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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22 대선의 필승 키워드 ‘혁신’과 ‘중도’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군주민수(君舟民水)’라고 했던가? 성난 민심이 배를 뒤집었다. 4연승 후 서울·부산 보선에 참패한 여당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 당황하고 있다. 그렇다고 승리한 야당의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실정에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 유력한 대선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2022년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어서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혁신(革新)’과 ‘중도(中道)’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키워드(key word)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편견과 독선을 버리는 중도정신으로 혁신하고, 혁신을 통해서 중도의 마음을 얻는 정당이 승리한다. 공정과 통합을 위한 혁신과 중도가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혁신이란 무엇인가? 나를 바꾸는 것이다. 진보는 진보를 내려놓고, 보수는 보수를 내려놓아야 혁신할 수 있다.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흑백논리’와 ‘내로남불’은 진영정치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위선적인지를 말해준다. 이념에 갇힌 좌우 꼴통들의 수구적 행태로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기득권이 되어버린 진보가 비판을 수용하여 혁신하지 못했으니 참패한 것이다. 권력도 술처럼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중간(中間)이 아니라 근본(根本)바탕으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이다. 중도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하며, 극단적 견해를 삼가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정신이다. 정치적 중도층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정도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정의·실용을 지향하는 심판관이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유권자들의 성향은 대체로 중도 48%, 보수 25%, 진보 27% 내외로 분석되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극단적 지지층’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합리적 중도’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여당과 야당은 물론이고 제3지대 인물들도 일제히 대선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누가 대권을 잡을 것인가? 민심을 얻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어떻게 민심을 얻을 수 있나? 혁신과 중도다. 이 두 개념은 제3지대 인물, 예를 들어 현재 대선후보 지지도 1위인 윤석열과의 연대도 가능하게 해주는 필승의 키워드이다. 어느 진영이든 혁신을 부정하면 중도가 이탈함으로써 패배할 수밖에 없다.나라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정치인(statesman)들의 정당은 제대로 혁신할 것이지만, 나를 위해 나라를 이용하려는 정치꾼(politician)들의 정당은 속임수를 쓰려고 할 것이다. 중도를 우습게보고 오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념에 구속되지 않는 합리적인 중도는 ‘누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실정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임을 깨달아서 과감히 혁신하는 정당의 후보자가 중도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대권을 잡게 될 것이다.

2021-05-03

하루 12만원 줘도 일손구하기 어렵다는 농촌

농민들이 “5월 본격적인 농번기가 찾아왔지만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데다 농자재 가격까지 급등해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공공근로 파견 등으로 농가 인력 구인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외국인 계절 근로자마저 귀해 일손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자연히 인건비도 급등해 농사를 접어야겠다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경북도내의 경우 지난해 농번기 일당이 8만원선이었지만 올해는 12만원까지 대폭 올랐다. 인건비가 이렇게 올라가자 ‘농사를 열심히 지어봤자 손해’라는 것이 농민들 말이다. 농자재 가격 상승도 연례행사처럼 진행되고 있다. 경북 안동의 한 농자재판매점을 취재했더니 비닐하우스용 파이프의 경우 30%가량 올랐고, 수요가 많은 농사용 필름값도 10%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한 농민이 “봄이 일찍 찾아와 고추를 일찍 심어야 하는데 탄저병 등 병해충 때문에 노지재배가 점점 어렵다. 그래서 비닐하우스를 신축하는 농민들이 많은데 농자재 값이 올라 올해는 대부분의 농촌에서 하우스 신설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청원인은 “매점매석이나 다름없는 일이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정부와 경북도가 농번기 일손 부족을 덜어주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지만, 농촌현장에서는 체감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올 들어 농업 분야 긴급인력 파견근로 지원제도를 도입했다. 각 지자체가 농가 파견사업주를 선정한 후 근로조건을 협의해 인력을 모집하는 방식이다. 경북도는 이와함께 도본청과 시·군 공무원, 산하공공기관 직원, 농협직원, 향우회, 동호인모임 등이 참여하는 농촌 일손돕기 추진단을 구성해 농가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농가마다 일할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그저께(2일) 강원도에 처음으로 계절근로자 63명을 파견했다고 밝혔지만, 농촌 일손은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외국인 근로자라도 적기에 입국해 농번기 일손 부족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021-05-03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총력 경주해야

대구시와 경북도 그리고 팔공산 관할 5개 기초단체(대구 동구, 영천시, 경산시, 군위군, 칠곡군)는 팔공산 승격을 위한 상생업무협약을 맺고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10여 년 전에도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문제가 지역의 논제로 떠올랐으나 대구시와 경북도의 인식 차이와 인근주민 반대 등으로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팔공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킨다면 우리 지역 최고의 명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할 수 있는 데다 팔공산의 가치상승을 통해 지역 경제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10여 년만에 다시 논의되는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문제는 이런 점에서 대구·경북의 매우 중요한 의제다. 또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야 할 일이기도 하다. 같은 논제로 광주는 2012년 무등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키고 국가 예산 투입 등을 통해 공원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팔공산은 우수한 자연생태와 더불어 국보 2점, 보물 28점 등 모두 91점의 지정문화재를 지닌 역사와 문화의 보고다. 총 5천295종의 생물종이 분포해 있어 전국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명산 중 명산이다.국립공원 지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주민반대 문제가 아직 남아 있으나 시도민 전체 의견은 70% 이상이 국립화에 찬성하는 쪽에 있다. 그리고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더라도 사유권 행사에는 지금과 다를 바 없다 하니 반대할 명분도 없다. 팔공산은 국립공원 승격이 미뤄지면서 그동안 난개발로 인한 자연훼손의 문제가 잦은 시비를 낳았다. 행정구역이 여러 군데 나누어져 있어 이런저런 핑계로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못한 때가 많았다. 체계적인 통합관리를 위해서도 국립공원으로 승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대구·경북 7개 단체장이 이 문제에 뜻을 같이하기로 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결정이다. 이제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다룰 협의체를 구성해 신속하고 적법한 절차 등을 통해 팔공산의 가치 보존에 적극 나서야 한다.대구와 경북의 행정통합론이 진전을 보지 못하는 이때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공동의제로 삼아 대응하는 과정은 보기도 좋다. 대구와 경북이 힘을 합쳐 팔공산을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키고, 또 나아가 대구·경북 상승과제를 푼다면 행정통합의 문제도 좋은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2021-05-03

교도소 갈 각오를 해야 하는 기업인

심충택논설위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 2월 22일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거 출석시켜 ‘산업재해 청문회’를 연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그날 위안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사기·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TV에 방영됐다. 윤 의원이 요통으로 인해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청문회에 나온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향해 “증인은 포스코에서 노동자들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야단치는 장면은 핫 이슈가 됐다. 관련 기사에는 ‘어이가 없다’,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등등 윤 의원을 비꼬거나 비난하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최 회장은 취임 후 기업경영에 사회적·환경적 책임과 수평적 거버넌스 개념을 도입해 포스코의 이미지를 혁신하고 있는 인물이다.윤 의원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에도 관여해왔다. 중대재해법은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김용균 씨 사고를 계기로 민주당에서 발의해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조만간 시행령이 확정되면 내년부터 법률효력이 발생한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의 입법취지, 실행가능성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시행령을 마련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중대재해법은 하청 업체를 포함해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에게는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이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상시근로자 5인이상 50인미만 기업은 3년유예) 시행되면 산재 발생 가능성이 상존(尙存)하는 조선·철강·화학·건설업종 CEO들은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것이 산업계 반응이다. 법률 내용 중 형사처벌 근거가 되는 경영진 과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의도를 가진 ‘고의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더라도 재해만 발생하면 대부분 과실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대구경영자총협회도 최근 대구지역 국회의원과 기업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법률의 ‘보완입법’에 대해 논의했다. 금형·주물업 등 대구시내 공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뿌리산업 기업인들이 특히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뜨거운 쇳물이나 무거운 금속을 다루는 공정이 있는 업종이라 직원들이 잠시만 방심해도 산재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중대재해법의 바탕에는 우리나라 기업이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희생시키며 성장했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근로자 안전을 침해하는 것은 범죄행위이고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일리(一理)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산재사고의 모든 책임을 기업주에게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유지하더라도 개인이 주의하지 않으면 사고예방이 불가능한 사업장도 있을 것이다. 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 중에는 만약 사고가 나서 사장이 구속되면 그날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무거운 처벌보다는 기업이 안전시스템 점검 역량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2021-05-02

대구 롯데몰 착공, 지역경제 기대감 높인다

대구 수성의료지구에 건립될 대구서는 최대 규모가 될 롯데쇼핑타운이 토지매입 7년만에 착공에 들어간다. 롯데는 당초 2014년 수성알파시티의 유통상업시설 용지를 분양받았으나 그룹 내 환경변화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착공을 미뤄오다 최근 5월 중 착공계획을 대구시 측에 밝혔다. 롯데 관계자는 이달 중 착공에 들어가면 2025년에는 준공 및 개점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에 착공할 롯데몰은 수성의료지구 내 기업유치 활성화뿐 아니라 대구 유통시장의 전반에 걸친 판도 변화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끼칠 것으로 보여 지역에서도 관심이 많다. 롯데몰의 연면적은 25만314㎡ 규모로 대구신세계(21만4천635㎡)보다 매장 면적이 17% 정도가 더 넓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급변하는 쇼핑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신개념 복합쇼핑물로 건립될 것이란 전망도 나와 롯데몰이 코로나 이후 시대 쇼핑문화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도 관심이다.경제적 측면에서 롯데몰은 대구지역 경제계에 긍·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발생시킬 수 있다.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청은 롯데 쇼핑몰 건립으로 8천여 명의 고용효과가 일어나고 연간 2천만명 이상의 집객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했다. 고용 창출과 유동인구의 증가가 대구산업 전반에 걸쳐 경제적 시너지를 만들어 낼 것이란 예측이다.무엇보다 용지분양이 지지부진한 수성알파시티 내의 의료시설 등에 대한 기업유치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또 그 옆에 조성될 법조타운과 함께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주변지역의 도시발전 속도가 크게 빨라질 것으로도 짐작이 된다. 도시개발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집객 효과가 큰 대형 쇼핑몰의 등장으로 지역백화점 업계와 재래시장 등 골목상권에 미칠 악영향도 생각할 수 있다. 과거 서울지역 백화점의 지역진출로 지역 유통업계의 몰락이 현실화 된 경험이 있다. 지금도 대구백화점이 프라점을 사수하고 있지만 롯데몰의 등장은 위협이다.자본력과 기술력이 앞선 대형업체의 지역진출을 막을 수는 없다. 외지업체의 지역진출이 지역과 상생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면 이는 얼마든지 지역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롯데몰의 등장이 지역경제 활력의 한 요소로 자리를 잡는다면 이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다.

