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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K통합신공항 특별법, 결국 폐기되나

여당의 반대로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던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이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그동안 권영진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 국민의힘 대구·경북 의원들이 강력하게 처리를 요청해왔다.특히 국민의힘 김상훈(대구 서)·송언석(김천) 의원은 법안소위에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 동시 통과를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4월 보궐선거를 의식한 국민의힘 부산 의원들과 민주당 의원들이 합심해 지난 달 19일 법안소위에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만 통과시켰다.이 법안은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229명 가운데 찬성 181명, 반대 33명, 기권 15명으로 통과했다. 이후 가덕도 신공항 건설사업은 순풍을 타고 있다. 지난 9일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국토교통부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 올 하반기 안에 사전 타당성 조사와 함께 전략환경영양평가, 환경영양평가 등 환경성 검토 작업을 거치게 될 예정이다. 가덕도 특별법이 국회에 계류중일 때는 여당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을 계속 논의하자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가덕도 특별법 통과 이후 여당은 통합신공항 특별법 논의에 큰 관심없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17일 교통법안소위원회를 열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었으나 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한 비난발언 때문에 파행되고 말았다. 게다가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코앞에 닥쳐 있어 그때까지는 국회 논의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그 이후에는 당대표선거, 대선후보 선정 등으로 눈코 뜰새없는 정치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국민의힘도 대구·경북통합신공항 특별법에 쏟아부을 전력이 절대부족하다. 다만 민주당 조응천·진성준 의원이‘TK 신공항은 민간 공항과 군 공항이 함께 이전하는 특수한 경우’라며 ‘일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니 여당을 설득할 교두보로 활용하도록 정치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가덕도 신공항 건설 강행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대구·경북지역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TK정치권이 다시 한번 분발해주길 바란다.

2021-03-17

더기빙플레지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는 전 세계 대부호들이 사후나 생전에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을 약속하는 운동을 말한다.이 기구의 목표는 전 세계 대부호들이 그들 순자산의 최소 절반 이상을 일생 동안이나 사후에 기부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이 기부 서약이 가진 특징은 법률적인 계약이 아니라 도덕적 헌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강제성을 띤 기구가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다.또한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개인 또는 커플 서명자들이 왜 기부를 하기로 선택했는지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약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010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 워렌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서약하며 시작됐다.국내에서는 배달의 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 부부가 지난 달 219번째 기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에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더기빙플레지에 참여해 재산의 절반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의장은 이 서약을 통해 죽기 전까지 현재 주식가치만 약 11조원에 이르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게 된다. 김 의장은 사회적 기업이나 재단 설립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아픈 이들을 돕고,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나서고, 미래 교육시스템에 기여하는 등의 활동을 할 계획이다.일부 재벌가 구성원들이 탐욕스런 부의 독점과 갑질행태로 온 국민의 지탄을 받은 게 바로 얼마 전의 일이 아니던가. 볼썽 사나온 재벌가 행태와 달리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부를 쌓은 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더기빙플레지를 크게 환영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해지고 있다는 방증이자 증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17

북한 경제의 ‘자력갱생’이 불가능한 이유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 체제 하의 노동당 8차 대회는 1월 평양에서 끝났다. 연이어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새로운 각료를 인준했다.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경제 5개년 계획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북한 경제의 ‘자력갱생(自力更生)’원칙을 선포했다. 이 원칙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북한 선대 지도자들도 외쳤던 구호일 뿐이다. 김일성도 주체사상에서 경제의 ‘자립’을 강조했고, 김정일 역시 경제 강국 건설을 인민들의 자주적 역량에 두었다. 북한 경제가 외세에 의존치 않고 자력으로 살아나겠다는 포부는 좋지만 그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우선 북한 경제는 자력으로 소생하기 힘들 정도로 침체해 있다. 과거 어느 시기 북한 여러 곳곳을 돌아본 본 적이 있다. 경제의 토대인 사회 간접자본(SOC)은 어느 곳이나 보잘 것 없었다. 북한의 산들은 대부분 민둥산이고 비포장 도로에는 소달구지가 다녔다. 집단 농장의 옥수수는 메말라 버렸고, 공장 굴뚝에는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국내 총생산(GDP)은 세계 20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 지속되는 것 만해도 이상한 일이다. 북한에서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될 때 경제의 자력갱생은 사실상 어렵다.북한 당국은 이를 타파하려 대외 개방을 시도했다. 김정은 등장 이후 19개의 국가 경제 특구가 설치됐다. 함경도에서부터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해안을 따라 경제특구를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경제 특구에는 외국의 투자가 있어야 개발이 보장된다. 그러나 외국의 투자는 성사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도 투자할 여유가 없고 소수의 중국 자본이 라진 선봉에 투입되었을 뿐이다. 북한이 선포한 항금평 특구에도 중국의 투자는 없다. 한국 등 서방의 투자가 없는 북한 경제의 자력갱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그렇다고 북한이 자력으로 내수 경제를 일으킬 수도 없다. 북한 폐쇄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과감한 경제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김정은은 취임 후 집단 농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인의 가족 영농까지 허용하고 소토지의 개인 불하도 단행했다. 불 꺼진 국영 공장을 개인에게 임대하기도 했다. 북한의 농공업의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력과 인프라가 부족한 북한 땅에서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관개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북한에서 자연 재해는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다.북한 당국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개혁·개방을 시도해야 한다. 북한은 현재의 중앙 집권적 통제경제만으로 현상유지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로부터의 개혁·개방에는 성장과 체제 붕괴라는 모순적인 딜레마가 따른다. 한편 북한은 시장 경제의 확대에 따라 주민들의 의식도 크게 변하고 있다. 탈북 주민 3만5천여명은 이미 남한에 정착해 있다. 북한 당국은 소련의 개방·개혁 과정의 체제 붕괴 현상을 여실히 보았다. 이것이 김정은이 과감히 개혁과 개방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자력갱생은 하나의 선전 구호일 뿐이다.

2021-03-17

교육 지우기 4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평가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봄꽃들이 겨울을 지낸 성적순으로 꽃 축포를 터트린다. 이때 성적은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이 나라 학교의 해괴망측한 성적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자연은 모두가 1등이다. 매화도, 목련도 자신이 1등이라고 우기지 않는다. 봄꽃을 응원하는 봄비가 지난 들판은 말 그대로 봄꽃 잔치다. 큰봄까치꽃, 냉이꽃, 꽃다지 등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봄을 그린다. 그들이 있기에 봄은 다양한 생명으로 넘친다.자연이 생명의 원천이 되는 방법은 인정이다. 나와 서로를 인정하는 힘, 그것이 자연의 힘이다. 그 힘은 주입된 것이 아니라 시간 위에서 오롯이 혼자 터득한 것이다. 인정은 평가와 연결되며 평가의 방향을 내 안으로 돌린다. 그러기에 자연에는 보여주기 위한, 또 줄세우기식 평가는 없다. 평가의 결과는 진화다. 이런 평가가 자연을 무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만들었다.그럼 학교의 평가는 어떤가? 다음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성취평가제는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도입된 평가제로 서열 위주의 평가 방법을 지양하고 학생 개개인의 학업성취도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평가제도입니다.”성취평가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과연 성취평가제도는 목표를 달성했을까? 학생들은 서열 위주의 평가 지옥에서 벗어나 “글로벌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로 성장하고 있을까? 거친 욕밖에 안 나온다.“창의·인성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육과정 개편 및 수준별·맞춤형 교육 여건 조성과 함께 모든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최대한 발현시켜줄 수 있는 교수·학습과 평가제도의 확립이 긴요”이는 성취평가제도의 추진 배경이다. 이 글을 인용하다 중간에 끊었다. 왜냐면 교육부의 화려한 말 잔치에 속아 너무도 아름다운 청소년기를 잃어버린 학생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한 정부 정책에 대한 책임, 누군가는 져야 한다.”라는 글을 생각했다. 생각의 결론은 이 나라 정부는 책임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정부라는 것이다. “내 삶을 책임지는 사람 중심 대한민국”을 외쳤지만, 이 또한 책임지지 못 할 말에 불과한 허언이었다. 무책임한 정부 허언(虛言)의 정점엔 땅 투기꾼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난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하는 대표 거짓말은 “교육에 대한 국가책임 강화, 혁신을 선도하는 미래인재 양성”이다. 모든 정책은 이상(理想)에 맞춰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쁜 정책은 없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다. 이상이 강할수록 현실과는 멀어진다. 평가 또한 마찬가지다.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 닫는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요즘이다. 추가모집으로도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교가 속출하고 있는 시점에 지금과 같은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나? 봄꽃 피기 전에 교육이 망하지 않으려면 학교를 거부하게 만드는 줄세우기식 시험부터 없애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평가의 공정성이 아니라 평가의 필요성이다.

