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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공항 예타면제 확실시… 이젠 속도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민간공항의 예비타당성 면제 안건이 오는 17일 국무회의에 상정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통과가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0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신공항 예타 면제와 관련한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대구 동구을)의 질의에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10월 중 면제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변함으로써 확인됐다.강 의원에 따르면 이 안건은 “현재 12일 차관회의, 17일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되는 게 유력하고 특이사항이 없으면 신공항 민항의 예타 면제는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민간공항 예타 면제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기획재정부의 예타 면제 확정,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가 진행되고 국토부의 기본계획 용역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특히 최근 물가상승률이 높아 총사업비를 최적화하려면 서둘러 건설해야 하는데 국토부도 이날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신공항 사업은 이제 조기 착공에 무게의 추가 옮겨지고 있는 모양새다.대구시는 예타면제 통과를 시작으로 신공항사업에 따른 제반 집행을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이 사업을 대행할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등 후속 준비가 태산같이 많다.최근 화물터미널 위치를 두고 대구시와 의성군, 경북도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사업의 속도를 내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대구시가 10월말까지 이 문제를 빨리 매듭짓자고 제안한 것은 사업 진행 속도의 중요성 때문이다. 마침 원 장관도 이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으니 화물터미널을 둘러싼 갈등을 하루빨리 종식시켜나가야 한다. 당사자간 원만한 협의가 최상임을 두말할 나위 없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사업은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위한 대역사다. 소멸위기의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필사의 수단이다. 그동안 신공항 사업은 많은 난관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순탄치 않았던 과정을 생각하며 사업의 성공을 위해 매진해가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정치권과 자치단체의 합심된 힘이 필요하다.

2023-10-11

시달리는 마음

타인에게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못하는 말. ‘원래 모든 사람은 부족한 점이 있어. 부족하다는 사실에 너무 얽매이면 안 돼. 네가 가진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지.’ 친구에게든, 같이 문학을 하는 사람이든, 혹은 학생에게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준다. 그게 세상을 사는 꽤 좋은 마인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만 바라보면서 사는 삶이라니, 너무 지치지 않나?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런 건 그저 타인의 질투어린 시선이나 동경어린 시선 속에서만 있는 것이고, 그 시선에서 살짝 벗어나보면 모든 사람은 잘난 점 한 두 가지와 부족하고 미진한 여러 가지 결여를 제각기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불완전하고, 어딘가 비틀려있고, 혹은 자신이 저지를지 모를 실수에 불안해하는 사람.그러니 너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어차피 모든 사람은 제각각 모자라고, 약간은 바보 같고, 혹은 비틀린 구석이 한 두 가지쯤은 있기 마련이라고. 단지 서로 모자란 부분이 다르고 바보 같은 구석이 달라서 네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게 온전히 타인을 위한 말인가 하면, 그렇진 않다. 오히려 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타인에게 해주며 내 모자란 마음을 채우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나는 늘 내 부족한 부분들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어느 나라든 그렇겠지만, 한국은 유독 나이에 따라 요구되는 것들이 많은데 나는 그런 것들을 잘 충족시키며 살아오진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가 되면 대학에 진학하고, 때가 되면 면허를 따고, 때가 되면 군대를 가고, 때가 되면 취직을 하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한 번도 제 때에 해보거나, 잘 이뤄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신 나름의 경력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적도 있지만, 그것들이 과연 등가로 비교될 수 있는 것들일까?딱히 자기 비하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은연중에 타인에게 그런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30대 중반이 된 이후로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아직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거나,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할 때면 뭔가 결격사유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엔 이게 나의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이렇게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나의 삶을 제대로 평가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그저 필사적으로 자신이 이뤄낸 것들을 평가받고 싶은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해낸 결혼을 너는 못했지. 내가 이룬 정규직을 너는 못했지. 내가 해낸 것들을, 너는 해내지 못했지 하고.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삶을 과대평가하고 싶은 사람들. 예전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면 ‘성격 참 이상하네’하고 생각하곤 넘겨버리곤 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절대 다수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어쩌면 그들도 자신의 결점이 두려운 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는 대신에 어떻게든 자신이 이뤄낸 요구들을 생각하고, 타인의 단점을 들춰내면서,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기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는 건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타인의 단점을 들춰내는 건 꽤 즐겁고 나름의 쾌감을 주는 일이니까. 그리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꽤 괜찮은 삶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곤 하니까. 그 과정에서 누군가 조금 우울해지게 되더라도,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니까.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동원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걸까, 아니면 극심하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걸까. 스스로든 채울 수 없는 자족감을 채우고자 타인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적어도 건강한 마음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그것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에 시달리는 똑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도 나도, 결국엔 똑같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시달리는 사람들인 셈이다.우리의 결여와 결점들은 누구의 시선에서 결정된 것들일까. 우리가 구태여 비슷한 수준으로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면서, 타인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너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건 대체 누구에 의한 것일까. 내가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삶도 꽤 괜찮은데. 좀 부족한 거 있어도 제법 살만한 인생인데. 고민이 많아지는 30대 중반의 하루다.

2023-10-10

꽉 닫힌 마음

명절이 지나면 자취방의 냉장고가 풍성해진다. 엄마가 싸준 음식 때문이다. 갈비부터 시작해 김치찜, 전복장, 닭발, 육개장까지. 어느 것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게 없다.내가 만들면 왜 이런 맛이 안 날까? 엄마 등 뒤를 괜스레 기웃거리고 요리 비법을 배워보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도 내가 만든 음식은 묘하게 싱겁거나 짜다. 엄마는 그런 내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다. 김치찌개 그거 김치에 물만 넣으면 되는 건데, 뭐가 어렵다고 그래? 그런 말을 들으면 억울하다. 내 말이 그 말이니까. 똑같은 재료로 맛을 내지 못하는 내 문제가 뭔지 나도 참 궁금한 것이다.그런 고뇌가 길어지면 휴대전화를 들고 배달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게 된다. 거기엔 온갖 종류의 음식이 다 있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휘황찬란한 요리는 물론, 아이스커피 한 잔도 속전속결로 배달되는 시대 아니던가. 태국 여행 중 먹었던 것과 똑같은 맛을 자랑하는 똠얌꿍부터 프랑스 유학파 파티시에가 만든 마카롱, 요즘 유행하는 마라탕이나 탕후루도 클릭 한 번이면 집안에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그러니 몸이 지치고 힘든 날엔 자연스레 배달을 찾게 된다. 식재료를 썰고 볶아내고 가지런히 담아서 먹고 치우는 것을 생각하면 배달 음식의 가격이 꽤 합리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문제는 먹고 나서 항상 후회한다는 것. 집에서 만든 밥을 먹을 때의 느낌과는 다르다.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하다. 한두 입은 맛있는데 그 후엔 물려서 쳐다보기가 싫다. 배는 부르는데 어쩐지 헛헛한 기분도 든다.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이 담겨온다는 것도 달갑진 않다. 나의 한 끼에 너무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저번에 주문한 동태찌개는 포장 용기가 덜 닫혔는지 국물이 흥건하게 흘러있었다. 그걸 받아들었을 때의 난감함은 배고픔마저도 잊게 했다. 가게에 항의할까 하다가 그만두지 싶었다. 일부러 뚜껑을 닫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실수한 거지. 누구나 그렇듯이.그러고 보면 엄마의 음식이 담긴 용기는 하나같이 꽉 닫혀 있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도무지 열기가 힘들었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낑낑대고 숟가락으로 텅텅 두드려도 요지부동이던 뚜껑을 만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신경질적으로 쏘아댔다. 왜 이렇게 세게 닫았어? 아무리 해도 못 열겠단 말이야. 그러면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고맙다거나 잘 먹겠다는 말보다 반찬통 못 열겠다는 말이 먼저 나간 것에 후회하는 것도 잠시, 어떻게 알아서 잘 좀 해보라는 엄마의 말에 발끈해서 몇 마디 더 쏘아붙이고 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꽉 닫힌 반찬통을 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게 여겨진다. 뚜껑 하나 못 여는 사람. 내가 먹을 음식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걸까. 거기다 뭘 잘했다고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는 걸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너그럽게 넘어가면서 왜 엄마에겐 유독 박하게 구는 걸까. 탓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탓한 내 모습이 참 못났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엄마는 이제 반찬통의 뚜껑을 적당히 느슨하게 닫는다. 대신 비닐로 몇 번이고 감고 또 감는다. 뭐 이렇게까지 쌌대. 괜히 쓰레기 많이 나오게. 나는 또 그렇게 툴툴대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담긴 용기를 열어본다. 맛깔스러운 냄새가 확 끼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역시나 맛있다. 감히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간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적당히 달짝지근해서 감칠맛이 돈다. 이런 반찬이면 입 짧기로 유명한 나도 공깃밥 두 그릇 뚝딱 비워낼 수 있다. 부른 배를 탕탕 두드리면 자연스레 엄마의 손이 떠오른다. 투박하리만치 길고 곧은 손. 가끔은 엄마가 미련하다고도 생각됐다. 직장 한 번 쉬지 않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 집에서 한 밥을 꼬박꼬박 먹였다. 지금도 그렇다. 명절이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을 내온다. 왜 맨날 저렇게 음식을 해. 그냥 사 먹지, 하면서 혀를 내둘렀던 적도 있다.알고 있다. 온 힘을 주어 반찬통을 꽉 닫는 엄마의 마음을. 외부의 먼지가 들어갈까, 내부의 것이 흘러넘칠까,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얼굴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난 엄마 밥이 제일 맛있더라. 나의 그 한마디로 충분하다는 듯이 소녀처럼 와르르 웃는 엄마.그 웃음을 완벽히 밀봉된 용기에 꽉꽉 채워 아주 오래 간직하고 싶은 요즘이다.

