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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맥주 한 모금, 이스파한 청년의 소박한 일탈

이란 사람들은 “이스파한은 세상의 절반(Isfahan Nesf-e Jahan)”이라고 자랑스레 말한다. 이는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도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그대로 드러낸 문장이다. 수도 테헤란을 이틀 여행한 후 200여 개에 가까운 모스크가 멋들어진 모습을 뽐내는 `이란 최고의 관광지` 이스파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수백 년 전 만들어진 여러 개의 근사한 교량과 그 옛날 영화를 짐작케 하는 공중목욕탕까지 즐비한 곳. 유럽 각국의 시인들조차 그 번영의 역사와 휘황한 이슬람 문화유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도시로.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한없이 수줍고 순진한 친구 `모하메드`술 대신 진한 홍차와 물담배로 밤 늦도록 국경없는 우정 나눠이스파한에 도착한 바로 그날 해질 무렵, 이맘광장 내부의 모스크 앞에서 덩치가 산만 한 청년을 만났다. 다소 험상궂다고 해도 좋을 외모와는 달리 한없이 부끄러움을 타는 그의 이름은 이란에선 흔하디흔한 모하메드. 독일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에서 일한다는 그가 기자에게 “친구가 돼달라”고 청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낯선 곳에서 현지인과 친구가 된다는 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기에. 이란식 물담배 `갤리언`과 엄청난 양의 설탕을 넣은 홍차를 파는 가게로 나를 안내한 모하메드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가 경험해본 외국이라곤 회사일 때문에 이틀 출장 다녀온 독일이 전부. 그렇기에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기자가 들려준 여행 경험담이 인상 깊고 고마웠던지 “내일 내 친구들과 만나 인사라도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이 역시 고마운 제안이었다. 다음 날 만나 악수를 나눈 모하메드의 친구들 역시 순박했다. 또한, 처음 보는 외국인을 편견 없는 친절한 태도로 대해줬다.그 장소가 한국의 어느 도시였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새로 사귄 남자친구들끼리 술집으로 몰려가 부어라 마셔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이란. 어디에도 술을 파는 곳이 없으니, 아쉽지만 찻집에서 밤늦게까지 홍차와 물담배를 가운데 두고 `미남들(?)의 수다`를 떨어야 했다.익숙지 않은 영어와 보디랭귀지로 더듬더듬 이야기를 주고받던 어느 한순간. 모하메드가 조심스럽게 고백 하나를 했다.“홍(여행을 할 당시 많은 외국인들이 기자를 이렇게 호칭했다), 이건 비밀인데, 나도 딱 한 번 술을 마셔본 적이 있어. 독일 베를린에 갔을 때였는데 맥주란 걸 한 모금 먹었지. 그런데 말이야….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게 있었다니. 정말 놀랐어.”서른 살이 넘도록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사람에겐 맥주 한 모금이 준 취기가 그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어진 모하메드의 말에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내가 술을 마셨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돼. 이 사실은 아내에게도 비밀로 했으니까.”그랬다. 대다수 무슬림들은 종교적 신념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 하지만, 신념만큼이나 중요한 게 인간의 욕망 아닌가. 이란 사람들이라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꿈꾸는 `일탈의 욕구`가 왜 없을까. 인간은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것들을 끝임없이 욕망하는 존재인 것을.한국인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 `한 잔의 술`이 모하메드에겐 자신이 믿는 신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일탈이 될 수도, 아내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비밀이 될 수도 있는 게 세상사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모하메드의 고백처럼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은 또 있다. 이란 중부의 모래바람 부는 사막도시 야즈드를 여행할 때 머물던 호텔에서였다. 그곳 매니저로 일하는 스물여섯 살 미남청년 알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은밀히 기자를 부른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뜸 이런 부탁을 해왔다.“어이, 홍. 어제 우리 숙소에 여행 중인 네덜란드 여대생이 두 명 왔어. 그런데, 그중 하나가 나보고 데이트를 하자고 하더라고. 그런데, 큰일이야. 나는 어떻게 하면 여자가 기뻐하는지 알지를 못해. 네가 조언을 해줄 수 없을까?”대체 이런 질문에는 어떤 답변을 내놓아야 할까. 진지하기 짝이 없는 그의 태도와 어투에 농담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껏 내놓은 해결방안은 이랬다.“그 네덜란드 여자애는 데이트를 해본 경험이 너보다는 훨씬 많을 거야. 그러니, 네가 뭘 해주려 하지 말고, 그 여자애가 리드하도록 데이트의 주도권을 넘겨봐. 그게 좋을 것 같네.” 이처럼 형편없는 어드바이스였음에도 알리의 얼굴은 대번에 환해졌다.너무나 닳고 닳은 세상을 살아온 우리. 그런 까닭에 여자를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처음 본 기자에게 물어보는 알리의 대책 없는 순진함이 감동적이기까지 한 순간이었다.이스파한을 여행할 때 만난 이란 여대생들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붉은 꽃 흐드러진 정원이 고풍스러움을 더하는 숙소. 그곳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지역의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20여 명이 묵고 있었다.친구들과 함께 온 수학여행의 즐거움에 들뜬 스물, 스물한 살 소녀들은 밤에는 밖에 나오지 말라는 지도교수의 엄포에도 늦은 시간까지 정원 나무의자에 모여 앉아 기자와 체코에서 온 전기기술자에게 서툰 영어로 수십 가지 질문을 던지며 까르르 댔다.“당신들은 왜 아내도 없이 혼자 여행을 하나요?”“종교가 없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요?”“한국과 체코 여자들은 남자가 보는 앞에서도 춤을 춘다고요?”쉴 새 없이 쏟아지는 바깥 세상에 대한 의문들. 여대생들의 웃음 끝에 매달린 순진함과 순수함이 더없이 좋아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어떤 질문도 피해가는 법 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이란 소녀들에게 들려줬다.기자와 전기기술자의 답변에 때로는 깜짝깜짝 놀라고, 때로는 자기들끼리 귀엣말을 속삭이며 웃는 그네들의 모습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한국의 스무 살 여대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머리에 히잡을 썼느냐 쓰지 않았냐만이 달랐을 뿐.이란 사내들이 즐기는 기호품은…끼니 외에 과자나 과일 따위를 먹는 걸 일컫는 `군것질`. 보통 군것질은 아이들이나 여학생들이 주로 즐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란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돼지고기와 함께 음주를 엄격하게 금하는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이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이란 남성들은 확실히 한국 사내들에 비해 군것질을 즐긴다. 공원이나 기차·버스 안, 심지어 거리를 걸으면서도 호두나 아이스크림, 과일주스를 먹고 마시는 콧수염 기른 건장한 남자들을 볼 수 있는 게 `신성 무슬림공화국` 이란이다.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기호품을 특히 좋아할까.▲설탕 듬뿍 넣은 홍차이란만이 아닌 중동의 많은 국가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음료가 따뜻한 홍차다. 잘 단장된 찻집은 물론, 허름한 노점에서도 홍차가 담긴 잔을 든 남성들을 만날 수 있다. 더운 날씨로 인해 당분이 필요한 탓인지 한국보다 훨씬 달콤하게 마시는 게 특징이다. 조그만 찻잔에 설탕 3~4 티스푼을 넣는 건 기본. 좀 더 단맛을 원하는 이들은 아예 각설탕을 입술에 물고 홍차를 마시는 진풍경도 연출한다. 손님 접대에도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게 홍차와 집에서 만든 과자다.▲사과 향기 진한 물담배 터키와 동남아시아에서는 `나르길레` 혹은, `시샤`라고 부르는 물담배도 이란 남성들이 사랑하는 기호품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갤리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흡연양식이 페르시아에서 최초로 시작됐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갤리언의 구조상 물을 통과한 연기를 흡입하게 되는데, 이때 말린 담뱃잎에 사과와 오렌지, 포도 등 각종 과일향을 첨가해 풍미를 더한다. 대부분의 이란 남성들은 사과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물담배를 선호한다.▲갖가지 견과류이란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놀랐던 건, 버스나 기차 안 승객의 70~80%가 땅콩과 해바라기씨, 피스타치오와 아몬드 등의 견과류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역이나 버스터미널 매점은 물론, 도로변 간이휴게소에도 견과류는 최고의 인기상품이다. 기자 역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아쉬움을 해바라기씨나 아몬드를 씹으며 달랬음을 고백한다.사진제공/류태규홍성식 국장席 기자/hss@kbmaeil.com

2016-04-15

담백한 맛·영양 풍부한 자연친화 사찰식품

음식은 곧 생명의 근본이라고 했다.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회복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기간을 단축하거나 연장할 수 있다. 특히 불가(佛家)에서 음식은 약(藥)이나 의술로 통한다. 사찰음식이 스님들의 생존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절밥`은 재료 특성을 최대한 살려 조리하고 저장 및 발효 등 고유의 조리법까지 지녔다. 자극적인 맛을 쫓아가는 현대인들에겐 도리어 몸과 마음을 일깨워주는 자극제이다.동호사서 숙성 된장+호미곶 보라성게 `찰떡 궁합`제철채소와 함께 먹으면 산후조리·갑상선에 좋아포항시 남구 호미곶면의 동호성게된장(대표 김인태)은 사찰에서 정성스레 된장을 만든다. 연중 산바람과 햇살이 머무는 동호사(지주 혜연스님)에서 숙성시킨 된장에 호미곶 바다에서 건져 올린 보라성게를 넣어 만든 성게된장이다. 최상의 자연조건 아래 두 번의 발효과정까지 거쳤다. 긴 기다림 끝에 완성된 동호성게된장은 맛과 영양 모두 사찰식품으로서 품격을 갖췄다.성게된장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자연의 힘이 컸다. 혜연스님은 해녀 신도들이 가져다준 성게알을 오래 두고 먹을 방법을 고민했다. 울릉도에서 성게알을 된장에 넣어 끓여 먹는다는 정보에 착안해 지난 2012년 성게된장을 개발했다. 자연이 준 식재료를 사용하고 자연숙성을 거쳐 완성된 자연친화식품이다.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성게된장은 한 번 담그는데 3년 이상 걸린다. 최소 2년반 발효시킨 된장에 성게알을 넣어 섞은 다음 또다시 6개월간 숙성시킨다. 인종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사찰음식만의 특별한 정성과 풍미만 더했다.청정바다 호미곶에서 채취한 성게알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단백질, 비타민, 철분 등 몸에 좋은 영양성분을 품었다. 해삼의 6.7배, 미역의 4.7배에 달하는 아연을 함유하고 있어 산모들의 산후조리 뿐만 아니라 갑상선 기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던 혜연스님 또한 성게된장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성게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담백한 맛이다. 효소를 넣고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염분이 빠져나가 일반 된장과는 달리 강한 맛이 적다. 혜연스님은 성게된장을 제철채소에 곁들어 먹을 것을 추천했다. 항암성분이 높기 때문에 특별한 조리 없이 그대로 섭취할 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자연에서 얻은 맛과 영양이지만, 의외로 소비자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나뉜다. 성게알을 넣어 특유의 바다향이 나는데다 소금기가 적어 새콤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찌개보다는 일본식 미소된장국처럼 맑은 느낌으로 끓여 먹기 적합한데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좋아한다. 특히 건강 식단을 즐기는 젊은 여성소비자들이 많다.김 대표는 “일반 찌개처럼 얼큰하지 않아 `옛날 장맛이 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존에 먹던 제품이나 일반 된장에 익숙해진 탓이다. 반면 채소에 된장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하거나 건강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홍콩식품박람회 참가, 일본 대형마트에 입점하는 성과도 거뒀지만, 아직 어려움이 많다. 생업인 농사를 하느라 영업이나 마케팅에 신경 쓸만한 여력이 없어서다.김 대표는 “프리미엄 된장식품으로서 나름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췄지만, 식품업계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일반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다 지자체 지원을 받아 가장 쉽게, 많이 뛰어드는 분야가 바로 된장이다. 콩값까지 싸져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그래도 목표는 있다. 올해 비전은 성게알 강된장을 만드는 것이다. 사찰식품이 소비자들에게 웰빙을 넘어 힐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그는 “강된장을 카레밥 등 레토르트 식품처럼 간편하게 밥에 비벼먹을 수 있도록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2016-04-14

엊그제 새긴 듯 표정 하나하나가 生動(생동)

몇 해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여행하며 슈테판성당의 웅장함에 놀랐던 적이 있다. 높이가 137m에 달하는 첨탑의 위용과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로 불리는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겨우 9년 간격으로 열린 역사적 장소라는 드라마틱한 사실은 비엔나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그 도시에 매력에 빠지게 한다.왕비 장화부인과 합장무덤으로 추정되는 흥덕왕릉 돌사자와 무인·문인석까지 신라 조각기술 정수 만끽삼국통일 주역 김유신 장군묘도 여느 왕릉 못잖아슈테판성당의 내·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들 역시 사람들에게 인기다. 안톤 필그람 등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화려하고 매혹적인 부조(浮彫)는 동유럽 예술역사의 한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엔나는 해마다 수백 만 명의 여행자들을 끌어 모으는 관광의 도시다. 그 힘의 배후 중 하나가 바로 슈테판성당이고, 성당 안팎의 새겨진 빼어난 조각품들이다. 그렇다면 경주에는 이 정도의 매력을 가진 `관광 상품`이 없을까? 결론부터 말해보자. “있다.”흥덕왕은 신라의 42대 임금이다. 38대 원성왕의 손자로 태어난 그의 능은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한적한 소나무 숲 속에 위치해 있다. 용장 장보고에게 군사 1만 명을 주고 청해진 사수를 지시했던 흥덕왕은 중국에서 들여온 차(茶)를 우리 땅에 재배해 `차 문화`를 대중화시킨 문무를 동시에 갖춘 왕으로 평가받는다. 오래 이어진 가뭄과 흉작에 신라에 대기근이 찾아왔을 때는 국법으로 사치를 금한 어진 지도자이기도 했다.흥덕왕릉을 찾았던 초봄. 일대는 소나무재선충 방재활동이 한창이었다. 소설가 강석경은 산문집 `능으로 가는 길`을 통해 경주 외곽 인적 드문 곳에 자리잡은 흥덕왕릉 앞 소나무 숲을 이렇게 표현했다.“햇빛을 향한 경쟁 때문인지 용틀임하듯이 뻗어 올라 하늘을 가린 소나무 숲을 나서면 초록의 능원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묘사로 미루어볼 때 작가는 아마도 여름에 이 왕릉을 방문한 듯하다. 울울창창한 송림에 에워싸여 1천20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조용히 잠들어있는 왕. 하지만, `소리 없는 왕의 영면`과는 별개로 흥덕왕릉 일대는 살아 뛰는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각기 다른 기묘한 형상으로 수백 년 세월을 살아낸 소나무의 지칠 줄 모르는 푸른 에너지가 그렇고, 왕릉 주위를 호위하듯 서있는 무인석과 문인석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그렇고, 왕의 무덤을 호위하듯 둘러싼 십이지신의 돋을새김이 또한 그렇다.1963년 사적 제30호로 지정된 흥덕왕릉은 현존하는 신라의 왕릉 중 형식면에서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갖춘 능이라는 역사학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왕비 장화부인(章和夫人)과 합장한 무덤으로 추정되며 규모 역시 크다. 봉분 아래 판석(板石·널판같이 뜬 돌)을 세웠고, 능을 빙 둘러싼 호석(護石·능이나 묘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에는 십이지신상을 조각했다.봄 햇살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 십이지신상은 바로 엊그제 만든 것처럼 표정 하나하나가 생동한다. 그 정밀함과 섬세함이 슈테판성당의 부조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천년 세월을 훌쩍 넘어 신라미술의 미려함을 현대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십이신왕`이란 별칭으로도 불리는 십이지신은 불교 신자들을 보호하는 신장(神將)으로, 사람의 몸에 호랑이·토끼·용·뱀·말·소·원숭이·닭·돼지·개·쥐·양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삼국통일 이전에는 나라를 지키는 신으로까지 숭배되던 십이지신. 바로 이 열 두 동물이 죽은 흥덕왕과 왕비를 지키고 선 것이다. 자그마치 1천200년 동안.십이지신상 외에도 흥덕왕릉 주변에는 돌사자와 무인석, 문인석, 그 위에 비석을 세웠던 커다란 거북 모양의 조형물이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살아있는 학자의 품격을 그대로 담아낸 문인석과 이국(異國)의 장수를 모델로 깎은 듯한 무인석은 왕릉이 조성됐던 당시 신라가 얼마만한 조각기술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활발했던 서방세계와의 교류 역사까지를 짐작케 해준다.유럽의 역사·문화유적은 학계의 철저한 고증과 범국가적 지원을 통한 보존정책으로 인해 오늘날 화려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경주도 문화유산의 고증과 보존에 지금까지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흥덕왕릉과 그 주변 조형물을 직접 본 사람들은 말한다. “신라의 십이지신 돋을새김이 비엔나 슈테판성당의 부조만 못할 게 무엇인가?” 신화와 전설을 제 몸 안에 고스란히 담은 매혹적인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고분은 흥덕왕릉만이 아니다.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新羅太大角干 金庾信墓)`라 쓰인 비석이 세워진 경주시 충효동 김유신의 무덤(사적 제21호)을 호위하는 것도 십이지신이다. 삼국시대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 이름은 들어봤을 김유신(595~673)은 신라의 장수로 지금의 합참의장격인 대총관을 맡아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인물. 삼국을 통일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 그의 무덤은 규모와 화려함 면에서 어느 왕릉 못지않다. 봉분의 지름이 30m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묘에도 세밀한 솜씨의 석공이 새겼으리라 짐작되는 십이지신이 꿈틀대고 있다.흥덕왕릉의 조각들과 마찬가지로 얼굴은 열두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고, 몸은 평상복을 입고 칼과 창 등의 무기를 든 사람 형상이다. `삼국유사`는 이 묘에 관해 “김유신이 죽자 흥덕왕은 그를 흥무대왕으로 높이 모시고, 왕릉의 예를 갖춰 무덤을 장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경주 출신의 역사학자 이근직(1963~2011)은 그의 저서 `신라왕릉 연구`에서 김유신 묘에 관해 “왕릉과 같은 호석 구조를 하였으나, 석사자상과 석인상은 없다”고 썼다. 흥덕왕릉, 성덕왕릉, 원성왕릉 주변에서 발견된 사자상과 문인·무인석 등이 없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그것은 아마도 김유신이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음에도 `감히 왕의 권위에는 미칠 수 없다`는 왕족들의 자존심이 석상 세우는 걸 거부해서가 아닐까?오스트리아 슈테판성당의 부조가 지닌 아름다움과 비견할 수 있는 흥덕왕릉과 김유신 묘의 십이지신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시인 김광규의 `묘비명`이란 시가 떠올랐다. 불멸하는 석조 돋을새김을 보며 유한한 인간의 삶을 노래한 문장이 눈앞에 어른거렸다.`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후략)`. 사진작가와 관광객 매료시킨 경주의 고분꽃과 소나무 속의 고분앵글에 담긴 경주의 봄`이색 풍경`으로 인기목련과 유채꽃, 개나리와 벚꽃이 만발하는 경주의 봄. 그 향기에 끌려 많은 사람들이 경주로 향하는 버스와 기차에 오른다.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역시 간단한 도시락을 만들어 가족소풍을 나오는 3~4월의 경주 풍경은 정겹다.난분분하던 벚꽃이 아쉽게 떨어질 무렵인 4월의 두 번째 주말. 대릉원의 고분과 월성 유적 발굴현장, 월지(안압지) 등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작가 구창웅(47) 씨를 만났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근 30년 만에 경주를 찾았다는 구 작가는 “죽은 왕들의 숨결이 봄꽃 속에서 살아나는 듯하다”는 말로 왕릉과 만난 감동을 전했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각종 유물에 관심을 보인 그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국립경주박물관에 들러 보다 많은 고대의 보물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걸음을 옮기는 곳 모두가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 사는 분들이 부럽다”는 말로 `고분의 도시` 경주의 매력에 흠뻑 빠졌음을 고백했다.경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 대릉원과 첨성대를 거쳐, 월성 유적과 월지, 동궁까지 꽤 먼 길을 걸었음에도 곳곳마다 거대한 능()이 솟은 독특하고 생소한 풍경에 피곤한 줄 모르겠다던 구 작가는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경주 왕릉의 비밀을 주제로 작업을 해 사진전을 열고 싶다”는 미래의 희망을 전하며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눌러 주위 풍경을 담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첨성대 인근을 노랗게 물들이며 만개한 유채꽃. 동화 속 풍경 같은 그 유채꽃밭에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 아내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대구시민 김남석(39) 씨를 만났다.“TV와 책 속에서만 보던 거대한 무덤을 본 아이들이 신기하고 놀라워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귀여웠다”는 김 씨는 신라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아이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지 “다음에 경주를 찾을 때는 미리 왕릉과 유적에 관한 공부를 좀 해와야겠다”며 웃었다.봄꽃과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경주의 고분들. 천년왕국 신라의 향수 어린 풍광은 비단 역사학자와 문화재 전문가들만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웃음과 꿈을 선물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이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4-14