2021-03-17

징검다리

정미영수필가대학 2학년 때였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들뜨는 어느 봄날, 단짝과 교정을 걷다가 초등학교 남자 동창생을 만났다. 재수를 하여 나보다 일 년 뒤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살랑거리는 봄바람 탓이었다. 동창생과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 한 올이 내 입술에 얹혔다. 그 순간 그가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치웠다. 허물없는 사이라 짜릿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단짝은 그 행동이 참 자상해 보였다고 했다.자상한 손길에서 애틋함을 느꼈을까. 단짝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꽃을 보면 선물하고 싶고, 차를 마시면 찻잔 너머로 미소를 건네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내 동창생은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사랑은 사치라고 했다. 그때 그는 갑작스럽게 불거진 부모님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워 했고, 군대 문제로도 고민하던 중이었다. 대학 새내기로서의 발랄함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얼굴이었다.그래도 나는 단짝의 사랑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어느 새 스며든 사랑은 온몸을 적셔 친구는 힘든 가슴앓이를 했다. 슬픈 시만 골라 읽고 떨어지는 꽃잎에도 눈물을 흘리는, 그 아픔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친구가 밤새워 쓴 편지를 전해주기도 하고, 일부러 동창생과 자리를 마련해 함께 밥을 먹었다.대학축제 기간이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쓸려 모두가 흥겨운 듯 보였는데 문득 친구가 바다 이야기를 했다. 밤바다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고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갈매기를 보면 가슴이 좀 트일 것 같다고 했다.무작정 부산행 열차를 타고 광안리로 갔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모래밭에 앉았다. 별 말 없이 앉아 있던 친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친구의 작은 몸집 어디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숨어 있었는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큰 눈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바다에 다녀온 뒤였다. 동창생을 만나면 때때로 모진 말들이 내 목까지 차올랐다. 네가 그렇게 잘 났냐는 둥 사람 마음 아프게 하면 벌 받는다는 둥…. 그러나 입 안에서 맴돌 뿐 내뱉지 못했다. 그도 소중한 내 친구였으므로.나는 둘 사이의 징검다리였다. 동창생은 친구인 내가 가운데 있어 단짝에게 매몰차게 거절 못했다. 단짝 또한 본심을 직접 전하지 않고 대부분 나를 통했다. 둘 사이의 연결이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음의 강을 사이에 두고 쉽게 건너지 못했다.어렸을 때 강에 드문드문 놓인 징검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다. 반쯤 건넜는데 가운데 징검돌 두세 개가 없어서 난처했다. 무리를 해서 뛰기에는 돌 사이가 넓었다. 물에 빠질 것 같았다. 건너지 못하고 뒤돌아 나와 멀리 에둘러갔다. 길을 잇는 것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을 이어 주는 일임에랴. 그때 나는 징검다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양쪽을 연결하지 못하면 징검다리는 소용없다.얼마 전 어린 조카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었다. 북두칠성이 된 일곱 형제 이야기다. 홀어머니가 일곱 형제와 살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는 매일 밤 집을 나서 이웃집에 놀러갔다. 형제는 어머니가 차가운 강물을 건너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징검돌을 놓아 다리를 만들었다. 아들이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는 기도했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하늘의 별이 되게 해달라고. 일곱 아들은 나중에 별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북두칠성이라 했다.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연락이 뜸한 친구와 친구를 연결해 주고, 어쩌다 소원해진 가족과 가족을 손잡게 하고,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싶다. 물이 좀 깊어도 징검돌이 있으면 누구라도 건너볼만한 용기가 생긴다. 아쉬운 자리마다 든든하고 판판한 징검돌로 놓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 또한 밤하늘의 별빛을 닮을 수 있지 않을까.

2021-03-17

삶을 자작하는 숲에 들다

봄은 소리 없이 온다. 겨우내 사납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제풀에 지칠 즈음, 때를 노려 땅속에서 생명이 꿈틀거린다. 무포산 나무들도 하나씩 깨어나 물기를 빨아올린다. 청송군 피나무재의 자작나무 숲에는 벌써 봄이 와 있다.마음이 가고 소리가 나는 데로 걷다 보니 어느새 자작나무 숲에 들었다. 새하얀 수피를 찢고 나온 나뭇가지가 손을 내민다. 손가락 하나 정도의 굵기와 서너 개를 합쳐 놓은 굵기가 서로 어긋나게 자라고 있다. 찢어지고 해진 수피에 손을 대자 바스락거리며 껍질 하나가 떨어진다. 숲에는 생각하는 것도 소리로 들린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자작자작 소리가 들려온다.자작나무는 다른 나무와 경쟁하는 것도 싫은가보다. 그네들만 쭉쭉 뻗어 키를 자랑한다. 자작나무는 싹을 틔운 후 10년까지 1년에 1m 이상씩 자란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는 채찍으로 변해 경쟁하는 나무의 수관을 때린다. 그러면 주변의 나무는 머리 부분이 날아가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독불장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참 이기적이다. 그런데 자작나무는 어미나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제 키를 키운다. 나무껍질에 하얗게 파인 상처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햇빛을 좋아하는 자작나무는 다 자란 성목이 되면 그제야 밝은 그늘이 되어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저돌적인 자작나무는 짧은 생을 사는 것으로 그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지난 겨울의 추위도 견딘 자작나무는 그리 두꺼워 보이지 않는 새하얀 껍질로 잘도 견디었다. 껍질은 종이처럼 겹겹이 쌓여있다. 몸피를 두른 하얀색을 만지면 하얀 가루가 포르르 날려 이 마을 저 마을의 궁금한 소식을 알려 줄 것 같다. 겹겹이 두른 껍질에는 풍부한 기름 성분까지 보관하며 자작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하얀 껍질은 시인의 종이가 되어 고향의 골목을 서성이고 화가의 도화지가 되어 산을 그리고 강을 담기도 한다. 때로는 사랑을, 때로는 당부를, 때로는 다짐을 쓰는 것으로 쓰인다.발 앞에 떨어진 수피 한 조각을 들었다. 낡고 흐트러져 볼품이 없다. 비뚤비뚤 모양이 흐트러진 것은 삼십 년 전 기억의 한 조각과 마주한다. 결혼을 앞둔 며칠 전, 어머니는 내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까만 줄이 선명한 종이에 또박또박 눌러 쓴 편지는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이었다. 어머니는 평소에 아버지에게 무뚝뚝한 아내였고 딸에게도 살가운 엄마가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가 쓴 편지를 나는 잽싸게 한 번 읽고 금방 잊어버렸다. 콩깍지를 뒤집어쓴 딸은 제 갈 길이 바빠 편지의 행간에 숨어 있는 정을 찾지 못했다. 제대로 읽지 않았던 나는 지금껏 어머니의 사랑과 당부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결혼식 올리는 것을 ‘화촉(樺燭)을 밝힌다’라고 한다. 한자를 가만히 보면 화촉의 ‘樺’ 자는 자작나무이며 ‘燭’은 등불을 말한다.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로 새롭게 출발하는 한 가정의 앞날을 밝힌다는 뜻이다. 또한 1천500년 전 신라 사람들이 그린 천마도도 자작나무의 껍질에 그린 것이고. 팔만대장경 판의 일부도 자작나무 껍질로 새겼다고 하니, 기록문화를 꽃피운 나무라 할 수 있다.자작나무는 추위에도 강하다. 영하 20∼30도의 혹한을, 새하얀 껍질 하나로 견딘다. 보온을 위해 껍질을 겹겹으로 만든다. 나무의 근원인 부름켜가 얼지 않도록 지켜가며 원통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견디다 수피 하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나무껍질은 광택이 나는 흰색이다. 종이같이 얇게 옆으로 벗겨져 옛날에는 종이 대용으로도 썼다고 한다. 이렇게 자작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껍질은 종이가 되어 앞서간 시인의 편지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시인의 생각을 깨우고 내일을 살아갈 시인의 무채색 글감이 될 것이다.이순혜 수필가백석 시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는 모든 게 자작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산골 집의 대들보도 자작나무요. 기둥도. 문살도. 심지어 메밀국수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였다. 시인은 자작나무를 보며 시어를 다듬고 생각을 정리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청송군 피나무재에서 자작나무를 마주했는데, 자작나무처럼 자작자작 시를 읊는 시인이 될 수 있을까.피나무재를 떠나는 걸음에 함께 하는 것들이 좋다. 한 걸음 먼저 나선 봄바람이 마음의 온도를 데워주고, 춥다고 움츠렸던 몸이 숲에서 기지개를 켤 수 있게 해 주었다. 새하얀 몸통의 나무를 만나 나의 생을 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오래전 잊어버렸던 어머니의 그리움 한 가닥 불러와 주었다. 나를 사람 되게 한다. 자작나무 숲이.

2021-03-17

포항에 무형문화재가 필요하다

박창원수필가포항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금석문인 중성리신라비를 비롯한 국보 2점, 보물 7점, 중요민속자료(모포줄) 1점, 사적 2곳, 천연기념물 3곳, 국가명승(덕동) 1곳 등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다. 또 오어사대웅전을 비롯한 다수의 도지정 문화재가 있다.하지만 국가지정이든 도지정이든 무형문화재는 한 점도 없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문화유산이 하나도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무관심과 의지 부족 때문이다. 무형문화재란 말 그대로 무형의 문화재이기에 관심이 소홀한 사이에 사라지기 쉽다. 그러기에 소멸되기 전에 발굴하여 가치가 높은 것은 정책적으로 보존해야 한다.포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자산 중 무형문화재가 될 만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산간지방의 민속놀이인 지게상여놀이, 여성들의 줄다리기 놀이인 앉은줄다리기, 흥해지역의 농요, 여성민속놀이인 월월이청청이 그것이다. 죽장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지게상여놀이는 옛날 가난한 산간 지방에서 행해지던 장례풍속이 놀이로 변한 사례다. 여러 개의 지게로 상여를 만들어 운구하는 풍습을 흉내 낸 놀이인데, 놀이의 유래나 방식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현재도 잘 전승되고 있어서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송라면 해안 지역에 지금도 전해오는 앉은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날 앉아서 줄을 당기는 민속놀이이다. 줄 모양이 게 모양이라는 점, 여성들만 참가한다는 점, 앉은 채 당긴다는 점, 이긴 쪽에서 비녀목을 메고 춤을 추면서 행진한다는 점에서 아주 독특한 민속놀이이다.들이 넓고 논농사가 발달한 흥해읍 지역의 농요도 주목할 만한 무형문화유산이다. 흥해농요는 모심는소리나 논매는소리를 비롯해 장르별로 매우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전승하고 있는데, 최근에 흥해농요보존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전승노력을 펼치고 있는 점이 강점이다.월월이청청은 달밤에 여성들이 모여 즐기는 원무 형태의 달놀이로 남해안의 강강술래에 비견되는 동해안의 민속놀이이다. 포항에 2개 단체에서 전승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2009년 영덕의 월월이청청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포항의 월월이청청이 추가로 지정받기는 어렵게 됐다.무형문화재로 지정되려면 그 분야의 맥을 잇는 우수한 기능과 문화재적인 가치, 전승 노력 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용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과 고증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보존·전승을 위한 자체 노력이 필요하며, 학술 세미나 등을 통한 가치 입증이 뒤따라야 한다.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을 전승하고 있는 농어촌의 주민들이나 기능보유자들은 그러한 방법이나 절차를 잘 모른다. 행정 당국에서 숨어 있는 무형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전승노력을 지원함으로써 자칫 소멸될 수도 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가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 행정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포항도 무형문화재를 가진 도시가 될 수 있다.