2023-10-10

한글날을 기념하는 방법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었다. 전국적으로 우리 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공유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다. 우리 대학에서도 국어문화원이 중심이 되어서 한글날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와 한글을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는 매년 반복되는 한글날의 각종 이벤트를 무심히 넘기거나 어학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공휴일이란 편안함이 더 크게 다가왔던 탓이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글날에 우리 문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글 창제 및 반포를 기념하는 한글날은 필연적으로 ‘대한민국’이란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이 몇 년 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한류가 있었지만, 최근의 상황은 K-팝, K-푸드, K-콘텐츠 등 다양한 K-컬처에 세계인이 주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BTS’가 상징하는 K-팝과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K-콘텐츠가 앞에서 끌고 K-푸드, K-뷰티 등이 뒤따르는 K-컬처는, 국가적 지원을 동력 삼아서 더욱 그 규모를 키우고 있다.하지만 마냥 자부심을 느끼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지난 8월 140여개국 4만명의 대원이 참석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K팝 콘서트’로 마무리되었다. 알다시피 잼버리는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 등으로 일부 국가 대원이 중도에 퇴소하고, 태풍의 영향으로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를 결정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세계적 대회의 파행을 막고자 K-컬처를 대안으로 내세운 정부의 방침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잼버리 정신’과 한참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자랑스러워야 할 K-팝이 이렇게 소비되는 것에 찜찜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영어 중심주의는 어떤가?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 솟아있는 거의 모든 아파트의 이름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영어다. 우리나라에 유학을 온 외국인 대학원생들은 한국어를 몰라도 학위를 받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문해력’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심심한 사과’ ‘사흘’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은 한자어나 순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관습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따져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말을 몰라도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한 사과’‘사흘’과 같은 단어가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삶의 구조에 있다.한글날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문화를 구분해야 한다. 이념이 당위적으로 한글의 우수성(혹은 K-컬처)을 홍보하는 행위의 근간이라면, 문화는 대중의 정신과 사고에 미치는 한글의 중요성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행위이다. 이제라도 한글이 상징하는 문화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일회성 이벤트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2023-10-10

연륜의 힘, 그리고 그 아름다움

최선희 경운대 교수 “늙은이 너무 불쌍해하지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그래주고 싶어 쓴 것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게 강변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사는 것을 맛있어하면서 살기 때문에 저절로 우러난 소리 같아서 대견할 뿐 아니라 고맙기까지 하다. 물론 내가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단맛만은 아니다. 쓰고 불편한 것의 맛을 아는 게 연륜이고, 나는 감추려야 감출 길 없는 내 연륜을 당당하게 긍정하고 싶다.”박완서 작가가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노년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서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어쩌면 노년을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작가의 이런 각오는 모든 노년세대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나온 삶은 수많은 희로애락과 함께 켜켜이 쌓아온 경험으로 숙성된 내공을 가졌지만 현실적으로 용인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8.5%로 고령사회이고 2024년 내년이면 노년세대가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어 초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 한다. 이런 속도로 인구 노년화가 진행되면 노인 평균연령이 100세가 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고 그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이런 인구 고령화 현상은 자칫하면 노인차별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노인차별주의란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우리가 노인을 향해 갖는 부정적인 태도와 행동을 의미한다. 실제 학생들에게 ‘노인’ 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라 했더니 “고지식하다, 보수적이다, 잔소리와 불평이 많다, 쇠약하다, 지루하다” 등의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했다. 이런 인식은 세대 간 갈등의 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노년의 긍정적인 모습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노년세대가 가진 가장 긍정적인 태도와 의식은 무엇인가. 바로 인생의 연륜이 가진 아름다운 내면세계일 것이다. 연륜은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다. 무수한 나이테를 가진 늙은 수양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며 우리에게 시원한 안식처를 제공하듯이 주름진 노년의 여유로운 표정은 우리의 힘든 삶을 보듬어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이 경험한 인생의 지혜가 우리들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강도는 다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무르익은 그들의 경험은 저마다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었고 이 달 10월은 경로의 달이기도 하다. 매년 이맘때면 100세를 맞은 노인을 위한 청려장(장수지팡이) 전달, 노인복지 증진을 위해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표창, 영정사진 촬영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인구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 고령사회를 앞둔 노년의 시대에 이런 일회성 행사보다 노년의 연륜을 인정하고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구체적 정책을 기대해본다.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게 될 노년의 삶, 그대로의 존재가 인정되어 권리와 의무가 부여될 때 그들은 연륜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보물을 풀어놓을 것이다.

2023-10-10

총선과 겹치는 국정감사, 民生을 우선 챙기길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어제(10일) 막을 올렸다.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열리는 이번 국감은 다음달 8일까지 24일간 진행된다. 대구시와 대구·경북지역 공기업과 국립대, 공공기관들도 12일부터 오는 24일까지 국감을 받는다. 16일에는 대구지방국세청과 대구본부세관, 조달청이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서, 17일에는 경북대와 경북대병원, 대구·경북 교육청이 경북대에서 국감을 받는다. 행안위는 23일 대구시와 대구경찰청을 대상으로 국감을 실시한다. 어제 열린 국토교통위 국감에서는 대구경북신공항 사업 추진상황이 현안으로 거론됐다. TK신공항 건설추진단이 국토부 전담조직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구와 경북이 갈등을 빚고 있는 화물터미널 입지와 사업을 추진할 특수목적법인 구성 등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국방부 국감에서는 대구시와 국방부 간의 업무협약체결이 지연되고 있는 대구 군부대 이전 사업에 대한 추진 과정이 주요이슈로 다뤄졌다.우려되는 점은, 이번 국감이 총선일정과 겹쳐진다는 점이다. 중앙선관위는 13일부터 재외선관위 설치를 시작으로 내년 총선 준비 절차에 들어간다. 이 때문에 이번 국감에서 여야는 정국 주도권을 놓고 한 치 양보없는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와 ‘대법원장 공백 사태’ 같은 예민한 이슈가 불거져 국감뇌관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국감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통계 조작 논란, 탈원전 및 이권 카르텔 의혹 등을 철저히 규명하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영장이 기각된 것을 빌미로 윤석열 정부가 야당탄압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국감이 정쟁의 장이 되면서 민생문제가 뒷전으로 밀려선 안 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최악의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힐 기미가 없고, 실질임금은 사상 처음 감소했다. 최근에는 휘발유와 경유가격이 끝없이 오르면서 고물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도 ‘국감무용론’이 나오지 않도록 여야는 민생문제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2023-10-10

하태경 險地출마, 여당 혁신으로 이어져야

심충택 논설위원 내년 4·10총선을 6개월 앞두고 오늘(11일) 실시되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가 주목을 받는 가운데, 지난 주말부터 국민의힘에도 내부혁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부산출신 하태경 의원이 당 혁신을 위한 총대를 멨다. 하 의원은 지난주말 “내년 총선에서 정치적 고향인 해운대갑구를 떠나 서울 험지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3선인 하 의원은 국회의원이 한 지역구에서 세 번 넘게 연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었다.하 의원이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마포을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솔깃하다. 아마 여당 중진, 특히 손쉽게 국회의원 선수(選數)를 늘려온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울산)지역 의원들에겐 하 의원의 서울험지 출마 선언이 ‘올게 왔다’는 압박감으로 작용할 것이다.하 의원의 지역구포기 선언은 당 지도부를 향한 채찍으로 들린다. 지금 여당 지도부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박스권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는데도, 하나같이 먼 산 구경하듯 하고 있다. 오직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공격에만 총력을 쏟으며 반사이익에 기대는 모습이다.하 의원처럼 기득권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사람이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내년 총선은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전쟁 같은 선거가 될 것이다. 진영간 이데올로기 갈등이 지금보다 심각한 때는 없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영남권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지역에서 민주당에 졌다.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쯤이면 당이 비상상황에 들어가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당 안팎을 보면 긴장감이나 역동성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총선 승패가 결정될 수도권 판세가 위기상황임을 나타내는 지표가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대통령실 핵심참모나 당 중진들은 쉽게 당선되는 영남권만 기웃대는 모습이다. 여당은 지금 국민에게 혁신과 변화의 에너지를 보여줄 때다. 그러려면 현 정부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중진들이 총선 승리를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당에 헌신해야 한다.여당이 수도권에서 이기려면 중도층 쪽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방법밖에 없다. 중도층은 이념보다는 바람이나 감성에 흔들린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선거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의 전략은 당 지도부와 중진들의 기득권 내려놓기다. 집권당내에서 총선불출마나 인적쇄신, 적지 출마론 같은 ‘자기희생적 뉴스’가 쏟아져 나오면 중도층은 여당에 눈길을 줄 것이다. 하 의원처럼 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지역구에 일찌감치 출마선언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민주당은 지금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위협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면 이런 일은 다반사로 발생할 것이다.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우리나라가 합리적인 다수 힘으로 운영되는 정상적인 국가가 되려면, 내년 총선에서 이런 세력이 헤게모니를 잡는 것은 꼭 막아야 한다.