새로운 문화콘텐츠는 과거 아닌 현재서 찾아야

“영천아리랑을 영천 사람이 모른다. 영천아리랑은 애초에 북한의 용천아리랑이었다. 적어도 1922년의 자료에서 확인한 바는 그렇다. `용천`을 잘못해서 영천이라 적은 것이다.”김기현 교수의 말은 초반부터 충격적이었다. `남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사실은 이러하다`는 식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닌지라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데, 우리가 이런 사실관계를 밝힐 때는 학술적으로 책임질 만한 전공자를 찾아야 한다. `민요전승론`이 전공인 김기현 교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정부 지원을 받아 1986년에서부터 1983년 사이에 밀양아리랑 조사를 했다. 박춘석 씨의 아버지 박남춘이라는 분이 밀양에서 기방을 했는데 기생을 시켜 레코드로 곡을 만들어냈다. 밀양 말로 부른 것이 아니라 서울·경기 지역에서 불리던 `양산도` 가락이었다. 근본이 기생의 노래니 특수계층의 노래가 된다. 이를 근거로 밀양아리랑은 경기민요라고 했더니 크게 혼이 났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밀양 분들이 부르니까 밀양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다.”밀양아리랑은 없었으나 이제는 있다는 말을 기자가 과연 이해하는지 김 교수는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한편으로생활밀착형 노래가 특별장르로 정착전승의 주체 따라 다양하게 변용돼□변사와 관객, 나무꾼과 기생문경아리랑이 학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물었다.“아리랑은 지역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불렀던 민요였다. 그러한 노래가 오늘날에 와서 특별한 하나의 장르로 탈바꿈한 것이다. 밭 매고 모내기할 때 부르던 생활 밀착형의 노래가 나운규의 영화가 히트하면서 특별한 노래양식이 되어버렸다. 예컨대 정선아라리에서 아라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 말이라기보다는 노래임을 알려주는 말이다.후렴이 있는 노래를 일컫는 `알아리`가 지금의 아리랑이 된 것이다. 그에 상대되는 개념으로는 맨아리가 있다. 맨아리는 후렴이 없는 맨노래라는 뜻이다. 나운규 이전에는 아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다만 각 지방마다 전승되던 민요가 있을 뿐이었다. 1930년대에 오면서 민요에 아리랑이라는 후렴이 붙은 곡이 많이 만들어진다. 영화 아리랑의 영향이다.”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영화 한 편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어놓았다는 말이 믿기 힘들었다.“1927년과 1928년에 걸쳐 영화 `아리랑`을 본 사람이 70만 명이 넘는다.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1930년대 들어가면 아리랑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나운규가 영화주제곡으로 만들어 넣은 아리랑은 기녀 집단에 의해 다듬어진 것이다. 일본식 곡조인데 반조로 돼 있어서 슬프다. 변사가 나와서 노래하고 설명도 했는데 이것이 인기를 얻으며 음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노래를 또 기녀 출신의 가수가 부르고 히트를 친다. 그래서 더욱 알려지게 된 것이다.”김 교수는 문경아리랑의 기원설에 대한 생각도 상세히 밝혔다.“1894년도에 헐버트가 듣고 채보한 노래도 기생들이 부른 노래다. 문경아리랑을 주목하는 이유는 1870년대부터 경복궁을 짓는데 일꾼들이 다 서울로 올라갔다. 경상도 사람들은 전부 문경새재를 지나갔다. 7년에 걸친 경복궁 공사의 고통을 잊기 위해 자기 고향 노래를 부른다. 각 지방의 아리랑이라고 하는 노래들이 오늘날 서울에 모여든 것이다. 그런데 그 노래를 기생과 소리꾼들이 부르게 된다. 전문적으로 노래를 불러 먹고 사는 사람들이 그 노래를 마구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오늘날 경기아리랑이고 긴아리랑이다.”노랫말이 문경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알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서울 사람들이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런 노래를 부르니까 기생들이 그걸 퍼뜨리는 것이고 나중에는 헐버트가 들은 것이다.”결론은 헐버트의 아리랑이 우리나라 아리랑의 원류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인상적인 것은 따로 있다. 아리랑을 변형시킨 변사와 관객과 일꾼과 소리꾼, 그리고 기생의 존재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후손에게 장차 전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은 사람이 아닌 `종목`전승이란 변사와 관객처럼 마주한 관계를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일꾼과 기생처럼 마주할 일이 없는 이들이 섞이는 일이다. 우리가 문경아리랑의 원형이라 불렀던 송영철 옹의 이야기가 김 교수의 이야기 속에서는 여러 전승주체 가운데 하나로 다루어진다.“변형된 아리랑이 아닌 고형의 아리랑이 아직까지 불리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정선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형되지 않고 남아있는 아리랑이라고 해서 그 아리랑이 모든 아리랑의 원류라고 지칭해서는 안 된다.”김 교수는 태백산맥에 걸쳐서 불린 민요들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옛날에는 인접 지역으로도 이동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립된 지역은 고유성과 독자성이 있을 수 있지만 모심기 노래 같은 경우는 다 똑같이 부른다. 그 민요가 정선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이고, 다른 지역은 나름대로 변형되어 전승된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노래 중에 고형의 아리랑이 정선에 남아 있었을 뿐이지 거기서부터 퍼져나갔다고 할 수 없다. 그 고형의 아라리가 슬프고 애잔하고 청승맞으니 부르는 것이다. 송영철 옹이 나무할 때 아리랑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송 옹의 노래는 투박했다. 우리가 그것을 문경아리랑의 특색이라 여길 때, 피치 못할 오해가 있다. 그 질박함은 문경의 것이 아니라 일꾼의 것이다. 전승 주체가 다양함에 따라 들리는 특색인 것이다.“유네스코가 사람을 등록한 것이 아니라 종목을 유산으로 등재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김 교수의 조언이다. 종목을 유산으로 삼았다는 것은 어떤 지역이나 계층, 전문가가 점유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 노래, 아리랑을 얼마나 소유하려고 노력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다음으로 문경아리랑의 장르적 변용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우리 시대의 전승 주체는 나무꾼도 기생도 아닌 다양한 장르의 생산자라고 여겨져서다.“변용과 과장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실을 확대해서도 안 된다. 자부심은 좋지만 확대·과장해서는 양질의 콘텐츠로 승화할 수 없다. 확대·과장된 아리랑이 언뜻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히려 아리랑의 가치를 스스로 깎는 일이다. 아리랑의 가치는 그것의 활용과 변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유네스코 등재 거치며 왜곡현상 커져철저한 기준 정해 전수 실태조사 해야진실에 기초한 콘텐츠 개발이 중요□찾을 수 없는 `뿌리`를 찾아서김기현 교수는 아리랑 전문연구자로서 누구보다 아리랑이 널리 불리기를 소망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날 다시 아리랑이 주목받게 된 것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리랑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이들 때문이다. 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일을 계기로 아리랑을 왜곡하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아리랑 일만수 사업은 `아리랑`에 의미를 싣기보다는 `서예`라는 것에 더 의미를 둬야 한다. 노래 `아리랑`을 시각예술 아리랑으로 장르변환 한 것이다. 꼭 서예가 아니어도 좋다. 그림으로, 소설로, 영화로 얼마든지 변용될 수 있다. 아리랑은 천의 얼굴로 바뀔 수 있다. 그 중에 `서예`라는 하나의 얼굴로 바꿔본 것이다. 아주 큰 사업이었다. 사업비도 만만치 않고 500일이 넘는 시간과 공력이 투여됐다. 도록을 만들어 해외 한국어학과가 있는 127개 대학과 문화원에 보내기도 했다. 문경시의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없었던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은 틀리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아리랑은 `유네스코 사건`을 거치며 또 변화할 것이다. 이 노래를 부르게 될 사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다. 아리랑은 기생과 나무꾼처럼 운명이 서로 다른 이들을 한 데 묶는 특유의 역동성으로 기념적인 종목이 되었다. 후손에 전하려면 이 종목이 건강해야 한다. 문경아리랑의 연구에 뛰어드는 후학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렸다.“문경 지역의 아리랑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문경아리랑의 뿌리를 어디서 찾겠는가. 당연히 찾을 수 없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무대에서 공연되는 노래만으로는 문경아리랑 전체를 알 수 없다. 공연 시간은 정해져 있고 곡의 다양성 면에서도 한정적이다. 반복해서 부르고 듣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것이 민요의 특성이다. 철저한 기준을 정해서 전승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예를 들면 상주아리랑은 1950년대 기생 김소희가 부른 신조아리랑이다. 지금에 와서야 상주아리랑이 된 것이다. 김소희는 전라도 광주 사람이고 육자배기 풍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사설에도 상주에 관련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학자는 어떤 문화건 진실이 줄고 거짓이 범람하면 생명력이 짧아진다는 점을 숙고해야 한다.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에 기초해야 하는 학자로서 후학들에게 대중의 이런 성질을 강조하고 싶다.”▲ 경북대 김기현 교수부화뇌동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진실의 여부를 가장 잘 파악하는 것 또한 대중이다. 대중문화의 본질 중 하나는 사실인지 아닌지가 빨리 간파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문경새재를 배경으로 드라마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창작자들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데 콘텐츠의 기반을 과거에서 찾지 말고 현재에서 찾길 바란다. 특히 구전되는 민요의 경우는 옛날에서 찾으면 거짓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가 문경아리랑에 대해 더 이상 논문을 쓰지 않는 이유는, 더 이상의 `사실`을 만나지 못해서다. 사실을 만나지 못하면 거짓을 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문경 아리랑이 소설이나 영화화 된다고 해도 문경아리랑이 지닌 지금의 가치면 된다. 민요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좋은 민요인가? 변형의 과정을 포함해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 문경아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르 변용되기에 충분하다. 1960년대에 탄생한 노래는 좋고 요즘 K팝은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노래는 골동품이 아니다. 많으면 좋고, 오래되면 좋고, 원류면 좋은 게 아니다. 그런 잘못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의식들이 과장과 왜곡을 낳는다.”강남진 기자/이소연 시인

2016-04-11

알리와 후세인에게 길을 묻다

인근 도시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알리라는 이름의 청년이 노트를 찢어 만들어준 `든든한 이란 가이드북(?)`만을 믿고 테헤란 버스터미널을 나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출근시간의 거리는 복잡했다. 누구에게 노트에 쓰인 문구를 보여줄까를 잠시 고민했다. 그리곤, 가장 착해 보이는 인상의 아저씨 앞을 가로막고 그걸 내밀었다.페르시아어 적힌 쪽지 내밀자1시간 넘게 숙소 함께 찾아줘이교도에도 아낌없는 형제의 정10명 중 7명 이름 `알리` `후세인`넉넉한 품성, 여유로운 미소 넘쳐위험한 나라라는 인식 바뀌어찾는 숙소와 그 숙소가 위치한 거리 이름이 페르시아어로 적힌 찢어진 노트 한 장. 그가 고민한 시간은 불과 10초도 되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부탁에도 망설임이 없었다.회사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는 것은 물론, 교통경찰에게까지 물어가며 호텔을 찾아줬다.아까운 자신의 시간을 1시간도 넘게 뺏겼는데 귀찮다거나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 친절이 놀라울 뿐이었다.탈레반이나 IS와 같은 교조적 무슬림이 아닌 통상의 이슬람교도들은 여행자나 이웃에게 베푼 자비와 친절이 현세에서의 덕으로 축적된다고 믿는다.그런 이유로 무슬림들의 친절은 제스처나 포즈가 아닌 진실에 가깝다고 한다.이란의 도심에 자리한 관공서 벽에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슬림은 형제”라고 쓰인 문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기자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으니, 이교도와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교도에게까지 형제의 정을 베푼 그 아저씨의 선량함과 배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에서 사간 조그만 열쇠고리를 주겠다고 했지만, 소박한 사례까지 손사래 치며 거부하던 그가 환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다시 출근길을 서둘러야 할 터였다. 지각이 분명할 것이다. 그 사내를 불러 세워 내 이름을 큰소리로 말해줬다.여전히 웃음 가득한 얼굴로 자기는 “후세인”이란다.소리 없이 새겨지는 조용한 미소가 오래 전 헤어진 형 같았다. 그의 친절은 채 떨치지 못한 이란에 관한 의심과 공포를 남김없이 털어낼 수 있게 했다.이처럼 바라는 것 하나 없이 착하기만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라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한들 그게 무슨 걱정이 될까 싶었다. 다행히도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이제 이란 남자들의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과장을 조금 더하자면 이란에선 사내들에게 이름을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10명 중 7명의 이름이 `모하메드` `알리` `후세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명칭 모두는 혈연적 관계로 얽혀있는 초기 이슬람교 지도자다. 모하메드의 사위는 알리고, 알리의 아들은 후세인이다. 이란 사람들은 그들과 자신의 이름을 똑같이 짓는 것으로 존경과 흠모를 바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이란을 여행한 17일 동안 최소한 100명이 넘는 후세인, 알리, 모하메드를 만났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열 명 중 아홉이 1970년대 한국의 시골 노인들처럼 순박하고, 순진하고, 정이 많다는 것이었다.이란 사람들의 조건 없는 친절과 인정으로 인해 아스팔트도 녹아내리는 섭씨 45도의 무지막지한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차가운 맥주 한 잔 마실 수 없는 스트레스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인한 짜증까지도. 눈가에 주름을 가득 만들어내며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이란 사람들의 모습엔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기품과 힘이 담겨있다.이미 수천 년 전 아시아 서부에서 아프리카까지를 자신들의 발아래 두고 통치했던 페르시아 제국.한때 지구 위에 존재한 인류 절반의 정치와 문화를 주도했던 기억을 가진 이란.그 영광의 시절은 지나갔지만, 자부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촌스럽다고도 느낄 수 있는 페르시아의 여유로운 미소에는 이유가 있었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강대국 미국과 대립함으로써 가혹한 경제제재를 포함한 각종 불이익을 겪어야 했지만, 이란 사람들은 그조차도 언젠가는 넘어설 운명이라 생각하고 의연하게 대처했다.의연함에 더해진 웃음의 배후에는 페르시아의 역사가 가져다준 도저한 낙관이 있지 않았을까.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 도시인과 촌부 모두가 얼굴에 담고 있는 환한 미소. 즐겁고 넉넉한 품성으로 여행객을 대하는 이란 사람들을 볼 때면 “이 나라를 여행하는 게 즐거운 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이 아닐까”란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또한, 이란의 매력은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각종 볼거리 역시 풍부하다.달리는 버스와 기차의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아득한 사막 풍경은 어린 날의 기억을 돌아보게 하고, 매혹 가득한 도시 이스파한에 웅장하게 들어선 이맘광장의 황금빛 모스크는 이슬람 건축예술의 절정을 관광객에게 선물한다. 2천500여 년 전 아케메네스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의 별궁(別宮)으로 사용된 페르세폴리스는 폐허조차도 장엄하게 아름답다. 이란은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모래바람 부는 황량한 벌판에 이슬람 경전과 폭탄을 든 테러리스트만 있는 국가`가 결코 아니다.기자가 이란 여행을 결심하고 이를 주위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대부분이 격려보다는 우려를 표했다. 아예 나서서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지구 위에 수도 없이 있는데, 왜 하필 위험한 이란이냐”는 이유에서였다.실체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할리우드 영화로 만나게 되는 이란은 사실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과연 이란의 전부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이란에 관해 대부분의 한국인이 가진 편견과 일그러진 선입견.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직접 그 나라를 가보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터. 이란으로의 배낭여행은 이처럼 소박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이란의 대중교통동서양을 막론하고 서민들의 발이 되는 건 버스와 택시, 기차와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이다. 여행지에서 버스와 기차에 오른다는 건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이란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대중교통 수단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어떻게 운용되고 있을까.■ 버스무슬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풍경이 이란 시내버스 안에선 매일 펼쳐진다.차량의 앞부분에는 여성들이, 뒷부분엔 남성들이 따로따로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다.버스가 만석을 이루는 출퇴근 시간이라고 해도 이 원칙은 깨지지 않는다.`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한` 여성은 남성들이 있는 뒤편으로, 남성은 여성들이 자리한 앞쪽으로 가지 못한다.시외버스도 이와 비슷하다. 매표소에서부터 좌석 배정을 남녀가 따로 앉아서 가게 만든다.이 원칙에선 외국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런 제약이 있는 대신 이란의 버스비는 엄청나게 저렴하다.기름 값이 싼 게 그 이유다. 시내버스는 약 50원, 시외버스로 10시간을 달려도 승차권 가격은 5천원 남짓이다. ■ 기차 유럽에서 사용하다가 폐기 직전에 수출한 것 같은 낡은 기차가 낙타처럼 느릿느릿 이란의 사막을 오간다.인접국 터키에서 출발해 72시간을 달려 수도인 테헤란으로 오는 국제열차도 1주일 1번쯤 있다.이란에서의 기차여행이란 `막막한 모래밭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 아래를 달리는` 희귀한 경험을 관광객들에게 제공한다. 국토가 광활한 탓에 1박2일의 기차여행은 흔하다. 좁은 침대칸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는 게 고생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국에선 쉽게 해볼 수 없는 체험이라 도전해볼 만하다.이란 사람들이 나눠주는 해바라기 씨와 피스타치오 등을 나눠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하철과 택시테헤란의 지하철은 도심 곳곳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다.1구간권 티켓이 200원 정도라 부담 없이 수도의 주요 관광지를 오갈 수 있다. 서울이나 부산의 지하철만큼 깨끗하고 세련된 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렵다.하지만, 거기 타는 순간 `연예인`처럼 주목받는 희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택시의 경우엔 한국과 달리 미리 가격 흥정을 해서 목적지를 향한다.`합승택시`는 가는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서 운행한다.동승자를 모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다소 지루하지만, 일반택시보다 저렴하다는 점에서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에게 인기다.사진제공/류태규국장席 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6-04-08

“냄새 안나며 물처럼 마시는 부추즙은 보약”

때로는 선입견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사실 살아온 햇수만큼 각종 경험으로 무장한 고정관념이 쌓이게 되면 사물의 실상을 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함부로 판단해 단정 지었던 사실이 무너지는 순간, 그 어떤 경험보다도 기억에 오래 남아 진한 여운을 남긴다.피로감 줄고 혈액순환 좋아져 저림 증상 개선지역 유명인사 매달 정기 주문할 정도로 인기부추가공업체인 메인(주)의 오주선 대표를 직접 만나기 전에는 이름만 보고 여성기업인으로 생각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덩치 큰 남성을 마주한 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자 오 대표는 “이순신도 남자다”라며 웃었다.인사가 끝나자마자 오주선 대표는 대뜸 “우리 부추즙의 특이한 점은….”이라며 운을 떼었다. 당찬 성격과 강한 목소리에서부터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는 “부추가공업체는 포항에 하나 더 있고 전국에도 5곳 정도 있지만, 부추즙을 물처럼 마실 수 있는 기술은 우리만의 강점이다. 부추는 가공처리 과정을 거치면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역한 향이 난다. 이를 제거하는 것이 우리 공장만의 기술력”이라고 말했다.메인은 저온고압 추출방식으로 부추 특유의 냄새와 맛을 없애 누구나 물처럼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부추즙을 만든다. 오 대표는 그의 땀과 노력이 담긴 특수공법을 조상들의 삶에서 찾았다고 말했다.우선 옛 선조들은 무엇을 먹고, 왜 먹었는지를 살폈다. 이미 수 백 년전 조상들의 인체체험을 통해 검증된 사실을 그대로 적용해 부추진액을 만들었다. 덕분에 기술 개발과정에서 실패 등 여러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오 대표는 자신의 `타고난 감각`으로 얻은 기술이라며 정보노출을 꺼려 특허신청도 하지 않았다. `진짜 좋은 기술은 특허를 내지 않는다`는 소신이다.오 대표는 북구 청하면 청계리에 있던 공장을 사들여 부추즙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공정을 갖추고자 직접 개조했다. 부지면적 1천평, 건물 500평으로 부추가공 공장으로서는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공장을 한 번 가동하면 부추진액 10t을 생산한다. 다른 공장의 1년치 생산량을 한 번에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오 대표는 큰 기계가 있어야 큰 장사가 된다고 했다. 제품을 대량 생산해야 국내외 소비자들의 관심과 수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란 비전이다.무엇보다도 건강기능 차와 음료를 만드는 곳인 만큼 공장입지 부지를 선정하는데 주변 환경으로부터 깨끗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조건을 최우선으로 두고 장소를 정했다. 공장 주변 200m 이내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청정지역을 골랐다.문제는 부추였다. 온도에 민감한 채소라 중탕과정에서 온도 120℃ 이하 시 진액이 추출되지 않았고, 그 이상이 되면 냄새가 났다. 부추가공 공정을 모두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메인주식회사 오주선 대표.오 대표는 “사과는 100㎏을 짜면 99㎏의 즙이 나오는 반면 부추는 같은 양이라도 15㎏밖에 나오지 않는다. 부추를 130℃의 온도에서 끓여도 냄새가 나지 않도록 공정을 직접 설계했다”고 덧붙였다.올해 6년째 사업을 운영 중이지만 오 대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는 일이다. 누구나 부추의 효능은 잘 알고 있지만, 냄새가 나 먹기 힘들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아예 구입자체를 안 한다는 것이다.막상 선입견을 버리고 먹으면 보약이 된다. 메인의 부추진액을 한 번 맛본 사람들은 `물을 마시는 것 같다`며 마니아층이 될 정도다. 단골들은 `간(肝)의 채소`로 불리는 부추즙 덕분에 피로감이 줄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팔 저림 등의 증상이 개선됐다고 전해온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피가 맑아졌다`며 놀라기도 했단다. 지역 내 유명 인사들도 매달 정기적으로 부추즙을 주문해 먹는다고 자랑했다./김혜영기자hykim@kbmaeil.com

2016-04-07

`Study` 하지 말고 `Learn` 하라

최근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말하기 위주의 실용 영어 능력이 필수화되고 있다. 오는 2018학년도 수능 영어에서도 평가방식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는 등 앞으로 문제풀이 중심의 교실 영어수업도 듣기와 말하기 중심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이처럼 교육환경 변화로 인한 효율적인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은 기존 주입식 교육으로는 실질적인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필요한 영어표현을 암기하거나 읽기, 듣기, 쓰기, 문법 시험을 통한 평가 중심의 영어공부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언어를 습득하는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자기 주도 학습 및 훈련 위주의 말하기 학습으로 직접 영어를 깨우친 박병태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융합교육지원팀장의 비법을 담은 `박병태의 가장 쉬운 영어 말하기 학습법`을 7일부터 격주 목요일마다 총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 시리즈는 박 팀장이 직접 영어 말하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사항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알려줌으로써, 국민이 영어공부를 할 때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도록 돕고자 기획됐다.`소리 내어 읽기`·`듣고 따라 하기` 2가지 학습법으로 영어발음 정복의미단위로 나눠 직역하며 읽고, 듣고, 따라 하면 문법은 절로 체득□ 영어정복 여부는 한국어 능력이 결정한다외국어를 배울 때에는 반드시 모국어가 개입된다. 예컨대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영어 원어민 교사가 사과에 대한 그림을 한국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I have an apple`이라고 가르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우리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더라도 우리말을 모국어로 하는 아이는 `I have an apple`이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가지고 있다 / 하나의 사과를`이라는 우리말로 그 문장을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에는 우리말을 배웠던 경험과 우리말에 대한 감각이 바탕이 된다. 따라서 우리말 능력에 문제가 있다면 영어를 잘할 수 없다.□ 우리말을 제대로 정복하고 영어공부를 시작하라모국어가 영어와 동일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두 살 때든 세 살 때든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모국어와 영어가 유사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영어 표현을 모국어의 다른 표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와 모국어의 언어체계가 다를 경우에는 모국어를 확실히 익힌 뒤에 시작하여야 한다. 우리말은 영어와 언어체계가 완전히 다르므로 우리말에 확실히 숙달한 후에 영어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말을 확실히 숙달한다 함은 듣기와 말하기는 물론 읽기와 쓰기도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을 의미한다.□ 문자 학습에 의존하면 영어정복은 어렵다모국어 말하기의 1단계는 3세 전후에 완성되지만 시력은 3세 전후에 비로소 글자를 식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누구도 모국어를 배울 때 문자를 먼저 익히고 말을 배우지는 않는다. 우리의 뇌도 소리로서 익혀야만 언어의 습득이 훨씬 더 잘 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처럼 우리의 뇌 구조상 어떤 언어든 지나치게 문자에 의존해서는 그 언어를 정복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영어를 배울 때에도 과도하게 문자 학습에 치중해서는 높은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다만, 영어학습의 효과를 높이고자 입문 또는 초급 수준의 대화체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독해능력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대부분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전개되므로 문자의 도움이 전혀 없이 처음부터 듣기와 말하기 중심으로 영어를 익히려 한다면 높은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발음보다 더 쉬운 영어발음은 없다영국과 미국의 영어발음에 가장 뚜렷한 차이는 [o] 발음에 대한 차이이다. 언뜻 보면 [o] 발음을 `아`로 발음하느냐 `오`로 발음하느냐에 대한 단순한 차이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구강구조상 `오` 발음이 `아` 발음보다 훨씬 더 발음하기 어렵다. 영어발음의 난이도에 점수를 부여한다면 아래와 같이 미국의 표준발음을 100으로 할 경우 영국의 표준발음은 120 정도가 될 것이다.□발음 감각 익히면 시험성적 향상은 식은 죽 먹기영어 문장을 보면서 소리 내지 않고 읽기, 듣기, 쓰기를 할 때 필요한 뇌 속과 뇌 밖 영역들은 저절로 개발된다. 소리 내어 읽기와 듣고 따라 하기의 2가지 학습법으로 영어발음을 정복하게 되면 영어시험에 필요한 독해, 작문, 듣기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준비가 완료되므로 영어시험 성적을 높이는 일이 쉬워진다.또한 자신이 읽은 영문 정보를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영어 문장을 소리 내어 자연스럽게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영어 문장을 보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소리 내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적은 것도 진정한 영어 정복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소리 내어 읽고, 듣고, 따라 하는 훈련하라말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문법적 원리를 철저히 연구해 완벽하게 익힌 후에 말하기를 시작하려고 한다면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어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분석 중심으로 문법을 공부하지 말고 소리 내어 읽고, 듣고, 따라 하는 훈련 중심의 영어를 익혀야 한다.또한 문법은 언어습득을 위한 문법과 학문적 연구·분석을 위한 문법으로 나눌 수 있다. 언어습득을 위한 문법은 어머니가 모국어를 배우는 유아에게 가르치는 어법 또는 문법을 말하고, 학문적 연구·분석을 위한 문법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문법학적 문법을 말한다. 지극히 학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우리의 영어 교육방식은 아이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는 어머니가 하는 언어습득 중심의 문법 교육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연구·분석 중심의 문법학 공부에서 벗어나라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하여 온 문법학에서는 아래와 같이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성격을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으로 정의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역할을 주어, 보어, 목적어 등으로 규명한다.그런데 영어라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사람은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성격이나 역할은 물론 그 문장이 몇 형식의 문장인지 전혀 알 필요가 없다. 문법학적인 용어나 의미는 영어를 지도하는 사람만 알고 활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에게 연구·분석 중심의 문법학적 용어를 사용하거나 배우게 해서는 안 된다.□ 영어 습득과 사용에 도움되는 문법을 체득하라영어 문법은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의미를 직접적인 우리말로 이해하는 훈련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익혀지게 해야 한다. 영어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나 어미단위를 다음과 같이 우리말로 직역할 경우 문장의 구조가 자신도 모르게 체득(體得)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 하며 자신도 모르게 문법을 익혀라문장을 의미단위로 나누어 직역하면서 읽고, 듣고, 따라 하면 문법은 저절로 체득된다. 아래와 같이 유사한 회화체 문장을 여러 번 읽고, 듣고, 따라 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mind` 뒤에 동사가 오게 될 때에는 반드시 `-ing`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Would you mind / opening the window?-Would you mind / shutting the window?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박병태 팀장은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에서 융합교육지원팀을 맡아 우리나라 영어교육정책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 박 팀장은 포항 출신으로서 어린 시절 공부에 관심이 없어 초등학교 성적이 최하위 그룹에 속했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폐지돼 무시험으로 중학교 문턱을 넘긴 했지만 역시 성적 부진으로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후 졸업자격이 필요해 검정고시에 도전하지만, 영어 성적은 최저였다. 10대와 20대를 육체노동을 하며 보냈던 박 과장은 회화공부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는 말에 이른바 `1.3.3.P 학습법`이라는 독창적 학습방법으로 단숨에 기초 말하기를 정복할 수 있었다.□ 학력중·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대학교 졸업인정 학위취득시험 합격(법학), 미국 Syracuse 대학교 Maxwell 대학원 졸업(행정학)□ 약력교육부 융합교육지원팀장(과장) (영어·수학·과학 교육 기본정책 및 영재·융합 교육 기본정책 총괄 ), 교육부 영어교육지원팀장,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총무과장, 국립 국제교육원 영어교육지원부,TaLK팀장, 국가영어교육센터설립팀장, 법제처 장관 수행비서관, 국제 업무/국가 법령 총괄 서기관, 재정경제부 FTA법령 총괄 서기관,기획재정부 FTA법령 총괄 서기관

