021-04-12

학생은 학교가 답이다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코로나속보] 2020년 3월 1일 오전 9시 기준 국내 총 확진자 3천526명(하루 새 +595), 사망자 17명(+1) 2020년은 학교가 참 어수선한 한해였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1년 4월 11일 확진자 614명 서울 2단계 지방 1.5단계를 유지하고 있다.일선 학교에서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한다. 원격수업의 장기화로 학생들의 교육격차가 심화되고 학생들은 밤과 낮이 바뀌어 생활하는 문화가 생겼다. 학교의 담임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가정의 학부모님은 학부모님대로 어려움을 겪는 이중적 고충을 겪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돌밥돌밥(돌아서면 밥)이 한때 유행을 했을 정도이다. 고충을 알만하다.비대면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침 조·종례를 줌으로 하고 교과수업은 EBS 온라인 클래스를 통해서 선생님이 동영상 수업을 올리거나, 줌을 통해 쌍방향 수업을 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쌍방향 수업은 많은 선생님이 선택하지 않은 수업방식 중 하나이다.필자 또한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모든 수업을 직접 해본 경험을 비추어보면 그중에서 줌을 통하여 쌍방향 수업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고 질문하고 답변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점도 많다.하지만 이것 또한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비대면 수업이 아니라 학력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하는 수업이다. 등교 수업을 확대해야 한다. 아니 전면 등교 수업을 해야 한다. 학교보다 안전한 곳은 없다. 학생과 학교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안전하다.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필자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텅 빈 운동장이 아닌, 텅 빈 교실이 아닌, 학생들과 함께 운동하고 수업하기를 바란다. 학생이 없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학생과 함께 하고 싶다.학교 현장은 어느 곳보다 방역을 준수하고, 등교 전 건강상태의 자가진단, 식당 청결상태, 사회적 거리두기 줄서기, 식당 테이블 인원 줄이기, 학생과 교사 마스크 착용하기 등 의심환자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등교 수업을 통해 교육격차를 줄이고 다양한 방법을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학교 정상화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현재 유치부·초등학교 1·2학년·고3학년 학생은 매일 등교하기로 발표를 했다. 하지만 집에 혼자 남아 있는 학생은 안전한지 그리고 학력 격차는 누가 해소 해 줄 것인가. 이제는 코로나19를 물리치는 방법의 하나가 철저한 방역을 통해 학생은 학교로 등교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학생이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이 최고이다.변화를 좇아가지 말고 미래로 앞서가야 한다. 현재만 바라보지 말고 역발상을 통해 행동하고 극복하자. 과감하게 그리고 변화에 도전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자.

2021-04-12

포슬린 아트

포슬린 아트는 유약처리 된 백자 위에 특수안료와 오일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뒤 구워내는 도자기 공예를 말한다.포슬린(Porcelain·자기)과 아트(Art·예술)의 합성어로, 18세기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도자기 공예다. ‘포슬린’은 흙으로 구워 만든 백색 상태의 도자기, 즉 초벌이 된 백자를 가리킨다. 포슬린 아트는 포슬린 페인팅(Porcelain Painting)이라 불리기도 한다.유약을 발라 구운 도자기 위에 다시 무늬나 그림을 그린 후 700℃~ 850℃정도의 저온에서 굽는 ‘상회(上繪) 기법’을 사용하며, 보통 1~4단계의 소성(燒成·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려 가마에 구워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포슬린 아트 재료는 의외로 간단하다. 유약을 바론 백색의 하얀 도자기를 준비하고, 포슬린 안료는 가루로 돼있고, 붓끝에 오일을 살짝 묻힌 뒤 희석시켜 사용하면 된다.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시대가 길어지면서 홀로 작업할 수 있는 취미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포슬린 아트가 각광을 받고있다. 특별한 그림 실력이 없어도 도안을 따라 예쁘게 색칠해서 관심이 있다면 초보자들도 금방 예쁜 작품을 만들수 있다.포슬린 아트의 대표적인 사례는 주로 그릇에 꽃무늬를 그리는 것이다. 그림소재는 다양하지만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꽃그림 접시가 포슬린 아트의 결과물이다.요즘에는 도자기에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애완동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다. 도자기에 원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장식품이나 식기로 사용할 수 있어 더 친근하다는 이들이 많다.그림을 그린 뒤 가마에 구워지면 나만의 포슬린 아트가 완성된다. 코로나19가 만든 새 유행풍속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4-12

