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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황토방에 불 때고

윤영대수필가새해가 밝았다. 신축년 소띠 해다. ‘신(辛)’은 흰색, 그러니까 올해는 ‘흰 소의 해’이다. 사실 띠로 말하는 음력 새해 즉, 설날은 아직도 한 달 열흘가량이 남았으나 양력을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소는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우직하기도 하다. 어떤 힘든 일도 순종하며 참을성 있게 묵묵히 해내는 소. 그러나 한번 성나면 주인이 와도 못 말린다. 지난 쥐띠 해는 쥐새끼들이 날뛰듯 코로나 세균이 설치고 세상이 시끄러워 평온한 일상이 뒤틀려 버렸지만 올해는 소의 성실함으로 나라 안팎이 평정을 되찾기를 빌어본다.매년 새해 첫날은 일출을 보러 간다. 먼동이 트는 새벽녘 영일대 해수욕장과 호미곶으로 달려가곤 했지만, 올해는 이들 주요 해맞이 장소가 모두 폐쇄되었다. 12월 마지막 날 저녁에 영일대 바닷가에 가보았더니 빨간 출입금지 줄이 길게 둘러져 있었다. 신년행사는 취소되고 거리는 한산했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새해의 안녕을 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할 수 없이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엇비껴 들어오는 첫 태양의 난반사를 볼 수밖에 없었다. 또 새해의 시작에 즐기는 일은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이 또한 온라인 행사로 텅 빈 종각 영상에 종소리만 울릴 뿐 새해의 복을 비는 군중의 함성은 없었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가 처음 알려진 것이 벌써 1년째, 전 세계로 번진 역병은 걷잡을 수 없이 혼돈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코로노믹스라는 새로운 경제계의 팬데믹은 얼마나 갈는지…. 내 마음속의 맑은 종을 울리며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펼쳐질 것을 기대해 본다.새해 첫날 시골집 황토방에 군불을 때고 뜨뜻한 방구들에 엎드려서 이 글을 쓴다. 밖에는 하얀 첫눈이 내리고 있다. 불을 지피니 잘 안 타고 연기가 아궁이 밖으로 밀려 나오기에 오랫동안 굴뚝 청소를 하지 않은 탓이려니 하고 연통을 뽑아보니 밑둥이 꽉 막혀있다. 뭉쳐 있는 그을음을 털어냈더니 시원하게 불길을 잘 빨아들여 방이 금방 뜨거워진다. 우리 일상도 무관심하게 오래 지나다 보면 어떤 어려움이 뭉쳐져 있는지를 잘 모른다. 한 번씩 살펴보면서 고쳐나가야 한다. 올해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연말부터 카톡과 문자로 지인들과 옛 제자들로부터 고마운 연하 인사를 전해온다. 격리된 느낌의 한 해를 견뎌온 외로움을 따뜻이 풀어주는 고마운 글들이다. 나도 간단히 그린 연하장에 덕담을 쓰고 휴대폰 사진으로 담아 감사의 답장을 보내고 있다. 올 신축년에는 역병이 사라지고 웃음이 넘치는 일상으로 되돌아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새 달력도 걸었다. 황토방의 열기를 배에 깔고 1년의 계획을 적어본다. 평범한 일상 속에 특별난 것은 없다. 문화원의 새로운 과목을 들어볼까도 하고, 국내 여행과 산행 코스도 몇 개 잡아두었다. 해외여행도 계획해 보지만 코로나 확산 속에 실현될지 의문이다. 가진 것들을 정리하며 건강생활과 자기성찰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뜻이 ‘마음먹고 한 일이 사흘도 못간다’는 말인지 ‘마음먹는 일에 사흘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나는 뒤의 뜻으로 받아들여 작심하고 올해의 계획을 세워보고자 한다.근하신년 첫날, 마당엔 흰눈이 쌓이고 있다.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

2021-01-03

전직 대통령 사면론… ‘정략’ 불순물부터 제거를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새해 첫날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카드를 메가톤급 뉴스로 써먹었다. 카드는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연말에 에드벌룬을 띄우고, 이낙연 대표가 기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답변하는 형태로 튀어나왔다. 이 대표의 한마디에 민주당 안팎이 시끄럽고, 야당 또한 헛갈리는 표정이 역력하다. ‘국민통합’을 위한 사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정략’이라는 불순물부터 제거하지 않는 한 국정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을 것이다.이 대표는 1일 오전 현충원 참배 이후 취재진에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특히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서 건의하려고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우선 여권 내부에서부터 즉각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 극성 친문 지지층에서는 “이낙연은 당 대표를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라”는 격렬한 반응마저 나오는 판이다. 정청래·박주민 의원, 김남국 의원 등도 비판대열에 나섰다.중요한 문제는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면론이 다분히 정략적이라는 대목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논란은 범야권에서 여전히 내연하는 핫이슈다. 이 대표가 던진 사면 카드는 얼마 전 두 대통령의 사법처리에 대해서 공식 사죄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를 흔들려는 의도가 선연하다. 당장 범야권은 복잡미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김종인 국민의힘 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은 신중한 반응을 취했지만, 보수진영 인사들 사이에선 환영 입장이 나왔다. 민주당이 앞으로 이 약한 고리를 물고 흔들어댈 개연성이 높다. “아직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사면에 극구 반대하는 친문 극렬 지지층의 목소리를 살펴보면, 사면을 전제로 두 전직 대통령을 향해 항복선언을 받겠다는 모진 공세가 이어질 공산도 없지 않다. ‘정략투성이’ 사면론이 아닌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국민통합’ 소원과 맞닿은, 인간적인 측면의 사면 단행이 필요하다. 연로한 두 전직 대통령의 계속되는 영어(囹圄)는 이 나라 헌정의 흑역사요, 국제적 망신살이다.

2021-01-03

‘레임덕’이 보인다

안재휘 논설위원‘레임덕(lame duck)’은 임기 만료를 앞둔 공직자의 통치력 저하를 기우뚱거리며 걷는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권력 누수 현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국가와 국민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다.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접어들면서 ‘레임덕’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집권 4년 동안의 초라한 성적표가 드러나고, 무리한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로 민심을 크게 잃은 끝에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연말연시 개각과 청와대 비서진 교체는 흔들리는 국정 장악력을 다잡기 위한 안간힘 승부수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임덕’ 현상은 시시각각 다가와 이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윤석열 징계 전쟁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간접적일망정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집권 여당 의원들 사이에는 ‘윤석열 탄핵’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2개월 정직도 관철 못 시킨 검찰총장 찍어내기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주로 친문계(친 문재인계) 정치인들이 딴소리를 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충성심의 발로’라는 분석은 순진한 해석이다. 어디까지나 내리막길 대통령보다도 자기 정치가 더 중요해진 얄팍한 정치꾼들의 ‘레임덕’ 일탈로 보는 게 맞다. 1천 명을 헤아리는 재소자들이 무더기로 확진된 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감염 문제는 또 어떤가. 추미애 장관의 부실관리를 포함해서 영락없는 ‘레임덕’ 현상이다. 대통령의 제1 자랑거리인 ‘K-방역’을 국제적 망신거리로 만든 참사 아닌가.정초에 이낙연 대표가 터트린 ‘이명박-박근혜 사면론’ 메가톤급 뉴스도 그렇다. 국정 통수권자의 고유권한에 관련된 언급인 만큼 문 대통령과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이 심지어는 이 대표를 향해 대놓고 “탈당하라”고 을러댄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꾼들의 ‘레임덕’ 현상 말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위태로워진 나라와 민생의 형편을 생각하면 ‘레임덕’ 현상은 결단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선택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정책을 다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민생과 관련된 정책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탈원전’을 포함한 이미 실패가 확인된 정책들을 필두로 현실에 맞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필요하다.또 하나는 ‘불통’ 해소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는 ‘국민과의 대화’를 포함해 고작 6회밖에 되지 않는다. 지독한 ‘불통’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5회보다 고작 1회 더 많다. 이명박 대통령도 20회의 기자회견을 기록했다. 생색낼 일이 있을 때 ‘쇼통’만 추구해온 이 정권의 ‘소통방식’은 완전히 구닥다리 행태다. 이런 ‘불통’ 고질이 ‘제왕적’ 대통령에서 ‘황제적’ 대통령으로 역주행했다고 지탄받는 이유다. 기회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

2021-01-03

새해 최대 지상과제는 코로나 탈출이다

지난해는 코로나19의 악몽에 지친 한해였다. 2021년 새해가 밝았지만 모두의 머릿속은 아직도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두렵고 불편한 긴 터널은 새해에도 여전히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지난 1년동안 국내서는 6만1천여명의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으며, 9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이로 인해 숨졌다. 대구와 경북서도 코로나 감염자가 1만명을 넘었으며 261명이 목숨을 잃었다.새해 첫날부터 코로나19 감염자는 여전히 줄지 않았다. 정부도 이런 추세를 감안,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17일까지 또다시 연장했다. 작년 12월8일부터 시작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늘로써 28일째 진행 중이며 17일이면 41일간 실시되는 셈이다.이 바람에 손님을 맞이해야 할 업소들이 연말연시 특수는커녕 온전한 된서리를 맞고 있다. 그야말로 문을 닫아야 할 벼랑 끝 위기에 봉착했다.나라 경제 사정도 마찬가지다. 사면초가다. 경제성장율이 22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는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겨왔던 업체들도 올해는 장담할 수가 없다고 아우성이다.올해로서 집권 5년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더 막중해졌다. 위기를 돌파할 국가적 동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어느 나락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다. 국민들의 걱정도 온통 경제에 쏠려 있다.외국에 비해 늦은 백신접종을 최대한 서둘러야 경제회복도 앞당길 수 있다. 또 영국발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데도 총력을 쏟아야 한다. 변이 바이러스가 덮치는 설상가상의 사태는 없어야 한다.대구와 경북도 넘어야 할 과제가 태산 같다. 코로나 극복이라는 막중한 임무와 더불어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안착을 위한 후속 조치 등 서둘러 가야 할 지역 현안이 많다.지난해는 코로나 극복을 위한 지역민의 단결된 공동체 정신이 빛났던 한해였다. 올해도 대구경북민의 높은 시민의식으로 코로나 위기를 잘 이겨내야 한다. 복잡한 지역 현안을 푸는 지역 지도자와 정치권의 슬기로운 지혜도 필요하다. 올해의 지상 최대과제는 코로나 탈출이다.

