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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형 스마트시티, 삶의 질 바꾸는 전환점 되길

대구시가 구상하는 대구시의 스마트 도시계획이 국토부의 최종 승인을 얻었다고 한다. 삶터와 일터가 행복한 스마트한 대구라는 비전으로 수립된 이 계획은 앞으로 2025년까지 총 5천869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면서 대구시의 각종 도시환경을 첨단방식으로 바꾸게 된다. 대구시는 교통, 안전, 환경, 복지, 경제, 행정 등 6개 중점분야에 26개 도시 서비스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첨단교통 시스템, 자율주행 버스 운행, 제조공정 혁신, 스마트 관광 인프라 개선 등 분야별로 최첨단을 활용한 도시기능들이 본격 작동하게 된다는 의미다. 동시에 경제적 투자효과도 높아 이 사업이 시작되면 대구시는 산업생산 유발효과 1조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4천400억원, 고용 유발효과 4천500명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스마트시티 사업은 첨단정보통신기술(ICT)를 이용해 도시생활 속에서 유발되는 교통, 환경, 주거 등 생활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여 도시민이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게 하는 똑똑한 도시 만들기가 목적인 사업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스마트시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산시와 세종시가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로 선정돼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의 스마트시티 사업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도시마다 필연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다. 스마트시티의 내용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그 도시의 미래 모습이 결정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구시의 스마트시티 조성을 위한 밑그림이 그 윤곽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첨단도시 대구의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대구형 스마트시티 사업이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첨단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대구의 새로운 경제동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권영진 대구시장도 이와 관련, 스마트 도시 조성과정에 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스마트시티 사업이 시민의 삶의 질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동시에 여기에 투입되는 첨단정보통신기술이 지역의 새로운 경제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금상첨화다. 대구형 스마트시티 출발에 기대가 크다.

2021-04-07

청춘으로 빛나게 하라

장규열한동대 교수산고 끝에 시장이 선출되었다. 선거과정에서 세대와 성별, 직업을 씨줄과 날줄로 살피며 투표성향을 예측하곤 하였다. 특별히 주목을 받는 연령층이 두드러졌다. 20대와 30대. 청춘과 낭만의 한 가운데를 달릴 것이라 여겨져서 늘 꿈틀거림과 변화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인생의 계절을 지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통상 미래를 내다보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며 문화적으로도 사회의 변화를 이끌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아도 창창한 미래를 내다보며 사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세대라 생각하였다. 그런 그들이 바뀌었다고 한다. 진보에서 출발했던 그들의 현주소가 중도마저 냉큼 건너 보수를 향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그들에게 이념은 죽은 물건이다. 21세기 디지털과 나노, 광속과 초연결의 세계에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낡아빠진 쓰레기더미와 같다. 어떻게 사람이 한 가지 통념에 주소를 정하고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좌표를 가질 수가 있다는 말이냐. 시시때때로 바뀌며 헤아릴 수 없는 부침을 거듭하는 시대의 역동성을 구세대는 도대체 알기나 하는지. 보아하니 당신들이 쌓아 올린 기득권적 가치에 매몰되어 구시대적 경쟁과 허무맹랑한 말싸움이나 거듭하는 건 이쪽도 저쪽도 마찬가지인 걸! 지난 시절에 겪은 역사나 되뇌이며 ‘너희들은 모르는’ 엄청난 이념과 가치라도 가진 듯 휘두르는 건 그냥 허세와 허구였음이 거의 판명되고 있는 걸. 오늘 20대와 30대는 목이 마르다. 이념과 사상에 굶주린 게 아니라 꿈과 희망에 목이 마르다.민태원이 ‘청춘예찬’에서 젊은이의 특권이라 노래했던 이상(理想)은 생각도 해 보기 전에 불편과 궁핍이 떠오른다면 그 어느 이념과 가치가 그들을 붙들어 맬 것인가. 오늘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겐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는 이생망이며 헬조선이었는데 이제는 ‘영끌’과 ‘빚투’가 목을 조인다. 그러니 앞에 선 누구도 맘에 들 까닭이 없으며 청년을 위한 정책에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목을 축이는 몇십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기대하며 달려갈 미래를 보여달라는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가. 그들이 보수로 돌아선 듯 보이는 저 움직임은 이념을 거부하겠다는 최후통첩이 아닐까. 실용과 즉답으로 가득한 세상에 에둘러 표현하는 불편함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닌가. 정치와 문화, 경제와 사회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생각이나 하는가.용감하게 선거에 나서 시장에 선출된 이들에게 축하하기에 앞서, 오늘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다음 선거에나 관심이 있었다거나 시장직은 징검다리였다는 조짐이 보인다면, 우리는 어김없이 당신을 저주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뽑아준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충실한 공복이 되어, 도시민 모두를 위한 맨 아랫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시라. 당신에게 표를 모아준 젊은이들을 꿈에도 잊지 않는 시장이 되어 약속대로 멋진 도시를 만들어 주시라. 20대와 30대가 세우는 도시를 기대한다. 젊은이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1-04-07

순천 기행

김규종 경북대 교수꽃이 피고 지는 계절에 길 나서는 일은 축복이다. 울산 친구가 잠시 기거하는 순천을 목적지로 길 떠난다. 서울에서 오는 친구를 순천역에서 마중하여 상사면으로 동행한다. 그 좋던 날이 연이틀 비와 구름과 습기로 촉촉하다. 상사호(上沙湖) 벚꽃길에 넘치게 떨어진 희고 분홍의 이파리들이 우리 발목을 잡는다. 낙환들 꽃이 아니겠느냐, 하는 심정으로 녀석들을 본다.여정은 선암사로 이어진다. 태고종 본산으로 승선교(昇仙橋)로 유명한 선암사.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승선교는 언제 보아도 아름다움과 온유함으로 질리는 법이 없다. 반원형의 원만한 모습은 태생적으로 날카로운 나의 부족한 면모를 여지없이 일깨운다. 비는 혹은 굵게 혹은 가늘게 내리기를 되풀이하면서도 멈추는 법이 없다. 그래도 어이 하랴, 이 좋은 봄날의 향연을!절집을 돌다가 각황전 마루에 앉아 농반진반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데, 방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노스님이 나오신다.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하는데, 온화한 낯빛의 스님은 싫은 기척이 없다. 그래서 “이런 고적함을 어찌 견디십니까”하고 여쭈었다. “그저 인내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지요”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단양 사인암에서 만난 젊은 납자(衲子)의 대답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고독이란 수행자의 도반인 모양이다.우리는 순천만 갯벌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주말이지만 코로나와 봄비로 습지를 찾은 사람은 많지 않다. 고요함과 넉넉함을 누릴 수 있는 행운에 감사드리며 뻘밭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칠게와 짱뚱어가 돌아다니는 회색의 두툼한 뻘밭에 뿌리를 내린 갈대는 아직도 지난 계절의 호흡으로 살고 있다. 숱한 생명이 영역을 구획하여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장면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것이었다.친구가 낙조를 완상한다는 해변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런 날에 낙조는 불가능하지만, 분위기는 느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썰물로 드러난 작은 섬 좌우로 비어버린 바다는 적막하고 쓸쓸했다. 하지만 비어있음과 적요로 인한 처연한 아름다움은 상념을 일으켰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한다. 그래, 망상과 몽상으로 점철된 일평생과 어찌 쉽게 작별할 수 있겠는가?!귀로에 들른 한식당의 은성(殷盛)한 실내등과 화사한 분위기는 술과 음식을 구하는 길손에게 오아시스처럼 느껴진다. 아, 그런데 희한한 녀석이 시중드는 아주머니와 함께 오는 게 아닌가! ‘아니, 저 녀석은 뭐지?’ 말끔하게 생긴 인공지능 로봇이 반찬이며 술병과 그릇을 빼곡하게 담고 아주머니를 따라오는 것이다. “저,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나의 부탁으로 로봇은 오던 길 돌리더니 다시 우리 곁을 찾는다.인구 28만의 순천에서 진귀한 구경을 한 게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변화의 실마리를 500리 너머에서 찾았으니, 멀리 와서 답을 찾은 셈이다. 지엄 화상을 만난 의상의 처지라고나 할까?! 봄날의 순천 기행은 이렇게 깊어만 간다.

2021-04-06

지역사회 디지털 성범죄, 대응체계 강화 시급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상화와 비대면 활동의 증가는 랜섬웨어의 확산, 개인정보 유출 등 사이버 보안 위협 증가,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의 증가 추세를 지속하게 하고 있다.또한, 다크웹 및 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정보가 지속적으로 유포되어 아동청소년성착취정보·불법촬영물·딥페이크 등 개인의 사생활과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여성가족부에 의하면 디지털 성범죄는 2010년 1천153건, 2019년 5천893건으로 5배 증가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휴대폰, 카메라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성범죄로서 불법촬영물의 제작, 유포, 소비, 참여를 내용으로 하는 범죄이다. 불법촬영물의 제작, 유포, 소비, 성폭행, 협박 등 오프라인에서의 범죄도 포함, 유포된 불법영상물의 완전 삭제의 어려움 등으로 피해자의 고통이 매우 크며, 불법촬영물 유포를 수익모델로 사업을 하는 인터넷 사업자들이 증가한 점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고 딥페이크(Deepfake) 포르노와 같은 불법 영상합성물 제작 및 유포 또한 디지털 성범죄 특유의 전형적인 피해양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신속한 피해예방조치는 물론 피해 여성들에 대한 적절한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이를 위한 선진 정책 사례로 미국은 유포와 관련된 법안으로 2004년 뉴저지에서 처음 입법되었고, 2020년 현재 40개의 주 및 워싱턴 D.C.에서 관련한 법규를 두고 있다. 호주 사우스 오스트일리아주(SA)는 2013년 디지털 성폭력 범죄에 의해 성폭력 범죄로 형사 처벌하는 법률 발의하였다. 2018년은 ‘온라인안전강화법 2018’으로 개정하여 내용을 더욱 강화했으며, 피해자가 장기간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아도 신속하게 자료를 삭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독일은 2004년에 이뤄진 개정 전 사생활 영역을 일반적인 사생활 영역과 노출된 신체나 성행위와 관련된 은밀한 사적인 생활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2004년 개정 이후 고도의 사적인 생활 영역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추가하여 범죄에 의한 피해 범위와 의미를 더욱 확장하고, 2015년 다시 조항을 개정하여 촬영 행위 자체가 침해 여부와 관계 없이 유포한 경우는 처벌이 가능하게 되었다.해외 사례에서 제시하였듯이 국가차원에서 디지털 정보의 활용 및 접근과 관련된 종합적인 교육에 관한 법률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디지털 정보 교육 정책 추진에 관한 적극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과 연계하여 피해영상물 재유포 확산을 신속히 차단하기 위해 영상물 데이터 유형과 특성, AI 알고리즘 등 기술적 구현이 필요하다.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을 통해 피해영상물을 신속히 찾아내어 삭제하고,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필요하다.아울러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관련 기술적 지식 피해자의 보유 및 심리를 공감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확보되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영상물을 누가 주체가 되어 보관 및 관리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 뿐만 아니라 예방의 관점에서 법과 정책적 대응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2021-04-06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4년 어느 잡지에서다. 이후 1987년 이문열의 소설 ‘구로 아리랑’에서도 이 말이 사용됐지만 당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그러나 이 말의 본격적 유행은 1996년 어느 여당 정치인의 입을 통해서다. “내가 땅을 사면 투자요 남이 땅을 사면 투기라는 말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하면 숙달운전 남이 하면 얌체운전” “내가 하면 오락 남이 하면 도박” 등 여러 가지 말로 패러디되어 유행하는 일이 벌어졌다.역대 정권 가운데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을 가장 많이 받은 정권을 손꼽으라하면 문재인 정부가 단연 일등이다. 29번 야당 패싱의 장관 임명이나 탈원전 같은 여당 독주 정책을 감행한 것 등은 야당 시절의 그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 조국사태와 관련 조로남불이 튀어나왔고 추미애 장관의 아들 휴가논란도 내로남불의 사례로 회자됐다. 최근 김상조 청와대 실장과 박주민 의원이 임대차법 시행에 앞서 전세값을 올린 것이 밝혀지면서 또다시 집권당의 내로남불이 도마에 올랐다. 오죽했으면 4·7선거를 앞두고 여당 대표가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는 자기고백식 발표를 했을까 싶다.지난해 연말 교수신문은 올해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뽑았다. 이는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뜻으로 내로남불의 한자어 표현이다. 교수들은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정치권의 내로남불이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고 평했다.최근 중앙선관위가 내로남불이 특정 정당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선거용 문구사용을 제한, 논란을 빚었다. 야당은 “불공정한 편의적 해석”이라며 반발했다. 선관위도 내로남불에 휘말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4-06