2016-04-07

견훤 설화, 이 매력적인 스토리텔링과 만난다면…

섬진강 서쪽에서 주로 불린다고 하여 `서편제`라 부르는 소리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는 얼마나 되는가? 구절이나 가락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그러나 호기심만 생긴다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이 세기말을 휩쓸고 다음 세기로 넘어와 다음 세대의 기억으로 든든히 자리잡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영화가 있었다. 새재길 금하굴에 전해지는 `지렁이설화`현대적 상상력 더해 새 이미지로 재생`문경` 배경의 소설·드라마 탄생도 기대문경아리랑은 결국 `길`의 이야기소설 `반지원정대`·웹툰 `신과 함께` 등토속적 신화 인물 캐릭터화 시도해볼만아리랑은 노래다. 그래서 고유의 리듬과 음악성을 배제하고 말이나 언어를 통해 미적 정서를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경아리랑의 사설과 가락과 곡조를 모르더라도, 문경아리랑을 후대에 길이 남길 방법이 있다. `서편제`와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서편제`는 영화이기 전에 소설이었다. 고 이청준의 작품이 감독을 감동시키고, 감독의 눈에 띈 배우들이 장단을 맞추고 소리를 남긴다. 문경아리랑이라고 이런 경로를 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서편제`처럼 소리꾼의 이야기여도 좋겠지만 상상을 소리에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서편제`가 주는 감동은 가부장적 예술혼인데 한 글자로는 `한`이다. 한을 형상화할 방법을 꼭 소리꾼의 이야기에서만 찾아보자고 한다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의 시인과 작가들이다.그들에게 문경아리랑의 스토리텔링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이병일 시인은 “문경아리랑에도 설화나 탄생배경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현대적인 정서를 버무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통성과 결합해 재미있고 독특한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다. 옛것이 주는 익숙함과 현시적이지 않은 특징 때문에 낡고 닳은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안에는 은폐된 역동성이 있다. 창작자로서는 그 숨겨진 역동성을 발견해 내는 일이야 말로 흥미를 끈다. 문경새재 넘어가는 길에 금하굴이 있다. 견훤과 관련된 지렁이 설화가 얽혀있는 곳이다. 이런 상상의 이미지는 새로운 이야기와 이미지를 불러낸다.”시인이 예로 든 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후백제 견훤의 설화다. 설화에 따르면 견훤의 아버지는 토룡이다. 여기서 토룡은 지렁이를 말한다. 동침하고 사라지는 남자의 옷에 부호의 딸이 몰래 실을 꿰어 둔 바늘을 꽂아둔다. 날이 밝은 뒤 그 실을 따라가 보니, 커다란 지렁이의 허리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는 이야기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에는 오래 묵은 지렁이를 용이 되기 전 단계라고도 했다. 이병일 시인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절로 시를 쓰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한다.이 시인의 상상력은 문경아리랑이란 노래 안에서 고개를 밖으로 돌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재미있는 요소들을 향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옛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걸 좋아해요. 드라마 `정도전`, `장영실`, `육룡이 나르샤`를 보세요.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야기를 고전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펼쳐내죠. 의복이나 어법을 비롯한 역사적인 풍습 속에서요. 옛것은 낡은 게 아니에요.”□ 드라마의 가능성이 곧 한류의 가능성영화나 드라마는 현대의 가장 파워풀한 매체다. 문경아리랑을 알리는 데 영화나 드라마처럼 좋은 매체는 없을 것이다. 이 시인처럼 문경아리랑의 주변과 저변에서 매력을 느끼는 드라마 창작자들에게 만일 문경아리랑을 알리는 임무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 근래에 문경아리랑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해졌다고 하더라도 당장 문경아리랑의 역사적 기원이나 전승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까?소설가 이은선 씨는 옛것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심취해 있다. 옛것을 그대로 살려내는 재미에 빠지는 작가들도 있지만, 이 씨처럼 현대화하는 데서 작업의 힘을 얻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말하는 현대화란 어떤 것일까? 작가마다 대답이 다를 것이 당연하겠으나, 이들의 현대적 상상력이 어떨지 기대하게 해줄 작품이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고 신기섭 시인의 작품 `문경`이 그것이다. `문경`은 한 편의 시지만, 수십 편의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의 깊이를 담은 작품이다.“아리랑을 소설로 쓴다면 뻔한 얘기나 한스러운 얘기 말고 현대적 감각에 맞는 에피소드들을 총동원할 것 같다. 아리랑의 현대화가 계속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구전되면서 그 긴 시간들을 다 이겨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리랑은 끊임없는 현대적인 변형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노래다. 그 옛날에도 아리랑은 진화해왔다. 아리랑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형될 것이다. 소설가로서 옛것과 끊임없이 교신하는 매체로서의 아리랑 다시쓰기를 해보고 싶다. 토속적인 장면에서 떠올리는 아리랑이 아니라 현대적인 장면에서 떠올리는 아리랑을 생각한다. 요즘은 엽전 위조범의 아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오히려 과거의 소재들이 내 관심을 끄는 편이다.”이 씨 같은 소설가들의 관심과 작업이 지속된다면, 문경이라는 도시에 담긴 근대적 풍경과 현대적 인물이 소설이나 드라마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문경아리랑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아리랑에 근대화의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우리는 확인한 바 있다.□ 장기적인 투자로서의 문학제강원도 정선군의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정선아리랑 문학상 공모전`을 개최했다. 정선아리랑 콘텐츠 개발을 위한 원천 스토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조정래의 `아리랑`이라는 대하소설이 출간돼 성공을 거둔 예가 있으니 한번쯤 눈을 줄만한 공모전이다. 그런데 공모전을 통한 콘텐츠 개발의 한계도 뚜렷해 보인다. 아리랑 하면 이미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는데다가 낡은 느낌을 준다. 민족주의적인 색채도 쓰는 쪽이나 읽는 쪽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공모전의 수상작이 이름을 얻고 불후의 명작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 같은 출판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고 할지라도 작가의 개인적 성취로만 남는 일이 더 많다.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문학시장 자체가 너무 작다.물론 어떤 이는 작은 시장을 이점으로 여기기도 한다. 투자비용이 적고 오래 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작품이 탄생하면 지금 당장은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많은 것이다.그러니 당장의 소득은 없을지라도 씨앗을 심는 정도의 의미가 있다. 소득이 눈에 당장 띄지 않더라도 지역의 세계화에 오래도록 기여하는 방법이 문학임을 더 말해 무엇할까. 다만,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재능 말고도 확인할 것이 있다. □ 문학의 힘은 보편성에서 온다“보편적이고 현대적인 서사구조가 강한 그림책이나 동화는 많이 들어오지만 그 나라의 전통적인 정서가 강하면 우리 정서와 안 맞는다는 명분 아래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이자 아동문학가인 김서정 씨는 전통적 소재가 아동출판 시장에서 접해온 장애를 이렇게 말한다.“어린이 책은 어른책보다 보수적이고 국수적인 성향이 있다. 동화가 어른들의 가치체계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용도로 발생된 의도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이 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나라의 가치관이나 문화를 도입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데, 자기 나라의 문화는 열심히 가르치려고 한다.”이 말은 두 가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첫째는 계몽성이 문화적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두 번째 의미는 출판시장의 거부반응이 말해준다. 그동안 아동출판시장에서는 이른바 한류에 도전했던 작가의 기획들이 `한국적 가치체계`를 대중화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김서정 교수의 말은 한국의 작가들이 아리랑에서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을 길어 올릴 때 세계화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길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서문경아리랑은 결국 `길`의 이야기다. 길을 걷는 데서 오는 두려움과, 길가는 이들이 서로 무리 짓는 데서 오는 반가움이 문경아리랑에 담겼다. 천리길이 품은 특수성은 셀 수 없기도 하겠지만, 기나긴 길의 이야기에서 보편성을 찾아낸다면야 왜 없겠는가.반지 이야기를 영화화한 `반지 원정대`는 서로 원한 어린 종족이 하나의 무리를 짓는 데서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다. 두 번째로 영화화된 `두 개의 탑`에서는 베어지는 나무들이 주요한 캐릭터로 동원되었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J. R. R. 톨킨은 북유럽 신화와 고대 언어로 오늘날의 판타지 장르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이제는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톨킨의 이 반지 이야기도 1980년대 한국에 처음 소개될 때는 제목이 `머나먼 산, 머나먼 강`이었다. 북유럽의 낯선 문화는 산과 강을 내세운 여행담의 모습으로 아이들과 만났던 것이다.주호민 씨의 `신과 함께`는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길을 다룬 웹툰이다. 토속적 신화 인물을 캐릭터화 해서 흥행하는데 성공했으며, 한국적 신화를 현대적 테마로 되살려내면서 평자들의 호평도 얻어냈다. 토속의 현대적 상상물이라는 어려운 미션을 그야말로 신화적으로 수행해낸 셈이다.작가가 다양한 매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기획의 산물이다. 한국의 신화를 공부했으며, 공부한 바를 분류하고, 분류된 지식 중에서 대중의 흥미를 끌 요소를 스토리화하는 과정에서 전진 배치함으로써 대중의 반응을 `유도`했다.문경아리랑이 웹툰으로 만들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전통적 요소가 착수단계부터 한계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작가가 어떤 자료를 수집하고 거기서 어떤 영감을 얻는지 어떻게 제한하여 짐작할 수 있겠는가. 사회가 할 일은 우리시대 웹툰 작가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창작자들이 문경아리랑에 관해 읽을거리와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준비해놓는 것이다.자료 가운데 어떤 것이 영감을 줄지 예단할 수는 없다. 자료가 많을수록 상상할 여지도 풍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극과 퓨전극이 여러 방송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는 역사학과 드라마 시장을 잇기 위해 역사콘텐츠라는 학문까지 낳았다. 역사가 풍부해야 드라마도 히트할 수 있음을 이미 여러 사람이 알고 있다. 문경아리랑을 어떤 식으로건 다룬 웹툰이 나오기까지는 작가의 능력만이 아니라 사회가 오래도록 합의해서 쌓아온 자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강남진 기자/이소연 시인

2016-04-04

`문맹`의 여행자에게 베푼 그들의 친절

문자를 해독할 수 없는 사람들을 문맹(文盲)이라 한다. 세계에서 문맹이 가장 적은 국가들 중 하나에 속하는 한국. 그러나, 그건 한국 사람이 한국에 머물 때 이야기다. 낯선 문자를 읽지 못하고, 처음 가본 나라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 순간부터 꼼짝없이 `문맹 아닌 문맹`으로 살아야하는 것이 여행자의 운명이다. 이란에 도착하면서부터 기자는 문맹이 되고 말았다.터키와 국경을 접한 한적한 이란의 시골마을. 손짓부터 발짓, 거기에 의성어까지 총동원해 어렵사리 이란의 수도로 향하는 버스가 정차된 터미널을 찾았다.매표소에서도 `밤늦게 출발해도 좋으니 오늘 중으로 테헤란 가는 버스를 타야합니다`란 요구를 몸짓으로 전달했다.콧수염과 턱수염은 물론 풀린 셔츠 속으로 보이는 가슴에까지 털이 무성하게 자라 `삼국지`의 맹장 장비를 떠올리게 하는 버스회사 직원이 버스표를 건네주며 “Stay Here(여기서 기다려요)”라고 했다. 이란에 들어온 지 대여섯 시간 동안 들은 가장 긴 영어 문장이었다.그런데 문제는 또 이어졌다. 승차권을 들여다보는데 도대체 단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다. 출발하는 시간과 좌석 번호, 버스비와 승차장의 위치까지가 모두 다 스파이들이 사용한다는 `난수표`처럼 난해해 보였다. 영어가 아닌 페르시아어였던 것이다.숫자 역시 대부분의 국가가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페르시아식 표기다. 1과 2, 10과 100도 구별이 불가능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가 글자까지 읽을 수가 없으니 청맹과니와 다름없는 형편이었다. 바가지 쓰지 않고 버스요금을 제대로 지불한 것인지, 출발 시간은 대체 언제인지, 줄을 지어 서있는 수많은 버스 중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건 어떤 건지 도무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당연지사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주위가 빙빙 돌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처음부터 이러면 앞으로는 더 곤란할 터.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니 차가 곧 출발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터미널 부근에서 밥부터 먹기로 했다. 바자르간에서 테헤란까지는 최소 12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다른 여행자들로부터 들었다. 온통 정신없는 상황에서 허기까지 밀려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일단 배부터 채우자.`이란에서의 첫 식사. 그런데, 이건 또 뭐라고 해야 하나? 밥알 하나하나가 모두 따로 떨어져 논다. 찰기라고는 없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형국이다. 그 위에 얹은 양념한 양고기에서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냄새가 났다. 익숙하지 않은 중동의 향신료를 엄청나게 사용한 듯했다. 손짓으로 주문한 그 요리를 먹으면서 콜라를 2병이나 마셨다. 한국에선 거의 마시지 않는 청량음료였지만, 그게 없었다면 밥을 삼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데다가, 전혀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 “이번 여행은 쉽지 않겠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뿐인가. 이란은 `신성 무슬림 국가`라 술을 마시지 못한다. 어디서도 술집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음주가 불법인 나라를 찾은 술 좋아하는 여행자. 비극은 예정돼 있는 것 같았다.그러나, 그런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하게 사라졌다. 기자는 그때까진 몰랐던 것이다. 이란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얼마나 친절하고 착한지를.제일 큰 문제였던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조금 우습게도 테헤란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해결됐다. 글자를 읽지 못하니 `화장실`이란 표지판이 아닌 `남자 그림`을 찾아 볼일을 해결해야 했다. 헌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남자화장실임에도 소변기가 없었다.`아이쿠, 여자화장실로 잘못 들어왔네`라는 생각에 얼른 돌아 나가려는데 눈썹과 코가 잘 생긴 청년 하나가 웃으며 영어로 알려준다. “여기가 남자 화장실이 맞아요.”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란 남자화장실엔 소변기가 없다. 그 나라 사내들은 칸막이 속으로 들어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작은 볼일`을 본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고, 무슬림만의 독특한 화장실 문화다. 살다보니 화장실에서도 `문화충격`을 받게 되는구나 싶었다. 어리둥절한 상태 그대로 화장실을 나오니 방금 전 말을 건넨 청년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냐”고, “이란은 처음이냐”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란에 도착해 이틀간 겪어야했던 의사소통의 힘겨움을 넋두리처럼 풀어놓았다.“말이 하나도 통하지가 않아요. 앞으로 여러 도시를 가봐야 하고, 숙소를 찾아다녀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눈앞이 캄캄합니다”라고. 내려앉은 하늘 아래 선 듯한 기자의 고충. 그러나, 그가 내놓은 해결방안은 의외로 간단했다.“찾으려 하는 동네 이름과 호텔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 청년은 대답을 듣자마자 자신의 노트 한 장을 찢어 `난수표처럼 난해한` 페르시아어를 두어 줄 휘갈기고는 그걸 건네준다. `OO거리 XX호텔을 찾아가는 한국인입니다. 이 사람을 도와주세요`라는 문장이라고 했다.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때부터였다. 이란에 머물며 이스파한과 페르세폴리스, 쉬라즈와 야즈드 등의 도시를 찾아다닌 17일 동안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란 사람을 만나면 일단 다음날 찾아갈 도시와 호텔 이름부터 알려줬다. 그러면, 그는 페르시아어로 그걸 써주었고, 그게 가장 든든한 가이드북이자 여행지도가 됐다.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걸 보여줘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종잇조각에 불과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런 고민은 이란에서라면 하지 않아도 좋다. 기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란 사람 10명 중 9명은 그 쪽지를 본 순간 여행자의 손목을 잡고 가고자 하는 바로 그 동네, 그 장소까지 정확하게 데려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이란여행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최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풀리고, 그로 인한 개방의 물결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란. 하지만, 아직은 오랜 시간 지속돼온 무슬림사회의 경직성과 종교적 금기가 완벽하게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이란여행에선 외국인이 조심해야 할 사안이 몇 가지 있다. 상대방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도 아래 열거하는 것들은 주의하자.▲ 여성과의 신체 접촉은 금물 : 이슬람교는 친족을 제외한 남성이 여성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도인 테헤란의 개방적인 소수 여성들을 제외하면 모르는 남성과 말을 섞는 것조차 저어하는 게 대부분의 이란 여성들이다. 특히 시골로 가면 멀리서부터 외국인 남성을 피해 대문 안으로 숨어버리는 히잡 쓴 여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반갑더라도, 또는 친절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하더라도 이란 여성에게 악수를 청하거나 그녀들의 어깨를 두드려서는 안 된다. 가벼운 목례로 감사를 전하는 게 이란 여성을 위한 예의이자 배려다.▲ 모스크에 들어갈 땐 손발을 씻어야 : 무슬림들의 교당인 모스크는 이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신성한 공간이다. 이슬람교도들만 입장이 가능한 모스크가 많지만, 일부 모스크에서는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의 출입도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스크 안에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무슬림들의 기도를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곤란하다.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는 입구에 마련된 수돗가나 우물에서 손과 발을 씻고, 머리칼을 정돈하는 무슬림식 예의를 갖추는 것도 여행자가 잊지 않아야 할 사항이다.▲ 술 반입 때는 강제 추방될 수도 : 무슬림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종교적인 이유에서다. 소도시 조그만 밥집에서부터 번화한 대도시 중심가와 유명 관광지의 식당가 어디에도 돼지고기를 요리해 판매하는 곳은 없다. 술도 마찬가지다. 이란의 남성들은 술 대신 홍차와 물담배, 견과류 등을 즐긴다. 이러한 이슬람의 `금주 원칙`은 외국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 한 방울의 술도 이란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만약 국경검문소나 출입국사무소에서 술을 가진 것이 적발되면 강제 추방될 수도 있다. 모주꾼들이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사진제공/류태규국장席 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6-04-01

울진 지역경제 활성화 중심 한울원전

공헌 작년 지방세 689억 납부…든든한 재정적 기반 역할개발 경제·교육·장학·복지·문화사업 업그레이드 지원상생 지역민 농업·어업기반 확충… 주민 소득증대 기여□ 지방재정확충, 원전이 효자다지방자치제도는 민주주의의 풀뿌리라고 한다. 시민들이 지역의 자치단체장과 의회 의원들을 자주적으로 선출하여 그들을 통해 지역에 맞게 업무를 처리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효용과 필요성을 느끼고 민주시민으로서의 태도를 함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가 지방자치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한 때가 1995년 지방선거였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가 원숙하게 자리잡았다고 하기에는 아직 어려워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부족에 따른 독립성 부족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니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지역개발 등 각종 사업을 추진할 수가 없다. 자체 지방세 수입으로는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많다.지방재정을 확충하려면 결국 지방세 수입을 늘려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이희선, 이하 한울원전)가 울진군 재정에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한울원전은 2015년 귀속분 지방세로 689억여원을 납부, 전년도 대비 400억원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울진군이 2015년에 거둔 지방세수가 1천억원을 약간 웃돌았으니, 울진군의 지방세 수입에 원전이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큰 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지역자원시설세가 495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지방소득세와 재산세 등이 뒤를 이었다. 지역자원시설세는 전년도 221억원에 비해 270억원 이상 증가해 증가폭도 가장 컸다. 이는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지방세법에 따라 세율이 2배로 인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울원전이 2015년 내내 한 건의 고장정지도 없이 원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여 발전량이 많았기 때문이었다.발전량에 비례해 부과되는 지역자원시설세가 지방세 납부액이 증가한 가장 큰 요인이라는 사실은 2015년의 지방세 증가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앞으로도 원전이 울진 지역의 든든한 재정적 기반이 되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원전이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면 그에 따른 혜택이 지역에 돌아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사업자 지원사업, 지역사회를 업그레이드하다원전 운영에 따라 지역에 돌아가는 혜택은 비단 지방세 납부에 그치지 않는다. 한울원전은 매년 전전년도의 발전량에 따라 결정되는 사업비로 사업자지원사업을 시행해 지역사회가 경제, 교육, 복지 등 다방면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사업자지원사업은 교육·장학사업, 지역경제협력사업, 주변환경개선사업, 지역복지사업, 지역문화 진흥사업, 그 밖의 기타사업으로 총 6개 분야 단위사업으로 나뉜다.한울원전은 2006년 116억원을 시작으로 2015년 153억원 등 사업비 누계 약 1천449억원을 지역발전과 지역주민 복지증진을 위해 사용했고 2016년 사업자지원사업비는 약 156억원이다.한울원전은 관련법령에 따라 사업자지원사업이 영리적 목적 또는 특정 수혜집단을 위해 사용되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업자지원사업 내용은 분야별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심의, 지역심의위원회의 협의 및 한수원 본사심의위원회를 거쳐 확정한 뒤 그 결과는 한수원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신청기관에 개별적으로 통보한다.또한 더욱 많은 지역주민과 단체가 공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매년 `사업자지원사업 공모 설명회`를 개최해 사업의 유형, 사업계획서 작성, 신청방법, 심사·선정기준 등을 안내하고 있다.□ 지역경제기반조성, 울진발전 이끈다울진의 해안선은 약 80km에 달하며, 죽변항과 후포항 등 많은 항구가 있어 신선한 해산물을 공급하는 동시에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또한 생토미를 비롯하해 청정한 자연환경에서 재배되는 울진의 친환경농산물도 각광을 받고 있다.한울원전은 지역경제협력사업을 통해 농업과 어업기반을 확충해 잘사는 울진 만들기에 일조하고 있다.어업기반 확충을 위한 대표적인 사업이 어업인 소득증대사업이다. 수산자원 확충을 위해 치어와 치패를 방류할 뿐만 아니라 인공어초를 설치하는 등 장기적으로 지역 어민들의 조업여건을 개선하고 직접적인 소득증대로 이어질 수 있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또한 사업자지원사업과는 별도로 매년 6월 어패류방류행사를 개최, 월성원전에서 온배수를 이용해 양식한 참돔치어와 전복치패 등을 방류한다. 어업인 소득증대사업과 어패류방류행사에서 방류하는 치어·치패를 합치면 연평균 약 30만미에 달한다.한울원전은 2010년과 2012년 울진군(농업기술센터)과 협약을 통해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설치, 운영 중이다. 농기계 임대사업소는 울진군 농기계 임대은행 활성화를 통한 지역농가 농기계구입비 부담 경감에 기여하고 있으며, 매화면 매화리와 평해읍 평해리에 임대사업소가 설치돼 농업 기계화를 통한 농업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농기계 임대은행은 농경지 면적과 농기계 수요가 많은 울진지역 농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며 높은 만족도를 보여주는 한울원전의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가 되었다.한울원전 이희선 본부장은 “원전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안전최우선 원전운영과 다양한 지역사회공헌활동으로 한울원전과 지역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울진/주헌석기자 hsjoo@kbmaeil.com