2021-01-03

황소처럼

옛날부터 소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옥수수를 신의 작물이라고 하면 소는 신의 가축에 비견된다. 짐을 운반하거나 농사를 지을 때는 필수적으로 소의 힘을 빌린다. 고기나 젖은 식용으로 사용되고, 가죽과 뿔은 다른 용도로 이용한다. 오래전부터 소는 지역공동체의 공동재산이자 가장 값비싼 자산이었다.소는 덩치가 크면서 힘이 세고 일을 열심히 해 황소하면 일의 상징처럼 인식된다. “우직한 소가 만리 간다”는 우보만리(牛步萬里)는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소의 성질은 보통 온순하나 한번 성질이 나면 아무도 못 말린다. 맹수인 호랑이도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받는다. 몹시 고집이 센 사람을 우리는 황소고집이라 부른다. 스페인에서는 소를 거칠게 키워 투우를 시키기도 한다.소는 아주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해 와 인류 역사에서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힌두교에서는 신성시 하기도 하지만 동물답지 않은 소의 믿음직한 행동이 사람과의 신뢰도를 오랫동안 유지하게 한 것이다.경북에는 두 곳에 의우총이 있다.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와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에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의로운 소를 기리기 위한 소 무덤이 있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호랑이와 맞서 싸운 소와 주인이 돌아가자 산소에 제발로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는 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신축년 새해는 소의 해다. 소가 인류와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소의 유용성과 사람과 유지된 특수한 친밀감이다.새해는 주인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하는 황소처럼 우리의 정치도 아집을 버리고 헌신과 봉사의 정신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03

서명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 생각하면 모든 게 허망하다는 생각 떨쳐 버리기 힘들다.정의라는 말은 이제 정의가 아닌 것을 가리키는 말, 어느 패를 지지하는 용어가 되었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것은 무슨 민정당 시절 어법 같은 느낌을 준다.진보라는 말처럼 터무니 없는 표어는 없다. 자유 없는 땅의 인권조차 문제 삼지 않는 진보가 무슨 진보며 유토피아란 말이냐.애국이란 말처럼 쉽게 더럽혀지는 말도 없다. 옛날에는 애국학생이란 말이 그렇게도 유행했다. 요즘에는 애국시민, 애국보수 등으로 말이 새끼를 쳤다. 서로 다른 극은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다.시절이 이렇다 보니, 서명처럼 부질없는 행위도 없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654라는 숫자를 인터넷 화면에서 발견한다. 성직자들도, 교수들도 이 진흙탕 싸움에 이름을 걸었댔다. 이번에는 작가들이다.지금 벌어지는 일에 무슨 근본적인, 중차대한 함의가 있었던가를 다시 생각한다. 어딘가를 개혁하는 일이 그렇게도 중요한 일이었던가. 다른 한편에서는 문제가 거기 있지 않다고들 난리가 났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치부를 가리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일단 벌이는 모양부터 안 좋다고들도 한다.지난 정부 때 억울했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날 SBS 8시 뉴스에 내 이름이 버젓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이름하여, 제주 미 해군기지 건설 반대, 성주 사드 배치에 반대 등에 서명을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내 손에 장을 지져야겠다. 나는 미국이며 중국의 국제 군사전략 같은 것을 둘러싸고 어떤 의사도 표명해 본적 없다. 하물며 서명이라니 말이다.뭔가 불온해 보이는 자를 처리하는 방법일 것이다. 옛날에 작가 이상은 일본에 갔다 거기서 불령선인으로 몰렸다. 경찰에 잡혀 들어가 차가운 유치장에 갇혀 죽게 되어서야 풀려났다. 그가 세상 떠날 때 병원에서 결핵성 뇌매독이라 판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령선인에게 억지로 뒤집어씌운 병명일 가능성이 높다.이름은 귀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돈화의 ‘천도교 창건사’에 동학 때 일어난 사람들 이름이 몇 장에 걸쳐 빼곡하게 적혀 있다. 오로지 이름 석 자가 그네들의 삶과 투쟁과 죽음을 대변할 뿐이다. 거기 그 책에 그네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이다.작가는 저마다 자기 한 세상을 여는 사람이다. 남의 세상 여는 데 따라다니는 사람도 아니요, 시간 지나면 헛될 싸움에 매달릴 것도 아니다.왜들 말리지 않는지? 힘든 백성들 지치고 병들어 가는 그 모든 것 다 안 보고 무엇에 매달려 싸움을 벌이는지?남정현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부고. 인생은 덧없고 작가로 살기 어렵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2-30

책 읽는 여자

책이 없었다면 여성들의 삶이 어땠을까요? 역사 이래 억눌렸던 여성 삶의 진일보를 그나마 담보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가정에 독일 작가 슈테판 볼만이 명쾌한 답을 선사합니다. 작가는 우선, 한 때 여성의 독서가 지극히 위태로운 것으로 취급받던 시대가 있었음을 고찰합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선언한 시대가 있었음을 책 제목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근대 이전의 유럽 여성들이 처한 상황이 그랬습니다. 세상에 대한 대범한 호기심을 갖는 일, 여성들에게 그것은 심히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고급한’ 사회는 남성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넘쳐나던 시대였지요.작가는 유럽의 명화 속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책 읽는 여자들을 불러냅니다. 동시대 밖으로 여성은 하녀이거나 안주인이거나 후작부인이거나 아주 가끔은 왕비이기도 합니다. 그림 속 여자들의 공통점은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지요. 신분에 관계없이, 책을 가까이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은 불온한 여자의 혐의가 짙었습니다. 남성의 거울로 비추어볼 때 그 시대 여성의 독서는 백해무익한 것이었으니까요. 세상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것은 남성 고유의 영역인데, 더 많은 유익한 것을 여성과 공유하는 것은 피곤한 일에 속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책 따위와는 여성이 멀리 있기를 바랐을 테지요.이것을 눈치 챈 여성들은 그들만의 독서 장소를 물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주인이 먼 길을 떠나기를 바라고, 읽을거리만 있다면 전장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하녀의 책읽기부터 볼까요. 장소라면 볕 잘 드는 다락방이 제격일 것입니다. 감질 나는 중세시대의 로맨스, 그 뒷장을 위해 그녀는 어서 빨리 주인이 집을 비우고 먼 길을 떠나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주인의 실내화도, 씻어야 할 물주전자도 읽어야 할 책보다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불온한 독서의 자유야말로 달콤한 휴식의 절정이 아니겠어요. 귀부인은 어땠을까요. 침실이 그녀의 독서실이 되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요. 높은 신분과 관계없이 여전히 여성에게 세속적이고도 낭만적인 내용의 책 읽기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방해꾼 없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근육을 한껏 이완한 채 그녀들은 독서가 주는 신세계의 광풍 속으로 빨려들 수 있었습니다. 공간적 은밀함이 책읽기의 나른하고도 무한한 상상에 보탬이 되었겠지요.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소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소수 엘리트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였지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지구촌에 팽배했습니다. 종교 서적을 제외하고는 여자가 독서를 한다는 것은 ‘천성’을 거스르는 행위였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습니다.김살로메 소설가자신만의 규방으로 내몰린 채, 여성들은 책의 향연에 정식으로 초대받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왜 초대받지 못했는지 알 겨를도 없이 그저 다락으로 침실로 창고로 내몰렸던 것이지요. 그곳에서 세상을 읽고 낭만적 유희를 꿈꿨습니다. 남성들이 볼 때 그것은 불온한 자각이었고, 음탕한 유희였지요. 정보를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그들 눈에는 용서하기 힘든 광경이었지요.그 시대로 돌아가 책 읽는 여자들 곁에 머물러 봅니다. 저 불온한 자유주의자들 저마다 가슴 속에 화약고 한 보따리씩을 안고 살았을 것이에요. 여성에게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구와 드넓은 우주 질서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왜 인정하지 못했을까요. 멀리 나갈 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 쾌락마저도 공유하지 못한 세상이었다니요.용감하게도 억누를수록 여성들은 유쾌한 고립행위 속으로 빠져들어갔지요. 남성이 전하는 말씀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독서야말로 세상과 소통하는 막힘없는 통풍구라는 것을 안 이상 물러설 수는 없지 않았겠어요. 숨어서 책 읽던 그 여자들이야말로 페미니스트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당연하게도 이제 여성에게 독서는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책 권하는 사회가 되었지요. 책 때문에 불온해진 만큼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진다면 그 보다 나은 독서의 진가가 어디 있을까요. 덜 불온한 여성일수록 더 상처받습니다. 상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에서 힘과 위안을 얻는다면 이 또한 독서의 효용이 아니겠어요. 과감하고 은밀한 독서일수록 그 파장은 큽니다. 책 읽기 좋은 나날, 과도한 휴머니즘이나 뻔한 교훈서, 오그라드는 미담 수준에서 벗어나 불온한 독서광이 되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상처 입은 영혼들이여, 유쾌한 고립의 여정을 떠납시다. 책 읽는 것이야말로 불온해서 종내는 매혹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니까요.끝