신한울 1·2호기 운영허가 더 미루지 말아야

경북도가 신한울 원전 1·2호기의 조속한 운영 허가를 정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건의했다. 신한울 원전 1·2호기는 현재 공정률 99%를 보이고 있지만 원안위 허가가 나지 않아 3년째 운영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1호기는 2018년 4월, 2호기는 2019년 2월에 각각 상업운전할 예정이었다.경북도 조사에 따르면 신한울 1·2호기의 제때 가동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3조원 가량의 공사비가 상승했고, 전기 판매 손실금, 법정 지원금, 지방세수 감소 등을 합치면 경제적 손실 규모가 약 4조5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경북도는 우리 기술로 건설한 같은 노형의 UAE 바라카 원전 1호기는 59개월만인 지난해 2월 운영허가를 받아 상업운전 준비 중에 있다며 신한울 원전 1·2호기도 조속한 운영허가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선언으로 그동안 원전과 관련한 민원은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다. 정부의 탈원전과 관련한 후속조치가 나올 때마다 원전산업의 붕괴와 경제적 손실, 산림 훼손, 주민 반발 등의 문제가 잇따라 등장했다. 국내 원전의 절반이 소재한 경북은 원전관련 민원으로 바람 잘 날이 없는 곳이다.10년간 수명연장 허가를 받았던 경주 월성1호기가 갑자기 영구 폐쇄로 바뀌면서 경제성 조작 논란까지 일으켜 주민들을 혼란케 했다. 또 건설계획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의 재개 요구 목소리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10년간 묶어놓았던 영덕 천지원전 사업이 백지화되면서 영덕군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실행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과 논의가 없어 그동안 곳곳에서 문제를 유발했다. 정부 일방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경제적 손실 등이 가볍게 취급되고 원전 지역 주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던 것이다.신한울 1·2호기는 사실상 완공 상태다. 지금이라도 운영 허가만 받으면 상업운전이 가능하다. 원안위는 더이상 운영허가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 수 조원을 들여 건립한 원전을 미루는 것 자체가 국가나 지역적으로 손해다. 순리적 결정을 하여야 한다.

2021-04-06

지역신문의 여론형성기능 公共材로 인식을

오늘(7일)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날이지만 제65회 신문의 날이기도 하다. 신문의 날은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일(1896년 4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신문업계에서는 언론자유의 실천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날이기도 하다.서울과 지방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우리 신문업계는 전반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유행이 종식되지 않으면서 상당수 신문사가 지면 감면, 유·무급 순환휴직 등을 통해 경영난을 견뎌내고 있다. 비수도권 신문사들은 코로나 여파로 지역행사나 이벤트가 취소되면서 광고·협찬수입이 대폭 감소한데다, 각종 사업도 불가능해져 설상가상의 상황을 맞고 있다.이런 상태에서 정부는 언론장악에 혈안이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조만간 언론사가 ‘거짓뉴스’를 내 보내면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국회 상임위 검토보고서도 “민법상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 제도와 중첩돼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적시했지만 막무가내다. 지난 2017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지방지 기자들과 만나 “언론의 자유는 헌법적 가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지역언론 육성을 위한 지역신문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공약은 실천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신문사의 여론형성 기능이나 뉴스제공을 육성하고 지원해야 할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해야 한다. 신문사가 매일 아침 내놓는 지역의 의제나 뉴스는 공공재(公共材)다. 공공재 가격을 시장기능에만 맡겨놓아선 안 된다.대구·경북을 비롯한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정부와 대기업지원을 받으면서 수도권 이익을 대변하는 중앙지에 맞서 지방의 논리를 개발하려면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구·경북지역과 타지역의 이익이 상충될 때, 이 지역의 이익을 여론화할 수 있는 창구는 대구·경북에 뿌리를 둔 언론사뿐이다. 그리고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문 역할을 한다. 각 가정에서는 휴대전화나 TV에 집착하는 자녀들에게 신문을 보여주면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기를 권한다.

2021-04-06

독립신문 만세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신문을 펴 본다 / 그 사면에 내 눈을 모을 만한 / 기사가 없다. 그대로 덮어둔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산다. …. 살아가는 것이란 / 차라리 / 신문을 사는 것이다.”황금찬 시인의 ‘신문을 사는 마음’의 첫연과 마지막 연이다. 시인은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없어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산다고 하였다. 시인에게 아침저녁 신문을 사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일상의 과정이었다. 어디 시인뿐이랴. 종이에 적힌 글자에 익숙한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신문은 새소식의 주요한 원천이었다.그런데 사실 새로운 소식이라고 해도 그 소식이 그 소식 아니던가. 이근삼은 이미 1961년에 부조리극 희곡 ‘원고지’에서 이를 간파하였다. 소파 앞에 널부러진 신문을 읽다가 아내가 그 신문은 삼년 전 신문이라고 하며 ‘오늘’자 신문을 건네 주자 새 신문의 기사를 읽지만 3년전 내용의 반복이다. 다음날 아침 장녀가 건네는 신문 역시 3년전 신문이나 어제 신문과 내용이 다를 바 없다. ‘원고지’는 부조리극이라는 갈래로 분류된다. 현대인의 변화 없는 생활,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날짜 다른 신문에 그대로 얹혀 있으니, 부조리라는 우스우면서도 슬픈 단어는 우리들 나날의 삶에 그 탓을 돌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부조리를 담은 부조리한 신문을 이제는 타박할 여지도 별로 없다. 종이 신문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든이 한참 넘으신 어머니는 아직도 보수색 짙은 신문을 받아보고 계신다. 내가 글자를 알던 때부터 그 신문을 보아 오셨으니 어머니는 50년은 족히 넘은 독자이시리라. 가끔씩 어머니 집에 가서 확인해 보면 거의 읽지 않으신 듯 처음 배달될 때 접혀진 그대로 신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읽지도 않는 신문이 각 가정이나 사무실에 배달되고 쌓여 가는 것이 지금 신문의 실상이다. 집까지 배달이라도 되면 다행이다. 인쇄소를 나온 신문은 신문사 지국을 살짝 들렀다가 비닐 포장에 끈이 그대로 묶인 채로 뭉치째 바로 폐지 수집소로 가는 신세가 되었다. 아직도 가끔 지하철역사 입구에서 상품권이나 자전거 등의 사은품을 제시하며 종이 신문 보기를 강권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누구 하나 신문에도 사은품에도 눈을 돌리는 이는 없다.이제 신문의 기사는, 뉴스는 종이가 아니라 컴퓨터 화면 안에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가로 6~7cm, 세로 15cm 안팎의 모바일 화면 안에 들어가 버렸다. 이를 두고 신문의 몰락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에 따르는 당연한 매스미디어의 변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125년 전인 1896년 4월 7일 오늘은 독립신문이 창간된 날이다. 독립신문은 우리 역사에서 여러 가지로 뜻깊은 신문이다. 최초의 민간 신문이자 최초의 한글 신문이고 최초로 띄어쓰기를 한 문헌이 바로 독립신문이다. 21세기의 신문도 독립신문의 혁명성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1백년 하고도 4반세기도 더 된 이른 시기에 실로 혁명적인 시도를 하였던 독립신문에 만세를 불러본다.