2021-05-02

대구경북행정통합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가 지난달 29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시·도민 공론 결과에 대한 보고회를 열고 “행정통합 추진시기는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공약화를 통해 새로운 동력을 확보한 후 중장기 과제로 이어나가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공론화위는 행정통합 제약요소로 행정통합 관련 제도적 기반 부재, 시·도민 공감대 형성 부족, 중앙정부 관심 부재와 뒤늦은 대응 등을 꼽았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논의기간을 2개월 연장하기도 했으나 관심을 높이지 못했다는 점도 제약요인으로 들었다. 김태일 공론화위 공동위원장은 “행정통합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통합 의제를 민간주도로 다뤘고, 중앙집권에 대항하는 자치분권 운동으로 전개하면서 지역의 민주주의도 한층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의 최종결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공론화위 의견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은 시·도민 여론조사에서도 63.7%가 ‘2022년 지방선거 이후 중장기 과제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만큼 ‘속도 조절’이 이 지역 주민들의 주된 여론으로 보면 된다.대구경북행정통합이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공론화위의 지금까지 활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공론화위의 축적된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출발하기 위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행정통합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에 서 있다”고 밝힌 것은 같은 맥락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행정통합 속도를 늦추는 대신 추진동력을 다시 확보해 보다 안정적으로 시·도민 공론을 형성시켜야 한다.국가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이 현 상태처럼 수도권으로 집중되면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는 점점 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고 국회 의석이 수도권 위주로 형성되면서 권력이 중앙집중화 되는 것을 우리는 지금 여실히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더 시급한 것은 대구와 경북이 더 이상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경쟁하거나 싸움을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두 지방자치단체는 항상 행정통합을 염두에 두고, 한 몸이 돼서 역량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래야 대구·경북이 수도권 블랙홀에 빠지지 않는다.

2021-05-02

묘비명(墓碑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는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명예로운 인물로 남아야 한다는 뜻이다.묘비명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짧은 문구를 묘비에 새긴 글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덤 앞 묘비에는 죽은 사람의 생전 공덕이 많이 새겨진다. 특히 서양의 경우 묘비명이라 해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미리 써놓거나 준비를 하는 관습이 있다. 촌철살인하는 내용도 많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전하는 인생 철학이나 교훈이다.프랑스의 대표적 소설가인 모파상은 남부럽지 않은 돈과 명예를 거머쥐었으나 그의 묘비명에는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글을 남겼다.“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번역된 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오역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보는 내용이다.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은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평소 생각을 묘비에 담았다. 중광 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는 말로 괴짜스님다운 글을 남겼다. 누구의 말이든 죽음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라 생각하면 심오함과 진지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장례를 마친 정진석 추기경의 무덤 앞에는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라는 묘비명이 새겨졌다. “모두와 함께 나누는 것”을 사목 목표로 삼았던 정 추기경의 뜻을 기린 글이다. 바지 한 벌로 18년 입을 정도로 검소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장기와 가진 모든 것을 내주고 떠났다. 독선과 분열, 갈등과 다툼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그가 남긴 나눔의 정신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5-02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적인 친환경 생태관광섬

김병수 울릉군수코로나19시대 2년차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국가적으로 관광사업과 소비가 위축되었고, 울릉군도 예외 없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울릉군은 여러 가지 비전을 품고 있고, 그중 핵심비전은 ‘세계적인 친환경 생태관광섬 조성’이다. ‘꿈이 있는 친환경섬 건설’이라는 군정 목표를 위해 자연 친화적인 관광자원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대표적으로 ‘해담 길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담길은 울릉도 둘레 길의 이름으로 동해의 맑고 깨끗한 해안과 아름다운 내륙을 동시 감상할 수 있는 울릉도만의 독특한 길이다.해담길 조성사업은 2022년까지 사업비 30억 원을 투입해 길이 약 40km, 총 8가지 코스로 구성된 걸으면서 힐링하는 ‘걷는 길 개발’ 사업이다.육지의 어느 지역에서도 만날 수 없는 내륙 및 해안 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이뤄져 관광객의 다양한 욕구 충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 생태관광 섬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 울릉군은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 및 홍보 진행 중이다.단체관광이 주류를 이루던 과거 모습과 달리 커플·신혼부부를 비롯한 가족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개별관광객 위주의 관광상품과 함께, 울릉의 숨겨진 자연관광을 활용한 울릉 힐링로드 등 시대 흐름에 맞는 관광상품을 준비하고 있다.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울릉군은 올 3월 23일 울릉도 특산물에 대해 협업 네트워크 구축 업무협약을 구리농수산물공사와 체결했고, 앞으로 농수산물 유통 및 출하를 위한 핫라인을 구축하여 울릉군 농어가소득 증대에 크게 보탬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4월 20일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판매 업체인 현대홈쇼핑과 울릉군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현대홈쇼핑 본사에서 체결했고, 현대홈쇼핑이 보유한 다양한 방송채널을 통해 울릉군의 청정 농·수특산물 판매확대 및 홍보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대 홈쇼핑은 앞으로 울릉도 1DAY 특집전 기획 생방송 판매·홍보, TV홈쇼핑 상생 프로그램 LIVE 방송 진행, 라이브커머스 쇼핑라이브를 통한 LIVE방송 진행, 각종 매체를 통한 상호 홍보 등을 할 계획이다.특히 서울의 유명 농수산물 시장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을 통해 울릉도의 우수한 특산물을 서울시민들이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울릉도 농수특산물의 안전적인 팔로를 개척 농어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토록 하겠다.울릉도의 생채나물 유통활성화를 위해 울릉농협과 협력하여 사업비 8천만원으로 ‘울릉산채 선도유지 현장실증 시범사업’을 진행, 산채의 선도유지 저온유통 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귀농인을 위한 빈집수리 및 소득지원사업과 축산농가를 위한 축산물 생산·유통기반 조성과 방역지원, 산채재배농가를 위한 인력·농기계보급지원과 생채나물 유통활성화를 통해 농업인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농업인 삶의 질을 향상해가고 있다.생채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업비 1억원으로 3월~5월 기간 중 생채 수매분에 한해 육·해상 유통물류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지갱이, 명이나물, 우산고로쇠 수액 등 우수한 품질의 울릉 특산품 소비를 증대시키고자 최선을 다하겠다.저출산·고령화 등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울릉군 인구가 감소 추세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구 정책 홍보와 맞춤형 인구교육 등으로 인식 개선을 꾀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하겠다. 정주여건 개선, 출산·양육 지원, 교육·환경 지원을 다양한 사업들로 진행하여 인구 이탈을 방지하고, 내부 인구 증가와 외부 인구 유입이 촉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특히, 전입을 장려하기 위해서 ‘귀농인 정착지원 사업’을 진행, 울릉도를 방문한 도시민들에게 울릉군을 삶의 터전으로 홍보, 이를 통해 귀농을 목적으로 전입온 분들께는 농기계 구입 지원, 저장고·모노레일 설치지원, 주택 리모델링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인구 1 만명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21-05-02

고방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다.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그 순간 멀리 사는 할머니를 불러오고, 과묵한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게 만든다. 온 가족이 자신을 향하게 해 놓고 옹알옹알 시를 뱉어낸다.아이들의 몸은 이야기 가득한 언어의 창고다. 수많은 낱말이 뒤섞여 복잡하기만 한 저장고에서 매주 한 편의 시를 끄집어내 주는 일이 내 몫이다. 아이들이 교실에 도착하기 십 분 전에 미리 칠판에 초성 찾기 할 자음 두 개를 적어준다. 잠시도 가만히 있기 힘든 2학년과 힘이 넘쳐나는 3학년 친구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집중력을 발휘한다.낱말을 찾아내는 친구들에게는 ☆을 주는데, 그것을 모아 선물을 받을 수 있어서 아이들은 눈과 손에 불을 켠다. 선물이라고 해야 문구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우개, 공깃돌, 퍼즐 같은 천 원이 넘지 않는 가격의 소품이다. 다만 여러 아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을 받은 세 명이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니 받는 영광을 쟁취하려고 온몸을 쓴다. 자신의 몸 속 여러 방에서 낱말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고 무진장 노력한다.어릴 적 우리 집에는 방이 많았다. 부모님이 쓰시는 안방, 마루를 사이에 두고 갓 시집온 숙모와 삼촌 사이에 남동생이 끼어서 자고 싶어 했던 건넛방. 건넛방과 벽을 사이에 둔 뒷방까지가 안채에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사랑채에 기거하셨고 나와 언니는 사랑채 윗방에 지냈다. 식구들이 잠자는 방 말고도 디딜방아가 차지한 방과 소들이 허연 하품을 하는 외양간, 그 옆에는 짚이며 땔감이 가득 쌓인 헛간도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숨바꼭질하기에 우리 집이 최고의 장소였다.그중에 내가 자주 숨어든 곳은 고방이라 불리던 창고였다. 문을 열면 젤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곡식을 담는 그릇들이다. 내 키보다 높은 시렁에는 채반에 갖가지 나물 말린 것과 계절 과일이 숨겨 있었다. 바닥에는 아이 하나가 다 들어가고도 남는 단지가 둥글둥글 앉았고, 그 위 광주리에는 이름은 분명 있지만 내가 모를 뿐인 나물 말린 것들도 수북이 담겨 있다. 한쪽에는 콩이며 팥이 든 자루가 서로 기대고 있어서 내가 한 귀퉁이에 숨으면 감쪽같아서 숨기에 안성맞춤이었다.그곳은 할머니의 보물창고였다. 손님들 손에 들려온 과자 종합선물세트는 우리가 한꺼번에 다 먹어치울까 봐 높이 올려두고는 어르고 달랠 때 하나씩 선을 보여주셨다. 내가 몰래 들어가 맛난 걸 찾아내려고 해도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무서운 도깨비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아 오래 머물기 힘들었다. 언니와 같이 들어가 뒤져봐도 어느 단지에 또 어느 상자에 달콤한 과자가 들어있는지 찾아내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하지만 고방 주인인 할머니는 들어가자마자 금방 곶감이나 유과를 손에 들고나오셨다. 보기에 엉망으로 뒤섞인 내용물들이 할머니 눈엔 훤하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어지러워 보이는 그곳에 할머니는 나름의 법칙으로 곡식과 과일과 달콤이들을 숨겨놓으셨다.아이들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잘도 시를 꺼내놓았다. 그 시들을 수업시간만 음미하고 흘려보내기가 아까웠다. 한 편 한 편 엮어서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고 싶었다. 교실에서 연필로 쓴 시를 집으로 보내면 부모님들이 읽어보고 휴대폰에 써서 내게로 다시 보내진다. 모은 시를 한 권으로 만드는 게 내 몫이다.아이들의 시집을 편집하느라 한 달을 고스란히 집중했다. 강의가 끝나는 날 하얀 표지의 ‘보물창고’를 받아든 아이들에게 자기 시 한 편씩 낭송하게 했다. 공책이 아닌 시집에 인쇄된 자신의 시를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또랑또랑했다. 책을 받아본 부모님들이 문자로 전화로 감동을 전해왔다. 아이들의 시가 시인의 시 같다고 까르르 웃어넘기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귀에 와 닿았다. 그 순간 할머니가 고방에서 꺼내주던 과자의 달콤한 향 같은 것이 온몸에 퍼져갔다. 아이들이 나를 그리운 어린 시절로 데려다준다. /김순희(수필가)

