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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4대강 농경지 리모델링 70% 공정률

【칠곡】 정부의 국책사업인 4대 강 사업의 하나로 시행 중인 칠곡군의 농경지 리모델링사업이 지난해 7월 발주를 시작으로 현재 70%의 공정률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연내 성공적 마무리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농경지 리모델링사업은 하천공사로 발생하는 파낸 흙을 단순히 농지에 성토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지의 단표토를 50cm 정도를 미리 모아둔 뒤 하천준설토로 성토하고 표토를 다시 덮어 경지정리를 시행하는 사업이다.저지대 농지의 침수를 예방과 기존 논농사 위주에서 논·밭 겸용, 시설원예 등 농지의 활용가치를 높여 농가소득증대에 이바지하는 1석 3조의 효과가 기대된다.또한, 칠곡지역 농경지 리모델링사업 6개 지구의 시공업체가 모두 지역업체로 전체 189억 원의 시공비가 지역 업체소득으로 이어져 지역경기활성화에 큰 효과를 거둘 전망이다.한국 농어촌공사 칠곡지사 관계자는 “이번 사업이 공정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저지대 농경지를 1~6m 높여 침수를 예방해 고소득 작물재배가 가능해지고, 이로 말미암아 소득이 높아져 고향을 떠난 젊은 인력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4대 강 농경지 리모델링사업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김용호기자 kim112@kbmaeil.com

2011-05-11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전망타워

구자문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최근 들어 울릉도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지금은 쾌속선을 타고 3시간 걸리는 거리이지만 예전에는 그 배 이상 걸리던 먼 바닷길이었다. 울릉도에는 지금 1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이다. 포항에는 울릉도로 떠나는 `썬 플라워호` 선착장이 있고, 울릉군이 선거구상으로 포항남구와 결합되어 있어 포항사람들에게 울릉도는 더욱 가까운 곳이다. 또한 포항에는 울릉도 인구보다 더 많은 울릉도 출신들이 거주하고 있다. 울릉도에서 맑은 날이면 맨눈으로 독도가 뚜렷이 보인다. 과거 2천년전 `우산국` 시절부터 많은 이들이 독도를 바라보면 일생을 보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많은 이들이 저 멀리 보이는 이어도, 사리에 물에 잠기는 조그만 돌섬, 그 전설속의 이어도를 그리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애타게 그리워했듯이, 이 바람 사나운 울릉도에서도 멀리 바라다 보이는 돌섬 독도를 바라보면 많은 이들이 애를 태웠을 것이다.어부들은 독도까지 나룻배를 몰고 가서 고기도 잡고 미역도 따고, 때로는 폭풍에 피난하며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이 독도는 우리 한국인들의 다사다난한 이야기가 얽힌 그러한 곳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독도를 자기나라 땅이라 우기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우리 한국인들로서는, 특히 우리 포항인들로서는 기가 막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포항에 울릉도와 독도를 관망할 수 있는 `포항타워`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수천억에 이르는 공사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52만 인구의 도시가 높이 3~4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타워를 어떻게 유지 할 것이며, 도시경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을 것이냐는 염려가 있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건설계획을 듣고 가슴을 설레고 있을 것이다.육지에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 어떠한 법적인 논리를 떠나서라도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크게 자리한 좀 먼 곳에 위치한 우리 섬들을 직접 자주 관망할 수 있다함은 우리 국민들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없다. 관광 온 외국인들에게도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해 줄 것이다.울릉도와 독도지역의 깊고 광활한 바다에는 많은 어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많은 지하자원들이 묻혀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수산자원과 지하지원에 대한 욕심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욕심은 우리 독도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부속 도서들에 대해서도 마찰을 빚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주장 및 태도가 그 멀리 전혀 문화와 인종이 다른 오끼나와, 거리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한국과 더욱 가까운 대마도 등을 자기 영토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오끼나와는 우리 민족과 인연이 크다. 1천5백년전 신라의 이사부에 쫓긴 백제 및 고구려 계통인 우산국 주민 1천여명이 오끼나와로 이주하여 670년간 왕위를 유지했음이 고문헌조사와 주민들의 Y-염색체 조사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800년전 몽골에 맞서 싸우던, 제주도를 최후의 근거지로 저항하던 고려의 삼별초들도 그곳에 정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중기 홍길동전도 사실을 바탕으로 써졌으며, 그 스토리 그대로 홍길동 일파가 유구로 진출했음이 사실일 것임을 믿는 역사가들도 많다.대마도는 부산에서 빤히 내다보이는 곳으로서 그 주민들은 우리 조정에 조선인임을 인정해달라고 간청했다지 않는가? 그곳에 관광간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곳의 한국스러움에 다시금 놀란다 하지 않는가? 우리는 정말 많은 것들을 잃고 있었다.포항에 울릉도와 독도를 관망할 수 있는 타워를 건설한다함은 포항의 한 랜드마크를 건설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한국인 모두의 마음에 크게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를 관망할 수 있는 그러한 시설을 건설한다는데 더욱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아진다.