2023-10-10

메디시티 대구 위상 살려야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시는 지난 2009년 메디시티 대구를 선언했다. ‘대한민국 의료특별시 대구’가 슬로건이다.대구를 글로벌 헬스케어 허브도시로 육성시켜 대구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대구시의 야심찬 정책의 하나다.대구는 비수도권에서 유일하게 100년 된 의과대학을 품은 도시다. 경북대학 의과대학은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대구의학강습소를 시작으로 대구의학전문학교 등을 거쳐 6·25전쟁 중이던 1952년 국립경북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승격했다.4개 의과대학과 6개 종합병원, 3천800여개 병의원, 2만여 의료인력 등을 가진 대구는 국내 최고 수준급 의료인프라를 가진 곳이다. 대구 의료인의 역량은 코로나19를 극복한 위기 상황에서 잘 드러났다. 코로나 발생 53일만에 확진자 0명의 신기록을 세웠다. 대구 의료인의 코로나 팬데믹 극복은 세계가 인정할 정도다.의료 기술면에서도 우수하다. 대한민국 최초 팔이식 수술 성공과 세계 최초 모발이식 수술 등 자랑거리가 많다. 조선시대 최대 약령시가 대구에 세워져 대구는 한의학 도시로도 명성을 떨친다.이런 역사적 전통과 의료인의 자부심으로 대구는 의료관광산업 분야에서 한해 수 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명실공히 메디시티의 입지를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지방에서 서울로 원정 치료간 암 환자가 100만명에 이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이다. 대구와 경북서도 18만명의 환자가 서울로 원정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의료 역시 타분야처럼 수도권 쏠림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결과여서 안타깝다. 메디시티 대구의 분발이 더 있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0-10

포스코 사상 첫 파업 위기…대화로 풀어야

포스코가 창립 55년만에 처음으로 파업위기에 놓였다. 포스코 노동조합은 지난 주말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10일 오후 중앙노동위원회 중재신청에 따른 기자회견도 가졌다.노조는 “임단협에서 합리적 요구를 했는데도 반영되지 않아 파업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일관 제철소여서 쉬지 않고 가동해야 조업이 가능한 체제다. 만약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포스코는 사상 처음으로 고로 가동이 멈추는 신기록을 맞아야 한다.노조는 기본급 13.1% 인상, 조합원 대상 자사주 100주 지급, 목표 달성 성과급 200% 신설 등 모두 86건의 요구사항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이같은 요구에 대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기본임금 16만2천원 인상, 일시금 600만원 지급, 지역사랑 상품권 50만원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앞서 지적대로 포스코는 일관제철소여서 조업이 중단되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포스코뿐 아니라 협력사는 물론 수 만여명에 달하는 관계사 직원과 가족들에게까지 직간접 피해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포항지역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 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으로 유가 급등 등 글로벌 경제가 또다시 위협받고 있다. 하반기 경기 반전을 노리는 우리 경제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는 시점이다. 국가 기간산업인 포스코의 파업은 제조업 위주인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회사측 주장에 따르면 노조의 요구사항을 인건비로 계산하면 1인당 9천5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이 정도라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작년 포스코는 힌남노 태풍으로 2조원 손실을 입었다. 지금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영업이익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어려운 상황이다. 노사가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회사는 노조의 합리적 요구를 수용하고 노조도 회사 사정과 국가 경제 등을 고려, 대화로 문제를 푸는 상호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상생의 길이다.

2023-10-10

연구개발비 삭감하면서 의사과학자 양성한다고?

유영희 작가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고전 한 구절 인용하는 방식은 진부하면서도 울림을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며칠 전 ‘논어’ 한 구절을 읽다 보니, 역시 단순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맛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 개의 수레를 보유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신중한 태도로 백성의 형편을 잘 헤아려 정책을 실시하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서 백성에게 믿음을 주며,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백성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2024년 예산안은 여러 분야에서 삭감되었는데, 삭감된 내용을 보면 더 놀란다, 현 정부 출범 당시 중점 육성하겠다고 한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우주, 데이터 분양까지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예산 15억원을 비롯하여 과학기술 인력 양성 사업 전반에 걸쳐 940여 억원이 삭감되었다. 이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RD 이권 카르텔 한 마디에 빚어진 사태다. 9월 5일,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가 출범해 과학기술기본법에 있는 절차도 무시했다고 항의하며 예산 지키기에 나섰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낙관하기 힘들다.그런데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한 마디로 의전원이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카이스트에서 의사과학자 육성 대학원 설립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보낸 후 카이스트의 의전원 설립이 속도가 붙었다. 포스텍도 2028년을 목표로 의전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은 두 말이 필요가 없다. 화이자에서 mRNA 백신을 개발하여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독일의 우구르 사힌, 외즐렘 튀레지 박사 부부가 바로 의사과학자이다. 오랜 기간 과학계의 mRNA 연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여성 과학자 카탈린 커리코는 드류 와이즈만과 함께 mRNA가 면역 체계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발견하여 백신 개발에 기여한 공으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이처럼 중차대한 의사과학자가 우리 사회에서 양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과학자에 대한 홀대 때문이다. 카이스트가 미래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의사과학자를 배출한다고 해도 진료하는 의사의 평균 연봉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로 과연 계속 이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가 하는 현실이 의사과학 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금도 과학고등학교 졸업생의 의대 쏠림 현상이 노골적인데, 의전원 졸업생을 의사과학자로 붙들어두기는 더 어렵다. 현재 배출된 의사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더 절실하다는 반대 의견이 타당하게 들리는 이유다. 게다가 기초의학을 가르칠 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카이스트나 포스텍에서 설립할 의전원에서 얼마나 내실 있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도 많다.무엇보다 연구개발비는 삭감하면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다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떤 정책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신중한 절차를 거쳐 백년을 내다보는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

2023-10-09

577돌 한글날을 맞으며

김규인수필가 2023년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다. 문자를 기념하는 날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는 한글이 그냥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지시하에 만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문화의 바탕이 되는 날을 다시 맞는다.세상에는 자기 말을 가지면서도 이를 표현할 글자가 없는 나라가 더 많다. 그런 가운데 너무나도 멋진 한글을 가진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해외에서 한글로 적힌 간판을 보거나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는 한글이 한국 사람답게 만드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마음을 헤아려 만든 한글 창제의 훌륭한 뜻을 알면 마음마저 젖어 든다. 577년 전에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애쓴 통치자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은 가장 기본적 권리이다. 백성을 향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그런 한글이 우리나라에서 수난을 당한다. 젊은 사람들은 말을 줄여 쓰느라 국적도 없는 말을 한다. 처음 듣는 사람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궁금하여 물어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줄여서 쓰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구슬이 구르는 소리 같은 말이 듣기에도 불편한 말이 된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말을 비트는지 알 수가 없다.오랜 기간 중국과의 문화 교류에 따른 한자가 유입되고, 36년의 침략으로 남은 일본어의 흔적은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들어온 외래어의 영향도 점점 늘어난다. 물건을 팔면서도 경쟁적으로 남의 나라말을 빌려서 쓴다. 교통의 발달로 다른 나라로 이동이 편리한 세상에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자연스러운 범위를 벗어나 인위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이 강하다.경제 위기 상황을 맞은 요즈음 외국 언론이나 금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무분별하게 들어온다. 방송이나 신문은 우리말로 순화하지 않은 채 경쟁이라도 하듯 기사를 선점하기에 바쁘다. 뱅크 런, 본드 런, 로크인 효과, 뱅크데믹 같은 단어는 뜻을 짐작만 할 뿐 금방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지금은 한류가 세계 문화의 주인공이다. 우리말로 된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 우리말로 만든 노래를 부르고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도 늘어난다. 한류를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 비행기에 오른다. 산과 문화재와 현대식 건물이 아우러진 서울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정작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다르게 생각한다. 높이 솟은 아파트에는 ○스테이트, ○○캐슬, ○○파크, ○ 플래티넘, ○샵 같은 외래어를 마주하고 중심가로 들어서면 상가의 간판들은 외국의 도시로 착각하게 한다.

2023-10-09

해결과제 남긴 영양 수비면 능이버섯축제

장유수 경북부 사흘간 영양군 수비면 발리리 일원을 뜨겁게 달궜던 능이버섯축제가 지난 8일 막을 내렸다.영양군과 수비면 능이축제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축제기간 1만여 명의 관광객과 소비자들이 축제장을 찾았고, 지역의 농·특산물의 구매가 이어지는 등 침체된 면단위 농촌 상권 활성화와 지역 농·특산물 판매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적잖은 성과를 거둔 능이버섯축제지만 과제도 남겼다.일회성이 아닌 지역 농·특산물 판매 및 홍보 등 수비면을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킬 원동력이 되기 위해선 능이버섯축제도 발전이 필요한 것이다.우선 축제가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청정자연의 보고 ‘제 1 능이’로 불리는 귀한 능이버섯 고유의 정체성을 살려 다양한 능이버섯요리체험과 직접 구매한 버섯을 손질해 담아 갈 수 있는 등 소비자와 관광객들이 체험하고 참여 할 수 있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축제라는 명분아래 단지 장삿속을 채우려한다는 인상마저 느끼게 하는 판매와 먹거리 등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은 눈총을 받았다.특히 능이버섯요리경연대회와 막걸리페스티벌 등은 수비지역 마을주민들만 참가해 능이라는 테마로 소비자와 관광객들이 참여 할 수 있는 다양하고 독특한 축제 문화를 선보였어야 했지만 마을잔치 수준의 축제에 그쳤다는 평가다.또한 축제의 한 축을 차지한 메인무대인 공연장은 전력부족으로 음향의 질이 떨어지는 등 축제장 동선들과 동떨어진 이질감으로 인해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녹아내지 못했다는 쓴 소리도 나오고 있다.교통 부분에서도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행사와 안전과 함께 교통은 가장 역점을 뒀던 만큼 주민들의 큰 불편을 초래하지 않은 채 통제와 안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단체 관광객들을 위한 큰 그림의 교통 대책은 보이지 않았던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끝으로 주민 참여가 제대로 이뤄진 축제냐는 반문에서 나오는 아쉬움과 기대다. 수비능이축제추진위가 주관하고 수비면 기관들과 자생단체들이 후원하는 등 영양군과 영양축제관광재단도 적극 나서며 함께 했지만 수비면민들뿐만 아니라 영양군민들의 공감대를 얻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행정기관의 의존도는 여전히 높았지만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이번 능이버섯축제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가 이뤄진 객관적인 평가는 중요하다. 이번에 얻은 교훈을 밑거름삼아 미흡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수정해 변화시킨다면 지역사회의 경제발전과 함께 관광객들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영양/jang7775@kbmaeil.com

