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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영웅들의 스승이자 인간 삶을 관장하는 사수자리와 남두육성

태양이 하늘의 별자리 사이를 지나는 길을 황도(黃道·ecliptic)라 하고, 이 황도에 자리한 12개의 별자리를 황도12궁이라 한다고 앞서 이야기했다. 황도12궁 가운데 아홉 번째 별자리가 바로 사수자리(궁수자리)다. 여름날 초저녁이면 남쪽 지평선에 S자 모양으로 이어진 웅장한 곡선의 별들이 나타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전갈자리인데 그 옆에서 활을 겨눈 모습을 한 별자리가 사수자리다.사수자리는 머리와 가슴은 사람이지만 아래는 말의 모습을 한, 켄타우로스족 중 한 명인 케이론이다. 일반적으로 켄타우로스족은 성질이 거칠고 난폭했지만(헤라클레스 아내를 유혹하려다 죽은 네소스도 켄타우로스족이다), 케이론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제우스 아버지 크로노스가 아내 레아 몰래 말로 변해서 오케아노스 딸 필리를 유혹해 태어난 아들이다. 케이론은 정의를 중요한 가치로 여겼고, 성격도 온화하고 선량해서 주위로부터 존경받았다. 특히 음악과 무예, 사냥과 예언 등에 뛰어났던 그는 헤라클레스에게 무예와 음악을 가르치는 등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의 스승이기도 하다.케이론은 신의 아들인 만큼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불사의 몸이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실수로 물뱀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히드라 독은 그 어떤 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했다. 불사의 몸인 케이론은 죽을 수도 없어 영원히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제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사의 몸을 양보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케이론은 하늘에 올라가 활을 잡은 모습의 별자리가 되었다.다른 이야기도 있다. 그의 제자인 이아손이 헤라클레스 등 영웅들과 함께 콜키스로 황금 양모를 찾아 떠날 때였다. 이들을 안전하게 인도할 목적으로 스스로 하늘로 올라가 활을 잡은 채 별자리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케이론이 헤라클레스, 이아손, 아스클레피오스 등 뭇 영웅의 스승이지만 별다른 신화는 전해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웅들의 지혜와 무예는 그에게서부터 나온 것이니 그 역할은 중요하다 하겠다.재미있는 것은 이 사수자리에 한국과 중국에서 매우 신성시 하는 별자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수자리 가운데에 작은 북두칠성처럼 생긴 여섯 개의 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를 두수(斗宿)라고 하는데 이는 하늘사당이라는 뜻이다. 이 별들을 북두칠성을 닮았다고 해서 ‘남두육성’이라 한다. 사람들은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별로 여긴 것에 반해, 이 여섯 개의 별을 삶과 장수를 관장하는 별로 여겼다.우연하게도 프로메테우스에게 생명을 양보한 케이론과 삶을 관장하는 남두육성이 같은 별자리에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별을 두고 백사 이항복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의 충절에 비유했으며, 김시습, 정지상 시에도 등장한다. 고소설 ‘임호은전(林虎隱傳)’에서는 난세를 헤쳐 가는 영웅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렇게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삶과 영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별자리라고 할 수 있다.덧붙이면,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을 받는다. 이때 헤라클레스 도움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케이론에 의해 영생을 부여받는 극적인 드라마틱한 주인공이 되었다. 인간 문화에 공헌했던 그에게 신화를 창조한 인간에 의해 보상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0-16

임신 중 운동, 약인가 독인가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일반적으로 규칙적인 운동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산모의 경우 운동이 본인과 태아에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산전에 하던 규칙적인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활동도 자제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임신 중 적합한 운동과 신체 활동은 더 나은 신체 감각을 제공하고 자신감을 높이며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더 잘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또한 산모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여 감염에 대응하고, 근육이 강화되어 보다 곧은 자세로 이어지고 임신 중에 흔히 발생하는 요통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다. 특히나 규칙적인 운동과 신체활동은 더 많은 산소가 폐와 혈관으로 들어가고 태반을 통해 아이에게도 전달된다. 임신 중에는 이전에 했던 거의 모든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임산부에게 부적절한 자세나 동작과 부상 위험이 높은 운동 종목과 방법은 피해야한다.임신 첫 3개월 동안은 메스꺼움, 피로, 순환기 문제와 같은 증상이 두드러지며 유산의 위험이 가장 높다. 그러므로 가벼운 걷기나 요가와 필라테스와 같은 편안한 운동이 권장된다. 일반적으로 익스트림 스포츠와 투기종목을 제외한 모든 운동은 첫 12주 동안 허용되는데, 중강도 이상의 운동은 피해야 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연구에서는 신체 활동이 활발한 여성이 조산할 위험이 더 낮다고 한다.임산부에게 특히 적합한 운동은 수영이다. 수중체조와 수중걷기도 적극 권장된다. 물의 부력은 모든 움직임을 더 쉽게 만들고 육체적인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수중 운동은 임산부에게 무중력 상태로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등과 관절 치료에 도움이 되고, 시원한 물에서의 움직임은 림프 배수와 같은 역할을 하여 다리에 수분이 정체되는 것을 방지한다. 일반적으로 물의 온도는 18℃에서 25℃ 사이가 적당하다.수영의 여러 가지 영법 중 자유형과 배영은 큰 무리가 없다. 다만 평영은 머리를 높이 들어 올릴 때 목과 어깨 부위에 긴장이 생길 수 있으므로 영법을 할 때마다 머리를 물 아래로 쭉 뻗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잠수는 숨을 참는 것이 아이의 산소 공급을 방해하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적합하지 않다. 특히 압축공기 실린더를 사용하는 다이빙은 태아에게 기형이나 폐색전증의 위험이 있으므로 피해야한다.임산부의 경우 유산소성 운동은 중강도 안의 범위에서 수행하도록 권장된다. 빠르게 걷기나 가볍게 뛰기는 일주일에 세 번 20분에서 최대 하루 45분까지 권장된다. 일반적으로 29세 이하의 임산부는 분당 135~150회, 30~39세는 분당 130~145회, 40세 이상은 분당 125~140회를 제안한다. 심박수는 임신 중 운동의 부하나 스트레스를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다. 따라서 항상 심박수 모니터를 착용하거나 때때로 휴식을 취하고 심박수를 직접 측정하는 것이 추천된다.그러나 임산부는 일반인과 다르게 운동 강도가 높아질수록 회복이 느리며 힘들게 인식할 수 있다. 운동 시 배뭉침이나 요통, 부종과 같은 증상을 포함하여 개인에 따라 생리적인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 주의 깊게 관찰되어야 한다. 임산부가 운동을 할 수 있는 빈도는 개인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따라 다르다. 최근 독일체육대학교(German Sport University Cologne)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주당 최대 3회까지 운동이 권장된다.출산 후 6주에서 8주의 산욕기에는 많은 생리적, 형태적 변화를 거치는데, 이 시기에도 운동이 권장된다. 산모의 느낌에 따라 출산 직후나 며칠이 지난 이후부터 운동이 가능하며, 의학적 문제가 없는 산모일 경우 간단한 운동부터 시작하여 점차 강도를 높여 주당 150분의 중등도 운동이 제안되기도 한다. 출산 후 회복기 운동은 복부 근육 강화와 에너지 소비 향상, 산후우울증 예방 및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심혈관 건강 증진과 체중 감소에도 효과가 있으며 수면의 질도 높일 수 있다.이같이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도 운동의 효과와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활발한 임상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비체중 부하 운동인 고정식 자전거와 수영을 포함하여 임산부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걷기 운동과 함께 근력 운동의 긍정적 효과도 밝혀지면서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이 제안되고 있다.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일생에서 경험하는 가장 큰일 중 하나다. 대체로 출산 후에는 임신 전에 비하여 체력이 일시적으로 저하하고, 임신 전의 상태로 돌아오는데 상당 시간이 걸린다. 또 증가한 체중은 출산 후에도 임신 전과 같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평소 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은 임신 기간 중에도 꽤 높은 체력 수준을 유지하며 출산 후에도 체중 감소가 빠르다.운동은 두 개의 날이 있는 검과 같아서 잘못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임산부의 건강상태, 체력수준, 운동습관, 생활환경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자신에 맞는 운동법과 운동량을 찾아서 하면 임신 중 운동은 약이 된다.

