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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의 결핍이 자랑이 될 때

낙엽이 진 자리는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언스플래쉬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상하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생각은 오후의 그림자처럼 자꾸만 길어진다. 그간 내가 이뤄온 성취와 다짐, 소망, 꿈꾸는 미래의 방향성이나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나의 단점까지 떠오른다. 스스로가 대견하다가도 한없이 작고 연약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콧잔등 위로 눅진한 빛이 내려앉으면 불현듯 하나의 깨달음이 밀려온다. 아, 가을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감상적이구나.그런 날들이다. 달력을 한 장 넘기면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몇 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해가 밝아있을 것이다. 올해의 나는 어땠던가. 이번 해는 제대로 살아냈는가. 뭔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았지만 매일같이 실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었고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 발걸음이 중심이 아닌 언저리를 돌고 있다는 감각.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 끈덕지게 붙어있는 우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요즘에는 잠이 부쩍 많아졌다. 온종일 잠자는 것도 가능하겠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은 잠자는 행위가 최후의 도피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날, 절망이나 고통과 같은 불행의 감정들이 내 안으로 썰물처럼 밀려드는 순간이 오면 나는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향함을 상상한다. 거기에서 나는 단 하나의 부족함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된다. 통장에 돈이 넘치도록 가득하고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근심이라곤 없는 하루를 보내는, 비극적 사건은 절대 찾아오지 않으며 주변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기쁘게 내어주는 그런 사람.그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걸 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정말 있는 줄만 알았다. 그들이 세상의 다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낙관적인 세계에서 산다고 여겼으며 웃는 얼굴의 사람들 사이를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헤집고 다녔다. 그러면 어떤 상실감이 찾아왔다. 인생을 운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하나의 조각, 그것을 이미 획득한 자들에게 질투를 느꼈으며 그 열등감이야말로 내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이었다.동시에 그런 내 마음이 들킬까 봐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나를 두고 결핍이 많은 아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영 들키고 싶지 않던 비밀을 폭로 당한 사람처럼 마음이 홧홧해졌다. 그렇지만 친구 앞에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씩씩하게 웃었다. 내 안에서 자꾸만 떠오르는 어떤 부정성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슬픔, 모자람, 추하고 가끔은 천박하다고 느껴지는 내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다.손에 쥔 것에 별로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우울을 본다. 그것이 없다면 나는 메마르고 텅 빈 몸이 되는 것이다. 늦가을의 책상 앞에 앉아 삶에 대해 몇 시간이고 고민하는 날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문장으로 적어내려는 시도도 없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세상을 불신하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질투하고 연민하는 일. 세상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고 평온한 일상에 목말라하는 일. 이것은 모두 살아서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감정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제 나는 나의 결핍을 자랑으로 여긴다. 내 안에 비루하고 나약한 것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나를 영웅으로 만들어주지 않지만 인간으로 남게끔 해준다. 쓸모없고 형편없는 것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나의 영원한 한계이면서 동시에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라는 것을 안다.나는 나의 결핍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시간 속에서 혼자만 아는 어떤 표식을 남겨놓는 행위를 하는 일은 모두 나의 결핍 덕분이다. 나는 나의 결핍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어떤 방에서 울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사귀 하나가 떨어진다. 버석버석한 낙엽이 차곡차곡 쌓인 거리를 바라본다. 이제 곧 긴긴 겨울이 온다. 늘 같은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나무는 다가올 추위를 견디고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황망하리만치 텅 빈 자리는 더욱 빼곡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런 순환과 믿음을 떠올리는 가을이다.

2022-11-22

세월따라 추억 쌓기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간혹 예전에 노닐던 등성이나 벌판을 거닐어 보노라면 문득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먼 지난날이 손짓하며 부르는 세월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옴을 느끼곤 한다.또래들의 시끌벅적한 재잘거림, 철딱서니 없는 아우성, 흥얼거리듯 외치는 환호 등 지금은 분간하기조차 힘든 유년의 함성이 눈길 따라 발길 따라 아련히 묻어나는데, 그토록 뻔질나게 부대끼며 목놓아 질러대던 그 시절의 주인공들은 지금은 다들 어디서 어떤 음조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짐짓 궁금하기만 하다. 뒷산에 올라 키재기하던 참나무는 내 키의 두배가 훨씬 넘는 거목으로 우뚝 섰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달음박질해야 겨우 다다를 수 있었던 앞산도 이제는 바로 지척에서 기웃거리는 듯하니, 무던한 시간의 물레에 버물려 자연과 나는 그렇게 변하고 성장했었나 보다.무릇 세월에는 소리와 향기가 있기 마련이다. 켜켜이 쌓인 책장 같은 나날에는 그날 그때의 장면이 고스란히 쟁여지고 사연이 응축되어 곰삭다가, 한 세월이 흐른 뒤에는 잘 익은 묵은지 마냥 새큼하고 걸쭉한 추억의 향기와 아스라한 울림으로 퍼지게 된다. 좋거나 좋지 않았던 기억의 편린들이 차곡차곡 뇌리에 쌓였다가 한동안의 숙성기간(?)을 거친 다음, 어느 순간 애증의 안개처럼 어련무던히 피어나는 것이다. 숱한 사연이나 애환의 잔상들은 세월의 저편에서 잠자듯 묻혀 있다가, 현실과의 교효작용으로 때때로 불현듯 스치거나 소환되고 꿈결처럼 여울지기도 하는 것이다.“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은/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추억은 늘어나는 법이니까//그리고 언젠가 그 추억의 주인이/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도/추억이 공기 속을 떠돌고, 비에 녹고/흙에 스며들어 계속 살아남는다면….//여러 곳을 떠돌며/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잠시 숨어들지도 모른다//처음으로 간 곳인데/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바로 그런 추억의 장난이 아닐까?” -유모토 카즈미 ‘여름이 준 선물’ 중에서어려서는 꿈을 먹고 자란다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고들 한다. 그만큼 좋은 경치를 보고 맛난 것을 먹으며 여행을 즐기고 누리는 경험과 기억이 많을수록, 대부분 자신의 삶이 풍부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승지를 관광하고 문화유적을 탐방하면서 느끼는 감탄과 만족감은 자신에게 희열감과 아울러, 선물 같은 추억을 덤으로 안겨주기에 사람들은 여행지를 더욱 즐겨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추억은 값지기 때문이다.지난 주말, 모처럼 고향 친구들과 안동 일원에서 서원을 답사하고 탈춤공연을 함께 보는 문화체험과 고택을 감상하는 등의 나들이는 늦가을의 햇살만큼이나 정갈하고 따스했다고나 할까? 마음이 이끌리고 몸이 움직이는대로 더불어 어울리며 함께 한 시간들은 단순한 ‘추억 쌓기’ 그 이상의 의미를 더해줬다. 회심(會心)의 어울림과 즐거운 추억은 중년의 삶을 더욱 활기차고 윤택하게 해줄 것이다.

2022-11-21

설비의 구성과 양품 생산의 원리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가 잘 산다고 하는 말의 뜻은 먹고 싸고 자는 것에 특별한 문제나 걱정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영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이를 인간의 욕구 중 가장 낮은 단계라 하며 ‘생리적 욕구’라 했다. 기본 욕구가 해결되어야 그 다음에 안전, 애정, 존중, 자아실현으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풍부해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면 당연히 맛있는 것을 찾게 되고 발달된 기술과 모바일 기기를 총 동원해 알리고 찾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맛있는 먹을 거리를 통해 자아실현 단계까지 연결 될 지도 모른다.맛은 회사제품으로 치면 품질에 해당된다. 그래서 제조업의 본질도 ‘좋은 제품(Quality)을 남보다 싸게(Cost) 만들어 고객이 필요한 시점에 제공(Delivery)’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그 첫째에 좋은 제품이 있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생산을 위해서는 설비와 사람이라는 공통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설비의 구성과 품질이 만들어 지는 원리를 잘 이해하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설비를 관리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다.사람 몸의 구성을 보면 방어 지시 및 운동은 골격 근육 외피 계로 이루어지고 조정과 통제는 신경계와 내분비계, 순환은 심혈관과 림프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양과 수분의 균형은 호흡기 소화기 비뇨기계로 구성되어 각 계통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유기적으로 잘 움직여야 몸의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설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본체체결, 구동전달운동, 전기제어, 윤활, 유압, 공압의 6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6개의 계통이 서로 사람의 인체와 같이 유기적으로 잘 움직여야 불량이 없이 좋은 제품이 생산되는 것이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라면을 먹기 위해서는 냄비에 적정량의 물을 넣고 렌지로 열을 가해 물을 끓인 다음 재료인 라면과 스프를 넣고 일정시간 이상의 가공 과정을 거처야 한다.이를 생산현장에 빗대어 표현하면 끓는 물과 라면이 만나는 부분을 ‘가공점’이라고 하며 이 가공점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재료를 잡아주는 도구인 지그(냄비)와 재료를 가공하는 도구인 툴(렌지)이 정확한 위치를 잡고 연속성을 유지하여야 하며 가공 재계(물, 스프, 가스·전기)의 조건이 맞아야 맛있는 라면이 된다.이렇듯 생산제품 또한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가공을 하기 위해서는 설비를 구성하는 본체체결, 구동전달운동, 전기제어, 윤활, 유압, 공압 6계통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재료의 가공점 위치를 올바르게 잡고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또한 각종 물 가스 등과 같은 가공재계에 대한 조건이 잘 관리되어야 좋은 제품이 생산되는 것이다. 설비별 계통의 구성과 가공재계의 종류와 조건은 생산되는 제품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가공 원리와 설비의 구성 계통을 알고 개선활동을 지속한다면 사람의 역량 향상과 회사의 경쟁력은 지속 향상될 것이다.

2022-11-21

중세미술 : 그림은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려진 성서

서양의 중세하면 ‘암흑’이라는 수식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만약 중세가 ‘암흑’이라면 인류의 역사에서 암흑이 아니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여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중세에도 명암은 있었고, 혼란과 혼동의 시기가 있었으며, 학문적 번영과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시기도 있었다.천년 동안 지속된 중세에 암흑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것은 누구인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사람들이다. 역사학자 하위징아가 ‘가을’이라 일컬은 중세의 끝단 14세기와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라고 불리게 될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다. 르네상스는 중세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지만 그것이 갈망했던 것은 고대였다. 고대의 부활을 꿈꾼 르네상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앞선 중세를 어둠의 시대로 못 박았다. 중세 후기 300년 이상 유행했던 미술양식을 야만적인 고트족의 미술 ‘고딕’이라 낮추어 부른것도 르네상스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작 고딕은 고트족의 양식이 아니었을 뿐더러 결코 야만적이지 않다.서양의 역사에서 중세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경 시작된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통합한 로마제국은 테오도시우스 1세가 서거한 395년 동과 서로 분열됐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로마제국의 동쪽 비잔틴제국은 동서로마제국 분열 이후 천년 이상 존재했지만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의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몰락한다. 서로마제국을 정복한 게르만의 부족들은 여러 나라를 세웠고 그 중 가장 번성한 것이 프랑크왕국이다. 동서로마제국의 분열은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국이 나누어진 이후 서양미술사 서술은 비잔틴이 아니라 지금의 서유럽에 속하는 옛 서로마제국의 땅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좇는다.중세미술은 기독교미술이다. 교회가 지어졌고 교회의 실내공간은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교회에 그려진 그림들은 감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한 종교적 기능과 목적이 있었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던 대다수 신자들에게 성서의 말씀과 성인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그림의 기능이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그림 사용을 둘러싸고 동방과 서방교회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는 모세의 계명에 따라 무엇이든 형상을 만들어 모시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기독교의 교리와 종교적 체계가 정립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그림 사용은 더더욱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다.서방의 로마교회는 그림 사용을 적극 장려했던 반면 비잔틴의 동방교회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로마교회가 그림 사용을 옹호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가톨릭교회는 게르만족 개종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포교를 위해 그림이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자들이 문맹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림 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비잔틴 교회의 입장은 달랐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 해당하는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학문이 발달해 이단 사상이 출현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또한 각 도시들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동방교회의 수장이 모든 지역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비잔틴 교회는 이단 사상의 발생과 확산을 막기 위해 그림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다.그림을 둘러싼 동서교회의 대립을 정리한 사람은 대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 540∼604년)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며 그림 사용을 옹호했다. “그림을 사용함으로써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책에서 읽지 못하는 것을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읽을 수 있다.” 교황의 주장에 따라 교회는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그림이 허용된 것은 아니다.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림은 가능한 단순하고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림은 엄격하게 본질에만 집중했고 그 결과 로마제국의 높은 수준의 묘사와 표현이 서서히 쇠락하게 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11-21