2020-12-30

지금은, 기원할 시간

정미영수필가한 해의 끝자락과 한 해의 첫자락을 알리는 접점에 있다. 12월 31일. 새해 달력을 넘기자 1월이 맑은 얼굴로 나를 반긴다. 매년 이맘때가 되어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면 분분히 떠나가 버린 시간과 만리장천을 건너가 버린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교차한다.신년 목표를 성실하게 세우리라 마음먹고 책상에 앉는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맞이’란 낱말이 달려오면서 내 몸과 마음을 들쑤성거린다. 첫 다짐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새해 첫날 해돋이를 바라봤을 때의 마음가짐을 품고 생활하는 것은 아닐 런지.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처음 마음먹었던 때를 되새기듯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새해 소망을 빌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마음이 추슬러지고 힘차게 분발하게 된다.새해 아침을 호미곶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기에 소원을 빌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해맞이 명소 중의 하나다. 나는 새벽 동이 트면서 빛줄기가 비출 때 제일 먼저 바닷가에 자리 잡고 경건한 마음으로 해돋이를 기다리려고 했다. 상생의 손 위로 물새들이 힘차게 날갯짓하며 비상하는 그 순간, 해오름에 흩뿌려지는 금빛가루를 맞으며 소망을 비는 내 모습이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호미곶에서의 해맞이 기원은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올해 새해 소원은 친정어머니처럼 정화수를 떠놓고 빌어야겠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이면 대접에 정화수를 받아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그 모습이 늘 한결같다. 주택에 살 때는 이른 새벽 장독대 위에 물을 놓고 식구들을 위해 기원했다. 지금은 아파트 생활을 하니 싱크대가 장독대 역할을 한다. 그 옛날 우물에서 길어온 물은 정수기물이 대신한다.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이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몸살이 나서 누워 있다가도, 모처럼 여행길에 올랐어도, 생수 한 사발을 떠놓았다.“엄마, 어쩜 그리 부지런해.”“물 한 그릇 떠놓는 게 뭐가 어렵노!”어머니는 나에게도 권한다. 내가 보기에 기도할 경건한 장소를 찾아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니 번거롭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손을 하지 못하고 있다.작년 여름, 어머니와 함께 휴가를 보냈다. 어느 바닷가 근처에 하늘을 지붕 삼아 텐트를 쳤다. 그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코펠 그릇에 물을 떠놓고 여행지에서의 안전을 빌었다.나는 조그마한 그릇 안을 들여다보았다. 손바닥만한 그곳에 파란 하늘이 들어 있고 흘러가는 구름이 잠시 머물러 있었다. 바람과 새가 드나들기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내가 무심코 보았던 어머니의 정화수는 생명을 담고 우주를 담고 있었다. 그냥 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믿음과 정성이 들어 있었다.어머니는 소원성취를 빈 물로 쌀을 안친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밥이라 친정에 들렀을 때 가끔 식사를 거르고 싶다가도 억지로 한 술 뜬다. 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면 역시 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내 평범한 행동 하나에도 어머니는 행복해 하고 특별한 의미를 둔다.어머니의 삶은 항상 식구들 위주다. 어머니의 촉각 더듬이 또한 항상 자식을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내 몸이 아플 때면 남편보다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뜨거운 것을 만질 때에도 ‘엄마’하고 소리 내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럴 것이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이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기도하시고,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눈물 흘리시는 어머니의 손. 나이가 들면서 여성은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서툴지만 비손을 하련다.신축년 새해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기원할 시간이다.

2020-12-30

‘검찰개혁’이라는 막장드라마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2020년 대한민국 정국은 일련의 막장드라마였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사고가 버라이어티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드라마의 표면상의 주제는 검찰개혁이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주연을 맡고, 그 안티히어로 격인 상대역은 윤석열 검찰총장이었다. 두 캐릭터의 등장 배경부터가 격렬한 갈등과 충돌을 예감케 한다. 거기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까지 겹쳐서 드라마 전편에 음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더했다.남자 주인공은 소위 ‘촛불혁명’이란 민중봉기에 고무된 검찰의 선봉장이 되어 대통령을 비롯한 전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모조리 법정에 세우는 공로를 인정받아 일약 검찰총장이 됐다.그는 임명하는 자리에서 살아있는 권력에도 비리가 있으면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의례적인 덕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현 정권의 실세들에게도 법의 칼끝을 들이대었다. 화들짝 놀란 대통령은 측근 실세인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여 검찰개혁을 구실로 제압하려 했으나, 하자가 많은 인물이라 야권과 여론의 거센 반발로 한 달여 만에 물러나고 만다. 후임으로 판사출신에다 5선 국회의원으로 당대표를 지낸 추미애를 임명하면서 드라마의 막이 오른다.주역을 맡은 추미애 장관은 기대 이상의 맹활약으로 막장드라마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등장하자마자 마구잡이로 인사권을 휘둘러 정권실세들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모조리 좌천하는 ‘학살인사’를 두 차례나 단행해서 검찰총장의 수족을 다 잘라버리는 위력을 과시했다.검찰개혁이란 한갓 허울일 뿐이고, 속속 들어나는 비리와 부정을 덮고 검찰을 장악하기 위한 꼼수라는 걸 잘 아는 야권의 반발과 검찰내부의 집단 저항에 부딪치자 한술 더 떠서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일단계로 총장의 직무배제에 들어갔지만 법원이 집행정지신청을 인용하는 바람에 무산되자, 이번에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서 두 달 간의 정직(停職)처분을 내렸다. 그마저도 절차상의 하자와 징계사유의 부당성을 이유로 또다시 집행정지신청이 인용되어 드라마는 바야흐로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막장드라마’란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설정으로 사회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드라마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다. 지난 한 해 매스컴을 온통 도배한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 활약상은 한 편의 막장드라마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법무장관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법은 물론 일말의 양식도 깔아뭉개는 인성의 막장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광기어린 오기와 독기로 시청자들의 분노게이지를 높여가는 전개는 가히 막장드라마의 끝판이라 할만 했다.일 년 내내 숨 가쁘게 달려온 드라마는 추미애 장관의 사의표명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막장드라마답게 한국사회에 끼친 해악은 결코 적지가 않지만, 한편으로는 집권세력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서 맹종하던 민심이 이반하는 순기능도 없지 않았다. 새해에도 새 장관이 임명되면 검찰개혁 막장드라마의 속편이 또 시작될 것이다. 모쪼록 후속 편에는 반드시 사필귀정의 결말이 있기를 바란다.

2020-12-30

어느 신부님의 러시아 선교 체험담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어느 신부님을 알고지낸지는 꽤 오래되었다. 1980년께, 40년 지났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연히 성당 옆 어느 포장마차에 함께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포장마차에는 술안주로 참새구이까지 나오는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신부님의 신자들에 대한 격식 없는 태도가 무척 좋았다. 그 날 포장마차에서는 그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그날 밤 신부님과 함께한 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후 그 신부님은 다른 성당으로 떠나버렸다. 몇 년 후 그 신부님이 선교 목적으로 러시아 오지로 떠났다는 소문만 들렸다.오늘 이야기는 그 신부님의 러시아 체험 이야기다. 1990년대 초 러시아는 사회주의 소련이 무너지던 시기였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한국서 온 자그마한 신부님에 무척 호기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종교행사조차 보기 힘든 그들은 검은 옷을 입은 신부가 매우 수상했던 모양이다. 어떤 러시아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묻더란다. 그는 엉겁결에 선교 사업은 감추고 남을 돕는 일을 한다고 대답했단다. 그들은 이상한 눈으로 보면서 당신은 사기꾼이 아니냐고 의심했단다. 당과 혁명, 지도자를 위해 살아온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다시 러시아인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묻더란다. 그는 (예수님처럼) 남을 사랑하기 위해 산다고 대답했단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사랑하느냐 묻기에 모든 사람이라고 대답했단다. 여성들도 포함되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당신은 바람쟁이구먼’하고 웃더란다.무신론적 가르침에 따라 살아온 그들이 종교적 사랑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공산당이 인정한 러시아 정교는 남아 있었지만 신앙인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였다. 더욱이 종교의 자유가 금지된 땅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얼마 후 친밀감이 생긴 러시아인은 신부님께 무엇으로 생활하느냐고 묻더란다. 한국에서 보내온 신자들의 헌금으로 생활한다고 대답했단다. 그들은 이 대답에는 더욱 눈이 휘둥그레지더란다. 그들은 자신이 노동하지 않고 남의 돈으로 살아가는 당신은 ‘흡혈귀’라고 핀잔까지 주었단다. 노동 가치에 따라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그들로서는 남의 돈으로 살아가는 사제의 생활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착취해 살아간다고 교육을 받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일는지 모른다.종교를 부정하던 소련은 벌써 30여 년 전 붕괴됐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배척하던 러시아인들은 오늘날 공산주의까지 배척해 버렸다. 그들은 빵문제도 해결치 못하는 사회주의를 포기해 버리고 자본주의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내가 자주 찾은 러시아는 시장경제로 넘어온지 오래지만 관료적 독점과 독재라는 사회주의 구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선전하던 땅에 러시아 정교회는 소리 없이 확산되고 있다. 그때 러시아 선교를 위해 고생했던 신부님은 귀국했지만 아직도 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020-12-30

이야기에 내일을 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포항은 어떤 도시일까. 포항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할까. 거친 바다, 딱딱한 철강, 투박한 말씨, 거친 느낌 등이 아니었을까. 그랬던 포항이 바뀌어 간다. ‘문화도시’로 지정되었으며 ‘축제도시’로 풍성한 이야기를 담는다. 폐철도를 따라 만들어낸 철길숲은 도시에 숨길을 트이게 하였다. 바다와 육지, 도시와 사람이 함께 호흡하는 지역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의 배경이 되어 전국적인 관심도 자아낸다. 포항은 산업경제도시에 더하여 문화관광도시로 변모해 간다.‘철강 다음은 무엇일까.’ 도시는 같은 질문을 십 년도 넘게 던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나라의 기간산업을 일으키는 토대를 만들며 분주했던 도시는 새로운 도약대를 찾느라 상상력과 창의를 모은다. 지역이 이제는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철강을 모티프로 사람을 모았다면 앞으로는 무엇을 테마로 흥미를 끌고 모여들게 할 터인가. 어떤 이야기가 있어 청년들에게 가슴이 뛰는 기회의 문을 열어줄 것인가. 문화를 주제로 노력을 기울인 끝에, 포항은 ‘경북콘텐츠기업 육성센터’를 유치하였다. 지역문화와 콘텐츠를 기르면서 안정적인 창업환경을 만들라는 명제를 짊어지게 되었다.숲길과 함께 물길도 트인다. 육지와 바다를 잇는다. 포항시는 도시하천의 복개 구간을 걷어내 생태하천을 만들 계획이다. 학산천, 두호천, 양학천과 칠성천의 옛 모습을 회복하여 이미 조성된 도시숲과 함께 시냇물과 숲이 도시에 어우러지는 자연환경을 되찾을 것이다. 천혜의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가 더할 나위 없이 버무려지는 흔하지 않은 지역이 되어갈 모양이다. 포항뿐 아니라 경북 전역에 이런 트렌드를 나눌 거점이 되어 나라의 문화지형에도 기여하게 될 터이다. 지나온 길이 가지는 의미가 깊을 뿐 아니라 미래지향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지역의 내일에 높은 기대가 걸린다.보이는 물건에 승부를 거는 시절은 저물어 간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에 내일을 거는 방향이 보이지 않는가. 끝내 손에 쥐는 물건이 있다고 해도 그를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콘텐츠기업을 기르겠다는 뜻은 이야기를 찾아내어 영향력과 경제성을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포항은 이제 상상력에 미래를 걸게 되었다. 바닷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에서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철강을 다듬던 기억에서 이야기를 드러내야 한다. 고을마다 배어있는 옛날이야기의 가치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센터를 세우지만, 이야기를 찾는 일은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콘텐츠에 기대를 걸지만, 문화로만 승부하지 않는다. 산과 바다, 사람과 이야기, 문화와 기술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힘들여 잡은 기회로부터 구체적인 성과가 일어나도록 필요한 사람도 잘 찾아야 한다. 콘텐츠가 살아나는 길목에는 글로벌시장을 겨냥하는 열린 안목도 갖추어야 한다. 포항과 경북은 소프트파워를 창작해내는 거점이 되어 세계로 다가가는 중이다.