2021-04-06

밟고 가라, 밟고 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군대 이야기라고 한다. 3월 26일은 천안함 피격 11주기였다. 천안함 피격 사건 재조사를 두고 일어난 논란에 대해선 이 지면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생존 장병들은 패잔병이 아니라 영웅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불편해 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꼭 군대 이야기를 해야 한다.내가 군 복무를 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박왕자씨 피살 사건’,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고, 그때마다 분단 현실이라는 비극에 대해, 또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천안함이 침몰하기 17개월 전인 2008년 10월, 나는 육군 장교 생도로 영천 3사관학교에서 유격훈련을 받고 있었다.어둠 속으로 하나 둘 스러졌다 다시 나타나길 반복하는 동기들의 뒷모습은 마치 유년의 기억들처럼 손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같았다. 한나절 영천댐의 숨결을 빨아들인 밤안개가 입김을 뿜어내고, 별들은 캄캄한 하늘에서 눈을 부라렸다. 습기가 등골을 따끈하게, 때론 서늘하게 하던 자정 무렵, 쇠닻마냥 무거운 발걸음은 69번 국도에 간신히 끌려가고 있었다. 이미 유격훈련 입소 행군에서 60km를, 또 훈련 2주차 산악 행군에서 사흘간 90km를 걸은 우리에게 80km의 복귀 행군은 처절한 싸움이었다.열 시간쯤 걸었을까. 행군 초반의 패기는 사라지고, 행군을 격려해주던 영천 시민들도 모두 잠든 밤. 육체의 고통보다 견디기 힘든 건 낙오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멀리 보이는 불 켜진 집들의 온기, 동기들과 함께임에도 문득 내려앉는 외로움, 엄마… 갈증보다 더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었다. 무뎌진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뒤섞인 행군 대열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비틀거렸다.발바닥에 가득 잡힌 물집이 통증을 온몸에 전송했고, 완전군장의 무게는 점점 육체와 정신을 짓눌렀다. 포기하고 싶었다. 낙오자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를 인솔하던 훈육대장이 대열 중간까지 왔다. 나는 일부러 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훈육대장을 바라보았다.“힘들면 열외하고 차에 타라”라는 말을 기다리는데, 훈육대장이 입을 열었다. “힘드나?” 우리들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발에 물집이 잡혀 걸을 수가 없나?” 웅얼웅얼, 대답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이제 “힘든 인원은 뒤로 열외해라”라는 훈육대장의 한마디가 나올 차례, 그러나 기대가 여지없이 깨진 순간, 나는 뭐랄까, 정신의 벼락을 맞은 듯했다.“밟고 가라, 밟고 가!”그 음성을 아직 잊지 못한다. 무언가 뜨거운 게 가슴에서 솟구쳐 올라 결국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 눈물이 진주알보다 귀한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동기들을 바라보았을 때, 어둠 속에서 시커먼 위장크림을 칠한 얼굴들이 전부 눈에 횃불을 밝혀두고 있었다. 훈육대장의 그 외침이 행군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군 생활, 그리고 살아갈 모든 날들 동안 우리 앞에 나타날 숱한 장애물과 함정, 가시밭길 앞에서도 망설이지 말고 밟고 가라는,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다 밟고 나아가라는 요청임을 다들 알았던 것이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천안함 장병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천안함 피격 소식을 들었을 때 ‘최후의 5분’이라는 군가가 맴돌았다. “숨 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 다 견디며 “버티고 버텨”주기만을 간절히 바랐지만, 46명의 청춘들은 끝까지 싸우다 스러졌다. 매년 3월 26일이면 천안함 희생 장병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올해는 ‘서해 수호의 날’과 함께 치러졌다. 그런데 천안함 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는커녕 정쟁과 진영논리의 장이 되고 있다. 추모제니 재조사니 하는 ‘형식’보다, 하찮은 정치적 입장 따위보다 장병들의 희생과 헌신이라는 ‘내용’만 청년 세대에게 기억됐으면 한다. 화염에 싸인 조타실 안에서 죽음의 순간까지 키를 놓지 않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처럼 청년들이 캄캄한 현실의 절망을 돌파해내고자 한다면 그 용기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추모가 될 것이다.LH 투기에 허탈감을 느낀 청년들이 비트코인 시장에 몰려 ‘한탕’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죽음과 싸운 장병들에 비하자면 오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의 문제들은 한 판 붙어 이겨볼 만한 것이다. 나는 나에게, 청년들에게 외치고 싶다. 절대 낙오하거나 포기하지 말자고, “밟고 가라, 밟고 가!”라고.

2021-04-05

내 안의 가장 가까운 혐오

‘비혼모 출산 부추기는 공중파 방영을 즉각 중단해주세요!!!’ 지난 3월 25일 국민청원에 위와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현재 방송인 사유리 씨는 자발적 비혼모로 공중파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자발적 비혼모란 결혼 없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것을 말한다. 청원의 내용은 이렇다. “비혼모를 등장시켜서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에게 비혼 출산이라는 비정상적인 방식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라는 일본 여자를 등장시키려 하고 있습니다.”방송인 사유리 씨의 출산 방식이 올바른 가족관이 아닌 비정상적이며 청소년이나 청년의 비혼자 출산을 부추긴다며 공중파에서 출연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모호하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에서는 정상을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를 말한다. 또는 ‘있어야 할 상태에 바로 있는 것.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한다. 사전적 의미의 정상은 그대로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그대로 있는 상태라는 뜻은 대상의 위치를 뜻하는 건지, 대상은 정확히 무엇인지 의미조차 모호하다. 때문에 정상과 비정상이 아닌 ‘이상’과 ‘비이상적’이라고 판단하는 게 더 올바르다.비혼모 출산을 두고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염려하는 의견도 많다.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며 부재한 가장의 자리에 결핍을 느껴 늘 자신감 없는 아이로 자란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기서도 부모 중 한쪽이 부재하는 삶은 불행할 것이라며 섣불리 판단한다. 아이를 이끌어줄 수 있는 역할에는 ‘부’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강조하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아이가 혼란을 느끼는 데에는 혼란을 부추기는 어른의 시선과 입장뿐이다. 아이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다면 정상 가족에 대한 프레임을 걷어낼 수 있도록 앞선 어른들이 노력해야 한다.정상적인 가족은 무엇일까. 단순히 부모-자식 간의 3~6인을 유지한 구성 형태가 정상 가족일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체벌, 학대, 과거로부터 당연시되어 왔던 희생, 억압, 규칙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정말이지 가족이라는 관대한 이름 아래에 용서와 화해는 무조건적으로 가능한 것일까.몇 달 전 처음 보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뜸 한 사람은 내게 부모의 존재 여부와 직업, 본가의 위치를 물었다. 가족 구성원의 여부에 따라 나는 딱하거나 딱하지 않거나, 온전하거나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됐다. 낯선 자리에서 가족을 묻는 이들은 가족의 형태에 매달린다. 동시에 가족사 없는 집은 없다며 그 안에 일어나는 희생과 결핍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많은 이들이 가족이라는 형태가 유지되기까지의 소외된 이름을 묵인한 채 가족이라는 타이틀 앞에선 한없이 연약해진다.세상엔 많은 형태의 가족이 있다. 조립식 가족, 비혼모 가족, 다문화 가족, 동성 부부, 반려견·반려묘 가족 등 다양한 모양의 가족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자신이 속해있지 않은 범주 바깥의 존재는 모두 비정상적이라고 무차별적으로 비난할 순 없다. 다양한 형태로 가족을 이루는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사유리 씨는 자신의 삶과 아이를 택했다. 한 사람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아이는 가정의 형태와는 무관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올곧은 삶을 살 것이다. 혐오와 배제가 만연한 비이상적 사회가 두렵다면, 당장 스스로 해보아야 할 것은 조금씩 자신을 다듬고 고쳐 세상을 다시금 바로잡아 보는 것이다.나 또한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차별과 실수를 할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더욱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나의 생각이 내가 만든 편협한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살피며 불공정한 것에 대한 목소리를 올바르게 내야 한다. 한 사람이 옳은 방향을 정립하여 많은 다양성과 가능성을 존중하고 인정한다면 전보다 조금 더 나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2021-04-05

갑옷을 입은 신라 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 중인 경주 쪽샘지구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의 주변부에서는 제사 후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토기(土器) 파편들이 다수 발견됐다.그중 그릇 받침의 파편에서는 말의 갈퀴, 다리 관절, 발굽 등이 상세하게 표현된 말이 그려져 있었다. 말의 목부터 엉덩이까지 격자무늬가 새겨져 있어서 말이 갑옷을 입은 모양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신라시대에는 실제로 말이 있었을까?신라의 도성이었던 월성(月城) 유적에서 말뼈가 발견됐다. 경주 쪽샘에서 가까운 황오동 100번지 유적에서도 무덤 주변에 별도의 구덩이를 파고 말뼈를 묻은 것이 확인됐고, 황남대총과 미추왕릉 지구와 같은 인근 무덤 유적에서도 말뼈들이 발견됐다.이를 통해 토기나 벽화에 그려진 말이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이 신라시대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신라시대 갑옷을 입은 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경주 쪽샘지구 C10호 덧널무덤에서는 말 갑옷이 바닥에 펼쳐진 채 출토됐다.말 갑옷 주위에는 사람 갑옷도 있었고, 말 갑옷 위에는 칼과 창도 함께 발견됐다. 칼과 창의 위치로 보았을 때 말 주인은 펼쳐진 말 갑옷 위에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 말 투구는 껴묻거리를 묻어두는 딸린 덧널 바닥에서 따로 발견됐다. 현재까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남아 있는 상태가 좋아서 다방면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연구 결과를 토대로 작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C10호에서 나온 말 갑옷과 월성 해자(垓子)에서 출토된 말을 복원해 ‘말 갑옷을 입은 신라시대 말’을 복원했다.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말뼈를 토대로 크기를 복원한 결과 신라시대에 살았던 말은 어깨 높이가 120~136㎝ 정도 되는 제주마(濟州馬·천연기념물 제347호) 크기 정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쪽샘지구 C10호 출토 말 갑옷을 이 말에게 입혀 본 결과 얇고 네모난 철판을 가죽끈으로 엮어 만든 갑옷이 복원된 말에 잘 맞춰 입혀졌다. ‘말 갑옷을 입은 신라시대 말’이 재현된 것이다.재현된 말 투구와 갑옷은 어떤 모양이었을까?말 투구와 말 갑옷은 두께 0.1㎝인 철판으로 제작됐다. 머리를 보호하는 말 투구는 모두 6매의 철판을 못이나 끈으로 이어 붙여서 제작했다. 말의 이마, 코, 볼을 덮어서 보호했고, 시야 확보를 위해서 눈 부분은 뚫려 있다.말 갑옷은 목 가리개(頸甲), 가슴 가리개(胸甲), 몸통 가리개(身甲), 엉덩이 가리개(尻甲)으로 구분된다. 몸을 감싸는 갑옷은 좌·우로 분리되고, 꼬리가 있는 엉덩이 부위는 상·하로 나누어 구성됐다. 두께 0.1㎝인 철판을 두드려서 약간 곡선이 지도록 제작하고 표면은 불에 한번 구워서 오염에 강하게 만들었다.모든 갑옷은 직사각형이나 사다리꼴로 제작된 철판에 작은 구멍을 뚫어 가죽을 연결해 만들었다. 여러 매의 철판으로 제작됐지만 가죽끈의 공간만큼 상하로 약간 유동성이 생겨서 움직일 때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목·가슴 가리개는 말의 목 뒤쪽, 몸통 가리개는 몸의 위쪽, 엉덩이 가리개는 엉덩이 위에서 가죽끈으로 말에 고정했다. 안장이 고정되는 등 부분과 움직임이 큰 다리 부분을 제외하고는 말의 거의 전체를 무장할 수 있었다.또 말 갑옷 표면에는 직물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말위에 말 갑옷을 바로 고정하게 되면 갑옷 사이에 털이 끼거나, 살이 철제 갑옷에 찔릴 수도 있기 때문에 갑옷을 입히기 전 직물을 덮었을 가능성도 추론해볼 수 있다.말 투구와 말 갑옷 재현품 무게는 약 22.6㎏이었고, 함께 묻혀있었던 말갖춤(말을 부리는데 사용되는 도구, C10호 덧널무덤에서는 재갈, 안장, 안장 밑에 까는 직물인 언치와 등자, 운주, 후걸이가 출토됐다. 이중 재갈은 말 투구 무게에 합산됨)까지 합쳤을 때는 31.7㎏이었다. 이 위에 투구와 갑옷으로 방어하고 창과 칼로 무장한 무사를 태운다면 무게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강진아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대부분의 말이 몸무게에 비례해 일정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 말은 복원된 말과 같은 모습으로 신라 구석구석을 달리고 있었음을 상상해볼 수 있다.말 갑옷은 아직 출토된 사례가 많지 않고, 신라 귀족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므로, 일정한 신분의 사람만 지닐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말은 예민한 동물인데 말 투구와 말 갑옷을 장착한다면 훈련된 말도 필요했을 것이다.실제로 어떠한 형태로 사람을 태우고 달렸는지, 신라에 기병대가 있었는지 같은 숙제가 많이 남아있다.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천오백 년 전 땅에 묻힌 유물들은 지금까지 경주에 남아서 조용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2021-04-05