연재를 마치며

올 1월부터 본지에 연재된 소설 ‘Grasp reflex’가 지난주 끝을 맺었다. 연재를 시작할 즈음 김 작가는 “두 개체가 조우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우연의 방식이거나 혹은 한 개체가 다른 개체가 있는 곳으로 한 발 내딛는 것. 쓰는 이와 읽는 이의 경우는 어떤가?”라고 물으며, “우연은 차치하자. 자, 여기 문학이 있으니 와서 보시오. 하며 좌판에 앉아있는 것은 아닌가? 쓰기만 하시오, 내가 찾아가겠소. 이런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이 지점에서 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겠다. 일어나야겠다. 걸어야겠다”는 소설가로서의 결심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연재가 마무리되는 시점. 아래는 작가가 보내온 원고 ‘연재를 마치며’다. 문학에 관한 김강 작가 나름의 정의와 앞으로의 출간 계획까지가 담겨 있기에 가감 없이 게재한다. 편집자 주이야기가 내게 와 나의 손을 빌려 문자로 모습을 드러내고 나의 입을 통해 마지막 문장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누군가가 나를 보았다면 ‘기괴한 표정이다’라 말했을 것입니다.그때 나는 반가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입 꼬리를 바짝 올리면서도 눈은 아래를 향했고 찌푸린 미간 탓에 양쪽 관자놀이의 피부가 당겨졌지요.왼쪽 가슴이 쿵쿵쿵 뛰었는데 그것이 기뻐서인지, 아니면 두려워서인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기다렸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기에 반가울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책임감, 같은 것들이 반가움과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글을 쓰는 이는 곧 글을 전하는 이 이어야 합니다.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한다는 전제는 글을 쓰는 일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선한 행위, 존재할 가치가 있는 어떤 일이 되도록 강제합니다. 그것은 쓰는 이, 그의 손을 빌려 나타난 이야기에 의미를 입히고 살아 숨 쉬게 합니다. 진정한 마침표가 됩니다.또한 그 전제로 인해 작가는 자신이 내어 놓은 글이 만나게 될 독자를 염두에 두게 되고 자신이 내어 놓은 글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것은 글쓰는 이 자신의 관점에서지요. 쓰는 이는 독자를 보아가며, 눈치를 보며 타인의 입맛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바꾸는 부류가 아니니까요.어떤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할 것인가?그 지점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어느 순간 기회가 왔고, 마침표를 찍은 지 제법 시간이 지난 이야기를 달랠 수 있었습니다. 내게는, 나와 이야기에게는 경북매일신문 연재가 그 기회였습니다.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저에게 주어졌던 이 기회가 다른 글 쓰는 이에게도 마땅히 주어지기를 기대합니다.글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당신에게 문학은 무엇입니까?”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저에게 문학은 질문입니다. 진실과 당위에 대한 질문입니다.”진실은 기억의 영역이며 당위는 미래의 영역입니다.기억 속에서 찾아낸 진실, 그 진실은 당위의 근거이며 미래를 예정합니다. 기억으로부터 미래가 시작됩니다.이 장편소설은 지금 우리 세계, 다가올 우리 세계에 대한 질문입니다.2022년이 지나고 2023년에 들어설 무렵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비로소 제게는 다음 질문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저는 그것을 이야기로 내어놓는데 열중할 것입니다.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이 장편소설이, 저의 질문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를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기대합니다.촌스럽지만 꼭 하고 싶은, 이 자리가 아니면 하기 힘들 것 같은 감사 인사를 위해 지면을 빌립니다.지난 1년여 동안 매주 화요일자 경북매일 신문을 모으고, 저의 연재소설을 가위로 오려 스크랩을 만드신 아버님께, 매주 화요일 ‘아들, 파이팅!’, 문자를 보내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립니다.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며 관리자인 그녀와 두 아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매주 연재소설을 읽고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신 독자여러분을 잊지 않겠습니다.마지막으로 쉽지 않은 시기에 귀한 지면을 소설가에게 내어준 경북매일신문, 편집자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세상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따듯한 새해, 2023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11-21

‘조류독소’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녹조는 물속에 살고 있는 작은 생물이다. 광합성 작용으로 산소와 유기물을 만들어 수중 생태계의 1차 먹이를 제공한다. 수중생태계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조류이지만 특히 남조류가 과도하게 성장하면 물의 색깔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고 이를 ‘녹조현상’이라고 한다.‘녹조현상’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된 하·폐수나 쓰레기가 점오염원 또는 비점오염원 형태로 질소나 인과 같은 영양물질을 하천이나 호수 등에 풍부하게 공급한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인이 된다. ‘녹조현상’이 발생하면 물속의 생태계가 악화되고 하천 경관이 나빠지며, 남조류가 생산하는 ‘조류독소’로 인해 물이용이 어렵게 된다.우리는 남조류가 생성하는 ‘조류독소’로 간독성 유발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을 많이 듣고 있지만, 그 외에도 똑같이 간독성을 유발하는 ‘실린드로퍼몹신’이라는 물질이, 신경독성을 유발하는 ‘아나톡신’과 ‘BMAA’라는 물질도 존재한다. 이런 ‘조류독소’를 주로 생성하는 남조류는 ‘마이크로시스틴’의 경우 ‘마이크로시스티스’, ‘아나베나’와 같은 종류이고, ‘실린드로퍼몹신’은 ‘신린드로퍼몹시스’, ‘아파니조메논’과 같은 것으로 제각각 이다.이들 ‘조류독소’ 유발 대표적 남조류의 형태는 현미경으로 뚜렷이 관찰된다. ‘조류독소’로 유발된 수질사고 기록 중 가장 큰 사건은 공교롭게도 1993년과 1996년에 같은 나라인 브라질에서 각각 88명과 60명이 사망한 사고이다.‘조류독소’로 인한 수질사고는 1878년부터 발생하였고 최근까지 사람뿐만 아니라 물고기, 개와 가축 및 새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여러 종류의 남조류와 이들에서 발생한 다양한 ‘조류독소’가 유발한 수질사고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여러 수질사고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조류독소’가 주원인인 것인지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조류독소’ 원인물질이 다양하고 반응 메커니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최근 국내 물 관련 대표적 학회인 ㈔대한상하수도학회와 ㈔한국물환경학회가 공동주관으로 ‘조류독소’ 분석과 관련한 기술세미나를 8주에 걸쳐 진행 중이다. 국내외 ‘조류독소’ 분석과 관련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가하여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위 전문가들의 발표에서 많은 ‘조류독소’ 분석방법들이 소개되었는데 대체적으로 ‘조류독소’의 존재를 파악하는 최초단계에서는 ‘쥐 생물검정’, ‘효소면역분석법: ELISA’, ‘단백질 포스파타제 억제법: PPIA’ 등의 생물학적 방법이 사용된다. 존재량을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액체크로마토그래프-텐덤질량분석법: LC-MS/MS’과 같은 물리화학적 방법이 사용된다. 국내의 상수원수 내 먹는물 수질감시항목에 ‘마이크로시스틴’을 지정하고 공정시험기준으로 ‘LC-MS/MS’ 분석법을 제시하고 있다.이처럼 ‘조류독소’ 분석기술이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마시는 물이나 물놀이를 위한 수질과 독성 기준은 많은 추가연구가 필요하다. 낙동강과 금호강 물을 마시고 물놀이를 즐기고 싶은 대구경북 지역민들을 위해 ‘조류독소’의 막연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대책이 필요하다.

2022-11-21

슬리퍼는 죄가 없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여년 전 슬리퍼 차림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고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엔 한겨울에도 양말을 신고 슬리퍼를 신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들은 집에서부터 슬리퍼를 질질 끌며 신고 와서는 그대로 교실로 들어간다. 하루 종일 슬리퍼와 함께 공부한다.대부분의 학교가 슬리퍼 등교를 금하며 복장불량으로 벌점을 주지만 학생들은 개의치 않는다. 신발주머니를 갖고 다니다가 교문 밖에서 바꿔 신기도 한다. 슬리퍼가 등하굣길 패션은 물론, 학생들의 일상 패션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들이 성인이 되면서 어느덧 아무 때나 편하게 신는 생활품이 됐다.슬리퍼(slipper)는 원래 실내에서 신는 신이다. 뒤축이 없이 발끝만 꿰게 돼 있다. 국내에서 슬리퍼 유행에 불을 지핀 것은 흔히 삼선 슬리퍼라고 불리는 아디다스 슬리퍼다. 정식 명칭은 ‘아딜렛(Adilette)’이다. ‘아딜렛’은 1972년 출시돼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한 때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이 슬리퍼는 중고교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등하굣길 신발로 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MBC 기자의 슬리퍼 인터뷰가 시끄럽다.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때 MBC의 전용기 탑승 배제와 관련, MBC 기자와 대통령실 간 고성이 오갔다. 대통령실은 MBC 보도가 악의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시 MBC 기자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며 공격했다. 공식석상에서 취재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비난했다. 야당은 취재 예의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의 편협함을 지적했다.슬리퍼는 죄가 없다. 그래도 공식적인 자리에는 곤란하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 준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21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법률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귀국하면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라고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나면서 이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돌아오는 길에도 특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다.해외 순방으로 며칠씩 나라를 비우면서 내치 담당 장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158명의 아까운 젊은이가 희생된 이태원 참사의 책임 문제가 불거진 시점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분분하다.윤 대통령은 법률적 책임론에 치우쳐 있다. 법적으로 잘못이 없는데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난 7일 국가안전 시스템 점검 회의에서도 그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이 철저히 이뤄지도록 하겠다”라면서 “그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했다.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 살아왔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결백하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법적으로야 당연하다. 그러나 예로부터 비가 안 와도 임금님 탓이었다. 홍수가 나고, 전염병이 돌아도 임금님이 부덕해서라고 생각했다. 천재지변을 나라님 탓한 것은 미신에 가깝다고 해도, 수자원 관리나 보건 위생은 정부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일이다.책임 소관을 따지기 힘든 일이 무수히 많다. 천재지변이 아니라도 그렇다. 그런 문제는 당한 사람만 억울한가. 사회의 그런 빈 곳을 찾아 메우고, 대비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인명 피해가 생기고, 바람이 불고, 가물어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원균이 우리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유능한 정부라면 대비해야 한다. 하물며 군중이 몰려 교통이 마비되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을 정부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법 조항이 있든 없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정부다. 대비가 안 돼 문제가 생기면 정부 책임이다. 정부 조직을 정비하지 못한 잘못이다. 체제가 돼 있었다면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실무자는 물론 관리·감독을 잘못한 사람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큰 참사를 빚어놓고 일선 파출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면 어느 국민이 이해하겠나. 이번 참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재다. 윤 대통령도 경찰을 향해 흥분하며 질타했다. 그 어이없는 행정력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안전 문제의 최고 행정책임자인 이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떠안아야 윤 대통령의 짐이 덜어진다.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길이다.이 장관은 여론에 불을 지른 책임도 있다. 참사 직후 그는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말해 기겁하게 했다. 사퇴 여론이 높아지자 그는 또 “누군들 폼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고 말해 다시 여론에 불을 질렀다. 참담한 사고의 책임자로서 사퇴하는 것을 어떻게 ‘폼나게’라고 표현할 수 있나.윤 대통령은 ‘의리’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품이다. 사법시험 직전에도 조문을 가고, 친구 함 팔이를 갈 정도다. 검찰총장 시절에도 자신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데 조문을 거르지 않았다. 이 장관 같은 가까운 지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는 이 의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왜 무너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수많은 논란을 외면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키려다 정권을 넘겨줬다. 사적 의리에 얽매이면 공적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조 전 장관 파문 때도 법률적 유무죄에 매달렸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는 법률적으로 죄를 묻기 어려워도 도덕적·정치적 책임이 더 무거운 때가 있다. 이번 논란의 가장 핵심 인물인 용산경찰서장이 “보고를 못 받았다” “기동대 추가 파견을 요청했었다”라고 말하는 것도 법적 책임을 의식한 말이다. 형사사건으로만 보면 책임을 떠넘기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더 큰 부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앞장서서 처리하지 않으면 밀려서 하게 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 필요하다.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11-20

