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A씨가 학부모의 도 넘는 민원 제기와 폭언, 갑질, 교권 침해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A씨 담당 학급의 한 학생이 급우의 이마를 연필로 그어버리는 학교 폭력을 저질렀는데,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해 학생의 학부모가 ‘금쪽 같은 내 새끼’를 싸고돌며 A씨를 몰아세운 게 원인으로 지목되는 중이다. 해당 건 외에도 그동안 얼마나 들들 볶아댔을까.
지난 5개월간 서이초 교무실에 접수된 공식 민원은 11건인데, 내용이 기가 차다. “하교 시간에 솜사탕 상인이 있어 학생 통행이 위험하다고 항의함”, “담임교사의 생활지도와 교과지도, 수행평가에 6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함”, “방과 후 통기타 수업 중 아이가 기타 연습을 안 해와 강사에게 혼난 것을 항의함”, “교문 앞 교통 통제를 해달라고 함”, “교통 통제를 하지 말라고 함” 따위다.
요즘 학부모들은 교사 개인 연락처로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고 문자를 보낸다. “여행 가지 마라”, “SNS 하지 마라”, “어머니 장례는 3일인데 왜 5일이나 휴가를 내냐” 등 학부모들이 보낸 메시지를 보니 천박하기 그지없다.
나는 미혼이다. “자식이 없으니까 모른다”고 하겠지만, 요즘 부모들 하는 걸 보니 자녀 양육은 경험의 차원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그러니 말하련다. 제발 작작 해라. 호들갑 좀 그만 떨고 오지랖도 적당히 펼쳐라. 언제까지 갓난아이 업어 키우듯 할 텐가? 당신들의 자녀는 애완동물이 아니고, 생각과 표정 없는 인형도 아니다. 저마다 하나의 독립된 우주이고, 개별적인 인격체다.
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개입도 정도껏이다. 학교와 교사를 믿지 못하고, 아이 친구들을 믿지 못하겠으면 그냥 집에서 홈스쿨링을 해라. 세상이 삭막하고 위험해진 건 사실이나 요즘 부모들이 자식 키우며 벌이는 극성들을 보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서이초 교사 A씨의 비극이 바로 그 경우다.
도대체 왜 이럴까? 우리 부모 세대는 요즘처럼 극성맞지 않았지만, 일부 ‘맹모삼천지교’가 없진 않았으니 한번 따져보자면 ‘내 새끼만큼은 안 굶기겠다’는 오기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내 또래 부모들은 결핍 없이 자라놓고는 왜 이 난리법석일까? 한국사회의 스노비즘이 가장 큰 병폐일 것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영심과 속물근성이 풍요 속의 결핍을 과잉생산해내는 시대다. 높은 수준의 경제력을 지닌 고학력자 부모들은 자식을 의사, 판검사, 대기업 임원으로 만들어야만 상류사회에서 면이 서고, 풍족하지 않은 부모들은 빠듯한 형편에도 내 새끼 기죽지 않게 온갖 귀하고 좋은 건 다 먹이고 입힌다. 아이와 함께 100만원이 넘는 호텔에서 바캉스 하는 게 유행이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내 또래 부모들의 일상에 ‘I(나)’는 없고 ‘아이’만 있다. 자신을 지워낸 자리에 자녀만 두는 헌신적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만 소중한 게 아니라 남의 아이도 소중하다. 서이초 교사 A씨는 교실에서는 선생님이었지만, 교실을 나서면 이제 스물세 살 된 꽃다운 청년이자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다행히 내 주변의 부모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배려를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괴물이 되는 일부 극성 부모들이다. 제 자식은 제멋대로 날뛰어도 우쭈쭈 감싸면서, 그 미성숙한 ‘덩어리’를 사람 만들겠다고 애쓰는 교사들에게 폭언과 갑질을 일삼는다. 옳지 않은 짓이다.
그래, 당신들이 학생일 땐 ‘미친개’라든가 ‘마귀’ 같은 별칭으로 불린, 선생 자격도 없는 교사들이 학교에 있었다. 그 시절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도 이해불가다. 착하고 성실한 요즘 선생님들이 무슨 죄가 있나? 이제는 달라졌다. 교사들의 인식도 바뀌었고, 교육 현장의 분위기도 쇄신됐다. 제발 믿고 맡겨라.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개입, 지나친 집착이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란다. 온실 속 화초는 자꾸 만지면 시든다. 열대어는 수온과 빛과 먹이와 산소 등을 섬세하게 관리해줘야 하지만, 그 관리가 필요 이상으로 과하면 스트레스로 죽는다. 당신들의 ‘금쪽이’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