2021-05-02

죽비소리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이른 봄꽃이 필 무렵부터 시작하여 산천에 녹음이 짙어진 지금까지 주말마다 대구에 다녀오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피치 못할 일로 가는 먼 길이지만 고속도로 주변은 넘쳐나는 연초록의 물결로 ‘신록예찬’이 절로 떠오르는 황홀한 풍경이라 이를 매주 감상하는 것은 행운이다. 돌아오는 길, 무심히 차창 밖을 보다 깜짝 놀랐다. 온통 누렇게 색이 변한 대나무 숲을 만났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도 변함없이 푸름을 자랑함으로써 군자의 절개를 상징하여 사군자의 하나로 불리는 대나무가 이 초록의 계절에 어찌 저리 되었는가.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백년에 한 번 핀다는 ‘대 꽃’이 핀 것일까?대나무는 평생에 한 번 꽃을 피운다. 대나무는 여느 식물들과 달리 꽃가루 번식이 아니라 뿌리로 번식한다. 더 이상 뿌리로 번식할 수 없을 때 꽃을 피우는데, 그러니까 죽기 전에 마지막 의식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대나무의 죽음이 특별히 장엄한 까닭은 죽음을 무릅쓰고 꽃을 피워 종족보존의 본분을 다하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죽음공부’를 하는 지인이 있다. 죽음이란 것이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피해 다니다가 어느 날 막다르고 후미진 곳에서 강도에게 급습 당하듯 맞닥뜨려야 하는 험악한 얼굴이 아니라 가능한 한 ‘살아서’ 죽음의 순간을 실감하고 싶어서라 한다. 그의 지인 중에는 죽음이 완전 소멸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한다. 죽음 후에 아무것도 없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죽는 걸로 끝이라면 구태여 착하게,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사람답게 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고작 몇 십 년 사는 거, 나 위주로 살면 그 뿐이다. 그렇지 않고 잘 죽을 준비를 위해 필요한 것이 죽음공부다.‘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란 묘비명을 남기며 모든 이로부터 추앙받던 정진석 추기경의 선종 소식은 인간의 생명이 유한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였다. 각막기증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남김없이 주고 떠난 고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 미사가 치러진 명동성당에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신자들이 모여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별다른 조각 장식이 없는 삼나무로 짠 관 위에는 성경책 한 권만 놓여 있는 소박하여 더욱 엄숙한 장례 미사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추모사,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 알려주셨다.”처럼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고층아파트 불빛을 등지고 한 구비만 돌아들면 산골마을로 변하는 우리 마을의 초입에는 길 좌우로 키 큰 왕대나무들이 즐비한 구간이 있다. 마치 대나무 열병식이나 대나무 터널을 연상케 하는 이곳을 통과하며 이웃에 사는 선배는 여기가 마치 인간계와 자연계의 경계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굳이 그 말이 아니더라도 필자 역시 그곳을 지날 때면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전생과 현생, 혹은 현생과 내생의 경계를 넘나드는 느낌을 느끼곤 한다.군더더기 없이 살기 위해 속을 비운 대나무, 하늘 향해 곧게 자란 성깔 있는 존재, 대쪽 같은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죽비소리 ‘타닥!’, 굽은 등줄기를 내리친다.

2021-05-02

이팝나무 하얀 꽃잔치

윤영대수필가이제 계절의 여왕, 오월이 왔다. 우리는 아직도 ‘코로나 거리두기’라는 사슬에 묶여있는데 계절은 자연의 왕성한 힘을 부추기면서 찬란하게 피었던 벚꽃이랑 봄꽃들을 떨구어내고 봄비에 씻겨 아름답게 단장한 새 얼굴들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고 있다.길을 지나다 보면 하얀 꽃나무가 아름다운 가로수가 되어 줄지어 있는 곳이 눈에 많이 띈다. 이팝나무다. 언제부터인가 가로수로 심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대로변이나 마을 길에도 5월이면 하얀 꽃들의 잔치를 즐길 수가 있다. 푸른 연록색 잎 가지에 하얀 꽃송이가 소복소복 쌓여있어서 늦봄에 흰눈이 내린 듯 신기하다. 배고팠던 옛 시절 밥사발에 소복이 담긴 흰쌀밥처럼 보여서 ‘이밥’ 나무라 했고 또 입하(立夏)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입하목, 입하나무로 불렀다가 다시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영어로도 하얀 눈꽃(snow flower)이다.입하는 ‘여름에 든다’는 절기이며 보리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의미로 맥량(麥6DBC), 초여름이라는 맹하(孟夏)라고도 하는데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하는 계절이며, 고추 오이 가지 등 열매채소를 심는 때이기도 하다. 이때가 되면 생각나는 흰 쌀밥 꽃, 그 하얗게 눈이 내린 듯한 경관을 보고 싶어 흥해향교 숲을 찾는다. 하마비가 서 있는 언덕바지에 주차하고 오르면 태화루의 시원스러운 팔벌림 옆에는 백 년은 넘었을 이팝나무 거목들이 호위하듯 지키고 서 있다. 아니, 오월의 여왕이 하얀 비단옷을 입고 환하게 맞이하는 듯하다. 닫혀있는 문을 살포시 밀고 들어서면 명륜당도 고요하고 돌계단을 올라 대성전 뜰에 서니 막 송홧가루 날리기 시작하는 소나무가 묵상하듯 단정하다. 검은 기와지붕 위로 드리운 하얀 이팝나무꽃의 흑과 백, 파란 하늘 아래 울창한 푸른 숲의 청과 녹-이 자연의 어울림은 봄의 여왕이 주는 선물이다.옆에 있는 임허사 절의 독경 소리에 이끌려 좁은 길을 지나 올라서니 상수리나무와 어울려 많은 이팝나무의 흰 꽃들이 한껏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이 옥성리 이팝나무군락지는 큰나무 26그루가 있어 작년 12월 천연기념물 제561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제일의 군락지다. 그런데 표지판은 경상북도기념물 제21호, 아직 바뀌지 않았네…. 운동시설과 쉼터 등 깨끗하게 꾸며진 언덕을 이리저리 천천히 걷다가 큰 이팝나무 둥치를 가슴에 안고 귀를 데어보니 조용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어젯밤 사이에 내린 빗방울로 하얀 꽃들은 더욱 얼굴이 곱고, 그래도 다 채우지 못한 이팝나무 모습의 미련에 시내 ‘철길숲’공원으로 달려갔다. 철도의 흔적을 따라 길게 조성된 Forail 산책길은 코로나에 지친 시민의 힐링 공간이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쌀밥 꽃들의 하늘거림 아래로 마스크를 쓴 채 가족 나들이하는 모습은 희망이다.5월은 또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는 몸매 고운 오월의 여왕이 하얀 모시옷 입고 너울너울 살풀이춤을 추는 이팝나무 숲길을 걸으며 바이러스의 횡포를 날려버리고 서로의 사랑을 듬뿍 느껴보자. 이팝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자기 향상’이다. 오월을 밝은 마음으로 맞이하자.