일에 지치고 힘들때 다시 용기주는 책

내년을 준비하는 부서별 보고자료를 들여다보다가 순간 집무실 책상 위 모퉁이에 붙어 있는 메모장이 눈에 띄었다. ‘잊지못할 한 권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쓰여진 메모 내용에 잠시 과거 회상에 빠졌다. 좋은 책은 여럿 추천할 수 있지만, 잊지못할 한 권의 책을 추천하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며칠간 고민 끝에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서적보다는 모두가 잘 알고 접해 본 소설책을 소개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고른 책이 바로 우리 모두가 학창시절에 읽어봤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묘사되는 베르테르의 섬세한 감정표현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이야 직설적인 화법을 ‘사이다’, ‘돌직구’ 등으로 표현하며 솔직한 표현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지만, 내 젊은 학창 시절에는 완곡한 감정표현이 주를 이뤘을 때니 사뭇 생경할 따름이었다. 더 나아가 괴테가 이 소설을 집필했던 18세기에는 오죽했을까! 출간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르테르를 모방한 각종 신드롬이 생겨난 건 이 책을 읽게 되면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요즘 표현으로 베르테르의 당시 모습은 ‘힙’했다고 할까?로테를 향해 쏟아내는 서툰 감정과, 때로는 무모한 행동으로 소설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던 우리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사랑하는 로테에 대한 감정은 늘 솔직하고 진심인 주인공이다. 그녀를 “그토록 지혜로우면서도 소박하고, 꿋꿋하면서도 상냥하며, 착하고 활발하고 영혼의 평화를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사랑에 빠진 것을 고백하는 내용에서 여실히 그 감정이 드러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균형잡힌 이성보다는 위아래로 요동치는 감성에 좌우된 경험을 갖고 있을 터, 베르테르가 사랑한 로테는 어떻게 평가해도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로테를 향한 사랑이 깊어 질수록 역설적으로 좌절과 절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녀를 둘러싼 자들의 충격적인 소식은 결국 베르테르를 비극적인 결말로 이끈다. 불안정한 감정으로 가득 차 무책임한 선택을 한 철없어 보이는 베르테르를 이해하긴 쉽지 않다. 다만 제도권 안에서 구원받을 순 없지만 젊음 가득한 무모한 감정은 그것 자체로 자유롭고 통쾌하다. 신현국 문경시장 특히, 이제는 잔뜩 철든 어른이 돼 다시 베르테르를 돌아보니 그가 쏟아내는 순수하고 꾸밈없는 표현들이 흥미롭고 부러울뿐이다.집무실 밖에 내리는 가을비로 잠시 베르테르를 기억하며 떠난 추억 여행이 내 본래 삶으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을 기다리는 늦가을의 문경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취임 초기부터 시민들과 직원들에게 긍정의 힘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인구 감소로 불확실성 큰 현실에 함께 맞서고 있다. 간혹 일에 진척이 없고 힘이 부칠 때 베르테르처럼 치기 어린 행동일지라도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내 고민과 애착을 진심을 담아 절절하게 드러내며 외쳐보고 싶다.때로는 이런 무모함이 기존의 문법과 고정관념을 깨고 진일보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전무후무한 코로나19의 팬더믹 상황과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도 내일의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22-11-20

착한 목자

강길수 수필가 안도의 숨을 쉰다. 기사를 자세히 보니 가톨릭 신부가 쓴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신부란 사람이, SNS에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라고 했을까.하지만 그 안도의 숨이 멎기도 전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는 대통령 부부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이미지와 함께 추락을 기원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어안이 벙벙하고, 소름 돋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어찌 된 사람들일까. 성직자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택한 이가 아닌가. 내 편과 상대편은 물론, 지구촌과 삼라만상을 품어내는 인생길,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제직을 선택한 사람들이기에 믿으며 존경했다. 한데, 이 두 사건으로 존경심이 싹 사라진다.‘착한 목자’란 말이 성경에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성당에 다니며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는 농가에서 소규모의 닭, 돼지, 소를 키울 뿐이었다. 하여,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땐 생경했다. 사진, 영화 같은 데서 서구 목장의 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때문에, ‘착한 목자’는 낭만이 물씬 풍기는 동화 같은 나라의 목동으로 마음에 자리 잡았다.군에 다녀와 가정을 이루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착한 목자’란 말이 새롭게 와닿았다. 예수가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 희생 제사를 바쳐, 제물과 사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야만 하는가’하는 의문도 들었다. 예수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착한 목자’ 자각을 성경에서 읽으면서, 공감도 하였다. 양을 치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을 헤아리면, ‘착한 목자’는 생존 자체였을 터다.예수가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리스도인은 착한 목자로 살아야 한다’는 명제다. 하면, 사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더 진실하고 큰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할 당위성이 주어진다. 생존은, 좌파도 우파도 뛰어넘는 절대 명제다. 따라서 종교의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고, 성직자인 사제는 그 중심에 서 있다.이 일로, 처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사제단 소개란에, ‘정의를 기초로 인간의 존엄, 인권, 민주화, 평화, 통일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정의’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기반이라는 건데, 어떤 정의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메뉴 전체를 둘러본 결과 반정부, 반미 정치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소개란에서 ‘인권’을 언급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한 말은 찾을 수 없고, 사업의 ‘반전 평화’ 메뉴에도 북핵 문제 언급은 없다. 또 단체명에 ‘정의 구현’이란 말이 있음에도, 작금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짓밟힌 본질적 첫 번째 문제인 ‘부정선거’ 의혹과 송사에 대한 언급은 찾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치 ‘좌파 신부, 좌파 사제’란 말을 듣는다 싶었다.부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착한 목자’로 새로 태어나기를 빈다.

2022-11-20

신중년의 커튼콜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조명이 켜지고 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라는 무대에 배우가 되어 섰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이 출연하여 한 사람당 10여 분간 독백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이었다. 9주 동안 현역 극작가와 배우의 지도로 5060 여성들이 참여했는데, 다양한 표현 활동을 거친 후 마지막에는 자기가 직접 대본을 쓰고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관객은 모두 가족이나 지인 중심의 조촐한 무대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참가자가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이라 그런지 서로 지지해주면서 인생 2막을 위한 커튼콜을 제대로 받은 기분이 들었다.이 프로그램 신청 자격은 5060 신중년 여성이었다. 50세에서 64세까지를 신중년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신중년’이라는 2017년 일자리위원회에서 ‘신중년 인생3모작 기반구축 계획’을 마련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베이비부머 효과 등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전체 인구에서 5060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했기 때문이다.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신중년에게 가장 근본적인 당면 문제는 소득 감소이기는 하지만, 주변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으며 질 높은 여가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 역시 긴급한 문제다. 은퇴한 5060에게 주변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경제적인 문제도 어려워지고 공허감이 밀려오기 쉽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까지 겹치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신중년 여성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여성이기 때문에 받은 차별까지 더해지면 5060 여성의 어려움은 더 커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과 같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의미는 크다. 특히 이번처럼 자신의 이야기로 대본을 쓰고 직접 연기까지 하는 활동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같은 관심을 가진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오랜 기간 묵혀온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때로는 새롭게 생긴 인생 과제에 대처하는 힘을 기르기도 한다.어떤 이는 돌아가신 엄마와 화해하고, 어떤 이는 가족에 갇혀 살던 지난 60년에서 독립할 것을 다짐했다. 어떤 이는 남과 다르게 살았던 자신이 잘못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난치병이 재발한 어떤 이는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깨달으며 더 의연해졌다. 어떤 이는, 그 어느 인생도 순탄하지 않았던 엄마와 자신과 딸, 누구로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 삶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마음을 발견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남아있던 어린 시절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동지애를 느끼게 된 점도 뜻깊다.현재 기준으로 여성의 기대수명은 86.5세라고 하니, 5060 신중년 여성에게 남은 평균 시간은 최소 20년에서 36년이다. 신중년에게 이 시간은 연극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배우를 불러내는 커튼콜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중년의 시간이 의미 있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2022-11-20

꿈의 에너지 SMR(소형모듈원자로), 경주서 도약 나래 편다

주낙영경주시장 전 세계가 미래형 차세대 원전시장 선점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름하여 소형모듈원자로(SMR : Small Modular Reactor)가 바로 그것.SMR은 출력 300㎿급 이하의 소형원자로로 안전성이 높고 설계·건설방식이 간소할 뿐 아니라 활용도가 다양해 전 세계가 SMR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현재 세계 20여 국가가 71종의 SMR을 개발 중이며,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는 향후 SMR 시장규모가 6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특히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마이크로소프트(MS)社의 빌게이츠와 손잡고 2050 탄소중립의 핵심전략으로 SMR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도 원전수출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SMR 독자개발 등 원전기술 확보를 위한 대규모 RD사업 투자를 공언하면서,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이런 움직임에 우리 경주가 그 중심에 서 있다.이미 경주는 6기의 원전(월성원전 4기, 신월성원전 2기)과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있어 원전산업의 최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또 지난해 7월 감포읍 일원에 SMR 연구개발의 요람이 될 문무대왕과학연구소가 착공에 들어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문무대왕과학연구소 건립사업은 국비 2천700억원 등 모두 6천540억원을 투입해 1천145만㎡ 부지에 연구시설 16개동을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오는 2025년 문무대왕과학연구소가 완공되면 연구 인력만 500~1천여명으로 차세대 과학혁신도시로서의 자리를 꿰차게 될 전망이다.이에 발맞춰 경주시는 SMR 국가산단 유치 타당성 조사에 나서며, 미래에너지 산업 중심도시로서의 비상을 서두르고 있다.유치 타당성 용역 최종보고서에는 △국가산단 지정 필요성 △지역여건분석 △국가산단 주요 유치업종 설정 △입주업체 수요조사 △국가산단 기본구상 및 부문별 개발계획 수립 △사업타당성 분석 및 재원조달 계획 수립 △국가산업단지의 효율적 관리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정부의 국가산단 지정 여부는 다음달 말 결론이 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쳐진다.현재 전국 19개 지자체가 다양한 산업 분야의 국가산단 지정 신청서를 제출한 상황이며, SMR 국가산단을 신청한 지자체는 경주시가 유일하다.이에 따라 경주시는 지난 9월 SMR과 연계한 초소형·고효율로 축약되는 차세대 발전시스템 개발을 위해 국내 유수의 엔지니어링 회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SMR 국가산단 유치를 위해 관련 절차를 착실히 밟고 있다.최근 경주시가 시행한 SMR 국가산단 입주기업 수요조사 결과, 무려 225개 업체가 입주를 원해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줬다.이뿐만이 아니다.지난달 13일 경주시는 경북도, 포항공대, 한국원자력연구원, 한수원, 한전기술,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 유관기관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SMR 국가산단 유치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경주시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달 21일까지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신규 국가산업단지 제안서를 제출했고, 이번 달 있을 현장실사를 거쳐 국가산단 최종 후보지로 선정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SMR 국가산단은 단순한 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아니다.기존 원전 산업을 필두로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함께 산업구조 대전환에 대응하며, 경주의 미래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경주시민의 의지와 염원이 담겨 있다.경주시가 현재 추진 중인 SMR 관련 프로젝트는 경주를 과학기술혁신도시로 변화시킬 핵심전략 과제이다.SMR 국가산단이 경주에 유치된다면 대한민국이 원자력 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역사를 품은 도시를 넘어 미래를 담는 경주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경주시는 열심히 뛰고 있다.위대한 경주시민과 함께 누구나 살고 싶고, 찾아오고 싶고, 일하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 ‘경주’를 반드시 만들고자 한다.