2011-05-10

부처님 오신날

종문 / 포항불교사암연합회장·스님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날`,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며 부처님전에 연등 밝히는 오늘. 함께 축하하고, 부처님 가르침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인연에 감사를 드리며 부처님의 삶과 귀한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을 우리 지역 불자님들과 함께 기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우리들 자신이 부처에 이르는 길이라고 배워왔고 다른 종교와 우리 불교가 다른 점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한평생 위대한 가르침을 펼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그 가르침의 핵심은 `자비`이고 부처님은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존귀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 고귀함을 닮아가고자 정진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소통과 화합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지금의 현실에서 부처님의 그 위대한 가르침이야말로 우리 지역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우리 불교인들의 끊임없는 정진이야말로 우리 지역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발전시켜 가는 밑거름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에 우리의 가슴에 담겨 있는 불성인 자비심을 실천으로 승화시켜 가야하겠다.일상의 삶 자체를 수행으로 삼아 부처님을 닮아가고자 노력한다면 우리 불교인들의 진정한 목표인 불국토 건설과 견성성불의 길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존경하는 포항지역 신도 여러분. 그리고 시민 여러분.우리 포항은 시기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 세계적인 무역 거점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에서 모든 시민들의 역량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우리 불교계가 강조하고 있는 소통과 화합이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편향적인 정부의 종교적 시각 때문에 우리 불교계는 지금 크나 큰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실의에 빠져 있다.이러한 때에 우리 불교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나`안의 불성을 다시 찾는 것일 것이다. 간절한 신심으로 나를 낮추고 `나`를 존귀하게 여길 수 있을 때 비로소 `남` 또한 존귀한 존재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친애하는 불교인 여러분,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기뻐하는 부처님 오신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인 `자비정신`으로 우리 불교인들의 불심을 새롭게 무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강건한 그 불심으로 우리 가족의 행복이 소중하듯, 이웃의 행복도 소중하다는 너무도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통과 화합`의 참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아무쪼록 우리 지역에서는 나와 남을 나눠 갈등을 부추기지 않고 그릇된 종교적 신념으로 지역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 상대가 아닌 `우리`가 되어 서로를 보듬는 아름다운 고향으로 만들어 가자.아무쪼록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계기로 부처님의 자비가 늘 함께하기를 기원드리며 불자님들의 가정에 행복의 연꽃 가득 피어나길 축원 드린다.

2011-05-10

갈등이 생기면

우리말에 갈등이란 말이 있다. 갈(葛)은 칡 넝쿨을 의미하고 등(藤)은 등나무를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 일이 복잡하게 뒤얽히어 풀기 어려운 형편과 견해나 이해(利害) 따위의 차이로 생기는 불화에서 생긴다. 그리고 마음속에 두 가지 이상의 욕구 등이 동시에 일어나 갈피를 못잡고 괴로워 하는 상태를 말한다. 주로 산에서 많이 자라는 칡과 등나무의 형태를 보면 잘 이해가 간다. 이 두 나무는 자라면서 서로 몸체가 비틀면서 엉키고 가까이에 있는 식물에 붙어 몸을 조이며 못 살게 하는 특성이 있다. 마음에 외로움이나 괴로움이 생기면 겉잡을 수 없이 난잡스러움에서 마음의 생각도 뒤엉켜 버린다. 사람이 고민이나 걱정에 빠지면 근심이 생긴다. 성서에도 보면 “마음이 즐거우면 앓던 병도 낫고 속에 걱정이 있으면 뼈도 마른다”고 한다. 근심에도 천태만상의 유형이 있다. 그래서 가벼운 근심은 말이 없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걱정거리가 얼마나 우리들에게 타격을 주었던가. 세상일은 마음먹고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도 있으며 사람의 의지에 따라 걱정의 차이도 있다. 손뜨개질이나 되는 것처럼 여자들은 걱정거리를 안고 앉아있기를 좋아하며 성격에 따라 근심을 아예 매달고 사는 사람들도 흔히 본다. 그리고 남의 고민을 자기의 것인양 쓸데 없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걱정이 많으면 만사가 귀찮아 진다. 잠도 오지 아니하고 먹기도 싫고 죽고 싶어하는 마음만 늘 긋님의 주위를 돌고 있다. 가까운 친지나 친구를 만나 상담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온다. `시경(詩經)`에 백 가지 시름, 걱정하면 마음만 어두워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얽혀져서 빨지 않은 옷과도 같다고 했다. 근심 걱정은 기성 세대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며 깊은 뜻이 없을 때는 근심도 없고 큰 일을 생각하고 보면 근심도 많아지는 법이다. 근심은 인생의 적이란 말도 있으며 나이는 백 세인데 근심은 천 세다. /손경호(수필가)