미지의 영역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사람은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조 해리의 창이라는 심리 이론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네 가지 정보 영역이 있다. 나에 대한 정보를 나도 알고 남도 아는 공개 영역, 나는 모르지만 남은 아는 맹목 영역,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숨긴 영역, 그리고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미지 영역이다.영화 ‘퍼스트 리폼드’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면 미지의 영역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메리의 남편인 환경 운동가 마이클은 메리에게 50년후 최악의 지구 상태를 예견하며 낙태를 종용한다. 메리는 하필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목사 톨러에게 찾아와 마이클을 설득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마이클은 자살하고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장례식을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톨러 역시 마이클처럼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덕 자본가를 응징하려다가 자살로 생을 마친다. 메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남들 눈에도 아기를 출산하고 싶은 순수한 여인일 뿐인데, 메리가 만난 남자들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으면 의문이 풀릴까?‘프로이트 이후’는 현대정신분석학의 발달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여기서 영국의 대상관계 정신분석 이론가인 페어베언은, 초기에 내적 대상으로 형성된 대상과의 관계 양식은 이후에도 반복되어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메리가 이렇게 비슷한 유형의 남자와 만난 것은 초기에 형성된 내적 대상의 영향으로 비슷한 유형의 두 남자를 선택하게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쁜 남자에게 고통 받은 여자가 다시 선택한 남자 역시 이전 남자와 비슷한 유형인 경우가 많다.게다가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간과하거나 뜬금없다고 여기는 ‘마법의 시간 여행’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여행은 메리의 무의식이 두 남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이클이 죽은 후 메리는 무서운 꿈을 꿨다며 한밤중에 목사를 찾아와 이 여행을 제안한다. 메리는 목사를 바닥에 눕게 하고 자기는 목사 위에 엎드려 온몸을 밀착시킨 다음 목사에게 자신의 호흡과 눈움직임, 손움직임을 따라하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들이 처음 간 곳은 숲이다. 그러나 곧 자동차로 가득한 도시의 넓은 도로가 나오고 뒤이어 폐타이어가 화면을 채운다. 그 시간여행을 마친 후 톨러 목사는, 풍요로운 삶 교회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덕 자본가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에 분노해 자살폭탄 테러를 준비한다. 메리는 구원자가 아니다.자기 자신과 남에게 알려져 있는 공개적 영역이 아무리 순수해보인다고 해도 미지의 영역에 드리운 어두움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커서 공개적 영역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반복을 끊기 위해서는 미지의 영역을 공개 영역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미지의 영역이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노력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021-04-12