2022-11-20

뒤늦은 태풍이 할퀴고 간 숲길이다. 고갯길 마루에 참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다. 몸이 한쪽으로 휘어졌다가 다시 뻗었다. 그 모양으로도 어제의 곡절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소임을 다했다는 듯, 가지 끝에는 듬성듬성 도토리를 달고 있다.나무의 품에 많은 것들이 다녀갔을 것이다. 딱새, 곤줄박이, 산비둘기들이 깃들어 새끼를 키워냈을 테고, 나약한 벌레들이 천적의 눈을 피하려고 시시때때로 몸을 숨겼겠다. 한여름 그늘을 드리우면 더위에 지친 사람이 땀도 식혔을 것이다. 썩은 밑둥치의 굵기로 보아 나무는 꽤 넓고 넉넉한 품을 지녔을 것 같다.어머니의 품에는 늘 흙냄새가 났다. 어머니의 옷에 묻은 흙은 빨래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종일 논밭으로 오가다 보면 옷자락에 흙이 가실 날이 없었다. 바깥에서 놀다가 어머니를 보고 달려들면 흙 묻는다며 나를 밀어냈다. 따뜻한 품이 그리울 때, 잠든 어머니의 품에 슬쩍 파고들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못 이기는 척 나를 꼭 안아주곤 했다.어머니의 손은 뭐든지 만들어냈다. 시장에서 천을 떠와 재봉틀에 드르륵 박으면 예쁜 치마가 되고 티셔츠가 되었다. 부뚜막에 먹을 것이 없어도 어머니가 잠시 설치면 푸짐한 밥상이 툇마루에 올라왔다. 고봉밥 한 그릇 뚝딱 비운 우리는 배를 두드리며 잠들 수 있었다.어머니의 품은 넉넉했다. 봄바람이 불면 어머니는 새싹을 틔워 내고, 여름이면 뙤약볕을 견디고 태풍 한두 개쯤은 거뜬히 이겨냈다. 그러고는 단단하게 응축한 열매를 내주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가을 하늘을 받치고 있는 탐스러운 과일을 달고 있는 나무였다. 그 품에 깃든 우리는 아무 탈 없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꿈을 꿀 수 있었다.서른이 다 되어 어머니의 품을 떠났다. 결혼이라는 울타리로 내 품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아이를 낳고 길렀다. 어린 생명이 가만히 누워 입만 방긋거릴 땐 우유를 먹이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때는 뒤에서 손을 뻗어 행여 넘어질까 조심했다. 잠시라도 아이를 품에서 놓을 때면 늘 마음이 쓰였다.아이들에게 훈훈한 품을 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언제든 와서 쉴 수 있게 넉넉한 그늘을 만들었다. 봄에는 상큼하고 파릇한 냄새로 불러들이고 여름에는 쭉쭉 뻗은 가지로 시원한 바람을 몰고 왔다. 가을에는 온갖 달콤한 열매로 먹는 일에 풍족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겨울, 그 황량한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댈지라도 꿋꿋했다.새도 알을 품는다. 암컷은 둥지에 앉아 수컷이 사냥해 온 먹이를 전달받아 새끼에게 조금씩 찢어 먹인다. 새끼를 지키기 위한 황조롱이의 정성은 도심 빌딩 속에서도 알 수 있다. 몸에 밴 습성은 높은 곳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직선으로 하강하기에 높은 건물이 제격이다. 어린 새끼를 지켜보는 암컷과 수컷의 눈매는 번뜩인다. 이들의 운명은 그들의 품이 가장 완성할 때까지 먹이를 물어다 준다. 이순혜 수필가 새는 새끼가 둥지를 떠나 날아오르면 더는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육아가 끝나면 새처럼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자식이 떠나도 늘 품을 마련하고 자식을 기다린다. 자식을 끌어안고 젖을 먹이는 포유류(哺乳類)이기 때문이다. 내 품에 자식을 안는 것, 자식 때문에 언제까지나 자신이 희생하는 것, 이는 포유류의 기쁨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하다.어떤 작가는 모성의 완성은 자식을 품에서 내보내는 일이다. 라고 말했다. 머지않아 나도 자식을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모성은 완성했지만, 그때부터는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끔 돌아오는 아이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더 넉넉한 품을 마련해야 한다. 내 어머니가 그랬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내려오는 길, 다시 한 번 쓰러진 참나무를 본다. 참나무는 온 힘을 다해 살고 이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 옆에서 작은 참나무가 가지를 뻗으며 품을 넓히고 있다.

2022-11-20

新 중동 붐

우정구 논설위원 1970∼80년대 일어난 중동 붐은 한국경제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경제개발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시절에 중동시장은 한국에겐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중동에 있는 석유 산유국들이 1973년 원유를 무기화하면서 세계는 1차 석유파동에 빠진다. 그러나 산유국 입장에선 석유를 팔아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이는 기회가 되었고 또 그들은 이를 기반으로 도로와 항만 등 국내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집중 투자를 하게 된다.1973년 한국의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울라와 카이바를 잇는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면서 국내 중동 진출 1호 기업이 되었다. 이후 동아건설이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따냈고, 현대건설은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리는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수주하는 쾌거를 거뒀다. 또 대우건설 등이 고속도로건설 등을 수주하면서 국내 업체가 1985년까지 수주한 건설공사 수주액이 무려 700억 달러다.중동의 건설 붐을 타고 한때는 10만명이 넘는 건설인력이 사막의 나라 중동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힘겹게 땀 흘려 일하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근로자가 중동에서 약 1년을 일하면 자신의 채무변제는 물론 결혼자금도 벌 수 있었다고 한다.이 때의 경험을 통해 중동 산유국은 한국을 토목건설공사가 강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한국을 다녀간 뒤 제2의 중동 붐이 화제다. 빈살만 왕세자가 구상하는 인류 최대 역사가 될 것으로 보이는 초대형 스마트신도시 건설 사업에 한국기업이 얼마나 참여할 지도 벌써 관심이다. 건설뿐 아니라 이제는 첨단산업에까지 역량을 키운 한국기업의 중동에서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20

이순(耳順)의 어려움

김규종 경북대 교수 대학원 들어갈 무렵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나는 중대한 결론에 도달한다. 공자보다 10년을 더 살기로 한 것이다. 중니(仲尼)는 생애주기별로 자신의 성취나 경지를 낱낱이 밝혔다.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홀로 섰으며, 40세에 불혹에 이르렀으며, 50세에는 천명을 알았고, 60세에는 이순, 70세에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에 도달했다.공자보다 10년 늦게 학문을 뜻을 둔 나는 공자보다 10년 늦게, 하지만 그가 도달한 경지에 확실하게 이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어언 세월이 물처럼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나는 설정한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문제는 노력한 것보다 내가 도달한 학문과 인품의 경지였다. 가령 40세에 나는 홀로서기에 성공했는지, 그것이 중요했다는 말이다. 결론 먼저 말하면, 그러지 못했다.첫 번째 단추를 빼놓으면, 그사이 내가 이룩하거나 도달한 지점은 아주 미욱하거나 미미한 것이었다. 그 이유를 깊이 사유하기보다는 더 멀리 더 높이 가려고 노력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언제부턴가 그가 말하는 ‘일이관지(一以貫之)’ 개념은 이해할 수 있었고, 지식의 상호 연관과 연결에는 눈이 떠졌다. 문제는 지식보다 다른 영역과 분야에서 발단한 걸림돌이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격의 없는 유대관계의 실종이었다.춘추 말기의 혼란한 세파를 겪은 공자였지만, 그에게는 충성스러운 제자들이 있었다. 그것은 중니에만 고유한 학문과 인품과 미래기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의 길을 가리라는 고집스러움, 가던 길이 틀렸을 경우 그것을 고칠 줄 아는 용기와 담대함, 어려움을 당해서도 꺾이지 않는 의연함 같은 덕목이 공자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공자의 남다른 확신과 강렬한 바람이 바탕이었을지도 모른다.이순이 목전에 다가온 나를 돌이켜보건대, 중니의 그런 장점이 내게는 없다. 살면서 부딪치는 숱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극복해가는 의지와 끈기 그리고 앞날에 대한 확실한 믿음 같은 것이 내게는 없다. 문제에 봉착할 경우,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는 에둘러 피하는 쪽이 더 편하고 빠른 해결책이었다. 천성적으로 남들과 다투기를 싫어하기에 변명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꺼리는 본성이 내게 있다.사태의 본질을 논구하는 정교한 분석(分析)에 필요한 칼과 도끼가 없음이 나의 결함 가운데 하나다. 더 쪼갤 수 없을 데까지 나아가고, 그것에 기초하여 다시 종합으로 귀환하는 자유자재함 역시 내게는 없다. 예상했던 결론과 달리 창대한 결론이 나왔을 때, 그것을 논리적인 비약으로 묶어내는 장쾌한 시야 또한 나와 무관했다. 더욱이 세상은 하루가 멀다 않고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쏟아내서 발길을 붙잡기 일쑤였다.이제 나는 안다. 10년을 더 살아도 이순의 경지나 그보다 높은 지경에 이를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그렇다면 어떤 방도로 생에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겨울 초입 마당에 햇살이 봄날처럼 따사롭고 환하다.