광인의 모습을 한 예술의 환영과 그 들림

현대의 가장 뛰어난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에 대한 평전이 있다. 이 평전에서 훗날의 위대한 작가 발자크는 불과 스무 살을 갓 넘었을 무렵 이미 가벼운 희극이나 대중적인 취미의 작품들을 쓰면서 가명으로 엄청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알 수 없는 힘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시대를 타고 흐르는 예술의 기운 한 가운데로 나아가 기존 자신이 가명으로 쌓아올린 과거와 절멸하고, 새로운 글쓰기를 향해 나아갔다. 그는 “인간 희극”이라는 대 기획 아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끝도 없는 탐구에 나서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고리오 영감’ 등 사회를 해부하는 ‘인간 희극’ 시리즈를 90편이나 썼던 것이다. 시대를 좌우하는 예술의 이념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 시대라면 결코 불가능할 작업이다. 예술의 환영에 들려 미치광이처럼 골방에 파묻혀 글만 쓰던 낭만적인 문예의 시대는 저 멀리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어쩌면, 문학이 예술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광인의 모습을 한 예술의 환영에 홀린 인간들이 글을 쓴다고 밥도 돈도 나오지 않아도 무언가에 이끌려 써갔던 시대를 마지막으로 종언을 고할지도 모르겠다. 문자에서 영상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어딘가에 누군가는 예술의 환영에 들려 밑도 끝도 없는 창작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한국 작가 중에서도 이처럼 광인의 모습을 한 예술성에 도취되었던 작가가 적지 않지만, 김동인(1900~1951)만큼 예술성의 이념에 깊이 경도됐던 작가는 또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비교적 척박한 한국의 근대문학계에서 김동인만큼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작가는 또 드물기 때문에, 대학의 강의 시간에도 간혹 다루고, 만나는 사람마다 한 번은 읽어보기를 권하는 작가가 바로 김동인이다.어린 시절 당시의 여느 작가들이나 다름없이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그는 유학생이라면 선택하기 마련인 법학이나 상학을 택하지 않고, 미술을 택해 가와바타 화숙에 들어갔다. 아무리 평양 부호의 자제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의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당시로서 미술을 전공하고자 택했던 것은 꽤 대담한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고희동, 김관호, 김찬영 등 당시 화가들 대부분 선택했던 도쿄미술학교가 아니라 화가의 화숙에 들어간 것 역시 범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이후 계속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1919년 그는 친구인 주요한과 함께 동인지 ‘창조’를 기획해 잡지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조선으로 돌아왔다.김동인.이후 약 10년 간 소설을 쓰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 작가로 활동했던 김동인은 1929년에 ‘광염소나타’를 쓴다. 이 소설에서 그는 극단적인 예술성에 사로잡혀 방화와 살인 등 윤리적인 범죄로까지 나아간 미치광이 피아니스트 백성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예술인가, 윤리인가, 선명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선택지는 한국의 척박한 문학계에서 문학을 통해 예술적 이념을 추구하고자 했던 김동인이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예술성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김동인은 한 관찰자의 눈을 통해 백성수의 행위를 담담히, 하지만 안타깝게 지켜본다. 예술성의 환영에 들린 인간들은 대개 같은 표정을 하고 있게 마련이다.몇 년 째 대학 강의에서 김동인의 이 소설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있다. 언제나 학생들은 이 작품에서 예술에 홀린 인간의 눈과 사회의 도덕 사이의 문제를 짚어낸다. 물론 해마다 예술성에 경도된 예술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학생들의 수는 줄고 있다. 작품은 변하지 않았을 테니, 사회가 점차 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동인도 1930년을 너머 전쟁에 휩쓸리면서 친일의 현실을 선택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예술에 홀렸던 그 많은 광인들은, 이제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홍익대 교수

2021-04-05

4차 유행 위기, K방역 주인정신으로 넘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가 4차 유행의 길목에 서있다. 자칫하면 하루 1천명이 넘는 신규 환자가 발생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권덕칠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지금 하루 평균 500여명 발생하고 있는 유행이 4차 유행단계에 접어들면 빠른 시간 안에 하루 1천여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우리나라 코로나19 상황은 대유행의 본격화 직전과 유사하다고도 했다.1년 이상 끌어온 코로나19 사태는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시작한 3차 대유행이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전국적으로 다시 유행이 확산되면서 보건당국은 사실상 비상 상태다. 5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와 상관없이 기본방역수칙을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키로 하는 등 보건당국의 태도가 강력해졌다. 보건당국은 상황이 나빠지면 현재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도 상향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 위기상황이 또한번 일촉즉발의 상황에 몰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들이다.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잘 알다시피 국민 각자의 방역수칙 준수가 가장 중요하다. 코로나 백신의 개발로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부터 탈출할 유일한 수단이나 현재 우리가 확보한 백신물량으로는 단기간 극복이 어려울 것 같다. 현재 우리 국민의 백신접종률은 겨우 1%대다. 세계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이다.정부가 서둘러 백신 확보에 나서야겠지만 최근 백신 생산국이 자국우선주의를 선언하면서 백신 수출을 꺼리고 있어 백신 확보전이 마치 전쟁터 같다고 한다. 정부는 백신을 확보하는데 전력 질주해야겠지만 국민은 국민대로 엄격한 방역수칙 준수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대구경북도 최근 두자리수 신규 환자가 이어지면서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대구경북민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 맞서 전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지성적인 대응자세를 보였다. 코로나 4차 대유행 길목에서 또 한번 대구경북민의 저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 대구경북민의 백신접종률이 전국에서 가장 낮다고 한다. AZ 백신의 부작용 때문으로 여겨지나 접종률은 집단면역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접종률도 높이고 방역수칙도 잘 지켜 4차 유행의 고리를 우리 지역에서 먼저 끊어나가야겠다.

2021-04-05

NFT

NFT는 디지털 콘텐츠 등의 예술 작품이 블록체인과 결합된 ‘디지털 원본 저작권’을 가리킨다. 진품 보증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그림 등 예술작품과 애니메이션, 음악, 비디오 게임 아이템 등 거래에 유용하다.NFT는‘대체 가능하다’는 뜻의 ‘Fungible Tokens’의 반대 개념인 ‘Non Fungible Tokens’(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약자다.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과 비슷하지만, 동일한 가치로 거래할 수 있는 다른 가상 자산들과 달리 ‘대체할 수 없는 별도의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거래 기록이 자동 저장되고, 위·변조도 불가능해 ‘디지털 콘텐츠의 공인인증서’같은 역할을 한다.최근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이 직접 붓을 들고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아닌 디지털 아트 한점을 6천930만 달러, 한화로 약 785억 원에 팔아서 세상을 놀라게했다.이때 현찰이 아닌 ‘NFT’로 거래됐다.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본명 마이크 윈켈만)이 ‘매일: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란 제목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지난 2007년 5월 1일부터 5천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디지털 아트를 그린 뒤 모자이크로 구성한 작품이다.비플의 이 작품은, 지금까지 크리스티 경매에서 실물이 아닌 NFT로 팔린 작품 중 최고가이며, 프리다 칼로, 살바도르 달리, 폴 고갱 등 유명 화가 작품의 경매 낙찰가보다도 더 비싸게 팔렸다.NFT가 디지털 아트를 소유하고 수집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디지털 예술이 재평가되는 시대가 열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4-05

보선 끝나면 바로 大選길목…정국 대혼란 예고

내일(7일)은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다. 이번 보궐선거가 역대 어느 지방선거보다 우리 정치사에서 주목받는 것은, 이날 확인된 민심이 내년 대선 판세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선거결과 좌우 진영대결과 여·야 주도권 싸움의 우위가 결정되고 이에 따라 향후 정국흐름도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일과 3일 이틀간 진행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20.54%로 역대 재보선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치였던 2014년 10·29 재보선 사전투표율(19.40%)을 뛰어넘었다.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과거에는 진보성향의 젊은 층 투표참여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돼 민주당에 유리하다고 봤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는 사전투표율을 근거로 판세를 예상하기가 어려워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젊은 층이 부동산 논란과 취업난 여파로 정부·여당에 등을 돌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투표일이 평일이어서 여·야 모두 지지층이 어느 정도 투표에 참여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선거결과를 사전에 읽기가 어렵다.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보면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당이 ‘중대결심’ 운운하며 선거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않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정계개편이 예상되고 여·야 모두 당 대표 경선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다 이미 현 대통령과 권력층에 대한 레임덕까지 진행돼 극도의 혼란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여·야 모두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향후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겠지만 패배하면 엄청난 후유증이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은 당 대표 선출 이후 바로 대권주자를 정해야 해 당 내부 분열과 갈등상황이 격심해질 것이다. 국민의 힘도 곧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끝나고, 당을 재편해야 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 구성원 모두가 흩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이번 선거결과가 어떻든 여·야 모두 향후의 어수선한 정국 흐름을 감안해 모두 국민의 입장에 서서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선거가 네거티브 공세로 이어지긴 했지만 누가 승리하건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21-04-05

2021 한국의 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계절의 봄은 어김없이 돌아왔는데, 마음은 봄 같지가 않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속에서 봄을 맞이하는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했던 시인의 아픔처럼, 우울한 소식들이 내 마음의 봄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봄의 낭만을 즐기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무겁다. 봄은 희망의 계절인데 절망의 탄식들뿐이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하루아침에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에 취업해서 결혼을 앞둔 제자는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집값에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아파트 구입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전세조차 역부족이니 절망이라고 한다. 평생을 벌어 저축해도 소형아파트 한 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청춘의 탄식에 스승은 가슴이 먹먹하다. 그렇다고 LH직원들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투기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한 번도 원망해 본 적이 없었는데….”라면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새 학기를 시작하는 봄, 대학 캠퍼스에도 활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대거 미충원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등교육정책 실패로 대학이 위기에 내몰리자 연구와 교육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까지 신입생 유치에 동원되고 있다. 폐교의 위기에 직면한 교수들은 감봉을 각오해야 함은 물론, 전직(轉職)까지 고민하는 상황이니 밤잠도 설치게 된다고 한다. 후배 K교수는 “지금 대학은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입니다. 대학의 미래에 희망이 없으니 연구와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라고 탄식이다. 캠퍼스에 피어나는 봄꽃들의 경연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대학인들의 모습이 처연하다.어디 그뿐인가. 정치판은 봄이 오기는커녕 아직도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권력에 취한 정치꾼들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흑백논리’, 내가 하면 정의요, 당신이 하면 불의라는 ‘내로남불’의 궤변과 억지로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권력에 취한 ‘표리부동’한 정권이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중독성 강한 마약’을 국민들에게 무차별 살포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니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2021년 한국의 봄이다. 이상화 시인이 “들을 빼앗겨서 봄조차 빼앗기겠네.”라고 한탄했듯이, 우리도 지금 빼앗긴 ‘마음의 봄’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봄을 빼앗아 간 범인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 오만과 독선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향유해야 할 마음의 봄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꽃들은 우리에게 ‘자연으로 돌아오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루소(J. J. Roussea)는 “자연 상태가 인간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문명 때문에 인간성이 상실되는 이 기막힌 역설(逆說)’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봄이다.