2020-12-30

엑스코선 건설, 대구 혁신성장 전기 되길

대구시민의 오랜 숙원인 도시철도 대구 엑스코선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을 통과해 건설이 확정됐다.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대구 엑스코선은 도시철도 3호선 수성구민운동장역과 연결해 동대구역, 경북대, 엑스코 등을 거쳐 이시아폴리스에 이르는 12.3km의 도시철도다. 총사업비 6천711억원이 소요되며 2028년 완공될 예정이다.대구 도시철도 1.2.3호선과 연계점을 가지면서 그동안 도시철도 혜택에서 소외된 대구 동·북부지역 주민의 교통난 완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도시철도는 타기가 간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장점으로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은 교통수단이다. 대구에는 도시철도 3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나 환승점이 적어 도시철도의 효율성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엑스코선이 완공되면 1·2·3호선과 함께 연계점이 확대되면서 도시철도 이용률을 지금보다 한층 더 높이 끌어올릴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대구 엑스코선 신설은 도심 교통난 완화에 기여함은 물론이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진할 교통망이라는 점에서 시민의 기대감이 크다. 엑스코선이 통과하는 지역에는 동대구 벤처밸리와 도심융합특구 선도사업지로 지정된 엣 경북도청터, 경북대, 종합유통단지, 금호워터폴리스, 엑스코 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대구의 신성장 산업을 주도할 주요 생산기지와 물류단지 등이 엑스코선과 연계됨으로써 경제적 유발효과에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는 대구 엑스코선 건설 자체로 생산유발 효과 1조2천472억원, 부가가치유발 효과 5천2억원, 고용유발 효과 1만2천여명 등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어려운 지역경제 회복에 활력소가 되길 바란다는 희망 메시지를 내고 있어 대구 엑스코선 건설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분위기다.코로나19 사태로 올 우리 경제는 좌절과 고통으로 힘겨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대구의 경제 사정인들 마찬가지다. 특히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은 파산 직전에 몰리는 위기상황이 연속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혁신적 변화가 절실한 시기다. 내년에 시작될 대구 엑스코선 건설이 대구의 혁신적 변화와 성장의 전기가 된다면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에게 그나마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2020-12-30

‘검찰청 폐지’ 법안(?)…이성 잃은 민주당

‘1가구 1주택’법, ‘전세 무기한 연장’법, ‘윤석열 방지’법에 이어 ‘검찰청 폐지’법안까지 제출하는 등 거대 여당 민주당의 입법 폭거가 도를 넘고 있다.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법원의 판결에 막히자 여권의 이성을 잃은 언행이 몰상식의 영역을 마구 넘나드는 형국이다. 도대체 검찰에 무슨 결정적 약점이 잡혀있기에 이토록 ‘검찰 해체’의 막장극에 골몰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다수 여당의 권력 만용에 온 나라가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는 세밑이다. 민주당은 검찰개혁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검찰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 방안을 논의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의해 검찰이 맡기로 돼 있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산·대형참사 등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빼앗는다는 것이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기존 검찰청을 없애고 기소·공소 유지권만 갖는 ‘공소청’을 따로 만드는 법안까지 내놨다.검찰총장의 권한 축소 방안도 도마에 올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자 특위 위원장을 맡은 윤호중 의원은 ’검찰청법 7조 상명하복’ 조항을 손 보겠다고 강조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검찰총장만 가능한 ‘검사 징계청구권’을 법무부 장관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검사징계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독립성을 말살하여 법무부에 예속하려는 의중까지 드러냈다.이와는 별도로 윤석열 총장을 국회에서 탄핵하려는 움직임 또한 잦아들지 않고 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 연일 ‘탄핵 강공론’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황운하 의원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맞장구를 치고 있다. 형사 피고인들이 검찰총장을 찍어대는 무참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추미애 장관마저 ‘윤석열 탄핵’에 동감을 드러낸 모습은 더 야릇하다.국회 다수 장악의 힘에 만취한 더불어민주당은 민심의 흐름에 개의치 않는 게 분명하다. ‘다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저지르는 권력은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민심의 요체를 헤아리지 못하고 막 나간 정치 권력들이 어떤 비극적 종말을 맞았는지 잠시라도 되돌아보기를 권한다.

2020-12-30

집단면역

집단면역은 집단 내 구성원 상당수가 전염병에 대한 면역을 갖게 되면 집단 전체가 면역을 가진 것과 같은 효과를 보이는 현상이다.감염이나 예방접종을 통해 이뤄지며, 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국가가 예방접종을 통해 집단면역을 유도하고 있다.이 현상은 1923년 영국 맨체스터대의 윌리엄 화이트 토플리 교수, 그레이험 윌슨 교수가 장염균을 이용한 쥐 실험에서 처음 발견했다. 이후 여러 전염성 질환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대량의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 면역을 유도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실제로 집단면역은 1977년에 종결된 천연두의 박멸과 다른 질병들의 지역적인 박멸에 유용하게 활용됐다. 집단면역의 목적은 질병 전파를 억제해 방사선요법 등 여러 요인들로 면역성을 잃어 버리게됐거나 면역력이 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다.코로나19의 경우 우리나라가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전체 인구의 60∼70%가 접종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개발된 백신은 18세 미만에 대한 접종 계획이 없으므로 국내 18세 이상 인구 4천410만 명 중 80%가 넘는 3천600만 명이 백신을 접종해야 집단면역이 생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 9월까지 3천600만 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해 집단면역을 완성할 계획이다.다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계속되는 변이 때문에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어 걱정을 더해준다. 영국과 남아공발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풍토병이 돼 인플루엔자(독감)처럼 매년 재유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어떻든 하루라도 빨리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집단면역이 완성돼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길 바랄 뿐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30

공포의 블랙아이스 경각심 높일 때다

지난 28일 새벽 6시 53분께 경북 영천시 녹전동 녹전교 인근 국도에서 승합차 등 차량 18대가 연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고 이 일대는 차량이 뒤엉키는 바람에 큰 교통혼잡을 빚었다. 경찰은 전날 내린 비로 생긴 블랙아이스와 함께 짙은 안개가 사고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지난해 12월 경북 상주-영천 고속도로 상하행선에서 2건의 차량연쇄 추돌사고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도 블랙아이스가 원인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블랙아이스는 겨울철 기온이 떨어질 때 녹은 물이나 비가 얇은 얼음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먼지와 매연이 눈비와 함께 엉겨 붙어 검정색을 띠므로 블랙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블랙아이스 현상은 맨눈으로 알아보기 어려워 사고가 나면 치명적이다. 도로의 암살자라는 별명이 있다. 통계에 의하면 빙판길은 눈길보다 6배 정도 미끄럽고 사고 때 사망률이 4배 정도 더 높다고 한다. 겨울철 운전에 우리가 각별히 유의해야 할 이유가 이런 데 있다.겨울철 블랙아이스 교통사고는 교통 당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매년 사고가 일어난다. 올 1월에도 경남 합천군 대양면에서 승용차 등 차량 41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겨울철이면 전국에서 유사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겨울철에 접어든 이제라도 이와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운전자 각자의 주의 운전이 필요하다. 위험 구간에서는 감속운행을 해야 하며 급출발, 급제동, 급회전은 금물이다. 교량이나 산기슭, 터널 입출구 주변은 일반도로보다 기온이 낮아 결빙이 쉽게 생길 수 있다는 것에도 유의해야 한다.교통 당국도 도로 상태를 다시 점검하고 위험지역에는 경고판 설치 등 세심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상습결빙 구간에는 모래를 뿌리고 열선을 까는 등의 대책도 준비해야 한다.지난해 이맘때쯤 문재인 대통령은 상주-영천 고속도로 사고와 관련, 겨울철 교통안전 대책을 지시한 적이 있다. 지금부터 또한번의 경각심을 세울 때가 됐다. 이번 영천국도의 연쇄추돌 사고를 교훈 삼아 올 겨울은 블랙아이스 사고가 없는 해가 되길 바란다.

2020-12-29

백신여권

예전에는 비정상으로 보였던 현상이 어느 날 흔한 현상이 되고 표준이 되는 것을 뉴노멀(new normal)이라 부른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생활에 등장한 비대면 문화가 바로 뉴노멀 시대의 대표적 현상이다.IT기술의 발달이 금융계의 대혁신을 이끈 것처럼 근로자의 재택근무가 어느 날 대세가 되어 또다른 뉴노멀로 등장할지 알 수 없는 시대다.과거에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던 현상이 지금은 흔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코로나가 만들어 낸 뉴노멀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중국은 뉴노멀을 새로운 정상상태(新常態)라는 말로 표현한다.해외여행 갈 때 필수적으로 챙겨야 할 것 중 하나가 여권이다. 여권이 없으면 국내에서 출국도 목적지 나라의 입국도 불가능하다. 여권이 나라마다 엄격히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라고 하니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 이전에는 여권이 없어도 각국을 잘 돌아다녔다.여권이 상용화된 주요 배경은 교통수단의 발달이다. 열차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빠른 시간내 대량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국가간에 상호 인정할 수 있는 자국민에 대한 국제적 신분증이 필요했던 것이다.코로나19 백신접종이 시작되면서 최근 미국과 유럽국가사이에는 백신접종 사실을 증명할 백신여권 개발이 한창이라는 소식이다. 백신여권은 백신을 맞은 사람이 백신접종 사실을 국제적으로 입증하는 일종의 증명서다.앞으로는 이 증명서가 없으면 비행기도 탈 수 없고 가고자 하는 나라에 입국도 못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나라에 따라서는 국내서 벌어지는 스포츠나 콘서트 등 다중이 모이는 곳에서도 백신여권을 소지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뉴노멀 시대를 실감케 하는 현상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2-29