2022-11-20

엘리트스포츠, 이제는 변해야 할 때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최근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는 올림픽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스포츠강국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엘리트선수들의 종목별 분포를 보면 축구, 야구 등과 같은 인기종목의 비중이 높은 반면, 유도, 레슬링 등 이른바 올림픽 효자종목은 비인기종목으로 치부되어 선수부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비인기종목이 어려움을 겪는 원인에는 부모의 반대, 비인기종목 우수 선수의 인기종목 이동, 비인기종목의 지원 부족, 과도한 훈련 및 경쟁에 의한 부상, 그리고 부상 후 스포츠재활프로그램 부재로 인한 선수생활 마감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은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의 특수성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즉각적 대처가 이루어지거나 해결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과도한 훈련에 의한 부상과 회복을 위한 컨디셔닝은 현실적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대처가 가능한 일이다.최근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초·중·고·대학교 선수의 75% 이상이 부상을 경험하고, 그 중 25.4%는 심각한 부상으로 장기간 훈련을 불참하거나 운동을 중단한다. 특히 투기종목 등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경우 부상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35.9%가 부상으로 수술을 경험하고, 이들 중 71.9%는 수술 후 완전회복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고된다. 스포츠 상해 원인으로는 유연성 부족, 준비운동 부족, 개인의 내적 심리요인 등 본인 부주의가 가장 높았고 지도자의 부적절한 훈련도 포함된다.이렇듯 엘리트스포츠에서 선수의 부상은 선수 생활 동안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엘리트선수들의 부상은 일단 부상을 당하게 되면 나름대로 대처를 하더라도 재부상의 위험이 크다. 특히나 비인기종목의 경우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특정 선수의 부상은 타선수로의 대처가 불가능하다. 이같이 부상이 선수생명과 경기력과도 직결됨에도 부상에 대한 자기관리 교육 프로그램과 회복을 위한 컨디셔닝 시스템 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은 선수 및 지도자 대상의 정기적인 교육이나 연수를 통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장시간 반복훈련, 지도자 개인의 경험에 의한 훈련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행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육성체계를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종합적 개혁 방안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체육지도자의 코칭 전문성 제고, 스포츠과학자와의 협력 확대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교육 및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을 강력히 제안했다.구체적으로 교육 및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 개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상황적 조건에 맞게 의과학적인 지원을 체계적으로 하는 체육지도자의 과학적인 지도 방식을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더해 훈련계획 수립 시 객관적인 데이터와 스포츠의과학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체육지도자의 정기적인 과학적인 지원도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스포츠현장에 스포츠의과학 기반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엘리트선수들의 부상 발생원인 가운데 과훈련, 근육의 불균형, 운동피로 등의 생리적 변인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엘리트선수들의 경우 거의 매일같이 강한 지구성이나 저항성운동을 하는 데도 몸은 늘 피곤하며 체력향상은 더디고 심지어 감기나 운동 상해까지 경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훈련의 효과가 과부하와 과보상의 원리를 통해 나타난다는 과학적 근거를 간과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체육지도자가 선수생활을 통해 체득한 현장경험은 더 없는 학습이지만 경험적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독일은 체육지도자의 지도 능력 유지와 향상을 위해 정기적인 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최근 조사된 자료에서 선수들이 바라는 지도자는 현역시절 뛰어난 운동경력보다 체계적인 이론과 실기능력 등 전문지식이 풍부한 지도자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체육지도자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해야 함을 강조하는 대목이다.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처음 10위권에 진입한 뒤 2000년 시드니 올림픽(12위)을 제외하고는 줄곧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으나, 최근 개최된 도쿄 올림픽에서 LA 올림픽 이후 최소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16위로 밀려났다.이제 엘리트선수들의 부상은 선수 개인의 경기력 저하를 넘어서 우리 지역은 물론, 국가적 차원의 스포츠 경쟁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우리나라 엘리트 선수와 지도자들은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훈련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노력한 만큼 훈련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성적 위주의 장시간 반복훈련과 지도자 개인의 경험 위주 훈련은 그 효과를 저하시키고 선수의 부상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엘리트스포츠의 선수층 유지 및 경기력 제고를 위해 스포츠현장에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지도 및 행정적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2022-11-20

신재생에너지 사업, 잘 진행하려면?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지난 초여름, 경산에 있는 후배 공장을 방문했었다. 에너지 절감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후배가 공장 옥상에 설치할 ‘태양광 설비 계획서’를 보여주었다. 370kw 용량을 설치하는데 설치비용이 kw당 150만 원씩 모두 5억5천500만원이 들고, 1년 거치 9년 분할 상환할 경우 총 원리금은 6억8천347만4천997원(이자 1억2천847만4천99원 포함)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25년간 총수익은 15억1천851만300원이었다.후배는 10년 만에 원리금을 다 갚고 11년째부터는 매월 744만원, 25년째는 매월 663만원씩 수익이 나오는데, 노후연금 드는 셈치고 설치한다고 했다. kw당 매월 200만원 정도씩 수익이 나오는 셈이다.고향에서 한우 사육을 하는 한 지인도 한우 사육을 통해 얻는 수익 못지않게 한우 축사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수익이 대단하다고 했다. 농촌지역 한우 축사가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태양광 안내 전단지가 붙여져 있는데, 100kw당 매월 189만원 이상 수익을 보장한다는 내용들이다.앞서 설명한 태양광 설비는 작은 공장 지붕에 소규모로 설치하는 시설이어서 설치비가 kw당 150만 원에 이르지만, 규모가 커지거나 논·밭처럼 설치가 용이하면 설치비는 100만원 정도까지 내려온다.태양광 사업은 설비만 갖추면 햇빛은 자연이 무한하게 주기 때문에 엄청난 수익성이 보장된다.태양광 설비는 kw당 2평(6.7㎡) 정도의 땅이 필요하기 때문에 농지에 설치하는 것이 가장 쉽다. 현재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조수익으로 따져 벼농사의 20배 정도 수익이 나온다. 태양광 임대업자들은 벼농사 순수익 2배(평당 6천원 정도) 정도의 임대료를 지주에게 주는데, 사실 태양광 조수익은 평당 10만원 이상이 나온다.앞서 얘기한 후배의 공장 지붕 태양광 설비비용은 kw당 200원 정도이지만, 올해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사들인 전력비용은 kw당 270원이며, 내년에는 300원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가정 전기요금이 110원, 산업용 전기요금이 130원 정도이지만 곧 OECD 평균인 250원까지 오를 전망이어서 태양광 발전사업은 지금보다 더 수익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태양광 시설을 비롯해 신재생에너지를 언제 얼마나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국가 차원에서 세워져야 한다. 독일의 경우 2030년 65%, 2040년 80%, 2050년에는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체 에너지를 감당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에너지 사용량에서 평소 원자력이 대략 20~25% 감당한다고 보면 2050년까지 나머지 75~80%는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해야 한다. 그러려면 2030년까지 35%, 2040년까지는 55% 식으로 장기적인 목표가 설정돼야 한다. 에너지의 75~80%를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 국토에서 농지가 18%를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농지의 20~25%를 사용하면 된다.태양광 외에 풍력, 수력 등의 재생에너지도 있으나 농지의 20~25%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농가의 수익이 늘어나고 일자리도 창출돼 농촌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농지에 태양광 발전을 하는 방법은 독일 등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면 된다. 주민이 주체가 되는 ‘주민 주도형’으로 하되 절대농지는 영농과 태양광 발전을 병행하는 ‘영농형 태양광 발전’으로, 일반농지는 자유롭게 하면 될 것이다.현재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요소는 지자체마다 조례로 규제하고 있는 ‘이격 거리’와 ‘주민 민원’이다.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마을에서 300~500m, 군도(郡道) 이상 도로에서 300~500m씩 거리 제한이 있다. 그러다 보니 태양광 시설이 최적지인 농지를 피해 대부분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조례에 부합하는 농지는 국내 전체 토지의 1%도 채 안된다고 한다. 구미시의 경우 0.09%라는 보도도 있었다.주민민원도 태양광 건설의 큰 걸림돌이다. 단체장들이 선출직이다 보니 민원이 발생할 경우 조례에 부합하는 땅이라도 태양광 설비를 할 수 없다. 주민민원으로 인해 태양광 및 설치 허가 기간이 중국과 유럽은 6개월~2년인데 우리나라는 5년씩 걸린다고 한다. 이 모든 문제가 농민들은 태양광에 대해 무지한 반면, 일부 정보에 밝은 태양광 업자들이 아주 적은 비용만 임대료로 지불하고 태양광 사업을 하면서 생긴 문제다.주민들에게 사전에 태양광 발전사업의 엄청난 수익성을 솔직하게 밝히고, 마을 단위로 협력해서 대단위 발전사업을 할 필요가 있다. 농지는 우선 장기적인 계획하에 산업단지 주변부터 태양광 시설을 할 필요가 있다. 신재생에너지가 필요한 산업단지 입주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생산자와 수요자(기업)가 공동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이끌어 나가면 각종 규제나 민원에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22-11-20

이철우는 있었고, 문재인은 없었다

홍석봉 정치에디터 생환 광부의 사연은 감동이다. 봉화의 기적을 일군 이들은 영웅이 됐다. 그 시각, 전 세계의 이목은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쏠려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참변에 국민들은 말을 잃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 봉화의 기적에는 지방정부가 있었다.봉화의 기적은 대한민국에 희망을 선물했다. 충격과 실의에 빠진 국민을 위로했다. 동료 광부들과 소방대원들의 밤잠을 잊은 헌신이 있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가족의 아픔을 함께하며 구조 활동을 독려했다. 매몰 광부들은 삶에 대한 의지로 열흘을 버텼다.광부들의 생환은 우리에게 생명과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으면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봉화 광부의 생환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공이 컸다. 통상적인 사고로 간주, 관심을 쏟지 않았더라면 생환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이 지사는 외국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사고 현장을 찾았다. 애끓는 가족들의 호소를 듣자 바로 ‘사고대응 현장특별대책반’을 가동했다. 그리고 고립 광부들을 구조할 모든 것을 동원하라고 특별 지시를 했다.경북도는 국내 최고 전문가와 관련 작업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확보해 구조에 나섰다. 구조 작업자를 증원하고 이들에게 특별수당을 지급했다. 양질의 식사도 제공했다. 예상을 초과하는 숙식비와 장비대여비 등 구조비용은 모두 경북도가 부담했다. 이례적인 대응이었고 신속한 조치였다. 경북도의 노력과 광부들의 의지는 기적을 만들었다. 봉화 기적의 현장에는 이철우가 있었다.봉화 광부 생환과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은 국민의 생명 가치를 대하는 관점에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에는 나라도, 대통령도 없었다. 이 사건은 정권이 바뀌면서 대 전환을 맞았다.2020년 9월 문재인 정부는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을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해경과 국방부는 월북 시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2년 여만에 결과를 번복했다. 검찰은 사건 관련 고위급 인사들을 구속했다. 증거은폐와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다. 피살 공무원 유족은 사건 발생 2년 만에 순직자로 인정돼 유족 연금과 보상금을 받게 됐다.문재인 정부는 피살 공무원을 자진 월북으로 몰았다. 이를 입증할 자료를 공개하라는 유족의 요구는 거부했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사살돼 시신이 소각된 상황을 챙기지 않았다. 관련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북한에 책임을 묻고 유족에게 정보를 제공하라는 권고도 무시했다.봉화의 기적에는 구조에 진심인 이철우 지사가 있었다. 피살 공무원에게는 대통령이 없었다. 외면했다. 국가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직무를 유기했다. 북한 바라기가 빚은 참사가 아닐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으면 국민은 없다. 나라는 국민을 외면했지만 지방정부는 국민을 챙겼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2022-11-17

국민 경제고통지수

우정구 논설위원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 10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기보다 11.1%나 올랐다. 41년에 물가가 이렇게 많이 오른 것은 처음이라 한다.물가가 오른 만큼 서민층의 살림살이는 예전에 보기 드물게 팍팍해졌다. 소비 성향도 알뜰 소비쪽으로 바뀌고 있다. 쇼핑할 때 가격을 중점적으로 고려한다는 소비자가 많아졌고, 다소 흠이 있어도 값이 싼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사람도 늘어났다고 한다.경제고통지수는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가늠하기 위해 고안한 지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산출한 수치로, 지수가 높을수록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임을 의미한다.우리나라는 올들어 21년만에 국민의 경제고통지수가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석유 등 국제 원자재값 등이 폭등한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물가도 전년보다 최고 6%대까지 치솟아 서민들의 가계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특히 외식비 등이 많이 올라 편의점 등에서 값싼 점심으로 한끼를 때우는 직장인이 늘었다고 한다.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 상반기 기준으로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를 산출한 결과, 10∼20대 청년들의 체감경제고통지수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주로 청년층이 많이 소비하는 음식, 숙박, 교통비 등의 품목에서 물가가 많이 올랐고, 코로나로 인한 취업난까지 가세돼 고통받는 우리시대 젊은이의 아픔이 그대로 노출됐다.나라의 미래를 이끌 젊은이의 경제적 고통을 해소할 정치권의 민생 대책이 무엇보다 아쉬운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17