2022-10-16

‘에너지 자립’ 농지를 활용하면 된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문재인 정권은 임기를 8개월여 앞둔 2021년 9월 30일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발표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2018년 기준)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까지 늘린다는 목표였다. 산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AMCHAM’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오히려 35% 수준까지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한다. 그 후 윤석열 정부가 지난 8월 3일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발표하면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목표치를 30%에서 21.5%로 낮추자 이번에도 산업계에서 난리가 났다. 목표치가 너무 낮아 산업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이유에서다.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기업들의 무역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고 하겠다.지난 2020년 소니를 비롯한 상당수 일본 기업이 일본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려주지 않는다면 일본을 떠나겠다고 경고한 적도 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20%대에서 38.6%로 늘렸다. 윤석열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국제흐름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삼성전자, SK텔레콤 등이 참여하고 있는 ‘기업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가 기업 60여 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30년까지 40%는 넘어야 해외 수준만큼의 재생에너지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정부 목표치 21.5%의 두 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대기업 10곳 중 3곳이 ‘협력사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는다’고 했다. 필요한 만큼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는 상황에 부닥친 셈이다.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립에 관한 법규가 따로 없어 국토부의 건축 시행령과 기초자치단체별 조례에 의거해 발전소 설립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군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립 규정이 다르다. 특히 태양광 발전소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중금속 오염과 전자파 피해가 많다는 오해)이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태양광 발전소를 논밭과 같은 농지에 설치하는 것도 힘들다. 농지법에 따라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닐하우스보다 오염이 덜하고 설치가 쉬운데도 불구하고 태양광 발전소를 농지에 설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농민들이 농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립할 경우에는 다양한 장점이 있다. 첫째, 소득에 있어서 쌀농사를 지으면 200평 기준 조수익이 100만 원 정도이지만, 태양광을 설치하면 조수익이 2천만원 정도로 20배 정도 된다. 둘째, 농사를 지으면 비료, 농약살포로 인해 환경파괴와 토양오염이 심각해진다. 그러나 태양광의 발전 원료인 햇볕은 무공해고 공짜다. 가끔씩 마른 수건으로 청소만 해주면 되고, 25년 쓴 자재는 100% 재활용되어 환경공해가 거의 없다. 셋째, 태양광 발전소 설립을 지주들이 직접 땅을 내놓는 ‘주민 주도형’으로 해서 마을 단위의 대규모로 할 경우 시공 자금 유치나 시공사 유치가 쉽고, 민원의 소지도 없어진다. ‘주민 주도형’으로 진행하면 행정기관에서 적극 지원도 유도할 수 있다. 넷째, 현재 농촌에는 고령화로 인해 농지는 방치되고 마을도 소멸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마을당 3만 KW급 태양광 발전소 1기를 설립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100개 정도 생겨 농촌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바꿀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것만으로도 농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립해야 하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신재생에너지 강국인 독일보다 한국이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한 여건이 훨씬 더 낫다. 독일은 우리보다 한참 북쪽인 북위 50° 이상에 대부분 국토가 있고 일조량도 1년 1천56시간(일 2.89시간)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토가 대부분 38° 밑에 있고 일조량도 1천459시간(1일 3.99시간)으로 독일보다 38% 더 많다.독일은 오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65%, 2040년에는 80% 달성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늦게 출발했으니만큼 2030년에는 40%, 2040년 60%, 2050년 80%를 꼭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국토의 4% 내외, 전국 농지의 25~30%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가능한 목표다. 한국도 신재생에너지로 충분히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것이다.지금은 구한말의 개항 못지않게 에너지 안보가 중대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국토의 4% 정도, 농지의 25~30% 정도만 태양광 발전소로 활용하면 충분히 에너지 안보,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농촌에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일자리가 대거 생겨나 기초자치단체 소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970년대부터 50여 년간에 걸쳐 일궈놓은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을 신재생에너지 장벽에 부딪혀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을 윤석열 정부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탄소중립 달성을 통해 21세기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2022-10-16

길에서 길로 길을 떠돌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길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그 길이 새로운 길이든, 이미 익숙한 길이든 길은 나그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2019년 한 해 동안 광주 전남대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나는 광주와 대구, 청도와 광주를 뻔질나게 오고 갔다. 하지만 길을 나설 때마다 가슴을 채우는 설렘과 기대는 매번 다른 색깔과 향기로 다가온다. 타고난 역마살 덕택일지도 모를 일이다.신천대로를 지나 남대구 톨게이트를 거쳐 갈림길에 이른다. 예전의 구마고속도로와 지금의 달빛 고속도로가 갈려 나가는 길이다. 잠시 후 고령과 합천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난다. 500년 넘도록 번성했던 대가야의 본거지 고령. 한국의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의 합천. 길은 다시 이어진다.내가 가본 곳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산세와 지세, 수세(水勢)를 자랑하는 거창이 지척이다. 북으로 남덕유산과 수도산, 동으로 두리봉과 비계산, 서로는 기백산과 금원산처럼 1천m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황강과 남강, 위천이 들을 가로지른다. 크고 작은 분지에서 풍겨 나오는 여유로움이 서슬 퍼런 산들의 기백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거창을 지나 만나는 함양은 지리산 초입이다. 함양의 지명은 진나라 수도 함양에서 따왔기로 다소 우울하다. 함양 안의면에 있는 물레방아를 떠올리며 위안(慰安) 삼는다. 1780년 동지사의 일원으로 열하(熱河)를 다녀온 연암 선생이 청나라에서 본 물레방아를 처음 조선에 세운 곳이 함양 안의 고을이었다. 그것이 1792년이라 하니 못내 원망스러운 세월이다.함양과 지호지간(指呼之間)에 있는 도시가 전북 남원이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얽힌 광한루가 널찍하게 자리한 예향이자 묵향 남원.언젠가 경북대 학생들을 인솔하여 졸업여행 마지막 기착지로 삼았던 광한루의 추억이 엊그제처럼 다가온다. 88고속도로로 서대구와 남원을 2시간 반에 주파했던 그 길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너희가 언제 다시 남원에 오겠느냐. 같이 가보자!’ 하고 다독였던 36살 청춘의 나!남원을 뒤로하고 한참을 달려야 나타나는 순창. ‘남부군’의 지은이 이태가 1950년 9월 30일 얼떨결에 입산한 곳이 순창 엽운산(여분산)이다. 17개월 동안 남부군 빨치산으로 있다가 1952년 3월 지리산에서 군경에 체포되는 이태. 그가 남긴 시대의 기록 ‘남부군’을 소설가 이병주가 장편소설 ‘지리산’에서 표절한다. 차마 해서는 안 되는 글 도둑질을 감행한 ‘조선일보’의 작가 이병주!이제 광주도 지척이다. 대나무와 소쇄원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담양이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 옆에 자리한 경산이나 청도처럼 담양은 광주의 배후도시 같기도 하지만,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와 예술 그리고 먹을거리가 풍성한 고장이다.그리하여 길손은 마침내 광주에 이른다. 이런 길을 떠돌면서 우리의 풍요로운 산하와 역사와 이야기를 되새긴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 달빛(광대) 고속도로 여행을 독자 제현께 권해드린다.

2022-10-16

코로나19 1000일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15일은 코로나19가 국내서 처음 발생한 지 1천일 되는 날이다. 약 2년 9개월이란 시간의 의미를 떠나 코로나19가 1천일 동안 우리사회에 미친 파장은 실로 천지개벽할 만큼 컸다.2019년 11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 보고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국민의 절반이 이 질병에 감염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직간접적인 이유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3만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1천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코로나 충격파가 우리사회를 억누르고 있다. 아직 하루 2만명 내외의 확진자가 발생한다. 9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해제했지만 실내서는 여전히 마스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전문가들은 이번 겨울 7번째 대유행도 예상한다. 특히 증상이 비슷한 독감과 더불어 함께 유행하는 트윈데믹을 걱정한다. 전문가에 따라서는 내년 봄 실내마스크도 벗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내놓으나 변이 바이러스 등장 등 예측불허의 변수는 여전하다. 어찌보면 질병과 싸워야 하는 인류의 운명 같아 보이기도 한다.1천일 동안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한 곳은 수도권이다. 대구신천지교회 신자를 중심으로 크게 번지면서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대구는 누적확진자 수에서 전국 7번째 줄에 섰다.예측대로 기저질환 소유 등 나이가 많은 고령층의 사망률이 높았다. 80세 이상이 59%, 60세 이상으로 확대하니 94%에 이르렀다.코로나19가 비대면 문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면서 뉴노멀의 시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 역사에 좋은 기록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1천일이 지났지만 코로나19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16

SMR産團, 시장경쟁력 갖춘 경주가 최적지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소형모듈원자로(SMR) 국가산업단지 경주 유치를 위해 속도전을 펴고 있다. 이 도지사는 지난주(13일) 경주시청에서 산·학·연 관계기관장들과 만나 SMR 국가산단 경주유치에 서로 협력한다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원자력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SMR 연구개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설계 기술을 보유한 한국전력기술, 원자력 전문인력 양성시스템을 갖춘 포스텍(포항공대)이 참여했다. 각 기관은 원전산업 육성과 SMR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기업체 유치, 원전 전문인력 양성에 긴밀히 협력해 경주 SMR 국가산단 유치에 기여하기로 약속했다.SMR은 300㎿이하의 소형원자로를 모듈형식으로 결합한 원자로다. 윤석열 정부는 원전 최강국 건설을 국정과제로 채택하면서 SMR 산업을 적극 육성하기로 해 이 산업의 전망은 밝다. 국가산단 유치 여부는 올 연말쯤 결론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SMR 독자모델 개발을 위한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은 이미 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으며, 원자력연구원과 한수원이 내년부터 기술 개발에 들어간다.최근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원전 역할이 재조명되면서 원전선진국을 중심으로 안전성이 대폭 강화된 SM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이 현재 독자적 모델을 개발 중이다. 기존 대형원전이 주로 기저부하(일년 내내, 하루 24시간 동안 유지돼야 해 출력 조절이 불가능) 수요에 활용되어 온 반면, SMR은 탄력적인 출력조절을 할 수 있어 수소 생산과 같은 비전력분야에도 응용이 가능하다.경북도내에는 이미 경주를 중심으로 원전관련 산·학·연 기관들이 집적돼 있기 때문에 SMR 국가산단이 조성될 경우 기술개발과 건설, 운영, 해체에 이르기까지 원전 전주기를 갖추게 된다. 정부는 원전 선진국과의 시장경쟁력을 가진 한국형 SMR 개발을 위해 기술개발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경주에 원전산업 관련 국가산단을 조성하는 것이 타당하다.