2011-05-10

동심 사로잡은 봉화 한국과자 축제 `성공작`

3일간 연인원 8만여명 다녀가 `풍성한 성과`편의시설 확충·프로그램 다양화 등 과제 남아 【봉화】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한국과자축제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과자축제는 `떠나자~! 맛있는 과자의 나라로!`라는 주제로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후토스촬영장에서 열렸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봉화군에서 주최하고 세계유교문화축전조직위원회 주관으로 치러졌다.축제 개막일인 지난 5일 어린이 날을 맞아 2만여명이 축제장을 찾은 것을 비롯해 연인원 3만여 명이 메인축제장인 후토스 동산과 명승 제60호로 지정된 청암정과 석천계곡, 닭실마을 일대 등을 찾아 성황을 이뤘다.이번 행사는 한국대표 한과전과 추억의 과자전, 초콜릿 특별전과 한과 만들기체험, 보물찾기와 같은 전시체험행사와 인형극, 마술공연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잊지못할 추억을 제공하고자 마련된 한국과자축제는 아이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후토스`라는 미디어콘텐츠와 한국의 대표과자인 닭실전통한과의 이미지를 결합시켜 한과의 고장 봉화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봉화의 대표적인 은어축제 및 송이축제와 더불어 아이들과 한번 쯤 가볼만한 또 다른 봉화의 축제 브랜드를 형성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특히 이번 축제는 국내에서 과자와 관련된 첫 축제인 만큼 큰 관심과 기대심리가 작용해 예상 관광객을 훨씬 상회하는 관광객이 방문해 성공적인 축제로 평가를 받았다.하지만 주차시설과 편의시설확충, 볼거리 다양화를 비롯해 축제장인 닭실마을 진입로 가운데 철로 굴다리 밑을 통과하는 도로의 선형 개량 개선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봉화군 봉화읍 이모씨는 “봉화군에서 이뤄지는 축제인만큼 봉화군축제위원회도 참여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하고, 읍·면별로 생산되는 농·축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과자도 전시 등의 볼거리제공, 관광객이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했어야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봉화군 행사 관계자는 “짧은 준비기간으로 방문객의 기대에 못 미친 부분이 다소 있었다”며 “이번 축제에 대한 평가회를 열어 도출된 문제점을 하나하나 개선해 우리나라 명품축제로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방유수기자