포항의 옛시 노래가 되다

윤영대수필가 11월 14일 월요일 오후 7시30분 포항시 북구 양덕동에 있는 경북교육청 문화원 대강당에서 ‘포항의 옛시(한시) 노래가 되다’라는 예술공연이 있었다. 월요일 공연이라 좀 마뜩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인의 권유로 보러 갔었다.경북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알스노바(ArsNova)종합예술단이 주관한 무대공연이었는데 춤과 노래, 시 낭송 그리고 연주까지 색감 넘치는 무대에서 펼쳐진 포항을 주제로 한 예술공연이었으며 한복 차림을 한 공연자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 이번에 11번째 공연을 한 알스노바종합예술단은 ‘예술로 사회를 아름답게 정화시키는 역할을 소망’하며 2007년 창단하였다고 한다. 그 후 2011년 1회 정기공연을 시작으로 15년간 성악, 보컬, 기악, 국악뿐만 아니라 실용음악과 무용까지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입구에서 받은 팸플릿 표지를 보고 음악회보다는 역사문학 강연인 것 같은 착각을 했으나 무대 화면에서 시를 읽고 노래를 들으면서 포항의 숨겨진 풍광과 역사 속을 거니는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포항지역학연구회 권영호 연구원이 ‘포항 한시 소개’에서 밝히는 바에 의하면 그동안 회재집(晦齋集), 시암집(是巖集) 등 숱한 고서를 읽고 포항 연일 장기 청하 등 포항 고을을 오가며 옛 문인들이 노래한 1천300여 편에 달하는 한시를 발굴, 번역하였고, 그중 15편을 골라 현대적인 선율을 입힌 창작가곡을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몇 개의 한시를 보긴 했으나 이렇게 많은 시가 있는 줄 몰랐고 지금은 사라진 지역의 문화재와 풍습의 존재를 알게 되어 참으로 가치 있는 관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들 옛 시를 현대적 선율로 해석하고 작곡한 임주섭 윤재덕을 비롯한 5명의 작곡가와 서로의 마음을 합쳐 가곡 무대를 완성해준 10여 명의 남녀 성악가들 또한 멋있었다.가곡의 제목과 가사에는 남빈 바닷가 모래밭의 갈대와 달이 뜬 풍경이 그려져 있고, 해도에 소금밭 염전이 있어서 임금에게 진상하는 최고의 소금인 자염(煮鹽)을 만들어 부유한 고을을 꿈꾸었다는 것도 알았다. 또 시 낭송을 듣고 청하에 해월루가 있었고 영일만을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고래도 있었다니 옛날의 풍광이 놀랍고 그리워지기도 한다.공연의 내용을 보면, ‘포항을 노래하다’에서 영일만 형산강 내연폭포가 나오고 ‘옛 마을 찾아’에서는 연일 우현 남빈 학산의 옛 명칭도 알게 되고 보니 현대적 풍광인 포스코와 동빈항의 밑그림이 된 이들 지역을 다시 한번 돌아볼까도 생각했다. 옛 이름 ‘봉산’인 장기는 유배지라 많은 인물이 머물렀기에 천리 밖에서 남은 생애를 보내는 선비의 탄식도 들었다. 대형 스크린의 한시를 읽으며 창작가곡과 함께 피아노 플루트 첼로 바이올린의 선율 또한 고급 창작 문화를 체험하게 했다.우리 지역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잇고 문화유산을 계승하고자 앞으로도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다양한 공연을 창작, 기획하여 격 높은 예술문화 콘텐츠로 시민의 문화생활을 풍요롭게 하고자 다짐하는 이항덕 단장과 알스노바종합예술단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2022-11-17

금수강산(錦繡江山)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북쪽에서 내려온 단풍의 불길이 한반도 동남쪽을 태우고 있다. 그 불길이 다 소진되기 전에 단풍구경을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산길 초입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서 오색의 향연 속으로 들어갔다. 키 큰 관목들의 단풍이 가을볕을 역광으로 형형색색 찬란한 스테인드그라스가 되어 있었다. 한 점 그늘도 없는 열락의 성소(聖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감격에 울컥 뜨거워지는 마음이었다.우리나라를 흔히들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산천경계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봄에는 연두색 바탕에다 온갖 꽃들을 수놓고, 가을은 그야말로 오색이 찬란한 비단폭이다. 여름의 녹음과 겨울 설경도 색감으로는 단조롭지만 그 무게와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런 천혜의 자연이 모국인 것만으로도 어찌 크나큰 은총이고 다행이 아닌가.오륙십 년 전만 해도 금수강산이란 말이 무색하게 헐벗은 산이 많았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일제의 침탈, 6·25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과 함께 강산도 초토화 되어 있었다. 목재와 땔감을 위한 남벌로 민둥산이 되어 비가 오면 사태가 나고 가물면 강이 말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사방사업은 그야말로 앞을 내다본 치산치수였다. 그 덕택으로 대한민국은 다시 화려한 금수강산을 회복했다. 그 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수 십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그 산림녹화사업과 새마을사업이, 경제개발사업들이 얼마나 선경지명이 있는 위대한 업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참으로 안타깝게도 삼천리금수강산이란 말은 아직 성립이 안 된다. 한반도의 반쪽이 민둥산인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몰래 찍어온 북한의 시골풍경에는 산에 나무가 거의 없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 역시 헐벗고 굶주린 모습이었다. 산천이 헐벗으면 백성들도 헐벗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김일성 일가가 대를 이어 이 땅과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상이다.금수강산을 훼손하고 민심을 피폐케 하는 세력들이 대한민국에도 많다는 사실은 통탄을 넘어 공포스러운 일이다. 태양광발전이니 풍력발전이니 하는 것으로 국토를 파괴하는 행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치와 산업과 교육과 언론과 법조와 문화와 심지어 종교까지 장악한, 소위 종북좌파들이 나라를 패망의 길로 끌고 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국이다. 사악하고 파렴치한 모함과 패륜의 선전선동으로 민심과 민생을 피폐하게 하는 것은 결국 북한처럼 강산도 다시 헐벗게 하려는 수작에 다름 아닐 터이다.전직 대통령이 기르던 개를 버려서 비정한 인성의 일단을 드러내더니, 이번에는 신부(神父)라는 자들이 순방 중인 대통령의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보통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좌경화가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과 성직자란 자들의 인성이 그럴진대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오죽하겠는가. 삼천리금수강산을 회복하고 지키기 위해서 각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숙고할 때이다.

2022-11-17

공직자에 여전히 유효한 공자의 가르침

논어(論語)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어록을 수록한 책으로 동양사상사를 대표하는 고전이다. 무려 2500여 년 전에 나눈 대화임에도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은 논어가 지닌 위대한 힘이다. 필자의 경우 대학시절 교양선택으로 ‘논어강독’을 수강한 이래 지금까지 애장하면서 틈틈이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이 고전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원전으로 읽기에 논어는 쉬운 책이 아니다. 짧은 한문 실력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워낙 그 표현이 축약·중의적이어서 명쾌한 해석이 어렵다. 그래서 논어원문 그 자체보다는 다양한 해설서를 참고해서 읽게 되는데 학자들마다 풀이가 달라 어떤 해석이 맞을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게 논어의 또 다른 재미다.논어는 단순한 윤리교과서가 아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제왕학일 수도 있고 선비론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론일 수도 있다. 현대의 여러 학문분야, 예컨대 정치학, 사회학, 경영학, 교육학, 군사학, 역사학, 문학…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논어는 편집이 그다지 잘 된 책이라 할 수 없다. 논어는 총 20편으로 되어 있는데 각 편의 제목도 시작되는 첫 머리 글자를 땄을 뿐 내용의 일관성이 없다. 그런 비체계성이 논어를 읽는 또 다른 매력일지도 모른다. 굳이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을 필요가 없고 불현듯 펼치는 대로 명언을 발견하고 그 뜻을 음미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의 어록을 인터넷 서핑하듯 찾다보면 보석같은 가르침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필자는 공직자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치, 행정 쪽에 관심이 많다. 공자는 스스로 훌륭한 공직자가 되어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기에 비교적 이에 관한 언급이 많다. 그가 추구했던 정치는 올바르게 하는 것(正)이었다(政者正也). 군자가 자기수양을 통해 인(仁)과 덕(德)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백성을 교화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을 그는 정치라 보았다.그럼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는 백성의 신뢰라고 생각했다(民無信不立).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하게 하면 백성의 신뢰를 얻게 된다(足食足兵 民信之矣). 이 중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먼저 군사력이요 두 번째가 식량(경제)이나 끝까지 고수해야 할 것이 바로 신뢰라고 그는 주장했다. 주낙영 경주시장 그리고 자로가 임금을 섬기는 법을 물었을 때 “임금을 속이지 말고 임금이 싫은 내색을 하더라도 직언을 하라”(勿欺也, 而犯之)고 하였다. 또한 “빨리 성과를 내려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無欲速, 無見小利)고 하여 졸속행정을 경계하기도 하였다.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온다”(近者悅 遠自來)는 가르침은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자치단체장들에게 지금도 유효한 처방이다.이밖에도 논어에는 인사의 원칙, 법집행의 기준, 근무자세 등 공직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금과옥조로 가득하다. 하지만 정작 공자는 자신의 사상과 능력을 펼칠 기회를 평생 갖지 못했다. 14년간이나 제자들과 함께 풍찬노숙을 하며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아무에게서도 부름을 받지 못했으며 때로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莫我知我夫)라 탄식하면서도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고(不怨天 不尤人) 묵묵히 자기완성의 길을 걸어갔던 위대한 인간 공자를 논어에서 만난다.