2021-04-05

아기 울음소리가 듣고 싶다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라는 표어가 생각난다.실패한 정책이다. 2020년 ‘출산율 0.84명’이란 충격적인 저출산 통계를 발표했다. 대한민국이 2045년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도된 바도 있다. 같은 시기에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늙은 나라’라는 이름이 붙여진다.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저출산 추이가 계속 현재와 같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도 결혼 건수가 갑작스럽게 추락하고 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체의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또한 지방대학 대규모 정원 미달 사태는 저출산에서 비롯된다. 이미 20여년 전 예견되었던 일이다. 2021학년도 지방대학의 대규모 정원 미달 사태로 어려움에 부딪힌 지방대 곳곳에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학령인구 감소를 살펴보면 2018년 고3으로 학교를 재학한 학생은 54만명이었다. 이듬해인 2019년도 고3으로 학교를 재학한 학생은 49만명이다. 2020년도 고3으로 학교를 재학한 학생은 43만명이고 현재 2021학년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45만명이다. 현 고등학교 1학년 재학생은 41만명으로 줄어든다.이러한 상황에도 대학들이 학생 정원 감축을 하지 못하는 것은 등록금 동결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생의 등록금이 모두 수입이기 때문이다.앞으로 계속해서 더욱 심각한 학령인구 감소사태로 이어질 것이다.통계청은 2065년이 되면 노인 인구 비중은 47.5%(저위 추계 기준)까지 높아진다. 곧 ‘인구절벽’이 시작되면서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노인으로 채워지는 것이다.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방 자치단체인 창원시는 인구 100만명을 유지하기 위해 파격적인 정책인 결혼자금을 최대 1억원 대출해서 10년 내 3자녀 출산 시 대출금 전액 탕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단기적인 대책으로 보인다.고령화가 빨라지면서 아기 울음소리가 급속히 줄어들고 사회·경제적 활력이 저하되고 있다. 저출산의 원인은 ‘지금보다 좋아질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지도층에서 국민들에게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스스로 아이를 많이 낳아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주택·교육 등 다양한 문제와 얽혀 있는 만큼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또한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인공지능(AI) 같은 혁신적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혁신을 창출하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 모두가 모범을 보이는 자세로 저출산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말로 하는 대책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대책이 필요하다. 저출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시대 변화에 맞게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젊은 사람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아이 키우는데 걱정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없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아기 울음소리가 듣고 싶다.

2021-04-05

봄처럼 부지런히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남도의 봄을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봄마중을 떠났다. 전남 강진읍의 옥정호에서 시작되어 임실~남원~곡성~구례~광양 배알도수변공원까지 이르는 약 160km의 섬진강 자전거길 종주 라이딩을 다녀온 것이다. 수시로 봄꽃이 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잎새가 돋고 싹이 틔어 연둣빛 초목이 일제히 생동의 기운으로 손짓하는 듯했다. 강진 인근지역에서는 벚꽃과 진달래가 한창이었었는데, 구례 300리 벚꽃길에선 살랑이는 바람 결에 꽃눈개비가 처연하게 흩날리고, 하류의 광양지역 둔치에는 만발한 유채꽃이 강물에 넘실거리는 봄꽃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어디 그뿐이랴! 들판에선 파릇한 보리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강둑으론 쑥을 비롯 온갖 풀들이 고개를 내밀며 생장의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에 맞춰, 아니 이미 한참 전부터 들녘에선 사람들의 봄맞이 손길이 분주했을 터, 밭갈이를 하고 거름을 내며 논물 관리를 하는가 하면, 산자락과 둔덕에서는 봄나물을 캐고 뜯는 손길들이 많아졌다. 청명이 지나고 곡우가 다가오니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선지 경운기나 트랙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들판 곳곳엔 일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진 것 같았다.‘해마다 봄이 되면/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땅 속에서, 땅 위에서/공중에서/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조병화 시 ‘해마다 봄이 되면’ 중봄날을 거닐며 산야를 둘러보면 무엇 하나 부지런하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다. 저마다의 생김새대로 꽃이 폈다 지고 제각각의 모양새대로 싹과 잎을 드리우는 현상은, 단순한 것 같지만 창조적인 일손이 빚은 부지런함의 소산이다. 풀 한 포기, 미물의 유기체에도 꾸준히 이어지는 노력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 꿋꿋한 생명력이요 활기다. 이러한 부지런함이 모이고 쌓여 자연계의 생명과 순환이 유지되고 식물은 자라나며 새로운 변화와 성장의 기틀이 형성되는 것이다.근면과 성실로 비견되는 부지런함은 개인의 성장과 발전, 도전과 성취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똑같이 시작하고 추구하며 노력해도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부지런함의 정도와 방향성이 차이 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농부가 땅을 일궈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서의 땀과 정성 여하에 따라 결실과 수확이 달라지듯이-. 그러나 봄날에 모종을 심거나 가꾸지도 않고서 가을날에 결실이 없음을 후회(春不耕種秋後悔)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자연은 너른 들판에서 소리없이 가르치고 있다. 길 따라 물 따라 페달을 밟는 내내 향긋한 바람이 반겨 맞고 강물은 이따금씩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살다 보면 순풍으로 안도할 때도 있고 역풍으로 고난을 겪을 때도 있지만, 쉬지않고 흐르는 물(川流不息)처럼 한결 같은 부지런함으로 맞서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함을 들려주고 있었다. 피고지는 꽃과 연초록 잎새의 나부낌, 물과 바람이 전하는 들판의 묵시 속에 봄처럼 더욱 부지런해야함을 두 바퀴에 되새긴 여정이었다.

2021-04-05

K(한국형) 바이오 랩센트럴 그리고 포항의 의지

김도영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장지난달 초 정부가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K-바이오 랩센트럴’ 사업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5월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8월 예비타당성 조사신청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방자치단체 공모를 통해 연내 지역을 최종 확정하고 2023년부터 약 2천억원의 정부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랩센트럴은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바이오 스타트업에게 연구와 실험을 할 수 있는 실험공간과 사무공간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관련 전문가들이 상주하며 바이오 스타트업 기업과 벤처기업을 지원하고 있다.랩센트럴(LabCentral)은 2013년에 설립된 비영리 바이오창업 지원기관으로 미국 메사추세츠주 캠브릿지 바이오허브(Bio Hub)가 성공모델로 제시되고 있다.미국의 랩센트럴이 성공할 수 있는 핵심적인 이유로는 △MIT, 하버드 등 세계 우수대학이 있어 연구개발 협력 네트워크와 우수한 인재를 공급할 수 있고, △화이자, 노바티스, 머크 등 글로벌 제약기업이 있어 이들의 수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공동 연구협력이나 기술이전 등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이 가능하며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하버드 메디컬센터 등 최고 수준의 병원이 있어 임상 연계가 용이하고 △수십개의 벤처캐피털(VC) 회사가 집적되어 있어 초기 창업자금 확보나 기업 확장을 위한 투자유치가 유리하다는 것이다.현재 우리나라 여러 지자체들이 K-바이오 랩센트럴을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대전은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KAIST, 연구기관, 대학병원을 연계한 인력과 인프라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인천은 송도의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의 대기업 인프라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대기업과 바이오벤처가 연계할 수 있는 클러스터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청주(오송)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등 6대 보건의료 국책기관이 집적되어 있으며 오송생명과학단지와 첨단의료복합단지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포항도 최근 지역의 우수한 바이오 인프라를 기반으로 ‘구조-AI기반 바이오 랩센트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포스텍의 바이오 연구공간과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에 조성 중인 포항의 3대 바이오 혁신성장 플랫폼(포항지식산업센터, 세포막단백질연구소,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 그리고 방사광가속기 연구소, 생명공학연구센터,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센터, 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 등의 최첨단 바이오 연구 인프라를 비롯하여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협업 연구소인 인공지능연구원 등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포스텍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 센터와 포항지식산업센터는 바이오 스타트업 기업과 벤처기업의 창업·보육 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다.바이오 인프라뿐만 아니라 포스텍과 한동대의 바이오 분야 고급 연구인력과 쿼드콜라보오퍼스원 포스텍펀드(Q-fund), 인라이트 3호 CG펀드 등 바이오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펀드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지역에 제넥신, 압타머사이언스, 바이오앱 등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보유 바이오벤처 40여개 기업이 소재하고 있으며, 작년 6월에는 대형 제약기업인 한미사이언스와 3천억원 규모의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앞으로도 신약 임상전문병원 구축과 바이오·제약기업 지원을 위한 3D-바이오프린팅 기반 인공장기 상용화 플랫폼, 극저온 전자현미경 지원센터, 감염병 신속대응 플랫폼 구축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으로 우리 지역을 중심으로 과학기술 기반의 유망 바이오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포항은 K-바이오 랩센트럴 사업 유치를 위해 먼저 뛰어든 대전이나 인천(송도), 청주(오송) 등에 비교해 바이오 연구 인프라와 인력, 기술력 분야에 있어서는 경쟁력이 있으나 임상병원이 없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포항에서도 지속적으로 임상전문병원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포스텍-병원 간의 협업시스템을 이미 구축하고 있어 중장기적인 발전 측면에서는 포항이 한국형 랩센트럴의 최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전 세계가 미래 바이오헬스산업을 육성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바이오 기술벤처기업과 제약기업들이 서울, 인천, 대전 등에 밀집되어 있어 지역의 우수한 인재와 기업들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바이오헬스산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자 하는 지역의 입장에서는 매우 큰 장애가 되고 있다.특히 포항시는 인구 50만명이 무너질 위기에 봉착해 있어 인구회복을 위한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포항의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의지와 맞물려 바이오기업을 유치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인구감소, 지역소멸 등의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 중심의 미래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1-04-04