2016-04-01

4명의 왕과 1명 왕비의 무덤, 증명은 어려워

고대의 왕 혹은, 임금 또는, 황제로 불린 이들은 살아있는 동안은명예와 숭배를 원했다.자신의 지배를 받는 백성들에게 스스로가귀한 존재임을 기어코 증명하려 했던 것.그 존재증명의 욕구는 죽음 이후까지이어졌다. 한 집단의 지배자로서 오랜 시간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었던 것일 테다.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는이러한 왕의 흔적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12세기 초반에 건설된 캄보디아의앙코르와트는 `살아서 누린` 왕의 영화를짐작케 하는 건축물이다.당시 크메르제국의 왕들은 신(神)과 자신을 동일시했고, 미려하고 웅장한 공간에 머물며사람들의 머리 위에 군림했다.당연지사 왕에 대한 숭배가 뒤따랐다.중국 산시성에 자리한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은 `죽음 이후` 황제의 욕망을 보여주는증거물이다. 거대한 무덤과 더불어사후에 자신을 호위할 병사와그들이 타는 말까지 흙으로 빚어 도열시킨 진시황의 집착은 권력자가 가진 욕망의한 단면을 현대인에게 알려주고 있다.신라시조 박혁거세와 알영 왕비남해왕·유리왕·파사왕 무덤 추정삼국유사 `뱀무덤` 설화도 전해져정확한 매장자 두고 논쟁 중신라는 자그마치 992년간 이어져온 왕조국가였다. 56명의 왕이 순차적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그들의 흔적은 당대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규모와 함께 매장된 유물로 볼 때 놀랍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왕릉 역시 대표적인 신라의 유적들 중 하나다.현재 학계에서 신라 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은 모두 38기. 이는 과거의 문헌을 오랜 기간 연구하고,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등 지난한 과정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그럼에도 신라 통치자들의 사망, 장례식, 매장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멀게는 2천 년, 가깝게 잡아도 1천 년 전에 발생한 일이라 증언을 해줄 사람이 전무하다. 그렇기에 경주의 능묘(墓)를 둘러싼 비밀은 오늘날까지도 지극히 일부만이 밝혀졌을 뿐이다. 사람들의 궁금증을 부르고, 호기심을 일으킬 만하다.신라의 첫 번째 임금이었던 박혁거세 거서간(居西干·신라 초기 왕의 호칭). 그가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시 탑동의 오릉(五陵) 역시 이런 역사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고분이다. 3세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사적 제172호로 지정된 능들.기자가 박혁거세의 제사를 모시는 오릉 인근 숭덕정과 알영왕비가 태어났다고 전해오는 알영정을 찾았을 땐 찾아온 봄기운에 기지개를 켠 목련이 새하얀 꽃잎을 아름답게 펼치고 있었다. 하늘로 뻗어 오르는 대나무도 푸른 기운으로 가득했다. 박혁거세와 함께 그의 부인인 알영,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의 무덤까지 5개의 고분이 지척에 위치한 오릉은 사릉(蛇陵)이라고도 불린다. 한자를 해석하면 `뱀무덤`이란 뜻인데, 어째서 왕이 묻힌 곳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에 관해선 고려의 승려 일연의 편찬한 `삼국유사`에 관련 설화가 전해온다. 그 내용은 이렇다. `혁거세 왕은 61년간 나라를 다스린 후 하늘로 올라갔다. 7일 후에 왕의 육신이 땅으로 떨어지고 뒤따라 왕후도 숨졌다. 백성들이 둘을 합해 장례를 치르려했으나, 커다란 구렁이가 나타나 이를 방해했다. 할 수 없이 땅에 떨어져 5조각으로 흩어진 왕의 신체를 각각 장사 지내 오릉을 만들었다. 또한 이 능이 구렁이와 연관됐기에 그 이름을 사릉이라고 했다. 위치는 담엄사 북쪽이다.`이 기록에 대한 신뢰성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이와 관련 경주학연구원 박임관 원장은 “박혁거세 왕에 관한 기록과 함께 등장하는 `삼국유사` 속 담엄사가 어디인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다”며 “혁거세 외에는 구체적으로 누구의 장례를 치른 것인지도 문헌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로 현재진행형인 `신라 왕릉을 둘러싼 비밀`의 일부분을 소개해주었다.역사학계에서는 앞서 언급한 왕들과 왕비가 오릉에 묻혀있다는 걸 명확하게 증명할 수 없는 이유로 ◆5개의 무덤 중 하나가 2개의 봉분이 표주박처럼 이어 붙어 있는 표형분(瓢形墳)이라 매장된 인물이 6명일 수도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왕의 몸이 하늘에서 떨어져 다섯 조각으로 흩어진 것을 묻었기에 5개 봉분 전체가 박혁거세의 무덤일 수도 있다 ◆4세기 이전 신라의 무덤은 토광묘 양식으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인데, 오릉은 4~6세기경 양식인 적석목곽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 등을 이야기한다.사실 이런 논쟁 속에 있는 건 비단 오릉만은 아니다. “역사 연구의 특성상 경주에 존재하는 다른 왕릉들 또한 매장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오릉은 그러한 논란과 논쟁 속에 있는 왕릉 중 하나라고 보면 될 것”이라는 게 이에 관한 박임관 원장의 부연이다.신라 왕들의 무덤을 두고 거기에 묻힌 사람이 정확하게 기록된 것인지에 관한 논란은 이미 300여 년 전에도 있었다. 17세기 사학자였던 화계(花溪) 유의건은 그의 책 `화계집`을 통해 아래와 같은 요지의 문제제기를 했다.“조선 영조 6년(경술년·1730년) 이후 경주의 28기 무덤을 왕릉이라 하고 있다. 그중 17기는 이전에는 몰랐으나 근래 들어 새로 알게 된 것들이다. 1천년 이전의 일에 대한 자취를 살필 때는 문자의 기록에 의해야 한다. 왕릉 속 정확한 매장자는 신라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어도 상세히 알기 어렵다. 하물며 그 무덤들이 왕릉인지 아닌지를 역사에 무지한 촌부들에게 물었다니, 그 신뢰성에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저마다의 주장과 이에 따른 논쟁과는 별개로 봄을 맞이하는 오릉과 그 일대 소나무 숲, 그리고 숭덕전 정원은 아름다웠다. 신라는 도처에 산재한 고분을 통해 제아무리 명민한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라 해도 쉽게 파헤칠 수 없는 `천년왕국의 비밀`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 비밀을 풀어낼 열쇠의 제작은 이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죽음 이후에도 자신이 통치한 왕국의 기억 속에 남고 싶었던 신라의 지배자들. 오릉 속에서 영원한 잠에 빠졌다고 추정되는 4명의 왕과 1명의 왕비는 `존재하기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일까. 봉황대와 신라 멸망을 둘러싼 전설고려 왕건의 `스파이` 풍수학자경주 곳곳 봉분 조성 부추겨깊은 우물까지 파 `파멸의 길`로그 크기가 일반인의 무덤 수십 배 혹은, 수백 배를 넘어서는 신라의 고분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봉분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봉황대(鳳凰臺·사적 제512호)다. 경주시 노동동 고분군에 속하는 봉황대는 직경이 82m에 높이가 22m로 아이들의 눈에는 작은 산처럼 보일 수도 있을 듯하다. 여기에 누가 묻혀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봉황대가 미발굴 된 고분 중 하나인 까닭이다. 그러나 인근에 위치한 식리총, 금령총, 금관총 등의 발굴탐사 결과로 미루어볼 때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을 살았던 왕 또는, 신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측된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경주 사람들은 예부터 커다란 무덤을 `봉황대`라 불러왔다. 여기에는 흥미롭고도 비극적인 전설 하나가 떠돈다. 신라의 멸망과 관련된 이야기다.통일신라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무렵. 왕과 고위직 대신들은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리다툼을 일삼으며 백성을 돌보는데 소홀했다. 인근 국가들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궁예를 뒤를 이어 권력을 장악한 고려의 왕건은 당시 사람들이 풍수지리설을 신봉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비밀스럽게 풍수학자 한 명을 신라에 보낸다. 스파이 역할을 맡은 이 풍수학자는 신라의 왕을 찾아가 “신라 수도는 봉황의 보금자리처럼 생겼으므로, 왕조의 번성이 지속되려면 봉황이 떠날 수 없게 그 안에 알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 말에 혹한 왕은 백성을 동원해 둥글게 흙을 쌓아 수많은 알의 형상을 경주에 만들었다.그러나 풍수학자의 말은 거짓이었다. 실상 경주는 봉황의 보금자리가 아닌 배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만들어진 봉황알 모습의 거대한 흙더미는 파도에 휘청거리는 배에 과도한 짐을 싣는 꼴이 돼버렸다. 왕건이 보낸 풍수학자는 알의 형상이 가장 많이 만들어진 미추왕릉 곁 밤나무숲에 깊은 우물을 파고는 고려로 달아나버린다. 침몰하는 배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이다. 이후 신라는 급속히 파멸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이 전설의 요약된 핵심이다. 이때부터 경주 사람들은 거대한 봉분의 형상을 한 흙더미와 함께 왕과 귀족의 무덤을 봉황대라고 칭했다고 한다.비단 신라뿐일까. 동서양을 불문하고 유구한 세월은 다종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봉황대의 전설`을 포함해 천년의 역사가 빚어낸 수많은 설화들은 역사·관광도시 경주의 매력에 빛을 더하고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6-03-31

미래먹거리산업 주도 재도약의 청사진 그린다

구미시가 재도약 프로젝트를 추진한다.시는 기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먹거리산업을 주도하기 위해 `구미 2020산업발전전략`을 수립하고 `10대 IT융복합산업`을 추진하고 있다.글 싣는 순서① 구미경제 현 주소-공단 정말 위기?② 구미공단-체질개선만이 살길이다③ 흔들리지 않는 구미 삼각벨트④ 재도약을 위한 10대 프로젝트市, `구미 2020산업발전전략` 수립 `10대 IT융복합산업` 추진지역주력산업, 미래먹거리산업 등 4대 도전 산업군 분류 진행`10대 IT융복합산업`은 지역주력산업, 미래먹거리산업, 구미메카산업, 세계No.1도전산업 등 4대 도전 산업군으로 분류해 진행된다.우선 지역주력산업은 의료기기와 스마트디바이스, 웨어러블로 나눠 △첨단 영상의료기기 부품모듈 아시안 허브구축 사업 △글로벌 `스마트디바이스`메카 추진 △웨어러블 스마트디바이스부품 소재 사업 등이다.이 중 웨어러블 스마트디바이스부품 소재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사업이 추진 중이다.미래먹거리산업은 탄소, 국방, 자동차로 나눠 △융복합탄소성형 부품산업 클러스터 조성 △구미 국방ICT 생태계 조성 △구미 미래자동차 전장부품 개발사업으로 추진되며, 국내메카산업은 태양광, 물로 나눠 △글로벌태양광도시 추진 △고순도 공업용수 중앙공급체계 구축으로 실시된다.글로벌태양광도시는 LG전자가 투자하는 사업으로 테스트베트를 완료하고 신규사업을 작성 중이다.세계No.1도전산업은 경항공기·레저와 디스플레이로 나눠 △국가 경항공기산업 육성 △글로벌 홀로그램 융합산업기반 구축 사업으로 진행되며, 이들 사업은 기본용역을 완료하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다.구미시는 그동안 `10대 IT융복합산업`추진을 위해 그 기반이 되는 여러 사업들을 전략적으로 진행해 왔다.특히, 산업구조 다각화,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 노후단지의 혁신단지화, 강소기업 집중육성, 우수인재 양성 및 일자리 창출 등 새로운 도약을 위한 5대 전략을 꾸준히 이끌어 왔다.이러한 끊임없는 노력에 힘입어 대형 국책사업들을 유치해 미래 먹거리 산업을 선점해 왔다.모바일융합기술센터 구축사업(959억원), 전자의료기기부품소재 산업화 기반구축(1천213억원), 3D디스플레이부품소재 실용화지원센터 구축(309억원), 해외통신사업자인증랩 구축사업(420억원), SW융합클러스터 사업(230억원)등 굵직굵직한 대형 국책사업들을 유치해 `10대 IT융복합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또 LG전자 태양광모듈 생산(5천272억원), LG디스플레이 플렉서블 OLED 생산(1조500억원), 도레이사 탄소섬유 생산(1조6천억원) 등의 미래신산업도 유치하는 성공했다. 남유진 시장 임기동안 968개사와 각종 MOU를 체결해 13조9천48억원이라는 놀라운 투자유치를 이끌어 냈다.구미시는 지역 중소기업들의 수출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도 펼치고 있다.지난해 독일 주재 `구미 통상협력사무소`를 설치해 현지 시장조사, 바이어 찾기, 해외지사 대행 등 다양한 해외시장 판로개척과 기업간 기술교류, 기업체 조사 등 지역중소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여러 업무들을 지원하고 있다.시는 그동안 `2014 국제자동차부품박람회(IZB 2014)`와 `2015 독일 슈투트가르트 자동차부품박람회`에 각각 지역기업 12개사와 8개사의 참가를 지원해 총 292건의 바이어 상담과 2억7천734만불의 계약상담을 이뤄냈다.이외에도 중소기업 해외무역사절단을 파견하고, 해외박람회 개별 참가, 해외시장 조사대행, 외국어 전자카달로그 제작 등을 지원하고 있다.이렇듯 구미시는 세계적인 경제위축에도 불구하고 지역 중소기업들의 체질 강화를 위해 여러 시책들을 진행함으로써 미래먹거리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6-03-31

지역中企 업종변환 체계적 지원 등 이끌어내

구미공단의 제조업 생산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연구개발(RD)기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글 싣는 순서① 구미경제 현 주소-공단 정말 위기?② 구미공단-체질개선만이 살길이다③ 흔들리지 않는 구미 삼각벨트④ 재도약을 위한 10대 프로젝트전자정보기술원·금오테크노밸리·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시너지`지역中企 RD 투자로 이어져 中企 부설연구소 대폭 늘어나또 기존의 모바일과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업종의 단일화로 대기업의 하청구조를 벗어나기 힘든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이에 구미시는 모바일과 디스플레이를 기반으로 하는 IT 미래 첨단산업을 위한 RD기능 강화와 중소·벤처기업 특화 산업생태계 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시는 이를 위해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구미전자정보기술원, 금오테크노밸리,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삼각벨트를 구축했다. 이 삼각벨트는 지역 중소기업들의 체질개선과 업종변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면서 구미경제 활성화와 경북의 미래먹거리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지난 2003년 구미시 출연기관으로 설립된 구미전자정보기술원(이하 기술원)은 미래전략연구소와 혁신기술연구본부, 융합기술연구본부, 전자의료기술연구본부, 창조경제지원실, 경영지원실 등 1소 3본부 2실 조직으로 구성돼, 현재 각 분야 전문가 100여명이 다양한 기업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기술원은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지역 창조경제 활성화 선도기관이다.구미시와 함께 대규모 국책사업을 발굴해 금오테크노밸리 내에 RD시설 및 기업지원 인프라를 집적화하고, 지역 기업에 테스트베드와 RD 지원, 장비 지원 및 시험인증 등 입체적 기업지원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또 지역 산학연관 간 유기적 협력을 바탕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기술연구기관으로 RD를 통한 기술력 확보와 기술 이전을 통해 지역 창조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제조업 스마트화, 산업융합화를 선도하고 있다.구 금오공대 캠퍼스 부지를 활용한 금오테크노밸리는 미래신성장동력 산업의 RDB 거점지구로 1천500여명의 인원이 근무를 하며 구미의 미래 먹거리 산업 발굴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모바일융합기술센터(959억원)와 종합비즈니스지원센터, 도시통합관제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전자의료기기산업화기반 구축사업(1천213억원)과 3D부품소재 클러스터 구축사업(309억원), 3D프린팅제조혁신센터(90억원), 지난해 11월에 예타에 통과한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술개발(1천213억원) 등 총 4천억원 이상의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여기에 금오공대·구미대·경운대 등 3개 대학이 주축이 된 QWL밸리 산학융합지구 조성사업을 통해 인력양성, RD, 고용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현장맞춤형 산학융합지구로 조성돼 대한민국 산학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2014년 12월 문을 연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삼성그룹과 1대1 상생협력지원 체계를 구축, 지역의 창조경제 확산과 실현을 위해 창업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의 대표사업인 스마트공장 프로젝트는 지난해 12월 120개 중소기업의 공장 현대화를 완료하며 출범당시 목표(100개)를 초과 달성했다. 스마트 공장은 노후화된 공장에 정보통신기술 기반 제조기술과 첨단 운영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으로, 삼성의 제조혁신 DNA를 전수하고 제조 환경을 개선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2017년까지 경북 지역 중소·중견업체 400개, 전국 2천개로 스마트 공장을 확산시키고, 스마트공장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스마트 팩토리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구미전자정보기술원, 금오테크노밸리,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삼각벨트 구축으로 인한 가장 큰 성과는 중소기업들의 부설 연구소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실제 2008년 179개소 였던 부설 연구소는 2015년 9월 기준 379개소로 무려 200개소나 증가했다.구미시가 구축한 삼각벨트가 지역 중소기업들의 RD 투자로 이어진 것이다.중소기업들이 RD를 통한 자체 기술력을 갖추고 지역 인프라와의 연계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구미공단은 세계적 수준의 ICT융합산업의 허브로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락현기자

2016-03-30

찬란한 고대왕국, 대가야 용사들이 깨어나다

1천500년전, 백제와 신라의 강대국 사이에서도 강력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고유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예술을 꽃피웠던 신비의 고대왕국 대가야. 그러나, 승자들의 역사 속에서 대가야의 역사는 기록조차 허락되지 못했다.대가야의 도읍지였던 고령군은 찬란하고도 아름다웠던 고대왕국 대가야 문화의 부흥을 위해 4월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행복한 대가야체험축제 한마당 잔치를 마련한다.내달 7~10일고령 `대가야체험축제`1천500년전 고령 대가야의생활·문화·용사·예술 등다양한 테마 체험프로그램왕릉전시관·유물 관람역사·교육적 정보도 알차가야후기 맹주국 대가야의 화려했고 번성했던 문화와 고분군, 산성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고령에서 오는 4월 7일~10일까지 1천500년전 대가야시대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시작된다.강력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대가야만의 고유문화를 꽃피웠던 신비의 고대왕국 대가야는 사라졌지만, 대가야인들의 뜨겁고도 순수한 열정의 문화가 1천500년이 지나 다시 태어난다.고령대가야체험축제는 1천500년전 대가야시대의 모든 이야기들을 담았다. 대가야인들의 생활과 문화, 용사, 예술 등 생활전체를 테마로 한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마련된다.대가야의 갑옷과 투구, 칼을 만들어 대가야의 용사가 되어보는 용사체험구역을 비롯해 대가야의 유물을 직접 만들어보는 유물체험구역, 대가야인들이 살았던 움집을 직접 제작하는 생활체험구역, 가야시대 토기를 직접 만들어보는 토기체험구역, 가야금 체험구역, 예술체험구역, 대가야진군 퍼레이드 등 역사 교육프로그램, 성인프로그램 등이 다채롭게 준비된다. 주제프로그램인 용사체험구역은 활, 칼, 갑옷, 투구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해 용사선발대회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대가야 진군 퍼레이드 행렬에 참여하면 대가야 시대의 장군이 된 듯 위풍당당한 진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대가야시대의 장신구를 현대화해 직접 만들어볼 수 있으며, 대가야시대의 유물을 직접 발굴하는 유물발굴체험, 대가야금관제작체험도 있다.대가야인들이 생활했던 움집을 제작해보는 대가야움집제작 체험과 바비큐 체험존, 대가야시대 복식을 직접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대가야복식체험, 대가야의 순장 문화를 테마로 한 임종체험, 가야금연주체험과 미니가야금 제작체험 등 그 어느 해보다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체험프로그램들로 가득하다. 역사재현극은 가야국의 건국신화와 역사적 인물인 악성 우륵, 가실왕 등의 주제로 대가야를 지키려는 생생한 전쟁액션이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 대가야는 과거의 사라진 역사가 아니라, 변화와 발전을 통해 1천5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교훈적인 내용과 특수효과를 가미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구성되었으며, 공연이 끝난 후에는 공연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포토타임을 갖는다.고령의 대표특산물인 딸기를 활용한 가족사랑딸기이벤트를 비롯해 주요프로그램들을 두루 거치면 대가야체험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자신의 소원을 적어보는 소원지쓰기와 관광객들이 직접 딸기밭을 방문하여 싱싱한 딸기를 따 먹어보고 가져갈 수 있는 딸기수확체험, 행사장내에 온실을 조성하여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는 녹색테마식물원 등이 선보인다.특히, 대가야체험축제에는 교육적인 체험프로그램 외에도 고령의 특산물인 딸기를 테마로 한 `딸기까페`를 운영해 달콤하고 향긋한 고령딸기를 오감으로 즐길 수 있다.녹색농촌체험마을 개실마을 등 6개 마을이 참여해 따뜻한 농촌의 정과 소박한 농촌사람들의 삶을 고령군의 다양한 농·특산물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가야체험축제는 대가야시대의 역사뿐만 아니라 문화와 생활 등을 공부하게 된다. 축제의 프로그램들을 통해 대가야의 유물과 역사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장묘인 지산동44호분을 재현, 당시의 무덤축조방식과 순장자들의 매장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대가야왕릉전시관과 고령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대가야박물관, 대가야역사테마공원이 축제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대가야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올해는 지난해 준공된 대가야문화누리가 새로이 축제장으로 편입으로 돼 볼거리를 더한다. 실경뮤지컬이 새로운 내용과 배경으로 실내공연으로 준비 중이며, 문화누리 공연장에서 `가얏고`라는 이름으로 총 3회(4월 8일 오후 7시, 9·10일 오후 2시) 공연된다.대가야 농촌체험특구에서는 축제 기간 중 캠핑 족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 특히 이곳은 기마체험이 가능한 캠핑장으로 대가야 마상무예 체험 등 관광객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예정이다. ■ 추천 관광코스△ 대가야체험코스 (대가야체험축제기간 알차게 즐기기)대가야체험축제 관람 및 체험 → 대가야역사테마공원 및 대가야박물관·왕릉전시관→ 딸기체험→ 개실마을 → 우륵기념탑→ 우륵박물관 → 산림녹화기념숲△ 대가야봄빛코스 (따뜻한 4월 걷기좋은 길)대가야박물관 → 지산동고분군 → 주산성 → 철쭉단지 → 청금정 → 반룡사△ 대가야스페셜코스대가야박물관(고분군) →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 향토문화학교(관람 및 체험) → 1박(향토문화학교·개실마을) → 우륵기념탑 → 우륵박물관(관람 및 가야금체험) → 산림녹화기념숲△ 대가야와 농촌문화체험 코스대가야박물관(고분군) →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 반룡사 → 개실마을(관람 및 농촌문화체험·딸기체험) → 1박(개실마을) → 우륵박물관 → 산림녹화기념숲△ 대가야올레코스(대가야고분관광로길)주산(체육관) → 지산동고분군 → 대가야박물관 →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 고아동벽화고분고령/전병휴기자kr5853@kbmaeil.com

2016-03-29

“대형 국책사업 유치로 中企 업종 다각화 이뤄”

구미산업단지는 그동안 시대적 흐름에 따라 주력산업이 변화해 왔다.70, 80년대는 섬유·전자, 90년대 전자·가전, 2000년대 모바일·디스플레이로 10년 단위로 주력산업이 변화했다.글 싣는 순서① 구미경제 현 주소-공단 정말 위기?② 구미공단-체질개선만이 살길이다③ 흔들리지 않는 구미 삼각벨트④ 재도약을 위한 10대 프로젝트광학·자동차부품 등968개사 13조원 유치주력사업 다각화 결실10년 단위로 주력산업이 바뀐 것은 구미의 주력산업이 IT와 전자 등의 산업으로 라이프 사이클(Life-Cycle)이 매우 짧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구미공단은 이러한 특정분야 산업에 편중되어 있다보니 대기업 중심의 단순 하청 구조로 운영이 될 수밖에 없었다.대기업의 작은 변화가 중소기업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구미시는 구미공단의 업종 다각화라는 체질개선을 시작했다.우선, 모바일과 디스플레이 산업분야에서 자체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의료기기, 국방, 자동차부품 등 다양한 형태의 산업변화를 시도했다.이를 위해 중소기업 RD 역량을 강화와 업종전환을 유도할 금오테크노밸리를 구 금오공대 부지 9만㎡에 조성해 대형국책사업을 유치했다.금오테크노밸리는 모바일융합기술센터(1천33억원)와 전자의료기기 부품소재 산업와 기반구축(1천213억원), 3D디스플레이 부품소재 실용화 센터(309억원), 3D프린팅 제조혁신지원센터(190억원), 웨어러블 스마트디바이스용 핵심부품 요소기술개발(1천272억원) 등 4천억원 규모의 대형국책사업을 유치해 미래산업의 상용화를 지원하면서 중소기업의 업종전환을 도우고 있다.대형국책사업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중소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2011년 IT업체에서 의료기기분야로 전환한 업체수는 1개사에 불과했으나 2014년에는 30개사로 급속하게 늘어났다.또 지역 국방산업 기반과 국방벤처센터를 통한 국방관련 분야에는 24개사가 협약기업으로 참여하고 있다.이 중 자동차부품 산업이 가장 눈에 띈다.구미시는 IT산업을 기반으로, 최첨단 자동차 전자부품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시는 독일 자동차부품박람회와 독일통상협력사무소 등을 통해 자동차부품 업체들을 지원하고 있다.특히 지난해 3월 개소한 독일통상협력사무소는 지역기업이 필요로 하는 유럽지역 바이어 찾기, 기업체 대 유럽 홍보, 독일 기업과의 기술협력, 지역기업 생산제품 현지 마케팅 등의 기업 지원으로 현재까지 33건의 통상협력 요구사항 중 25건을 해결했다.또 세계 최고의 독립 엔지니어링 회사인 EDAG(Engineering Design AG)사와 지역 자동차 부품 업체가 생산한 제품을 폭스바겐사의 부품 공급자로 등록 및 제품 생산기술 향상, 해외 시장 진출 컨설팅 지원 등을 내용으로 공동 프로젝트 추진 실무협의도 진행하고 있다.구미에는 현재 200여개 사가 자동차부품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디피엠테크, 대경테크노, 세바 등 중견기업체를 중심으로 자동차부품 업체로 업종을 전환하고 있다.남유진 구미시장은 “2006년부터 대형국책사업과 기업 유치로 지역중소기업의 업종 다각화를 추진해 왔다. 이러한 구미시의 노력으로 그동안 광학, 의료기기, 자동차부품, 탄소섬유, 이차전지 등에 총 968개사 13조원 유치로 주력사업 다각화를 이뤘다”면서 “앞으로도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산업 트렌트, 정부의 9대 전략 산업, 4대 기반산업정책과 연계한 중대형 프로젝트를 발굴해 지역 기업들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6-03-29