2022-11-17

지나친 성상품화는 멈추어야 한다

김규인수필가 성상품화란 인간의 성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성 자체나 성과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거나, 제품을 판매하는 일에 성적 연상이나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도 성상품화다. 산업의 홍보에 성상품화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다.자본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모든 것은 자본재가 될 수 있다고 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글이 아니더라도 자본주의는 돈이 되는 것은 다 상품화한다. 사람의 몸뿐 아니라 성까지도 상품화하여 시장에 판다. 이러한 성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여 소비를 촉진하는 상업주의와 영합하여 소비전략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다른 사람에게 돋보이려 화려한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자신을 드러나는 패션을 선택한다. 누군가가 부러움이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면 사람들은 어깨에 한껏 더 힘을 준다. 어쩌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만족과 존재를 확인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스스로를 전시하고 판매한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이미 상품화되어 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꾸미는 문장으로 이력서를 쓰고 멋진 옷을 골라 입는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 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부분을 상품 가치로 전환하여 돈으로 바꾸고 심지어 인간의 성까지도 상품화한다. 성과는 무관할 것 같은 스포츠에서 성의 상품화는 심각하고 아이돌의 성상품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은 독자 확보를 위하여 선정적인 내용을 부각하고 이를 부추기며 무차별적으로 퍼뜨린다.몸값을 올려야 하는 여성 아이돌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노출이 있는 무대 의상, 선정적인 춤, 관능적 모습을 담은 광고로 이어진다. 여성 아이돌의 이러한 성 상품화 문제와 더불어, 이들이 팬덤 및 대중의 관심을 모아야 하기에 성상품화 문제를 확장하였다.유튜버가 유튜브 채널에 비행기 승무원 유니폼을 착용한 선정적인 영상을 올렸다. 선정적인 영상이라 성상품화 논란이 있다는 기사를 한국경제신문의 보도 이후, 다른 언론도 앞다퉈 ‘승무원 룩북 영상으로 성상품화 논란이 일고 있다’는 기사를 올렸다. 해당 언론 보도가 오히려 관련 유튜브 영상을 더욱 확산시킨다.대부분 언론은 ‘룩북’ 영상의 선정적인 문제를 부각하며 성상품화를 말한다. 그러나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기사 제목과 사진, 영상은 더욱 선정성을 부가하여 유튜브 영상을 널리 퍼뜨린다. 일반인이 잘 모르던 유튜브 영상을 퍼뜨리며 자신들 홈페이지의 클릭을 유도한다. 이것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쪽은 선정성을 지적하는 언론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청소년들이나 일반 국민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성에 관한 선정적인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정보화 사회에서 대중매체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은 성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청소년들에게 여성에 대한 가치체계와 성적 충동에 영향을 준다. 이미 깊이 빠져버린 성상품화 속에서 우리들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성마저 팔아버리는 지나친 성상품화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

2022-11-16

수능을 생각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수능 아침. 청년들이 십대를 마감하며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앞에 온 나라가 거의 멈춘다. 날씨보다 마음이 훨씬 춥다. 수험생은 마음이 떨리고 부모는 가슴이 아린다. ‘최선을 던져라’ 응원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속내가 종일 힘들다. 실수없이 실력만큼 지르고 오기를 기원한다. 친구들이 경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오늘이 밉다. 선생님도 제자들의 이 하루가 안타깝고, 가족과 친지들도 같은 마음이다. 이날은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다. 세 번째 맞는 코로나 수능. 수능만큼은 누구도 소홀할 수가 없다. 온 나라가 절묘한 긴장에 빠져든다.수능의 ‘역할’은 무엇인가. 실력평가인가 소양인증인가. 대학입시를 위해 설정된 관문이지만, 실력을 평가해서 줄세우기의 도구로 삼는 일은 너무 낡은 생각이다. 대학 공부를 해낼 수 있겠는지 기초적인 소양을 인증하는 정도로 그 기능을 조절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놀랄만큼 다양하다. 수능의 결과로 학생의 진짜 실력을 평가할 수가 이제는 없다. 겨울로 들어가는 길 스산한 아침에 서 있는 수능의 고전적인 모습은 유효기간이 지났다.그 ‘하루’도 문제다.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바닥인 건 용납되지 않는다.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오늘을 피하지 못한다. 엄청난 경사를 맞거나 깊은 슬픔을 당해도 수능은 수능이다. 무조건 오늘 치른다. 딱 하루 딱 한 번이다. 거른다면 온통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365일 가운데 딱 하루만 치러야 한다는 생각은 누가 만들었을까. 여지껏 그랬다 해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교육과 관련된 제도를 바라보는 정책적 시선이 어쩐지 느슨하고 게으르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 우리 수능은 멈춰 서 있다. 생기발랄한 십대에게는 일 년에 적어도 몇 차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대학이 무슨 성역인가. 고등교육을 위한 준비상태를 살핀다면서 이처럼 불필요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가. 대학입시와 고등교육에 관한 결정도 과감하게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대학입학을 위한 기본소양을 살피는 새로운 수능은 일 년에 수차 치를 수 있도록 하여, 학생도 교사도 부모도 훨씬 편안하고 유연하게 치러야 한다. 실수를 돌아보며 수정해 가는 값진 경험도 허용해야 한다. 일 년에 딱 하루 로또처럼 만나는 수능은 이제 접어야 한다. 딱 한 번 시험을 잘 쳤던 경험을 평생 붙들고 국민 앞에 무례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지 않는가. 제도와 시스템은 시대와 세대에 어울리게 바꾸어야 한다.오늘을 향해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기울인 수고와 노력에는 결실과 보상이 반드시 돌아오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꾸준히 실력을 쌓은 사람이 끝내 이기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교육을 생각하면서 ‘한판의 경쟁’을 떠올리는 게 정상일까. 일등만 대접받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교육은 과정도 결과도 모두에게 뿌듯함과 보람을 안겨주어야 한다. 수능과 대입제도, 대학과 대학교육은 오늘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다음세대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11-16

미술관 나들이

양태순 수필가 허기,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늘 있는 것. 배고픔이야 지난 일이 되었지만 또 다른 허기가 찾아왔다.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고,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가 있다면 비켜 가기 어려운 자질 적인 문제에 목이 마르다. 내 그릇의 크기를 못내 아쉬워하며 자책하는 허허로움이 정신을 파먹는다. 그럴 때면 가슴이 텅 비어있는 듯한 허기를 느낀다.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책을 읽어 무릎을 치는 문장 안에서 위로를 얻는 이도 있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작은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덮어서 미뤄둔다. 예술에 소양이 모자라는 나는 그림으로 채워보려 마음 먹었다.미술관 나들이에 나섰다. 마침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전시회가 있었다. 88 서울 올림픽 기간에 펼쳐진 세계현대미술제의 작품 중 일부가 전시되는 기간이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려 했지만 교육 기간이라 들을 수 없었다. 입구에 눈길을 사로잡는 붉은 새가 보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을 가르며 날개로 균형을 잡은 채 위도 아래도 아닌 멈추어서 사방을 주시하는 듯했다. 참으로 멋진 새라 여겨 다가가서 제목을 보고는 웃고 말았다. 스위스 작가 피터 크나프의 ‘동풍IVA+동풍IVB’이었다. QR코드로 설명을 들으니 스위스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표현한 것이란다. 역시 내 안목은 수준 미달인 것이 분명했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그저 즐기자는 마음으로 감상을 시작했다.제목 맞추기 게임을 시작했다. 맞추는 게 없었다. 그림에서 인간이 느끼는 어떤 아픔이나 슬픔이 느껴져서 제목이 이런 것을 포함하지 않을까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미술가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세계는 높기만 했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것이라지만 그림에 녹아 있는 숨결이 따뜻하다와 어둡다 정도가 한계였다. 발길을 멈추게 했던 몇 작품은 사진으로 남겼다.사진을 남기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한다.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뭉클한 감동이나 색채가 주는 신비로운 힘이 경이롭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에스앤에스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앨범에 수록되고 나면 먼지와 함께 잠들어버릴 줄 알면서도 진행형인 행동이다. 가는 곳마다 남기는 사진들은 그날의 즐거움과 감동, 동행한 이들과의 사교적인 친목에 힘입어 얼마간은 살아있다. 그리고 바쁜 일상에 밀려 추억의 서랍에서 낡아간다. 그 며칠을 위해 끊임없이 누르는 셔터의 의미가 다일까. 언젠가 뒤돌아보는 날이 많아질 때 이름의 뒤에 따라붙는 내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은 아닐까.미술가가 작품을 남기는 이유는 다를 것이다. 능력이나 재능을 갈고닦은 실력은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에 힘입어 빛을 발한다. 사물을 보는 데 있어서나 사람을 관찰하는 행위를 통해 세상의 온갖 감정이나 감동이 마음속에서 끓어오를 때면 표출해야만 할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싶다. 보이는 대로의 모습이기보다는 생각이라는 회로를 거쳐 작품이 형상화된다. 그 속에는 작가가 의도하는 대로 혼을 쏟아부은 정신적인 부분이 있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다. 자신을 위한 것이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세계를 향한 눈을 비틀어 주어 정확하게 인지하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추측해본다.미술이란 내게는 늘 어려운 분야다. 그림, 조각, 건축, 공예, 서예 등. 오늘 제목 맞추기 게임에서 하나도 맞추지 못한 실력이니 알만하리라. 그래서 하지 못한 숙제에 걱정이 달라붙듯 전시회 일정을 알아도 선선히 관람하기가 쉽지 않다. 어렵다고 뒤로 미룰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조금씩 다가가려 한다.알지 못하는 분야에 관심을 주는 일은 열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관람하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여 내 것으로 만들려면 편리와 빨리 글자를 멀리해야 할 것이다. 묵묵히 눈으로 마음으로 보고 또 보는 것만이 이해의 길로 들어선다고 믿으며 애정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풍경화를 시작으로 한 발짝 내디딘다.무엇인가를 채우는 일은 부푸는 만월이다. 지적인 허기와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과정에서 만나는 깨달음은 빗방울 같은 두드림으로 가슴을 넓혀준다. 만월의 그득함이 내게로 옮겨 앉는 일이다.

2022-11-16

‘규제 혁신’, 그 속의 함의를 따져보다

환경과 산업, 제도와 규제 등은 일반적으로 상충되는 의미를 지닌다. 신산업 육성 등의 개발계획이 발표되면 환경영향평가를 들어 반대 의견부터 제시하는 경우가 잦다. 개발과 환경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은 난제들도 많다. 대화와 토론, 타협을 통해 해결하자는 논리는 꼭 정반합의 원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밀고 당기는 힘의 논리에 의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명분에 갇혀 해결이 지연되기도 한다.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개발의 논리가 친환경 등 녹색경제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이분법의 논리가 흐려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실현해야 한다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 덕분이다. 지난해 12월 환경부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의 범위를 정한 것으로,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녹색경제활동의 원칙과 기준을 제시했다. 녹색분류체계는 6개 환경목표를 두고 경제활동을 분류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자원 순환, 오염 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이 그것이다. 6대 환경목표를 기준으로 삼아 신사업을 추진할 때 친환경 여부를 판단한다. 투자지원 등 녹색금융도 환경목표에 부합하면 가능하다.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실제로 독일의 세계적인 해운회사인 하파크로이드(Hapag-Lloyd)는 2020년 대우조선해양에 LNG컨테이너선 6척을 발주할 때 위의 환경목표에 부합해 녹색금융의 지원을 받았다. 12개의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대출을 해줄 때 대출시장협회(Loan Market Association)가 제정한 녹색대출원칙을 충족해 전폭적인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산업의 규제도 친환경일 경우 혁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각 분야별 신기술 개발 등 다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규제 혁신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술 환경의 변화를 현장에서 즉각 수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랐다. 규제법령의 조문 등이 오래되고 현장의 목소리가 행정과 입법의 영역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해양수산부는 얼마 전 자율운항선박과 친환경선박의 상용화를 위해 규제 혁신에 나선다고 밝혔다. 친환경 선박의 시험운항에 소요되는 각종 규제를 간소화하고, 친환경 신기술로 개발된 설비와 기자재의 인증기간도 1년 이상 단축한다고 한다. 해양바이오 소재 활용도 다변화한다. 굴 등 패류 뿐만 아니라 갑각류에서 나오는 부산물도 폐기물이 아닌, 해양바이오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해양심층수 소금 역시 별도 식품유형으로 분리해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더불어 수산업의 지속가능성에도 초점을 두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수산물에 대해 금어기와 금지체장 등 규제 일변도로 수산업을 관리해왔다. 자연스레 단속과 신고로 질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최종산출물 중심의 총허용어획량(TAC, Total Allowable Catch, 어종별 어획할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해 어획하는 제도)으로 수산자원을 관리하기로 했다. 수산자원의 증감을 따져 어종별로 잡을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하고, 장기적인 관리를 통해 지속가능한 어업을 실현시키겠다는 복안이다.녹색경제활동과 친환경 기술 개발, 지속가능한 어업 등은 현재 우리가 처한 전 지구적 상황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환경과 개발이란 구태의연한 논리에서 벗어난 상생의 길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진통 하나 없을 수는 없다. 정현미 작가 이번 규제 혁신 내용 중에는 항포구, 어항 등지에 쇼핑센터와 일반업무시설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제한을 푼 혁신이 담겼다. 그동안 이 지역에는 횟집과 지역특산물 판매장 등으로 입점을 제한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었다. 또 바닷가 캠핑장 시설도 확충한다. 샤워장과 관리동 등을 늘려 바다 낚시객들이나 캠핑객들의 이용 편의를 증대시킨다는 계획이다.이 같은 규제 혁신은 어촌계와의 갈등과 바닷가 인근의 환경오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동시에 해양레저관광객을 늘리고 어촌관광소득 증대로 어촌경제 활성화를 제고할 수도 있다. 상충되지만 함께 가야 할 방향이라는 논거가 성립되는 지점이다.모든 경제 활동이 녹색성장일 수 없다는 점은 당연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집단 지성의 혜안이지 않을까? 이번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규제 혁신안도 대국민공모전과 해양수산 업·단체 의견을 수렴하고, 또 7천200여 개에 이르는 해양수산 규제법령 조문을 전수 조사해 개선과제를 발굴한 것이라고 한다. 각종 제도의 장점이 단점을 상쇄할 수 있는 묘안을 찾기 위해 애쓴 결과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녹색경제활동이 전체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2-11-16