2023-10-09

고딕건축의 통일성을 완성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고딕의 대성당 건축은 서양 중세미술의 결정체라 부르더라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중세가 추구했던 정신적 가치가 대성당 건축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로 완성된 것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정신과 형태와 기술이 한 지점에서 만나 이루어낸 것이 고딕의 대성당 건축이다.중세 고딕의 대성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12세기 중엽 처음 등장한 고딕양식이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파리의 노트르담이 지어질 즈음 고딕만의 안정된 건축 언어를 찾을 수 있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건축의 초석을 놓은 이는 교황 알렉산더 3세(재위 1159∼1181)인 것으로 알려진다. 1163년 교황이 파리에 체류한 일이 있는데 이 때 성당이 지어졌다. 당시 파리의 주교는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라는 사람이었다. 주교는 건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을 했고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의 후원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교회건축은 주제단이 있는 동쪽 부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182년 동쪽 부분의 건축이 마무리 되면서 주제단 아래 지하 크립트에 성유물이 안치되었다. 교회건물의 몸통에 해당하는 주랑과 측랑 공사는 1180년과 1200년 사이 완성되었고 1230년경 내부 주랑의 채광을 확보하기 위해 4층이었던 벽면 구조를 3층으로 수정하면서 넓은 창문들을 설치했다. 주랑과 익랑이 교차하는 교차랑 위로 첨탑이 올라갔고 측랑 외벽 버팀부벽 사이사이 공간에 소예배당이 마련되었다. 소예배당은 측랑에서부터 주제단으로까지 연결되어 있어 평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의 모습이 거대한 배처럼 공간의 통일성을 이루어낸다. 신랑의 천정에는 6분할된 교차형 늑재궁륭이 설치되어 건축의 견고성을 한 층 높여주었다.주제단이 위치한 동쪽 바깥 벽면에 거대한 공중부벽이 설치된 것은 1296년과 1320년 사이이다. 고딕 대성당에 인상적인 외형을 입혀준 공중부벽은 장식적인 요소라기보다 붕괴위험을 낮추기 위한 중요한 건축공법이다. 1258년부터 기존에 협소했던 남쪽과 북쪽 익랑 확장공사가 시작되었다. 익랑의 확장공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가장 눈에 띠는 변화는 남북 익랑 파사드 상부에 크고 경쾌한 장미창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두 곳의 장미창은 서로 짝을 이루며 북쪽은 구약성서의 장면으로 남쪽은 신약성서의 장면으로 장식되었다.1200년경 시작된 서쪽 정면 파사드 공사가 1245년 무렵 마무리되면서 대성당의 장엄한 모습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십자형 구도의 전형적인 5랑식 바실리카 형식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길이가 122.5미터 폭이 12.5m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웅장하다.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면에는 세 개의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다. 각각의 출입문 위에 설치된 팀파늄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중앙 출입문 상당 팀파늄에는 ‘최후의 심판’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으며, 우측에는 성 안나, 좌측에는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나타난다. 출입문 바로 위층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 스물여덟 명이 전신 입상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어 ‘왕들의 회랑’으로 불린다.이 조각들은 프랑스 혁명기 때 모두 파손되었다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다. 왕들의 회랑 위층 중앙에는 지름이 9.6미터에 이르는 대형 장미창이 들어가 있다. 장미창 위로 일련의 기둥과 아치가 고딕의 전형적인 창틀 트레이서리 모양으로 줄지어 있어 파사드의 무게감을 한층 덜어주면서 경쾌한 느낌을 불어 넣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파사드 가장 높은 곳에 20미터 높이의 뾰족한 종탑 두 개가 짝을 이루며 위용을 뽐내야 했지만 아쉽게도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안정적이고 네모진 모양의 종탑이 올라갔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10-09

지질 속 생명의 흔적, 의성 공룡발자국

의성 제오리의 한적한 도로변에는 비스듬히 세워진 절벽 모양의 바위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다. 금성산의 화산활동으로 지질의 위치가 변화된 그 바위 위에는 움푹 파인 동그란 자국들이 무수히 남겨져 있다. 이를 전문가들은 공룡발자국이라 했다. 특히 바위 면적 대비 국내 최대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산지와는 다른 특별한 면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일반인 막눈으로는 동그란 알 모양의 자국을 제외하고 발자국처럼 생긴 형태를 구분해 낼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그 많다는 공룡의 보행렬도 글로 된 지식만 확인하고 실물과 연관하지 못했다.제오리 공룡 발자국은 의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질 명소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래도 공룡발자국 화석산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첫 케이스이기도 하고, 1천600㎡라는 작은 면적에 총 384개의 발자국이 고밀도로 남겨져 있으며, 조각류 발자국이 우세한 다른 지역의 화석산지에 비해 용각류가 더 많이 남겨진 희귀한 화석산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로변에 위치하여 지나가다가 잠깐 둘러보기에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공룡은 크게 도마뱀의 골반(용반류)과 새의 골반(조반류)으로 형태를 구분한다. 용각류와 수각류는 도마뱀 골반이고, 조각류는 새의 골반에 속한다.용각류는 주로 4개의 다리로 걸으며, 긴 목과 긴 꼬리·커다랗고 뚱뚱한 몸에 비해 엄청나게 작은 머리를 가진 초식 동물이다. 기린처럼 목을 길게 빼고 잎을 먹을 수 있게 신체가 발달하였다. 쥐라기와 백악기에 광범위하게 퍼졌다가 멸종되었다. 수각류는 주로 이족 보행을 하는 육식형 공룡으로 트라이아스기 말에서 백악기 말까지 생존하였다. 어류나 벌레를 잡아먹는 종·타조처럼 빠른 달리기가 가능한 종·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포식자·벌새처럼 작은 종·악어와 같은 종 등 매우 다양한 종이 이에 속한다. 하지만 생김새만 보면 조반류가 용반류에 비해 더 창의적인 형태를 지니는 듯하다. 조반류는 예전에는 조각류·검룡류·곡룡류·각룡류·후두류로 나누었다. 좀 직관적인 분류명들이라 쉽게 그 특징을 추측할 수 있다. 조각류는 쉽게 얘기하면 새의 튼튼한 다리와 오리주둥이를 닮은 공룡류를 칭한다. 두 발과 네 발을 모두 사용했으며, 이빨이 발달하였다. 검룡류는 꼬리가 검 같거나 검처럼 생긴 침이 있는 종류로 뒷다리가 길고 머리가 작고 목이 매우 짧다. 곡룡류는 등과 옆구리에 가시가 있고 갑옷이나 곤봉 모양의 꼬리를 가진 공룡이다. 각룡류는 삼각형 모양의 큰 머리뼈와 굵은 목 그리고 입이 앵무새 부리를 닮았거나 뿔이 있다. 공룡 중 가장 늦게 등장하였고 백악기 후기에 생존했었다. 후두류는 일명 박치기에 특화된 공룡으로 머리뼈가 엄청 단단하다.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에서는 총 35개의 보행렬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19개 보행렬은 용각류의 것이고, 14개의 보행렬은 조각류의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수각류의 발자국도 조금 남겨져 있다. 이렇게 적은 면적에 많은 발자국이 남겨져 있는 것은 서식하던 공룡들이 무리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제오리 인근에서는 만천리 아기공룡발자국 화석산지도 발견되었다. 2008년 제오리 인근을 조사하다가 가로 5미터·세로 7.5미터의 바위에 찍힌 발자국을 확인하였다. 총 20마리의 공룡들이 8개의 보행렬을 그렸는데, 총 126개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이 화석은 아기공룡의 보행렬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그 보행렬의 길이가 4.35미터로 세계 최장의 길이라는 점도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용각류 아기공룡의 발자국으로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심층 조사에 의해 두 발로 빠르게 걷다가 잠시 멈춘 후 다시 네 발로 천천히 걷는 조각류 아기공룡의 발자국으로 밝혀졌다. 같은 노면에 수각류와 용각류의 발자국도 함께 있어 당시 공룡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또 제오리 인근 탑리에서는 울트라사우루스 골격 화석이 국내 최초로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남대천 일대에 발가락 마디까지 잘 보존된 공룡발자국 화석산지가 발견되었다. 남대천의 발자국은 20여개의 초식공룡과 8개의 육식공룡으로 추정하고 있다.이렇게 공룡발자국 화석산지가 많은 의성은 공룡들의 세계를 상상해보기에 좋다. 또한 조문국박물관과 고분군, 금성산 칼데라와 빙계계곡과 같은 다양한 지질 환경 등 생각보다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관리나 제반 시설이나 일반인을 위한 설명 등이 매우 미흡하다. 막상 일반인이 찾아가도 이해가 가지 않고 그 가치를 파악할 수 없다면 보존이나 보호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 막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고 체계적인 보조시스템이 구축되길 기대해 본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10-09