문경새재서 선비와 호랑이 사냥꾼을 만날 수 있다면…

관광 해설자 이춘자 씨에게 물었다. 문경새재를 찾은 관광객들은 어떤 식으로 문경아리랑을 접하고 가게 될까? “아시다시피 옛길박물관에 아리랑 상설 전시 공간이 있고요. 문경새재 옛길 2관문에 또 문경 아리랑 비석이 있어요. 비석 옆에는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스피커가 있어서, 자연 속에서 아리랑을 눈으로 보고 귀로도 들을 수 있죠.” 문경시는 실제로 얼마 전 박달나무를 새로 심었다. 생태공원을 들러 가지 않는 관광객들도 문경의 명물인 박달나무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관광 해설자 입장에서도 더 자연스럽게 문경 아리랑의 대표사설을 소개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문경시에서 성황리에 매년 열리는 축제는 `달빛 사랑 여행` `전통 찻사발 축제` `맨발로 걷기 대회` 등이다. 사과와 오미자, 한우축제도 있다.축제 관계자들은 “관광객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하룻밤 자면서 이벤트를 제대로 즐기고 가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한다. 문경문화원에서 주최하는 `달빛 사랑 여행`은 과거시험길을 직접 체험해보는 야간 이벤트다.문경새재라는 명승지의 풍경과 달밤 산길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축제다. 이벤트 중에는 `문경 아리랑 공연`도 있다. 그런데 이춘자 씨의 말에 따르면, 이 공연은 일방형이라고 한다. 함께 부르고 어울리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14년째 펜션 `강이 있는 풍경`을 운영해 온 김희태 씨는 “문경을 찾는 관광객들의 90퍼센트 이상이 문경새재를 거쳐 간다”고 말했다. 문경시의 관광문화개발이 문경새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경새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펜션임에도 불구하고 시에서 치르는 여러 축제들이 숙박업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전무하다고 한다.“축제 기간 동안 문경새재 입구는 복잡해지는데 숙박 관광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문경이 지리적으로 중앙에 위치해 있잖아요.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숙박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거죠. 몸소 체험하는 축제가 없으니 관광객들의 발을 붙들지 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체험하는 축제로는 맨발 걷기 대회라는 체험 축제가 제일 나은 것 같아요.”실제 문경에서 펜션을 운영한다는 것은 관광객의 요구 사항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저희 같은 사람들의 의견도 좀 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 씨의 말은 그래서 더 일리 있어 보인다.“관광객들은 전통문화에 흥미를 느껴요. 체험 관광을 좋아하죠. 레일바이크가 그렇고 걷기대회가 그렇습니다. 문경은 정말 문화적으로 활용할 것들이 무궁무진한데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문경시민으로서 답답해요.”□ 관광객이 머물만한 매력적 환경 만들어야김 씨는 흥밋거리를 만들어 하루 묵을 걸 이틀 묵게 만들어주는 것이 문경시에서 관광업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며 그것이 결국에는 문경의 산업이라고 했다. 방문객을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두 사람이 하는 말에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 뭔가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이종필 문경시 관광진흥과장에게 아리랑이 관광과 축제에 어떻게 접목되는지 직접적으로 물었다. “지금 현재 아리랑 축제를 기획하진 않았습니다. 민간단체들이 주도적으로 해나가면서 시에서 후원을 해주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김희태 씨나 이춘자 씨가 들었다면 섭섭할 얘기다. 그러나 내막을 알면 꼭 그렇지도 않다. 민속원이 펴낸 `새로운 축제의 창조와 전통축제의 변용`에서 이승수 씨는 문화관광축제의 문제점을 여섯 가지로 압축했다. 그 중 네 가지가 축제를 벌이는 주체의 문제다. 지역을 다녀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점이 관 주도형 축제가 많다는 것이다.관이 주도하면 아무래도 운영상 경직성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공금을 집행하는 데서 관은 아무래도 느리고 조심스럽다. 역동적인 운영을 끌어내기 어려운 이유다. 관이 주도하다보면 시민의 자발성은 아무래도 식는다.민간과 관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실이 아리랑 축제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이란 다름 아니라 `아리랑에 대해 기대하고 오는 관광객들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수요가 불명확한데 적극적으로 수요를 창출하기가 과연 관의 입장에서 쉽겠는가. 관광축제는 지역의 누구나 필요성을 느끼기는 하지만, 시장의 자발적 힘으로 실현시키기엔 걸림돌이 의외로 많고도 크다. 김희태 씨의 견해와 달리, 관광축제는 콘텐츠로서 덜 매력적이라는 것이 전문연구자의 지적이다. 문경시는 세계군인체육대회처럼 큰 규모의 사업에서 다른 지자체라면 빠지기 쉬울 적자의 늪을 뛰어넘어 흑자를 보여주고, 도단위 경창대회가 생기자 시단위 경창대회를 폐하는 등의 효율성을 보여준 적이 있다. 겹치는 행사를 축소시킬 줄 안다는 것은 효율을 위해 그만큼 과감하다는 뜻이다.조급하게 만들어 망치느니 준비된 선수에게 외주를 주어서라도 자발적 참여를 후원하고 싶다는 입장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자발적 참여를 후원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외주를 줄 수 있다는 뜻이리라. 민간업체가 어느 정도의 지원금을 받아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다. 김희태 씨는 이에 대해 “외주를 맡겼을 때 지역색을 잃어버리고, 단편적인 내용의 행사들이 주를 이루게 돼 있다”고 말한다.다들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행사를 도맡아 할 줄 아는 누군가 주도해서 지원금을 타내고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디선가 볼멘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관이 주도하지 않는 문화관광축제는 안 그래도 주체가 불명확한데 이런 잡음마저 들리면 형평성의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관광축제 연구자가 제기한 여섯 문제 중 하나는 축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는 지역이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지역축제는 누군가에게만 상대적으로 희소식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외주를 줄 경우 외주업체가 지역의 대표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합의 이 같은 저해요소를 시가 섣불리 지원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테마가 있는 `아리랑 민속마을` 조성에 노력 기울여행사가 많은 도시일수록 지역행사에 의존하는 전문업체의 생태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전문업체들의 경영마인드는 창의적이기 쉽지 않다. 노래로 치면 이미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고, 실험보다는 현상을 유지하는 쪽의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울산의 산악영화제에 참여한 케이터링 업자 나종하 씨의 말도 참고할 만하다. 그는 오십 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부스를 마련했다. 모든 수익은 자신이 가져간다는 소리에 재료도 신나게 준비했다. 그러나 행사가 열린 사흘은 케이터링 업자인 그로서는 처참했다. “마지막 날 설비 대여료를 치를 때 대여업체와 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나 씨는 말했다. 줄 돈이 없었던 것이다.지역행사를 쫓아다니는 이른바 `보따리장수`들의 경험이 이러하다. `문화서비스업`이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수요 한 줄기가 자리 잡기까지 축제라는 시장 자체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다.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언제나 있었고, 그에 따른 합의와 예산도 탄생해왔다. 그러나 이 투자는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결국엔 시정을 담당한 이들도 머쓱해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대다수의 지자체 입장에서 이 생존의 길은 운명이다. 대체 축제는 어때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민속촌의 사례는 전통체험이라는 시장의 수요를 어떻게 창출하는지 보여주는 한 예다.한국민속촌은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할 때는 정작 없었던 줄임말을 만들어냈다. `벨튀`가 그것이다. 민속촌은 1970~80년대에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심정을 느끼게 한다. 대문 안에는 주인을 연기하는 단역이 있어서 화를 버럭 내주기도 한다.이종필 과장은 “문경새재 아리랑을 보급하고자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문경읍 고요리의 고요 아리랑 민속마을을 조성한 이유가 그것”이라고 했다.고요리는 아리랑 마을로 지정된 하초리와는 십 리 넘게 떨어진 곳이다. 하초리가 문경아리랑의 기원지로서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맞지만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도 따로 길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하초리가 기념장소인 동시에 살림공간이라면 고요리는 응접공간인 셈이다. 고요리에서는 노래를 배울 수도 있고 부를 수도 있다. 테마가 있는 아리랑 민속마을을 조성해서 관광객과 문경이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이 계획이다. 체험, 전시 등을 주민과 관계자들이 계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고요리 중간계획 보고회에서는 관광객들이 테마 숙박을 하면서 아리랑 전수와 연수도 하는 프로그램이 그려졌다.여기에 한 가지를 더 그려보고 싶다. 문경새재 길에서 옛날에 있었을 법한 사건과 캐릭터들을 재현해낼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이 사업을 함께 하는 그림이다.소설 `객주`의 인물들이 오갈 수 없을까도 싶고, 과거만 십년 째인 `잉여`선비들이 철없는 객담을 건네다 관광객에게 구박을 당하는 코미디가 있으면 어떠할까도 싶다. 호랑이 사냥꾼의 호위를 받으며 달빛 여행길을 걷는다거나, 대동여지도를 펼치며 출발지와 행선지를 묻는 김정호를 만나보고도 싶다. `걷기`로 나날이 유명해지는 문경새재의 아련한 길에 누군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드라마틱한 그림을 그려줄 수는 없을까.강남진 기자/이소연 시인

2016-03-28

中企 체질개선 노력 성과에 `희망불씨` 솔솔

최근 세계적인 경제 성장 둔화로 한국 전자산업의 성공신화를 이끌어 온 구미산업단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미시와 구미공단 기업들은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가적인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 이에 경북매일신문은 구미경제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어보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미시와 기업들의 노력과 구미산단의 미래먹거리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기획기사를 4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① 구미경제 현 주소-공단 정말 위기?② 구미공단-체질개선만이 살길이다③ 흔들리지 않는 구미 삼각벨트④ 재도약을 위한 10대 프로젝트대기업 부진에 수출감소 직격탄업종다각화·市지원 힘 입어총생산은 전년보다 7천억 증가구미국가산업단지는 전자·반도체, 섬유산업 중심의 산업단지로, 1970년대 흑백TV, 1980년대 칼라TV와 VCR, 1990년대 이후 LCD, PDP, 모바일 등으로 업종변화를 보이면서 한국 전자산업의 성공신화를 이끌었다.하지만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섬유, 전자제품 업체들이 중국과의 경쟁 심화 등을 이유로 폐업하거나, 생산기지를 노동력이 비교적 싼 동남아시아로 이전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특히, 구미공단은 대기업의 의존도가 높고, 수출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특성상 최근 세계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모바일 산업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여기에 대기업들이 가격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단기인하 조치를 하면서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또한 엎친데 덮친격으로 대기업 이전, 생산라인 중단 및 휴업 등의 괴담까지 퍼지면서 구미지역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이러한 여러 어려움 속에 한 가지 눈여겨 볼 게 있다.지난해 대한민국 수출은 전년대비 8.5% 감소했다. 평택이 30%로 가장 크게 감소했으며, 울산과 거제가 21%로 그 뒤를 이었다.포항과 구미도 15% 감소세를 보였다. 구미의 경우 지난해 수출액 273억불로, 전년 대비 51억불이 감소했다. 하지만 총 생산액은 48조6천360억원으로, 전년 대비 7천490억원이 증가했다.이는 대기업의 수출은 하락세를 보인 반면,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기업의 생산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대기업에 의존하던 중소기업들이 자체적인 기술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체질개선을 하고 있다.지난해 11월 구미공단 기업부설 연구소 수는 386개소로, 2008년 179개소보다 무려 207개소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수출규모가 줄어들어 기업경영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체 연구개발에 힘을 쏟았다는 이야기다.중소기업들의 이러한 노력들은 근로자 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한국산업단지공단의 지난해 12월 현재 산업동향 자료에 따르면 구미공단 근로자수는 11만1천689명으로 전년 동월대비 628명이 증가했다.또 입주 업체수도 총 3천206개사로 전년 동월대비 93개사가 늘었다.이는 구미공단과 구미경제의 틀이 변화하고 있음을 반증한다.이러한 변화 뒤에는 구미시의 숨은 노력도 한몫했다.구미시는 기존산업을 바탕으로 IT융·복합산업 활성화와 업종 다각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또 연구개발(RD)기능 강화를 통한 제품 상용화를 위해 금오테크노벨리를 중심으로 모바일, 디스플레이, 의료기기, 3D프린팅, 국방벤처센터 등 4천억원 규모의 RD 상용화 센터를 구축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한 중소기업 체질개선과 업종 다각화를 유도하고 있다.이러한 구미시의 다양한 지원정책과 중소기업의 체질개선 노력들이 성과를 내기도 전에 `구미경제 위기`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6-03-28

예천군, 곤충산업으로 미래먹거리 새 동력 돌파구 찾는다

2030년께면 세계 인구가 약 83억명으로 불어나 심각한 식량난에 봉착할 것이란 학계의 보고가 나와 있고 세계 각국마다 대체 식량자원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예천군은 일찍부터 미래식량자원으로 부각되고 있는 곤충산업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와 산업화에 행정력을 집중해 왔다. 예천은 곤충연구소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인프라를 구축한데 이어 전시와 축제, 이벤트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계곤충엑스포를 개최해 미래 곤충산업의 비전을 제시하며 우리나라 곤충산업의 중심지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다. 다양한 곤충연구·산업화 시행꿀벌 연구·호박벌 특화 통해전국 농가 보급, 소득창출 박차7월30일부터 `세계곤충엑스포`색다른 곤충식품·체험·이벤트곤충산업 중심지 자리매김 기대□ 미래를 준비하는 예천곤충산업예천곤충연구소는 곤충이 서식하기 좋은 소백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24만3천836㎡ 규모의 곤충생태원과 2만여 점의 곤충표본, 살아있는 다양한 곤충을 체험할 수 있는 곤충생태체험관이 있다.또한 연구시설로 꿀벌 우량품종 개발을 위한 꿀벌육종연구센터와 지역곤충자원산업화 호박벌특화센터 등이 있다.곤충연구소는 2015년 생물다양성 관리기관, 꿀벌 농업생명자원 관리기관으로 지정됐다. 주요 연구 사업은 화분매개곤충 생산 및 보급, 꿀벌 우수품종 개발보급, 식약용곤충 대량 사육 기반조성 및 곤충식품6차산업화 등이다.화분매개곤충 보급 사업은 지역의 고품질 과수 및 시설채소 생산을 위해 1997년 시작해 매년 호박벌 3천통, 머리뿔가위벌 10만 마리정도를 전국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예천군은 2014년 농림식품부의 지역곤충자원산업화지원 호박벌특화센터를 유치했다. 호박벌특화연구센터는 생태교란 우려가 있는 서양뒤영벌을 대체할 토종호박벌 인공증식연구와 대체먹이 개발, 지역 농업인 교육 등을 추진하며 국내최고의 화분매개곤충 연구 및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꿀벌 우수품종개발 사업은 2015년 국내 최초로 인공수정을 통한 꿀벌 정부장려품종1호 `장원`을 개발 해 전국 10여개 시험장에서 지역적응시험을 실시했다. 현재 경북도기술원 및 울릉군과 협력해 울릉도 나리분지에 신품종 `장원`대량 생산 보급기지를 조성 중에 있다. 신품종 `장원`은 일반 농가의 벌보다 꿀 생산량이 30% 정도 향상된 품종으로 연 700억원 이상 양봉농가 소득증대가 예상되고 있다.군은 관내 양봉농가에 신품종 여왕벌 보급 사업을 실시함으로서 소득창출이 기대된다. 지난해에 이어 우수 여왕벌 육성기술 및 벌꿀 다수확 사양기술 등을 지역양봉 농업인에게 전수하기 위해 기수 당 50명 규모의 양봉대학을 운영해 농가 기술 보급에 힘쓰고 있다.예천군은 혐오식품으로 가공유통이 금지됐던 흰점박이꽃무지, 장수풍뎅이 유충, 갈색거저리, 귀뚜라미 등이 1~2년 내 식품원료로 허용되고 곤충식량, 곤충 의약품 등 곤충자원 개발을 위한 국가시책에 발맞추어 관내 곤충영농법인 3개 및 곤충연구회 1개를 육성하고 있다.식약용곤충 사육농가의 소득 창출을 위해 곤충음료, 곤충국수, 곤충떡복이, 곤충과자 등을 개발했다.군은 `2016예천세계곤충엑스포 행사`에서 곤충식품 시식회와 세계곤충요리대회 등 세계곤충음식페스티벌을 개최해 곤충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곤충식품 산업화에 박차를 가한다.이현준 예천군수는 “앞으로 예천군은 산업곤충연구의 선도 기관으로서 유용곤충 사육기술 개발, 곤충사관학교 및 꿀벌 대학운영, 유용곤충 상품개발을 통해 유용곤충사육기반을 확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2016 예천세계곤충엑스포세계곤충학회에서 인증한 세계 최대의 곤충 박람회인 2016예천세계곤충엑스포가 곤충의 고장 예천에서 오는 7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예천공설운동장과 곤충생태원 일원에서 개최된다.올해 엑스포는 2007년 `미래를 여는 친환경 농업! 곤충바이오산업`, 2012년 `곤충과 함께 여는 친환경 세상`이후 `곤충의 꿈 이야기`란 주제로 세 번째로 마련된다.엑스포는 7월 30일 개장식과 개막식을 시작으로 8월 15일 폐막식까지 17일간 전시, 체험, 행사, 이벤트가 다채롭게 꾸며진다.예천공설운동장에 위치한 주행사장은 곤충주제관과 곤충놀이관, 곤충산업관, 파브르의 정원, 벅스워터파크, 농특산물 판매장으로 구성된다.곤충주제관은 곤충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종합적으로 선보이고, 특히 미래 식량 자원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곤충을 활용한 음식, 국내 및 세계곤충식품 조리대회, 곤충식품 체험존, 곤충식품 쿠킹 콘서트 등 곤충식품에 관한 모든 것을 만나볼 예정이다. 곤충놀이관은 아이들이 교육과 놀이를 함께 즐기고 뜨거운 열기를 식히며 곤충관련 학습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곤충산업관은 곤충사육 신기술 및 곤충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파브르의 정원은 곤충이 서식하는 자연환경을 그대로 조성해 자연속 곤충의 모습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할 예정이다.앞서 곤충에 대한 학습과 체험으로 곤충에 대하여 알아보았다면 대형 물놀이 시설인 벅스 워터파크에는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줄 에어바운스, 워터슬라이드, 워터파크 내 무대에서 펼쳐지는 문화공연 등이 부모와 어린이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행사가 무더운 한여름에 펼쳐지기 때문에 대규모 벅스 워터파크를 설치해 어린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도록 조성하고, 신나게 놀고 허기진 배는 예천읍내 맛 고을문화의 거리 등의 예천 맛집을 탐방하며 해결할 수 있다. 주행사장에서 예천읍 시가지까지 맛 고을 곤충전동차를 운행해 관람객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예천읍의 전통시장을 돌아보며 예천의 생활문화도 즐길 수 있다. 예천공설운동장은 주행사장, 예천곤충생태원의 부행사장으로 운영할 계획으로 주행사장에서 부행사장까지는 안락하고 쾌적하게 셔틀버스를 운영한다.효자면 곤충생태원에 위치한 부행사장에는 곤충생태체험관과 곤충체험온실, 곤충정원, 곤충멀티체험관, 수변생태원, 벌집테마원, 벅스하우스, 나비관찰원, 동굴곤충나라, 살아있는 곤충 체험원, 곤충전망대가 마련된다. 이곳에서는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호박벌, 호랑나비 등 살아있는 곤충을 직접 만져보며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을 주고 세계 희귀종, 멸종 위기종 등을 전시하여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입장권 판매가격은 보통권 성인 1만 원, 청소년 8천 원, 초등생 6천 원, 미취학영유아 4천 원이며, 사전예매의 경우 성인 9천 원, 청소년 7천 원, 초등생 5천 원, 미취학영유아 3천 원이다. 단체로 구매하면 성인 7천 원, 청소년 6천 원, 초등생 4천 원, 미취학은 2천 원이다.입장권은 예천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환급쿠폰도 포함되어 있고 2월부터 농협중앙회 예천군지부에서 사전예매를 실시하고 있으며, 인터넷 예매는 4월경 대행사 선정 후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예천/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16-03-28

봉화 백두대간의 청정 원시림… 그 웅장한 품을 열다

백두대간을 끼고 있는 봉화는 산이 많은 경북지역 최대 산간오지로 꼽힌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돼 청정지역으로 남아있다. 봉화의 훼손되지 않은 울창한 산림과 청정 자연이 지역 발전을 이끌어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다가서고 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조성되고 있다.올해 7월 시범운영, 내년 봄 정식오픈 계획전문해설 인력 활용 전시원·생태탐방 주력산림연구·휴양까지 신개념 힐링공간 기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조성산림청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산림생물자원의 안정적 확보 및 보전 연구를 위한 기후대별 권역별 국립수목원 확충 계획의 일환으로 백두대간수목원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국립백두대간수목원 조성사업은 낙후된 경북 북부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국가 광역경제권 추진방안으로 선정된 30대 선도 프로젝트의 하나이다.산림청은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일대 5천179ha 면적에 2천200억원을 투입해 아시아 최대 규모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조성사업을 추진했고 착공 5년만인 지난해 12월 마침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조성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지난 2014년 3월 주 시공사인 벽산건설이 공사 추진 중 파산하는 바람에 전체공사가 중단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이후 후속 시공사인 남해종합건설이 잔여공사를 추진하면서 순조롭게 마무리돼 지난 2011년 수목원 조성사업을 착공한 이래 5년여 만에 대역사의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 운영과 과제 국립백두대간수목은 사업 준공을 통해 수목원 시설을 비롯한 하드웨어를 완벽히 갖추었다면 지금부터는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데 총력을 기울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산림청은 올해 수목원 임시개방 및 시범운영을 통해 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다양한 운영 프로그램 개발과 조직 및 예산 확보 작업 등을 거쳐 2017년 봄에 문을 열겠다는 목표로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활한 시범운영(2016년 7월 예정)을 위해 수목원은 방문객을 대상으로 산림치유지도사, 숲해설가 등 전문해설 인력을 활용해 일부 개방할 전시원과 생태탐방지역을 중심으로 한 체험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한, 수목원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봉화군 등 지자체와 연계한 홍보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제행사 참여를 통한 해외 홍보도 함께 계획하고 있다. □ 지역 경제 활성화 봉화군은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이 본격적으로 운영에 들어가면 매년 17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이를 통한 지역 총생산이 61억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또 수목원 직원과 주변 상업시설 종사자 등 새로운 일자리가 1천개 이상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산림청은 주민소득증대를 위해 수목원 방문객을 대상으로 봉화군 지역 특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고, 관련 행사, 축제, 전시회 등 홍보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또한, 수목원의 첨단 RD 기반을 활용해 백두대간의 산림생물을 관상용이나, 약용자원으로 개발함으로써 이 분야 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생물자원산업의 세계시장규모는 약 2조 5천억 달러 정도인데, 세계 의약품의 약 25%가 식물에서 추출되고 있음을 참작해 볼 때, 상대적으로 종다양성이 매우 높은 백두대간의 산림생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산림생물자원으로부터 신(新)가치를 창출해내어 지역의 고소득 자원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있다.이 밖에도 수목원에서는 홍보간행물 발간 및 영상자료 제작, 백서발간 등의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운영과 홍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 수목원의 각종 시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생태탐방지구(4천973ha)에 64Km에 달하는 탐방로를 조성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전한 것이 특징이다.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전체 4개 지구(진입 및 커뮤니티지구, 주제정원전시지구, 산림보전 및 복원지구, 산림생물자원연구 및 교육지구) 총 21개 건축물, 26개의 주제 전시원으로 구성됐다.먼저 진입 및 커뮤니티지구에는 방문자센터, 진입광장 등이 조성되었고, 주제정원전시지구에는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약용식물원, 백두대간 자생식물원, 꽃나무원, 만병초원 등을 조성했다. 또한, 산림보전 및 복원지구에는 기후 변화에 대비해 고산식물의 보전과 전시를 위한 알파인하우스와 백두대간의 상징동물인 호랑이를 전시하기 위한 호랑이 숲이 만들어졌다. 산림생물자원 연구 및 교육지구에는 수목원의 가장 핵심적인 시설중 하나인 영구종자저장시설인 시드볼트와 산림환경연구동, 교육연수동을 만들어 다양한 연구 및 체험학습, 전문교육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로써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연구, 보전, 전시, 교육, 휴양 기능 등이 복합된 새로운 개념의 수목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조성 및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산림청 산림복지시설사업단 시설과장인 김경목 서기관은 “시범운영을 통해 수목원이 지역민과 한층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역의 명소로서 지역 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도록 운영 부분에서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박종화기자 pjh4500@kbmaeil.com

