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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성), 俗(속), 권력의 긴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등록일 2022-04-25 19:41 게재일 2022-04-2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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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

영화 ‘베네데타’는 세 가지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성스러운 종교의 층위로 신의 증명에 대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종교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17세기 중세의 속, 욕망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층위를 둘러싼 권력에 대한 것이다.

주인공 베네데타는 이탈리아 벨라노 출신으로 8세 무렵에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페샤의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당시 수녀가 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며, 상당한 금액의 지참금을 지불해야 수녀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거래가 시작된다. 가장 성스러운 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주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흥정이 오간다. “과일과 포도주를 25년간 수녀원에 전하도록 하겠다”는 말에 “지참금은 얼마나 내겠냐”는 수녀원장의 질문이 이어진다. 금액이 제시되고 적어도 얼마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정해진다. ‘매년 주님을 따르려는 소녀들’은 넘쳐나고 그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성스러운 영역이 아닌 지극히 세속적인 금전적 가치로 결정된다.

신에게로 향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는 자격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고, 그 지불금액의 높고 낮음에 따라 신심이 결정되던 시기.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 교회 대문에 대자보를 내건지 10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공고했던 신의 세상, 신의 관념으로 살고자 했던 세상에 균열이 일어나며 불길이 일어나기 직전의 시대이다.

오랫동안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의 삶에 지침이 되었던 종교는 수도원과 수녀원을 중심으로 매관매직과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고, 신성이라는 장막 속에서 성적 일탈이 다반사로 벌어지던 시기. 14세기 시작된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던 시기에 영화가 위치한다.

성스러움과 세속의 욕망, 권력의 세 가지 층위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 세 가지의 경계지점을 아슬아슬하게 오고가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성령의 증거와 증명, 세속의 욕망이 어떻게 종교적으로 해석되고 판단되는가. 성령으로 주어지는 권력의 달콤하고 위험한 줄타기를 주인공 베네데타를 통해 보여준다. 베네데타는 이 세 가지를 한 몸에 지니고 있으며, 성과 욕망과 권력의 일체를 오간다.

종교가 타락해갈수록 반대급부로 종교는 형식적 엄숙을 더해가면서 높고 견고한 장벽을 구축한다. 엄격하고 잔인한 잣대로 가짜 성인을 가려내는데 힘을 기울였던 시대에 베네데타를 둘러싼 실체는 쉽게 판단되지 않는다. ‘어쩌면’이라는 반문 속에서 성녀인지 악녀인지는 시대 상황과 맞물리며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진위는 숨바꼭질을 한다.

베네데타의 실체에 대한 암시는 기저에 깔고 있지만 영화는 그것의 중요성보다는 그것을 통한 한 시대의 논란이 되었던 사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다른 지점에 있음을 말한다. 성녀인가 사기꾼인가. 이 문제를 통해 한 시대를 지배했던 문제점들을 드러내며 그 시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새로이 돋아나는 기운에 대해서 말한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베네데타를 통해 성과 욕망, 권력의 자리를 오가며 실체에 대한 판단 근거들을 영화 곳곳에 배치하고 있지만 그것은 참고사항일 뿐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에 모호한 지점으로 이끌고 간다. 진실인가 거짓인가가 두 시간 동안 이 영화를 끌고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지만 어느 쪽을 결정짓고 영화를 보더라도 결말에 이르러 남게되는 감정은 동일할 것이다.

수백년 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종교적 타락의 끝지점에서 견고했던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것들의 원인이 대한 진단과 사례를 종교재판을 통해 보여준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종교재판은 낱낱의 것들을 기록하고 상세하게 묘사해 기록에 남겼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는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수치심이란 없다”라는 당당함으로 나아간다. 신의 믿음을 빙자한 부조리가 만연하던 시대에 신의 이름으로 육체적 관계를 통해 ‘사랑’을 알게됐다는 베네데타의 대사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것인가. 17세기 페샤의 수녀원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실화를 기록한 ‘수녀원 스캔들 :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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