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좋아 십수 년 째 바닷가 근처를 헤매며 살고 있다. 선박검사 기관에서 일하며 바다에 매료됐다. 국제학 전공 때에도 바다의 광활함에 이끌렸다. 망망대해의 신비를 여러분과 함께 바라보고자 한다. ‘정현미의 바다이야기’는 격주 목요일마다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로 불리는 임인년은 희망과 생동의 기운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일상을 회복하는 길목에서 만난 임인년의 물상(物象)은 그래서 더욱 반가운 지도 모른다. ‘위드 코로나’를 향해 나아갔지만 결국 미완의 자리에서 멈춰야했던 신축년(申丑年). 잃었던 기회를 되찾고, 평범한 일상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길 바라본다.
명리학에서 임인년(壬寅年)은 지혜와 성장을 표상한다. 천간인 임(壬)은 오행상 수(水)에 배속되어 차가운 겨울바다이자 응축된 생명력, 지혜 등을 내포한다. 지지인 인(寅)은 오행 중 목(木), 그 중에 양의 기운을 가진 인목(寅木)으로 성장과 동력을 의미한다. 결국 임인년(壬寅年)은 태초의 공간에서 탄생한 생명력과 그 존재의 성장을 함축하고 있다. 어둡고 차가운, 미지의 바다에서 태동하는 생명력을 그려낸 임인년의 물상(物象)은 코로나 일상에 갇힌 우리에게도 깊은 혜안을 던져준다.
생명을 잉태한 바다는 암흑의 이미지다. ‘자원의 보고’이자 ‘삶의 터전’이라 불리는 지금의 바다와는 사뭇 다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인된 바다는 절망에 가깝다. 조업 나가는 어민들의 뒷모습은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양망기에 잘린 손가락으로 무심히 그물망을 정리하던 노쇠한 어르신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풍어와 만선의 포부는 그저 젊은 한 때의 추억일 뿐, 뱃일은 그저 숙명으로만 존재한다.
어촌마을은 늘 조마조마하다. 평생 해 온 뱃일에 인이 박혔지만, 낡은 어선과 조악한 어로 장비는 제 기능을 못할 때가 많다. 매년 100명 안팎의 어민들이 조업 나가 돌아오지 못한다. 부상과 실종까지 합치면 500명이 넘는다. 열악한 조업 환경은 생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20년 전 25만 명에 이르던 어가 인구도 지난해 9만 7천명으로 줄었다. 만 65세 이상 인구는 이미 전체의 44%를 넘어섰다. 어촌마을의 내일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기후 변화는 또 다른 형태로 어촌마을을 위협한다. 기상 예측은 어민들의 안위와 직결된다. 자원 고갈은 어민들을 먼 바다로 내몰고, 심해는 더 거친 야성을 드러낸다. 기상이변까지 겹치면, 결국 해양사고로 안부가 전해진다. 매년 증가하는 해양사고 발생률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다에서 희망을 품는다. 제철 수산물로 일상의 원기를 돋우고, 문학작품에서 긍정을 긷는다. 문학작품에서 만나는 바다는 막강하다. 주인공은 항전을 불사하며 바다를 넘어서거나 응축의 기운으로 받아들인다. 결말은 한결같다. 결국 일어서고 나아간다. 신화와 역사도 마찬가지다. 기록의 범주에서 만나는 바다는 존재의 변이를 돕는다. 주체는 확장하고 성장한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가 전 세계 청소년의 필독도서인 이유다.
어촌마을의 바다는 전변의 시기를 겪는 중이다. 연근해 어업은 양식업과 수산가공업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수산 강국들은 이미 진행 중이고, 우리는 짧고 굵게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고령의 어민을 위협했던 영세하고 열악한 어업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일상의 바다는 지역의 전통과 음식 문화를 주도하며 살아 숨 쉰다. 각기 다른 제철 수산물은 마을 전통음식으로 전승되고 동시에 낚시꾼과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어촌마을의 명맥은 방문객들로 이어져 변형, 계승된다. 코로나 이전인 2017년, 연안 여객선 이용객은 1천600만 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의 기록이다. 섬을 오가며 만나는 바다에서 위로받고 기운을 얻는다.
올해로 코로나 팬데믹 3년째를 맞는다. 존재는 희미해지고 관계는 단절됐다. 생동하는 기운이 낯설다. 하지만 우리는 직감한다. 팬데믹은 엔데믹으로 바뀌고, 곧 평범한 일상이 찾아올 것이다. 미지의 바다가 생동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듯이, 우리 앞에 놓인 칠흑 같은 현실도 곧 북적거리는 일상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의 일상을 당당히 마주해보자. 나아가는 용기는 크게 발복하는 기운으로 다가올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소중한 오늘이 곧 도래하길 기원해본다.
※정현미 작가 프로필
-前 매일신문사 취재기자(46기)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국제학 석사(국제물류 및 항만 전공)
-前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대외협력실 홍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