2022-10-16

경북대병원 의료質 저하평가, 근본대책 있어야

지난주 대구시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역거점 국립대병원인 경북대병원의 의료질 저하를 우려하는 지적이 나왔다.서병수 의원(국민의힘)은 “환자 경험 평가조사에서 경북대병원은 전국 45개 종합병원 중 43위로 최하위에 머물고 있으며 2017년, 2019년, 2021년 3번을 평가했으나 점점 순위가 내려가는 게 문제”라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용림 경북대병원장은 “참담한 심정”이라며 “대책을 세우겠다”고 답했다.경북대병원의 경우 현재 운영되는 23개 진료과 중 8개 과만 전공의 정원을 채웠고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과가 4개나 되는 등 의사 수의 절대적 부족으로 환자 진료에 애로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 의원은 “이같은 전공의 부족이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환자 경험 평가조사는 입원환자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서 상당한 객관성을 가지는 결과로 봐야 한다.특히 경북대병원은 지역거점의 국립대병원으로서 지역의료기관의 중추적 기능을 하며 지역민의 의료 신뢰도 높다는 점에서 전공의 부족 문제를 그냥 방치할 수 없다. 경북대병원 측은 “전공의 부족을 대신해 전문의를 대신 고용하는 방법으로 인력난을 일부 해소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지방 소재 종합병원의 전공의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전공의 부족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지방환자가 수도권으로 원정진료 가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조명희 의원(극민의힘)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을 찾은 지방환자는 모두 93만여명에 이르고 그들이 지급한 진료비만 2조7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방환자가 수도권으로 쏠리는 것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의료격차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다. 국가균형발전은 의료분야도 예외일 수는 없다.국민 누구나 어디 가든 동등한 수준의 의료진료를 받아야 한다. 국립종합병원인 경북대병원의 전공의 부족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2022-10-16

살아있는 우스개

강길수 수필가 내 차례가 되었다.아주머니는 비닐봉지에 땅콩 한 됫박을 부어 넣었다. 앞서 샀던 여자분처럼 내게도 한 움큼 더 주기 위해 좌판의 땅콩을 집는 순간,“며칠 전 집사람이 사 왔었는데 무게가 모자라던데요.”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두말 안 하고 두 움큼을 더 주었다. 이에 먼저 샀던 여자분이,“왜 이분에겐 더 줘요?” 하고 불평했다. 단박에 아주머니는, ‘살아있는 우스개’를 한 방 날리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도, 여자분도 폭소가 터져 나왔다. 기분이 뛸 듯이 상쾌해졌다. 우스개의 요술에 빠졌나 보다.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땅콩 봉지가 보무도 당당하게 갈바람에 나붓거렸다.우스개 한 마다가 이렇게 사람 기분을 좋게 하다니 신기했다. 서구인들이 유머를 기리며 사는 연유가 이해됐다. 일상에서 어떤 일로 좋아지는 기분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론적 기쁨 혹은, 심연의 환희라고나 해야 할 즐거움이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하늘을 날듯 기분 좋은 일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있어도, 사회적 분위기로 오늘 그 순간처럼 활짝 웃어보지 못했다.우리 사회는 ‘살아있는 우스개’를 잃어가는 게 아닐까. 대통령의 사적 우스개를 일부러 왜곡, 침소봉대 보도하여 국제적 물의를 일으켰던 언론과 같은 심보를 내가 가졌다면, 아주머니의 우스개를 어떻게 받아들여 처신했을까.“당신 꽃뱀이야? 언제 봤다고 날 좋다는 거야? 별 미친 여자 다 보겠네!” 하며 땅콩 봉지를 던지고, 난리 피우지 않았겠는가. 농담을 농담으로 듣지 않고, 우스개를 우스개로 주고받지 않는 자화상이 우리 사회라면, 중병이 든 게 분명하다. 나와 뜻이 다른 사람도, 이웃으로 함께 살아야 할 국가사회공동체의 한사람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이웃에게 ‘적폐란 올가미’를 씌워, 억지 단죄나 갈라치기를 일삼는 망국 정치를 경험했다.도대체 정치적 신념이 무엇이고, 정당이 뭐며, 좌파와 우파는 또 무엇들이란 말인가. 그것들이 함께 살고, 살아내야 할 가족과 이웃, 나라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정치 이데올로기 전에 아니, 모든 인위적 가치에 앞서 천부적이자 본원적인 양심이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지 않은가. 창에 때가 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창엔 지독한 때가 낀 게 분명하다. 나도, 너도, 그도 마음의 창에 덕지덕지 때가 붙어 있음이다.국본(國本)을 무너뜨릴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송사에도, 우리 사회는 무심하다. 피부로 느끼는 현실과 동떨어진 여론조사 결과로 왜곡해도, 공정성을 따지자는 소리가 없다. 선관위와 여론조사기관이 신이란 말인가. 양심과 이성을 별주부전 토끼의 간처럼 꺼내 두고 사는 사회가 우리의 자화상일까. 하긴, 우스개를 삼류정치 도구로 만드는 희한한 사회이니까. 우스개를 우스개로 주고받는 참 사회가 그립다.입가에 웃음꽃이 다시 피어난다. 땅콩 덤 주기의 불평을 한마디로 훅 날려버린 아주머니의 ‘살아있는 우스개’가, 지금도 귓바퀴를 맴도니까.“내는 남자가 더 좋니더!…”

2022-10-16

사랑의 범위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나는 점차로 프랑수아즈의 상냥함이나 뉘우침 또 여러 미덕들이 부엌 뒤채의 비극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친척을 제외하고는,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의 불행에 대해서만 연민의 정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당한 불행을 신문에서 읽을 때면 눈물을 펑펑 흘리다가도, 그 불행의 대상이 다소나마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면 눈물이 금방 말라 버리는 것이었다. 부엌 하녀가 출산한 후 어느 날 밤, 심한 복통으로 고생하는 하녀의 신음 소리를 듣다 못한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 프랑수아즈를 깨웠지만, 프랑수아즈는 냉담하게 그 비명이 연극에 불과하며 주인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프랑수아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 ‘나’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이다. 프랑수아즈는 손자가 약한 감기라도 걸리면 한밤중에 길을 떠나 사십 리 길을 가서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돌아올 정도로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신문에 나오는 불행한 사람에게도 동정심이 넘쳐흐르지만, 그 중간에 있는 자기 주변의 딱한 사람에게는 한치의 아량도 없다. 프랑수아즈는 부엌 하녀가 아스파라거스 냄새를 맡으면 천식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알고, 매일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만들게 해서 집을 떠나게 한다.이런 프랑수아즈의 행동을 마음 놓고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이 마음 한구석에 이런 마음을 감춰두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족에 대한 애정은 문제가 없지만,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후원금을 보내면서도 내 근처에 있는 불행한 사람들의 고통은 외면하기 쉽다.불현듯 프랑수아즈가 떠오른 것은 며칠 전 SNS에서 본 지인의 고민을 읽고 나서다. 지인은 지역의 의정감시단 활동을 비롯하여 독거 노인 도배 사업과 같은 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청년 주택 사업을 하며 지역 공동체 운동을 하며 살아왔는데 어쩌다가 몇 년 전부터 지방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다.그런데 보증금 100만원을 3개월 후에 내겠다는 입주 희망자를 받아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며 SNS에 올린 그의 글을 본 것이 석 달 전이다. 자기를 찾아온 현금 100만원이 없는 40대 남자의 처지를 내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든 것이다. 많은 페친이 반대했지만 지인은 결국 방을 내주었는데, 이제 또 보증금을 3개월 후로 미루니, 그동안 월세는 잘 내서 수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황스럽다는 글을 며칠 전 올린 것이다.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딱한 처지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책임의 지속성과 광범위성 때문일 것이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눈물을 흘리거나 월 몇 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면 감당하기 어렵거나 철회하기 어려워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비슷한 고민이 있는 터라 자신도 보호하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불행에도 관심 갖는 현명한 공감법을 배우고 싶다.

2022-10-16

불감증 사회

홍석봉정치에디터 유례없는 난국이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북의 김정은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미사일을 쏘아댄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핵 도박을 하고 있다. 언제 우리 하늘에 불화살이 날아올지 모른다. 세계가 코로나19 충격파에 휘청대는 와중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갈등으로 인한 경제난에 직면해 있다. 기업과 가계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작금의 엄중한 안보 및 경제상황은 자칫 온 국민을 혼란 속에 빠뜨릴 수 있다. 국민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형편이다.이런 판국에 국내 정치는 정쟁의 수렁에 빠진 채 헤어나질 못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마저 비속어 발언으로 체면을 심하게 구겼다. 야당은 옳다구나 싶어 때리고 있다. 국격을 실추시켰단다.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페이스북 글 때문에 역사관을 의심받으며 화살받이가 됐다. 해명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달 대신 손가락 끝만 바라보는 저질 발목잡기에 다름 아니다. 본질을 왜곡한 흠집내기다.국정감사장은 호통과 고함만 난무한다. 서로 헐뜯기 바쁘다. 상대 실수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일이 본업이 됐다.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고, 법위에 군림한다. 서로 옳다고 우기고 자기편만 감싸고 돈다. 제 눈 속 들보에는 눈감고, 상대방의 티끌은 죽어라고 공격한다. 품격 있는 의연한 모습은 애당초 기대난이다. 국정을 질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본인들만 모른다. 국민들은 이를 혐오하면서도 정작 흐려진 물을 쏟으려 않는다.우리 사회에 위기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국민은 너무 둔감하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주전자 속의 개구리’가 된다.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하지만 수십년동안 계속된 남침 도발에 피로도가 누적된 때문인지 북의 위태위태한 도발에도 무감각하다.경제 한파가 닥쳐도 ‘험난한 IMF 파고도 넘었는데’라며 무심하다. 속이 곪는데도 모른다. 나라잃은 설움을 당하고 전쟁으로 국토가 만신창이가 된 아픈 기억조차 잊은 것 같다. 방심했다가는 언제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한다. 남북간 전쟁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다시 IMF에 구걸하는 치욕도 되풀이 할 수는 없다.정부가 미국에 핵 공유를 요청했다고 한다. 핵을 머리에 이고 불안 속에서 살아갈 수만은 없다. 국정의 최우선 순위는 국가 안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무한 책임이 있다. 핵 공유가 안 되면 자체 보유라도 해야 한다. 경제난 타개를 위해 선제적이고 총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오이 심은 곳에 오이가 나고 콩 심은 곳에 콩이 난다. 심은 대로 거둔다. 정치 싸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회 곳곳의 경고음을 외면하다가는 언제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대통령부터 서민까지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제 역할을 할 때만이 이 위기 국면을 탈 없이 넘길 수 있을 터이다. 죽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주전자 속의 개구리’신세는 되지 않아야 한다.

