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 폭서의 성하(盛夏)에 청산녹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국 대부분이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연일 찜통더위에 온열질환으로 인명피해까지 속출하니, 폭우와 폭염의 기승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상이변과 기후위기는 지구촌 곳곳에서 극명하고도 심각한 자연재난을 초래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날씨에 민감해서 괜한 기우(杞憂)로 여긴다거나 위축돼서는 안되겠기에, 지난 주말 아침 배낭 매고 더위도 즐길(?) 겸 한여름 속으로 거침없이 길을 나섰다.
일행들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싣고 싱그러운 들판을 지나 울창한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울진군과 봉화군 경계의 답운치 고개에 이르러 본격적인 산행준비를 했다. 안개가 자주 끼어 있어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하다는 답운(踏雲)재에서 능선을 타고 통고산(1067m)을 오른 후 계곡을 따라 자연휴양림 쪽으로 하산하는 비교적 순탄한 코스다. 더욱이 산행 기점이 해발 600여 미터라 약간 선선한 느낌이 들었고, 모처럼 산을 찾게 돼서 그런지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낙동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세답게 등산 초입부터 수목이 우거져 햇볕은 잎사귀 사이로 겨우 비춰 들었다. 고산지대의 고요한 숲을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들의 합창이 산객을 반겨 맞는 환호처럼 들리고, 길섶에서 만나는 산나리꽃과 패랭이꽃은 청초한 자태로 제 멋을 떨구며 미소 짓는 듯했다. 장마가 끝나고 습기가 남아있는 등산로 주변으로는 이름모를 버섯들이 자주 눈에 띄는가 하면, 군데군데 우람하게 호위하듯 서있는 금강송은 모진 풍상을 이겨낸 낙락장송답게 꿋꿋한 기상이 서리는 듯했다.
능선따라 바람따라 소요하듯 완상하며 새소리와 매미울음의 추임새 속에 몇 차례 구슬 같은 땀방울로 산길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다다른 정상, 10여년 전엔가 메마른 겨울에 오르고 온통 초록에 젖듯 여름날에 다시 오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산은 이렇듯 오르는 자에게 늘 길을 열어주고 넉넉함과 뿌듯함을 안겨준다.
“신발끈에 조인 의지/대찬 걸음으로//풀섶에 머문 꿈/땀방울로 말아내면//호방한 너울로 손짓하며/반겨 맞는/등성이//구름바다에 섬으로 뜨는/서리서리 얽힌 정//바람 결에 실어 보낸/원색의 외침 너머//창망한/메아리로 굽이치는/산정무한의/수묵화” -拙시조 ‘山行記’중(1995)
하산길은 언제나 여유롭고 홀가분한 듯하지만,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으니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높은 곳에 있을 때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居高思墜)’ 늘 경계하라는 가르침은 비단 산행 뿐만이 아니라, 직장이나 정치 등 사회 전반적인 상황에서 통용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내려오고 물러날 때가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불볕더위에 아랑곳없이 이열치열로 산행을 하거나 맨발걷기로 애써 땀을 흘리고 움직이는 것은 극기와 내성(耐性)을 다지는 것이 아닐까. 별천지에 간 듯, 온통 초록 숲과 녹음에 어우러져 깊은 산골짝 석간수의 청량함까지 온몸으로 느끼고 즐긴 꿈결 같은 여름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