2021-03-16

주거니 받거니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우리말 표현 중에 ‘주거니 받거니’라는 게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서로가 물건이나 말을 계속 주고받는 모양을 이르는 말인데, 그 표현이 참 재미있다.주거나 받거나 받거나 주거나 사실 그게 그것인데, 우리는 보통 ‘받거니 주거니’ 하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하는 말을 쓰니 말이다.하지만 사실 이 표현 속에는 인간관계의 비밀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담겨 있다. 다름 아닌 베푸는 삶의 철학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인간관계로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그런데 그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손해 본다는 생각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손해 보는 느낌’이란, 계산적인 관계에서 준 만큼 못 받았다고 느낄 때 생기는 불편한 감정이다.줌-받음이 저울 재듯 일대일 대응이 되면 참 좋겠지만, 인간관계가 어디 그러랴. 그래서 많은 이들이 손해 안 보려고, ‘줌’보다는 ‘받음’을 먼저 생각하고, 설사 ‘줌’을 먼저 행한 후에는 악착같이 ‘받음’을 얻어내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그런데 ‘주거니 받거니’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줌-받음의 일대일 대응 관계보다는, ‘줌’과 ‘받음’의 선후 문제이다.사실 먼저 ‘주거니’ 하면 얼핏 손해일 법하지만, 오히려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왜냐하면 퍼주는 과정에서 타인들의 기쁨, 행복, 감사함이 빈자리를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반면 먼저 ‘받거니’ 하려 하면, 주변 사람이 거리를 두고 나아가 그들로부터 빈축을 사게 되어 결국 외로운 삶과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자선은 아무리 베풀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했고 달라이 라마도 우리가 받는 따뜻함/애정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는 따뜻함/애정”이라고 설파한 바 있는 것이다.주는 게 오히려 얻는 것이라는 삶의 철학을 깊이 깨친 사람들은 늘 스스로도 행복할 뿐 아니라 타인의 존경도 함께 얻는 법이다. “재산을 갖고 죽는다는 건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며 비록 가난한 농부 아들로 태어나 가방끈도 짧았지만 평생 번 돈을 사회에 아낌없이 환원한 미국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 무려 99칸의 집채와 800석의 쌀 보관이 가능했던 곳간을 지닌 만석꾼이었지만 흉년에 누구나 쌀을 가져가도록 아예 곳간 문을 열어 놓은 경주 최씨나 ‘타인능해(他人能解·누구나 열 수 있다)’라는 글씨를 새긴 큰 쌀독을 고택에 두고, 흉년 시 누구든 쌀을 가져가게 한 조선 후기 낙안군수 유이주, 전 재산을 털어 쌀 500석을 사서는 기근 시, 관덕정에 솥을 걸고 죽을 쒀서 제주도민 3분의 2를 먹여 살린 여성 김만덕 등등….이처럼 먼저 베푸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도 우리는 타인에게 먼저 받기를 원한다. 계속 받기만 원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받으면 받은 만큼만 딱주는 사람도 있고, 받지 않으면 아예 먼저 주는 법이 없는 사람도 있다. 꼭 무언가를 가져야만 타인에게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우리가 가진 작은 것에서부터 충분히 ‘주거니’ 하는 삶을 살 수가 있다.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이 채워지고 삶이 보다 풍요로워진다는 고금의 진리, 바야흐로 다가오는 4월에는 다들 한번 이를 깊이 새겨보는 시간이면 좋겠다.

2021-03-16

백신도시 안동

안동은 가장 한국적인 도시다. 한국문화의 전통적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199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곳을 찾았던 이유도 한국적이라는 데 있다. 그의 둘째 아들인 앤드루 왕자도 20년 뒤인 2019년 안동을 찾았다.우리는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부른다. 특허청은 2006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란 브랜드를 인정하고 등록해 주었다. 누가 봐도 안동은 한국 전통문화의 본거지라 해도 틀리지 않다는 의미의 부여다. 이곳에는 특별히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그래서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도 불린다.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노나라, 추나라와 같은 정신적 고향이라는 뜻이다.안동은 2006년 세계문화유산도시에 가입했고 2010년에는 안동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가지고 있는 봉정사와 한국의 서원인 병산서원과 도산서원도 유네스코 문회유산으로 각각 지정됐다. 봉정사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안동에는 오랜 기간 전승된 하회탈춤놀이를 무대로 한 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린다. 문화부가 선정하는 전국 대표축제에 3년 연속 뽑혔다. 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장이다. 임시정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 363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다. 전국에 이런 도시는 없다.지난달 국내 최초 코로나19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SK 바이오사이언스 안동공장에서 출하되면서 안동이 전국적 이목을 끌었다. 가장 고전적인 이미지의 안동이 바이오산업으로 또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고전의 도시 안동이 이제 첨단산업이 겸비된 백신 메카로 뜨고 있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3-16

로또 狂風…정상적인 사회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불황으로 ‘로또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포항시를 비롯한 경북도내 중소도시의 ‘로또복권 명당’에는 최근 평일에도 로또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줄서는 사진이 본보 사회면에 보도됐다. 왜곡된 부동산 시장, 폭등하는 주식시장에서 소외된 서민들이 기댈 곳이 로또복권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사회현상이다. “취업도 힘든데 정작 취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월급을 받아서 내 집을 장만하려면 수 십 년 동안 돈을 한 푼 안 쓰고 꼬박 저축만 해야 한다. 로또는 단돈 천원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라는 시민의 말에 공감이 간다.지난해 전국의 로또 판매량은 로또복권 판매가 시작된 2002년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인 4조7천370억건에 이른다. 2019년 4조3천181억건, 2018년 3조9천687억건보다 10~20%가량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로또 하루 평균 판매량은 1천297만8천93건으로, 복권 1장 가격이 1천 원임을 감안하면 하루 평균 판매량은 약 130억 원이나 된다. 로또 복권은 립스틱, 미니스커트 등과 함께 대표적인 불황형 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경기가 불황일 때 달리 기댈 곳 없는 서민들이 복권에라도 당첨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이다.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최근 주요 20국(G20)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경제복원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충격이 만성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코로나로 인한 부채문제, 청년층의 고용난으로 우리경제가 두고두고 회복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는 3.3%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 G20 국가 중 15위에 머물 전망이다. 내년 성장률(3.1%)도 12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경기반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경기 침체기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샐러리맨들의 꿈이 월급을 모아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꿈이 허망하게 됐다. ‘흙수저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로또밖에 없다’는 한 시민의 말이 우리사회의 현 주소를 잘 말해 주고 있다.

2021-03-16

교육부를 생각한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종잡기 어려울 만큼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겨울이 마침내 봄에게 자리를 내준 교정에 개나리 노란 물결 넘실거린다. 성질 급한 홍매와 백매 시들어가고, 산수유와 살구꽃이 여기저기 화사한 자태 뽐낸다. 키 작은 큰개불알풀과 민들레, 냉이와 꽃다지가 앞다투어 봄을 맞이한다. 바야흐로 봄이다. 봄은 보는 계절이다. 산야에 넘쳐나는 형형색색의 장관(壯觀)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 기막힌 계절이 왔다.그러나 봄을 완상하기에는 마뜩잖은 소식도 있다. 대학입시가 끝난 지금 경향 각처의 신문에 오르내리는 ‘지방대 소멸위기’가 그중 하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입시에서 적어도 1만 명 정도의 미달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200명 이상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한 대학이 위치한 시도는 다음과 같다. 경북 (2), 전북 (3), 강원 (2), 충북 (2), 부산 (2), 경남 (3), 충남 (2), 대전 (2), 전남 (1), 제주 (1). 그야말로 전방위적(全方位的)이다.이런 상황에서 대구대학교는 총장이 사퇴를 선언했고, 원광대학교는 교수협의회 의장이 총장사퇴를 대놓고 요구하고 있다. 총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방대 소멸문제는 일과성 문제가 아니라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지점에 사태의 본질이 있다. 그 하나는 서울과 경기 공화국의 가공할 흡입력이고, 그 둘은 지방에 없는 양질의 일자리다.이 둘은 총장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구조적인 문제다. 가뜩이나 힘겨운 판인데, 안에서 총질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칼자루는 누가 뭐래도 교육부가 쥐고 있다. 대학정원이 지원자 숫자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10여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교육부는 이런저런 제도적인 방책을 제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에 지나지 않는 미봉책으로 드러났다.아파트 투기를 제어하지 못해 오늘의 부동산 문제를 불러온 국토부의 무능과 다를 바 없다. 교육부의 대학정책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나라에 대학정책이란 게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유치원부터 초중등 교육은 일선 교육청에 실권을 모두 이양하고, 교육부는 대학정책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서 아직도 교육부 장관이 초중등생 등교와 대학입시에 몰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그동안 국공립대학교 연합방안,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방안 같은 여러 대안이 제시되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런 현안을 여러 각도에서 살피고, 확실한 대안을 제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물론 2007년에 누더기가 되어버린 ‘사립학교법’이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되, 180석 국회는 무엇 하러 존재하는가?! 악법은 개정해야 마땅하고, 국공립대학은 나름대로 발전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사정이 이럴진대, 교육부 장관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선제적으로 대학정책을 제시하고, 여론을 수렴하여 이제라도 국리민복과 100년의 미래를 당당하게 기획-실천해야 할 것이다.

2021-03-16

포항지진 특별법 시행, 시민 기대에 부응하길

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의 일부 개정안이 다음달 16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포항지진 발생 3년 5개월만에 법 시행을 맞는 것이어서 포항시민으로서는 감개가 무량하다. 2017년 발생한 포항지진은 인재였음에도 특별법 성사에 이르기까지 숱한 난관을 넘어야 했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에만 무려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그동안 포항시민이 가져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국책사업을 수행하던 지열발전소의 잘못으로 빚어진 결과를 놓고도 피해구제를 위한 법 제정에 오랜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포항지진은 우리나라 지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피해를 입혔다. 일부 주택이 전파되고 일부 건물에는 균열이 발생하는 막심한 손실을 유발했다. 피해 규모가 수천억원에 달했다. 주민 1천여명이 살던 집을 떠나 이재민 생활하면서도 정부로부터 따뜻한 위로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수능시험이 연기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 여론 조사에서는 포항시민 10명 중 8명이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지진도시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포항시가 받은 경제적 피해 또한 컸다.다음달 16일부터 시행되는 포항지진 특별법은 정부와 지자체가 80%와 20%씩 각각 재정부담을 맡음으로써 100% 피해구제가 가능하게 됐으며 손해배상 청구에 관한 기일도 민법상 3년과는 달리 5년으로 늘렸다. 산자부와 포항시는 지원금의 조속한 지원을 위해 통상의 공포기간 3개월을 1개월로 단축하는 성의도 보였다. 이제 지진 특별법에 따라 포항시민의 지진 피해에 대한 구제가 본격화 될 예정이어서 지진으로 받은 시민들의 그간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위로받았으면 한다. 특히 특별법 제정의 정신을 살려 시민들의 지진피해에 대한 재정적 보상이 충분하고 빠르게 진행되길 기대한다.정부는 아직 포항지진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않았다. 이런 점을 상기하며 포항지진이 준 교훈에 대해 반면교사 삼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번 특별법은 국가적 재난에 대응하는 정부의 능력을 가늠하는 계기였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특별법 시행으로 포항시민이 지진 악몽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게 정부는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겠다.