2021-05-02

걱정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 살았다. 그는 만약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면 몸을 지탱할 곳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그 걱정남을 위로하는 친구 위로남이 있었다. 이 위로남이 걱정남을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하늘에는 공기가 쌓여 있을 뿐이네. 공기가 무너질 리도 없고, 설사 무너진다 해도 다칠 이유가 없네. 우리는 이미 공기 가운데서 움직이며 숨 쉬고 있지 않은가. 왜 괜한 걱정을 하나?”“땅은 흙이 쌓여 이루어진 것일세. 사방에 꽉 차있는 흙이 어디로 꺼지겠는가? 저 수많은 사람과 무거운 집, 태산까지도 받쳐주는 대지가 아닌가? 괜한 걱정일랑 말게”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기우(杞憂)라는 말이다. ‘기 나라 사람의 걱정’ 다시 말해 쓸데없는 걱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가 임상연구원으로 있었던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조지 월튼(George Walton)의 연구에 의하면,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없는 사소한 일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 4%,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 4%”라고 한다.유난히 걱정이 많은 분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위의 기 나라 사람처럼 현실적 고통보다 부정적 상상 속의 고통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그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날 확률이 적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걱정을 많이 한다. 자동차하면 사고, 아이가 학교에서 약간 늦게 오면 유괴, 밤거리하면 강도, 내가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실패, ‘내가 하면 되는 일이 없어’라는 식으로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차분하게 해결점을 찾기보다는 바로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경향이 높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제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 “이거 큰 일 났구나.”라고 생각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부정적 상상에 의한 공포로 호랑이가 잡아먹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스스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호랑이 굴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그러나 걱정이 많은 사람은 이런 부정적인 사고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걱정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첫째,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걱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커지기 때문이다.1987년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웨그너 (Daniel Wegner) 교수의 실험에서 우리가 “걱정하지 않을 거야, 걱정은 쓸데없는 거야.”라고 생각할수록 걱정들이 더 많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히려 “나는 지금 이런 걱정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림하고 수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둘째, 하루에 시간을 정해 놓고 10분만 걱정하자.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평소 걱정 때문에 시간이 많이 빼앗긴다고 걱정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걱정을 멈추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말고, 그저 걱정만 하자. 단, 걱정을 할 때는 지침이 있다.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걱정들을 하나씩 글로 적어보자. 걱정들이 글로 정리되어 옮겨지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보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글을 쓴 후 차분히 읽어보자. 가능한 타인의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자신의 걱정을 살펴보자. 지금 걱정에서 더 나은 해결책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일들이 실제로 내게 닥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소한 일을 내가 걱정으로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차분히 걱정들을 적고 읽다보면, 내가 그토록 괴로워하던 걱정이 실제로는 그토록 괴로워해야 할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셋째, 걱정 시간이 아닌데도 걱정이 된다면, 걱정의 초점을 다른 것으로 돌리면 된다. 특정한 대안을 떠올려서 생각의 흐름을 바꾸는 것을 ‘초점 전환(focused distraction)’이라고 한다. 특히 걱정이라는 생각의 영역에서 생각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전환하면 더욱 도움이 된다. 걱정이라는 생각의 영역을 감각이라는 영역으로 전환해보자. 음악 소리에 집중해도 좋고, 아로마 향에 집중해도 좋고, 아름다운 풍경에 집중해도 좋고, 호흡에 집중해도 좋다. 신체 감각으로 있는 그대로의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면 된다. 걱정이라는 생각의 영역을 신체 활동이라는 영역으로 전환해도 좋다. ‘단순 반복 행동’에 몰입하는 것이 좋다. 설거지를 해도 좋고 청소를 해도 좋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해도 좋다.

2021-05-02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지질공원, 울릉도·독도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애국가의 가사대로 동해물이 마른다면 울릉도와 그 부속섬 독도는 어떤 모습일까? 독도는 자그마한 돌섬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보는 독도는 해저로부터 높이 약 2천300m에 달하는 거대한 화산체의 정상부일 뿐이다. 약 460만년전 해저 화산분출로 생성된 독도보다 훨씬 뒤늦게 약 250만년전 생성을 시작한 울릉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 높이는 987m이지만, 그 실제 높이는 무려 약 3천100m에 다다른다.지난 2012년 12월, 환경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품은 지질학적 가치에 주목해 울릉도·독도와 주변 해역을 제주도와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하였다. 2021년 현재, 경북도 2개소(울릉도·독도, 경북동해안)를 포함하여 전국에 13개소의 국가지질공원이 지정되어 있다.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에는 이중분화구, 주상절리, 시스택, 해식동굴, 해식절벽 등 다양한 지질학적 특성과 함께 성인봉 원시림, 알봉, 용출소, 죽도, 관음도, 삼선암, 코끼리바위(공암), 태하해안산책로 및 대풍감, 황토굴, 도동해안산책로, 저동해안산책로, 죽암 몽돌해안, 학포해안, 거북바위 및 향나무자생지, 봉래폭포, 국수바위, 버섯바위, 노인봉, 송곳봉 등 울릉도의 지질명소와 함께 독도에는 숫돌바위, 독립문바위, 삼형제굴바위, 천장굴 등 지질명소가 있다. 그야말로 섬 전체가 지질명소이다.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산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섬 전체가 화산암과 화산쇄설성 퇴적암류로 구성된 독도는 폭발성 화산분출과 동해의 거센 파도에 깎이면서 다양한 화산암층, 주상절리, 해식동굴, 해식절벽 등이 존재한다.250만 년 전부터 생성을 시작해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약 5천년 전에 마지막 분출이 일어난 울릉도는 성인봉, 나리분지(칼데라), 알봉으로 구성된 이중화산의 형태를 띠고 있어 지질학적으로 매우 큰 가치가 있다.성인봉 원시림은 성인봉을 중심으로 나리분지 일대에 넓게 분포한다. 해발 약 360m에 위치한 나리분지는 동서방향으로 약 1.5㎞, 남북방향으로 약 2㎞에 이르는 울릉도의 가장 넓은 평지이다. 울릉도는 전체 면적의 약 67.7%가 해발 200m 이상일 정도로 지형이 매우 가파르다.성인봉 원시림에는 생성이후 육지와 격리된 탓에 섬말나리, 섬바디, 우산고로쇠, 섬백리향, 섬쑥부쟁이, 울릉산마늘(명이) 등 30여종의 울릉도 고유 식물들이 자생한다. 세계 섬 중에서 가장 많은 향상진화 특산식물 보유지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식물 진화 자연실험실이다.울릉도는 단단한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토양이 만들어지기가 어려워 식물이 살기에 힘든 땅이었다. 하지만 나리분지 알봉이 생성될 무렵인 약 5천년 전에 마지막 화산폭발로 부석들이 울릉도 전 지역을 덮었고 많은 양의 화산쇄설물들이 퇴적되었다. 부석질의 화산쇄설물은 쉽게 풍화되어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층을 만들어 오늘날의 원시림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과거 비옥한 산림과 함께 현재는 더덕밭으로 유명한 죽도 또한 마찬가지이다.나리분지의 특징적인 지질구조와 풍부한 적설량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겨울 강수량이 가장 많은 울릉도의 기상 특성은 물이 풍부한 섬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하수로 발전하는 곳이 울릉도이기도 하다. 도동항과 저동항을 잇는 해안산책로는 울릉도 화산활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묵직한 지질교과서이다. 울릉도 북서쪽에 자리잡은 꼬끼리바위(공암)는 원래 울릉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깍이면서 외딴 바위를 만들었으며, 또한 아치형 해식 동굴을 만들었다. 울릉도 북동쪽에 위치한 해안절경인 삼선암 또한 원래 울릉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약한 부위가 파도에 의해 침식되면서 현재의 시스택 구조가 되었다.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 2019년 울릉도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울릉도의 관광만족도는 다소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울릉도의 생태자원 가치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주고 있었다.울릉도의 관광 만족도 개선을 위해서는 생태자원을 기반으로 한 울릉도 고유의 생태관광 프로그램의 적극적 개발이 필요하다. 특히 설문조사에서 관광객들은 해설사가 동행하여 울릉도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관광형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울릉군에서는 20여명의 국가지질공원 해설사를 두고 있으며, 사전 예약제를 통하여 울릉도(독도)의 지질학적 가치와 그 땅에 기대어 사는 주민의 삶을 알리고 있다. 울릉도와 그 부속섬 독도는 섬 전체가 야외자연사박물관이요, Eco-Lab (자연생태실험실)이라 할 수 있다.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본다. 그것이 또한 울릉군의 부속섬 독도를 지키는 길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향한 긴 여정도 시작되고 있다.

2021-05-02

포항 ‘땅꺼짐 현상’ 발생한 곳 많아 충격

올들어 새해 첫날 포항시 남구 대송면 철강공단 3단지 내 중앙스틸(주) 공장에서 면적 1천600㎡에 달하는 지반이 2~2.5m 아래로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해 포항시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17년 11월 15일 5.4 규모로 발생한 강진 여파로 포항 땅속에서 무슨 일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국토안전관리원이 지난 1월 23일부터 3월 31일까지 포항전역에서 지반침하 취약지역으로 판단되는 27개 구간에 대해 정밀조사를 벌였다. 그저께(28일) 발표된 조사결과에 의하면, 27개 구간 중 17개 구간은 지반이 양호했고, 7개 구간은 지반표층만 침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3개 구간(13곳)은 ‘공동(空洞·땅꺼짐)발생구간’으로 조사돼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북구 장성동 1429-1번지∼양덕동 2234번지 구간에는 모두 10곳의 공동이 몰려있는 것으로 확인돼 포항시가 하수박스 등을 추가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포항시는 공동발생구간에 대해서는 즉시 복구작업을 하기로 했다.포항시민들은 지반침하현상이 4년 전에 발생한 지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땅꺼짐 현상이 생기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지진이 나고부터 땅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공사라도 하지만, 없는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북구 장량동 일대에서는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도로가 기형적으로 내려앉아 있는 모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포항시가 앞으로 지하시설물에 대한 지반탐사 및 안전관리를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땅꺼짐 현상이 발생한 곳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안전조치가 필요하다. 지진전문가들은 “공동화 현상이 지진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무른 퇴적암층이 많은 포항 지역이 대규모 지진으로 지반이 흔들리며 이것이 잦은 지반 침하 현상을 낳을 수도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포항 지역은 깊이 3㎞까지 퇴적암이 쌓여있고, 퇴적암은 굉장히 약해서 지진이 한 번 나면 부서지기 쉽다는 것이다. 만약 땅꺼짐 현상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지진이라면 정부에서 피해주민에 대한 지원을 해 줘야 한다.