2011-05-10

이명박 약효와 강재섭 효과

이경우대구본부장한나라당이 술렁이고 있다. 4·27 재보선에서 야당에 텃밭을 내준데 대한 불안감에서일 것이다. 주류를 향한 `책임 질 사람은 나가라`는 퇴진론과 함께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이젠 전면에 나서라`는 역할론도 점 점 커지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소장파가 미는 중도 성향의 황우여 의원이 당선되더니 초선이 포함된 13명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경제대통령으로 뽑았는데 재벌과 대기업만 좋아지고 서민 살림살이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불만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특히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자부심으로 부풀었던 대구경북 지역은 그러나 아무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는 배신감으로 바뀌고 있다. 중앙에 진출해 있는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폼 잡고 기세를 올렸는지 몰라도 지역에는 그 물이 넘쳐흐르지 않았다는 불평이다.지역에서 여론이 심상찮게 흐르자 `형님`이 나섰다. 그렇잖아도 형님예산으로 야당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은 이상득 의원이다. 이 의원은 지역출신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TK(대구·경북) 피가 흐른다”고 했다가 우군으로부터도 “대통령과 당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힐난을 들어야 했다. 이날 이 의원은 `2007년에 4천억원이었던 대구 예산이 2011년 4조원에 가깝고, 2007년에 2조원이었던 경북 예산은 2011년 7조원에 가깝다`며 이 점을 인정해 달라고 했었다.그러던 차에 이번 재보선에서 야당에 텃밭을 내주었다. 분당은 여당이 늘 70%대의 지지를 받던 곳이고 후보도 대구에서 내리 5선을 한 강재섭 전 당 대표를 내보냈다. 강원도에서는 계속 앞서가던 엄기영 후보가 막판 발목을 잡혔다. 물론 후보 선출과 선거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지만 이명박 약효의 유효기간이 지나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분당과 강원의 한나라당 패배와 김해을의 김태호 후보 선택으로 민심이 어디 있는지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환골탈태하라는 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강재섭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민심을 따르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얼굴을 바꾸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보수 세력들이 정치적 10년 야당의 경험을 약으로 삼아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지난 재보선 과정에서 야권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려 노력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사지(死地)라던 분당에 몸을 던졌고 승리했다. 또 야권연대를 내세워 전국에서 기세를 올렸다. 이젠 선거 승리를 기회로 아주 야권 연합을 도모하려는 분위기다.지금 한나라당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하라는 선사의 가르침이 절실한 때다. 환골탈태할 그야말로 호기를 잡았다는데서 그렇다. 그것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타나고 안상수 대표 체제가 출범 1년도 못 넘기고 비상대책위에 당권을 넘겨주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건 시작이어야 한다. 내용은 그대로 두고 표지만 바뀌는 잡지라면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망망대해를 항해하던 배가 난파됐다. 그 난파선에서 한 사내가 용케 탈출해 널빤지를 타고 표류하다 무인도에 상륙했다. 그런데 그가 섬에서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사이 이번엔 그의 생명줄이었던 널빤지마저 불이 나 타버린 것이다. 낙담하고 있을 때 멀리서 배가 들어 왔다. 불이 나자 연기를 보고 무인도에 표류한 남자를 발견한 것이다.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내딛는 자세, 몸을 던지는 그런 자세만이 국민의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얼마나 참신한 새얼굴이 등장할 것인지, 그것이 강재섭 효과로 이어지는 길이다. 느닷없이 선거 때면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해서도, 추억의 그 얼굴이 다시 나타나서도 국민들은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표지만 바뀌는 잡지에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2011-05-09

빈 의자의 슬픔

필자는 수년 전에 북유럽 5개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러시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중에 가장 감명깊은 방문지는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였다. 여러날 피요르드(빙산이 녹아 내린 강)와 세계 5대 미항중 하나인 베르겐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여행의 단맛을 한참 느끼고 있던 무렵이었다. 모든 인류의 꿈의 무대인 노벨상 시상이 거행되는 현장을 가 보았다. 시상대에 올라 기념 사진도 찍고 식장 내부도 둘러 보면서 정말 위대한 인물이 된양 그 분위기마저 숙연한 곳이었다. 2011년 11월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되었지만 진작 주인공인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었다. 노벨위원회는 중국에 항의하는 뜻에서 두 개의 빈 의자를 놓고 시상식을 거행한 것이 전세계에 중계되었다. 가족의 대리 수상도 허락하지 않은 중국 정부의 비난이 지구촌을 흔들고 있었다. 32년전 중국 개혁개방의 문을 연 등소평은 “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라”했지만 지금 중국은 패권주의적 자만에 빠져 나라들 사이에 금이 가고 있다. 중국은 류씨의 노벨 평하상 수상을 계기로 인터넷 검열과 민주화인사 탄압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은 과연 이런 중국과 상생할 수 있을 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2시간 동안 거행된 시상식 행사에 금메달과 증서를 그의 빈 의자에 올려 놓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중국이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로 인권 탄압을 계속한다면 중국의 장래에는 결코 희망이 없다. 세계의 민주 진영은 힘을 합해 일당 독재와 부패, 국수주의와 오만으로 똘똘뭉친 `중국의 세기`를 거부할 것이다. 야글란 위원장은 시상식 연설에서 류씨는 “단지 자신의 공민권을 행사했을 뿐”이므로 곧 석방돼야 한다말에 기립박수가 있었다고 한다./손경호(수필가)