2022-10-13

대출금리 8% 시대, 가계부채 대책 마련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4, 5, 7, 8월에 이어 연속 5번째 인상이다. 연속 5번 금리를 인상한 것도 처음이지만 지난 7월 0.5% 포인트 인상 이후 석 달 만에 또다시 빅스텝을 밟는 초유의 수단도 동원됐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이번 인상으로 기준금리는 연2.5%에서 3%로 높아졌다. 2012년 이후 10년만이다.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고 원·달러 환율상승 등 외환위기가 증대되고 있어 불가피한 조치다. 이창용 한은총재도 “국민의 고통이 매우 클 것”이라 설명했다.이럼에도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3∼3.25%로 우리보다 높다. 미국이 다시한번 금리를 추가로 올릴 것이라 하니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끝이 없어 보인다.문제는 경기침체 속에 힘겹게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서민층의 가계부채 부담이다. 지난 6월 기준 국내 가계부채는 모두 1천869억원이다. 부채 보유 가구당 평균 1억3천661만원씩 빚을 진 셈이다. 대구와 경북지역은 지난 수년간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빚을 내 집을 마련한 사람이 많다. 그동안 인상된 금리만으로도 상당 부담인데 이번에 추가로 금리가 인상되면 그들이 심각한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9월말 현재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7%대다. 한은의 빅스텝이 반영되면 8%대를 넘볼 거라 한다.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고 매매조차 안돼 새로 집을 마련한 서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이다. 한은 통계에 의하면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할 가구가 38만가구에 이른다고 하니 금리인상 후폭풍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환율 방어 등 경제손실을 줄이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가계부채에 대한 세심한 대책 마련은 별도로 마련돼야 한다. 자칫하면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가계대출뿐 아니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기업의 부담도 엄청 커지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정부의 정밀한 대책과 함께 가계와 경제 주체 모두가 심각한 위기의식으로 고금리시대에 대응하는 지혜가 있어야겠다.

2022-10-13

포스코의 ‘철강생태계 살리기’ 돋보인다

포스코가 그저께(12일) 포항제철소 침수로 인한 복구기간에 피해가 우려되는 공급망(공급사·협력사·운송사)을 지원할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현재 태풍 힌남노로 인해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는 포항제철소 공급망 업체들로선 가뭄에 단비를 맞은 기분이 들 것이다.포스코는 우선 공급사의 매출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법인 납품을 추진하고, 포스코인터내셔널을 통해 신규 판로 개척을 지원하기로 했다. 포항제철소의 스테인리스 제강·압연 설비가 가동을 멈추면서 납품을 하지 못한 스테인리스 스크랩(고철) 수거업체를 위해서도 이달 중 일부 발주물량을 입고시킨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는 이와함께 협력사 피해 복구에 필요한 자금을 장기·저리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며, 협력사의 인력·장비를 최대한 복구 작업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포항제철소 제품을 운반하는 운송사의 경영난 타개와 관련해서는, 이달부터 광양제철소 전환 생산으로 육상 운송 물량이 늘면서 포항제철소 출하량 감소분이 상쇄돼 평소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포스코는 현재 포항제철소 복구작업에 총력을 쏟고 있다. 1열연공장의 경우 당초 복구 완료 시점을 10월 중순으로 잡았지만, 예상보다 빨리 복구작업이 이뤄지면서 후공정 제품 생산에도 숨통이 트였다. 이에 따라 고객사들이 포항제철소에서 공급받던 열연·냉연·전기강판 제품을 정상 주문해 납품받을 수 있게 됐다. 포스코는 연말까지는 포항제철소가 정상가동될 것으로 보고 있다.포스코는 철강업계 생태계 강화를 위해 지난 6월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상생펀드를 조성해 왔었다. 이번에 협력사에 지원하는 자금 중에도 상생펀드 일부가 포함됐다. 포스코가 태풍으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은 와중에도 공급망 지원에 나선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현재 포항제철소 공급망에 포함된 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무후무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코가 벼랑 끝에 몰린 공급망 지원대책에 나선 것은 박수를 받을 일이다. 대기업과 공급망 업체들의 동반성장은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2022-10-13

아마겟돈 상황

우정구 논설위원 아마겟돈은 기독교에서 쓰는 종교용어다. 선과 악의 세력 승부가 결정되는 최후의 싸움터를 의미한다. 소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의 종말을 뜻하기도 하나 전쟁사태 등으로 인류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에 비유적으로 쓰이기도 한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크림대교 폭발 븡괴로 러시아의 반격이 격화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 전역에 80여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지금처럼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고 말하며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아마겟돈을 ‘인류의 최후 전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세계는 말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셈이다.이런 가운데 한반도에서도 전술핵 배치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우리도 우리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강구돼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실어가고 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공포의 균형’ 논리가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최근 강도를 높이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남한에 대한 핵 공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국민적 불안감도 여느 때보다 높다. 북한 핵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법이 “핵 보유가 유일하다”는 주장에 대해 국민들의 생각이 어떻게 모아질 지도 궁금하다.아마겟돈 위기를 논할 만큼 긴장감이 감도는 한반도 상황이라는 데 국민적 공감대와 경각심이 높아져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13

표현의 자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고등부 금상을 받은 ‘윤석열차’란 작품이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해당 작품을 시상한 것은 정치 편향적’이란 이유로 ‘엄중경고’를 하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이 일었다.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한 열차의 운전석에는 김건희 여사가 앉았고, 객실 창밖으로 법복을 입고 칼을 쳐든 검사들이 상체를 내밀고 있다. 기찻길 뒤로는 부서져가는 건물들이 보이고 열차 앞에는 노인, 아동, 군인, 여성들이 열차를 피해 도망치고 있다. 그림의 내용인즉,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들을 동원하여 국민들을 무차별 탄압하는데 그것을 김건희 여사가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우파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사실에 근거한 풍자가 아니라 좌파들의 사악한 모함의 프레임을 대변한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다른 작품보다 스토리, 연출, 창의성,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 심사의원들의 판정 이유라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다.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속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헌법 제22조 1항)와 문화적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갖는다.(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제4조)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헌법 제21조 4항)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헌법 제37조2항)표현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악용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형법 307조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형법 제311조에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도 있다.위 사건의 경우 해당 학생의 예술적 재능은 인정할지라도, 아직 미성년인 학생들이 기성사회의 왜곡되고 편향된 정치적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혐오나 증오의 정서를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악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 신장이란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임에는 틀림없지만, 국가나 사회가 온전하지 않을 때는 최소한의 자유마저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실상에 대한 인식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기타 자유(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는 그것을 강제할 권력을 필요로 하며, 그 권력이 바로 국가다. 국가는 법과 경찰이라는 모습으로 그 질서를 강제하고, 그 질서를 방해하는 것은 범죄라 칭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자유의 수호자인 국가에 복종하는 순종적인 시민만이 자유로운 인간이며, 거역하는 이는 무법자라는 역설이 탄생한다.”독일의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의 말이다.

2022-10-13

사라진 사람, 잊혀진 사람

윤영대 수필가 지난 태풍 힌남노 폭우 때 아파트 지하에서 실종된 9명을 구조했는데 생존 2명, 심정지 추정 7명이라는 보도를 보고 ‘실종(失踪)’이란 말을 되새겨본다. 실종은 첫째, 보호자 이탈, 납치, 가출 등 자의나 타의로 잠적한 경우로 살아있을 확률은 높지만 둘째, 재난에 의한 경우는 생사여부가 불분명하고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면 남겨진 가족들 마음에 상처가 크다.작년 실종자는 경찰서 신고 기준으로 하루 180명이나 된다고 하며, 지난 5년간 매년 4만여 명이 실종되어 아동 2만, 지적 자폐 정신장애자 8천, 치매가 1만2천이라 하는데 시민 제보와 경찰 당국의 추적 관리로 거의 다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미해제 인원은 3~15명 정도 남는다고 하니 놀랐던 마음이 풀린다. 어린이는 약취, 유인, 유기, 가출 등으로 미아 신고되거나 해외입양, 인신매매되는 일도 있고, 범죄 관련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에 이러한 악조건도 발생하고 있어서 각 지자체는 2013년 ‘실종아동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그 범위를 14세에서 18세 미만으로 확대했고, ‘모바일 안전 드림 앱’ 등으로 보완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어린이 실종 사건으로는 대구의 ‘개구리 소년들’이 옛 기억 속에 남아있다.한국전력 요금청구서 뒷면에는 매달 2명씩 실종아동의 사진과 함께 나이, 실종 일자와 장소, 키, 체중, 피부색, 심지어 흉터 등 신체 특징과 당시 입었던 옷, 신발 등도 알리고 있다. 보통 10세 미만의 아동들인데 0세 아이는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80년에 실종된 3세 아이는 지금 40세가 넘었을 텐데 어디 무엇을 하고 있을까? 17세 여학생은 성범죄에 연루된 건 아닐까? 다 예쁘고 착해 보이는데 잃어버린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64년 3세였던 아이는 지금 살아있다면 60세가 넘은 할머니뻘인데, 가족이 아직도 찾고 있는 모양이니 안타깝다. 전국적으로 수천 개가 넘는 아동 보호시설은 사회 취약 계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월 30만 원 보장비를 받고 있고 해외 입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들도 잘 관리하여 아동의 안정적 자립을 도와주고 사라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요즈음 휴대폰의 ‘안전안내 문자’에는 코로나 확진자 수와 함께 실종자를 찾는 알림도 뜬다. 주로 60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외모와 인적 사항을 알리고 있지만 궁금하여 들어가 보면 거의 1주일 이내에 실종경보 해제가 되고 있음이 다행이다.노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무연고 사망과 자살 등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가족해체 등으로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901만 명 중 독거노인은 176만 명이며, 이 중에서 고독사가 3천600 명으로 4년 전보다 47% 증가했다고 한다. 22년 8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경북을 비롯한 9개 시·도에서 시작하여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한 첫걸음을 떼고 있다.세계적인 나라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 외롭게 잊혀진 사람과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후원으로 밝은 사회를 이루었으면 한다.