명품 축제 보여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문화란 한마디로 꼬집어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획득하는 법과 도덕, 신념, 예술, 기타 여러 행동양식을 총괄한 것이라 정의했다. 인류의 발전은 문화의 발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나라와 민족에 따라 문화는 각기 독특한 방법으로 전승된다. 특히 전통문화는 그 민족의 지나온 삶의 형태란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날로 존중되는 세상이다. 800년이 넘는 하회마을별신굿 행사를 현대적 양식으로 축제화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8일간 행사 끝에 9일 폐막했다. 하루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리는 대성황을 이루면서 27년째 맞는 탈춤페스티벌은 이제 세계인의 축제로 입지를 잘 다져가고 있다.전국의 많은 도시가 각 지역 특색을 담은 축제를 앞다퉈 벌이고 있지만 안동국제탈춤축제만큼 한국적 전통과 한국인의 삶을 잘 표현한 축제는 찾아보기 드물다. 특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탈을 기반으로 한 축제로서는 전국 유일하다. 행사 때마다 국내외 탈공연단까지 참가해 이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축제 면모를 과시한다.올해는 구 안동역 부지를 중심으로 원도심 일대까지 축제 공간을 넓히고 축제의 킬러콘텐츠인 대동난장 프로그램을 통해 탈을 쓴 사람이 직접 축제에 참여토록함으로써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고 한다. 무엇보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옴으로써 지역축제가 갖는 경제적 성과를 거둔 것은 지역축제로서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1997년 전통문화 계승과 재현을 통해 문화도시로서 자부심을 높일 목적으로 시작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이제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하는 축제가 됐다. 또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자타가 인정하는 축제다.이제는 세계가 주목할 글로벌 축제로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릴 만큼 한국적 문화와 전통이 풍부한 곳이다. 안동이 지닌 고유 문화특성을 바탕으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이끌어간다면 안동이 만들어 세계인이 즐기는 세계적 축제가 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2023-10-09

한글의 맛

홍석봉 대구지사장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정철의 사미인곡 일부다. 정철이 지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관동팔경은 가사문학의 극치로 꼽힌다.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동방의 이소요,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이 3편뿐”이라고 극찬했다. 사미인곡 등 3편은 우리나라의 이소(離騷)지만, 한자로는 쓸 수가 없다. 구전과 한글로 전해질 뿐이다. 어떤 이가 칠언시로 ‘관동별곡’을 번역했지만, 아름답게 될 수가 없었다. 내용은 전달할 수 있었지만, 원작의 표현 맛이나 묘미가 살아나지 않았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소서….’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 해방의 기쁨을 표현한 ‘해’라는 시의 일부다.국민이 애용하는 시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는 말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라는 표현은 영어로도, 불어로도, 그 어떤 언어로도 그 속에 담긴 애틋한 마음과 벅찬 감흥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우리 글의 묘미는 한글로 표현했을 때 그 깊이를 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인도의 승려인 구마라습은 “천축인의 찬불사는 극히 아름답지만 이를 중국어로 번역하면 단지 그 뜻만 알 수 있지, 그 말의 오묘한 뜻은 알 수 없다”고 했다.한글의 감칠 맛은 아무리 외국어로 번역을 잘 해도 그 오묘한 뜻과 맛은 표현하기 어렵다. 시어로 남아있는 한글의 아름다움이 더욱 그렇다. 한글 파괴와 줄임말이 난무하는 한글날이 애닯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0-09

중도층의 표심이 두렵지 않은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제22대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모두에게 사활이 걸린 선거다. 여당이 과반을 얻지 못하면 국정의 동력을 잃고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할 것이며, 야당이 대선·지선에 이어 총선까지 패배한다면 최후의 버팀목인 입법 권력마저 상실하기 때문이다.누가 승리할 것인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중도층의 표심을 잡는 정당이 이긴다. 총선은 결과가 뻔한 영남과 호남, 그리고 여야 각각 30% 안팎에 묶여 있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변수가 되지는 못한다. 총선의 승패는 전체 지역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도권에서 갈릴 것이며, 이 때 30%에 달하는 중도층의 선택이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다.중도층은 어떤 사람들인가? 레이코프(G. Lakoff)는 “이슈에 따라 보수적 또는 진보적으로 투표하는 이중개념주의(biconceptualism) 소유자”라고 했다. 이들은 ‘이념이 아니라 이슈’에 따라 움직이는 ‘스윙보터(swing voter)’들이며, ‘무지한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현명한 실용주의자’이다. 정치팬덤들과는 달리 진영정치에 구속되지 않고 이슈와 상황에 따라 합리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그럼에도 여야의 정치적 극단주의(political extremism)는 갈수록 태산이다. 윤 대통령은 여당 연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역설했고, 국무회의에서는 장관들에게 ‘전사’가 되어서 “싸워 달라”고 주문했다.대통령이 요구한 ‘이념전쟁’에 지지층이 동의할지는 모르지만, ‘실용’을 중시하는 중도층은 비토(veto)그룹으로 돌아설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 2023년 9월22일) 중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평가(59%)가 긍정평가(32%)의 2배 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야당의 극단주의는 또 어떤가? 이재명 대표 역시 ‘개딸’에 의존하는 팬덤정치로 일관해왔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국회의 체포동의안 통과에 격분한 개딸들은 비명계 의원들에게 욕설은 물론 살해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팬덤에 편승하는 극단의 정치가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는 있겠지만 중도층의 마음을 잡을 수는 없다.이처럼 대통령의 이념 리스크와 야당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모두 총선에 부담요인이 되고 있다. 중도층은 사법 리스크에 기대어 반성 없는 여당도, 이념 리스크에 기대어 성찰 없는 야당도 싫어한다. 권력자의 입만 쳐다보는 ‘친윤’과 ‘친명’의 똑같은 편향적 행태, 그리고 지지자들의 목소리만 듣는 ‘뺄셈의 정치’로서는 중도 확장이 불가능하다.따라서 총선을 앞둔 여야는 중도층을 잡기 위한 혁신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여당은 ‘용산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당정관계를 재정립하는 동시에, 이념보다 실용을 모색해야 하고, 야당은 ‘친명’과 ‘비명’의 갈등을 극복하는 한편, 팬덤정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 문제는 총선 공천권을 쥐고 있는 여야 최고 권력자의 목에 누가 먼저 ‘혁신의 방울’을 달아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2023-10-09

낙동강물과 신공항은 公共材임을 인식하길

대구취수원 오염문제와 TK신공항 물류단지 논란으로 촉발된 대구·구미간의 갈등이 심각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주 구미5국가산업단지 내 공장에 무방류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환경부에 시설가동 중지명령을 요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곳에 입주한 양극재 기업과 협력업체에 “공장 가동 시 낙동강 유역에 수질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도록 객관적 검증이 가능한 방법으로 무방류시스템을 도입하라”는 내용의 등기를 발송했다. 대구시의 이러한 조치는 구미시와의 취수원 갈등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4월 대구시와 구미시는 구미 해평취수장을 거친 하루 30만t의 물을 대구시에 공급하는 협약을 체결했었지만, 두달 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구미시장이 바뀐 후 이 협약이 파기됐다. 구미시는 이와 관련 지난 8일 보도자료를 내고 “대구시가 법적 근거도 없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무방류시스템 설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불법적”이라며 비난했다. 구미시는 “무방류시스템 도입없이도 수질오염물질을 기준에 맞게 농도를 낮추어 배출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최근 대구시와 구미시는 TK신공항 물류단지 조성문제를 놓고도 부딪혔다. 구미시가 반도체 등 지역 산업 발전과 기업유치를 위해 신공항 건설과 별개로 물류단지 조성과 고속도로 건설을 단독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홍준표 대구시장이 SNS를 통해 “구미시장이 물 문제로 분탕질을 치더니 이번에는 대구경북 100년 사업까지 분탕질치고 있다”며 비판한 것이다.지난 1995년 민선단체장 시대가 개막한 후, 각종 사안을 둘러싼 인근 지자체간의 분쟁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지역발전을 위한 경쟁이라는 긍정적 측면으로도 볼 수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 ‘지역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갈등이다. 낙동강 취수원이나 TK신공항 물류단지는 이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미래가 달린 중요한 공공재다. 낙동강물이 어떻게 특정 지자체의 소유가 될 수 있나. 이런 공공재를 두고 지자체간에 유불리를 따지며 갈등을 보이는 모습은 대구경북 미래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23-10-09

포항공무원 횡령사고, ‘내부통제 빈틈’이 원인

후진국 관공서에서나 일어날 법한 포항시 공무원의 횡령사건과 관련해, 공직사회 내부통제시스템 부실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포항시 6급 공무원 A씨는 시유지를 감정 평가액보다 적은 금액에 매각하는 방법으로 수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달 26일 구속됐다.포항지역사회에서는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실무직원이 혼자서 어떻게 거액을 횡령할 수 있느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결제라인을 거쳐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공무원이 임의대로 공인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시유지를 매각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찰도 혼자서 범행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포항시의 경우 공유재산 매각 업무는 과장 전결이다. 시유지 감정가는 공인감정평가사 2명이 평가한 후, 산출 금액들의 평균가로 정하게 돼 있다. A씨는 시유지 감정가가 38억1천여만원으로 산출됐지만 30억6천여만원에 매각했다. 7억4천여만원이나 낮은 가격에 매각한 것이다.또 다른 의혹은, A씨가 포항시 계좌로 입금된 매각대금 가운데 5억6천여만원을 어떤 방법으로 착복할 수 있었느냐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보면 포항시 회계시스템의 경우, 담당 공무원이 마음만 먹으면 시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회계관리시스템이 총체적으로 허술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사결과 A씨는 지난 2017년부터 5년간 시 재산 매각 업무를 담당하면서 비리를 저질렀지만, 상급자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서 내 감시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번 횡령사건으로 포항시정에 대한 시민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공직사회의 도덕불감증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고, 내부통제시스템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외부통제와는 달리 내부통제는 자율적인 통제방법이다. 그래서 어떤 집단이든 내부통제가 허술하면 조직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비리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 포항시는 이번 횡령사고에 대해 철저히 분석해서, 과학적이고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새로 만들길 바란다.

