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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권정생 동화 나라’

등록일 2023-09-18 18:37 게재일 2023-09-1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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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동화 나라’의 ‘몽실언니’

짧은 검은 머리를 한 몽실이가 아이를 업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전쟁에 나간 아버지, 재가하여 다른 지역에 사는 엄마네 가족, 식모살이하며 함께 지내는 새로운 가족, 입양 보낸 동생 등. ‘몽실언니’의 표지 속 몽실이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사실 누구든 정몽실은 따지지 않고 따스함을 나눠줬을 것이다. 그저 바보같이 주어진 삶을 업고 묵묵히 돌봤을 것이다. 사랑만을 전할 뿐 그 무엇도 바라지 않던 권정생(1937~2007) 작가처럼 말이다.

권정생 작가는 일본 도쿄 변두리 지역인 시부야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아버지가 가끔 주워 오던 동화책을 보며 자랐다.

해방 후 한국에 돌아오지만, 전쟁과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만 하다가 주변인을 하나·둘 떠나보내고 안동에 정착한다. 1967년 일직교회의 종지기로 살면서 집필활동을 한다. 1969년 ‘강아지똥’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여 이후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긴다.

초기에는 주로 ‘강아지똥’과 같은 동화를, 중기에는 ‘몽실언니’와 같은 성장소설을, 후기에는 ‘랑랑별 때때롱’처럼 생태 의식이 깃들여진 판타지 소설과 여러 산문을 집필했다.

30세부터 눈을 감던 순간까지 교회의 종지기로서 작은 흙집에서 검소하게 살다가 2007년 어린이들을 위해 모든 유산을 남기고 평소 자주 오르던 빌뱅이 언덕에 조용히 잠든다. 2009년 작가의 유고에 따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되고, 2014년에는 ‘권정생 동화 나라’가 만들어졌다. 이후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권정생 동화 나라’에 가면 작가의 작품들이 책 밖으로 나와 실질적인 사물이 되고, 공간이 되고, 사진의 배경이 되어 손님들을 맞이한다.

1층은 작가의 유품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귀한 초판본이나 원고지에 써 내려간 작가의 필체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도서관은 판매를 겸하고 있으며, 체험관은 어린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데려갈 징검다리로 충분하다. 구연연구소나 여러 포토존 등도 즐길 수 있다.

2층은 회의실과 작가에게 대여하는 창작실, 숙소가 있어 현지의 작가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권정생 동화 나라’의 당초 설립 계획이 모두 지켜지지 않았고 축소되었으며, 실내 공간이 예상보다 작은 편이었다. 운동장의 여러 포토존을 둘러보고, 벽화를 따라 인근의 권정생 생가와 교회를 돌아보고, 빌뱅이 언덕을 올려다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권정생 동화 나라’에는 작가의 작품을 동상으로 만들어 둔 곳이 여럿 있다. ‘몽실언니’도 그중 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

입체적으로 표현된 ‘몽실언니’표지 동상을 보면서 예전에 ‘몽실언니’를 읽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해방과 전쟁 그리고 가난에 떠밀린 어린 소녀가 어쩔 수 없이 짊어질 수밖에 없던 삶의 무게가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식모살이와 구걸, 어린 동생 돌봄과 입양, 이혼과 재혼 가정에서의 학대, 주변인의 죽음 등 말문이 막히는 장면이 너무도 덤덤하게 이어졌다. 작가는 ‘몽실언니는 제가 너무도 어렵게 쓴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쓴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어주세요.(1984년 4월)’라고 했지만 읽는 내내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우선은 왜 하필 어른도 아닌 어린 존재가 삶의 짐을 떠안고 구원자가 되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해방과 전쟁이 휩쓴 그때는 사회적 약자가 배려받지 못하는 세상이었겠지만 어른들은 무엇을 한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둘째, 주인공은 불행에도 굴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마치 부처의 가운데 토막이나 예수의 재림처럼 담담하기만 하다.

슬픔을 이겨내고 마음이 성장하면,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나 아픔을 견뎌야지만 만들어지는 진주가 되는 것일까.

셋째, 작품의 배경에 깔린 소외된 이웃의 삶이 너무도 진솔하게 전달되어 독자의 마음에 쉽게 전이된다. 진솔한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세월과 세대를 뛰어넘어 독자의 공감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권정생 작가와 그의 작품은 지금도 사랑받고 사랑받는다.

넷째, 도시보다는 자연이 살아있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다. 판타지 작품 ‘랑랑별 때때롱’에서는 자연과 멀어지고 있는 현 인류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려놓았다. 돌고 돌아 결국 자연의 품에 안기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인데 자연을 외면하는 오만한 모습에 일침을 가한다.

안동의 ‘권정생 동화 나라’는 여러 문학관과는 달리 작가의 작품을 하나의 체험적 공간으로 조성하고 녹여내었다.

이것은 독서를 통해 책 속을 여행하던 ‘정적인 활동’을 방문하여 즐기는 ‘동적인 활동’으로 바꾸는 행위이며, 독자를 일상에서 벗어난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힘겨운 삶을 담담하게 업은 정몽실의 동상을 살포시 안고 눈을 감아본다. 사랑과 희망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몽실이가 내게도 따스함을 나눠주는 듯하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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