2021-04-29

경제계 상소문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상소문 형식으로 꼬집은 시무 7조의 청원이 화제를 뿌렸다. 20만명 이상 청원이 올라온 이 글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옛날식 상소문 형식에다 명쾌한 문장 전개로 세인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상소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다. 그 내용은 건의, 청원, 진정 등에서부터 개인적인 감사의 표시까지 매우 다양하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관료와 학자, 유생이 올린 상소는 수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상소는 관직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 유생까지 말할 수 있는 제도여서 당시 왕과 소통하는 창구로서 역할도 했다.조선시대 1만여 유생들이 올린 만인소(萬人疏)를 보면 당시 비록 왕권사회라지만 언로가 열려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시대 최초의 만인소(1792년)에는 영남유생 1만57인이 참여했다. 그들은 사도세자의 원한을 풀어달라는 내용으로 상소했다. 상소문 중에는 지부상소(持斧上疏)라는 것이 있는데, 목을 내놓고 상소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선조 때 왜국의 사신 목을 베고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조헌의 상소가 그것이다. 선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훗날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수모를 겪었다.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하는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의 탄원이 청와대에 전달됐다. 경제단체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 부회장 공백에 대한 광범위한 경제계 우려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보다 앞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0%가 그의 사면에 찬성을 표했다. 백신과 반도체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대해 그의 역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보인다. 대개 상소란 민심을 바탕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이 높다. 상소를 접한 청와대의 생각이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4-29

시험대 오른 윤석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권의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여론조사서 대선후보 적합도 1위로 나오는 윤 전 총장이 매우 유력한 대권주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윤 전 총장의 대권가도는 아직 멀고도 멀다. 윤 전 총장이 맞닥뜨릴 가장 큰 난관은 아직 한번도 정치권의 검증대에 오른 경험이 없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우리 정치권의 인물검증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장관직을 맡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국회 인사청문회지만 그 험난함 때문에 고사하는 이들이 많아 장관 후보를 뽑기가 어려울 정도다.실제로 학계에서 명망이 높은 분이나 고위공직자로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온 이들 가운데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허망하게 낙마한 경우가 적지않다. 대표적인 게 자녀병역 특혜나 학위논문 표절, 친·인척의 부동산 투기행위, 아이들 학군배정과 관련한 위장전입, 기타 업무와 관련한 특혜시비 등이다. 예전에는 논문을 쓸 때 표절여부를 그리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았기에 학계 출신의 상당수는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고위공직자 자녀들 상당수가 병역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가 논란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아파트나 땅 투자로 재테크한 경우 역시 부동산 투기란 비판을 받았고,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명문학군에 위장전입했던 사실이 발각돼 낙마한 경우도 많았다. 정작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업무적 능력이 문제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국회 인사청문회는 약과다.대권고지를 향한 인물 검증은 강도 자체가 다르다. 정치권 전체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물고뜯는다. 당연히 훨씬 가혹한 기준이 적용된다. 지난 대선 때 대선출마의 뜻을 밝히며 귀국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대선 불출마선언을 했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당시 반 전 총장은 국외에서 주로 활동을 했기에 정치적인 공격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고, 외교장관에 임명될 때도 청문회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그래서 대권 출마선언 직후부터 시작된 반(反) 반기문 세력의 파상공세가 더욱 힘겹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물론 윤 전 총장은 반기문 전 총장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있으며, 윤 전 총장에 필적할 만큼 지지율 높은 후보가 아직 없다는 것은 큰 메리트다. 다만 윤 전 총장이 국민의 힘으로 입당해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거쳐야 하는 게 부담이다. 당내에서 이끌어 줄 친윤파 의원이나 조직도 없어 후보로 확정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윤석열 신당을 만드는 것도 정치신인으로서 쉽지않은 일이다. 이 와중에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은폐·축소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된 전력이 있는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29일 자신을 기소한 윤 전 총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정치권 검증의 신호탄일 뿐이다.윤석열에 대한 검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1-04-29

달빛내륙철도 건설 대통령이 결단 내려야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내륙철도가 국토부의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서 빠지자 해당 노선 통과지역의 영호남 6개 단체장이 긴급 회동을 갖고 이 노선이 국가철도망 계획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다.달빛내륙철도는 대구와 광주간 203.7km 구간을 고속화 철도로 연결해 1시간대 생활권을 형성하는 4조850억원 규모 사업이다. 동서교류와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적 사업으로 주목받아 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영호남 상생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사업이다. 대통령의 공약사업인 이 노선은 지난 22일 열린 국토부의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1∼2030년)에서 또다시 반영되지 못했다. 교통부는 장래 여건 변화를 고려한 추가 검토사업에 포함시켰다. 이는 기약이 없는 거나 다름없어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거창에서 만난 영호남 6개 단체장은 “영호남 시도민의 실망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대통령의 결단을 호소했다. 이 사업은 이미 10년 전 3차 국가철도망 구축사업에서도 추가 검토사업으로 밀려났던 경험이 있다. 국토부가 주장하는 비용대비 편익(BC)만 따진다면 앞으로도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되기 어렵다.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몇십 년 동안 단절됐던 지역에서 단숨에 경제성이 나오기 어렵다는 말이다. 애초 이 사업은 경제성을 넘어 국민대통합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출발했다. 국토부가 경제성을 언급하는 것은 사업의 목적을 도외시한 자세일 뿐이다. 또 국토부가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목표에서 제시한 주요 거점도시간 2시간대 목표 달성이라는 내용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제 대통령의 결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올 6월 확정될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이 노선이 반드시 포함될 수 있도록 대통령의 용단이 필요한 것이다.대통령과 여당은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20조원이 넘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에는 특별법을 만들고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생략한 채 밀어붙여 왔다. 정작 남부권 경제의 인적, 물적 교류를 활성화 시킬 달빛내륙철도 건설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남북축 위주의 국가 철도망에서 동서로 연결하는 달빛내륙철도의 구축은 국토균형발전과 지역간 격차 해소, 국민 대통합 등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980만 지역민의 여망을 담은 대통령의 결심을 촉구한다.

2021-04-29

윤여정 신드롬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제 이름은 윤여정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제 이름을 ‘어영’ 혹은 ‘유정’이라고 부르는데요. 제 이름은 ‘여정’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용서하겠습니다.”배우 윤여정으로 온 나라가 흥분에 휩싸였다. 전세계가 놀라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을 받았다. 영화 ‘미나리’를 통해 오스카 조연상을 받은 것이다. 연기상으로는 한국인 최초이고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라고 한다.지난해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적과 같이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을 당시도 연기상에서 한국인이 수상하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고 더구나 2년 연속 한국영화 또는 영화인이 아카데미 시상대에 오르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올해 나이 일흔 넷의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믿기 힘든 순간을 한국영화 102년 역사에 남긴 것이다.‘미나리’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절대적인 기회를 준 사람이긴 하지만 윤여정 개인의 노력이 돋보인다. 전세계에의 각종 영화상에서 무려 42개의 트로피를 받으면서 정점의 오스카상으로 마무리 한 것이다.본격적인 소감에 앞선 윤여정 특유의 농담에 시상식 장내에 웃음이 번졌다. 이미 앞서 열린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 당시 “‘고상한 척(snobbish)’ 하는 걸로 유명한 영국인들”이란 뼈 있는 농담으로 화제가 됐던 윤여정이었고 이날도 브래드 핏 제작자에게 “드디어 만났네요. 영화 찍을 때 있었나요?”라고 하면서 재치있고 유창한 영어 솜씨로 때때로 던지는 유머도 전세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지금 열광하고 있는 윤여정 신드롬은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첫째, 자기 분야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은 결국 인정받는다는 전문성이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윤여정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정말 열심이었다. 중간에 10여년의 미국생활의 공백기를 딛고 귀국해 다시 차근차근 연기의 전문성을 쌓아 나갔다.둘째, 국제성이다. 한국어로 인터뷰하라는 요청도 있지만 국제어가 된 영어로 BBC, CNN 등 전 세계 매스컴에 자신을 알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어로 농담까지 겯들이는 모습은 그녀의 국제성이 앞으로 그녀의 국제성으로 높여 줄 것이다.셋째, 남을 배려하는 겸손한 이미지이다. 자신은 “최고”가 아니라 “최중”이 되자고 외치며 같이 경쟁한 후보들을 일일이 칭찬하고 자신에게는 조금 행운이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윤여정 신드롬은 우리 사회가 노력을 통한 전문성, 그리고 국제적 감각으로 무슨 일이든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절대적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윤여정의 초기 데뷔 시절 어딘가 부족한 듯한 연기를 보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걸어온 길에 경의를 표한다. 그건 우리 모두가 배워야할 길이다.윤여정 신드롬을 마냥 즐기고 싶다.