동절기 멀티데믹 우려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트윈데믹이란 말이 등장했다.트윈데믹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독감(인플루엔자)의 동시 유행을 뜻한다. 그러더니 ‘멀티데믹(multiple pandemic)’이란 말까지 나왔다. 최근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로 인한 급성호흡기감염증이 트윈데믹에 추가됐기 때문이다.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올겨울 미국 전역에서 RSV 감염 환자가 증가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우리나라에서도 이달 초 경기도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11명이 RSV에 집단 감염됐다. RSV는 아직 예방 백신이나 적합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다. RSV로 인해 급성 모세기관지염에 걸린 대다수 환자는 9세 이하의 어린이로 알려져 있다.현재 독감 유행도 심상치 않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45주 차 인플루엔자 의심 환자는 평상시 유행 기준의 2배를 넘어섰다. 코로나19의 재유행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근래 들어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일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국제통계분석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에서는 최근 일주일간 100만 명당 확진자 숫자 1위가 대한민국이라고 발표했다.이번 동절기에 멀티데믹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국민들의 경각심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위드 코로나’에 익숙해져 버린 측면도 있다. 올봄 오미크론 대유행을 거치면서 집단 면역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다. 염려되는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해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미크론 변이에 대응하는 개량 백신 접종률도 전체 인구의 3.7%에 불과하다.실제로 주변에서 개량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봄 오미크론 확산 때 2~3차에 걸쳐 미리 백신을 맞았지만 결국은 걸렸다는 체험적 이유가 크다. 또한 백신을 맞고 나서 치르게 되는 여러 증상들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도 있다. 무엇보다 일년에 코로나19 백신을 몇 번까지 맞아도 안전한지, 접종을 하고 난 후의 부작용 대비 효율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적다.멀티데믹 현상이 우려되자 방역 당국은 개량 백신 추가 접종을 강조하고 나섰다. 정기석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 겸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은 “치명률이 100배가 넘는 병을 예방하지 않고 독감에 더 집중해서 예방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 개량 백신 접종률이 독감 백신 접종률의 6분의 1 수준인 것을 지적한 것이다.개량 백신 접종에 대한 방역 당국의 독려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국민들은 독감 백신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반면에 코로나19 개량 백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하다. 정부는 개량 백신 접종률이 낮은 것을 지적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에 대한 소통에 문제는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또한 국민이 국가를 신뢰할 때 멀티데믹이 극복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2022-11-16

수능 한파

홍석봉 정치에디터 17일은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통상 수능 날에는 한파가 온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수능 한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고사 때는 ‘입시 한파’가 있다.하지만 지금까지 29차례 치러진 수능시험 중 수능 한파가 온 것은 8차례뿐이다. 이중 지난 1998년 수능 당시 서울 기온이 영하 5.3도로 떨어져 역대 수능 중 가장 추운 날로 기록되고 있다.그러면 ‘수능 한파’는 속설에 불과한 것일까? 수능시험 날에 추워지는 것이 아니라, 추워지는 시기에 수능 시험일이 잡힌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수능 시기는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다. 추워지는 시기에 수능이 잡히니, 수능 날도 추울 확률이 당연히 높다. 실제로 1년 중 수능 직전의 열흘 남짓한 기간에 기온이 가장 빨리 떨어진다.수능시험 날은 또 아침 일찍 시험장에 가야 한다. 새벽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추운 시간이다. 평상시 출근 및 등교 시간보다 이른 새벽 6시쯤 집을 나서야 하니 추위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수험생과 가족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긴장하면 신경도 더욱 예민해진다. 수험생의 긴장도 수능 한파에 한몫했을 터이다. 그리고 특별한 날의 기억은 사람의 뇌리에 깊이 남는다. 수험생들이 수능 날 느꼈던 단 한 차례의 추위 기억이 평생 간직되기 때문이다. 각인 효과다. 이런 연유로 수능 날의 추위가 특별하게 느껴지고 ‘수능 한파’라는 관형어로 굳어진 듯하다.17일 수능 날에는 한파가 없을 전망이다. 기상대는 수능 날 아침 최저 기온이 대구 4도, 포항 7도, 구미 3도, 안동 1도 등으로 평년 수준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수험생 여러분 편안하게 시험 치세요./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16

발달과 진화

조현태 수필가 소리 즉 진동을 공기 중에서 감지하는 방법은 귀의 고막을 통해 파악한다. 마찬가지로 물속에서 발생한 소리도 진동(파장)으로 감지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따라서 물고기도 귀가 있는 것처럼 소리를 감지한다고 한다.물고기는 귀가 없어도 소리를 감지한다는데 어떤 형태로든 물에 의해 전달되는 파장을 알아차리는 기관이 발달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물속에서의 진동은 공기 중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전달된다니 놀랍다.한편 공기로 호흡하는 사람이나 짐승들은 공기 중에서 전달되는 소리를 귀로 듣는다. ‘귀’라는 기관은 너무 먼 곳에서 발생한 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만약에 매우 미세한 소리나 아주 먼 곳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대단히 불편할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끄럽고 온갖 소리가 겹쳐서 분간하기 어려울까 싶다.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도 역시 자연 속에 살아가는 가장 적절한 삶의 감각기관이 아닐까 한다.이렇게 지구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의 삶에 가장 적절한 감각기관을 운용하며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종이 다른 동물 사이에는 색다른 차이가 있겠지만 같은 종에서도 각각에 따라 반드시 차이가 있을 터이다. 그것을 다른 표현으로 개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각자 살기에 편리하도록 기관과 감각이 발달해 있다. 사람에게로 개성을 살펴보자.어느 날 어느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때 필자는 BBC earth 채널 방송을 보고 있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말은 대부분 일상적인 수다였고 끝도 없이 주절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그리 중요하다고 여기지도 않았고 크게 관심이 가지도 않았다. 왜냐면 지구 환경에 관한 방송에 집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질문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무슨 질문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내 말에 쨍그랑 접시 깨지는 소리를 했다. 여태껏 전화로 한 말은 안 듣고 뭐하느냐고 대거리를 했다. 나는 대단히 머쓱해졌다. 미안한 마음으로 BBC 방송에 정신이 팔려 잘 못 들었다고 사과했더니 발칵 화를 냈다. 어찌하여 친구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돈단무심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성의가 없다는 둥, 관심도 없다는 둥, 여자 친구를 무시한다는 둥. 처음에는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으나 금세 진실로 화가 났구나 싶었다. 덩달아 나도 같이 화난 소리를 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면 넘어가도 될 일이지 무슨 까닭으로 전화에 대고 이토록 호통을 치느냐고 했다.내가 관심 깊은 방송을 보는 중에 전화가 왔고 30분씩이나 조잘대고 있으니 건성으로 들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냐고. 자기 전화에 남의 관심사를 묻어버리려는 태도는 더 나쁘지 않느냐고 했다. 각자 삶의 방향이 다를 때 관심이나 감각도 자기를 중심으로 발달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성도 없지 싶다. 그래야 진화도 있을 터이다.대체적으로 이렇게 각자의 상황이 상대에게도 적합한 줄로 오해하는 것에서 잡음이 생기고 다툼으로 번지며 심하면 싸움까지 한다.

2022-11-15

책임의식 없다면 대통령의 냉정함으로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2012년 11월 23일 부임한지 5개월 밖에 안 된 서울동부지검장이 갑자기 사표를 냈는데, 사의표명 이유는 검사 실무수습을 위해 서울동부지검에 파견된, K검사가 피의자인 40대 여성을 집무실로 불러 조사하던 중의 유사 성행위와 그 뒤에 인근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 가진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사의를 표한 지검장은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서울동부지검에서 발생한 불미사태에 관해 청의 관리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사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사건이 터지자 K검사 소속 형사부 관리·지도자에 해당하는 부장검사까지 책임론이 논의되었으나, 지검장에 대해선 직접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검장은 “K검사 사태로 조직의 위신이 바닥에 추락한 상태에서 다시 조직기반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이번 사태를 처음 접하는 순간 누군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마음을 비웠다”며 사의표명 배경을 설명했고, 지검장이 기꺼이 희생양을 자청한 덕택에 사건 소속 형사부 선임 검사들의 책임문제가 해소됐다 한다. 이태원 참사가 터진 뒤 관련자들이 책임의식이 전혀 없는 모습에 2012년 서울동부지검사건이 생각났다.보도된 바에 의하면 경찰과 정부의 보고체계는 엉망진창이었다.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보다 늦게 내부 알림문자로 사태를 알게 됐고, 치안 총책임자인 경찰청장은 캠핑장에서 잠자느라 대통령보다 73분이나 늦게 보고 받았다. 이쯤 되면 사고지역 경찰서장,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경찰청장에 대해서는 즉시 인사조치가 있어야 했으며 행안부 장관도 즉시 사퇴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어느 인터뷰의 책임 언급에서 ‘사표를 폼 나게 던진다’는 표현을 쓰는 등 장관은 임명권자에 대한 예의도 잊은 채 국민을 우롱하는 말을 하는 것 같다.대통령실 관계자는 “책임지우는 문제는 누가 얼마나 무슨 잘못을 했는지, 권한에 맞춰 얼마만큼 책임 물어야 할지를 판단한 다음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는데, 책임질 인사가 물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한다는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대통령께서도 범죄의 구성요건을 따져서 기소하던 검사 시절의 의식이나 사법시험 2차 날짜를 며칠 앞두고 친구의 함진아비로 대구까지 갔다는 일화에서처럼 개인적 의리 같은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주장하는 사항들이 오늘날 민주국가 지도자에겐 맞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깊이 새겨야 할 사항도 있을 것이다. 군주의 덕목으로 “혼란을 막지 못하는 부드러움 보다 가혹한 조치로 질서를 세우는 것이 낫다” 또는 “지도자의 자질은 그 부하를 보면 안다”라는 말들은 오늘날 민주국가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해당할 것이다.지금이라도 이태원 참사의 안전대책에 법적뿐만 아니라 정무적·도덕적 책임이 있는 사람은 즉시 문책해야 한다. 대통령으로서 개인적 의리를 지키는 것보다 나라와 국민을 안정되게 하는 것이 더 원칙적이고 상식적이다. 정부 각 부서의 장들이 책임의식이 없다면 대통령은 통치자로서 냉정하고 엄정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22-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