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 시절엔 부지런히 교회를 드나들었다. 함석지붕의 단층 목조건물과 나무기둥의 종각이 있는 작은 교회에는 낡은 풍금도 있었다. 산과 들 말고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청소년들에게 더없이 좋은 만남의 장소였다. 교회의 청소나 페인트칠 등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청소년들이 맡아서 했는데, 그 중에서도 성탄절행사 준비가 가장 큰 일이었다. 소나무를 베어와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대나무 뼈대에 창호지를 발라 별모양의 등을 만들었다. 저녁마다 모여 유초등부 어린이들에게 성극과 무용, 합창 연습도 시켰다. 한밤중에 오들오들 떨면서 촛불을 켠 별등을 들고 먼 마을까지 새벽송을 갔던 일도 잊지 못한다.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 문학이니 철학이니 독서에 빠져들면서 교회를 떠났지만 해마다 성탄절이면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 살을 에는 삭풍에 문풍지 우는 밤이면, “까막까치 다 얼어 죽겠다.” 할머니는 그렇게 짐승들 걱정을 잊지 않았다. 요즘처럼 방음장치 된 이중 창문 안에서는 밖에 태풍이 불거나 난리가 나도 모르겠지만 옛날 창호지문으로는 낙엽 지는 소리 달빛에 수런대는 댓잎소리도 환히 들렸다. 방안에 누워서도 한 호흡으로 자연과 소통하니 어찌 날짐승들 안부인들 궁금하지 않겠는가.
단간 셋방에 신접살림을 차려 첫 아이를 얻은 해 겨울이었다. 한파가 닥쳐 밤새도록 전신주가 울부짖고 깨어질 듯 창문이 덜컹대는 밤이었다. 무심결에 ‘까막까치 다 얼어 죽겠네’ 중얼거리다 문득, 낮에 본 시장 바닥의 거지 모자가 생각났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듯한 여자가 두어 돌이 되었을까 싶은 아이와 함께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시장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린것이 이 밤을 넘길 수 있을까, 생각하니 하얗게 잠이 달아났다. 내 아이는 기침만 해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혹한을 몰아오는 칼바람에/ 밤새도록 전신주가 울부짖고/ 깨어져라 창문이 덜컹댄다// “문 열어라 이놈들아,/ 너희만 살면 다냐?”// 시장 바닥에 실성한 그 여자/ 두어 돌이 되었을까 싶은 어린것과 함께/ 이 밤 무사할까, 얼어 죽지나 않을까”- 졸시 ‘겨울 밤’
이튿날 아침에 찾아가보니 먹을 것을 얻으러 갔는지 여자는 보이지 않고 아이 혼자 사시나무처럼 떨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읍사무소 사회과로 전화를 해봤으나 아무 대책이 없다고 했다. 몇 군데 교회에 전화를 해서 겨울 동안만 데려다 놓을 수 없겠느냐고 했지만 역시 안 되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교회 청년들을 불러 의논을 했다. 권사인 장모님의 간곡한 청을 거절할 수 없어 결혼 후 건성으로 다니던 교회였다. 텐트가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 히말라야 눈 속에서도 텐트로 야영을 하지 않던가. 주머니를 털어 시내로 텐트를 사러갔다. 사정을 얘기 했더니 텐트 값을 많이 깎아주었다.
시장 귀퉁이에 텐트를 치고 바닥에는 두꺼운 스티로폼을 깔았다. 오줌에 절은 누더기도 버리고 깨끗한 이불로 갈았다. 따끈한 호빵을 한 봉지 사서 안겨 주었더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어둠이 내리고 희끗희끗 눈발이 날렸다. 성탄전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