2023-10-05

한글주간, 우리말 정체성 회복의 시간으로

문화체육관광부는 4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간을 ‘한글주간’으로 정하고 각종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한글날을 기념하고 세계인이 참여하는 문화축제를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다.경북도도 같은기간 동안 ‘경북도 한글사랑 주간’을 운영하면서 경북도 한글대잔치, 한글문예대전, 한글유적지 탐방 등의 행사를 벌이고 있다.올해로써 한글은 창제 577돌을 맞는다. 세종대왕 25년인 1443년에 완성된 한글은 3년간 시험기간을 거쳐 1446년 반포됐다. 우리 문자가 없어 남의 글자인 한자를 빌려 쓰던 백성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세종대왕의 각고 노력으로 만들어졌다.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언어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 문맹율이 제로에 가까운 것은 한글의 간결함과 과학성 때문이다. 컴퓨터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한글은 일본어나 중국어보다 7배 빠르다. 글자가 없으면 지식의 축적이나 문화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 한자를 빌려 쓴다는 것은 불편뿐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가 없다. 생활의 불편과 더불어 문화발전에도 큰 장애다.한글의 우수성에도 우리 생활 속에서는 여전히 외래어가 판치고, 잘못된 한글 사용으로 우리나라 말의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는 사례가 많다. 글로벌 시대라는 이유로 꼭 외래어를 써야하는지 한글날을 맞아 되돌아볼 문제다.코로나 팬데믹이나 위드코로나를 대유행이나 공존 등의 우리말로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거리의 간판이나 아파트명, 심지어 국제화란 이유로 회사명에도 외래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또 비속어나 신조어 등으로 한글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일도 잦다. 중고생 10명 중 6명이 습관적으로 줄임말과 신조어를 사용한다는 조사도 있다. 청소년의 잘못된 한글 사용이 장차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아찔하다.한글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한글 존중이 더 필요하다. 나라의 정체성은 언어와 문자에서 비롯된다. 한글의 날 반짝 한글 사랑으로 끝나지 말고 한글 사용에 정부의 더 적극적 노력이 있어야겠다.

2023-10-05

민심이 천심이라고?

홍석봉 대구지사장 고염무(顧炎武)는 천하와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분하고 ‘나라를 지키는 것은 그 군주와 신하가 민생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 되지만 천하를 지키는 것은 지체가 낮은 필부에게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고 했다. 고염무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원을 지배하던 혼돈의 시기에 활동하던 사상가다. 당시 관리와 귀족들은 청나라의 점령과 악행에 분노했다. 반면 일부 식자층에선 명나라의 멸망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을 찾기 위해 인문학적 성찰을 시작했다. 그 화두의 중심이 고염무의 ‘천하흥망 필부유책’이었다. 중국 사회의 자각운동의 시작이었다.영국 출신의 마이클 브린 전 외신기자 협회장은 ‘조작 여론조사가 먹히는 요지경 나라’라는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법이 아닌 야수가 된 인민이 지배한다’고 설파했다. 한국은 민심에 따라 정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민중에 대한 경고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죽인 이도 무지한 민중들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조익순 전 고려대교수는“과거 조선은 양반들 때문에 망했으나 지금은 민중이라는 탈을 쓴 좌익 빨갱이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그리스, 로마와 같은 한때 세계 최강의 나라들이 멸망한 이유도 바로 내부로부터의 붕괴 때문이었다고 했다. 정신적 타락과 사회질서의 붕괴로 자기결정 능력을 상실한 것이 그 근본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독일의 한 경제신문은 최근 “오염처리수가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음에도 많은 한국인이 공포에 떨고 있고 야당인 민주당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광우병, 사드 전자파,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우리 사회가 심한 홍역을 앓았다. 좌파 세력의 선동이 원인이다. 그 피해는 엄청나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지지율이 줄곧 30%대에 머물고 있다. 좌파와의 싸움을 밀어부치고 타협하지 않는 정치력 탓이 크다. 하지만 좌파 세력들의 선동 및 시위와 무관하지 않다. 나치 독일의 선전가 괴벨스는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중국 축구를 응원한 포털 다음과 드루킹 사건에서 보듯 네티즌과 정치세력에 의한 여론조작이 심각하다. 거짓과 진실이 혼재된 상황 속에 거짓 정보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필부들에겐 더욱 어렵다. 필부는 부하뇌동하기 마련이다. 절제되지 않고, 무책임한 민중과 민심은 자칫 망국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거기에 집단 광기까지 더해진다면 위태롭기 짝이 없다. 한때 TV를 바보상자라고 칭한 적이 있다. 민중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돌려놓고 무디게 만들어 놀이와 유흥에 빠지도록 했다. 정치인에게 민중의 각성은 위험하다.여론조사 전성시대다. 하지만 정치 여론조사는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 없다. 침묵하는 다수의 여론은 반영되지 않는다.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유다. 그저 추세만 확인하는 데 그치는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민심은 천심’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민심은 곧 정의’라는 믿음이 허망하게 깨지고 있는 요즘이다.

2023-10-05

청소년 비만

우정구 논설위원 비만이란 체내에 지방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질병을 일컫는 말이다. 체중이 정상 범위보다 높지만 근육량이 많고 체지방률이 낮은 경우는 비만이라 하지 않는다.과거 먹을 것이 부족했던 사회에서는 비만인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비만 자체가 부와 여유로움의 상징으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살이 찐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 비만율은 1998년에는 26% 정도였다. 이것이 2005년 30%를 넘어섰고, 2020년에 38.3%였으나 코로나 영향으로 2021년에는 37.1%로 감소했다. OECD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비만인구는 OECD 평균의 4분의 1수준으로 매우 낮다.한자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국가들은 서구에 비해 비만 정도가 낮다. 채식위주 식습관을 가진 베트남은 세계적으로 비만이 가장 낮은 나라다.문제는 비만이 불러오는 질병에 있다. 고열량 저영양 가공식품이나 음료 등을 즐겨 마시면 당뇨나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서구화된 식생활에 익숙해지면 고도비만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우리나라 청소년의 비만이 늘고 있어 부모들의 경각심이 요구된다는 소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비만으로 진료받은 중학생이 4년전보다 3.1배 늘었고, 또 같은 기간 20대 청년층에서는 당뇨 환자수가 4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인의 대표적 길거리 음식인 고당분의 탕후루같은 식품류가 청소년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한다. 청소년기 비만 가볍게 보다가는 큰코다칠 일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10-05

‘같아요’ 증후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언제부턴가 말끝마다 “같아요”를 남발하는 말버릇이 유행하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대다수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너무 슬픈 것 같아요”, “너무 맛있는 것 같아요” 따위의 말투를 입에 달고 있다. 자신의 감정이나 체험을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는 습관도 문제지만 어법에도 맞지 않는 말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현상이 일반화 되는 것은 일종의 증후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같다’는 말은 ‘다르지 아니하다, 전과 변함이 없다’는 뜻의 형용사다. 그리고 ‘~ㄴ 것, ~는 것, ~ㄹ 것, ~을 것’ 등의 뒤에 쓰여서 추측이나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기도 하고, ‘미루어 생각할 때나, 생각이나 느낌을 듣는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아니하도록 부드럽게 표현하고자 할 때’도 쓰인다. 그렇듯 어엿한 우리말이지만 부적절하게 남용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너무 좋은 거 같아요”는 어법에 맞지 않는다. ‘너무’라는 부정적 의미의 부사도 적절치 않지만, ‘아주 많이 좋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에는 ‘같아요’라는 추측이나 불확실한 짐작을 나타내는 형용사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런 말이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통용된다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상식적인 수준의 인식도 없다는 걸 의미한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의 교양과목으로도 국어를 배우면서 우리말에 대한 그 정도의 상식도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국어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같아요’라는 말투가 젊은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에는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주대학교 김재왕 교수는, 첫째로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잘라 말하는 것은 각박하다는 생각 때문이고, 둘째는 젊은 세대들의 자신감 상실·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자세·책임을 피하려는 성향 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가 있고, 셋째로는 사고력의 퇴화를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넘쳐나는 인터넷 정보, 참고서 수준의 알찬 교과서, 유려한 영상교육, 풍부한 참고서 등 학습 환경의 개선으로 표면적인 문제해결능력이나 수리능력은 향상되었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리분별능력, 응용능력 및 언어표현능력 등은 오히려 퇴락한 것’이라는 설명이다.사회적·심리적 요인이 언어의 혼탁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역으로 혼란스럽고 천박한 언어가 청소년들의 정서나 심성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한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올바른 언어생활이 중요하다. 올바른 언어가 올바른 생각을 갖게 하고, 올바른 생각에서 올바른 행동이 나오기 마련이다. 공기의 오염, 토양의 오염, 바다의 오염 못지않게 언어의 오염도 우리 삶을 해치는 공해라는 각성이 일어야 한다.특히나 요즘은 좌파 정치인들과 동조하는 극렬 팬덤이 쏟아내는 온갖 거칠고 사악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그런 말들에 오염되지 않고 올바른 언어습관을 갖도록 교육현장에서 각별한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 한글날을 앞두고 해보는 쓴소리다.