공수처 ‘중립성’ 감시, 이젠 온전히 국민의 몫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이찬희 변협회장이 추천한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과 검사 출신 이건리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을 최종 후보로 의결했다. 조만간 문재인 대통령이 1인을 낙점하면 곧바로 공수처는 출범할 것이다. 이제 견제장치라곤 전혀 없는 무소불위 공수처의 ‘중립성’ 준수를 감시하는 일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됐다.수사권·영장청구권·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을 괴물이라며 그걸 빼앗아서 경찰에 나누고, 그것도 모자라서 공수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이미 문제점들이 수두룩 드러났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에 권력을 모두 주는 것은 무슨 당위성을 갖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지난해 집권당의 입법 논리대로라면 공수처장은 중립성 담보를 위해서 야당이 추천하는 후보자들 가운데에서 선정하는 게 옳았다.이제 공수처가 대통령과 여권의 구상대로 출범하는 것을 정치권에서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민심의 소재나 정의감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절대다수의 힘으로 뭐든 막 밀어붙이는 의사당에서 소수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이제 공수처장만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인사들을 수사관들로 채우는 일도 걱정거리가 됐다. 민주당은 이번에 법을 바꾸면서 의도적으로 공수처 수사관 자격요건을 완화하고, 임기도 늘렸다.누누이 지적돼온 대로 공수처는 ‘살아 있는 권력 범죄의 쓰레기통’이 돼선 안 된다. ‘야당 탄압과 정치보복의 도구’로 악용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민주당은 검찰을 허수아비로 만들기 위해 검사의 수사권을 모두 제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범죄자들이 이미 뒷골목에서 축배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공수처의 위헌성을 법적으로 밝혀나가는 일과 별개로,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감시체제가 필요하다. 인사, 운영행태, 사건처리 과정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지적할 유능한 언론과 시민단체도 있어야 한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가치를 괴물 공수처가 모조리 말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야말로 가장 확실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깨어 있는 국민이라야 나라를 지킨다.

2020-12-29

저무는 날 삽을 씻고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 우리가 저와 같아서 /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정희성 시인은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1970년대 고통받고 암울하게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 당시 공사판의 일용직 막노동자에게 삽은 없어서는 안될 생활의 마지막 밑천이자 꾸역꾸역 살아내야 하는 물리적 고통의 표상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저물 무렵 강변에서 삽을 씻으며 하루를 마감하면서 힘듦과 아픔 그리고 슬픔도 함께 씻어 버리려, 삽으로 퍼다 버리려 무진 애를 썼겠지. 그래도 삽을 씻고 돌아가서 보듬고 사랑을 나눌 식구가 있었고 좁다란 동네 골목 어귀 허름한 선술집이나 포장마차에서 탁한 술 한 잔 기울이며 노동의 고단함을 함께 삭일 이웃이 있어 숨쉴 구멍 하나쯤은 뚫려 있었으리라.시인의 노래가 40여 년이 흐른 2020년 올해도 어느덧 해가 바뀌고 달이 기울고 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저물어 가는 시간에 삽을 씻고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퇴치와 감염자의 치료를 위해 삽보다 몇 배 무거운 장비들을 온몸에 칭칭 두르고 땀범벅의 한여름을 지나 한겨울 맹추위에도 땀을 흘리고 있다. 삽을 씻기는커녕 기진맥진하여 몸을 씻기조차 버겁다.삽질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느 한구석에 처박힌 채 녹슬어버린 삽을 절박한 심정으로 고통스럽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들도 너무 많다. 씻을 삽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저물어가는 올해를 힘겹게 보내고 있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구정물 흐르는 샛강에라도 담그고 씻을 삽을 찾으려 우리는 얼마나 애타게 헤매고 다녔던가.‘삽질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다’라는 본뜻으로보다 ‘헛된 일을 하다’라는 속된 표현으로 더 자주 쓰인다. 그렇지만 올해는 헛삽질도 한 번 못해본 이들의 날들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쥐의 해가 저문다. 왕성한 생산력과 부지런하고 활발한 달음질이라는 쥐의 표상을 좇고자 했던 우리 인간은 지금 하릴없이 ‘쥐 죽은 듯이’ 지내고 있다. 올해는 이렇게 가게 놔 두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불러야겠다. 그 사내에게 피리를 불게 하자. 부정의 쥐, 불의의 쥐, 탐욕의 쥐, 반목의 쥐, 질시의 쥐, 고통스러운 불황의 쥐를 저문 날 강물 속으로 퐁당퐁당 들어가게 하자. 거기에다 하나 더. 그 사내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죄다 휘몰아 가면 좋겠다.‘피리부는 사나이’는 독일의 하멜른 지역에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로, 그림 형제의 동화로 우리에게 왔다. 이 동화를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제목의 동시 버전으로 만들었다. 브라우닝은 이 버전에서 “너와 나는 사람들의 상처를 다독여 주는 사람이 되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리를 불어 쥐를 쫓아주겠다고 하든 안하든 우리가 약속한 것이 있다면, 그 약속을 꼭 지키자.”라고 말한다.그래, 이제 삽을 씻고 희망을 품고 약속을 꼭 지킬 새해를 맞으러 가야겠다.

2020-12-29

엑스맨

김락현 경북부예전에 한 방송사에서 ‘X맨 일요일이 좋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큰 틀은 팀을 나눠 게임을 진행하는 식인데, 제작진은 경기에 앞서 ‘X맨’을 지정했다. 엑스맨을 맡게 된 사람은 특별한 역할을 비밀리에 수행해야 한다. 일부러 실수를 저지르고, 본인이 속한 팀을 패하게 만드는 것이다.최근 구미의 한 시의원이 대둔사 신도라 예산을 몰아줬다고 주장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일부 시의원들을 보면서 엑스맨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유는 이들의 주장이 사실도 아니거니와, 자신들이 소속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 방향과 다르기 때문이다.더불어민주당 홍난이 시의원은 최근 자신의 SNS에 “18억6천만원의 혈세가 1인 사찰에 모두 집행됐다. 한 시의원이 신도인 절에…”라는 글과 함께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대둔사에 집행된 관련 예산안을 올렸다. 이에 불교계는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과 구미시 지역위원회를, 29일에는 구미시의회를 공식 방문해 항의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인 대둔사를 1인 사찰로 비유한 것과 대둔사가 보관된 국가지정 보물3점을 보호하기 위해 국비로 진행하는 재난방지시설 및 유지보수사업을 개인 비리가 있는 것처럼 비유한 것은 불교 탄압이라는 것이다.홍 시의원은 불교계의 항의에도 SNS에 또다시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홍 시의원의 말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결국 국민의힘 소속 한 명의 시의원이 자신이 신도로 있는 사찰에 18억6천만원의 혈세를 퍼붓는 동안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2018년 7월 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은 9명이었고, 현재는 6명이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무능함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또, 같은 당의 이선우 시의원은 내년부터 대둔사에 배치되는 안전관리요원 2명에 대한 예산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 또한 정부의 일자리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재청이 전체 예산 1억2천만원 중 70%를 부담한다. 나머지 30%는 경북도와 구미시가 반씩 분담한다. 현 정부는 일자리창출을 가장 시급한 국정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다.여당 시의원이라면 응당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어찌 된 일인지 구미에서는 집권여당의 국정 방침과 정반대로 가려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구미 시의원들은 ‘엑스맨’이 분명해 보인다./kimrh@kbmaeil.com

2020-12-29

2020 경자년을 돌이키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나간 일과 관계와 사건은 아쉬움을 남긴다. 더 나은 결과와 평안한 관계, 안정적인 사후처리가 가능했음을 깨닫는 것은 언제나 나중이다. 일컬어 ‘사후 약방문’이거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한다. 차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것과 같이 만사휴의(萬事休矣) 상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실패와 좌절을 돌이키면서 우리는 같은 성질의 패배와 절망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1960년생이 환갑을 맞은 경자년(庚子年)이 저물어 간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나고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여태까지 겪지 못한 쓰라린 상처를 지구촌 곳곳에 남기면서 코로나19는 아직도 맹위(猛威)를 떨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지만, 바이러스의 종식(終熄)은 내년 가을 이후에나 가능하리란 것이 중론이다. 나는 열네 살 먹은 인도 소년 아난다의 예언에 500원을 걸었다. 내년 11월에 코로나가 끝날 것이라는!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기억은 100년 전 일인 성싶다. 1918년에 발생한 에스파냐(스페인) 독감 때문에 세계적으로 2천500만에서 5천만의 인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한다. 지난 12월 26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8천만, 사망자는 176만에 이른다. 페니실린도 발명되기 이전의 에스파냐 독감과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있은 2020년 코로나19의 수평적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문제는 코로나19의 뒤를 이어 훨씬 강력한 바이러스 침입이 일상화하리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알다시피 1976년 에볼라 바이러스, 2002년 사스, 2012년 메르스에 이은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은 인간이 자행한 생물 서식지 파괴다. 지구촌에 거주하는 다수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는 거주공간을 인간이 무차별적으로 훼손하고 개발한 결과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수용된다.그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다. 인간의 무한욕망이 불러온 자연 생태계의 무차별적인 파괴와 유린은 반대로 인간의 생명을 옥죄는 카르마로 작용하고 있다. ‘노 마스크’로 일관한 트럼프나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의 코로나 확진은 인과응보의 성격이 짙다. 정치와 경제의 효능과 이해관계를 위해 대중의 방역과 예방을 소홀히 한 업보를 고스란히 경험한 셈이다. 일본의 전임수상 아베의 행적도 그들과 비슷한 궤도를 보인다.코로나19의 창궐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깃발을 든 신자유주의 기조로부터 발원한다. 그들은 한물간 19세기 자유주의 정책을 20세기 후반기에 실현하려는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정치적 하수인들이다. 그들로 인한 폐해는 지금까지도 온존된다. 20대 80의 사회에서 1대 99의 사회로, 숱한 비정규직과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양산(量産)으로 해를 보내고 있다. 이제라도 반성해야 한다.코로나19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노동자들을 사지에서 구출해야 한다. 가혹한 시련과 아픔을 남긴 경자년이 저물기 전에 우리가 돌이킬 대목이다.

