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꽃들이 피어나는 4월이 왔다. 살살 부는 봄바람에도 벚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길을 걷노라면 꽃내음 짙어가는 화창한 계절의 시작이 가슴을 뛰게 한다. 생명의 계절, 환희의 봄날, 사랑의 4월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봄의 시작, 4월이 왜 ‘잔인한 달’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을까? 100년 전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이 발표한 433행이나 되는 긴 시 ‘황무지’ 첫 줄에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라고 쓴 글귀가 사람들의 입으로 회자(膾炙)되면서 우리의 뇌리에 박혀버린 탓일까.
4월 달력을 넘겨 보니 4·3 제주항쟁, 4·16 세월호 참사, 4·19 혁명 등 큼지막한 정치적 사건과 와우아파트 붕괴, 대구 상인동 지하철 도시가스 폭발 사고 등 가슴 아픈 기록이 있다. 불행하고 잔인한 달이 맞는 건지….
그런데 엘리엇은 이어서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따뜻했다’고 오히려 겨울이 좋았다는데, 이는 1차 대전 후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은 채 정신적 황폐를 겪고 있는 서구 문명의 상실감을 표현한 듯하지만, 그 모더니즘의 시구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따뜻해져 오는 대지에서 편안히 잠자고 있는데 봄비로 흔들어 깨워 힘들게 새싹을 키우는 것은 라일락에게는 잔인할지도 모르지만 줄기 뻗어 잎과 꽃을 피우는 것은 자연의 임무이자 즐거움이 아닐까.‘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 ‘쓴 것이 다하면 달콤함이 온다(苦盡甘來)’는 말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이다. 이번 4월에는 고통을 이겨내어 즐거움을 얻어야겠다.
올해도 어느새 1/4이 지나갔고 따뜻한 4월이 되었다. 춘곤에 겨우면 몸이 나른하고 정신도 몽롱해지고 마음이 흐트러지기 쉽다. 그래서 성폭력과 음주 운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이기도 하다. 마음을 맑게 먹고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할 때는 자칫 잔인한 달이 될 수도 있다. 아직도 코로나19는 각종 변형을 만들어 내며 우리 삶에 고통을 주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2개월째 접어들어 처참하게 파괴되고 생명이 죽어가고 있지만, 인류의 염원이니 잔인한 달의 누명을 벗었으면 좋겠다.
4월엔 많은 기념일이 있다. 1일 향토예비군의 날, 5일 식목일, 7일 보건의 날, 15일 민방위의 날, 20일 장애인의 날, 21일 과학의 날, 22일 새마을의 날, 25일 법의 날 등 봄의 기운이 넘치는 이달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사회, 정치, 문화 전반에 희망의 꽃을 피우자. 또 4월 17일은 부활절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3일 만에 되살아나심을 찬양하는 날, 그 부활을 예찬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갖자. 잠든 마음의 뿌리에도 봄비를 내려 혹시 각자의 상실감이 있었다면 다시 깨치고 일어나 잔인한 날들을 이겨나갔으면 한다.
4월의 탄생석은 다이아몬드. 승리와 고귀함,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한다고 하니 마음속에 조그마한 보석 하나씩을 간직하는 4월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