2021-04-29

미국과 중국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인 조선말기는 지리멸렬한 정국이었다. 오랜 당파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된데다 국제정세에 무지몽매한 조정은 불어 닥친 외세의 바람에 갈팡질팡하고,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19세기 말에 네 차례나 조선을 방문한 영국인 비숍 여사는 조선인들의 가난과 불결, 게으름에 놀랐다고 한다. 조선의 백성들이 가난한 것은 노동의 의욕이 낮고 따라서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인데 이는 부패한 관리들의 수탈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일을 해도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절망과 체념이 백성들을 무기력하고 게으르게 만든 거라는 결론이었다. 거기다 상류층은 사치와 방탕에 절어 있었다고 한다. 맹자에 나오는 ‘國必自伐然後人伐之(나라는 스스로 망할 짓을 한 후에 다른 사람이 멸망시킨다)’는 말처럼 조선은 이미 곳곳에 패망의 징조를 보이는 나라였다.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된 것은 미국의 원폭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때문이었다. 타력에 의해 불시에 해방은 되었지만, 막상 나라를 다시 일으킬 준비는 되어 있질 않았다. 당연히 좌왕우왕하고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었다. 식자층의 과반수가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고 국민의 70%가 사회주의를 찬성한다는 실정에 남쪽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수립된 것에는 미군정과 이승만의 의지와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미국과 동맹을 맺고 비호와 원조를 받은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데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혜택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김일성이 도발한 6·25전쟁에 미국을 위시한 유엔의 도움이었다. 미국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그 때 대한민국은 없어지고 우리는 지금 김정은을 절대 존엄으로 떠받들어 모시고 사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이 비록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도운 것이라 한들 그것이 우리나라를 살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일이다. 반면에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으면 남북은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압록강까지 진격을 해서 한반도의 통일은 눈앞에 둔 순간 중공군의 침입으로 무산이 된 것은 천추의 한으로 남을 일이었다. 전쟁의 발발에서 병력투입까지 중공은 명백히 대한민국의 적국이었다.지금 대한민국 정부의 요직을 장악한 주사파들 중에는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것이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6·25전쟁에 미군이 참전해서 적화통일을 막은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미군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사회주의국가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노선이 반미친중 정책이다.반대쪽 국민들의 반발을 의식해서 겉으로는 아닌 척 위장을 하더니 차츰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근간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분명한데도 경각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사코 엇길로만 가는 정권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2021-04-29

달동네 같은 교회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한국 건축의 아버지 김수근씨는 “우리 선조들은 집을 건축할 때에 집 없는 이들이 묵어갈 사랑방을 두었다”면서 건축에는 반드시 이웃과 함께할 공간이 포함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 승효상은 “무엇이 진정한 건축인가?”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시기에 우연히 달동네를 방문하게 되었다. 달동네는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라 서로 필요한 자원을 나누며 살았다. 단칸방이라 집에서 모일 수 없어 지형을 따라 생성된 좁고 굽은 길에서 모였는데 그 길은 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 놀이터요, 치유가 이루어지는 병원이요, 물자를 나누는 시장이요, 삶을 공유하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이 길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활의지를 다지고,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었다. 승효상은 달동네의 길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건축의 길을 찾았다.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교회란 무엇인가?”하고 묻자 교황은 “교회는 야전병원과 같은 곳”이라 했다. 야전병원은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치료해서 다시 전쟁터로 돌려보내는 재활의 장소이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상처입은 사람이 치료받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도록 도와주는 곳이 교회라는 뜻이다. 도시건축학자들은 야전병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달동네라고 했다. 달동네는 인생의 낙오자들이 잠시 머물러 살면서 재활의 의지를 다지고 다시 나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미관을 해친다는 명분으로 달동네를 없애려 하지만 달동네가 사회에 기능하는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기에 선진국가에서는 하나 이상의 달동네를 존속 시키고 있다. 미국의 할렘, 영국의 이스트런던, 프랑스의 아롱디스망이 그것이다.나사렛은 로마에 의해 파괴된 세포리스라는 도시에서 시오리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그 마을은 멸시받고 천대받은 인생의 낙오자들이 사는 달동네와 같은 곳이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속담이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철저히 버림받은 달동네였다. 그곳이 바로 예수의 고향이었다. 그곳에서 예수는 버려지고 상처입은 자들의 재활 치유자였고, 삶을 공유하는 희망의 예언자였고, 생명의 길을 제공하는 자였다. 당시 성공한 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축제를 즐겼지만 실패한 낙오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성전출입이 금지 되었다. 예수는 이들을 위한 축제를 갈릴리 빈들에서 열었다.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불러온 달동네의 축제이다. 이 축제 정신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초대교회로 이어졌고 오늘의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프란치스코가 말한 야전병원은 오늘의 달동네이며 오늘의 교회는 달동네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2021-04-28

인연을 짓다

정미영수필가벚나무 꽃자리마다 초록빛이 시(詩)처럼 흩날리는 봄날이다. 나는 도서관을 향해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책과 먼저 눈인사를 나눈다. 정갈하게 정리된 서가 사이를 오가며 서너 권의 책을 꺼내 들면, 작가의 소중한 글을 제각각의 공법으로 알차게 꾸민 출판사의 노력이 표지부터 물씬 전해진다.책을 펼치면 주옥같은 언어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인생의 세밀한 구석들을 명증하게 들추어내는 책을 들여다볼 때면, 수필을 쓰는 나로서는 자극을 받을 때가 많다. 나도 우리네 인생사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체를 사용해 진솔한 작품을 창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내 수필 속 청신한 문장들이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선명하게 돋을새김 되어 빛나면 좋으련만.독서는 삶을 변화시키는 임계점이다.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자분자분 문장을 음미하다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책에 몰입하게 된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순간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창조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책을 통해 치유받기도 하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책에서 얻은 순도 높은 깨달음을 공유하는 데에는 독서 모임이 제격이다. 나는 포항시립도서관에서 인문학 독서회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덕분에 회원 분들과 어우렁더우렁 ‘책수다’를 떨고 있다.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행복해질 거야.’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문장을 빌려 독서회를 기다리는 내 설레는 마음을 표현해 본다. 우리는 책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나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문장과 생각들을 펼쳐 보인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자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책 향기를 맡으며 우리들 내면이 성숙해지기를 바랄 때도 있다.책은 타인과 소통하는 문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내 생활을 잠시 멈추고, 문을 활짝 열어 내 주위를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 뜻에서 독서회에 참여하는 분들은 이미 타인과 소통하고 있다. 회원들은 서로의 고민과 아픔을 말하며 고단한 등을 토닥여 주고는 함께 눈물 흘릴 때가 있다. 삶의 깔딱고개를 넘어오느라 숨이 찬 것을 잠시 내려놓기도 하고, 자녀와의 부대낌 속에서 겪는 속상함을 이야기하면서 치유 받기도 한다. 시나브로 우리는 책을 통해 기꺼이 동반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나는 독서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얼마 전, 회원 한 분이 내게 책을 선물해 주셨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받은 속상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심리 책을 섭렵하고 있는 중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는 상처를 보듬기 위해 이 책을 골랐다고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위로를 받았다며 내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단다.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 내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독서회는 꿈 씨앗이 영글어 가는 곳이다. 좋은 책은 꿈을 잃고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꿈을 되돌려 주거나, 혹은 꿈을 잃어버린 채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힘으로써 세상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의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 자신만의 꿈 씨앗을 싹 틔우고 튼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다.회원 분들은 품이 넉넉한 탓에 누구라도 환영한다. 책을 읽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 찾아왔든, 사람이 그리워 찾아왔든, 항상 밝게 ‘손 내밈’을 한다. 독서회는 왜 질리지도 않고, 계속 참여하고 싶고, 옆에 영원토록 붙잡고 싶은 것일까. 우리 회원 분들이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희망의 언어를 책 속에서 찾아내어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기를 곡진하게 기원해본다.나는 지금, 독서회 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짓고 있다.

2021-04-28

유년의 봄

하늘이 참 맑은 날, 바람 한 자락에 꽃 소식이 묻어왔다. 먼저 나서는 마음 따라 자두나무 과수원으로 향했다. 밭둑에는 쑥, 냉이, 민들레꽃이 나붓이 엎드려 있고 나무들은 하늘 아래 햇볕 바라기 중이다. 어우렁더우렁 자두나무 사이를 걷는데, 아찔한 향기에 취해 잠시 걸음을 멈춘다. 꽃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가지를 뒤덮은 나비 떼가 파르르 날갯짓한다.나무가 열매보다 먼저 꽃을 피운 길이다. 향기 없는 꽃이 있을까마는 여느 꽃보다 자두 꽃의 진한 향기가 온몸에 밴다. 목련처럼 인심 넉넉한 꽃송이를 피워 사람을 불러들이지도 않고, 앙증맞은 꽃을 나무에 달아 놓고 화르르 떨어져 버린 벚꽃도 아닌. 자두는 순백의 꽃잎에 꽃 수술을 촘촘히 새겨 놓았다. 봄볕 아래 참 해사하다.하늘 아래 거저 피는 꽃이 있으랴. 비와 바람과 눈보라 그리고 살갗을 에는 한파를 견뎌낸다. 강산이 서너 번 변한 때에 나무는 나무껍질에 숨구멍을 내면서 제 몸을 키운다. 불규칙하게 세로로 갈라진 몸피를 보니 삼십 년쯤 되었을까. 나무의 몸통이 검고 골이 깊을수록 나무가 견디었던 시간이다. 그러면서 나무는 봄이면 가지를 연둣빛으로 물들이고 꽃을 피워 나비를 부른다.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다. 고향 집 앞마당 우물가에 자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키가 크지 않아 가지에 열매를 늘어지게 달고 있는 자두나무를 만만하게 보았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싶어 나무에 올라갔다.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자두 하나씩 나눠 주며 으스대고 싶었다. 마지막 한 개를 따려다 가지가 부서져 나무에서 떨어졌다. 순간, 기절했다. 내 머릿속의 기억 한 부분을 완전히 지워 버린 사건이었다. 부모님은 다음 날, 자두나무를 사정없이 베어 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자두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향에서는 자두를 ‘왜추’라고 불렀다. 왜추의 맛은 고향처럼 내 몸에 각인 된 그런 맛이었다. 첫 아이를 배고 입덧이 왔을 때 왜추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무더위에 지치고 입맛 헛헛한 날, 과일가게에 있는 진한 보랏빛의 자두를 보자 침샘이 자극했다. 잊혔던 고향의 입맛을 불러왔다. 잘 익은 자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과즙이 터지면서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고였다. 고향 집 왜추나무의 추억을 불러들여 입덧의 고비를 넘겼다.자두나무는 초봄에 하얀 꽃을 피우고, 늦은 봄에 잔가지 하나에 초록빛 작은 열매를 열 개 정도 맺는다. 오월이 오면 농부의 일손이 바빠진다. 일일이 나무를 돌아보며 적과해서 튼실한 것 하나만 남긴다. 남은 작은 열매는 여름의 뙤약볕을 견디면서 붉은색으로 익어간다.자두는 언제부터 우리 곁에 있었을까? 자두나무는 16세기부터 1920년 사이에 자주색을 띠는 서양 개량종이 들어와 이름이 자도(紫桃), 자리(紫李) 등으로 불렸다. 지방별로 제각각 불리던 재래종 오얏과 섞여 쓰이며 점차 ‘자두’로 통일된 듯하다.오얏꽃의 꽃말은 순박, 순백, 열매의 모양을 본떠 순수, 다산, 생명력의 뜻이 있다. 맑고 순결하고 고귀한 오얏꽃은 조선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1892년 처음 등장했다. 대한제국이 건립된 후에는 황실에서 쓰는 물건에 오얏꽃 문양이 그려져 사용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오얏꽃 무늬의 은잔이 전시되어 있다. 덕수궁의 석조전, 운현궁 양관, 포항의 호미곶 등대의 천장에도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오얏꽃 문양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한때는 인정전의 오얏꽃 문양이 일본인이 설치한 벚꽃 모양과 비슷해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 일본이 대한제국의 품위와 권위를 떨어뜨리려 오얏꽃 문양을 만들어 수치와 굴욕을 주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국가가 아닌 한 가문에 의해 지배되는 왕조라는 뜻으로 낮추기도 했다.이순혜수필가또한, 자두나무와 관련된 고사성어도 있다.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오얏나무는 그리 크지 않으면서 열매를 많이 맺으니 그 나무 아래서 쓸데없이 의심을 살 만한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일 거다.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 이야기다. 이 화사한 봄날, 자두나무에 걸어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오늘따라 향기롭다.“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복숭아꽃 오얏꽃 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내 유년의 풍경에는 오얏꽃이 빠지지 않는다. ‘고향의 봄’을 읊조리며 들길을 걷는다.

