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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붕괴에 얽힌 복잡성

등록일 2023-08-01 19:04 게재일 2023-08-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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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어느 젊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의 충격이 지속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학부모의 ‘갑질’에 젊은 선생님이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겪은 부당함을 학교에 호소했으나 적절한 해법이 마련되지 못하자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학생 인권조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전 정부와 진보 교육감의 학생 인권을 강조한 정책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선생님의 비상식적인 체벌이 많았다.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선생님에게 손찌검당한 기억이 선명하다. ‘갑’의 입장이던 선생님이 ‘을’의 위치에 있던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용납되던 시절에 체벌과 폭력의 경계는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훈육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학생들의 인권에 주목한다는 것은, 교육의 영역에서 기존의 갑을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학생은 계발시켜야 하는 대상, 선생님은 계발의 주체로 보는 것이 전통적 관점이라면, 이제는 선생님이 학생을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대하며 그 잠재된 가능성을 끌어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학생을 입시라는 단일한 목적으로 수렴시킬 것이 아니라, 학생 각각의 특성을 존중하며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생 인권과 선생님의 인권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다시 역전된 갑을 관계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하지만, 일단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여전히 공고한 학벌사회는 공교육 붕괴라는 결과를 낳고 이는 다시 교사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렸다. 경쟁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동의 관계를 학습하지 못한 부모의 내면은 자식 교육에 그대로 투영된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 자식이 손톱만큼이라도 손해 본다는 느낌을 견디기 어렵다. ‘강남’에 입성한 계급의 상대적 우월감은 이런 심리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심리는 단지 초등학생의 부모에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학생의 수강 신청이나 학점에 대한 민원을 넣는 학부모를 만나는 경험은 낯설지 않다.

이처럼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서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이 있는 정부는 애꿎은 학생 인권조례를 탓하고 있다.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할 능력이 없거나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다. 반복하건대 사교육 시장, 교권, 지방대학의 위기 등 올해 들어 제기된 교육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복잡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출산을 고민하던 지인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뉴스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학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시 문제는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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