2023-10-05

장묘 문화가 바뀌고 있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이번 추석에도 가족묘를 찾아가 술 한 잔씩을 정성스레 올렸다. 조모님은 파주의 묘지에, 부모님은 대구의 공원묘원에, 그리고 1년 전 귀천한 동생은 의왕의 납골당에 모셔져 있어서 한 바퀴 순회하듯 마음 경건히 둘러보았다. 그런데 추석 연휴가 길어서인지 성묘객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아 조용한 분위기였다. 기일(忌日)이나 한식날에도 찾아보려 했었지만 추석에 한 번 찾아가는 것도 어려워 묘지관리는 맡기고 있다. 덕분에 산소는 깔끔하게 벌초가 되어 있어 고마웠다.우리의 장묘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유교문화를 전통으로 한 매장(埋葬)도 90년대부터 변하기 시작하여 요즘은 화장(火葬)이 90%를 넘고 포항지역만 해도 81.4%라고 한다. 화장 후에도 납골당에 정갈하게 봉안하기보다는 수목이나 잔디밭에 묻는 자연장(自然葬)이 더 많다고 하니 후손들의 관리 불편에 따른 심정이 조금 묻어있는 것 같다. 산에 봉분을 만드는 일반 매장은 유족의 경제적 부담과 함께 1인 가구와 핵가족의 증가, 고령화 등으로 인해 1년에 한 번도 성묘하지 못하는 죄스러움도 있을 것이고, 수해의 우려와 교통편 등을 생각하더라도 넓은 추모 공원 등에 안치하는 것이 좋아서 앞으로의 장묘문화가 될 것 같다.우리나라의 묘지 면적은 국토의 약 1%이고 매년 20여만 기의 묘가 만들어지고 있어 10년 이내에 묘지공급의 한계가 우려되는 장묘 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예측도 있다. 2001년 제정된 장사(葬事) 관련 법은, 매장은 국토를 잠식하고 자연환경을 훼손한다는 관점에서 화장과 봉안, 자연장을 장려하며 묘지 조성은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약 1천800만 기의 묘지가 있으며 그중 3분의 1 정도가 무연고 묘로 조사되어 각 지방자치단체는 분묘 개장과 이장을 권고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산행하다 보면 산 능선과 아늑한 계곡에서 많은 무덤을 보게 되는데 거의 다 벌초도 되지 않고 손상된 방치 묘소로서 버젓이 큰 비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잘 나가던 집안이었던 같은 데도 돌보는 후손이 없는 듯하며 마음이 아프다. 명심보감에서 읽은 ‘살아서 백 년간 몸을 보전하기 어렵고 죽어서는 백 년 동안 무덤을 보전하기 어렵다(難保百年墳)’는 글귀가 생각난다. 무덤은 명당이어야 한다며 배산임수니 좌향이 어떠니 하며 풍수를 보곤했지만 이제는 세상도 바뀌어 명절 때 벌초하고 성묘하기 위해 교통이 편리하고 경관이 좋은 곳이 명당이 되겠다.점점 화장이 증가하는 추세를 따라 포항시는 2021년에 친자연적 장례문화를 구축하고 편리한 장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으로 추모공원 설립지를 공모했었지만 반응을 얻지 못하였다가 올해 다시 모집한 결과 남부의 장기면을 비롯한 7개 지역이 참여 의사를 밝혀 추진력을 얻고있다. 약 10만 평 규모에 80%는 공원화하고 20%는 화장시설, 봉안시설 등을 갖추어 2025년 3월 개원을 목표로 포항지역의 대표적 명승지로 만들려고 한다.우리의 장묘문화도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사회적 의식 변화로 바뀌어가겠지만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만은 마음에 한껏 안고 가야 할 것이다.

2023-10-05

글로벌 수변도시 금호강르네상스, 첫발 뗐다

포항시 죽장면에서 발원한 금호강은 여러 하천이 영천호에서 합류하고 경산을 거쳐 대구시계로 들어온다. 이 강은 수성구와 동구, 북구, 서구, 달서구 등을 끼고 흐르다 남류해 달성습지 부근에 있는 낙동강과 합류한다.낙동강이 영남의 젖줄이라면 금호강은 명실상부한 대구시민의 젖줄이라 하겠다. 기록에 의하면 금호강은 강변에서 바람이 불면 갈대밭에서 비파(琴) 소리가 나고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금호(琴湖)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이렇듯 원래 깨끗하고 잔잔하던 강물이 한 때는 낙동강 수질오염의 주된 오염원으로 지목될 만큼 수질 오염이 심각했다. 1970∼80년대에는 제대로 된 환경규제가 없어 성서지구와 북구 일대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폐수로 강물이 크게 오염됐다. 이후 대구시 등의 정화 노력으로 전국 오염하천 중 수질개선율 최고의 실적을 달성해 지금은 붕어와 잉어 등이 살 수 있는 3급수로 바뀌었다.대구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금호강 주변을 개발해 대구를 글로벌 내륙수변도시로 조성하고 시민에게는 가장 친숙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 금호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다. 대구경북 신공항이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한 대규모 경제사업이라면 금호강 르네상스는 대구의 얼굴을 바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환경친화적 사업이다. 이 사업에만 5천400억원이 들 것으로 시는 예상하고 있다.GRDP 전국 꼴찌의 대구 불명예를 벗고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핵심 공약사업의 하나란 점에서 시민의 기대감도 크다.대구시가 계획한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의 3개 선도사업비가 내년도 정부 예산에 반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제 이 사업은 내년이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대구시는 확보된 예산으로 동촌유원지일원 금호강하천조성공사, 금호강 국가생태탐방로 조성사업, 디아크 문화관광활성화 사업을 내년에 바로 착공키로 했다. 특히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을 시민들이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의 얼굴을 바꾸는 이 사업의 성공적 완성을 기대한다.

2023-10-04

세리머니의 쓴 맛

홍석봉 대구지사장 농구의 버저 비터는 경기종료를 알리는 버저소리와 함께 성공된 골을 일컫는 말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농구경기에서 버저 비터로 승부가 뒤집히는 일이 적지 않다. 축구 경기에서도 종료 직전 터진 골이 승부를 되돌려 놓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관중과 팬에겐 짜릿한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연장전 종료 직전 터지는 골은 더욱 극적이다.1970년대 고교야구의 명문인 군산상고는 9회말 역전극의 대명사였다. 1971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의 짜릿한 역전우승은 군산상고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의 절체절명의 상황에 극적인 안타를 터뜨려 역전 우승의 기적을 만들었다. 여기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탄생했다. 이후 군산상고는 고교야구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면서 여러 차례 1점 차 역전승을 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했다.육상 경기와 스케이트 경기에서도 막판 불꽃같은 질주로 승부를 뒤집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스포츠 경기에서 막판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하는 뒤집기 승부는 그만큼 팬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준다. 상대방으로 봐선 막판 방심했다가 천려일실이 된다. 그런 일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벌어졌다. 막판 1위를 자신하고 세리머니를 하다가 뒤따라온 선수에게 지고 마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한국 남자 롤러스케이팅 대표팀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3000m 계주에서 결승선 통과 직전 우승을 확신한 만세 세리머니를 하다 간발의 차로 대만에 추월 당해 금메달을 놓쳤다. 딱 0.01초 차이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을 잊고 방심한 탓이다. 계주 마지막 주자의 방심의 결과는 메달 색깔을 바꿔놓았다. 매사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남겼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0-04

우리 글엔, 자존심도 없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여기서부터 원스푸드(Once Food)거리입니다’. 무슨 말일까. 관광지로 제법 이름난 국내 어느 도시 사거리에 걸린 현수막이다. 한글로 또박또박 적힌 글이라 읽을 수는 있었지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군민 플로깅챌런지’라 큼지막하게 적은 현수막도 보인다. 영문자의 도움도 없어 아예 그 뜻을 가늠조차 못하겠다. 어느 병원은 아예 ‘Moocheok Joeun Hospital’이라 상호를 내걸었다. 찬찬히 읽어 ‘무척좋은병원’이라 새기겠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떨떠름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글인가 영어인가. 한국인가 미국인가. 민족의 명절 추석을 지내면서, 우리는 ‘우리의 것들’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아연해 졌다.‘Special Live Dinner Buffet’라고 광고를 하거나 ‘Forest Camping BBQ’라 버젓이 적어 알린다. ‘프레시랍스터’와 ‘핑크새먼디쉬’가 맛있는 집이라며 손님을 모은다. 그런 표현을 보면서도 별 생각없이 이해하고 넘기는 소비자들도 문제가 아닐까.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우리글과 우리말이 무너져 내린다. 언젠가 로스앤젤레스 등 외국의 거리를 한국말 간판으로 물들인다더니, 이제는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우리말이 사라져 간다. ‘원스푸드’가 음식점에서 음식물을 두 번씩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니 그 뜻은 오히려 고맙다. ‘플로깅’도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도 줍는 캠페인이었다니 곱지않게 보았던 마음이 오히려 미안하다. 관광지라지만 이왕 한글로 적을 거였다면, 보다 새기기 쉽게 표현할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한가위 명절을 지나며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보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한글날이 다가오는데, 중국글자 한자(漢字)를 힘들어 했던 백성들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던 세종 임금의 마음도 다시 새겨본다. 우리가 우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말과 한글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업수이 여길 때 남들은 우리를 또 얼마나 하찮게 여길까. 멋진 우리말을 버젓이 두고 외래어와 외국표현에만 익숙해지면, 우리말과 우리글은 또 얼마나 빠르게 사그라들까. 때로 습관과 태도는 의지적으로 지켜야 한다. 대상이 우리만의 것이었을 때, 그걸 지킬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 세계화와 글로벌이 대세라 해도, 우리만의 고유한 멋과 맛은 소중하게 간직하며 지켜낼 때 빛이 나지 않을까.한가위 보름달은 어디에도 떴지만, 온겨레가 명절로 섬기기는 우리뿐이 아닐까. 정겹고 아름다운 전통은 지켜야 하고, 몸에 배어 습관이 된 문화는 키워야 한다. 밖으로부터 흘러든 문화와 영향도 어렵지 않게 받지만, 우리의 모습과 부딪힐 땐 잘 생각해야 한다. 때로 우리보다 나은 무엇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문화 안에 깃든 정서와 흐름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무엇이라도 함부로 가벼이 여겨 쉽사리 팽개치는 잘못은 없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작은 나라지만 문화적 정체성과 경제적 영향력은 간단하지 않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소중히 여기고 다루어야 한다.