2021-03-16

브레이브 걸스, 그 역주행의 의미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국내 최대의 음원사이트에 들어가 음원 차트를 확인해보았다. 1위를 달리고 있는 곡은 오랜 음원 강자 아이유의 곡도 아니고, 빌보드차트를 수놓은 BTS의 곡도 아니다. 다소 생소한 걸그룹인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발매된 지 4년이나 지난 이 곡이 갑자기 역주행 하여 음원차트 1위까지 차지한 것은 뜬금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2011년 데뷔한 브레이브 걸스는 지난 10년간 단 한 곡의 히트곡도 내어 놓지 못한 그룹이다.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도 이들이 꾸준히 해 온 것이 있으니 바로 군 위문 공연이다. 4년 전 발매된 롤린이라는 곡으로만 국방TV의 ‘위문열차’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상들이 유튜브에 공개된 것이 33건.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를 가리지 않고 백령도부터 후방부대까지 4년간 무려 33개 부대를 방문하여 공연을 펼친 것이다.그러다보니 국군장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었고, 노래와 안무를 따라하는 것이 선임으로부터 후임에게 ‘인수인계’되기를 반복하며 우스갯말로 ‘밀보드(밀리터리+빌보드)’차트 1위곡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수많은 위문공연을 반복하면서도 무대 하나 하나를 결코 허투루 하지 않는 것이 브레이브 걸스의 매력이다. 모든 무대에서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질 만큼 활짝 웃으며 국군장병들에게 뛰어난 무대 매너를 보여주곤 했다.이러한 과거 무대 영상들이 최근 들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힘든 군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준 그들에게 이제는 자신들이 보답할 차례라며 수많은 예비역들이 그들의 무대영상을 클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대중들에게 확산되어 어느덧 몇몇 영상들의 조회수는 각각 수백만에 이르게 되었다. 데뷔 후 10년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탓에 해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브레이브 걸스는 롤린의 역주행으로 인해 뜻밖의 전성기를 맞게 되고 각종 매체들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브레이브 걸스와 그들의 노래 ‘롤린’의 역주행 소식이 인상적이고, 누군가에게는 감동으로까지 와 닿는 이유는 이것이 오랫동안 자신의 일을 묵묵히, 열심히, 즐겁게 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것을 최고의 미덕이라 배워왔지만 실제 사회가 어디 그러한가. 성실하게 꾸준히 해온 사람들의 성공담을 들어본지 오래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야기는 노력보다는 재빠른 판단으로,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또는 부정과 비리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신도시 개발이 예정되어 있던 시흥과 광명의 땅을 미리 사 두었다는 LH 직원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얼마나 허탈하게 만들었던가.투자와 투기의 가치가 커질수록 노력의 가치는 하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서야 성실하게 노력만 해서는 평생 집 한 채 가져보기 어렵게 되는 것이고, 노력의 가치가 하락하는 바람에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서툴게 투자시장으로 진입해 쓴 맛을 보고 마는 것이 흔한 이야기이다. 성실함과 꾸준함만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그 동화 같은 이야기가 브레이브 걸스를 통해 실현되는 광경은 너무나도 생소하고, 그래서 더 반갑고, “그렇지, 세상이 이래야지.”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그 성공의 공정함을 우리는 알기에 더욱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2021-03-15

노력과 성공 사이에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나는 외계의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는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닐까.지구라는 행성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게임의 목적은 캐릭터가 얼마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서 생을 마감했느냐에 있다. 게임의 유저는 캐릭터의 행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경험치를 올린다. 언어를 가르치고, 학교에 보내고, 그러다 보면 직업이 생기고, 소중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은강이라는 캐릭터는 조금씩 성장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것이 행복은 아닐까, 어렴풋하게 알 때가 되면 팝업창이 뜬다. ‘이쯤에서 게임을 종료하겠습니까?’ 유저가 ‘YES‘ 버튼을 누르면 나의 존재는 소멸하는 것이다.이런 실없는 상상을 지속할 수는 없다. 현실의 나는 억지로 침대 밖을 빠져나와 세수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가끔은 너무 글이 쓰기 싫어서 엉엉 울기도 한다. 공과금과 보험료는 무섭도록 정확한 날짜에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날씨가 흐린 날에는 몸 구석구석이 쑤신다. 너무나 지쳐버린 어느 날에는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 너무 힘들어. 어서 빨리 이 게임을 종료해줘!” 하고 외치고 싶다.당연하게도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체 나는 왜 살아가는가.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수 세기를 걸쳐 철학자들이 골몰했던 이 주제는 2021년에도 유효하다.나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미래의 꿈에 관해 묻곤 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대답이 주를 이룬다. 돈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의 좌표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나의 바보 같은 질문에 아이들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친다. “노력해야죠.”‘노오력이 부족하다’는 인터넷 밈이 유행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개개인의 노력을 강조한다. 밤을 새워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꼬드긴다. 물론 우리는 우리 존재가 불평등의 구조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노오력’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룬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노오력’으로 만들어낸 부와 명성을 그들의 자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세습하고 있다. 그 모습은 희망찬 미래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던 청년들을 패배주의에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최근 ‘롤린’이라는 노래로 4년 만의 역주행에 성공한 걸그룹 ‘브레이브걸스’를 보면서 나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들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면서 무명이던 이 걸그룹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조명됐다.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빛을 본다’는 은근한 소망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그렇다면 ‘노력=성공’이라는 완벽한 공식은 가능할까. 세상의 모든 일이 노력한 만큼의 정확한 보상이 돌아온다는 장담은 할 수 없다. ‘나도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빛을 보지 못할까’라는 질문은 충분히 유의미하다.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을 뛸 때 단 세 가지의 목표를 상정한다. 골인하는 것, 걷지 않는 것, 그리고 레이스를 즐기는 것. 그는 스스로가 정한 목표를 향해 충족감을 가지고 달려간다.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오래 능력과 활력을 유지하는 모습에 자기만족을 얻는다.우리는 오늘도 하루라는 트랙을 달린다. 다른 사람보다 멀리 나아가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적어도 걷진 않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달려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으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불어오는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끼자.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2021-03-15

미술품 위작 : 권력, 돈 그리고 욕망

미술이 있는 곳에 인간의 욕망이 있고, 욕망이 있는 곳에 돈이 있으며, 돈이 있는 곳에는 그 돈을 부정적으로 탐하려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미술을 이용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들의 욕망을 미술에 투영하고 있다. 미술과 권력, 돈과 욕망의 불편한 동침은 미술사 속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 관계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고가의 작품이 반드시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작품의 가격이 반드시 작품에 내재된 미술사적, 미학적 가치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미술시장은 미술사와는 전혀 다른 자기 논리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다.미술시장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명품을 소비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미술시장이 움직인다. 물론 미술시장의 움직임이 훨씬 더 복합적이다.미술 작품이 상품이 되어 고가로 거래되는 이상 위작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무언가를 욕망하고, 누군가는 그 욕망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위작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경찰이 위작범을 체포해 범죄에 대한 자백까지 확보한 상태였지만 한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거주하며 이름 꽤나 알려진 이 미술가는 어찌된 일인지 위작으로 의심되는 작품 모두가 자신의 창작물이라 주장했다.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 거짓말은 돈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그런데 위작과 관련해 진품 감정의 방법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첨단 장비를 동원한 과학적 분석이 이뤄지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술품 감정은 주로 전문가의 경험이나 직관 혹은 미술 권위자의 명성에 의존한 경우가 많았다. 숙련된 전문가의 감식안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 감식에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나 객관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진술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미술가의 기백이 느껴진다든지, 필치가 살아 있다든지 하는 진술들은 감성적이고, 시적이며, 은유적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꽤나 운치 있게 들리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진품 감정에 있어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는 것은 작품과 관련된 문서 혹은 기록이다. 작품을 사고 팔며 주고받았던 계약서 혹은 영수증은 작품 소유자의 이력을 추적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다. 소유자를 확인하는 것이 작품 진위여부 판단에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누가 누구로부터 구입해 소유한 것인지를 아는 것은 작품의 출처와 유통 과정을 밝히는데 큰 도움을 주며 그것이 작품의 외적 환경의 신뢰성을 검증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직접적 감정과 소유자 이력 확인은 병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헌이나 기록으로부터 취득한 정보는 조작 가능성의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이 또한 하나의 의미 있는 참고 자료로 활용될 뿐 진품 확증에 대한 증거로 사용되기에 그 결점이 너무나 중대하다.최근 들어 미술품 감정을 위해 첨단 과학 장비들이 동원된다. 초정밀 광학 현미경으로 캔버스의 조직을 분석하고 작품에 사용된 재료를 채취해 화학성분 등을 밝혀낸다. 그러한 과정에서 육안으로 들어나지 않는 밑그림이 발견되기도 하고 미술가가 처음 계획을 어떻게 수정해 최종 결과물을 얻었는지를 알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접근법은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또 다른 문제는 국내 위작 사건에서도 경험했던 것처럼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위작임을 밝혀내어도 복잡한 얽혀 있는 관계들 때문에 작가 개인이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하면 위작을 위작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한다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창작윤리를 심각하게 의심할 필요가 있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1-03-15

