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통령으로 뽑았는데 재벌과 대기업만 좋아지고 서민 살림살이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불만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특히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자부심으로 부풀었던 대구경북 지역은 그러나 아무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는 배신감으로 바뀌고 있다. 중앙에 진출해 있는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폼 잡고 기세를 올렸는지 몰라도 지역에는 그 물이 넘쳐흐르지 않았다는 불평이다.
지역에서 여론이 심상찮게 흐르자 `형님`이 나섰다. 그렇잖아도 형님예산으로 야당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은 이상득 의원이다. 이 의원은 지역출신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TK(대구·경북) 피가 흐른다”고 했다가 우군으로부터도 “대통령과 당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힐난을 들어야 했다. 이날 이 의원은 `2007년에 4천억원이었던 대구 예산이 2011년 4조원에 가깝고, 2007년에 2조원이었던 경북 예산은 2011년 7조원에 가깝다`며 이 점을 인정해 달라고 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재보선에서 야당에 텃밭을 내주었다. 분당은 여당이 늘 70%대의 지지를 받던 곳이고 후보도 대구에서 내리 5선을 한 강재섭 전 당 대표를 내보냈다. 강원도에서는 계속 앞서가던 엄기영 후보가 막판 발목을 잡혔다. 물론 후보 선출과 선거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지만 이명박 약효의 유효기간이 지나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분당과 강원의 한나라당 패배와 김해을의 김태호 후보 선택으로 민심이 어디 있는지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환골탈태하라는 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강재섭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민심을 따르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얼굴을 바꾸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보수 세력들이 정치적 10년 야당의 경험을 약으로 삼아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지난 재보선 과정에서 야권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려 노력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사지(死地)라던 분당에 몸을 던졌고 승리했다. 또 야권연대를 내세워 전국에서 기세를 올렸다. 이젠 선거 승리를 기회로 아주 야권 연합을 도모하려는 분위기다.
지금 한나라당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하라는 선사의 가르침이 절실한 때다. 환골탈태할 그야말로 호기를 잡았다는데서 그렇다. 그것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타나고 안상수 대표 체제가 출범 1년도 못 넘기고 비상대책위에 당권을 넘겨주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건 시작이어야 한다. 내용은 그대로 두고 표지만 바뀌는 잡지라면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배가 난파됐다. 그 난파선에서 한 사내가 용케 탈출해 널빤지를 타고 표류하다 무인도에 상륙했다. 그런데 그가 섬에서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사이 이번엔 그의 생명줄이었던 널빤지마저 불이 나 타버린 것이다. 낙담하고 있을 때 멀리서 배가 들어 왔다. 불이 나자 연기를 보고 무인도에 표류한 남자를 발견한 것이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내딛는 자세, 몸을 던지는 그런 자세만이 국민의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얼마나 참신한 새얼굴이 등장할 것인지, 그것이 강재섭 효과로 이어지는 길이다. 느닷없이 선거 때면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해서도, 추억의 그 얼굴이 다시 나타나서도 국민들은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표지만 바뀌는 잡지에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