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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정주 공간을 벗어나다

등록일 2022-03-30 19:38 게재일 2022-03-3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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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시내의 연륙·연도교 모습. /여수시 제공

캐나다 밴쿠버 인근의 스탠리 파크(Stanley Park). 밴쿠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이는 공원이다.

산책로가 섬마을의 둘레길과 비슷해 인라인 스케이트 등 취미활동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필자 역시 그 중 하나로 바닷가 풍광을 즐기곤 했다. 다만 오롯이 즐기는 데에는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광활한 바다는 시선을 압도했고, 공원 내부의 조경 역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절경이었다. 더욱이 당시엔 그곳을 섬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공원은 잉글리시 만(English Bay)와 벤쿠버 항(Vancouver Harbour) 사이의 지역으로 엄밀히 말하면 섬이 아니었다. 항구와 만이 워낙 커 태평양 인근 섬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생애 첫 둘레길을 캐나다에서 엿본지라 ‘섬 관광 활성화’라는 문구는 매번 스탠리 파크를 연상시켰다. 지형과 생태가 완전히 다른 곳을 막연히 한국의 섬도 저렇게 변하겠구나라고 상상했다. 무지의 소산이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엔 세계화(Globalization)가 대세였다. 국제적인 기준을 갖춘 ‘모방’이 최우선인 시대였고, 글로벌 산업 트렌드는 몇 년 후 한국에 그대로 전해졌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표어는 세계화와 현지화(Localization)가 만나 이뤄진,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현지화에 근간에 둔 세계화 전략) 이후의 변화이다. 산업의 경영전략이 현지 문화를 흡수하자 우리나라 섬 관광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섬 관광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며 지역 특성을 반영한 연구·개발이 이뤄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외국의 관광 생태계를 그대로 가져와 이식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해 섬 정책 연구기관인 ‘한국섬진흥원’을 출범시켰다. 섬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고, 이를 총괄·관리한다고 한다. 한국 섬 특성에 맞춰 관광·레저와 해양·수산, 생태·문화까지 섬 전반에 걸친 연구·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정부가 국가주도의 ‘한국섬진흥원’을 개원하며 섬 개발에 나서는 이면에는 소멸해가는 섬마을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있다. 우리나라 3천383개의 점 중에 유인섬은 465개로 전체 섬의 13%를 차지한다. 그 중에 인구 25명 미만으로, 무인섬으로 바뀔 곳도 100여 개에 이른다. 전체 섬의 90% 가량이 무인섬이 되는 셈이다. 무인섬의 증가는 섬관광 뿐만 아니라 섬자원 개발 등 섬을 둘러싼 활동에 유·무형의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어가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섬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2021년 우리나라 어가인구 수는 9만7천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43%가 줄었다. 귀어·귀촌을 활성화하고 어촌마을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인구 감소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노령화도 심각하다. 인구의 절반 가량이 만 65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섬마을 소멸은 지방 소도시 소멸과 비슷한 양상이지만 그 속도가 훨씬 빠른 편이다. 어촌·어항을 갖춘 지역이 바다 축제에 필사적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26 세계 섬 박람회 유치에 성공한 여수도 시작은 여느 도시와 같았다. 다만 여수는 섬을 한국의 이야기로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섬을 알고자 하는, 그리고 바다로 나아가고자 하는 전 세계인들의 염원을 담아 박람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각국의 섬 문화와 생태, 연육교 등의 주제를 모아 지구촌과 공유하고자 했고, 결국 국제행사 유치란 성과로 이어졌다.

위기를 타개하려는 주체도 다변화 중이다. 제주 가파도에서 열리는 ‘청보리밭 축제’가 대표적이다. 지자체의 지원으로 열리는 축제와 달리 이곳은 여객선사가 청보리밭을 가꾼다. 선사가 육지와 섬을 잇고 섬 관광 사업까지 나서면서 가파도는 매년 상춘객들로 붐비는 관광명소가 됐다.

정현미<br>작가
정현미작가

섬 접근성을 높이는 시도도 계속된다. 조만간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1시간 비행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위그선 도입 덕분이다. 울릉도는 사실 관광 산업의 의미를 넘어서는 섬이다. 해양영토의 가치가 높아 자국민의 방문이 잦기 때문이다. 다만 악천후와 열악한 접안시설로 입도가 쉽지 않다. 수면 위를 비행하는 위그선이 본격적으로 출항하게 되면 울릉도와 독도를 찾는 방문객들이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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