2011-05-09

문경찻사발축제 63만명 관람

【문경】 `찻사발에 담긴 천년사랑`이란 주제로 지난달 3일 개막한 `2011 문경전통찻사발축제`가 8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우수축제인 2011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문경새재 제1관문과 오픈세트장에서 지난달 30일부터 8일까지 9일 동안 열렸다.문경시는 문경새재 일원에서 열린 이번 축제에 모두 63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고 밝혔다. 축제 초반에 비가 탓인지 지난해 관람객 72만명 보다는 다소 줄었다.문경시는 축제 기간에 도자기 판매수입을 포함한 판매수익이 14억원에 이르고, 관광홍보나 농산물판매 홍보 등의 간접 경제효과까지 더하면 경제효과가 모두 1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축제추진위원회는 올해 문경새재1관문 뒤쪽에 부스를 모아 동선을 줄였고, 전통 도예작가 33명이 모두 참여토록 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문경전통발물레경진대회와 올해 처음 마련된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흙을 고르는 과정인 괭물만들기 체험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발물레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영남요 김경식씨와 우수상을 받은 도광요 김경선씨는 시상금 200만원과 100만원을 모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놨고, 문경지역 전통도예인 33명도 복찻잔 판매전 수익금 1천만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증했다.문경시와 축제추진위는 다만 매년 관람객이 줄면서 경제효과도 떨어져 이를 개선해야 할 과제로 삼고 있다.문경시 고대용 관광진흥과장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축제장이란 평가를 받았고 미비점을 보완해 더 나은 축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올해로 13회째를 맞는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찻사발 공모대전을 국제 찻사발 공모대전으로 확대하고, 국제 교류전에 참가한 작가들과의 만남의 시간인 국제 도자기 워크숍, 문경전통 도자기의 비밀인 망댕이가마를 전시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망댕이가마 속 체험을 신설했다.또 지난해 전국 최초로 시작한 문경전통발물레 경진대회가 일반부까지 확대돼 1일 대학부, 7일 일반부 대회가 개최된다.또 세트장에서 펼쳐지는 문화퍼포먼스도 관람객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내실화하고 찻사발국제교류전과 문경전통도자기 명품전, 명장전, 어린이 도공전, 찻사발 깜짝경매, 선조도공 추모제, 마당극 심청전, 망댕이가마 불지피기 및 도자기 빚기를 비롯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신승식기자 shinss@kbmaeil.com

2011-05-09

`농가월령` 유감(有感)