2022-10-13

포스텍의 의과대학 설립 반드시 필요하다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국제회의(포스텍 시그니처 컨퍼런스)가 지난 11일부터 이틀간 포항 포스코 국제관에서 열렸다. 의사과학자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가는 대신 기초의학을 전공하며, 환자 진료보다 전염병 백신과 같은 신약개발과 임상시험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의사다. 이번 회의에는 2020년 노벨화학상 후보자였던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를 비롯해 미국 워싱턴의대 웨인 요코야마 박사, 스탠포드대 제난 바오 교수 등 국내외 의과학·의공학 분야 최고 석학들이 대거 참석했다. 행사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포스텍(포항공대)이 주관했다.포스텍은 내년(2023년)부터 의과학대학원을 신설해 신약과 치료기술 개발, 뇌과학 분야에서 활약하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포항시도 포스텍을 지원하기 위해 ‘포항의과대학 유치추진위’를 출범시켰으며, 이강덕 포항시장은 지난 연말 의사과학자들이 중심이 돼 신약개발과 임상시험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포항이 지역구인 김정재·김병욱 의원도 국회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을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당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조해진 교육위원장도 세미나에 참석해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책사업화하겠다고 약속했었다.경북도와 포항시가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에 총력을 쏟는 이유는 경북도내에 아직 고난도 중증질환에 대한 치료역량을 갖춘 상급종합병원이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2~3월 대구·경북에서 코로나 19가 대 유행했을 당시 이 지역 위중증 환자들은 입원할 병실을 구하지 못해 119구급차를 탄 채 전국을 헤매야 하는 고통을 당했다.사실 과학인재들이 몰려 있는 포스텍 같은 세계적 공과대학에 의과대학이 없다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불행한 일이다. 포항에는 3·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세포막 단백질연구소 등 기초연구 인프라가 어느 도시보다 잘 구축돼 있는 만큼, 정부는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2022-10-12

구미시, 공항경제 특례도시로 재도약 노려야

구미시가 전국 최초로 특례사무도시 지정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특례사무도시란 지역맞춤형 특례제도로서, 지역의 여건과 특성을 고려해 행안부 장관이 시군구에 대해서도 추가특례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구미시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에 따른 배후도시로서 지역산업 발전을 위해 6개 기능 12개 특례사무의 구미시 이양을 경북도에 요청한 것이다. 산업입지 개발계획이나 지역산업 진흥 및 도시계획에 대한 사무 등이 주로 해당된다.경북도는 구미시의 요청을 심의 판단해 의견을 보내고 구미시는 이를 행안부에 요청하게 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나 구미시가 대기업의 이탈로 실추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공단설립 관련 특례를 요구한 것은 보다 적극적인 지역산업 진작을 위해서 바람직하다.한때 전국 최대 내륙수출단지로 명성을 날렸던 구미시가 군위에 들어설 신공항 건설에 맞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겠다는 것이어서 균형발전을 위해 제정한 지방자치법 정신과도 일치한다.구미시는 포항시와 함께 경북 경제의 중심 도시다. 포항이 철강업으로 우리나라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면 구미는 전자산업 도시로서 수출의 선봉에 섰다.1969년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전자산업과 반도체산업이 집중 육성돼 한때 구미의 국내 수출비중은 전체의 10%대에 이르렀다. 전국에서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은 도시, 가장 젊은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진 도시였다.그러나 대기업의 해외이전과 수도권으로 경제가 집중돼 산업도시로서 명성이 크게 퇴색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구미시는 신공항 건설을 호재로 삼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 마침 SK실트론, LG이노텍, LG화학 등 대기업의 투자가 조금씩 시작되는 등 신공항 관련 분위기도 뜨고 있어 자치법에 따른 공항경제 특례도시 지정은 시기적으로 적합하다.인구소멸 위기를 맞는 지방도시가 생존을 위해 손을 내민다면 정부는 힘을 보태주어야 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구미시의 특례도시 지정을 응원한다.

2022-10-12

친족상도례

홍석봉정치에디터 친족 간에 발생한 재산 범죄의 처벌을 면해주는 형법의 ‘친족상도례’ 규정이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인 ‘박수홍씨’ 사건이 계기가 됐다. 박씨의 친형이 박수홍이 번 돈을 관리하면서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에 박씨 부친이 돈을 횡령한 장본인은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친족상도례’ 규정이 주목받고 있다. 횡령 주체가 부친이면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된다.형법상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등 사이의 절도·사기·횡령 등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다. 그 외 친족의 재산 범죄는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로 규정한다.이 규정은 1953년 형법 제정시 가까운 친족 사이에 발생하는 재산범죄에 대해 가족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친족 인식이 변하고 친족 간의 재산범죄가 늘면서 현실에 맞게 손질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법개정이 시도됐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 국회에도 개정 법안이 상정돼 있다. 법무부 장관도 국감에서 개정에 동의하기도 했다.법 개정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 이 제도가 가정 문제의 공권력 개입을 막는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가정문제에 대한 과도한 국가 개입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 같은 규정으로 대체하자는 제안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깨지는 걸 막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며 합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 많은 시대다. 소송할 정도면 가정은 이미 파탄난 상황이다. 현실에 맞는 개정이 필요하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12

가을에 거둘 게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멋진 시월이 약속이나 한 듯 불현듯 싸늘하다. 추수를 앞둔 들판과 함께 올해의 결실을 생각한다. 무엇을 거두었는가. 연초에 다짐하였던 생각을 얼마나 건져올렸는가. 허비한 지난 시간이 아까와 무엇인가 새롭게 쌓겠다던 우리는 이 한 해 무엇을 하였는가. 온 백성이 고심하며 바꿔낸 정치판은 국민들에게 어떤 세상이 돌아왔는가. 나라와 민족은 앞으로 가고 있는지, 보통 사람들 삶은 나아졌는지 돌아보는 생각이 한가득이다. 가을에 되짚어 보람보다 의문만 쏟아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까.우선 순위가 잘못 설정되지 않았을까. 하루하루의 일상이 힘이 든 판에 뉴스는 전혀 다른 걱정을 전하는 게 아닌지.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 높아서 어려워진 경제수치를 누구라도 적확하게 분석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위기를 자아내는 북쪽 소식은 평화를 기대하는 민심과 얼마나 먼 것인지, 통일은 고사하고 대화와 협상을 이제는 잊어야 하는지.안에서도 밖에서도 자랑스런 나라가 되어야 할 터에, 유엔 인권이사국 선임에 실패한 경우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나라는 무엇으로 존재이유를 증명해야 하는지, 정권은 국민의 표심에 무엇으로 답을 해야 하는지, 국민은 어느 장단에 호흡을 같이 할 것인지.진심이 안 보인다. 문제를 지적하면 진정을 담아 그 문제를 고심해야 한다. 이전에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는 말은 답이 아니다. 같은 문제가 켜켜이 반복되므로 이제는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닌가.국민에게 문제로 발견된 사안은 모든 국민에게 문제가 아닐까. 여와 야가 따로 없고 보수와 진보를 겨룰 일이 아니다. 문제를 바로 보아 함께 지혜를 쏟아부어 해결에 이르는 용기와 강단을 만나고 싶다. 본질과 상관없이 말로 때우려 하거나 거짓으로 들통나는 일이 거푸 발생하면 국민은 금방 알아채 버린다. 진심이 빠지면, 금세 보인다.함께 넘으려는 생각이 없다. 가파른 언덕은 함께 넘어야 한다. 외교와 국방은 특히 그렇다. 국익으로만 똘똘 뭉친 상대국들 앞에 우리 안의 전선이 흩어지면 이길 수가 없다. 바깥에서 적이 닥치면 보수와 진보 가운데 누가 살아남을까. 나뉘어 이길 방법은 처음부터 없다.하나로 모아 송곳처럼 뚫어야 한다. 다른 생각을 모두 쏟아 좋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비난과 반대만으로 해결책은 찾아지지 않는다. 슬기로운 대안을 함께 찾겠다는 태도부터 정돈해야 한다. 날마다 다른 소리만 외치고 있으면 남들과 적들은 얼마나 좋을까. 말싸움에 이겨봤자 나라의 기둥이 흔들리면 어찌할 터인가.가을이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소중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약속처럼 결실로 다가오는 계절 앞에 우리는 어떤 답을 내어놓을 것인지. 우선순위를 다시 보아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진심을 회복해야 하며, 어려운 언덕을 함께 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 가을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겨레가 되어야 한다.

2022-10-12

임오(壬午)