2020-12-29

일개인(一介人)들이 멸종하는 새해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우리는 낯선 이들의 친절함에 감명을 받고, 가장 어두운 밤에도 새로운 여명에 대한 희망에서 편안함을 이끌어 냅니다. (….) 크리스마스의 빛, 이타심,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우리를 앞으로 다가올 시간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성탄 메시지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2020년! 언론들은 성탄을 맞아 세계 지도자들의 희망 메시지를 보도하였다. 그중에서 필자의 마음에 가장 오래 머문 이야기다.그나마 인류가 길고 긴 코로나 터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무조건적인 인류애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선별 진료소, 병원, 보건소, 소방서, 지자체 코로나 대응부처, 질병관리청 등은 바로 코로나 영웅들이 있는 곳이다. 물론 이 외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많은 사람, 그들이 바로 우리 삶의 영웅들이다.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특별법을 만들 정치인이 없다. 혹여 있다고 해도 떼거리 정치꾼들에게 밀려 소리조차 못 내고 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곳, 그곳이 바로 이 나라 정치판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민주주의, 개뿔이라고 해라!”최근 떼거리즘에 빠진 인간들의 말도 안 되는 소음에 귀가 아프다. 그들이 공통으로 쓰는 단어는 “일개”다. “행정법원의 일개 판사가 (….)”, “일개 재판부가 (….)” 정말 웃기지도 안 된다. 만약 그들에게 일개 방송인, 일개 정치인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의도, 기본도 없는 일개(방송, 정치)인의 오만방자를 국민이 심판하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일개인들의 정신없는 소리에 묻혀버린 어느 학부모님의 이야기를 전한다.“전학이 가능할까요?” “왜 전학을 하시고자 하는지요?”최근 들어 전학 문의가 부쩍 많다. 대상 학생은 대부분 중학교 2학년이다.“아이가 시험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요. 1학년까지는 자유학년제 한다고 시험도 안 보다가 2학년에 와서 갑자기 시험으로 압박을 하니 아이가 견딜 수가 없어 해요.”이 말이 나오는 순간 필자는 죄인이 된다. 처음에는 전학 상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용은 학교 교육, 특히 자유학년제와 온라인 수업에 대한 성토로 이어진다.“올해는 더군다나 5월 중순부터 학교에 갔는데 6월에 바로 중간고사를 쳤어요. 온라인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EBS 보거나 과제를 하는 거였어. 뭐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데, 시험이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일개인들은 어떤 답을 할까! 그들은 생뚱맞게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올해도 올해지만, 내년 중학교 2학년이 걱정이다. 코로나야 백신이라도 있지만, 학생들의 방황에는 약도, 답도 없다. 이 나라 일개 방송·정치인과 교육 관료에게 학부모님의 말씀이 여왕의 말씀처럼 전해지길 바란다.

2020-12-29

변창흠, 말로 흠을 만들다

얼마 전 SNS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미국의 무명배우 루카스 게이지는 집에서 화상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간절함을 담아 마지막 대사 연습을 하고 카메라 테스트를 마칠 무렵, 마이크 끄는 것을 깜빡한 감독의 부적절한 말이 들려왔다. “가난한 사람들은 저런 작은 아파트에 사는군. 저 낡은 티브이 좀 봐” 당혹스러울 만도 한데 게이지는 “음소거가 되어 있지 않네요. 저도 알아요. 형편없는 아파트죠. 제가 좋은 집에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라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감독은 즉시 사과했다.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느낀다는 감독에게 게이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예요. 저는 작은 상자 안에 살고 있지만,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주신다면 우리는 괜찮아질 겁니다”라며 오히려 위로를 건넸다. 막말을 한 감독은 트리스트램 샤피로. 1966년생인 그는 루카스 게이지보다 서른 살 더 많다. 나이, 경력, 지위, 물질적 풍요와 인격의 성숙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부패한 정치권력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어느 국회의원 후보가 티브이 연설을 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을 섬기고 사랑하겠습니다” 온화한 얼굴로 연설을 마친 그는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돌변한다. “멍청한 개돼지들이 뭘 알기나 해? 이만큼 먹고 살게 해주는 걸 감사할 줄 알아야지” 곧이어 재래시장을 방문해 억울한 일을 겪은 상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인다. 연민의 표정을 짓는 그에게 상인은 와락 안기며 눈물을 쏟는다. “제가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상인의 등을 토닥여주던 그는 재래시장을 나서자마자 보좌관의 뺨을 때린다. “더러운 것들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막지 않고 뭐했어?” 썩은 오물이라도 묻은 듯 신경질적으로 옷을 터는 국회의원 후보를 보며 관객들은 씁쓸함을 느낀다. 영화 속 가상인물이지만, 현실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공직 근처에는 평생 가볼 일 없는 내게도 부끄러운 ‘막말의 추억’이 있다. 15년 전쯤인가 다니던 교회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바자회 겸 야외 음악회를 열었는데 내가 기획 및 MC를 맡았다. 이전에 트로트나 사물놀이를 공연했을 때는 반응이 좋더니 바이올린과 첼로 등 클래식 연주를 한 그날은 영 썰렁하고 산만했다. 연주자들이 정성껏 연주하는 동안 누구도 음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연주자들 보기 민망하기도 하고, 화도 났던 것 같다. 미성숙한 이십대 초반, 왜곡된 문화의식을 가졌을 때다. 다른 진행 스태프에게 “이런 공연은 강남 같은 데서 해야지 우리 동네랑은 수준이 안 맞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나가던 한 주민이 그걸 듣고는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항의했다. 그 즉시 여러 번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해명할 것도 없는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분이 사과를 받아주어 일단락됐지만 그 말실수를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럽다.그 일을 통해 나는 말의 경솔함을 경계하게 됐으므로 실수도 좋은 경험이겠지만, 깨달음의 대가로 부끄러움은 평생 안고 가야 할 몫이 됐다. 한 번 뱉어진 말은 발화자의 입을 떠나도 세상에 내내 떠돌기 마련이다.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막말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 군을 두고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며 사고의 책임을 김 군에게 돌렸다. 노동자와 노동 현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막말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공공임대주택 공유주방 사업 논의 중 “못 사는 사람들은 밥을 집에서 해 먹지 미쳤다고 사 먹냐”라면서 임대주택 입주 대상자인 서민들을 비하했다. 얼마 전 그걸 해명한답시고 한 말은 더 가관이다. “특히 여성은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아침을 먹지 않으려 한다”고 했는데, 그가 평소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충 짐작이 된다.각각의 막말마다 그럴듯한 해명을 내놓긴 했지만, 말이라는 것은 뱉어지는 순간 그 소유관계가 달라진다. 말한 사람이 말의 진의를 ‘가나다라’ 주장해도 듣는 사람이 ‘아자차카’ 들으면 그 말은 결국 ‘아자차카’가 된다. “엎질러진 말은 주울 수 없다”라든가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격언은 초등학교 때 배우는 건데, 너무 오래되어 까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말 한 마디로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도, 상처와 절망을 줄 수도 있는 공직자라면 자기 말에 부드러운 깃털이 달렸는지 아니면 날카로운 가시와 이빨이 달렸는지 철저한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특히 그는 주거와 교통 등 국민의 기본 생활을 관장하는 부서의 장관이다. 나 같은 삼류 시인의 글도 1차, 2차, 3차 교정을 거쳐야만 세상에 나오고, 막걸리 한 병을 생산하기 위해 양조장의 설비 시설은 수차례의 품질 검사를 진행한다. 변 장관 막말의 경우,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속어는 막걸리 입장에서 치욕이다. 음가를 가지고 유치한 이름 풀이를 해보자면, 변창흠은 ‘말로 흠을 만든 사람’이 된다.말의 진의가 어떻든 국민이 듣는 ‘아자차카’는 이렇게 풀이된다.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운운은 “위험의 외주화 등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계속 쉬쉬하며 덮을 수 있었는데 재수도 없게 노동자 하나가 사고를 쳐서는 골치 아프게 됐다”, “못 사는 사람들” 어쩌고는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은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들인데 분수도 모르고 무슨 외식을 하겠냐”, “여성은 화장을” 저쩌고는 “여자들은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한다. 화장을 안 하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그게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없다. 그렇게 들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까 말을 가려 했어야 한다. 말의 무서움을 알고,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야 한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결국 가치관과 인식의 표현이므로, 한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든 말을 통해 표출된다. 말에 나타난 변 장관의 노동인식, 사회인식, 여성인식은 공직자의 것으로는 부적합하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그동안 많은 공직자들이 막말과 말실수로 몰락했다. 2008년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버스 요금이 70원쯤 하나?”라고 했다가 민생을 전혀 모른다고 맹비난을 받았다. 그 말실수는 정 의원의 정치 여정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서민과 괴리된 재벌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한편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그분들이 꼭 미래를 결정해 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돼요”라고 했는데, 노인을 폄하했다며 거센 반발을 불렀고 그 결과 정 의장은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의 아우라를 상실하고 말았다. 정몽준 의원과 정동영 의장의 말은 막말이라기보다 말실수에 가깝고, 변창흠 장관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다.지난 2016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은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고, 이듬해 충북도의원 김학철은 “국민은 레밍”이라고 했다. 이런 게 진짜 막말이다. 무슨 이솝우화도 아니고 국민을 개, 돼지, 쥐에 비유한 상소리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두 사람의 사퇴 및 제명을 촉구했다. 변창흠에게도 똑같이 해야 하거늘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분노와 실망에도 불구하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변창흠의 장관 임명은 이번 정부의 도덕성과 직결된 문제다. “저쪽은 더 심했는데…”라는 볼멘소리가 이번만큼은 씨도 안 먹힐 듯하다. 변창흠 장관의 막말은 비교불가 ‘역대급’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부디 정부와 여당에서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변 장관이 조금만 말에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막말도 문제지만 말만 번지르르한 것도 곤란하다. 국민들은 도덕성과 청렴성, 철학, 능력을 두루 갖춘 인사를 원한다. 대단하고 특별해보이지만 사실 그것들은 공직자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일 뿐이다.