2021-04-28

코인 환치기

환치기는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 계좌를 만든 후에 한 국가의 계좌에 입금한 후 다른 국가에서 해당 국가의 환율에 따라 입금한 금액을 현지화폐로 인출하는 불법 외환거래 수법을 일컫는다.이러한 환치기는 세금탈루나 외국에서 사용할 유흥자금 또는 해외도박·마약밀수 등의 불법자금을 조달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인 K씨가 모 은행에 계좌(환치기 계좌)를 개설한 뒤 중국 현지의 가족들에게 송금을 원하는 조선족들에게 일정 수수료를 떼는 조건으로 송금액을 받고, K씨와 연결이 되어 있는 현지 환전상이 가족에게 해당액수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외환의 지급, 영수시 상대국 통화로의 환전절차 없이 ‘환(換)을 바꿔친다’고 해서 ‘환치기’ 라고 불린다. 특히 최근에는 자금 출처 조사가 어려운 비트코인이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부상하면서 비트코인을 이용한 ‘코인 환치기’가 성행하고 있다. 수법은 기존 환치기와 비슷하다. 환치기 조직이 외국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구입한 뒤, 국내 가상화폐 전자지갑으로 보내고, 국내조직이 가상화폐를 팔아 원화로 출금하는 방식이다. 은행을 통해 돈을 송금하면 환전 기록이 파악되지만, 가상화폐로 주고 받으면 파악이 불가능한 점을 악용한 것이다.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이런 환치기 자금으로 외국인이 사들인 국내 아파트가 14채, 163억 원어치에 이른다. 더구나 4월 들어 2주 사이 시중 은행을 통해 중국으로 송금된 돈만 해도 지난해 월 평균의 10배에 이르는 1천억원을 훌쩍 넘었다니 걱정이다. 비트코인이 새로운 국제금융수단으로 막 떠오르는 마당에 환치기수법에 악용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런 일이다. 비트코인이 불법 환치기에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정비가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4-28

2030 파산 증가… 위기의 청년세대 민낯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청년층의 개인 파산이 늘고 있다고 한다. 대구지방법원이 파산선고 결정 처분을 내린 개인파산 신청자 중 20대와 30대의 비중이 점차 늘어 지금은 10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대구지법의 2030세대 파산처분 비율은 6.9%였으나 올 3월에는 10.5%로 늘었다. 중장년층 중심으로 발생하던 파산신청이 코로나 영향으로 젊은층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젊은층이 빚내 버티다가 마지막 구제수단인 파산신청에 이른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1월 20대와 30대의 취업자는 1년 전보다 각각 25만명, 27만명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말 코로나 재확산으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올 들어 서비스업종 취업자가 확 줄면서 이 업종에 종사하는 아르바이트 청년의 일자리가 급격히 감소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40시간 근무제 실시 등으로 청년층 일자리 감소는 지속 논란을 불러왔다. 이런 상황 속에 장기화된 코로나 사태가 겹쳐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 현상은 이제 설상가상의 형국으로 몰리고 있다.잠재적 구직자란 일하고 싶어도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실업자로는 통계가 잡히지 않으나 사실상 실업자로 보아도 무방한 실업군이다. 이런 잠재적 구직자가 올 1분기 통계청 집계에서 2030 세대에서 98만명이 나왔다. 전체 206만명의 절반에 근접한다.우리나라 청년(15∼29세) 실업률은 10%로 전체 실업률(4.3%)의 두 배를 넘는다. 요즘 청년세대를 록다운(Lock Down) 세대라 부른다. 또 청년세대의 구직 어려움을 표현하는 말로 “단며든다”는 말도 유행한다. 단절과 스며든다는 말의 합성어인데 우리시대 청년들의 심각한 취업난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청년들이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청년세대의 경제적 파탄이라는 할 청년 파산선고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획기적 고용친화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코로나 이후에도 이같은 현상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을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2021-04-28

교육이 녹아내린다

장규열한동대 교수국격이 높아졌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에 올랐다 하고 문화강국으로 위상도 한결 날아오른다. K-Pop은 지구촌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글로벌 영화계에는 우리 감독과 배우들로 넘실거린다. 지구 위 어디를 가도 한국인들이 없는 곳이 없으며 가는 곳 어디에서도 이제는 소외되지 않는다.필자가 미국대학에서 가르쳤던 1990년대에만 해도 나라의 위상이 오늘같지 않아 안타까웠던 기억이 언제였나 싶다. 이제는 어깨 펴고 다닐 만하다. 코로나19의 광풍이 걷히고 나면 그런 변화를 확인하러 나가봐야겠다. 그랬던 시절에도 우리 마음에 비수처럼 번득였던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다. 교육.잘살아보려는 다짐 덕이었는지,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배경이 되고 아이들도 잘 따라줬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가 회원국들의 교육상태를 비교하는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 PISA에서 한국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 실력은 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그랬던 실력이 이제는 조금씩 꾸준히 내려간다고 한다. 학력과 인성이 균형있게 자라야 하는데, 학력의 평균적인 하향추세는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교육을 비롯한 교육환경의 출렁거림 가운데 학력격차의 심화와 학력수준의 하향세는 더욱 시름을 깊게 만든다. 방역이 중요한 만큼 경제도 살려야 하지만, 미래를 담보할 교육의 기틀은 지켜야 한다.최근 한 시민단체의 조사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을 전후로 중학교에서는 학력중위권이 상하위권으로 분산되는 ‘학력 양극화’현상이 나타났으며 고등학교에서는 중위권과 상위권이 줄고 하위권이 증가하는 ‘학력저하’ 현상이 드러났다고 한다. 이미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학력저하 현상에 코로나19의 영향이 더해진 결과로 보인다. 온라인과 비대면수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가운데,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사교육이 세차게 작동하여 학력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아닌가도 싶다. 교육당국은 ‘내려가는 비탈’에 선 학력저하 현상을 면밀히 분석해 장기적인 회복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건강을 위한 방역에 성공하더라도 교육의 뿌리가 흔들린다면 그보다 큰 실패도 없지 않을까.초중등학교 교육의 성패는 대학에서도 감지된다. 교수들이 평가하는 대학신입생들의 기초학력도 해가 갈수록 내려간다고 한다. 학문적 성과는 하루아침에 초인이 가져오지 않는다. 산적한 과제들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서도 함께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갈 후학들이 계속 튼실하게 자라나야 한다. 성장과 발전의 바탕에는 든든한 공교육이 있어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학력저하는 위험하다. 밝은 내일을 열어내기 위해서도 실력있는 집단지성이 살아있어야 한다. 교육이 백년대계인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다. 배워서 익히고 다듬어 숙성한 사람들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미있는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도 서로서로 아는 게 많아야 한다. 실력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갈고 닦아야 쌓이는 게 실력이 아닌가. 실력있는 국민이 나라를 세운다.

2021-04-28

내부정보 이용한 공직자 부동산투기 엄단을

대구·경북지역 공직자들의 부동산투기 의혹과 관련한 경찰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대구경찰청은 그저께(27일) 수성구 범어동 수성구청 도시디자인과와 홍보소통과 2곳에 수사관 13명을 보내 연호지구 개발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김대권 대구 수성구청장이 과거 부구청장 시절 내부정보를 활용해 농지를 사들였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경찰은 김 구청장의 부인이 연호지구 개발 지정 전인 2016년 3월 연호지구 내 이천동 밭 420㎡를 2억8천500만원에 샀다가 3억9천만원을 받고 다시 판 것과 관련해 업무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경북경찰청 부동산투기 특별수사대도 같은 날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구미시의원 2명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에 따르면 A의원은 구미꽃동산민간공원 조성 사업예정지 부동산 수백평을 매입했으며, B의원은 낙동강 비산나루길 조성 사업 예정지에 있던 식당과 토지 965㎡를 평당 331만원에 매입했다고 한다. B의원이 산 식당 주변에는 도로까지 개설됐다. 이들 의원은 가족과 지인 등의 명의를 이용해 땅을 매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경찰청은 현재 공직자 9명을 포함해 108명을, 경북경찰청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8명, 지방의원 6명, 공공기관직원 1명, 일반인 11명을 대상으로 각각 부패방지법과 주민등록법·농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를 하고 있다.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과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회적 공분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대구·경북지역 공직자들도 대거 투기혐의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시·도민들에게 강한 배신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들 공직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사들인 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정한 법적 처벌이 따라야 한다. 공적인 자리에 앉아 부동산투기까지 하며 사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특히 부동산 투기는 중독성이 강하다.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에 희생돼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기회만 오면 투기를 다시 하겠다’고 한 말이 중독사례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공직자들이 다시는 직위를 이용해 부동산투기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부당 이득도 모두 환수하는 것이 맞다.