김시종시인태촌 고상안 선생은 함창현 왕태리(현 문경시 산양면 왕태리)에서 명종 8년(1553년) 태어나고 만 23세때인 1576년 문과 병과에 급제해 선산향교 훈도로 관계(官界)에 첫 발을 내디디셨다. 당시 과거 대과 급제 평균연령이 34세였는데 보통 선비들보다 10년이나 빨리 과거에 올랐다. 영남의 거유일 뿐 아니라 조선 유학자로서 율곡과 쌍벽을 이룬 이퇴계 선생도 34세에 문과를 급제했었다. 소년시절부터 문재가 드러난 태촌 선생은 고지식한 구루한 선비가 아니라 유머가 있는 인간성이 좋은 선비였다. 현감·군수·판관으로 다섯 고을을 역임했다. 함창현감·함양군수·울산판관 등 들과 산과 바다가 있는 고을에서 두루 고을살이를 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유능한 관료였다. 중앙의 관직으로 인사관(人事官)인 정랑(정5품직)도 거쳤다. 중급관리로 퇴임한 뒤 저작에 유념해 `농가월령`과 에세이집격인 `효빈잡기`를 지었다. 태촌 선생의 `농가월령`은 다산의 아들 정학유가 지었다는 `농가월령가`보다 200년을 앞서 지었다. `농가월령`은 일년을 24절기로 나눠 절기때마다 농사에 유의해야 할 사항을 간결하게 적어놓아 한문을 아는 유농들은 한번만 읽으면 곧바로 알도록 해놓았다. 태촌선생도 고을수령으로 농업장려, 조세관장, 학문진흥(향교)의 고유업무네 충실했기 때문에 `농가월령`을 요령있게 집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태촌선생의 문집이 소중한 것은 사후 곧 바로 상재된 것이 아니라 그분의 후손들이 19세기말 고종 때 선조의 유고집을 안잊고 펴내어 더욱 소중한 유고집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효빈잡기`는 요사이 시각으로 봐도 재미가 쏠쏠하고 삶의 지혜가 넘쳐난다. 불교의 환생설을 재미있게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사람이 개를 죽이면 개로 태어나고 소를 죽이면 소로 태어난다는데 그러면 사람을 죽이면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아니냐는 물음은 간단한 우스갯말 같지만 환생설의 허구성을 예리하게 찌르고 있다.특히 태촌 선생의 `효빈잡기`에는 이순신에 대한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서 이순신 장군을 가까이에서 보고 적은 이야기는 인간 이순신을 이해하는데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유일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선조(1576년)때 태촌 고상안 선생은 문과 병과에 급제했고 태촌 보다 여덟살 위인 이순신 장군은 그해 32세로 무과 병과에 올랐다. 비록 문과와 무과로 부문은 달랐지만 조선시대는 양반사회로 문반과 무반이 양대산맥을 이뤘다. 같은 해 과거에 합격했기에 자주 모임에서 마주쳤다. 태촌은 이순신이 급제 초기부터 훌륭한 장수감임을 파악하고 이순신의 비범한 담론을 놓치지 않았다. 이순신은 탁월한 장수감임에도 얼굴생김은 복상(福相)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적었다. 위로 벌어진 입술이 허해 보였던 모양이다. 이순신은 아무리 좋게봐도 얼굴에 복이 없어 보여 죄도 없이 모함으로 파직돼 옥고를 치르고 백의종군 경력도 두 차례나 있고 마지막 해전인 노량전투에서 왜적의 흉탄을 맞고 전사했지만 죽기전에 아들에게 전쟁마무리를 잘 부탁해 살아있는 소서행장이 죽은 이순신 장군에 겨 36계 줄행랑을 놓고 임란은 조선의 승리로 마무리를 했다. 태촌은 이순신 장군이 최후를 맞으면서도 뒷마무리를 잘해 임금과 국가에 충성을 다했다고 기록했다. 태촌 선생은 `원균`수사와 `이억기`수사도 가까이에서 잘 관찰하고 사람됨됨이를 예리하게 평가하고 이통제사(이순신)의 잽이 아님을 극명하게 밝혀놓았다. 태촌 선생 문집을 발간하는데 출판비 전액을 쾌척한 문경시청의 쾌거가 모처럼 돋보인다. 문경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을 사는 이 땅의 국민들에게 태촌 선생의 문집 `농가월령`을 일독(一讀) 하시기를 간절히 권유한다.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24세가 고작인데 태촌 고상안 선생은 71세 까지 수를 누리셨고 문관·학자·의병장으로 창조적인 삶을 사셨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2011-05-06

봉화군, 국가예산 확보 `올인`

【봉화】 봉화군이 현안사업을 조기 해결하고 활기찬 봉화 건설을 위해 내년도 정부예산 확보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군은 5월 4일 군청 소회의실에서 2012년 국가지원사업 확보를 위한 부서별 추진계획 보고회를 했다.군은 국가지원 예산확보 목표를 47건에 4천208억 원으로 설정하고 주요 사업별 국비확보 전략을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내년 국비가 소요되는 주요사업은 국가 직접시행사업인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조성사업에 941억 원, 국도 36·35호선 등 지역 간 거점도로 확·포장사업에 2천611억 원을 비롯해 총 5건에 3천552억 원을 신청할 계획이다.또한 군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광역 친환경농업단지 조성사업에 3억 원, 봉성면 소재지 종합정비 10억 원, 한약우권역 종합정비사업 9억 원, 세계 유교·선비문화공원 조성에 81억 원, 누·정휴 문화 누리사업 106억 원, 유곡 농공단지 조성사업에 27억 원, 봉화 상설시장 현대화사업 17억 원 등 총 42건 656억 원이다.군은 올해 초부터 국비 예산확보를 위해 부서별로 주요 핵심사업에 대한 추진계획 수립과 신규 사업을 발굴, 관련부처를 방문해 사업 설명을 하는 등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특히, 박노욱 군수는 행정안전부와 농림수산식품부, 여성가족부, 산림청 등 중앙부처를 수시로 방문해 지역 현안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력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또 5월 말 국비신청 마감을 앞두고 중점관리 대상사업에 대한 추진상황과 국비 확보대책을 수시 점검해 추진 단계별로 체계적이고 치밀한 대응전략을 지시하고 있다.박노욱 군수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 입장에서는 국가예산의 확보가 지역발전의 밑거름인 만큼 중앙의 관련부처를 수시 방문해 지역 현안사업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등 국비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방유수기자