2020-12-29

2021년, 더 큰 희망을 품고

정석수신부·대구가톨릭 요양원 원장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발걸음을 내딛는 이는 희망을 품은 사람입니다. 2020년을 지나며 우리 모두는 간절한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안전에 대한 것이요 코로나로 인하여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는 노력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한 인물, 마타디아스는 죽음의 나날이 다가오자 자녀들에게 선조들의 삶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일을 열거하며 당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대대로 명심하여라. 그분께 희망을 두는 이는 아무도 약해지지 않는다.”(1마카2,61)하지만 성경에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희망이 꺾인 고백도 있습니다.“도대체 어디에 내 희망이 있으리오? 나의 희망? 누가 그것을 볼 수 있으리오?”(욥기17,15)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일상의 삶이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연말연시에 확산을 우려하여 정부는 더 강한 조치를 내렸습니다. 희망의 뉴스가 보도 되지만 아직도 코로나19의 백신에 대하여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그렇지만 시편의 저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품고 살아가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힘을 내어 마음을 굳세게 가져라.”(31장25절) 또 “내 영혼아, 오직 하느님의 향해 말없이 기다려라. 그분께서 나의 희망이 오느니!”(시편62,6절)코로나19로 인한 전환기의 위기(危機)를 겪고 있습니다. 위기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라는 요소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며 화상회의를 하게 되어 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삶이 정지된 시기에 우리는 기회를 만들고 더 큰 희망을 세워야겠습니다. 2020년은 온 세상이 치유의 손길이 더욱 필요하였고, 대구로 한걸음에 달려온 이들로 인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직접 현장에 투입될 수는 없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수도권의 위기가 벗어날 수 있도록 십시일반 공동모금회의 통장을 살찌우는데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IMF시대에도 준 적 없는 모금액이 하향 조정되었다는 뉴스입니다. 어려울수록 더 저력을 발휘하는 근성이 필요로 합니다. 오늘의 위기에서 고통과 아픔을 넘어 희망의 사다리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무엇보다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1베드4,8.10)베드로 사도의 이 말씀은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여 희망을 더욱 키워라는 말씀입니다.

2020-12-29

흔들리는 바다와 등대

어디로 가야 하나. 망망대해 더 넓은 한가운데 거친 파도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좌우로 번갈아 가며 쉼 없이 기울기를 멈추지 않는 바다다. 언제부터였는지, 언제까지 일지, 종잡을 수 없이 점점 더 거칠게 흔들리고 있다. 손을 뻗어 휘저어 보아도 손 하나 걸치고 의지할 곳 없는 바다다. 함께 하자며 위로해주거나 관심 둬주는 이 없는 오롯이 혼자가 되는 바다다. 이상(理想)과 현실이 뒤섞여 파도의 물거품처럼 시야를 가린다. 잃어버린 방향을 찾고자 하는 의지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여기가 어딘가. 나는 무엇인가. 바다는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바다는 태초부터 흔들렸다. 그리고 지구가 사라지고 없어질 때까지 흔들릴 것이다. 바다의 흔들림은 순리(順理)이고 이치(理致)이다. 더 많이 흔들리고 좀 적게 흔들릴 뿐이다.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하여 하늘에서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름에 가려져 있거나 서산 넘어 반대편 세상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태양은 언제나, 어떤 때나, 그 어디에 있다. 마찬가지로 쉼 없이 흔들리는 바다에도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왼쪽과 오른쪽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수 있는 수평선이 존재하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한 줄기 빛으로 방향의 기준이 되어주는 등대가 있다./신연우(사진작가)

2020-12-28

콩나물시루

아내가 관여하는 단체에서 장난감 같은 콩나물시루와 나물 콩을 받아들고 들어왔다. 시루 안 지름이 겨우 12센티밖에 되지 않아 두 식구가 한번 먹을거리도 되지 않을만하게 작았다. 호기심 반, 장난 반의 심정으로 콩을 하루 동안 물에 담갔다 시루에 안쳤다.시루를 식탁 의자 위에 올려놓고 오가며 심심풀이로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콩나물 머리가(대가리가) 커지고 줄기가 나오며 시루 위로 솟구쳐 올라와 무너지려 하였다. 처음 시도하다 보니 요령 없이 콩을 너무 많이 넣은 것이다. 임시변통으로 반 뼘 높이로 테를 매고 나서 사흘이 지나자 또다시 넘어지려고 하였다. 그러자 아내가 묘수를 부린다. 돌아가신 장모님도 이렇게 했다며 짚을 들고 들어와 촘촘하게 묶어주었다. 그러나 자라는 속도를 제어할 방법이 없어 이제 겨우 콩나물 모양을 하고 있는, 넘치는 부분을 뽑아 실로 60년 만에 기른 콩나물국을 끓여 먹었다.밭이 구멍가게이고 텃밭이 반찬가게이던 1960년대 시골에서는 추수를 모두 끝내고 한해 양식인 김장을 담고 나서는 집집마다 콩나물시루를 안쳤다. 한 번에 안치면 한꺼번에 자라 나중에는 발이 길게 자란 뻣뻣한 놈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맨 아래에는 생콩을 깔고, 중간에는 하루 동안 물에 불린 콩을, 맨 위에는 싹이 터서 자라기 시작하는 콩을 올렸다. 안방 따듯하고 그늘진 장소에 두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오가는 식구마다 수시로 물을 주어 키웠다. 가지런히 올라오면서 노란 머리에 모자를 반쯤 벗은 모습이 귀여웠다.추수 후에나 잠시 먹을 수 있었던 하얀 쌀밥을 콩나물국에 말아 김장김치를 올려 먹을 때 정말 맛있고도 행복했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물질의 풍요 속에 희망을 잃어버린 채 흩어져 지내는 오늘보다는, 조금 헐벗고 배고팠지만 기다리는 희망 속에서 가족 간에 사랑을 나누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장난감 같은 콩나물시루 하나가 타임캡슐이 되어 육십 년 세월을 갔다 왔다 하게 한다. /류대열(경주시 외동읍)

2020-12-28

첫눈

11월 27일 올겨울 첫눈이 왔다. 종일 오더니 많이도 왔다. 11월에 폭설이 내린 것은 1966년 11월 2일 이후 처음이란다. 무려 19.4cm를 왔기 때문이다. 겨울 채비로 황량했던 대지도 나무도 흰 솜털 이불을 덮은 것 같다. 갑자기 하얗게 채색된 사위(四圍)가 동화(童話)속의 나라를 연상케 한다. 옛날, 어린 시절 겨울 어느 날, 고향 집, 아침에 일어나면 장독대 위에 하얗게 쌓여 있던 눈, 첫눈만 보면 단숨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동화 속의 나라가 거기쯤일까. 동화속의 나라라면 북유럽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 눈의 나라들에서는 눈을 나타내는 말이 3백여 개나 된다지. 눈을 사랑한 연고일 것이다. 그중에 첫눈은 연인이라는 말도 있겠지.이곳, 토론토, 우리 집 주위, 며칠 전까지 푸르던 나뭇가지는 어느새 눈꽃을 이고 있다. 날씨가 조금만 풀리면 금방 떨어질 눈꽃이지만 절세의 미인이 따로 없다. 사진을 찍었다. 눈이 부시다. 저리도 희고 깨끗한 순백(純白)에 내 마음마저 경건해진다. 다 덮었다. 지상의 잡다한 것들을 포용한 저 순백, 순진무구(純眞無垢), 그래서 더 아름답다.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덮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한다. 순백을 생각하면 신부의 드레스를 빼놓을 수 없다. 신부의 드레스가 순백이어야 할 이유를 눈꽃에서 본다. 순결한 신부, 그는 눈꽃과 같으리라.11월 말부터 겨울이 우기(雨期)인 이곳 캐나다는 사나흘이 멀다 하고 눈이 올 것이다. 그러면 도로 위의 눈은 아스팔트와 함께 짓이겨져 흉한 색깔로 변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눈이 원수가 된다. 천대받는 눈이 된다. 제발 눈이 그만 왔으면 한다. 그래도 나는 첫눈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으리라. 아스팔트 위의 눈이 아닌 저 능선을 덮은 하얀 눈을 보리라. 첫눈에 반해서 사랑하고 결혼했다는 청춘남녀와 같이 첫눈이 준 설렘과 환상을 버리고 싶지 않다. 순백의 저 눈이 이 세상의 온갖 고통을 다 덮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첫눈의 감상에 젖는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12-28

우리 집 그녀 이야기

옥상에 그녀가 산다. 이른 봄부터 부지런을 떨어 꽃망울을 맺어 우리 집 옥상을 환히 밝히는 예쁜 그녀, 미니장미. 6월 어느 날 꽃을 잘 기르는 친구에게서 화초를 튼튼하게 해 준다며 비료를 선물 받았다. 한창 꽃을 피우는, 기특하고 예쁜 그녀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 영양제라 생각하며 비료를 한 움큼 넣어주었다.그런데 아뿔싸, 애정이 넘쳤는지, 손이 너무 컸는지, 나의 일방적인 애정행각으로 의도치 않게 꽃이 마르고 초록 잎이 연두로 변하면서 우수수 낙엽 지고 쪼그라들었다. 한창 꽃 필 시기에 황량하게 말라버린 그녀를 보며 어쩌면 우리 애들 키울 때도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았는지, 애들이 원치 않은 방식으로 내 사랑을 강요하며 애들을 쪼그라들게 하지 않았는지, 많이 반성했었다.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국화와 구절초의 계절인 가을도 지나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왔다. 옥상의 꽃들이 거의 다 사라진 뒤라 옥상으로 향하는 나의 발길도 점점 뜸해졌다. 그러다 엊그제, 얼마나 추운지 어떤 외투를 입고 외출하는 게 좋을지 알아보러 옥상에 잠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여름과 가을 내내 힘없이 늘어져 있던 미니장미 줄기에 발갛게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칼바람을 맞고 일조량도, 물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녀 혼자 씩씩하게 피어 있었다. 애썼다 애썼어.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꽃 피워야 할 시절에 나의 실수로 마르고 사그라들어 죽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었는데,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 이 차가운 겨울에 다시 꽃을 피워줬구나.두두물물이 스승이라더니, 예쁜 미니 장미에게서 삶의 의지와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꽃 피우는 자세를 배운다. 그리고 우리 애들도 어설픈 내 사랑을 잘 승화해서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꺾이지 않고 힘차게 살아남아 장미 같은 삶을 꽃피우길 희망해 본다./이홍숙(경주시 안강읍)