2016-03-25

기차로 34시간 달려 겨우겨우 얻은 이란行 비자

차도르와 모스크의 나라 이란으로의 여행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1개월짜리 여행비자를 얻기 위해서 인접국 터키의 세 도시를 숨 가쁘게 오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처럼 이란 여행을 열망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지금으로부터 15년 전. `9·11 뉴욕-워싱턴 테러`가 일어났다. 미국은 테러의 진원지를 발본색원하겠다며, 배후로 지목된 이라크를 공격했다. 기자와 작가들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1개월짜리 여행비자 얻으려100여개 항목 신청서 써내가까스로 이란 도착하니영어 한마디도 통하지 않아“적지 않은 기자들이 이라크로 가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바그다드를 취재하겠다고 자원한다는데, 당신들은 그들이 이해되는가?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총알에는 눈이 안 달렸다. 기자들을 피해 총알이 날아다닐 리가 없다. 미군의 폭격에 일흔 노인과 일곱 살 아이도 죽어가고 있는데… 정말 대단한 용기들이다.”사실 기자는 용기 있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그랬음에도 이라크 바로 옆에 위치한 나라이자, 당시엔 국제사회로부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불량국가`로 찍혀 있던 이란에 왜 가려고 했을까? 아마도 일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미지의 공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이었다고 짐작해보지만, 그것 또한 정확한 이유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란을 여행했던 몇 해 전 봄. 우크라이나 키예프공항을 경유해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이란대사관을 찾아 여행비자를 신청한 것이었다.당시엔 인터넷을 통해 비자신청서를 접수해야 했는데, 적어야 하는 항목이 족히 100개가 넘었다.도대체 이런 건 왜 묻는 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항목도 많았다. 결혼 여부에서부터 이미 사망한 내 아버지의 이름, 이스라엘 여행 여부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되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대체 눈동자 색깔은 무엇 때문에 적으라는 걸까.게스트하우스 공용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 동안 땀을 훔쳐내며 항목 하나하나를 채워나갔고, 그걸 이란대사관으로 전송한 후 자그마치 2주를 기다렸다. 그 기간 동안은 이스탄불 시내 곳곳과 교외까지를 여행했다. 최근 폭탄테러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탁심거리`와 `술탄아흐메트 광장` 역시 당시 돌아본 곳이다.비자신청서를 보낸 지 보름째 되는 날에도 `여행비자가 발급됐으니 수령하러 오라`는 답변 이메일은 오지 않았다. 그쯤 되고 보니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 이렇게 한단 말이지. 기다린 게 억울해서라도 반드시 이란에 가고야만다”란 혼잣말을 했다. 이란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터키 사람을 만나 물으니 “이란 여행비자는 이스탄불보다 트라브존에서 신청하는 게 쉽게 받을 수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터키 동부로 가는 기차의 출발지인 하이다르파샤역으로 가서 티켓을 예매했다. 자그마치 1200km를 달려야 하는 에르주름행 기차표엿`다.서유럽이나 일본, 한국처럼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고속열차가 있다면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터키 기차의 평균시속은 50km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연착도 잦았다. 결국 기차에서 네 끼를 먹고 34시간 만에야 에르주름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란 비자를 얻을 수 있는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트라브존까지는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더 가야했다. 지독하게 먼 길이었다.트라브존 중심지를 벗어난 곳에 자리한 이란영사관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스탄불에서 쓴 100여 개 항목의 질문이 있는 비자신청서를 다시 써야한단다.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을의 입장이니 어쩔 것인가. 또 쓸 수밖에.돌아가신 부친의 이름을 또 한 번 썼고, 눈동자 색깔을 적는 칸엔 `다크 브라운`이라고 써넣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주관식 문항이었다. “여행에서 돌아가면 곧 할 것”이라는 거짓말까지 했다. 무슬림 국가에서는 미혼의 단독여행자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서야 가까스로 `Islamic Republic of Iran`이 선명하게 날인된 1개월짜리 여행비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영사는 여권을 돌려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가시처럼 돋은 수염에 험상궂은 표정과는 전혀 다른 착한 웃음이었다.이슬람성당인 `모스크`와 이를 호위하며 서 있는 커다란 기둥 `미나레트`,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에잔`과 여성의 온몸을 검게 휘감은 `차도르`로 상징되는 이란. 바로 그 이란과 만나기 위해 어렵게 얻은 여행비자를 가방에 고이 모셔 넣고, 이란에서 가까운 터키 동북부 시골마을 도우베야짓을 향했다. 또 10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야했다. 멀미까지 날 지경이었다.`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는 풍문이 떠도는 도우베야짓. 거기서 사흘을 머물며 이란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저 했다. 현금지급기가 없는 이란에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무용지물이라고 했다.넉넉하게 달러를 환전하고, 엄청나게 느린 인터넷 속도를 참아가며 `안전한 이란여행`이란 키워드로 포털사이트를 검색하기도 했다.그리고, 마침내 이란으로 입국하는 날이 왔다. 이국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빛나던 봄날 오후.터키 국경검문소를 넘어 이란 출입국사무소를 통과했다. 양국의 군인들이 총을 든 채 오갔지만, 대부분의 군인이 사람 좋게 웃고 있었기에 위협적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를 않았다. 동남아시아와 우크라이나, 터키 이스탄불에선 억지스럽게라도 먹혀들던 `여행자용 단문 영어회화`조차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시내라고 해봐야 끝에서 끝이 훤히 보이는 손바닥만한 이란의 국경마을 바자르간. 거기서 길을 잃을 줄이야.막막하기 짝이 없었다.한국처럼 이란 역시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난 것인지 거리엔 노인들이 많았다. 그들 중 어떤 사람도 “버스터미널이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이거 시작부터 왜 이러지”라는 말이 한숨에 섞여 나왔다.이란은…유럽과 아시아 중간지점 동·서문명 교류지 역할무슬림 종교 특성상 술과 돼지고기 찾기 어려워아라비아반도와 인도 사이에 위치한 국가.파키스탄, 이라크, 터키, 아제르바이잔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유럽과 아시아대륙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탓에 오래 전부터 동·서문명의 교류지 역할을 해왔다.1906년 근대헌법이 공포되고 1925년 팔레비왕조가 들어서 친서방 정책을 펼쳤다.1979년 친서방-개방정책에 반대하며 이슬람 순혈주의를 지향했던 호메이니가 회교혁명을 통해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했다.면적은 164만8천㎢, 인구는 약 8천1백만 명, 수도는 테헤란이다.페르시아인(51%)과 터키인(18%)이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소수의 쿠르드인(7%)과 인근 아프가니스탄 등의 국가에서 유입된 이들도 각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여타 중동국가와 달리 공용어는 페르시아어. 이슬람 시아파의 `맏형 국가`로 불린다.이란 이슬람교도 중 시아파의 비율은 약 89%. 적은 수의 유대교와 기독교 신자가 있고,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이들도 있다.최근 미국이 주도했던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풀림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국가발전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이 많아졌다.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유국이며 외형적으로는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사실상의 정치권력은 무슬림 최고지도자인 이맘(Imam)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호메이니에 뒤를 이은 현재의 이맘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국민들은 한때 `지구 위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불렸던 페르시아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색창연한 왕의 궁전과 왕비의 사원이 존재하는 이스파한, 다리우스 황제의 여름별궁으로 사용됐던 페르세폴리스,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사막 가운데 건설된 도시 야즈드, 카스피해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는 반다르 안잘리 등이 주요 관광지. 화폐단위는 이란 리얄(Rial).공식적으로는 100리얄이 한화 약 4원이지만, 암시장에서의 외환거래는 공식 환율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무슬림국가의 특성상 돼지고기 요리와 술을 찾아보기 힘들다.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서 화덕에 구운 빵과 치즈, 양고기와 닭고기 바비큐, 토마토와 오이 등 각종 채소가 서민들의 주식이다.사진제공/류태규국장席 홍성식 기자/hss@kbmaeil.com

2016-03-25

소비자 “변비·위염·위궤양에 정말 좋아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다. 두 번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절실하지만, 실수와 후회의 연속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타인의 `체험담`에 귀를 기울인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듣는다는 것, 여기에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위한 팁(tip)까지 전수받는 것만큼 귀한 체험이 또 있을까. 발아현미 식품을 만드는 `씨앗농부`의 신해수(48) 대표는 제품이 지닌 효능의 산증인이다.췌장암 수술 받은 신해수 대표가 개발한 제품암·고혈압·동맥경화 등 예방 식사 대용 인기씨앗농부 신해수 대표의 히스토리(History) 사연은 특별하다. 지난 2006년 2월 신 대표는 당시 38살에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한 달만 늦었어도 가망이 없었다고 했다.장작 13시간을 넘는 대수술이 이어졌고 회복기간 동안 항암 치료를 버텨야 했다. 췌장이 일반인의 3분의 1길이라 인슐린 분비가 잘 안 돼 소화가 더뎠다. 입맛도 없었지만 `곡물이 좋다`는 의료진의 조언에 각종 정보를 수색했다. 밥 대신 발아현미 가루에 물을 넣고 수프나 죽처럼 끓여 먹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흘렀다.신 대표는 웃옷을 살짝 들어 올려 38cm에 달하는 복부 수술자국을 드러내며 “사람들은 내가 췌장암 수술을 했다고 하면 안 믿는다.(웃음) 처음엔 편하게 식사할 방법을 찾다가 발아현미를 먹기 시작하면서 몸의 변화를 느꼈다. 발아현미차를 마시지 않은 날은 몸에서 바로 반응이 와 매일 소화제처럼 먹는다”고 말했다.씨앗농부는 현미를 발아시키기 위해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3시간마다 물을 준다. 약 72시간, 총 3일간 되풀이해야 한다.일반 현미와는 달리 발아현미는 발효 과정에서 가바, 피티산 등 건강한 성분이 더해진다. 암을 예방하고 고혈압, 동맥경화 등 순환기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다.신 대표는 발아시킨 현미를 씻어 15분간 쪄 낸 다음 열기를 식히는 과정에서 덩어리진 발아현미를 직접 손으로 풀고 다듬는다. 이후 건조기에 한 번 더 말리고 볶아내고서 가루로 만든다. 여기에 어떤 첨가물도 더하지 않는다.이처럼 찌고 볶고 말리고 갈아 고운 입자로 만드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매일 새벽 1~2시까지 작업을 하지만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일반 현미차나 기계로 말린 제품들과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이유다.신 대표는 “우리 제품은 일단 가루의 향부터 다르다.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맛까지 지녔다. 누룽지나 숭늉과는 달리 씹히는 맛과 함께 특유의 풍미를 지녔다. 생목이 올라오지 않아 깔끔한 뒷맛도 있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생소할 수 있지만 곧 몸에 변화가 찾아온다”고 말했다.발아현미 제품의 위력은 이미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증언`처럼 쏟아지고 있다. 가장 큰 효능은 변비 개선이다. 위염이나 위궤양 등 위장장애를 지닌 사람들도 효과를 봤다. 포만감이 오래가 식단조절에 도움을 주고 피로감도 줄어든다. 특히 발아현미·메밀·찰보리 혼합식은 영양학적으로도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해 아이들의 성장까지 돕는다.그저 평범한 주부였던 신 대표는 아프기 전 자신의 식습관에 대해 `최악`이었다고 평했다.그는 “식(食)생활은 곧 건강과 직결된다. 씨앗농부의 제품 대부분은 식사대용이다. 사람들이 점점 간편식을 추구하고 있지만, 한 끼로도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며 “특히 일반인들보다 몇 배로 먹는 것에 `절제`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발아현미가 지닌 힘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2016-03-24

신성장동력 육성 과감한 투자로 `하이 테크 경산` 실현

경산시가 2015년 말 완성한 글로벌 리더형 건설·기계·철도 부품산업 등 경제혁신 5대 전략산업 육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고품질의 고용창출, 지역경제 활성화를 달성하는 `글로벌 High-Tech 경산`을 실현한다.시의 경제혁신 5대 전략산업 육성계획의 배경에는 정부의 과학기술기본계획과 산업기술개발계획 등 신성장 동력산업 집중 육성과 경산지식산업지구, 경산첨단산업단지, 대구연구개발특구, 경산4일반산업단지조성 등의 육성기반 조성이 있다.경산 경제혁신 5대 전략산업은 △글로벌 리더형 건설·기계·철도 부품산업 △메디 라이프 산업 △·첨단 융·복합기술 산업 △美-뷰티산업 △차세대 자동차 융합부품산업으로 이를 위한 조감도를 완성했다.기계·부품산업 육성 통해 기술경쟁력 제고첨단센서 거점센터로 고용창출 120명 기대의료융합섬유센터서 메디컬소재 개발 추진美·日·中 글로벌 기업과 화장품 연구개발무선전력전송사업 선정, 국비 100억 확보□ 글로벌 리더형 건설기계철도 부품산업친환경 고효율 글로벌 리더형 건설기계·부품산업 육성을 통해 기술경쟁력을 높일 글로벌 리더형 건설기계철도 부품산업은 △차세대 건설기계·부품 융복합센터 △차세대 건설기계·부품 융복합 설계지원센터 △재난·재해 특수목적기계 기반기술 개발 △철도차량 핵심부품 시험·인증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2019년 6월까지 8천990억원의 사업비로 융·복합센터를 구축하고 종합기술지원사업, 전문단지조성, 핵심기술개발이 사업내용인 차세대 건설기계·부품 융·복합센터 구축은 2017년 6월에 융·복합센터를 준공하는 등으로 친환경·고효율 기술경쟁력을 높이게 된다.건설기계·부품산업의 특화된 전주기 설계지원시스템 구축을 통한 제품개발로 기술경쟁력을 높일 건설기계·부품 융복합 설계지원센터는 경산지식산업지구 내에 오는 5월이면 준공된다.지난해 5월 산업부 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으로 선정된 재난·재해 대응 특수목적기계 기반기술 개발은 2020년 5월까지가 사업기간으로 미래형 건설기계사업의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지역 기업의 제품을 이용한 기술개발로 기업매출 효과도 기대된다.세계 철도시장 규모는 200조원에 이르나 우리나라 시장 점유율은 1%, 고용비율은 0.2%에 불과해 국내 철도차량 부품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철도차량 핵심부품 시험·인증 기반구축은 2018년까지 200억원의 사업비로 추진된다.□ 차세대 자동차 융합 부품산업차세대 자동차 융합 부품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탄소제품 성형 기술지원센터 구축 △첨단센서 산업육성(첨단 스마트센서 거점센터 구축) △경북 SW융합 클러스터 조성 △자동차부품 시험 지역혁신센터(RIC) △(재)경북 그린 카 부품진흥원 운영 등 13개의 사업을 진행한다 탄소소재를 다양한 산업에 융·복합해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 안정적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탄소제품 성형 기술지원센터 구축은 지원센터와 함께 설계해석 지원기술도 개발한다.첨단 스마트센서 거점센터는 (재)경북 IT 융합산업기술원 내에 구축되며 센서 연구성능 지원장비와 신뢰성 평가 지원장비를 도입해 센서 설계·테스트·시제품 제작과 신뢰성 평가 등을 지원한다.연구개발과제 10개를 통해 기업매출 3천750억원의 창출 시너지와 첨단 TOF센터의 핵심요소기술을 통해 센서 기업매출 660억원, 고용창출 120명을 기대하고 있다.경북 SW융합 클러스터는 RD 핵심기술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사업화 지원으로 SW융합 RD 생태계 활성화, 벤처·창업 생태계를 조성한다.지난 2007년 시작해 2017년 완성되는 자동차부품 시험 지역혁신센터는 자동차부품 내구시험과 평가 특화센터를 구축해 자동차부품기업의 장비활용 활성화를 통한 자립화 기반조성,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현재 에스엘(주) 등 77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고유가와 친환경추세에 따른 전기자동차 보급·확대를 위해 2010년 9월 설립된 (재)경북 그린 카 부품진흥원은 전기차 핵심부품 개발과 상용화, RD 전문 연구기관, 품질인증기관, 기업 지원, 창업보육 등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메디라이프 산업갑제동에 2018년까지 270억원으로 150병상의 대경권역 재활병원을 건립하고 △첨단메디컬 신소재(섬유) 개발과 활성화 △안경학렌즈 소재기술과 신뢰성 기반구축 △한의학 산업육성과 기능성 제품개발 △첨단 의료기기(임플란트) 개발사업 등이 주력인 메디라이프 산업은 웰빙 라이프에 대한 수요증가에 대비한다.첨단메디컬 신소재 개발사업은 지난해 7월 첨단 의료융합섬유센터를 준공해 메디컬섬유소재개발(RD)을 올해부터 추진하고 있다.또 섬유융합소재산업 활성화를 위해 2020년까지 450억원 사업비로 실용화센터를 구축하고 기업유치, 기술사업화 등에 나선다.한방산업의 세계적 육성을 위한 정책수립과 연구개발 관련사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 창출로 지역경제활성화 및 한의학 발전에 이바지할 한국 한방산업연구원을 통한 한의약 산업 육성 및 기능성 제품개발 프로젝트도 있다.□ 美-뷰티산업한국 화장품의 세계화 추세에 맞추어 美-뷰티밸리를 조성하고 글로벌 코스메틱비즈니스센터 구축, 화장품효능 임상연구센터 구축이 美-뷰티산업 육성의 골자다.미국과 일본, 중국 글로벌 화장품 기업과 지역중소기업 집적지가 될 美-뷰티밸리는 여천동 일원 85만 9천580㎥(26만 평)에 2022년까지 조성된다.대학과 연구기관, 지자체가 연계해 연구와 생산, 비즈니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산학관 산업클러스터가 육성되며 글로벌코스메틱지구와 한방의료기기산업지구, 한방의약 물질산업지구, 기능성 식품산업지구로 조성된다.글로벌 코스메틱 비즈니스센터는 대구연구개발특구 내에 2019년까지 화장품 효능 성능시험을 위한 테스트베드 구축으로 천연재료를 활용한 고기능성 화장품의 연구개발과 기업 지원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게 된다.역시 대구연구개발특구에 구축될 화장품효능 임상연구센터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효능인증과 임상시험 결과를 공인받게 된다.□ 첨단 융복합기술산업업종이 다른 기업이 서로 다른 경영과 기술 등을 결합해 신기술·신제품·신서비스를 개발함으로써 새로운 분야의 사업화 능력을 높이는 활동인 융복합기술산업의 첨단화를 위해 △무선전력전송(WPT) 산업기반 구축 △인쇄전자 제품화 테스트베드 구축 △경북 글로벌 게임지원센터 구축 등을 추진한다.전원선 없이 전력을 무선으로 전송하는 무선전력전송산업은 산자부의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국비 100억원을 확보했으며 IT와 가전, 의료, 자동차, 철강 등의 산업과 연게한 신개념의 무선전력전송산업과 전기 유비쿼터스 시대로 진화를 앞당기게 된다.경산도시첨단산업단지에 2021년까지 구축될 인쇄전자 제품화 테스트베드는 세계 3대 글로벌 인쇄전자 산업을 통한 강소기업 20개 육성과 고용창출 1만 명, 매출액 16억 불과 2019년 세계시장 10%, 국내시장 70% 점유를 기대케 한다.인쇄전자산업 세계시장은 2020년 331억 불 규모로 성장이 예측되고 있다.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시장을 선도하고 있던 국내 게임기업들이 급격한 시장변화로 관련 산업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게임산업의 육성이 요구되며 이를 육성할 인프라 구축을 담당할 경북 글로벌 게임지원센터는 오는 12월까지 경북TP에 설치된다. 주요사업은 게임지원센터 구축과 게임벤처창업육성, 유망게임 업그레이드 지원이다.경산/심한식기자shs1127@kbmaeil.com

2016-03-23

“아리랑무형문화센터는 모든 아리랑 품을 둥지”