육십갑자 중 열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임오(壬午)다.천간(天干)은 임수(壬水)이요, 지지(地支)는 오화(午火)다. 천간 임수(壬水)는 바다 또는 큰 호수를 나타낸다. 오화(午火)는 말(馬)을 상징한다.임오일주는 착할 때는 한없이 베풀고, 마음이 여려서 남의 말에 흔들리는 편이다. 하지만 한 번 한다고 마음먹으면 고집을 부리고 죽어도 타협하지 않는다.거짓이 없으면서도 지혜로운 성품이다. 책임과 의무에 관한 한 비교적 명확하게 경계를 지을 줄 아는 인물이다.온순하고 겁 많고 예민한 말(馬)은 항상 무리를 지어 생활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항상 서서 생활을 하고, 아주 정숙하고 깨끗하다. 생활반경이 넓고 질주본능이 있다.소처럼 되새김질을 하지 않고, 소화기관이 직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맑은 풀만 먹어야지 아무 것이나 먹었다가는 소화 장애를 일으킨다. 생활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엄격하다. 그리고 항상 달릴 준비가 되어있는 동물이다.임오일주는 ‘태양 아래 푸른 바다’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그 바다에는 천기(天氣)가 농축되어 있으며, 태양의 기운을 받아 그 무엇인가를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하며, 감각이 뛰어나다. 부드럽고 온유하면서도 은근한 고집과 끈기가 있다. 한 번 정한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려고 노력한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포세이돈은 바다와 물, 땅, 말(馬)의 신이다. 그는 바다의 지배자이며, 바다를 제외한 강이나 호수 등의 모든 물이 그의 지배 하에 있었다. 포세이돈의 상징물은 삼지창이다. 상징하는 동물은 말, 돌고래, 황소, 물고기 등이다.미국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소설 ‘모비딕’, 일명 ‘백경’은 1851년 쓰여진 해양문학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이다.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에게 한 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선장은 마치 신에게 도전하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처럼 끝내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을 눈앞에 그리면서도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집요하게 백경을 추격한다.그는 태양을 질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물리치고, 마침내 인간성의 흔적조차 지워버리면서 자신의 운명을 신의 운명과 일치시키려는 듯 바다를 헤매고 다닌다. 결국에는 백경과 사흘 동안 사투를 벌린 끝에 에이허브 선장과 포경선 비쿼드호는 장열하게 전몰(戰歿)하고, 이슈마일만이 홀로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전해준다.멜빌이 죽은 지 30년 후에 재평가된 이 소설은 굉장히 큰 감동을 준다.흰고래에 목숨을 걸 정도로 집착한 선장은 죽게 되지만, 그래도 선장의 야망은 높이 살 만하다고 본다. 사람은 역시 한 가지 일을 하려면 거기에 몰두할 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비쿼드호의 선원들은 세상 누구보다 가장 큰 열정과 야망을 품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 해 본다.그는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작가로, 19세기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 뒤에 에스(s)가 붙어 세계 최대의 커피체인점인 스타벅스의 이름이 되었다.임오년(壬午年)인 1882년에 큰일이 일어났다. 조선의 실권을 잡은 민비와 민씨일가는 1881년에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다.이는 양반 자제들로 이뤄져 있었고, 그들의 사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구식군대들은 극심한 차별을 받게 된다.대량 해고사태를 겪기도 하고, 13개월이나 밀린 월급 중에서 겨우 한 달 치를 받았지만 그마저 모래와 썩은 쌀이 섞여 있었다.이에 분노한 구식군인들이 흥선대원군과 함께 민비와 그의 일가들을 제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는 데 이것이 바로 임오군란이다.이때 재빨리 궁녀로 변장한 민비는 궁궐을 탈출했고, 아쉽게도 그녀의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그렇게 그녀는 충주로 피신가게 된다. 공포에 떨며 숨죽이고 있던 민비를 낯선 무녀가 찾아왔다. 무녀는 중전께서 이곳에 있다고 신령님께 들었다고 말했다. 저와 만난 날로부터 50일 이내에 환궁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자신감을 얻은 민비는 청나라의 원조까지 요청하게 된다.물론 청나라는 마다할 리가 없었다. 청나라는 조선에 상륙해 흥선대원군을 납치하고, 구식군대를 진압한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무당의 말처럼 50일만에 궁궐로 복귀한다. 민비는 환궁할 때 그녀에게 ‘진실로 영험하다’는 의미의 진령군(眞靈君)이라는 군호를 내려주고, ‘언니’라 부르며 궁궐에서 함께 살았다. 매천 황현(1855∼1910)은 오하기문(梧下記聞)에 이 사실을 기록했다.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끝까지 그 무녀의 말을 듣고 정치하다가 결국에는 을미년(1895년)에 민비시해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망국의 길로 갔던 우리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이 시기에 이용익(1854∼1907)은 가난한 서민의 아들로 함경북도 명천에서 출생했고, 물장수를 하던 사람이다.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이 궁궐을 습격한 후 민영익의 집을 습격 했다. 이때 이용익이 민영익을 업고 담을 타고 도망갔는데, 어찌나 빠르게 이동했는지 민영익을 죽이려던 군사들이 놀라서 그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고 한다.이후 이용익의 도움으로 살아난 민영익은 그를 고종에서 천거했고, 장호원에 피신 한 고종의 정보통 역할을 했다.이때 그의 발은 말보다 빨랐다고 한다. 발이 빠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종과 민비의 눈에 띄었고 그 계기로 탁지부대신 자리에까지 올랐다. 구한말 관리 임용실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19세기 말까지 동양의 한 모퉁이에서 소중화(小中華)의 강박관념에 빠져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지내다가 외세의 물결에 휩쓸려 나라를 익사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간 그들은 바다 위에 넘실되는 파도만 보고, 깊은 심연을 보지 못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2022-10-12

스마일치즈김치

배문경 수필가 천년의 미소라고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를 본다. 천 년 전의 미소가 저랬을까. 넉넉하고 평화롭다. 일부분이 달아나고 없어도 미소는 온화한 할머니 같다.지난 7일은 세계 미소의 날이었다.‘세계 미소의 날’은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 사람들이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의와 친절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도록 하자는 뜻에서 제정되었다. 매년 10월 첫 번 째 금요일이다.재즈보컬가수 넷킹콜의 ‘Smile’을 카카오 톡으로 지인에게 아침인사로 보냈다. 몇 해 전 아카데미주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Joker)’ 예고편에 사용된 곡이다. 그러고 보니 이모티콘에 다양한 미소가 있다. 하나 혹은 두세 개를 인사말과 함께 보냈다. 우리 일상이 미소로 시작된다면 좋지 않을까싶은 마음에서였다.어느 순간 자고 일어나면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휴대폰 알람소리에 일어나 씻고 거울을 보고 다듬고 옷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그렇다. 그래서 사는 일이 지겹고 행복하지 않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매일 매일, 일상의 지겨움에 지칠 때 즈음해서 주말이 있고 명절이 있고 국공일이 있다. 미소 짓는 날이라고 하니 웃음이라도 한 번 날려본다. 실없다싶어도 세상은 나비효과라는 것도 있으니 하루가 즐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얼마 전, 리어카에 뻥튀기를 담아서 끌고 다니며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리어카의 전부를 팔아도 삼사만원이 될 듯 말 듯 했다. 간호사회에서 나오는 연말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나의 얼굴을 쳐다보던 할머니는 “나는 이렇게 살아도 자식들이 객지에서 먹고 살만하고 집에서 무료하게 있기 싫어서 리어카를 끌고 나온 사람이다. 날 도와주기 보다는 다른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고 얘기했다. 치아가 다 썩어 내려앉아 앞니가 몇 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서서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민망함을 느꼈다.가끔 주머니에 있는 몇 천원으로 뻥튀기를 사드리곤 했는데 그 후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실수가 아니었나 싶다. 리어카에 뻥튀기를 파는 그분이 나보다 마음부자였다. 미소부자였다. 뻥튀기를 살 때 그분의 행복도 함께 샀어야했는데 어설픈 눈으로 내가 더 미소가 많다고 착각했다. 뵐 때마다 웃으며 담소라도 나눴더라면, 하시는 일이 값진 일이라 여겼다면 발길이 이어졌을텐데 후회가 밀려온다.‘세계 미소의 날’을 제안한 인물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마일 아이콘을 고안한 미국의 디자이너 하비 볼(Harvey Ball)이다.그는 그가 1963년 고안한 스마일 아이콘의 본질적인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기념일을 만들어 진정한 미소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비 볼의 고향 우스터에서 매년 세계 미소의 날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기념행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간의 웃는 얼굴 풍선, 길바닥 그림, 아카펠라 콘서트, 서커스 공연, 파이 먹기 대회 등이 펼쳐진다.하지만 세계 미소의 날이 있는지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많으리라. 아직 코로나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하다보면 상대로 저절로 웃음을 띠게 된다. 리어카를 끌며 뻥튀기를 팔던 할머니도 리어카에 폐휴지를 담아 끌고 가시는 노인도 오늘 하루는 편안했으면 좋겠다. 노을 지는 하늘 보며 편안하게 허리를 펴며, 살아있어 행복하다고 주름진 얼굴에 웃음 가득했으면 좋겠다.그 날 이후 서툰 동정을 보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만날 때마다 미소를 짓지 못하고 깊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가난에 대한 무시는 혹여 없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할머니는 어쩌면 미소가 가난한 나를 동정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행동을 반성하며 모나리자의 은은한 미소나 염화미소를 떠올리며 연습했다. 간혹 사진을 찍을 때처럼 ‘스마일, 치즈, 김치’를 반복했다.덕택일까. 방송에서 세계 미소의 날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2022-10-12

오직 기술만이 살길이다

김규인 수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미국의 금리상승으로 세계 경제는 끝 모를 터널 속에서 헤맨다. 전쟁 와중에도 각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살아남아야 하기에 국가가 가진 역량을 총집결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나라는 나라대로 살아남기에 바쁘다.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가파른 속도로 금리를 올린다. 달러를 빌려 쓴 개발도상 국가나 달러에 의존하는 세계 경제는 심한 경제적 압박을 받는다. 돈이 없고 경제 규모가 적은 나라들은 물가 폭등으로 어려움이 늘어난다.환율이 높아져 수입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돈을 빌려 쓴 서민은 이자를 내느라 가난에 허덕인다. 이 시대의 절대 명제는 살아남는 것이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살아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의 세계는 경제도 전쟁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 우선주의만을 고집한다.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챙긴다. IRA에 따라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전기차를 미국에서 최종 조립해야 하고, 배터리의 핵심 광물과 배터리 부품에도 조건을 붙인다. 이 관련 규정을 충족해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 생산하여 미국에서 인기리에 판매하는 현대와 기아의 전기차는 우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칩4를 말하고 삼성전자 공장을 유치하더니 실제적인 혜택은 미국 국적의 기업에만 준다. 미국은 철저히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챙길 뿐 자유로운 무역 질서나 동맹을 위해 혜택을 주는 것은 없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시든 것이 미국이 한국과 대만으로 구매처를 바꾸었기 때문이다.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에도 불똥이 튀었다. IRA 조건을 충족하기 위하여 구매처와 원재료인 리튬과 니켈을 수급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동안 중국에서 50% 이상을 구매하던 리튬의 공급처를 바꾸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놓칠 수 없는 기업은 조건을 충족할 수밖에 없고, 충족해야만 한다.리튬은 금속으로 배터리에서는 양이온의 상태로 음이온으로 이동함으로써 전기를 발생하며 다른 금속에 비해 효율이 매우 높다. 리튬은 배터리 양극재로 성능이 우수한 필수 원재료다. 채굴이나 정제도 우수한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리튬 확보와 정제 후 배터리의 성능을 높이는 전쟁 중이다.포항공과대학과 울산과학기술원의 공동연구로 한 번 충전으로 600㎞를 달리는 배터리를 개발했다. 음극재 없이 음극 집전체만으로 충전과 방전이 가능하다. 대단한 연구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말해준다. 살아남아야만 하는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사는 방법은 우수한 한국인의 두뇌로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다.IRA 같은 무역장벽은 우수한 기술만이 뚫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살길은 원재료 구입선을 다변화하고 시장을 확대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을 개발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단한 대한민국 기업체에 박수를 보낸다.