2020-12-28

밤이 꿈꾸는 낮, 빛이 꿈꾸는 어둠

꿈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내가 꾼 꿈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고 있다. 꿈은 논리보다는 비논리에, 이성보다는 비이성에,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영역에 놓인다. 이러한 꿈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도가 예로부터 꾸준했었다.신화와 구전, 역사적 사실 속에서 꿈을 통한 앞날의 예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던 시도였다.여기서 더 나아가 꿈을 좀 더 체계적이며 이성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려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으니,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그것이었다. 프로이트는 동명의 책에서 무의식의 작동체계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무의식의 기저를 찾고자 했다. 쉽게 말해 무의식(꿈)이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찾고자 한 것이다.동양에서는 꿈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랐다. 꿈에 대한 이성적이거나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하기 보다는 그것을 고유 영역에 두고자 했다. 또한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 자체를 허물어 뜨리기도 한다.접근 방식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꿈의 세계를 완전히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그것을 명징하게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문학과 연극, 미술과 음악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꾸준히 시도되고 있는 작품들을 볼 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영화에 있어서도 꿈에 대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꿈에 대한 대표적 영화를 꼽으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몇 년 전 곤 사토시 감독이 꿈의 영역에 대해서 파고들었던 영화가 있었다. 바로 ‘파프리카’다. 영화 ‘인셉션’이 2010년 개봉을 했고, ‘파프리카’가 2006년 개봉을 했으니 4년이 앞선 셈이다.곤 사토시 감독의 ‘파프리카’를 먼저 접했던 이들에게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을 보면서 많은 비교를 했으리라고 짐작된다. 두 영화는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꿈에 대한 설정에서부터, 타인의 꿈 속으로 잠입하는 내용과 몇몇의 장면은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영화 ‘파프리카’는 꿈과 현실의 이분화된 세계관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인셉션’은 여기서 더 들어가 꿈의 다양한 층위들을 배열한다. 물론 그 배열된 층위들은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파프리카’가 두 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면 ‘인셉션’은 최소 2개 이상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꿈 속의 꿈을 통해 현실 세계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인셉션’이라면, ‘파프리카’는 잠식된 무의식(꿈)이 현실에 발현되면서 꿈과 현실의 기반이 무너진 지점을 영화화 했다. 그렇기에 ‘파프리카’는 난해한 꿈의 형상화에 치중하고 있으며, 비논리적인 꿈의 시스템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그래서 장면은 곧잘 반복되고, 해결하고자 하는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여기에 대사들 마저 비논리적이니 꿈의 표현에 있어서는 ‘파프리카’가 훨씬 탁월한 부분을 지닌다.‘인셉션’은 가장 낮은 층위(가장 깊은 꿈 속의 꿈)에서 순차적으로 깨어남(킥)으로 사건을 단계적으로 해결한다. 흔히 크리스토퍼 놀란을 ‘레이어(층위)’를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칭한다. 그의 레이어는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공간의 나눔이다.‘인셉션’의 단계적 해결방식에 비해 ‘파프리카’의 해결 방식은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상황은 꿈과 현실이 뒤섞여 어느 지점이 꿈이며 어느 지점이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꿈을 꾼다기보다 현실이 꿈에 의해 잠식당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꿈은 고유의 영역을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에 침입한다. 영화의 스크린을 통해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웹사이트를 통해서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며 밀려들기 시작한다. 분명히 우리는 꿈을 꾸었지만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 못하는 것과 같이 분명히 영화를 보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크리스터퍼 놀란 감독이 꿈의 웅장하고 체계적인 표현을 이루었다면, 곤 사토시 감독은 꿈의 난해함을 난해한 상태로 표현하고자 했다. 마치 꿈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접근 방식과 장자의 ‘호접지몽’과 같은 방식으로 각각의 영화가 표현되었다고 하겠다./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0-12-28

말로 다할 수 없는 기도들… 완주 화암사(花巖寺)

꿈결에 다녀온 듯 어렴풋하지만 문득문득 사진첩을 펼쳐보듯 생각나는 절이 있다. 아름다운 오솔길, 속세를 등진 고독감이 눅눅하게 온몸으로 배어들던 산사, 나는 벼르고 별러 마지막 산사 기행을 화암사로 정했다.새파랗던 청춘이 고스란히 살아서 반겨줄 것만 같아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멀고 먼 길을 달려 불명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모든 기대감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넓은 주차장과 맞은편으로 뚫린 포장길 앞에서 변화의 예감은 적중했다. 신비롭던 오솔길은 넓고 완만해졌으며 가랑잎의 뒤척임조차 없이 산길은 적적하기만 하다. 도솔천을 찾아가듯 몽환적이던 그 가을날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오솔길에 취해 홀린 듯 따라가면 별천지처럼 숨어 있던 절, 화사한 단풍 속에서도 유난히 외로워 보이던 산사였다.계곡물도 폭포수도 하얗게 얼어붙었다.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고로쇠나무 한 그루가 귀 기울이며 들을 뿐, 겨울 숲은 고요하다. 산은 가파르지만 길은 끝까지 친절하다. 나는 군데군데 잉크자국이 번진, 젊은 날의 일기장을 펼쳐보듯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일말의 기대마저 무너져 내리지 않기를 기도한다.그토록 다시 보고 싶었던 화암사 앞에서 선뜻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한참이나 서서 그 옛날을 회상한다. 먼 속삭임들이 하나 둘 마중을 나오고 나는 몇 미터 앞에서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기억들을 조립한다.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잘려나갔지만 그 옛날의 애잔함은 보이지 않는다. 자기의 세계가 확고한 선비처럼 반듯하다.밤 새 눈발이 날렸나 보다. 응달에 남아 있는 잔설을 뒤로 하고 절로 향한다. 사찰의 규모에 비해 높고 큰 우화루가 요새처럼 든든하게 앞을 가로막는다. 절의 배치로 보자면 우화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가는 게 제일 흔한 방법인데 이곳 우화루는 반누각식으로 만들어져 아랫부분은 돌벽으로 막혀 있다. 요사채처럼 보이는 행랑채에 크지 않은 문이 있어 마치 여염집을 연상시킨다.요사채 댓돌 위에 놓인 털신 한 켤레와 스님의 지팡이로 보이는 알루미늄 폴대가 벽에 기대어 있을 뿐, 인기척이 없다. 겨울바람 홀로 우화루 처마 끝에서 풍경을 타고 논다.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 그 이름 앞에만 서면 왜 쓸쓸하고 처연해지는지 모르겠다. 지독히도 고독해 보이던 옛 기억과 달리 절은 엄숙하고 평온한 적요에 잠겨 편안하다.주인 없는 집을 기웃거리듯 조심스럽게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ㅁ자 형식으로 전각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다.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주법당인 극락전이 제일 높게 자리하고, 마주보는 우화루와 그 옆에 적묵당이 서열대로 키 높이를 달리한다. 탑 하나 없는 마당과 적묵당에 딸린 부엌문 때문인지 절집이라기보다 자식을 대처로 떠나보낸 노부부가 살아가는 시골집 같기도 하다.한마음으로 둘러앉은 어깨들 사이로 깊고 깊은 깊은 시간들이 살아간다. 절의 배치가 안정적이면서도 신비롭다. 외부의 나쁜 기운이 함부로 기웃대지 못하도록 경계라도 하듯 절은 폐쇄적일 수도 있다. 겨울 햇살 몇 줄기가 떨고 있는 우화루의 거친 마룻바닥, 투박한 나뭇결이 아름다운 목어, 적묵당 기둥에 박혀 있는 나비 모양의 짜깁기까지, 누수된 세월의 흔적들이 가슴을 뭉클거리게 한다. 무욕(無慾)의 작은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가 서로를 향한 저 공(空)의 눈빛들에서 나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맛본다.국보 제 316호 극락전은 화암사의 주불전으로 중국과 일본의 건축에서 쓰이는 하앙 기법이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서까래가 빠져나온 처마, 그 밑에 길게 가로 놓인 처마도리 밑으로 조각된 용머리들이 보인다. 그것이 하앙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건축에 주로 쓰였지만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절에 대한 연혁은 전해지는 게 없고 조선 초에 세워진 중창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머물며 수도했다는 내용만 전해진다.적묵당 차가운 툇마루에 앉아 처마 끝으로 와 안기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적막한 숲에도 여름이면 별들이, 겨울이면 새하얀 눈들이 소리 없이 화암사 안마당에 내려와 예불을 볼 것이다. 산 속에 앉아 있으면서도 숲을 등지고 내면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절, 바위 위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 같은 사찰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고요 속으로 나는 빠져들어 간다.조낭희 수필가극락전 법당 안은 바깥보다 훨씬 춥다. 손과 발이 시리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백팔 배를 시작한다. 다시 시작된 1년 4개월의 기행, 돌아보니 부처님의 자비로 충만했던 날들이었다. 날마다 백팔 배로 나를 돌아보고 하루를 접는 일은 이제 일기를 쓰듯 자연스러워졌다. 남은 세월도 소를 찾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로 한 걸음씩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다.나의 청춘이 쫓기듯 불안했다면, 지금은 새로운 희망과 목표가 있어 든든하다. 짧은 나와의 조우가 행복하다. 뒤안에서 일렁이는 대나무 숲, 한 자 한 자 떨어져 앉은 극락전 현판, 요사채를 지키는 늙은 모란에게도 두 손을 모은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기도들이 내 안을 채우자, 우화루 처마 끝에서 다시 풍경이 울어댄다.끝

2020-12-28

동학개미와 서학개미

동학개미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주식 시장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2020년 초들어 코로나 19 사태로 외국인 투자자가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국 주식을 팔며 급락세가 이어지자 이에 맞서 개인투자자들이 적극 매수에 나섰다. 외국 기관과 외국인에 맞서 매물을 힘겹게 받아내는 개인 투자자들의 모습이 마치 1894년 반외세운동인 ‘동학농민운동’을 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동학개미’다.실제로 하락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1월 20일부터 3월 31일까지 동학개미들의 순매수 규모는 코스피 19.9조원, 코스닥 2.3조원에 이르며, 고객예탁금의 경우 1월 20일 28.1조원에서 3월31일 43조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이들은 2000선을 넘었던 코스피지수가 1430선까지 주저앉았던 3월에만 코스피 시장에서 11조원 넘게 주식을 사들였다.이에 반해 ‘서학개미’는 국내주식을 사모으는 ‘동학개미’에 빗댄 표현으로, 미국 등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를 일컫는 말이다.특히 미국 증권 시장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투자한 1위 기업은 테슬라로, 2위인 애플보다도 2배나 많은 금액이다. 테슬라의 2020년 3분기 실적을 보면 이익은 2분기 대비 +60%, 마진율은 27.7%(2분기 21%), 현금유동성도 13억9천5만달러(2분기 대비 234% 증가)에 이르니 서학개미들이 환호할 만 하다.재미있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적극적으로 주식 매수에 나서는 개인투자자를 미국에서는 ‘로빈후드’, 일본에서는 ‘닌자개미’라고 부른다니 어느 나라할 것 없이 외국인 투자자에 맞서 자국의 증시를 떠받치는 행위를 높이 평가하는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