천마총과 황남대총 발굴 이야기

사람들은 ‘경주’라고 하면 거대한 무덤을 떠올릴 것이다. 그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은 대릉원 일원(사적 제512호)에 모여 있다. 요즘은 그 서편으로 ‘황리단길’이 조성되어 경주를 방문하는 이들이 많이 찾곤 한다. 1970년대 대릉원이 막 조성될 무렵을 보자면 경주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거대한 무덤에 압도되고 말 것이다. 무덤이 만들어질 그 옛날에도 왕과 귀족의 사후(死後) 평안을 바라는 최고·최대의 구조물이었던 만큼 그 안의 부장품은 최고 수준이었다. 이러한 거대 무덤들은 대부분 도굴이 어려운 돌무지덧널무덤인 까닭에 많은 유물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고 있다. 이는 문헌 자료가 부족한 당시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4~6세기 신라 마립간기(麻立干期)를 대변하는 이러한 구조물의 축조는 당대에도 국가 차원의 사업이자 사람들에게는 큰 화제였을 테지만, 오늘날에도 이러한 무덤 발굴은 많은 관심을 받는 큰 사업임은 틀림없다. 그 가운데서도 천마총과 황남대총의 발굴은 당시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고 한국 고고학계에서도 기념비적인 사업으로 인정받고 있다.이처럼 문화재 발굴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두 고분의 발굴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황남대총과 천마총을 발굴하였던 70년대는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시작하고 급변하던 시기였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고 관광자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1971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일환으로 미추왕릉지구 정화사업 이루어지면서 황남대총과 천마총 발굴을 기획하였던 것이다.원래는 황남대총을 발굴하여 그 내부를 복원·공개할 계획이었으나, 남·북분을 합치면 120m에 달하고 당시 조사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에 앞서 천마총을 시험 발굴하기로 한 것이다.천마총 발굴은 1973년 4월에 착수하여 그해 12월까지 단 8개월 만에 마무리하였다. 이처럼 조사가 단기간에 그치고 황남대총을 위한 시험적 발굴이었지만, 그 성과는 적지 않았다. 무덤의 주인공이 쓴 금관과 천마(天馬)가 그려진 장니(障泥)를 비롯하여 1만1천526점의 유물을 수습한 것이다.이와 함께 목관(木棺) 주위에 두른 석단(石壇·돌로 만든 단) 구조를 처음으로 확인하는 등 지상식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를 명확히 밝히는 성과가 있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유물 수집 목적의 발굴에서 벗어나 사분법(四分法)을 고분 발굴에서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 조사방법의 큰 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천마총 발굴이 일단락되고 관광자원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듯 보였기에 황남대총의 발굴을 중단할 수도 있는 여지가 생긴 듯하였다. 당시 발굴을 담당하였던 김정기 단장도 황남대총 발굴에 대해 시기상조로 보아 내심 그런 기대를 한 것 같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천마총의 성과는 오히려 그다음 발굴인 황남대총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놓았고 발굴은 강행되었다.정익재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황남대총 발굴은 북분을 먼저 조사하고 남분을 조사하였다. 이는 발굴 과정상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두 고분을 동시에 발굴하였을 때 오는 착오를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북분은 1973년 6월 천마총의 적석부(積石部·시신을 안치하는 나무곽을 둘러싼 돌무지)를 조사할 무렵 봉분 발굴을 시작하였고 다음 해 12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이루어졌다. 북분 발굴에서는 역시 피장자가 착장한 금관을 비롯하여 3만5천769점의 유물이 출토하였다.또한, 나무곽 주변으로 적석(積石)을 쌓기 위해 마련한 목가구(木架構) 구조를 처음으로 확인하여 천마총 발굴에 이어 또 하나의 신라고분 구조를 밝히는 성과가 있었다. 남분 발굴은 북분의 적석부가 조사될 무렵인 1974년 8월 재착수하여 1975년 12월에 마무리하였다. 남분 발굴에서는 천마총, 북분과는 달리 금동관이 출토하였고 이를 비롯해 모두 2만2천793점의 유물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남분 조사에서는 시신을 안치하는 나무곽이 2중 곽(또는 3중 곽)인 구조를 처음으로 확인하여, 남분보다 뒤에 만든 북분, 천마총과는 또 다른 형식의 무덤 구조를 밝힐 수 있었다.이처럼 천마총과 황남대총의 발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학계에는 신라 고분연구의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줬을 뿐만 아니라 돌무지덧널무덤의 조사방법, 구조, 편년, 유물 등 적지 않은 성과가 도출되어 이후 발굴 조사와 연구의 근간을 형성하였다. 더불어 일반 시민에게는 대표적 여행지로 자리했고, 대외적으로는 발굴된 유물이 다른 나라의 박물관 등에 전시돼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도 수행하였다.경주를 오게 된다면 마립간기의 신라와 1970년대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간직한 황남대총과 천마총을 꼭 한 번 답사하길 바란다. 아울러 이러한 문화유적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나아가 다음 세대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한번 고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1-03-15

왜 그랬느냐고 묻는 것은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얼마 전 성추행으로 사퇴한 정당 대표의 지역구민들과 참담한 심정으로 대화하던 중 왜 그랬을까 질문했다가 오해를 받았다. 가해자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는 것은 가해자를 변호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몇 년 전 읽은 칼럼이 생각났다.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는 제목의 그 칼럼은 2011년에 나온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다루고 있다. 케빈은 화살로 아버지와 여동생을 죽이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체육관에 가두고 화살을 쏘아 죽였다.시간이 지난 후 케빈의 엄마는 감옥에 있는 케빈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는다. 그 칼럼에서는 이런 질문이 피해자를 영원히 피해자로 남게 한다면서 왜 그랬느냐고 묻지 말라고 한다. 악의 이유를 질문하는 것은 피해자의 자아존중감을 파괴하는 진짜 악이란다. 이유를 밝히면 잠시 피해자의 상처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그 이유는 대단히 복합적이기도 하고 오히려 가해자의 책임을 줄여줄 수도 있으며, 왜 하필 나지? 하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나 이유가 복합적이라고 해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고, 이유를 밝힌다고 해서 피해자의 자아존중감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이유를 밝히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1999년 미국 콜롬바인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 에릭과 딜런은 선생님 한 명과 학생 12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6년 후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쓴다. 딜런이 왜 그랬는지 알기 위해 고군분투한 기록이다.자식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쉽게 부모 탓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원인은 너무나 많고 복합적이어서 우리의 이성으로 정확하게 다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 알아낸다고 해도 그것이 충분한 이유라고 볼 수도 없다. 케빈의 엄마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감당하기 어려워 시끄러운 공사장에 데리고 갔다고 해서 케빈의 행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두 가지로 원인을 밝히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딜런의 엄마도 딜런이 왜 그랬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의 변화를 눈치챘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모는 딜런이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우울증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우울증이 그 사건의 원인도 아니다. 우울증에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지만, 그 모든 이유를 합쳐도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조건 중 하나만 없었어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있다.왜 그랬느냐고 묻는 것은 결코 가해자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가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악마라고 규정하는 것은 쉽지만,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딜런의 엄마는 자녀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방법을 발견했고 강의를 하면서 많은 부모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2021-03-15

구미 ‘보람이 비극’은 사회에 뭘 말하고 있나

최근 들어 우리사회에 아동학대와 이로 인한 사망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달 구미시 한 빌라에서 미라상태로 발견된 보람이(3세)의 생전모습이 지난 13일 MBC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면서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 김모씨(22)와 김씨의 어머니 석모씨(48)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부모 잘 만났으면 너무도 건강하고 예쁘게 자랐을 아이들이 계속 희생되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등의 댓글이 이어지면서 보람이의 비극이 ‘제2의 정인이 사건’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가슴 아프게 한 정인이 사건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한 여자 아이를 부부가 장기간 학대하여 16개월이 되었을 때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다. 지난해에는 정인이 사건 외에도 천안에서 계모가 아홉 살짜리 의붓아들을 여행 가방에 7시간 넘게 넣고 다니다가 아이가 사망한 사건, 그리고 창녕에서 아홉 살 여자아이를 계부와 친모가 동물처럼 쇠사슬로 묶고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을 지지는 고문을 한 엽기적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9년 기준 아동학대 피해 경험률은 아동인구 10만 명당 381건으로 1년 전 301건보다 80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72.5건을 시작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아동학대 피해 건수는 신고된 사건만을 집계하기 때문에 학대가 급증한 것인지 신고가 늘어난 것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 것처럼 아동학대 대부분은 집 안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가해자가 부모이기 때문에 정부가 학대 사실통계를 정확하게 집계하기는 어렵다. 요즘에는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인해 아동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정부에서는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전수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범죄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 범죄는 아이에 대한 사회 구성원 모두의 따뜻한 관심과 적극적인 주변의 피해신고가 전제돼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21-03-15

언론경쟁 유지법

미국 의회가 언론사들의 뉴스로 거대한 이익을 남겨온 구글·페이스북 등 인터넷 공룡기업을 상대로 뉴스 공짜사용을 막는 ‘2021 언론경쟁 유지법’을 발의했다.플랫폼 기업들이 언론사 뉴스를 트래픽 유인 수단으로 이용해 이익을 올리면서도 정작 언론사에 제대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법안 도입 취지다.이번에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기사를 작성하는 미국내 모든 신문·방송·인터넷매체가 연합해 구글·페이스북 등 뉴스로 이익을 남겨온 플랫폼 기업과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전문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론사에 저작권료 대신 광고 수익 일부만 나눠주고 있다. 미국은 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시장 자율에 맡기고 정치권과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거대 테크 기업의 횡포로 미국 언론 산업이 피폐해지자 정치권이 더이상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실제로 미국 신문 광고시장은 2005년 494억달러(약 56조1천431억원)였던 것이 2018년 143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구글의 광고 매출은 61억달러에서 1160억달러로 치솟았다. 지난 15년간 미국 신문사 2천100개가 사라졌다. 유럽연합도 지난 2019년 저작권 규정을 변경해 구글·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이 언론사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호주도 플랫폼이 언론사와의 저작권료 협상에 실패하면 정부가 개입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뉴스로 인한 광고료 대부분을 포털이 독식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우리 국회도 포털 기업의 광고독식을 더이상 방치하지 말고, 언론경쟁유지법 발의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15