그간 `문경아리랑`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고윤환 시장이 지난 16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문경아리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유에서부터 향후 계획까지를 가감 없이 털어놓은 고 시장과의 인터뷰를 게재한다.아리랑 정신 깃든 새재 입구에 아리랑무형문화센터 만들어야악보집·음반 제작 등 활발한 홍보세계화포럼 개최로 위상 제고 한몫아리랑도시 목적은 `대동과 상생`시민 동참으로 시너지 효과 기대- 문경시를 대표할 만한 이미지중 왜 하필 `아리랑도시`였는지요.△ “사람에게 정체성이라는 것이 있듯이, 지역도 그 지역만의 정체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양반의 고장 안동, 삼백의 고장 상주처럼 그 도시의 특성에 부합되는 이름이 있는 반면, 문경시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뚜렷한 이미지를 찾아내 제시하진 못했습니다.문경하면 그래도 문경새재가 랜드마크인 것은 자타가 인정하듯이 분명하고, 옛길, 성곽, 아름다운 자연과 백두대간의 중심이 바로 이곳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문경새재 길을 넘어갈 때 부르는 아리랑이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아리랑은 적어도 100여 년 전까지 특별한 기록이 남아 있질 않았습니다. 그동안 학자들에 의해 수없이 많은 이론들이 만들어지곤 했지만 뚜렷한 근거를 제시한 내용은 없습니다.10여 년 전 세상에 처음 소개된 아리랑 악보는 국내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육영학교의 교사와 선교사로 이 땅을 밟은 호머 헐버트에 의해 처음으로 악보가 그려지고 가사가 채록되어진 것입니다. 이때 기록된 세계 최초의 아리랑 가사 중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나간다`는 이 한 줄의 기록이 우리나라 아리랑의 기록상의 정체성이 되며 더 나아가 문경새재 아리랑의 정체성이 되는 셈입니다.”- 문경아리랑에 애착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제게는 조금 특별한 경험이 있습니다. 2007년 8월부터 1년 동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파견 연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흑인 국장이 있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 공직사회에서 흑인이 국장까지 진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로 이 분의 퇴임기념식에 초대를 받아 살고 있는 동네까지 가게 되었는데, 의식행사와 공식적인 퇴임행사를 마친 후 흑인들끼리만 모인 자리에서 어깨동무하면서 흑인영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평화로운 아프리카에 노예사냥꾼들이 나타나 무자비하게 잡아간 흑인들이 바로 그들의 조상인 것입니다. 짐승같이 그렇게 캄캄한 절망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들에게 미국은 얼마나 힘든 현실이었겠습니까.아프리카부터 이어온 그들이 조상을 잊지 않고 살아오고 있는 반면, 우리 국민들은 2세대만 지나면 우리의 말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생각한 것이 바로 아리랑이었습니다. 아리랑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나타내고 온 국민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경에서 아리랑 관련축제가 개최되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요.△ “현재 문경에서 개최되는 모든 행사는 지역의 정체성과 관련이 되는 행사이면서 필요한 부분에만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며, 중복되는 예산은 최대한 절감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문경에서 아리랑 축제는 하고 있지 않지만 8년째 문경새재 아리랑제는 추진하고 있으며 매년 다양한 주제를 통해 아리랑 행사의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아리랑제에서는 전 국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아리랑민화 공모전과 시민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아리랑 노래부르기, 아리랑 가사 짓기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결국 지역민이 함께 동참하고 참가자들이 의미를 찾는 행사를 만들다 보면 다른 지역과 자연스럽게 차별화되는 행사가 되리라고 봅니다.”- 타 지역의 아리랑 축제 중 관심이 가는 행사는 무엇인지요.△ “우리나라 아리랑 축제중 가장 오래된 축제를 꼽으라면 정선아리랑축제를 들 수 있으며 요즘 생겨난 축제중 가장 큰 아리랑 관련 행사는 서울아리랑페스티벌입니다. 아리랑 관련 행사는 전국적으로 춤과 공연을 위주로 대동소이한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정선아리랑축제의 경우 정선군민과 축제참가자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로 자리매김 하는 부분이 좋은 사례라고 봅니다.” - 아리랑의 브랜드 가치를 어떤 식으로 높일 계획입니까.△ “아리랑은 문경만의 브랜드가 아닙니다. 아리랑은 대한민국의 브랜드이며, 우리나라 모든 국민의 브랜드이며, 해외에 나간 동포들이 향수에 젖는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문화융성의 시대입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이 바로 아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전국적으로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아리랑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식어가고 있는 추세이며 국민적, 국가적 브랜드로 자리매김 하려면 아리랑이 있는 지자체는 물론이고, 해외에 있는 동포들에게도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 마련을 지속적으로 해주는 방법 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리랑 도시를 계획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요.△ “일반적으로 아리랑에 대해서 사업을 추진한다면 예전부터 구전되어온 과거의 아리랑을 하는 줄 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의 경우는 미래의 아리랑을 하기 위해 아리랑도시를 선포한 것입니다. 아리랑 도시를 계획하면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으나 앞으로가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아리랑은 분명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며 영원성이 있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노래를 벗어나 아리랑이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리랑 사업을 추진하면서 어떤 성과와 보람이 있었습니까.△ “지난 5년간 추진해온 문경시의 아리랑 사업은 손가락으로 꼽지 못할 만큼 다양하고 많습니다. 국립아리랑박물관 사전타당성 조사 용역과, 국회정책토론회, 아리랑 악보 및 음반 발매, 이스탄불 아리랑 공연, 서울 광화문에서 아리랑제 개최, 문경새재 아리랑비 건립 등 아리랑 저변 확대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특히 이중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아리랑 가사를 수집하고 분류한 1만68수를 120명의 서예가들이 동참해 문경한지에 500일간이라는 시간에 걸쳐 쓴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수`의 완성사업이 가장 크고, 기억에 남는 아리랑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리랑 박물관이 문경에 건립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요?△“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리랑박물관이 아니라 국립 아리랑무형문화센터입니다. 박물관은 말 그대로 죽은 것을 전시하는 정적인 공간을 말합니다. 그러나 아리랑은 죽은 것이 아닌 앞으로도 계속 영생할 우리의 삶이자 정체성인 것입니다. 더구나 이 나라의 모든 중요한 시설들은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에 집중하여 건립되고 있으며 점점 지방이 축소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리랑은 지방에서 발전했으며 실제로 아리랑 앞에는 지방의 지명이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리랑의 고개가 바로 문경새재인 것입니다.아리랑의 정신과 역사가 함께하는 문경새재 입구에 아리랑무형문화센터를 건립하여 유네스코 정신의 실천과 우리나라의 모든 아리랑을 한 곳에 모아 우리 민족의 아리랑을 한 곳에서 보고, 느끼고 함께 불러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리랑무형문화센터 건립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문경새재아리랑은 문경 사람이 제일 잘 불러야 하고,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아리랑 대부분이 지역 사람들에 의해 전승이 되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문경은 이 부분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일환으로 아리랑 악보집을 만들고, 편곡을 하고, 아리랑 음반을 제작하여 시민들에게 널리 홍보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리랑세계화포럼을 만들어 학계 아리랑 관련 권위자와 국내 최고의 지성인, 기업인들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아리랑 관련 포럼과 연구활동이 활발한데, 어떻게 보시는지요.△“그동안 아리랑에 대한 각종 사료의 부족으로 연구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을 사실입니다. 아리랑이라는 것이 민요인 관계로 현장조사에 의존하는 힘든 점도 있지만, 결국 그러한 기초자료의 조사가 많이 이루어진 결과 지금의 조사자들은 조건에 맞는 연구도 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아리랑은 결국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아리랑을 연구하던지 간에 하나의 아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리랑과 연결되는 특수성을 안고 있기 때문에 포럼과 연구가 활발해진다는 것은 아리랑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문경아리랑과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 중인 고윤환 문경시장.- 문경이 `아리랑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함께 동참하는 것이 시민들의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자신의 일을 추진하고, 그러면서 아리랑에 대한 사랑과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시민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시민이 공감하지 않는 사업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했을 때 정체성으로 자리 잡을 수 있고, 시너지효과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경시가 꿈꾸는 아리랑 도시란 어떤 공간입니까.△ “아리랑으로 모든 시민이 하나 되는 것이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아리랑을 매개가 되어 서로가 조화되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미래에 다가왔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자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리랑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정신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대동과 상생입니다.”- 지금까지 추진해온 아리랑 사업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난해 12월 우리는 두 가지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하나는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수의 보급을 위해 아리랑도록을 만들어 이날 도록출판기념식을 했으며, 또 하나는 앞으로 미래 문경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아리랑 도시를 선포하였습니다. 문경의 출향인과 아리랑 관계자, 시민 등 500여 명이 세종문화회관에 모여 힘든 여정을 거쳐 온 우리의 노력 결과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미래 아리랑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지금까지지 해온 일들도 무수히 많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아리랑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지역민이 하나 되는 그날까지 문경시의 아리랑 사랑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강남진 기자/이소연 시인

2016-03-21

사랑, 인종과 국경을 넘다

우려가 많았던 알바니아 여행.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그런 우려를 불식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예의 바르고 친절한 미국 사내와의 저녁식사는 즐거웠다. 어둠 내린 티라나의 거리를 나란히 걸어 레스토랑을 찾았고, 그가 “가능하면 여행지의 음식을 먹어보자”는 제의에 따라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번성했던 옛도시 베라트의 흔적이라곤산 위에 황량하게 남겨진 성곽뿐…국적 다른 커플의 위대한 사랑에 감동타인에 베푸는 넉넉한 마음도 선사 받아수염을 기른 무슬림들이 탁자마다 자리를 메운 서민들의 식당. 다진 양고기와 채소를 반죽해 숯불 위에 구운 요리를 주문했다. 맥주 한 병씩을 곁들이니 더할나위 없는 만찬이다. 한 사람당 겨우 6000원의 상차림임에도 만족도가 높았다.그 미국인과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 조지 부시와 버락 오바마의 차이점까지를 화제 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알바니아 티라나의 스칸데르베그광장이 정치토론장이 된 느낌이었다. 서툰 영어로 그처럼 많은 말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건 미국 사내의 배려와 `술의 힘`에 기댄 탓이 컸다.많은 한국인들이 알바니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기자는 미국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상호주의가 아닌 자기중심주의에 기반해 사고하고, 약속국을 깔보는 태도를 가졌으리라는 선입견. 그러나, 그날의 만남은 그런 편견과 선입견의 일정 부분을 깨뜨렸다. 그렇다. 세상에 단순한 하나의 잣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그것이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티라나에서 이틀을 머물고 베라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인구가 수천 명에 불과한 조용한 시골마을을 찾아간 것이다. 베라트는 야트막한 강이 마을을 가르며 소리 없이 흐르고, 야트막한 산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독특한 풍경을 이루는 곳. 시끌벅적한 카페와 네온사인이 없는 소읍(小邑). 옛날엔 번성했던 도시라고 하는데 당시를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이라곤 산 위에 황량하게 남겨진 성곽뿐이었다, 중심가에도 인적이 드물어 마치 `유령의 마을` 같았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에잔(Ezan)만이 낡은 모스크 기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하루 5번 울려나오는 조용하고 또 조용한 마을.그러나, 도시가 주는 적요함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숙소는 그 마을에 딱 하나. `베라트 백패커스 호스텔`이었다. 그곳에 머문 덴마크와 잉글랜드, 핀란드와 체코, 독일과 호주,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이 20여 명은 금세 너나들이로 친해졌다. 네덜란드를 떠나 독일과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를 거쳐 거기까지 온 독일 커플은 이제 겨우 열아홉 살. 오로지 `히치하이크`로만 1천km가 넘는 길을 왔다고 했다. 놀라웠다. 어렵지 않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온 열아홉 소년과 소녀의 가슴엔 나라간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방학을 맞은 그들은 슬리퍼 끌고 이웃 마을 놀러가듯 대여섯 개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었다.지뢰와 철조망으로 막힌 휴전선을 지나지 않으면 육로를 통해서는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는 한국. 우리들 뇌리를 잠식한 외국과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때론 인간이 태어난 지리적 위치가 그들의 의식을 온전히 규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놀라움과 함께 허탈감이 왔다.베라트에 도착한 이튿날. 마을 광장 찻집에서 국적이 다른 한 쌍의 커플을 만났다. 그들은 독일 남자와 알바니아 여자로 연애를 시작한지 3년이 됐다고 했다. 비교적 경제적 형편이 나은 독일 남자가 시간이 날 때마다 연인이 사는 알바니아로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단다.독일 기독교신자와 알바니아 이슬람교도의 연애와 사랑. 종교적으로 볼 땐 축복받기 힘든 어색한 조합이다. 특히 여자 쪽이 더 힘들 것이다. 다소 교조적인 이슬람 교리를 지키는 무슬림국가에서는 다른 종교를 가진 남편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차마 질문을 던지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애틋한 감정은 주위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울 게 분명했다.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독일 남자의 눈길은 한없이 따스했고, 독일 남자의 어깨에 기댄 채 뜨개질을 하는 알바니아 여자의 표정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왜 그렇지 못할 것인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랑은 그 어떤 금기와 제약도 기꺼이 이겨낼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삶은 물론, 죽음의 이유까지 될 수도 있는 사랑이 그까짓 국경과 인종을 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그들의 빛나는 사랑에 축복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삼스레 두 사람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둘은 이미 왜곡된 세상의 시선을 넘어선 위대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기자는 포도주 한 병을 주문해주는 것으로 축복의 말을 대신했다. 독일 사내와 알바니아 처녀를 만난 바로 그날 밤. 취한 채 느지막이 숙소로 돌아왔다. 잠을 청하며 누웠으나 새벽까지 불면에 시달려야 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내게 저런 사랑이 온다면 그 사랑으로 인한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겠는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알바니아 여행이 끝나던 날. 아드리아해의 파도가 출렁이는 항구도시 듀레스에서 이탈리아 바리(Bari)로 향하는 페리가 굴뚝에서 연기를 뿜었다. 부끄러움 많고 잘 웃는 알바니아 사람들. 그들 속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짧은 시간이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이탈리아처럼 높은 첨탑의 유명한 성당도, 프랑스처럼 고급스런 휴양지도 없는 나라 알바니아. 그러나, 기자는 직접 밟아본 그 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 그건 아마도 마피아가 득실댄다는 오해 속에서 간난신고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타자에게 베풀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 매료된 탓일 게다. 멀어지는 알바니아 항구를 바라보며 읊조린 바람이 떠오른다.“삶이 열정을 나눌 여인을 허락한다면, 나 역시 베라트에서 본 그 연인들처럼 금기와 국경을 넘어서는 사랑을 하리라.”맛 볼 만한 음식은…평소에는 맛보지 못했던 생소한 음식을 즐겨보는 건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이탈리아에 가서 피자를, 베트남에 가서 쌀국수를, 일본에 가서 초밥을 맛보지 않고 돌아온다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핀잔을 들어 마땅하다.음식은 하나의 문화다. 여행하는 지역의 문화를 제대로 경험해보는 건 여행자의 특권인데, 그 특권을 제대로 누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알바니아에도 많은 음식들이 이방인의 입맛을 자극한다. 그중 세 가지 정도는 알아두고 방문하면 메뉴 선택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건강에 좋은 올리브:작열하는 태양에 의한 적절한 일조량과 비옥한 토양을 갖춘 남부 유럽은 올리브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알바니아는 올리브의 주요 생산지. 수도인 티라나의 현대화된 마켓은 물론, 작은 도시의 재래시장에도 올리브 본연의 맛에 각종 향신료를 가미한 올리브 절임이 지천이다.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노화예방에 좋고, 미용식품으로도 각광받는 올리브는 알바니아 토속주에 곁들여도 좋고, 맥주 안주로도 그만이다. 한국 돈 2000원 정도면 꽤 많은 양의 염장 올리브를 구입할 수 있다. ● 양고기를 이용한 각종 요리: 아시아에 비해 유럽은 동물의 내장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알바니아엔 양의 내장은 물론, 뇌를 재료로 만든 요리도 맛볼 수 있다. 베라트 한 레스토랑의 메뉴판은 여행자들을 놀라게 한다. `LambBrain Stew`(양뇌 스튜)라는 음식이 적혀 있는 것. 하지만, 굳이 없는 용기를 발휘해 이런 요리에 도전할 필요까지는 없다. 무슬림국가인 알바니아 국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대신 양고기와 닭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남유럽의 독특한 향신료를 첨가해 익힌 양고기 스테이크와 부드러운 닭 가슴살 구이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는다.● 싱싱하고 값싼 과일과 채소: 한국의 채소와 과일도 세계 어느 나라 것들 못지않게 맛있다. 하지만, 지구의 반대편에서 만나는 과일과 채소는 그 나름의 매력으로 관광객들의 미각을 유혹한다. 원색에 가까운 빨강, 노랑, 초록의 알바니아 과일과 채소 또한 저렴한 가격에 사각거리는 식감이 좋다.몇몇의 여행자들은 낯선 외국 도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서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을 찾는다. 밀착된 위치에서 그곳 사람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라나의 재래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새빨간 토마토와 선명한 연두색의 오이, 그 시원한 맛이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사진제공/류태규국장席 홍성식 기자/hss@kbmaeil.com

2016-03-18

소비자 “깔끔한 맛 은은한 향 일품이네요”

약주(藥酒)는 본래 약효가 있는 술을 말하거나 처음부터 약재를 넣고 빚은 술을 가리켰다. 점차 `맑은 술`을 뜻하는 의미로 변천되고 술의 높임말로도 쓰이게 됐다. 조선시대 때 왕과 왕비 등이 건강에 좋은 약술을 매일 반주로 마셨는데, 가뭄이 심하거나 흉년이 들면 곡식이 부족해지므로 금주령을 내렸다. 이때 특권계층이 금주령을 피해 술을 마시려는 핑계로 `약으로 술을 마신다`는 말을 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점잖은 사람이 마시는 술을 약주라고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찹쌀·누룩 그리고 농민의 정성으로 빚은 전통주중년층 “옛날 어머니가 곡식으로 만든 술맛” 칭찬현재 약주로 팔리는 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대부분이 쌀 등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여과시킨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쌀과 누룩을 사용해 전통방식으로 담근 맑은 술을 말한다. 이 `소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만든 술이 바로 포항을 대표하는 전통주 `흥곡약주`(대표 이진희)다.북구 신광면 흥곡리(興谷理)에 자리한 탓에 흥곡약주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곡 자는 `곡식 곡(穀)`자를 쓴다. 찹쌀로 만든 술이기 때문이다. 신광면에서 재배한 찹쌀을 전량 사용하는데 주변 농민들과 상생하기 위한 이 대표만의 철학이자 약속이다.이 대표와 전통주와의 인연은 가정사(家庭事)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의 친정어머니는 집에서 직접 술을 담가 이웃과 나눠 먹거나 제사 때 사용하기도 했다.당시 어머니가 전통주 담그던 손놀림을 곁눈질로 보고 배운 이 대표에게도 그 손맛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10여 년 전 포항시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한 전통주과정에 참가하면서 6개월간 전문가로부터 배우며 손맛에 품격을 더했다. 이후 센터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13년 사업장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흥곡약주를 담그기 시작했다.그는 “청정지역인 신광면은 비학산 줄기 아래 자리하고 있어 공기가 좋고 특히 물이 깨끗하다. 좋은 공기로 숨 쉬고 맑은 물을 마신 쌀을 사용해 술을 담그니 그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자랑했다.흥곡약주에 대한 이 대표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겉보기엔 일반 공장에서 만든 맑은 술과 비슷하지만 재료에서부터 제조과정을 들어보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물과 찹쌀, 누룩만 넣어 술을 만드는데 모든 과정은 이 대표의 손을 거쳐 간다. 그만큼 한 단계, 한 단계마다 정성이 필수요소다. 찹쌀을 지어 술을 담그기까지 보통 7~10일이 소요되는데 여기다 최소 숙성시간 2개월간 공을 들여야 한다. 실온에 둔 상태에서 술을 걸러 항아리에 옮기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최대 6개월은 기다려야 흥곡약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흥곡약주 이진희 대표이 대표는 “흥곡주를 마셔본 사람들은 깔끔한 맛과 은은한 향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데 과일향이 난다며 향을 첨가했는지 물어보는 이들도 있다. 정작 술을 만든 나는 잘 모르겠다.(웃음) 특히 중년층이 옛날에 시골이나 촌에서 어머니가 곡식으로 만든 술맛이 난다고 좋아한다”고 말했다.술을 담그는 장인이니 주량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주량을 물어보자 이 대표는 “술을 못 마신다”고 답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농민으로서의 역할을 하다 보니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 게 만만찮다고 털어놨다. 농사짓는 사람에겐 농사 외의 일이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법이다. 그 와중에 전통주를 알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고.이 대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화학주인 소주나 막걸리를 전통주로 알고 있어 진짜 전통주가 무엇인지 그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쉼터처럼 작은 카페같은 공간을 만들어 전통주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2016-03-17

신라 통일 이전·이후 무덤의 형태 큰 변화

어떻게 보면 초록의 잔디에 뒤덮인 동산 같기도 하고, 신화적 상상력을 가지고 바라보면 크나큰 비밀을 간직한 거대한 짐승의 알처럼 보인다. 고분(古墳)은 경주를 다른 어떤 도시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풍경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신라시대 왕과 역사적 인물의 무덤은 갖가지 유물과 합쳐져 “발걸음을 옮기는 곳이 곧 박물관”이라는 명성을 경주에 가져다줬다. 영국의 저명한 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했다. 과거의 유물인 신라의 고분은 현재의 우리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그 대화를 통해 현대인은 어떤 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본지는 신라천년의 비밀을 풀어낼 주요한 열쇠의 하나인 `경주 고분`에 관한 기획기사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왕과 왕비 등 지배계급의 무덤내부에 목곽 설치 후 봉분 조성해구조적 특성 덕에 도굴에 안전금관 등 부장품 보존 효과적신라만의 특성을 보여주는 적석목곽분의 비밀은 “저게 뭐예요?” 자녀들과 함께 경주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질문이다. 작은 산처럼 보이는 거대한 무덤을 가리키는 아이의 손끝. 역사 전공자거나, 평소 관심을 갖고 역사관련 서적을 읽어온 사람이 아니라면 고분에 관해 친절하고 세세한 설명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고분의 사전적 의미는 `과거와 현재의 무덤 중 역사적 또는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분묘`다. 고고학계는 이를 좀 더 좁혀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일정한 형식을 갖춰 만들어진 지배계급의 무덤`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경주에는 신라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陵)`과 김유신과 설총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무덤인 `묘(墓)`가 각지에 흩어져 있다.신라시대 만들어진 거대한 무덤을 통칭하는 경주의 고분. 학계에선 이들 고분이 매장된 인물의 지위에 따라 그 위치와 형태, 규모와 시설, 함께 묻힌 부장품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이재현 조사연구실장은 경주의 고분을 “과거에 존재했던 왕국의 각종 정보를 무언의 메시지로 알려주는 보고”라고 정의했다.사실 고분이 경주지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부산 복천동 고분군, 함안 도항리·말산리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창녕 교동 고분군, 공주 송산리 고분군, 부여 능산리 고분군, 서울 석촌동 고분군, 집안 통구 고분군 등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적지다. 이들 무덤 역시 고대 역사를 복원하고, 문화적 특징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자 유산이다.그렇다면, 경주의 고분 형태 중 학계의 관심을 끄는 건 무엇일까? 고고학자들은 타 지역의 고분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돌무지덧널무덤)에 주목한다. 내부에 목곽을 설치해, 부장품을 넣은 후 외부에는 사람 머리 크기의 냇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적석목곽분은 신라가 국가의 기틀을 이루고 발전하던 시기인 4~6세기 경에 만들어졌다.“고구려와 흉노, 중앙아시아 등에 유사한 형태의 무덤 양식이 있으나 서로 직접적 관련성은 없는 매우 독창적인 형태가 신라의 적석목곽분”이라는 게 이재현 실장의 설명이다. 여기서는 다량의 희귀한 부장품이 발견됐고, 이 부장품들의 연구를 통해 신라시대의 기술 수준과 교류했던 국가, 생활양식과 세간의 관습까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적석목곽분은 그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도굴범의 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또한, 신라는 큰 살육전쟁을 겪지 않고 고려에 정권을 이양함으로써 왕들의 무덤이 파헤쳐지는 비극을 막았다 이런 이유로 금관을 포함한 고분 속 화려한 부장품들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훼손 없이 보존될 수 있었다.무덤형태 통해 당대의 사상, 국가 변화과정 등 추측또 하나 신라의 고분에 대해 일반인이 가지는 의문은 “비석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에 누가 묻혔는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가”일 것이다. 고려 후기에서부터는 각 문중이나 가문에서 조상의 묘가 어느 곳에 위치했는지를 후대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러나, 그런 관행이 정비되지 않았거나, 망자의 신분, 행적, 이름 등을 기록한 비석이 없는 무덤의 경우엔 거기에 누가 묻혀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 어렵다. 이에 관해 이재현 실장은 “역사적 기록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책에는 신라의 왕들이 세상을 떠난 후 장례를 치른 기록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문헌을 통해 “이 곳이 OO왕의 무덤”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고분의 위치와 구조, 변화해온 분묘의 양식 등을 종합해 연구·분석하는 것도 역사학계가 `무덤의 주인`을 찾는 방법의 하나다.하지만, 이런 방법들이 100%의 신뢰성을 가지지는 못한다. 비석이 없고, 고분 내부에서 묘지명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엔 “이것이 누구의 무덤이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또한, 현재 전승되는 분묘의 주인공도 반드시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는 역사연구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기도 하다.통일 이전의 신라와 통일 이후의 신라는 무덤의 형태에서도 변화를 보인다.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 고분은 크기가 눈에 띄게 작아지고, 위치 역시 외곽의 구릉지역으로 옮겨간다. 내부구조 또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돌방무덤(판돌이나 ·깬돌을 이용해 지면 가까이 축조한 분묘)으로 바뀌었다. “외부에서 유입된 사상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 실장의 말처럼 무덤의 형태를 통해 “당대의 사상과 문화, 국가의 변화과정 등을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경주 시내 상당수 고분은 이미 발굴과정을 거쳤다. 여기서 출토된 유물은 박물관에 전시됐고, 관련 유적의 보수와 정비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도시 외곽의 고분들은 여전히 도굴의 위험성과 경작과 도시 개발로 인한 훼손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고고학자들이 입을 모아 경주 고분군의 적극적인 보호를 주장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미래를 설계하는 재료가 될 문화유산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보존하고, 이것이 가진 의미를 후세에게 알리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다.역사학계와 문화계가 주목하는 고분은…경주 각지에 산재한 고분 중 역사학자와 문화계 인사들이 특별히 주목하는 건 어떤 것일까? 무열왕릉 ㅣ 무덤 앞에 비석이 세워져 있어 그곳에 매장된 인물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묻힌 사람의 신원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다른 고분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것이다.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한 사적 제20호 무열왕릉 비석의 머릿돌 가운데 새겨진 글귀는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 김유신묘 ㅣ `땅을 지키는 열두 신장`인 12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지름이 30m에 이르는 묘의 주위를 호석(護石·무덤 외부를 보호하는 석조 시설물)과 난간이 둘러싸고 있는데, 호석에서 쥐, 소, 호랑이, 토끼 등이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12지신상을 만나볼 수 있다. 학계가 김유신묘를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훼손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신라시대 무덤구조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원성왕릉 ㅣ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원성왕릉 남측에는 독특한 석상이 서있다. 무인석(武人石)으로 불리는 이 석상은 신라인의 얼굴이 아닌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페르시아 무인의 모습”이라 주장한다.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평가받는 원성왕릉은 당나라 등 외국과의 교류가 능묘제도의 변화도 가져왔음을 짐작케 한다.황남대총 ㅣ 경주시 황남동의 황남대총에서는 금관과 허리띠 등의 장신구, 유리와 토제용기, 고리칼 등의 무기, 귀걸이, 옥 제품, 말갖춤 등이 출토됐다. 황남대총은 신라 고분 중 가장 많은 금제장신구가 출토된 것으로 유명하다.천마총 ㅣ 1973년 본격적 발굴이 시작되기 전에는 155호 고분으로 불렸다. 여기서는 장신구 8천766점, 무기 1천234점, 마구 504점 등 도합 1만1천여 점이 넘는 유물이 발견됐다. 이중 두꺼운 금판으로 제작된 금관과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는 그 미려함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장니`란 말의 배를 가리는 가리개다.금관총 ㅣ 경주시 노서동에 위치해 있다. 고분의 명칭은 `금관이 출토됐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1921년 집수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많은 부분이 훼손된 상태였으나 금관과 장신구, 그릇을 포함한 적지 않은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3만여 개의 구슬이 발견됐다는 것이 이채롭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도움말=신라문화유산연구원