2023-10-04

대통령측근 TK총선 출마, ‘落點’은 안돼

추석 연휴가 지나자마자 대구·경북(TK) 정치권이 총선 모드로 접어든 것 같다. 내년 4·10 총선을 6개월여 앞두고 국민의힘 공천과정에 주요변수가 될 대통령실 TK출신 참모들의 출마설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대통령실에서 내부조사를 한 결과, 30명 정도의 참모진이 총선 출마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TK지역에선 이병훈 행정관(포항남울릉 출마설)과 김찬영 행정관(구미 출마설), 조지연 행정관(경산 출마설) 등이 거론된다. 유동적이긴 하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고 지역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사직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수석 비서관급이나 최측근 참모들은 10월 국정감사와 11월 예산안 처리 일정이 있기 때문에 내년 1월까지 순차적으로 사직할 것으로 점쳐진다. 공직자가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할 경우 총선 90일 전인 1월 11일까지 사직해야 한다. TK지역에선 강명구 국정기획비서관(구미을 출마설), 강훈 국정홍보비서관(포항북 출마설), 전광삼 시민소통비서관(대구 북갑 출마설)이 출마 후보군이다.추경호(달성) 경제부총리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총선 출마를 공식화할 수 있다. 내각에선 추 부총리 외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원의 출마가 유력하다.역대 정권에서도 총선을 6개월쯤 앞둔 시점이 되면 내각이나 대통령 참모들의 출마설이 이슈가 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대통령 측근들의 출마설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았던 적은 없었다. 여소야대 정국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보수진영에서 자칫 ‘용산 리스트’를 둘러싼 파열음이 커질 경우 총선 국면의 대형 악재로 비화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대통령실은 “용산참모들이 TK지역에 출마하더라도 전략공천은 없다”고 밝혔지만, 여당 내부에선 대통령실과 여의도 간 공천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당의 TK지역 전략공천은 자칫 전국적인 쟁점으로 비화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관리돼야 한다.

2023-10-04

병원 순례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뭐 딱히 심각하게 아픈 데가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아프진 않다고 할 수도 없다. 큰 병을 진단 받은 것도 아니다. 죽을 때까지 복용해야 할 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웠다 일어나면서 아이고 소리를 낸다든지, 허리 다리 머리, 릿자로 끝나는 몸 어딘가는 다 조금씩 성치 않다. 날씨로 치자면 쾌청하지 않은 구름 좀 낀 흐림. 가장 좋은 처방은 열심히 운동하는 거라는데, 그게 잘 안된다. 집 가까이 아름다운 연못이 있어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데 그걸 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다. 아파트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다. 산책로가 잘 닦여있다고 하는데, 글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남편이 운동하라고 사준 자전거며 운동기구도 3일 만에 구석자리 차지다. 그러니 그저 아프면 병원엘 간다. 게으름을 탓해야 하겠지만 아직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크게 아프진 않아서인가. 어쨌든 늙었으니 성치 않은 구석이 하나둘씩 생기긴 한다.얼마 전 어지러움증이 있어서 병원엘 갔더니 이석증이란다. 아침 6시 30쯤 갔더니 예약 마감. 다음 날 아침 5시에 가서야 겨우 접수를 할 정도로 용하다고 소문난 병원이라선지 매주 정기진료시간을 예약해도 보통 2시간은 기다려야 진료를 본다. 심하진 않지만 장기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매주 가고 있다. 스무 개도 넘는 치료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부산, 김천, 봉화에서 전날 밤에 와 대기실에서 쪼그려 밤새워 기다린 분도 있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대구 아들딸네 집에 묵고 왔다는 노인들이 허다하니 운전해서 10여 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 나는 명함도 못 내민다. 집 가까이 믿을 만한 병원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2년마다 하는 정기검진이 나이가 들면서 항목이 더 추가된다. 골밀도 검사를 하니 뼈 나이가 실제 나이보단 젊지만 예방 차원에서 열심히 운동하라는 처방이 내린다. 열심히 햇볕 쬐며 운동하면 될 터이다. 게을러터진 나는 운동 대신 비타민D 주사를 3개월마다 맞으러 병원엘 간다. 치과 진료도 일 년에 두 번, 나의 달력엔 이렇게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할 병명과 예방주사 주기가 눈에 띈다. 다음 달엔 고령자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나보다.생로병사. 인간이라면 반드시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음을 겪어야 한다는 인생사고(人生四苦). 나서 세월과 함께 늙음은 자연스럽다. 그저 추하지않게 늙으려 노력할 따름이다. 죽음 또한 거스를 방법이 없다. 네 가지 고통 중 세 가지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70 가까운 나이 되어 병원 순례를 하게 되니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병고(病苦)가 아닌가 싶다. 병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면 무병장수할까마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병원 가는 일이다. 의술 좋아졌겠다 병들면 고치면 되고, 보험 들어있으니 돈 걱정도 크게 하지 않아도 되니 지금은 유병장수시대라고들 한다. 병 있어도 오래 살 수 있다는 말인데 난 싫다.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무병하다면 차라리 단명하고 싶다. 병치레는 싫다. 그럼 무조건 걸으며 운동해야 할 텐데 어쩔래? 자문한다.

2023-10-04

시월 속으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석연휴에 임시휴무까지 더해져 장장 6일간의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니, 가을맞이가 한결 넉넉해진 것 같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고유한 민속명절인 추석과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개천절까지 연휴가 이어져서, 사람들의 이동과 활동이 많아지고 만남과 어울림의 모습들이 분방하게 보인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이나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에게는 황금연휴를 보장받지 못하는 ‘남 얘기’로 휴식권의 사각지대가 발생돼 아쉽고 마음 편치 못한 것도 사실이다.시월이 열리면서 정갈한 햇살 아래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고 초목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가는 본격적인 가을날로 접어들고 있다. 억새는 긴 목을 뽑아 은빛 환호를 하고, 잎새는 바람결에 차츰 황록색을 띠거나 홍조의 빛깔로 손 흔들며 가을을 반기고 있다. 쾌청한 날씨에 기온마저 적당하니 어디를 가거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조요(照耀)하고 푸근하기만 하다. 긴 연휴에 한동안 뜸했던 곳을 찾아 적조했던 사람들과의 해후와 소통은 반가움을 넘어 인연의 소중함을 보듬는 각별함이 아닐까 싶다.‘꽃 피고 지는/아름다운 세상에서/살아있는 모든 날이/기쁘고 감사하지만//10월의 하루 하루는/더없이 행복한 시간,/차츰 단풍 물드는/나뭇잎들을 바라보며//내 작은 가슴도/고운빛으로 물들어 가고/높푸른 하늘 우러러/마음은 겸손이 평안하다.//거저 받은 목숨이니/아무런 자랑도 교만도 없이/인생길 소풍가듯/즐거이 걸어가다가//이 몸 또한/한 잎 낙엽 되면/그 뿐인 걸’ - 정연복 시 ‘10월의 노래’ 전문조금은 느긋해진 마음으로 바람따라 길을 나섰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쑥부쟁이가 흐드러진 들길을 지나 발길 닿는대로 찾아가서 반가운 분들을 두루 만났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사람 만나는 것 또한 좀체 물리지 않은 일이라 해도, 늘 무엇인가에 쫓기 듯 다급하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주변의 친인척이나 친구, 지인 등과의 연락이나 안부를 제대로 못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다반사가 돼버린 듯하다. 하지만, 너무 뜸하거나 소원해지면 수풀 우거진 오솔길 마냥 교감의 길목이 막히거나 끊어질 수도 있기에 적당한 소통과 왕래가 있어야 마음의 다리가 줄곧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모처럼 만나고 대면하는 모든 분들은 정겨움과 오붓함이 한결 같았다. 추석인사를 겸해서 이런저런 근황과 정담을 나누고 담소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굴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서먹함을 털고 살가움을 누리기에는 충분했다. 더욱이 재회의 증표(?)마냥 근사한 팔찌를 선물로 주거나 향기로운 차에 다식(茶食)을 내주고 손수 농사 지은 고구마를 선뜻 건네주는 인정 어린 마음은 두고두고 미덥고 고맙기만 했다.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은 저절로 찾아오기 마련(近者說遠者來)이다. 가까울수록 신의를 지키고 배려와 아량으로 챙겨주게 되면, 교분은 더욱 두터워지고 정의(情誼)는 시월의 단풍마냥 색조 곱게 물들 것이다. 세상만사 자신이 하기에 달린 것이다.

202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