2022-10-12

인플레이션의 시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올해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8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애초의 예상과 다르게 우크라이나의 선전이 이어지며, 러시아의 핵 사용에 대한 공포까지 감지되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 8개월 우리는 유례없는 인플레이션을 맞이해야만 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를 상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 연준은 올해 기준금리를 연속해서 3번이나 0.75%를 올렸다. 유럽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에너지 대란의 영향으로 마침내 10%를 넘겼고, 한국의 물가도 30년 만의 최고치를 달성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은행도 전례 없는 금리 인상을 했다. 전 세계가 역사적인 고물가, 고금리 시대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전쟁은 경제 위기를 가져온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전 세계가 펼친 ‘코로나19’와의 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겹치며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가 자국 중심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러시아의 광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자국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제한하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제품을 중국으로 판매하지 못하는 법안을 공표했다.글로벌 시대에 자국 중심주의가 회귀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의 일상에서 이런 변화는 자산 가격의 급락으로 표현된다. 불과 2년 전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가 살포한 현금으로 우리는 유동성 잔치를 즐겼다. 잔치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기도 했다. 이제는 다시 주식에서 예금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하락 뉴스가 매일 들려오며 개미 투자자들의 미래도 암흑 속에 쌓여있다.자국 중심주의로의 회귀는 경제 위기를 유동성으로 해소하려는 현대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생겨난 것이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과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펼친 미국 중심의 정책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다는 목적을 공유했다. 처음부터 ‘공동의 이익’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미국이 살포한 달러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발등에 떨어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위기가 닥치면 막대한 유동성으로 극복하려는 정책이 어떤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막대한 유동성이 곧 현금 살포를 의미하는 상황에서 달러 패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는 곧 다른 국가들의 더 큰 위기를 초래한다. 이런 점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UN이 미국의 금리 인상 자제를 촉구한 것은 상징적이다. 우리는, 그리고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차분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2-10-12

막말 정치인

우정구 논설위원 어떤 대상물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 한자(漢字) 글의 출발이다. 날 일(日)은 해의 모양을, 달 월(月)은 달의 모양이며 불 화(火)는 불이 활활타는 모양을 묘사한 글이다. 입 구(口)는 입의 모양을 본떴다. 혀 설(舌)은 입에서 혀가 튀어나온 모양을 표현한 글자다.품성의 품(品)자는 입 구(口)자를 세 개 모아 완성했다. 품위를 지키려면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어느 작가는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고 했다. 온기가 있는 따뜻한 말은 상대의 슬픔을 감싸주는 대신 차가운 말은 상대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는 뜻이다.말은 내 생각을 전하는 단순한 언어 전달의 수단을 넘어 그 사람이 가진 사상과 인격을 대표한다. 공자는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들을만한 말을 한다. 그러나 말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有德者 必有言 有言者 不必有言)라고 말했다.누군가 말은 생각의 집이라 했다. 사랑을 생각하면 사랑이 나오고 악마를 생각하면 악마가 튀어나오는 법이다. 생각이 망가지면 말도 망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을 경계한 금언은 수도 없이 많다. 말이 우리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은 말이 가지는 참다운 의미를 잘 표현한 금언이라 하겠다.국정감사를 벌이던 국회의원 입에서 막말이 터져 또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정치인 막말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나 걸핏하면 터져나오는 막말로 정치의 격이 엉망이 된다. 세련되고 품위있는 말로 관료나 상대 정치인을 압도하는 달변의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우정구(논설위원)

2022-10-11

여당은 당권경쟁 과열 안 되도록 자중해야

국민의힘 차기 당권을 두고 친윤(윤석열)·비윤그룹 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법원이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후 원내의 경우 안철수·김기현·조경태 의원이, 원외에선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김기현 의원은 친윤그룹, 유승민 전 의원과 조경태 의원은 비윤그룹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은 정기국회 일정 등을 감안해 내년 2월 전후 새 지도체제를 구성할 계획이다.차기 여당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어 향후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에게는 당내 입지강화를 위해 결코 놓칠 수 없는 자리다. 우려스러운 것은 당권 예비주자들이 벌써 상호비방성 발언을 쏟아내면서, 외부에 또다시 당 내분이 시작된 것으로 비친다는 점이다.나경원 전 의원은 그제(10일) 자신의 SNS에, 유승민 전 의원이 차기 당 대표 적합도에서 자신이 7주째 1위를 했다는 여론조사를 공유한 것과 관련해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 7주 연속 1등은 나”라는 글을 올리며, 유 전 의원 견제에 들어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주말부터 대구·경북 지역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 등을 공유하며 장외전에 나섰다. 안철수 의원도 유 전 의원과 관련, “출마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지난 경기지사 경선 때 ‘당원 50 대 국민 50’ 룰이었는데도 졌다”는 발언을 했다. 김기현 의원은 일찌감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메시지를 내면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앞으로 당권 주자 간 신경전은 ‘역선택 방지 조항’ 등을 둘러싸고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국민의힘은 그동안 새 정부를 지원해야 하는 여당임에도 내분에 휩싸여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현재 법적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정치적 내홍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젊은층의 지지를 받는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도 있다. 정진석 비대위는 당권경쟁을 둘러싼 당 내분이 격화되지 않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국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책임 여당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2022-10-11

본격 지방시대 여는 중앙지방협력회의 돼야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제2국무회의 격인 중앙지방협력회의가 지난 7일 울산에서 열렸다.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처음 만들어진 중앙지방협력회의는 대통령과 전국 17개 시도지사가 참석하는 지역정책 관련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지역균형발전과 지방자치 발전에 관한 문제들이 중점 논의되는 자리다. 이 날도 각 지역의 주요 현안들이 정부 측에 건의됐다. 특히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이자 중앙지방협력회의 부회장인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중앙지방협력회의를 국정 운영의 또다른 구심점으로 생각하고 지방의 문제를 풀어줄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중앙지방협력회의가 만들어진 것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 등 지역 문제를 국정 운영의 중심에 올려놓자는 취지다. 과거에는 대통령 주재 시도지사 간담회가 있었으나 비정기적으로 열린 데다 형식적이어서 지방 문제가 국정 중심에 놓이기 쉽지 않았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30년 가까이 흘렀으나 여전히 수도권 중심의 쏠림현상은 풀리지 않는 우리의 숙제다.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인구가 비수도권을 넘어서는 비정상이 존재한다. 지방은 인구가 줄어 소멸 위기감으로 팽배해 있고 지방 경제는 날로 축소되는 상황이다. 지역불균형으로 인한 사회갈등이 증폭되면서 국가발전의 동력이 위협을 받고 있다.윤 대통령도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순회하며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정례적으로 열 것을 약속했다. 문 전대통령은 강력한 지방분권 국가를 약속했지만 이전 정부와 달라진 게 별반 없었다.지방균형발전은 대통령의 의지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그렇다. 중앙지방협력회의를 국정 운영의 한축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중앙지방협력회의를 통해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을 비롯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돼야 한다. 윤 대통령은 “어디에 살든 공정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방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이 중앙지방협력회의를 통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올라가길 바란다. 그래야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2022-10-11

실력으로 작동되는 TK사회 만들자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7일) 울산시청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주재하면서 중요한 말을 했다.‘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할 경우 정부가 모든 역량을 결집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각 지방정부가 먼저 정책 아이디어를 내면 중앙정부가 평가해서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이나 사업기획 역량을 쌓으라는 말과 다름없다.나는 윤 대통령의 이 발언에 백번 공감이 간다. 대부분 지방정부가 마찬가지지만, 과거 대구·경북(TK)은 공동체 전체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나 사업 아이디어(예를들어 대구경북통합신공항)를 공론화 한 적이 별로 없다. 대신 일부 기득권 그룹의 이익에 맞는 사업을 사회현안으로 포장해 연줄로 국비를 따내는데 익숙해 있었다. 자연적 공직사회의 정책발굴이나 사업기획과 관련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TK가 온갖 모욕과 설움을 당한 것도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다.윤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지방협력회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모여 국가균형 발전에 대한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여서, 앞으로 국정운영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회의에는 주요 국무위원들과 민선 8기 광역단체장,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 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장이 정규멤버로 참석했다. 향후 분기별로 열리게 될 이 회의체는 지방정부간의 정책·사업 기획력을 둘러싼 경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TK는 특히 새로운 자세로 무장하지 않으면 지방정부끼리의 대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6일 시청출입기자들과 만나 “연말이나 신년이 되면 국비 몇 푼 더 받아왔다고 신문 1면 톱기사로 나오고 그런 것, 나는 ‘천수답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정부 스스로) 사업과 정책을 확보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TK의 자생력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짐작된다.역대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TK 주류그룹은 중앙정부 실세들과 전화 한 통화로 줄이 닿아 웬만한 인허가는 쉽게 해결했다. 아마 주요사업도 이런 식으로 해결했을 가능성이 있다. 역량은 기획력이 아니라 평소 연줄을 얼마나 잘 잡았느냐가 판가름했다. 공직자들이 외연을 넓히고 실력을 쌓거나 밤새워 사업과 정책을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TK라는 용어가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TK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지방정부간 평가에서 선두권에 랭크되려면 정치인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정책발굴이나 사업기획에 대한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 타지역 공직자들이 전략적으로 지역 이익을 극대화하던 기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TK의 위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디지털 세상과도 맞지 않다. 사이버 세상에서도 TK는 타지역에 뒤떨어지는 퍼스낼리티를 가진 것이다. TK는 이제 실력으로 작동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2022-10-11