2021-04-28

‘문빠’와 ‘태극기’는 언제쯤 퇴장할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엄청난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분단과 6·25 전쟁, 군부 독재와 민주화, 민중 항쟁과 촛불혁명은 오늘의 분열된 정치 지형을 낳았다. 흔히 우리는 아시아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를 받는다. 샤츠 슈나이더가 말하는 정당간의 정권 교체로 아시아 최고의 정치의 발전을 이룬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상호 부정과 거부라는 독특한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문빠’와 ‘태극기’라는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간의 왜곡된 이념 갈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태극기 부대부터 살펴보자. 이들은 박근혜 탄핵을 극력 반대하면서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절대 신뢰하고 현재도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이 나라의 두 번의 군부 쿠데타까지 정당시하고, 선독(善獨)의 당위성을 주창한다. 지역적으로 영남을 주축으로 연령적으로는 60대 이후 세대가 많다. 이들은 반공에 철저하고 진보 정권을 좌파 용공 정권으로 간주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퇴진을 거듭 주장한다.한편 문재인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 옹호하는 세력을 ‘문빠’라고 부른다. 보수 진영은 그 중 ‘대깨문’을 친문 보위 세력의 핵심으로 본다. 이들은 이 나라를 망친 장본인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이라 보고 이들을 극히 혐오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적극 지지한다. ‘문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지를 무조건 존중하고 추종한다. 대통령을 향해 ‘인이 마음대로 해’라는 맹목적 정서가 깔려 있다. 이들은 보수가 재집권하면 나라가 거덜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촛불정권의 주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그러나 위의 ‘태극기’ 부대도 ‘문빠’ 집단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양쪽 모두 참 보수도 참 진보도 아닌 사이비 이념의 맹신자들이다. 이들 중엔 보수나 진보의 참뜻도 모르면서 상대를 감정적으로 비난 거부한다. 보수주의 원조 에드먼트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과격성을 반성하면서 자유라는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자고 주장하였다. 진보는 정치 개혁이나 혁명을 통해 인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이다.‘태극기’나 ‘문빠’는 본질에서 너무 이탈해 진영 프레임에 빠져 있다. 모두 이성적이지 못하여 상대에 대한 적대감만 노출하고 있어 이 나라 정치 발전에는 백해무익한 세력들이다.이러한 적대적 세력 간에는 화해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 서로 자신은 애국자이고 상대는 매국노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상대를 적대시 하는 감정 프레임의 노예가 되어 있다. 정치인들은 목전의 이익 때문에 이들을 교묘히 정치에 이용한다. 이들은 대체로 정치의식 수준은 낮으나 정치에 과잉 동조하는 세력이다. 우리 정치를 부정적으로 활성화 시킬 뿐이다. 이제 친박과 친문에 기생했던 ‘태극기’와 ‘문빠’는 퇴장할 시간이다. 그 시점은 내년 대선이 끝나는 지점이며 빠를수록 더욱 좋을 것이다.

2021-04-28

학교 외딴섬, 시험도(試驗島)의 비극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선생님, 저 영어 90점 맞을 거예요! 이거 복사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서울에 사는 학생이 월요일 등교하자마자 영어 선생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종이 파일을 건네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부탁한다.“90점! 그래, 열심히 해봐. 그런데 이번 시험 쉽지 않을 거야. 괜찮겠어.”“그럼요, 걱정 없어요. 주말 동안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이게 그 증거에요.”영어 선생님께서는 학생이 건넨 종이들을 찬찬히 살펴보셨다.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선생님 얼굴에는 미소가 피었다. 그리고 몇몇 부분을 수정해 주셨다. 학생은 선생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바로 질문했다. 선생님께서는 반갑게 답해 주셨다.“친구들과 시험 범위를 나눠서 요약하기로 했는데, 큰일 날뻔했어요. 감사합니다.”학생은 너무 즐거워했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저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놀라웠다. 그 학생을 필두로 교무실 앞에는 정리한 자료의 복사를 부탁하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밝은 모습에 주말 내내 무겁기만 하던 필자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주말, 필자는 시험공부에 몸살을 앓는 학생들을 보았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독서실이 있는데, 밤이면 간혹 어린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아파트 놀이터로 나온다. 뭔가에 잔뜩 화가 난 그들의 모습은 필자를 늘 불안하게 만들었다.“시험 포기했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혼잣말만 하고 나가버리고, 인터넷 강의는 들어도 모르겠고, 엄마한테 그냥 학원 보내달라고 했어. 학교가 왜 있는지 모르겠어.”비록 필자와 거리는 있었지만, 학생들의 한숨과 원망 가득한 말은 너무도 또렷하게 들렸다. 학원에 가기 위해 일어서는 학생을 붙잡고 필자는 말해 주고 싶었다.“얘들아, 모르는 것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여쭈어봐.”하지만 필자는 돌아올 답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내 포기했다. 일요일 늦은 밤, 학교 시험을 위해 학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성난 그림자가 필자를 노려보았다. 그 학생이 떠나고 남아 있던 학생들은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이 가는 곳이 집과 독서실이 아님을 필자는 직감으로 알았다. 하지만 흔들리는 그들을 필자는 잡아주지 못했다.죄책감으로 시작한 월요일, 어느 학생의 하소연을 듣는 순간 필자는 더 큰 죄인이 되었다.“오늘 시험 치는데, 선생님들이 틀린 문제 수정한다고 하도 다니셔서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다 못 풀었어요. 근데 선생님들은 시험 방해한 거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세요.”시험에 갇힌 4월 학교는 의사소통이 단절된 섬이다. 그 섬 안에서 일어나는 비극에 대해 세상은 코로나19를 핑계로 귀를 닫았다. 5월 함성보다 더 큰 학생들의 원성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거듭 부탁하지만, 그 파도가 학교를 휩쓸기 전에 시험에 대해 제발 다시 생각하자.

2021-04-28

이순신과 영화 ‘명량’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1년 4월 28일은 충무공 탄생 476주년 되는 날이다. 조선왕조 518년 사직을 돌아보면 세종과 이순신이 선두에 있다.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약관 21세에 왕위에 올라 훈민정음을 비롯한 문물 정비로 조선의 기틀을 놓은 이도(李7979) 세종. 조선 초기 정비되지 않은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 후세 왕들의 모범이 된 인물 이도. 그는 당 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늦깎이로 과거에 급제한 이순신은 몇 차례 난관을 뚫고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거북선을 건조한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이후 전공을 세운 그는 1593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 총사령관에 오른다. 그 후 이순신의 행적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백의종군하던 그는 전함 12척으로 적선 133척과 맞붙어 승리하는 ‘명량대첩’을 진두지휘한다.2014년 7월 30일 개봉된 ‘명량’은 1천762만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게 한다. 왜 ‘명량’에 수많은 관객이 몰렸을까, 하는 의문은 같은 해 4월 16일 온 국민을 낙담과 절망으로 몰고 간 ‘세월호 대참사’가 대답한다. 안산 단원고교 250명 학생을 포함한 305명의 귀한 생명을 수장(水葬)시킨 씻을 수 없는 ‘국가범죄’가 21세기 첨단정보통신 국가에서 발발한 것이다.실시간 중계된 ‘세월호 대참사’는 우리에게 국가의 부재와 권력자의 실종이라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빤히 보이는 배에, 서서히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죽음을 맞아야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치를 떨어야 했다. 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권력이란 또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도록 만들었던 해양 참사가 우리를 바닥 모를 추락으로 인도했다.‘명량’에서 이순신은 ‘충’에 관해 맏아들 ‘회’와 나누는 대화에서 결연히 말한다.“충(忠)은 의리(義理)다. 의리는 왕이 아니라 백성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누란지위의 백성을 지켜낸 이순신의 ‘충’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것이었다. 417년 전 이순신의 생각과 실천이 임진왜란의 극복으로 나타났다면,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는 충이 없는 대통령의 권력 유희였다. 현대국가 존립의 첫 번째 근거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국가로 불리지 못한다.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 일당의 권력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 있다.국가의 이름으로 국난극복의 선두에 섰으되, 파직과 고문을 겪어야 했던 이순신. 모친상도 치르지 못한 채 백의종군에 임해야 했던 이순신.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끌어낸 이순신. 그런 지도자를 염원했던 사람들이 ‘명량’에 환호했다.충무공의 탄신을 맞이하여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는 난관의 중심에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자리해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떠올리는 것이다.

2021-04-27

펜트업 효과

한국에서도 코로나 사태로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할 것인지 폭발한다면 언제쯤 될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크게 떨어진 우리나라의 경우 다소 비관적 전망이 많으나 연초 백화점을 중심으로 보복소비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해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최근 한국은행은 억눌린 소비가 터져나오는 펜트업(Pent up) 효과가 올해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펜트업 효과란 억눌렸던 수요가 급속도로 살아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 소비개념을 더하면 보복소비가 된다. 한은은 올해 펜트업 효과가 일어날 이유로 가계소득과 고용여건이 작년보다 나아지고 감염병 확산에 대한 소비 민감도가 약해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특히 지난해는 전년보다 4%정도 소비가 줄어들었으나 저축률은 IMF 이후 가장 높은 10%대를 유지해 시중에는 돈 쓸 준비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전 세계적으로도 코로나 이후 소비가 급속 회복할 것이란 글로벌 컨설팅회사의 예측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은 코로나가 극심했던 기간동안 가계 저축률이 10∼20% 포인트 이상 올라갔고, 이들 돈이 풀리면 보복소비가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일자리 감소 등 저소득층에 피해가 집중된 반면 고소득층은 큰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소비회복은 고소득층부터 시작할 거란 전망이다.가장 먼저 경기회복을 찾아가는 중국의 경우는 올해 소비 성장률을 13.5%까지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고소득층의 명품소비가 가장 먼저 회복세를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한은의 예측대로 우리도 펜트업 효과가 생긴다면 우리나라는 집단면역이 형성될 11월을 주목할 만 하다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