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가를 뒤적거리다가, 박완서(1931~2011) 선생의 책을 당연한 듯 꺼내든다. 선생이 마흔이 되어서야 처음 발표했던, 등단작 ‘나목’(1970)이다. 여러 번 때를 두고 다시 읽기도 했고, 매년 학생들에게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기도 있으니, 새로울 것은 전혀 없다. 줄거리라면 당장 입으로 읊을 수 있고, 몇 개의 문장들은 그대로 눈으로 보고 있듯 선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때가 되면 이 소설을 읽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이야기가 주는 깊은 공감과 문장이 주는 묘한 안정감 때문이다.
사실 박완서 작가의 문장은 언제라도 가보면 거기에 서 있는 산처럼 신뢰감이 있고, 읽는 사람이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새삼스러워지는 그런 맛이 있다. 물론 어떤 글이든 때를 두고 읽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을 테니, 유독 박완서의 문장만이 그런 맛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삶에 지쳐가고 있는 느낌이 들게 되는 때, 나는 산에라도 가는 것처럼 ‘나목’에 들어 있는 이경의 이야기와 박완서 선생의 문장을 떠올린다. 그러면 또 다시 이 책을 펴들 수밖에 없게 된다.
‘나목’의 주인공 이경은 세상 어디에도 붙박힐 수 없는 존재이다. 소설의 초반부를 읽어가며, 지극히 감정적이고 좌충우돌하는 이경의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거슬릴 수밖에 없는 것은 독자가 아직 그 마음속에 들어 있는 깊은 상실에 다가가지 못한 까닭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불편한 약점을 우리 눈앞의 대상에게서 발견할 때 거슬리는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답답한 현실에 대해 고작해야 거친 말로 반항할 수밖에 없는 이경의 태도가 거슬린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 어떤 부분이 삶에 붙박혀 있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며 우리는 이경의 마음속 깊이 들어 있는 상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경이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다니며 표류하는 것은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지진과도 같은 계기가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떤 종류든 간에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상실의 순간은 늘 불시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무리 마음의 대비를 한다고 해도 그 상실이 익숙해질 리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라는 마치 자연재해와도 같은 타율적인 박탈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삶의 바람이나 욕망 같은 것은 현실로부터 이격되어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은 잿빛이 되는 것이다. 한 번 그런 상실을 겪은 인간은 결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다니는 이경의 모습을 통해, 크든 작든 우리의 상실을 떠올리는 것이다.
소설의 초반부 독자에게는 분명 제멋대로이고 반항하는 청춘으로만 보였던 이경의 태도가 소설의 말미가 되면 한없이 안쓰럽고 딱한 존재로 바뀌게 되는 것은 이경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내재된 그런 상실의 기억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이경이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했던 옥희도의 그림 ‘나목’을 보면서 평온해진 것을 보며 우리 역시 그런 상실로부터 돌아와 평온해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매번 어떤 시기가 되면 이 책을 꺼내어, 당연한 듯 읽는다. 또 당연하게 이경의 제멋대로의 태도를 거슬려하다가 현실을 부유하는 이경의 상실로 인한 심연을 들여다 보고, 한 없이 그 삶이 안쓰럽고 소중해진다. 이 ‘나목’은 그렇게 박완서라는 야트막하고도 올망졸망한 산 앞에 언제나처럼 서 있는 것이다.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