2011-05-06

당신을 잊지 못합니다

의(義)를 위해서 죽음을 택한 사람을 의사자(義死者)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목숨을 희생해 인(仁)을 이룬다는 뜻으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도 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 자기의 목숨이 귀하고 천하하고도 안 바꿔 준다는 것이 생명이다. 우리 보다 일본사람들의 가슴속에 장한 인물로 칭송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10년 전 동경 전철역에서 술취해 선로에 추락한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청년은 한국 유학생이었다. 그 당시 26세의 청년은 대학교 4학년 이었다. 꽃다운 나이에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땅으로 공부하러 갔으나 참혹한 비극의 희생자였다. 아직도 일본인들은 한국의 의사 이수현을 잊지 못하고 있다. 신념과 용기를 가진 숭고한 정신이 일본인의 한국관(觀)을 크게 뒤바꿔 놓았고 `한류 붐`의 바탕이 됐다고 한다. 기일 마다 일본 단체가 이씨의 부모를 초청해 함께 추모식에 모셨으며 기부자 1만명이 넘는 기금으로 그동안 485명의 유학생이 이수현 장학금을 통해 공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잊지 않을거야, 언제까지 나`란 노래도 지어 추모식을 더욱 슬프게 했다는 사연이다. 한 젊은이의 빛나고도 거룩한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의 종은 울리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서도 희생하기가 어려운데 더욱이 타국인을 위한 존귀스러운 희생, 정말 가슴이 뜨거워진다. 신약성서에도 “벗을 위해 제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한 것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도 “죽음의 공포보다 강한 것은 사랑의 감정이다. 수영 못하는 아버지가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물에 뛰어든 것은 사랑의 감정이 시킨 것이다. 사랑은 나 이외의 사람에 대한 행복을 위해서 발로되는 것이다. 인생에는 허다한 모습이 있지마는 그것을 해결할 길은 오직 사랑 뿐이다. “사랑은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약하고 남을 위해서는 만물도 희생한다”고 한 것이다. 희생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거룩한 행동이다. /손경호(수필가)

2011-05-06

경북사회복귀시설협회 연합체육대회

정신장애인·종사자 `소통 한마당` 【칠곡】 “장애우는 우리의 벗이며 이웃입니다. 사회적 편견이 없는 아름다운 사회, 우리 모두의 인식개선이 필요합니다”제8회 경북사회복귀시설협회 연합체육대회가 지난 4일 경북과학대학의 후원으로 16개 기관에서 3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학 체육관에서 열렸다.사진이번 행사를 위해 경북과학대학 도정기 총장과 장세호 군수, 곽경호 의장, 경북사회복귀시설협회 노봉근 회장, 고신 의료재단 정시몬 이사장, 칠곡군 사회복귀시설(소중한 사람들) 정석현 소장 등 관계자 30명이 함께했다.올해로 8회째를 맞이한 경북사회복귀시설협회의 연합체육대회는 경북도 관내에 있는 정신장애인사회복귀시설 간의 화합과 연대의 장으로 정신장애인 및 종사자 간의 소통을 목적으로 마련됐으며, 이날 재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교류도 함께 공유했다.개회사에서 정석현 소장은 “우리는 모두 하면 된다는 내면의 자신감이 필요하다. 언제나 당당한 자세로 사회복귀의 꿈을 키우기 바란다”며 소감을 밝혔으며, 경북과학대학 도정기 총장은 “지역사회 연계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갈 것이며, 정신보건사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특히, 사회복지계열 이종춘 교수는“지역의 사회복귀시설과 연계한 교육프로그램운영과 재활에 필요한 인력 및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는 우리 학교는 앞으로 재학생들의 현장견학과 실습, 그리고 자원봉사를 통해 지역에도 취업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한편, 경북과학대학의 보건ㆍ복지 분야의 학과로는 사회복지계열, 노인요양관리과, 간호과, 병원 의료경영 계열이 있으며, 사회복지분야의 발전을 위해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과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김용호기자 kim112@kbmaeil.com