2016-03-17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자장면 한 그릇

의외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식당을 불쑥 만날 때가 있다. 평소에는 가던 걸음을 재촉하며 지나치기 마련이지만, 배가 고플 때에는 반가움에 발길을 멈추게 된다. 별 기대 없이 음식을 주문했는데 서비스는 물론 맛까지 좋다면 복권에 당첨된 기분마저 든다.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가야성`도 기대 이상의 기쁨을 안겨주는 동네 중국집이다. 그린종합상가 입구를 지나 바로 정면에 자리한 가야성은 우연히 이곳을 찾은 손님들의 주린 배는 물론 허한 마음까지 채워주는 곳이다.가야성에 들어서면 여느 식당과 분위기부터 다르다. 일단 위치부터 식당이 있을만한 자리가 아니다. 상가건물 1층 외곽에 자리해 인적이 드문 편인데, 식당 내부에도 4인용 탁자 3개가 전부다.중국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인 만큼 배달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주문부터 조리, 배달, 계산까지 부부가 함께 분담하는데 어느새 이곳에서만 23년째 영업 중이다.주인장에게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중국집이니 자장면이 가장 맛있다`는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자장면 한 그릇에 4천원으로 가격부담도 적은 편이다. 이왕이면 비싼 걸 주문해 달라는 주인의 웃음 섞인 농담에 간짜장과 탕수육, 만두까지 주문했다.가야성의 대표메뉴인 자장면은 남다름을 자랑한다. 동네식당이라 음식의 수준도 아마추어일 것이라 여겼지만, 비주얼부터 맛까지 예사롭지 않다. 풋풋함 속에 넉넉한 인심까지 담았다. 잘게 썬 돼지고기와 양파, 버섯 등 각종 식재료들이 푸짐하게 들어가 있다. 면발 위에는 달걀후라이를 얹어 내 소소한 감동까지 전한다. 야채가 푸짐하다 보니, 소스를 면에 부어 비벼 먹다 보면 숟가락을 동원해 떠먹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노란 튀김옷이 인상적인 탕수육은 취향에 따라 요리를 즐길 수 있도록 소스를 따로 담아낸다. 소스에는 곱게 칼집을 내 한껏 멋을 부린 당근부터 목이버섯, 배추, 양파 등 각종 재료를 아낌없이 넣었다. 얇게 썬 사과는 달콤한 소스에 새콤함을 더한다. 다양한 식재료를 넣은 덕분에 소스를 고기 튀김에 부으면 색감이 더욱 화려해진다. 고기 튀김은 바삭함과는 거리가 멀다. 돼지고기를 달걀반죽에 버무려 튀겨 내 푹신하고 보드랍지만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김혜영기자hykim@kbmaeil.com

2016-03-15

문화의 전파, 어울림의 장 마련이 먼저

여행은 세상을 바꿔왔다. 떠돌던 수렵채취의 무리가 농사를 배운 것부터 그랬고, 완전히 다른 종류의 물질을 접할 때도 그랬다. 고대 영웅들이 무리를 엮어서 세력을 규합하는 방식도 여행이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고대국가의 종교 또한 이역을 다녀온 고승들의 여행을 통해 변화하고 다듬어졌다. 고착된 문화가 변화의 기회를 맞을 때는 여행자의 힘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르코 폴로는 몽골제국 체류담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고, 앙투안 갈랑은 17세기에 중동을 여행하고 18세기에 `아라비안나이트`를 전했다. 유행 수준이 아니라 문화가 새로이 생겨나는 수준의 변화에 이들의 여행이 기여한 바는 엄청나다. 우리 땅에 나타난 여행객은 돌아가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이다.전통문화 확산의 첫 단추는 `접촉`스타일 변화 시도는 매력적 결과물로 나타나 □ 아리랑이 힙합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어령 교수는 한류가 IT로 전파된 최초의 문화라고 했다. 한류는 그럴지 모른다. 그럼 우리가 한류가 되기 전의 문화는 어떻게 우리에게 왔을까? 힙합은 인터넷 이전의 문화전파가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홍서범이 `김삿갓`을 발표했을 때 그는 자신의 곡이 힙합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이라고만 했다. 한 사람이 한 번 시도해보는 정도의 의미로 김삿갓은 최초의 랩으로 기억된다. 김영대 씨가 쓴 `한국힙합`에 따르면, 힙합을 최초로 제대로 전파한 것은 현진영이다. 그때도 사람들은 힙합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러나 힙합문화의 씨앗은 뿌려진 셈이었다.그의 안무와 곡풍을 대중은 지금도 기억한다. 문화는 이렇듯 이름 없이 전파되기도 한다. 힙합마니아들이 서로의 정체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PC통신이 등장한 뒤였다. AFKN이나 몇 장의 음반만으로 힙합장르의 규칙을 추론해낸 국내파와 이른바 `본토`를 다녀온 사람들이 논쟁해가며 `한국이 힙합을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현실로 만든다. 창작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음원을 서로 교환하면서 힙합에 대한 이들 자신의 안목과 곡의 수준이 높아진다.가리온과 피타입, 버벌진트가 바로 이 `마니아` 소속이다. 선구적 연예인이 대중에게 일으킨 열풍이 씨앗을 심으면, 일부 마니아그룹이 그것으로 열심히 농사를 짓고, 훗날 모두가 한국 특유의 외래문화라는 소출을 얻는다는 사실을, 한국힙합은 가르쳐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마르코 폴로 한 사람에게 문화전파를 기대하지 않는 시대다. 인재 하나만으로도 안 되고, 회관 하나만으로도 안 된다. 인터넷 하나만 믿어서도 곤란하다. 모두가 할 일이 있는 것이다.전통문화 확산의 첫 단추는 접촉이다. 책이나 음반을 통해서건 매스미디어를 통해서건 또는 직접 찾아가서건 전통 문화와의 만남이 있어야 확산시킬 수 있다. 확산은 전통의 자발적 전승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접촉이 확산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접촉자가 별다른 흥미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의도했든 아니든 전달력을 잃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의 반응이 갈리는 것과 같다. 홍보를 하지 못한 저예산 영화가 상영관을 늘리기 시작하는 것은 영화를 보고나온 관객들의 전파력 때문이다. 그 전파력이란 간단히 `이거 너도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아리랑이 근대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신의 상징이 되는 과정 또한 이러하지 않았을까? `당신도 이것을 보았으면 좋겠다.`보사노바 뮤지션으로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나희경은 1998년 `컴 뮤직 엔 엠피쓰리`라는 책을 통해서 보사노바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보사노바 리듬에 대한 소개와 샘플 시디까지 들어 있었다.그때 들은 리듬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밟아보지 못한 땅에 이렇게 새롭고 매력적인 음악이 있다니!` 놀라웠다. 그래서 남미 쪽 음악을 찾아 듣게 됐다. 그러다 보사노바와 삼바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 2010년도에 브라질로 직접 찾아갔다. 거기서 반년 정도 생활하면서 본격적으로 보사노바 음악을 하게 되었다.나희경의 브라질행은 접촉자로서 대상에 매력을 느끼고 그 때문에 공유하고픈 마음이 자연스레 생긴 경우다. 마음은 몸을 브라질까지 이끌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음악적인 앎이 있다. 나희경은 외국인으로서 브라질 전통음악을 오해할까 두려웠다고 한다. 외부인의 눈으로 본 전통문화에는 편견과 과장이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그녀가 브라질을 찾아갔을 때, 보사노바 1세대는 거의 다 세상을 떠난 뒤였다. 다행히 호베르트 메네스칼, 오스바울드 몬테네그로를 만났다. 아직 살아있는 보사노바 1세대 아티스트였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진짜 보사노바 음악을 알게 된다는 희열이 있었다.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보사노바가 하나의 전체로서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가서 활동한 덕분에 어떤 부분들이 그 전체를 이루는지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리랑 통신사는 오지 않는다나희경에게 전통음악의 변형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음악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음악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중심부를 건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만 그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형식은 얼마든지 변형시킬 수 있을 것이다.”옷을 바꾸고 스타일을 바꾸더라도 다른 사람이 되진 않는다. 악기들은 전통적이지만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는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가 발견한 부분이란 심층과 표피의 관계였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문화접변 자체의 의의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문경에 통신사절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희경 씨의 경우대로라면 해외건 국내건 음악인과 어울릴 음악인이 필요하다. 바깥의 음악인들이 찾아올 만한 음악적 요소가 `문경아리랑`에 있다고 일단 전제한 뒤에 그렇다. 음악인들이 문경에 온다면, 그곳이 문경아리랑을 접하기 가장 좋은 곳이어야 한다는 뜻이다.이들이 원하는 아리랑은 보는 아리랑이기도 하지만 듣는 아리랑이다. 음악적으로 영감을 줄 수 있는 아리랑이다. 가능하다면, 자생적으로 아리랑을 음악적으로 영위하는 창작주체가 있어야 한다. 1세대 보사노바 가수들이 대부분 사라졌더라도 한 두 명의 음악인에 의해 전통음악이 거듭날 수 있음을 나희경 씨는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그런데 이런 경우는 드물다. 문경에 오는 이들은 음악인들이 아닌 관광객이다. 문경새재는 연 4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국민관광지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한국인들이 꼭 가보고 싶은 관광지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문경세재의 뛰어난 자연환경과 각 명소들에 깃든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있었다.문경시는 산업화와 근대화 물결 속에서 운 좋게 옛길을 지켜낸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영남대로`라 명명된 길이 어떻게 포장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흙길일 수 있었을까? 세계적으로도 이런 친환경적인 `대로`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교통의 요충지였다고 하는 문경새재가 이런 산 속의 길로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할 수밖에 없다.그런 와중에 듣게 된 소리는 매우 흥미로웠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때문이란다. 박정희 대통령이 문경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할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문경새재의 옛길을 훼손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는 얘기다. 관광객들 흥미 이끌고 기억에 남길흥미있는 퍼포먼스 곁들인 공연 필요□ 관광객에게 `함께 즐길` 무언가를 제공해야사람들이 문경에 무엇을 보러 오는지는 이로써 명확해진다. 문경을 찾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자연경관과 문화유적들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문경이 이러한 관광객을 그냥 관광객으로 돌려보내고 있는 듯하다. 잠재적인 전파자로 돌려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잠재적인 전파자가 될 수 있을까.문경아리랑을 전파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문경에 오는 사람은 없다. 보사노바를 한국에 알리고 역으로 브라질에 아리랑을 소개하고 있는 나희경 씨 또한 그것을 의도하진 않았다.“공유하고 확산시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움직여지진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음악 고유의 아름다움 때문에 움직여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요? 물론 사명감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음악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을 것이라고 봐요.”나희경의 음악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나희경의 말에 비춰보건대 전통문화는 의도치 않게 확산된다.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온 여행기자 류진 씨는 `시샤`라는 수호신의 탈을 쓰고 마당극에서 일본의 민요를 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각 나라의 민요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고 공감할만한 부분도 극히 적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무형문화재를 공연으로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은 말로만 들었을 때엔 매우 뜻 깊은 일 같지만 많은 여행객들은 그런 인류학적 퍼포먼스에 관심이 크지 않다. 오히려 여행지에서 파는 기념품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보통 파티문화가 익숙한 나라는 음악공연을 할 때 무대에 나가서 같이 즐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웬만한 민요 공연에서는 강강수월래 같은 퍼포먼스가 있죠. 다 같이 춤을 추거나 혹은 노래하는 사람 앞에 마련된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요.”류진 씨의 말이다.“노래만 하는 공연보다는 퍼포먼스가 함께 있는 공연, 판을 만들어 다 같이 함께 노는 공연이 흥미롭고 즐거운 편이죠. 기억에도 남고요. 그러다보면 한국에 돌아 와서도 여행지에서 익혔던 민요를 흥얼거리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처음 본 사람과 눈을 맞추고 같이 춤추고 그게 아니라면 같이 박수를 치고 몸을 들썩이며 함께 하는 공연은 인상적이다. 그 나라의 고유한 전통 악기,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특유의 리듬, 그 나라의 이국적인 의복 등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면 매우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를 향유하게 되고 기억에 남는다. 문경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일반 관광객들이 즐길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강남진 기자/이소연 시인

2016-03-14

가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힘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관문인 불가리아와 마케도니아를 거쳐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로 향하는 국제버스에 올랐다. 때는 유럽대륙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있던 한여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폭염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냉전·폐쇄정책·독재로 서민들의 경제 어려워도자신의 나라에 온 손님에게 작은 할인의 선물도소박하고 선량한 친절을 간직한 티라나 사람들그 더위에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낡은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넘게 달려야 했으니, 마케도니아 스트루가를 출발해 티라나에 도착했을 땐 기자만이 아닌 탑승자 모두가 지쳐있었다. 무엇보다 시원한 음료 한잔이 절실했다.머물 숙소를 찾기 전, 허름한 구멍가게에 들러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하나 꺼내들었다. 맥주 이름이 도시 이름과 똑같은 `티라나`다. 동유럽 도시들은 이름이 예쁘다. 루비아나, 포드고리차, 소피아, 벨그레이드, 부카레스트 등등…. 티라나 또한 단어가 주는 느낌이 앙증맞다.막 도착해 환전소를 찾기 전이라 알바니아 화폐인 레크가 없었다. 맥주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800원. 계산 방식을 묻는 내게 구멍가게 주인은 0.5유로(약 650원)만 내란다. 그리곤 “알바니아에 온 걸 환영하는 뜻에서 해주는 할인”이라며 웃었다. 낯선 도시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베푼 소박한 친절에 기자 역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가게를 나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곤혹스러웠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알바니아엔 번듯하게 지어진 버스터미널이 없다. 인접국을 오가는 국제버스를 포함해 알바니아 국내를 돌아다니는 버스들까지 모두 `길거리` 일정 장소에 정차한다. 뿐만 아니라, 출발지와 목적지별로 정차 장소까지 다르다. 그러니, 여행자는 자신이 하차한 곳이 어디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평소에도 길눈이 밝지 않은 기자는 숙소 찾는 걸 도와주고, 시내 지도 등을 얻을 수 있는 관광안내소부터 찾았다. 하지만, 한참을 돌아다녀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교통경찰인 듯 보이는 사내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서너 번을 반복해 듣고서야 기자가 찾는 숙소의 이름을 알아채고는 말이 아닌 몸짓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뻗었다가 돌리기도 하고, 횡단보도를 설명할 땐 두 발을 모은 채 폴짝 뛰기까지 하면서. 그 광경을 누군가 봤다면 그를 경찰이 아닌 마임 배우로 착각했을 것이다.그 성의가 고마워 고개 숙여 인사를 전했다. 그 또한 어깨동무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조그만 가게 주인과 경찰의 사소한 배려가 알바니아의 첫인상을 좋게 만들고 있었다. 고군분투(?)한 경찰의 설명 덕분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바니아가 개방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에 소년시절을 보낸 청년 두 사람이 공동경영 하는 숙소였다. 다소 낡았지만 정원에는 향기 뿜어내는 나무가 여러 그루 서있고, 그 아래 플라스틱 테이블이 놓인 소박하지만 정감 어린 호스텔. 그 풍경이 지난시절 한국의 민박집을 떠올리게 했다. 기자가 유년을 보낸 부산의 어느 변두리 같은 풍경에 마음이 편안하게 풀어져,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야외 탁자에 앉아 `티라나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해 마셨다.냉전시대, 폐쇄정책으로 일관한 독재자가 장기집권 했던 알바니아. 아직도 경제적인 부분에선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나라를 찾아온 여행자에게 선량한 미소를 보낼 줄 아는 사람들. 그 웃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낮에 마시는 한 잔의 술이 달콤했다.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본다. 경제적 궁핍이 인간성마저 메마르게 하는 모습을. 하지만, 몸이 가난하다고 마음까지 곤궁해지는 게 과연 당연하고 옳은 일일까? 알바니아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게 하는 공간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궁핍을 면하고 있지 못함에도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 그 미소의 발원지가 궁금해졌다. 사실 내부와 외부 모두가 완벽한 세상, 정신적인 부분과 물질적인 부분 모두에서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누군가 “정신적인 행복과 물질적인 풍요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가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힘. 그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알바니아는 쉽사리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아직까지는 여행자가 그닥 많지 않은 알바니아. 기자가 머문 숙소도 겨우 10여 명 남짓의 손님이 전부였다. 그러나, 국적은 다양했다. 한국과 독일,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온 여행자와 몬테네그로 커플까지.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인 그들은 금방 친해졌고, 해가 저문 호스텔 정원은 분위기 좋은 야외카페로 변신했다. 그때 눈길을 사로잡은 이가 한 명 있었으니,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홀로 발코니 의자에 떨어져 앉아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갈색 머리칼의 사내. 나이도 제법 지긋해 보였다. 편안한 표정과 선한 눈빛을 가졌기에 호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미국 워싱턴에서 왔다는 그는 정치인들의 연설문이나 보도자료를 대필해주는 것으로 생활을 해결한다고 했다. “당신이 돕는 정치인들이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고 물었다. 웃음 머금은 얼굴로 그가 답했다. “조지 부시를 좋아할 만큼 바보는 아니죠. 민주당쪽 사람들을 돕고 있어요.”서툴고 거친 기자의 영어는 당연지사 그가 모국어로 사용해온 세련된 영어와 충돌했다. 이런 경우 여행자들의 대화는 중단되기 쉽다. 서로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였을까. 그날 우리의 대화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것은 순전히 단어를 조합하는 수준에서 던지는 말에 귀 기울여주고, 쉬운 문장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미국 사내의 배려 덕택이었다. 똘레랑스(tolerance)가 프랑스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했다.알바니아를 보다 즐겁게 여행하려면…여행이란 문화와 생활방식이 다른 지역을 몸소 경험해보는 것이다. 알바니아 역시 한국과는 판이한 환경을 지닌 국가.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아래 사항을 미리 알아두자.● 한국식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을 기대하면 실망이 클 것이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정비된 서유럽을 먼저 여행한 사람이라면 알바니아의 교통시스템에 경악할 수도 있다.알바니아엔 조그만 도시와 시골은 물론이고, 수도인 티라나에도 버스터미널이란 게 없다. 목적지에 따라 자신이 알아서 버스가 정차하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 알바니아 사람들은 관광객들에게 친절하다. 자신이 가고자하는 여행지를 그들에게 알려주면,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버스가 정차하는 장소로 안내해줄 것이다.● 다소 경직된 이슬람 문화와 자유방임의 유럽 문화가 뒤섞인 공간이 알바니아다. 음식에서도 그 특성은 드러난다. 유럽과 오스만투르크의 맛이 묘하게 융합된 요리는 여행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길거리 허름한 식당에서 알바니아 서민들과 섞여 구운 양고기와 감자튀김을 먹는 것도 좋지만, 촛불 밝힌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정찬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독특한 향신료가 가미된 스테이크와 올리브를 듬뿍 넣은 샐러드를 추천한다.● 한국에선 이미 사라진 낡은 기차를 타고 느린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알바니아가 관광객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평균 시속이 50km도 되지 않기에 KTX에 익숙해진 이들에겐 짜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하지만, 그 속엔 알바니아 사람들의 삶이 숨겨져 있다. 지난시절 우리가 사이다와 삶은 달걀을 챙겨 기차에 올랐다면, 알바니아인들은 빨간 사과와 통밀빵을 들고 여행을 떠난다. 환하게 웃는 꼬마들에게 한국식 게임을 알려주고 함께 즐겨보길 권한다.● 무슬림들의 성당인 모스크를 방문해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알바니아 사람들은 대부분 모스크를 찾는 관광객들을 반긴다. 이슬람교도가 폐쇄적이란 건 일종의 편견이다.그들의 낙천적인 성격이 외지인에게도 자신들 종교의 속살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게 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높은 천장 아래 푸른 타일이 예술적으로 배열된 모스크에서 잠시잠깐 세속의 번잡함을 잊어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다.사진제공/류태규국장席 기자/hss@kbmaeil.com

2016-03-11

“새천년의 시작, 벅찬 감동” 기쁨의 물결

경북도의 안동·예천 신도청시대를 알린 10일 개청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지역기관장, 시·도의원, 주민 등 1만여명이 참석해 축하했다. 표지석 제막, 기념식수, 개청식,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된 개청식 이모저모를 화보로 담았다. 사진=이용선기자“먼발치서라도 보자” 행사장 주변 북적○…경북신도청 개청식이 열린 10일 행사장과 그 주변에는 수많은 도민들이 찾아들었다.검무산 아래 웅장히 들어선 경북신도청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서자 안동시민 2천명을 비롯해 도민 3천여 명이 환호와 함께 태극기·경북도기를 흔들며 환영했다. 대통령 경호절차에 따라 마련된 비표교부대와 검색대에는 “초대 받으셨어요”란 질문이 이어졌고, 미처 초대받지 못한 일부 도민들이 경찰 등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또 아예 행사장에 진입하지 못한 도민들도 먼발치서 개청식을 지켜보며 경북신도청 개청을 축하했다.이밖에 경북도내 거주하는 외국인 결혼이주여성들도 경북신도청 개청을 축하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은 모습도 종종 보였다. 식당·숙박업소 등 개청 특수 `톡톡`○…경북도청 개청식이 열린 10일 안동·예천 주민들은 도청 이전에 따른 효과를 톡톡히 실감했다.개청식장에 초청되거나 개청식을 관람하기 위해 1만여명이 몰리면서 신도청 주변에 개업한 식당은 저마다 밀려오는 손님맞이에 비명을 질렀다.일부 시·군은 아예 직원들을 보내 일찌감치 자리를 잡기도 했다. 안동과 예천 역시 도청 주변에 식당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한 행사참가자들이 식사 차 몰려들면서 특수를 누렸다. 이미 도청이 옮겨온 후 매출이 껑충 뛴 안동·예천지역 식당 업주들은 개청식 날에도 대박이 나자 “이제야 도청이 이전됐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안동과 예천은 숙박업소도 매출이 껑충 뛰었다. 도의원들이 자주 이용하는가 하면 도청을 찾은 민원인 등 이용자가 증가한 것.안동의 한 시민은 “요즘 안동이 경북의 중심에 선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 “도청이 옮겨오면서 무엇보다 서비스업 분야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는 즐거움 또한 기분 좋은 일”이라고 기뻐했다. 경북 해외도민들도 역사적 순간 동참▲ 10일 오후 경북도청 신청사 새마을광장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열린 신청사 개청식에서 김관용 도지사가 개청사를 하고 있다.○…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12개 지역 경북도 해외도민회 40여명과 해외자문위원협의회 10여명이 10일 경북도청 신청사 개청식에 참석했다.이들은 이후 경북 정체성 연수에 참석, 2박 3일의 일정으로 경북에 머무른다.이번에 참가한 방문단은 일본을 비롯해 미국, 독일, 호주, 영국에 거주하는 해외도민회와 자문위원협의회 회장단으로 신청사 개청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다.신청사 개청식 공식행사 후 청사투어를 함께 한 이들 회장단은 한옥청사를 꼼꼼히 둘러보고 곳곳에 자리 잡은 야외 조형물과 대공연장 등의 풍부한 볼거리와 스마트 행정 시스템에 감탄을 자아냈다.김관용 경북도지사는 “700여년 만에 도청을 이전하는 개청식에 참석해주신 방문단께 감사를 표하며, 해외에서도 새 천년 새 출발을 시작하는 경북의 도약에 계속해서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경북도에서는 해외 인적네트워크 강화와 경북의 정체성 확산을 위해 지난 2010년부터 해외동포 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 `세계시민으로 사는 경북인`을 찾아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에는 조국 근대화와 고향발전에 공헌한 재일본 도민회원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기부사례와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자료집을 제작해 차세대의 교육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일본도민회 연합회에서는 회원 143명의 기부금으로 신청사 준공 기념조형물인 `망월(望月)`을 제작해 기증했으며 해외자문위원협의회에서도 기증 물품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진행 중이다. /이창훈·권광순·권기웅기자

2016-03-11