코로나 재확산 조짐…긴장 고삐 죄야

정부는 코로나19의 3차 유행이 다시 확산세에 있다고 조심스레 진단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각종 지수가 모두 악화되고 있는 것이 판단의 근거다.문제는 날씨가 풀리면서 봄철 행락객 등 나들이 인파가 늘면 지금의 확산세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15일부터 현행 거리두기 방역체계를 2주간 더 연장키로 했으나 유흥시설 영업시간과 사적모임의 금지 조건을 일부 완화해 코로나 재확산의 불씨로 작용할까봐 걱정이다.15일 0시 현재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모두 382명으로 일주일만에 400명대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전날이 검사 건수가 줄어든 휴일인 점을 고려하면 확산세가 진정된 것이라 보기가 어렵다. 9일부터 6일간 연속으로 400명대를 이어온 국내 코로나 감염증 사정은 각종 수치에서 나쁜 단계로 전이되는 모습이다.한 사람의 전파력을 말하는 코로나19 재생산지수가 1.07을 기록하면서 3주만에 1.0을 넘었다. 1.0 이상이면 유행의 확산으로 볼 수 있는 수치다. 또 최근 일주일 60대 이상 환자는 하루 평균 113.9명으로 일주일 전 82.6보다 31.3명이나 늘었다.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는 비율도 24.5%로 최근 4주 사이에 가장 높았다. 최근 일주일 일 평균 신규 확진자 수(439명)를 두고 보면 이미 2.5단계(전국 400∼500명) 수준에 들어선 셈이다.국내 코로나19가 수도권 중심으로 전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방도 사적 모임이나 목욕탕 등을 통해 확진자가 꾸준히 발생한다.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15일 대구경북에서도 8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정부는 4월부터 65세 이상 고령자를 비롯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2∼3월 접종 대상자의 10배 규모가 2분기 중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중에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에 대한 불신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접종 후유증을 호소한다. 백신 접종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면서 백신 접종자수를 늘리는 보건당국의 신속한 대응이 요망된다.이제 날씨가 풀리는 행락철이 돌아오면서 전국에는 나들이객으로 크게 붐빌 것이 예상된다. 백신 접종으로 인한 면역력이 형성될 때까지 보건당국과 국민 모두가 긴장감을 놓지 말아야 한다.

2021-03-15

예술의 일상화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모든 생물체의 움직임은 자극과 반응으로 이뤄진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맡거나 먹거나 하는 등으로 주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대상을 느끼며 외부를 인지하는 것들은 모두, 생물체 고유의 감각기관의 작용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서 외계의 현상을 받아들여 뇌에 전달하는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등의 감각기관은, 외부 자극에 변화하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반응하며 동작이나 행위를 하게 된다. 이를테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喜怒哀樂) 등을 느끼는 것들은 순전히 대상물이나 주변 상황에 따른 신체반응의 결과물인 셈이다. 인간은 감정적 또는 이성적인 동물이기에 외부 자극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표현하게 된다. 외부 현상에 의해 다양하게 표출되는 인간의 무수한 감정은 개인의 인격이나 행동, 가정과 사회생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좋은 감정은 뇌활동을 활성화시키고 건강에 도움을 주며 긍정과 발전의 방향으로 꾸준히 이끌어 주기도 한다.어쩌면 그래서 예술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멋진 경치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감탄하거나 호감을 가지게 된다. 미적(美的) 가치를 형성하는 인간의 창조활동인 예술은, 세상을 밝고 새롭고 향기롭게 하며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본질이다. 오묘하고 무진한 예술은 보이지 않은 세계를 열어주고 복잡다단한 현실을 정화시켜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예술품과 예술세계를 통한 감정이입으로 대리만족이나 생각을 새롭게 하고 깨우침과 발돋음의 계기로 삼으며 마음을 다듬고 넓히기도 한다.창작의 예술품을 거리에서 만나고 생활 속에 스미게 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가로등이나 간판의 스타일을 이채롭게 하고 벤치나 건축물의 외형을 예술적으로 디자인해서 적용한다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한결 새로움을 더하고 흥미와 감각을 부추길 것이다. 정형화, 획일화돼가는 도시에 신선한 문화의 바람이 일고 색다른 볼거리가 늘어날 것이다.예술과 접목되는 일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추구해왔고 현재도 계속 진행되는 테마가 아닐까 싶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이색 건축물이나 로테르담의 초대형 예술품 같은 마켓홀 이색 시장,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 등을 비롯하여 하프현 같은 다리, 상징성이 가미된 벤치, 조형미가 곁들여진 간판 등은 마음을 한결 넉넉하게 하거나 재미난 스토리를 엮어내게 만든다. 평범하고 사소한 부분에서 오브제 같은 작품이 출현한다면 다채로움과 경이로움을 더해줄 것이다.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예술작품도 나름 가치가 있겠지만, 실용성이 어우러지고 대중성을 더해가는 예술이야 말로 더욱 친숙하고 가까이서 향수하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고 예술이 일상화 되듯이, 자연미와 더불어 예술미가 묻어나는 작품들이 도처에 즐비하다면 코로나로 지쳐가는 심신이 조금이나마 위무되고 힐링되지 않을까?

2021-03-15

좌절의 취업 준비생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학생들은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개학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가슴 졸이면서 코로나19를 걱정했다. 그동안 참 해괴한 코로나19에 의해 무참히 무너지는 인류 공동체를 지켜보면서 앞날의 삶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 불안해했다.허구적 세계에서나 보아 왔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현실이 되면서 막연하게 미뤄두었던 해결책에 대한 탐구도 서두르고 무엇보다 무심한 일상이 축복임을 깨달은 것은 역설이다. 이제 우리는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과 관행에 질문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다양한 첨단 기술이 사회 변혁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지만, 이러한 기술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더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인간의 책임을 고양하는 방향으로 줏대를 세워야한다.코로나19의 방역 차원에서는 적절한 조치지만 취업 준비생에게는 가혹한 조치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도서관이 문을 닫고 그나마 차선으로 선택했던 카페마저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방안에서 한 번도 밖을 나올 수 없는 취업 준비생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조치이다. 필자의 아들도 젊고 젊은 나이에 1년 동안 책상 앞에서 책만 보면서 젊음을 죽이고 있다. 탈모현상까지 와서 병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다. 울고 싶다.지난 2020년에는 여러 가지고 취업 준비생에게 힘든 한 해였다. 상, 하반기 채용 시험이 없어지거나 미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취업 준비생에게 취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기업 10곳 중 7곳은 “채용 계획 없다”이다. 설 추석 명절에 부모님을 볼 수 없는 미안함 안타까움에 좁은 취업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이 자신을 포기하는 니트(neet)족이 많이 생겼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희망이 있는지 묻고 싶다.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도 이제는 젊은 사람의 취업에 점점 둔감해지고 있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희망이 희망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미래가 있는가. 취업을 하지 못하니, 결혼을 할 수 없고, 결혼을 못하니,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단적으로 출산율을 보면 알 수 있다. 2020년 기준으로 0.84명으로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요즘은 ‘삼포세대’에서 ‘칠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취업, 희망의 일곱 가지를 모두 포기한 세대를 의미한다. 이들이 세상에 나아가 당당하게 접어두었던 자신의 꿈을 보여주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눈물을 흘리는 취업 준비생들이 모호하고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일 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취업 준비생들의 눈물을 닦아줄 사회적 관심과 따뜻한 배려 사랑이 필요할 때이다.코로나19가 여전하지만 이제는 긴 터널 끝에 빛이 조금은 보이는 듯하다. 사람들 마음에도 봄은 온다. 또한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 한해였다.올해는 눈물이 아닌 희망이, 웃는 얼굴을 보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2021-03-15

최정우 2기 포스코, 상생과 안전으로 거듭나길

정치적 외풍을 뚫고 포스코 최정우 회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국회 산재 청문회 개최 등 정치권의 흔들기에도 주주들의 뜻이 반영되면서 최 회장의 연임이 성사된 것은 다행이다. 최정우 회장 2기 출범을 맞은 포스코는 이제 과거와 같은 흑역사를 되풀이 하여선 안 된다. 세계 최고의 글로벌 철강사로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정치권의 입김에 흔들리는 일은 기업의 성장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그러나 주총에 앞서 최 회장 연임 반대의 명분이 됐던 산업재해와 환경오염의 문제는 최 회장 스스로가 반드시 해결해 가야 할 과제다. 주총직후 출발한 ESG 경영체제 강화가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보여지나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8년 7월 중도 하차한 권오준 전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최 회장은 취임 초부터 기업시민이라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실현에 앞장서 왔다. 협력사와의 상생은 물론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실천에도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해 왔다.경영성과 측면에서도 지난 한해는 코로나19라는 악재에도 불구, 비교적 선방을 했다. 지난해 2분기는 창립 이후 처음으로 분기 영업 손실이 발생했지만 비상 경영체제를 가동함으로써 한 분기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글로벌 철강사 중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도 유지했다. 다만 연임 반대의 명분이었던 산업재해 부문은 사망사고 등이 잦아 오점을 남겼다. 포스코는 철강산업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우리나라 국가산업 성장의 선봉이자 상징이다. 이제 최 회장의 2기 포스코는 세계 일류기업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으로서 이미지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역대 포스코 회장 중 연임 후 임기를 제대로 마친 경우가 없다는 불명예도 이번에는 씻어야 한다.오로지 기업의 발전과 사회발전을 위한 기업의 공존공생 가치 실현에 열과 성을 다하여야 한다. 지금은 코로나 이후 다가올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아남는 전략에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미래시장 선점이 기업의 100년 미래를 보장한다는 각오로 뛰어야 한다. 최정우 2기 포스코에 거는 포항시민의 기대도 크다. 포스코 본향이라는 자부심에 부응하는 포스코의 변화와 발전에 큰 응원을 보낸다.

