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 신문 연재소설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제는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이 드물어진 시대. 본지는 2022년 새해 의미 있는 실험을 시작하고자 한다. 소설가 김강 씨의 작품 ‘Grasp reflex’를 주 1회, 매주 화요일 연재하기로 결정한 것. 김강 작가는 등단이 늦었지만, 독특한 세계인식과 탄탄한 문장으로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설의 제목 ‘Grasp reflex’는 파악반사(把握反射)라는 뜻이다. “쓰는 사람인 내가 읽는 사람인 그대에게 가려 한다”는 말을 전한 김강 작가는 포항에서 활동하는 내과의사이기도 하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주
만식은 숨을 들이마셨다. 크레졸 향을 품은 따스한 온기가 가슴 깊이 들어왔다. 콧속이 조금 아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가슴 깊이 들어오는 무엇, 기다렸고 반가운 것이기도 했다.
-숨쉬기가 훨씬 편하실 겁니다. 인공호흡기가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들이쉬려 하시면 기계가 즉각 알아챕니다. 회장님의 늑골과 호흡근의 움직임에 맞추어 인공 폐가 확장되고 그 때 발생한 음압에 의해 공기가 들어오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똑같습니다. 꽈리를 통해 산소가 들어오고 이산화탄소는 나가고. 평상시에는 그렇게 작동하다가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기계가 스스로 호흡을 시작합니다. 인공호흡인 셈이지요. 물론 억지로 숨을 참는 경우는 다를 수 있지만, 기계가 감지하는 역치를 넘기는 힘들 것입니다.
퇴원 전 마지막 회진을 온 이 교수가 장황한 설명을 했다. 지나치게 설명을 많이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겠지만 만식은 이 교수의 방식에 만족했다. 당연히 설명을 해주어야지. 간호사나 코디네이터가 하는 설명과 의사가 하는 설명이 같을 수 있나. 만식은 인공 장기를 이식받은 경험이 많았다. 장기들은 달랐지만 전반적인 설명과 수술 이후의 주의사항은 비슷했다. 그럼에도 만식은 이 교수의 설명을 새겨들었다.
-이 교수, 매사에 확실한 것은 내가 인정하지. 수술 받은 횟수로 치면 나도 전문가라면 전문가인데 말이야.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원칙대로 설명해주는 것, 나는 그게 좋아. 아무렴. 그래야지. 고마워요. 덕분에 한 삼, 사십 년 더 살게 되겠어.
만식은 베개 밑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 교수에게 건넸고 이 교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만식은 봉투를 접어 이 교수의 가운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누구나 마땅한 일을 하는 거야. 이 교수는 이 교수가 할 일을 하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간호사 선생님들, 코디 선생님들하고 맛난 것 사드시라고 주는 거야. 큰 돈 아니야. 촌스러워 보이겠지만 감사의 표시는 옛날 방식이 더 나아. 정겹잖아.
이 교수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봉투를 굳이 꺼내지는 않았다.
-허허, 참. 그, 참. 감사합니다.
이 교수가 감사의 말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새 폐를 이식받으셨다고 다시 담배를 피우시거나 하시면 안 됩니다. 아셨지요. 떼어낸 폐를 살펴보았는데 모양이 이상한 세포들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암은 아니지만 암 전 단계 정도는 됩니다. 너무 건강에 자신하지 마십시오. 항상 조심하고 관리하셔야 합니다.
만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알겠어. 밧데리는 영구적인 거지? 설마 해마다 충전하러 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지난번에 듣기는 했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야.
이 교수 옆에 있던 코디네이터가 대답했다.
-네, 회장님. 배터리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생체 전류를 이용해 자가 충전하는 기능이 들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영구적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저희 센터로 먼저 신호가 옵니다. 그리고 나서도 일 년 이상 작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백 년 정도 더 사시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하.
코디네이터의 말이 끝나자 이 교수가 농담을 했고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만식은 손을 내젓다가 이내 같이 웃었다.
-퇴원하시는 날인데 회사에서 모시러 옵니까? 벌써 와 있나요?
이 교수가 물었다.
-회사 인력을 사적인 일에 부리면 쓰나.
-회장님이 곧 회사 아닙니까?
-그런가?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말이야, 오늘은 회사 직원을 부를 수가 없어. 예고 없는 출근을 할 거거든. 평소에 어찌하는 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지. 녀석들, 많이 놀라겠지. 아들놈은 출장 갔어. 퇴원하는 날에 맞추어 출장을 가네. 몹쓸 놈. 혼자 갈 수 있어. 출근하다 무슨 일 생기면 이 교수가 책임져야지.
이 교수와 일행은 병실에서 나왔다. 다음 입원 환자를 보러 가던 중 이 교수가 뒤따르던 코디네이터를 불렀다.
-갑자기 기계가 멈추고 그러는 일은 없겠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제품이라 신경 쓰이는데.
코디네이터는 인공 폐를 개발한 회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었다.
-그럼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환자가 다른 이유로 사망하는 일이 생겨도 인공 폐는 혼자 숨 쉬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무튼, 지독한 노인네야. 그렇지 않아? 저 밑에서 일하지 않는 게 다행이지.
이 교수는 만식의 몸에서 작동하고 있을 인공 심장과 인공 간, 인공 폐 그리고 인공 신장을 떠올렸다. 쉽게 죽지는 않겠군. 이 교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