도시의 흥망성쇠

윤대식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8·15해방 이후 우리나라 도시들의 부침(浮沈)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해방 직후 남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행정중심지였던 수도 서울이었고, 다음은 대구가 2대 도시였다. 당시 대구는 일제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농업이 주요 산업이고 교역이 거의 없었으며, 영남지방에서 대구가 교육과 행정의 중심지 기능을 담당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그러던 것이 6·25사변을 거치면서 부산에 피난민들이 모이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들 피난민이 일부 부산에 정착하면서 대구는 부산에 2대 도시의 지위를 넘겨줬다.그리고 6·26사변 이후부터 추진된 근대화와 경제개발정책에 힘입어 중화학공업 위주의 제조업이 성장하면서 수출·입 물류를 처리하기 쉬운 항만도시들의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이러한 이유 때문에 1950년대 이후 서울, 부산, 대구의 순으로 만들어진 도시계층구조가 거의 50년 동안 고착하게 됐다. 그러던 것이 2001년 인천공항의 개항 이후 인천에 인구와 산업이 집중하면서 대구는 3대 도시에서도 밀려났다.국제물류를 처리해야 하는 많은 첨단산업이 인천공항 주변에 둥지를 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중화학공업이 국가의 기간산업이던 시기에는 중화학공업의 원료와 완제품들의 수출·입 물류를 처리하고자 항만도시들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지만, 산업구조가 경박단소(輕薄短小)한 제품을 생산하는 첨단산업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주변에 좋은 관문공항을 가진 도시가 성장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이제 20세기 초·중반 이후 미국 도시들의 부침(浮沈)을 보자. 미국은 전통적인 중공업 도시들이 산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면서 성장했다. 이들 전통적인 산업도시들은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클리블랜드, 시카고, 미니애폴리스 등이 대표적이다.스노우 벨트(Snow Belt) 혹은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불리기도 하는 지역에 있는 이들 도시는 20세기 초반 이후 미국에서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철강산업과 자동차산업을 바탕으로 미국경제를 주도하다시피 했다.하지만, 1970년대 들어 철강을 비롯한 소재산업과 자동차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하면서 도시의 실업률이 증가하고 인구가 감소하는 등 쇠퇴기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도시는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첨단산업의 유치, 첨단산업과 전통적 제조업의 결합 등을 통해 새로운 도약과 도시의 재건을 추진해 왔다.예컨대 세계적인 철강도시였던 피츠버그는 명문 카네기멜론대학(Carnegie Mellon University)과의 관민협력을 통해 컴퓨터 관련산업을 육성해 도시의 재도약을 추진했고, 클리블랜드는 철강산업이 쇠퇴한 후 전기 및 기계산업과 헬스케어산업을 키워 발전시킴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추진했다. 특히, 클리블랜드는 세계적인 병원인 클리블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 명문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등의 연구개발(RD) 역량이 결합해 첨단산업이 싹을 틔었다.미국의 서부와 남부에 있는 신흥도시들은 1970년대 이전에는 비교적 산업화가 부진했으나, 1970년대 이후 첨단기술의 산업화로 급속한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신흥도시가 새로운 첨단산업기지로 떠오른 주요 이유는 첨단산업의 입지조건이 전통적인 제조업의 입지조건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전통적인 제조업은 시장 혹은 원료공급지에 근접해 있어야 하지만, 경박단소한 제품의 특성으로 인해 수송비가 적게 드는 첨단산업은 시장 혹은 원료공급지에의 접근성이 그다지 중요한 입지조건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따라서 캘리포니아주 북부의 실리콘밸리와 같이 날씨도 좋고 주변 환경이 좋은 지역뿐만 아니라, 남부의 선 벨트(Sun Belt) 지역에 속하는 피닉스, 덴버, 엘파소 등의 내륙도시들도 첨단산업화의 물결 속에 새로운 성장도시로 떠오르게 됐다. 이러한 도시들의 특징은 인접지역에 첨단기술의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국립연구소나 대학들이 있어 다양한 형태의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항공교통이 잘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도시의 흥망성쇠에 대한 지난 한 세기의 역사적 경험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갈수록 4차 산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4차 산업은 대부분 원료와 제품의 수송비용이 거의 혹은 많이 들지 않는 특징이 있다. 대신에 고급인력들이 필요하고 해외교류가 필수적인 만큼 육상교통보다는 항공교통이 필수적이다. 도시의 성장을 위해 ‘반듯한’ 공항의 건설이 필수적이고, 고급인력의 정주환경 조성, 연구개발(RD) 환경의 조성과 관련기관과의 파트너십 구축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최근에는 4차 산업시대의 도래와 함께 자유입지형 산업(foot-loose industry)이 증가하고 있다. 이제 대구·경북도 자유입지형 산업의 유치와 육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2021-04-04

나무를 바르게 심자

윤영대수필가식목일은 1949년에 공휴일로 지정되어 그동안 헐벗은 산에 많은 나무를 심었다. 학창시절 호미와 삽을 들고 마을의 언덕과 낮은 산으로 나무를 심으러 다녔고 대학 재직 중에는 학생들과 캠퍼스 이곳저곳에 기념식수도 많이 했던 기억들이 선하다. 그러나 2006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탓인지 학교나 기관에서 공식적인 큰 식목행사는 없었고 포항시의 ‘나무 나누기’ 행사에 가서 몇 그루 분양받아와 시골집에 심은 꽃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요즈음 기후변화 탓인지 기온이 예년보다 높아져서 개화 시기도 빨라지고 나무 심기 가능한 기온 6.5℃도 4월이면 늦다고 해서 식목일을 앞당기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늦으면 잎과 뿌리의 생장이 잘 안 되어 고사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묘목 업체들도 새싹이 나오는 시기에 맞추어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UN이 지정한 ‘세계산림의 날’도 3월 21일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평균기온 1℃ 상승함에 따라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는 시기가 5~7일간 앞당겨진다고 하고, 몇몇 지자체나 기업 등에서는 3월 하순부터 식목행사를 하고 있다.내 어릴 적만 해도 국토는 거의 벌거숭이 산이었는데 1962년부터 50년간 약 11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산림을 만들었고 야산에 올라도 짙푸른 숲 내음을 맡을 수 있는 ‘세계적인 조림 성공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일은 미래를 가꾸는 일이다’라는 구호처럼 치산녹화사업은 참 잘한 일이다.지구의 온난화, 대기오염 등으로 생태계 복원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만큼 산림녹화뿐만 아니라 주변 공터에도 감, 매실 등 유실수도 좋고 무궁화, 매화, 철쭉 등 꽃나무도 심어서 우리의 주위가 맑고 밝았으면 한다.식목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산림은 홍수와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를 방지하고 산소를 발생시켜 환경개선은 물론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목재와 연료를 공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태양광발전이랍시고 산림을 마구 파헤치는 현장을 보노라면 과연 어느 것이 자연 친화적일까를 마음속으로 되내어 보기도 한다.건강한 산림은 1ha당 이산화탄소를 연간 10여 t 이상 흡수하여 공기를 맑게 하는 지구의 허파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니 새잎이 트기 전에 뿌리가 먼저 내려 생장할 수 있는 절기에 맞추어 나무를 심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한다는 애림사상을 마음에 심는 것도 중요하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땅에 꽂아도 싹이 돋는다’는 속담도 있고하니, 청명(淸明) 한식(寒食)의 맑은 절기에 산불 조심하고 찬밥도 먹으며 나무를 심어보자.식목의 식(植)을 보면 나무(木)를 바르게(直) 심는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 정치 풍토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나무를 바르게 잘 심고 가꾸어야 푸르고 맑은 숲을 이룰 수 있듯이 사람도 뜻이 곧고 청렴하고 올바른 인재를 골라 심어야 나라가 튼튼해진다. 이번 식목일에는 집 안뜰에 나무 한 그루 바르게 심고, 나라의 뜰에는 옳은 사람을 심기 바란다. 이번 식목일의 염원이다.

2021-04-04

사람은 모두 불쌍하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지구라는 별에서 불쌍한 사람들이 매일 해가 뜨면 일을 하고, 돈을 벌려고 발버둥 치고, 서로 잘난 체하며 싸우다가 쓰레기를 한가득 버리고, 불쌍하게 죽어간다.내가 젊었을 때 만났던 어떤 헤드헌터가 이런 말을 했다.“내가 위로부터 아래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서 술을 마셔보니 알게 된 것이 있어. 사람은 모두 불쌍하다는 거야.”영적인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이 지구라는 별에 끊임없이 오는 것은, 완성되지 못한 존재가 몸이라는 옷을 빌려서 완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구에 온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엇인가 미완성이고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그런데도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미워하고 의심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상처를 준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나를 괴롭힌 친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나에게 피해를 준 지인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내로남불’이란 대중용어도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렇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며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뇌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나의 이익과 쾌락 위주로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지,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그래서 저명한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심리상담사들에게 세 가지를 강조했다.“진실하게 대화하라. 타인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하라. 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라.”그만큼 진실한 마음으로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며 인간에 관해 가치판단 없이 존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일 것이다. 심리상담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세 가지 태도는 심리상담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마음의 지침으로 삼으면, 인간관계나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위대한 성인 예수도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데려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아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가볍게 여기고, 타인의 허물만 단죄하려고 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이다.그럼 수만 명을 상담한 나의 인간에 대한 결론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모두 행복과 성공을 원한다. 사람들은 모두 인정과 사랑을 원한다.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모두 남을 돕고 싶어한다.즉, 사람들은 행복과 성공을 원하며, 그 와중에 상처와 고통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남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곁의 화려한 옷 입고 좋은 차 타며 잘나 보이는 이들이든 그 반대이든 모두 불쌍하고, 그 불쌍한 이들의 마음에는 선한 본성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불쌍한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서로 돕자, 미워하지 말고 부디 용서하자. 얼싸안고 이 지구라는 별에서 축제처럼 살다가, 쓰레기 덜 버리고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자.