2021-03-14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심충택논설위원정부 산하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이 엄청난 이권(利權)을 가진 수많은 공기업과 공공기관, 기타공공기관이 있다. 이들 기관에 소속된 공직자들의 비리는 주로 내부고발, 국민권익위 신문고 등에 의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비리내용이 가볍다고 판단될 때는 자체감사로 종결되지만, 비리규모가 크고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으면 해당 정부부처 감사실이나 감사원에서 감사반이 투입돼 조사를 한다. 그러나 감사주체가 어디든 비리혐의 당사자가 자신의 부정행위를 시인하지 않고, 증거자료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검찰에 수사의뢰를 할 수밖에 없다. 증거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계좌추적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검찰을 통해 법원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LH 임직원들의 수도권 신도시 땅투기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출범한 정부합동조사단이 지난주 국토교통부와 LH 임직원 1만4천명을 대상으로 토지거래를 조사한 결과 20명의 투기의심사례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민변과 참여연대가 투기의심 현직 LH 직원 13명을 공개했던 것을 포함하면 합조단이 새롭게 밝혀낸 직원은 7명에 불과하다. 청와대도 같은 날 “비서관급 이상 간부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투기의심 거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정부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그야말로 빈수레만 요란했던 셈인데, 국민 대부분은 “우리를 바보로 아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애초 비리수사를 검찰에 맡기지 않고 국토부의 ‘셀프조사’에 의존할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얼마 전 신도시 땅투기 의혹과 관련해 “직원을 조사할 게 아니라 돈 되는 땅을 조사하고 매입자금을 따라가야 한다. 거래된 시점, 거래된 단위, 땅의 이용실태를 분석한 뒤 매입자금원을 추적해 실소유주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투기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상식적인 수사기법을 얘기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의 말처럼 돈 되는 땅과 돈의 흐름을 즉각 대대적으로 뒤졌다면 투기의심자가 이 숫자 밖에 나올 수가 없다. 이러니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조사에 대해 “지인이나 차명거래는 물론이고 배우자 기록도 조사된 바 없는 ‘무늬만 조사’”(윤희숙 국민의 힘 의원), “부동산 타짜들이 제 이름 갖고 투기하느냐. 셀프조사의 뻔한 엔딩”(심상정 정의당 의원), “국민이 만족하기 어려운 어설픈 대응은 화를 키울 뿐”(노웅래 민주당 최고위원)이라는 비난을 쏟아내지 않는가.LH 직원들이 공적(公的) 지위를 이용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중범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청년들과 서민들은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 그런데 국민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직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땅 짚고 헤엄치듯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민심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검찰에 수사를 맡길 수 없다고 하는데, 정부·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땅투기 발본색원’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1-03-14

대구시 땅 투기조사 ‘맹탕’소리 안들어야

대구시가 지난 주말(12일) “대구시 본청과 구·군, 대구도시공사 등 소속 공무원 및 임·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관내에서 시행된 대규모 개발사업지구 12곳 모두에 대해 불법 투기여부를 합동으로 전수조사 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관 사업지구인 연호공공주택지구,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등 5개 지구 9천159필지와 대구도시공사 주관 사업지구인 수성의료지구, 안심뉴타운 등 7개 지구 4천761필지 등 총 12개 지구 1만3천920필지다.공영개발 택지에 대한 불법 투기행위로 인해 전국적으로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높은 시점에서 대구시가 전체 공무원과 대구도시공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투기의혹에 대한 조사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안 그래도 대구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는 대구지역 공직자들의 부동산 불법 투기여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 왔다.대구시는 전수조사를 2단계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공무원과 대구도시공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한 뒤 법률 검토 등을 통해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등으로 범위를 넓혀 추가 심층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심층 조사의 경우 국세청과 협의를 한 뒤 혐의점이 있으면 고발조치 등을 취하겠다”고 했다.현재 대구시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인천시, 경남도도 소속 공무원과 지방 공기업 임직원의 땅투기 여부에 대한 전수 조사 방침을 발표했다. 경북도는 감사관실에서 경북개발공사가 시행한 택지개발지역과 주변 땅을 대상으로 투기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LH 임직원들의 신도시 땅투기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는 만큼, 지방자치단체도 관련직원들의 투기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서 공직사회를 둘러싼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합동조사단을 꾸려 부동산 투기조사를 하는 것에 대해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직원 명단과 토지거래내역, 등기부등본 등을 대조하는 조사 방식으로는 불법여부를 밝히기는 힘들다.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개연성이 높은 노른자 땅의 경우 국세청과 경찰, 검찰의 협조를 받아 자금흐름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거래내역을 철저히 밝혀내 국민신뢰를 받도록 해야 한다.

2021-03-14

빙산의 일각

길거리에 툭 튀어나온 돌멩이처럼 몸체는 묻혀있고 한 부분만 뾰족이 솟아난 것을 두고 순 우리 말로 ‘뿌다구니’라고 부른다. 표준국어 사전에는 “물체의 삐죽하게 내민 부분”이라 설명하고 있다. 돌출부와 비슷한 뜻이다.어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극히 일부의 사실만 밝혀진 경우에도 “뿌다구니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과 같다. 빙산은 빙하나 빙봉이 바다까지 흘러나와 자연스럽게 생긴 얼음 산이다. 물 위에 떠있는 얼음조각이 모두 빙산은 아니다. 보통 빙산이라 함은 물 위에 나타난 얼음의 높이가 최소 5m 이상일 때를 말한다. 그 이하면 흐르는 얼음 조각이란 뜻으로 유빙(流氷)이라고 한다.물은 응고되면서 수소와 결합해 부피가 늘어난다. 액체 상태일 때보다 밀도가 작아져서 물 위에 떠있을 수 있게 된다. 물과 얼음의 밀도 차는 10% 정도인데, 물 위에 떠있는 부분은 전체의 10% 미만이다. 위로 돌출된 부분이 5m 정도 높이라면 얼음 속 깊이는 30∼50m 크기 정도는 된다고 보아야 한다.배가 항해를 할 때 빙산을 발견하면 선회해 가지만 실제는 비껴가지 못하고 선체 밑바닥 일부분이 거대한 빙산과 충돌할 수 있다. 빙산과 충돌한 대표적 선박 사고가 1912년에 일어난 타이타낙호의 침몰이다. 1천명이 넘는 승객이 사망한 세계 최대 해난 사고다.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100억원대 땅 투기의혹 사건이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의 발본색원 의지에도 국민들 반응은 싸늘하다. 전국에서 정치인, 공직자 등의 유사 투기사례가 연일 드러나 국민들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밑바닥까지 갔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3-14

SNS 다이어트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목 디스크가 의심될 정도로 아픈지가 한참은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심하게 과로를 하면 등이 아프고 어깨와 목이 많이 아팠는데 요즘은 이런 통증이 일상이 되었다. 목 통증 원인을 알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X-레이 촬영을 통해 일자목, 거북목이란 진단과 물리치료를 하라는 답뿐이다. 일시적 통증 완화다. 일상 속에서 원인을 찾아보면 컴퓨터의 장시간 사용과 누워서 TV를 보는 습관이 큰 원인 같지만 사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고개를 숙여서 가장 많이 목을 혹사시키는 것이 스마트폰 사용이다.스마트폰으로 SNS를 많이 이용하는데, SNS는 사회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또는 사회 네트워크 사이트(Social Network Site)를 말한다. SNS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영향력이 존재하는 만큼 다수의 부작용도 존재하고 있다.과거에는 전화통화와 문자메세지 이용이 전부였지만 정보통신의 발달로 요즘 사람들은 카카오톡, 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많이 이용중이며 TV나 영화도 스마트폰으로 많이 시청하고 있다. 목 통증의 원인이 스마트폰의 사용이지만 해결하기가 쉽지가 않다. 필자는 올해 초부터 SNS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사실 SNS가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원하지 않는 단체 카톡방 초대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태그들은 많은 부담을 준다.특히 카카오톡의 단체방은 “카톡 지옥”, “카톡 감옥”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해가 상당하다. 모르는 사람이 초대한 그룹 채팅에 참여한 후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도 있고 불특정한 다수 이용자가 한꺼번에 초대되는 카카오톡 감옥은 채팅방을 나가도 다수 이용자가 동시에 다시 초대해 나갈 수가 없어진다.SNS에 명품, 여행, 음식, 외모 자랑 등의 게시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게시물들을 보다보면 자신이 기준점이 아닌 상대를 기준으로 삼아 그들의 화려하고 행복한 일상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은 실제로 잃은 것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은 듯한 상대적 박탈감, 허탈감, 자존감 결여, 우울증 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증후군으로 사이버 리플리 증후군, 포모 증후군이 있다.사이버 리플리 증후군이라 불리는 증상은 사이버 상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이라고 착각하는 증후군이며 다른 사람의 사진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고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행세한다. 심한경우 절도, 사기, 살인 등 큰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포모 증후군(고립공포감)은 매진임박, 한정수량 등 제품의 공급량을 고의로 줄여서 소비자를 조급하게 만들어 심리적 압박을 이용해 물건을 사게 하는 마케팅사용법에서 파생되었는데 자신만 세상의 흐름을 놓치고 있고 같은 동료나 친구들 사이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사회에서 자신이 제외될까봐 두려워하는 증상을 뜻한다. SNS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의존하며 불안감이 매우 큰 증상을 말하며 이러한 심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심지어 SNS상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사기행위도 행해지고 있다.팔이피플이란 신조어는 ‘팔이’와 ‘피플(people)’의 합성어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influencer : SNS에서 수만 명에서 수십만명에 달하는 많은 구독자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가 SNS를 통해 제품을 홍보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일컫는다. 주문을 받으면 제조업체가 재고를 관리하고 배송을 해주고 제품의 가격은 비밀 댓글로 문의해야하며 카드결제는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문할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되어 있고,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날짜는 주문일로부터 10일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전자상거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 17조 제 1항에 따르면 단순 변심이어도 제품을 받은 7일 이내 환불과 교환 모두가 가능하다 하지만 몇몇 팔이피플은 맞춤제작, 공구 특성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교환과 환불이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심지어 제품이 불량인 경우에도 하루나 이틀 안에 연락해야만 교환, 환불이 가능하다 또한 식품, 화장품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품질관리나 성분 검사가 안 된 제품도 많고 허위, 과대광고도 문제가 심각하다.정보화 사회, 4차 산업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SNS 다이어트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파일전송이나 사진전송을 쉽게 하다가 문자만 사용함으로 불편은 있지만 이메일을 적극 사용하고 간단한 사진은 문자로도 전송할 수 있어 크게 불편함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무조건 SNS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SNS 사용에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를 스스로 확인해보고 장단점을 고민해보면 해답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스마트폰 설정에서 디지털웰빙, 방해금지모드, 앱시간 제한 등의 기능을 사용하면서 오늘부터 서서히 SNS 다이어트를 통해 더 많은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보면 어떨까?