2011-05-06

김기림과 임화의 선택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김기림과 임화는 모두 1908년생이다. 두 사람 모두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에 문학비평활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시인으로도 활약했다. 특히 1939년, 1940년에는 임화가 세운 학예사라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위기에 빠진 당대 한국문학의 생명 유지를 위해 협력을 펼치는 등 두 사람은 서로 문학 경향이 다른 사람들임에도 가까운 사이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사람의 행로가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다. 해방이 되자 두 사람은 문학가동맹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다시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김기림은 모더니즘 비평가이고 임화는 리얼리즘 비평가라는 점에서 이것은 해석을 요하는 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러나 남로당이 불법화되고 3·8선이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김기림은 고향이 함경북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남는 길을 선택했던 반면, 임화는 전직 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서기장`답게` 고향이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월북을 단행했던 것이다.두 사람 모두 6·25전쟁 과정에서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 김기림은 전쟁 과정에서 행방불명되었는데 필자가 읽은 책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느 쪽인지 몰라도 폭격에 의해 숨졌다고 한 것으로 기억된다. 책을 다시 확인해 본 것은 아니라서 다소 불확실하기는 하다. 임화의 최후는 잘 알려져 있는데 남로당 당수였던 박헌영 등과 함께 김일성 정권에 의해 미 제국주의의 첩자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다.두 사람의 삶은 모두 전쟁 이후까지 지속되지 못했지만, 필자는 두 사람의 선택에서 어떤 의미심장한 요소를 발견하곤 한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문학적인 협력 관계를 지속해 온 두 사람이 체제선택에서는 왜 그렇게 달랐던 것일까? 또 그렇다면 어느 쪽의 선택이 올바랐던 것일까?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먼저 답해 보면 물론 김기림 쪽이 맞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미래를 점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 공간 때 친일파가 득세하고 이승만 정권의 테러 정치가 판을 쳤던 남쪽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은 민주주의 및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반면에 북쪽은 어떤가. 지금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이라는 손자 권력 세습까지 기도하고 있는 형편 아닌가. 그곳에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기초적인 생존마저 위협받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기아와 궁핍과 인권유린이 지금 북한의 현주소라 해도 틀릴 것 없지 않은가.그렇다면 두 사람은 왜 다른 선택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문명에 대한 전망 또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김기림은 기본적으로 서양문명에 대한 관심에서 비평활동과 시 창작 활동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임화는 반면에 KAPF 활동을 주도했던 데서 나타나듯이 처음에는 다다이즘 같은 데 경사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회주의라는 것은 마르크스에서 엥겔스를 지나 레닌을 통과한 후 스탈린에 귀착되는 이른바 `정통 마르크시즘`이었다.이 정통 마르크시즘은 소련에서는 스탈린주의, 중국에서는 마오주의, 북한에서는 김일성주의 등으로 변형되는데, 그 공통점은 `동양적` 전제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상이라는 것이다. 소련 제국과 중국 제국에서 이 마르크스 사상은 한결 더 독재적이고 전제적인 사상으로 가공되었다. 이 사상은 이질적인 사상적 요소를 받아들이지 않는 닫힌 체계였고 자신만을 정통이라고 믿는 교조적 체계였다. 임화는 일제 말기에 이 전제적 마르크시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상을 발명할 수 없었고 그 결과는 해방 후 월북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김기림이나 임화나 다 중요한 비평가였고 문학사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러나 김기림이 서양을 보았던 것과 달리 임화는 `동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필자는 지금 이것이 매우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이 동양의 일부다. 그러나 한국의 미래는 서양을 바라보는 데 있다. 동양이면서 서양을 바라봄으로써만 우리는 혼합적인 문화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이 물음을 다시 잠깐 변형시켜 보겠다. 한국은 미국을 중시해야 하는가 중국을 중시해야 하는가. 다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을 바라보기를 멈춘다면 우리의 미래는 위태로워질 것이다.

201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