자리와 사람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비 그치고 돌멩이 들어내자 / 돌멩이 생김새만 한 마른자리가 생긴다. /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내 발 크기가 비어 있다. / 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내 키는 다 젖었고 / 걸어온 자리만큼 말라가고 있다. / 누가 나를 순하다 하나 그것은 거친 것들 다 젖은 후 / 마른 자국만 본 것이다.”문정영 시인의 시집 ‘그만큼’(시산맥사)에 수록된 시 ‘그만큼’의 1행부터 7행까지다. “따뜻한 감성을 바탕으로 존재에 대한 치열한 사유와 함께 삶의 원형질을 잘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인의 정서는 이 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비가 왔지만 돌멩이가 덮고 있었던 땅은 돌멩이를 들어내자 뽀송한 마른 자리를 드러낸다. 시인이 서 있던 자리에는 발 크기의 자국이 났고, 발이 가려주어 비를 덜 맞은 땅 또한 빨리 말라간다. 무생물인 돌멩이는 생명체가 디딘 것보다 더 분명한 자국을 남기며 젖음을 해소시켜 준다. 아마 뜨거운 햇볕이 대지를 온통 말리려 했다면 움직이는 발밑보다 돌멩이 아래의 땅이 습기를 더욱 많이 머금고 생명들을 품었을 것이다.자리는 중요하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자(孟子)가 범(范)이라는 곳에서 제나라 임금이 있는 곳에 갔다가 왕자의 당당함을 보고 감탄하며 “있는 위치에 따라 기운이 바뀌고, 먹는 것에 따라 몸이 달라지니 위대하구나, 지위여!(居移氣 養移體 大哉居乎, 거이기 양이체 대대거호)”라고 말하였다고 맹자 진심편(盡心篇)은 기록하고 있다. 왕자도 역시 사람의 자식이지만 귀한 곳에 살고 따라서 좋은 음식으로 몸을 만들고 다스림으로써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기운과 풍채가 위엄이 깃들게 되었다는 말이다.맹자의 ‘거이기 양이체’라는 말은 우리 속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과 서로 통한다고 하겠다. 특정한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과는 다른 노력을 하여야겠지만, 그 지위에 올라서면 자리가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가기도 한다. 위치에 따라 얻게 되는 정보의 질과 양이 다르며, 높이 올라갈수록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많은 정보가 무슨 소용이랴. 그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책무를 온전히 수행하지는 못하면서 자리가 주는 이익만 쏙쏙 챙긴다면 차라리 묵지근히 자리를 지키면서 비올 때는 마른 자리를 만들고, 태양 아래서는 습기를 유지시켜주는 돌멩이가 더 나은 존재가 아닐까.미국에서 혼잣말 비슷하게 했다고 하는 우리 대통령의 욕설 파문은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에 정쟁거리로 등장했다가 잠잠해졌던 야당 대표의 욕설 파문까지 다시 불러오고 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라는 직위는 둘 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자질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최고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위치다.누가 어떤 자리에 앉고 서느냐도 중요하지만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면서 자리를 온전히 지켜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자리에 오른 자, 그 자리에 걸맞게 행동하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은 “무조건 무조건이야”가 아니다.

2022-10-11

맹인이 사는 방법

조현태수필가 조금씩 시력이 나빠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래도 조금 어둔하고 느리지만 별 지장을 느끼지 않고 살았다. 왜냐면 지금껏 살면서 세상의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꾸준히 연습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눈으로 보이는 것만 없을 뿐 신체의 다른 기능은 여전하여 본인이 느끼는 불편함은 크게 없는 듯 했다. 다만 조심스럽고 느릴 정도였다.1급 시각장애 때문에 결혼은 포기하고 혼자 살기로 작정했는데 어느 날 좋은 남자를 만났다. 장님 아가씨의 눈이 되어줄 요량으로 결혼을 제안한 남자가 있었다. 여자 쪽에서야 평생을 도움만 받고 살아야 할 상태라서 많이 망설였다. 한 남자의 장래에 자신이 끼칠 피해가 어떨지 손바닥 보듯 했겠지. 하지만 남자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남편 입장으로는 항상 아내와 함께 행동하며 세심하게 배려하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불안하여 매우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함께 생활해 보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외출이든 집안 청소든 아니면 음식을 조리하든 아내 혼자 거침없이 해냈다. 이를테면 시장 갈 때 지팡이 하나만 들면 해결되었고 식재료를 구입하여 냉장고에 보관하여도 어떤 것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무슨 요리를 하면 어떤 재료가 있어야 하고 어디에 두었는지 훤하게 알고 있는 터라 조금도 어색하거나 실수하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도록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제 남편은 직장에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었고 아내 혼자 외출을 해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아내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두터운 믿음으로 용기가 되어주었다.아내가 이렇게 된 연유는 간단했다. 혼자서도 살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야채 썰기, 갖은 양념하기, 끓이기, 그릇에 덜어 상차리기, 그리고 남편과 함께 식사하고 설거지하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척척 잘 해야 하는 것이 목표인지라 눈물겨운 연습과 훈련을 거듭했다. 더러는 실수하여 부엌칼에 손을 다치기도 했고 손에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하여 끝내 성공하기를 반복하고 또 했다. 그 결과 나중에는 두 눈이 멀쩡한 사람에 버금가는 전업주부의 고유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에 사랑하는 빛이 반짝반짝 했다. 이러한 사연에 필자도 그 남편에 못지않은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남다른 연습과 훈련으로 없어진 눈도 있게 하는 상황에 최근의 정치가 겹쳐진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해당 학위도 취득하여 수십 년 동안 정치 현장에 몰두한 사람이 아닌가. 장님도 귀머거리도 아니요, 사지가 멀쩡하고 명석한 두뇌까지 갖추었으면 그 많은 훈련과 경험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조금도 전문 정치가로 여겨지지 않는 까닭은 뭔가. 전혀 정치를 모르는 농부나 어부보다 더 어설프고 교활하게 보이니 이게 웬일인가.필자는 외치고 싶다. 장님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심혈을 기울여 관찰하고 배울 용의는 없느냐고.

2022-10-11

말하는 마음, 듣는 마음

세상에 발화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어딜 가도 조용히 사색하는 사람 보다 지치지 않고 떠드는 사람만 보인다. 나부터 그렇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일기장은 물론이고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하다. 여기저기에 끼적여놓은 문장을 보면 부끄럽다 못해 수치스러운 감정까지 든다. 이것이 필요한 이야기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브하지 않은가? 매일매일 비슷비슷한 문장을 적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쓰는 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은 작아질 대로 작아져서 반쯤 베어 문 땅콩보다 더 조그매지는 기분이다.글을 쓸 때만이 아니다. 평소에도 나는 굉장히 수다스러운 성격이다. 대화를 주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정적을 참지 못하며 침묵과 함께 찾아오는 엄숙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어려운 일을 위트 있게 넘기고 싶어서 상대에게 무례한 언사를 행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자책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다음에는 입을 열지 않을 거야. 침묵을 견디는 사람이 될 거야. 다짐해보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그러한 결심은 순식간에 휘발되고 다시 시끄럽게 떠드는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것도 없었던 때, 자기 연민으로 똘똘 뭉쳐 주변을 왜곡시켜 보거나 마냥 숨어 있고 싶어 했던 시절, 나는 어떤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의미한 행동은 세상에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잘못되었어. 그러니까 이 세계가 망할 수밖에 없는 거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의 말을 가로막고 상대가 얼마나 편협한 관념에 갇혀 있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너는 왜 본질을 못 봐? 나는 선명하고 자신감 있는 척했지만 끝끝내 어떤 것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 어리석음을 인지하면서도 발화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굳이 이해해보려는 태도야말로 내가 존립할 수 있는 이유였으니까. 그때의 나는 이상한 결연함이 있었다. 입을 다무는 것은 비겁한 것이라고. 끓어오르는 언어를 숨기지 말고, 밖으로 모두 드러내 보이자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말하는 양은 더욱 늘어났고 발화의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술자리의 거친 언어는 정제되었고 강의의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다 보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불안이 들었다. 뭔가를 선동하고 있는데 그것이 위험한 방식인 것 같은 기분. 이것은 정말 중요한 개념이다, 하고 강조하는 말은 원론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스스로가 선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주입하려 했다. 나는 말하는 것을 멈추고 물었다. 너희의 생각은 어때? 그들의 입에서 놀라운 언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졌다. 내가 들여다보지 못한 지점과 알지 못한 세계를 전달받았다. 끝끝내 장악할 수 없는, 아니 장악할 필요가 없던 그들의 역사였다. 비로소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어렵다. 발화보다 경청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다정한 마음과 체력이다. 상대의 말을 하릴없이 듣다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불쑥 끼어들어 이런저런 것들을 정정하고 싶다. 그러나 상대의 말 뒤에 숨은 마음을 느끼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순간 나를 넘어서 우리라는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건 굉장히 근사한 일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발화하는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어딘가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독자를 상상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내뱉는다. 그러나 한 쪽에서 나는 듣는 사람의 역할을 한다. 소설 속 인물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활자로 옮기는 일을 한다. 말하는 마음과 듣는 마음은 맞닿아 있다.이제는 알 것 같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뭔가를 바꾸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불안과 불만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세상에는 계속해서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외롭고 어려운 투쟁을 지속하며 누군가에게 가닿으려 애쓰는 마음이 있다. 그것에 대해 한 마디를 더 보태는 것보다 이야기를 듣고 곱씹고 생각해보는 태도. 거기서 기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말하는 마음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듣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다정한 마음의 시작이 될 것이다.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