2021-03-14

위드 코로나 시대의 도시

윤대식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코로나 사태가 벌써 1년을 넘기면서 시민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고, 도시의 모습 역시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시민들의 이동을 위한 교통수요는 크게 감소했으며, 특히 대중교통수요가 크게 줄면서 도시철도와 버스는 깊은 적자운영의 늪에 빠졌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와 배달주문의 활성화로 물류와 택배는 증가하고, 언택트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재택근무의 증가로 말미암아 주택이 주거기능뿐만 아니라 사무공간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들은 재택근무의 영향으로 대도시 ‘엑소더스’와 함께 임대료가 싸고 주거환경이 좋은 교외지역으로의 주거이전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이 모든 것들이 위드(with)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도시 모습들이기는 하지만, 코로나 사태와 관계없이 이미 오래전에 많은 미래학자가 전망했던 도시의 모습들이기도 하다. 최근 수십년 사이에 가장 획기적인 기술혁신과 실용화가 이뤄진 분야가 정보통신기술임에 반해, 획기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영역이 많은 분야가 바이오(의료)기술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을 상기한다면 요즈음 우리가 겪는 위드 코로나 시대 도시의 모습들은 현재의 정보통신기술과 바이오(의료)기술의 수준을 매우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들은 미래학자들이 전망했던 것보다 좀 더 빨리 우리에게 다가왔을 뿐이다.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큰 변화는 모임(집합)과 이동의 통제로 인한 전반적인 교통수요의 감소와 버스와 도시철도와 같은 대중교통의 이용 기피이다. 따라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 대량수송 위주의 교통정책에서 탈피해 시민들의 보건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교통정책으로 전환이 불가피하다. 결국, 효율성 위주의 교통정책에서 벗어난 다른 가치와 목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아울러 증가하는 물류와 택배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고, 비대면 택배 송수신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힘써야 한다.한편,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재택근무의 증가이다. 평소에는 재택근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졌던 공공기관과 기업들도 재택근무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볼 기회를 이번에 가지게 된 것이다.코로나 사태 이전에 많은 직장인에게 주택은 단지 퇴근 후 잠시 쉬고 잠만 자는 공간에 불과했으나, 재택근무를 하면서 주택이 사무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재택근무로 인해 통근 대신 통신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고, 인간관계의 중심도 직장에서 주거지역과 온라인 커뮤니티로 변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전자상거래의 증가로 주거공간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상업시설의 공간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주택은 주거공간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워크스테이션(work station)으로서의 기능도 가지게 되면서 주거입지 패턴 및 주택의 실내공간과 주거단지의 구성에 대해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아울러 도시의 주요 기능도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판매의 장소에서 벗어나, 문화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교류의 장소로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거주공간은 분산된 집중의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처럼 예견되는 전망을 바탕으로 도시공간의 재구조화(restructuring)가 필요하다.도시는 유기체(有機體)이다.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진화할 수도 있고 사멸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도시의 흥망성쇠는 사회적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좌우됐고, 도시계획 사조(思潮)와 제도도 사회적 재난을 겪으면서 변화했다.서구(西歐)사회에서 근대적 의미의 도시계획에 대한 입법은 대부분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대량 이주해 들어오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비위생적이고 불량한 주거환경 개선에 초점을 뒀다. 도시 저소득 노동자들의 건강과 위생 상태에 대한 관심은 사실상 19세기 초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영국의 ‘공중위생법’(Public Health Act) 등의 보건 및 위생 관련 입법조치들은 상하수도, 도로포장 등에 대한 규정을 포함함으로써 근대적 도시계획 입법의 선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도시계획의 집행수단인 용도지역제(zoning)도 사실은 주민들의 위생과 보건에 관심을 두고 만들어진 제도이다. 16세기 스페인의 필립(Philip) 왕이 신세계(개척지)에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 때 길은 바람에 휩쓸리지 않는 방향으로 내도록 하고, 도살장은 주민들에게 악취를 풍기지 않도록 도시의 외곽지역에 입지시키도록 명령한 것이 용도지역제의 초기 시도이다.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도시는 새로운 진화를 모색하고 한다. 이제 전염병을 비롯한 사회적 재난에 강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도시는 유기체이고, 언제든지 사멸할 수도 있고 진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1-03-14

나뭇가지 자르기

윤영대수필가봄비가 내리고 나니 뒤뜰의 대나무 숲은 겨울의 한기를 씻어 곧고 푸른 줄기가 더욱 생기를 찾고 마당 앞 담장 곁에 있는 몇 그루 나무들도 가지에 물기를 머금은 듯하다. 벌써 꽃망울 부푼 나무들도 있고 몇 년간 미처 손쓰지 않은 탓인지 삐죽한 가지들이 제멋대로 자란 녀석도 있다. ‘가지를 칠 때가 되었지’ 하고 나무들을 둘러 보았다. 산야에 자라는 나무들은 그곳의 환경에 맞게 제멋대로 자라겠지만 정원의 나무는 알뜰히 가꾸어 주어야만 좋은 모습을 갖는다.전정(剪定) 작업은 불필요하거나 오래된 가지를 자르고 다듬는 것을 말하는 데, 나무의 특성을 살려 외형을 다듬으며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할 수 있게 속 가지를 솎아주고 또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 잔가지를 잘라주어 바람직한 성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좁은 정원을 10여 년째 돌보다 보니 몇 가지 기본적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전지(剪枝)하는 순서로는 키우고 싶은 수형에 맞게, 큰 가지나 굵은 가지부터 자르는데 위에서 아래로, 또 밖에서 안으로 가지들을 정리하면 된단다. 그래도 가지를 자르다 보면 멈칫멈칫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자를 때의 세부적인 규칙도 있다. 서로 엇갈리거나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자라는 가지, 아래로 축 처지는 가지와 자기 혼자 쭉 올라가는 가지를 균형 있게 자르고, 물론 부러졌거나 죽거나 약한 가지는 모두 자른다.보리수나무는 여름이면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많이 따먹었는데 작년 이맘때 앞 담장을 향하는 낮고 굵은 밑가지를 잘랐더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열매도 많이 달리지 않았고 도장지들만 쑥쑥 자라고 있다. 꽃말이 ‘부귀’라는 배롱나무도 매년 매끄러운 가지 끝에 화려한 분홍 꽃들을 피워 그냥 두었더니 이제 내 키를 훌쩍 넘어 자랐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사다리를 놓고 전지가위도 큰 것 작은 것 그리고 톱도 꺼내 들었다. 우선 눈에 먼저 띄는 웃자란 도장지를 솎아 자르고 내가 원하는 나무의 모양을 그리며 가지들을 잘라 나갔다.해마다 노란 모과를 한 소쿠리씩 던져주던 모과나무도 그새 자라서 앞집 지붕 보다 커버렸다. 어렵게 나무 사이를 기어올라 중앙의 굵은 가지를 싹둑 잘라서 키를 낮추었더니 한결 보기가 좋다. 석류나무도 얽히고설켜 서로 가지를 부딪히던 것을 많이 잘랐다. 가죽나무는 벌써 망울이 보이기에 올봄 새순을 따먹은 후에 가지치기할 작정이다.우리 일상의 삶도 ‘가지자르기’가 필요하다. 마구 벌여 놓은 일들, 복잡한 인간관계 등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경제력에 맞게 잘 자르고 가다듬어서 모양 좋고 꽃들이 잘 어울려 피고 열매도 풍성하도록 해야한다. 물론 요즘의 세태를 보면 정치계도 깔끔한 전지작업이 필요하다. 제멋대로 놓아둔 나무들은 가지들이 서로 엉켜 수형은 물론 병충해가 들끓어 나무둥치가 썩고 죽은 잎은 가지에 쌓여 햇빛이 들지 않아 그 열매조차도 맛을 잃기 때문이다.곧 4월, 뜰의 소나무를 전지할 시기이다. 새순을 따고 가지를 다듬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자태를 가질 수 있도록 잘 가꾸고 싶다.

2021-03-14

도박에 빠진 당신에게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인간의 구성요소를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남자와 여자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심리학자인 나에게 물어보면 생각, 감정 및 행동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세 가지가 자신에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향한다면 적응, 이 세 가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향한다면 부적응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겠다.인간은 태어나서 당연히 살기를 원하고 삶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20세기 정신과 문화에 영향을 미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인간은 살고자 하는 본능도 있지만 죽고자 하는 본능도 있다.”그래서 그런지 사람들 중에는 생각과 감정 및 행동이 부적응적인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나를 찾는 내담자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존본능을 향해 나아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죽음의 본능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생각과 감정의 부적응문제가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행동의 부적응문제도 상당하다. 그 문제가 바로 중독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대표적으로는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니코틴중독, 게임중독 등일 것이다.그중에서 도박중독은 도박장애라는 정식 진단명을 가지고 있다. 즉, 정신질환이라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극복하려고 할 때 스스로 안되면 외부의 전문가를 찾게 된다.나는 심리학자이므로 약물치료를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도박중독을 비롯한 중독문제를 가진 사람을 치료적으로 접근할 때, 그들의 감정과 습관을 주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을 도박중독환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의 감정이 도박을 일으키고, 그것이 습관화되어 조절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과 습관을 적응적으로 변화시켜주면 도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감정이 있어서 우리가 사랑과 우정을 느끼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이 감정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고 실패하며 불행해지기도 하는 것이다.내가 최근에 만난 도박중독이라는 낙인을 지닌 내담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가 도박을 주로 하는 경우를 분석해보면, 그는 ‘상실감’, 즉 불쾌한 감정이 든 어느 날 우연히 도박하게 되었다. 도박을 하는 순간 상실감을 잊어버리고 벗어나게 되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게 된 것이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니 그의 마음속에 그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자동화되었고, 어느 날 자신이 하는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단계에 오게 된 것이다. 그의 감정과 습관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면 도박문제도 쉽게 풀리게 되어 있다.‘도박은 절대로 끊지 못한다. 손가락을 잘라도 안된다’라는 말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면서 불행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도 있다.인간은 진화하고 심리치료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당신 앞에 넓은 문과 좁은 문 두 개가 있다. 어리석은 자가 선택하는 넓은 문에는 답이 없다. 당신이 부디 좁은 문을 선택하여 지혜로운 자가 되기 바란다.“도박은 정신병이 아닌 습관입니다.”

2021-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