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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일주(壬子日柱)

등록일 2023-08-02 18:40 게재일 2023-08-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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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안作 ‘Protective 2’
이지안作 ‘Protective 2’

육십갑자 중 마흔아홉 번째는 임자(壬子)다. 천간(天干)의 임수(壬水)는 측량할 수 없는 바다의 심연이며, 지지(地支)의 자수(子水)는 겨울밤의 싸늘한 물이다. 동물로는 검은 쥐다.

임자일주는 대양처럼 깊고 넓어 만물을 감싸는 형상이다. 만물을 수용함과 동시에 쓸어버리기도 가능하기에 진취적이고 의욕적이다. 배포가 남다르게 크면서도 용기가 있어 사람들을 잘 다루고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한다. 매사 적극적이고, 보다 앞서나가려 한다. 그러나 결코 가벼운 언행은 하지 않는다. 비밀이 많고 끈질긴 면이 있어 인인자중(忍忍自重)한다.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면모도 함께 볼 수 있어 한 번 화를 내면 절제가 잘 되지 않는다. 자존심과 더불어 경쟁심도 강하여 타인들을 주로 경쟁상대로 여기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마음은 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으며, 빠르게 흐르는 강물이다. 절대 가벼운 성정이 아니며, 끈기와 인내심을 겸비하고 있어 속이 깊고 과묵한 성격이 많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충분한 생각을 한 뒤 말과 행동을 한다. 대체로 직관과 영감이 탁월해 논리적 사고보다는 감각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넓고 깊은 바다 같이 평상시에 평온해 보이지만, 누군가가 해코지를 하면 고집이 대단해지고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독단적 성격이 된다. 그러나 물의 특성으로 지혜롭게 흘러간다.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면이 있어 로맨틱하다고 할 수 있다.

황순원(1915∼2000)의 단편소설 ‘소나기’가 있다.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청순하고 깨끗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꽃이 핀 가을 들판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소년과 소녀는 원두막으로 피한다. 빗줄기는 세찼고, 철 지난 원두막은 너무나 허술했다. 소년은 차라리 수수밭에 세워둔 비좁은 수숫단 속으로 들어갔다. 그만 소녀가 안고 있던 꽃묶음을 망가뜨린다. 소년이 꺾어다줄 때마다 한 송이도 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한 꽃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지금 망가져버린 꽃으로도 행복하다. 꽃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행복감을 느끼려 했기 때문이다.

소녀가 며칠째 개울가에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주머니 안에는 언젠가 소녀가 자기를 향해 던진 조약돌이 들어 있었고, 조약돌을 만지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아니 그는 조약돌을 만지면서 소녀의 체취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소나기가 내리는 날 소년을 만난 소녀는 그날 얻은 열병으로 죽는다. 마을 갔다 돌아온 아버지의 말을 통해 소녀가 죽기 전에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옷은 소나기로 물이 불어난 개울을 업혀 건널 때 소년의 체취가 얼룩으로 묻어 있던 옷이다.

소녀에게도 마지막까지 중요했던 것은 느끼는 것이었다. 느끼려는 사람은 마음을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법이다. 우리들 삶에서도 소나기로 인해 불어난 강물 때문에 등에 업고 건네준 소녀 한 사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임자일주 남자는 사회생활을 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좋으며, 결혼 후에도 이성 관계로 인해 풍파를 많이 겪게 된다.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나, 집안에서는 폭력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다. 여자는 집안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운이니, 복을 지으면 하고자 하는 일에 좋은 결실이 온다.

일상생활에서 “임자 만났데”라는 말이 바로 임자일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제 아무리 강한 일주라도 임자일주에게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정도로 강한 모습이다. 또한 나이 든 사람들이 부부가 되는 짝을 임자라고 부른다. 임자란 말은 인간이나 물건이 적임자와 연결되어 능력이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때 사용한다. 시쳇말로 ‘개가 개장수 만나는’ 식으로 자신의 급소를 잡은 원수를 만날 때도 쓴다.

임(壬)은 천간 중 하나로 수(水)에 해당한다. 수(水)는 숫자로 1이다. 물에서 생명이 시작되므로 물을 첫 번째로 보는 것이다. 자(子)는 지지(地支) 가운데 첫 번째이자 물이다. 그러므로 ‘임자 만났다’는 말은 ‘최고를 만났다’‘제일 강한 상대를 만났다’는 뜻이 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류대창 명리연구자

임자에서도 천간 임(壬)보다 지지에 있는 자(子)가 더 근원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임자일주는 추운 겨울 먹이를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는 검은 쥐의 모습이다. 배고픔과 추위에서 벗어나려면 무모한 짓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자성어에 ‘묘서동처(猫鼠同處)’가 있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즉 도둑을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의미다. 단속하는 자와 단속받는 자가 야합하면 못 할 짓이 없다는 경고다. 그 결과는 몰락으로 끝이 난다. 마치 물에 빠진 생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너무 큰 욕망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파멸한다.

하지만 작은 욕망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도 못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더 나은 상황을 욕망한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결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혐오하고 외면하기에 급급하다.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까 가슴을 졸인다.

사실 결점과 약점은 가장 좋은 스승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를 조용히 귀띔하며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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