2021-04-04

코로나 전국 확산 양상… 대구경북 긴장감 높여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닷새째 500명대를 기록했다. 500명대 연속 기록은 지난 1월 13∼17일(561명-524명-512명-581명-520명) 이후 약 3개월만이다. 특히 수도권에 집중되던 코로나19 확진자가 비수도권으로 크게 늘면서 전국적 양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4일 질병관리본부는 0시 현재 신규 확진자가 543명이라 밝혔다. 지난달 30일 이후 닷새째 500명대다.대구와 경북은 3일 10명과 17명이 각각 신규 발생한데 이어 4일에도 대구 15명, 경북 13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같이 코로나19의 불안 상황이 이어짐에 따라 4일 오후 4차 유행 가능성 경고와 함께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를 당부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정부는 오는 11일까지 수도권 2단계 비수도권 1.5단계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용 중이지만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부산과 경남 거제, 진주 등은 자체적으로 2단계 격상을 했다. 특히 유흥업소 발 하루 수십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부산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부산시 교육당국은 관내 학교의 밀집도를 기존 3분의 2에서 3분의 1 이하로 강화하기로 했다. 유흥업소와 식당 등의 영업시간이 제한되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불편이 또다시 커질 모양이다.그동안 70%이상 수도권에서 발생하던 코로나19가 수도권 비중이 낮아지고 비수도권의 발생 비중이 높아져 심상찮은 분위기다. 지난 주말에는 비수권지역에서 40% 이상이 발생했다. 주말인 3일과 4일 이틀동안 대구와 경북에서도 모두 55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불안불안한 상황이다.우리나라는 코로나19의 백신접종률이 이제 겨우 1.83%에 그치고 있다. 코로나19 극복에까지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의 대응 자세처럼 모두가 긴장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로 피로감이 많이 쌓여 있지만 마스크 쓰기와 손씻기,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등의 수칙을 지키는데 동참해야 한다.봄철을 맞아 사람의 이동량이 증가하고 있으나 방역에 대한 긴장감은 예전같지가 않다. 4차 유행이 시작된다면 그나마 완화됐던 업소들의 어려움이 또다시 시작되고 일상의 불편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다시 긴장감으로 무장해야 할 때다.

2021-04-04

청년농부들에게서 ‘고향르네상스’ 기대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취임 이후 농촌에 뿌리를 내리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고향소멸’을 막아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민선 7기가 출범한 2018년부터 현재까지 경북도에서 ‘후계 농업경영인’으로 선정된 사람은 1천848명으로 민선 6기 4년간 선정된 1천288명 보다 43.5% 늘었다. 40년 전인 1981년부터 정부차원에서 진행된 이 사업이 최근 들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경북도에서 올해 뽑은 후계 농업경영인은 493명으로 이 중 39세 이하 청년들이 303명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경북도는 후계 농업경영인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다양한 지원사업도 마련해 준다.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지만 지금 추세대로 꾸준히 농촌 청년들이 뿌리를 내려주기만 한다면 농촌붕괴를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종수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이 “농촌에서 다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하겠다”고 한 말이 감동적으로 들린다.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오래전부터 농촌소멸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농촌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고령화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1980년 1천82만명이던 농가 인구는 2005년 343만명을 거쳐 이제 200만명 밑으로 떨어지기 직전이다. 우리나라는 농민들이 허리가 휘도록 농사짓고, 소 팔고 논 팔아서 자식을 교육시켰다. 지금 세계 유수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도 그 원동력은 농민들의 피와 땀이다. 지금처럼 농촌 빈집이 늘고 전답이 황폐화하면 그동안 다져놓은 농업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농촌 주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후계 농업경영인사업은 모든 자원의 수도권 독식과 농산물 산업 위축, 농가인구 감소, 고령화 등을 막아 농촌의 르네상스를 꿈꾸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안으로 보인다.경북도가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유지해 대한민국 농촌부활의 모델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정부는 농업분야의 청년 취업자가 앞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해 나갈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1-04-04

가덕도신공항과 공무원의 법적 의무

심충택논설위원국토교통부가 김해신공항 기본계획 수립 관련 업무를 즉시 중단하고 가덕도신공항 사전타당성조사에 신속 착수한다는 계획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긴급입찰을 통해 가덕도 신공항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을 다음 달에 착수하고 내년 3월까지 조사를 완료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위한 사전타당성조사 용역을 할 때 1년 4개월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속전속결이다. 10여년 넘게 말로만 무성하던 가덕도 신공항이 비로소 현실로 다가온 느낌이다.내년은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가덕도신공항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PK(부산·경남) 민심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광경이 눈앞에 훤하게 그려진다. 가덕도 신공항과 항공노선, 여객, 화물 유치를 위해 사사건건 경쟁해야 할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사석(捨石)으로 삼아 선거에서 이길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강원도가 지역구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부산에 가서 “대구경제는 전국 꼴찌다. 왜 그럴까”라고 조롱했듯이, 내년 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안주로 삼을 것이다.현 정부 구상대로 과연 내년 3월이 되면 가덕도 신공항은 착공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으로 본다. 우선 사전타당성조사에서 가덕도 신공항이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올지 의문이다. 설령 용역발주처(국토부) 의도대로 공항건설에 문제없다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미 가덕도 신공항 입지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 국토부의 결재라인에서 정권말 항명사태가 생길 가능성도 농후하다.국토부는 지난 2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처리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공무원의 법적 의무’를 거론했다. ‘절차상 문제를 인지한 상황에서 가덕신공항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형법 122조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2016년 사전타당성 조사를 통해 가덕도 신공항의 문제점을 인지한 상황에서 특별법 수용시 공무원으로서의 성실 의무 위반(국가공무원법 56조) 우려가 있다’고 한 것이다.국토부는 국회보고서에서 가덕도 신공항이 안전과 환경, 경제성 등 7가지 면에서 모두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류와 파도 영향으로 공사가 어렵다’, ‘해상 매립 공사만 6년 이상 예상되고 태풍 피해도 우려된다’, ‘부등침하(不等沈下) 발생 가능성이 높다’ 며 난공사와 안전성 문제를 적시했다. 진해군비행장과 가까워 항공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크다는 점도 강조됐다. 가덕도 주민들도 “여기에 1년만 살아보면 공항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변창흠 국토부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가덕도를 찾아 “가슴이 뛴다”며 신공항 추진에 부정적인 국토부를 질책하자, “송구하다”며 특별법을 받아들였다.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결재라인 공무원들의 의사를 들어봤는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사전타당성 조사를 초스피드로 진행하겠다는 것은 안전성 검증까지 적당하게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담당자들도 언젠가는 법과 상식, 도덕이 제대로 작동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2021-04-04

위선(僞善)

학식이 높기로 소문난 양반 북곽 선생은 과부와 밀회를 즐기다 들통이 나자 줄행랑을 친다. 그러다 들판에 파놓은 똥구덩이에 그만 빠져 겨우 기어나오는 순간 눈앞에서 호랑이를 만난다.북곽 선생 앞에 선 호랑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한마디 한다. “양반은 구린내가 심하게 나는구나.” 놀란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며 침이 마르게 범을 칭송하며 아첨을 떤다. 조선후기 실학자며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소설 ‘호질(虎叱)’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박지원은 소설 ‘호질’ 외에도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부도덕함과 타락, 무능함 등을 고발한 ‘양반전’과 ‘허생전’을 쓴 작가다. 자유롭고 재치 있는 문체로 당시 사회상을 잘 포착한 그의 소설은 서민계층에게 당연히 인기가 있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뼈대 있는 양반 가문 출신이 이런 부류의 소설을 썼으니 아마 평민들 입장에서는 통쾌하기가 그지없었을 것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양반계층의 무능과 비굴함을 비판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는 파격적이다.겉으로만 착한 척하는 위선은 특정 종교에서는 최악의 중죄로 다뤄진다. 단테의 신곡에서 위선자는 겉은 금이지만 속은 납으로 된 무거운 옷을 입고 영원히 행진하는 벌을 받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공자는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사람 가운데 어진자가 적다고 했다.정치를 하고 국가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위정자일수록 도덕적 완결성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그들이 국민의 환심을 싸기 위해 그럴싸하게 말을 꾸며놓고는 뒷전에서 딴 짓을 했다면 국민이 받을 배신감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김상조, 박주민 등 여당 실세들의 부동산 내로남불은 바로 소설속의 양반의 위선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4-04

신(新) 기후체제 원년을 맞아

엄태항봉화군수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변화는 이제는 ‘기후위기’라 불릴 정도로 훨씬 더 심각해진 모습이다. 올해는 2005년 발표된 교토의정서가 2020년으로 종료되고 파리기후 변화협약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해로, 본격적인 신(新) 기후체제의 원년을 맞이했다.지난 해 정부는 한국판 뉴딜에 앞으로 5년간 65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그린뉴딜 정책에 투자한다고 발표했으며, 올해 1월 바이든은 대통령 취임식 직후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행정명령에 가장 먼저 서명하며 ‘바이든 시대’의 첫발을 내디뎠다.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지방자치단체, 기업, 개인이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이러한 대내외적 흐름에 적극 대응하고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지역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봉화군은 민선 7기 시작과 동시에 일찍부터 다양한 녹색에너지 사업들을 선도적으로 추진해 왔다.봉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방 중소도시는 기후위기 뿐만 아니라,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지역소멸의 위기에도 처해 있다. 봉화는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산업 투자 유치가 어렵고, 귀촌귀농인들이 봉화에 오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이 없다보니 몇 년 안에 떠나는 경우가 많다.새로운 성장 동력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주민이 직접 경쟁력이 있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발전수익을 주민 소득과 연계하는 민·관이 상생하는 녹색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기존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외지 사업자 위주의 수익구조와 봉화의 낮은 지가로 인한 무분별한 태양광 발전소 건립으로 주민갈등이 많았다.먼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에 대한 발전시설 입지 제한을 완화하는 조례 개정을 시작으로, 경북에서는 최초로 ‘에너지 기본조례’와 ‘에너지기금 운용 조례’를 제정함으로써, 외지인들의 무분별한 개발을 방지하고 지역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녹색에너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전체 사업량의 60%를 100kw 단위로 주민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직접 분양하는 분양형 태양광 발전사업을 전국 최초로 시행했으며, 지난해 3월, 지역주민들이 직접 봉화국민 녹색에너지 협동조합을 설립해 지역주민이라면 소규모 자본으로도 누구나 쉽게 참여 할 수 있는 협동조합형 사업도 추진 하고 있다.지난해부터 각 마을마다 태양광 발전소를 건립해 발전수익을 마을기금으로 활용하는 마을단위 태양광 발전사업을 시작했으며, 앞으로 봉화군 157개 마을 전체로 확대해 지역 주민 복지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태양광 이외에도 풍력발전, 수소연료전지, 산림바이오매스 등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친환경 에너지사업들도 추진하고 있다.오미산 풍력발전사업은 봉화군과, 지역주민, 기업체의 유기적 협력과 참여를 통해 서로 상생하는 주민참여형 사업모델의 대표적 모범사례로 들 수 있다. 석포면 일원에 1천600여억 원 전액 민자로 출자해 추진되는 오미산 풍력발전사업은, 석포면 전체 주민 2천여 명이 지분 참여할 예정으로, 앞으로 석포면 주민 1인당 연간 70만 원 정도의 배당이 예상돼, 지역주민의 실질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러한 다양한 녹색에너지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경북에서는 유일하게 에너지 전환정책 지방정부협의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2019년 에너지 전환 포럼에서 ‘지방자치 부분 에너지 전환상’을 수상하며 봉화군 녹색에너지 사업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알리기도 했다.청와대 초청 재생에너지 사례발표를 비롯해 산학연과의 MOU체결 등 다양한 활동도 펼친 결과, 봉화군 녹색에너지 사업유형이 하나씩 정부정책으로 반영되고 있다.환경과 발전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한 환경 토대 위에서만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2021년 신(新) 기후체제 원년을 맞아, 봉화군에서 추진 중인 녹색에너지 사업들이 봉화군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이 돼 민선7기 취임 때부터 꿈궈왔던 ‘더불어 풍요로운 봉화’의 모습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2021-04-04

