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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행복해도 돼?!

등록일 2022-01-04 20:11 게재일 2022-01-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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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지난 해는 / 참 많이도 줄어들고 / 많이도 잠들었읍니다 하느님 / 심장은 줄어들고 / 머리는 잠들고 / 더 낮을 수 없는 난장이 되어 / 소리 없이 말 없이 / 행복도 줄었읍니다”(원문 그대로 옮김)

정현종 시인의 시집 ‘나는 별아저씨’(1978, 문학과지성사)에 실린 시 ‘냉정하신 하느님께’의 1연이다. 44년 전 출간된 시집의 빛바랜 종이에 적힌 시구가 어쩌면 이렇게 올해 벽두의 상황을 그대로 그려주는지….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는 지구별의 참 많은 사람들을 잠들게 했다. 우리들의 심장은 두려움과 긴장으로 쪼그라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은 하릴없이 떨어져야 했고, 가게문은 강제로 닫혀야 했다. 행복의 총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던 지난 12월 중순.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사적 모임 허용 인원이 4인으로 제한되기 작전, 지인의 회사 사무실에서 벗 몇이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무르익던 중 가장 연장자인 중견 기업 대표께서 둘째인 딸을 결혼시키고 난 뒤 한 달 동안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였다 한다. 100%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데 바로 얼마 뒤 연로하신 어머님께서 치매로 입원하셨고 형제 단톡방의 대화에서 어머님의 건강 문제로 인해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형제들에게 엄습하면서 자신의 행복감도 어느샌가 날아가 버렸단다.

그 자리의 다른 벗이 말을 받았다. 행복하고 즐거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조차도 군부 독재 체제에 저항의식을 가지고 있던 1970-80년대 대학생들의 마음 한 켠에는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하는 자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행복할 때는 그냥 행복해 하는 것이 맞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여기저기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건네진다. 이 먹먹한 시대에 건네는 덕담이 공허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전하는 희망을 감사히 받는다. 새로운 해가 뜨고 새 날이 밝았다. 새해 첫날만 그런 게 아니다. 매일 우리 앞에 해가 뜨고 날이 밝는다. 마냥 어두운 밤만의 날은 없다. 복은 하늘에 맡겨야 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행복은 다르다. 우리는 불행 속에서도 어떻게든 행복을 찾고 만들어내야 한다. 대책없는 긍정을, 속절없는 낙관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정현종 시인은 앞 시집의 ‘절망할 수 없는 것조차 절망하지 말고…. - 노우트 1975’에 “행복은 행복의 부재(不在)를 통해서만 존재하기 시작한다. 행복은 불행이 낳은 천사이며 이미지이다. 그것은 항상 이미지로서 존재한다.”라고 적었다.

그렇다. 행복과 불행은 반대말이지만 꼭 붙어서 오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마냥 행복할 수도 없고, 마냥 불행한 채로 허덕이지도 않는다. 옛 중국 변방 늙은이의 말 이야기(塞翁之馬)를 꺼낼 필요도 없다. 시인의 말처럼 행복의 부재는 행복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우리 앞의 불행이 행복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자.

새날 아침, 코로나로 힘들고 일상에 지친 당신과 내가 서로 묻고 답한다.

“나, 행복해도 돼?”

“응. 행복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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