자랑스러운 우리 항공기술

윤영대수필가코로나 4차 유행을 걱정하는 뉴스로 마음이 심드렁한 지난 9일 오후 TV 화면이 바뀌면서 ‘하늘을 열다. KF-21 한국형 전투기 출고식’ 영상이 뜬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천공장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시제품 1호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행사였다. 최초의 국산 전투기 개발의 기틀을 마련하고 하늘을 향한 도전을 이룬 항공산업의 주역들을 보며, ‘아! 우리 대한민국도 전투기를 만드는 자랑스런 국가가 되었구나’하고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전투기의 눈’이라는 최신 레이더 AESA 등 최첨단전자장비를 갖춘 KF-X는 ‘21세기 한반도를 수호할 전투기’라는 의미로 KF-21로 명명하고 공모를 통해 ‘보라매’라고 부르기로 했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첨단 국산 전투기 개발을 천명한 이래 지지부진하다가 2010년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여 현 KF-16보다 상위기종으로 날개를 편 것이다.최대속도 마하 1.8, 무장 탑재 7.7t이 가능한 이 스텔스 전투기 ‘보라매’는 개발비 8조8천억의 단군 이래 최대사업으로 기술과 개발 의지를 묶어 국산화율 65%를 달성하고 수십조 원의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신화를 만들 전망이다. 시제기는 지상 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내년 7월 첫 비행을 할 예정이며 2028년까지 우선 40대를 공군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4.5세대 초음속 전투기 개발의 세계 8번째 생산국이 되는 것이다.이미 1999년 우리의 기술로 기본훈련기 KT-1 ‘웅비’를 만든 이래 2003년 고등훈련기 KT-50 ‘골든 이글’로 초음속을 돌파하여 세계 12번째로 초음속비행기 개발국이 되었으며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하였고, 2013년부터 FA-50 경전투기로 개량하여 자주국방의 힘으로 우리의 영공을 지켜오고 있다.해방 후 공군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육군항공대로 시작해서 1949년에 공군으로 독립하였고, 당시 ‘공군의 아버지’ 최용덕 장군이 ‘우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펼쳐 최초 경비행기 ‘부활호’를 띄운 지 70년 만에 전투기까지 만드는 쾌거를 이루었다.또 헬기 기술은 2012년 KUH-1 ‘수리온’을 최초 개발하여 세계 11번째 나라가 되었고, 이것을 경찰용 ‘참수리’ 소방용 ‘한라매’ 뿐만 아니라 산림감시용으로도 배치하여 활동하고 있다.우주로 나아가는 꿈도 펼치고 있다. 1992년 8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하며 우주개발에 첫발을 내딛고 세계 25번째 인공위성 보유국이 된 후, 무궁화, 아리랑 등 15개나 쏘아 올렸다. 2013년 우리 손으로 만든 나로호 발사로 국민의 환호를 받았으며, 최근 10년간 천리안 위성 3개를 궤도에 올려 세계 7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젊었을 때 공군 조종사를 빨간 마후라, 보라매라고 불렀는데 이제 그 보라매들이 초음속 전투기 보라매를 타고 우리의 한반도 영공을 지켜나가는 든든함을 보리라. 그리고 우리의 첨단 항공기술력으로 자주국방의 힘을 다지자.

2021-04-11

뜻하지 않은 곳에서

최미경동화작가평일 오전 도서관에 갔다. 코로나로 전면 개방은 되질 않지만 대출, 열람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도서관 로비에 전시된 책 한 권 집어 들고 로비에 띄엄띄엄 배치된 소파에 잠시 기대앉았다. 유리천장으로 해가 쏟아낸 빛물이 그대로 쏟아져내려와 나의 무릎과 어깨 그리고 머리가 투명하게 젖어가는 듯 했다. 불쑥 보르헤스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천국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천천히 들어 올려 더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조금씩 더 깊게 책에 집중할수록 눈앞에 흐르는 한 줄의 문장과 귓가에 흐르는 맑고 차가운 한 줄의 공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온몸의 세포들이 하나씩 일어나 크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마음에 무언가 가득 차올랐다. 행복이었다.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마음은 늘 불안과 걱정을 반복했고 실망과 미움이 지속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대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에 대해 분노하며 잃어버린 것에 대해 화도 나고 예민해져서 ‘이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해보겠다는 마음에 몸은 항상 몹쓸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 상황’이라는 것이 나 혼자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난관과 마주쳤을 때마다 불안은 더해 졌고 그 불안이 우울을 데려다놓기도 했다.네 개의 계절을 다 보내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아이들은 정상등교를 하지 못하고 사적인 모임도 어렵다. 그렇게 보면 작년 이맘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는 장치를 우리 몸과 마음은 그 1년의 시간동안 배우고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영위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섬세한 삶의 관찰자 눈이 바로 그것이다.매일 매일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일, 보고 싶은 이와 전화해 점심약속을 잡는 일, 주말이면 아이들과 근처 미술관에 가서 새로 바뀐 작품에 대해 수다를 떨었던 일, 공원을 거닐며 큰 소리로 웃고 김밥이며 과자를 나누어 먹었던 일, 도서관 3층 쉼터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던 일, 영화관에서 셋째의 팝콘을 집어 먹던 일 등등 정말 아무렇지 않게 했던 모든 일들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1년 동안 깨달았던 것이다.그리고 다시, 봄을 전진하는 이 시공간에서 우리는 감사한다. 가족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을 감사하고 아이들 뺨에 입 맞출 수 있는 이 시간을 감사한다. 예약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미술관의 그 공간에 대해 감사하며 띄엄띄엄 순번대로 앉을 수 있는 도서관의 그 공간에 대해 감사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고 신나게 뛰어 놀 수 있으며 어깨동무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고 또래와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감사한다.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을 천천히 하며 책을 덮고 책이 전시된 로비를 돌아서 한껏 충전된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왔다.

2021-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