고향의 봄

‘겉바속촉’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그런 사자성어가 어딨냐고 따지고 덤비는 이가 없길). 튀김이나 마카롱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뜻인데, 봄은 겉촉속촉이다. 가지 끝에 물을 올리는 버드나무도 말랑해졌고, 따스한 기온에 몸을 부풀어 올린 꽃들도 한껏 물을 머금었다. 거기다 몇 주째 주말마다 봄비가 내려 더 촉촉해졌다.비가 부슬거리는 지난 주말에는 의성 산수유 마을에 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던 노오란 길을 우리도 거닐어 보기로 했다. 영화 속에 흐르는 마을의 사계절이 보는 내내 탄성을 지르게 했고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했다. 마을 한참 전부터 산수유가 길 안내를 한다. 집집마다 뒷마당에 한 그루씩 품었고 길가 가로수도 노랗게 불을 켠듯한 자태로 오래 그 자리를 지킨 듯 몸피가 제법 굵다. 산수유 마을답다.영화 속 주인공 혜원은 도시에서 바싹 마른 채 고향으로 내려온다. 늦은 밤 산짐승 소리에 무서워 전화 목록을 펼치는데 한 페이지가 다 차지 않는 주소록조차 바스락 소리를 낸다. 무섭다 외롭다 말하지 않아도 고향 친구 재하는 다 안다는 듯이 하얀 강아지를 품에 안겨준다. 퉁퉁 싫은 소리 하는 고모도 밥상을 차려서 허기를 달래주는 고향 마을이다.봄엔 노는 손이 없다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고사리와 재피 순을 따러 가는 길은 산수유 산책로이다. 3km 넘게 길게 이어진 노란 길이다. 초록 마늘밭을 옆에 두고 마을의 수호신처럼 키워서 내 키의 세 배 높이다. 올려다보니 가을에 익은 열매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인 가지도 있다. 빨강과 노랑의 협주다. 비가 내려 더 좋다. 우산을 받치고 걸으니 빗소리가 산수유 숲에 들이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된다. 아 좋다~. 비가 와서 더 좋다. 비 오니 걷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었고, 그래서 우리들만의 산책이라 산수유 골짜기가 다 우리 것이다. 노란 꽃잎에 빗방울이 조롱조롱 열린다.고향은 모든 게 달다. 먼저 내려와 이미 고향 공기에 촉촉해진 친구가 농사지은 토마토도 마트에서 산 것보다 달고, 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담근 막걸리가 익길 기다리는 시간도 달다. 그 장면은 목월 시인의 술 익는 마을이 떠올라 더 노골노골해진다. 살구꽃 핀 마을은 다 고향 같다는데 산수유 핀 곳도 다 고향이다. 영화의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이 구여친을 배웅하는 곳은 의성 가까이 화본역이다. 그 외에도 고운사, 빙계 계곡 등 의성의 곳곳이 나온다. 담장 밑에서 꾸벅거리는 동네 할머니와 닭 한 마리 던져주시는 아저씨, 도망간 엄마 이야기를 무심하게 내뱉는 동네 아줌마 역할까지 의성 가까이 안동에서 연극 하시는 분들이라고 했다.의성은 내 고향 안동 옆 동네다. 우리 차가 내가 나온 초등학교 언저리를 지날 때는 마음이 몸 어디에 붙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풍 갔던 암산 보트장, 학교 앞을 흐르던 강과 철길, 40년 사이 큰 길이 몇 개나 생겨서 산천은 변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목 뒤부터 뒤꿈치까지 더듬이를 세웠다.뭐니 뭐니해도 촉촉하게 만드는 것의 최고봉은 맛난 걸 먹는 거다. 혜원은 배추로 전을 부쳐서 젓가락으로 찢어 먹는다. 내 친정엄마가 비 오는 날이면 해 주던 음식이다. 안동을 오래전에 떠난 나도 겨울이면 달큰한 배추전으로 속을 달랜다. 산수유로 눈을 적신 우리 일행은 안동 갈비 골목으로 달려갔다. 마블링이 선명한 고기를 굽노라면 시래기 된장국과 갈비찜이 서비스로 나온다. 된장국에서 냉이 향이 그윽하다. 서비스로 나온 음식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영화 속 엄마는 딸에게 고향을 만들어주었다. 도시에서 바싹 마른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줄 고향을. 사계절을 의성 사곡면에서 보낸 혜원은 겉도 속도 촉촉해지자 다시 공부할 용기를 얻는다. 함께 놀러 간 경숙 언니는 오늘 산수유를 보아 촉촉해졌으니 다음 주는 아이들에게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고향은 봄이다. /김순희(수필가)

2021-04-04

헌신짝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오래 신어서 낡아빠진 신발 한 짝을 헌신짝이라 한다. 요즘은 재활용도 안 되는 골칫거리 쓰레기가 헌신짝이지만, 한때는 낡고 떨어져 못 신게 된 고무신도 엿을 바꾸어 먹는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달콤한 엿 맛의 유혹을 못 이겨 아직 덜 떨어진 신발을 일부러 돌에 문질러 못 신게 만들어서 엿을 바꾸어 먹는 덜떨어진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헌신짝 버리듯 한다’는 속담은 아마도 그런 고무신을 두고 한 말은 아닐 터이다.고무신이 선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도 있었다. 선거철마다 시골사람들에게 고무신을 한 켤레씩 나누어 주고 표를 부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고마워서 찍어주었다. 당시엔 무얼 받고도 모른 척 한다는 건 양심상 도리도 아니고 시골인심도 아니었다. 그런 인심이 요즘이라고 없어진 게 아니라는 걸 지난번 총선에서 보여 주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푼 것이 여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했을 거라는 얘기다. 더 고약한 것은 옛날에는 후보자가 사비를 털어 고무신을 돌렸는데 요즘은 국민의 혈세를 퍼주고 저들이 생색을 낸다는 것이다. 현 정권의 임기가 끝날 때쯤에는 나라 부채가 천조를 넘을 거라고 하니 더 이상 정권을 연장하게 했다가는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며칠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단연 해외토픽 깜이다. 한 나라의 수도와 제2 도시의 시장들이 나란히 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보궐선거를 하게 된 것이 어느 나라에 또 있는 일인가. 거기다가 전 서울시장은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으니 세계의 이목을 끌 쇼킹한 뉴스거리로 손색이 없을 터이다. 그들이 속했던 더불어민주당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당헌에 넣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였던 시절에 만든 거였다. 그 당헌에 따르면 이번 보궐선거에는 당연히 두 곳 다 후보를 낼 수가 없었다. 두 시장이 모두 자기네 당 소속인데다 수백억 원의 국고까지 축내게 됐으니 백배 사죄를 하고 후보를 내지 말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당헌 따위 헌신짝을 팽개치듯 바꿔버리고 뻔뻔스럽게 후보를 내었으니 누구더러 표를 달라는 것인가. 정당의 당헌이란 국민을 향한 약속이기도 하다. 그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것은 국민을 헌신짝 취급한다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또 그 당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는 사람들은 자청해서 헌신짝이 되겠다는 것이니 누가 말리겠는가.대통령을 향해 신발 한 짝을 던진 국민은 감옥살이를 시키면서, 이 정권과 여당은 수도 없이 헌신짝을 국민들 앞에 던지고 있다. 선거공약과 대통령 취임사로 거듭 다짐한 모든 약속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는 대국민 약속들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짓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행해온 정권이다. 여태껏 정권과 여당이 국민을 헌신짝 취급했으니, 이번 선거에는 국민이 그들을 헌신짝 취급할 차례다.

2021-04-01

공대 여학생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국회의원 직을 사퇴한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1971년 서울공대에 입학한 3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공대에 여학생이 입학하는 것이 큰 화제가 되고 신문에 기사화 되던 시절이다. 공대 캠퍼스에 여학생이 걸어가면 남학생들이 한참을 쳐다보곤 하였다. 여자 교수도 없던 시절이니까 공대 건물에 여자 화장실이 없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다.1946년 개교한 서울대의 공대생은 30년이 지난 1970년 중반까지 졸업한 여학생은 50명이 되지 않아 연 1∼2명 정도가 고작이었다.1973년 첫 입학생을 모집한 카이스트 대학원에도 여학생은 한해 2∼3명 정도였다. 그것도 생명공학 같은 특정 전공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학생 비율은 1%가 안되던 시절이다.1989년 필자가 포스텍에 부임했을 때 여학생의 비율이 10% 가까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보다 2년 앞서 포스텍 첫 입학생의 수석합격자도 여학생이었다.한국 전체로도 공대 여학생의 비율은 계속 꾸준히 증가하여 2000년 10%를 넘어서고 최근 통계에 의하면 여자 공대생이 20%를 넘었다고 한다. 재학생 기준이니까 신입생의 여학생 비율은 지금 25%에 육박한다고 한다.여자 공대생이 증가한 주요 계기는 1996년 이화여대가 여대로는 처음으로 공대를 신설한 것도 한몫을 했다. 한국의 대표적 여자대학인 이대가 공대를 만들리라고는 상상도 안가던 시절이었다. 그후 숙명여대 등도 공대를 만들었고 포스텍 교수님이 공대학장으로 임명 되기도 했다.최근 들어 대학 졸업자 중 인문계열 및 예체능계열 취업난에 따른 여파로 여학생들이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공학계열, 사회계열 입학이 대체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작년 대학 졸업자의 계열별 취업률’을 보면 의약계열이 80% 정도로 가장 높았고, 공학계열 70% 정도로 2위라고 한다. 사회계열, 인문계열, 교육계열 보다 높다고 한다.여성의 사회진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현상과 취업률이 좋은 공대의 상황이 여성을 공대로 끌어들이고 있다.사실 여학생 비율의 폭발적 증가는 법학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법시험 합격자나 법학전문대 여성 비율도 거의 50%에 육박할 정도이다.70∼80년대까지는 법대에 다니는 여학생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시절이고 여자대학 법대는 인문사회 계열에 비하여 인기가 떨어지던 시절이다.이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은 눈부시다.미국의 명문공대 MIT는 여학생 비율이 40%라고 한다. 이제 캠퍼스에 넘치는 공대 여학생은 선진화의 상징이고 여성의 사회진출의 상징이다.오늘도 공대 여학생은 코로나로 실험 등 일부만 대면 수업이 진행되는 캠퍼스 사이에서 싱그러운 젊음을 뽐내고 있다.

2021-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