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복지회관 한 켠에 ‘울릉도 출어 부인 기념비’라는 비석이 자리 잡고 있다. 비석에는 협재리 대한부인회가 1956년에 설립했나느 내용과 함께 뒷면에 30여명의 해녀 이름이 빼곡이 적혀있다. 1950년대 울릉도와 독도에 출어 했던 제주 한림읍 협재 해녀들의 이름이다.
제주 해녀들은 왜 울릉도를 거쳐 독도까지 출어했을까? 제주도와 한라일보가 공동 발간한 제주 출향 해녀 발취를 기록한 ‘저 바당에 그리움의 세월을 묻다’라는 책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실려 있다. ‘독도 화포채취 작업 시상식 기념’‘대한상무회 울릉군 연합분회’라는 글귀와 함께 1964년 7월 19일 날짜가 새겨져 있다. 독도 어업사에서 중요한 사진이다. 화포는 미역을 말한다.
지난달 25일 울릉문화유산지킴이 50차 모임에서 ‘울릉도·독도 해녀이야기’라는 주제의 분임조 발표가 있었다. 울릉도에서 열린 그리고 울릉주민에 의한 첫 해녀 재조명 자리이었다.
직접 제주도를 방문해 독도에 출어한 협재리의 김공자 해녀의 생동감 있는 여러 이야기를 들었고, 울릉도 도동에 거주하는 제주 출신 해녀들 몇 분을 인터뷰하는 등 현장감 높은 발표였다. 김공자 해녀는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제주 해녀 30여명을 모집해 울릉도를 거쳐 독도로 물질을 갔다고 증언했다. 또한 1952년에는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이 제주 해녀 10여명을 조사목적으로 고용해 활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 번에 30~40명의 해녀들이 1950~60년대 당시에 어떻게 독도에서 생활했을까? 해녀들의 증언에 따르면 서도에 지하수가 샘솟는 큰 동굴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바로 독도 서도 북서쪽에 위치한 독도에서 유일하게 지하수가 산출되는 물골을 말한다.
제주 해녀들은 이곳 물골에서 생활하며 식수를 얻으며 한 번에 많게는 몇 달간의 독도 생활을 이어갔다. 또한 물골의 샘을 지키는 신에 대한 감사 표시로 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물골에 있는 동자석 모양의 산신에 제를 지내는 등 물골의 존재를 소중히 여겼다 전한다.
제주 해녀들의 독도 출어는 독도 첫 주민 최종덕을 만나면서 보다 활발해진다. 울릉도 도동어촌계와 독도 어장권을 계약한 최종덕은 1964년부터 김공자, 고순자 등 제주 해녀들을 고용해 독도에서 수개월간 상주하며 어업활동을 이어갔다.
최종덕은 제주 해녀들과 함께 1966년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물골을 정비하고, 현재의 서도 주민숙소 자리에 어민보호소를 신축하기도 했다.
제주 출향 해녀들은 독도에서 어업활동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라 1960~1980년대 당시의 열악한 독도경비 활동 및 독도 행정 강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물골 계단 정비공사, 독도경비대 삭도 공사 등 각종 독도 시설정비공사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제주 한림 출신의 고 김화순 해녀는 1982년 독도경비 중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순직한 독도경비대원 시신 인양공로로 울릉경찰서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해녀들의 독도에서 물질 한 회 한 회가 삶의 터전으로써 독도를 지키는 행위 그 자체였다.
독도 주민 김성도(1940~2018)씨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독도 주민 김신열씨 또한 제주 한림 출신 해녀이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그리고 89개의 크고 작은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89개의 부속도서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바위가 바로 동도 남쪽에 위치한 해녀 바위이다. 제주 출향 해녀들의 독도에서 고단한 삶이 그나마 남아 있는 흔적이다.
김공자 해녀와 울릉도 도동에 거주하시는 한영숙 해녀는 독도에서 바다사자(강치)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김공자 해녀가 바다사자를 안고 있는 사진은 독도 어업사에서 중요한 기록의 한 장면이다. 울릉도 행정중심지인 도동에는 몇 해 전부터 강치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강치 거리에 해녀들의 이야기를 불어 넣을 필요가 있다. 울릉도 도동은 저동항이 아직 발달하기 전 독도로 출어하는 해녀들의 대합실이었다. 제주 출향 해녀들은 아직도 1960~70년대 도동의 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해녀문화와 울릉도·독도와의 다양한 교류활동도 필요하다. 울릉군 도동읍과 제주 한림읍간의 마을 교류 사업도 생각해 봄직하다. 협재리 복지회관 한 켠에 세워진 기념비에 설명문 하나 없는 것도 아쉽다. 현재 울릉도에는 제주 출신 해녀를 포함한 10여명의 나잠어업 종사자가 있다.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고려하여 다양한 지원 대책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온 몸으로 울릉도·독도 바다를 지켜온 분들이다.
또한 독도 출향 해녀들의 활동을 포함한 체계적인 ‘독도 어업 활동사’ 기록화 작업이 필요하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에서는 2022년 상반기 독도전용소형조사선 독도누리호 취항을 계기로 지역 어촌계와 협력해 독도 연안 해양수산자원 관리 및 이용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